불본행집경 제41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4. 가섭삼형제품 ②
이 때 독룡(毒龍)이 불의 신을 모신 사당을 둘러보니 사방이 일시에 환히 비치며 불길이 매우 사나웠으나 오직 여래께서 앉아 계신 자리만은 고요하여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차츰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더니 곧 몸을 솟구쳐 부처님 발우 속으로 들어갔다.
게송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백천억만 년 동안
일심으로 이 불의 신에게 제사해도
그들은 성냄을 끊지 못하였는데
지금 세존께서는 인욕으로 이기셨네.
일체 천상 인간 세계 안에는
오직 세존만이 대장부시네.
모든 이가 성냄의 중병에 얽혔는데
세존께서는 능히 인욕의 약을 주셨네.
이 때 세존께서는 그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자 그 독룡을 담은 발우를 들고 우루빈라 가섭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가섭이여, 이것이 바로 독룡이다. 그대들이 두려워 불의 신을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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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암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위신력(威神力)의 불로 그의 독한 불을 없앤 뒤에 지금 가지고 와서 그대들 모든 바라문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이 때 그 밤중이 이미 지나고
세존께서는 가섭의 처소에 나오셔서
발우에 담은 독룡을 보이며
손으로 그의 앞에 놓으시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독룡은 제 스스로 큰 사문의 발우 속으로 들어갔을까, 그렇지 않으면 큰 사문의 신통력 때문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세존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곧 손에 들고 있던 발우가 저절로 우루빈라 가섭을 향하여 열리게 하셨다. 그러자 거대한 머리 아홉 개를 가진 독룡이 그 목을 들어 그에게 덤벼들려고 하였다.
우루빈라 가섭은 용이 머리를 들고 자기에게 덤벼들려는 것을 보는 순간 크게 놀라고 두려워 곧 몸을 움츠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세존께서 우루빈라 가섭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 가섭이여, 어찌하여 몸을 움츠리며 그토록 놀라느냐? 그대는 겁이 나는가?”
가섭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덕 사문이시여. 저는 정말 두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그대는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게송을 가섭에게 들려주셨다.
내 간밤에 이 자를 교화하였으니
다시는 남을 겁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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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가 그대를 문다는 건
이 세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네.
하늘이 무너져 땅에 거꾸러지고
대지가 먼지같이 부서진다 해도
수미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갈지라도
모든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으시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신력과 큰 힘이 있어 이렇게 신통력의 불을 만들어 내어서 저 독룡의 그 악독하고 사나운 불을 껐구나. 하지만 비록 그렇더라도 아직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독룡을 잡아 큰 바다 밖 철위산(鐵圍山) 사이로 보내 버렸다. 그러자 우루빈라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그 독룡을 지금 어디에 두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
“가섭이여, 그 독룡은 내가 지금 저 철위산 사이로 보내 두었다.”
그러자 우루빈라 가섭은 부처님께서 이렇게 신통력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보고 마음에 크게 기쁨을 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부디 항상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제가 항상 음식을 공양하여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우루빈라 가섭이 청하는 것을 묵묵히 받으셨다.
어떤 논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우루빈라 가섭에게 ‘가섭이여, 만약 그대들이 때에 맞추어 나에게 식사할 때를 알려 준다면 나는 그대들의 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고, 가섭은 ‘저희는 알려 드리겠습니다’고 답하였다.”
이 때 색계의 정거천왕(淨居天王)들이 곧 게송을 읊었다.
바로 이 대자대비하신 세존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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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독룡을 잘 항복 받으셨네.
그 세 가섭이 불의 신을 섬기면서
지녔던 정진의 힘은 이제 없어지리라.
부처님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에게 공양을 받으신 뒤에 길을 떠나 차츰 나아가셨다.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리니가(差梨尼迦)[수나라 말로는 작지즉출유즙(斫枝卽出乳汁), 즉 가지를 베면 진이 나온다는 뜻이다.]란 숲이 있었는데, 그 숲에서 경행(經行)하시며 머무셨다.
이 때 사방을 지키는 사대천왕이 그날 밤 몸에서 눈부신 빛을 뿜으며 세간으로 내려와서 하늘 몸의 광명으로 그 숲을 두루 비추면서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였다. 부처님의 처소에 도착하자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합장하고서 물러나 자기들이 온 방위(方位)를 따라 한쪽에 머물러서 부처님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절을 하였다. 마치 거대하고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덩이와 같은 그들의 거대한 광명이 차리니가 숲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그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부처님 처소에 나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공양할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밤에 이곳으로 온 네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누구이기에 몸에서 그런 가장 훌륭하고 미묘한 광명을 내어 한밤중에 이 숲을 비추면서 큰 사문 곁에 와서 절을 한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 머리를 숙이고 합장하여 공경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마치 큰 불덩이 같은 거대한 광명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그 네 사람은 바로 사천왕이다. 그들은 나에게 법을 물으려고 내게로 온 것이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신력과 큰 위덕이 있으므로 사천왕이 내려와 그에게 법을 물으려 하는구나. 하지만 위력이 비록 그러하더라도 다만 지금의 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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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이 때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로 가셔서 공양을 끝내시고, 다시 그 숲으로 돌아오신 뒤 산책하시며 고요히 머무셨다.
그날 밤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몸에서 가장 뛰어나고 미묘한 광명을 놓아 숲을 환히 비추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그리하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 한쪽으로 물러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섰다. 마치 불덩이에서 거대한 불길이 빛을 내뿜는 것과 같은 그의 광명은 앞서 사천왕의 몸보다 갑절이나 더 밝고 눈부시게 빛나 견줄 수가 없었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 밤이 지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공양할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밤의 그들은 누구인데 몸에서 그렇게 큰 광명을 내며 여기 이르러 정례하고 합장한 뒤 한쪽에 서 있었고, 나아가 강렬한 불빛은 사천왕의 광명보다 배나 되었습니까?”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그는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왕인데 그가 나한테 와서 법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우루빈라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덕이 있어 제석천왕까지도 그에게 와서 법을 듣는다. 하지만 위력은 그만할지라도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세존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끝내신 뒤에 다시 그 숲에 나아가 경행하시면서 머무셨다.
그날 밤 야마천왕이 몸에서 가장 미묘한 빛을 내며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정례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었다. 내지 가섭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력이 있고 크게 위신이 있어 그 야마천왕도 와서 법을 듣게 한다. 하지만 위덕은 그만할지라도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은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끝내신 뒤에 다시 그 숲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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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경행하시면서 머무셨다.
그날 밤 도솔천이 몸에서 큰 빛을 내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내려왔다. 내지 가섭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력이 있고 크게 위신이 있어 저 도솔타천왕도 내려와 법을 듣게 하였다. 하지만 위덕은 그러할지라도 그는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끝내신 뒤에 다시 그 숲에 나아가 경행하시면서 머무셨다.
그날 밤 화락천왕이 몸에서 광명을 놓으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내려왔다. 가섭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신이 있어 화락천왕도 내려와 법을 듣게 하였다. 하지만 위덕은 그러할지라도 그는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받으신 뒤에 다시 그 숲에 들어가 경행하시면서 머무셨다.
그날 밤 타화자재천자가 몸에서 광명을 놓으며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가섭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신이 있고 위력이 있어 타화자재천자까지 와서 법을 듣게 하였다. 하지만 위덕은 그러할지라도 그는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드신 뒤에 다시 그 숲으로 나아가 경행하시면서 머무셨다.
그날 밤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이 몸에서 광명을 놓아 그 숲을 두루 비추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내려왔다. 도착해서는 합장하고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서서 부처님을 우러러보았다. 마치 거대한 불덩이처럼 맹렬한 불꽃을 내니, 욕계(欲界)의 모든 천왕들의 광명보다 백 배나 더하였고, 가히 비길 데가 없었다.
우루빈라 가섭은 밤이 지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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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사문이시여, 공양하실 때가 되어 음식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밤에 가장 뛰어난 광명을 내어 널리 숲을 비추면서 큰 사문에게 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어떤 자이기에 합장하여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물러나 섰으며, 내지 그 광명은 모든 천왕의 광명보다 더 훌륭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어진 가섭이여, 그 사람은 사바세계의 주인 대범천왕이었다. 그는 나에게 와서 법을 듣고자 하였다.”
이 때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덕이 있고 크게 위신이 있어 사바세계의 주인 대범천왕도 그 앞에 이르러 법을 듣고자 하였다. 하지만 위덕은 그러할지라도 그는 역시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받으신 뒤에 다시 그 숲에 나아가 경행하시며 머무셨다.
이 때 우루빈라 가섭이 사는 곳에서 해마다 한 번씩 치르는 큰 제삿날이 되었다. 이날은 언제나 마가다국의 일체 인민들이 온갖 종류의 가장 훌륭한 음식을 가지고 오는데, 이른바 씹는 것, 먹는 것, 핥는 것, 뜯는 것들을 다 갖춘 것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가지고 다음날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 올 예정이었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 자기 방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일은 마가다 일체 인민들이 여러 가지 한량없는 음식을 다 갖추어 들고 나에게 와서 제사를 지내게 된다. 그런데 구담 대덕 사문이 만약 이 모임의 대중들 앞에서 훌륭하고 뛰어난 신통법을 보인다면 나의 모든 이양(利養)과 명성은 그에게 돌아가고 나에게 오는 것은 적어질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 큰 사문이 내일 오지 말게 해야겠다.’
이 때 세존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의 속마음을 아시고 그날 밤이 지나자 울단월로 가셔서 그곳에서 걸식하셨다. 그리하여 아뇩달(阿褥達) 큰 못가에서 식사를 하시고 못가에서 잠깐 쉬신 뒤에 다시 본래 계시던 숲으로 돌아오셔서 경행하시며 머무셨다.
그날 밤 우루빈라 가섭은 식사를 마친 뒤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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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식사시간이 되었고 준비도 모두 마쳤는데, 사문께서는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저는 잊지 않고 당신을 위해 가장 맛좋은 여러 음식들을 한몫 남겨 두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는 지난밤 고요한 방안에서 홀로 앉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가?
‘내일은 해마다 항상 거행하는 제삿날이어서 아침이 되면 내가 사는 이곳으로 마가다의 모든 사람들이 온갖 음식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나 이 대덕 사문 구담이 그 모임의 대중 앞에서 신통을 나타내어 상인(上人)의 법을 보이면 곧 나의 모든 명성과 이익이 다 저 큰 사문에게 돌아가 나의 몫이 줄어들까 두렵구나. 그가 내일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섭이여, 나는 그 때 그대의 이런 생각을 알았으므로 밤이 지난 뒤에 곧 허공을 날아올라 울단월에 이르러 그곳에서 걸식하고 아뇩달 못가에 이르러 법답게 먹은 뒤에 시간 있는 대로 거기서 경행하다가 이 숲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우루빈라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신통력이 크고 위엄이 있으며 방편이 뛰어나다. 그러나 감응하여 변화하는 것은 비록 그렇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니사새(尼沙塞)의 말이다.]
이 때 우루빈라 가섭의 거처에는 항상 해마다 커다란 집회가 있었으니, 그 모임의 이름은 익수일(翼宿日)이었다. 그 집회일에는 마가다국에 사는 수천만 명의 사람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 집회에는 시장도 열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팔았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내일 아침 저 사문이 이곳에 온다면 그를 본 인민들은 아무도 나를 위해서 재식(齋食)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내일 아침 제가 살고 있는 숲의 도닦는 곳에서는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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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집회가 열립니다. 그러면 백천 군중들이 모여들어 매우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큰 사문께서는 고요함을 좋아하시고 언제나 깨끗하고 텅 비고 한가한 곳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니 사문께서는 이곳에서 옮겨 다른 고요한 곳을 찾아 거기에서 머무십시오.”[이것은 마하승기(摩訶僧祇)의 말이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곳을 떠나 차리니가 숲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 숲에 도착하시자 저 네 명의 가루라왕을 생각하셨는데, 그 왕의 이름은 가촉(可觸)이었다. 또 네 명의 제두뢰타용왕과 네 명의 수신(水神)인 용, 사대천왕, 제석천왕과 또 욕계의 모든 하늘과 사바세계 주인 대범천왕들을 모두 다 생각하셨다.
그러자 그 네 가촉왕의 가루라들은 부처님께서 마음으로 자신들을 생각하시는 것을 알고 큰 바람을 일으켜서 그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로부터 허공을 날아 곧 차리니가 숲으로 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합장하고서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들은 세존을 멀리에서 우러러뵈며 다시 부처님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그리고 네 명의 제두뢰타용왕과 네 명의 수신왕도 부처님 마음을 알고 큰 구름과 비를 일으키며 우루빈라 가섭의 거처에서 날아올라 차리니가 숲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합장하고서 한쪽으로 물러나 부처님을 향하여 공손히 우러러보았다.
사방의 사대천왕들도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람들이 보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을 지어냈다. 그리고 눈부시게 위엄 있는 빛을 나타내어 스스로를 비추면서 흰 코끼리를 타고 땅에서 솟아올라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차리니가 숲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내지 합장하고 부처님을 멀리서 우러러보았다.
또 도리천의 제석천왕이며 욕계의 모든 천왕들과 사바세계 주인 대범천왕도 부처님 마음을 알고 몸에서 위엄 있는 빛을 내어 그 땅을 두루 비추면서 그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허공을 날아 한 번에 차리니가 숲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내지 몸을 굽혀 부처님을 우러러보았다.
그 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모든 천왕과 용왕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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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리하여 곧 우루빈라 가섭에게 물었다.
“대덕 화상(和上)이시여, 대체 어떤 신(神)이기에 이런 변괴를 짓는 것입니까? 무슨 재난이라도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무슨 전염병이 생기거나 크게 두려운 일이 벌어졌거나, 아니면 큰 전쟁이 벌어진 것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면 가타부단나(迦吒富單那) 귀신이나 흑암귀(黑闇鬼)가 오는 것이 아닙니까?”
이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저 대덕 사문의 위력으로 이런 신통변화를 내는 것이로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대중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일체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놀라지도 말라. 이것은 재난도 아니요 전염병이나 전쟁도 아니고, 귀신들이 오는 것도 아니다. 마땅히 두려움 없고 풍년이 들 것이며, 괴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니 겁내지 말아라. 전염병도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라. 괴로운 일이 아니요, 모든 징조가 한결같이 크게 길할 것이다.”
그리고 우루빈라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그 큰 사문에게 찾아가서 이 일을 알아보아야겠다. 그러면 무슨 까닭과 무슨 변화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불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려 하였지만 여래께서 홀연히 신통력으로 높고 험한 큰 산 하나를 앞에 만들어 놓으셨다. 그래서 그는 가려고 하였지만 그 산을 지날 수 없어서 그 산까지 이르렀다가 곧 돌아갔다.
그는 그날 밤이 지난 뒤에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도착한 뒤에 그는 이렇게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어제는 어찌하여 그와 같은 괴이한 일들을 일으켰습니까? 저는 예전부터 이곳에 살아왔지만 이런 일을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그를 위하여 지난 일을 자세하게 일러 주셨다.
그 우루빈라 가섭은 이 말을 듣고 크게 신기해하고 특이하며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 여러 해 동안 여기 살면서 항상 불의 신에게 제사하였지만 단 한 번의 회오리바람의 조짐조차도 나에게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 하물며 다른 신들이 올 리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이 사문 구담은 큰 위덕이 있어 모든 천왕들이 그 곁에 오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자 곧 부처님을 믿는 마음과 희유한 마음이 생겨 곧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청하였다.
‘원하옵건대 큰 사문이시여, 내일 공양 때 다시 저에게 오셔서 저의 조그만 공양을 받으소서. 만약 부처님께서 일체 지자(智者)시라면 저의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부처님께서는 곧 그 우루빈라 가섭의 생각을 아시고 묵묵히 그의 마음의 초대를 받으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자기 처소로 돌아와 동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큰 사문에게 가서 그 분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잘 살펴보아라. 음식을 구하기 위해 옷을 입으려고 하시는지, 아니면 묵묵히 고요하게 앉아 계시는지를 살펴보아라.”
동자들은 우루빈라 가섭의 지시를 받고 곧 차리니가 숲으로 갔다. 숲에 도착한 그들은 부처님께서 그 숲의 어느 나무 아래에서 고요히 생각에 잠긴 채 앉았는데 몸에서 광명이 나와 그곳을 비추고, 먹을 것에 만족할 줄을 알므로 걸식을 하러 나가지 않고 고요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았다.
이런 모습을 본 그들은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당신은 지금 왜 먹을 것을 구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동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동자들아, 나는 이미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다시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누구에게서 초대를 받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곧 대답하셨다.
“너희들의 화상(和上)이 이미 나를 청하였다.”
그 때 그 동자들은 희유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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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기하고 신기하구나. 이 큰 사문께서는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멀리 남의 마음을 아시는구나.’
그들은 크게 기뻐 뛰놀며 기쁨에 벅차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둘러 우루빈라 가섭에게 돌아가서 말하였다.
“존자 화상이시여, 저희들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이 큰 사문은 일체지인(一切智人)이십니다. 화상께서 마음으로 묵연히 그 분을 청하셨는데 그 분은 곧 화상의 마음을 아시고 저희들에게 ‘이미 너희 화상의 마음으로 청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그 말을 듣고서 곧 매우 값진 자리를 깔아 놓고 나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사문 구담이시여, 만약 당신이 일체지자(一切智者)라면 틀림없이 내 생각에 응하여 이 자리에 나타나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의 마음을 알고 그 자리 위에 몸을 나타내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세존께서 자리 위에 단정히 앉으신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곧 손수 맛좋은 여러 가지 음식을 부처님께 베풀었으니, 이른바 씹어 먹고 빨아먹고 핥아먹는 등의 온갖 음식을 풍족하게 장만하여 마음껏 드시게 하고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희유하고 희유하도다. 이 큰 사문은 큰 위신도 있고 큰 덕력도 있어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위신력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에게 공양을 받으신 뒤에 다시 차리니가 숲으로 가셔서 경행하시며 머무셨다.
한편 당시 세존께서 몸에 걸치신 가사가 다 낡아 찢어졌다. 때마침 저 병장 바라문의 마을에 살던 어떤 사람이 목숨을 마쳤으므로 곧 숲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 때 세존께서는 숲에서 그를 보시고 스스로 그 분소의를 가져다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나는 지금 어느 곳에서 이 분소의를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을까?’
이 때 도리천의 제석천왕은 세존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신 것을 알고,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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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땅을 손으로 파서 못을 하나 만드니, 그 물은 매우 맑고 깨끗하였다. 그는 못을 만든 뒤에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이 물로 분소의를 씻으소서.”
이 때 세존께서는 못의 물을 보시더니 다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제 물을 얻었지만 이 옷을 어디에 올려놓고 씻어야 하는가?’
그 때 제석천왕은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철위산에서 큰 돌을 하나 가져다 부처님 앞에 놓고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이 돌 위에서 그 옷을 세탁하소서.”
이 때 부처님께서는 또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제 돌은 구했지만 다시 무엇을 의지하여 이 옷을 씻을까?’
그 못가에는 예전부터 가구바(迦拘婆)[수나라 말로는 봉(峰)이라고 함]란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는 나무의 신(神)이 깃들어 살고 있었다. 그 신은 부처님의 생각을 알고 나뭇가지 하나를 아래로 드리우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디 이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그 분소의를 세탁하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 옷을 빤 뒤에 다시 어느 곳에 널어 말려야 하는가?’
이 때 제석천왕은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곧 철위산에서 가장 크고 평평한 돌을 하나 가져다 부처님 앞에 놓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돌 위에 옷을 널어 말리소서.”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 바위 위에 분소의를 널어 말리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이 지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부처님 곁에 이르자 이렇게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공양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을 다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예전에는 이곳에 이런 못이 없었는데 오늘 어떻게 문득 이런 못이 생겼습니까? 예전에는 이곳에 이 같은 두 개의 돌이 없었는데, 이 돌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가구바나무도 예전에는 가지가 드리워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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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는데, 오늘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굽어져서 드리워져 있습니까? 무슨 인연으로 문득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인자 가섭이여, 여기서 나는 분소의를 얻었는데 그 때 어떻게 이 분소의를 씻을까 하고 생각을 하자, 제석천왕은 내 생각을 알고 손으로 땅을 파서 이 못 물을 만들어 내고 나에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제 이 못의 물로 분소의를 씻으면 됩니다.’
이런 까닭에 지금까지 이 못의 이름은 ‘제석이 손으로 판 못’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이 물을 얻고서 나는 또다시 어디에 옷을 올려놓고 빨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그러자 제석천왕이 내 마음을 알고 철위산에서 큰 돌을 하나 가져다 여기 놓고 나에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돌 위에서 옷을 세탁하소서.’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 아닌 이가 던진 돌’이라고 이름한다.
나는 그 때 다시 무엇을 손으로 붙잡고 이 옷을 빨아야 할까를 생각하였다. 그 때 저 가구바나무의 신이 내 마음을 알고 손으로 이 가지를 드리워 주면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손으로 이 가지를 휘어잡고 발로 옷을 밟으소서.’
이런 인연으로 이 나뭇가지가 이렇게 드리워진 것이다.
나는 또다시 어디에 옷을 펼쳐서 말려야 할까를 생각하였다. 그러자 제석천왕이 내 마음을 알고 철위산에서 이 널찍한 돌을 가져다 내 앞에 놓고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돌 위에 옷을 널어 말리소서.’
이런 인연으로 이 돌을 ‘사람 아닌 이가 던진 것’이라 부른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력이 있고 크게 신통이 있어 그 천주인 제석천왕들이 와서 섬겨 받들게 하였다. 하지만 신통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은 그렇다 해도 이 큰 사문은 참으로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만은 얻지 못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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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끝내시고 숲으로 다시 돌아와 경행하시며 머무셨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이 지나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음식이 다 준비된 줄 아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그대는 앞서 가라. 내 곧 뒤따라가겠다.”
그 때 세존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을 보내고 나서 곧 신통을 타고 수미산으로 향하셨다. 그 산에는 염부(閻浮)나무가 있었는데, 그 염부나무를 말미암아 염부제(閻浮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세존께서는 그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 가지고 먼저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 도착하신 뒤에 불의 신을 제사하던 암자 안에 단정히 앉으셨다.
나중에 온 우루빈라 가섭은 이미 여래께서 암자 안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당신은 어느 길을 따라 이곳에 오셨습니까? 당신은 본래 숲에서 저보다 늦게 떠나셨는데, 지금 어떻게 저보다 먼저 오셔서 이 암자 속에서 편안히 앉아 계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나는 그대를 먼저 보내고 난 뒤에 수미산에 갔었다. 그곳에는 염부라고 하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나무로 인하여 지금 염부제라고 이름한다. 그 나무에 달린 열매를 지금 이곳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서 가섭에게 그 염부나무의 열매를 가리켜 보이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다. 모양도 매우 좋고 향기와 맛이 아주 좋으며 먹어 보면 참 맛있으니, 그대는 이 과일을 먹어 보아라.”
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달콤한 열매는 당신께서 드셔야 합니다. 저는 먹을 수 없습니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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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사문은 크게 신통이 있고 크게 위력이 있어, 이에 나를 먼저 보내고 나서 그 몸은 스스로 수미산에 가서 염부나무 열매를 따 가지고 이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에 먼저 와 앉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드신 뒤에 다시 그 숲으로 돌아가 경행하셨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이 지나 아침이 되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때를 아신다면 공양 올릴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그대는 또 먼저 가라. 내 뒤따라가리라.”
부처님께서는 가섭을 먼저 보내고 나서 곧 다시 수미산으로 가셨다. 그곳에는 염부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암바라(菴婆羅)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 가지고 가섭보다 먼저 그의 처소에 도착하신 뒤에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 안에 앉으셨다.
가섭은 뒤에 와서 세존께서 암자 안에 편안히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 사문이시여, 어느 길로 오셨기에 저보다 먼저 이 암자에 도착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그대를 보내고 나서 수미산에 가서 이 암바라 열매를 따 가지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나서 가섭에게 먼저 먹기를 권하셨다. 그러나 가섭은 말하였다.
“제가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루빈라 가섭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신통이 있고 크게 위력이 있어 나를 먼저 보내고 수미산에 가서 열매를 따 가지고 나보다 먼저 와서 앉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의 처소에서 공양을 드신 뒤에 숲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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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 경행하셨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이 지나 아침이 되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만약 때가 된 줄 아신다면 공양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내지 그 염부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하리(呵梨)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따 가지고 가섭보다 먼저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에 도착하셨다. 내지
‘이 사문은 크게 신통이 있으나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이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고 다시 그 숲으로 가셔서 경행하셨다. 내지 그 염부제에서 가까운 곳에 비혜륵(毘醯勒)이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 가지고 먼저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에 도착하셨다. 내지 앞에서와 같으며, ‘이 큰 사문은 크게 신통이 있어 나를 먼저 보내고 과일을 따 가지고 왔으나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이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끝내시고 그 숲으로 돌아가셔서 경행하셨다. 내지 염부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아마륵(阿摩勒)이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가지고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에 가섭보다 먼저 와 앉으셨다. 내지 ‘이 사문은 큰 신통력이 있어서 나를 먼저 떠나 보내고 자신은 열매를 가지고 암자에 와 있으나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신 후에 그 숲으로 돌아와서 경행하셨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이 지나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만약 때를 아신다면 공양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그대는 또 먼저 가라. 내 뒤따라가리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가섭을 보내고 나서 구야니(瞿耶尼)로 가셨다. 그곳에 도착하시자 우유를 발우 하나 가득 빌어 받으신 뒤에 그것을 가지고 가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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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먼저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에 도착하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부처님을 보고 나서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어느 길로 오셨기에 저보다 먼저 이 암자에 도착해 계십니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내 그대를 보낸 뒤에 구야니에 가서 이 우유를 발우 가득 얻어서 이곳으로 와 앉았다. 가섭이여, 이 우유는 빛깔도 매우 좋고 향기롭고 달콤하다. 만약 그대 마음에 들면 이 우유를 마셔 보아라.”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어찌 감히 먹을 수 있겠습니까? 사문께서 드소서.”
그러나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력이 있고 크게 신통이 있어 나를 먼저 보낸 뒤에 구야니국에 가서 발우 가득 우유를 얻어 가지고 나보다 먼저 이 암자에 왔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과를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불본행집경 제42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4. 가섭삼형제품 ③
이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이 끝나신 뒤에 그 숲으로 돌아가셔서 경행하셨다.
우루빈라 가섭은 그날 밤이 지난 뒤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만약 때를 아신다면 공양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저 가라. 내 뒤따라가리라.”
부처님께서는 가섭을 먼저 보낸 뒤에 곧 삼십삼천으로 가셨다. 그 하늘에 도착하시자 파리사다가(波梨闍多迦)[수나라 말로는 도피생(彼岸生)이라 함]라는 꽃 한 송이를 얻어 가지고 먼저 불의 신을 제사하는 암자에 오셨다.
가섭은 뒤에 와서 부처님께서 먼저 와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고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어느 길로 오셨기에 저보다 먼저 암자에 도착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내 그대를 먼저 보낸 뒤에 도리천궁으로 가서 이 파리사다가꽃을 가지고 이 신에게 제사하는 암자에 왔다. 그런데 이 파리사다가꽃은 모양도 예쁘거니와 향기도 매우 좋으니 그대 마음에 들면 이 꽃을 가져다 냄새를 맡아라.”
가섭은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이 꽃의 향기는 미묘하고 매우 좋습니다. 사문께서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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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셔야 하며 저는 향내를 맡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때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력이 있고 크게 신통이 있어 나를 먼저 보낸 뒤에 천상에 가서 이 파리사다가꽃을 가지고 나보다 먼저 이 암자에 와서 앉았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이 되어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 경지를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이 때 가섭의 거처에 있던 소라 상투 범지[螺髻梵志]1)들이 장작을 쪼개려 하였으나 할 수가 없었다. 서 있는 사람은 몸을 굽히지 못하였고, 허리를 굽힌 사람은 바로 펴지 못하였으며, 도끼를 나무에 찍은 사람은 빼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소라 상투 바라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신통은 분명 의심할 바 없이 저 큰 사문이 지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금 장작을 쪼개지도 못하고 힘만 드는 것이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들에게 이르셨다.
“소라 상투 가섭이시여, 그대들은 지금 장작을 쪼개려 하는가?”
가섭은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여, 정말 쪼개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고 나자 바라문들은 곧 그 나무를 마음대로 쪼갤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곧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고 그 숲으로 가서 경행하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이 살고 있는 처소에서는 촛불을 켜려 하였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그러자 그 소라 상투 범지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신통은 의심할 바 없이 분명히 저 큰 사문이 한 짓이다. 우리가 이토록
1) 바라문 행자들 중에 머리를 묶어서 소라[螺] 모양처럼 틀어 올린 머리 모습을 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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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지만 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그 우루빈라 가섭들에게 이르셨다.
“가섭이여, 그대들은 불을 켜려 하는가?”
가섭들은 대답하였다.
“대덕 사문이시여, 저희들은 불을 켜려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물으시자 곧 5백 개의 촛불이 켜졌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저들이 촛불을 붙이려 해도 불이 붙지 않게 하고, 만약 붙이려고 생각하면 이내 불이 붙게 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공양이 끝난 뒤에 숲으로 돌아가서 경행하셨다.
그 때 저 소라 상투 범지들은 불을 끄려고 하였는데 끄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사문의 신통력 때문에 우리들이 불을 끄려고 해도 끄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 세존께서 가섭에게 이르셨다.
“그대들은 지금 이 불을 끄려고 하는가?”
가섭은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이 불을 끄려고 하였지만 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을 때 5백 개의 불은 곧 꺼졌다.
그 때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그 힘으로 불을 끄려고 하면 곧 꺼지고 불을 붙이려고 하면 곧 붙여진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공양을 마치신 뒤 그 숲으로 돌아가 경행하며 머무셨다.
그런데 저 소라 상투 범지들은 몹시 추운 한겨울에, 한밤중이나 혹은 새벽에 혹한이 닥치고 눈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도 니련선하(尼連禪河)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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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물 속에 잠겼다가 나왔다가 하면서 목욕을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신통력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5백 개의 숯불더미를 만들어서 그 강가에 놓아두었다. 그 소라 상투 범지들은 물에서 나와 추위에 떨면서 강가에 있다가 제각각 불을 쪼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저 큰 사문이 신통변화를 일으켜 문득 이런 5백 개의 연기가 나지 않는 화로를 만들어 우리들이 물에서 나와 쪼이도록 한 것이로구나.’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이에 5백 개의 화로를 만들어 연기도 나지 않게 하였으며, 또 5백 명의 내 제자들이 찬물에서 나와 그 불을 쪼이게 하였구나.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공양을 마친 후에 그 숲으로 돌아가 경행하며 머무셨다.
그 때 저 소라상투 범지들은 물을 뜨려고 각기 병을 들거나 혹은 군지(軍持)1)를 들고 물을 뜨려 하였으나 잡을 수 없었다.
그러자 저 소라 상투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저 큰 사문이 우리들에게 병과 군지를 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때 세존께서는 우루빈라 가섭과 그의 5백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들은 각각 병과 군지를 들고 물을 떠오려고 하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답하였다.
“어지신 사문이시여, 이들 5백 명의 바라문들은 병과 군지를 들고 물을 떠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셨을 때 그 5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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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두 병과 군지를 가지고 물을 떠올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그가 허락하면 곧 이 5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이 물을 풀 수 있고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물을 풀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공양을 끝내신 뒤에 다시 그 숲으로 돌아가 경행하며 머무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예전에 불의 신에게 제사할 때 항상 7다라수(多羅樹) 높이만큼 위로 올라 앉아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뒤에 그가 제사할 때에 일곱 그루 다라수 높이만큼 올라가려 하였으나 올라갈 수 없었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틀림없이 이것은 저 큰 사문이 신통을 부리는 것이다. 그가 나를 이 다라수 높이만큼 올라가 불의 신에게 제사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섭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크게 위력이 있고 크게 신통이 있어서 이렇게 우리를 나무 높이만큼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르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공양을 끝내신 뒤에 다시 그 숲으로 가셔서 경행하며 머무셨다. 이 때 우루빈라 가섭은 7다라수 높이만큼 위로 올라가 제사를 지내는데 올라가서는 편안하게 머물지 못하였다. 그러자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틀림없이 이것은 저 큰 사문이 신통을 부린 것이다. 그가 나를 7다라수 높이에 올라가 편히 앉아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올라가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사문이시여. 제발 저희들을 예전처럼 7다라수 높이만큼 올라가서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 가섭들은 예전처럼 일곱 그루의 다라수 높이만큼 올라가 편안히 머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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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우루빈라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그가 나를 나무에 오르도록 허락하면 나는 오를 수 있고,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공양을 끝내신 뒤에 그 숲으로 돌아가 경행하며 머무셨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불을 덮어두려 하였으나 덮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틀림없이 이것은 저 큰 사문 구담이 신통을 지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불을 덮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사문이시여, 제발 저희들에게 이 불을 덮도록 하여 주소서.”
이렇게 말을 하자 곧 불을 덮을 수 있었다.
그 때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이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이렇게 덮기를 허락하면 덮고 허락하지 않으면 덮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은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드신 뒤에 그 숲으로 돌아가 경행하며 머무셨다.
그 때 가섭은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 하자 불과 나무들이 이리저리 달아나고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자 가섭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틀림없이 이것은 저 사문 구담이 신통을 지어서 내가 불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기구들을 이리저리 달아나게 하여 마치 사람이 몰아서 달아나듯, 한곳에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사문이시여. 제발 이 불을 제사하는 기구들이 한곳에 가만히 머물게 하여 주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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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뜻과 같이 그 불을 제사하는 기구는 곧 가만히 머물러 있어라.”
이런 인연으로 가섭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나의 제사 기구들을 가만히 있게 하기도 하고 움직이게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친 뒤에 그 숲으로 돌아가셔서 경행하며 머무셨다.
그 때 느닷없이 허공에서 거대한 먹장구름이 일어나더니 거센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머물러 계시는 곳은 빗물이 없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나는 이 물을 두루 펴면서도 물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나 먼지가 일게 하고 경행처를 나타내어 그곳을 오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자 문득 먼지가 이는 마른 땅이 나타났고, 부처님께서는 그곳을 오가시며 경행하셨다.
이 때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무슨 일로 이렇게 느닷없이 허공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큰비가 쏟아지는가? 아마 저 큰 사문이 계신 곳도 이곳처럼 큰물이 가득 넘칠 것이다. 혹시라도 그 사문이 물에 빠지면 그를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여러 범지들과 배에 올라타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차츰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하고 보니, 부처님께서는 그와 같이 머물러 계셨다.
가섭은, 부처님 양옆으로는 물이 있으나 중간에만 먼지가 이는 마른 땅이 드러나 그곳을 오가며 경행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지금 이 큰물 가운데 계십니까?”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있다’고 대답하시고 말을 마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곧 가섭의 배 위에 내리셨다.
그러자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사문은 큰 신통이 있고 큰 위력이 있어 물 가운데서 이런 도행(道行)을 짓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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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마하승기(摩訶僧祇)의 논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저 우루빈라 가섭의 무리들에게 이와 같은 5백 가지 신통을 나타내 보였으나 그 우루빈라 가섭은 그럴 때마다 ‘이 큰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어 비록 신통 술법을 이렇게 나타내지만 그는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그 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매번 [이 사문은 큰 위력이 있고 큰 신통이 있으나 지금의 나처럼 아라한을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러면 나는 이제 이 가섭과 그 제자들에게 지혜의 눈을 뜨게 하여 세간이 싫어서 떠나려는 마음[厭離心]을 내게 해야겠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아, 그대는 지금 아라한이 아니고, 또 아직 아라한도에 들지 못하였다. 너에게는 실로 아라한의 특징[相]도 없거늘 하물며 아라한과를 얻었겠는가?”
이 말을 듣자 우루빈라 가섭은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나 온몸의 털이 쭈뼛 일어섰다. 그리하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출가를 허락하시고 구족계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 가섭에게 이르셨다.
“그대 큰 가섭아, 이 5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은 모두 그대에게 의지해 살아가고 있으며 그대의 법을 따라 행하였다. 그대는 그들과 함께 좋고 나쁜 것을 의논하여 알려서 그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루빈라 가섭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5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범지 동자들이여, 나의 이 거처와 불의 신을 모시는 집과 제사 기구들을 받아서 각각 너희들 마음대로 사용하여라. 나는 이제 큰 사문에게 나아가 범행을 닦을 것이다.”
그러자 제자인 5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은 일제히 우루빈라 가섭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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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었다.
“화상(和上)이여, 저희들은 저 구담 큰 사문이 오시는 것을 볼 때부터 오래도록 마음이 즐거워 큰 사문에게 나아가 범행을 닦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화상을 공경하고 아끼는 마음 때문에 입 밖으로 그런 말을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상께서 지금 저 큰 사문에게서 범행을 닦고자 하신다면 저희도 따라가 그 교법에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루빈라 가섭과 그 모든 제자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부처님의 처소에 도착하자 한쪽에 물러섰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가섭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범지들이여, 그대들의 사슴가죽 옷과 물병과 온갖 머리의 상투와 불의 신을 제사하던 모든 그릇들을 저 니련선하 물 속에 던져 버려라.”
그러자 그들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로지 대덕 사문의 가르침과 같이 저희들은 어기지 않겠습니다.”
모든 범지들은 자신들이 입었던 사슴가죽 옷을 비롯한 온갖 그릇과 도구들을 강물 속에 던져 버렸다. 그들이 물건들을 물 속에 던져 버리자 서로 부딪쳐 덜거덕 소리를 내며 물을 따라 흘러갔다.
저들 소라 상투 범지들은 이런 이상한 일을 보자 마음에 더욱 큰 기쁨이 나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며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 출가 수계를 주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범지들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너희들 비구는 내가 설하는 법 가운데 들어와 모든 괴로움을 다하기 위해 범행을 행하라.”
이 때 5백 명의 장로들은 소리를 따라 출가하여 구족계를 이루었다.
바로 그 때 나제(那提) 가섭은 니련선하 하류에서 수도하고 있다가 사슴가죽 옷을 비롯하여 불의 신에게 제사하는 그릇과 기구들이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자 마음이 슬퍼지고 두려워져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이 무슨 변괴인가? 우리 형님이 도둑에게 피해를 입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거처에서 남에게 살해당한 것은 아닌가? 내가 그곳으로 가서 무슨 재앙이나 변괴로 인하여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아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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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 동생 나제 가섭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먼저 많은 소라 상투 범지들을 그곳으로 보내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고하게 하였다.
“너희들은 그곳에 무슨 변고가 벌어졌는지 잘 살펴보아라. 이 일이 어찌된 것인지 알아보아라.”
제자들은 가르침을 받들고 그곳으로 가서 살펴본 뒤에 돌아와 보고하였다.
“모두들 다 편안하게 구담씨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제 가섭은 직접 3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장로 우루빈라 가섭이 사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여 우루빈라 가섭과 그의 제자들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것을 보자, 마음이 매우 언짢아져서 형인 가섭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당신은 헛되게 불의 신에게 제사했고
부질없이 고행만 닦으셨구려.
오늘 이렇게 고행을 버리니
마치 뱀이 허물 벗은 것 같소.
그리고 나제 가섭은 형인 장로 우루빈라 가섭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더 훌륭합니까?”
우루빈라 가섭은 대답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훌륭하다. 차라리 이 행을 하라. 이 행이 가장 미묘하다.”
그러자 소라 상투 나제 가섭은 그 3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 소라 상투 동자들은 나의 그 거처와 샘과 동산과 여러 가지 기구들을 마음대로 알아서 처분하여라. 나는 이제 큰 사문 곁에서 범행을 닦을 것이다.”
그 3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 제자들은 스승인 나제 소라 상투 가섭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화상께서 이제 저 큰 사문 곁에서 범행을 닦으신다면 저희도 화상을 따라
함께 그 곁에서 범행을 닦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제 소라 상투 가섭과 그 제자들은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한 쪽에 머물러 섰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범지들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그대들은 지금 입고 있는 사슴가죽과 불의 신에게 제사하는 그릇을 니련선하에 내던져 버릴 수 있겠는가?”
범지들은 다 같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사문의 가르침대로 하여 저희는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이 앞에서 말한 모든 도구들을 물 속에 던져 버리자 즈르륵 즈르륵 소리를 내며 물을 따라 흘러갔다.
그 모든 소라 상투 범지들은 이런 희유한 일을 보고 더욱 크게 기뻐하였으며 그 장로 비구들은 즉시 출가하여 곧 구족계를 이루었다.
이 때 가야 소라 상투 가섭도 강 하류에 있다가 문득 사슴가죽 옷과 불의 신에게 제사하는 그릇과 도구들이 물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보고 마음에 더욱 큰 두려움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괴이한 일이다. 우리 형들이 그 살던 곳에서 도둑을 만나 해를 입거나 아니면 살해당하지나 않았을까? 나는 이제 그곳에 가서 무슨 재난을 당하였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먼저 여러 소라 상투 범지들을 보내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본 뒤에 보고하라고 일렀다.
“너희들은 그곳에 무슨 변고가 벌어졌는지 잘 살펴보아라. 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아라.”
제자들이 돌아와서 앞에서와 같이 보고하였다.
그러자 가야 소라 상투 가섭은 직접 2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장로 우루빈라와 나제 가섭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도착하고 보니 두 가섭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마음이 크게 언짢아져서 두 형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형들은 옛날 헛되게 불의 신에게 제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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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부질없이 고행을 닦았구려.
오늘 이미 이런 것을 버리니
마치 뱀이 허물을 벗은 것과 같구려.
그러자 우루빈라 가섭과 장로 나제 가섭은 함께 동생인 가야 소라 상투 범지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우리는 옛날 헛되게 불의 신에게 제사했고
우리는 또한 부질없이 고행을 하였다.
우리 이제 이 법을 버렸으니
참으로 뱀이 허물 벗은 것과 같다.
가야 소라 상투 가섭이 다시 우루빈라 가섭과 나제 가섭에게 물었다.
“형님들의 지금 이 일은 정말 훌륭한 것입니까?”
장로인 두 가섭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정말 훌륭하니 차라리 이 행을 닦아라. 이 행이 가장 미묘하다.”
그러자 가야 소라 상투 가섭은 그 2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대 범지 동자들이여, 나의 그 거처와 샘과 모든 도구들은 너희들 마음대로 알아서 처분하여라. 나는 큰 사문 곁에서 범행을 닦고자 한다.”
그 2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 제자들은 가야 소라 상투 가섭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화상께서 만약 저 큰 사문에게서 범행을 수행하신다면 저희도 화상을 따라 다 함께 큰 사문에게 나아가 범행을 닦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야 소라 상투 가섭과 그 제자들은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한쪽에 머물러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저와 저희 제자들은 사문의 법 가운데 들어가서 모든 일을 그렇게 가지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곧 저들 소라 상투 범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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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 만약 그렇게 하려 한다면 너희들의 사슴가죽 옷과 불의 신에게 제사하는 기구들을 모두 니련선하에 내어 버려라.”
그들은 대답하였다.
“사문의 가르침대로 하여 저희들은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 범지들은 곧 사슴가죽 옷과 불의 신에게 제사하는 기구들을 물 속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가죽옷들과 물병들은 즈르륵 즈르륵 온갖 소리를 내면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갔다.
저 모든 소라 상투 범지들은 이런 희유한 일을 보고 기쁨이 더욱 커져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 출가와 구족계를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내가 말하는 법 가운데 들어와 범행을 수행하고 모든 괴로움을 다하여라.”
그 모든 장로들은 소리를 따라 출가하여 구족계를 이루었다.
이 때 세존께서 우루빈라 가섭의 마을 안에서 얼마쯤 즐거이 계시다가 차츰 가야성 근처로 향해 나아가셨다.
여래께서는 그 상두산(象頭山) 정상에서 1천 명의 비구 무리들을 거느리고 머무시며 곧 세 가지 신통으로 그들을 교화하셨으니, 이른바 몸의 신통․입의 신통․뜻의 신통이었다. 이것으로 비구들을 가르치고 익히게 하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몸의 신통을 나타내셨으니, 곧 한 몸으로 많은 몸이 되고 많은 몸이 다시 한 몸이 되며, 위에서 없어져 아래에 나타나고 아래에서 없어져 위에 나타나며, 동쪽에서 없어져 서쪽에서 나타나고 서쪽에서 없어져 동쪽에서 나타나며, 남쪽에서 없어져 북쪽에서 나타나고 북쪽에서 없어져 남쪽에서 나타나며, 산 벼랑과 석벽도 걸림없이 지나가며, 땅에도 물과 같이 들어가며, 물 밟기를 땅과 같이 하며, 땅에서 가부를 맺고 허공에 솟아오르되 마치
나는 새와 같으며, 몸에서 연기와 불꽃을 내되 큰 불덩이와 같으며, 물을 나타내어 불을 끄고 불을 놓아서 물을 없앴다. 이런 위엄 있는 덕으로 해와 달도 손으로 만지고 잡으며, 내지 범천의 자재로운 행동을 하시는 등 이와 같이 여래는 몸의 신통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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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의 신통을 나타내는 것은, “너희 비구들아, 이렇게 분별해야 하며 이렇게 분별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관찰하고 생각해야 하며 이렇게 관찰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 비구들아, 이렇게 증득해야 하며 이렇게 증득해서는 안 된다. 너희 비구들아, 이렇게 행해야 하며 이렇게 행해서는 안 된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여래께서는 입의 신통을 나타내셨다.
뜻의 신통을 나타내는 것은 다음과 같다.
“너희 비구들아, 이제 꼭 알아야 한다. 이 일체법은 모두가 타오르는 것이다. 타오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눈도 타오르고 색(色)도 타오르며, 눈의 식별[眼識]도 타오르고, 눈의 접촉[眼觸]도 타오르고 눈의 접촉으로 생겨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들이 있는데, 그러한 것들도 또한 타오른다. 무엇으로 타오르는가? 탐욕의 불길로 인하여 번뇌가 타오르고, 성냄의 불길로 인하여 번뇌가 타오르고, 어리석음의 불길로 인하여 번뇌가 타오
르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눈의 허물을 말한다.
이와 같이 귀도 타오르고 소리도 타오른다. 나아가 코와 냄새도 타오르고, 혀와 맛도 타오르고, 몸과 촉감도 타오른다. 뜻과 법도 타오르며, 뜻의 접촉을 인연하여 생겨난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타오른다. 무엇으로써 타오르는가? 탐욕의 불길로 인하여 번뇌가 타오르고, 성냄의 불길로 인하여 번뇌가 타오르고, 어리석음의 불길로 인하여 번뇌가 타오르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귀․코․혀․몸의 감각기관의 티끌과 허물과 우환을
말한다.
또다시 어떤 많이 들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깊이 관찰하게 되면, 그는 눈[眼]을 싫어하여 떠나고, 눈의 식별을 싫어하여 떠나게 된다. 눈의 접촉을 싫어하여 떠나며, 안촉으로 인연하여 생긴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도 또한 이렇게 싫어하여 떠나니, 이것을 가리켜 눈을 싫어하여 떠나는 것이라 한다.
또 이와 같이 귀를 싫어하여 떠나고 소리를 싫어하여 떠나고, 내지 코와 냄새를 싫어하여 떠나고, 혀와 맛을 싫어하여 떠나고, 몸과 촉감을 싫어하여 떠나고, 뜻과 법을 싫어하여 떠나며, 뜻의 접촉을 인연하여 생긴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까지도 싫어하여 떠난다. 이미 싫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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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떠나고 곧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이미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므로 곧 해탈을 얻으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곧 이렇게 안으로 청정한 지혜가 나타나서 ‘나는 이제 이미 생과 사가 끊어졌고 범행이 섰으며 할 것을 이미 다하여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한다.”
이것이 바로 여래가 뜻으로 신통을 짓는 것이다.
이 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세 가지 신통으로 가르쳐 보이시자 그 모든 1천 명의 비구들은 함이 없고[無爲] 번뇌가 다하여[漏盡] 모든 법 가운데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이미 생사의 온갖 애욕의 흐름을 끊고
이미 범행을 세워 자기 이익을 얻었네.
할 것을 모두 다 이루었으며
다시 후세에 태어남을 받지 않노라.
그 때 그 모든 1천 명의 비구들은 불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시는 것을 듣고 모든 번뇌[漏] 가운데 다시 함이 있지[有爲] 않게 되었으며, 마음의 착하고 좋은 해탈을 얻어 범지의 법을 버리니, 성문승(聲聞僧)이라 이름하게 되었다.
45. 우바사나품(優波斯那品) ①
이 때 그 가섭 삼형제에게는 소라 상투를 한 범지 조카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우바사나(優波斯那)[수나라 말로는 최상정장(最上征將)이라 함]였다. 그는 아수라산에서 항상 250명의 소라 상투 범지 제자들과 선도(仙道)를 닦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외삼촌인 가섭 삼형제가 모든 제자들과 함께 큰 사문 곁에 나아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놀랍고 크게 언짢아져서 이렇게 말하였다.
“외삼촌들이 참으로 희한하구나. 몇몇 해를 불의 신에게 제사하다가 오늘에 와서 갑자기 사문 가운데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니, 나는 그들에게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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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짖어야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착하지 않은 일을 하였단 말인가?”
그는 입 속으로 중얼중얼하며 그 세 외삼촌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여 세 명의 삼촌들이 모두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은 것을 보고 그들에게 게송을 읊었다.
외삼촌들은 헛되게 1백 년 동안 불의 신을 제사하고
또한 부질없이 그 고행을 닦으셨네.
오늘 다 함께 이 법을 버리셨다니
마치 뱀이 허물을 벗은 듯합니다.
그러자 그 외삼촌인 세 명의 가섭들은 한 목소리로 조카 우바사나에게 이렇게 게송으로 답하였다.
우리는 옛날 쓸데없이 불의 신을 모셨고
우리는 부질없는 고행을 닦았네.
우리는 오늘 이 법을 버리니
참으로 뱀이 허물 벗은 것 같네.
우바사나 바라문은 이 게송을 듣고 다시 세 외삼촌에게 물었다.
“이것이 그렇게 훌륭한 일입니까?”
세 가섭은 대답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차라리 이 행을 닦아라. 이 행이 가장 미묘하다.”
그러자 우바사나 소라 상투 범지는 자신의 제자인 250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모든 범지 동자들은 나의 거처와 동산과 또 모든 기구들을 너희 마음대로 알아서 처분하라. 나는 지금 큰 사문 곁에서 범행을 닦을 것이다.”
그 때 그 250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은 곧 우바사나 소라 상투 범지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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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께서 이제 만약 그 큰 사문 곁에 나아가 범행을 행하신다면 저희도 화상을 따라 그 곁에 나아가 함께 청정행을 닦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병장(兵將:우바사나) 소라 상투 범지와 모든 제자들은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사문이시여, 저는 이제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사문 법 가운데 들어와 내지 이런 일을 다 지니겠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 소라 상투 범지들에게 이르셨다.
“그대들이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직접 사슴가죽 옷과 불의 신에게 제사하는 기구를 한쪽에 버려라.”
모든 범지들은 말하였다.
“큰 사문의 가르침대로 하여 저희는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옷과 기구들을 한쪽에 버리고 나서 다시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 출가와 구족계를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은 내가 스스로 설하는 법 가운데 들어와 범행을 닦아라. 모든 괴로움을 다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저 250명의 장로들은 소리에 따라서 출가하여 곧 구족계를 이루었다.
이 때 세존께서 저 장로들을 위하여 더욱 법을 설하셨고 앞에서와 같이 세 가지 신통으로 가르쳐 보이고 이롭고 기쁘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무위법에서 모든 번뇌[漏]를 다하고 마음이 해탈을 얻었다.
이 때 세존께서 최초로 모든 비구 무리들을 모았으니, 이른바 이들 1,250명이 함께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범지의 신분에서 출가하여 다 아라한을 성취하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며 부처님을 모시고 따르며 설법을 증명하였다.
그 후에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 소라 상투 범지였던 스승과 제자들은 지난 옛날에 어떤 선근을 심었기에 오늘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모두가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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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漢)을 증득하였습니까? 옛날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런 과보를 얻었습니까? 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저 장로 우루빈라 가섭은 한 사람이 5백 명의 소라 상투 범지들 중에서 으뜸가고 가장 미묘하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이며 가장 존귀하게 되었습니까? 또 어떻게 해서 나제 가섭은 3백 명의 제자 중에서 으뜸가고 가장 미묘하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존귀하게 되었고, 가야 가섭은 2백 명의 제자들 가운데서 으뜸이 되었고 훌륭하며 미묘하고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또 장로 우루빈라 가섭은 지난 옛날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오늘날 세존께서 갖가지로 가르쳐 보이셨으나 이렇게 교화하기 어려우셨고, 그 밖의 모든 범지들은 교화시키기 쉬우셨습니까?”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묵묵히 머물렀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내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에 이 염부제 안에 1천 명의 상인(商人)들이 있었다.
그 상인 중에서 삼형제가 각각 상인의 우두머리가[商主] 되었으니, 그 첫째는 역시 우루빈라 가섭이라 이름하였으며 5백 명의 상인을 거느렸고, 둘째는 역시 나제 가섭이라 이름하며 3백 명의 상인을 거느렸고, 셋째는 역시 가야 가섭이라 이름하며 또한 2백 명의 상인들을 거느렸다.
이 때 저 세 명의 큰 상인의 우두머리들과 모든 상인들은 함께 바다로 나아가 장사를 하고자 하여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준비하였는데, 그 물품 값은 족히 3백천만 금은 되었다. 그래서 1백천만 금은 양식을 장만하고, 1백천만 금은 모든 상인들의 용도로 쓰고, 1백천만 금의 돈으로는 잡다하게 쓸 비용과 선박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다 준비한 뒤에 점차 나아가 해안에 도착하였다.
해안에 도착한 뒤에 대해의 신(神)에게 제사하고 공양을 올린 뒤에 선박을 준비하고, 그 밖에도 다시 갑절로 품삯을 쳐서 다섯 사람을 고용하였으니, 배를 잘 다스리는 사람과 사방을 살펴보는 사람과 물에 들어가는 사람, 물에 잘 뜨는 사람, 돛을 잘 다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이렇게 다섯 사람을 얻고 나서 그 세 명의 상인의 우두머리는 큰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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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 1142] 쪽
‘누가 바다에 들어가겠느냐?’[세 번 외쳤다.]
이렇게 세 번 큰 소리로 외치고 나서 재물을 구하기 위해 곧 배에 올라 함께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느닷없이 폭풍을 만나고 말았다. 그 바람은 배를 모래톱으로 밀어냈으며, 배는 그 위에 얹혀 꼼짝 않고 머물게 되었다.”
불본행집경 제43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5. 우바사나품 ②
“이 때 상인의 우두머리와 상인들은 바닷가에 도착하여 온갖 진귀한 보배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 보배들을 거두어 배에 가득 싣고 해안가에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 다시 보화(寶貨)를 거두어서 본국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우연히 탑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그 탑은 바로 가섭 세존․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의 사리탑이었다. 그 탑은 파괴되어 기초 돌과 층계가 떨어져 나갔으며 여러 곳이 무너져 있었다.
이것을 본 가장 큰 상인의 우두머리는 두 명의 우두머리와 모든 상인들에게 일렀다.
‘모두들 들으시오. 우리들은 재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이제 그곳에서 이익을 얻고 돌아와 여기까지 오지 않았소? 그러니 우리는 이제 옛날의 지혜로운 이들이 읊은 게송과 같이 또한 내세의 이익이 되는 선업 인연을 함께 짓기로 합시다.
복덕의 힘으로 많은 이익 이루지만
사람은 이익을 얻으면 게으르게 살아간다.
게으르면 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없나니
이런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진다네.’
상인의 우두머리는 이런 게송을 읊고 나서 다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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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 / 1142] 쪽
‘그대들은 알아야 하오. 이런 인연으로 우리들은 이제 마음을 내어서 모두 함께 재량껏 돈을 조금 거두어 이 가섭여래의 사리탑을 수리하도록 합시다.’
그러자 상인의 다른 우두머리와 모든 상인들은 함께 큰 상인의 우두머리에게 아뢰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우두머리여. 돈을 추렴하고자 하거든 직접 주장이 되어 공사를 감독하십시오. 우리들은 마음대로 얼마씩 돈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큰 상인의 우두머리는 이렇게 사양하여 말했다.
‘나는 감독할 책임을 맡을 수 없소. 왜냐 하면 나는 일이 많아서 이 무너진 탑을 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만일 내가 이 탑을 수리하게 되면 우리 집 생활에 방해가 될 것이오.’
그 상인들과 두 우두머리는 함께 감독을 맡아 주기를 거듭 은근히 권하였다. 그리고 그 상인들은 재빨리 돈을 거두어 그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우루빈라 가섭은 그 탑을 수리하고 곧 자신은 별도로 첫 번째 상륜[覆盆]을 만들어 그 위에 올렸고, 그 다음에 나제 가섭은 두 번째 상륜을 만들었고, 세 번째 상륜은 가야 가섭이 만들었다. 이런 차례로 그 상인과 상인의 우두머리들은 가섭여래 사리탑을 수리하여 무너지고 떨어졌던 것을 단정하고 장엄하게 만들었으니,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똑같아졌다. 그들은 복원을 마치고 나서 이런 서원을 세웠다.
‘원하옵건대 우리들이 미래세에 다시 함께 이런 세존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만약 만나게 되면 그 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의 가르침에서 우리들은 빨리 증득해 알기를 바라오며 다음 생의 세세생생에 3악도(惡道)와 4취(趣) 가운데 떨어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그대들은 알아라. 그 세 가섭과 천 명의 상인들이 바로 지금의 세 장로와 천 명의 비구들이다. 또 비구들아,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옛날 모든 상인들이 오래도록 은근히 권청하여 비로소 감독을 맡았으므로 그 업 때문에 이제 내 앞에서도 오래 지나서야 비로소 나의 교화를 받게 되었으며, 당시 나제 가섭과 가야 가섭 두 상인의 우두머리들과 그 밖의 상인들은 잠깐 한마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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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내자 마음껏 속히 돈을 내었으니, 이런 업보로 오늘에 와서 빨리 나의 교화를 받은 것이다.
그 때 우루빈라 가섭은 상인의 우두머리 가운데 가장 어른으로서 제일 먼저 가섭여래의 사리탑 위에 첫째 층 상륜을 만들어 공양하였으므로 이런 업보로 금세에도 5백 명 가운데 상수(上首)가 되어 가장 훌륭하고 가장 묘하고 가장 으뜸가는 이가 되었으며, 나제 가섭은 둘째 층의 상륜을 만든 그 업보로 금세에 3백 명의 범지들에게 으뜸가는 상수가 되었고, 가야 가섭도 그 셋째 층의 상륜을 만든 그 업보로 금세에 2백 명의 범지들에게 으뜸가는 상수가 되었
다.
그 때 그들은 ‘원하건대 우리들은 내세의 세세생생에 악도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운 그 업보의 인연으로 악도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과 천상에 나서 쾌락을 누렸다.
그리고 또 그들은 함께 가섭불의 사리탑이 무너진 것을 보고 수리하여 본래대로 다시 만들고, 마음으로 ‘우리들은 미래세에서도 또 이런 세존을 만나기를 바라며, 만나서는 그 세존께서 설법하시면 그 즉시 증득해 알기를 바랍니다’고 원을 세운 그 업보를 인연하여 이제 나를 만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떻게 이 우루빈라 가섭이 그릇된 길에 떨어진 것을 보시고 방편으로 5백 가지의 신통을 내어 교화하신 후에 비로소 그가 아라한과를 얻게 하셨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묵묵히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여, 이 일은 오늘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내가 우루빈라 가섭이 그릇된 길에 떨어진 것을 보고 용맹 정진하여 5백 가지 신통을 내어 교화한 일은 과거세에도 있었으니, 그 때에도 그가 그릇된 길에 떨어졌으므로 내가 마음으로 부지런히 교화하여 그가 아라한과를 얻게 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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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 일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여,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에 비제하(毘提何)[수나라 말로는 비정신(非正身)이라 함]라는 이름의 국토가 있었다. 그 나라에는 찰제리 왕이 있었으니, 이름은 앙가타(鴦伽陀)[수나라 말로는 여신분(與身分)이라 함]였다. 그는 관정(灌頂)하고 왕이 되었는데, 세력이 매우 컸고 병사들의 숫자가 아주 많았으며, 돈과 재물, 쌀과 곡식이 창고에 가득 차서 넘쳐났다.
그런데 국왕의 마음에는 그릇된 견해가 담겨 있었다. 일찍이 어느 때인가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달이 크고 둥글어 그 빛이 눈부시게 환히 비치고 있을 때 왕은 초저녁에 모든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첫째 신하의 이름은 비사야(扉闍耶)[수나라 말로는 난승(難勝)이라 함]였고, 두 번째 신하의 이름은 소마나(蘇摩那)[수나라 말로는 선의(善意)라고 함]이고, 세 번째 신하의 이름은 아라파다(阿羅波多)[수나라 말로는 전언(前言)이라 함]였는데, 이 세 명의
신하가 으뜸가는 이들이었다.
이 때 그 왕은 다시 널리 명하여 한량없는 모든 신하들을 불러모아 놓고 말하였다.
‘그대 모든 신하들은 각각 오늘 밤 어떤 방편을 써야 서로 즐기며 잠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인지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그러자 전언(前言) 대신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신의 의견 같아서는 네 가지 군사들을 정비하여 아직 항복 받지 못한 국토를 항복 받고 그들을 항복 받은 뒤에 교화시켜 다스려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의 대신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신의 의견 같아서는 이제 사방의 모든 원적(怨敵)들을 다 항복 받아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친히 마음껏 5욕락을 즐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난승 대신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5욕락은 항상 행하는 것인데 새삼 무엇이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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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엇이 희유하겠습니까? 오직 대왕께서는 지금 사문이나 바라문과 같은 정진과 계행을 모두 갖추었으며 들은 것이 많고 지혜가 넓은 사람을 찾아가 그를 공양하고 섬겨 받드소서. 왜냐 하면 그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국왕이 그 신하에게 대답하였다.
‘경의 이 한마디 말이 매우 착하고 매우 훌륭하도다. 그러니 경은 이제 어느 곳에 가장 훌륭한 사문이나 좋은 바라문으로서 정진과 지계와 들음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라. 나는 그곳에 가서 그를 섬기고 받들며 공양할 것이다.’
그 때 전언 대신이 곧 아뢰었다.
‘대왕께서 만약 그런 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신이 이런 사람의 거처를 알고 있습니다. 정진하고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이 녹야원에 한 사람 있는데 그의 이름은 나형(躶形) 가섭(迦葉)이라 합니다. 그는 여러 가지 미묘한 말을 잘 설하니, 대왕께서는 이제 그 사람을 섬기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왕은 네 마리 말에 멍에를 메어 좋은 수레를 타고 그 위에 앉았다. 몸에 흰옷을 입고 흰 영락을 걸었으며, 좌우 신하들도 흰옷을 입히고 흰 일산을 받고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손에는 새하얀 마니보배로 장식한 흰 불자(拂子)를 들었다. 그는 대왕의 위엄과 대왕의 신력으로써 그 모든 신하들이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는 가운데 저 나형 가섭의 처소로 나아갔다. 그곳에 이르자 공경하고 한쪽에 앉아 듣지 못하던 것을 물었다.
앙가타왕은 가섭 나형 도사에게 문안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께서는 4대(大)가 편안하시며 모든 시절에 건강이 순조롭습니까? 몸을 도울 물건은 다 갖추었고 의복이나 음식도 얻기 쉽고 모자라지는 않습니까? 또 시끄럽지는 않습니까?’
나형 가섭 도인은 앙가타왕에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저는 지금 부족한 것도 없고 저의 몸도 편안하여 근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왕의 건강과 거동은 편안하십니까? 좋은 일과 이익은 더욱 불어나고 있습니까? 나라의 백성들도 풍요롭고 즐겁습니까? 왕의 정치는 공평하고 정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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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가타왕은 가섭 도인과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마음에 의심 있는 것을 곧 물었다.
‘존자여, 세간에는 여러 사문과 바라문이 있어 그들은 각자 법행(法行)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진실한 것을 존자께서는 나를 위하여 차례로 해설해 주소서.’
이렇게 말하자 나형 가섭 도인은 왕에게 대답하였다.
‘대왕은 잘 들으십시오. 그 가운데 지극히 진실한 것이 있습니다. 이제 그 진실한 뜻을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게송이 있는데 근기가 둔한 사람은 잘 모를 것입니다.’
세간의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은
진실하거나 헛되거나 거짓말을 하여도
그는 지혜가 없는 까닭으로
말을 들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네.
일체 모든 업도 없고
착하고 악한 과보도 없는 것이다.
야차들의 몸도 또한 참되지 않거늘
하물며 또 위에 모든 하늘이 있으랴.
게다가 부모의 사랑도 없고
이 세상 저 세상도 다 끊어져
사문이나 저 바라문들도
그 일체가 모두 다 공(空)한 것이네.
세간의 스승도 또한 없거니
다시 누가 있어 조복 받을 수 있으랴.
어리석은 이가 남에게 보시하라고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듣고서도 마음으로 따르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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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 / 1142] 쪽
만약 잘 속여 남의 재물을 뺏으면
저는 실로 어리석은데 제가 지혜롭다네.
죽을 이는 스스로 죽는 것이요
보시를 베풀어도 거둘 과보 없다네.
이 몸은 모든 것이 항상 연속되어
끊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 없느니
모든 화(火)․풍(風)과 지(地)․수(水)며
괴롭거나 괴롭지 않거나 다 즐거운 때이네.
일곱째는 곧 명근(命根)인데
이것은 아무도 죽이지 못하네.
모든 몸과 목숨 두 가지 가운데
기구들이 중간에서 운행되는 것.
세간의 어리석은 이는 알지도 못해
해를 입고 죽었다고 하네.
이렇게 두려워함을 지혜가 없다 하지.
만약 이것을 받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네.
일단 8만 4천 번 태어난 후에
유전(流轉)의 시기에서 해탈을 얻나니
그러면 번뇌가 청정해지네.
8만 4천 번 태어남의 주기는
유전하는데 기간이 어지럽지 않으니
마치 바다의 조수도 시기가 있는 것과 같네.
이런 법을 차례로 말하니
대왕은 이제 마땅히 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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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전언 대신은 이 게송을 듣고서 곧 나형 가섭에게 말하였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가섭 도인이여, 존자의 말과 같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존자 가섭이여, 저는 제 전생의 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옛날을 생각해 보자면, 구섬미성(俱睒彌城)에서 백정의 몸이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저는 한량없는 소․양․물소․돼지․염소․말들을 잡아서 판 돈으로 생활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악업을 지은 뒤에 거기서 목숨이 다하여 금세에 이 대장의 집에서 태어나 재물이 풍족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는 선악업의 과보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 때 앙가타왕의 첫째 대신인 난승이 왕 뒤에 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서 슬피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이 없이 흐느끼기만 하였다.
그러자 앙가타왕이 그 대신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피 우는가?’
난승 대신은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가섭 도인이 읊은 게송과 전언 대신의 말은 참으로 이치에 맞아 조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 또한 지난 옛날을 생각해 보자니, 구섬미성에서 장자(長者)로 태어난 적이 있는데 그 때 크게 보시를 베풀었으며, 단월(檀越)이 되어 모든 재산을 다 남에게 나누어 베풀었습니다. 보름날을 전후한 8일과 14일, 15일에 언제나 팔관재계를 받아 가지고 항상 정진하여 몸과 입으로 수호하였습니다. 저는 그토
록 청정한 업을 지었는데도 금세에 이런 하천한 종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제가 나형 가섭 도인과 전언 대신의 말을 듣고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또한 세간에는 착한 도(道)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앙가타왕은 가섭 도인의 이런 말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본궁에 돌아왔다. 왕은 그날 밤이 지나자 백관들과 모든 대신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고 말하였다.
‘경들 세 사람은 오늘부터 남몰래 좋고 나쁜 일이 있더라도 나에게 묻지 말라. 나는 지금부터 이 난승․선의․전언 등 세 대신에게 부탁할 것이니, 이 세 사람은 총명하고 지혜로워 나를 대신해 일을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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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 / 1142] 쪽
앙가타왕은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묘색(妙色)이라는 이름의 궁전으로 들어갔다. 왕은 그 안에 들어가 7일 동안 5욕락을 누리면서 마음껏 즐기고 온갖 쾌락에 몸을 맡기며 지냈다.
그 때 앙가타왕에게 의희(意憙)라는 이름의 공주가 한 명 있었다. 공주는 온갖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입고 또 갖가지 영락과 7보로 몸을 아름답게 꾸민 뒤에 묘색 궁전으로 나아가 부왕에게 갔다. 그는 부왕에게 이르자 부왕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앙가타왕이 공주에게 말했다.
‘착한 의희 공주야, 너는 저 동산 숲에 나가 즐겁게 노닌 적이 있느냐? 동산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많이 있고, 그 나무에는 여러 가지 꽃과 열매가 열렸으며, 또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있는데 너는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지 않았느냐?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에게 말하여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겠다.’
이렇게 말하며 그 딸에게 원하는 바를 물었다.
그러자 의희 공주가 부왕에게 아뢰었다.
‘어지신 부왕이시여, 지금 소녀의 몸에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부왕께 한마디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부왕이시여, 부디 소녀의 간청을 들어주소서.’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부왕이여, 저는 일체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보시하고자 하오니
항상 달이 떠올라 보름이 되면
저에게 천금 어치의 돈을 주소서.
그러자 앙가타왕은 딸의 이런 말을 듣고서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착한 딸아 너 이제 잘 들어라.
내 지혜로운 이에게 이렇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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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 / 1142] 쪽
설령 온갖 재물을 베풀어도
일체가 다 공하여 과보가 없다는구나.
너 이제 어찌 이런 마음을 내어
세간의 모든 어리석은 사람 속이려 하느냐.
현재와 미래가 모두 없는데
너는 또 무엇 때문에 그리 수고하려느냐.
어리석은 딸아, 너는 그에게 듣지 못했느냐?
가섭의 설법은 바르고 틀림이 없다.
참으로 업을 짓거나 짓는 사람도 없으며
일체 인간이나 천상의 선악 과보도 없다.
야차나 귀신도 다 없으며
부모와 권속 또한 없다네.
간략히 말해 8만 4천 번 태어나면
이러한 번뇌가 맑아지리니
만약 8만 4천 생을 지나고 나면
유전해도 어지러운 마음 없으리.
마치 바다의 조수가 때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그 중간에 때가 되지 않으면 서두를 수도 없다네.
그저 때가 이르기만을 기다려야 하거늘
어찌해서 굳이 세상의 어지러움을 지으랴.
가섭의 말을 너도 알아두어라.
이 말은 헛되지 않고 진실하나니
현재나 미래 세상도 없는 것이니
너는 이제 스스로를 고달프게 하지 말아라.
의희 공주는 부왕의 이런 게송을 듣자 마음이 언짢아져서 다시 게송으로 아뢰었다.
아버지는 바로 이 나라 왕이십니다.
정법으로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
악한 신하는 아첨하고 마음이 바르지 아니하고 진실하지 않으며
또 임금에게 어리석은 스승 섬기라 권합니다.
가섭과 그 세 명의 대신들
그들의 말은 참되지도 바르지도 않습니다.
부왕이여, 이들은 악지식(惡知識)이면서
지금 선지식인 척 가장하였습니다.
스스로 그릇된 도를 행하며 남까지 그르치니
하천하고 어리석어 무엇을 분별하겠습니까.
그들은 왕에게 안락을 드리지 않고
도리어 왕에게 불선(不善)의 일을 짓게 합니다.
내 옛날 일찍 이런 일을 들어 왔고
현재의 내 몸으로도 스스로 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까닭에 이곳에 태어났고
뒤에 또 어리석은 몸을 얻을 것입니다.
어둠[幽冥]에서 나와 어둠으로 들어가고
그 뒤에도 다시 어두운 곳에 태어나는데
가섭은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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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 1142] 쪽
왕께서는 남의 주인이 되어 사방을 다스리며
이치를 알고 세간사에 통달하셨는데
어찌하여 저 어린애들같이
그릇되고 좁은 길로 들어가려 하십니까.
뜻으로 좇아 사람을 친근하며
서로 배워 곧 이내 물들어 집착하니
피에 더럽혀진 화살이 화살통에 들어가
섞이면 서로 피를 묻히는 것 같습니다.
지자(智者)와 사귀어 스스로 깊이 보호하고
나쁜 벗을 가까이하지 마소서.
비록 몸으로 모든 죄를 짓지 않아도
항상 죄 짓는 사람과 가까이하면
오래 익혀져서 자연히 배우게 되고
그 뒤에 저절로 나쁜 영향 받나니
그러므로 마치 살받이 같아서
지혜로운 사람은 죄에 물들까 두려워합니다.
모든 악지식과 사귀지 말고
지혜로운 선지식을 항상 가까이하소서.
모든 중생의 신업(身業)이 청정하면
8만 4천 생을 지나도록
온갖 목숨 죽이는 백정과 같고
또 포수와 고기잡이 같은 이들
가섭은 이미 그들과 같고
그들도 또한 가섭의 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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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 / 1142] 쪽
그 둘을 비교하면 아주 똑같으니
더 낫거나 더 못한 차별이 없습니다.
이렇게 체면 없는 가섭은
어리석고 어둡고 헛되이 출가한 것입니다.
이 허망함을 깨끗한 인(因)이라고 집착하여
8만 4천 생을 마치도록
엎치락뒤치락 그릇된 길로 가고 마니
지혜 없고 어리석고 마음이 미혹되어 있습니다.
중생이 만일 청정함을 얻으면
8만 4천 생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남을 죽이고 해치고 빼앗아서
다른 이와 나쁜 원수를 맺는 이가 있다면
가섭은 그와 같아 다름이 없고
그 또한 가섭과 다름없습니다.
중생이 만약 청정해진다면
무엇하러 8만 4천 번 나겠습니까?
이렇게 자주 선악을 취하며
위아래와 중간이 평등해지면
일체에 더 나을 것도 더 못한 것도 없고
또한 분별이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만약 중생이 깨끗한 수행을 하고도
8만 4천 곳을 지낸다면
그 사람은 지혜 없고 어리석은 것이니
마치 저 가섭의 헛된 출가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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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 1142] 쪽
거대한 불덩이가 활활 타올라
널리 모든 제물(祭物)을 태우고 말듯
이렇게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스스로 일체 공덕산(功德山)을 태우고 맙니다.
전언(前言) 대신은 미래세를 보고
온갖 죄를 지어도 과보가 없다지만
그는 전세에 복업을 닦았기에
지금 즐겁고 유쾌한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온갖 죄를 지으면
스스로 복을 버리고 재앙을 받는 일입니다.
배가 물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은
짐이 무거워 가라서 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끌어낼 사람 아무도 없으니
이내 물에 빠진 채 언제나 썩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주자주 온갖 죄를 짓고
쉴 새 없이 지어서 허물이 더욱 많아지면
이렇게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니
왕이시여, 전언 대신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 죄와 허물이 아직 덜 익어 그렇지
오래지 않아 그 죄가 익으면 곧 아실 것입니다.
마치 배가 물 속에 잠겨 버리듯
죄가 익으면 곧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끼들에 뒤덮여 있는 풀은
무거워 제 스스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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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 1142] 쪽
배가 낡으면 이렇게 더욱 무거워지듯
사람이 죄 짓는 것 또한 그러 해
점점 오래되면 가라앉고 더욱 무거워집니다.
사람이 만일 선한 업의 원인을 지으면
빨리 하늘로 가서 나게 되는데
지난날 지었던 온갖 죄는
금생에는 저 땅 속의 씨앗과 같아서
죄업이 다한 뒤에 점점 자라나
만약 모든 선업의 과보를 지을 때에
곧 스스로 선한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의희 공주는 이런 게송을 읊고 거듭 부왕에게 말하였다.
“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하여 또한 지난 세상의 일을 알았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제가 지난 옛날을 생각해 보자니, 마가다국 왕사성에 일곱 번 태어났는데 악지식의 인도를 받아 이끌린 까닭에 많은 죄업을 지었으며, 그릇된 욕망에 탐닉하여 남의 처첩을 범하면서 하늘과 같은 쾌락을 누렸습니다. 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는 그 때에 지은 악업을 마치 재로 불을 덮어놓듯이 감추며 살아왔습니다.
부왕이여, 저는 그곳에서 몸을 버린 뒤에 또다시 금강(金剛) 마을 부호의 집에 태어났는데, 그곳에 태어나서는 선지식을 만나 보름을 전후한 8일과 14일, 15일에 청정하게 8금재법(禁齋法)을 지켰고, 항상 계를 지녔습니다. 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선업을 지었으니, 마치 물가에 이르도록 온갖 보배를 든든하게 묻어 두고 잘 지켜온 것처럼 그와 같이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부왕이여, 저는 그곳에서 또한 목숨을 버렸는데 옛날에 지었던 악업의 인연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곧 규환지옥(叫喚地獄)에 떨어져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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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 1142] 쪽
또다시 부왕이여, 소녀는 그곳에서 죄업이 다하여 몸을 버리고 빈나구타국(頻那俱吒國)에 태어났는데 흰 숫양의 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태어난 뒤에 여러 왕자들이 저에게 수레의 멍에를 지우기도 하였고 혹은 저에게 안장을 씌우고 타고 다녔습니다.
또다시 부왕이여, 저는 그곳에서 몸을 버리고 다시 저 타비라국(陀毘羅國)에 태어나 양의 몸을 지었고, 그곳에서 몸을 버린 뒤에 다시 소의 몸을 받았고, 그 소의 몸을 버리고 또다시 숲 속에 태어나서 원숭이 몸을 받았습니다.
또 부왕이여, 저는 그곳에서 원숭이 몸을 버리고 다시 그 금강국에 태어났는데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닌 몸을 받았고, 그곳에서의 업이 다하자 몸을 버리고 곧 도리천의 환희원(歡喜園)에 태어나 제석천 왕을 옆에서 호위하였습니다.
또다시 부왕이여, 저는 그곳에서 몸을 버린 뒤에 옛날 매월 엿새 동안 재계를 잘 지키고 청정함을 얻었던 덕분에 오늘날 부왕의 집에 태어나 재물이 많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왕께서는 지금 스스로 이런 인연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무엇에 의하여 이런 공덕을 얻었겠습니까? 옛날 선업을 짓지 않고서도 이제 이런 과보를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때 앙가타왕이 이와 같이 의희 공주와 말을 주고받을 때 불나라타(不那羅陀)[수나라 말로는 불규환(不叫喚)이라 함]라는 하늘의 선인(仙人)이 하늘에서 염부제를 살펴보면서 내려왔는데, 바로 저 앙가타왕의 궁전 위로 서서히 허공을 타고 내려왔다.
그 때 의희 공주는 그 하늘의 선인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따로 높은 자리를 마련하여 그에게 앉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선인이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자 의희 공주는 그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서 합장한 뒤에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존자이신 하늘의 선인이여, 세간에 혹 착하고 악한 과보의 모든 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또 야차나 하늘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모가 있습니까, 이승과 저승이 있습니까? 사문과 바라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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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 1142] 쪽
하늘의 선인께서는 저를 위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저의 부왕께서 이런 일을 믿고 있지 않습니다.’
그 때 불나라타 대천(大天)은 곧 앙가타왕에게 반문하였다.
‘대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지금 정말 이 일을 믿지 않고 있습니까?’
왕은 곧 대답하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늘의 선인은 또 말하였다.
‘대왕은 알아야 합니다. 선과 악의 과보는 모두 다 있는 것이요, 야차와 모든 하늘도 있고, 부모도 있고 이승과 저승도 있고, 모든 사문과 바라문도 있습니다. 대왕이여, 내가 지금 천상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 때 앙가타왕은 하늘의 선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오늘 존자께서 저에게 5백 금을 주십시오. 나는 미래세에 천자에게 꼭 1천 금을 갚겠습니다.’
그러자 불나라타 하늘 선인이 왕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이제 왕에게 5백 금을 주리니
왕은 꼭 금계(禁戒)를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왕의 마음에 선행(善行)이 없으면
무엇으로 미래에 1천 금을 갚겠습니까?
이 세상에 속이고 아첨한 사람을
저 세상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슬기로운 사람은 그들에게 꿔 주지 않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빚 받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거센 불에 타오르거나
온갖 새들이 날아와 쪼아먹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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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 1142] 쪽
어떻게 내세에 나에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지옥에 떨어져 괴로움 받을 때
예리한 칼이 온몸을 저며 온전치 않고
마디마디 끊어서 진한 피가 흘러
조금도 괴로움이 쉬지 않을 텐데
어떻게 나에게 1천 금을 갚겠습니까?
예리한 칼을 쥔 손을 들어 살을 깎을 때
온몸은 감자처럼 깎여 나가서
팔다리와 골절에 완전한 곳 없을 텐데
어떻게 나에게 갑절로 돈을 갚겠습니까?
험악한 검은 개 기름진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끊어서 먹을 테니
지옥에 있으면 몸의 살점도 없을 텐데
어떻게 미래에 갑절로 돈을 갚겠습니까?
그곳에는 크고 날카로운 쇠 삼지창이 있어
옥졸들 자주자주 그를 찔러
지옥에선 손을 밑으로 드리울 텐데
어떻게 나한테 1천 금을 갚겠습니까?
지옥에는 칼날 숲이 많아서
하나하나의 칼마다 열여섯 칼날이 있어
쉬지 않고 그의 몸을 꿰뚫을 텐데
어느 누가 나에게 갑절의 돈을 갚겠습니까?
잿물 지옥에는 끓는 물 흘러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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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 1142] 쪽
빠르기가 바람 같고 쏜살같은데
그 속에 들어가 고통 받을 텐데
어떻게 나한테 갑절의 돈을 갚겠습니까?
뜨거운 철환을 삼키는 지옥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시뻘건 구릿물까지 삼킬 텐데
이런 고통이 핍박하는 곳에서
어떻게 나한테 갑절의 돈을 갚겠습니까?
지옥에는 장마비 같은 손이 있어서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으며
쉬임없이 온몸을 마디마디 끊을 텐데
어떻게 나한테 갑절의 돈을 갚겠습니까?
그곳은 빛이 없고 칠흑 같아 두려운데
해와 달빛도 비추지 못하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나한테 갑절의 돈을 갚겠습니까?
대왕은 이런 그릇된 법의 행을 버리시오.
왕에게 법다운 일을 하기 권하니
왕은 항상 이렇게 익히고 지어서
뒷날 지옥에 떨어지지 마십시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든
사문․바라문이 와서 구하거든
왕은 넉넉히 음식과 의복이며
또 탕약 침구들을 모두 보시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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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 1142] 쪽
그들은 정진하여 범행 닦는 사람이니
사문․바라문의 참된 말을 들으십시오.
그들은 왕의 고통과 액난을 건져 주리니
뜨거운 비를 우산으로 받쳐 주듯 할 것입니다.
왕이 이런 선업을 지을 때
많은 벗들이 서로 따르며
착한 길 쾌락한 곳을 얻으면
신통 가운데 가장 좋은 신통을 얻을 것입니다.
소가 물을 건널 때 곧바로 건너가면
그 꼬리를 붙잡은 사람도 건너갈 수 있듯이
일체 세간도 그러하거니
반듯하면 따라서 반듯해지고
그릇되면 따라서 그릇되어집니다.
모든 사람 가운데서 법의 행을 하면
모든 이들 배우고 행하여 훌륭해질 것입니다.
이 때 앙가타왕은 이 말을 듣고 다시 게송으로 그 하늘의 신인 불나라타에게 아뢰었다.
대범(大梵) 하늘의 선인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
마치 부모가 자식 사랑하듯이
제발 저를 위해 자주 오셔서
지혜로운 이와 착한 일 보여 주소서.
존자시여, 제발 건져 주소서.
저는 깊고 깊은 번뇌 바다에 빠져
이제 머무를 땅조차 없으니
존자는 저의 귀의처가 되어 주소서.
제발 대범 하늘의 선인은 저를 보호해 주소서.
저는 지금 눈이 가리운 채 구렁에 빠졌습니다.
지옥에는 한량없는 고통이 많을 테니
제가 이제 낱낱이 존자의 말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대선(大仙) 불나라타는 다시 앙가타왕에게 게송으로 일렀다.
왕이 만약 쉬지 않고 죄를 짓고
사문이나 바라문을 미워만 하고
없다는 견해[斷見] 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저와 만나지 못할 것이오.
왕이 만약 정법을 행하여
사문과 바라문을 섬겨 받들고
정진하고 계행 갖고 보시하고 선정 닦으면
저는 항상 당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때 불나라타 하늘 선인은 앙가타 대왕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바른 견해를 가르쳐 보이자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 그러자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하늘 선인에게 합장 정례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다.
불나라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앙가타왕을 이별하고 본래 처소로 돌아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은 알아야 한다. 그 때의 천선 불나라타는 지금의 석가모니인 바로 나요, 그 때의 앙가타왕이 바로 오늘의 우루빈라 가섭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나는 지난 옛날에도 그 우루빈라 가섭이 그릇된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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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 / 1142] 쪽
해가 너무도 심해서 잘못된 길에 떨어진 것을 보고 정진하는 마음을 내어 그를 교화시켜 바른 길 가운데 들어가게 하였다. 이번에도 그러하여 그가 뒤바뀐 소견을 내어 그릇된 길에 들어간 것을 보자 나는 이런 큰 정진의 힘을 내어 그를 위해 5백 가지의 신통 변화를 내어 그에게 위없는 보리를 이루게 하고, 나아가 생사의 끝을 다하게 하여 두려움이 없는 곳에 이르고 열반 언덕에 도달하게 하였다.”
불본행집경 제44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6. 보시죽원품(布施竹園品) ①
그 때 세존께서는 얼마 동안 상두산(象頭山)에서 지내시다가 차츰 왕사성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셨다.
우루빈라 마을에서 왕사성은 거리가 그리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가는 도중에 옛 선인(仙人)이 살고 있던 한 숲이 있었으니, 그 숲의 이름은 법우(法雨)였다. 법우 숲 안에는 옛 선인의 초가 암자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언제나 5백 명의 고행 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5신통을 성취한 사람들로 이미 나이가 들었으며 오래도록 범행을 닦아 왔다. 그들은 백발인 데다 머리카락은 빠졌으며 이가 빠지고 등이 굽었고, 피부에는 검은 반점이 많이 나
있으며, 목의 심줄이 축 쳐진 것이 마치 소의 목 같으며, 그 모습은 바짝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기는 하지만 숨이 차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가고자 해도 엎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수척하고 야위어 껍질과 뼈만 앙상하게 남았으며, 모두 백 세가 된 노인이었므로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지난 옛적부터 여러 선의 근본을 심었기 때문에 오직 지금 생애에는 부처님
을 만나기만 하면 곧 믿음의 행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아직 법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열반에도 들지 못하고 모두 토굴 속에서 각각 좌선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고행 선인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교화하고자 하여 그곳에 이르셔서 굴 문 밖에서 이런 게송으로 그들에게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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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 / 1142] 쪽
사람이 비록 백 구절의 뜻을 설하더라도
그 뜻과 구절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차라리 백천 구절보다 나은 한 구절을 설해서
듣는 사람에게 고요함을 얻게 하리라.
사람이 백 구절의 게송을 설하더라도
뜻이 없고 문구(文句)가 어긋난다면
한 구절만 설해도 가장 훌륭할 수 있어
들으면 저절로 고요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교묘하게 잘 싸울 줄 알아서
혼자 백만 명을 항복 받더라도
지금 스스로를 항복받을 수 있다면
이를 세간에서 잘 싸운다 이르네.
한 달 동안에 천 번 싸워서
한 번 싸울 때마다 백 배씩 남을 이기더라도
만약 불세존께 귀의해 믿으면
그보다 16배 더 훌륭하네.
한 달 동안에 천 번을 싸워서
한 번 싸울 때마다 백 배씩 남을 이기더라도
바르고 진실한 법에 귀의해 믿으면
그보다 16배 더 훌륭하네.
한 달 동안에 천 번을 싸워서
한 번 싸울 때마다 백 배씩 남을 이기더라도
일체 승가에 귀의하여 믿으면
그보다 16배 더 훌륭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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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 1142] 쪽
한 달 동안에 천 번을 싸워서
한 번 싸울 때마다 백 배씩 남을 이기더라도
법성(法性)이 공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보다 16배 더 훌륭하네.
마치 어린애가 달마다 배워서
저 띠풀[茅] 끝처럼 소화한다 해도
만약 어떤 이가 불여래께 귀의해 믿으면
그보다 16배 더 훌륭하네.
만약 어떤 이가 법보와 승보를 믿고
또 법성(法性)의 평등함을 생각한다면
이런 귀의자의 믿음은 헤아리기 어려워
그보다 16배 더 훌륭하리.
세간에서 불의 신에게 꼬박
백 년 동안 제사를 올리더라도
일심으로 3보에 귀의하면
그 복은 백천만 배나 더 훌륭하리.
이렇게 온갖 숫자로도 다할 수 없고
구업(口業)으로도 다 말할 수 없나니
그 정직하고 굳은 마음으로
이런 으뜸가는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사람이 백 살을 채워 살면서
숲에서 불의 신에게 제사지내도
만약 잘 조복하는 사람을 만나
잠깐 동안만 희사해 공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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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 1142] 쪽
이것은 저 불의 신에게 올리는 제사보다 나아
여러 가지 다 갖추고서 일생을 마치리라.
사람이 백 년을 산다 해도
계를 깨면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나니
인욕과 정진을 굳게 가지면
하루를 살아도 그보다 나으리라.
사람이 백 년을 살아도
어리석은 마음으로 언제나 어수선하다면
지혜와 선정(禪定)을 하는 이가
하루를 살아도 그보다는 오래 사는 것이리.
사람이 백 년을 살아도
눈멀고 귀먹어 듣고 보지 못한다면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들으며
하루를 살아도 그보다 나으리.
사람이 백 년을 살아도
혼란하고 어지럽고 지혜가 없다면
생사의 갈래를 자세히 살피면서
하루를 사는 이가 그보다 낫네.
사람이 백 년을 살아도
세간의 무상함을 보지 못한다면
그 몸이 진실하지 않다고 깨닫고서
하루를 사는 이가 그보다 낫네.
사람이 백 년을 살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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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 1142] 쪽
세간의 감로처(甘露處)를 보지 못한다면
감로를 알아서
하루를 사는 이가 그보다 낫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묘한 게송을 말씀하실 때 그 모든 고행인들은 이 게송을 듣고서 사람마다 모두 6신통을 증득하였다.
그 때 그 모든 고행인들은 굴에서 나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였다. 각각 절을 하고 나서 그곳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목숨을 버리고 열반에 들었다. 또한 그들은 몸에서 물과 불을 내어 스스로를 태웠고, 그 모든 사리는 허공에서 각각 아래로 떨어졌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5백 나한의 사리를 거두어서 한 덩어리로 만든 뒤에 곧 탑을 세우셨는데, 그곳에 있던 모든 비구들이 세존을 도와 진흙과 돌을 모아 탑을 만들었다. 세존께서 신비로운 손의 그물 무늬가 있는 손가락으로 친히 돌을 쌓아 그 탑을 만드셨는데, 탑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세존께서는 그 사리탑 위에 여러 법을 짓고 나서 비구들을 거느리고 마가다국을 향해 나아가셨다. 천 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거느리셨는데, 그들은 모두 이전의 범지들이었다가 출가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차츰 왕사성에 이르렀다.
이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에 이르시자 장림(杖林)에 머무셨다. 그 숲에는 따로 탑이 하나 있었는데, 선안주(善安住)라 이름하였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대중에게 둘러싸여
세존은 점차 왕사성에 이르렀네.
맑고 미묘한 장림 가운데 계시며
여래는 그곳에 머무시려 하셨네.
이 때 그곳 마가다국에는 빈두사라(頻頭娑羅)라는 이름의 속산왕(粟散王)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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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 1142] 쪽
“사문 구담은 감자종(甘蔗種)의 후예인 석가족으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오늘 이 마가다국에 와서 돌아다니면서 교화하고 있다. 그는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왔는데, 그 비구들은 모두 예전에 소라 상투[螺髻] 범지들이었다가 출가한 사람들이며, 지금 왕사성 옆 장림 속에 있는 선안주 탑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사문은 이 세상에 큰 소문이 퍼졌는데, 그는 바가바․아라하․삼먁삼불타․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불리며, 지금 그곳에서 인연 있는 이를 교화한다. 또 세존은 능히 하늘․인간․마군․범천․사문․바라문의 모든 세간 가운데에서 스스로 신통으로 다 증득해 알며, 알고 나서 ‘생사는 이미 끊어졌으며 범행이 이미 서고, 할 것을 다해서 마쳤으므로 다시 후세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세존의 설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나중도 좋으며, 그 뜻이 미묘하다. 오직 홀로 구족하였으며 끝까지 청정하게 설법하는 이다. 만약 누구든 이런 아라하․삼먁삼불타를 가서 보게 되면 그 사람은 아주 좋다. 나도 이제 그 대사문 곁에 나아가 세존을 만나야겠다.”
그 때 마가다국 빈두사라왕은 곧 좋은 수레에 멍에를 메워서 타고 12나유타나 되는 국내의 모든 바라문․장자․거사들에게 앞뒤로 에워싸여서 왕사성을 나와 여래를 뵙고자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이 때 그 나라 왕사성에는 파라발제(婆羅跋帝)라는 이름의 음녀(淫女)가 살고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매우 단정하고 예뻐서 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였고, 세상에 그녀와 짝할 만한 여인이 없을 정도였다. 또한 노래와 춤으로 놀이를 하고 음악을 환히 알아 모든 기예와 64가지나 되는 재주를 모두 완벽하게 잘 해냈다. 그런 음녀도 이 사문 구담이 석가 왕족에서 출가하였음을 전하여 듣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그 사문에게 가 보아야겠다.’
그 여자는 이렇게 나타나 보이려고 문을 나오다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빈두사라 대왕보다 앞서 가서 세존을 뵈어야겠다. 저 빈두사라 대왕은 많은 사람의 힘으로 길을 트고 사문에게로 갈 것이다. 또 여러 사람이 많이 모여 엄청나게 소란스러울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나는 길이 막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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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 / 1142] 쪽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지금 담장을 무너뜨려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급히 가서 먼저 세존을 뵈어야 한다.’
그 여자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 사람들을 고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 성(城) 담장의 벽돌을 많이 빼기만 한다면 그 사람에게 얼마든지 돈을 주겠소.”
그러자 고용된 사람들은 순식간에 담장을 무너뜨리고 모든 기왓장과 돌과 가시를 말끔하게 치워 평탄하게 길을 내었다. 음녀 파라발제는 곧 좋은 수레를 준비하여서 타고 집을 나와 곧고 바른 큰길을 따라 길을 떠났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그 음녀 파라발제의 속마음을 아시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약 저 음녀가 빈두사라왕에 앞서 먼저 와서 나를 만난다면 저 왕이 뒤에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의심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서 곧 신통을 내어 그 음녀를 왕보다 먼저 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 빈두사라왕도 먼저 오려 하였으나 수레가 한 곳에 멈추어 서더니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빈두사라왕은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겁이 나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에게 무슨 귀신의 재앙이 있어 나를 방해하는 것일까?’
이럴 무렵 그곳에 한 천신(天神)이 빈두사라왕의 마음을 알고 허공에서 몸을 숨긴 채 왕에게 일러 주었다.
“대왕이여, 당신은 무서워 마시오. 지금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재앙도 변괴도 아니오. 다만 당신이 첨파성의 어떤 곳에 사람 하나를 가두고 있는데 그를 풀어준다면 수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오.”
빈두사라왕은 그 천신의 말을 듣고 빨리 사람을 보내어 그를 풀어 주게 하였다. 그 사람을 풀어 주자 수레는 움직였고, 왕은 수레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뒤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곳에 이르자 내려서 숲길을 걸어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다. 부처님 처소에 이르자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마가다국의 장자나 거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어떤 이는 절을 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서기도 하였고, 어떤 이는 부처님을 대하여 좋은 말로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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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 1142] 쪽
위로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였고, 또 어떤 이는 불세존 앞에서 자기 이름을 말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고, 또 어떤 이는 부처님을 향해 묵묵히 마주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이렇게 그 나라의 모든 인민․장자․거사들은 한쪽에 앉은 뒤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대사문도 있고 또 우리의 국사(國師)인 우루빈라 가섭도 있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지금 이 구담 사문이 가섭에게서 범행을 배우는 것일까, 아니면 가섭들이 사문에게서 범행을 배우는 것일까?’
그 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게송으로 그 장로 가섭에게 물으셨다.
가섭아, 그대는 무슨 일을 보았기에
예전에 저 강가에서 고행을 닦았는가.
그리고 그 제사를 버린 일은 어찌된 것인지
나와 대중에게 그 뜻을 말하라.
그 때 장로 우루빈라 범지 가섭은 곧 게송으로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색․소리․냄새․맛과 촉감과 법
5욕이니 세간 사람이 구하는 바요,
이러한 물든 사랑은 하늘에도 가득 차
이런 것을 탐하여 저는 제사를 모셨습니다.
그 때 마가다국 일체 인민․장자․거사와 바라문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대사문이 친히 게송 하나를 읊자 저 우루빈라 가섭도 게송 하나를 읊는구나. 도대체 이 두 사람 가운데 어느 분이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 알 수 없구나.’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다시 우루빈라 가섭에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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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 1142] 쪽
가섭아, 색․소리․냄새․맛과 촉감 등의
법에서 그대는 무엇을 즐겼는가.
혹은 천상이나 인간 가운데서
그대가 탐하던 것 대답해 보아라.
그 때 장로 우루빈라 범지 가섭은 다시 거듭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적정하여 걸림없는 공(空)을 보니
서로 걸리지 않아 집착할 수 없으며
바뀌지 않는 곳이고 속임도 없어
그곳에 제사하고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 때 마가다국 일체 인민․장자․거사 등은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대사문이 친히 두 번째 게송을 읊으니, 저 우루빈라 가섭도 게송을 두 번째 게송을 읊는구나. 아직도 어느 분이 스승이고, 어느 분이 제자인지 모르겠구나.’
이와 같이 시방의 모든 불세존에게는 다 이런 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일체 대중들로 하여금 크게 기쁜 마음과 또 희유한 생각을 내게 하지 못하면 곧 설법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크게 기쁘고 희유한 마음을 내게 하시고자 우루빈라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가 지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저 마가다국의 일체 인민․장자․거사․바라문들을 위하여 성자의 법[上人法]을 보여 주고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가섭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답하였다.
“세존께서 일러 주신 대로 하여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루빈라 가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통을 일으켜서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그리하여 공중에서 경행(經行)하기도 하고, 또는 서거나 앉으며 또는 눕기도 하고, 혹은 몸에서 연기와 불꽃을 내고 혹은 몸을 숨기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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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 1142] 쪽
이렇게 온갖 신통을 나타내어 두루 보인 뒤에 공중에서 내려와 땅 위에 서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고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참으로 저를 가르치신 스승이시고 저는 참으로 이 위없는 세존의 성문(聲聞) 제자입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미묘한 신통을 거두어들인 뒤에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합니다.
저는 제자로서 할 일을 이미 다하였으니
세존은 참으로 나의 스승이십니다.
그 때 마가다국의 모든 바라문․장자․거사와 모든 인민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우루빈라 가섭이 바로 사문 구담의 제자로구나. 그가 사문 곁에서 범행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그러자 세존을 향해 믿는 마음과 희유한 생각이 일어났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대중들이 크게 기뻐하고 희유한 생각을 일으킨 것을 보시고 곧 그들을 위하여 차례로 법을 설하셨다. 이른바 보시와 지계를 가르쳐 행하게 하시고, 천상에 나는 인연 업보를 말씀하시고, 5욕락의 일을 싫어하고 떠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고, 번뇌[漏]를 없애는 인연과 번뇌를 다 끊는 것을 말씀하시고, 출가를 찬탄하여 해탈을 도우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바라문․장자․거사를 비롯한 모든 인민들이 크게 기쁜 마음을 내고
부드러운 마음과 물들지 않은 마음을 낸 것을 아셨다.
세존께서는 저 대중들이 도를 얻을 수 있음을 아셨다. 또 모든 부처님도 모든 중생을 찬탄하여 그들이 도법을 얻음을 아시면 곧 대중을 위하여 근기에 따라 고(苦)․집(集)․멸(滅)․도(道) 등을 설하시는데, 세존도 저 대중을 위하여 이 법상(法相)을 펴셨다. 그러자 빈두사라왕을 위시하여 그 밖의 11나유타 사람들이 동시에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또 어떤 논사는 말하였다.“12나유타의 사람들이 멀리 티끌과 때[垢]를 여
의고 번뇌를 모두 없애어 마음이 깨끗해지고 모든 법 가운데 깨끗한 법의 눈이 트였으며, 모든 집기한 법[集法]은 다 멸하는 것임을 사실 그대로 증득하여 알았다. 마치 때가 묻지 않고 검은빛도 없는 희고 깨끗한 옷은 어떤 색을 물들이든 그대로 염료의 색깔을 쉽게 받아들이듯이, 그와 같이 그 마가다의 모든 바라문․장자․거사와 인민들은 그 자리에서 멀리 티끌과 때를 여의었다. 그리고 나아가 모든 괴로움이 집기한 법[苦集法]은 다 멸하는 법임을 그와
같이 증득해 알았으며 그 가운데 또 1나유타의 재가 신자들은 우바새 계를 받았다.”
이 때 마가다국 빈두사라왕은 법상(法相)을 보고 법상을 알고 난 뒤에 법상에 들어가 법상 가운데서 이미 모든 의심을 완전히 끊어서 걸림없이 꿰뚫었다. 그리하여 모든 법에 대해서 다시는 마음에 걸림이나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세존의 법 가운데서 다른 이를 따르거나 다른 이에게 묻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이 모든 법 가운데서 이렇게 자재롭고 걸림없는 경지를 얻게 된 빈두사라왕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 세존이시여, 예전에 제가 동자였을 때 다섯 가지 소원을 세웠는데 오늘에야 그 모두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 소원이란 무엇인가 하면, 첫째 저는 소년일 때에 일찍 왕위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이 첫 번째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소원은 왕위에 오른 뒤에 제가 다스리는 나라 안에서 부처님께서 나시기를 원했습니다. 이 두 번째 소원도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소원은 부처님께서 나시면 저는 그 세존께 나아가 공양을 베풀어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었는데, 이제 제 마음의 세 번째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넷째 소원은 그 세존께서 크게 기쁜 마음을 내시고 저를 위하여 법을 설하시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이 네 번째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소원이란, 그 세존의 법문을 듣고 그 분이 설하시는 모든 법을 제가 모두 증득해 아는 것이었는데, 이제 다섯 번째 소원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예전에 제가 동자였을 때 제가 원하는 바는 모두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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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 / 1142] 쪽
기를 소원하였는데, 위없는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 성취하였습니다. 훌륭하신 수가타시여, 저는 이제 이겼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몸이 굽어졌다가 펼 수 있게 되고, 도망치던 사람이 숨어 있다가 벗어날 수 있게 되며, 길 잃은 사람이 길을 찾고, 어두운 땅에서 등불을 얻고,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모든 대상을 환하게 보는 것과 같습니다. 위없는 세존이시여, 지금의 저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렇게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세존께 귀의하고 법보에 귀의하고 성스러운 승가에게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어느 때나 우바새로서 지녀야 할 행동을 하겠습니다. 제발 세존께서는 저의 다음과 같은 다짐을 알아주십시오. 여래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이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맹세코 살생을 하지 않고 모든 생명을 보호하기를 마치 저의 생명처럼 여기겠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귀의할 곳이 되겠으며, 이렇게 5계와 10선을 지니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과
비구들은 내일 제가 베푸는 공양을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는 마가다국의 빈두사라왕을 위하여 묵묵히 그의 청을 받아들이셨다. 빈두사라왕은 부처님께서 묵묵히 그 청을 받으신 줄 알고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이 수레를 타고 왕사성으로 들어오십시오. 제가 직접 이 수레를 끌고 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이르셨다.
“훌륭한 대왕이여, 모쪼록 대왕은 언제나 안락하기를 원하오. 나는 수레를 타지 않소.”
그 때 빈두사라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세존을 에워싸고 세 번 돈 뒤에 작별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빈두사라왕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참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오늘 마가다왕이 세존께 말이 끄는 수레를 타시도록 보시하고 또 자기는 걸어가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이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이렇게 말하고 묵묵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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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 1142] 쪽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그 마가다국 빈두사라왕은 오늘만 나에게 말이 끄는 수레를 보시하고 나를 위하여 수레를 끌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지난 옛날에도 나에게 그와 같이 보시한 적이 있었다.”
모든 비구들은 거듭 부처님께 청하였다.
“제발 저희들을 위하여 그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나간 옛날 일을 생각해 보건대, 옛날 가시국(迦尸國)에 선의락법(善意樂法)이란 왕이 살고 있었다. 그는 법다운 왕의 정치를 펴 백성을 다스렸다. 그 때 제석천왕이 그 왕을 만나고자 하여 조어천(調御天) 마다리(摩多梨)[수나라 말로는 무착처(無著處)라고 함]에게 말하였다.
‘너 마다리는 가시국의 선의락법왕에게 가서 [그대 선의락법이여, 삼십삼천과 제석천왕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니 당신은 사양하지 말고 꼭 오시오]라고 말하여 그를 나에게 데리고 오너라.’
조어천 마다리는 제석천왕에게 아뢰었다.
‘천주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그는 천 필의 말에 좋은 수레를 매었다. 수레를 화려하게 꾸민 뒤에 곧 염부제로 내려가 가시국 선의락법왕의 처소로 갔다. 그는 왕의 처소에 도착하자 허공에 머문 채 게송으로 선의락법왕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이 수레에 오르시오.
더할 수 없이 화려한 하늘의 수레에 오르시오.
모든 하늘들이 그대를 생각하나니
바로 저 삼십삼천의 왕들이 그러하오.
이 때 선의왕은 이 소리를 듣고
곧 동쪽으로부터 가장 훌륭하여
비할 곳 없는 그 수레에 올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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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 1142] 쪽
수레는 드높은 천왕궁을 향해 나아갔네.
모든 천왕들 멀리서 그 왕을 보자
각각 일어나 맞으며 그에게 이른다.
‘어서 오십시오, 인간 세상의 법왕이시여.
여기 제석천왕과 함께 앉으시오.’
이 때 제석천 대왕은
멀리서 그 왕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며 왕에게 말하였네.
‘잘 오셨소, 세간의 대왕이여.
지금 이곳 자재천에서
하늘의 위력을 받아 머무시오.
마음대로 얼마든지 머물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드리리라.’
그리하여 왕은 도리(忉利)의 삼십삼천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마음이 즐겁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수명이 줄어들까 두렵구나.’
그리고 나서 곧 게송으로 제석천왕에게 아뢰었다.
내 오래전 천상에 처음 왔을 때는 즐거웠고
이곳의 음악도 그 소리가 미묘하였는데
내 이제 수명이 다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늘의 과보가 즐겁지 않습니다.
도리천궁 제석천왕은 곧 게송으로 그 선의왕에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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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 1142] 쪽
왕의 지금 수명이 줄지 않았고
목숨이 다할 날도 아직 멀었소.
다만 왕의 선업이 미미한 까닭에
천상이 즐겁지 않은 것이오.
그대는 스스로의 힘으로 수레를 타고 왔지만
이제 그 업이 남김없이 다하였네.
이미 죄업으로 마음이 어지러운 까닭에
천상이 즐겁지 않은 것이오.
이제 만약 하늘의 위력을 받으려 하고
하늘의 쾌락을 예전처럼 받고자 한다면,
저 미묘한 수레를 탔을 때와 같이 되고자 하고
또 묘한 숲 동산에 미혹하고자 한다면
그대가 지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면
곧 마음 즐겁게 천상에 머물 수 있으리라.
선의왕은 이 게송을 듣고 나서 곧 제석천왕에게 아뢰었다.
‘참으로 어지신 천왕이여, 나는 인간 세상으로 가서 많은 복업을 지어 보시를 행하고, 고행을 행하고, 착한 일을 하고, 진실한 말을 많이 하며 재계를 받겠습니다. 나는 이런 모든 선업을 짓고 나서 다시 이 천상에 올라오겠습니다.’
제석천왕은 그 왕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하시오. 당신의 말과 같이 오늘부터 이곳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가서 그와 같은 여러 가지 공덕을 짓고 선업을 많이 짓고 나아가 보시를 하고 재계를 받아 그런 선업을 짓고 난 뒤에 다시 천상으로 올라오시오.’
이 때 선의왕은 그 천상에서 많은 때를 지낸 뒤에 다시 염부제로 내려와 그 왕궁에 이르니, 그 궁내의 모든 채녀와 왕후며 모든 왕자들과 대신 백관이며 친족 권속들은 다 죽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왕은 그 옛사람들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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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 / 1142] 쪽
수 없게 되자 마음이 즐겁지 않고 근심 걱정과 슬픔으로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것이 그들의 옛 옷이고,
영락이며 팔찌, 귀걸이구나.
평생 아끼며 남에게 베풀지도 않더니
죽은 뒤에 물건은 남았는데 몸은 어디 갔느냐.
이러한 온갖 장식품들과
아름답게 꾸민 침상이며 이불들
동산 숲 못과 늪이며 향기로운 산들
문득 이곳을 버렸구나.
모든 백성들도 볼 수 없고
온갖 궁전들도 텅 비어서
처자와 권속도 다 사라졌으니
내 이곳에서 무엇이 즐거울 것인가.
지혜롭고 훌륭하고 매우 부귀한
위엄과 덕으로 우리는 태어났지만
목숨 맡은 악귀(惡鬼)는 보호하지 않아
모두 다 사라지고 흩어지게 했네.
부유하거나 귀하거나 빈천한 이거나
총명하거나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이거나
소년이나 장년이나 늙은이까지도
시절이 다하는 때에 이르면
그 목숨 맡은 귀신도 보호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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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 / 1142] 쪽
모든 것 움켜쥐어 죽게 하네.
모든 찰제리며 바라문들이나
비사와 수다라의 귀하고 천한 자들
혹 전다라와 도마(塗摩)의 무리
때가 되면 가리지 않고 쓸어가네.
모든 것은 남김없이 꺾이니
마치 산골 물이 세차게 흘러
가파른 강가의 나무를 쓸어가듯
늙고 병들고 죽음도 때가 되면 그러하여
중생의 몸과 명근(命根)을 먹어 삼키니
나는 내 눈으로 그곳을 보았노라.
네 언덕에 있는 4진(鎭)의 주인이며
저 삼십삼천의 도리천궁에서
한 번 즐기며 유쾌하게 지낸 것이
7일 낮 7일 밤밖에 되지 않았네.
나는 그 제석천궁에 머물면서
항상 천왕을 직접 만났고
거기서 만났던 모든 천왕들에게도
항상 이런 일이 있음을 보았네.
나는 이제 오직 복업을 지어
보시를 행하고 지계를 행하며
정진과 인욕과 지혜 선정을 닦으리니
결코 다시는 왕위의 과보를 구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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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 1142] 쪽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아, 그 때의 선의왕이 바로 지금의 나이고, 당시 마다리 조어천이 바로 저 마가다국의 빈두사라왕임을 알아라. 그 때에도 그는 그렇게 나에게 수레에 오르기를 청하고 또 나를 위하여 몸소 끌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와 같이 나에게 수레에 오르기를 청하고 또 자기가 직접 수레를 끌고자 한 것이니, 본래 서원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빈두사라 대왕은 궁전에 도착한 뒤에 그날 밤에 온갖 맛나는 음식을 풍족하게 준비하였으니, 이른바 씹어 먹고 빨아먹고 마시는 것들을 먹음직스럽게 장만하였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고 나서 궁전을 깨끗이 소제하고 자리를 편 뒤에 곧 사람을 부처님 처소로 보내어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공양할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세존께서는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예전에는 범지였던 이들로서 출가한 천 명의 비구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왕사성으로 나아갔다.
이 때 도리천궁의 제석천왕은 곧 자신의 하늘의 몸을 동자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모습은 단정하고 어여뻐 모든 사람이 보면 누구나가 즐거워하였다. 그는 머리 위에는 소라 상투로 관을 삼고 몸에는 누런 옷을 입고 왼손에는 황금 물병을 들고 오른손에는 여러 가지 보배의 지팡이를 들고서 부처님과 비구들 앞에서 걸어갔는데, 그는 걸어갈 때 발이 땅에서 네 치 가량 떠서 흙이나 먼지가 묻지 않았다. 그 때 동자의 몸을 한 제석천은 이런 게송을 읊었다
.
여래는 스스로 조복하고 남도 조복하시니
옛날의 소라 상투 범지였던 천 명과 함께
이렇게 황금빛 묘한 몸을 지니신
위없는 세존께서 지금 성으로 들어오시네.
스스로 고요하고 남도 고요하게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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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 / 1142] 쪽
옛날의 소라 상투 범지였던 천 명과 함께
이렇게 황금빛 묘한 몸을 지니신
위없는 세존께서 지금 성으로 들어오시네.
스스로 건지시고 남도 건지시며
옛날의 소라 상투 범지였던 천 명과 함께
이렇게 황금빛 묘한 몸을 지니신
위없는 세존께서 지금 성으로 들어오시네.
스스로 해탈하고 남도 해탈시켜
옛날의 소라 상투 범지였던 천 명과 함께
이렇게 황금빛 묘한 몸을 지니신
위없는 세존께서 지금 성으로 들어오시네.
열 가지 법문을 설하시고
10력과 10무승(無勝)을 고루 갖추신 분
천 명의 비구들에게 좌우로 둘러싸여서
위없는 세존께서 지금 성으로 들어오시네.
이 때 성안의 모든 인민들은 제석천왕의 이런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동자는 참 아름답고 훌륭하며 비길 데 없고 누구든 그를 보는 사람은 즐거워진다. 이 사람은 누구의 시자(侍者)일까? 그는 누구를 모시고 받드는 자일까?”
그 때 그 도리천 제석천왕은 모든 사람들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은 일체를 항복받아
고요하며 위없고 가장 높다네.
천상과 인간의 공양을 받으시니
나는 지금 그 분의 시자입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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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 / 1142] 쪽
가장 큰 장부로서 만물을 항복시키니
부처님 세존보다 나은 이는 없습니다.
천상과 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신데
나는 지금 그 분의 시자입니다.
이 때 세존께서는 조용히 발을 옮겨 빈두사라왕 궁전으로 들어가셨다. 그리하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빈두사라왕은 부처님과 모든 대중들이 편안히 앉은 것을 보고 손수 온갖 음식과 반찬들을 갖추어 들고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에게 베풀었다. 모든 이들이 넉넉하고 흡족하게 다 먹고 나자 손발을 씻고 각각 작은 자리를 가지고 부처님 앞에 앉았다.
이 때 빈두사라왕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오늘 부처님을 어느 곳에 계시게 할까? 이 성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출가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물러 법답게 도를 행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리고 빈두사라왕은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저 죽림원(竹林園)은 성읍에서 가까워 왕복하기가 편하며, 오고 가도 피로하지 않고, 평탄하여 가기도 쉽고,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고 이익을 구하여도 얻기 쉬우며, 게다가 모기와 등에며 독사나 빈대들이 적고, 낮에도 조용하여 사람의 왕래가 없고, 밤에는 소리가 적어 조용하다. 성과 못이 가까워 오가는 데 장애가 없으니, 착한 사람이 수도하는 곳으로 삼기에 족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이 죽림(竹林)을 세존께 받들어 세존께서 머무실 처소로 삼게
해야겠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 세존이시여, 이 죽림원(竹林園)은 왕사성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내지 착한 사람이 수도하기에 알맞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저에게 어떤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죽림을 부처님께 보시하니 머무실 곳으로 삼으십시오.”
이 때 부처님께서 빈두사라왕에게 이르셨다.
“그렇게 하겠소, 대왕이여. 만약 나에게 죽림을 보시하고자 하거든 저 사방에서 모여든 승가에게 보시하기를 허락하시오.”
빈두사라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가르침과 같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황금의 병을 들고 세존께 물을 드리고 다시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이 죽림원은 성에서 가깝고 내지 착한 사람이 수도하기 좋은 곳입니다. 저는 이제 모든 불세존과 사방의 승가에게 보시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존께서는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저의 보시를 받아들여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그를 가엾게 여기시어 받아들이셨으며, 이런 게송으로 축원하셨다.
온갖 나무가 섞인 동산 숲이며
모든 다리가 다 갖추어졌고
못․도랑․우물․샘도 가득하여
배가 오가며 사람을 건네주네.
그들은 항상 밤낮 가운데
복의 과보가 끝없이 날로 더하니
법을 행하고 계를 지키는 사람도 그러해
믿고 공경함이 굳으면 하늘에 태어나리라.
이 때 세존께서는 빈두사라왕을 위하여 축원을 다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본래의 처소로 돌아가셨다. 본래의 처소에 이르시자 이런 인연으로 모든 대중들을 모으셨다.
“너희 비구들아, 지금부터 이후에는 모든 비구들이 스스로 동산 숲을 잘 가꾸라.”
니사새(尼沙塞)의 논사는 이렇게 죽림원을 받은 인연을 말하였다.
불본행집경 제45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6. 보시죽원품 ②
그 당시 왕사성에는 가란타(迦蘭陀)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그 나라에서 소문난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고 살림살이가 넉넉하였으며 부리는 이들도 많았으니, 마치 그 집은 북방의 비사문천(毘沙門天)의 궁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저 가란타의 죽림(竹林)은 이 장자의 소유였다. 성에서 멀지 않았으며 착한 사람이 거처하기에 알맞았다. 그 동산에는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오가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아기비가(阿耆毘伽)[수나라 말로는 사명(邪命)이라 함]라는 이름의 도인이 있었다.
가섭유사(迦葉遺師)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때 4진(鎭)의 사대천왕들은 파란빛 몸의 야차들에게 일렀다.
“너희들은 빨리 가란타 죽림원에 가서 온갖 모래와 자갈, 가시덤불, 쓰레기, 흙무더기 등을 깨끗이 소제하고 움푹 패인 곳을 메워 평탄하게 만들고 정결하게 하라. 지금 부처님께서 그 동산에서 여름 안거를 하고자 하신다.”
파란빛 몸의 야차들은 사대천왕의 위엄이 깃든 가르침을 받들고 곧 아뢰었다.
“천왕의 교칙대로 서둘러 그 동산에 가서 깨끗이 소제하고 내지 모두 다 반듯하게 단장하겠습니다.”
이 때 아기비가의 도를 닦는 사람 하나가 새벽에 일어났다가 샛별이 돋으려 하는데, 파란빛 야차들 네 명이 와서 죽림원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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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들에게 물었다.
“장로들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며 그대들은 누구십니까?”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파란빛 야차들입니다. 사천왕께서 우리들을 여기 보내어 이 동산을 소제하고 내지 평평하고 바르게 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여래께서 여기서 여름 한철 동안 안거를 하실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들은 지금 이곳을 수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본 아기비가 도인은 해가 뜨자 가란타 장자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일러 주었다.
“그대 큰 장자여, 당신은 아십니까? 지난밤에 샛별이 막 돋으려 할 때 나는 파란빛 야차들 네 명이 죽림원을 청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저에게 ‘우리들은 바로 파란빛 야차들인데 사천왕이 우리들을 여기 보내어 대나무 동산을 청소하라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이제 여기서 안거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짐짓 여기 와서 이 동산을 수리하는 것입니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아기비가 도인은 장자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죽림동산을 사문 구담에게 베풀어서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어쩌면 조금 있다가 마가다 빈두사라왕이 그 동산을 빼앗아 사문 구담에게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대 장자는 동산을 보시하는 공덕을 자신이 얻지 못하고 한갓 헛되게 손해만 볼 것입니다.”
가란타 큰 장자는 아기비가 도인에게서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반 유순쯤 길을 가다가 세존과 마주쳤다. 가란타 장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고 훌륭하여 모든 사람이 보면 누구나 기뻐하고, 나아가 모든 상호(相好)로 그 몸을 장엄하였는데 마치 뭇 별이 허공을 장엄한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자 곧 세존을 향해 깨끗한 마음을 일으키고 기쁨이 솟아나서 부처님께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금으로 된 물병을 들고 깨끗한 물을 부처님 손에 부었다.
그 때 장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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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왕사성에 살고 있는 가란타라는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죽림(竹林)이라고 불리는 동산이 하나 있습니다. 성에서 멀지도 않고 나아가 착한 사람이 편안히 거처할 만한 곳입니다. 제가 지금 그 동산을 세존께 받들어 올리오니,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그 동산을 받아 주십시오.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사랑하시어 그 동산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장자에게 이르셨다.
“만약 누군가가 부처에게 동산 숲이나 집, 혹은 의복이나 그 밖의 재물들을 조건 없이 보시한다면[空施] 그 물건은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곧 탑을 이루는 것이요, 다른 데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만약 지금 저 죽림원을 사방의 승가에게 보시하면 현재나 미래의 일체 대중들이 모두 다 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에게 이렇게 은근하게 보시하기를 권하노라.”
가란타 장자는 부처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나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과 같이 하여 저는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장자는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죽림원을 미래 3세의 일체 모든 승가에게 보시합니다. 그들이 모두 마음껏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제발 저를 위하여 그 동산을 받아 주십시오. 저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하시어 그 동산을 받아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가란타 장자를 가엾게 여기신 까닭에 그에게서 죽림원을 받으시고서 곧 게송을 읊으시며 축원하셨다.
그 게송의 첫머리는 “온갖 나무가 섞인”이며……(중략)…… “하늘에 나리라”라고 읊은 내용이니, 이것은 바로 세존께서 가장 먼저 죽림원의 보시를 받은 인연이었다.
이 때 세존께서는 왕사성 가란타 죽림원에서 큰 비구들 천 명과 함께 계셨으니, 이른바 모두가 옛날에는 소라 상투[螺髻]를 한 선인 범지들이었다가 출가한 장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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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대가섭인연품(大迦葉因緣品) ①
이 때 왕사성에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곳에 신수립(新豎立)이란 마을이 하나 있었다.
다른 논사들은 이렇게 말하였으나 마하승기사(摩訶僧祇師)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마가다국 왕사성에 마하사타라(摩訶娑陀羅)[수나라 말로는 대택전(大澤田)이라 함]라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바라문 마을이 하나 있었으니, 그 마을의 이름 역시 마하사타라였다.
그 마을에 아주 큰 부자인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니구로타갈파(尼拘盧陀羯波)[수나라 말로는 감용수(堪用樹)라고 함]라는 이름이었다. 이 장자는 큰 부자로서 재산이 넉넉하고 부리는 하인이 많았으며, 그 집은 북방 비사문천의 궁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장자 바라문은 5백 의 마을을 거느리고 마음대로 처분하고 부렸으며 통제를 하였다.
당시 마가다국의 빈두사라왕은 천 마리의 소가 보습을 매고 경작할 수 있는 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바라문은 그보다 단 하나의 숫자가 부족하였다. 왜냐 하면 빈두사라왕이 질투를 할 것이 두려웠던 까닭에 왕보다 일부러 하나 줄여서 소유하여 그 숫자를 천을 채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바라문이 얼마나 많은 가축을 지니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그저 오직 연기와 불의 수로 그 양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며, 모두 25개의 창고에 돈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 장자 바라문의 부인은 당시에 마침 임신을 하여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은 그 동산에 들어가서 바람을 쐬며 노닐다가 필발라(畢鉢羅)나무 아래에 앉았다. 그러다가 그 나무 아래에서 갑자기 산기를 느끼고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아이는 생김새가 이 세상에 비길 데가 없을 정도로 매우 단정하고 어여뻐 누구든 아이를 보는 사람은 마음이 즐거워졌으니, 마치 황금으로 만든 상[金像]과도 같았다.
그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그 나무 위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늘 옷 한 벌이 저절로 나타났다. 그러자 이것을 본 부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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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늘 옷은 아이의 복덕으로 생겨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이 상서로운 조짐을 인연하여 아이의 이름을 필발라야나(畢鉢羅耶那)[수나라 말로는 수하생(樹下生)이라 함]라고 지었다. 아이는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나무를 인연하여 이름이 지어졌고, 사람들은 이 아이를 필발라야나라고 불렀다.
부모는 아이를 위하여 안아 주는 유모, 젖먹이는 유모, 놀아 주는 유모, 기르고 보살피는 유모를 네 사람 두어서 목욕하고 기르며 안아서 달래고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하였다.
그 부모에게는 필발라야나가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았고 잠시라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언짢아질 정도였다.
이렇게 복덕의 인연으로 잘 자라난 필발라야나는 무럭무럭 자라서 오래지 않아 지혜를 성취하였고, 점점 커 가면서 걷거나 달리기도 잘하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가 여덟 살이 되자 그에게 바라문계를 받게 하고, 곧 부모의 가업(家業)을 맡기고서 여러 가지 기술과 예능과 제사 법식을 남김없이 가르쳤다. 즉 글씨․그림․산수․도장 새기는 것을 비롯하여 4위타론(韋陀論:베다론)․모든 수기법(授記法)․웅변술․무기 쓰는 법․대주술법(大呪術法)․운율학․여러 가지
문장․5행의 별자리․음양(陰陽)의 도수(度數)․흐르는 물로 하루 낮 하룻밤이 몇 시간인지 아는 법과 길흉(吉凶)을 아는 법 등이었다.
또한 필발라야나는 땅이 흔들리는 현상을 알았고, 우레와 천둥 소리, 새들의 지저귐이나 날고 뛰는 동물들의 동향으로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점을 칠 줄 알았다. 또한 점성술에 밝았고 모든 기술과 예능을 알았으며, 남자와 여자의 관상을 알았고 가축들에 대해서도 점을 쳤으며, 사람들이 깨끗하게 물로 씻는 청정한 행을 알았고, 물을 받는 법과 씻는 법, 재[灰]를 받는 법 등을 알았으며, 노랫소리를 듣고 길상한 조짐이나 성쇠(盛衰)의 조짐을 알았고, 재
앙을 피하여 불의 신과 대인(大人)과 하늘에게 제사하는 법을 완전히 다 통달하였다.
이미 스스로 배우고 나서 또 남에게 가르칠 줄 알았으며, 남에게서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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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 때와 다른 이에게 물건을 줄 때를 모두 다 배웠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그가 모르는 것이 없었고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니, 지혜가 빠르고 민첩하여 영리하고 총명하며 말솜씨가 능란하였고, 능숙하고 뛰어난 재주가 많았다.
필발라야나 동자는 성품이 소탈하고 검소하며 정직하여 항상 세간을 싫어하며 욕망에 물든 즐거움이 부정한 줄 알고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내었다. 옛날에 일찍이 모든 불 세존을 뵙고 그 곁에서 모든 선근(善根)을 심고 모든 공덕을 닦아 이미 성취하였으며, 모든 식상(食相)을 알고 마음으로 열반문을 향하고자 하여 항상 출가를 구하고, 온갖 번뇌를 버리고 일체 세간의 유위(有爲)를 받지 않고, 일체의 생․노․병․사를 받지 않았었다. 그는 과거 세상에서
부터 수행하여 모든 업에 번뇌가 엷었고 이러한 지혜의 힘으로 인연하여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지위가 무르익기에 이르렀다.
한편 필발라야나 동자의 부모는 아들이 점차 나이 들어 장성해 가자 세상의 욕망을 즐길 나이가 되었음을 알고서 아들에게 말하였다.
“필발라야나야, 나는 너를 위하여 며느리를 들여서 너를 섬기게 하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부모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장가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범행을 닦고 싶습니다.”
그러자 부모가 말하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렇다면 너는 먼저 자식을 낳아서 대를 이은 뒤에 마음대로 범행을 닦아라. 왜냐 하면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만약 사람이 자식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천상에 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대답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저에게는 대를 이어 전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뒤를 이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꼭 범행을 닦겠습니다.”
부모는 다시 거듭 아들에게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반드시 아내를 맞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 우리 집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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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이 끊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필발라야나 동자는 부모들이 이렇게 거듭거듭 번거롭게 채근하자 염부단금(閻浮檀金)을 기술자에게 가져가 여자의 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황금 여자상이 다 만들어지자 그는 부모에게로 그것을 가져가 보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5욕락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범행을 닦기만을 원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부모님께서 저로 하여금 아내를 맞아들여 대를 잇게 해야겠다면 염부단 황금 여인상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찾아주십시오.”
필발라야나 동자의 부모는 아들로부터 이런 조건을 받고 나자 근심걱정이 일고 불안에 사로잡혀 이렇게 생각하였다.
‘대체 어디 가서 염부단 황금 여인상과 똑같은 처녀를 찾는단 말인가?’
구로타 대바라문은 누각 위에 앉아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마침 이 때 그 집안의 스승으로서 항상 내왕하는 바라문이 그를 찾아왔다. 스승 바라문은 그 집에 들어오자 곧 부유한 구로타 바라문을 위하여 축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큰 시주(施主)시여, 모쪼록 그대의 모든 재산이 더욱 불어나며 상서로운 과보가 더욱 커져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부인과 자식들도 부디 더욱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내 집안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 집 주인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집안 사람은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우리 주인께서는 지금 누각 위에 계시는데 걱정이 너무나 커서 수심에 싸여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고 말씀도 없이 앉아 계십니다.”
스승 바라문은 구로타 바라문에게 가서 말하였다.
“원하건대 대시주여, 집안의 살림살이가 이전보다 더욱 불어나길 기원합니다. 밤에 누울 때에는 먹은 것이 소화가 잘 되십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밤에 즐기실 때 매우 즐겁고 흡족하십니까?”
그러나 주인인 바라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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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그러자 스승인 바라문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묵묵히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하여 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까닭에 그대는 지금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구로타 바라문은 그 스승 바라문에게 아들과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면서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내 지금 어디를 가서 이런 염부단 황금빛을 띤 여인상과 똑같은 처녀를 찾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승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그대 큰 시주 바라문이여, 걱정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지금까지 나의 시주자가 되어 내게 필요한 옷이며 음식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내 이제 그대를 위하여 이런 염부단 황금상과 똑같은 처녀를 찾아보겠습니다. 내가 반드시 찾아낼 터이니 그대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저 길을 다닐 때 필요한 양식과 길동무를 나에게 제공해 주기만 하면 나는 그들과 함께 사방을 두루 다니며 찾아내겠습니다.”
구로타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그의 말대로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었다.
그리하여 스승 바라문은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물을 받아 들고서 곧 출발하였다. 그는 네 가지 빛깔의 신명 일산[神明繖蓋]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였다. 신명을 세우고 그 앞에는 온갖 음악을 울리면서 앞뒤로 에워싸게 하였다. 그는 하나의 일산 아래에 금을 두드려 신명(神明)의 얼굴을 만들고, 어떤 것은 은으로 만들고, 또 어떤 것은 파리 보석으로 신명의 얼굴을 만들고, 혹은 또 유리 보석으로 신명의 얼굴을 만들어서 세 개
의 일산은 각기 다른 곳으로 가게 하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들고 가기로 하고 각자 다른 길로 가는 사람에게 일렀다.
“그대들은 어느 마을이나 읍에 이르거든 그 마을의 모든 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널리 고하여라.
‘이 신명에게 어느 여자가 공양을 베풀 것인가? 만약 공양을 하게 되면 그 여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서 그대들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그 여자들 가운데 금빛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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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있거든 그대들은 그 여자의 성명과 주소를 묻고 급히 서둘러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길을 나누어 떠나갔다.
그 스승 바라문은 곧 자신도 하나의 신명 일산을 자루에 넣고 식량거리를 함께 챙긴 뒤에 다른 지방으로 떠나갔다. 그리하여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녔는데, 성․읍․왕궁․여염․거리 등 그는 자기가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서든 음악 소리를 흘려서 신명을 즐겁게 하였고, 음악 소리를 들은 여자들은 모두 모여들었으며, 여자들이 모이면 그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루에서 신명을 꺼내어 여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 모든 처녀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명에게 공양하라. 만일 어떤 여자든 이 신명에게 공양을 올린다면 그 여자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처녀들은 곧 그 신명에게 공양하려고 온갖 바르는 향․가루향․꽃다발․뿌리는 꽃들을 자기 집에서 들고 나왔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점차 비야리성에 이르게 되었다.
그 비야리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라비가(迦羅毘迦)[수나라 말로는 적황색(赤黃色)이라 함]라는 이름의 큰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또 매우 부유한 부자 바라문이 한 사람 살고 있었으니, 이름이 가비라(迦毘羅)[수나라 말로는 황적(黃赤)이라 함]였다. 그 바라문은 큰 부자여서 재물이 많고 부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의 집은 북방의 비사문천 궁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바라문에게는 발타라가비리야(跋陀羅迦卑梨耶)[수나라 말로는 현색황녀(賢色黃女)라고 함]라는 이름의 딸이 하나 있었다. 이 여자는 아름답고 단정하기 그지없어서 그녀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였고, 그의 미모는 세상에 비할 곳이 없었다.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았으며 뚱뚱하지도 야위지도 않았고, 피부가 너무 희거나 검지도 않았고 붉거나 푸르지도 않았다. 성년의 나이가 되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 여인[玉女寶]이 되기에 아주 적당한 여인
이었다.
마침 그 때 비야리성은 연화(燃火)라는 명절이어서 5백 명의 처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처녀 발타라도 그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일산과 신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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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스승 바라문은 그 처녀들에게로 다가가서 자루 속에서 신명을 꺼내 모든 처녀들에게 보이고 말하였다.
“너희 처녀들은 보아라. 이것은 가장 훌륭하고 미묘한 천신(天神)이다. 그대들은 모두 이 천신에게 공양하고 제사하라. 어떤 여자든지 이 신명에게 공양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모든 처녀들은 제각각 온갖 가루향․바르는 향․꽃다발․흩뿌리는 꽃들을 가지고 급히 그 신명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처녀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이 하늘 신명에게 공양하겠다며 다투었지만 저 발타라가비리야만은 그 신명 근처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들이 억지로 그녀를 신명 근처로 끌고 갔다. 발타라가비리야가 신명 곁에 오자 그 처녀의 위엄 있는 빛의 힘으로 그 염부단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은 이내 빛을 잃고 흐려졌다.
이 때 그곳에 있던 발타라가비리야는 그 모든 처녀들 틈에서 온 힘을 다해 몸을 뿌리쳐 나와 자기 집으로 달려가서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제발 저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마세요. 왜냐 하면 저는 지금 다른 이를 남편으로 삼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범행을 닦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형제들이 서로 그녀를 부르며 말하였다.
“우리도 너와는 잠시도 이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너를 시집 보내지 않는다면 그건 도리가 아니다. 혹시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이 여자의 형제들은 그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출가시키기를 원하지 않은 것이다’고 의심받을까 두렵구나.”
그리고 다시 형제들은 말하였다.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만약 너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너를 위하여 그에게 엄청난 돈을 요구할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이 그토록 엄청난 돈과 물건들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너는 저절로 집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형제들은 누구든 이 여자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곧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 우리 자매를 원한다면 아주 질 좋은 금덩어리를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서 오라. 그러면 우리 자매는 그에게 시집가겠다.”
한편 그곳에서 처녀를 찾아 염부단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들고 다니던 스승 바라문은 그 발타라가비리야를 보고 나서 다른 여자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며 어느 집 딸인가?”
여자들은 대답하였다.
“여기 가장 유명한 부자 바라문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가비라입니다. 그 여자는 그 바라문의 딸입니다.”
그 스승 바라문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날이 저물어 황혼이 찾아올 때에 부자 바라문인 가비라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하여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고, 그 집의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여 숙소를 빌려 주었다.
스승 바라문은 그날 밤 그 바라문의 집에서 묵고 난 뒤에 밤이 지나 아침이 되자 아침 일찍 가비라 바라문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 앞에서 축원하였다.
“원하옵건대 그대 바라문의 집은 언제나 번창하소서.”
이렇게 축원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자 가비라 바라문이 스승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밤에 편안히 쉬셨습니까? 잠자리는 괜찮았습니까?”
그러자 그 손님으로 온 스승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저는 지난밤 매우 편안하고 쾌적하였고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그 집 딸 발타라가비리야가 새벽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부친 에게 와서 그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처녀를 찾아다니던 바라문은 가비라에게 물었다.
“훌륭하신 그대여, 이 처녀는 누구입니까?”
가비라는 대답하였다.
“저의 딸입니다.”
스승 바라문은 다시 물었다.
“이 처녀는 혼처를 정하였습니까?”
가비라는 또 대답하였다.
“아직 아무 곳에도 혼처로 약속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 바라문은 곧 주인인 가비라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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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바라문이여, 마가다국에 마하사타라라고 하는 큰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역시 마하사타라라 이름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니구로타갈파라고 하는 아주 부유하기 그지없는 바라문이 한 사람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을 필발라야나 동자라고 합니다. 이 동자는 모든 이치를 스스로 알며 또 남에게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입니다. 3위타에 환히 통달하였고, 또 『일사십명론(一事十名論)』․『니건론(尼乾論)』․『주서론(輈書論
)』․『왕사론(往事論)』․『오명론(五明論)』 등은 한 구절이나 반 구절 심지어는 하나의 게송이나 반 게송에 이르기까지 환히 분별하고 있으며, 수기(授記)․세변(世變) 등의 64가지 논서와 대장부의 모든 특징도 잘 알고 있으며, 어떤 기술과 예능에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스승 바라문은 다시 주인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따님을 그 동자에게 보내어 혼인시키시기를 그대에게 권합니다.”
그러자 가비라 바라문과 그 자녀들은 스승 바라문에게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이 아이를 혼인시키려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내야 하는데 누가 그 돈을 내고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스승 바라문이 다시 물었다.
“얼마나 많은 재물을 요구하십니까?”
그들은 대답하였다.
“이 아이 몸만큼의 금(金)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스승 바라문은 자루에서 염부단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꺼내어 그 처녀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염부단 황금 여인상이라면 이 처녀와 딱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이 여인상을 받고 저 처녀를 주시오.”
그러자 그 처녀의 부모와 형제들은 생각하였다.
‘아마 그곳 사람들이 우리 딸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염부단금을 모아서 이 아이의 모습만한 크기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들이 이제 만약 이 염부단금으로 만든 여인상만 받고 그 집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직접 보지도 않고 또 그 나라의 예의범절이 어떤지도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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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우리 딸을 그 집으로 시집보내었다가 나중에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 모른다. 이제 밀사(密使)를 보내어 그 집을 살펴보게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스승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착한 사명(使命)의 바라문이여, 나는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 집 법도가 어떤지 보고 난 뒤에 딸을 출가시킬 것을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스승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스승 바라문은 주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 그는 니구로타갈파 바라문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착하고 훌륭하신 대바라문이여, 크게 기뻐하십시오. 내가 그 염부단 황금의 모습과 똑같은 여인을 찾아내었습니다. 그 여인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단정하기가 비길 데 없으며, 어떤 사람이든 그녀를 보면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자 대부호 바라문은 스승 바라문에게 물었다.
“대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느 곳에서 그런 처녀를 찾아내었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비야리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비라라는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 역시 가비라라고 하는 이름의 장자 바라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발타라가비리야라고 하는 딸이 있었는데 바로 그 처녀입니다.”
필발라야나의 부모는 이 말을 듣고 온몸과 마음에 기쁨이 넘쳐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니구로타갈파 바라문은 곧 자기 마을에서 비야리성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반 유순 되는 지점마다 소떼 한 무리와 아울러 객사를 지어 놓았다. 이렇게 곳곳에 객사를 배치한 뒤에 니구로타 바라문은 소먹이는 사람에게 이렇게 일렀다.
“너희들은 각각 이렇게 준비하라. 만약 누구든지 비야리성에서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들은 그들이 필요한 모든 물건을 제공하여 그들을 영접하고 공양해 받들되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게 하여라.”
한편 발타라비리야의 형제들은 집을 나와 마가다국 왕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들은 제일 먼저 첫 번째 소치는 목장에 당도하였는데 그곳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맞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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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오셨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그리고 나서 곧 객사로 인도하고 온갖 향을 넣은 더운 물로 목욕하게 한 뒤 또 갖가지 향을 몸에 바르게 하고 온갖 귀한 옷을 입힌 뒤에 다시 여러 가지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워 주었다. 그리고 나서 이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서 그들에게 먹게 하였으니, 그 음식이란 씹어 먹는 것, 깨물어 먹는 것, 핥아먹는 것 등의 갖가지 맛난 음식들을 모두 갖추었다.
그들이 마음껏 흡족하게 먹고 나자 소치는 이들은 말하였다.
“이곳은 바로 우리들의 소치는 목장입니다. 하룻밤 머무시고 내일 아침에 좋은 시간에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그 나그네들은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목장입니까?”
소치는 이가 대답하였다.
“이곳은 대부호인 니구로타갈파 바라문의 목장으로 일부러 당신들의 여행을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당신들이 먼길을 오느라 피곤하고 목마르거나 굶주릴까 염려해서, 그리고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여서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나그네들은 하룻밤을 편히 자고 다음날 떠났다. 이런 차례로 두 번째 목장을 만났고, 다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목장에서도 앞서와 똑같이 사람들이 나와 그들을 맞아들이며 또 같은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어느 먼 곳에서 오셨습니까? 하룻밤 편안히 주무시고 다음날 좋은 시간에 떠나십시오.”
그 때 그 나그네들은 목장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와 같은 목장이 얼마나 있습니까?”
목장 사람은 대답하였다.
“저 마하사타라 마을에서 비야리성에 이르기까지 평균 반 유순 사이에 목장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발타라가비리야의 형제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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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목장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그 밖의 재물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우리의 누이를 그 집으로 시집보내어서 아내로 삼게 해야겠다.”
그 형제들은 곧 사람을 보내어 대부호인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와서 우리 누이를 데려다 당신의 신부로 삼으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 때 필발라야나 동자는 심부름꾼에게서 뜻에 맞는 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내가 직접 가서 그 여자를 만나 보아야겠다. 정말 그렇게 덕행과 지혜가 있는지를 확인해야겠다.’
그리고 곧 부모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제 마음은 정말 5욕락이 필요하지 않고 범행을 닦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른들께서 이제 굳이 저의 배필을 찾으셨다 하니 제가 직접 그곳까지 차례로 걸식하며 가서 그 여자가 심부름꾼의 말과 정말 다르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부모는 곧 아들에게 답하였다.
“너가 원한다면 직접 가서 보고 오너라.”
그리하여 그 동자는 곧 집을 떠나 차례로 걸식하면서 나아가 점점 가라비가촌으로 다가갔다. 당시 그 나라에서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걸식하러 오면 여자가 손수 음식을 가지고 나와서 그 사람에게 주는 법이 있었다.
그 발타라 여인도 곧 자기 집에서 손수 음식을 들고 나와서 그 나그네인 필발라야나 동자에게 건네주었다.
그 때 필발라야나는 그 처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여자가 바로 그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 때 그 여자는 손수 그 동자에게 음식을 주고 나서 그 발에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그러자 동자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 착한 아가씨여, 시집갈 곳이 정해졌습니까?”
그 여자는 대답하였다.
“동자시여, 마가다국에 마하갈파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어떤 바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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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 부유한 바라문이 한 사람 살고 있는데 이름은 니구로타갈파라고 합니다. 그분에게 아들이 한 명 있는데 필발라야라고 한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를 그이의 아내로 시집보내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러자 필발라야나는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착한 아가씨여, 내 듣건대 그 동자는 내심 다섯 가지 욕망을 행하기를 싫어하고 범행을 닦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곧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이제 그런 말을 들으니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저 역시도 다섯 가지 욕망이 싫고 범행을 닦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의 아내로 정해진 것도 부모님의 뜻일 뿐, 나는 정말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억지로 저를 그의 아내로 만들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필발라야 동자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 착한 아가씨여, 그대는 필발라야 동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 여자는 대답하였다.
“착한 동자시여, 나는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동자는 거듭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그대 착한 아가씨여, 내가 바로 그 필발라야나 동자입니다. 나도 실은 다섯 가지 욕망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속마음은 범행을 닦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정들은 모두가 나의 부모님과 권속들의 뜻일 뿐입니다. 실로 부모님들이 억지로 나에게 당신을 아내로 삼게 강요하시는 것입니다.”
발타라 여인은 이 말을 듣고 그 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대바라문이여, 당신 말씀을 들으니 나는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이 정말 세상의 다섯 가지 욕망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제 오래 기다리지 말고 어서 나를 데려가십시오. 그래서 저 범행을 닦지 않는 세간 사람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필발라야나는 이 말을 듣고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진정으로 세상의 다섯 가지 욕망을 누리고 싶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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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저는 범행을 닦기를 원합니다. 두 분께서 저를 위하여 아내를 맞아들이게 하고 싶으시면 어서 서둘러 그 신부를 데려와 주십시오.”
이 때 필발라야나의 부모는 곧 가비라가 대바라문과 함께 언약을 맺고 재물을 건네고 그들이 요구하는 만큼 온갖 음식과 값진 영락과 묘한 보배옷들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길상하고 복된 날을 가려서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발타라가비라의 딸을 맞이하여 아들과 혼인시켜 아내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신부를 맞아들인 뒤에는 한 방에 두 개의 침상을 놓았다. 이렇게 침상을 마련하자 두 사람은 한 방에 머물면서도 각각 몸과 마음을 단속하여 서로 애정에
물들거나 몸을 닿게 하지 않았다.
그 때 필발라야나의 부모는 이 사실을 알고 생각하였다.
‘저 두 사람이 같은 방안에 있으면서 서로 애정을 품지도 않고 몸을 닿게 하지도 않으니, 이 일이 어찌 된 노릇인가. 곧 다시 방편으로 침상 하나를 들어내고 침상 하나만을 남겨 두면 두 부부가 함께 잠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서로 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 몸을 부딪치지 않았다. 필발라야나가 잠을 자면 발타라 여인은 곧 일어나 거닐었고, 발타라 여인이 누워서 잠이 들면 필발라야나가 곧 다시 거닐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 번갈아 침상을 쓰면서 몇 년이 지나도록 끝내 함께 침상에 들지 않았다.
불본행집경 제46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7. 대가섭인연품 ②
어느 날 발타라가 곤히 잠이 들어 있었고, 남편은 일어서서 거닐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곳으로 검은 뱀 한 마리가 기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발타라는 깊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한쪽 손이 침상 아래로 내려뜨려져 있었다. 필발라야나는 아내의 손이 드리워진 곳으로 검은 뱀이 지나가려는 것을 보고 뱀이 아내의 손을 물까 두려웠다. 그리하여 옷으로 자기 손을 감싸서 발타라의 팔을 들어서 침상 위에 올려놓았다.
발타라는 팔이 들리우는 바람에 잠결에서 깨어나 마음에 공포를 느끼고 걱정 근심에 불안하고 괴이한 생각이 들어 필발라야나에게 물었다.
“어질고 착한 성자(聖子)여, 당신은 예전에 나와 함께 다섯 가지 욕망을 행하는 것을 싫어하고 범행을 닦고 싶다고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무엇 때문에 이런 마음을 내십니까?”
필발라야나는 대답하였다.
“그렇소. 나는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소.”
발타라는 물었다.
“성자여, 만약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으셨다면 어찌하여 느닷없이 나의 팔을 만지셨습니까?”
그러자 필발라야나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아까 검은 뱀이 이리로 기어갔는데 나는 그대의 팔이 침상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았소. 나는 저 뱀이 독을 뿜어 그대의 팔을 물까 두려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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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 옷으로 내 손을 감싸서 그 손으로 그대의 팔을 들어 침상 위에 놓았을 뿐이지 일부러 만진 것은 아니오.”
이런 방식으로 그 두 사람은 12년이 지나도록 한 방에서 지내면서도 서로 접촉하지 않았다.
12년이 지나자 필발라야나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 가업(家業)이 크고 넓어 곧 그들이 직접 경영하게 되었다. 필발라야나는 몸소 집 밖의 농사 일을 감독하였고, 발타라는 집안에서 모든 살림살이를 다스렸다.
어느 날 필발라야나가 발타라에게 말하였다.
“어질고 착한 그대여, 지금 소에게 먹여야 하니, 그대는 오마(烏麻) 기름을 짜도록 일을 시키시오.”
발타라는 곧 남편에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계집종들을 모두 불러 명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오마 기름을 짜라. 주인 어른께서 소들에게 먹이려 하신다.”
계집종들은 이런 지시를 받고 오마를 가지고 햇빛에 널어 말렸다. 그런데 그 때 수없이 많은 벌레들이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한없는 죄를 짓게 되었구나.”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지금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이 죄는 발타라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가 우리들에게 이런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발타라는 계집종들의 이런 말을 듣고서 곧 일렀다.
“만약에 그렇게 죄가 될 것이라면 너희들은 다시는 그 기름을 짜지 말아라.”
발타라는 사람을 시켜 그 오마를 치우라 하고 방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마음이 괴로워서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 없이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한편 필발라야는 농토를 감독하고 돌아오다가 모든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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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없이 받는 것을 보았다. 게다가 소들이 고생스럽게 일하며 채찍질을 받으면서 부림을 당하고 이리저리 내몰리면서도 조금도 쉬지 못하는 광경을 보자 근심과 걱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아아 슬프다. 모든 중생들은 이런 고통을 당하는구나.’
그는 집에 도착해서도 크게 근심에 잠기고 얼굴에 불안한 빛이 가득한 가운데 고개를 떨구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발타라는 필발라야나가 이렇게 근심스런 모습으로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그 곁에 가서 물었다.
“성자여, 무엇 때문에 그렇게 근심에 싸여 괴로워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습니까? 당신께서는 지금 저에게 계집종들을 시켜 오마 기름을 짜라고 했는데 기름을 짜지 않아서 그 때문에 마음이 즐겁지 않은 것입니까?”
그는 곧 대답하였다.
“어질고 착한 그대여, 나는 지금 그런 이유로 마음이 즐겁지 않아서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가 밭농사를 감독하다가 모든 중생들이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지만 잠시도 편안히 쉬지 못하는 광경을 보았소. 또 모든 소를 보아도 온갖 일을 하면서도 조금도 쉴 사이가 없었소.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몹시 슬픈 생각이 들었소. 모든 중생들이 이런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자 나는 이런 까닭에
마음이 즐겁지 않아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오.”
그 때 발타라도 남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어지신 성자여, 나도 오늘 이런 큰 근심을 보았습니다.”
남편이 물었다.
“어질고 착한 그대여, 그대는 무슨 근심을 보았소?”
그러자 발타라도 오늘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필발라야나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어질고 착한 그대여, 가정에서 지내다가는 결함도 없고 범하지도 않으면서, 손해도 없고 해도 입지 않는 청정행을 하기가 어렵소. 죽을 때까지 결코 마음에 맞는 범행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오.”
발타라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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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여,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버리고 출가하십시다.”
이 때 필발라야나는 곧 발타라에게 대답하였다.
“어질고 착한 그대여, 그대는 지금은 그냥 머물러 있으오. 내가 스승을 찾아다니다 만약 만나게 되면 그대에게 알릴 것이니, 그 때 그대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시오.”
그리고 나서 필발라야는 곧 집안의 남녀 하인들을 불러모아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의 재산을 맡아라. 이제 곡식까지도 모두 그대들의 것이 되었고, 모두 다 풀어 줄 터이니, 이제 너희들은 양민(良民)이 되었다. 나는 세속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출가하여 범행을 수행하려 한다.”
필발라야나는 값진 흰 모전[白氎]을 가져다 곧 승가리(僧伽梨)를 만들고 또다시 사람을 불러 자신의 머리와 수염을 깎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간에 위대한 아라한으로서 출가한 분이 있으면 내 이제 그를 따라 출가 수도하리라.”
그런데 당시 세간에는 아라한이 한 사람도 없었고, 오직 여래․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만 계셨고, 마침 그 때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 샛별이 막 돋을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셨다.
필발라야나 가섭은 바로 그 날에 밤이 지나고 해가 막 돋을 때 출가하였던 것이다. 이 필발라야 가섭은 대가섭 종성에서 태어났으므로 세간에서는 가섭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출가한 뒤에 마을을 차례로 걸식하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갔다. 또 얼마 정도 차례로 유행(遊行)하여 마가다국의 마가다 마을에 이르렀다. 마가다 마을에서 다시 나다타(那茶陀) 촌을 지나 왕사성으로 가는 중간에서 그는 문득 여래께서 어떤 신을 제사하는 곳에 앉아 계신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신(神)의 이름은 다자(多子)라 하였는데, 여래께서 그 자리에 앉아 계신 모습이 매우 단정하였고, 그 몸이 반듯하고 곧은 것이 마치 허공에 뭇 별이 장엄해
있는 것과 같았다. 가섭은 그 모습을 보자 이내 청정함을 얻게 되었고, 둘이 아닌 생각[無二想]을 얻게 되었다.
“나는 지금 틀림없이 스승을 뵈었다. 나는 지금 틀림없이 바가바를 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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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는 지금 틀림없이 일체지를 뵈었다. 나는 지금 틀림없이 세존 일체견자(一切見者)를 뵈었다. 나는 세존을 뵈었다. 나는 걸림없는 지견을 지닌 이를 뵈었다. 나는 세존을 뵈었다.”
대가섭은 이렇게 깨끗한 마음을 얻고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어지고 바른 생각을 흩지 않고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성문 제자입니다. 오직 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스승이 되어 주시옵소서. 저는 세존의 성문 제자입니다.”
이런 까닭에 논자(論者)들은 게송을 읊었다.
그가 부처님께서 다자(多子)나무 아래 계신 것을 보니
마치 금상(金像)의 광채가 눈부시게 빛나듯 하여
그 마음에 일체지(一切智)를 내어
합장하고 크게 기뻐하며 세존을 향하였네.
그 숲에서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합장하고 세존께 이렇게 아뢰었네.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의 스승이 되어 주소서.
마치 어두운 곳에 등불을 밝히듯이.
그 때 세존께서 가섭에게 이르셨다.
“가섭아, 만약 성문 제자가 이렇게 일심으로 바르게 생각한 뒤에 바로 나의 스승이라고 말하며 이와 같은 마음으로 존중 공양하였는데, 만약 그 스승이라는 자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하고,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런 거짓말로 인하여 이와 같은 존중 공양을 받았으므로 그 사람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깨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섭아, 나는 이제 참으로 알고서 안다고 하며, 참으로 보고서 보았다고 한다. 나는 성문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할 때 인연을 설하나니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며, 개차(開遮:해도 좋은 행위와 금지하는 행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개차뿐만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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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신통도 나타내고 또한 신통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개차도 있으니 개차가 없는 것이 아니다.
또다시 가섭아, 나는 그 때에 인연을 설하고 내지 또한 개차가 있으며 개차가 없는 것도 아니니, 내가 설한 바와 같이 받들어 행하되 어기지 말고 나의 말을 따르라. 만약 이렇게 하면 미래 세상에 길이 스스로 이익을 얻을 것이요 크게 안락해질 것이다. 또다시 가섭아, 너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 가섭아, 네가 만약 이런 행을 배우고자 하거든 범행하는 사람 가운데 하․중․상에게 공경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가섭아, 너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
또다시 가섭아, 너는 그 때에 항상 바른 생각을 일으키되 잠시라도 버리거나 떠나서는 안 된다. 가섭아, 너는 이것을 또 배워야 한다.
또다시 가섭아, 너는 그 때 5음(陰) 가운데 나고 멸하는 상(相)을 관찰해야 하니, 이른바 이것은 색(色)이고, 이것은 색의 생겨남이고, 이것은 색의 멸함이요, 이것은 느낌[受]이요, 이것은 생각[想]이요, 이것은 결합[行]이요, 이것은 식별[識]이고, 이것은 식별의 생겨남이고, 이것은 식별의 멸함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가섭아, 너는 이곳에서 이렇게 배워야 한다.”
장로 마하가섭은 세존의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고 나서 부정하다는 생각을 일으켰으며 언제나 걸식으로 살아갔다. 그리하여 7일이 지나고 8일째가 되자 가르침과 같은 지혜가 일어났다.
세존께서 이렇게 가르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시니, 장로 마하가섭은 세존을 모시며 뒤를 따라갔다. 세존께서 길을 가신 지 오래지 않아 문득 길가의 어느 나무 아래에 멈추어 서셨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자 장로 마하 가섭은 자기가 입고 있던 승가리를 벗어 네 겹으로 접어 땅에 깔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자리는 부처님을 위하여 만들었으니,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어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곧 그 자리에 앉으셨다. 앉고 난 뒤에 부처님께서는 장로 마하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이 승가리는 더할 수 없이 미묘하고 매우 훌륭하며 참으로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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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구나.”
장로 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세존께서 지금 저를 불쌍하게 여기신다면 저의 이 자리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장로 마하가섭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너는 내가 입고 있는 분소의를 가지겠느냐?”
가섭은 대답하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여래께서 입고 계시는 분소의를 갖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장로 마하가섭에게 거친 분소의를 주시고, 마하가섭이 입고 있던 묘한 옷을 받으셨다.
세간의 어떤 사람은 의심을 내어 말했다.
“자못 세존께서는 남을 가엾게 여기시는 까닭에 큰 복덕의 이익을 나타내시려고 부자의 호화로운 것을 먼저 버리시고 굵은 베로 만든 분소의를 받으시는 것이다.”
그 의심하는 이는 이렇게 말해야만 한다.
“마하가섭은 성문의 제자이기 때문에 부처님에게서 거친 분소의를 받았다. 그 장로는 나아가 아라한과를 성취하였으며, 목숨이 다하도록 그 장로 마하가섭은 이 생각을 버리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너희 비구들아, 나의 성문 제자로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아 두타(頭陀)를 행하여 완전하게 다 갖춘 사람은 바로 장로 마하가섭 비구가 그 사람이다’고 수기를 주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또 어느 때 한동안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지난날 모든 탐욕스럽고 악하며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리고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이 있어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들었다. 그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러하여 모든 탐욕스럽고 악하며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리고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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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없애고 안으로 깨끗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으며 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2선(禪)에 들었는데, 이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러하여 또한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없애고 나아가 제2선에 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기쁨을 떠나 담담함을 행하며 바른 지혜를 생각하여 몸의 즐거움을 누렸으며 현성들이 찬탄하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안락에 머무는 제3선(禪)에 들었는데, 이 마하가섭 비구도 그렇게 기쁨을 떠나 담담함을 행하며 바른 지혜를 생각하여 몸의 즐거움을 누리고 현성들이 찬탄한 것같이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안락에 머물러 제3선에 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모든 괴로움을 끊고 모든 즐거움도 버리고자 하여 먼저 근심과 기쁨을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담담한 생각이 청정해져서 제4선(禪)에 들었는데, 이 가섭 비구도 그러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끊어 버리고 먼저 근심과 기쁨을 멸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고 담담한 생각이 청정해져서 제4선에 들었다.
너희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사랑하는 마음[慈心]을 하나의 방위[一方]에 두루 채웠으며 정(定)에 들어 편안히 머물렀는데, 이렇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와 네 번째 방위에까지 그렇게 하였으며, 위와 아래 방위에까지도 그렇게 하여 온 세상 어느 곳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일체에 두루하도록 정에 들어서 편안히 머물렀다. 그리하여 그 마음은 광대하고 한량없었으며 원한도 없었고 해를 끼치려는 마음도 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러
하며 내지 원한도 없고 해를 끼치려는 마음도 내지 않았다. 슬퍼하는 마음[悲心]과 기뻐하는 마음[喜心]도 그러하였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담담한 마음[捨心]을 하나의 방위[一方]에 두루 채웠으며 정(定)에 들어 편안히 머물렀는데, 이렇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와 네 번째 방위에까지 그렇게 하였으며 위와 아래 방위에까지도 그렇게 하여 온 세상 어느 곳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일체에 두루하도록 정에 들어서 편안히 머물렀다. 그리하여 그 마음은 광대하고 한량없었으며 원한도 없었고 해를 끼치려는 마음도 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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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하며 내지 원한도 없고 해를 끼치려는 마음도 내지 않았다.
너희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일체 색상(色相)을 초월하여 일체 유대상(有對相)을 멸하여 일체 별이상(別異相)을 생각하지 않고 가없는 허공처(虛空處:空無邊處)를 생각하여 곧 가없는 허공처의 행에 들어갔는데, 이 때 비구 가섭 또한 그렇게 일체 색상을 초월하고 나아가 가없는 허공처의 행에 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일체 가없는 허공처를 초월하여 가없는 식처(識處:識無邊處)를 생각하여 곧 가없는 식처의 행에 들었는데, 이 때 비구 마하 가섭도 그렇게 가없는 식처의 행에 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일체 식상(識相)을 초월하여 일체 무소유상(無所有相)을 생각하여 아무것도 있지 않은 선정[無所有處定]에 들었는데, 그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렇게 나아가 아무것도 있지 않은 선정에 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일체 무소유상(無所有相)을 초월하여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想)이 없는 것도 아닌 선정[非有想非無想處定]의 행에 들었는데, 그 때 마하가섭도 그렇게 나아가 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이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의 행에 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일체의 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이 없는 것도 아닌 정의 행을 초월하였는데, 이 마하가섭 비구도 그러하였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8해탈행(解脫行)에 들어가 역순으로 드나들었다. 들어갔다가는 나오고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갔는데, 그 때 마하가섭 비구도 나아가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8승처행(勝處行)에 들어가 역순으로 드나들었다. 들어갔다가는 나오고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갔는데, 그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와 같아서 나아가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10일체처행(一切處行)에 들어갔는데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갔다. 이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렇게 하여 나아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갖가지 신통 경계에서 노닐었으니, 이른바 한 몸이 여러 몸으로 나뉘고 여러 몸이 한 몸으로 합쳐지며, 밖에서 안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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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오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며, 위에서 아래로 들어가고 아래에서 위로 나오며, 돌 벽이나 산과 같이 막힌 곳도 뚫고 지나가되 걸림이 없으며, 땅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마치 물에서 하듯 자유롭게 하였으며, 마치 불꽃처럼 나타났다 꺼졌다 하였고, 큰 위덕과 큰 위력이 있는 해와 달까지도 능히 손으로 만지며 몸이 자재로워서 내지 범천(梵天)에 이르렀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이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렇게 갖가지 신통에서 노닐었으니, 한 몸이 많은
몸을 만들고 많은 몸이 한 몸으로 합쳐지며 나아가 몸이 자재로워서 범천에 이르렀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사람의 귀보다 뛰어난 깨끗한 천이(天耳)로 모든 소리를 들었으니, 하늘의 소리나 사람의 소리를 모두 다 알아들었다. 이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와 같아서 사람의 귀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이를 지녔으며, 일체를 모두 다 알아들었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타심지(他心智)로써 다른 중생들이 어떤 마음을 쓰고 있는지를 알았다. 다음과 같은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았으니, 이른바 만약 원하는 마음이면 곧 원하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원함이 없는 마음이면 곧 원함이 없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성내는 마음이면 성내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성냄이 없는 마음이면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면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면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사랑이 있는 마음이면 사랑이 있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사랑이 없는 마음이면 사랑이 없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함이 있는 마음이면 함이 있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함이 없는 마음이면 함이 없는 마음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적은 마음과 넓은 마음, 큰마음과 좁은 마음, 어지러운 마음과 어지럽지 않은 마음, 한량없는 마음, 가없
는 마음, 위 있는 마음, 위없는 마음, 정에 들어가는 마음, 정에 들지 않는 마음, 정에 머무는 마음, 정에 머물지 않는 마음, 해탈하는 마음, 해탈하지 못한 마음 등을 사실 그대로 알았다. 이 때 마하가섭 비구도 그와 같아서 이렇게 타심지로써 중생들이 어떤 마음을 일으키는지를 사실 그대로 알았으니, 원함이 있는 마음이나 원함이 없는 마음 등을 사실 그대로
알았고, 해탈하는 마음이나 해탈하지 못하는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았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갖가지 숙명(宿命)의 일을 알았으니, 한 번 난 곳, 혹은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혹은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쉰 번 혹은 백, 천, 혹은 한 번의 괴겁(壞劫), 한 번의 주겁(住劫), 혹은 무너진 뒤에 머물고 머문 뒤에 무너지며, 혹은 한량없는 괴겁이 이루어진 뒤에 무너지고, 괴겁이 지난 뒤에 이루어지는[成劫] 등의 세월 동안 나는 그곳에서 이런 이름, 이런 성(姓), 이렇게 남[生]과 이렇게
먹는 것과 이런 즐거움, 이런 괴로움, 이런 느낌과 수명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죽고 이곳에 나며, 이곳에서 죽고 저곳에서 나는[生] 이런 상(相), 이런 형상 등의 갖가지 숙명을 다 생각하여 알았다. 이 마하가섭 비구도 또한 그러하여 깨끗한 천안(天眼)이 천상이나 사람보다 뛰어나 숙명의 일을 보았으니, 혹 한 번의 생에서 나아가 이런 상, 이런 형상 등 갖가지 숙명을 모두 다 생각하여 알았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천상의 사람보다 뛰어난 깨끗한 천안(天眼)을 지녀서 모든 중생들이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나며, 혹은 좋거나 추하며 혹은 착한 길에 나거나 악한 길에 나되, 그것은 업보를 따르는 것임을 보았고, 나아가 이들 중생이 몸으로 온갖 악행을 다 짓고, 입으로도 온갖 악행을 다 지으며, 뜻으로도 온갖 악행을 다 짓고, 나아가 다시 성현을 비방하며 그릇된 견해로 뒤바뀌어 이 업이 화합하는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나쁜 갈래[惡道]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또한 어떤 중생들은 몸으로 모든 선행을 다 짓고 입으로도 모든 선행을 다 지으며 뜻으로도 모든 선행을 다 짓고, 나아가 성현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소견을 지녔는데, 그러한 업인(業因)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좋은 갈래[善道]에 나는 이런 일을 실제로 보았다. 천상 사람보다 뛰어난 깨끗한 천안으로 저곳에서 죽고 이곳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뛰어나거나 하천하거나 좋거나 추하거나
그 모든 것이 착한 갈래와 악한 갈래에 대한 업을 따라 과보를 받는 것들임을 모두 다 알고 보았다. 그런데 이 마하가섭 비구도 사실 그대로 그와 같이 잘 알고 잘 보았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그 때 모든 번뇌[漏]가 다하여 누가 없는 가운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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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해탈을 얻고 지혜의 해탈을 얻어 모든 법 가운데 신통이 자재하며 안락행을 증득하고 이렇게 외쳤다.
‘생사는 이미 끊어졌고 범행은 이루어졌으니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여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
이 때 마하가섭 비구도 이렇게 모든 번뇌가 다하여 나아가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뒷 몸[後有]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 때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장로 마하가섭은 지난 과거에 어떤 선업을 지었기에 부귀한 집에 나서 갖추어야 할 온갖 재물을 다 갖추었으며, 나아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몸의 생김새가 단정하고 훌륭하여 그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즐거워졌고, 이 세상에서는 그를 비교할 자가 없고 으뜸가며 또 모습이 금상(金像)과 같은 것입니까? 또 무슨 업의 인연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 가운데서 욕심이 적고 만족한 줄
을 알아 두타행이 제일인 사람은 마하가섭 비구라고 수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비구들아, 내가 아주 먼 옛날을 생각해 보니, 지난 과거에 벽지불이 한 분 계셨는데, 이름을 다가라시기(多伽羅尸棄)라 하였다. 그는 바라나성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 그 바라나성은 흉년이 들어 곡식이 매우 귀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서 천지에 백골이 가득하였다. 그리하여 걸식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으니 출가한 사람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벽지불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바라나성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씻어서 들고 간 발우를 빈 채 그대로 들고 나오던 참이었다. 그 때 바라나성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은 너무나도 가난하였고 쌓아둔 재산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 가난한 사람이 다가라시기 벽지불을 보니, 벽지불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는데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땅을 보고 걸음을 옮기지만 발자국이 어지
럽지 않으며 얼굴을 펴고 반듯하게 보는데 위의를 모두 갖추었고 마음에 정념(正念)을 얻었다. 그는 이 벽지불을 보자 마음이 깨끗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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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벽지불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신 대선(大仙)이시여, 성안에서 음식을 얻으셨습니까?’
벽지불은 대답하였다.
‘착한 그대여, 나는 이 성에서 밥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 가난한 사람은 말하였다.
‘훌륭하신 대선이시여, 그렇다면 저의 집으로 오십시오.’
그 때 그 사람은 집에 한 되 가량의 피밥[稗飯]을 짓고 있었다. 그는 벽지불을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와 자리를 깔고 편히 앉게 한 뒤에 밥을 받들어 올렸다.
모든 벽지불들에게는 항상 다음과 법이 있었으니,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신통력을 부리는 것이지 달리 신통력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이 때 다가라시기 벽지불은 그 사람에게 공양을 받은 뒤 그를 가엾게 여긴 까닭에 그 집에서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그 가난한 사람은 존자 벽지불이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온몸과 마음에 기쁨이 두루 차올라 합장 공경하여 정례하고 이렇게 소원을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장래에 이런 벽지불이나 혹은 더 훌륭한 분을 만나고, 만약 그 성인이 말씀하시는 법문을 들으면 빨리 깨닫기를 바랍니다. 또 세세생생에 악한 갈래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희 비구들아, 그 때 바라나성의 가난한 사람으로서 다가라시기 벽지불을 자기 집으로 청하여 공양을 베푼 사람이 바로 지금의 마하가섭 비구였다.
그 때 집이 가난하여 모아둔 것이 없었는데도 착한 마음으로 다가라시기 벽지불에게 공양을 한 번 베푼 인연으로 천 번이나 북쪽의 울단월에 났고, 한량없는 세상에 항상 찰제리의 큰 가문이나 바라문 종족 또는 가문 좋은 거사(居士) 집안에 태어났으며, 이런 업보 인연을 의지하여 가섭불이 세상에 나셨을 때 가시국왕(迦尸國王) 흘리시(訖利尸)의 아들이 되었다.
그 가시국왕 흘리시의 아들은 한평생 가섭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를 공경 존중하였고, 그 후 가섭여래께서 열반에 드시자 가시국왕은 부처님의 사리를 위해서 7보탑을 조성하였다. 7보란, 금․은․파리․유리․호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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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차거 보배를 말하는데, 그 보배 탑 안에도 7보로 장식하고 밖은 돌을 쌓아서 그 보배 탑을 덮었다. 그 탑은 높고 화려하였으며 높이가 1유순이고 너비는 반 유순이었다. 그 왕의 아들 이름은 사파릉가(奢婆陵伽)[수나라 말로는 반연(攀緣)이라 함]라고 하는데, 그는 탑 위에 7보의 일산을 만들어 탑을 덮었다.
또 어떤 논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탑을 8할 가량 만들었을 때 그는 비구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신발을 보시하고서 이렇게 서원하였다.
‘원하건대 미래세에 이런 성인을 만나고 그 성인의 설법을 들으면 곧 깨닫기 바라오며 또 악한 갈래에 나지 않고 태어날 때는 금빛의 몸을 얻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부왕에게 출가하기를 간청하였으나 그 부왕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자는 부왕이 별세한 뒤에 출가하였으며, 출가하자 경전을 독송하고 선정을 성취하였고, 그 목숨을 마친 뒤에는 항상 천상과 인간계에 나서 오고 가며 한량없는 세상을 두루 거치며 노닐다가 마지막 몸을 받아 이번에 니구타갈파 바라문 집에 태어난 것이다.
그 집은 매우 부유하여 온갖 재물과 보배를 다 갖추고 있었으며 필요한 것은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마하가섭은 가섭 부처님의 사리탑 위에 7보 일산을 만들어 존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한 인연의 힘 덕분에 금빛의 몸을 얻은 것이다. 그 때 ‘나는 악한 갈래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고 소원을 세웠던 인연의 업보로, 그 때부터 악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천상과 인간계에 났으며 한없는 즐거운 과보를 받았다.
그 때 또한 ‘원하건대 나는 장래에 이런 성인을 만나기를 바라며, 만약 만나게 되면 그가 나를 등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보다 더 훌륭한 성인에게서 그의 설법을 들으면 곧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서원을 하였던 업보 인연의 힘으로 이와 같은 나의 교화를 만났으며, 곧 나를 만나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내가 모든 비구 가운데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아는 사람은 곧 이 상좌 마하가섭 비구라고 수기한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이 마하가섭은 지난 옛날에 지었던 공덕 업보의 인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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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말미암아 부유한 바라문 집안에 태어났으며 부족한 것이 없었고 생김새가 단정하고 가장 묘하고 가장 훌륭하여 그 모습이 황금상과 같았고, 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또 내가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아는 으뜸가는 두타 행자가 바로 마하가섭 비구라고 수기한 것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을 지나 세존께서 어느 날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그대는 이미 소년기를 지나 이제 노년에 접어든 지 오래이다. 그러니 그대는 굵은 베로 만든 분소의를 더 이상 입지 말고 버려라. 그리고 지금 나의 가장 좋은 의복을 가져가라. 가섭아, 오라. 이 옷은 장자들이 보시한 것으로 미세하고 가볍고 부드러우며 칼로 재단하고 재봉하여 몸에 맞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청을 받을 때에도 항상 부처 곁에 있고 나를 떠나지 말아라.”
이런 말을 하자 대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랜 세월 아란야(阿蘭若: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지냈으며 항상 아란야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걸식하며 지내 왔고 또 걸식의 공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분소의를 입었으며 또 분소의 공덕을 찬탄합니다. 저는 때 아닌 때에 먹지 않으며 또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먹는 일을 하고 또 한자리에서 먹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한 주먹밥을 받아 양을 줄였으며 또
한 주먹밥을 찬탄하고 양을 줄여 먹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무덤 사이에서 지냈으며 또 무덤 사이에 있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노지(露地)에서 지냈으며 또 노지에서 지내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나무 아래에서 지냈으며 또 나무 아래에서 지내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항상 앉아서 지내고 눕지 않았으며 또한 눕지 않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오직 3의(衣)만을 지녔으며 또한 3의를 갖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았으며 또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고요함을 즐겼으며 고요함을 즐기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이익이 없는 말을 즐기지 않았으며 또 이익이 없는 말을 즐기지 않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항상 정진하며 지냈고 또한 항상 정진하는 법을 찬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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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랜 세월 정념(正念)을 성취하여 왔고 또 정념을 성취하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정정(正定)을 성취하여 왔고 또 정정을 성취하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지혜를 이루어 왔고 또 지혜를 이루는 법을 찬탄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항상 선정(禪定)에 들어 있었으며 또 선정에 드는 법을 찬탄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너는 무슨 이익을 보았기에 오랜 세월 스스로 아란야법을 행하여 왔고 또 아란야법을 찬탄하고, 내지 오랜 세월 스스로 선정에 들고 또한 선정에 드는 법을 찬탄하는가?”
대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두 가지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아란야에 있으면서 또한 아란야를 찬탄하였고, 나아가 오랜 세월 항상 선정에 들고 또한 선정에 드는 것을 찬탄하였다. 두 가지 이익이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저는 이제 안락행 법을 얻은 것이고, 둘째는 미래 세상의 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고 우리들의 행을 배우면서 ‘과거세에 장로 상좌의 성문 비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랜 세월 아란야를
즐기고 아란야행을 찬탄하였고, 나아가 항상 선정에 들고 또 항상 선정에 드는 법을 찬탄하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게 그 행을 배우고, 내지 스스로 선정에 들고 항상 선정에 드는 법을 찬탄하겠는가?’라고 말하기를 저는 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두 가지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아란야법을 행하며 지냈고 또한 아란야를 행하는 것을 찬탄하며, 나아가 항상 선정에 들고 또한 항상 선정에 드는 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가섭에게 이르셨다.
“대가섭아, 그대는 내세에 많은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짓고 큰 안락을 지으며 한량없는 모든 천상과 인간을 평안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이제 네 마음에 드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아란야처)에서 머물도록 하라. 만약 그대가 여래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와서 만나도록 하여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물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장로 마하가섭은 무슨 까닭에 많은 중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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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큰 이익을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여, 이 마하가섭은 이번 생애에서만 많은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은 것이 아니라 과거세에도 많은 사람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제발 그 인연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난 옛날을 생각해 보자니, 과거세에 이 마하가섭은 일찍이 제석천왕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아직 부처님도 세상에 나지 않았고 벽지불 또한 세상에 나지 않았으며, 당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갈래[人道]에서 목숨이 다하면 사람의 몸을 버리고 악한 갈래에 태어나는 자가 많았고, 인간 세상이나 천상에 나는 이들은 적었다. 이렇게 삼십삼천․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범천들도 악한 갈래에 떨어져서 나는 이들이 많았으며, 인간과 천상에 나는 이
들은 적어서 당시 천상계나 인간계는 빈곳이 많았다.”
각주)-----------------
범어로 kundika. 마실 물을 넣어 두는 병을 말하며 수행자가 지니는 물건이다.
각주)-----------------
불본행집경 제47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7. 대가섭인연품 ③
“이 때 제석천왕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염부제에 내려가 저 인간의 몸을 받아 그들을 교화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리라.’
그리고 나서 사천왕을 불러 말하였다.
‘착하다, 그대들이여, 너희들은 이제 나에게 와서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나는 지금 너희들과 함께 인간세계에 태어나서 인간을 교화시킬 것이다. 나는 사자왕의 몸이 될 것이니 너희들은 사자가 되어 그 사자왕을 수호하고 많은 권속들로 하여금 사자왕을 에워싸고 다니게 하라. 이렇게 사자의 몸으로 마을과 성읍을 돌아다닐 때 사람들이 만약 묻기를 (그대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라고 하면 너희들은 그 사람들에게 대답하기를 (우리들에게 따로 100여
명의 사람을 달라)고 하라. 그들이 다시 묻기를 (장부가 필요한가, 어린애가 필요한가, 아니면 여자를 가지겠는가, 남자를 가지겠는가?)라고 하면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여라.
(만약 살생을 많이 한 자가 있거든 이런 사람들을 날마다 100명씩 이 사자에게 먹이로 공급하라. 이와 같이 도둑질하는 사람ㆍ삿된 음욕을 행한 사람ㆍ거짓말을 하는 사람ㆍ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사람ㆍ욕을 하는 사람ㆍ꾸밈말을 하는 사람ㆍ탐욕이 많은 사람ㆍ성내는 마음이 큰 사람ㆍ그릇된 견해를 가진 사람 등 이와 같은 온갖 나쁜 사람을 매일 100명씩 이 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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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로 공급하여라. 만약 전혀 살생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너희들은 먹이로 내어 주어서는 안 된다. 사자는 이런 사람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남의 것을 전혀 훔치지 않은 사람이나 나아가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내어 주지 말아라. 이런 사람들은 사자가 전혀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집집마다 한 사람씩 꼭 출가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제석천왕과 사천왕들은 잘 가르칠 것을 생각하고 난 뒤에 염부제로 내려왔다. 제석천왕은 사자로 몸을 변화하였는데 그 몸의 가로 세로 높이와 너비가 1구로사였으며 사자와 아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권속들도 사자의 뒤에서 사자왕을 위하여 먹을 것을 찾아다녔으니 앞서 제석천왕이 시킨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때 그 모든 중생들은 사자를 무서워하여 마음으로 살생을 뉘우치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으며 또한 삿된 음욕에 빠진 일이 없었고 나아가 그릇된 견해를 지닌 마음도 없이 모두 다 10선업(善業)을 완전하게 갖추어서 닦았으며 집집마다 한 사람씩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네 가지 범행(梵行)을 행한 뒤에 목숨을 마치고는 범천궁에 났는데 그 중생들 가운데 다만 10선업만을 행하고 출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많이 인간세상과 천상에 태어나서 흘러 다녔
다.
그 때 마하가섭은 이런 방편으로 많은 중생들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었으며 이러한 과거 인연의 힘 덕분에 지금도 역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짓는 것이다. 비구들아, 이 마하가섭 비구는 저 미래세에 미륵 세존께서 가르침을 펼치실 때에도 또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을 것이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마하가섭은 거기서 어떤 이익을 짓게 됩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비구들아, 이 마하가섭은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나의 법과 계율을 보호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게 하며 장차 법의 모임을 만들 것이요, 장차 수명이 다하고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산 사이에 들어가 신통력으로 그 몸을 머물게 하면서 이런 서원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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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옵건대 나의 이 몸이 흩어지거나 무너지지 말고 나아가 미륵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서 출현하셔서 나의 몸을 보게 하소서.’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드디어 목숨을 버리고 무여열반에 들어갈 것이며 그가 열반한 뒤에는 두 산이 도로 합쳐질 것이다.
그 후 미륵불이 아뇩다라삼먁삼불타를 얻을 때에 널리 법의 가르침을 펼칠 것이니 그 시절에 미륵 세존께서 이 대가섭의 사리를 생각할 것이다. 그는 생각하고 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 비구들이여, 석가모니 다타아가도ㆍ삼먁삼불타의 성문제자로서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아는 두타행(頭陀行)이 으뜸이었던 마하가섭을 보고자 하는가?’
그 비구들은 대답한다.
‘예,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기꺼이 보고 싶습니다.’
이 때 미륵 여래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한량없는 수천의 무리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그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 이르면 두 산이 문득 갈라질 것이며 그 때에 미륵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대가섭 비구의 사리가 흩어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은 채 승가리를 입은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고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할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바로 석가모니 다타아가도ㆍ삼먁삼불타의 성문제자로 두타행이 으뜸이었던 대가섭이다.’
이 때 미륵 다타아가도ㆍ삼먁삼불타는 그곳에서 모든 비구들에게 그 법을 설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가섭 비구는 행한 것이 이러하였고 나는 이렇게 가르치니 너희들은 이제 가섭 비구가 행하였던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그 때 그 대중 가운데 수천의 비구들은 이런 법에 의지하고 이런 법을 행하여 마하가섭 비구가 행하던 것과 같이 할 것이며 그 대중 가운데 한량없는 수천의 무리들이 그 법 가운데서 깨끗한 법의 눈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런 차례로 이 대가섭 비구는 오는 세상에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내 이제 너희들에게 대가섭 비구를 배우기를 권한다. 너희들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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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 비구와 같이 행하기를 원한다.”
48. 발타라부부인연품(跋陀羅夫婦因緣品)
그 때 가섭의 아내 발타라가비리야(跋陀羅迦卑梨耶)는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결국 외도(外道) 파리바사가(波離婆闍迦)에게 나아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정근하고 닦아 익혀 그 법을 성취하고 4선을 얻고 5신통을 모두 갖추어서 그의 법 가운데서 큰 명예를 얻고 위력을 성취하였다.
당시 세존께서는 이미 여인들에게도 승가의 문을 열어 출가를 허락하신 뒤였고, 이 때는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와 5백 명의 석가족 여자들은 모두 다 출가하여 불법을 빛내고 비구니 승단을 세웠던 때였다.
이 때 장로 대가섭은 생각하였다.
‘나는 지난 날 발타라가비리야에게 좋은 스승을 찾으면 반드시 알려 주어서 그를 출가시켜 도를 배우게 하리라고 약속하였다. 그 발타라가비리야는 지금 어느 곳에 있을까?’
문득 정(定)에 들어 인간의 눈보다 뛰어난 깨끗한 하늘눈으로 보니, 그녀는 외도에게 출가하여 도를 배우며 항하(恒河) 언덕에서 외도행을 닦고 있었다.
보고 나서 곧 신통을 얻은 비구니 한 사람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착한 누이여, 저 발타라가비리야 여인이 파리바사가 외도에게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지금 항하 언덕에 있는데 그대가 만약 때를 안다면 그곳으로 가서 ‘착한 자매여, 당신의 남편 가섭은 나와 같은 스승 밑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있으니 당신은 지금 그곳으로 가서 우리 스승께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범행을 수행합시다’라고 사실 그대로 말해 주시오.”
그 신통을 얻은 비구니는 장로 마하가섭의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마치 장사(壯士)가 팔을 굽혔다 펴는 듯한 짧은 사이에 바람처럼 빨리 사위성에서 그 몸을 숨기고 그 발타라가비리야 파리바사가 외도 여인의 앞에 이르러 몸을 나타내고 한쪽에 머물러 섰다. 그 비구니는 여인을 위문한 뒤에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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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매여,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당신의 남편 가섭은 나와 같은 스승 밑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범행을 닦고 있습니다. 당신도 이제 그곳에 나아가 우리 스승 밑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범행을 닦읍시다.”
그러자 발타라가비리야 여인이 그 비구니에게 물었다.
“착하신 자매여, 당신들 스승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비구니는 여인에게 대답하였다.
“착하신 자매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특징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여든 가지 세밀한 모습과 18불공불법(不共佛法)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를 모두 갖추셨으며, 대자대비하시고 끝없는 계(戒)를 완전히 갖추었고 끝없는 정(定)과 끝없는 지혜[慧]와 끝없는 해탈과 끝없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큰 스승의 일체 성문제자들도 또한 다시 그러하여 계ㆍ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 비구니가 발타라가비리야 여인 앞에서 이렇게 부처님의 공덕과 성문제자들을 찬탄하자 그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은 그 말을 듣고 부처님과 비구승에 대하여 마음의 청정함을 얻었다. 청정함을 얻고 나서 그 비구니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자매여, 그와 같다면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그 때 비구니는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자매여, 그러면 나의 신통을 타고 함께 갑시다.”
그러자 발타라 여인은 비구니에게 대답하였다.
“착하신 자매여, 저에게도 신통이 있습니다.”
그 때 그 비구니와 발타라가비리야 여인은 그곳에서 떠나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처럼 짧은 순간에 항하에서 몸을 숨겨 기타림(祗陀林) 한가운데에 문득 나타났다. 그리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이 세존을 멀리서 우러러보니 단정하고 엄숙하며 아름답고 미묘하며 나아가 허공에 뭇별이 장엄한 듯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나자 마음이 청정함을 얻어 곧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며 부처님께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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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출가를 허락하시며 구족계를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장로 아난아, 이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을 데리고 마하파사파제 교담미에게 맡기면서 이렇게 하도록 가르침을 주어라.
‘이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어라. 이 여인은 장차 신통을 모두 갖추고 위력을 겸비하게 될 것이다.’”
장로 아난은 부처님의 명령을 받들어 곧 아뢰었다.
“세존의 가르침대로 하여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난은 마하파사파제 교담미 비구니가 있는 곳으로 그 여인을 데리고 가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였다.
그 때 마하파사파제 교담미 비구니는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을 제도하여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었다.
그는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텅 비고 한가로운 곳에 가서 홀로 편안하고 고요하게 모든 번뇌를 멀리 떠나고 부지런히 정진 고행하고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사유하면서 머물렀다.
그 때 발타라가비리야 외도 여인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나아가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고 생각하고 머무른 지 오래지 않아서 저들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위없는 범행을 구하며 현재에 진리를 보게 되고 스스로 신통을 얻어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하고 안락하게 머물러 스스로 ‘생사는 이미 끊어졌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하여 다시는 후유(後有)를 받지 않으리라’고 외치게 되었다.
이 장로 비구니는 이것을 보고 알아 마침내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세존께서 또한 수기를 주어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숙명(宿命)을 아는 성문 비구니들 가운데 이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가 으뜸가는 자이다.”
모든 비구니들이 묻는 것을 그는 다 알아 수기하였다.
그 때 비구니 대중들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들 찬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는 참으로 신기하고도 신기하구나. 비구니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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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가운데 많은 이들은 오래 전부터 출가하여 범행을 닦아 왔지만 이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만큼 빠른 신통을 얻지 못하였다.”
이 때 그 비구니들은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자 의혹을 끊고 모든 참뜻을 깨달은 여래에게 나아갔다. 그들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는 지난 과거세에 어떤 선근을 지었기에 이번 생에 대부호의 집에 나서 재물이 풍족하고 나아가 모자란 것이 전혀 없으며, 생김새가 단정하여 여러 사람이 즐겨보고 보는 이가 싫어하지 않게 되었으며,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모든 상호를 갖추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또 무슨 인연으로 출가하여 모든 계행을 고루 갖추게 되었으며 신통을 빨리 얻어 부처님께서 ‘모든 성문 비구니 제자들 가운데서 숙명을 아는 자로는 이 발타라
가비리야 비구니가 으뜸이다’라고 수기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니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비구니들아,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 과거세에 파라나성(波羅㮈城) 안에 친구인 여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대부호인 장자의 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 있는 가문인 바라문의 딸이었다.
어느 날 그 바라문의 딸이 그 부호 장자의 딸을 만나러 그의 집으로 갔다. 마침 그 때 가섭 여래 다타아가도ㆍ삼먁삼불타도 그 장자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대부호인 장자의 딸은 가섭 여래가 자기 집에 오는 것을 보고 문득 집에서 나와 영접하였으나 그 바라문의 딸은 기꺼이 맞이하러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 장자의 딸이 바라문의 딸에게 말하였다.
‘착한 자매여, 그대는 어찌하여 세존을 맞이하지 않습니까?’
바라문의 딸이 대답하였다.
‘착한 자매여, 나는 지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며 지금 부처님께 어떤 일로 마음껏 맞이하겠습니까?’
그러자 장자의 딸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였다.
‘착한 자매여, 그대는 그저 부처님을 맞이하기만 하십시오. 여래께서는 반드시 들어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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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바라문의 딸은 드디어 일산을 하나 만들어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그 위를 덮은 뒤에 다시 온갖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사방에서 흩어 내려뜨렸다.
이 때 가섭 여래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아침이 되어 해가 동쪽에서 솟을 때에 그 여인들을 불쌍하게 여기신 까닭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그 대부호인 장자의 딸 집으로 나아갔다.
바라문의 딸은 그 보배 일산을 가지고 나와 가섭 여래 아라하ㆍ삼먁삼불타에게 받들어 올리고 나서 다시 게송을 읊었다.
온갖 보배로 꾸민 일산에 자루는 금이요
미묘한 천과 꽃을 위에 덮어서
대장부이신 거룩하신 분께 받들어 올립니다.
세존께서는 가엾게 여기셔서 받아주소서.
그러자 가섭 여래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그 여인을 가엾게 여긴 까닭에 그 보배 일산을 받았다.
너희 비구니들은 의심을 내지 말아라. 그 때에 보배일산을 보시한 여인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바로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의 몸이었다.
모든 비구니들아, 또 다른 인연이 있으니 내가 지나간 옛날을 생각하건대 과거세에 이 파라나성에 대부호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장자는 계집 종 하나를 부리고 있었다.
당시 또한 벽지불이 파라나성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벽지불은 아침이 되어 해가 동쪽에서 돋을 무렵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걸식을 하고자 그 장자의 집으로 다가왔다.
그 때 계집종은 벽지불이 차츰 다가오는데 그 반듯한 몸가짐은 조용하고 걸음걸이가 법도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은 마음에 청정함을 얻었다. 청정함을 얻고 나서 서둘러 집에 들어가 장자의 부인에게로 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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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십니다. 성스러운 부인이시여, 비구 한 분이 와서 문전에서 밥을 빕니다.’
그때 장자의 부인은 앉아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쥐고서 멀리 그 벽지불을 보았다. 그런데 그 벽지불은 생김새가 추하고 몸이 반듯하거나 곧지 않았으므로 장자의 부인은 이런 모습을 보고 나서 곧 계집종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렇게 추하고 바르지 않은 사람은 반갑지 않다. 그런데 하물며 내가 밥을 주겠느냐?’
그러자 계집종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십니다. 성스러운 부인이시여, 그저 이 선인에게 음식을 주기만 하소서. 이런 사람이 어찌 반드시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그 마음의 어짊을 취하기만 하소서.’
장자의 부인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정말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음식을 보시하라 하느냐?’
계집종은 또 말하였다.
‘성스러운 부인께서 지금 이 선인에게 기꺼이 음식을 주고 싶지 않으시면 저에게 하루치 먹을 것을 주십시오. 제가 돌려서 베풀겠습니다.’
장자의 부인은 대답하였다.
‘잘하는 일이다, 얘야. 너는 우리 집 하인의 신분이니 너의 것을 찾아 마음대로 주어라.’
그러자 계집종은 장자 부인에게 자기 것을 받아 존자 벽지불에게 받들어 올렸다.
모든 벽지불에게는 이런 법이 있으니 신통력으로 중생을 교화할 뿐 다른 법으로는 하지 않는다. 그 벽지불은 계집종을 가엾게 여긴 까닭에 그가 받드는 음식을 받고 곧 그 앞에서 허공을 날아 가버렸다.
계집종은 벽지불이 신통력으로 허공을 날아 올라 가는 모습을 보고 커다란 기쁨에 마음이 뛰놀며 심신이 즐거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합장하고 멀리 그 존자 벽지불에게 정례하고 이런 서원을 소리내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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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건대 저는 미래세에 이런 훌륭한 스승이나 혹 나은 분을 만나며 그의 말씀하는 법을 따라 빨리 깨닫고 세세생생에 악도에 떨어지지 말며 생김새가 추하거나 몸이 바르지 못한 이런 선인(仙人)이 되지 않기 바랍니다. 왜냐 하면 생김새가 추하면 걸식할 때에 음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느 때 어느 곳에 태어나더라도 언제나 단정하고 어여쁘며 모든 사람이 즐거이 보게 하소서.’
그 때 그 장자의 부인은 존자 벽지불이 하늘의 신통을 내어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보고 계집종에게 말하였다.
‘착한 자매여, 너의 그 공덕을 나에게 주면 나는 너에게 갑절의 급료를 주겠다.’
그러자 계집종은 장자 부인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부인이시여, 저는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장자의 부인은 다시 말하였다.
‘착한 자매여, 제발 너의 이런 공덕을 나에게 주면 나는 너에게 두 갑절의 급료를 주겠다.’
그 여인이 역시 줄 수 없다고 대답하자 이렇게 세 배ㆍ네 배ㆍ다섯 배ㆍ열 배ㆍ스무 배ㆍ서른 배ㆍ마흔 배ㆍ쉰 배의 급료를 주겠다 하였지만 역시 계집종은 모두 다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 장자의 부인은 다시 그 계집종에게 말하였다.
‘착한 동생아. 네가 지금 나에게 이런 공덕을 준다면 나는 너에게 백 배의 급료를 주겠다.’
계집종은 역시 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자의 부인은 곧 크게 화를 내고 원망하면서 꾸짖었다.
‘너는 어째서 내 명령을 어기느냐?’
그리고는 그 계집종을 잡아서 묶더니 매를 때리며 괴롭혔다. 그러자 계집종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마침 그 때 장자가 밖에서 들어오다가 계집종이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너는 왜 이렇게 울고 있느냐?’
계집종이 장자에게 앞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장자는 크게 화를 내며 부인을 탓하다가 곧 자기 부인을 불러 의복과 온갖 영락을 벗기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집안 살림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어찌하여 사문이나 바라문이 내 집에 와서 걸식하는데도 주지 않았소?’
그러더니 이러한 이유를 들어서 부인을 좁고 누추한 방으로 내쫓은 뒤에 곧 그 계집종을 불러 목욕을 시키고 부인의 모든 영락과 의복을 다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창고 문을 열고 재물과 보배들을 보여 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 돈과 재물 가운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와서 구걸하거든 달라는 대로 베풀어주고 제한하지 마시오.’
너희 비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때 장자의 집에서 부리던 계집종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의심을 내지 말아라. 지금의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때 그 여인은 벽지불에게 청정한 마음을 낸 까닭에 그 목숨이 다하자 도리천에 태어나 단정하고 어여쁘며 모든 사람이 그녀를 보면 마음이 즐거워졌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워 도리 천궁의 옥녀(玉女)들 가운데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한편 그 천상에는 네 명의 천자(天子)가 있어 각각 그 옥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다툼을 벌였다.
‘이 옥녀를 내 아내로 삼겠다.’
그러자 제석천왕은 네 명의 천자들이 제각기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보고 영을 내려서 이렇게 제안을 하였다.
‘그대들이 한결같이 이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싶어하니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은 각자 게송을 읊어 보아라. 가장 훌륭한 게송을 읊은 자에게 이 여자를 주겠다.’
그러자 네 명의 천자는 제석천왕에게 아뢰었다.
‘착하십니다. 천왕이시여, 저희들은 천왕님 앞에서 게송을 읊겠습니다.’
그 때 제석천왕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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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거나 앉아서도 언제나 생각하고
자리에 누워서도 언제나 즐겁지 않네.
나는 잠잘 때에만
곧 마음이 놓인다네.
그러자 그 네 명의 천자 가운데 첫 번째 천자가 게송을 읊었다.
천왕이여, 당신은 쾌락하여서
잠자면 편안함을 얻는다지만
마치 싸움의 북소리 같이
항상 나를 어지럽힙니다.
두 번째 천자가 게송을 읊었다.
전쟁터에서 치는 북소리라면
이 소리는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지만
귀 가까이에서 우유 통을 흔들 듯
나를 쉬지 않고 뒤흔들고 있네.
세 번째 천자도 게송을 읊었다.
우유통을 흔드는 것도 이따금
급하거나 빠른 때가 있지만
나는 애욕에 어지럽혀지니
그 모습이 마치 아지랑이 같네.
네 번째 천자도 게송을 읊었다.
그대들은 모두 안락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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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좋게 게송을 잘도 읊는구려.
나는 지금 내 자신이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알지 못하오.
그 때 제석천왕은 네 번째 천자가 그 마음이 애욕에 탐착해 있음을 알고서 곧 게송을 읊었다.
이 사람은 목숨을 버리고자 하니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어쩌면 하늘의 즐거움을 버릴지도 모르니
서둘러 이 여인을 주어야겠다.
그리하여 그 하늘 대중들은 다시 논의를 하고 나서 마침내 그 여인을 네 번째 천자에게 주었다.
그 여인은 이때부터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두루 돌아 천상과 인간을 오가다가 한량없는 생을 지나 최후의 생에 가비라 바라문 집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그에게는 재물과 보배가 한량없이 많았다.
이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는 지난 옛날 그 큰 바라문 집의 딸로 태어났을 때 가섭 여래 삼먁삼불타에게 보배 일산을 보시하고, 또 지난 옛날 장자의 집에서 계집종으로 있을 때 존자 벽지불에게 한 그릇의 밥을 보시한 인연으로 서원을 세워서 ‘원컨대 내가 태어날 때마다 단정하고 어여뻐 모든 사람들이 보면 누구나 기뻐하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이런 업보 인연의 힘으로 나는 곳마다 아름답고 단정하여 모든 사람들이 보면 즐거워하였고 가장 훌륭하고 가
장 묘하여 사람들이 사모하는 바 되었으며, 그 때 또다시 ‘나는 미래세에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발원을 한 업보 인연으로 나는 곳마다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을 오가면서 항상 쾌락을 누려왔다.
또 그 때에 거듭 ‘나는 미래세에 이 같은 스승이나 혹은 이보다 나은 분을 만나 그에게서 법을 듣고서 모두 깨닫게 하소서’라고 발원한 업보 인연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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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제 나를 만나 출가하게 되었으며 구족계를 받아 빨리 신통을 성취하였으며 나는 ‘모든 성문 비구니 제자들 가운데서 숙명통을 얻기로 으뜸인 사람은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이다’라고 수기한 것이다.
모든 비구니들이여, 이 발타라가비리야는 옛적에 선근을 심어 그 선근 인연의 힘으로 금세에 대부호의 바라문집에 태어났으며 단정하고 아름답고 나아가 나의 성문 비구니 제자들 가운데서 숙명을 아는 자로는 으뜸가는 이가 된 것이다.”
이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드문 일입니다. 바가바시여, 이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는 장로 마하가섭을 따라 출가하고 난 뒤에 출가의 법을 아주 잘 따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 발타가비리야 비구니는 이번 생에서만 마하가섭을 따라 출가한 것이 아니라 과거세에도 또한 그렇게 그를 따라 출가하였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어떤 일인지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에 너무나도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가난한 사람의 부인이 남편의 점심밥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가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존자 벽지불 한 사람이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맺고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르게 하여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 가난한 사람의 아내는 벽지불을 보자 마음이 깨끗해져서 합장하고 그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남편은 밭에 있다가 멀리 자신의 아내가 집에서 나와 시냇가 아래로 들어갔는데 건너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대체 누가 저 곳에 있으며 누구와 함께 있기에 어서 오지 않는 것인가. 지금 나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 몹시 피곤하다. 아내가 빨리 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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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마침내 남편은 곧 크게 화가 나서 불쾌해지기 이를 데 없어지자 지팡이를 들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 이르자 조용히 선정에 들어앉아 있는 벽지불을 발견하고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아내는 지금 저 사문과 함께 간통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자 그 사람은 몹시 화가 나서 지팡이로 그 파사술타 존자 벽지불을 내려쳤다. 그 순간 벽지불은 문득 신통력으로 강 언덕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때 아내는 곧 남편에게 말하였다.
‘이제 당신은 이렇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선인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어쩌자고 함부로 행패를 부렸습니까? 이 대선은 계덕(戒德)을 모두 갖추었고 미묘한 법을 행하였으며 큰 위덕이 있고 큰 신통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벽지불을 때리고 난 뒤에 이내 크게 뉘우쳤다. 그리고 나서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여보, 이제 나와 함께 출가하여 범행을 닦읍시다. 왜냐 하면 나는 이제 이런 큰 죄를 지었으니 가히 작은 인연으로는 그 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아내는 남편에게 대답하였다.
‘착하여라 성자여, 당신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버리고 출가합시다.’
그 때 그 두 사람은 한 마음으로 함께 출가하였다. 이미 출가하고 나서 두 사람은 수행하여 자심(慈心)을 성취하고 목숨이 다한 뒤에 마침내 범천에 태어났다.
너희 비구들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옛날에 이렇게 가난한 사람으로 밭 농사를 일구던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는 바로 마하가섭 비구였다. 그 때 그 가난한 사람의 아내로서 벽지불을 공양하고 남편을 위하여 밥을 가지고 가다가 내지 자심을 성취하였으며 목숨을 다하고 범천궁에 났던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바로 발타라가비리야 비구니였다. 그 때에 남편을 따라 출가한 인연으로 지금에도 또한 마하가섭을 따라 출가하였으며 가르침을 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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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사리목련인연품(舍利目連因緣品) ①
그 때 마하타(摩訶陀) 취락과 왕사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라타(那羅陀)라는 촌락이 있고, 그 촌락에는 아주 부유한 큰 바라문이 살고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단냥야나(檀孃耶那)[수나라 말로는 길지(吉至)라고 함]라 하였다.
또 어떤 논사는 그 바라문의 이름은 단나달다(檀那達多)[수나라 말로는 재여(財與)라고 함]라고 하였는데 아주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매우 많았으며 그 집은 비사문 천궁과 아주 똑같았다고 말하였다.
그 바라문에게 아들 여덟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우바저사(優婆坻沙)였고, 둘째 아들은 대슬(大膝), 셋째 아들은 순타(純陀), 넷째 아들은 강차힐리발다(姜叉頡唎拔多), 다섯째 아들은 천타(闡陀), 여섯째 아들은 염부하가(閻浮呵迦), 일곱째 아들은 교진니(憍陳尼), 여덟째 아들은 소달리사나(蘇達離舍那)라는 이름이었다. 또 딸도 한 명 있었는데 딸의 이름은 소시미가(蘇尸彌迦)라고 하였으며 이 딸은 저 파리파사 외도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마하승기(摩訶僧祇) 논사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그 바라문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으니 첫째 아들의 이름은 달마(達摩), 둘째 아들은 소달마(蘇達摩), 셋째 아들은 우파달마(優波達摩), 넷째 아들은 저사(坻沙), 다섯째 아들은 우바저사(優波坻沙), 여섯째 아들은 힐리발다(頡唎拔多), 일곱째 아들은 우파파리발다(優波波離拔多)였다.
이 우바저사 동자가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났는데 잘 배우고 익혔으며 다른 사람도 잘 가르쳤다. 그는 4베다에서 깨닫지 못한 부분이 없었으며 아주 잘 외우고 익혔고 잘 해석하였으며, 그 밖의 모든 논(論), 이른바 니건타(尼健陀), 계주파(雞晝婆) 등과 그 명자(名字)를 낱낱이 해석하였고, 지난 세상의 일에도 밝아 능숙하게 분별하였으며, 5명(明)에 대해서도 통하여 걸림이 없었고, 예언을 내리는 논[授記別論]도 익혀 마음에 새겨 두었고, 64가지
기술에 모두 다 능숙하게 숙달하였고 대장부의 특징도 환히 통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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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자는 본성이 부드럽고 그 마음이 어질고 곧으며 항상 자비를 품고 깊이 세상사를 싫어하였으며 과거의 죄를 뉘우쳤다. 이미 과거에 모든 부처님을 많이 만나 온갖 선의 근본을 심고 모든 일을 성취하여 아주 잘 닦고 익혀왔으며, 항상 부지런함을 즐기고 먹는 데 족함을 알며 번뇌를 등지고 열반을 향하여 이치를 따르고 걸림이 없으며 모든 유(有)를 싫어하고 모든 행을 성취하였으며, 번뇌가 부서지고 무너져 잘 무르익은 경지에 이르렀고 오직 한 번의 태
어남만을 남겨두었으며 총명하고 교묘하여 세심히 생각하고 모든 법을 밝히 알았다. 그리하여 동자의 부모는 집안 일을 해나갈 때면 항상 이 동자에게 일일이 물어서 일을 처리하였다.
이 때 왕사대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 하나가 있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구리가(拘離迦)라 하였다. 그 마을 안에 아주 큰 가문의 바라문 거사가 살고 있었는데 이 큰 거사는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로서 재산이 넉넉하였고 나아가 그 집은 마치 비사문천궁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바라문에게 아들이 하나 있으니 이름을 구리다(拘離多)라 하였다. 용모가 단정하여 여러 사람이 보면 누구나 좋아하였고, 모든 글과 논에 환히 통달하였고 또 남에
게도 가르쳤으며 나아가 장부의 특징을 환히 알았던 그는 앞서의 우바저사 동자와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생각하여 항상 기쁨을 품고 얼굴이 화평하고 즐거웠으며 만약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큰 근심과 걱정이 생겼으니 그들은 지난 옛적 천생(千生) 중에서 사랑으로 서로 얽혀 왔다. 이런 게송이 있다.
숙세(宿世)의 인과를 서로 익혀서
두 마음이 거듭 서로 친했고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 까닭에
마치 연꽃이 물에서 나듯 하네.
우바저사와 구리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여
만약 잠시라도 만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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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답답해 괴로워하였네.
불본행집경 제48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49. 사리목련인연품 ②
이 때 왕사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리거하(祇離渠呵)라는 산이 하나 있었다. 이 산에서는 항상 어느 때에 대회(大會)를 베풀었기에, 그 모임의 이름도 기리거하라 하였다.
또 리사기리(離師祇離)라는 산이 있었는데 이 산에서도 리사기리라는 이름의 대회를 항상 베풀었고, 또 배가라(倍呵羅)라는 산이 있었고, 반도산(般塗山), 비부라산(毘富羅山)이 있었는데, 이들 산에서도 각각 대회가 베풀어 졌으며 그 모임의 이름도 산의 이름과 똑같았다.
이렇게 저 기리거하산에서는 계절을 따라 대회가 마련되는데 그 대회 장소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때로는 한량없는 수천 수만 명 내지 수억 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그들은 코끼리와 말 등의 온갖 수레들에 올라타거나 또는 걸어서 그 대회를 구경하려고 사방팔방에서 몰려왔다. 그 왕사성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그곳에 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때에 왕사성 나라타촌에서 구리가 마을까지는 반 유순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때 우바저사 동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기리거하에 가서 대회를 구경해야겠다. 그곳에 가면 나는 한 가지를 얻게 될 것이니 그것은 곧 싫어하여 떠나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우바저사 동자는 코끼리 네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나라타 마을을 나와 기리거하 대회를 구경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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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구리다 동자도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기리거하에 가서 대회를 구경해야겠다. 그곳에 가면 나는 한 가지를 얻게 될 것이니 그것은 곧 싫어하여 떠나려는 마음이다.’
그도 코끼리 등에 타고 점점 나아갔다. 이 동자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구리가 마을을 나와 기리거하 대회가 준비된 장소에 닿았으니 그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 그 두 사람은 얼굴이 단정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어떤 놀이와 예능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어 대중의 우두머리가 되기에 충분하였으므로 그 대회장에 마련된 여러 높은 자리에 각각 앉았다.
그 때 우바저사 동자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면서 음악을 울리며 노래하거나 춤도 추는 등 유쾌하게 놀면서 쾌락을 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자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 신기하고 이상하구나. 지금의 이 사람들은 여기 괴롭고 어지러우며 더럽고 탁한 가운데 늙고 저무는 번뇌가 있는 곳에서 즐거움을 누리면서 게으름을 핀다. 이와 같은 병의 더러움 속에는 어떠한 편안함도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죽음의 티끌에서 목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대중들은 즐겁다는 생각을 일으키면서 게으르고 제멋대로 굴며 갖가지 춤과 노래에 빠지고 온갖 음악들을 만들어내면서 갖은 오락과 쾌락을 누리고 있구나.’
우바저사는 대중들을 지켜보고 난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백년이 지난 뒤에는 이 대중들 가운데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곧 회한이 일어나고 즐거운 생각이 사라졌으며 그는 이내 훌륭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그 대회장을 떠났다. 그리하여 조용한 숲의 어느 나무 한 그루 아래로 가더니 절망에 사로잡힌 채 앉아 모든 감각기관을 닫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침 그 대회에서 어떤 광대 하나가 재주를 피우면서 대중들을 즐겁게 하였다. 구리다 동자는 대중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이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 대중들은 백년이 지나면 저 웃는 턱과 광대뼈를 다시 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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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자 커다란 근심과 괴로움이 일어나고 즐거운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우바저사 동자를 찾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바저사 동자는 지금 어디 있을까?’
사방을 두루 찾다가 멀리 우바저사 동자가 어느 숲의 나무 아래에서 편안히 앉아 사유하는데 그 마음이 즐겁지 않은 채 모든 감각기관을 닫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을 보았다. 그는 친구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슨 까닭에 기쁘지 않는 마음으로 이곳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가? 그대는 지금 좋지 못한 일이나 괴로운 지경에 빠져 있기라도 하는가?”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북이며 거문고 등의 음악 소리와
남자와 여자들의 노래 소리
분명 이런 고운 소리 들었을 텐데
어찌 즐거워하지 않는가.
그대는 즐거워해야 한다.
근심과 걱정은 품지 말아라.
지금은 쾌락을 누릴 시간이니
회한이나 근심에 잠겨서는 안 된다.
그저 이 음악 소리 듣고 있자면
천상의 고운 여인들이 울리는 것 같고
이 모임도 하늘의 모임 같은데
어찌 기뻐하는 마음이 없는가.
그러자 우바저사 동자는 구리다 동자에게 말하였다.
“벗이여, 그대는 이 대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았는가? 온갖 음악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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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춤과 노래로 한없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만 이 대회에 모인 대중들은 백 년이 지나고 나면 한 사람도 살아남아 있지 않으리라.”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모든 사람들은 사랑스런 대상을 탐하지만
이런 대상들은 능히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리라.
모든 사물은 영원토록 가는 것이 없는데
어리석은 무리들 무엇을 즐기는가.
이 모든 중생들은
5욕락에 물든 마음으로
오래지 않아 지옥에 떨어지고
목숨이 다하면 재와 흙이 되리라.
나는 지금 마음에 조금도 기쁘지 않고
두려움과 근심 걱정만 더해가네.
그대들은 음악이 즐거울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엔 법을 즐기는 마음뿐이네.
천상ㆍ인간과 아수라ㆍ긴나라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쾌락을 누려도
싫어 버리지 못한 채 문득 목숨을 마치네.
그러므로 나는 진리를 닦으려 하네.
그 때 구리다 동자가 우바저사 동자에게 말하였다.
“우바저사여, 내 마음도 그러하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괴롭고 즐거움을 서로 함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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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기쁨도 또한 같으니
지혜 있는 이 찬탄한 것 같이
이제 나 또한 그대와 같노라.
그대의 마음에 좋아하는 것은
내 마음도 또한 따라가거늘
차라리 그대와 함께 죽을지언정
살아서 그대와 헤어질 수 없노라.
구리다 동자는 우바저사 동자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좋을까?”
우바저사 동자가 대답하였다.
“그대도 만약 그런 마음이라면 우리 함께 출가하여서 훌륭한 감로(甘露)의 법을 구하자.”
구리다 동자가 답하였다.
“그대가 뜻하고 있는 일이 있으면 나 또한 그대를 기꺼이 따르겠다. 우바저사여, 우리들은 이미 집을 버렸으니 마땅히 여기서 떠나 출가를 구하자.”
그 때 우바저사가 구리다 동자에게 말하였다.
“그대 구리다여, 응당 때를 알라. 지금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라서 만약 집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를 출가시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이 만류시킬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두 동자는 그 대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우바저사가 부모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청하였다.
“훌륭하신 아버님 어머님이시여, 저는 이제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제발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모는 함께 의논하였다.
“이제 우리 집안의 후사를 누가 이을 것이며, 이 모든 재산은 누가 주인이 되어 거느릴 것인가. 우리가 이토록 이 아이를 사랑하고 생각하는데 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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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리를 버리고 도를 구하기 위해 출가하려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 아이와 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서로 의논하고 난 뒤에 아들 우바저사에게 말하였다.
“우바저사야, 지금 우리에게는 자식이 여러 명 있지만 너를 특히 사랑하였다. 그래서 잠시라도 너를 보지 못하면 말할 수 없는 걱정과 근심이 생겨났다. 우리에게 즐거움이라고는 오직 언제나 너를 지켜보는 것이니 우리는 너를 떠나보낼 수 없다. 그리고 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생한 적이 없다. 우리는 죽어서도 너와 헤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물며 살아 있으면서 너와 헤어질 수 있겠느냐. 절대로 너의 출가를 허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바저사가 이렇게 두 번 세 번 청하였지만 부모는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세 번씩 청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자 마침내 우바저사 동자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이렇게 7일을 보내자 그의 모든 친척과 친지들이 다함께 몰려와서 그의 부모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성자여, 우바저사의 출가를 허락하십시오. 그가 만약 집을 떠나 출가하여 도를 구한다면 살 길이 열려서 목숨은 부지할 것인데 당신들은 어찌 만나지 못할 것을 근심합니까? 그러다 그곳이 즐겁지 않으면 제 발로 돌아올 것입니다. 부디 당신들 앞에서 그의 목숨을 끊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동자의 부모는 말하였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금 허락해 주겠습니다.”
이 때 구리다 동자도 자신의 부모에게 허락을 청하였다.
“훌륭하신 부모님이시여, 저는 이제 집을 떠나 출가하려 합니다. 제발 저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구리다의 부모에게는 오직 아들 하나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지극하여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지 못하였다. 잠시라도 아들을 보지 못하면 말할 수 없이 커다란 근심걱정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런데 구리다 동자의 부모는 예전에 집안에서 이렇게 맹세를 한 적이 있었다.
“너희들 집안 사람들은 구리다 동자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그의 뜻을 거스르지 말고 그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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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모들은 그 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리다 동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이 때 왕사성에는 파리바사산사야(波離婆闍刪闍耶)라는 외도(外道)가 살고 있었는데 제자 5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마침 우바저사와 구리다 두 동자는 아직 누구에게 귀의할지를 몰라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마침내 이 산사야[彼勝] 외도에게 들어와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그 두 사람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민첩하고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며 지혜가 깊고 폭넓었으므로 그 외도가 두 사람에게 도술과 온갖 기예와 의술에 쓰이는 약초와 비상(非想)의 선정(禪定) 등을 설명하자 그 말을 들은 지 이레 만에 완전히 다 통달해버렸다.
두 사람은 이렇게 통달하고 나서 그 파리바사가 외도 스승 아래에서 5백 명의 권속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스승이 되었다.
그 때 그 두 사람은 이런 차례로 대중들을 인도하고 이끌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직 평온함을 얻지 못하였다.
우바저사는 파리바사가(波離婆闍迦)[수나라 말로는 원리(遠離)라고 함] 구리다에게 말하였다.
“구리다여, 이 산사야 파리바사가의 법은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주지 못한다. 그러니 그대는 나와 함께 다시 좋은 스승을 찾아보자.”
구리다 파리바사가 동자는 우바저사 파리바사가 동자에게 대답하였다.
“우바저사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의 스승을 완전히 저버리고 다시 다른 곳에서 스승을 찾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한마음으로 함께 맹세하였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지금의 스승보다 더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우리들을 위해 감로법을 설하는 이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하자.”
당시 세존께서는 빈바사라왕 등 12나유타의 중생을 교화하고 왕사성 가란타 죽림원에서 큰 비구들 천 명과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 비구들은 모두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이들이었다.
그 때 우파사나(優婆斯那) 장로 비구는 격식을 갖춘 단정한 몸가짐을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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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는 모든 비구들 중에서 제일이었다. 그가 어느 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에 들어가 그 성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였다.
마하승기사는 이렇게 말하였는데 그 밖의 모든 논사들은 또 말하였다.
이 때 아수파유기다(阿輸波踰祇多)[수나라 말로는 마성(馬星)이라 함]는 이른 아침해가 떠오를 때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을 하러 왕사성에 들어갔다. 그는 그 성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였는데 격식을 갖춘 몸가짐은 조용하였으며 행동거지가 법다웠고 승가리와 열반승을 입었으며 밥그릇을 공손히 들었는데 모든 것이 반듯하였다. 그리고 모든 감각기관을 조복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외부를 보면서 모든 법을 생각하고 바른 기억으로 반듯하게 걸어갔다.
그 때 왕사성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그런 그를 본 자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를 평하여 이런 게송을 읊었다.
훌륭하게 모든 감각기관을 다스려서
거동이 항상 고요하고 안정되었네.
웃음을 머금고 아름다운 말을 하니
이는 틀림없이 석가 세존의 제자로다.
이 때 우바저사는 그 장로 아습파유기다(阿濕波踰祇多) 비구가 왕사성에서 차례로 걸식을 하는데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걸음걸이가 법도가 있으며 승가리와 열반승을 입고 밥그릇을 공손히 들었는데 모두가 반듯하였고 훌륭하게 모든 감각기관을 다스렸으며 마음을 편안히 하여 자세히 관찰하며 모든 법을 생각하면서 바르게 기억하며 반듯하게 걸어가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게송을 읊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생각하였다.
‘만약 이 세상에 그 어떤 아라한이나 일체 성인, 그리고 도를 성취한 분이 있다고 하면 틀림없이 지금의 이 대덕이 그 중 한 사람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로 가서 나의 의심들을 물어보아야겠다.’
하지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다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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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묻는다 하더라도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다. 왜냐 하면 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구하는 자는 아만(我慢)을 버려야만 하니 그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 따라 가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우바저사는 그의 뒤를 밟으면서 그가 가는 곳을 따라갔다. 그 때 아습파유기다 비구는 왕사성에서 걸식을 하고 나서 밥을 가지고 성에서 나왔다. 그래서 우바저사는 급히 아습파유기다 비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 장로 아습파유기다 비구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에 물러가 섰다.
그리고 나서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대덕 아습파유기다 비구에게 물었다.
“그대는 스승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의 성문 제자입니까?”
장로 아습파유기다는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에게 대답하였다.
“따로 큰 스승이 계시고 나는 그 분의 성문제자입니다.”
우바저사는 또 대덕 아습파유기다 비구에게 물었다.
“대덕이여,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누구의 법행(法行)을 즐기십니까?”
당시는 세존께서 막 정각을 이루신 뒤라 그 때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처님을 큰 사문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아습파유기다 비구는 그 우바저사에게 대답하였다.
“그대여, 큰 사문이 계시니 그 분은 석가족이며 석가족에서 출가하였습니다. 그 분이 나의 스승이요, 나는 그 분을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그의 법을 기쁘게 따릅니다.”
그러자 우바저사 파리바사가가 다시 대덕 아습파유기다에게 물었다.
“당신의 큰 스승께서는 용모의 단정함이 당신보다 훌륭하며 모든 덕술(德術)도 당신보다 훌륭하십니까?”
그 때 장로 아습파유기다는 곧 게송을 읊었다.
나를 스승에게 비유한다는 것은
겨자씨로 수미산을 대는 것과 같고
소 발자국에 담긴 물을 대해에 견주는 것과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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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를 금시조에 비기는 것과 같습니다.
설령 성문으로 저 언덕에 이르고
모든 지(地)를 성취하여도 여전히 제자입니다.
부처님 숫자에는 들지도 못하니
부처님 세존의 위덕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승께서는 삼세법에 있어 모두 다 밝게 아시고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으셨습니다. 그대여, 우리 스승께서는 일체 법을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그러자 우바저사 파리바사가가 다시 대덕 아습파유기다에게 물었다.
“당신의 스승께서는 어떤 법을 설하시고 어떤 일을 논하십니까?”
그리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내가 이런 법도에 맞는 몸가짐을 뵙자니
몸과 마음이 참으로 고요합니다.
그러므로 내 의심의 그물을 찢기 위해서
제발 이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 마음에는 의심의 그물 품었으니
당신은 지금 피곤해하지 마시고
당신의 스승이 무슨 법을 설하는지
제발 나를 위해 설명해 주십시오.
이 바라문을 보고
공경하면서 이렇게 질문을 하니
대답하기를, 우리 스승은
감자종(甘蔗種)의 큰 족성이요,
가장 훌륭한 일체지를 지니신
이 분이 바로 나의 위없는 스승입니다.
그 때 대덕 아습파유기다가 우바저사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내 나이 어리고 법을 배운 지 오래지 않아 아는 것도 적고 들은 것도 적으니 어찌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소? 그저 당신을 위하여 간략하게 말해주겠소.”
그러자 우바저사가 아습파유기다에게 답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덕이시여, 요약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나도 많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취할 뿐이요
명구(名句)를 즐기지 않습니다.
지혜 있는 이는 참 뜻을 사랑하니
이치[義]를 따라 나는 수행할 것입니다.
그러자 대덕 아습파유기다는 곧 우바저사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우리 큰 스승께서는 인연법을 설하시고 해탈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을 게송으로 설하십니다.”
마하승기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유사(迦葉惟師)는 또 다음과 같이 다르게 말하였다.
“그 뜻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의 구절을 설하셨습니다.”
모든 법은 인(因)을 따라 생겨나고
모든 법은 인을 따라 멸하니
이렇게 멸하고 또 생기는 것을
사문께서는 이와 같이 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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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 / 1142] 쪽
그 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문자의 법에 잘 통달하였고, 당시 대덕 아습파유기다 비구는 글귀의 뜻을 잘 이해하였고, 또 그 뜻과 문자를 아주 잘 이해하여 받아들였으니 무슨 많은 글자가 필요하겠는가.
인(因)을 따라 생겨난 모든 법은
그 법은 인을 따라 멸하나니
인연이 멸하면 곧 도(道)라고
큰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이런 법행(法行)을 관하여 보고 곧 그 자리에서 티끌과 때[垢]를 멀리 버리고 모든 번뇌를 없애고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으며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모두가 멸하는 상(相)임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알았다. 마치 아무런 색도 물들지 않고 검은 때가 전혀 타지 않은 깨끗한 옷을 물들이면 염료의 색깔을 잘 받아들이듯 그와 같이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이 행법을 관하자 곧 그 자리에서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나아가 사실 그
대로 관찰하여 알았다.
그리고 그 우바저사는 사실 그대로 그 모든 법을 관찰하여 알고 난 뒤에 모든 법을 얻었고 모든 법을 관찰하였으며 모든 법에 들어가고 모든 법을 건너서 다시 의심의 그물이 없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완전히 없애고 두려움이 없는 자리를 얻었으니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자연히 여래의 법을 알아서 그리 된 것이다. 곧 게송을 읊었다.
이처럼 내가 얻은 바와 같은
이러한 법행은
몇 나유타 겁을 지나도
이런 법을 얻은 적이 없었네.
그 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이미 모든 법을 보고 모든 법을 얻고 지혜가 생겨나자 삼기목(三奇木)을 버리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에 대덕 아습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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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 1142] 쪽
기다 발 아래 이마를 대고 절을 하였다. 절을 하고 난 뒤에 다시 일어나서 오른 쪽으로 세 번 돈 뒤에 하직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는 구리다 파리바사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구리다 파리바사가가 멀리서 다가오는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를 보니 그의 얼굴이 유달리 깨끗하고 온몸에서 빛이 나고 위엄이 흘렀다. 그리하여 구리다는 물었다.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여, 그대는 지금 모든 감각기관이 깨끗하고 피부가 윤이 나며 얼굴이 청정해 있다. 혹시 지금 감로(甘露)의 법이라도 체득하였소? 혹시 감로의 도라도 얻었소?”
그러자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구리다 파리바사가에게 답하였다.
“나는 감로의 훌륭한 법을 만났고 감로의 도를 이미 얻었소.”
구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그런 감로법을 누구에게 얻었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대답하였다.
“나는 저 큰 사문에게서 그것을 얻었소.”
구리다 파리바사가가 또 물었다.
“그 큰 사문은 어떤 일을 설하고 어떤 법을 논하였소? 그대는 지금 어떻게 감로의 좋은 도를 얻었소?”
그러자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구리다 파리바사가에게 게송을 읊었다.
인(因)을 따라 생겨난 모든 법은
그 법은 인을 따라 멸하나니
인연이 멸하면 곧 도(道)라고
큰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네.
구리다 파리바사가는 이 게송을 듣는 순간 곧 그 자리에서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모든 번뇌를 다하고 깨끗한 법의 눈을 얻었으며 일체 법이 다 멸하는 상(相)임을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이해하여 체득하였다. 마치 전혀 물들지 않고 검은 때가 타지 않은 깨끗한 옷이 염료를 쉽게 받아들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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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며 나아가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여 알고서 게송을 읊었다.
이처럼 내가 얻은 바와 같은
이러한 법행은
몇 나유타 겁을 지나도
이런 법을 얻은 적이 없었네.
그리고 나서 구리다는 다시 우바저사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감로법을 만났으므로
얼굴빛이 깨끗하고 광채가 났네.
그대가 찬탄하며 말해준 이 법을
듣고 나는 청정한 눈을 얻었네.
구리다는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어서 빨리 그 큰 사문에게로 가서 깨끗한 행을 닦아야 하오. 그 불세존은 우리의 스승이오.”
그러자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구리다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하지만 우리는 오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오. 본래 스승인 산사야 계신 곳에 먼저 나아가야 하오. 왜냐 하면 그는 우리들에게 많은 이익을 지었으며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었소. 그 분은 바로 우리를 구제하여 출가시킨 분이 아니오? 그러니 그 분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하오. 또 5백 명의 권속들도 우리를 의지하여 수학하고 법을 행하여 왔으니 다시 그들에게도 일러주어서 만약 그들이 좋다면 우리와 함께 가자고 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나서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와 구리다 파리바사가는 그 스승인 산사야 파리바사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신 분이시여, 우리는 이제 큰 사문 불세존께 나아가 청정한 행을 닦고자 합니다.”
그러자 산사야 파리바사가는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들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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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나와 함께 너희들은 이 대중들을 가르쳐야 한다.”
다시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산사야 파리바사가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큰 사문 불세존 계신 곳으로 가서 청정한 행을 닦고자 합니다.”
산사야 파리바사가도 거듭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그곳에 가지 말아라. 이 모든 제자들을 너희에게 모두 맡기리라. 이제 나는 한 곳으로 물러나 홀로 마음껏 머물되 간섭하지 않겠다.”
다시 세 번째로 우바저사와 구리다는 산사야 파리바사가에게 말하였다.
“저희 두 사람에게는 제자들이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그저 어서 빨리 저 스승이신 큰 사문 계신 곳으로 나아가 청정한 행을 닦는 것뿐입니다. 그 큰 사문은 우리의 세존이요 우리의 스승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뒤 이내 그 자리에서 산사야를 등지고 떠나갔다.
그 때 5백 명의 파리바사가 외도 대중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우바저사와 구리다 두 사람은 지혜가 많고 총명하고 영리하다. 우리들은 오래도록 애쓰고 피로할 정도로 부지런히 기예와 주술을 독송하였지만 이 두 사람은 이레 만에 모두 다 통달하였으니 이들은 예사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틀림없이 가장 훌륭한 곳을 찾아내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가기를 원하는 곳이라면 우리도 그들을 따라서 가기를 원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행하는 법이라면 우리도 또한 행해야 할 것이요, 그들이 청정한 행을 수행한다면 우리도
그들을 따라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모두 다 그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그러자 산사야 파리바사가는 다시 그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가지 말아라. 가지 말아라.”
이렇게 같은 말로 그들을 붙잡았지만 그들을 막지 못하였으니 결국 모든 제자들은 그를 떠나고 말았다.
그 때 산사야 파리바사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이 대중들이 끝내 나를 버리고 마는구나.’
이렇게 대중들이 버리고 떠난 인연으로 크게 근심하고 번민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다가 결국 목구멍에서 뜨거운 피를 토하더니 목숨을 마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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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와 구리다 파리바사가는 5백 명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가란타죽림원으로 나아갔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아, 때를 잘 알아서 이 동산 안에 깨끗한 자리를 깔아라.”
비구들은 부처님께 답하였다.
“세존의 가르침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비구들이 부처님을 위하여 동산 안에 깨끗한 자리를 깔자 부처님께서는 그 자리에 앉으셨다.
이 때 장로 교진여는 저 우바저사와 구리다 두 사람이 외도의 무리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인 채 다가오고 있는 광경을 멀리서 보고는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기 오는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와 구리다 파리바사가 등 두 사람은 기예가 뛰어나고 많이 들었고 아는 것도 많으며 모든 도술에 다시 의심이 없어 그 명성이 사방에 두루 퍼져 있는 이들인데, 지금 세존께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이 두 사람이 부처님과 논쟁을 하려고 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장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교진여야, 나는 지금 저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다. 저들은 더욱 훌륭한 것을 구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논쟁을 벌이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우바저사 파리바사가와 구리다 파리바사가 등 두 사람을 멀리서 보시고 그 인연으로 게송을 말씀하셨다.
모든 성현을 만나는 것은 즐겁고
함께 사는 것은 더욱 즐겁다.
뭇 어리석은 무리를 보지 않는 것
이것을 곧 항상하는 즐거움이라 하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이 두 명의 파리바사가 가운데 우바저사라는 이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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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다라는 이를 보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지금 이 두 사람은 곧 나의 성문 제자 중에서 각각 으뜸이 되리니 한 사람은 지혜가 제일이요 다른 한 사람은 신통이 제일일 것이다.”
그 때 이 게송을 읊었다.
그들은 멀리서 두 사람이
제자와 권속에게 에워싸여 오고 있는 것을 보았네.
우레 같은 음성으로 비구들에게 이르기를
이 두 사람은 외도 출신인데
이제 내 대중 처소로 오는구나.
너희 비구들은 알아야 한다.
그 중 한 사람은 지혜가 으뜸가고
다른 한 사람은 신통이 으뜸가리라.
그리고 다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과거의 모든 부처님 다타아가도ㆍ삼먁삼불타의 제자들은 지금의 이 성문 제자들보다 뛰어난 이가 없었고, 지금의 저 두 사람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비구들아, 만약 미래세에 모든 불ㆍ여래ㆍ삼먁삼불타에게도 지금의 나의 저 한 쌍의 성문 제자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희 비구들아, 어서 자리를 펴서 그들을 앉게 해야 하리라.”
이런 게송이 있었다.
두 사람의 우왕(牛王)은 깊은 지혜를 얻어
이미 일체 모든 그릇된 도를 버렸다.
아직 이 큰 숲에 이르지 않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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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은 멀리서 그들을 수기하였네.
그 때 두 사람이 차츰 앞으로 나아가 그 숲에 막 이르려다가 멀리서 장로 아습파유기다가 나무 아래서 땅을 내려다보며 경행하는 것을 보자 곧 그곳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물러나 한쪽에 섰다.
그러자 교진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지금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들은 저 훌륭하고 제멋대로 군림하던 처소와 들음이 많은 곳에서 가장 높은 마음을 일으키던 것을 모두 저버리고 장로 아습파유기다에게 가장 겸손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장로 혜명(慧命)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를 얻은 곳에 대하여 항상 은혜를 갚으려는 생각을 일으키며 마음에 기억하여 잊지 않는다. 작은 은혜를 입었더라도 언제나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하거늘 하물며 많이 얻은 경우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교진여야, 저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들은 아습파유기다에게서 깨끗한 법의 눈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 법구(法句)를 읊으셨다.
모든 부처님이 설하는 법을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았다면
그 사람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니
범지가 불의 신을 섬기듯 해야 한다.
이 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들은 모든 파리바사가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그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호궤합장하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여 도를 닦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제발 저희들의 출가를 허락해 주시고 구족계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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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잘 왔다. 비구들아, 이제 내가 스스로 증득한 법 가운데 들어와 모든 괴로움을 없애기 위하여 청정한 행을 닦아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모든 비구들은 저절로 몸에 3의가 입혀졌고 손에는 각기 질그릇의 발우가 들려졌으며,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니 그 모습은 마치 어린애가 막 머리를 깎은 지 7일이 지난 모습이었다. 이렇게 모든 장로들은 곧 출가를 이루고 구족계를 갖추었다.
그 때 장로 우바저사는 부처님 오른쪽에 앉고 장로 구리다는 부처님 왼쪽에 각각 앉았다. 장로 우바저사는 출가한 지 겨우 보름이 되었을 때 모든 번뇌를 없애고 신통력을 나타내고 신통의 지혜바라밀다를 성취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구리다는 7일이 지나자 이내 모든 번뇌를 다하고 신통력을 나타내며 또 신통의 지혜바라밀을 성취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그 때 그 장로 우바저사와 구리다 등의 이런 인연으로 점차 그 5백 명의 권속들도 모두 다 출가하여 구족계를 이루었다.
이 때 장로 우바저사의 어머니의 이름은 사리(舍利)[수나라 말로는 앵욕(鸚鵒)이라 함]였는데 이런 인연으로 세간에서는 그를 사리불다(舍利弗多)[불다(弗多)는 수나라 말로는 아들(子)의 뜻임]라 이름하게 되었고, 장로 구리다는 그 종성이 목건련연(目揵連延)이었으므로 이런 인연으로 세간에서는 그를 목건련연이라 불렀다.
다시 부처님께서 수기하여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비구여,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이는 사리불다가 으뜸이고, 또 신통으로는 목건련연이 으뜸이다.”
이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장로 사리불과 목건련은 지난 과거세에 어떤 선근을 심었기에 그 인연을 타고 이제 출가하여 구족계를 이루었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또 ‘큰 지혜 성문 제자들 가운데는 사리불이 제일이요, 신통 가운데 목건련이 제일이다’라고 수기를 내리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지난 먼 옛날 과거세를 기억해 보니 저 파라나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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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오누이가 살고 있었는데 오빠는 소필리야(蘇畢利耶)[수나라 말로는 선애(善愛)라 함]였고 여동생의 이름도 역시 소필리야라 하였다.
그런데 오빠인 소필리야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곧 벽지불도를 이루었고 여동생 소필리야는 파리바사가 외도에게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어느 날 오빠인 소필리야 벽지불은 외도 여동생 소필리야를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하여 자리를 깔고 앉자 여동생인 소필리야는 온갖 가지 맛좋은 음식을 장만하여 손수 공양을 베풀어 배불리 먹게 한 뒤에 다시 칼 하나와 바늘 하나를 그 오빠인 벽지불에게 받들어 올렸다.
그 벽지불은 밥을 다 먹고 나서 여동생이 보시한 칼과 바늘을 가지고 그 여동생 앞에서 허공을 날아 떠나갔다. 여동생 소필리야는 존자 벽지불이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나 환희에 넘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합장하고서 멀리 그 벽지불에게 절을 한 뒤에 이런 소원을 세웠다.
‘부디 나는 미래세에 이런 스승이나 이 분보다 더 나은 분을 만나 그가 설하는 법을 빨리 깨닫고 악도에 나지 않게 되기를 빕니다. 또한 내가 보시한 저 날카로운 칼이 베지 못하는 것이 없듯이 이와 같이 끊고 베는 인연업으로 나는 미래세에 그 어떤 번뇌라도 모조리 끊어버리기를 빕니다. 또한 저 바늘이 두루 꿰고 뚫듯이 나는 미래세에 그 어떤 번뇌라도 모조리 꿰뚫어 버리기를 빕니다.’
너희 비구들이여, 그 때 벽지불에게 칼과 바늘을 보시한 외도인 소필리야 파리바사가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바로 지금의 사리불 비구이다.
또 모든 비구들아,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적 과거세에 파라나성에 상인(商人)이 한 사람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항상 큰 바다에서 소라를 따서 팔았다. 어느 때 그 상인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내가 재물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큰 괴로움의 업이다. 오늘부터 응당 미래세의 공덕의 인연을 지으리라.’
그 때 파라나성에는 벽지불 한 분이 성을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 벽지불은 해가 막 솟아오르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그 파라나성으로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였다.
마침 소라를 파는 상인이 멀리서 벽지불이 오는 것을 보니 격식을 갖춘 몸가짐은 조용하고 행동거지가 점잖으며 얼굴을 펴고 반듯이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런 벽지불을 보고 나자 마음이 깨끗해져서 곧 절을 올린 뒤에 벽지불을 초청하였다. 벽지불은 그의 집에 가서 존중 공양하며 베푸는 모든 음식을 받았고 필요한 것을 얻었다.
원래 벽지불은 설법하는 일이 없고 오직 신통으로써 교화하고 다른 방편을 쓰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 때 벽지불은 그 상인이 보시하는 공양을 받은 뒤에 그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떠나갔다.
그 때 이 상인은 벽지불이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직접 보고는 크게 기뻐 뛰놀며 기쁨을 참지 못해 합장하고 멀리 그 벽지불을 향하여 절을 한 뒤에 이런 원을 세웠다.
‘제발 나는 미래세에 이런 스승이나 혹은 이 분보다 더 훌륭한 분을 만나 그의 설법을 듣는 대로 속히 깨닫고 태어나는 곳마다 악도에 떨어지지 말기를 빕니다. 그가 얻은 것같이 나도 또한 얻으며 이 성자가 허공을 날아가듯 나도 미래세에 또한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너희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때 소라를 따서 팔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뒤에 벽지불에게 공양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목건련 비구였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 사리불과 목건련은 지난 과거세에 그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제 출가를 얻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내가 또 ‘나의 성문 제자 중에서 지혜가 제일인 사람은 사리불이요, 신통이 제일인 사람은 목건련’이라는 수기까지 받게 된 것이다.”
불본행집경 제49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0. 오백비구인연품(五百比丘因緣品)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사리불은 한결같이 그릇된 견해의 거친 들판 험한 길에 떨어져 뒤바뀐 행을 하고 있던 5백 명의 파리바사가(波離婆闍迦) 산사야(刪闍耶) 제자들을 모두 교화시켜 부처님 계신 곳에 데리고 왔습니까? 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는 그릇된 견해의 거칠고 험난한 들판을 버리게 하여 모든 괴로움 가운데서 해탈을 얻도록 하신 것은 무슨 일입니까?”
부처님께서는 곧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이여, 산사야 제자인 5백 명의 파리바사가들이 엄청난 그릇된 견해라는 험난한 들판에 떨어져 허망한 행을 하고 있는데 그런 이들을 사리불이 나에게 데리고 와서 그릇된 견해의 허망함과 뒤바뀜을 면하게 해주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을 얻게 한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옛날 과거세에도 역시 이와 같은 5백 명의 사람들이 액난에 떨어졌는데 그 때도 사리불이 그들을 거느리고 왔기에 내가 그들을 액난에서 구제하여 모든 고뇌를 벗어나게
하였던 적이 있다.”
비구들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그 일을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 과거세에 계시(鷄尸)라는 이름의 말의 왕[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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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이 하나 있었다. 그 말의 왕은 생김새가 보기 좋고 몸이 희고 깨끗하여 마치 백옥이나 눈 또는 백은 같았으며 둥근 달이나 군타꽃과 같았고 그 머리는 검푸르고 바람처럼 빨리 달렸으며 그 소리는 아름다운 북소리와 같았다.
당시 염부제에서는 상인(商人) 5백 명이 대해로 나아가려고 양식[資糧]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3천만의 갖가지 재물을 가지고 거기에 또다시 10만 냥의 노자를 마련하여 여행에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보려 하였다. 또한 별도로 뱃사공을 살 준비까지 갖추었는데 그들은 이렇게 모든 준비를 완전하게 다 마친 다음에 바닷가로 나아갔다. 바닷가에 이르자 곧 바다의 신에게 제사하고 모든 선박을 갖추었으며, 또 다섯 사람을 고용하였으니 그 다섯 사람이란 첫
째는 배잡이요, 둘째는 돛대잡이요, 셋째는 물 퍼내는 이요, 넷째는 헤엄 잘 치는 이요, 다섯째는 선장이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서로 ‘모든 죄와 허물이 있다면 깨끗이 참회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바다에 들어가는 법을 다 가르친 뒤에야 진귀한 보배를 찾으러 바다로 나아갔다.
그 모든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사나운 바람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배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결국 나찰국으로까지 흘러들게 되었다. 그 나찰국에는 많은 여자 나찰귀들이 살고 있었다.
선박들이 그 나라에 이를 무렵 큰 바람이 불어닥치자 배들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고 모든 상인들은 바다에 빠져 서로들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물살을 헤치고 헤엄쳐 나가 해안으로 오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때 여자 나찰귀들은 이미 그에 앞서 대해에서 파손되어 조난을 당한 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가서 상인들을 구조해 주었다. 그리하여 한번에 5백 명의 상인들을 붙들어 가지고 그들과 함께 5욕락을 누리며 마음껏 즐겼다. 그리하여 상인들과의 사이에서 아들딸이 태어나자 비로소 그 상인들을 쇠로 만든 성안에 가두었다.
그런 뒤에 여자 나찰귀들은 자신들의 본래 모습을 바꾸어서 사람보다는 낫고 천상의 존재들보다는 조금 떨어질 정도로 아름답고 어여쁘게 변화시켰다. 나찰귀 가운데 어떤 이들은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어떤 이들은 혼기를 앞둔 처녀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이렇게 몸을 변화하고 나서 향탕에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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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몸에 향을 바른 뒤에 여러 가지 의상을 입고 온갖 보석과 장신구로 그 몸을 장엄하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만든 천관(天冠)을 쓰고 몸에는 온갖 꽃과 보석을 수술로 드리웠다. 그들은 묘한 꽃으로 자신들의 몸을 장식하고 꽃으로 영락을 만들고 꽃다발에 보배 방울을 달고는 서둘러 새롭게 난파당한 상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겁내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근심하지 말고 손을 내미십시오. 당신의 팔을 이리 내미십시오. 당신의 손목을 내미십시오.’
상인들은 너무나도 목숨이 아까웠고 죽는 것이 두려웠던 터라 그 나찰귀들이 진짜 여자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손과 팔을 내밀었다.
그 여자 나찰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모든 상인들을 구해준 뒤에 사랑스럽고 연민에 가득 찬 말을 상인들에게 건넸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먼 지방에서 오셨나요? 이제 당신들은 우리의 남편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의지가 되어 우리의 근심 걱정을 덜어 주십시오. 우리들을 위하여 가장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는 법도에 맞게 당신들을 섬겨 조금도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은 우리 집에 와서 크게 기쁜 마음으로서 5욕락을 누리십시오.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시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집안의 모든 일은 우리들이 다 처리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우리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바다의 신이 우리를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에 당신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상인들은 함께 여자 나찰들에게 말했다.
‘착한 여인들이여, 그대들은 안심하시오. 잠시 이곳에 머물러 우리들의 근심을 풀어 주시오.’
그리하여 모든 상인들은 각각 하나의 자리에 머물렀는데 마음이 슬퍼져서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어떤 이는 부모님을 소리 높여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형제들을 소리 높여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들의 자매들을 소리 높여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친척들이나 일가붙이들을 소리 높여 부르고 어떤 이는 종족들을 소리 높여 부르면서 이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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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들은 친척들과 헤어지게 되었구나.’
어떤 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게 되었구나.’
어떤 이들은 또 이렇게 외쳤다.
‘아아, 아름다운 염부제 땅이여.’
이와 같이 통곡하며 슬피 울부짖다가 다시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참자.’
이렇게 말하고서 각각 열기(熱氣)를 토해내고 서로 위로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찰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 성에 채 이르기도 전에 도중에서 어느 한 곳을 둘러보니 그 땅은 매우 넓고 반듯하고 평탄하며 자갈이나 가시, 모래나 기와조각, 돌멩이들이 전혀 없었고 조금도 더러운 것이 섞여 있지 않았다. 푸른 풀이 나서 우거졌는데 물이 잘 올라 있었고 곧아서 매우 보기 좋고 사랑스러웠다. 또 훌륭한 숲이 있었는데 그 숲에는 꽃과 열매와 나뭇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그 모습은 마치 푸른 구름이 드리운 듯하였는데 숲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 그 숲에는 온갖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는데 그 나무들의 이름은 나가다마라(那迦多摩羅) 나무ㆍ가니가라(迦尼迦羅) 나무ㆍ아습파타(阿濕波他) 나무ㆍ니구타(尼拘陀) 나무ㆍ오도파라(烏徒婆羅) 나무ㆍ파라차(波羅叉) 나무ㆍ가사라(可闍囉) 나무ㆍ가리라(迦離囉) 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있었다.
또 온갖 향기로운 꽃나무가 그 숲에 가득 자라 있었는데 그 꽃나무의 이름은 이른바 아제목다가(阿題目多迦) 꽃나무ㆍ첨파가(瞻波迦) 꽃나무ㆍ아수가(阿輸迦) 꽃나무ㆍ파다라(波多羅) 꽃나무ㆍ파리사가(波利師迦) 꽃나무ㆍ구란다가(拘蘭茶迦) 꽃나무ㆍ구비타라(拘毘陀羅) 꽃나무ㆍ단노사가리가(檀奴沙迦梨迦) 꽃나무ㆍ목진린타(木眞隣陀) 꽃나무ㆍ소마나(蘇摩那) 꽃나무 등이었다. 그 나무들 중에 어떤 것은 움이 나오는 것, 어떤 것은 이미 움이 튼 것, 어떤 것은 잎이
피려는 것, 어떤 것은 꽃이 활짝 피어난 것, 또 어떤 것은 꽃이 피었다가 시들어 떨어진 것 등의 온갖 향기로운 꽃나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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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러 가지 과일 나무가 있었으니 이른바 암파라(菴婆羅) 나무ㆍ염부(閻浮) 과일나무ㆍ구사(俱闍) 과일나무ㆍ파나파(破那婆) 나무ㆍ진두가(鎭頭迦) 나무ㆍ하리륵(呵梨勒) 나무ㆍ비혜륵(毘醯勒) 나무ㆍ암파륵(菴婆勒) 나무 등 이와 같은 갖가지 과일 나무들이 있는데 그 나무들에서 나는 과일들은 어느 것은 아직 익지 않았고 어느 것은 익었고 어느 것은 한창 익어서 먹음직스럽고 어떤 것은 너무 익어서 떨어지기도 하였으며 어떤 것은 꽃망울이 진 것 등 이와
같은 갖가지 나무들이 있었다.
또 여러 새들이 그 나무 위에 모여 놀고 있으니 이른바 앵무새ㆍ구욕새ㆍ구시라새ㆍ공작새ㆍ가릉빈가새ㆍ명명새 등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새들이 있었다.
또 온갖 꽃들이 못과 늪에 피어 있었으니 이른바 우발라(優鉢羅)꽃ㆍ발두마(鉢頭摩)꽃ㆍ구물두(拘物頭)꽃ㆍ분타리(分陀利)꽃들이다. 이런 꽃들이 물 위를 가득 덮고 있었다. 그 못에는 또 여러 새들이 놀고 있으니 이른바 큰 기러기ㆍ따오기ㆍ오리ㆍ곤륜새ㆍ원앙새들이었는데 이 새들이 못에서 놀고 있으면서 그 못을 아름답게 꾸며 주었으니 보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즐거워지고 근심과 번뇌가 풀어졌다.
그 나찰성은 사방 벽이 눈부시게 희어서 모습이 마치 눈처럼 새하얀 마노 보석과 같았고 얼음산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 성이 대지에 우뚝 서있으니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거나 그 성을 살펴보면 마치 흰 구름떼가 대지로부터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그 성 위로 또 누각이 있고 여러 가지 망루가 있는데 주변을 담장처럼 둘러쌌으며, 사방에는 참호가 있는데 그 참호 언덕 위에는 난간이 둘러싸고 있고 어떤 곳에는 누각이 있기도 하였다. 그 누각에는 창문이 있고, 또 천궁, 대전(臺殿), 당각(堂閣)과 난간이 가지런히 위치해 있으며, 모든 복도들은 매우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고 보배 휘장과 일산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 성 둘레에는 여러 가지 깃발들을 두루 세우고 보석으로 만들어진 상을 마련하
였고 향로 속에는 온갖 미묘한 향이 타고 있었다.
이 때 그 여자 나찰귀들은 상인들을 그 성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향탕에 몸을 씻겼다. 그리고 나서 온갖 아름답고 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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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히고 5욕락을 고루 누리게 하였으며 다섯 가지 음악 소리를 그들 앞에서 울렸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편으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커다란 쾌락을 누리며 서로 기쁨에 젖고 함께 즐겼다.
그 후 그 모든 여자 나찰귀들은 상인들에게 말했다.
‘착한 분들이여, 이 성의 남쪽으로 밖을 나가서는 안 됩니다.’
한편 그 상인들 가운데 상인의 우두머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매우 지혜롭고 총명하고 예리하여 곧 의심을 일으켰다.
‘무엇 때문에 이 여자들이 우리를 막아 남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 나는 여자들이 잠든 틈을 타서 그 길로 가 보리라. 여자들이 금하는 곳에 가서 차례로 둘러보아 그곳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아보아야겠다. 알고 나서는 곧 일에 따라 방편을 행하리라.’
그 상인의 우두머리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모든 여자 나찰귀들이 잠자는 틈을 엿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침상에서 조용히 일어나 날카로운 칼을 들고 소리를 죽이고서 집을 나왔다. 그는 짐작 가는 대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다가 적은 땅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그는 언뜻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초목도 자라지 않고 몹시 스산하였다. 문득 사람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마치 규환(叫喚) 지옥 속에서 고
통을 받는 소리와 같았다. 이 소리를 들은 그는 겁에 질려 모골이 송연해졌다. 묵묵히 잠시 섰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로잡아 기력을 회복한 뒤에 다시 그 길을 걸어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쇠로 만든 성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그 성은 높고 험준하였으며 비명 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성에 이르러 주변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문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북쪽으로 가니 합환(合歡)이란 큰 나무 한 그루가 성 가까이에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나무는 키가 매우 높아서 성 위로까지 높이 솟아 있었다.
상인의 우두머리는 그 나무를 발견하고는 이내 나무 위로 올라가 성안을 둘러보았다. 그 성안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 있었는데 어떤 이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어떤 이는 이미 반쯤 뜯어 먹혔으며, 어떤 이는 숨이 채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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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도 않은 채 몸의 절반이 찢겨져 있었고, 어떤 이는 목마르고 굶주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채 앉아 있었고, 어떤 이는 너무나도 수척하여 오직 힘줄과 뼈만 남아서 움푹 패인 두 눈은 마치 우물 속에 비친 별빛과도 같았다. 그들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머리털은 산발로 흩어지고 엉켜 있었고 온몸이 흙투성이인데다 야윌 대로 야위어서 각각 서로의 살을 베어 뜯어먹고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크게 울부짖으니 마치 염라대왕의 저승에서 모든
중생들이 큰 고뇌를 받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상인의 우두머리는 이런 광경을 보자 말할 수 없이 커다란 두려움이 일어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얼마를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도로 찾아 마음이 가라앉고 무서움이 조금 가시면서 기력이 점차 회복되었다. 그는 곧 합환나무 가지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하였다. 나뭇가지 하나가 흔들리자 그 나무의 모든 가지와 잎이 서로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었다.
그 때 온갖 괴로움을 받고 있던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성 위를 쳐다보다가 합환나무 위에 그 상인의 우두머리가 있는 것을 보고 구슬프게 그를 부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천왕입니까, 용왕입니까, 야차입니까? 아니면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제석천왕 교시가입니까? 아니면 대범천왕입니까? 혹시 우리들이 여기서 액난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들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려고 오셨습니까?’
그 사람들은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려 멀리 절을 한 뒤에 애끓는 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고개 들어 우러러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착하신 그대여, 우리들에게 커다란 사랑과 동정심을 내셔서 우리를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모두가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진 사람입니다. 제발 우리를 건질 방법을 구해 주십시오. 우리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 때 상인의 우두머리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호소를 듣고 우울하고 불안스러우며 몸과 마음이 슬프고 괴로워져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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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아셔야 합니다. 나는 지금 천왕도 아니요, 용왕도 아니며 대범천왕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도 저 염부제에서 생업을 부지하려 재물을 구하고자 바다로 나아갔다가 육지에 이르려던 중 홀연히 큰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졌는데 때마침 여러 여자들을 만나 여기에 오게 된 것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를 구해 준 여자들과 즐겁게 노닐고 있는데 이런 내가 지금 어떻게 그대들을 괴로움에서 건져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상인의 우두머리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이런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대답하였다.
‘착하신 분이시여, 우리도 당신들처럼 저 염부제에서 장사를 하면서 보물을 구하러 큰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다 바닷가에 이르려 했을 때 사나운 바람을 만나 배가 파손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때 여자 나찰귀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구제되어 그들과 함께 5욕락을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당신들이 오는 소리를 듣자 그 여자 나찰귀들은 곧 대해에서 선박들이 파괴되었음을 알고는 우리를 이 쇠로 만든 성안에 가둔 것입니다. 우리도 이곳에 올 때는 5백 명이었지
만 이미 저들에게 250명이 잡아먹히고 지금 250명만 살아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저 여자 나찰귀들과 관계를 가져서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찰귀들은 말이 미묘하고 음성은 곱지만 육식을 탐하는 까닭에 아들딸을 낳으면 모두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그들과 함께 쾌락을 즐기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왜냐 하면 저들은 매우 무섭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상인의 우두머리가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그렇다면 무슨 수로 이런 나찰의 액난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입니까? 제발 말해 주십시오.’
그들이 대답하였다.
‘15일 보름날 4월의 명절 대회는 크게 기쁘고 즐거운 날이며 해, 달과 묘수(昴宿)별이 서로 만나는 때입니다. 말의 왕[馬王]이 하나 있는데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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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雞尸)[수나라 말로는 다발(多髮)이라 함]라 합니다. 모습이 매우 단정하여 보는 사람이 즐겁고 백옥처럼 희며 그 머리는 검푸른데 바람처럼 빠르고 그 소리는 아름다운 북소리 같습니다. 그 말의 왕이 사는 곳에는 멥쌀이 자라나 있는데 등겨가 없고 매우 굵고 희며 향기롭고 온갖 맛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말의 왕은 바로 이 쌀을 먹고는 바닷가에 와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사람의 말로 이렇게 소리내어 외칩니다.
(누가 저 짜디짠 대해의 물을 건널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세 번 말합니다.
(내 이제 편안히 바닷물을 건너 저편 언덕으로 건네 주리라.)
그대들이 만약 이런 말을 만나게 되면 곧 난을 면할 것인데 오직 이 방법만이 있을 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모든 액난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이 말을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상인의 우두머리가 또 물었다.
‘그대들은 계시왕의 그러한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보았다면 왜 그에게 가까이가지 않았습니까? 만약 가까이 했다면 어째서 그대들은 건너가지 못하였습니까? 그대들은 이 말을 제일 처음 누구에게서 들었습니까? 이 말은 진실합니까, 아니면 거짓입니까?’
그들은 대답하였다.
‘그대여, 우리는 허공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염부제의 모든 상인들은 어리석고 무지합니다. 왜냐 하면 그 묘수별과 달이 서로 합하는 보름날 그 즐거운 명절 대회 때에 이르지 못하였고 4월 명절 중에 그 북쪽 길을 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곳에 갔다면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그토록 단정한 말왕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의 왕이 깨끗한 쌀을 먹으며 그곳에서 바닷가에 나와 상반신을 드러내고 날마다 세 차례씩 (누
가 이 쓰디쓴 대해를 건너 저 언덕에 이르고 싶은가? 내가 편안히 이 곳에서 저 언덕에 이르도록 건네 주리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듣고서 어떤 사람들은 믿는 마음을 내어 허공의 소리대로 북쪽 길로 나아가 말의 왕이 사는 곳에 갔지만 비록 그곳에 가기는 했으나 그 말을 믿지 않고 도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여자 나찰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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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지금과 같은 재앙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상인의 우두머리가 다시 물었다.
‘그대들은 우리와 함께 말왕이 사는 곳에 가지 않겠소?’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가 만약 성 위로 올라가려 하면 성은 더 높아지고 땅을 파고 나가려 해도 구멍이 도로 합쳐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여자 나찰귀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친척과 권속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게을리 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와 권속들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아무개[某] 성 아무개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만약 당신들이 그곳에 가거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벗들에게 안부를 전하여 이렇게 말해 주시오.
(그대들은 훗날 다시는 저 대해로 나아갈 마음을 내지 말라. 왜냐 하면 대해에는 여러 가지 두려운 일들이 있으니 이른바 파도와 검은 바람[黑風], 또는 물이 소용돌이치거나 저미라어(低彌羅魚)와 교룡(蛟龍) 등과 같은 것이 두렵고, 여자 나찰귀들의 공포가 있다. 대해에는 여러 가지 두렵고 겁나는 것이 있으니 그대들은 그저 지금의 그곳에서 모든 방편으로써 적당히 살고 또 힘써 서로 도와 주면서 이런 방편으로 부모, 처자, 권속들과 서로 떠나지 말고
보시를 행하여 많은 복업을 짓고 엄하게 재계를 다스려 가지라.)’
상인의 우두머리는 그 말을 듣고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혀 합환나무에서 내려왔다. 나무에서 내려올 때 성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시에 울부짖으며 외쳐댔다.
‘아아 괴로워라.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 없구나. 저 아름답던 염부제 땅을 어찌 다시 볼 수 있을까. 만일 이런 재앙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그곳에서 소똥을 먹으며 살더라도 재물을 구하러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다.’
상인의 우두머리는 나무에서 내려온 뒤에 왔던 길을 되짚어 본래 처소로 돌아갔다. 무리들을 살펴보니 모든 나찰귀들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아무 일이 없는 듯 도로 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이윽고 날이 밝자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저 나찰귀들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 모든 상인들에게 이 일을 알릴 수 있을까? 지금 만약 저들에게 이런 말을 발설하면 곧 새어나갈 것이요, 비밀이 누설되면 나찰귀들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니 틀림없이 우리는 커다란 재앙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말을 비밀에 붙여 4월 명절대회까지 기다렸다가 말의 왕이 오는 날에 그들에게 알려 주리라. 왜냐 하면 옛날부터 이런 게송이 있지 않은가.
무릇 친한 이들에게
가벼이 마음 속을 토설하면
그 일은 당장 누설되어서
듣는 사람마다 각각 전하네.
그러므로 원수를 얻게 되고
문득 커다란 고통을 받으리니
이런 까닭에 지혜 있는 이는
오직 그 말을 누설 않는다네.’
상인의 우두머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묵묵히 지냈다. 그러다 마침내 4월 명절대회 때가 되자 비로소 모든 상인들에게 일러 주었다.
‘착하다. 모든 사람들아, 그대들은 이제 게을리 말고 미련을 갖고 집착하지 말며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여인들에게 탐착하거나 음식이나 그 밖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나는 그대들을 너무나도 불쌍하게 여겨 은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러니 그대들은 저 여자들이 깊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모여서 저 곳으로 나가자.’
상인들은 모두 상인의 우두머리가 하는 말을 듣자, 마치 사자가 숲에서 크게 포효하면 산기슭에서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짐승들이 크게 놀라 겁을 집어먹는 것처럼 크게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아직도 대해에서 극악한 일을 벗어나지 못하였구나.’
상인들은 그날 한밤중에 모든 나찰귀들이 깊은 잠에 취하였을 때 살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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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그가 지시한 장소로 나아가 상인의 우두머리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우두머리여, 당신이 본 대로 저희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혹 다른 데서 얻어들은 것이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우리를 이익 되게 하기 위해 말해 주십시오.’
그러자 상인의 우두머리는 모든 상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들은 잘 살펴서 이 일을 비밀로 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대들에게 말해주겠다.’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맹세코 당신의 말을 듣고 비밀로 간직하겠습니다.’
그러자 상인의 우두머리는 곧 예전에 그가 보았던 사실들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상인들은 우두머리의 말을 듣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며 매우 슬퍼하고 두려움으로 몸을 떨면서 상인의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착하신 우두머리여, 우리들은 당장이라도 서둘러 그 말의 왕에게로 가서 우리를 저 염부제 고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시다.’
그리하여 상인의 우두머리를 위시한 모든 상인들은 다 함께 말의 왕이 사는 곳으로 나아갔다.
이 때 말의 왕은 그 등겨도 없고 청정하고 향기롭고 맛좋은 멥쌀을 먹고 나서 바닷가에 이르러 상반신을 나타내고 사람의 소리를 내어 세 번 이렇게 말하였다.
‘바닷가 저편 언덕으로 건너고 싶은 자가 있느냐? 내 마땅히 그를 편히 업어서 저 언덕에 건네어 주리라.’
모든 상인들은 그 말왕의 이런 말을 듣자 기쁨이 가득 차 올라 온몸의 털이 모두 일어섰다. 그들은 합장하고 말의 왕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말의 왕이여, 우리들이 저편 언덕으로 가고자 합니다. 우리를 저편 언덕으로 건네 주십시오.’
그러자 말의 왕이 모든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반드시 기억하여라. 분명 저 여자 나찰귀들이 아들과 딸을 안고 그대들을 따라올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아이들을 그대들에게 보이며 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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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게 통곡하면서 괴로워할 것인데 그때 사랑에 물드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대들이 만약 (저 사람은 내 아내, 저 아이는 내 아들, 저 아이는 내 딸)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내 등위에 올라타고 있더라도 그대들은 틀림없이 떨어져 저 나찰귀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저것은 내 것이 아니요, 나는 그의 것이 아니요, 나의 아들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내 몸의 털 하나를 쥐고 매달려 있다 하더라도
나는 편안하게 그대들 모두를 바다 건너 저편 언덕으로 건네 줄 것이다.’
이렇게 말한 뒤에 그 말의 왕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렀다.
‘그대들은 지금 내 등에 타라. 또는 내 몸이나 다리를 붙잡도록 하라.’
상인들 가운데 어떤 이는 등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리, 허벅지 등 손닿는 대로 모두 붙잡았다.
마침내 말의 왕은 상인들을 태운 뒤에 구슬픈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라 질풍과 같이 달렸다.
바로 이 때 그 여자 나찰귀들은 그 말왕의 구슬픈 소리와 질풍같이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상인들을 찾았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두루 찾아본즉 모든 상인들은 말왕의 등에 타고 또 다리와 발, 모든 갈기와 털을 붙잡고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멀리서 발견하였다.
그러자 그 나찰귀들은 급히 아들딸을 안고 쫓아와 바닷가에 이르러 슬픈 소리로 울며 크게 괴로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이제 우리는 남편이 없어졌습니다. 그대들이 바로 우리의 남편이 아니었습니까? 당신들이 예전에 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빠져 다 죽게 되었을 때 우리들이 당신들을 건져 주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남편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우리를 저버리고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당신들은 이제 보니 은혜도 의리도 없는 이들이었구려.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고 은혜를 갚으려 생각하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당신들 옆에
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제 참회합니다. 지금부터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을 테니 당신들, 선량한 남편들이여, 가슴속에 원한이나 원망, 분노를 품지 말고 어서 속히 돌아오십시오. 우리를 버리고 지금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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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한단 말입니까? 남편들이여, 만약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면 이제 이 아들딸이나 거두어 데려가십시오.’
나찰귀들이 이렇게 사랑이 흘러 넘치는 말을 하였지만 계시 말왕은 곧 그 5백 명의 상인들을 데리고 편안히 큰 바다를 건너 염부제에 이르렀다.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시 말의 왕 계시가 누구인지 의심되는가? 그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다른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 그것은 바로 나의 몸이었다. 5백 명의 상인 가운데 우두머리는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사리불 비구였고, 그 때의 5백 명의 상인들은 바로 산사야 파리바사가의 5백 명의 제자들이었다.
이 5백 명의 상인들은 말할 수 없는 재앙을 만나 이런 나찰의 곁에 떨어졌다가 여자 나찰귀들이 마음대로 처분하려 하였으나 그 때에도 이 사리불은 그들을 나에게 데리고 왔으며 나는 그 때 그들을 재앙에서 구해내어 대해를 건너 저 언덕에 이르게 하였다. 오늘날에도 또 다시 산사야가 가르친 그릇된 견해라는 험난한 들판에 떨어진 것을 사리불이 그들을 교화시켜 나에게 데리고 왔으며 나는 그릇된 견해의 험한 들판 속에서 그들을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해주었
다.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과거에 아직 성불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렇게 큰 이익을 지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처님께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희유한 생각을 일으켜라. 너희들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
51. 단불신인행품(斷不信人行品)
이 때 세존께서는 장로 사리불과 목건련을 위시한 5백 명을 구제하여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준 뒤에 마가다국에서 차례로 유행(游行)하여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모든 촌락과 성읍을 지나 마음대로 가시다가 다시 왕사성에 이르셨다.[마하승기사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가섭유사(迦葉惟師)는 다음과 같이 다르게 말을 하였다.
여래께서는 남쪽 산 있는 곳에 이르러 이곳저곳을 다니시다가 다시 왕사성으로 돌아오셨다. 당시에 큰 위신이 있는 사람과 큰 위력이 있는 많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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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여래의 처소에서 청정한 행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비방하며 외쳤다.
“사문 구담은 장차 우리들로 하여금 자식도 없게 하고 우리들로 하여금 집안을 파괴하고 흩어지며 후손이 끊어지게 하려는 것인가. 사문 구담은 이미 천 명의 소라상투 사람들을 강제로 출가시키더니 이제는 산사야 파리바사가에게서 5백 명의 제자들까지 끌고 와서 출가시켰다. 그리고 지금 또 마가다국에 살고 있는 모든 큰 위덕과 큰 위력이 있는 여러 선남자들도 그곳에 가서 청정한 행을 수행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비구들이 자기들 앞에 오기만 하면 각기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 큰 사문은 남산을 넘어
다시 여기에 찾아 왔구나.
이미 파리바사가들을 제도했으면서
이제 또 누구를 데려가려 하는가.
그 때 그 모든 비구들은 사람들의 이런 게송을 듣고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곧 부처님 처소인 대숲 동산에 나아가 그 게송을 들은 대로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들은 걱정 말라. 이런 소리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니 7일이 되면 그런 소리는 자연히 없어질 것이요, 그렇게 되면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있어 너희들에게 게송으로 말하기를
이 큰 사문은 남산을 넘어
여기 다시 찾아 왔구나.
이미 파리바사가들을 제도했으면서
이제 또 누구를 데려가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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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읊거든 너희들은 이런 게송으로 대답하라.
세존 대장부께서는
사람을 법답게 데려가시니
이미 법답게 행하거든
지혜 있는 이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
어느 날 비구들은 이른 아침해가 동쪽에서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모두 이런 게송을 읊으면서 서로 말하였다.
이 큰 사문은 남산을 넘어
또 다시 여기 찾아왔구나.
이미 파리바사가들을 제도했으면서
이제 또 누구를 데려가려 하는가.
비구들은 이 게송을 듣자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이 게송을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석자(釋子)는 사람을 제도하되 법답게 가르치니 법답게 하지 않는 적이 없구나.’
이런 까닭에 그 소리는 7일 만 떠돌았을 뿐 7일이 지나자 완전히 사라졌으며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그런 게송이 들려오지 않았다.
52. 설법의식품(說法儀式品) ①
그 때 또 여러 외도 파리바사가들은 5일마다[五日五日] 항상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설법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이런 까닭에 모든 파리바사가 외도들은 큰 이양(利養)을 얻고 공경과 존중을 받았다.
이 때 마가다국 왕사성 빈바사라왕은 부처님의 법에 대해 깊이 바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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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내었으므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외도 파리바사가는 5일마다 항상 집회를 하고 설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법을 듣는다. 이런 까닭에 모든 외도들은 큰 이양을 얻고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공양하고 공경한다. 이제 나는 모든 스승들을 모아 5일마다 설법하도록 권해야겠다. 그리고 나도 직접 그 대회에 참가해야겠다. 만약 사람들이 그 대회에 내가 참석하는 것을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요, 이런 인연으로 우리 스승은 큰 이양을 얻게 될 것이며,
세간에서 그 분을 더욱 존중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자세하게 이 일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런 제안을 따라서 비구승들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5일마다 그대들이 큰 법회를 열어서 다른 이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법의 뜻을 연설할 것을 허락한다.”
비구들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을 설하고 어떤 법을 설하지 말아야 합니까?”
비구들의 이런 말을 들으시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내 이제 5일마다 법회를 열 것을 허락하였으니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법의 공덕을 찬탄하고 승가의 공덕을 찬탄하고 믿음의 공덕을 찬탄하라. 내지 간략히 말하면 계행과 많이 듣는 공덕을 찬탄하고 보시 행할 것을 찬탄하고 지혜를 행할 것을 찬탄하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행함을 찬탄하고 욕심이 적음을 찬탄하고 두타의 행을 찬탄하고 마을과 성읍을 멀리 떠나 항상 한가한 곳에 머무는 것을 찬탄하고 미묘한 행을 행하는 것을 찬탄하라.
이익을 찬탄하고 정진을 행할 것을 찬탄하고 부모와 어른과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공양함을 찬탄하고 모든 선지식에게 공양함을 찬탄하라. 착한 말을 찬탄하고 모든 감각기관의 문을 잘 다스리는 것을 찬탄하고 모든 음식의 분량을 절약함을 찬탄하고 초야(初夜)와 후야(後夜)에 잠들지 않는 것을 찬탄하고 바른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찬탄하고 서로 받들어 섬김을 찬탄하고 서로 의논하고 물어 보는 것을 찬탄하고 듣고 깨닫는 것을 찬탄하고 스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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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으면 어기지 않고 받들어 행하는 것을 찬탄하고 법을 들으면 바로 아는 것을 찬탄하고 바른 법을 듣고 법에 따라 행함을 찬탄하라.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念佛]을 찬탄하고 법보를 생각하는 것[念法]을 찬탄하고 승보를 생각하는 것[念僧]을 찬탄하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念天]함을 찬탄하고 보시를 생각하는 것[念施]을 찬탄하라. 적멸을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아나파나(阿那波那)를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몸을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항상 이 몸은 깨끗하지 않다고 관찰하는 법[不淨觀]을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찬탄하고 음식에 대하여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이 세상에는 즐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라.
덧없다는 생각을 찬탄하고 괴롭고 텅 비었다는 생각을 찬탄하고 내가 없다[無我]는 생각을 찬탄하고 끊겠다는 생각을 찬탄하고 욕심을 버리는 생각을 찬탄하고 멸한다는 생각을 찬탄하라. 또 백골을 관찰하는 생각을 찬탄하고 뼈가 흩어진다는 생각을 찬탄하고 시체가 퉁퉁 붓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무너지는 생각을 찬탄하고 시체가 동물들에게 반쯤 씹어 먹혔다는 생각을 찬탄하고 흩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반쯤 불에 탔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불
에 타 시뻘겋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고 싫어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라.
또한 모든 공덕을 생각하는 것을 찬탄하며 또 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도분(覺道分:七覺支)을 찬탄하고 해탈문의 모든 해탈분(解脫分)을 찬탄하고 8승처(勝處)를 찬탄하고 3명(明)을 찬탄하고 또 6신통(神通)의 공덕을 찬탄하여 설하여라.”
불본행집경 제50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2. 설법의식품 ②
이 때 모든 비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5일마다[五日五日] 법회를 열도록 허락하셨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나아가 6신통의 모든 공덕을 설하는 것을 찬탄하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비구들은 5일마다 모여서 다 같은 소리로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고 나아가 6신통 등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은 각기 모여와 법문을 듣고 곧 서로 입을 모아 비구들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모든 스님들은 어째서 꼭 같은 한가지 소리로 설법하는 것일까? 마치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동자들이 합창하여 읽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구나.”
비구들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말을 듣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사실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모든 제자들에게 규칙을 정하니 한가지 소리로 법의 뜻을 찬탄하게 하지 말고 오직 말솜씨가 설법하기에 뛰어난 자에게만 하도록 청하여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머리가 좋지 않고 둔하고 결함이 있으면서도 구족계를 받지 못한 자에게 설법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시 비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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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욕을 하면서 기뻐하는 마음을 조금도 품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렇게 스승이라는 자들도 이러한데 하물며 스승이 아닌 사람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모든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또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오늘부터 나는 모든 제자들에게 규칙을 정하리니 머리가 좋지 않고 둔하고 결함이 있으면서 구족계를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는 만약 누군가에게 설법하도록 청하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미묘한 행을 모두 갖춘 사람이어야 하고 모든 대중들 가운데서 훌륭한 행을 성취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거듭 그 규칙을 말씀하셨다.
“말솜씨가 있고 법을 알며 나아가 오래 전에 『아함경』 등을 이해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 사람에게 설법하기를 청해야 한다.”
그런데 대중 가운데는 『아함경』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함경』만을 아는 사람에게 설법을 청하지 말고 나아가 수다라(修多羅)를 알고 마등가(摩登伽)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에게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도록 청해야 한다. 만약 대중 가운데 수다라를 알고 비니(毘尼)를 이해하며 마등가를 아는 이가 많거든 그 중에서 문자가 분명하고 말솜씨를 잘 갖춘 사람을 선택하여라.
또 대중 가운데서 현재 비구로서 문자를 분명히 많이 알고 말솜씨를 잘 갖춘 사람이 많으면 내 이제 허락하나니, 이들 비구를 하좌(下座)에서부터 차례로 보내어 대중을 위해 설법하게 하라. 첫째 사람이 피곤하면 다시 둘째 사람을 시키고, 둘째 사람도 피로하면 셋째 사람을 청하며, 셋째 사람이 피로하면 넷째 사람을 시키고, 넷째 사람이 피로하면 다섯째 사람을 시키며 내지 어느 정도 설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청하여 대중을 위하여
설법케 하라.
모든 비구들이 맨 땅에서 설법할 때 춥거나 더운 경우에는 법당을 짓고 법당 아래에서 설법할 것을 내가 허락한다. 그러나 만약 법당이 있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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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의 벽이 없어 바람이 먼지와 풀을 날려 비구들을 더럽히거든 나는 이제 사방의 벽을 세워 온갖 티끌과 풀을 막을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비구들이 법당에 있을 때 만약 그 바닥이 고르지 않거든 여러 가지 삼[麻]이나 풀이나 진흙으로 그 땅에 발라서 청정하고 아름답게 만들도록 하여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설법당을 세우고 땅에 진흙을 바르고 난 뒤에 설법당에서 부처님 말씀을 외우고 익히며 경행(經行)하니 발이 더러워졌다. 그리하여 이로써 비구들에게 발을 씻을 것을 허락하였다.
그 때 비구들은 너무나도 자주 발을 씻으므로 다리와 발에 통증이 왔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향물을 땅에 뿌려 먼지와 티끌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라.”
그러나 그 땅이 마르자 다시 발이 더럽혀졌다. 부처님께서는 또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쇠똥과 향수를 법당 바닥에 바를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물이 마르자 쇠똥이 부서져 다시 발을 더럽혔다. 부처님께서는 또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부드러운 풀이나 혹은 또 삼[麻]을 가져다 땅 위에 깔도록 하여라.”
그 때 모든 사람들은 그 법사들이 말솜씨가 능숙하여 설법을 아주 잘 하는 것을 보자 향과 꽃을 가져와 그 위에 뿌렸다. 하지만 비구들은 그런 것을 받지 않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니 그 이유는 부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이다. 출가한 사람은 바르는 향이나 가루 향이나 모든 꽃다발을 지녀서는 안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 나서 또 비난하며 말하였다.
“이 비구들은 이런 공양도 달갑게 받지 않는데 하물며 더 나은 것이겠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여, 만약 재가 신자가 크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길조로 여기는 마음 때문에 온갖 향이나 꽃과 바르는 향이나 가루 향, 온갖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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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지고 와서 법사 위에 뿌리면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 때 재가 시주자들은 갖가지 재물과 보배, 가사 등을 가지고 와서 법사들에게 공양하였다. 그러나 비구들은 두렵고 부끄러워 그 물건을 받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다시 비방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문과 모든 석가(釋迦)의 제자들은 약간의 가벼운 물건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하물며 더 나은 물건이겠느냐.”
모든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 사실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여, 만약 속인들이 모든 재물과 또 가사 등을 가지고 와서 법사에게 받들어 올리고 크게 기뻐한다면 나는 그 보시 물건 중에서 필요한 것은 받고 필요치 않은 것은 돌려보낼 것을 허락한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설법할 때 대부(大部)를 취하여 암송하는 자가 많았는데 어떤 이는 한 달이 가도록 다 마치지 못하여 그만 두자니 창피 당할 것이 두렵고 끝까지 다 외우자니 몸과 마음이 매우 피로하였다. 그래서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이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대중을 위하여 설법할 때는 때를 알아야 한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이 설법할 때 아름다운 음성으로 법의 이치를 연설하였는데 어느 비구 한 사람은 창피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부처님께 그 사실을 여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내 이제 아름다운 음성으로 설법하기를 허락한다.”
그런데 비구들은 모든 경 가운데서 의미를 요약하여 다른 이에게 설법하면서 차례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자 비구들은 부끄럽고 두려우며 경율을 어길까 염려되어 이 사실을 자세하게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이 편의에 따라서 모든 경 가운데 중요한 뜻을 취하고 문구를 정리하여 다른 이에게 설법하는 것을 허락하니 다만 그 가운데 뜻만 취할 것이요 그 경전의 근본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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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법사들이 설법할 때였다. 대중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소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대중들을 기쁘거나 즐겁게 해 주지 못하였다. 이때 비구들은 이 일을 자세하게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두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내 이제 모든 대중 가운데 높은 자리를 마련할 것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법사를 청할 때 그가 그 자리에 올라가 앉아 설법하여 모든 대중들에게 들리게 해야 한다.”
그런데 대중들이 모여 법회를 여는데 너무 많이 모여서 법사의 목소리가 끝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비구들은 또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그보다 갑절 더 높은 자리를 마련하여 설법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오르게 하여라.”
그런데 대중들의 수가 갑절로 불어났으므로 여전히 법사의 목소리가 끝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또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이 서 있거나 걸어다니면서 편한 대로 설법할 것을 허락한다.”
어느 날 비구들이 하나의 법당에 모였는데 비구 두 사람이 경법을 연설하여 서로 방해가 되었다. 그리하여 곧 법당을 하나 더 지어서 두 법당 안에서 각각 따로 설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방해가 되었으니 이쪽 법당에 있던 비구들을 이끌고 저쪽 법당으로 가기도 하고 저쪽 법당에 있던 비구들을 서로 맞아들여서 이 법당으로 오게 하는 등 왕래가 뒤섞이다 결국 대중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나 사람들이 오가느라 법사(法事)가 끊어지고 혹 어떤 비구는 이
법문을 즐겨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이 사실을 부처님께 자세히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지금부터는 한 법당 안에서 두 사람이 설법하지 말며, 또한 두 법당이 서로 가까워 소리가 섞이어 서로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이쪽 대중이 저쪽에 가고 저쪽 대중이 이쪽에 와서도 안 되며, 또한 법문을 미워하거나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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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들으려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만약 법문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법답게 다스려야 한다.”
어느 때 대중 가운데 법사(法師)가 없었다. 모든 비구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자세하게 여쭈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만약 법사가 없으면 경을 잘 외우는 사람을 불러 자리에 앉히고 외우게 하라.”
그런데 대중 가운데는 경전을 외우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비구들이 이 일을 자세하게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이제 차례로 외울 것을 허락하니 위[上座]에서부터 차례로 외우거나 아래[下座]에서부터 차례로 외워 나아가 하나의 4구게를 독송하는 사람에게까지 이르게 하라.”
그 뒤 모든 법사들이 경전을 암송하였는데 그 설법하는 것이 마치 세속의 노래와 같았으므로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을 받았다.
“이런 설법은 우리 속인들이 노래 부르는 것과 다름이 없구나. 머리를 깎은 사문들이 어찌 노래 부르는 것처럼 설법을 하는가.”
모든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자세히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만약 비구들이 세속의 노래에 의지해 법을 설하게 되면 다섯 가지 손해가 있을 것이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스스로 노랫소리에 물듦이요, 둘째 남이 들으면 마음이 물들어 이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요, 셋째 노랫소리가 커지거나 잦아듦으로써 문구(文句)를 잃음이요, 넷째 속인이 들으면 비방하고 조롱함이요, 다섯째 미래세 사람이 이런 일을 듣고는 곧 세속을 따라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의식이라고 여기게 된다. 만약 비구들이 세속의 노래에 부쳐서
법을 설한다면 이런 다섯 가지 손실이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세속의 노래에 의지하여 법을 설해서는 안 된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앞에서와 같은 법 중에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너희들이 머물거나 다니고 있는 곳에서 화상 아사리에게 먼저 물어야만 한다.”
어느 때 비구들이 다른 지방의 성읍과 마을로 나가려 하였는데 화상 아사리들은 그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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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이여, 그대들은 나가지 말아라.”
그러나 그 비구들은 끝내 말을 듣지 않고 그곳으로 나갔다가 도중에서 도적 떼를 만나고 말았다. 비구들은 도적에게 붙잡혀서 주먹으로 맞거나 발로 밟히는 등 곤욕을 치르고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옷과 발우를 빼앗긴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비구들이 승가람에 돌아와 이 사실을 말하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대중들을 모으고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화상 아사리들은 진실로 너희들이 먼 마을을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비구들은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일이 옳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화상 아사리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다른 마을로 나갔단 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는 인연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 과거세에 이 염부제 안에 5백 명의 상인(商人)들이 있었다.
그 상인들 가운데 자자(慈者)라는 이름의 우두머리가 있었으니 그가 무리들을 인도하는 자였다. 그 모든 상인들은 다 함께 모여 서로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물자와 도구를 준비하여 저 대해에 들어가 재물을 구하자. 그래서 바다에서 온갖 진귀한 보배, 이른바 마니ㆍ진주ㆍ흰 마노ㆍ산호와 금ㆍ는 등의 온갖 보배들을 건져서 집으로 돌아오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7대에 이르도록 집안이 크게 부귀하여 재물을 가지고 권속을 양육하여 많은 사업의 기초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5백 명의 상인들은 바다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였으니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자금이 3천만에 달하였다. 1천만으로는 여행길에 필요한 양식을 장만하고, 또 1천만은 상인들이 본 밑천을 삼았으며, 나머지 1천만으로는 배를 빌리고 뱃사공의 급료로 마련하였다. 이렇게 하여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는 각각 마음을 편안히 하여 팔관재를 받았다. 팔관재를 받은 뒤에는 각기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와 처자, 일가 사람들에게 작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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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하였다.
자자(慈者)도 어머니에게 나아가 이 일을 아뢰었다. 그 때 그의 어머니는 누각 위에서 머리를 깨끗하게 감고 팔관재를 받아 법을 간직하며 고요하게 머물러 있었다.
자자는 그런 어머니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저는 바다로 나아가서 여러 재물과 보석을 구해 오려 합니다. 그곳에 가서 마니ㆍ진주ㆍ파리와 내지 금ㆍ은과 같은 온갖 보물들을 구해오려고 합니다. 이 보석들을 가지면 우리 집은 7대에 이르도록 부족함이 없이 쓸 수 있고 부유해지며 풍부한 재물로 부모님과 처자와 모든 가족들을 공양할 수 있으며 또 보시를 하여 여러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상인의 우두머리인 자자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여 바다에까지 나아가려 하느냐? 지금 우리 집안은 크게 부유하고 넉넉하며 모든 재물을 다 갖추고 있고 어느 하나도 모자라는 것이 없으며, 7대에 이르도록 모든 이들을 넉넉하게 공양할 수 있고 겸하여 보시를 행하여 모든 공덕을 지을 수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저 큰 바다에는 높은 파도와 태풍의 위험이 있고 저미라 고기와 바다 신의 분노가 있으며 여자 나찰귀의 위험과 같은 온갖 무서운 것들이 있
다. 사랑하는 아들 자자야, 바다에는 이런 험난함이 많이 있는데다가 지금 나는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말년에 이르렀는데 사랑하는 아들인 네가 떠나면 다시 서로 만날 수 있을지도 기약할 수 없다. 지금 비록 내 목숨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죽을 날이 가까이 왔다.’
어머니는 이렇게 두 번 세 번 은근하고 간절하게 만류하였지만 아들인 자자는 거듭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저는 반드시 바다로 나아가서 재물을 구해 올 것이며 그곳에서 온갖 보물을 캐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마니ㆍ진주와 내지 금ㆍ은을 가지고 와서 부모와 스승을 공양하고 널리 보시를 행하고 널리 공덕을 닦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곧 떠나려 하자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자를 껴안고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 자자야, 나는 네가 바다로 나아가서 보물을 캐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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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할 수 없구나. 우리 집안에도 엄청난 재물이 많지 않느냐? 우리는 모자라는 것이 없지 않느냐?’
그 때 자자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어머니는 지금 나의 이익을 좋아하지 않으니 틀림없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바다로 나아가 재물을 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분명 화를 입고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문득 성이 나서 결국은 제 어머니를 쳐서 쓰러뜨린 뒤에 어머니의 머리를 치고는 대중들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상인들과 함께 바닷가에 도착한 뒤에 바다의 신에게 제사하고 선박을 정비하고 다시 세 배의 값을 쳐서 다섯 사람을 고용하였으니 그 다섯 사람이란 이른바 고물[船尾]을 담당하는 사람, 돛대를 담당하는 사람, 새는 물을 잘 막는 사람, 뜨고 가라앉기에 능숙한 사람, 배를 잘 젓는 사람이다. 그들과 서로 적당하게 의논하고 드디어
배를 타고 재물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바다 한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배가 난파되어 5백 명의 상인들은 모두 물에 빠졌고 상인의 우두머리인 자자 한 사람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자자는 부서져서 떠다니는 나뭇조각 하나를 붙잡고 그 널빤지에 의지하여 힘껏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사력을 다하였다가 바람 부는 대로 파도치는 대로 떠다니다 어느 해안에 닿게 되었다.
그 해안의 이름은 비시파제파(毘尸波提婆)[수나라 말로는 화저(化渚)라고 함]였다. 자자는 그곳에서 나무 열매와 약초를 캐어 얼마 동안 목숨을 보전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자자는 그 물가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남쪽 가에 이르러 길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길을 따라 얼마 동안 걸어가니 멀리 은(銀)으로 된 성이 하나 보였다.
그 성은 매우 아름답고 미묘하고 희유하여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망루(望樓)며 성가퀴, 참호 등이 성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천장에 난 창문과 난간이며, 온갖 보석이 박힌 누각과 대전(臺殿), 그리고 작은 별채들, 한쪽에 치우친 복도 위에는 보배 장막이 덮였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또한 온갖 당번과 일산이 세워졌고 보배 깃대가 솟아 있으며 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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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에는 온갖 미묘한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가 놓여 있었다. 또 그 성 주위에는 여러 동산 숲ㆍ샘ㆍ못ㆍ도랑들이 있어 즐길 수 있는 곳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 성 중앙에는 희락(喜樂)이라는 이름의 보배 전각이 하나 있었는데 이 전각은 금ㆍ은ㆍ유리ㆍ자거ㆍ마노ㆍ호박ㆍ진주 등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보석들로 이루어졌다.
이 때 그 성에서 네 명의 여자가 나왔다. 이 여자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단정하여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게다가 가장 좋고 화려한 장식품으로 그 몸을 치장하였다. 여인들은 자자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자자여,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이 성까지 오셨습니까? 이 성에는 주인이 없으나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다 갖추어져 있어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성안에는 희락이라는 이름의 보배 전각이 있는데 7보로 만들어졌으며 저희들 네 사람은 그 전각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잠들며 뜻이 깨끗하고 말은 진실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말소리도 온화하고 청아합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이 성에 들어와 보배 전각에 오르셔서 우리와
함께 즐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곳에는 남자가 없으니 함께 쾌락을 누리며 맘껏 어울립시다. 당신은 마음대로 머무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모든 물건을 가지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자는 그 성에 들어가 남자가 없는 보배 전각에서 그 네 명의 여자들과 함께 5욕락을 마음대로 즐겼다. 이렇게 하여 몇 해를 보내고 다시 백 년을 보내고 천 년을 보내도록 마음껏 즐거움을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네 명의 여자들은 자자에게 말하였다.
‘어진 분이시여, 당신은 이곳에서만 머물되 다른 성에는 가지 마십시오.’
그러자 자자는 곧 의심이 일어났다.
‘어째서 이 여자들은 나에게 이 성에서만 지내고 다른 성에는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제 여자들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이 길을 따라 다른 곳으로 나가보아야겠다. 그래서 이리저리 다니며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를 직접 알아내 봐야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알아낸 뒤에 적당하게 대처하리라.’
그리하여 자자는 그 여인들이 잠든 틈을 타서 조용히 일어나 그 보배전각을 내려와 두루 돌아다니다가 동쪽 문으로 나왔다. 그 성을 두루 돌아 남쪽에 이르자 길이 하나 보였다. 그는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황금으로 된 성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성은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는데 둘레에는 맑은 물이 찰랑이고 있는 온갖 샘ㆍ못ㆍ도랑이 있었다. 성안에는 상취(常醉)라는 이름의 보배전각이 하나 있었는데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보기 좋았으
며 금ㆍ는 내지 자거ㆍ진주 등의 7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때 그 성에서 여덟 명의 여자가 나왔는데 한결같이 아름답고 고우며 어여뻤고 가장 좋고 가장 미묘한 온갖 장식물로 그 몸을 치장하고서 자자 앞으로 나아와 이렇게 말하였다.
‘착하신 자자여, 어찌 이런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그리고 또 말하였다.
‘이 성은 모두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온갖 물건과 재물을 완벽하게 갖추었습니다. 성 중앙에는 상취라는 이름의 보배 전각이 있는데 7보로 이루어졌습니다. 저희들 여덟 여자는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잠듭니다.’
자자는 또 그 성에 들어가 보배 전각에 올랐다. 그리하여 그 여덟 명의 여자들과 함께 남자가 없는 곳에서 모든 5욕의 즐거움을 다 누리면서 여인들과 함께 즐기며 몇 해를 지냈다. 그리고 몇 백천 년이 지나도록 마음대로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들이 자자에게 말하였다.
‘그대 자자여, 당신은 여기에서 다른 성으로 가지 마십시오.’
그러자 자자는 다시 의심이 생겨 가만히 도망쳐 나와 여러 곳을 둘러보며 다니다가 멀리 파리 보석으로 이루어진 성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성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 성안에는 의요(意樂)라 불리는 보배 전각이 하나 있었는데 금ㆍ은ㆍ유리와 진주 등의 칠보로 이루어진 매우 훌륭하고 아름다운 전각이었다. 이때 그 성에서 열여섯 명의 여자가 나왔다. 한결같이 얼굴이 아름답고 어여뻐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보배 영락으로 그 몸을 치장하였고 나아가 또 자자에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자자여, 어찌 먼 길을 무릅쓰고 오셨습니까? 이 성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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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게 파리 보석으로만 만들어졌으며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또 이 성안에는 의요라고 하는 보배 전각이 하나 있는데 7보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열여섯 명의 여자들은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잠듭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앞에서처럼 자자에게 이곳에 머물러 주기를 청하였다. 자자는 곧 그 성에 들어가 보배 전각에 올라 열여섯 명의 여자들과 함께 남자가 없는 곳에서 온갖 애욕과 쾌락을 고루 누리면서 함께 즐겼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나고 몇 백천 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여자들이 역시 자자에게 말하였다.
‘제발 다른 곳으로 가지 마십시오.’
자자는 또 의심을 내어 그곳에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점점 나아가다 또 멀리 유리 보석으로 만들어진 성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성은 매우 아름다웠고 사방 벽이 견고하였으며 둘레에 있는 샘과 못에는 도랑에 가득 넘치도록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안에도 역시 보배 전각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을 범덕(梵德)이라 하였고 역시 훌륭하고 미묘하였으며 7보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 성에서는 서른두 명의 여자가 밖으로 나와 그를 맞았다.
그 여자들은 단정하고 어여뻐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고 미묘하고 특수하였으며 온갖 장식품으로 그 몸을 치장하였다. 그 여자들이 자자에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어떻게 먼 길을 무릅쓰고 오셨습니까? 이 성은 순전히 유리 보석으로만 만들어졌으며 온갖 물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청결한 행을 하여 허물이 없으며 항상 먼저 아뢴 뒤에야 행동하고 마음이 온화하고 착하고 말이 멋지고 유창합니다. 이제 당신에게 청하오니 이 성에 들어와 보배 전각에 오르셔서 함께 5욕락을 고루 즐기며 서로 어울려 놀고 쾌락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모든 필요한 물건은 저희가 여쭈어서 받들어 올리겠습니다.’
자자는 그 성에 들어가 보배 전각에 올라 그 서른두 명의 여자들과 함께 남자가 없는 곳에서 5욕락을 고루 누리면서 몇 해 내지 몇 백천 년이 지나도록 즐겁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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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서른두 명의 여인들이 역시 자자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분이시여, 당신은 이 성을 나가 다른 성으로 가셔는 안 됩니다.’
그러자 자자는 문득 또 의심을 내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여자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이 성을 나가 다른 성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이제 여자들이 잠든 틈을 타서 이 길을 따라 조용히 나가 보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도착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알고 나서는 이치대로 행동하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자는 여인들이 잠든 틈을 타서 조용히 일어나 보배 전각에서 내려와 성의 동쪽 문으로 나와서 그 성을 빙 돌아 이윽고 성의 남쪽에 이르니 길이 하나 있었다. 그가 길을 발견하고서 길을 따라갔는데 조금 가다 보니 멀리 철로 만든 성이 하나 보였다.
이 성의 사면에는 각각 문이 있었지만 성안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는 물론이요 어린 소년 소녀들조차도 나와서 자자를 맞이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직 들리는 것이라고는 이런 소리뿐이었다.
‘누가 굶주리고 누가 목마르며 누가 헐벗었는가? 누가 급히 달아나며 누가 멀리서 와 피곤한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탈 것인가?’
자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앞서 이미 은으로 만들어진 성을 발견하였는데 이때 그 성에서 네 명의 여자가 나와 나를 맞았고, 또 금으로 만들어진 성에 갔을 때에도 그 성안에서 여덟 명의 여인이 나와 나를 맞았고, 파리보석으로 만든 성에 갔을 때도 열여섯 명의 여자들이 나와 맞았으며, 유리보석으로 만든 성에 갔을 때에도 서른두 명의 여자들이 나와서 나를 환영하고 맞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이 성에는 그 어떤 남자나 여자, 어린 소년 소녀들조차도 나와서 나를 맞이해 주는
이가 없고 오직 (누가 굶주리고 누가 목마르며 누가 헐벗었는가, 누가 급히 달아나며 누가 먼 길에서 와서 피로한 사람이고 나는 무엇을 탈 것인가) 하는 불쾌한 소리만 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 성에 들어가면 곧 이 소리가 누구의 음성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자가 그 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성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의 문이 곧 닫혔다. 순간 자자는 겁이 나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등골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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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해져 이렇게 말하면서 이리 저리 도망쳐 달아났다.
‘나는 이제 망했구나. 나는 이제 끝장났구나.’
그가 사방을 도망치고 있을 때 한 사람을 발견하였는데 이 사람은 머리에 쇠바퀴[鐵輪]를 이고 있었다. 그 쇠바퀴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불꽃이 사납게 타오르고 있어 너무나도 끔직하였다. 자자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당신 머리 위의 쇠바퀴는 누가 굴린 것입니까? 어찌하여 불덩이처럼 보기에도 두려울 정도로 불꽃이 사납게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죄인은 대답하였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시오? 나는 상인의 우두머리인 구빈타(瞿頻陀)라는 사람이오.’
자자가 물었다.
‘당신은 지난 과거에 무슨 죄업을 지었기에 그런 죄업의 인연으로 이토록 불꽃이 사납고 엄청난 열기를 지닌 쇠바퀴를 머리 위에서 굴리는 것입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였다.
‘나는 지난 옛날 마음에 분노를 품고 화를 내며 어머니의 머리를 때렸으므로 이런 죄업 인연으로 큰 쇠바퀴를 받아 이토록 치열하고 이토록 시뻘건 불길이 머리 위에서 도는 것이오.’
자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자기의 죄업을 기억해내고 슬피 울고 통곡하며 뉘우치고 자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나는 잡혔으니 사슴이 우리 안에 든 것과 같구나.’
이 때 그 성에는 파류가(婆流迦)라는 이름의 야차 하나가 성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그 야차는 상인의 우두머리 구빈타의 머리 위에 씌어져 있던 사납게 불타는 쇠바퀴를 들어 자자의 머리 위에 씌웠다.
그 때 자자는 머리 위의 쇠바퀴가 너무나도 크고 사납게 불타올랐으므로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는 사납게 타오르는 불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기 어려워 곧 게송으로 야차에게 물었다.
이 성 둘레에 네 문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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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불꽃이 사나워 사람을 위협하더니
내 이제 이런 구속을 당하니
마치 사슴이 깊은 우리에 든 것 같구나.
착하다, 그대 야차에게 물으니
이런 쇠바퀴를 어찌 나에게 씌우는가.
사나운 불길이 꼭 불덩이 같아
이제 내 목숨은 끊어지리라.
내 먼저 희락 전각을 거쳤고
또 다시 황금성 상취궁(常醉宮)에 들었고
또 파리성 의요전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범덕궁에서 살았다네.
먼저 은성에 들어가 네 여인을 만났고
금성에서는 여덟 여인을 만났으며
파리성에서는 열여섯 여인과 만나고
또 유리궁에서는 서른두 명의 여인을 만났네.
이렇게 이런저런 이들을 만났는데
차례로 만날 때마다 더 훌륭하였거늘
이와 같은 것을 만난 사람이
지금 어찌하여 무서운 쇠바퀴를 만났는가.
내 탐욕으로 만족할 줄 몰랐으므로
이렇게 괴롭고 험한 재앙을 지금 만났구나.
내 옛적 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쇠바퀴가 머리 위에서 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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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덩이처럼 사납게 불타오르니
이제 내 목숨을 끊으려 하는구나.
야차왕이여, 제발 불쌍히 여겨서 대답하라.
몇 년이나 이 쇠바퀴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러자 성을 지키는 야차가 자자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 그대 어머니 정계(淨戒)를 지녔는데
그대는 발로 그 머리를 밟았도다.
이와 같은 업보의 인연으로
이제 쇠바퀴가 머리 위에 도는 것이다.
불덩이처럼 사납게 불타오르고
불꽃이 사납게 튀어 오르니 끔찍하리라.
쇠바퀴가 그대 머리 위에서 도니
그대의 몸과 목숨 끊기고 또 끊기리라.
이렇게 단 하루도 모자라지 않는
6만 년 동안 꼬박
이 바퀴는 그대 머리에 있으리니
이 사실은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곧 게송을 읊으셨다.
좋은 벗이 어떤 이에게 이익을 주어도
그는 도리어 벗에게 분노로 갚는다면
그는 뒤에 이런 재앙을 받으리니
마치 자자가 성내고 원한을 품음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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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도리어 악을 주고
죄 주지 않을 것인데 다시 죄를 주면
그는 뒤에 이런 재앙을 받나니
마치 자자가 성내고 원한을 품음과 같네.
자심(慈心)을 일으키는 자에게 오히려 틈을 노리고
은혜 입은 곳에 은혜를 갚지 않으면
그는 뒤에 이런 재앙을 받나니
마치 자자가 성내고 원한을 품음과 같네.
업력은 먼 데서는 끌어 가져오고
업력은 가까운 데서는 끌어 가져가네.
업력은 사람을 끌고 여기 저기 지나니
그가 저지른 짓에 따라 고락을 받는다.
땅도 허공도 바다도 아니요
또한 산 속이나 바위들 속도 아니다.
어느 지방 그 어느 곳이라도
이 업을 받지 않고 벗어날 곳은 없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때의 자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다른 생각을 내지 말라. 그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다. 나는 그 때 바다에 들어가려고 8관재계를 받았으며 그 업보 인연의 힘으로 이렇게 네 가지 보배성을 만나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나쁜 마음으로 분노와 원한을 품고서 어머니의 머리를 밟은 인연으로 6만 년이 지나도록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거대한 쇠바퀴의 괴로움을 받았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여
, 인과 업보란 헛되게 받음이 아니라 다만 중생이 선업ㆍ악업을 지었으면 그 업의 인연을 따라 이 보를 받는다. 이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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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업보는 반드시 받는 것이니 몸의 업을 깨끗하게 하고 입의 업을 깨끗이 하며 뜻의 업을 깨끗하게 하여라. 비구들이여, 만약 그대들 스스로가 어리석어서 어떤 것이 죄인지 어떤 것이 복이며 어떤 것이 착한 것이고 착하지 않은 것인지 가리지 못하겠거든 스승이나 화상 아사리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런 뒤에 곧 성읍 촌락으로 갈 것이며 만약 화상 아사리가 허락하지 않는데 자기 마음대로 가는 자는 법답게 공경하지 않고 효순하지 않은 죄로 다스려야 할 것
이다.”
53. 시기불본생지품(尸棄佛本生地品) ①
그 때 보살께서 우루빈라 강 언덕에서 고행을 하며 마음대로 앉고 누우며 떨어진 옷을 입고 수용기(隨用器)를 받아서 하루 동안에 참깨나 혹은 멥쌀ㆍ팥ㆍ녹두ㆍ콩ㆍ찹쌀ㆍ푸른 콩과 같은 곡식 한 톨만을 먹었다.
한편 수두단왕(輸頭檀王)은 보살을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내 아들은 지금 어느 곳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느 날 몰래 사신을 보내어 보살이 어디를 다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곳을 찾아가 보도록 명하였다.
“경은 지금 내 아들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어서 나에게 보고하라.”
사신들은 이 칙명을 받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감히 그 뜻을 어기지 않고 실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신들은 보살을 찾아 성을 나섰다가 우루빈라 처소에 이르렀다. 그들은 멀리서 보살이 힘들게 고행을 하는 것을 보고 곧 돌아가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착하신 대왕이시여, 지금 태자께서는 우루빈라의 처소에서 힘든 고행을 닦고 계십니다. 그 처소는 모두가 뜻에 맞게 갖추어져 있는데 나아가 하루에 푸른 콩 한 알씩만 잡수시고 지내십니다.”
이 말을 들은 수두단왕은 마음이 어두워지고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며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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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감에 휩싸여 곧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내 아들아, 몸도 연약한 네가 무슨 일로 이렇게 6년이나 지내고 있단 말인가.”
그 때 모든 사신들이 보살의 근황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대왕 앞에서 빠짐없이 보고하였다. 그런데 야수다라 태자비는 사람들이 태자가 고행하는 처소에서 힘든 고행을 하며 거처하는 곳은 뜻에 맞게 갖추어져 있으나 나아가 하루에 푸른 콩 한 알씩만을 먹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편안히 지내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참으로 옳지 않다. 내 남편은 지금 고행을 하고 있으니 나 또한 태자를 따라 고행을 하리라.”
야수다라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영락을 벗고 금ㆍ은ㆍ유리ㆍ진주ㆍ마니 보석과 온갖 보배와 바르는 향ㆍ가루 향, 온갖 꽃장식들도 모두 버리고 순전히 흰 옷만 입고 머리 비녀 하나만을 남기고 거칠기 그지없는 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그리고 겨우 목숨만 부지할 정도의 거친 음식을 먹었으니 이 세상에서 고행하는 그 어떤 이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였다.
훗날 세존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뒤의 일이다. 우타이가 부처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야수다라 비는 세존께서 숲에서 고행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세존을 본받아 고행을 잘 행하였는지 여느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타이에게 이르셨다.
“우타이야, 야수다라 석가족 딸은 이번 생에서만 내가 숲에서 큰 고행을 행하고 있을 때 나를 따라 고행을 하였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과거세에도 내가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었을 때 그때에도 나를 따라 커다란 고난 속에 들었었다.”
그러자 우타이가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일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우타이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옛날을 돌이켜 보면 과거세에 어느 고요한 아란야처가 있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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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의 숲과 골짜기에는 사슴의 왕 한 마리가 여러 사슴떼들을 거느리며 살고 있었다. 사슴왕은 사슴들과 함께 풀을 뜯어 먹으면서 이곳저곳을 노닐며 다녔다. 어느 날 사냥꾼 한 사람이 나무에 끈을 묶어 덫을 만들었는데 사슴의 왕이 그만 그 덫에 걸리고 말았다. 모든 사슴떼들은 제각기 달아나 버리고 말았지만 암사슴 한 마리는 사슴의 왕이 덫에 걸린 것을 보고는 도망치지 않고 곁에 머물렀다.
당시 사슴들은 사람들의 말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그 암사슴은 곧 게송으로 사슴의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슴왕이여, 온 힘을 다해서
다리와 머리를 떨쳐보십시오.
덫을 놓은 그 사람은
아직 여기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슴왕은 곧 게송으로 암사슴에게 대답하였다.
내 지금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덫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겠소.
가죽으로 줄을 엮었기에
점점 더 나를 죄어오고 있소.
아름다운 이 숲에는
샘물도 달고 풀도 고운데
제발 미래세에는
영원히 이런 재앙 받지 않았으면.
그 때 이런 게송이 있었다.
이 때 그 사슴 두 마리는
겁에 질려 함께 눈물을 흘렸네.
악한 사냥꾼이
칼과 창을 들고 다가왔기 때문이네.
불본행집경 제51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3. 시기불본생지품 ②
그 때 사슴왕은 멀리서 사냥꾼이 칼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곧 게송으로 암사슴에게 일렀다.
저기 사냥꾼이 이리 오는데
몸에는 검은 사슴의 옷을 입었네.
이제 반드시 내 껍질을 벗기고
살과 사지를 베어 갈 것이네.
그러자 암사슴은 사냥꾼을 맞으러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착하신 그대 사냥꾼이여
지금 풀자리를 깔고
먼저 내 가죽을 벗긴 뒤에
곧 사슴왕을 죽여주시오.
그러자 사냥꾼이 그 암사슴에게 물었다.
‘저 사슴왕과 너는 어떤 사이냐?’
암사슴이 사냥꾼에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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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남편인데 우리는 서로 지극히 사랑하고 공경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제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낸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먼저 나를 죽인 뒤에 사슴왕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 사냥꾼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참으로 어진 암사슴이로구나. 희유하고 희유하도다. 사슴이 이토록 큰 일을 하다니.’
사냥군은 암사슴에게 크게 기쁜 마음을 내어 곧 게송으로 암사슴에게 말했다.
짐승들이 사람의 말을 한다는 것을
태어나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네.
이 일도 세간에서 참으로 신기한 일이니
내 어찌 해치려는 마음을 내겠는가.
이제 너도 죽이지 않을 것이요,
네 남편까지도 놓아주리라.
이렇게 온전히 너를 살려주리니
너희 부부는 항상 서로 따르라.
그리고 사냥꾼은 그 덫에 가서 사슴왕을 놓아주었다. 암사슴은 사슴왕이 풀려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기쁨을 억제할 길 없어 게송으로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사냥꾼이여,
내 남편이 풀려난 것 보고
내가 기뻐 어쩔 줄 모르듯
모든 친척도 기뻐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타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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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그 사슴의 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나였고 그 암사슴은 지금의 야수다라였다. 야수다라는 그 때에도 나를 따라 큰 고통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또한 나를 따라 힘든 고행을 행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능히 해내는 것이다.”
한편 라후라는 과거 업보의 핍박을 받은 까닭에 6년 동안이나 모태(母胎)에 들어 있었다. 야수다라는 보살을 위하여 수심에 휩싸였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치장하지 않았다.
그 후 여래께서는 6년이 지난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다. 이때 수두단왕은 또 사신을 보내어 그 동안의 소식을 알아 오게 하였다. 그 사신들은 부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곧 수두단왕에게 보고하였다.
“대왕께서는 아십시오. 태자께서 지금 고행을 완전히 이루어서 마음에 만족함을 얻으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이 말을 듣고 따로 사신 두 사람을 보내며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이제 태자의 처소로 가라. 그곳에 가서 ‘너는 이제 고행이 성취되었으니, 어서 돌아와 나라 일을 다스리고 7보를 모두 갖춘 전륜왕이 되어라’는 나의 말을 태자에게 전하여라.”
그 두 사람은 법도에 맞게 왕명을 받들고 태자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태자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서 이렇게 아뢰었다.
“훌륭하고 성스러운 분이시여, 저희 두 사람은 정반대왕의 명을 받들어 ‘이제 고행을 다 성취하였으니, 빨리 돌아와 내 왕위를 이어받아 7보를 모두 갖춘 전륜왕이 되어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이렇게 태자님 계신 곳에 온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이렇게 게송을 읊어 대답하셨다.
만약 사람이 이미 번뇌를 조복했다면
세상에 조복하지 않음이 없네.
모든 부처의 경계는 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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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 / 1142] 쪽
자취도 없고 오고 감도 없다네.
만약 사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
사랑이 생기는 곳도 없다네.
모든 부처의 경계는 가없어
자취도 없고 오고 감도 없다네.
이 때 야수다라는 궁전에 있다가 태자가 이미 고행을 성취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왕위를 이어받고 나라를 통솔하고 인민을 다스리며, 전륜왕이 되리라는 말을 들은 뒤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태자께서 전륜왕이 된다면 나는 곧 제일 왕비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기쁨을 참지 못하여 온갖 향을 그 몸에 바르고, 값진 보배 의상을 입고, 온갖 영락으로 몸을 치장한 뒤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보배 침상에서 부드러운 침구를 덮고 잠을 자면서 태자를 기다렸다.
이 때 라후라는 6년이 지나 그 과거의 업이 다하였으며, 야수다라는 여러 가지 물건과 영양 있는 음식으로 자신을 잘 보살폈으니 이런 인연으로 라후라가 곧 태어났다.
라후라가 태어나자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은 수두단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아뢰었다.
“기이하옵니다, 대왕이시여. 야수다라 태자비께서 지금 옥동자를 낳으셨나이다.”
수두단왕은 이 말을 듣자 크게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나의 태자는 집을 버리고 출가한 지 6년이나 지났는데, 야수다라가 이제 아이를 낳았다니 어떻게 된 일이냐?”
그 때 석가족 제바달다가 이 소문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내 아들이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더욱 분노가 치밀어 석가족들을 한데 모아 놓고 말하였다.
“경들은 잘 들어라. 야수다라는 태자를 보호하지 않고 또한 나도 보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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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모든 석가족을 보호하지 않았다.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방자하게 제멋대로 행동하여 우리 종족을 욕되게 하였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는가?”
이 때 석가족들은 모두 같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야수다라가 집안을 욕되게 하고 더럽혔으니, 우리들은 가법(家法)을 욕되게 한 자를 다스리는 법으로 그를 다스려야만 할 것입니다.”
이 때 그 대중 가운데서 한 대신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땅히 그 머리를 깎고 매로 때린 뒤에는 몸에 표적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그 밖의 대신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땅히 그 귀를 자르고 코를 베어 버려야 합니다.”
“두 눈을 도려내야 합니다.”
“창으로 꿰어 나무 위에 매달아야 합니다.”
“빈 우물에 던져 넣읍시다.”
“불 속에 던져 넣읍시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기둥을 안게 해야 합니다.”
“손발을 묶어 소떼들에게 던져 넣어 밟혀 죽게 해야 합니다.”
“땅 위에 눕히고 흰 코끼리로 밟아 죽여야 합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톱으로 쪼개야 합니다.”
“마디마디 토막을 쳐 여덟 동강을 내야 합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내 이제 칙명으로 야수다라와 그가 낳은 아들을 사형에 처하리라.”
이 때 여래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신 뒤에 문득 야수다라와 그가 낳은 아들이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아셨다. 그리고 자비심으로써 근심이 되어 이리저리 돌아보셨다. 그 때 비사문천왕이 가까이 있다가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곧 붓과 타라나무 잎을 가지고 부처님 앞에 나아갔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손수 이렇게 글을 쓰셨다.
“대왕이시여, 야수다라가 낳은 아이는 저의 자식입니다. 제발 의심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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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문천왕은 세존에게서 그 글월을 받아 가지고 곧 수두단왕과 대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의심을 품고 있는 왕에게 그 글을 보여 주었다. 그 글은 증거가 되었고 효험이 있었다. 수두단왕은 이 증거를 보고 나서 깊이 생각하였다.
‘이 글은 틀림없이 내 아들 실달 태자가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
그리하여 수두단왕과 모든 대중들은 이런 인연으로 야수다라에게 크게 기쁜 마음을 내었다.
한편 야수다라는 대왕이 칙명으로 자기와 그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전해 듣고 목숨을 구하려고 서둘러 마하파사파제 교담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착하신 왕후시여, 저는 허물이 없습니다. 제가 낳은 아들은 태자의 핏줄입니다. 오래지 않아 태자께서 돌아오신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그 분이 돌아오신다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를 죽이려 하는 것은 헛되고 잘못을 저지르는 일입니다.”
마하파사파제 왕비는 야수다라의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크게 기뻐 곧 아수가(阿輸迦) 나무 숲에 있는 수두단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대왕이시여, 지금 야수다라 태자비가 저에게 와서 ‘저는 허물이 없으며 제가 낳은 아들은 태자의 핏줄입니다. 만약 태자가 돌아오게 되면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형을 집행하지 마시고 태자가 돌아올 때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왕비의 이런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이 말도 일리가 있으니 왕비의 말대로 우리들은 태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의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비록 이렇게 하기는 하였지만 수두단왕은 야수다라에게 여전히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의복과 장식품들도 조금만 공급하되 아무 곳에나 두어서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자 야수다라는 다시 마하파사파제 교담미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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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신 왕후시여, 저는 지금 동산에 나가 옛적에 모든 하늘에 정성을 드리던 그 사당에서 잠깐 제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왕후께서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하파사파제 왕비는 야수다라와 함께 라후라를 데리고 공양거리를 다 준비하고 필요한 집기들을 빠짐없이 가지고 사당으로 나아갔다.
그 신의 이름은 노제라가(盧提羅迦)라고 하였는데 이 동산의 이름도 신의 이름을 따라서 노제라가라 불렀다. 그 동산은 지난날 보살이 집에 있을 때 노닐던 곳이었다. 동산에는 큰 돌이 하나 있었는데 보살이 예전에 이 위에 앉곤 하였다.
야수다라는 그 돌 있는 곳에 도착하자 라후라를 데리고 돌 위에 누워서 잠시 쉬었다가 그 돌을 들어 물 속에 던져 넣고는 이렇게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의 지금 이 맹세가 진실하며 거짓이 아니기를 빕니다. 태자님 말고는 다른 남자와 관계하지 않았으며, 내가 낳은 아이는 진정으로 태자님의 핏줄이요 자식입니다. 만약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이 돌은 가라앉지 말고 물위에 떠 있게 하소서.”
이렇게 서원하자 그 돌은 파초 잎이 물 위에 뜨듯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이것을 본 대중들은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며 소란스럽게 떠들고 소리쳤고 노래부르고 춤을 추며 온갖 음악을 울렸다.
이 때 수두단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넘쳐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내 칙명을 내려 가비라성을 장엄하게 하고, 길거리에 있는 가시나 자갈, 모래나 흙, 쓰레기 등 깨끗하지 않은 것을 다 청소하고 향물을 뿌려 그 땅을 씻고, 곳곳마다 향로를 놓고 가장 묘한 향을 사르며, 그 향로 사이에 여러 가지 아름다운 빛의 보배 병을 놓고 그 병 속에 향수를 가득 채우고, 그 물에는 다시 향기로운 꽃을 꽂게 하였다. 그리고 그 향로와
보배 병 사이에는 다시 파초를 줄지어 늘여놓고, 온갖 비단줄을 달고 온갖 깃대를 세우고, 진주를 줄에 꿰어 여기저기 드리우고, 황금 방울이 달린 비단 그물을 그 위에 덮고, 또 해ㆍ달ㆍ별의 모양을 만들어 공중에 펼쳐 놓고, 보배 꽃 수실을 곳곳에 드리우게 하였다. 또한 가지가지 검은 소꼬리를 그 사이에 섞어서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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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기루의 건달바성과 같이 가비라성을 장엄하고 나서 라후라를 데리고 성에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모든 석가족의 종족과 권속들을 다 모이게 한 뒤 갖가지 필요한 재물과 음식을 준비한 다음, 아이의 이름을 짓도록 하였다.
그가 태어난 날, 즉 야수다라가 아이를 낳을 때는 라후라 아수라왕이 그 달을 잡고 먹었다가 찰나 사이에 도로 뱉어 놓은 때였다. 이런 까닭에 석가족 모든 친척들은 상의하기를, 라후라 아수라왕이 달을 잡아먹는 순간에 이 동자를 낳았으므로 아이의 이름을 ‘라후라’라고 부르기로 하였던 것이다.
라후라는 매우 귀엽고 예뻐서 그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살결은 순금색과 같은 황백색이고 정수리는 일산을 덮은 것과 같았으며, 코는 높고 반듯하니 마치 앵무새 같고, 두 팔이 길어 무릎 아래까지 드리워지며, 몸의 팔다리와 골격들은 조금도 빠지는 데가 없었으며 모든 감각기관을 완전하게 갖추어서 조금도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
이 때 수두단왕은 라후라를 위하여 유모를 네 사람 두었으니, 첫째는 안아주는 사람, 둘째는 씻겨주는 사람, 셋째는 젖을 먹이는 사람, 넷째는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이 네 명의 유모가 때를 잘 맞추어 기른 지 오래지 않아서 곧 지혜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파라나성에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셨는데 이때 모든 천신들이 서로 이 일을 알려 주니 이 소리가 서로서로 이어져서 범정천(梵頂天)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수두단왕은 태자 실달다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으며 깨달음을 증득하고 난 뒤에 파라나성에서 큰 법륜을 굴리며 천상과 인간을 위하여 법을 연설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세존이 갑절이나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떤 방법을 써야만 그 태자에게 모든 권속들을 어여삐 여기어 속히 이 가비라성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누구를 사자(使者)로 삼아서 보내야 좋을까? 누가 슬기롭고 꾀가 있어서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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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곧장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타이 국사(國師)의 아들과 차익(車匿)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실달과 흙장난을 항상 함께 하며 놀던 사이이다. 이 두 사람이 실달에게 갈 만하니, 나는 이제 이들을 사자로 삼아서 보내야겠다.’
수두단왕은 우타이 국사의 아들과 차익을 불러서 일렀다.
“너희 두 사람은 때를 알라. 지금 태자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바라나성에서 모든 천상과 인간을 위하여 큰 법륜을 굴리며 모든 법을 연설하고 있다. 너희들은 지금 그 실달에게 가서 나의 칙명을 말하고 ‘지금 너 태자는 어려운 고행을 하여 그 궁극에 이르렀고, 마침내 너의 마음에 만족하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다시 위없는 법륜을 굴리며 천상과 인간을 위하여 모든 법을 연설하고 있다. 훌륭하다, 태자여. 이
제 모든 권속들을 가엾게 여겨서 가비라성으로 속히 돌아오너라’라는 나의 마음을 전하여라.”
그러자 우타이 국사의 아들과 차익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실달다 태자께서 만약 오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은 또 어떤 방법을 생각해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그저 태자의 처분을 받기만 하여라.”
우타이 국사의 아들과 차익은 곧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의 칙명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들은 왕의 칙명을 받고 나서 그 발에 절하고 각각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 모든 권속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에 파라나성 옛 선인들이 거처하던 녹야원을 향하여 여행을 떠났다. 그리하여 그곳에 도착하자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정반대왕의 명을 받들어 이곳에 왔습니다. 대왕께서는 ‘훌륭하다, 태자여. 너는 이제 고행을 성취하고 너의 마음에 소원이 이루어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큰 법륜을 굴려 천상과 인간을 위하여 모든 법을 연설하는구나. 훌륭하다, 태자여. 이제는 권속들을 가엾게 여겨서 이곳 가비라성으로 어서 돌아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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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 / 1142] 쪽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게송을 읊으셨다.
만약 사람이 이미 번뇌를 조복하고 나면
세상에 조복 못한 것이 없다네.
모든 부처의 경계는 가없으니
자취가 없고 또 오고 감도 없다네.
만약 사람이 그물에 들지 않으면
사랑이 생기는 곳도 없다네.
모든 부처의 경계는 가없으니
자취도 없고 또 오고 감도 없다네.
그러자 우타이 국사의 아들과 차익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나의 모든 제자와 같이 출가의 법을 배우지 않겠는가?”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묻기 전에 그 두 사람은 이미 부처님을 향하여 출가하고픈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두 사람은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출가를 허락하시고 구족계를 주셨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시고 나서 보리좌에서 일어나신 뒤에 아직까지 출생지인 가비라성을 향하고 있지 않으셨다. 또한 어진 벗이었던 다섯 비구들과 또 장로 야수타와 그 친한 벗으로 파라나성 태생인 네 명의 부자, 즉 비마라(毘摩羅)ㆍ소파후(蘇婆睺)ㆍ부루나(富樓那)ㆍ가파반제(伽婆般帝) 들을 아직 교화하지 못하였던 때였다.
그 때 존자 야수타에게는 착한 친구들 50여 명이 있었고, 장로 부루나미다라니자에게도 그를 따르던 31명의 무리가 있었다. 또 장로 마하 가전연에게는 또 8만 4천 명의 대중이 따르고 있었고, 장로 파비야에게도 또한 뛰어난 무리들 30명과 함께 행동하는 친한 벗들 60인이 있었다. 또 미기야(迷
祇耶) 마을 태생인 장로 나비가서나야나(那毘迦栖那耶那) 등이 있었다.
그 때 또 한 바라문에게 딸이 두 명 있었는데 난타(難陀)와 바라(婆羅)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또 제바(提婆)라는 이름의 바라문과 그 아내가 있었으며, 장로 우루빈라가섭과 그 5백 명의 소라상투 범지들이 있었다.
또한 장로 나제 가섭과 소라상투 범지 3백 명이 있었고, 또 장로 가야가섭과 그 무리들은 2백 명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소라상투 범지들이었다.
그리고 장로 우파사나에게는 250명의 무리들이 있었다.
또한 어느 숲에 살면서 고행하던 5백 명의 선인(仙人)들에게도 법의 비를 내리고, 다시 왕사성의 빈비사라왕과 그 신하와 인민 등 무려 92나유타의 사람들과 장로 마하 가섭과 장로 사리불과 장로 목건련 등과 또 산사야 파리바사가 외도의 제자 5백 명 등 이런 대중들까지 모두 교화시키고 난 뒤에야 비로소 부처님께서는 출생지인 가비라성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앉으셨다.
우타이는 세존께서 출생지인 가비라성으로 얼굴을 돌리고 앉으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여러 천왕들이 장로 우타이에게 말하였다.
“장하다, 존자여. 지금 부처님께 모든 일가친척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고향인 가비라성으로 돌아가실 것을 청하여라.”
장로 우타이는 여래께서 이제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나시려는 뜻을 내셨음을 짐작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의복을 정돈하여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이고서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마치 때 못 만난 모든 수목과 같이
꽃과 열매를 맺고자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제때 아닌 꽃과 열매는 고운 빛이 없으니
부처님께서는 이제 갠지스강을 건너소서.
온갖 나무들에게서 꽃이 활짝 피어나면
그 꽃의 향기가 시방에 두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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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 / 1142] 쪽
꽃이 피고 나면 열매가 맺듯이
세존이시여,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절이 가장 좋고 가장 묘하여
샘과 못에서는 향기롭고 맑은 물이 샘솟고
온갖 새들이 숲에서 아름답게 지저귀며
만물이 즐거워하는 그 때가 되었습니다.
석가종족은 지난 옛날 발원하시기를
일체 대지를 내가 홀로 거두리라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출가하자 크게 근심에 잠겨
마음이 즐겁지 않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 모든 권속들이 조급히 생각하는 것은
세존의 아드님 라후라가 태어났기 때문이니
제발 그곳으로 가셔서 의심을 풀어 주소서.
대중들은 목마르게 보고싶어 합니다.
여래시여, 어머니의 양육하신 은혜를 생각하셔서
자비심으로 그 분을 가엾게 여기소서.
멀리서 오신 대성사(大聖師)를 보게 되면
크게 기쁨을 얻어 근심이 없어지리이다.
언제나 황금빛 몸의 내 아들이
이 가비라성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며
석가족의 대왕이신 수두단왕께서
지난날 이런 미묘한 원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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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3 / 1142] 쪽
세존께서 즐겁게 여행하시기에 다시없이 좋습니다.
필수(畢宿)1)가 달을 우러르며 돌듯이
수많은 석가족이 우러러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장로 우타이에게 말씀하셨다.
“너 우타이여, 만약 그러하다면 너희 두 사람은 먼저 가비라성에 가서 나의 친족인 석가족들에게 ‘이제 태자께서 고행을 성취하였다. 그대들을 가엾게 여기는 까닭에 머지 않아 이곳으로 오실 것이다’라고 알려주어라.”
우타이와 차익은 부처님의 명령을 받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서 작별 인사를 올린 뒤에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점차 나아가 가비라성 니구타숲에 이르렀으며 그 숲에 의지하여 잠시 머물러 있었다.
이 때 수두단왕은 화려하게 장식한 보배 수레를 타고 그 동산에 나가 유람하다가 멀리서 장로 차익과 우타이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몸에 가사를 입고 손에 발우를 든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 모습을 본 수두단왕은 모든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대신들이여, 저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머리를 깎고 몸에 물든 옷을 입고 손에 발우를 들었느냐?”
대신들은 왕에게 대답하였다.
“저 두 사람이 바로 실달 태자님의 제자들입니다.”
수두단왕은 이 말을 듣자, 즐거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슬픔으로 차 올라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들은 단정하고 훌륭하여 마치 황금으로 만든 상처럼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몸이 저 자들처럼 보기 싫게 변하였단 말인가.”
그리고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1) 28수(宿)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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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 / 1142] 쪽
“그대들은 이 두 사람을 나에게 보이지 않게 하라.”
이렇게 말하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대신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바로 국사의 아들이요, 다른 한 사람은 실달 태자의 시자(侍者)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그들을 차마 쫓아 버릴 수가 없었다.
수두단왕이 동산을 다 둘러본 뒤에 떠나려 할 때 신하들은 왕이 그 장로 두 사람을 보고 불쾌하게 여길까 두려워서 그들을 빈 담장 안에 있게 하였다.
한편 그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제 빨리 옷과 발우를 갖추어라. 나는 이제 여러 나라의 성읍과 촌락을 유행(遊行)할 것이며, 이것은 바로 모든 권속들을 가엾게 여긴 까닭에 나의 고향인 가비라성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그러자 장로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여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가셔야 할 때입니다. 참으로 정묘합니다. 세존이시여, 바로 지금이 여러 나라들과 성읍들을 유행하실 시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너 이제 이런 일을 듣고자 한다면 내 너를 위하여 시기(尸棄)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서 고향을 돌아보시기 위해 여러 곳의 성읍과 마을을 둘러보셨으며 그 때 있었던 아름답고 유쾌하였던 인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제발 비구들을 위하여 지난 옛적 시기 여래께서 고향으로 나아가시면서 여러 나라와 성읍을 둘러보시던 일들을 널리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그와 같이 기억하도록 해주십시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시기여래께서 고향을 유람하시던 일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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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5 / 1142] 쪽
하셨다.
착하다, 가장 묘한 사리불아
너 이제 일심으로 들어보아라.
옛날 시기대성여래께서
당신의 고향을 찾아가실 때
시기여래ㆍ불세존께서 들리시는
그 어떤 부락이나 마을마다
8공덕수의 맛을 모두 갖춘
감로의 샘물이 곳곳에서 절로 생겼네.
시기여래ㆍ불세존께서 들리시는
그 어떤 부락이나 마을마다
곳곳에서 온갖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가지와 잎이 소담스레 드리워졌네.
시기여래께서 들리셨다 머물던
그 모든 숲의 나무에서는
저절로 아름다운 꽃들이 비처럼 내려
꽃으로 그 땅을 두루 덮고 다 채웠네.
시기여래께서 지나시다 머무시던
그 모든 숲의 나무에서는
저절로 달콤한 열매가 떨어졌고
가지와 줄기가 아름답게 드리웠네.
사람 손이 닿는 높이의 나뭇가지에서는
꽃과 과일이 탐스럽고 아름답게 달려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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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 / 1142] 쪽
시기여래 대성사(大聖師)의
유행(遊行)에 감응(感應)함이 이러하였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나뭇가지에서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 저절로 떨어졌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강가라(姜迦羅)꽃을 흩뿌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청량하고 아름다운 꽃을 널리 뿌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만타라(曼陀羅)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파리야(波梨耶)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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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 / 1142] 쪽
비바가(毘婆伽)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향승향(香勝香)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아름다운 향기나는 꽃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보지향(普至香)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색다른 미묘한 향기나는 꽃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순금색의 꽃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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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색의 7보 꽃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순금의 줄기들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보석의 줄기 꽃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우파라(優波羅) 꽃과 잎을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향기로운 전단향 가루를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향기로운 붉은 전단향 가루를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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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 1142] 쪽
천신들이 허공에서
우두전단 가루를 비내렸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비인(非人)들이 허공에서
온갖 하늘의 옷을 펄럭였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은 온갖 아름다운 향과 꽃을 들고서
부처님 가는 길을 따라 갔으니
꽃무더기 화려하게 빛을 내었고
모든 길에 비내리니 무릎까지 쌓였네.
그 때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모기나 나쁜 벌레도 없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모든 대지들이 잔잔하게 움직이고
큰 바다나 모든 산들까지도 미동하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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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지가 부드럽고 깨끗해졌으며
거슬리는 가시 같은 것이 없었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모든 언덕들도 모두 평탄해지고
산등성 구릉들도 다 평평해졌으니
시기여래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8만 6천 명에 달하는
찰제리 종성의 위엄 있는 무리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8만 6천 명에 달하는
모든 바라문 범지 종성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8만 6천 명에 달하는
부유하고 위엄 있는 장자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땅을 다스리는 모든 신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게 치장하고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가장 훌륭하고 위엄 있고 덕이 있는
허공에 사는 모든 하늘 무리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가장 뛰어나게 아름다운 빛과 덕을 지닌
사대천왕과 모든 하늘 대중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미묘한 위력 지닌 뛰어난 자들인
세상을 보호하는[護世] 사천왕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미묘한 위덕 지닌 빼어난
삼십삼천의 도리천 대중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수미산 꼭대기에 사는 제석천왕도
모든 친구와 권속들과 함께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미묘한 모습의 청정하고 위엄 있는
선분(善分)인 야마천의 대중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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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 / 1142] 쪽
위엄과 공덕이 매우 미묘한
희락제천(喜樂諸天)의 도솔타천왕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행하는 공덕이 더욱 미묘한
화락(化樂)의 모든 천왕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위덕과 광엄이 매우 빛나는
타화자재(他化自在)의 모든 천왕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미묘한 모습과 위력이 더욱 빛나는
대범천(大梵天)궁의 모든 천왕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색계(色界)의 모든 천신 무리들과
온갖 미묘한 위엄을 고루 갖춘
모든 용신(龍神) 금시조(金翅鳥),
건달바와 아수라왕,
야차 귀신과 나찰왕의 무리
긴나라 등과 마후라가까지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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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 / 1142] 쪽
설법을 들었거나 아직 듣지 못한
세간의 모든 중생들도
시기여래 대성사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저 세존이신 시기여래는 이렇게 가며
한량없는 천신과 인간들을 조복하여
정각으로 큰 열반에 들게 하여
영원토록 모든 존재[有]와 후생(後生)을 끊게 하였네.
부처님께서는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리불아, 시기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께서 처음으로 고향에 당도하려 하실 때에 이와 같이 한량없는 미묘하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었다.”
불본행집경 제52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4. 우타이인연품(優陀夷因緣品) ①
이 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리불아, 내가 지금 여러 국토들을 유행(遊行)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태어난 미묘한 땅으로 가는 일 또한 이와 같으리라.”
사리불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돈하고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언제쯤 여러 국토와 촌락을 유행하시며 둘러보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 사리불아, 나는 이 달 보름이 지나고 포살회(布薩會)가 끝난 뒤에 여러 국토를 유행하리라.”
이렇게 하여 부처님께서는 보름의 포살회를 끝내신 뒤에 모든 비구들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셨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이르러 공양을 마치시고 돌아서서 성문의 경계를 밟으시자 대지(大地)는 여섯 갈래로 진동하였으니 움직이고 또 움직였으며 솟고 또 솟았다.
그러자 마가다국왕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곧 부처님의 뒤를 따랐다. 여러 나라를 두루 거치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살피면서 걸어갈 때 허공에서는 한량없는 천상 대중들 수억만 명이 부처님께서 두루 국토들을 거치시려는 모습을 보고자 모두 다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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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마음이 즐거움에 차오르고 흥에 겨워 이기지 못하여 입으로는 온갖 아름다운 음성을 내고 노래하고 휘파람 불면서 즐거움에 환호성을 질렀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하늘 옷을 펄럭이기도 하였다. 또 천상의 꽃인 우발라꽃ㆍ구물두꽃ㆍ파두마꽃ㆍ분타리꽃을 부처님 위에 흩고 또 갖가지 가루향ㆍ바르는 향과 향기로운 꽃다발을 부처님 위에서 뿌리고 또 뿌렸다.
세존께서 여러 나라를 유행하실 때마다 도착하시는 곳의 모든 중생들이 다 함께 공경하고 공손하게 공양을 올렸다. 여래께서 도착하시는 곳에서 온갖 옷을 얻고 가장 훌륭하고 맛이 좋은 음식과 탕약, 침상과 와구 등 이와 같은 물건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더할 수 없는 이양(利養)을 얻었으니 모자라는 것이 없었고, 명성이 세간에 가득 퍼져나갔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명성이나 이양에 애착을 내지 않았으니 마치 연꽃이 탁한 물에 있는 것과 같았다
.
이 때 세존에게 이와 같은 한량없는 위덕이 있어 세간에서 위엄과 덕이 가장 훌륭하였고 아름답고 특출하기가 가장 으뜸이었다.
또 바가바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께서는 이 세상이나 저 세상, 천상이나 마군이나 범천ㆍ사문과 바라문을 위시한 모든 하늘과 인간의 세상에서 신통지로써 모든 것을 증득하여 아셨으며 그 세존께서는 세상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되 말과 이치가 매우 능숙하고 아름다웠으며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훌륭하였으며 깨끗한 행을 완벽하게 갖추셨다.
이 때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들 가운데 교화를 받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다 교화하셨고, 우뚝 세울 만한 사람은 그를 가르쳐 우뚝 세워 그가 어디에 머물러 있든지 모두 성취하게 하셨으며, 삼귀의를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삼귀의를 주고, 오계를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오계를 주고, 팔관재계법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곧 팔관재계법을 주고, 10선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10선법을 주고, 출가할 이는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받을 사람에게는 구족계를 주
셨다. 이렇게 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 가비라성의 동산에 도착하여 그곳에 머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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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세존께서는 가비라성에 도착하시자 니구타 나무 동산에 머무시면서 여러 국토를 두루 거쳐오실 때의 가장 희유하고 묘하였던 일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석가족 여래 큰 사자
가장 뛰어난 위덕 지닌 구담께서
성읍과 마을들을 두루 돌아보러 길떠나실 때
한결같이 매우 특이한 모습들이 있었네.
어떤 마을이나 취락에 이르더라도
어서 나가 여래 대성사를 보려고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경하고 존중히 영접해 받들었네.
어떤 마을이나 취락에 이르더라도
여래 대성사를 보려고
온갖 꽃나무들이
저마다 세존을 향해 몸을 숙였네.
구담여래께서 들렸다 머무시던
그 모든 숲의 나무에서는
저절로 아름다운 꽃비가 내려
그 땅을 두루 덮고 다 채웠네.
세존께서 지나다 머무시던
그 모든 숲의 나무에서는
저절로 달콤한 열매가 떨어졌고
가지와 줄기가 아름답게 드리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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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손이 닿는 높이의 나뭇가지에서는
꽃과 과일이 탐스럽고 아름답게 달려 있었네.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大聖師)의
유행(遊行)에 감응(感應)함이 이러하였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나뭇가지에서는
탐스러운 꽃과 열매 저절로 떨어졌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강가라(薑迦羅)꽃을 흩뿌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만수사(曼殊沙)를 흩뿌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아름다운 꽃을 널리 뿌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만타라(曼陀羅)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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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 1142] 쪽
천신들이 허공에서
파리야(波梨耶)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비바가(毘婆伽)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구담 사자(師子)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 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향승향(香勝香)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구담 사자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아름다운 향기나는 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천신과 인간의 눈이신 대성현 구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보지향(普至香)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순금색의 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 [979 / 1142] 쪽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미묘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꽃을 비처럼 내렸으니 구담 10력(力) 대성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미묘한 보석 줄기의 꽃들을 비처럼 내렸으니 천신과 인간의 눈이며 용맹하신 구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우발라(優鉢羅)꽃을 비내렸으니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신 용맹하신 구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미묘한 침수향 가루를 비처럼 내렸으니 삼계 천상과 인간의 세존이신 구담의 위덕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향기로운 붉은 전단향 가루를 비처럼 내렸으니 구담 사자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이 허공에서 미묘한 우두향 가루를 비처럼 내렸으니 용맹하신 구담 대세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 [980 / 1142] 쪽 천신들이 허공에서 온갖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니 용맹하신 구담 대세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비인(非人)들이 허공에서 온갖 하늘의 옷을 펄럭였으니 구담 사자 대성사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신들은 온갖 아름다운 향과 꽃을 들고서 부처님 가시는 길을 따라갔으니 대성이시며 천신 중의 천신이신 그 분을 위하여 길마다 꽃을 무릎까지 쌓이게 하였네. 그 때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모기나 나쁜 벌레도 없으니 미묘하신 대성, 하늘 중에 가장 높은 분에게 감응하여 이런 일들을 불러들였네. 세상의 모든 대지들이 전부 평탄해지고 산등성 구릉들도 다 평평해졌으니 구담 10력 대성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모든 대지가 아주 깨끗해졌으며 거슬리는 가시 같은 것이 없어졌으니 하늘과 인간 중에 존귀하신 위덕 있는 구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 [981 / 1142] 쪽 모든 대지들이 잔잔하게 움직이고 큰 바다나 모든 산들까지도 미동하니 삼계에 위없이 존귀한 구담의 유행에 감응함이 이러하였네. 천만 명하고도 또 천만 명이나 되는 모든 찰제리와 바라문, 그리고 비사(毘舍:바이샤)와 수타(首陀:수다라)까지도 모두 함께 여래의 뒤를 따랐네. 땅을 다스리는 뛰어나게 미묘한 신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게 치장하고 위엄을 갖추고서 용맹하신 구담 대세존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미묘한 위력 지닌 뛰어난 자들인 세상을 보호하는[護世] 사천왕들도 아름다운 구담 대성존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수미산 꼭대기에 사는 제석천왕과 사바세계 왕인 범왕에 이르기까지 빼어나고 걸출하고 가장 으뜸이신 구담의 움직임과 여정을 따랐네. 또한 욕계의 여러 천신 무리들과 색계 사선 등의 무리들까지도 용맹하신 구담 대성존을 이와 같이 함께 뒤따라갔네. --------------------------------------------------------------------------------------------------------------------------------- [982 / 1142] 쪽 또한 모든 용들과 금시조, 건달바와 아수라들 야차와 나찰의 무리들까지도 모두 함께 여래의 뒤를 따라갔네. 설법을 들었거나 아직 듣지 못한 세간의 모든 중생들도 모두 다 용맹하신 구담 스승의 뒤를 따라 여러 국토와 성읍을 두루 거쳐갔네. 세존께서 이와 같이 유행하실 때 한량없는 인간과 천신들이 교화하셨고 고향의 친척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이제 고향인 가비라성에 이르셨네. 이 때 장로 우타이와 차익 두 사람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수두단왕은 아직 믿는 마음이 없고 깨끗하지 않는 마음을 지녀서 비구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 일을 아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누가 수두단왕의 궁전으로 가서 그분을 교화시켜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겠는가?” 그 때 대중 가운데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장로 사리불이 수두단왕의 궁전으로 가서 방편으로 교화하고 그 분을 믿고 공경하게 하기에 적당합니다.” 또 어떤 비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장로 목건련이 수두단왕의 궁전으로 가서 방편으로 교화하고 그 분을 믿고 공경하게 만들기에 적당합니다.” 다른 비구는 아뢰었다. --------------------------------------------------------------------------------------------------------------------------------- [983 / 1142] 쪽 “세존이시여, 장로 마하가섭이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비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장로 대가전연이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비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대중 가운데 장로 우루빈라가섭이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비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장로 나제가섭이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비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장로 우파사나가 수두단왕의 궁전으로 가서 방편으로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타이에게 이르셨다. “우타이야, 혹시 네가 지금 수두단왕의 궁전으로 가서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할 수 있겠느냐?” 우타이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당부하셨다. “우타이야, 너에게 명하니 너는 이제 수두단왕의 궁전으로 가서 방편으로 그 분을 교화하여 믿고 공경하게 하여라.” 그러자 장로 우타이는 불세존의 이런 말씀을 듣고 나서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감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우타이는 이른 아침 해가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수두단왕의 궁으로 가서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수두단왕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있는가?” 문지기가 답하였다. “대왕께서는 지금 정전(正殿)에서 정무(政務)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자 장로 우타이는 수두단왕의 처소로 가서 한쪽 문간에 잠자코 서 있었다. 이때 좌우의 모든 대신들은 우타이가 한쪽에 있는 것을 보고 곧 사방의 문지기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와서 이 출가인을 끌어내라. 그를 여기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대왕께서 보시기라도 하면 악한 마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 문지기들은 대신의 명령을 받고 서둘러 우타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그를 끌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문지기들은 그가 바로 국사의 아들이요, 옛날 태자 실달과 함께 어릴 때부터 항상 어울려 흙장난 하던 벗임을 알아채고는 차마 끌어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러자 대신들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 출가자를 끌어내지 않느냐?” 문지기들은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국사의 아들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실달 태자와 우정을 맺고 흙장난까지 하던 사이였던 분을 어떻게 저희들이 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마침 이 때 수두단왕은 정전에서 정사(政事)를 분별해 마치고 본전(本殿)으로 돌아오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은 여러 대신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본전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우타이는 재빨리 수두단왕 앞으로 곧장 나아가 왕의 손을 잡았다. 이런 일을 당한 수두단왕은 묵묵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말을 하게 되면 문지기들은 쫓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문지기들은 그들대로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대신들이 알아서 쫓아낼 것이다.’ 그 대신들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궁문 안 사람들이 항상 이런 사람을 막거나 물리쳐야 하는 법이다.’ 궁문 안 사람들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사람은 본래 수두단왕이 항상 사랑한 사람이었는 데다 지금도 또 손을 --------------------------------------------------------------------------------------------------------------------------------- [985 / 1142] 쪽 잡고 가지 않는가?’ 사람들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그를 쫓아서 내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때 수두단왕이 궁전으로 차츰 다가와서 내전에 올라 용상에 앉았다. 그러자 우타이는 수두단왕이 궁으로 들어와서 내전에 오른 모습을 보고 나자 자신도 그 궁전에 올라가 왕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섰다. 수두단왕은 자기 앞에 가까이 서 있는 우타이를 보고 귀찮은 생각이 일어나 가느다란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괴롭구나. 내 아들의 모습도 이렇게 마르고 초췌하여 보기 싫을 것이 아닌가. 너희들은 어서 이 출가인을 쫓아내라. 누가 이곳에 들어오게 하였단 말인가?” 그러자 대신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신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을 쫓아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국사의 아들인 데다 또 실달 태자와 어릴 때부터 흙장난하던 벗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타이는 측은한 마음이 담긴 음성으로 수두단왕의 뜻이 상하지 않도록 게송을 읊었다. 곡식과 열매 거두려 밭 갈고 씨뿌리며 보물과 재화를 얻으려고 바다로 나아갑니다. 저의 뜻은 여기가 좋아서 왔으니 그 소원이 빨리 성취되길 바랍니다. 이런 길은 항상 길하고 이로워 아무런 두려움도 없고 언제나 편안합니다. 사방에서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구담에게서 이익을 이루게 됩니다. 자주자주 사람들이 그 땅을 갈고 --------------------------------------------------------------------------------------------------------------------------------- [986 / 1142] 쪽 자주자주 그 가운데 씨앗 뿌리고 자주자주 모든 하늘 단비를 내리면 자주자주 나라 안의 오곡이 무르익습니다. 자주자주 걸사(乞士)는 항상 걸식하고 자주자주 시주들은 항상 베풉니다. 자주자주 이 세상에서 보시 행하면 자주자주 천상에 나는 과보를 얻습니다. 자주자주 젖소는 젖을 짜서 얻고 자주자주 송아지는 어미를 찾고 자주자주 부인들은 임신을 하며 자주자주 출산하여 괴로움을 받습니다. 자주자주 죽은 시체는 무덤을 향하고 자주자주 친척들은 울며 보냅니다. 만약 성도(聖道)를 얻어 후유(後有)가 없게 되면 모든 번뇌 속에서 생(生)을 받지 않습니다. 수두단왕은 우타이의 이와 같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담긴 노래를 듣고 나자 문득 작은 의심이 생겨나서 거듭 우타이에게 물었다. “존자는 본래 누구에게 출가하였으며 스승은 누구인가?” 우타이는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대답하였다. 스승의 부친은 수두단왕이며 그를 낳으신 분은 마야 왕비라고 합니다. 열 달 동안 태 중에 있다가 자식을 낳은 뒤 어머니는 도리천에 올랐습니다. --------------------------------------------------------------------------------------------------------------------------------- [987 / 1142] 쪽 큰 덕 있고 큰 성현이며 천신 중의 천신이신 이러한 성자는 당신 집에서 태어나 그 집안의 7세(世)를 이미 제도하셨고 명성이 사방에 널리 퍼졌습니다. 장부 가운데 가장 희유하여 어떤 곳에서도 다시는 나지 않으시는 이러한 대성자께서 태어나신 그 집은 항상 큰 안락을 받습니다. 석가족 친척 중에 가장 명예롭고 태어나시면서 백 가지 복으로 몸을 꾸미신 이러한 석가의 아들이며 천신 중에 으뜸이신 분 저는 그 분에게서 출가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다시 장로 우타이에게 물었다. “훌륭하다, 비구여. 그대는 참으로 누구에게 출가하였는가? 그 스승이란 사람은 바른 믿음을 지녔으며 뜻이 바르고 청정한 행을 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아란야 한가한 숲의 나무 아래 앉기를 즐기는가?” 장로 우타이는 게송으로 또다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께서는 누구에게 출가하였는지, 그 분은 바른 믿음으로 청정한 행을 하며 어느 곳에서든 근심과 두려움 품지 않으며 나무 아래 머물고 항상 즐거워하는지 물으셨습니다. 다른 소리를 두려워 않으니 사자와 같고 그물에 걸리지 않으니 거센 바람과도 같으며 남을 가르치되 스스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 [988 / 1142] 쪽 온갖 두려움 빼내어 몸에는 두려움이 없으십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장로 우타이에게 물었다. “그런 비구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우타이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물으신 그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서는 지금 가비라성 니구타숲에 계십니다.” 수두단왕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우타이는 틀림없이 내 아들의 제자이다.’ 이런 인연으로 여러 대신들에게 일렀다. “경들은 지금 이 비구를 편안한 자리에 앉혀라.” 대신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아뢰었다. “대왕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장로 우타이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또 모든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경들은 음식을 가져다 이 비구에게 대접하라.” 신하들은 곧 명령에 따라 깨끗한 물을 떠다가 우타이에게 주어 손을 씻게 한 다음 음식을 내어다 주었다. 그러나 우타이는 음식을 받았지만 자신은 먹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가서 세존에게 받들어 올리려 하였다. 수두단왕이 물었다. “비구는 어째서 이 음식을 먹지 않는가?” 우타이가 답하였다. “이 음식을 가져다 세존께 올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마음이 다시 어지러워져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내 아들의 몸은 여전히 부드러우냐? 옛날 궁중에 있을 때는 항상 즐거움을 누리며 몸에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이런 곤란 --------------------------------------------------------------------------------------------------------------------------------- [989 / 1142] 쪽 함을 당하고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비구들에게 밥을 빌어 오게 해서야 비로소 밥을 먹는단 말인가?” 수두단왕은 이렇게 말하고 슬피 흐느끼다가 다시 우타이에게 말하였다. “비구는 지금 이 음식을 그대로 먹어라. 다른 음식을 준비하게 할 것이니 그것을 가져다 그대의 스승에게 주도록 하여라.” 우타이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하지만 대왕이시여, 이 음식은 이미 세존께 받들어 올리려 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중생이라도 이 음식은 소화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저 세존께서는 계행과 선정과 지혜가 가장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경들은 지금 다른 음식을 가져다 이 비구에게 주어라. 그래서 그가 먹고난 다음 빨리 이 음식을 가지고 저 태자에게 가도록 하라.” 대신들은 즉시 다른 음식을 가져다 우타이에게 주었다. 우타이는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토록 수많은 왕들과 모든 사람들이 여래ㆍ세존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 한량없이 몰려 와서 공경합니다. 그러니 지금 대왕께서는 그곳으로 가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궁을 떠나려 하였다. 그 때 수두단왕은 장로 우타이에게 말하였다. “존자는 먼저 실달 태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내 오래지 않아 너를 보러 가리라’고 말을 전해다오.” 우타이는 대답하였다. “대왕님의 말씀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장로 우타이는 곧 그 음식을 가지고 성에서 나와 니구타숲으로 갔다. 그리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한 뒤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수두단왕을 교화하여 기쁨을 얻게 하였습니다. 그 분은 부처님을 뵈러 올 것입니다.” 우타이가 궁을 나가자마자 수두단왕은 모든 대신들에게 명령했다. “경들이여, 실달 태자가 지금 이곳 가비라성에 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 [990 / 1142] 쪽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대신들은 대답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만약 다른 사문들이 왕궁에 오더라도 저희들은 공양을 베푸는데 하물며 지금 실달 태자는 저희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어찌 무심하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그저 대왕의 심중만을 살필 뿐 아직 그곳에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수두단왕은 칙명으로 요령을 흔들어 성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내 이제 실달 태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를 만나려고 한다. 너희들은 각각 위엄 있게 갖추고 나를 따르라.”[가섭유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마하승기사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때 수두단왕은 우타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비구의 생각에는 태자를 위하여 어떤 음식을 준비하면 좋겠는가?” 그러자 우타이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만약 세존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고자 하시면 청정하고 감미롭고 향기롭고 정결한 것을 만드소서. 세존께서는 이런 음식만을 드십니다.” 수두단왕은 대신들에게 명령하였다. “경들에게 명하니 어서 태자를 위하여 온갖 청정하고 향기롭고 정결한 음식을 마련하라.” 신하들은 왕의 칙명을 듣고 아뢰었다. “대왕님의 분부를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온갖 청정하고 향기롭고 감미로움을 갖춘 음식들을 마련하여 우타이에게 주었다. 우타이는 제 것을 먼저 먹고 나서 왕이 마련해준 청정하고 향기롭고 정결한 음식을 가지고 가비라성을 나와 니구타숲의 그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 처소에 도착하자 그는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수두단왕을 교화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 분은 부처님을 만나러 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먼저 이런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저에게 주어 세존께 올리게 하였으니 제발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받으셔서 법답게 드십시오.” --------------------------------------------------------------------------------------------------------------------------------- [991 / 1142] 쪽 이 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장로 우타이는 수두단왕을 교화하여 그를 기뻐하게 하였으며, 왕으로 하여금 다시 청정하고 향기롭고 감미로운 음식을 준비하여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게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우타이는 오늘만 수두단왕의 궁전에 가서 그 분을 교화하고 또 감미로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주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 세상에도 그 분을 교화하고 크게 기쁘게 하였으며 또 감미로운 음식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었다.” 비구들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그 인연은 어떤 것인지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 기꺼이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나간 아주 오래 전의 일을 생각해 보니 그때 바라나국에 까마귀왕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소불다라(蘇弗多羅)[수나라 말로는 선자(善子)라고 함]였다. 까마귀왕은 그 파라나성에서 8만 마리의 까마귀와 같이 평화롭게 살았었다. 그 소불다라 까마귀왕에게 아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소불실리(蘇弗室利)[수나라 말로는 선녀(善女)라고 함]라 하였다. 어느 날 그 까마귀왕의 아내는 새끼를 배자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청정하고 향기로우며 사람의 왕이 먹는 음식을 좀 먹어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까마귀왕의 아내는 이런 음식을 생각하자 그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리저리 구르며 괴로워한 나머지 몸이 초췌하여 바싹 마르고 부들부들 떨면서 편안히 지내지 못하였다. 선자 까마귀왕은 자기의 아내가 몸이 야위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찌하여 땅에서 구르고, 몸이 수척해 마르고 부들부들 떨며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이오?’ 그러자 까마귀왕의 아내는 까마귀왕에게 대답하였다. --------------------------------------------------------------------------------------------------------------------------------- [992 / 1142] 쪽 ‘훌륭하신 그대여, 나는 지금 새끼를 배었는데 사람의 왕이 먹는 청정하고 향기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선자 까마귀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이상하구려. 아내여, 내 오늘 어느 곳에서 그렇게 향기롭고 맛좋은 음식을 구해올 수 있겠소? 왕궁은 깊고 그윽하여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오. 만약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손에 잡혀서 반드시 목숨을 잃을 것이오.’ 그러나 아내는 까마귀왕에게 말하였다. ‘지금 만약 이런 음식을 구해오지 못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며, 그렇다면 이 뱃속의 아이도 결코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까마귀왕이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이상하구려. 아내여, 오늘은 당신이 죽는 날이 될 것이오. 이와 같이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생각하다니 당신은 죽고 말 것이오.’ 선자 까마귀왕은 이렇게 말하고 나자 곧 근심에 싸여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그토록 향기롭고 깨끗하고 청정하며 왕이 먹는 음식이란 정말로 얻기 어렵다.’ 이 때 까마귀왕의 무리들 중에 어떤 까마귀 한 마리가 있다가 선자 까마귀왕이 마음에 수심이 가득 차 조금도 즐겁지 않는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보았다. 그는 까마귀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렇게 물었다. ‘이상합니다. 성자여, 어찌하여 그토록 걱정 근심에 쌓여 있습니까?’ 그러자 선자 까마귀왕은 앞에서의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까마귀는 왕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신 분이여,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왕을 위하여 사람의 왕이 먹는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구하기가 어렵다는 그 음식을 구해 오겠습니다.’ 그러자 까마귀왕은 다시 그 까마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착하다. 좋은 벗이여, 그대가 만약 나를 위하여 힘써 이런 것을 마련해 준다면 나는 그대가 지은 공덕에 보답하겠소.’ 그리하여 까마귀는 까마귀왕의 처소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범덕궁(梵德 --------------------------------------------------------------------------------------------------------------------------------- [993 / 1142] 쪽 宮)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부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무 한 그루 위에 앉아서 범덕왕의 부엌을 지켜보았다. 왕의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는 여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모든 음식들을 다 준비한 뒤에 밥 먹을 시간이 되자 은그릇에 음식들을 담아서 왕에게 받들어 올리려고 하였다. 이 때 그 까마귀는 나무에서 날아 내려와 그 여자의 머리 위에 올라서 그 코를 쪼았다. 그 여자는 코가 아픈 바람에 들고 있던 음식을 땅에 엎지르고 말았다. 그 때 그 까마귀는 음식을 가져다 까마귀왕에게 주었다. 까마귀왕이 음식을 구한 뒤에 선녀 까마귀왕의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 왕의 아내는 그 음식을 받고는 때를 맞추어 배불리 먹었다. 그리하여 몸이 편안해졌고 이렇게 하여 출산까지 하였다. 그 뒤에도 그 까마귀는 여러 번 왕래하면서 그 음식을 빼앗아다가 까마귀왕에게 주었다. 그러자 범덕왕은 여러 번 이런 일을 당하고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어째서 이 까마귀가 자꾸만 날아와서 내가 먹을 음식을 더럽히고는 부리와 발톱으로 내 음식을 만드는 여자를 상처 입히는 것일까?’ 마침내 왕은 더 이상 이 일을 참을 수가 없어 포망을 잘 쓰는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서 저 까마귀가 사는 곳까지 가서 그 까마귀를 사로잡아 오너라.’ 그 포망을 잘 쓰는 사람은 왕에게 말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포망으로 그 까마귀를 사로잡아 가지고 범덕왕에게 바쳤다. 범덕왕은 그 까마귀에게 말하였다. ‘너는 무슨 까닭에 자꾸만 내가 먹을 음식을 더럽히고 또 내 음식을 만드는 여자들을 부리와 발톱으로 상처 입히는가?’ 그러자 그 까마귀가 범덕왕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대왕이시여, 내 이제 대왕에게 모든 일들을 다 말하겠으니 들으시고 왕은 크게 기뻐하소서.’ 그때 범덕왕은 마음에 기쁨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런 일은 처음이로다. 어떻게 이 까마귀가 사람의 말을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까마귀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구나. 너는 반드시 나를 위하여 그 사연을 모두 말해서 나를 크게 기쁘게 하라.’
그 까마귀는 게송으로써 범덕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은 아소서. 파라나성에
까마귀왕이 항상 깃들어 살고 있는데
8만 마리의 까마귀들이 그를 둘러싸며
모두 그 왕의 처분대로 합니다.
그 까마귀왕의 아내가 생각한 바가 있어
내가 그 사연을 대왕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까마귀왕의 아내는 대왕이 먹는 것과 같은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주자주 와서
대왕의 맛있는 음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제 저 까마귀왕을 위하였기 때문에
대왕의 그물에 걸린 몸이 되었습니다.
훌륭하신 대성왕이시여, 원하옵나니
자비로 가엾게 여겨 저를 놓아주십시오.
저는 까마귀왕과 그 아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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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 1142] 쪽
자주 와서 대왕의 음식을 축냈습니다.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이런 일을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대왕이여, 한 번 놓아주시면
이 다음에 감히 이런 일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범덕왕은 그 까마귀의 이런 말을 듣고 마음에 기쁨을 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신기하구나. 사람조차도 자기 주인에게 이토록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는데 까마귀가 이와 같은 일을 하였구나.’
그리고 범덕왕은 게송을 읊었다.
아마 이렇게 용맹스런 까마귀같이
주인의 먹을 것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만약 이러한 대신이 있다면
그에게 후한 봉록으로 보답하리라.
그리고 범덕왕은 다시 그 까마귀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너 까마귀야. 지금부터 항상 여기 와서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가거라. 만약 어떤 사람이 너를 가로막고 음식을 주지 않거든 나에게 와서 알려라. 내가 직접 너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가거라.’”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짐작할 것이다. 그 까마귀왕은 바로 나였고, 당시 대왕의 음식을 훔친 까마귀는 바로 우타이 비구였으며, 그 범덕왕은 곧 수두단왕이었다. 그 때에도 비구 우타이는 그를 크게 기쁘게 하여 나에게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지금에도 또한 수두단왕의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고 나를 위하여 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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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 / 1142] 쪽
이 때 수두단왕은 다시 요령과 목탁을 쳐서 가비라성 모든 인민들에게 칙명을 내렸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가서 실달 태자를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와 함께 가서 보아야만 할 것이다.”
불본행집경 제53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4. 우타이인연품 ②
이 때 수두단왕(輸頭檀王)은 자기 궁 안의 모든 권속들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서, 또 실달 태자 궁 안의 모든 권속들과 궁 밖의 권속들, 그리고 석가족 동자들과 대신들과, 또한 네 가지 병사들과 백관대신들과 장수들, 거사들과 성읍 취락의 장자들과 연로한 이들을 거느리고 또한 그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서 대왕의 위엄과 세력을 드러내고 대왕의 신덕(神德)의 자재로움을 떨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모든 종친의 무리와 군사들이 전후 좌
우에서 왕을 호위하였는데, 이 때 석가족의 무리들은 전부 9만9천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가비라성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여래를 보기 위해 성을 나섰다.
이 때 세존께서는 멀리서 수두단왕이 수많은 대중들에게 에워싸여 오는 것을 보시고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만약 저 분을 보고 일어나 맞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이 어찌 계행의 과보가 있는 사람인가, 어찌하여 부왕을 보고도 일어나 맞지 않는가?) 할 것이다. 또 내가 이제 부왕과 대중들을 보고 일어나 맞으면 그들에게 한량없는 큰 죄를 짓게 할 것이며,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 위의를 가지고 그대로 있으면 저들은 나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세 가지 생각을 하였으며,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음을 알고서 이와 같이 세 가지 이치를 헤아린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신통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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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 / 1142] 쪽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하여 허공에서 경행(經行)하며 오가기도 하고 서거나 앉기도 하고 눕거나 잠들기도 하였으며 몸에서 연기를 내거나 불꽃을 내뿜기도 하였고 모습을 감추거나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등 온갖 신통 변화를 보이셨다.
또 가비라성에는 성을 지키는 신(神)과 문을 지키는 신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수두단왕 앞에서 허공으로 날아 올라,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서 한쪽에 물러나 서서 게송으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시던 날
야차와 모든 신들이 문을 열었고
비사문천왕들이 길을 안내하였으니
세존은 이 큰 공덕의 그릇이네.
여래가 당시 성문을 나설 때
발심하여 이런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만약에 모든 마군을 항복받지 못하면
다시는 이 성안에 들어오지 않으리라.
그 소원이 이미 모두 이루어졌으니
세존은 모든 마군을 항복받았고
보리의 위없는 도를 증득하셨으니
옛날의 서원은 다 이루셨습니다.
장부는 복을 위해 세상에 나셔서
이미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셨고
모든 친척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이제 이 성으로 돌아오셨네.
이 때 수두단왕은 멀리서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허공에 날아올라 갖가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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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 1142] 쪽
통 변화를 나타내시는 것을 보고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적 실달 태자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더니, 이제 대선인(大仙人)이 되었고 큰 위덕과 큰 신통력을 갖추었구나.’
수두단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올라탔던 말에서 내려 부처님 처소까지 걸어갔다. 수두단왕은 점차 부처님 가까이에, 부처님도 공중에서 점점 내려와 수두단왕이 부처님 처소에 다 왔을 즈음 본래 앉았던 곳에 내려 서셨다.
그 때 수두단왕은 부처님 머리 위에 천관(天冠)이 없고 수염을 깎았으며, 몸에 가사를 입은 모습을 보자, 자식을 사랑하는 까닭에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왕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으나 이내 얼굴 가득 눈물 범벅이 되어 구슬프게 울면서 땅에서 뒹굴었다. 그러자 석가족 9만 9천 명과 내외의 모든 권속들도 기절하고 땅에서 뒹굴고 눈물을 흘리고 슬프게 울면서 말할 수 없이 괴로워하였다. 그 대중들은 게송을 읊었다.
대왕이 대중을 거느리고 부처님께 오셨네.
부왕은 세존을 보고 말도 나누지 못하였네.
왕은 아들이라 부르려다 말하지 못하고
비구라 하려다 그것도 못하였네.
왕은 여래의 사문 모습을 보자
스스로 일산 밑에서 부끄러워하다가
길게 입에서 열기(熱氣)를 토하고
기절하여 땅에 쓰러져 중얼거리네.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선정에 들어
마치 멀리서 온 목마른 사람이
물을 보고는 이내 다시 목말라하는 듯한
이 같은 왕의 괴로움을 바라보셨네.
이 때 세존께서는 또 이런 생각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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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 1142] 쪽
‘이 석가족 사람들은 아만심이 크고 잘난 척하며 제 멋대로 군림한다. 만약 이들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나에게 절을 한다면 그들은 이내 게으른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몸을 솟구쳐 땅에서 한 길 높이에 머무셨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셨다.
‘내가 이제 땅에서 약간 떨어져 있으니, 이들은 응당 몸을 굽혀 절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왕과 권속들의 교만한 마음 아시고
허공으로 날아올라 한 길 높은 곳에 계셨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가엾게 여겨서
부처님께서는 허공 중에 머무르시네.
이 때 수두단왕은 땅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게송을 읊었다.
내 지금 진여존(眞如尊)께 세 번 절하였으니
처음 태어났을 때 부처님 발에 절하였고
그 옛날 점치던 이들이 궁에서 수기하기를
나무 아래 앉으면 그늘이 몸을 덮어주리라 하였네.
오늘 첫 번째 행을 뵙자니
얼굴이 깨끗하여 꽃이 만개한 것 같아서
내 마음 크게 기쁘게 하네.
그리하여 지금 다시 세 번 절을 하네.
이렇게 수두단왕이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자 차례로 두 번째 궁전의 권속들도 절을 하였고 다음에 모든 권속들 또한 부처님 발에 절을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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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석가족의 동자들과 좌우에서 모시던 신하들과 장수들과 문무백관 대신들도 차례로 절하였고, 이름 있는 가문의 거사들도 부처님 발에 절하였고 이어서 장자들과 모든 원로들 또한 절을 하였다.
그런데 부처님께 깊고 미묘한 법이 있었는데 다만 대중들이 아직 크게 기뻐하고 목마르게 갈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아직도 희유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므로 그것을 염려하여 아직은 이런 법을 설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대중들에게 크게 기쁜 마음과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자 신통력으로 공중에 날아올랐다. 땅에서 1다라나무 높이만큼 동쪽 허공에 머물러 갖가지 신통 변화를 내었다. 그 신통이란 곧 한 몸이 여러 몸으로 나뉘고, 많은 몸이 한 몸으로 합치고, 아래로 내려 옆으로 가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아래서 위로 오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석벽과 산으로 앞이 막혔어도 걸림 없이 지나가고, 마치 물 속으로 들어가듯
땅으로 들어가고, 대지를 밟듯 물을 밟으며 걸었고, 허공에서 가부좌를 맺고 편안히 앉되 흔들리지 않았으며, 새처럼 허공에서 자유롭게 경행하였고, 몸 위로 연기를 내고 몸 아래로 불을 내니 거대한 불덩이 같았고 해와 달과도 같았으며, 큰 위덕이 있고 큰 신통력이 있어 눈부시게 광명이 넘쳤고, 어떤 때는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고 키가 커져서 범천에까지 이르는 등 이처럼 온갖 신통 변화를 나타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러한 일을 보이신 뒤에 다시 다음과 같은 대조가 되는 신통을 나타내셨으니, 이른바 여래께서는 몸을 반으로 나누어 하반신에서는 연기를 내고 상반신에서는 불을 내셨고, 반대로 상반신에서는 연기를 내고 하반신에서는 불을 내셨다.
또 여래께서는 몸의 왼쪽으로는 불을 내고 오른쪽으로는 연기를 내었으며, 몸의 오른쪽으로는 불을 내고 왼쪽으로는 연기를 내셨다.
여래께서는 또 몸을 반으로 나누어 하반신에서는 연기를 내고 상반신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었으며 여래께서는 또한 하반신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고 상반신으로는 연기를 내었다.
여래께서는 또 몸의 왼쪽으로는 연기를 내고 오른쪽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었고, 잠깐 사이에 몸의 오른쪽으로는 연기를 내고 그 왼쪽으로는 찬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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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었다.
여래께서는 또 몸의 하반신에서는 불길을 내었고 상반신으로는 차디찬 물을 내었으며, 상반신에서는 불길을 내고 하반신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셨다. 또 여래께서는 몸의 왼쪽으로는 불을 내고 또 오른쪽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셨다.
여래께서는 몸의 왼쪽에서는 불을 내고 오른쪽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었고, 오른쪽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고 왼쪽으로는 불꽃을 내뿜었다.
여래께서는 온몸 가득 불을 내되 두 눈 사이로는 맑고 찬 물을 내었으며, 혹은 눈 사이로는 불길을 내면서 온몸으로는 맑고 찬 물을 내셨다. 여래께서는 또한 하반신만을 나타내되 상반신은 보이지 않게 하시면서 설법을 하셨고 또는 상반신만을 보이시고 하반신은 보이지 않으면서 법을 설하기도 하셨다.
여래께서는 또다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모든 털구멍으로 갖가지 빛을 내셨으니, 이른바 파란빛의 광명, 노란빛의 광명, 붉은 빛의 광명, 흰 빛의 광명, 풀빛의 광명, 파리(頗梨) 빛깔의 광명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또 땅에서 1다라나무 높이의 허공으로 날아올라 신통을 나타내기도 하셨고 혹은 2다라나무 높이로, 혹은 3ㆍ4ㆍ5, 혹은 7다라나무 높이의 허공에 머물러 신통을 나타내 보이셨는데 곧 한 몸이 여러 몸으로 나뉘고, 내지 파리 빛깔의 광명을 나타내 보이는 등의 온갖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보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또 남쪽에서 몸을 나타내어 서쪽으로 땅에서 1다라나무 높이의 공중에 머물러 온갖 신통 변화를 지으셨으며, 세존께서는 다시 서쪽에서 몸을 숨기고 북쪽으로 1다라나무 높이의 공중에 머물러 온갖 신통 변화를 나타내셨으니 곧 한 몸이 여러 몸으로 나뉘고 내지 파리 빛깔의 광명을 나타내 보이는 등의 신통변화였다. 그와 같이 나머지 각각의 방위에서도 또한 그렇게 허공을 타고 올라 땅에서 7다라나무 높이의 허공에 머물러 한 몸이 여러 몸으
로 나뉘고 내지 파리 빛깔의 광명을 놓는 등의 갖가지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였다.
그 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이런 신통을 보고 곧 부처님께 크게 기쁜 마음과 믿고 공경하며 희유한 마음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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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대중들이 희유하게 생각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켰음을 알고서 허공에서 내려와 대중들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그들을 위하여 차례로 법을 설하셨다.
그 말씀하신 법이란, 이른바 중생들이 오래도록 번뇌 가운데 있으므로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싫어서 버리려는 생각을 내게 하기 위하여,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을 행하여 좋은 곳에 나도록 권하고, 애욕과 유루(有漏) 등을 싫어하여 버리고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출가의 공덕을 찬탄하고 또 해탈하는 이런 법이 있음을 찬탄하셨다. 여래께서 이런 모든 법을 설하실 때 그 대중들은 크게 기뻐하는 마음과 뛰노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일으키고 밖에 없는 마음을 얻었음[得無外心]을 아셨다.
이 때 세존께는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거두어들이는 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등의 법이었다. 그리하여 그 대중을 위하여 방편을 나타내어 말씀하시고 환히 펴서 나타내어 보이시자, 한량없는 백천 만억의 무리들은 곧 그 자리에서 멀리 티끌과 때[垢]를 여의고 더 이상 번뇌가 없이 모든 맺힘을 끊고 법의 눈이 청정해졌으며, 모든 집기한 법[集法]은 모두 다 멸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 그대로 이해하는 지혜를 얻었다.
비유하자면 깨끗하고 때가 묻지 않은 옷에 여러 가지 색깔을 물들이려고 하면 그 염료의 빛깔로 물이 잘 들듯이, 이처럼 법을 설하고 나자 그 자리에 있던 한량없고 끝없는 백천 만억 대중들은 모두가 앉은자리에서 멀리 티끌과 때를 버리고, 더 이상 번뇌가 없이 온갖 맺힘을 끊어 법의 눈이 청정해졌으며, 나아가 모두 멸하는 것임을 사실 그대로 깨달았던 것이다. 대중들은 스스로 모든 법을 보고 모든 법을 얻었으며 모든 법을 증득하고 모든 법을 깨우쳐 들
어가서 온갖 의심들을 이미 건너고 모든 미혹을 멸하여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으며 더 이상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태어나는 인연을 모두 멸하였다. 이와 같이 안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 5계의 법을 받았다.
그러나 수두단왕은 자식을 사랑하는 번뇌 그물에 덮인 까닭에 끝내 과[果]를 얻지 못하고 세존 앞에 앉아서 애처로운 음성으로 구슬프게 흐느끼며 이런 게송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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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옛날 7보관을 머리에 썼는데
아름답고 화려하던 그것은 어디 버렸소?
또 상투에 있던 밝은 구슬도 버려서
맨머리에 모양새가 흐트러지니 위엄이 없구나.
예전에 입었던 가장 좋은 가시(迦尸) 옷도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버리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이렇게 추하고
더러운 누더기를 왜 입고 있소?
그러자 세존께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노사(奴師)라는 이름의 나라가 있어서
나는 그곳에 천관(天冠)을 버렸습니다.
마음속 교만을 없애 버리기 위해
또 저 감로의 법문을 증득하기 위해
여러 색으로 물든 가사를 입으려고
나는 그 가시 옷을 버린 것입니다.
가사를 몸에 입고 난 뒤에
나는 위없는 미묘한 보리를 증득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여래를 향해서 게송으로 물었다.
내 일찍 궁전에서 백 가지 원을 빌어서
자식을 낳으면 전륜왕 되기 바랐는데
이제 머리를 깎고 발우 든 모습을 보이니
아들이여, 나에게 어느 것이 나은지 말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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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전륜왕은 만 가지 얻어도 마음에 흡족할 줄 모르고
비록 수명은 길다해도 자재롭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자재하여 끝이 없거늘
자식이 전륜왕 되기 바람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수두단왕이 게송으로 부처님께 물었다.
그대는 예전에 7보가 박힌 가죽신을 신고
온갖 부드러운 이부자리를 깔았으며
궁전이며 누각에서 편안히 살았고
머리 위로는 흰 일산을 받들었으며
발바닥도 연꽃처럼 부드럽고 깨끗하였는데
자갈과 가시밭 길 어떻게 걸었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답하였다.
내 이제 일체를 두루 아는 세존이 되어
모든 법에 물들지 않으니 연꽃과 같습니다.
모든 유(有)를 다 버려 애착이 없고
나는 지금 온갖 번뇌 없어졌습니다.
수두단왕이 게송으로 부처님께 물었다.
옛날 궁전에서 전단향과
온갖 향을 써서 달처럼 청량하였고
수시로 이 향을 그대 몸에 바르고
온몸에 두루 문지르면 편안해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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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여름 가장 더운 때요.
홀로 나무숲을 거닐며 고행하니
옛날 궁전에서는 아름다운 소리들이 있었는데
이제 채녀(婇女)들도 없으니 누구와 즐기리.
세존께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답하였다.
내게는 청량한 물이 담긴 법의 연못 있어
지혜로운 이 찬탄하는 근심 없는 곳입니다.
공덕의 보배 못에 몸을 씻으며
물에 빠지지 않고 저편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옛날 궁전에선 가시 옷을 입고
연꽃과 첨복향(瞻蔔香)을 몸에 쐬었고
부드럽게 접은 꽃을 옷 속에 넣었으며
석가의 궁전에 앉았으면 위엄이 빛났는데
지금은 거칠고 성긴 분소의(糞掃衣)와
나무 껍질에 물들인 그런 것을
겨우 몸에 걸치니 부끄럽지 않소?
그대 대장부여, 혐오스럽지 않소?
그러자 세존께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의복과 이부자리, 온갖 좋은 음식들
지난날 나는 모두 탐내었지만
아름답고 어여쁜 욕망의 대상들을
이제 바른 생각으로 모두 버렸습니다.
수두단왕은 다시 게송으로 부처님께 말하였다.
그대 예전에 궁중에서는 7보 그릇과
금과 은으로 만든 소반이며 책상을 썼고
갖가지 반찬들은 달콤한 맛을 지녀
모든 왕족들이 달게 먹었는데
이제 차고 덥고 시고 떫은 것
묘하지 않고 맛없는 것을 어떻게 먹으리.
어찌하여 이런 음식 싫어하지 않으며
냄새 나고 꺼림칙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내 전하여 듣자니 과거와 현재나
또 미래의 모든 성자들은
거칠고 쓴 것을 즐겨 먹는데
세간을 가엾이 여겨서 꺼리지 않는다 합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지난날 우리 궁중에 있을 때
침상이며 방석은 모두 미묘하고 부드러웠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 비길 데 없는 것이었고
기분 좋게 베개를 의지하니 싫은 것들이 없었는데
지금 딱딱한 맨땅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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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풀과 나무 잎만을 깔고 있으니
어찌하여 누워 자면서도 꺼리는 마음이 없소.
부드럽던 몸이 상처입지는 않겠소.
이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이제 모든 자재로운 지혜를 얻어
일체 고뇌를 다 해탈했으며
모든 괴로운 번뇌 가시도 빼내었으므로
세상을 가엾게 여기는 까닭에 싫어하지 않습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부처님께 말하였다.
그대가 지난날 집에서 향락을 누릴 때
온갖 아름다운 꽃이 땅에 뿌려졌고
방 안엔 바람도 없이 등불이 밝았으며
또 누각의 모든 창문도 튼튼하였고
꽃다발과 영락으로 치장한 여인들은
아름답기가 전륜왕의 여인들과 다르지 않았고
말씨도 곱고 서로 잘 어울리며
그대를 우러러보고 순종하지 않았던가?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부왕이여, 내 이제 새로운 행을 배웠으니
미묘한 모든 하늘의 범행(梵行)입니다.
나는 마음의 자재로운 행을 얻어서
내 마음대로 모두 다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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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말하였다.
마치 제석천왕이 하늘에서 그러하듯
그대가 궁에서 살 때에도
북과 비파와 공후의 음악 소리들과
미묘한 노래가 그대 잠을 깨웠소.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수다라와 게송[祇夜]이 아름다운 소리 내어
여의(如意)한 해탈로 지금 나를 깨웁니다.
내게는 청정한 수행을 함께하는 벗들이 있으니
대왕이여, 나는 이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두단왕이 게송으로 부처님께 말하였다.
대지와 모든 산천을 항복 받고
족히 천 명이나 되는 아들을 거느릴 수 있는데
아름다운 칠보를 모두 버리고
어쩌자고 이런 사문행을 행하는 것이오?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혜 삼매는 나의 대지(大地)요,
천 가지 선정은 내 아들이며,
7각지가 바로 보석이니
대왕이여, 나는 이미 모두 얻었습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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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지난날 잘 조련된 말에 멍에를 매었으니
그 수레는 온갖 보배로 장엄하였고
희고 깨끗한 일산으로 몸을 덮었으며
청정한 유리 자루의 불자(拂子)를 썼었소.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수두단왕에게 대답하였다.
내 정근(正勤)으로 네 필의 말을 삼았고
지혜와 부끄러움이 수레가 되며
정진은 날쌘 말이니 그 위에 올라타고서
나는 근심 없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집에 있을 때 건척(揵陟:말 이름)을 탔으니
그 몸은 눈부시게 희고 청정하며 뛰어났고
온갖 보배로 안장을 꾸몄으니
이런 말을 타고 마음대로 다니지 않았던가?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왕에게 답하였다.
대지에 흔히 있는 온갖 말들을
세간의 무수한 사람들이 타지만
그들은 모두가 항상하지 않음이 정한 이치라
이렇게 관찰하고 마음대로 신통을 부립니다.
수두단왕이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날 궁내에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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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이 천궁과 다름이 없었고
칼과 활을 든 대중들이 보호하였으며
몸에는 매우 촘촘하고 아름다운 갑옷을 입었는데
이제 그대는 숲에서 보호해주는 자도 없이
야차와 나찰이 나올까 무서운 곳에
어둔 밤에 온갖 짐승도 울텐데
어째서 이런 두려움 없다는 생각을 내는가.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왕에게 답하였다.
모든 야차들과 비사차 귀신들,
여러 무서운 짐승들과
어두운 밤에 숲에서 지내더라도
나의 털 끝 하나 건들지 못합니다.
다른 소리를 두려워 않으니 사자와 같고
끈으로도 얽어맬 수 없으니 바람과 같으며
또한 연꽃이 물 묻지 않듯이
나는 세상에 살아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이 때 장로 목건련(目揵連)과 장로 마하가섭(摩訶迦葉)ㆍ장로 우루빈라(優樓頻螺)가섭ㆍ나제(那提)가섭ㆍ가야(伽耶)가섭ㆍ우파사나(優婆斯那)ㆍ마하구치라(摩訶俱郗羅)ㆍ촌타(村陀)ㆍ이파다(離波多) 등 한량없는 대중들이 부처님 좌우에 앉아 있었는데 그 여러 대덕들은 고행했기 때문에 몸에 정기와 빛이 없고 매우 피로하여 몰골이 수척하고 광택이 없고 기력이 다 하여서 마치 힘줄과 껍질만이 그 형체를 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여, 지금 세존의 오른편에 앉은 이 사람들은 어디서 와 출가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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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금색의 팔을 펴서 수두단왕에게 그 낱낱 비구들을 가리키며 왕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이 사람은 사리불이요, 이 사람은 마하가섭이요, 이 사람은 바로 우루빈라가섭이요, 이 사람은 나제가섭이요, 이 사람은 가야가섭이요, 이 사람은 우파사나요, 이 사람은 이파다요, 이 사람은 다른 이파다인데, 이 사람들은 모두 마가다국 대성(大姓) 바라문 종족들입니다.”
수두단왕은 또 부처님께 물었다.
“지금 세존의 왼편에 앉은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며, 어디서 나와 세존에게 출가하였소?”
부처님께서는 또 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바로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이요, 이 사람은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이요, 이 사람은 마하구치라(摩訶俱郗羅)요, 이 사람은 마하순타(摩訶純陀)인데, 이 사람들은 또한 마가다 촌읍의 아주 큰 가문의 자제들입니다.”
그렇지만 수두단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울적하여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아들은 그야말로 세력 있는 큰 가문의 찰리 젊은이로서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싫어하지 않았으니 마치 황금상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런 큰 가문의 찰리 젊은이는 찰리 족성의 젊은이들이 에워싸야만 하며 이것이 법도에 맞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서 이 일을 이루고자 하여 곧 자리에서 일어나 궁으로 돌아갔다.
55. 우바리인연품(優波離因緣品) ①
수두단왕이 환궁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청년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을 우바리(優波離)라 하였다. 그가 대중 앞으로 나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그러자 우바리 청년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아당겨 부처님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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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르면서 이렇게 외쳤다.
“이 우바리가 세존을 위하여 머리를 깎아 드리려 합니다.”
그리하여 우바리는 곧 부처님의 머리를 깎았다. 그 때 우바리의 어머니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바리가 머리를 잘 깎습니까,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바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머리는 잘 깎지만 몸을 너무 낮추었구나.”
그러자 우바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우바리야, 너는 부처님의 머리를 깎으면서 몸을 너무 낮추어 세존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그 때 우바리는 곧 초선(初禪)에 들었다.
그러자 우바리의 어머니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바리가 머리를 잘 깎습니까,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셨다.
“비록 잘 깎기는 하나 그 몸을 너무 꼿꼿하게 세웠구나.”
우바리의 어머니가 다시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우바리야, 몸을 너무 꼿꼿하게 세워서 세존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이 때 우바리는 제2선(第二禪)에 들었다.
그러자 우바리의 어머니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바리가 머리를 잘 깎습니까,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바리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또 잘 깎기는 하나, 숨을 들이쉬는 것이 너무 심하구나.”
우바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부처님의 머리를 깎아 드리면서 그렇게 숨을 들이쉬기를 많이 하여 세존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그러자 우바리는 곧 제3선(第三禪)에 들었다.
이 때 우바리의 어머니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바리가 머리를 잘 깎습니까,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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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 1142] 쪽
“비록 잘 깎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숨을 내쉬는구나.”
우바리의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부처님의 머리를 깎아 드리면서 그렇게 숨을 너무 많이 내쉬어서 세존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이 때 우바리 동자는 제4선(第四禪)에 들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빨리 우바리 손에서 삭도(削刀)를 받아라. 그가 땅에 쓰러지지 않게 하여라. 왜냐 하면 이 청년은 이미 4선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 우바리의 어머니는 곧 아들의 손에서 삭도를 받았다.
바로 그 때 수두단왕은 가비라성에 들어가서 모든 석가족들을 궁전 앞 뜰에 불러 모아서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 석가족들은 명심하라. 나의 태자 실달이 출가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었을 것이요 그렇다면 너희 석가족들은 또한 섬겨 받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출가하여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하였고,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며 인간과 천상 가운데 가장 높은 이가 되었다. 그는 찰리족의 왕자로서 그 모습이 아름답기가 황금상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이제 바라문 종족들을 제자로 삼아 좌우에서
호위를 받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찰리 석가족 왕자는 찰리 석가족이 호위함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모든 석가족들이 다 함께 수두단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그럼 지금 저희들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수두단왕이 다시 말하였다.
“너희 모든 석가족들아, 만약 때가 되었다고 안다면 반드시 집집마다 한 사람씩 출가하도록 하라. 형제가 다섯 사람이면 세 명은 출가하고 두 사람은 집에 남을 것이요, 형제가 넷이면 두 사람은 출가하고 두 사람은 집에 남을 것이며, 형제가 셋이면 두 사람은 출가하고 한 사람은 집에 남을 것이며, 만약 형제가 없다면 그는 출가하지 말아야 하니 그 이유는 우리 석가족의 혈통을 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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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모든 석가족들이 함께 수두단왕에게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만약 그러시면 분명하게 언약을 세우도록 하소서.”
수두단왕이 곧 모든 석가족들을 불러모아서 말하였다.
“내 아들이 이미 출가하였는데 누가 그를 따라 출가할 것인가? 만약 그를 따라 출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서명하고 수결을 하라.”
그러자 5백 명의 석가족 청년들은 모두 태자를 따라 출가하고자 각기 자기 손으로 이름을 썼다. 그리하여 제 몸을 치장하던 장식품들을 모두 떼어낸 뒤에 이렇게 서로 말하였다.
“누가 우리들의 보석 장식품들을 모두 가져가야 할까?”
그리고 그들은 궁리를 한 끝에 이렇게 생각하고서 말하였다.
‘바로 우바리가 지난날부터 오래도록 우리 석가족을 부지런히 섬겨 왔으니, 우바리에게 우리가 벗은 보석 장식품들을 주어야겠다.’
그리하여 5백 명의 석가족 청년들은 모두 보석 장식품들을 풀어서 우바리에게 맡긴 뒤에 부모들과 의논하기 위하여 서로서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 때 우바리는 생각하였다.
‘저 석가족들도 지금 값비싼 보석 장식품들을 버렸는데 그런 것을 내가 받아 지닌다면 옳지 않다. 모든 석가족 청년들은 하나같이 큰 세력과 위신이 있지만 저렇게 소중한 관직과 작위와 온갖 재물과 보배를 버리고 출가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가 지금 어찌 출가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고 나서 이발사 우바리는 모든 석가족 청년들이 각각 제 부모에게 가서 의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내 그들이 주고 간 보석 장식품들을 버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곧 출가를 허락하시고 구족계를 주셨다.
한편 그 때 5백 명의 석가족 청년들은 각각 자기 집에서 부모와 의논하고 난 뒤에 다시 수두단왕의 궁으로 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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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시여, 지금 저희들을 세존 계신 곳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 분이 이미 출가하였으니 저희도 그 분을 따라서 출가하겠습니다.”
수두단왕은 곧 5백 명의 석가족 청년들과 함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편안히 자리잡고 앉았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신 대덕 찰리 종성이 저 바라문 종족들에게 호위를 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실로 옳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찰리 종성이므로 찰리족의 호위를 받아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석가족의 청년 5백 명이 세존의 법 가운데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하니, 원하건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청을 들어주시며 아울러 구족계를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그 5백 명의 석가족 청년들의 출가를 허락하여 구족계를 주시고 법도에 맞는 몸가짐을 일러주고 난 뒤에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다 함께 우바리 상좌(上座) 비구에게 정례하라.”
5백 명의 비구들은 먼저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 나서 다음에 우바리 상좌 비구에게도 절을 올렸다. 그들은 절을 하고 난 뒤에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 다시 수두단왕에게 이르셨다.
“대왕이시여, 지금 비구 우바리에게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 이어서 차례로 5백 비구들에게도 절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서 이어 우바리 상좌 비구에게 절을 하고 차례로 다시 5백 비구들에게 절을 한 다음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얼굴에 기쁨을 띠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석가족들은 이미 스스로 석가족의 교만함을 꺾었고 석가족의 오만함을 쳐부수었다.”
그러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우바리는 지금 세존으로 인하여 이 5백 명의
석가족 비구들과 또 수두단왕에게서 존경이 담긴 절을 받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이 우바리는 단 오늘만 나로 인하여 이 5백 비구들과 수두단왕의 공경심이 담긴 절을 받은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과거세에도 우바리는 나로 인하여 5백 명의 대신들의 절과 또 범덕왕이라는 이의 경례를 받은 적이 있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일은 어찌된 것인지 제발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하여 그 옛 인연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오래 전 옛날 바라나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친한 벗이었으나 둘 다 가난하였고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이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 때인가 각자 집에 있던 녹두 한 되를 가지고 바라나성으로부터 나와 품팔이할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
당시 벽지불(辟支佛) 한 사람이 언제나 바라나성을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그날도 벽지불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가난한 두 사람이 마침 존자 벽지불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벽지불은 몸가짐을 조용하고 법도에 맞게 지니고 있었으며 반듯하게 앞을 보고 걸었고 승가리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여 잘 어울렸으며 무게 있게 발우를 들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이런 벽지불의 모습을 보고 청정한 믿음을 얻어 그에게 기쁜 마음을 내면서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가난한 것은 전부 과거에 이런 복밭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또 만났다 하더라도 공경하고 공양하거나 우러러 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런 훌륭한 복밭을 만나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더 이상 재산이 없어 항상 품을 팔면서 연명하는 그런 힘든 처지를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한 되의 녹두를 저 선인(仙人)에게 받들어 공양하자. 만약 그가 우리를 가엾게 여겨서 우리가 올리는 것을 받는
다면 우리는 이제 이 가난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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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녹두를 벽지불에게 받들고서 말하였다.
‘존자시여, 제발 우리를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의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그 벽지불은 두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어 그 보시를 받았다. 그런데 벽지불에게는 한 가지 법 밖에는 없었으니 비록 보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중생을 교화시키되 신통만을 나타낼 뿐 다른 방편이 없었다. 그래서 벽지불은 두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서 보시를 받아든 뒤에 곧 그곳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떠나갔던 것이다.”
불본행집경 제54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5. 우바리인연품 ②
“이 때 그 두 친구는 벽지불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걸림 없이 노니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났다. 그들은 기쁨이 온몸에 가득 차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합장하고서 존자 벽지불의 발에 정례하여 이런 원력을 세웠다.
‘원하건대 미래세에 항상 이런 스승이나 더 나은 분을 만나서 그 분이 말씀하시는 법을 듣고 얼른 이해하며 악한 길에 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빌고 나자 다른 한 사람은 다시 이렇게 빌었다.
‘원하건대 이 공덕의 힘을 의지하여 미래세에 항상 큰 가문인 바라문 집에 나서, 네 가지 베다와 60가지 온갖 기술을 모두 익혀서 지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곧은 마음뿐만 아니라 바른 믿음을 품지 않는다면
어찌 최상의 복전(福田)이라 할 수 있으리.
원컨대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하여
또 이런 벽지불을 만나고자 하노라.
그 두 사람은 목숨이 다한 뒤에, 한 사람은 바라나성 찰리 큰 가문에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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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왕위를 이어 범덕이란 왕이 되었으며, 또 다른 사람은 바라문의 청정한 집안에 태어나서 우파가(優波伽)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는 모든 논(論)에 해박하였다.
그런데 이 청년 우파가에게는 마나비가(摩那毘迦)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가장 어여뻐 그의 미모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남편인 우파가는 한없는 사랑과 공경을 쏟았으며 잠깐이라도 아내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마나비가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마음에 미움과 원망을 품더니 끝내 남편 우파가와는 말을 주고받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자 우파가는 괴로워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내 아내 마나비가는 나와 말을 주고받지 않는구나. 결국 이렇게 목소리까지 듣지 못하게 되었구나.’
그 후 마나비가는 여름 넉 달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남편인 우파가에게 말하였다.
‘여보, 어서 시장에 가서 몸에 바르는 향과 가루향과 꽃 등을 가장 좋은 것들로 사오세요. 가을철 넉 달이 이제 이르러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5욕락을 즐기니 우리도 몸을 치장하고 5욕락을 즐깁시다.’
청년 우파가는 이 말을 듣자 그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 올라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아내 마나비가가 지금 무슨 생각이 들어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건네었을까?’
그런데 우파가에게는 일찍이 다른 마을 사람에게 빌려준 금화 한 닢이 있었다. 그래서 태양 볕이 대지를 달구어 대지의 빛깔이 마치 붉은 닭처럼 보일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달아오르는 한 낮에 그는 집을 나와 돈을 꿔간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마음이 탐욕에 사로잡혀 입으로 음탕한 노래를 불렀다.
바로 그 때 왕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누각에서는 범덕왕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막 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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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났을 때 홀연히 들려오는 5욕에 물든 음탕한 노랫소리에 그만 왕 자신도 욕망이 솟구쳤다. 그 게송이란 이러했다.
어떤 이는 본래 습기(習氣)를 말미암아서
어떤 이는 일에 따라 정욕이 움직이니
연꽃이 물에서 피어나듯이
이 색욕에 애착하고 물듦도 그와 같네.
이런 음탕한 노래를 듣게 된 범덕왕은 문득 놀라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대체 어떤 사람이 이토록 뜨거운 한 낮 시간에 욕망에 물들어 이런 음탕한 노래를 부르는가?’
이렇게 생각하고서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그리고 뙤약볕으로 대지가 이글이글 달아오른 거리를 우파가가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 한 대신을 불러 명령하였다.
‘경은 빨리 나가서 저기 노래하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나에게 데려 오너라.’
그는 명령을 받고 왕에게 아뢰었다.
‘명령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우파가를 따라가서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보시오, 젊은이, 대왕께서 그대를 부르시니 어서 갑시다.’
순간 우파가는 겁에 질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생각하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 내가 범덕왕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를 겁에 질리게 하는가?’
신하가 우파가를 범덕왕에게 데리고 가자 왕은 그를 보자마자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애정을 품게 되자 그를 향해 이런 노래를 불렀다.
한낮이라 햇볕이 불같이 타올라
붉게 달아오른 대지가 붉은 닭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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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지금 음욕에 빠져 노래부르면서도
어찌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는가.
햇볕이 두루 비추어 델 듯이 달아올라
땅 위의 모래마저도 녹일 정도로 뜨겁구나.
너 이제 음욕에 빠져 노래부르면서도
어찌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는가.
그러자 청년 우파가는 곧 게송으로 범덕왕에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지금 덥지 않습니다.
하늘의 햇볕이 아무리 내리쪼여도
지금은 이익을 얻을지 못 얻을지만 생각하니
이것이 괴로움 중에서도 큰 괴로움입니다.
햇볕이 비록 불같이 내리쪼여도
이런 것쯤 그다지 걱정할 일도 아닙니다.
온갖 일들을 경영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괴로움입니다.
범덕왕은 청년 우파가의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우파가여, 그대는 지금 어떤 일을 경영하기에 이렇게 뜨겁게 달아오른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가?’
우파가가 자기 사정을 범덕왕에게 자세히 이야기하자 왕은 우파가에게 말하였다.
‘우파가여, 그만두어라.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내 이제 그대에게 금전 두 닢을 주겠다.’
왕은 그에게 돈을 주었다. 그러나 우파가는 범덕왕에게 돈을 받 고 나서 다시 아뢰었다. --------------------------------------------------------------------------------------------------------------------------------- [1023 / 1142] 쪽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여, 비록 대왕께서 두 닢을 주시긴 하였습니다만, 저는 지금 대왕에게 한 닢 더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대왕께서 주신 돈이 금전 세 닢이 되면 저는 저 마을에 가서 한 닢을 더 채워 네 닢을 만들어서 제 아내 마나비가와 함께 가을철의 5욕락을 즐길 것입니다.’ 그러자 범덕왕이 우파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가지 말아라. 내 이제 그대에게 여덟 닢을 주겠다.’ 왕이 곧 돈을 내어주자 우파가는 여덟 닢의 금전을 받아든 뒤에 또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원하옵건대 크게 기뻐하소서. 이제 대왕에게 다시 한 닢의 금전을 청합니다. 그래서 금전 아홉 닢이 되면 저 마을에 가서 제 힘으로 한 닢을 받아 열 닢을 만들 것이며, 이렇게 하여 저는 마나비가와 가을철의 5욕락을 누리고자 합니다.’ 범덕왕은 다시 청년 우파가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내 이제 너에게 금전 열여섯 닢을 주겠다.’ 이렇게 하여 왕이 금전 열 여섯 닢을 주자 그는 돈을 받고 나서 또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크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미 대왕에게 금전 열여섯 닢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한 닢만 더 주시면 열일곱 닢이 될 것이요, 또 마을에 가서 제 스스로 한 닢을 받아 열여덟 닢을 만들면 이런 인연으로 저는 마나비가와 5욕락을 즐기고자 합니다.’ 이 때 범덕왕이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 청년 우파가여, 그만두어라. 그곳에 가지 말라. 내 이제 그대에게 32전(錢)의 돈을 주겠다.’ 그는 그 돈을 받고 나서 또 왕에게 아뢰었다. ‘착하신 대왕이여, 원컨대 크게 기뻐하소서. 저는 이미 왕에게 돈 32매(枚)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장만 더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마을에 가서 제 힘으로 한 장을 더 받아 모두 34장을 만들어서 마나비가와 함께 가을철에 5욕락을 누릴 것입니다.’ --------------------------------------------------------------------------------------------------------------------------------- [1024 / 1142] 쪽 그러자 범덕왕은 또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 우파가여, 그만두어라.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내 그대에게 64전(錢)의 돈을 주겠다.’ 우파가는 그 돈을 받고 나서 또 왕에게 아뢰었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원하옵건대 크게 기뻐하소서. 저는 이미 대왕에게서 64전의 돈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1전만 더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마을에 가서 제 힘으로, 1전을 받아 모두 66매(枚)의 돈을 만들어 그것으로 제 아내 마나비가와 함께 가을철의 5욕락을 즐기고자 합니다.’ 그러자 범덕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 청년 우파가여, 그만두어라.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나는 이제 그대에게 백 전의 돈을 주겠다.’ 우파가는 백 전을 받고 나서 또 아뢰었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원컨대 크게 기뻐하소서. 나는 지금 대왕에게 돈 백 매를 얻었습니다만 1전 더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저 마을에 가서 다시 1전을 받아 모두 102전의 돈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아내 마나비가와 함께 가을철의 5욕락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범덕왕이 다시 또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그만두어라.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내 다시 그대에게 고을 하나를 내려 주고 봉록을 베풀겠다.’ 그러나 그 바라문은 더 좋은 것을 탐내어 그것을 얻으려고 여러 번 왕에게 갔으며 마침내 왕은 가장 좋은 고을을 택해 그에게 봉해 주었다. 마침내 봉읍을 얻게 된 그는 부지런히 힘써 노역(勞役)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마치 머슴처럼 그 왕을 섬겼다. 그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행동이 부드럽고 하는 일이 모두 왕의 뜻에 맞았고, 뜻과 행동이 모두 반듯하고 단정하였다. 이렇게 왕을 섬기니 결코 왕에게서 질책을 받거나 미움을 받지 않았다. 이런 인연으로 왕의 안색을 살피니 범덕왕은 기뻐해 마지않았다. 그후 다시 왕은 우파가에게 나라의 반을 나눠주어 다스리게 하고, 왕의 창고도 반을 나누어 그에게 주었다. 우파가 바라문은 이런 은총을 받아 5욕락을 모두 갖추어 누리니 조금도 모자라거나 아쉬운 것이 없었다. --------------------------------------------------------------------------------------------------------------------------------- [1025 / 1142] 쪽 이렇게 그는 무슨 일이든 전부 왕을 위하여 지휘 감독하였으며, 그 바라문이 집을 나와 왕궁에 오면 왕은 항상 그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범덕왕이 우파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이 들자, 우파가는 왕이 잠든 것을 보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어 위세를 함께 부리고, 하나의 창고를 가지고 두 사람이 쓸 수 있으랴. 내 이제 범덕왕의 목숨을 끊어야겠다. 만약 그를 죽이면 나만이 왕위를 차지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우파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칼을 잡으려 하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이 범덕왕은 예전부터 나에게 커다란 이익을 베풀어주었고 자기 나라의 반을 나에게 나누어주고 함께 다스리게 하였고, 모든 창고도 반을 나누어주었는데 내가 지금 그런 사람을 죽인다면 이것은 은혜도 의리도 없는 자가 할 짓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하였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한 곳에서 함께 나라를 다스리며, 또한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창고의 재물을 쓰겠는가.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렇게 세 번을 생각하고 이내 후회하였다. ‘내가 만약 그를 죽이게 되면 틀림없이 나는 은혜와 의리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침내 우파가는 소리 높여 통곡을 하고 말았다. 난데없는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범덕왕은 우파가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슨 일로 이런 큰 소리를 내는가?’ 우파가는 범덕왕에게 그 사연을 말하였다. 그러나 범덕왕은 우파가의 이런 일을 진심으로 믿으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파가여, 그대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이다.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하지만 우파가는 끝까지 범덕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지금 나의 말을 믿으십시오. 나는 정말 이런 나쁜 마음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우파가는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 [1026 / 1142] 쪽 ‘내가 지금 느닷없이 이런 나쁜 마음을 낸 것은 무슨 일을 인연하였기 때문일까?’ 그가 올바르게 관찰하고 사유한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이런 나쁜 마음을 내게 된 것은 5욕락을 위하고 왕위를 위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 왕위를 탐내지 않고 또한 세상의 쾌락도 탐내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나에게 이런 나쁜 마음이 생겼으니, 나는 이제 집을 버리고 출가해야만 한다.’ 그리고 곧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는 이제 집을 버리고 출가할까 합니다.’ 그러자 범덕왕은 우파가에게 말하였다.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내 이미 그대에게 나라를 반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창고도 반을 나누어주지 않았는가. 지금 나에게는 오직 그대만이 심복이요, 그 어떤 사람도 그대만한 이가 없다. 만일 그대가 출가한다면 내 마음은 불안하고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파가는 왕에게 아뢰었다. ‘어지신 대왕이여, 제발 저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출가할 것입니다. 법을 향한 저의 행동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범덕왕은 우파가에게 말하였다. ‘굳이 그렇다면 그대 좋을 대로 하여라.’ 한편 당시 파라나성(波羅㮈城)에는 옹기장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선인(仙人)의 행을 행하며 그 성에 의지하여 살았다. 그 선인은 큰 위덕이 있어 이미 다섯 가지 신통을 이루어 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졌다. 우파가는 그 선인을 따라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출가한 뒤에는 용맹정진하여 곧 4선(禪)을 성취하고 또 5신통을 얻었으며, 큰 위력이 있어 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졌다. 범덕왕은 우파가가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대선인의 경지를 이루어서 큰 위덕이 있고, 또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은 이런 소식을 듣자 빙그레 웃으며 궁 안으로 들어가 궁궐의 모든 사람들에게 게송을 읊었 --------------------------------------------------------------------------------------------------------------------------------- [1027 / 1142] 쪽 다. 우파가는 선을 짓기 오래지 않아 이미 크나큰 이익의 과보를 얻었네. 착하신 그 선인은 사람 몸을 얻어 5욕락을 버리고 출가행을 닦네. 궁궐의 사람들은 범덕왕의 이런 게송을 듣고 나서 그 마음이 한결같이 근심에 잠기고 즐거움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범덕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그 사람은 본래 도박꾼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걸식하여 그것으로 목숨을 보전하였는데 그 바라문은 위신력이 줄어들자 출가한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이시여, 지금 저 사람처럼 집과 나라를 버리고 출가하는 일은 배우지 마소서.’ 그 때 범덕왕에게 항가파라(伽波羅)라는 이발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본래부터 범덕왕의 심복이었다. 범덕왕은 그 이발사를 불러 명령하였다. ‘항가파라야, 그대는 지금 내 머리와 수염을 다듬어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잠이 들었다. 이발사 항가파라는 왕이 잠든 동안 왕의 머리와 수염을 다 깎았다. 깨끗하게 다듬었는데도 범덕왕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뒤에 왕은 잠이 깨어 이발사 항가파라에게 말하였다. ‘내 이미 명을 내려 너에게 내 머리와 수염을 깎으라고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이발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항가파라는 범덕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이미 이발을 마쳤습니다. 다만 대왕님께서 잠이 드셔서 깨어나지 못하신 것입니다.’ 범덕왕은 이 말을 듣고 거울을 들어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깨끗하게 머리칼과 수염이 이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면서 항가파라에게 명하였다. ‘그대는 내가 다스리는 가장 좋은 고을을 받으라. 내 그대에게 주리니 마음껏 즐겨라.’ --------------------------------------------------------------------------------------------------------------------------------- [1028 / 1142] 쪽 그러자 이발사 항가파라는 범덕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궁내에 있는 대왕님 권속들과 자세히 의논한 뒤에 대답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왕에게 절을 하고 궁을 떠났다. 그 이발사 항가파라는 본래 왕궁 출입이 자유로웠으므로 곧 궁으로 들어가 궁궐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고을을 내려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모든 후비(后妃)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을을 받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러자 후비들은 항가파라에게 말하였다. ‘항가파라여, 지금 그대가 무엇 하러 왕의 가장 좋은 고을을 가지려 하는가? 우리가 지금 그대에게 금은과 같은 진귀한 보석들을 넉넉히 주겠다. 그러니 그저 우리가 그대에게 부탁하는 일을 들어주지 않겠는가?’ 이발사 항가파라가 궁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지금 무슨 일을 나에게 해결하게 하려 하십니까?’ 그녀들은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얼마 전부터 궁에 들어오시면 언제나 이런 게송을 읊었다. 우파가는 선을 짓기 오래지 않아 이미 크나큰 이익의 과보를 얻었네. 착하신 그 선인은 사람 몸을 얻어 5욕락을 버리고 출가행을 닦네. 우리들은 왕의 이 게송을 듣고 언제나 혹시라도 대왕께서 왕위를 저버리고 출가하실까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 착하고 착한 항가파라여, 그대는 지금 왕에게 가서 이 게송의 뜻이 무엇인지 대신 여쭈어보아라.’ 그리하여 항가파라는 범덕왕 처소에 나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저에게 가장 좋은 고을을 주신다고 하셨지만 지금 저에게는 그런 것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왕께서 항상 궁 안에 들어가시면 후비들 앞에서 읊으시는 다음의 게송을 알고자 합니다. 우파가는 선을 짓기 오래지 않아 이미 크나큰 이익의 과보를 얻었네. 착하신 그 선인은 사람 몸을 얻어 5욕락을 버리고 출가행을 닦네. 어지신 대왕께서는 저를 위하여 이 게송의 뜻을 말씀해주소서. 그것은 어떤 이치를 지닌 게송입니까? 지금 저는 대왕에게 이런 원을 빌 뿐입니다.’ 범덕왕은 이발사 항가파라에게 말하였다. ‘나는 청년 우파가가 나라의 반을 다스리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선인이 되어, 큰 위력이 있어서 손바닥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진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오로지 5욕락에 어지러이 취하고 탐닉하며 지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를 몹시 부러워하고 있으며 자주 궁 안에 들어가 그렇게 게송을 읊었던 것이다.’ 이발사 항가파라는 이 말을 듣고 곧 궁에 들어가 후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후비들께서는 대왕이 출가할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왕은 결코 출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후비들은 이발사 항가파라의 말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차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온갖 보석들로 자신들의 몸을 치장하고 난 뒤에 항가파라에게 말하였다. ‘항가파라여, 이제 우리는 이 보석들을 모두 그대에게 주겠으니, 그대는 이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다른 일들은 하지 말아라.’ 항가파라는 이런 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우파가는 이미 이런 나라의 반을 다스리는 왕위도 버리고 출가하였고, 지금 범덕왕도 그를 부러워하는데, 내 이제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게 만들지 않을 것인가. 그런데 이 후비들은 온갖 보석들을 나에게 베풀고 있다. 내가 만약 이 후비들의 뜻을 따른다면 일은 반드시 좋지 못하리라. 나 또한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 옳으리라.’ 항가파라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범덕왕의 처소에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이여, 먼저 저에게 그런 일을 허락하셨는데 저는 지금 모두 버리고 출 --------------------------------------------------------------------------------------------------------------------------------- [1030 / 1142] 쪽 가하고 싶습니다.’ 범덕왕은 물었다. ‘항가파라여, 그대는 지금 누구에게 출가하려 하는가?’ 항가파라는 대답하였다. ‘저는 저 우파가에게 출가하고자 합니다.’ 범덕왕은 일렀다. ‘항가파라여, 그대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것을 따라서 하여라.’ 그리하여 항가파라는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고 우파가 선인의 처소에 나아가 출가하였다. 출가하고 한 뒤에 그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4선(禪)을 성취하고 또 5신통을 얻었으며, 큰 위신과 큰 위덕이 있어 또한 해와 달을 어루만졌다. 범덕왕은 이미 항가파라가 출가하여 큰 신선이 되었고 큰 위력이 있어 또 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진다는 말을 듣고, 그를 우러르며 부러워해 마지않다가 그를 만나고자하여 모든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대신들이여, 나는 지금 그 선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만나고자 한다.’ 그러자 대신들은 일제히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그럴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지금 친히 그 사람에게 나아가시는 일은 당치 않습니다. 사신을 보내어 그 선인들을 불러오게 하소서.’ 그러나 범덕왕은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경들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옛날부터 그런 법은 없었다. 모든 선인들을 내 맘대로 불러서 오게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지금 직접 그곳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법다운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선인들은 큰 복전(福田)이므로 공양을 받기에 족하니, 반드시 우리들이 직접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범덕왕은 스스로 위엄과 덕을 갖추고 수레에 올라타고 화려하게 치장한 5백 대의 수레를 좌우에서 둘러싸게 하고 5백 명의 모든 대신들과 같이 파라나성을 나와서 우파가 청년이었던 선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스스로 그 세계를 빛내고자 하였다. --------------------------------------------------------------------------------------------------------------------------------- [1031 / 1142] 쪽 이 때 항가파라 선인은 멀리서 왕이 오는 것을 보고 왕을 맞으며 말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범덕이여, 참으로 먼 곳까지 오셨습니다.’ 그러자 5백 명의 대신들은 그 항가파라 선인에게 크게 화를 내면서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그야말로 하천하고 음탕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몸이다. 더럽기 그지없어 언제나 때를 씻는 처지에 있으면서 어찌 감히 대왕의 이름을 부르느냐?’ 범덕왕이 그 신하들을 말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선인의 법이 그런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법칙인 것이다. 단 이 선인은 계행(戒行)을 지키고 있으며 위대한 위신력이 있다.’ 그리고 범덕왕은 곧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경들은 이 선인을 원망하지 말아라. 이 선인은 수행을 완전히 갖추어서 모든 고행을 다 수행하였기에 일체 괴로움과 두려움을 건넜다. 마음에 모든 악함을 이미 버렸기에 이제 이발사와 옹기장이가 아닌 것이다. 항가파라는 이미 고행을 마쳤고 우리들을 항복한지라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지금 참는 힘을 얻은 그대들을 보자니 모든 감각기관 항복하여 과위를 이루었네. 모든 천상과 인간이 공경히 받드니 천상과 인간 중에 가장 높다네. 그리고 범덕왕과 궁 안의 모든 채녀들이 먼저 그 선인의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자, 5백 명의 대신들도 차례로 그 선인의 발에 머리를 대고 --------------------------------------------------------------------------------------------------------------------------------- [1032 / 1142] 쪽 절을 하였다. 절을 하고 난 뒤에 다시 항가파라 선인의 발에도 절을 하였고 그 다음에는 역시 옹기장이였던 선인의 발에도 절을 하였다. 범덕왕은 한쪽에 앉아서 선인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십니까? 생활하시는데 피로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 선인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 선인들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우리들은 지내기 걱정이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옥체가 편안하십니까? 권속들과 대신과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도 두루 평안합니까?’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선인들은 범덕왕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교화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공덕을 더하게 하였다. 이렇게 범덕왕은 그 선인들의 설법 교화를 받아 마음이 즐거워지고 공덕이 더욱 불어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선인들에게 절을 하고 자신의 본래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들은 마음에 의심이 있으리니 그 때의 우파가가 누구였는가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는 바로 나였다. 너희 비구들 중에 어떤 이는 의심을 가질 것이니 그 때의 선인 항가파라 이발사가 누구였는가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이 우바리 비구가 바로 그였다. 너희 비구들 중에 또 어떤 이는 의심을 가질 것이니 그 때 범덕왕이 누구였는가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가 바로 지금의 수두단왕이었다. 너희 비구들 중에 어떤 이는 의심을 가질 것이니 그 때 5백 명의 모든 대신들이 누구였는가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바로 지금의 이 오백 비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비구들이여, 그때 우바리 비구도 나로 인하여 5백 명의 대신들에게 공경과 예배를 받았고 범덕왕에게도 예배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도 또한 그렇게 나로 인하여 5백 비구들과 수두단왕의 예배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만약 나의 성문(聲聞) 제자들 가운데 계율을 지니는데 가장 --------------------------------------------------------------------------------------------------------------------------------- [1033 / 1142] 쪽 으뜸가는 사람은 바로 우바리 비구임을 알아야 한다.” 이 때 비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우바리는 옛날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 업보를 타고 이발사라는 하천한 집에 태어났을까? 그리고 어떤 업을 지었기에 그 업보를 타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아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지금 부처님께서 그를 수기하여 당신의 성문 제자들 가운데서 계율을 잘 가지는 사람은 이 우바리 비구라고 수기하시는 것일까?’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장로 우바리는 옛날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 업보를 타고 이발사라는 하천한 집안에 태어났으며, 또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 업보를 타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곧 부처님께서 그에게 수기를 주시기를, 당신의 성문 제자들 가운데서 계율을 갖는데 으뜸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생각건대 지나간 아주 오래 전에 이 성에 이발사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이발사 집안의 딸을 맞아 아내를 삼고, 그 뒤 오래지 않아서 한 아들을 낳았었다. 그 이발사는 곧 병을 얻었는데 비록 치료를 하였지만 차도가 없었고 결국 그 병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 말았다. 그 이발사가 죽자 그의 아내는 어린 아들을 이발사인 친정 오빠에게 맡기면서 이렇게 부탁하였다. ‘이 아이는 오빠의 조카입니다. 그래서 이제 맡기니 제발 이 아이에게 자기 부친의 본업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발사는 누이동생의 말을 듣고 그 아이를 맡아서 부친의 본업을 가르쳤다. 그런데 외삼촌인 그 이발사는 언제나 왕궁에 있으면서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국왕의 머리와 수염을 깎아 주었으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부 사람들의 이발을 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왕은 영을 내려서 그에게 흰 코끼리 한 마리를 주어 마음대로 타게 하고, 또 금으로 된 통을 주어 면도칼과 그 밖의 것을 넣게 하였다. --------------------------------------------------------------------------------------------------------------------------------- [1034 / 1142] 쪽 그리고 또 명령을 내리기를 ‘무릇 부처님께서 없는 세상에는 벽지불(辟支佛)이 있는데 마치 무소와 같이 홀로 다니며 나올 때에는 마땅히 이익을 지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 당시 벽지불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머리카락과 손발톱이 매우 길었다. 어느 날 벽지불은 이발사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착한 이여, 부디 나의 머리와 수염을 깎아주시오.’ 그러자 이발사는 벽지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신 대선(大仙)이시여, 그럼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아침 일찍 오십시오. 당신의 머리와 수염을 꼭 깎아 드리겠습니다.’ 존자 벽지선인은 이 말을 듣고 그날은 돌아갔다가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그 이발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착한 이여, 이제 나의 머리와 수염을 깎아주오.’ 그런데 이발사는 다시 벽지불에게 말하였다. ‘착하신 대선이여, 그럼 저녁때에 오십시오. 내가 꼭 깎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해가 서쪽에 기울 때 오라고 해놓고는 다시 아침에 오라 하고, 만약 아침 일찍 가면 저녁때에 오라 하는 등 이렇게 아침에도 이발해주지 않고 저녁때에도 이발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어린 조카는 존자 벽지불이 아침에도 오고 혹은 해가 저물었을 때도 오는 등 매일 그렇게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존자 벽지불에게 물었다. ‘존자 벽지불 선인이시여, 무슨 이유로 아침이나 저녁마다 항상 이곳에 오시는 것입니까?’ 벽지불은 동자에게 지난 사연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러자 동자는 선인에게 말하였다. ‘저의 외삼촌은 결코 선인의 머리를 깎아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왕궁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되자 교만한 마음이 생긴 까닭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선인을 위하여 이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조카는 곧 선인에게 이발을 해주었다. 그러자 존자 벽지불 --------------------------------------------------------------------------------------------------------------------------------- [1035 / 1142] 쪽 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 동자는 큰 공덕을 짓는구나. 내 이제 동자를 위하여 공덕의 일을 빛나게 보여 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동자에게 말하였다. ‘너 동자야, 만약 때를 알거든 반드시 나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거두어서 가지고 있거라. 그러면 너는 장차 큰 이익을 만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치 기러기가 두 날갯죽지를 펴듯 신통력으로써 문득 날아 올라 허공을 타고 갔다. 그러자 동자는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 벽지불의 머리카락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벽지불을 향하여 우러러 두 손을 합장하여 정례하고 이런 원력을 세웠다. ‘원하건대 나는 미래세에 이런 벽지불 존자나 혹은 더 나은 분을 만나고, 그 세존의 설법을 듣는 대로 빨리 다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나는 악도에 나지 않기를 바라며, 세세생생에 항상 이런 이발사가 되어 복전(福田)이 되고, 이런 성자를 공양하고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바로 이 때 그 성의 궁 안에서는 국왕이 정전에서 모든 대신들에게 에워싸여 정사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벽지불이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대신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지금 매우 길상스럽고 이롭습니다. 사람의 몸을 잘 얻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 큰 복전이 나셨습니다.’ 왕도 곧 그 벽지불을 우러러보고 모든 신하들에게 일렀다. ‘이 벽지불의 머리와 수염을 깎은 이는 크게 상서로운 이익을 지었도다.’ 그러자 왕의 이발사가 그 옆에 있다가 이렇게 아뢰었다. ‘제가 아니면 이런 선인의 머리를 누가 깎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 조카인 동자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고하였다.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저의 외삼촌은 지금 허무맹랑한 말을 합니다. 저의 외삼촌은 처음부터 그 분의 이발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 선인의 머리와 수염을 깎은 사람은 바로 --------------------------------------------------------------------------------------------------------------------------------- [1036 / 1142] 쪽 저입니다. 진짜로 이발을 해드린 사람을 찾자면 바로 저입니다.’ 그러자 외삼촌인 왕의 이발사는 어린 조카를 꾸짖었다. ‘이 어리석은 아이야, 네가 무슨 힘이 있어 그 분의 머리를 깎았단 말이냐?’ 동자는 벽지불의 머리털을 내어 대중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선인의 머리카락입니다. 제가 지니고 다니니 모두들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때 왕은 이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그 이발사에게 말하였다.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아, 너는 나에게서 이런 힘을 가졌는데 오늘 무슨 이유로 나를 속이려 하느냐. 어서 이 나라를 떠나라. 내 국토 안에서 살지 말아라.’ 그리고 흰 코끼리와 이발 기구들, 또 봉록을 빼앗아 동자에게 주고 명령하였다. ‘오늘부터 너는 항상 나의 머리털과 수염과 손톱을 깎아라.’ 동자는 곧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지금부터 항상 대왕을 위하여 머리와 수염과 손톱을 다듬어 드리겠습니다.’ 그후 그는 세상 수명을 따라 살다가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인연하여 세세 생생토록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서 인간에 이르고 인간에서 천상에 이르며 이렇게 두 곳을 오가다가 훗날 바라나성의 한 이발사의 집에 태어났다. 어린 그의 모습은 매우 단정하고 고와서 보는 사람은 싫증을 내지 않았다. 동자의 부모는 그를 잘 길렀는데 자라면서 지혜가 생기자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가르쳤다. 바로 그 때 가섭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으니, 이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위대한 스승이 되어서 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라 불렸다. 이 때 가섭 세존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법바퀴를 순서대로 또는 역순으로 굴리신 뒤였으며, 법 수레의 본래 소원을 완전하게 갖추어 받아 가장 날카롭고 뛰어난 대장부의 뜻을 이루었고, 한량없는 수억 수천만의 중생들에게 활짝 핀 연꽃처럼 열어 보이셨으며 착한 길로 인도하셨다. 그 당시 가섭 세존 --------------------------------------------------------------------------------------------------------------------------------- [1037 / 1142] 쪽 은 바라나성에 의지하여 수행하셨으며 옛 선인들이 거처하던 곳인 녹야원에서 2만 명의 비구들과 함께 머물고 계셨다. 이 때 그 아버지인 이발사는 자주 녹야원으로 가서 비구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러자 이발사의 어린 아들도 걸을 수 있게 되자 아버지를 따라서 가람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비구들이 여러 법을 설하거나 강론할 때 그 어린 아이도 듣게 되었는데 아이는 율(律)을 강론할 때는 어떤 것은 들을 수 있었지만 어떤 부분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자 어린 아이는 비구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좋은 말씀에서 나는 어떤 것은 들을 수 있고 어떤 것은 들을 수 없는 것입니까?’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동자야, 이런 법은 비구들의 비밀한 일이다. 구족계를 받지 않으면 모두 듣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근심을 품었다. ‘어찌 하면 내가 속히 출가하여 좋은 말씀을 다 들을 수 있을까?’ 훗날 동자는 율사(律師)에게 출가를 허락해주시기를 빌어서 구족계를 받고, 비구들을 따라 계율을 지송(持誦)하며 법에 따라서 수행하였다. 비록 그렇게 수행하였지만 그는 출세간의 지혜를 증득하지는 못하였다. 그런 그가 훗날에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는 목숨을 마칠 때에 이르자 또다시 이렇게 원을 세웠다. ‘가섭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는 호명(護明)이라는 보살이 한 분 계시는데 여래께서 그 분에게 미래세에 중생의 수명이 백 세가 될 때 마침내 성불하리니 이름을 석가모니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라 하리라고 수기를 하셨다. 이제 나는 장래 석가모니를 만나서 원하는 대로 그 가르침 가운데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그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 계율을 지키는 자로는 내가 으뜸이 될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내 스승님께서 가섭 부처님의 계행 제자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이듯이 나 또한 그렇게 그 때 석가 여래의 법의 가르침 속에서 계행을 행하는 제자로는 으뜸이 되리라.’ 그 사람은 즉시 목숨이 다하여 곧 천상에 났으며, 나아가 오늘에 이르러서 --------------------------------------------------------------------------------------------------------------------------------- [1038 / 1142] 쪽 는 최후의 몸으로 가비라성의 이발사 집안에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이 우바리였던 것이다.” 불본행집경 제55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5. 우바리인연품 ③ “너희 비구들아, 혹시 그 때 어린 이발사가 누구였는지 마음에 의심이 일어난다면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그가 바로 지금의 우바리 비구이다. 그런데 우바리는 과거세에 존자 벽지불의 머리를 이발해 주고 나서 ‘세세생생에 만약 사람의 몸을 얻으면 항상 이발사의 집에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라고 서원하였고, 또 그 때 ‘악도 가운데 나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과보의 힘으로 그는 악도에 나지 않고 그 때부터 천상과 인간을 흘러다니면서 많은 쾌락 을 받고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나는 미래세에 항상 이런 스승이나 혹은 이보다 나은 분을 만나서 만일 그 스승의 설법을 들으면 빨리 증득하고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소원을 세운 업보로 인하여 이제 나를 만나 스승을 삼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이다. 또 가섭 여래의 가르침을 배울 때에는 ‘제발 저 미래세에 석가모니 여래를 만나 그 법을 어기지 않고 출가하고 수순하여 계행을 잘 지키는 그 분의 제자 가운데 내가 가장 으뜸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서원한 그 업보에 의하여 지금 나의 법 가운데 출가하였으며 내지 계율을 갖는 제자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우바리는 과거세의 이와 같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발사 집에 태어났고, 또 서원을 세운 업의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현재에 과보를 받아 나의 법 가운데 이렇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 --------------------------------------------------------------------------------------------------------------------------------- [1040 / 1142] 쪽 득하였으며, 또한 계율을 잘 지키는 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56. 라후라인연품(羅睺羅因緣品) ① 어느 때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부처님과 대중들은 제가 내일 아침에 베푸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묵묵히 허락하셨다. 수두단왕은 부처님께서 묵묵히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세 번 에워싸고 돈 뒤에 하직하고 떠나갔다. 그리하여 궁궐에 도착하자 그날 밤에 온갖 맛좋고 진귀한 음식들을 고루 준비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익힌 음식, 씹어 먹는 음식, 집어먹는 음식, 빨아먹는 음식 등이었다. 왕은 모든 음식을 다 준비한 뒤에 그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청소하고 자리를 깐 뒤에 사신을 보내어 부처님 께 여쭈게 했다. “이미 때가 되어 음식이 모두 준비되었으니 와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해가 동쪽에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모든 비구승들이 좌우로 에워싼 가운데 부처님이 우두머리가 되어 수두단왕의 궁으로 가셨다. 궁에 도착하자 부처님께서는 미리 마련한 자리에 앉으시고 비구승들도 각각 차례에 따라 법답게 앉았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부처님을 위시하여 여러 비구승들이 차례로 앉은 것을 보고 나서, 손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맛좋은 음식들을 가지고 공양 올리며 배불리 먹도록 권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과 대중들이 흡족하게 음식을 먹고 난 것을 보자 발우를 씻어서 다른 곳에 준비해둔 하나의 작은 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편안히 앉은 뒤에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제발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또 원하옵건대 세존 선서께서는 가르침을 나타내 보이셔서 제가 오래도록 항상 이익되고 안락한 일을 얻게 해주십시오.” --------------------------------------------------------------------------------------------------------------------------------- [1041 / 1142] 쪽 그러자 세존께서는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오늘 만약 때를 아신다면 이 법을 듣고자 하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또한 자주 비구들에게 찾아와서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오래지 않아 저절로 가장 미묘한 과위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수두단왕을 교화하여 법을 설해 나타내 보여서 그를 깨닫게 하고 크게 기쁘게 하고 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처소로 돌아갔다. 또 어느 때 수두단왕은 사리불로 인연하여 깨끗한 법의 눈을 얻고 겸하여 수다함을 증득하였다. 이미 모든 법에 들어가 온갖 의심을 끊고, 마음에 미혹이나 두려움이 없게 되었으며 다시 또 그 밖의 법행(法行)을 묻지 않고도 모두 증득하여 알고 난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제도하여 출가해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게 하소서.” 이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수두단왕은 이 가르침 속에서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또 다시 훌륭한 상인(上人)의 법을 증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세존께서는 이 수두단왕에게는 결정코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일이 합당하지 않으며 또한 상인의 법을 증득하지 못할 것을 아셨다. 이렇게 알고 나서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오늘 만약 때를 알면 집에 머물러 계시면서 보시를 행하고 복업을 짓도록 하소서.” 그 다음날에 마하파사파제 왕비도 부처님과 대중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공급하여 모두 배불리 먹게 하였고, 세 번째 날에는 제1궁에 살고 있는 후비와 권속들이 또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베풀어 충족하게 공급하였고, 네 번째 날에는 제2궁에 살고 있는 이들이 또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청하여 백 가지 맛을 갖춘 음식을 공양하여 모두 흡족하고 배불리 먹게 하였다. 한편 라후라는 여래께서 출가한 지 6년이 지난 뒤에야 모태에서 출생하였으며, 여래께서 부왕의 궁에 돌아오셨을 때 라후라의 나이는 겨우 6살이었다. 여래께서 가비라성에 돌아오시자 라후라의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였 --------------------------------------------------------------------------------------------------------------------------------- [1042 / 1142] 쪽 다. ‘내 옛날 이 라후라로 인하여 모든 권속들의 비방을 받았는데 이제 때가 왔다. 오늘 나는 그 일에 대해서 결백을 보여주어 의심을 씻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처님과 모든 비구승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보시하고, 또 일체 권속들을 청하여 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겠다.’ 야수다라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갖가지 맛좋고 진귀한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밤이 지나자 곧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음식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모든 권속들에게 고하여 모두 함께 자신의 초대를 받아 모이도록 하였다. 세존께서는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여러 비구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나오셨다. 부처님을 위시한 큰 비구 1,250명은 모두 함께 왕궁으로 나아가서 마련된 자리에 차례로 앉았다. 이때 라후라의 어머니는 따로 커다란 환희환(歡喜丸) 하나를 만들어 라후라의 손에 쥐어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얘, 라후라야. 비구승들이 있는 곳에 가면 네 아버지가 계실 테니 그분에게 이 환희환을 드려라.” 그리고 나서 라후라의 어머니는 일체 권속들에게 말하였다. “이 라후라는 이제 자기 아버지를 찾아낼 것입니다.” 이 때 라후라는 환희환을 가지고 모든 비구들을 두루 살펴보다가 주저하지 않고 부처님 곁으로 가서 말하였다. “이 사문의 그늘이 매우 좋구나, 이 사문의 그늘이 매우 좋구나.” 이 때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일은 어떠합니까? 야수다라에게 과연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존께서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제 그런 의심을 내지 마십시오. 야수다라는 아무 허물이 없습니다. 라후라는 진짜 나의 아들입니다. 다만 이 아이는 지난 과거의 업연(業緣) 때문에 태 속에 6년이나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 [1043 / 1142] 쪽 수두단왕과 여러 권속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각각 손수 갖가지 음식을 가지고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 올려서 그들이 마음껏 넉넉하게 먹도록 권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과 대중들이 발우와 손을 씻은 뒤에 각각 낮은 자리를 가져다가 부처님의 좌우에 빙 둘러서 앉았다. 이때 수두단왕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까닭에 그와 같은 인연을 자세하게 묻지 못하여 비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컨대 여러 스승들이여, 세존께 라후라와 야수다라가 지난 세상에 지은 업의 인연이야기를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라후라는 지난 옛적 무슨 업의 인연을 지었으며 무슨 업의 과보 때문에 태 속에 6년이나 머물러 있었습니까? 그리고 야수다라는 또 무슨 업을 지었기에 6년이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까?” 이 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헤아릴 수 없이 오래 전 세상에 바라문 종족의 왕이 한 사람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인천(人天)이었다. 아들 둘이 태어났으니 첫째 왕자의 이름은 일(日)이고, 둘째 왕자의 이름은 월(月)이었다. 그런데 첫째 왕자는 언제나 세상살이를 즐거워하지 않아서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왕이 죽었다.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일과 월 두 왕자는 서로 왕위를 사양하였다. 형인 일 왕자가 말하였다. ‘네가 왕이 되어 국사를 다스려라.’ 동생인 월 왕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형님이 왕이 되셔서 나라의 정사를 맡으셔 야 합니다.’ 그러나 일 왕자는 월 왕자에게 사양하였다. ‘네가 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겠다.’ 월 왕자는 다시 형에게 말하였다. ‘형님은 장남이니 왕위를 이으셔야 합니다. 제가 왕위에 오르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 [1044 / 1142] 쪽 그러자 일 왕자는 동생 월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왕위를 이어받으면 가장 먼저 어떤 법을 쓸 수 있느냐?’ 동생은 대답하였다. ‘먼저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일 왕자는 다시 물었다. ‘만약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 명령을 어긴다면 어떤 죄로 다스려야 마땅하겠느냐?’ 월 왕자는 대답하였다. ‘죄가 무거운 사람에게는 중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일 왕자는 다시 동생인 월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 도리에 의거하여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이치에 맞다. 그런데 나는 이제 왕위를 너에게 맡길 터이니 너는 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고 싶다.’ 이렇게 하여 일 왕자는 왕위를 월 왕자에게 넘겨주고, 마침내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며 그 일 왕자의 권속들도 모두 다 그를 따라서 출가하였다. 어느 날 일(日) 선인(仙人)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은 나를 따라 출가하였다. 나는 지금 이들의 스승이 되었으니 부지런히 배우고 힘써 도업(道業)을 구하여 그들보다 나아야 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제 나는 지금부터 다른 사람이 베푼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갖지 않을 것이며 내지 한 가지 물건이나 한 방울의 물, 이쑤시개 하나까지도 함부로 갖지 않겠다.’ 그런데 그 선인은 어느새 본래 생각을 잊어버리고, 남이 주지 않은 약초의 뿌리와 과일을 스스로 따먹고, 또 밤에 목이 마르면 남의 물그릇을 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로 마시고, 자기의 그릇은 한쪽 가에 두었다. 그 때에 그 물 그릇 주인인 선인이 자기 그릇에 물이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 ‘누가 내 물 그릇의 물을 가져갔느냐? 여기는 도둑이 사는 곳이지 선인이 --------------------------------------------------------------------------------------------------------------------------------- [1045 / 1142] 쪽 사는 곳은 아니구나.’ 그러자 물을 가져다 마신 선인은 자기 그릇에 물이 가득 담겨 한쪽 가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모르고 그대의 물을 마셨소. 용서해 주시오.’ 그러자 그 선인은 일 선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마셨다면 잘된 일입니다.’ 그러나 착각하여 잘못 물을 마셨던 선인은 스스로 올바르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미 지난번의 서원을 잊었으니 옳지 못하다. 이것은 선법(仙法)이 아니다. 어찌하여 남이 주지 않는 온갖 약초의 풀과 과일을 스스로 먹었고, 또 남의 물을 가져다 제멋대로 마셨단 말인가.’ 이런 인연으로 울적하고 기쁘지 않아 마음에 근심이 생겨 땅 위에 꿇어앉아 바른 생각으로 사유하면서 이 일을 근심하고 있었다. 이 때에 제자인 청년들이 일 선인에게 와서 그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며 법답게 그를 섬겼다. 그러자 선인은 제자인 청년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에게 절을 하지 말아라. 왜냐 하면 나는 오늘 도둑질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청년들은 곧 예전에 왕이었던 선인에게 물었다. ‘우파타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일 왕선(王仙)은 청년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나는 남이 주지도 않은 약초의 뿌리와 과일을 먹었으며, 또 남의 물을 가져다 내 멋대로 마셨었다.’ 이렇게 말하였으나, 그 동자들은 다시 일 왕선에게 말하였다. ‘스승께서는 지금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스승께서 드시고 마셨던 것은 전부 우파타(優波陀)의 물건입니다.’ 그러나 일 왕선은 또 청년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남이 주지 않은 것을 내 마음대로 가진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남이 주지 않은 약초의 뿌리와 물그릇의 물을 내 마음대로 가져다 마셨기 때문에 이미 도둑이 되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도둑을 다스리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나의 죄를 벌하여라.’ --------------------------------------------------------------------------------------------------------------------------------- [1046 / 1142] 쪽 그러자 모든 청년 제자들이 다 함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어떻게 감히 우파타의 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우파타의 아우께서 지금 왕이 되어 이 경계를 법에 맞게 다스리고 있으니 그에게 가면 반드시 우파타의 죄를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선(王仙)은 월왕의 처소에 나아갔다. 그런데 월왕은 이미 이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일 왕선이 다가가자 곧 네 가지 병사를 갖추어 성 밖까지 나와 맞이하였다. 그리고 일 왕선이 도착하자 그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였다. 일 왕선은 월왕을 말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발에 절하지 마시오. 왜냐 하면 지금 나는 도둑이니 대왕은 반드시 나의 죄를 도둑을 처벌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벌해 주어야 하오.’ 월왕은 형인 일 선인에게 물었다. ‘성자께서는 지금 무슨 도둑질을 하였다는 말씀입니까?’ 그 일 선인은 대답하였다. ‘대왕은 굽어살피소서. 내가 고요하고 한가로운 숲에서 수도할 때 남이 주지 않은 약초의 뿌리와 과일을 먹었고 남의 물을 함부로 가져다 마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괴로워하며 구슬프게 울었다. 그는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채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런 선인은 본래 공덕을 행하고 스스로 청정하여 허물이 없는데, 어떻게 오늘 벌을 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왕선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모든 선인들에게 모든 과일과 약초의 뿌리 내지 물까지도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마시기를 허락합니다. 그러므로 선인들이 먹는 것은 모두 자신들의 물건이므로 대선(大仙)은 도둑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또한 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선은 월왕에게 일렀다. ‘대왕이 오늘 비로소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옛날에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나는 지난날 막 왕위를 이을 때 사문과 바라문에게 초목과 물을 마음대로 --------------------------------------------------------------------------------------------------------------------------------- [1047 / 1142] 쪽 먹도록 보시하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대선께서는 진짜 도둑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떻게 벌하겠습니까?’ 그 왕선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내 이제 이미 착하지 않은 일을 저질렀으니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이 죄를 소멸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미 남의 물그릇에 담긴 물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반드시 나를 도둑을 처벌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벌하셔야 합니다.’ 이 때 월왕에게 조카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 모임에 있다가 월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어서 이 선인의 죄를 판결하셔서 선인이 번뇌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월왕은 그 선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일이 그렇다면 내 동산에 들어가 머물러 수도하십시오.’ 그리고 월왕은 이 선인을 그 동산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왕은 이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 채 6일을 보냈다. 그런 뒤에 비로소 기억해내고는 신하들을 불러서 물었다. ‘경들은 저 선인이 동산에 아직 있는지 떠났는지를 아는가?’ 대신들은 대답하였다. ‘그 선인은 아직 동산에서 나오지 않고 그 안에 있습니다.’ 이 때 월왕은 갇혀 지내던 세상의 모든 죄수들을 사면해 주었고 날짐승ㆍ 들짐승들까지도 다 놓아준 뒤에 따로 그 선인을 불러 온갖 맛좋은 음식을 보시한 뒤에 말하였다. ‘이제 대선께서는 마음대로 가십시오.’ 이렇게 풀어주었지만 월왕은 마음이 울적해져서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나는 이 선인에게 이미 죄를 지었다. 이 선인으로 인하여 반드시 죄를 얻었을 것이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그 때의 일 왕선이 누구인지 의심한다면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내가 바로 그였다. 그 때 월왕이 누구였는지 의심한다면 다른 생각
을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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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라. 곧 라후라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때 그 선인을 동산에 들여보내어 6일간 있게 한 그 업보로 인하여 생사 번뇌에 머물러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다가 그 나머지 업으로 인연하여 다시 모태에 6년 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생각하건대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세상 이전에 소 떼 한 무리가 어느 목장에 있었다. 그런데 이 목장 주인의 처가 딸 하나를 데리고 그 목장에 와서 소젖을 짜 두 그릇에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큰 그릇은 딸에게 지게 하고 작은 그릇은 자기가 메고 돌아오다가 그 도중에 딸에게 말하였다.
‘어서 빨리 가자. 이 길은 험한 데다 무섭구나.’
그러자 딸이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이 그릇은 크고 무거운데 제가 어떻게 빨리 갈 수 있습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거듭 말하였다.
‘어서 빨리 가자. 지금 이 길은 몹시 겁나고 무섭구나.’
이 때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찌하여 나에게 큰 그릇을 짊어지게 해놓고는 또 빨리 가자고 재촉하시는 걸까?’
딸은 이로 인하여 화가 났다. 그래서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가 이 그릇까지 같이 들고 가세요. 저는 지금 잠깐 대소변을 보고 싶어요.’
그리하여 어머니는 그 큰 그릇까지 메고 갔으며 딸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무겁게 두 그릇을 짊어진 채 결국 6구로사를 걸어가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음에 분노를 품고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거운 것을 지워 6구로사를 가게 한 딸이 누구인지 의심한다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바로 야수다라 석가족의 여인이 그녀였다. 그 때 어머니에게 무거운 것을 지게 하여 6구로사의 길을 가게 한 그 업보 때문에 생사 번뇌 가운데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으며 그 남은 업보로써 금생에도 6년 동안이나 임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
다.
비구들이여, 모든 업이란 헛되게 받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을 짓는 데에 따라 스스로 받게 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너희 비구들은 항상 몸과 입과 뜻의 나쁨[惡]을 버려야만 한다. 왜냐 하면 몸과 입과 뜻으로 선하거나 악한 업의 과보를 짓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착하고 악한 과보가 나타나는 것이니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이렇게 착한 업을 닦아야만 한다.”
세존께서는 수두단왕과 그 대중들을 위해 미묘한 법을 설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법을 베풀고 나타내 보여 교화를 마치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처소로 돌아가셨다.
그 때 라후라의 어머니는 라후라를 아버지 곁으로 보내어 아버지에게 봉록(封祿)을 달라고 시켰다. 그러자 라후라는 부처님을 따라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스님, 저에게 봉읍(封邑)을 주십시오. 스님, 저에게 봉읍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라후라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손가락을 잡고 부처님을 따라갔다.
세존께서 라후라를 데리고 고요한 숲에 이르자 장로 사리불을 불러 말하였다.
“사리불아, 라후라를 출가시켜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서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라후라를 출가시켰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금계(禁戒)를 제정하시자 라후라는 크게 기뻐하며 금계를 받고 법답게 받들어 행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법을 가르침이 그러하였으니, 사리불이 부처님 교계(敎戒)에 따라 거두어 가르쳐 보이면 선남자들은 모두 바른 믿음과 바른 견해를 얻었다. 왜냐 하면 출가하여 위없는 도(道)를 구하여 모든 범행(梵行)을 닦기 원하였기 때문이고, 또 이익이 나타나 스스로 법을 보고 증득하며, 스스로 증득해 알고 나서 스스로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하여,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 라고 외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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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 / 1142] 쪽
라후라도 이렇게 스스로 그 마음을 증득하고 바른 해탈을 얻었으므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성문(聲聞) 제자 가운데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는 이 라후라가 가장 으뜸임을 알아야 한다.”〔마하승기사(摩訶僧祇師)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유사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이 때에 수두단왕은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난 뒤에 궁내 모든 권속들을 불러 놓고 명령하였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누구라도 라후라와 말할 때 실달다 태자를 가리켜 ‘너의 아버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라후라가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부친을 따라 출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두단왕은 그날 밤 온갖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서 그 밤이 지나자 아침 일찍 모든 자리를 마련한 뒤에 라후라를 여러 어린 소년소녀 시종들이 좌우로 에워싼 가운데 아수가(阿輸迦) 숲으로 들여보냈다. 그런 뒤에 사신을 부처님께 보내어 아뢰었다.
“공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을 다 준비해 놓았으니 존자께서는 때를 아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해가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비구승들이 좌우에서 에워싼 가운데 수두단왕의 궁에 이르셨다. 그리하여 미리 마련된 자리에 차례대로 앉으셨다.
이 때 라후라는 그 어린 소년 소녀들이 서로 장난하며 마구 장난을 치는데 유모들도 아무도 막거나 말리지 않고 함께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보더니 마침내 아수가숲을 가만히 빠져나왔다. 라후라는 왕궁으로 들어와 세존과 비구들을 보았다. 그는 세존과 비구들을 보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곧 누각에 올라갔다.
바로 그 때 라후라의 어머니가 먼저 누각에 올라 있었는데 그녀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은 세존을 보고 나서 슬피 울었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석가족 대왕 아들의 신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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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야수다라라고 불렀는데
남편의 이러한 출가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슬퍼하여 번민하고 울었네.
이 때 라후라는 그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찌하여 그렇게 슬프게 우십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라후라에게 대답하였다.
“사문들 가운데 계신 몸이 황금색인 분이 바로 너의 아버지이시란다.”
라후라는 다시 그 모친에게 말하였다.
“이러한 성자(聖者)이신 줄은 제가 태어난 이래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누각에서 급히 내려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 옷자락 속에 숨었다. 이 때 비구들은 이것을 제지하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막지 말고 나의 옷 속에 있게 그대로 두어라.”
이 때 수두단왕은 부처님과 비구들이 차례로 앉은 것을 보고 손수 온갖 맛있는 음식을 받들어 마음껏 흡족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공양하였다. 세존께서는 공양이 끝나고 발우와 손을 씻자 낮은 자리를 가져다 한쪽에 물러가 앉아 있는 부왕을 위하여 축원하시며 이렇게 말하였다.
제사할 때는 불[火]이 제일이요
게송에는 찬탄함이 제일이며
사람 가운데는 왕이 제일이요
물 가운데는 바닷물이 제일이며
별 가운데선 달이 제일이요
모든 밝음 중에는 해가 제일이며
위아래와 동서남북의
온갖 중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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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천상이나 인간의 세계에선
모든 부처가 으뜸이네.
이렇게 수두단왕을 위하여 축원하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인연을 따라 가셨다.
이 때 수두단왕은 국사(國事)를 감독하고 돌보느라 이리저리 다녔다. 그 때 라후라는 이미 부처님을 따라 궁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친히 손가락을 라후라에게 내밀어 그것을 잡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내민 손가락을 잡은 라후라는 그 몸이 편안하고 즐거웠으며 마치 줄로 모든 새의 발을 얽은 것처럼 세존의 몸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세존을 따라서 니구타숲으로 갔다.
그러자 세존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나를 따라 출가하겠느냐?”
라후라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출가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라후라를 출가시키고자 한다. 사리불에게 그를 보내어 스승으로 삼게 하겠다.”
그러자 모든 비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는 옛날 우리들에게 나이 스무 살이 되지 않으면 구족금계(具足禁戒)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 라후라는 겨우 15살이다.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예전에 내리신 말씀을 따라야하는가, 아니면 다시 다른 것을 따라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자신들의 생각을 부처님 앞에 나아가 자세히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알아야 한다. 15세에 출가하는 자는 사미(沙彌)가 되어야 한다.”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곧 출가시키고, 사리불을 청하여 화상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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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수두단왕은 세존과 비구들과 모든 권속들을 보내고 난 후 앉아 밥을 먹으려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라후라를 불러오라. 그와 함께 밥을 먹으리라.”
그 좌우 신하들은 사방을 두루 찾았으나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자 왕에게 돌아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희는 지금 라후라를 찾아보았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다시 일렀다.
“그대들은 아수가 동산이나 궁 안의 모든 곳을 샅샅이 찾아보아라.”
좌우 신하들은 다시 아수가 숲과 궁 안의 모든 곳을 두루 찾아보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그곳에 가서 두루 찾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또 말하였다.
“빨리 니구타(尼拘陀) 동산에 가 보라. 혹 세존이 데리고 가서 출가시키지 않았는가 보아라.”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급히 니구타 동산에 가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라후라가 이미 세존에 의해서 출가했음을 발견하고 궁으로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굽어살피소서. 라후라는 이미 세존께서 출가를 시키셨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놀라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가 조금 지난 뒤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왕은 서둘러 성을 나와 니구타 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자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난날 궁에 있을 때 상(相)을 보는 바라문들이 만약 세존께서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이미 집을 버리고 출가하였습니다. 나는 세존이 출가한 것을 본 뒤에 왕위를 난타(難陀)에게 맡기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그 뒤에 그를 출가시켰으므로 나는 다시 아난타(阿難陀)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존께서는 또 아난타도 출가시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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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니루타(阿尼樓陀)에게 왕위를 물려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또한 세존께서 출가시켰습니다. 나는 다시 바제리가(婆提唎迦)에게 왕위를 넘겨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 그도 또한 출가시켰습니다. 이제 라후라나 남겨 두고 왕위를 물려주기를 바랐더니 세존께서는 그 애마저 출가시켰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라후라까지 출가시키고 나니 어찌 우리 왕족이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세존이시여, 자식을 사랑하는 정은 골수에 사무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이런 조건을 정하소서. 모든 비구들이 출가하고자 하거든 부모에게 출가를 허락 받은 뒤에 출가시키도록 하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기지 않고 대왕의 생각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런 조항을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수두단왕에게 모든 법과 이치를 설하여 나타내 보이고 교화시켜,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위력을 더하여 다시 크게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물러나 궁으로 돌아갔다.
이에 세존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비구승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알아 두어라. 자식으로서 그 부모에게 은혜를 갚기 어렵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 부모는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하여 세간에 나타내어 보였으며, 모든 음(陰)을 길러 젖을 먹이고 그 몸을 크게 키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들은 지금부터 누구든지 출가하고자 하거든 먼저 그 부모에게 허락을 얻은 뒤에 출가시키고, 만약 허락을 받지 못한 자를 출가시키게 되면 꼭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나는 오늘부터 이런 법을 세우니, 무릇 사람이 와서 출가하기를 원하거든 먼저 꼭 이렇게 물어라.
‘그대의 부모는 살아 계신가?’
그래서 생존해 있다고 답하면 또 이렇게 그의 부모가 그 사람의 출가를 허락하였는지 허락하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다섯 명의 논사들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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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후라가 태어난 지 2년 후에야 보살이 출가하여 6년 고행을 한 뒤에 성도하였으니, 성도한 지 7년이 되었을 때 가비라성에 돌아왔으니,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라후라가 출가하였던 때는 그의 나이가 바로 15세가 된다.
또 어떤 논사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하파사파제 왕비는 그 보살이 집을 버리고 출가한 것을 보고, 이런 인연으로 수심에 잠겨 고민하고 울다가 눈이 상하여 장님이 되었다. 그런데 불세존께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12년이 지난 뒤에 모든 일가 권속들을 불쌍히 여겨서 가비라성에 돌아왔다. 이 때 수두단왕은 모든 궁내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그들이 좌우에서 에워싸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 가운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또 성이 같은 동족 9만 9천 명이 세존을 보려고 모두 함께 갔다
.
마하파사파제 교담미도 그의 아들 라후라를 보이고자 하여 그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이 때 여래께서는 서로 반대되는 신통을 나타내셨다.
그러자 마하파사파제 교담미 왕비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들이 신통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곧 ‘몸 아래서는 불꽃을 내고, 몸 위에서는 시원한 물을 솟게 한다’는 말을 듣자 기쁨이 차 올라 온몸에 즐거움이 가득 차니 이기지 못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처소에 도착하자 부처님을 공경하는 까닭에, 그 부처님 몸에서 흘러내린 물로 자기 몸을 씻고 또 얼굴을 씻었다.
이 때 세존께서는 마하파사파제에게 자비심을 일으켜, 그 몸에 두루 기쁨을 느끼게 하자 그 멀었던 눈이 환히 틔었으며 예전보다 더 밝아졌다. 그러자 마하파사파제는 부처님에 대하여 더욱 커다란 믿음과 공경심을 가졌다.
이 때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지금 이 마하파사파제 교담미는 세존을 그리면서 수심에 잠겨 슬피 울다가 그 눈이 멀었던 것이며, 또 무슨 인연으로 세존으로 인하여 두루 청정해진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그 마하파사파제 교담미는 다만 지금의 나를 위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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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에 싸여 울다가 눈이 멀고, 다시 나로 인해 청정함을 얻은 것뿐만이 아니다. 과거세에도 나를 위해 근심하고 울다가 그 눈이 멀었으나, 다시 나로 인하여 눈의 청정함을 얻었다.”
이 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일은 어찌 된 일인지 말씀하여 주소서.”
불본행집경 제56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6. 라후라인연품 ②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생각하건대 과거 구원겁(久遠劫) 때에 가시국(迦尸國) 어느 촌락 가까운 곳에 울증가(鬱蒸伽)라는 이름의 산이 하나 있었다.
그 산 남쪽에 동산 숲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10만 그루 이상의 온갖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으며, 꽃과 열매가 무성하고 가지와 잎이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푸른 구름덩이와 같았다. 또 그 동산 안에는 곳곳마다 연꽃이 피어난 못과 늪이 많이 있어 동산 숲을 수놓았다. 그 숲은 높고 커서 고요하고 한가로웠다. [혹 어떤 논사는 울증가산은 바라나성에서 가깝다고 말하였다.]
그 때 그 산에는 코끼리떼가 살고 있었는데 그 코끼리 무리 가운데 있던 어미 코끼리 한 마리가 새끼 한 마리를 낳았다. 새끼 코끼리는 생김새가 단정하여 보는 이는 누구나 좋아하였다. 이 코끼리는 몸이 희고 어금니 여섯 개를 완전하게 갖추었는데, 그 머리는 새카만 것이 마치 인타라구파(因陀羅瞿波) 새의 머리와 똑같았다. 그리고 몸의 일곱 군데로 땅을 버티었다. 그 새끼 코끼리는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서 위대한 코끼리왕이 되었다. 그는 법답게 수행
하였는데 특히 부모에게 극진하게 효도하였으며 공양을 올릴 때에는 온갖 먹을 것과 과일, 풀뿌리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먼저 받들어 올려서 배부르게 먹게 한 뒤에야 자기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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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코끼리왕은 풀뿌리와 과일 등 먹을 것을 구하느라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그로 인하여 사냥꾼 한 사람에게 모습을 들켰다. 사냥꾼은 이 코끼리를 보고 생각하였다.
‘이 큰 코끼리는 보통 사람이 함부로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범덕왕(梵德王)만이 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사냥꾼은 범덕왕의 궁전으로 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어느 숲 속에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있는데 생김새가 아름답고 반듯하며 그 몸통은 희고 어금니 여섯 개를 완전하게 갖추었고, 머리는 새카만 것이 마치 인타라구파 새의 머리와 같으며 몸의 일곱 군데로 땅을 버티고 섭니다. 제가 생각해 보니 그 코끼리는 바로 대왕께서 타실 만한 것입니다. 대왕께서 마음에 있으시면 사람을 보내어 그 코끼리를 잡아서 대왕님께 보이도록 하소서.’
그러자 범덕왕은 코끼리를 잘 잡는 사람을 불러 명령하였다.
‘내 누구에게 들으니 큰 코끼리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코끼리는 어금니가 여섯 개요 생김새가 아름답고 반듯하여 보는 이는 누구나 좋아하며 내지 몸의 일곱 군데로 땅을 버틴다고 한다. 그대들은 어서 그곳으로 가서 그 코끼리를 잡아 나에게 데려오너라. 늑장을 부려서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코끼리 잡는 사람들은 범덕왕의 명령을 듣고 대답하였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들은 질긴 가죽끈과 동아줄을 가지고 코끼리 있는 곳으로 가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코끼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제 발로 걸어나왔고 사람들은 그런 코끼리를 붙잡아서 가죽끈으로 잘 묶어서 범덕왕에게로 끌고 왔다.
범덕왕은 멀리서 사람들이 그 커다란 코끼리왕을 몰고 오는 것을 보고 맞이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처럼 묘하고 좋은 대승(大乘)을 멋지게 얻었다. 이렇게 묘하고 좋은 대승을 멋지게 얻었다.’
그리하여 범덕왕은 친히 코끼리를 사육하였다. 그 코끼리가 먹을 만한 먹이가 있으면 무엇이든 가져다 주었으며 코끼리의 먹이는 왕이 몸소 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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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살폈지만 코끼리왕은 오히려 야위어갔으며 언제나 크게 신음하고 울부짖었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구슬피 울어댔다.
범덕왕은 코끼리왕이 여위고 초췌해지며 눈물을 흘리면서 구슬프게 우는 것을 보고 그 코끼리 앞에 가서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온갖 좋은 먹이를 너에게 주고 있는데 너는 야위어가며 살이 찌지 않고 기력이 줄어들고 몸이 수척해 가기만 하는구나. 내가 너를 바라보자니 너의 마음은 기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는구나. 나는 너를 사랑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먹이를 주며 보살피건만 너는 무슨 일로 그러는 것이냐? 내 이제 무슨 일이든 들어주어서 너를 기쁘게 해주겠다. 너는 무슨 연고로 기뻐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이냐?’
코끼리왕은 범덕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이제 대왕에게 한 마디 말씀을 올려서 왕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범덕왕은 코끼리왕의 이런 말을 듣자 크게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코끼리왕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코끼리왕에게 답하였다.
‘너 코끼리왕이여, 어서 말을 하여 나를 기쁘게 하라.’
그러자 코끼리왕은 범덕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은 굽어살피소서. 저 숲 속에는 나의 부모가 있는데 나이가 많고 쇠약합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왕에게 잡히기 이전에도 단 한번도 제가 먼저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먼저 부모에게 드린 뒤에야 먹었으며, 물과 음료도 역시 부모님이 먼저 마신 뒤에 제가 먹었습니다. 내 이제 생각하건대 왕께서 내리시는 온갖 물자를 받으니 저는 조금도 모자라는 것 없이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모는 저 숲 속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커다란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부모를 보지 못하니 그 때문에 근심에 싸여 즐거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범덕왕은 이 말을 듣자, 신기하면서도 기특한 마음이 생겨 이렇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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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기하고 불가사의하구나. 사람 가운데도 이와 같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코끼리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코끼리왕에게 말하였다.
‘위대한 코끼리왕이여, 내가 지금 이 목숨이 다하도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와 같은 법다운 행을 갖지 못하거늘, 계를 갖는 묘행으로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는 이런 일을 어찌 방해하겠는가.’
그리고 나서 범덕왕은 다시 코끼리왕에게 말하였다.
‘코끼리왕이여, 내 이제 너를 놓아줄 테니 부모에게 가서 함께 공양을 올리고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거라.’
그리고 범덕왕은 코끼리를 풀어주면서 게송을 읊었다.
코끼리왕이여, 잘 가거라.
부모에게 효순하고 공양을 올려라.
내 차라리 내 목숨을 버릴지언정
너를 다시는 방해하지 않으리라.
범덕왕이 코끼리왕을 놓아주자 코끼리왕은 천천히 숲을 향해 나아갔다.
한편 그 즈음 코끼리왕의 어미는 자식이 보이지 않자 근심하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구슬프게 울부짖다가 결국 두 눈을 잃고 말았다. 앞을 보지 못하자 사방을 헤매면서 뛰어다녔기 때문에 어미 코끼리는 자기가 살고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 있게 되었다.
코끼리왕이 다시 그 숲에 돌아와 어미 코끼리를 찾았으나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미가 보이지 않자 코끼리왕은 소리내어 크게 울부짖었고, 그 때 어미 코끼리는 그 부르짖는 소리가 자기 자식의 소리인 줄 알고서 또한 소리내어 구슬피 울부짖었다.
코끼리왕은 그 어미 코끼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소리나는 곳을 찾아 따라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미 코끼리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코끼리왕은 어미 코끼리가 물가 가까운 곳에서 머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어미를 물가 위로 모셔 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물가로 들어가서 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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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히 물을 담아서 나왔다. 코끼리왕은 기쁨이 온몸에 가득 차 올라 이길 수 없어서 어머니 곁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물을 뿌리며 목욕시켜 드렸다.
어미 코끼리는 아들이 물을 가져와 몸을 씻기자 순간 시력을 되찾았는데 예전보다 눈이 더 밝아졌다. 어미 코끼리는 아들을 보자 물었다.
‘너는 어디 갔다가 오늘에야 돌아왔느냐? 나는 오랫동안 너를 보지 못하였구나.’
그러자 코끼리왕은 어미 코끼리에게 범덕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혀서 왕궁으로 끌려갔던 일과 왕의 공양을 받은 일, 그리고 다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일 등 모든 일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어미 코끼리는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기뻐하였으며 벅차 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렇게 외쳤다.
‘아들아, 내 오늘 너를 다시 만나 살 수 있게 되었고 기쁨과 즐거움이 이토록 크니 부디 범덕왕도 그 부모 처자와 남녀 권속들과 친척과 대신과 백관, 옆에서 보좌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며, 내가 지금 이렇게 기쁨을 받는 것과 같이 그들도 기쁘게 살아갔으면 좋겠구나.’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그 코끼리왕이 누구였는지 속으로 의심하는가? 그는 바로 나의 몸이었다. 그리고 그 때의 어미 코끼리가 누구였는지 의심하지 말아라. 그는 다름 아닌 마하파사파제 교담미였으니 과거세에도 나 때문에 슬피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괴로워하다가 두 눈이 멀었으나 다시 나로 인하여 더 깨끗한 눈을 얻었으며, 지금도 그러하여 마하파사파제는 나를 보지 못하여 슬피 울고 근심하며 괴로워하다가 두 눈이 멀었으나, 다시 나 때문에 청정함을 얻었다.
너희 비구들아, 여래는 과거에 수행할 때 아직 성불하지 못했으면서도 이처럼 중생을 이익 되게 하였는데, 하물며 오늘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뒤에 있어서이겠느냐.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과 희유한 마음을 내고, 법과 승가에도 또한 공경하는 마음을 내야하나니, 너희 비구들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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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난타출가인연품(難陀出家因緣品) ①
그 때 세존께서는 난타를 교화하여 출가시키고자 자주 출가 인연을 말씀하시고, 또 출가 인연을 찬탄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대 난타여, 어서 오너라. 어서 출가하여라.”
그러나 난타는 이렇게 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의복ㆍ와구ㆍ음식ㆍ탕약의 네 가지로 세존과 비구승들에게 이 몸이 다하도록 공양 올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두 번 세 번 난타를 교화하시면서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공덕 인연을 찬탄하고 자주 출가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거듭 그의 출가를 권하고 찬탄하였으나, 난타는 기꺼이 출가하려 하지 않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의복ㆍ와구ㆍ음식ㆍ탕약을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끝내시고 시자 한 사람을 데리고 천천히 난타 동자의 집으로 가셨다.
그 때 난타는 아내 손타리(孫陀利)와 함께 누각에 올라 경치를 즐기며 앉아 있다가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일어나서 누각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서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이렇게 멀리 나오셨습니까? 제발 자비를 드리우셔서 제 방으로 들어오시어 자리에 오르소서.”
부처님께서는 그의 방에 들어가 자리에 오르신 뒤 난타를 위로하고 나서 묵묵히 앉아 계셨다.
그러자 난타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디 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제가 맛좋은 음식들을 마련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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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미 공양을 끝냈으니 준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자 난타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꿀물이 있는데 때 아닌 때[非時]에라도 마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난타는 부처님 발우를 받아들고서 때 아닌 때의 꿀물을 가득 담아 가지고 세존께 받들어 올렸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러자 난타는 시자(侍者)에게 발우를 주었으나 시자 또한 받지 않았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본래 처소로 돌아가시고자 자리에서 일어나 시자를 데리고 나가셨다. 난타 또한 꿀물이 든 발우를 들고 누각에서 부처님을 따라 나왔다.
석가족의 여인인 손타리는 남편 난타가 꿀물을 가득 담은 발우를 들고 부처님을 따라 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머리 빗질을 채 끝내지 못하였는데 문득 큰 소리로 난타를 부르며 물었다.
“난타님,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난타는 발우를 가리키며 대답하였다.
“이 발우를 받들어 가지고 부처님을 전송하고 곧 돌아오겠소.”
손타리는 말하였다.
“난타님, 빨리 돌아오세요. 그곳에 오래 머물지 마세요.”
세존께서는 난타의 집에서 나오시자 난타를 위하여 길거리를 이리저리 걸어가시면서 성안의 사람들에게 난타가 꿀물이 담긴 발우를 들고 부처님을 따라가는 것을 보이셨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틀림없이 난타에게 집을 버리고 출가하게 하신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가람에 도착하시자 한 비구를 불러 손으로 가만히 그 모양를 지어 난타가 들고 있는 꿀물 발우를 받으라고 지시하였다. 그 비구는 부처님의 뜻을 알고 난타한테서 그 발우를 받았다.
그러자 난타는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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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돌아가지 말아라.”
난타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출가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이 몸이 다하는 날까지 네 가지 물건으로 여래와 비구승들을 공양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난타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이 염부제 세계는 가로 세로가 7천 유순이고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으니 마치 수레 상자와 같으며, 이 세계 안에 아라한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은 마치 감자나 대나무ㆍ갈대ㆍ삼과 벼가 빽빽하게 자라있는 것과 같다.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네 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그 모든 아라한들을 공양하되 거르지 않으며, 그 아라한들이 열반에 든 뒤에는 다시 사리탑을 세우고, 그 탑 위에 여러 가지 당번과 일산과 보배 깃대들을 베풀어 공양하
고, 또 향과 꽃과 온갖 등불들을 공양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ㆍ선여인들의 공덕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복덕이 매우 클 것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이 염부제에 가득 차 있는 아라한에게 어떤 사람이 그 수명이 다하도록 네 가지 물건과 향과 꽃과 등불을 사루어 공양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 부처님 한 분을 공양하는 공덕의 과보보다는 못하다.
그러나 난타야,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법의 가르침 속에 들어와 출가하여 단 하루만이라도 청정한 범행의 법을 수행한다면, 이 과보는 그보다 배나 더할 것이다. 그러므로 난타야, 너는 꼭 출가해야 하며, 다시는 5욕락(欲樂)을 누리는 것에 탐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난타야, 모든 탐욕은 맛이 적고 고통과 근심은 크며, 항상됨이 없어 싫어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괴로움의 근본이요 큰 종기와 혹이며, 매우 날카로운 가시며, 큰 액난의 얽매임이며, 이것은 큰 고뇌요, 줄어드는 특징을 띠며, 파괴되는 특징을 띠고 있으며, 덧없어서 머물지 못하고, 잠시라도 정지해 있지 않는 것이다. 또 이것은 굳건하지 못하여 위태롭고 깨어지기 쉬우며, 두려움이 큰 것이고, 괴로움[苦]이요 텅 빈[空] 것이며, 내가 아
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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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無我]이니, 너는 이제 마땅히 모든 욕심은 이토록 허물이 있고 근심거리임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난타야, 너는 이제 오욕(五欲)의 허물과 근심을 잘 생각하여서 탐내거나 애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세존께서는 난타에게 이와 같은 허물과 근심을 설명해 주었지만 난타는 마음으로 출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부처님을 공경하는 까닭에 머리를 숙이고 마지못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출가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경행하실 때 손가락으로 모습을 지어서 한 비구를 부르셨다. 그가 오자 이렇게 이르셨다.
“너는 이발사를 불러오너라.”
그 비구는 곧 대중 가운데 이발사를 불러 난타 앞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이발사가 손에 삭도를 들고 난타의 머리털을 깎으려 하자 난타는 이발사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지금 무슨 힘으로 감히 내 머리를 깎으려 하느냐?”
이 때 세존께서는 바른 생각과 바른 뜻으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오너라, 그대 비구여, 내 법 가운데 들어와 범행을 행하고 모든 괴로움을 다하라.”
여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타의 머리털과 수염이 저절로 떨어지니 마치 머리를 깎은 지 7일쯤 지난 비구와도 같아졌다. 또한 그의 몸에는 저절로 가사가 입혀지고 손에는 그릇이 쥐어졌다. 그리하여 그 장로는 곧 출가를 이루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 때 난타는 매우 단정하고 훌륭하여 모든 사람이 그를 보면 한결같이 좋아하였고, 서른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으며, 몸은 황금색을 띠었고 키는 부처님보다 손가락 네 마디쯤 작았으며 그가 지어 입은 가사는 부처님의 것과 아주 똑같이 맞춘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비구들은 난타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는 세존인가 하여 일어나 맞으려 하다가 아닌 것을 알고 도로 앉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로 해서 비구들은 언짢게 생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장로 난타는 어찌하여 부처님 의복과 똑같이 입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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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모든 비구들을 모이게 하고 난타에게 물으셨다.
“너는 승가리와 그 밖의 옷들을 부처님 것과 똑같이 만들어서 입거나 가지고 있느냐?”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이것은 법답지 못하다. 너는 어찌하여 불ㆍ세존과 똑같은 승가리를 지니느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난타를 꾸짖고 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세존과 같이 의복을 만들어 지녀서는 안 된다.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법답게 죄를 다스리리라.”
이 때 난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 부처님과 똑같은 옷을 만들어 지니는 것을 금지하셨으니, 이제 옷을 만들면 두드려 광택을 내어서 입어야겠다.’
그리고 나서 난타는 옷을 두드려 광택을 내어 입고, 발우를 들고 눈에는 눈썹약을 바르고 몸을 치장하고 가죽신을 신고 왼손에 일산을 들고 오른손에 발우를 들고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성안에 들어가 걸식하고자 합니다.”
“너는 지금 선남자로서 믿는 마음으로 집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정말 그렇습니다.”
“너는 신심 있는 선남자로서 집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인데 어쩌자고 입는 의복을 두드려 광택을 냈으며, 또 무슨 까닭에 눈에는 눈썹약을 발라 몸을 장엄하였고, 가죽신을 신었으며, 한 손에는 일산을 들고 다른 손에 발우를 들고서 걸식하려 하느냐? 난타야, 만약 아란야처에 있으면서 걸식하여 목숨을 보전하려거든 누더기를 입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게송을 읊으셨다.
어느 때나 난타가 조용한 곳에
머무르며 항상 걸식함을 볼 것인가.
언제나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아 모두 버리고
또 기꺼이 모든 탐욕의 생각 멀리 버릴 것인가.
이 때 세존께서는 이런 일 때문에 비구들을 모으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오늘부터 옷을 두드려 광택을 내거나 또 광택이 나는 옷을 입으면 법으로 죄를 다스릴 것이다. 또 눈에 눈썹약을 바르거나 멋진 가죽신도 신어서는 안 되며, 또 가볍고 좋은 발우를 지녀서도 안 된다. 또 일산을 들고 성안에 들어가 걸식해서도 안 되니, 만약 이렇게 하는 사람은 모두 법으로 죄를 다스릴 것이다.”
이 때 난타는 부처님께서 옷에 광택을 금하고, 또 눈에 눈썹약을 바르지 못하게 하고, 좋은 가죽신과 가벼운 발우, 일산 등을 금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왕의 세력과 쾌락을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였으므로 기꺼이 그것을 끊으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인 손타리를 떠올리면서 색욕(色欲)에 사로잡혀 청정한 행을 행하지 않았고 계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언제나 아내 손타리의 모습을 그리며 지냈다. 나중에는 아란야 고요한 곳에
가서 기왓장이나 나무판자에 손타리의 얼굴을 그려 가지고 온종일 이것을 들여다보면서 하루를 지냈다.
그러자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마음에 꺼리는 생각이 나서 서로 말하였다.
“장로 난타는 어찌하여 아란야에서 기왓장이나 나무 판자에 여자의 모습을 그려 가지고 하루 종일 보고 있는가?”
그리고 이것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모든 비구들을 모아 놓고 대중 가운데서 난타에게 물으셨다.
“네가 정말 아란야에서 기왓장이나 나무판자에 여자의 모습을 그려 가지고 하루 종일 보고 있었느냐?”
“그랬습니다. 세존이시여.”
“너의 그런 짓은 옳지 않다. 출가한 비구가 어찌 여자의 모습을 그려서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난타를 꾸짖고 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지금부터 여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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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든 거짓으로든 탐욕심에 사로잡혀서 그림을 그린 뒤에 그것을 바라본다면 이와 같이 들여다보는 자는 계를 어기는 죄를 얻게 될 것이다.”
훗날 어느 때 장로 난타가 당직을 서는 차례가 되어 가람을 지킬 때의 일이다. 그 때 난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여래께서 조금만 있으면 걸식하러 성안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그 때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난타의 이와 같은 생각을 아셨다. 난타의 생각을 알고 나서 곧 장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가려고 한다면 모든 방문을 닫은 뒤에 가도록 하여라.”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걸식하러 성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장로 난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 이미 걸식하러 성안에 들어가셨으니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난타는 세존의 방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난타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문을 닫은 뒤에 돌아가야겠다.’
곧 그 문을 닫고 보니 사리불의 방문이 다시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곧 가서 사리불의 방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닫고 보니 또 목건련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그것을 보고 어서 가서 목건련의 방문을 닫았다.
그런데 목건련의 방문을 닫고 보니 대가섭의 방문이 다시 열리는 것이었다. 그는 서둘러 가서 대가섭의 방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닫고 보니 마하가전연의 방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그는 어서 가서 마하가전연의 방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닫자 우루빈라가섭의 방문이 다시 열렸고, 그 문을 닫자 나제가섭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그는 가서 나제가섭의 방문을 닫자 이번에는 가야가섭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그는 가야가섭의 방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닫고 나니 우파사나의 방문이 열렸다. 그 문을 닫자 구치라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그 문을 닫자 마하전타의 방문이 열렸다. 그 문을 닫자 리파다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그 문을 닫고자 우파리파다의 방문이 열렸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의 문을 닫으면 둘째 문이 열렸고, 셋째 문을 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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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문이 열렸다. 그는 하나가 열리면 하나를 닫다가 마침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저 비구들은 어떻게든 나를 붙잡아서 무슨 허물이라도 씌울 것이다. 그러니 문이 열리든 닫히든 내버려두고 가야겠다. 머지않아 세존께서 돌아오실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니구타 동산에서 나오려 하였다.
한편 세존께서는 천안(天眼)으로 그 난타를 살펴보셨는데 난타가 그 니구타 동산에서 나가려 하는 것을 보셨다. 이것을 본 여래께서는 가비라 성에서 몸을 숨겨 문득 니구타 숲에 이르러 그 앞에 나타나셨다. 난타는 부처님이 그 숲 가운데 나타나신 것을 보고 마침내 니구타 나무 한 그루에 몸을 숨기고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신통력으로 그 큰 나무를 들어 허공 중에 놓고, 그 난타가 몸을 숨기고 앉은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타야, 너는 지금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난타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세존이여, 저는 지금 다시 저 왕위의 쾌락과 자유로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손타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청정한 수행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기에 계행을 버리고 본가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게송을 읊으셨다.
우거진 숲을 떠나고자 하여 이미 벗어났어도
숲에서 나갔다 해도 그 숲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너 중생이여, 이런 일을 관찰하여라.
얽힘에서 벗어나도 다시 얽매이게 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난타를 위하여 법구(法句)를 설하고 다시 권하여 말씀하셨다.
“장로 난타여, 너는 세밀한 마음으로 나의 자재로운 법의 가르침 속에서 모든 괴로움을 다하고 부지런히 범행을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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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법으로써 난타를 교화하였으나, 난타는 여전히 옛날의 오욕락과 왕위에 머물면서 누렸던 자유로운 쾌락을 잊지 못하였고, 또 여전히 손타리를 그리워하였다. 그는 기꺼이 바른 법으로 청정한 수행을 하려 들지 않았으며 마음은 언제나 계행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이 때 어느 부유한 장자가 세존을 청하여 공양올리고자 하였다. 그 때 난타가 또 당직이 되었으므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세존께서는 그 장자의 공양을 받으러 마을로 들어가실 터이니 그때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난타의 이런 생각을 이미 아시고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난타야, 너는 이제 반드시 때를 알아서 절 마당을 청소하고 모든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라.”
이렇게 이르시고 장자의 청을 받아서 마을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장로 난타는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이미 다른 이의 초대를 받아 마을로 들어가셨으니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돌아보니 부처님께서 거처하는 방 밖에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먼저 저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집으로 가야겠다.’
비를 들고 그 방 앞에 가서 한쪽을 쓸자 바람이 불어와 흙과 풀을 가득 날렸다. 이것들을 다시 또 쓸고자 하다가 난타는 생각을 바꾸었다.
‘청소는 일단 중지하고 먼저 모든 대중들의 물 그릇에 물을 채워야겠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는 대야며 물그릇을 들고 물가에 가서 모두 물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물이 가득 찬 그릇들은 물이 채워지기만 하면 넘어졌다. 그러자 난타는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어느 틈에 청소를 다 하고 물을 다 채우겠는가? 조금 있으면 여래께서 돌아오실 것이니 지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집으로 돌아가고자 니구타 동산을 나가려 하였다.
이 때 세존께서는 그 초대받은 장자의 집에 계시다가 사람의 눈을 뛰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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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난타가 니구타 숲을 나와 집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보셨다.
이것을 보시자 화신(化身)을 나타내시어 장자의 집에서 몸을 숨겨 한 생각 사이에 니구타 동산에 이르러 장로 난타 앞에 나타나셨다.
난타는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곧 한 길 높이의 험준한 벼랑 아래의 구석진 곳으로 가서 몸을 숨기고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그 험준한 벼랑을 손바닥처럼 평평한 땅으로 만드신 뒤에 숨어서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시고 물으셨다.
“너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러자 난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손타리에게 집에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 자신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그곳에 가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장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어찌하여 꼭 손타리를 보려고 하느냐? 그녀의 몸은 이렇게 가죽으로 뼈를 쌌으며, 속에는 뇌수와 피고름과 대소변이 가득 차 있어 너무나도 더럽고 추해서 마치 뒷간과 같다. 난타야, 이와 같이 내가 이제 간단하게 말하리니, 중생들 하나하나가 아내와 함께 관계를 하여 쏟아내는 부정(不淨)은 큰 바다같이 많지만 그래도 그들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인연으로 게송을 읊으셨다.
숲에서 떠나려 하여 이미 떠났어도
숲을 벗어나면 다시 숲으로 돌아오나니
너 중생이여, 이렇게 관찰하여라.
얽힘에서 벗어나도 다시 얽매이게 된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난타를 교화하고 법을 설해 가르쳐 말씀하셨다.
“난타야, 너는 이제 나의 자재로운 법의 가르침 속에서 즐겁게 청정한 범행을 행하여 일체 괴로움을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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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타는 비록 부처님의 이러한 방편 교화를 받았지만 여전히 청정한 행을 닦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육군 비구들과 어울려서 자주 그들이 있는 곳을 드나들었으며 그들과 함께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릇되고 사악한 이야기만을 나누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행을 아시고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난타는 지금 저 육군 비구들을 본받고 있으니 이러다 그의 공덕 업행을 다칠까 두렵구나. 난타가 저들과 어울리는 것을 막아야겠다.’
그리하여 곧 장로 난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타야, 이리 오너라. 너는 나와 함께 가비라 성안에 들어가자.”
난타는 답하였다.
“세존의 가르침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데리고 가비라성에 들어가셨다. 그리하여 걸어 나아가다 차츰 생선가게 앞에까지 이르게 되셨다.
이 때 세존께서는 그 가게 안에 지푸라기 위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며 죽어 있는 물고기 백여 마리를 보셨다. 그리고 장로 난타에게 이르셨다.
“난타야, 이리 와서 이 고기를 쌌던 짚을 한 줌 쥐어보아라.”
그러자 난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 가게의 고기 밑에 깔아 놓은 냄새나는 짚을 한줌 쥐었다.
부처님께서는 또 장로 난타에게 이르셨다.
“잠깐 쥐고 있다가 땅에 버려라.”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난타는 그 짚을 쥐고 잠시 있다가 땅에 도로 놓았다.
부처님께서는 또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아라.”
난타는 그 손의 냄새를 맡았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네 손에서 어떤 향기가 나느냐?”
장로 난타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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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깨끗하지 못한 비린내만이 날 뿐입니다.”
불본행집경 제57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7. 난타출가인연품 ②
부처님께서는 장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악지식(惡知識)들과 벗이 되어 서로 사귀고 있으면, 설령 잠깐 동안 만났다 하더라도 뒤에 서로 악업이 물들고 익혀지게 되니 그 나쁜 명성이 멀리 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 일을 인연하여 게송을 읊으셨다.
마치 생선 가게에 고기를 얹어놓았던
짚을 한줌 쥐었다 놓으면
그 사람의 손에 비린내나듯이
나쁜 벗과 사귀는 것도 그러하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또 장로 난타를 데리고 향을 파는 가게로 가셨다. 그 가게에는 여러 가지 향을 싼 꾸러미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이것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난타야, 너는 이 가게에 있는 향꾸러미를 잡아라.”
난타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가게에 놓인 향꾸러미를 쥐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잠시만 그 향꾸러미를 쥐고 있다가 내려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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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 / 1142] 쪽
장로 난타가 부처님 말씀대로 잠시 향꾸러미를 쥐고 있다가 내려 놓자 부처님께서는 물으셨다.
“이제 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아라.”
난타는 자기 손의 냄새를 맡았다.
“네 손에서는 지금 어떤 냄새가 나느냐?”
“세존이시여, 제 손에서는 지금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가 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여 항상 함께 머물면서 서로 따르고 물들고 익혀지면, 서로 친근한 까닭에 반드시 큰 명성이 널리 풍겨나갈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하여 게송을 읊으셨다.
만약 손으로 침수향을 만지거나
또 곽향이나 사향을 만지면
잠깐 만져도 향이 배이듯이
착한 벗과 친근함도 그러하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가비라성을 나와 본래 머물던 곳으로 돌아오신 뒤에 이런 인연으로 비구 대중들을 모아 놓고 곧 장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난타야, 너는 이제 저 육군 비구들과 친하게 사귀거나 그들과 어울리지 말아라. 왜냐 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든 이런 악지식을 가까이하여 그들과 벗이 되거나 서로 사귀거나, 그들이 하는 일들을 따르게 되면 그저 나쁜 이들과 친한 이유만으로도 세간에 악명(惡名)이 널리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장로 난타여, 네가 만약 선지식을 찾아서 벗하기를 원한다면, 비구 사리불과 비구 목건련ㆍ비구 대가섭ㆍ비구 가전연ㆍ비구 우루빈라가섭ㆍ나제가섭ㆍ가야가섭ㆍ우파나사ㆍ마하구치라ㆍ마하손타ㆍ이바다와 같은 여러 비구들과 가까이할 것이며, 이런 비구들을 네가 가까이하고 따르고 섬기기를 권하노라. 왜냐 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섬기며 친하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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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설령 이익되는 일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간에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게송을 읊으셨다.
만약 사람이 악지식을 가까이하면
현세에 좋은 소문을 얻지 못하고
나쁜 벗을 가까이하였기 때문에
오는 세상에는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만약 사람이 선지식을 가까이하면
그들의 업행을 따르는 까닭에
비록 현세에 이익을 얻지 못해도
미래에는 괴로움의 원인을 없앨 수 있으리라.
이 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착한 말로 난타를 가르쳤으나, 그는 여전히 왕위의 자재로운 즐거움에 연연해하고 손타리와 누렸던 오욕락을 지우지 못하여 불법 속에서 기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으며 청정한 행과 계행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장로 난타의 마음을 환히 알고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난타는 번뇌가 사납게 불타고 있으니 어찌 작은 가르침으로 그 번뇌를 부술 수 있으랴. 나는 이제 마치 세간에서 불로써 불을 끄고 독으로써 독을 다스리듯 그와 같은 방법을 써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장로 난타의 손을 잡으시고 니구타 동산에서 나와 신통력으로 그 몸을 감추고 홀연히 향취산(香醉山) 위에 모습을 나타내어 머무셨다.
이 때 그 산에는 바람이 불었는데 이 때문에 두 나무가 서로 마찰이 되어 결국 불이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산이 불타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연기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마침 그 산 속에 5백 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있다가 털에 불이 붙으니 모두들 그 자리에서 몸의 불을 비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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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는 애꾸눈인 암놈 원숭이 한 마리가 무리들 속에서 제 몸에 붙은 불을 끄고 있는 모습을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장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저 애꾸눈인 암놈 원숭이가 무리들 속에서 제 손으로 자기 몸에 붙은 불을 끄려 하는 것을 보았는가?”
난타는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저도 지금 보았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손타리가 매우 단정하고 예쁘다 하는데, 이 원숭이와 비교해서 누가 더 낫냐?”
난타는 부처님을 향하여 미간을 찌푸리고 얼굴을 실룩이며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장로 난타의 손을 잡으시고 향취산에서 몸을 감추더니 홀연히 삼십삼천으로 가셔서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 나무 아래에 모습을 나타내셨다. 그 나무 아래 파노금마라(婆奴唫逆林反摩羅)[수나라 말로는 황갈(黃褐)이라 함]라는 이름을 가진 큰 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돌 위에 머무셨다.
그 때 제석천왕이 이가분타리(伊迦分陀利)라는 동산에 들어와 노닐고 있었다. 제석천왕은 5백 명의 궁인과 채녀들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좌우로 둘러싸인 채 노래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제석천왕이 이가분타리 동산에서 5백 명의 채녀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쾌락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장로 난타에게 물으셨다.
“너는 지금 이 5백 명의 채녀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석가족의 여인 손타리가 이 5백 명의 채녀들보다 더 아름다우냐?”
“세존이시여, 앞서의 애꾸눈이었던 암 원숭이와 손타리를 서로 비교한다면 손타리가 더 나은 것은 백 배 내지 천 배 아니 백천 배의 세간의 숫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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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손타리와 저 5백 명의 채녀들과 비교한다면 이 또한 백 배나 천 배 내지 백천 배의 세간의 숫자로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채녀들이 더 낫습니다. 그러니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장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채녀들과 함께 어울려 즐기고 싶지 않은가?”
난타는 이 말을 듣자 매우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정말로 이 5백 명의 채녀들과 함께 어울려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너는 지금의 범부의 몸으로서는 그들과 함께 즐길 수 없다. 만약 그러고 싶으면 너는 반드시 크게 기쁜 마음으로 내 법 가운데서 범행(梵行)을 행하라. 청정행을 행하면 목숨이 다한 미래세에는 반드시 이 곳에 나는 과보를 받을 것이며, 이 5백 명의 채녀들과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난타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좋아하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부처님 법 속에서 기쁘게 청정한 범행을 수행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이제 저에게 약속하셨듯이 저는 지금 정말로 미래 세상에 이 곳에 태어나 5백 명의 채녀들과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곧 장로 난타의 손을 잡고 삼십삼천에서 몸을 숨겨 본래 처소에 돌아오셨다. 그 때 난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 이렇게 나에게 미래세에는 5백 명의 채녀들과 서로 즐길 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난타는 이런 인연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바른 생각으로 청정한 범행을 행하고, 모든 감각기관을 잘 다스렸고 음식의 양을 조절하였으며 초저녁이나 한밤중에도 일어나 경을 읊으면서 걸어다녔고 용맹 정진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거나 농담을 던지지 않았고, 마음을 조급히 하지도 않고 교활한 생각도 내지 않았으며, 번드레하게 꾸민 말을 하지 않았으며, 정진행을 일으켜서 네 가지 위의를 생각하고 고요한 것을 즐기며, 모든 감각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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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닫고 가장 미묘한 바른 생각을 성취하였다.
이렇게 난타는 동방(東方)을 관찰하고자 하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뜻과 생각을 충만히 하였다. 이렇게 바르게 생각한 뒤에야 비로소 동쪽을 관찰하였으니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근심과 번뇌가 없고 착하지 않은 법에 대하여 어둡지 않았으며 결코 새거나 놓치지 않았으며 또한 미혹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남ㆍ서ㆍ북방과 상ㆍ하방에 대해서도 관하고자 할 때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뜻과 생각을 충만히 하였으며 이렇게 관찰할 때에 역시 근심과 번뇌가 없고 착하지 않은 법에 대하여 어둡지 않았으며 결코 새거나 놓치지 않았으며 또한 미혹하지 않았다.
이때 난타에게는 수행을 같이 하던 비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말하였다.
“장로 난타여, 그대는 예전에는 감각기관을 잘 닫지 않아서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도 족한 줄 몰랐고, 항상 좋은 침상과 이부자리에서 편안히 잠이 들었고 게으름을 부렸으며, 때로는 농담을 지껄이며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고, 교활하였으며 번드레한 말을 하였고 정진한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게을렀고 또 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잘 잊어버리고 몸가짐은 결함이 많았으며 참선이나 선정에 들지도 못하였고 마음을 잘 거두지도 못하였다. 또한 감각기관을
제멋대로 열어두었으니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고 음식에는 족함을 알며, 초저녁이나 한밤중에도 잠들지 않고 교활하지도 않고 농담을 하지도 않으며 몸과 마음을 잘 거두고 단속하며 번드레하게 말을 꾸미지 않고 용맹정진하며 바른 생각으로 정진하고 선정을 얻었고 마음이 새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모든 감각기관을 잘 거두고 있다. 장로여, 오늘 무슨 일로 이러한 경지를 얻었는가?”
그러자 난타는 수행을 함께하는 그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장로들이여, 알아 두라. 세존께서 미래세에 나에게 5백 명의 하늘 채녀들과 즐겁게 쾌락을 누릴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 법 속에서 부지런히 범행을 닦는 것이다.”
그러자 난타의 벗이면서 수행을 함께하던 여러 비구들은 난타를 조롱하고 빈정거리며 말하였다.
“장로 난타는 부처님께 고용살이를 하여 장래 보수를 받으려고 이 법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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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서 부지런히 범행을 닦는구나. 장로 난타여, 그대는 부처님 곁에서 범행을 닦는 것이 바로 5백 명의 하늘 옥녀(玉女)를 얻기 위해서였단 말이구나.”
이리하여 장로 난타의 벗인 여러 비구들은 이런 연유로 그를 ‘고용살이’라고 불렀다.
이 때 세존께서는 난타가 옥녀들을 구하기 위해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을 아시고 곧 그의 팔을 잡고 니구타 동산에서 몸을 숨기더니 큰 지옥 속으로 그를 데려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기세 좋게 불길이 치솟아 구리 가마솥을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하여 가마솥 자체가 불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커다란 불길을 내뿜으면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셨다. 이런 광경을 보시더니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옥졸들에게 가서 누구를 위하여 이 구리가마에 담긴 물이 사나운 불길에 끓어 넘치고 있는지를 물어보아라.”
난타는 부처님 분부대로 옥졸들에게 가서 물었다.
“이 큰 구리가마는 어떤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끓고 있는가?”
옥졸들은 함께 대답하였다.
“부처님께는 이모가 낳은 동생이 있는데 난타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 때문에 이 가마를 끓이고 있소.”
난타는 다시 물었다.
“너희들은 듣지 못하였는가? 여래께서 지난날 그 사람에게 5백 명의 천녀들과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청정한 수행을 닦아야 하며 훗날 삼십삼천에 날 수 있음을 약속하셨다.”
옥졸들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그 사람이 저 삼십삼천에서 타락한 뒤에는 이곳에 태어나리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난타는 이 말을 듣자 겁이 나고 온몸의 털이 곧추섰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이런 차례로 괴로움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지금 채녀의 과보를 원할 필요가 없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장로 난타의 팔을 잡고서 지옥으로부터 그 몸을 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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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니 다시 니구타 숲으로 돌아와 모습을 나타내셨다.
난타는 함께 수행하는 벗들이 항상 자신을 부처님의 고용살이라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놀리는 데다가, 또 지옥에서 부끄럽고 두려운 일들을 보았기 때문에 곧 싫어하여 떠날 생각이 났다. 그래서 혼자 슬퍼하고 뉘우치며 고요하고 한가한 곳을 찾아가 홀로 다니고 앉으며, 다시는 게으름을 피지 않고 용맹정진하였다. 그렇게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위없는 청정한 범행을 구하듯이 범행을 행한 결과 마침내 신통을 얻고 모든 누(漏)가 다
없어지는 경지를 얻었다. 그는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였다.
“생사는 이미 다하였고 청정한 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다하여 다음 생의 유(有)를 받지 않는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장로 난타는 또 이와 같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뒤에 비로소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이제 세존께서 지난날 약속하신 은혜를 버리겠습니다. 저는 지난날 여래께서 약속해주신 과보를 얻고 싶어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5백 명의 채녀들과 쾌락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이 되었으니 이제 세존께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오늘에만 내가 너에게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소리내어 청정한 행은 이미 섰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며 후세의 유(有)를 받지 않으리라고 처음 외쳤을 때에도 나는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로 난타와 수행을 함께하던 비구들은 난타가 모든 번뇌를 이미 다 없앤 줄 모르고, 아직도 이전에 번뇌를 없애지 못하였던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조롱하고 놀리며 이렇게 외쳤다.
“장로 난타는 세존의 처소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보수를 바란다. 천상의 5백 채녀들을 얻으려고 범행을 행하고 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 비구들은 아직도 난타가 모든 번뇌를 다 없앤 줄 알지 못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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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전에 번뇌를 없애지 못했던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장로 난타가 하늘의 5백 채녀를 얻으려고 청정한 행을 닦고 있다는 소문을 내고 있구나. 나는 이들이 큰 죄를 얻을까 두렵다. 그러니 이제 나는 대중 가운데서 장로 난타가 번뇌를 완전히 없애었음을 드러내어 말하리라.’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모든 비구들을 다 모아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만일 누군가가 좋은 남자라고 일컫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난타 비구이다. 만일 생김새가 반듯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난타 비구며, 매우 힘이 센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난타 비구이다. 만약 몸이 부드럽고 연약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 또한 난타 비구이며, 모든 감각기관이 고요하게 가라앉았고 어지럽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 또한 난타 비구이다. 만일 누군가가 음식의 양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 또한 난타 비구이며, 초저녁이나 한밤중에도 잠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난타 비구이다.
그리고 또 3족(族)이 청정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난타 비구일 것이요, 6신통을 얻은 자가 있다면 그 사람 또한 난타 비구일 것이며, 8해탈을 증득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또한 난타 비구를 가리킨 말이다.
너희 비구들아, 나의 성문(聲聞) 제자 가운데 모든 감각기관을 잘 제어하고 항복받은 사람으로는 난타 비구가 으뜸가는 사람이다.”
그러자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이 장로 난타 비구는 지난 세상에 어떤 선근(善根)이 있어, 그 선근을 인연하여 매우 부귀한 집에 태어나 재산이 풍족하고, 몸이 단정하고 훌륭하며, 세존께서 오늘 또 성문 제자들 가운데 모든 감각기관을 잘 제어하고 항복한 자로는 난타 비구가 으뜸이라고 수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내가 과거 91겁 전의 일을 생각해보건대 그때 한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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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이름은 비바시(毘婆尸)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ㆍ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왕이 사는 곳에 성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을 반도마저(槃徒摩低)라 하였는데 그 부처님은 이 성에 의지하여 6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살고 계셨으며 이들은 모두가 아라한이었다.
그 때 반두(槃頭)란 왕이 있어 그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공경하고 존경하며 의복ㆍ와구ㆍ음식과 탕약ㆍ방사(房舍)들을 고루 갖추어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그 반도마저 성에 바라문 집안의 청년이 한 사람 살고 있었는데 이 청년은 목욕탕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과 모든 비구들을 청하여 공양하고 목욕하게 하였다. 청년은 욕실에서 나온 비구들의 몸이 깨끗하고 매우 향기로우며 조금도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에 기쁨을 일으켜 한없이 즐거워하였다. 기쁨이 충만하여 이기지 못한 이 청년은 마음으로 이런 원을 세웠다.
‘부디 나도 다음 생에는 지금의 이 비구들처럼 항상 이렇게 청정하여 때가 없고 깨끗하며,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 몸을 얻기를 원합니다.’
또 훗날 비바시불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께서 열반에 들자, 그 반두왕은 세존의 사리를 거두어 금ㆍ은ㆍ유리ㆍ파리의 네 가지 보석으로 탑을 세웠다. 바로 그 때 그 청년이 탑 세우는 일을 경영하고 감독하였으며 그는 탑을 다 완성한 뒤에 마음으로 이런 원력을 세웠다.
‘부디 저는 내세에 항상 이런 세존을 만날 것이며, 그 분께서 설법하는 대로 내가 다 알고 증득하여 법을 어기지 않고 세세생생에 악도에 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청년은 목숨이 다한 뒤에 항상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났으며, 뒤에 한 번 매우 부유한 장자의 집에 태어나게 되었다. 부모가 정성으로 보살피니 그는 점차 장성하여 모든 지혜를 다 갖추게 되었다.
그 때 이 청년의 집안에서는 벽지불 한 사람을 집안의 스승으로 모셨는데 그 벽지불은 자주 그 집에 들렀다. 벽지불은 생김새가 매우 훌륭하고 단정하였으며 서른 가지 대장부의 특징을 모두 갖추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언제나
네 가지 물건으로 벽지불을 공양하였으니 벽지불의 수명이 다하도록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게 하였다.
훗날 장자는 벽지불이 목숨을 마쳐 열반에 든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곧 그의 몸을 거두어서 법답게 다비하였다. 그는 사리를 거두어서 탑을 세워 공양하였는데 진흙 위에 석회(石灰)를 발라 장엄하고 온갖 보배 구슬과 장식품을 달고 이런 원력을 세웠다.
‘저는 미래세에 항상 이런 벽지불을 만나 그 존자께서 설하시는 법을 모두 듣고는 이해하여 영원히 잊지 않으며, 세새생생에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또 원하건대 내 몸이 매우 훌륭하게 생겨 보는 사람이 크게 기뻐하며, 대선(大仙)과 다름없이 몸에 서른 가지 대장부의 특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추기를 원합니다.’
그 후 그는 목숨이 다한 뒤에 다시는 악도에 태어나지 않고 항상 천상과 인간에 났으며, 오래도록 윤회하다가 훗날 다시 바라나국에 태어나게 되었다. 당시 바라나국의 왕은 길리시(吉利尸)[수나라 말로는 수세(瘦細)라고 함]였는데 그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바로 그 때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였으니, 이름을 가섭(迦葉)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라 하였다. 그 세존께서 세상 인연을 다하고 열반에 드시자 길리시왕은 순전히 금ㆍ은ㆍ유리ㆍ파리와 붉은 진주ㆍ산호ㆍ마노의 일곱 가지 보석으로 사리탑을 세웠다. 또한 그 보석탑 밖에 다시 벽돌로 거듭 그 탑을 덮으니 탑의 높이는 1유순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았고 동서의 가로세로 너비는 각각 반 유순이었다. 그리고 달사파릉가(達舍婆陵迦)[수나라 말로는 십상(十
相)이라 함]라고 탑명(塔銘)을 명기하였다.
그 때 길리시왕에게 일곱 왕자가 있었는데 왕자들이 왕에게 청하였다.
‘어진 대왕이시여, 굽어살피소서. 저희도 가섭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사리탑 위에 각각 일산을 받들어 그 탑을 덮어드리고 싶습니다. 어진 대왕이시여, 제발 저희의 청을 들어주소서.’
왕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들의 뜻에 맡길 것이니 나는 이제 만들 것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일곱 왕자들은 각각 한 가지씩의 보석을 가지고 일산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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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에 덮었으니, 금으로 만들고 혹은 은으로 만들고 혹은 마노 등의 보석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일곱 왕자 중에서 둘째 왕자는 금으로 일산을 만들어 탑 위를 덮으면서 마음으로 이렇게 발원하였다.
‘부디 나는 내세에 항상 이런 세존을 만나 그 설법을 듣고 증득해 알며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또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나는 곳마다 금색과 같은 몸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저 반두마성 안의 바라문의 아들로서 그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하고 목욕탕에서 목욕하게 하였으며 마음으로 ‘부디 나는 내세에 이 비구들처럼 청정하고 때가 없고 향기롭고 깨끗한 몸을 얻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사람이 누구인지 의심하지 말아라. 그리고 또 비바시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가 열반한 뒤에 탑을 만들어 공양한 사람이 누구인지 의심하지 말 것이며,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바로 난타 비구
였다.
비구들이여, 또한 목숨이 다하도록 벽지불을 공양하고, 그가 열반한 뒤에 사리탑을 세워 석회를 바르고 여러 가지로 장엄하고 모든 영락으로 그 탑을 공양하고 나서, 마음으로 ‘부디 나는 내세에 이 벽지불과 같이 매우 훌륭한 모습을 띠어서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며, 이 선인처럼 몸에 서른 가지 대장부의 특징이 조금도 모자람 없이 갖추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의심하지 말아라. 너희 비구들은 다른 생각을 내지 말지니,
이 사람 또한 난타 비구였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또한 저 바라나성 길리시왕의 둘째 왕자로서 가섭 다타아가도ㆍ아라하 삼먁삼불타를 위하여 금으로 일산을 만들어 그 탑에 덮은 사람이 누구인지 의심하지 말며, 다른 생각을 내지 말라. 이 또한 바로 난타 비구였다.
그리고 이 난타는 지난 옛날 비바시불과 모든 비구승들에게 목욕탕을 만들어 법답게 목욕시키고 ‘제발 나는 내세에 이렇게 청정하고 향기롭고 때가 없는 몸으로, 이 비구들이 청정하고 때가 없는 몸처럼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하였으며, 또 벽지불을 공양하고, 그가 열반한 뒤에 사리탑을 세워 진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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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로 발라 장엄하게 만들고 다시 영락으로 치장한 뒤에 마음으로 ‘저는 내세에 이렇게 매우 훌륭한 모습을 갖추며, 이 선인처럼 몸에 서른 가지 대장부의 특징을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갖추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하였으며, 또 가섭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가 열반한 뒤에 사리탑에 금으로 일산을 만들어 그 탑 위에 덮고 마음으로 ‘저는 내세에 나는 곳마다 몸이 항상 금빛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그 업의 인연에 힘입어 이제 이렇게 매우 훌륭한
모습을 하게 되어 그를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싫어하지 않았으며 몸은 금색이고 서른 가지 대장부의 특징을 조금도 빠짐없이 갖추게 된 것이다.
그 때 또한 ‘제발 내세에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그 업보에 힘입어 한 번도 악도 가운데 나지 않고 언제나 인간과 천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또 그 때 비바시불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탑을 세울 때 경영하고 감독하였으며, 네 가지 물건을 가지고 벽지불에게 수명이 다하도록 공양한 그 업보 인연의 힘으로 금생에 석가족에 태어났던 것이다. 또 그 때 마음으로 ‘부디 나는 내세에 항상 이런 세존이나 혹은 이보다 나은 분을 만나 그 세존의 법의 가르침을 듣고 속히 증득하여 알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업보 인연의 힘으로 지금 나를 만나 나에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것이요, 또 나에게
서 ‘모든 비구들아,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모든 감각기관을 잘 제어하고 항복한 사람으로는 난타 비구가 으뜸이다’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너희 비구들아, 너희들은 난타 비구가 지난 세상에 이런 선근을 짓고 그 선근에 힘입어 이번 생에 석가 종족에 났으며, 금빛의 몸을 갖고 서른 가지 대장부의 특징을 모두 갖추었으며, 출가를 얻고 구족계를 받아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고, 또 내가 ‘나의 성문 제자 중에서 모든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항복한 사람으로 으뜸가는 이는 난타비구이다’라고 수기를 하였다고 알아야 한다.”
58. 바제리가등인연품(婆提唎迦等因緣品) ①
이 때 석가족 청년인 제바달다는 석가족 청년 5백 명이 집을 버리고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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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을 알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도 이제 집을 버리고 세존께 출가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부모에게 가서 말하였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이제 발심하여 집을 버리고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고자 합니다. 부디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그 부모는 제바달다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제바달다를 의지하고, 제바달다도 우리를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하지만 네 생각이 그와 같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여라.”
그리하여 청년 제바달다는 가장 값비싼 옷을 입고 멋진 코끼리를 타고서 가비라성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성문 판자의 갈고리에 걸려서 옷이 찢어졌다.
그 때 점을 치는 바라문 한 사람이 왼쪽에 있다가 그것을 보고 이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뜻하는 일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청년 제바달다는 곧 성에서 나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에 이르자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발 저를 출가시켜 주십시오.”
이 때 세존께서는 그 제바달다의 전후의 일들을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고서 그 마음의 행을 아셨다. 이렇게 관찰하고 난 뒤에 곧 제바달다에게 말씀하셨다.
“제바달다여, 너는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도를 닦고, 모든 재산과 돈을 가지고 보시를 행하여 온갖 공덕을 지어라. 나의 법 가운데에서 출가할 필요는 없다.”
그러자 제바달다는 부처님께 거절당하자 다시 장로 사리불에게 가서 여쭈었다.
“성자 사리불이여, 저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장로 사리불이 제바달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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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달다여, 그대는 먼저 부처님께 가지 않았던가?”
“성자여, 저는 먼저 부처님에게 갔습니다.”
“제바달다여, 세존께서 그대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던가?”
“예, 성자시여. 세존께서는 저에게 ‘너는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해서는 안된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도를 닦고, 모든 재산과 돈을 가지고 보시를 행하여 온갖 공덕을 지어라. 나의 법 가운데에서 출가하면 너에게는 아무 이익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자 장로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지금 그를 법답게 출가시키지 않으셨는데 내가 지금 그를 출가시킨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마침내 제바달다에게 말하였다.
“제바달다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그대는 반드시 그런 일을 하도록 하라.”
청년 제바달다는 사리불에게 버림을 받자 다시 장로 목건련에게 가서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여쭈었다.
“대목건련이시여, 제발 저를 출가시켜 주십시오.”
그러자 장로 대목건련도 제바달다에게 물었다.
“제바달다여, 그대는 먼저 부처님께 가지 않았던가?”
“성자여, 먼저 부처님께 갔었습니다.”
장로 대목건련은 다시 제바달다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그대에게 무슨 뜻을 말씀하셨던가?”
제바달다가 답하였다.
“세존께서는 저에게 ‘너는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도를 닦고, 모든 재산과 돈을 가지고 보시를 행하여 온갖 공덕을 지어라. 나의 법 가운데에서 출가할 필요는 없다. 만약 출가하더라도 너는 이익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장로 대목건련도 제바달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의 가르침처럼 그대는 그런 일을 하도록 하여라.”
제바달다는 목건련에게도 출가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장로 대가섭에게 나아갔다. 대가섭에게도 앞에서와 같은 이유로 거절당하자 다음에는 가전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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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찾아갔다.
그 다음에 또 우루빈라가섭에게 나아가고, 그 다음에는 장로 나제가섭에게 나아갔으며, 또한 장로 우파사나의 처소에 갔고 나아가 마하구치라ㆍ마하손타ㆍ리파다에게까지 갔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허락하지 않았다. 허락을 받지 못하자, 다시 장로 우파리파다에게 찾아가서 그의 발에 머리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섰다.
석가 종족의 청년인 제바달다가 다시 우파리파다에게 출가시켜 줄 것을 청하자 그 장로 우파리파다도 또한 물었다.
“제바달다여, 그대는 먼저 부처님 처소에 가지 않았던가?”
“성자여, 저는 먼저 부처님 처소에 갔었습니다.”
“그대가 부처님에게 갔을 때 그대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던가?”
“세존께서는 저에게 ‘너는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법답게 도를 닦고, 재산을 가지고 보시하여 온갖 공덕을 지어라. 나의 법 가운데에서 출가할 필요는 없으니 만약 출가한다고 해도 너에게는 이익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본행집경 제58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8. 바제리가등인연품 ②
이때 장로 우파리파다는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이미 그 사람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거늘 내가 만약 출가시킨다면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제바달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그대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제바달다는 이런 차례로 대덕 상좌 등 모든 비구들 처소를 다 찾아갔지만 그 모든 대덕 상좌 비구들은 제바달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였으니, 그대는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바달다는 가는 곳마다 어디서도 허락을 받지 못하자 도로 흰 코끼리를 타고 가비라성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때 석가족 청년 아난도 5백 명의 석가족 청년들이 모두 출가한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도 오늘 집을 떠나 부처님 곁에 가서 출가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양친에게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 집을 떠나 부처님 곁에 나아가 출가하고 싶습니다. 제발 저를 보내주셔서 출가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난의 어머니는 본래 부처님에게 청정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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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 출가하기 전 보살이었을 때에 아난의 어머니는 보살의 공덕이 드높고 위력이 빛나는 것을 본 뒤 보살에게 애착심을 내어 온갖 그릇된 말을 던졌다. 하지만 보살은 다만 그녀를 친 이모로만 대했을 뿐 그런 말에 아예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보살에게 청정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아들 아난이 집을 버리고 출가하겠다는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제바달다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문을 들었다. 즉 아난이 출가하고싶어하는데 그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바달다는 아난을 찾아가 물었다.
“아난이여, 그대는 참으로 집을 버리고 출가하고자 하는데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가?”
아난은 대답하였다.
“제바달다여, 그렇소. 나는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만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서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 구족계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제바달다는 아난에게 말하였디.
“나중에라도 그대의 부모님께서 출가를 허락하거든 꼭 나에게 알려다오. 나와 함께 같은 때에 출가하도록 하자.”
아난도 제바달다에게 대답하였다.
“그대의 말대로 할 것을 약속하겠소.”
그리고 난 뒤에 아난은 생각하였다.
‘우리 양친께서는 결코 내가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집안에서 5백 장의 파리사반(波利沙般)을 꺼내 들고서 아무도 몰래 비제야국(毘提耶國)으로 갔다. 그 나라에는 아난의 부왕과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장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난은 그에게 가서 5백 장의 파리사반을 주면서 이렇게 부탁하였다.
“지금 이 돈을 당신에게 맡기겠으니 나를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여 주십시오. 내가 만약 음식이 필요하여 여기 오거든 이 돈으로 음식을 마련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 때 당신은 내가 어디서 오는지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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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음식이 필요하여 온 줄로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고요한 아란야처에 가서 말을 하지 않는 계행을 지니고서 걷거나 앉거나 눕는 모든 시간에 고요히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음식이 필요할 때는 돈을 맡긴 집으로 가서 묵묵히 음식을 먹고, 식사가 끝나면 또 묵묵히 돌아갔다.
그러자 그 나라의 사람들은 석가족 청년 아난이 걷거나 앉거나 눕는 모든 시간에 고요히 침묵하며 지내는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나 아난은 그 사람들에게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였다.
“이 선인은 비제야국에서 나왔다.”
이렇게 말하고 그에게 ‘비제야국 선인’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이 때 아난의 부모는 ‘아난은 여기서 도망쳐 비제야국 성읍 시골에 가서 침묵하는 계행을 닦고 선인의 수행을 하여 선인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들은 이런 소문을 듣고 곧 사람을 보내어 일렀다.
“아난아, 네가 꼭 집에 있지 않고 출가하려거든 이곳으로 돌아와서 우리 석가족 청년 곁에서 출가하여라.”
마침내 아난은 돌아왔으며 그는 제바달다에게 가서 소식을 전하였다.
“제바달다여, 그대는 아셔야 하오. 나의 부모님께서 이제 나의 출가를 허락하셨소.”
그러자 제바달다가 아난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누구에게 출가하려는가?”
“나는 지금 부처님께 가서 출가할 생각이오.”
제바달다가 말하였다.
“지난날 내가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원했으나, 부처님께서는 나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소.”
아난이 말하였다.
“그러면 성자 사리불에게 가서 출가하기를 청하기로 합시다.”
“그 사람도 나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소. 뿐만 아니라 마하목건련, 마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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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 대가전연, 우루빈라가섭, 나제가섭, 가야가섭, 우파사나, 마하구치라, 마하전타, 우바리파다 등 이런 모든 대덕 상좌 비구들도 한결같이 나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소.”
그러자 아난이 제바달다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느 곳으로 가고 싶소?”
제바달다가 말하였다.
“아난이여, 내가 가려는 곳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되오.”
아난이 답하였다.
“나 또한 제바달다의 그런 뜻을 따르겠소.”
이 때 큰 세도가 있는 석가족의 청년들은 한 집에서 한 사람씩 부처님께 출가하게 되어 있었다.
바로 그 때 가비라 성안에 두 형제가 있었으니, 동생은 마니루타(摩尼樓陀)[구역(舊譯)에서 아니루타(阿尼婁陀)라고 되어 있음]라 하고, 형은 마하나마(摩訶那摩)라 하였다. 동생 마니루타는 오래도록 선근(善根)을 심고 해탈장(解脫藏)을 닦았으며, 번뇌를 등지고 열반을 향하였으며, 그 어떤 존재[有] 가운데 나고자 하지 않고, 이 삼계 속에 있으면서 모든 번뇌를 완전히 없애고자 하였다. 그는 이미 일찍이 큰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석가족 안에 태어났
는데 그가 태어난 이래로 그 집의 생업(生業)은 더욱더 불어났다. 즉 돈과 재물, 모든 곡식들은 물론이요, 진주, 유리, 호박 등의 온갖 보석과 금과 은 그리고 가축들과 하인들이 모두 갖추어졌다. 땅에서도 5백 개의 보물창고가 저절로 솟아났고, 그가 침상에서 잠잘 때면 모든 하늘들이 5백 가지 값진 보석을 침상 위에 놓기도 했다.
그 모든 권속들은 이렇게 희유한 일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이 동자가 잠잘 때 모든 하늘들이 값진 보석을 가져다 그 위를 덮으니 우리는 이 사람을 ‘마니루타’라고 부르자.”
그리고 마니루타는 매우 훌륭하고 단정하여 그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즐거워하였고, 몸은 황백색을 띠었는데 황금빛과 같았고, 그 머리의 모양은 일산과 같고 앵무새 부리처럼 코가 높았다. 두 팔을 곧게 드리우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으며 몸이 반듯하고 위아래가 가지런하였으며, 모든 감각기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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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추어 모자라거나 부족한 곳이 없었다.
그의 부모는 유모 네 사람을 두어 보살피게 하였으니, 이른바 안아 주는 사람, 목욕시키는 사람, 젖을 먹이는 사람,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네 명의 유모가 보살피며 기르는 사이 마니루타는 차츰 자라나 지혜를 다 갖추었고 또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뜀박질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을 감당할 나이가 되자 가업(家業)의 여러 기술들을 가르쳤다.
그 여러 기술이란, 곧 글씨 쓰는 일, 셈하는 일, 도장 만드는 것, 음악과 춤, 만담, 재담, 뜀박질, 마니보배 다루기, 염색하기, 옷 만들기, 여러 향을 화합하기, 꽃잎과 여러 모양 그리기, 바둑, 장기, 쌍륙 등의 잡기와 문장 짓기, 코끼리와 말 다루기, 수레 몰기, 활쏘기, 위의 갖추기, 씨름, 안마 등의 기술과, 뛰어 달아나기, 코끼리 조련하기, 공 던지기, 농장 관리, 가고 오고 드나듦의 길흉 알아 맞추기, 정탐하기, 군진(軍陣) 잘
부수기, 주먹을 쥐면 남이 펴지 못하게 하고, 땅에 버티고 서면 사람이 아무리 밀어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 이발하고 머리 빗는 것, 칼을 잘 쓰기, 손으로 나무와 돌 깨기,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쏘고 겨누기 내지 머리털이나 사람의 사지 맞추기, 화살을 쏘고 소리를 찾기, 억센 활 당기기 등 이런 모든 기술을 완전하게 다 통달하고 빠짐없이 익혀서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으며, 뜻과 지혜가 폭넓고 깊어졌고, 예민해졌으며 마음으로 생각함이 교
묘하고 지혜롭고 총명해졌다.
어린 마니루타가 어느 때 아버지를 따라서 농장을 감독하고 생업을 보살피러 나갔다. 그곳에 이르자 갈증이 일어나 마니루타는 목마름을 달래려고 물가로 가서 물을 떠 마셨다. 그 때 그 물은 하늘의 달콤한 감로수로 변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
“얘야, 이 물을 마시지 말아라. 자칫 네 몸에 탈이라도 날까 겁나는구나.”
어린 마니루타는 그 물을 맛보고 나서 아버지에게 답하였다.
“이 물은 아주 감미롭습니다.”
그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그러자 소년은 손으로 물을 떠서 아버지에게 올리며 말하였다.
“아버님, 만약 믿어지지 않으시면 이 물을 한번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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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물맛을 보고 나서 아들에게 대답하였다.
“마니루타야, 나는 비록 왕궁에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묘하고 감미로운 물을 마셔 본 적이 없구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더할 수 없는 신기한 일에 마음에 큰 기쁨이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내 아들은 커다란 복업을 지니고 있어 태어난 이후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은 빛깔과 향기와 맛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다른 사람의 것보다 배나 뛰어나구나.”
그런데 그의 형인 마하나마는 동생의 음식을 보거나 맛보고 나면 곧 질투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째서 동생에게만 이렇게 향기롭고 깨끗하고 맛좋은 음식을 주고 나에게는 주지 않습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아들에게 말하였다.
“마하나마야,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전부터 이 마니루타의 음식은 항상 다른 사람의 것보다 저절로 열 배나 맛이 좋았단다.”
그러나 마하나마는 여전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인가 마니루타는 동산에서 놀고 있다가 사람을 보내어 어머니에게 음식을 받아오라고 시키며 말하였다.
“우리 어머니에게 가서 음식을 보내 달라고 여쭈어라.”
그러자 그 어머니는 소반에 음식을 올려놓고서 뚜껑을 열고 먼저 큰 아들 마하나마에게 보인 뒤에 마니루타 처소에 보냈다. 그런데 음식이 도착하자 마니루타 또한 음식을 보았는데 그 맛과 빛깔과 향기가 갑절이나 나아졌고 또한 그릇에 넘치도록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마하나마는 여전히 믿지 않고 이렇게 투덜댔다.
“비록 집에서 가지고 간 줄을 알지만 좋고 나쁜 것을 누가 알겠는가? 여러 권속들 집에서 장만해 보냈을지도 모른다.”
또 어느 날은 마니루타가 동산에서 구경하고 놀다가 역시 사람을 보내어 어머니에게 청하였다.
“사람을 보내니 음식을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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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머니는 빈 그릇 여러 개를 소반 위에 놓고 수건을 덮은 뒤에 먼저 큰아들 마하나마에게 보여주고 하인에게 들려 보내면서 큰아들에게 일렀다.
“네가 직접 따라가서 거짓인지 정말인지를 보아라.”
마하나마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그 소반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마니루타 있는 곳에 이르러 소반을 본 순간 빈 그릇에는 빛깔과 향기와 감미로운 맛을 갖춘 온갖 음식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마하나마는 마침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정말 신기하다. 이런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내 동생은 이렇게 큰 복덕을 지니고 있구나.”
마니루타가 차츰 성장하자, 부모는 그를 위하여 집을 세 채 지었는데 첫 번째 집은 겨울에 기거하는 집이고 두 번째 집은 봄ㆍ가을에 기거하는 집이며, 세 번째 집은 여름에 기거하는 집이었다. 겨울 집은 오로지 따뜻하도록 설비되어 있었고, 여름 집은 서늘하게 그리고 봄가을의 집은 덥거나 차지 않고 알맞도록 설비되었으며, 그 집에는 남자라고는 아무도 없고 오직 마니루타 혼자만이 오욕락을 맘껏 누리며 지내게끔 하였다.
이 때 청년 마하나마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큰 세도를 지닌 석가족의 모든 청년들의 집안에서는 한 집에서 한 사람씩 출가하고 있다. 우리 집안에서는 출가한 사람이 없으니 반드시 내가 집을 버리고 출가해야겠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꼭 내 동생 마니루타를 출가시키리라.’
마하나마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마니루타에게 가서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우리 석가족의 세도가 있는 사람들은 각각 한 집에서 한 사람씩 출가하였으나, 우리 집안에서는 아직 출가하지 않았구나. 그러니 이제 내가 출가하든지 아니면 네가 출가하든지 해야겠구나.”
그러자 마니루타는 형 마하나마에게 말하였다.
“형님, 원하시면 형님이나 출가하십시오. 나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마하나마는 또 그에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야, 그럼 이제 네가 가업을 잘 경영하기를 부탁한다. 생활하는 법이란 먼저 그 땅을 갈고 고른 뒤에, 또 기왓장이나 돌, 나무 뿌리나 가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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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추려 낸 다음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씨앗을 뿌린 뒤에 만약 비가 오지 않거든 적당하게 때를 맞추어 물을 대어 주고, 적절한 방법으로 매어 주어라. 그리고 곡식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베어서 낟알을 털어 창고에 저장해 두어라. 이렇게 하고 나서 다음해가 되면 또다시 이런 차례로 일을 해야 하며 해마다 거르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러자 청년 마니루타는 형 마하나마에게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집안 일은 끝이 없을 것이고 끝날 날이 없을 텐데 한없이 이런 일을 해야 한다면 언제나 저 세 채의 집에서 오욕락을 누리겠습니까?”
마하나마는 동생 마니루타에게 다시 말하였다.
“마니루타야,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다함이 없고 또 끝날 기약이 없다. 우리 부모님들도 조상이 하던 일을 인색하게 하여 또한 이렇게 다 끝내지도 못하고 목숨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니루타는 형 마하나마에게 말하였다.
“만약 하는 일이 끝이 없고 언제나 그 일이 끝날지 모르며, 우리 부모들 또한 조상들의 가업에 인색하여 다 끝내지도 못한 채 목숨을 마치게 된다면, 정말 그렇다면 형님이 집에서 가업을 잇고 일을 하십시오. 내가 집을 떠나 출가수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청년 마니루타는 양친에게 나아가 여쭈었다.
“어진 부모님이시여, 저는 집을 떠나 부처님 곁에서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그 부모는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오직 너희 두 아들뿐이다. 너희 둘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어여쁘게 여기며 마음에서 놓지 않아 잠시라도 보지 못하면 마음에 걱정과 근심이 생겨난다. 설령 우리들이 죽더라도 너희들과는 헤어지고 싶지 않거늘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면서 너의 출가를 허락하란 말이냐?”
하지만 마니루타는 두 번 세 번 거듭 청하였다.
“저는 여래의 법 가운데 출가하고자 합니다. 제발 저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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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옛적 보살께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을 때, 수두단왕은 보살을 사랑하기 때문에 근심하고 고민하던 끝에 모든 석가족 권속들을 모으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권속들이여, 그대들에게 고하노라. 나의 아들 실달이 이미 출가하였으니, 나 또한 이 왕위에 있고 싶지 않고 또 이 천관(天冠)을 쓸 필요도 없어졌다. 그대들 중에 누가 왕위를 받겠느냐? 나는 그 사람에게 왕위를 맡기고 관정(灌頂)을 하며 천관(天冠)을 주겠다.”
그 때 대중 가운데 바제리가(婆提唎迦)란 이름의 석가족 청년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의 이름은 흑구다미(黑瞿多彌)였다. 그 청년이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이 왕위와 천관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자 수두단왕과 모든 석가족 권속들은 곧 왕위와 천관을 석가족 청년 바제리가에게 넘기고 관정을 시켰다. 그리하여 청년 바제리가는 곧 석가족 왕이 되었으며, 그 모든 권속들은 그를 석가족의 왕 바제리가라고 불렀다.
그 바제리가왕은 왕위를 물려받고 12년 동안 나라를 법에 맞게 다스렸다. 석가족의 모든 권속들에게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만약 누구든지 머리에 천관을 쓰고 왕위를 얻게 되면, 그 사람은 일체 석가족 권속들에게 온갖 훌륭한 음식들을 장만하여 대접하는 것이었다.
바제리가왕은 어려서부터 마니루타와는 흙장난하던 벗이었기 때문에 큰 잔치를 베풀 때 마니루타를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그대는 나를 도와 먼저 모든 권속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나서 나중에 나와 함께 식사를 하자.”
마니루타는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모든 석가족 권속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나서 자신들도 먹었으며 그 날 마니루타는 궁중에 머물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바제리가왕은 그 날 밤이 지난 뒤 날이 밝아올 때에 친히 마니루타에게 이렇게 물었다.
“마니루타여, 편안히 쉬었는가?”
마니루타가 왕에게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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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밤에 편안히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왕이 물었다.
“무슨 까닭에 그러하였는가?”
“밤에 배가 아팠고 또 감기가 들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마니루타가 왕에게 답하였다.
“음식의 맛이 적당하게 어우러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는 복통을 일으켰고, 제가 깔고 잤던 그 이부자리는 감기에 걸린 직공들이 베를 짜서 만들었기 때문에 저 또한 감기에 걸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바제리가왕은 음식 만드는 사람들을 불러서 물었다.
“너희들은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할 때 그 음식의 모든 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느냐, 아니면 고르지 못하였느냐?”
음식 만드는 사람들은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맛이 어떤 것은 강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그때 일이 너무나도 바빠서 뜻대로 일일이 살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돕던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여 여러 맛이 마구 섞이고 말았습니다.”
바제리가왕은 다시 베 짜는 사람을 불러서 물었다.
“너희들은 이불을 짤 때에 어찌하여 세심하게 정성을 들이지 못하였느냐?”
면직사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저희들이 베를 짤 때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대왕께서 사람을 보내어 재촉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감기를 채 다스리지도 못한 채 대왕께서 노하실까 두려워 서둘러 짜서 보내드린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희들이 짠 것이 촘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제리가왕은 일찍이 보지 못한 일에 대해 한없이 신기한 생각이 일어났다. 이런 일은 불가사의한 일이라 그는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신기하구나. 마니루타에게는 이렇게 가장 묘한 지혜가 있구나.’
그리고 나서 바제리가왕은 청년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오늘부터 그대는 나에게서 무엇이든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어라. 그대가 몸소 오지 않아도 나는 저버리지 않겠다.”
한편 그 때 청년 마니루타의 어머니는 생각하였다.
‘지금의 이 석가왕은 내 아들과 어려서부터 마음이 잘 맞는 좋은 친구였다. 그 사람은 결코 출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마니루타를 불러 말하였다.
“마니루타야, 만약 바제리가왕이 집을 버리고 출가한다면 너도 그 때에 출가하여라.”
그러자 청년 마니루타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바제리가왕에게로 갔다. 바로 그 때 왕은 궁에서 나와 나타가(那吒迦)[수나라에서는 노래로 옛 일들을 말하는 모임이라고 함] 축제를 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그 때 석가족 청년 마니루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바제리가왕의 잔치에 들어간다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의 놀이와 구경을 방해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문 옆에 앉아서 나타가 축제가 끝난 뒤에 들어가고려고 축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때 바제리가왕이 그 축제를 구경하며 한참 즐기고 있을 때, 그 모임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여자가 손으로 공후(箜篌)를 타고 있었는데 마침 줄이 하나 끊어졌다. 그 여자는 곧 줄을 이었으나 나타가 축제를 즐기는 대중 가운데에서는 그것을 눈치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오직 왕만이 홀로 그 사실을 알았고, 마니루타가 문 옆에 있다가 또한 이것을 알았을 뿐이었다.
이 때 석가족 청년 마니루타는 나타가 축제가 막 끝나가는 것을 보고 바제리가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왕의 목을 안은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왕은 마니루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나는 앞서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만약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몸소 오지 말고 심부름꾼을 시켜서 달라고 하면 내가 저버리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몸소 이곳까지 찾아온 것인가?”
마니루타는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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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시여, 이 일은 그와 같이 사람을 보내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마니루타여, 해결해야 하는 일이란 대체 어떤 일인가? 그대와 관련된 일인가, 나와 관련된 일인가?”
“이 일은 저에게도 필요하고 또한 대왕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제리가가 다시 말하였다.
“만약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대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마니루타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저는 곧 집을 떠나 출가하고자 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대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제리가가 석가족 청년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그대가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 반드시 나와 관련되어 있다면 나는 그대를 놓아줄 터이니 나에게서 걱정이나 의심을 하지 말아라. 만약 출가하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하여라.”
이 때 마니루타는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지금 나와 함께 출가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제 부모님은 저에게 바제리가왕이 집을 버리고 출가한다면 저도 왕을 따라 출가해도 좋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니루타는 또 왕이 대중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마니루타여, 그대가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일이 나와 관련되어 있다면 나는 그대를 거스르지 않겠다. 너를 따라서 하겠다.”
그 때 모든 석가족들은 모두가 진실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왕에게 함께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바제리가왕은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만약 꼭 출가하겠다면 7년 동안 기다려다오. 집안의 일을 다 마친 뒤에 그대와 함께 반드시 집을 떠나 출가하겠다.”
마니루타는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7년을 기다릴 수 없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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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왜냐 하면 7년은 너무 오랜 세월입니다. 그러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생겨 출가에 방해를 받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바제리가왕이 다시 청년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내가 6년 안에 집안 일을 끝낼 테니 그대는 그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뒤에 그대와 함께 집을 버리고 출가하겠다.”
마니루타는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지금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저는 6년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6년은 너무 오랜 세월입니다. 그러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생겨 출가에 방해를 받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마니루타여, 만약 정 그렇다면 내가 5년 안에 가업을 마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이렇게 하여 바제리가왕은 4년, 3년, 2년을 기다리라고 말하였지만 마니루타는 모두 다 듣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다시 말하였다.
“만약 정 그렇다면 내가 1년 안에 가업을 마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그 때 너와 함께 출가하겠다.”
그러나 마니루타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저는 1년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1년도 역시 오랜 세월입니다. 그러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생겨 출가에 방해를 받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자 바제리가왕은 다시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만약 정 그렇다면 내가 6개월 안에 가업을 마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이렇게 하여 내지 3개월, 2개월, 한 달을 기다리라고 말하였지만 마니루타는 모두 다 듣지 않았다. 그러자 바제리가왕은 또 마니루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만약 정 그렇다면 내가 7일 안에 가업을 마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그 때 너와 함께 집을 버리고 출가하겠다.”
그제야 마니루타는 왕에게 말하였다.
“어질고 어지십니다. 바제리가왕이시여. 대왕의 생각대로 하십시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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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안 대왕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때 세존께서는 아노미가야(阿奴彌迦耶) 촌락에 머물고 계셨다.
바제리가왕은 그 7일 동안에 집안 일을 처리하였으니, 이른바 온갖 보배장식품으로 제 몸을 화려하게 꾸미고 동산에 들어가 오욕락을 누렸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가거나 큰 잔치에 가려고 하면 목욕하고 머리에 빗질을 하며, 보배 장식품과 화려한 옷으로 그 몸을 꾸민 뒤에야 남의 집에 가듯이 그 바제리가왕도 동산 안에서 노닐고 즐긴 것 또한 그와 같았다.
이 때 또 석가족 청년이 또 한 사람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발부파(跋涪婆)[수나라 말로는 다미(多眉)라고 함]였다. 또한 석가족 청년으로 궁비라(宮毘羅)와 난제가(難提迦)와 아난(阿難)이 있었으며, 또한 석가족 청년 제바달다(提婆達多)도 또한 앞에서와 같은 자들도 그 몸을 화려하게 치장하였으니 모두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모든 석가족 청년들은 모두 함께 보배 장식품과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뒤에 이발사 한 사람을 데리고 네 종류의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가비라 성을 나와 아노미가야 마을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 즈음 바제리가왕에게는 값어치가 금전 3백 냥에 해당하는 물건이 있었으니 금전 1백 냥은 옷의 값이고, 또 금전 1백 냥은 보배 장식품 값이며, 나머지 금전 1백 냥은 말 안장의 값이었다. 청년 마니루타도 그와 같았고, 그 밖의 모든 석가족 청년인 발부파, 궁비라, 난제가, 아난, 제바달다들도 모두 이렇게 각각 금전 3백 냥 어치의 보물을 지니고 있었으며 내지 말과 안장들의 값이었다.
그 모든 청년들이 지니고 있는 보물의 값을 합하면 금전 2,100냥이나 되었다. 그런데 청년들은 가비라성을 벗어나자 모두 말에서 내리더니 보배 장식품들을 풀어 이발사에게 던져주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모든 보석과 장식품들을 전부 그대에게 주리니 생업의 밑천을 삼아라. 그대는 이것을 받아서 목숨을 이어가는 터전을 마련하고 다시 다른 일을 구하지 말아라.”
청년들은 보배 장식품들을 주고 나서 아노미가야 마을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러자 이발사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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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족 사람들은 매우 위엄 있고 용감한 자들이다. 그들은 내가 여러 청년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도망치게 만들었다고 말할 것이며, 이런 인연으로 나에게 와서 위협할지도 모른다. 이 청년들은 이미 이런 물건들을 버렸지만 내가 어찌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제 이 보석들을 받을 수는 없다. 저들은 이처럼 부유하고 호사스럽기 그지없으며 크나큰 위세를 지닌 사람들인데도 그처럼 한량없는 재산과 보석들과 왕위까지도 버리고 집을 떠나 출가하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그들을 따르지 않겠는가.’
이발사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그 보석들과 장식품들을 나뭇가지에 걸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이것을 보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음대로 가져가고 끝내 도적을 만나지 말았으면……’
그는 혼자서 이렇게 생각한 뒤에 석가족 청년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 석가족 청년들은 멀리서 이발사가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발사는 여러 청년들에게 대답하였다.
“여러 성자(聖子)들이여, 석가족 사람들은 모두가 강성하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세도가 있어, 나에게 여러 동자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달아나게 하였다고 말할 것이며, 그런 까닭에 나의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신들이 이미 버린 물건을 내가 이제 무엇 하러 욕심을 내겠습니까? 이제 나는 그 물건들을 받지 않으리니 석가족 사람들은 강성하여 큰 세력이 있으면서도 출가하거늘 하물며 내가 지금 출가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
로 이런 인연으로 저는 돌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자 여러 석가족 청년들은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장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구나. 왜냐 하면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 석가족들은 그 위세가 대단하기 때문에 그대가 자기 종족의 청년들을 데리고 도주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이 나오면 그들은 분명 그대의 목숨을 위협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석가족 청년들은 이발사와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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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에게 집을 버리고 출가하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구족계를 주십시오.”
그리고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 출가를 허락하신다면 이 이발사를 가장 먼저 제도하여 우리보다 앞서 출가시켜 주십시오. 왜냐 하면 이 이발사는 오랜 세월동안 힘써 고생스럽게 저희를 받들어 모셨으나 한번도 잘못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보다 앞서 그에게 출가를 허락해 주시고 구족계를 주십시오. 그가 출가한 뒤에 저희들의 출가를 허락해 주시고 구족계를 주십시오. 그래서 저희들로 하여금 먼저 이 이발사에게 절을 하게 하시고 일어나 맞이하며 합장 공경
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나타내 보이게 해주십시오. 왜냐 하면 저희들 석가족은 매우 교만하고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사람으로 인하여 저희 석가족들로 하여금 그런 마음을 돌리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먼저 이발사를 제도하여 구족계를 받게 한 뒤에 바제리가왕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고, 그밖에 각 청년들을 차례로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셨다. 그러나 아난과 제바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출가하지 못하였으므로 세존 계신 곳에서 다시 설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 설산 아래에는 장로 한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 성은 발야슬타(跋耶瑟吒)이고 이름은 승가(僧伽)라 하였다. 그 사람은 수행하여 이미 3과(果)에 머물렀고 4선(禪)을 성취하였으며 언제나 설산 밑에서 살고 있었다.
발야슬타 승가는 아난 등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맞으며 위로하여 말하였다.
“석가족 청년들이 무슨 인연으로 여기 왔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출가하고 싶어 이곳에 왔습니다. 어진 성자시여, 제발 저희들을 제도하여 출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때 발야슬타 승가는 제바달다 청년의 행실이 지혜로 단련되지 않은 것을 관찰하지도 않은 채 곧 두 사람을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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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아난은 출가한 지 오래지 않아서 고요한 곳에서 좌선하고 있다가 드디어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약 발야슬타 승가께서 지금 부처님 계신 곳에 가기를 허락해 주신다면 나는 이제 부처님을 뵈러 가야겠다.’
아난은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이른 아침에 방에서 나와 그 발야슬타 승가의 처소에 나아가 그 발에 머리 대고 절을 하고서 한쪽에 물러 앉아 아뢰었다.
“파단다우파타(婆檀多優波陀)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을 뵈러 가고 싶습니다. 허락하여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발야슬타 승가가 아난에게 대답하였다.
“아난아, 네가 이제 때를 안다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거라. 그리고 너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나를 대신하여 ‘세존이시여, 무병하시고 몸은 편안하십니까? 기거하시기 편안하여 교화를 행하심에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몸의 기력이 항상 좋으십니까?’라고 문안을 여쭈어라.”
발야슬타 승가가 이렇게 허락하자 아난은 대답하였다.
“우파타시여,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발야슬타 승가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세 번 에워싸고 돌고 나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불본행집경 제59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8. 발제리가등인연품 ③
이 때 장로 제바달다는 아난이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 떠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장로 아난이여, 어디로 가려 하는가?”
“나는 지금 부처님을 뵈러 가려 하오.”
그러자 장로 제바달다는 아난에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그대가 지금 그렇다면 잠깐만 기다려라. 나도 발야슬타 승가에게 아뢰고, 그대와 함께 부처님 처소로 가겠다.”
제바달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발야슬타 승가의 처소로 가서 그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여쭈었다.
“저는 지금 부처님을 뵈러 가고 싶습니다. 제발 존자께서는 가엾게 여기셔서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장로 발야슬타 승가는 제바달다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이제 때를 안다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거라. 그리고 너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나를 대신하여 ‘세존이시여, 무병하시고 몸은 편안하십니까? 기거하시기 편안하여 교화를 행하심에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몸의 기력이 항상 좋으십니까?’라고 문안을 여쭈어라.”
제바달다는 대답하였다.
“존자의 가르침대로 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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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곧 정례하고 세 번 돈 뒤에 작별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난과 제바달다 두 사람은 함께 설산 아래에서 출발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하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장로 제바달다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전날 여래께 출가하기를 청하였지만 여래께서는 저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래께서는 오늘 저의 출가한 모습을 보고 계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제바달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바달다야, 너는 어찌하려고 출가하였느냐? 이제 너의 소원대로 되었으니 어기지 말아라.”
이 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난날 항상 저 제바달다에게 이익되는 일을 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제바달다는 지금 오히려 부처님께 의탁한 채 원수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내가 저 제바달다에게 이익된 일을 가르쳐도 그 사람은 오히려 나의 원수가 된 것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또한 그렇게 내가 이익됨을 가르쳤으나 도리어 나의 원수가 되었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것은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 구원겁(久遠劫) 전에 설산 아래에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 달린 새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한쪽 머리는 가루다(迦嘍嗏)새라 하고 한쪽 머리는 우파가루다(優波迦嘍嗏)새라 불렀다. 그 두 머리의 새는 한쪽 머리가 잠들면 다른 한쪽 머리는 곧 깨어나곤 하였다.
어느 날 가루다새가 잠들어 있을 때의 일이다. 깨어나 있던 우파가루다 머리 가까이에 마두가(摩頭迦)라는 과일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 바람이 불어 깨어나 있는 머리 근처로 꽃이 떨어졌다.
그러자 그 깨어나 있는 머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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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비록 혼자서 이 꽃을 먹는다 하더라도 뱃속에 들어가면 두 머리가 함께 기운을 얻게 되고 또 목마름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침내 잠들어 있는 머리에게는 알리지 않고 묵묵히 그 꽃을 먹었다.
그 잠자던 머리가 잠에서 깨어난 뒤에 배가 부르고 입에서 트림이 나오자 그 머리는 이렇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이런 향기롭고 아름답고 미묘한 음식을 얻어먹었기에 내 몸이 편안하고 배가 부르며, 내 목소리도 아름답게 나는 것인가?’
깨어나 있던 머리는 대답하였다.
‘네가 잠들어 있을 때 여기 내 머리 근처에 마두가 꽃나무가 있었는데, 그 꽃 한 송이가 내 머리 근처에 떨어졌었다. 그때 나는 나 혼자 이 꽃을 먹더라도 뱃속에 들어가면 함께 기운을 얻고 목마르거나 배고픔을 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너를 깨우지 않고 곧 그 꽃을 먹었다.’
이 때 그 잠들어 있던 머리는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고 원한을 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음식을 얻어도 나에게 알리거나 나를 불러 깨우지도 않고 자기만 먹었구나. 그렇다면 나도 지금부터 음식을 얻게 되면 이 자를 부르거나 깨워 알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서 그 두 머리는 여러 곳을 지나다니며 놀다가 문득 독이 들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 우파가루다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이 꽃을 먹고 두 머리가 함께 죽게 하리라.’
그리고 그 가루다에게 말하였다.
‘이제 너는 잠을 자거라. 내가 깨어 있겠다.’
가루다는 그 우파가루다의 말을 듣고 곧 잠들었으며 우파가루다는 때를 기다렸다가 독이 든 꽃을 찾아 먹고 말았다.
가루다가 잠에서 깨어나자 입에서 트림이 나오는데 독기(毒氣)를 느꼈으므로 우파가루다에게 물었다.
‘너는 깨어 있을 때 어떤 나쁜 음식을 먹었기에 내 몸이 편안하지 않고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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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것만 같으며, 내 말도 거칠고 소리를 내려 하여도 마음대로 쉽게 내지 못하는 것인가?’
우파가루다가 말하였다.
‘네가 잠들어 있을 때 나는 독 있는 꽃을 먹었다. 두 머리가 함께 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 머리가 다른 머리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는 짓이 어쩌면 그리도 성급하냐. 어쩌자고 이런 일을 하였단 말이냐?’
그리고 나서 곧 게송을 읊었다.
전날 네가 잠들어 있을 때는
미묘하고 감미로운 꽃이 내 근처로
바람에 불려 왔기에 먹었던 것인데
너는 도리어 크게 성을 내는구나.
무릇 어리석은 사람은 보기도 싫고
또한 함께 있고 싶지도 않다.
어리석은 이와 함께 있으면 이롭지 않고
스스로도 해롭고 남도 해를 끼치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그 때 아름다운 꽃을 먹은 가루다새가 누구인지 의심할 것이다.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그는 다름 아닌 곧 나의 몸이었다. 또한 너희들은 그 때 독이 든 꽃을 먹은 우파가루다새가 누구인지 의심할 것이다.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그가 바로 지금의 제바달다였다. 나는 그 때에도 이익을 지었으나 그는 도리어 성을 내었으며, 지금도 또 그렇게 내가 이익을 가르쳤으나 그는 도리어 나에게 원수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장로 바제리가는 출가하고 난 뒤 곧 여름 안거 3개월 동안에 세 가지 신통을 성취하였고, 마니루타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었으며, 장로 발부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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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인기(因耆)ㆍ장로 난제가(難提迦) 등과 같은 사람들은 나한과를 증득하였고, 아난도 수다함과를 증득하였으나, 제바달다는 세간 범부들의 신통을 성취하였다.
장로 바제리가는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난 뒤에 숲에 머물거나 고요한 방에 머물기도 하였으며 또는 맨땅이나 기타림 동산에 있으면서 낮과 밤 세 때에 항상 이렇게 외쳤다.
“아아, 기쁘구나.”[이와 같이 세 번 외쳤다.]
어느 때 여러 대중 비구들은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장로 바제리가 교구미(喬瞿彌)의 아들은 세존의 법 가운데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으며, 언제나 옛날 왕위에 있을 때 부귀의 쾌락을 누리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그 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나무 아래 있거나 빈방에 있거나 혹 맨땅에 있으면서 밤낮 세 때에 ‘아아, 기쁘구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 한 사람을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바제리가 비구한테 가서 세존께서 부른다고 전하라.”
그 비구는 대답하였다.
“가르침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바제리가 장로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바제리가여, 세존께서 그대를 부르신다.”
장로 바제리가는 그의 말을 듣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섰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제리가여, 너는 참으로 나의 법 가운데서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을 즐겨 하지 않느냐? 항상 옛날 왕위에 있을 때의 쾌락을 떠올렸느냐? 그 때의 즐거움을 떠올렸기 때문에 나무 아래 있거나 한가로운 방에 있거나, 맨땅에 있으면서 세 때에 ‘아아, 기쁘구나. 아아, 기쁘구나’라고 이렇게 외쳤느냐?”
장로 바제리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발단다(跋檀多)여.”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떤 이로운 것을 보았기에 나무 아래에 있으면서 세 때에 ‘아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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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구나. 아아, 기쁘구나’라고 외쳤느냐?”
장로 바제리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집에 머물면서 왕위에서 다스리고 찰제리의 관정(灌頂)을 받았으며 일곱 겹 담장이 저의 궁전을 에워싸고 저를 수호하였습니다. 또 일곱 겹으로 코끼리 군대가 저를 수호하였고 말 군대와 수레 군대와 보병의 군대들도 각각 일곱 겹으로 저를 수호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모두 몸에 갑옷을 입고 손에는 활ㆍ칼ㆍ창ㆍ금강저ㆍ철봉ㆍ방패ㆍ쇠바퀴ㆍ삼차(三叉)ㆍ도끼 등의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저를 에워쌌었습니다. 또 담장 밖에는 다시 일곱 겹
의 해자 참호가 있어 이렇게 수호하였습니다. 이렇게 막고 가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밤중에 어떤 소리라도 들리면 겁이 나서 편안하지 못하였으며,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언제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온몸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나무 아래 있거나 한가로운 방에 있거나, 혹은 맨땅에 있으면서 밤에는 온갖 맹수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데도 공포가 일어나지 않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도 없고 온몸이 태연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항상 홀로 앉아 마음으로 ‘나는 이제 크게 이익되는 일을 얻었구나. 지금 세존께서 나의 위대한 스승이 되어주셨으며, 스스로 깨치신 법 가운데 출가할 수 있게 되었고, 청정한 행을 닦으며, 많은 금계(禁戒)가 있어 나를 잘 거두며, 미묘한 행을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이제 나는 잘 살다가 목숨을 잘 마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세존이시여, 저는 지난날 왕위에서 즐겁게 지내고 부귀를 누릴 때의 즐거움을 오늘날 출가한 즐거움과 고요한 곳에 앉아 즐겁게 사유하는 즐거움과 선정에 드는 즐거움과 사문의 즐거움과 비교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무 아래 있거나 한가로운 방에 있거나 혹 맨땅에 있으면서 족함을 알고 욕심이 적으며 남에게 밥을 빌어도 몸의 털이 곤두서지 않고, 마치 산록처럼 마음의 자재로움을 얻어, 앉고 눕거나 가고 서거나
걸림이 없어 세 때에 ‘아아, 기쁘구나. 아아, 기쁘구나’라고 세 번 외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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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로 바제리가는 부처님 앞에서 대중을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내 옛날 깊은 궁전 속에 있을 때
일곱 겹 담장이 매우 높고 험해서
망루와 성가퀴로 적을 물리쳤고
또 일곱 겹의 참호도 있었다네.
군사들이 온갖 무기를 들고 지켜
밤낮 없이 나를 수호하였건만
이렇게 가지가지로 방위해 지켜도
몸과 뜻이 아직 편안치 않았네.
나는 지금 세존 앞에 있는데
나를 수호하는 이 한 사람도 없고
또 고요하고 한가로운 곳에 있거나
혹은 산 숲 나무 아래에 머물기도 하네.
나 부처의 아들 바제리가처럼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수호해
행주좌와에 항상 안락하여
이러므로 마음에 연연함이 없어라.
나는 옛날 궁 안에서 큰 코끼리를 타고
몸에는 아름다운 비단 옷을 입었으며
향긋하고 달콤하고 맛난 음식과
고기 맛으로 조화된 국도 먹었네.
지금 앉고 누울 때면 마음대로 깔고
고요한 곳에서 분소의를 입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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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버리고 괴로움의 근본을 뽑아버림이
내가 행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이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인연하여 또 게송을 읊으셨다.
사람이 명(命)을 알면 번뇌롭지 않고
또한 근심 없이 그 목숨을 마치리라.
만약 용맹스럽게 진제(眞諦)를 보면
고해에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미 존재[有]와 갈애[愛]를 끊은 비구는
일체 것을 고루 다 끊은 자이다.
나고 죽는 번뇌가 다 없어지면
이렇게 다시는 훗날의 존재[後有]가 있지 않으리.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만약 나의 성문 제자들 가운데 호사스럽고 귀한 가운데서 집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으로 으뜸인 자는 바로 바제리가 비구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자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장로 바제리가는 지나간 옛 세상에 어떤 선근을 지었기에 금세에 석가족의 매우 부귀한 집안에 태어났으며 내지 재물이 많아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또 어떤 업을 지었기에 석가족의 왕위를 계승하였고, 또 어떤 업을 지었기에 문득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또 부처님으로부터 ‘너희 비구들아, 만약 성문 제자 가운데서 호사스러움과 귀함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으로는 바제리가가 으뜸이다’라는 수기를 받게 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내가 생각하건대 지나간 옛 세상에 가난한 사람 하나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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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떤 성을 떠나서 바라나성에 이르렀는데 그가 성에 도착하자 그 성에 살고 있던 모든 걸인들이 이 사람을 보더니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는 어디 살다가 이곳까지 왔느냐?’
그러면서 그들은 이 사람이 돌아다니며 걸식하는 것을 막고 허락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자신의 걸식이 방해를 받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어째서 내가 걸식하는 것을 막는단 말인가?’
그 때 바라나성에 살고 있는 장자 한 사람이 구리 발우를 잃어버렸다. 그 장자는 구리 발우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하자 발우를 찾으러 다른 마을로까지 갔다.
마침 그 걸인이 거름더미 속에서 그 구리 발우를 주웠다. 그는 발우를 막대기에 걸고 바라나성으로 들어와서 주인을 찾으러 이 거리 저 거리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외쳤다.
‘이 구리 발우는 누구의 물건이요? 아는 사람은 찾아가시오.’
주인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매고 다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걸인은 발우의 주인을 찾지 못하자 그 나라 범덕왕에게 바쳤다.
그런 뒤에 장자는 훗날 어떤 사람이 거름더미 속에서 구리 발우 한 개를 주어 막대기에 걸고 다니며 바라나성에 들어와 온 거리와 골목마다 다니면서 주인을 찾아 다녔지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여 범덕왕에게 바쳤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자는 범덕왕을 찾아가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예전에 걸인이 가져다 바친 구리 발우는 저의 물건입니다.’
그러자 범덕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 걸인을 불러와 물었다.
‘네가 먼저 보내온 구리 발우는 지금 이 장자의 것이라는데, 어찌된 사연이냐?’
그 걸인은 범덕왕에게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본래 그 구리 발우가 누구의 것인지 몰랐습니다. 거름더미 속에 있는 것을 제가 주웠는데 저는 곧 그 발우를 막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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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고 바라나성에 들어와, 동서남북을 헤매며 주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곧 대왕에게 바치어 마음대로 쓰시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범덕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청하라. 내 그대에게 주겠다.’
그리고 그 구리 발우는 장자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 걸인은 범덕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지금 만약 기쁜 마음으로 저에게 무엇이든 주고자 하신다면 부디 저를 이 바라나성의 모든 걸인들의 왕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범덕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지금 무엇 하러 그 거지의 왕이 되겠다고 하는가? 그런 것 말고 더 좋은 것을 청하여라. 금이나 은, 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고을을 찾아 봉읍(封邑)해주기를 바란다면 나는 곧 그대에게 주겠다.’
하지만 그 걸인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만약 기꺼이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면 제가 먼저 소원한 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왕은 할 수 없이 대답하였다.
‘그대 원하는 대로 하라. 그대의 뜻을 따르겠다.’
이 때 그 바라나성에는 모두 5백 명의 걸인이 살고 있었는데 왕이 되기를 소원한 걸인은 모든 걸인들을 다 불러모으고 말하였다.
‘내가 이제 너희들의 왕이 되었으니, 너희들은 반드시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걸인들이 자기들의 왕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처분을 내리실 것이며, 무슨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까?’
그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함께 나를 어깨에 메거나 업기도 하고,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좌우에서 나를 호위하고 가도록 하여라.’
그 5백 명의 걸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곧 지시를 따라서 어깨에 메거나 업기도 하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음식이 마련된 자리에
가면 음식을 빌어 가져와서 한 곳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런 방편으로 오래도록 살아갔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호다가(摩呼茶迦)[수나라 말로는 환희환(歡喜丸)이라 함]를 먹고 있었는데 걸인왕은 그 사람에게서 그 과자를 빼앗아 가지고 도망쳐 달아났다. 왕을 따르던 5백 명의 거지들은 왕을 따라 먼 곳까지 뛰어갔지만 모두들 힘이 부쳐서 각각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 거지왕은 힘이 장사여서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피로한 줄을 몰랐다. 왕이 더 멀리 달아난 뒤 뒤를 돌아보았을 때 5백 명의 걸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이지 않자 어느 동산 속에 들어가 손을 씻고 한쪽에 앉아 그 과자를 먹으려 하였다. 그런데 채 먹기도 전에 그에게는 문득 뉘우침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 착하지 않은 짓을 하였구나. 지금 나는 어쩌자고 그 사람에게서 이 음식을 빼앗았던가. 또 이 음식은 너무 많아서 내가 다 먹을 수도 없는데 미친 듯이 나를 뒤쫓아온 사람들도 떼어 버렸다. 만약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여러 성인들이 부디 나의 생각을 알고서 이곳으로 온다면 나는 그 분에게 나누어 주리라.’
그가 이런 마음을 내었을 때 선현(善賢)이라는 이름의 벽지불이 한 분 있다가 허공을 날아 그 사람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려섰다.
그 사람은 벽지불의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걸음걸이가 가지런하며 거동이 점잖아서 조급하거나 느리지 않은 것을 보게 되었다. 이것을 보고 나자 그는 벽지불에게 깨끗한 신심을 일으키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과거에도 가난하였고 또 현재에도 가난한 것은 모두 이런 복전(福田)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거나 공경히 공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에 이런 복전을 만났다면 오늘에 결코 이런 곤궁함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요, 또 남에게 핍박을 받고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지금 이 마호다가 과자를 이 선인(仙人)에게 바치고 싶은데 과연 이 선인이 받을지 모르겠구나. 만약 받아 준다면 나는 미래에는 이와 같은
빈천하고 괴로운 신세를 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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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고서는 곧 마호다가 과자를 그 선인에게 바쳤다. 모든 벽지불에게는 다음과 같은 법이 있으니, 오직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할 뿐 다른 법으로 교화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 벽지불은 그에게서 마호다가를 받아들고서 그 사람을 가엾게 여긴 까닭에 그곳에서 허공을 날아올라 떠나갔다.
그 사람은 벽지불이 허공을 타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참지 못하여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합장하고, 멀리 그 벽지불의 발에 정례하면서 마음으로 이런 원력을 세웠다.
‘원하옵건대 나의 이 몸은 미래세에 항상 이런 세존이나 혹은 더 나은 분을 만나서 그 세존의 말씀하신 법을 어서 듣고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원하건대 나는 미래세에는 큰 위세가 있고 덕이 있는 찰제리종에 나서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고, 다시는 걸인들 속에서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또 ‘세세생생에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원력도 세웠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너희들은 그 때 바라나성 걸인의 왕으로서 벽지불에게 마호다가를 공양한 사람이 누구인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바로 바제리가 비구가 그 사람이었다. 그 때 걸인왕으로서 벽지불에게 마호다가를 보시한 그 업보로 인연하여 지금 석가족 큰 부호의 집에 태어나서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으며, 또 그 때 ‘나는 내세에 큰 위덕 있는 부호 종성에 태어나 왕이 되어 교화하기를 원합니다’라고 원력을 세운 그 업보로 인연
하여 지금 석가족의 왕위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세세생생토록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한 그 업보로 인연하여, 한번도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과 천상에 태어났으며, 두 세계를 오가며 윤회하면서 많은 쾌락을 누렸던 것이다.
또 그는 ‘나는 내세에 항상 이런 벽지불이나 혹 더 나은 분을 만나며, 그 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는 대로 내가 속히 알기를 원합니다’라고 원하였던 그 업보로 인연하여,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이다. 또한 나에게서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호족(豪族)으로 출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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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가운데 가장 으뜸인 사람은 바제리가 비구이다’라는 수기를 받게 된 것이다.
너희 비구들아, 바제리가는 과거에 이런 선근 인연을 지었으며, 이런 선근을 지은 인연 때문에 지금 호성(豪姓) 석가족의 집안에 태어나 크게 부하고 크게 귀하여 재물이 많아서 조금도 아쉬운 것이 없었다. 석가족 가운데서 왕위를 계승하였다가, 그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호성으로 출가한 사람으로는 바제리가 비구가 제일이다’라는 수기를 받았던 것이다.”
그 장로 바제리가는 이렇게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나서 항상 아란야에 살면서 걸식으로 생활하고 분소의를 입었으며, 항상 앉았으며 눕지 않았고 뜻하는 대로 자리를 깔았으며 오직 세 가지 옷[三衣]만 지녔을 뿐 다시 다른 것을 간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바제성(舍婆提城)에서 걸식하며 지내고 있던 중 아란야의 나무 아래서 풀과 나뭇잎을 찾았으나 결국 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장로는 곧 흰 코끼리 똥을 모아 깔고 그 위에 가부좌를 맺고 앉아, 몸을 곧게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하룻밤을 지냈다.
그 장로 바제리가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려고 그 사바제성을 향하여 걸어갔다. 때마침 성에서는 여러 걸인들이 밥을 얻어 가지고 나와서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각각 따로 앉아 밥을 먹으려 하였다. 장로 바제리가는 멀리서 여러 걸인들이 성에서 밥을 빌어 가지고 나와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따로 앉아 먹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곁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섰다. 그 때 모든 걸인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비구는 틀림없이 우리를 불쌍히 여긴 까닭에 이곳에 와서 밥을 비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각각 자기 밥에서 조금씩 덜어 그 장로 바제리가에게 주었다. 바로 그 때 파사나 교살라국의 왕이 분타리(分陀利)라는 이름의 커다란 흰 코끼리 위에 올라타고 대신 시리발타(尸利跋陀)[수나라 말로는 피현(彼賢)이라 --------------------------------------------------------------------------------------------------------------------------------- [1120 / 1142] 쪽 함]를 거느리고 성에서 나왔다. 그 파사나 교살라국왕은 걸인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있는 바제리가를 멀리서 보고, 시리발타 대신에게 물었다. “시리발타여, 어떤 비구이기에 걸인들에게 밥을 얻어 먹느냐?” 그 대신은 자세히 살피더니 그가 틀림없이 바제리가임을 알고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이 분은 바로 석가왕 바제리가입니다.” 왕은 곧 그 대신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흰 코끼리를 저 바제리가 옆으로 몰고 가도록 하라.” 시리발타는 왕의 명령을 듣고 대답하였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는 왕의 명령대로 왕이 올라탄 흰 코끼리를 몰고 장로 바제리가 곁으로 갔다. 파사나 교살라국왕은 바제리가 장로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코끼리에서 내려 바제리가의 발에 머리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서서 물었다. “아라야(阿梨耶)여, 지금 무슨 까닭에 이렇게 빈천한 생각을 내시고, 이토록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습니까?” 그러자 장로 바제리가는 파사나 교살라국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저들에게 밥을 빈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일곱 가지 보배와 재물이 있으며 오직 내가 원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밥을 빈 것이고 또 저 걸인들로 하여금 빈궁함을 끊어버리게 하기 위하여 걸식을 한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나는 이미 눈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저 무명(無明)의 앞못보는 중생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와서 걸식한 것입니다. 또 대왕이여, 나는 지금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였으므로 오직 저 탐욕과 성냄에 얽매인 중생들을 해탈시키게 하려고 그들에게 걸식하였던 것입니다. 대왕이여, 지금 나는 이미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오직 번뇌의 늪에 빠진 중생을 구제해 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와서 걸식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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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왕이여, 나는 이미 병이 없는 곳을 얻었으며 오직 번뇌에 병든 모든 중생들을 치료하려고 그들에게 걸식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 파사나 교살라국왕은 다시 바제리가에게 말하였다.
“아리야여, 저 또한 가난하여 일곱 가지 재보가 없고, 저 또한 무지하여 깊은 어둠에 머물러 있으며, 저는 또 번뇌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도 탐욕의 병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리야시여, 제발 저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자주 저의 집에 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장로 바제리가는 파사나 교살라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진 대왕이시여,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왕을 버려 둔 채 떠나갔다.
59. 마니루타품(摩尼婁陀品) ①
어느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는데, 그때 장로 마니루타는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마니루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니루타야, 너는 어찌하여 이 법의(法義) 가운데에서 그토록 잠들어 있는 것이냐? 너의 그런 행동은 참으로 착하지 않은 일이니, 너는 일어나라. 잠들지 말아라.”
그 이후부터 마니루타는 다시는 잠자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오래도록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육안(肉眼)을 잃게 되었으며 오직 천안(天眼)으로써 세간의 모습들을 보았다.
이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청정한 수행이 으뜸가는 사람은 바로 마니루타 비구이다.”
또 어느 때 마니루타는 자주 모든 의상을 꿰맸는데 어느 때에는 다섯 손가락마다 바늘을 하나씩 들고 꿰맸다.
그 때 장로 대목건련이 그의 처소에 나아가 말하였다.
“마니루타여, 그대는 지금 나와 함께 유행(遊行)하며 다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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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장로 마니루타가 목련에게 대답하였다.
“장로 목련이여,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 옷이 다 지어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목건련은 다시 마니루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만약 신통력으로 바느질한다면 빨리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또한 빨리 완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마니루타가 옷을 꿰매는데 바늘에서 실이 빠졌다. 그러자 장로 마니루타는 홀로 외쳤다.
“이 세상에 누가 기꺼이 내 바늘구멍에 실을 끼어 주는 공덕을 짓겠습니까?”
이 때 세존께서 홀로 방안에서 마음을 거두어 좌선하시다가 청정한 천이(天耳)로 마니루타의 이 말을 들으시고, 마치 힘센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이내 본래 자리에서 몸을 숨기고 마니루타 앞에 나타나 바늘에 실을 꿰어 주었다.
그러자 장로 마니루타는 물었다.
“어느 분이 저의 바늘을 꿰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니루타여, 내가 너를 위하여 바늘귀를 꿰었다.”
이 때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서로 전하였다.
“부처님이 장로 마니루타를 위하여 그 바늘귀를 꿰어 주셨다.”
그들은 이런 말을 듣고 저마다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도 깨끗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높이 기려서 그가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을 도우시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어찌 서로 모르는 체하며 돕지 않겠는가.”
이로 인하여 모든 비구들은 저마다 서로의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이 때 비구들은 이런 인연으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장로 마니루타는 지나간 옛 세상에 어떤 선업(善業)을 심었기에 지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얻었으며, 세존으로부터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서 청정한 천안을 얻은 이로 가장 으뜸인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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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마니루타 비구이다’라는 수기를 받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옛날 한량없는 아승기겁 이전에 부처님 한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이름을 연등(然燈)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라 하였다. 그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실 때에 여러 가지 천안(天眼)의 일을 찬탄하였다.
그 때 한 거사에게는 대재(大財)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그 집회 대중 안에서 법을 들었다. 거사의 아들은 법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비록 부모가 집을 버리고 출가함을 허락하지 않지만, 미래세에 천안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선근을 지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백 곡(斛)이나 되는 기름을 구하여, 연등불 무상정진 등정각(無上正眞等正覺)의 처소에 가지고 가서 등을 밝혀 공양하고, 마음속으로 이런 원력을 세웠다.
‘부디 나는 내세에 이런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속히 증득하여 알며, 그 세존의 성문 제자로서 천안이 가장 으뜸가기를 바라며, 또 부디 세세생생에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연등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 ㆍ천인사ㆍ불세존께서는 거사의 아들 대재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세에 부처님이 계시리니, 이름을 석가모니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라 하며, 십호를 모두 갖춘 분이 나실 것이다. 너는 그 세존의 성문 제자 가운데 천안을 얻은 사람으로는 으뜸이 되리라’고 수기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비구들은 아마 그 연등불 때의 대부호 거사의 아들이었던 대재가 누구인지 의심할 것이다. 그가 바로 마니루타 비구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아주 오래 전 과거세에 도둑 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려고 어두운 밤중에 좁은 길을 가다가 중도에 그 신발끈이 끊어졌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는 벽지불의 사리탑이 하나 있었는데 그 탑 있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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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어떤 사람이 등을 밝히고 복을 빌면서 탑을 공양하며 받들었다. 그런데 그 등불이 꺼지려 하였으므로 그 도둑은 그것을 보고 등불을 계속 피우려고 신발끈을 끊어서 기름을 더 치고, 또 화살촉으로 심지를 돋웠다. 그러자 등불은 더욱 밝게 빛났다.
이 때 그 도둑은 등불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고 나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신의 끈을 이었다. 그는 그 빛을 인연하여 그 탑을 발견하였다. 탑을 발견한 순간 문득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그는 원을 세웠다.
‘이 탑은 어느 분의 것인지 모르나 부디 내세에 이 탑의 본존(本尊)이나 혹은 더 나은 분을 만나서 그 세존의 설법을 듣고 속히 증득하여 알며, 그 세존의 성문 제자 가운데 천안을 얻은 사람으로 으뜸이 되며, 또 원하건대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불본행집경 제60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9. 마니루타품 ②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그 때 벽지불의 탑 앞에서 등불을 더욱 밝힌 그 도둑이 누구인지 달리 생각하지 말아라. 마니루타 비구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마니루타는 지나간 옛 세상에 대재(大財)라는 이름의 거사의 아들이었다. 또 나중에는 다시 도둑이 되어 벽지불 사리탑 등잔에 기름을 붓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디 나는 내세에 악도에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을 빌었던 업보 인연 때문에 세세생생에 악도 가운데 떨어지지 않고, 항상 천상과 인간을 오가면서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나는 내세에 항상 이런 세존이나 혹은 더 나은 분을 만나며, 그 분께서 설법하는 대로 속히 증득해 알기를 바랍니다’라고 원을 빌었던 그 업보로 말미암아 지금 나와 같은 세존을 만나 나에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또 ‘나는 그 세존의 모든 제자 가운데 천안을 얻은 사람으로는 내가 으뜸가기를 바랍니다’라고 원을 빌었던 그 업보로 인연하여 지금 나의 성문 제자 중에서 천안(天
眼)을 얻은 사람 가운데 그가 제일이 되었다.
너희 비구들아, 마니루타는 과거세에 이런 선근을 심은 업보 인연으로 지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또한 내가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천안이 제일인 사람은 마니루타이다’라고 수기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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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어느 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성 옛 선인(仙人)들이 살던 녹야원에 계셨다.
그 때 비가 많이 내렸으므로 장로 아난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늘은 비가 내리는데 먹을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비구들이 하루 낮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마니루타 비구의 현재 복력(福力)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그 비구가 오늘 하루 낮과 하룻밤을 지내게 해줄 것이다.”
그 때 장로 마니루타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의 미미한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만약 저의 음식을 잡수시면 모든 비구들이 하루 낮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받기를 허락하셨다.
그러자 장로 마니루타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바라나성으로 들어갔다. 성안에 들어서자 아직 걸식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친구나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바로 그 때 문득 5백 가마의 밥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장로 마니루타는 그 5백 가마의 밥을 녹야원으로 가져와서 곧 자리를 깔고 난 뒤에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이미 다 갖추어졌으니 오셔서 공양을 드시기 바랍니다.”
이 때 세존께서는 해가 솟을 무렵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모든 비구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셔서 깔아 놓은 자리에 차례로 앉으셨다.
장로 마니루타는 부처님과 모든 대중들이 차례로 앉은 것을 보고 나서, 그 5백 가마의 밥을 받들어 부처님과 대중들이 배부르게 먹도록 한 뒤에 자기도 밥을 먹었다. 공양을 마치자 모든 비구들은 강당에 나아가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 때 장로 마니루타는 자리에 앉고 나서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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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이여, 참으로 희유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과보가 크고 공덕이 크고 위세가 크게 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러 장로들이여, 내가 생각하건대 지난 세상에 바라나성에 매우 가난한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는 재산이 없어 창고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바라나성에는 파사타(婆斯吒)라는 벽지불 한 분이 있어 그 성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은 곡식이 귀하여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이 많았으며, 성 안팎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백골뿐이었고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출가한 사람이 걸식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배가 고파 수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그 벽지불은 이른 아침 해가 솟을 무렵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바라나성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며 그 성을 두루 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여 처음에 씻어서 가지고 나온 발우 그대로 들고 성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었던 나는 파사타 벽지불을 보고 그 곁으로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착하신 대선(大仙)이여, 여기서 걸식하여 뭔가 얻은 것이 있습니까?’
그 벽지불은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걸식하였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소.’
나는 다시 그 분에게 말하였습니다.
‘존자여, 그럼 저의 집에 오십시오.’
그 때 나의 집에서는 오직 한 되 가량의 피밥만이 지어져 있었는데 나는 그 벽지불을 모시고 가서 그 피밥을 보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벽지불은 나의 공양을 받고 나서 자유로이 가셨습니다.
나는 그 때 땔나무를 마련하려고 성밖으로 나와 시다림(尸陀林:공동묘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숲에 있던 백골의 시체 하나가 문득 일어나서 제게 오더니 저의 목을 껴안았습니다. 나는 그 때 그 시체를 떼어내려고 있는 힘을 다하였으나 시체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그러는 사이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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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골의 시체를 안은 채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내가 성으로 들어오자 나를 본 사람들은 말하였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어쩌자고 그런 백골의 시체를 가지고 성안으로 들어오는가?’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지금 온 힘을 다하여 이 시체에서 벗어나려 하였지만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벗겨내 줄 수 있다면 나를 위하여 시체를 떼어내 주십시오.’
그러자 그 사람들은 함께 힘을 합쳐 그 백골의 시체를 떼어내려 하였으나 역시 그들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차츰 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백골의 시체를 떼어내려 하는 순간 그 백골은 삽시간에 황금으로 변하여 저절로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그 때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 혼자 이 황금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범덕왕에게 가서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제가 지금 땅에서 보배창고를 얻었으니 대왕께서 받으셔서 나라의 보배로 쓰시옵소서.’
그러자 범덕왕은 좌우 신하들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이 사람을 따라가서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 모두 받아 오도록 하여라.’
그 신하들이 왕의 칙명을 듣고 나와 함께 집으로 왔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금을 가리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신들이 내가 가리키는 것을 보니 그것은 예전과 같은 시체의 백골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아, 너는 미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이 백골의 시체를 가지고 금이라고 하느냐?’
그들은 왕궁에 돌아가 사실대로 아뢰었습니다.
나는 훗날에 다시 왕에게 가서 또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저는 보배창고를 얻었습니다. 결코 거짓말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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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니다. 부디 대왕께서는 어서 받으소서.’
그러자 범덕왕이 몸소 나의 집에 와서 그 금덩이를 보았으나, 다시 처음의 백골처럼 보이자 왕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아, 너는 미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이 백골의 시체를 가지고 황금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다시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이것은 정말 황금입니다. 시체나 백골이 아닙니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말하고 나서 나는 손에 그 금을 쥐고 이런 서원을 세웠습니다.
‘만약 이 금이 내가 지은 선업(善業)의 과보로 된 것이라면 부디 범덕왕도 또한 금으로 보게 하소서.’
이런 맹세를 하고 나자, 범덕왕에게도 내가 본 것과 같이 시체가 아닌 금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착하구나. 그대여, 그대는 어떤 선업의 인연을 지었으며, 어떤 신(神)을 섬기고 어떤 하늘에 공양하고, 어떤 선인(仙人)에게 공양하였기에 그대에게 이러한 소원을 들어주었는가?’
나는 범덕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대왕이여, 굽어살피소서. 어떤 선인 한 분이 계셨는데 제가 이 선인에게 음식을 공양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일은 틀림없이 그 신력(神力)의 소치로 오늘 제가 이런 과보를 얻은 것일 것입니다.’
범덕왕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이러한 선업을 지었으므로 오늘 이런 과보를 얻은 것이다. 그대의 이 과보는 다른 사람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오늘부터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마음대로 쓰도록 하라.’
여러 장로들이여, 나는 그 때 바로 그 벽지불에게 한 끼니의 식사를 보시한 업보로 그러한 과보를 얻었으며 필요한 재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끼니의 식사를 공양한 까닭에 일곱 번이나 삼십삼천에 태어나 그런 복보(福報)를 받았고, 그 삼십삼천에서 제석천왕이 되었습니다. 또 인간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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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국왕도 되고 전륜성왕도 되어 사천하를 다스리고, 세계의 주인이 되어 세간을 보호하였으며 칠보를 모두 갖추었고 내지 항복을 받았으며 법답게 교화하였습니다.
그 한 끼니의 음식을 베푼 과보 때문에 목숨이 다하자 천상에 나게 되었고 천상에서 아래로 내려가 인간 세상에 태어났으며, 인간 세상에서 목숨을 다한 뒤에는 다시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유전하였으나 결코 하천한 곳에 나지 않았으며 내가 난 곳은 언제나 가장 좋고 묘한 궁전이었습니다. 인간 세상에 태어날 때면 부귀한 집에 태어나 재산이 풍족하였고, 아쉬운 것은 전혀 없었으며 하늘의 몸으로 있을 때와 같이 커다란 즐거움을 누렸으니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났을 때에도 또한 그와 같았습니다.
한 끼니의 음식을 보시한 그 과보로 인연하여 금세에도 석가족에 태어났으며, 내가 태어나던 날 모든 천왕들이 5백 벌의 보배옷을 가지고 와서 내 몸을 덮었으며, 땅 밑에서 또 5백 개의 보석창고가 저절로 나타났으니, 이 모든 일은 한 번 음식을 보시한 과보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나를 위하여 세 채의 궁전을 지었으니, 첫째는 여름에 지내는 궁전이고, 둘째는 겨울에 지내는 궁전이며, 셋째는 봄과 가을철에 지내는 궁전이었습니다. 그 음식을 보시한 과보의 인연으로 나는 석가족의 집안에 태어났으며, 우리 집은 그 때부터 날로 더욱 재산이 늘었으니, 이른바 쌀과 곡식이 창고에 넘치고, 진주ㆍ유리ㆍ산호ㆍ호박ㆍ금ㆍ은ㆍ옥 등 한량없이 진기한 보배와 하인이나 가축 등 조금도 아쉬운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또 그 때 음식을 보시한 과보로써 내가 동산에 있을 때 나의 모친이 시험삼아 빈 그릇을 갖추어 보자기를 덮어 나에게 보냈는데, 그 도중에 여러 하늘들이 갖가지 음식을 그 그릇에 가득 채웠으니, 그 음식은 향기롭고 맛있었으며 먹으면 몸에 큰 힘이 생겨났습니다. 또 음식을 보시한 과보의 힘 때문에, 부친과 함께 농장을 감독할 때 목이 말라 물을 떠 마시려 하자 그 물은 하늘의 묘한 감로수로 변하였습니다. 또 한 끼니 음식을 베푼 과보가 성숙하여 지
금 이 바라나성에 들어가자,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나 저절로 5백 가마의 밥이 내 앞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밥을 받아 가지고 녹야원으로 보내어 부처님과 대중들을 청하여 이 밥을 공양하게 하여 부처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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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을 다 배부르게 하였습니다.
그 업보로 인연하여 나는 네 가지가 모자란 적이 없었고, 내가 그 음식을 베푼 과보로 세속의 즐거움에도 또한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지금 출가하여서도 출가의 즐거움을 모두 다 완전하게 갖추었습니다.
그 음식을 베푼 과보가 성숙한 까닭에 이제 생사를 끊고 청정한 행의 힘을 얻었으며, 모든 할 일을 이미 다하여, 후세의 존재[有]를 받지 않고, 두려움이 없는 곳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나아가 열반을 얻을 것이며 열반을 얻은 뒤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저절로 증득해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 장로들이여, 내가 그 때에는 그 벽지불을 알지 못하였으나 만일 내가 그 벽지불을 분명하게 알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 때 더 좋은 과보와 큰 위덕을 구하고, 위없는 넓고 큰 과보를 구하였을 것입니다.”
장로 마니루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거듭 게송을 읊었다.
내 스스로 지나간 일을 생각하건대
그 때에도 이 바라나성에 있으면서
땔나무를 베어 파는 업을 삼았는데
존자 파사타 벽지불을 만났다네.
그를 보고 한 끼니의 음식을 보시하여
호귀한 석가족에 태어났다오.
이름하여 마니루타라 하고
모든 음성과 춤도 잘 알았으며
손뼉 치고 노래하고 게송을 읊조리는 등
또 모든 기예에도 다 능통했다오.
나는 지금 이미 숙명(宿命)을 알고
또 과거세에 태어난 곳도 알았나니
지난날 삼십삼천 천상으로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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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곱 번 오가며 났으니
그곳에서 혹 제석천왕도 되었고
또 어느 때는 자재천궁 안에서
모두가 나를 따라 일을 했으며
이렇게 모든 하늘을 다스렸다오.
또 일곱 번 인간의 임금이 되어
관정을 성취하여 찰제리왕이 되었나니
자재로운 큰 힘으로 무리들을 항복시키되
군사와 무기를 함부로 쓰지 않고
법답게 세간을 다스린 그 때에
온갖 진귀한 보배가 한량없었고
나의 경계 안도 풍족하기 끝이 없었다네.
태어나는 집안은 큰 부자로서
재산도 더욱 늘어 헤아릴 수 없고
모든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어
세간의 오욕락을 모두 다 갖추어
칠보와 온갖 보배 모자람이 없었나니
모두가 내 이런 업보로 이룬 것이요,
악도에 떨어진 적이 없었네.
지금 석가족으로 출가를 얻어
삼해탈과 감로처를 증득하였네.
내 어떻게 출가할 수 있었으며
가업을 버리고 여기 왔는가.
바로 나는 그 이익을 얻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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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존의 은혜를 갚으러 온 것이네.
세존께서 내 근기 익은 줄 아시고
나를 위해 덧없는 이치를 설하셨네.
만약 몸이 허깨비 같다고 생각하면
신통으로 나의 처소에 오셨네.
만약 내 마음에 의심이 생기면
이렇게 모든 것 나를 위해 풀어주시네.
부처님 설법에는 분별이 없고
나에게 설법함도 다름이 없으시네.
나는 지금 그 참다운 말을 들어
법답게 즐기고 받들어 행한다네.
이렇게 곧 삼해탈을 증득하였으니
이것은 곧 모든 부처님 은혜 갚는 일이네.
나는 이제 이 목숨 다함도 즐겁지 않고
또한 이 목숨도 즐기지 않네.
다만 내가 지은 업보가 이를 때
바른 기억으로 생각해 목숨을 버리리.
나는 미래에 나고 죽는 곳을 알며
중생들의 왕래하는 곳도 또한 아나니
이미 여기서 목숨이 끝남을 알고
또한 저 곳에 태어남도 아네.
비사리 경계 대나무숲 마을에서
나는 세상을 마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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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 푸르게 우거진 곳에
번뇌 다한 그 아래에서 열반하리라.
이 때 세존께서는 사람들의 귀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이(天耳)로서 장로 마니루타가 이렇게 과거에 지은 인연과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또 묘한 게송을 베풀어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찬탄하고 기뻐하셨다.
60. 아난인연품(阿難因緣品)
어느 때 장로 아난은 여러 범행 대덕들의 권청을 받고 세존을 받드는 시자(侍者)가 되었다. 그로부터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마음과 행동을 조화롭게 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아 가졌다. 여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일은 세간의 일이든 출세간의 일이든 모두 다 받아 가지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의심된 것을 물으면 또한 낱낱이 다 가르쳐 주어 그의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해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부처님
께서는 대중을 모으시고 여러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많이 듣고 총명한 지혜를 가진 이로는 아난 비구가 으뜸이다.”
그러자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장로 아난은 지나간 옛 세상에 어떤 선근(善根)을 지었기에, 그 선근으로 인연하여 금세에 석가족의 큰 가문에 태어나 재산이 많고 큰 세도가 있으며 어떤 것이든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어떤 인연으로 지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모든 성현의 법을 증득하고, 세간이나 출세간의 일을 들으면 절대로 잊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와서 궁금한 것을 물으면 어떤 것이든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까? 그리고 또 세존으로부터 ‘나의 성문 제자
로서 많이 듣고 지혜로워 잘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으로 으뜸인 사람은 곧 이 아난 비구인 줄 알아야 한다’라는 수기를 받게 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지나간 옛 세상에 이 바라나성에 왕이 있어 세상을 다스
렸는데 그의 이름은 범덕(梵德)이라 하였다. 그 범덕왕에게 아들이 둘 있었으니, 첫째 아들은 희근(喜根)이요, 둘째 아들은 파노(婆奴)[수나라 말로는 달(月)이라 함]라 이름하였다.
그 두 아들 중에 큰 아들인 희근 왕자는 본성이 착하고 어질고 온화하였으며 자비로운 마음이 크고 모든 죄를 두려워하며 갈애의 존재[愛有]를 싫어하였다.
그 왕자는 그 성안에서 왕이 다스리는 일이 사람들을 핍박하고 관리들은 괴로움을 당하며 살해당하는 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칼을 쓰고 족쇄를 찼으며 견고한 감옥에 갇히고 나아가 손과 발이 잘리고 귀와 코가 베이며 눈이 도려내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이런 일을 보고 나서 마침내 결심하였다.
‘백 년이 지난 뒤에는 나의 부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을 것인데 내가 어떻게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내 이제 이런 왕위에 있으면 무슨 일을 할 것이며, 나의 목숨도 또한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모든 중생들을 보자니 온갖 괴로움이 그 몸을 핍박하지 않는가. 차라리 나는 지금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부모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아들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항상 마음과 생각에서 너를 잊은 적이 없으며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가 않았다. 설령 우리가 죽더라도 너와 이별할 수 없는데 이런 우리가 어찌 살아 있으면서 너와 헤어질 수 있겠느냐?’
희근 왕자는 이렇게 거듭 청하였다.
‘굽어살피소서. 저는 지금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버리고 출가하고자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제발 저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허락해 주십시오.’
이렇게 거듭거듭 부모에게 간청하자 마침내 부모는 그의 출가를 허락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다.’
그리하여 범덕왕의 아들 희근 왕자는 부모의 허락을 받았으며 며칠이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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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집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차례로 수도하여 연각(緣覺)의 경지를 깨달았다. 그는 자유롭게 신통 변화를 일으켰는데 곧 빛을 내고 물을 내고, 하늘을 돌리고 땅을 움직이며, 구름을 일으켜 비가 오게 하는 등 이런 일에 두루 통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희근 벽지불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무슨 일을 위하여 출가하였는가. 이런 일을 내가 다 이루었으니 내 자신의 이익을 이미 얻었고 해야 할 일은 다하였다. 그러니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와 모든 권속과 그 밖의 중생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그들을 위하여 복전(福田)을 지어야겠다.’
그리하여 희근 벽지불은 차례로 유행하여 바라나성에 이르렀다. 그 나라에 도착한 뒤에는 그 성에 있는 부왕의 암라숲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범덕왕은 희근 동자가 이미 큰 선인이 되어 이곳에 돌아와서 자신의 경계 안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나는 이제 희근에게 가서 그와 만나 안부를 묻고 위로해야겠다.’
그리하여 범덕왕은 큰 세력으로 위풍과 위엄이 넘치는 덕을 크게 떨치면서 네 가지 병사들이 앞뒤에서 호위하는 가운데 성을 나섰다. 이 때 희근 벽지불은 멀리서 부왕이 오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과 범덕왕들은 큰 위력이 있고 매우 교만하다. 만약 내가 편하게 그들 앞에 있으면 범덕왕들은 필시 나를 공경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여러 가지 신통을 나타내었으니 허공에서 앉거나 눕고 거닐었고, 몸의 반쪽에서는 연기를 내고 나머지 반쪽으로는 불을 내며, 몸 위로는 불을 내고 몸 아래로는 물을 내는 등의 이러한 온갖 신통을 나타내어 보였다.
범덕왕과 문무 백관들은 그 벽지불이 허공에 날아올라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아들이 비록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였으나, 이미 큰 선인이 되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신통이 있구나.’
그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벅차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한 채 그들은 희근 벽지불 처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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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점점 앞으로 나오자, 벽지불도 또 허공에서 내려와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았다. 범덕왕은 벽지불 곁에 이르러 그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벽지불은 여러 가지 법을 조금 설하여 좋은 일을 나타내 보여서 왕을 기쁘게 하고 한량없이 뛰놀게 하였다. 그러자 범덕왕은 법을 듣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벽지불에게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대선이여, 이제 나의 청을 받아 항상 나의 집에 머물러 주십시오. 나는 존자를 위하여 가람과 경행(經行)하는 방사(房舍)를 짓고 네 가지를 공양하며,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대어드리겠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을 불쌍하게 여겨서 촌락이나 성읍으로 나아가 걸식을 행하고자 한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는 막지 않겠습니다.’
벽지불은 묵묵히 부왕의 청을 받았다.
범덕왕은 그 희근 벽지불이 묵묵히 청을 받아들인 것을 알고서 곧 온갖 공양거리와 경행할 수 있는 방사와 네 가지를 공양올림은 물론이요, 그밖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공양하였다.
그리하여 희근 벽지불은 모든 중생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까닭에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자 하면 그와 같은 때에는 곧 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었던 월왕자는 매일 희근 벽지불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와서 섬기고 공양을 올렸다. 그는 모든 법 가운데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때때로 그 벽지불에게 물었는데 벽지불은 파노 왕자의 물음에 묵묵히 대답하지 않고, 다만 여러 손가락에서 불빛만을 내었다.
그러자 파노 왕자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벽지불은 커다란 신통은 있지만 말솜씨가 없구나.’
어느 때 희근 벽지불이 파노 왕자에게 말하였다.
‘파노 왕자여, 너는 와서 출가하여라. 네가 지금 출가하지 않는다면 너는 목숨이 다한 뒤에 반드시 악도에 떨어질 것이며, 출가한다면 너는 위대한 선인의 경지를 이룰 것이고 큰 신통을 갖게 될 것이다.’
파노 왕자는 부모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어진 부모님이시여, 희근 선인이 이미 출가하였는데 저도 지금 그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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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고 싶습니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셔서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그 부모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파노 왕자는 그 뒤에도 여전히 희근 벽지불 처소에 자주 나아가 섬기고 공양하였는데 그 때마다 벽지불은 파노 왕자에게 거듭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출가해야 한다.’
그러자 파노 왕자도 형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부모님께서 나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니 어찌해야 합니까?’
이 때 파노 왕자의 얼굴에는 7일 안에 목숨을 마칠 조짐이 나타났다. 희근 벽지불은 그것을 보고 파노 왕자에게 일렀다.
‘파노야, 어서 오너라. 너는 반드시 집을 버리고 출가하야 한다. 왜냐 하면 너의 상을 자세히 보니, 7일 안에 틀림없이 목숨을 마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파노 왕자는 부모에게 가서 아뢰었다.
‘부모님, 제발 저를 놓아주십시오.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이 때 희근 벽지불도 부모에게 가서 말하였다.
‘두 분은 파노를 출가시키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에게서 7일 안에 목숨을 마칠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부모님은 반드시 그와 이별하게 될 것이니, 그를 출가시켜 집안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없이 목숨이 다하기 전에 법 안에 살다가 숨을 거두게 하십시오.’
그 부모들은 대답하였다.
‘파노가 정말 7일 안에 죽어 우리와 이별한다면 우리들은 지금 출가하기를 허락하겠다.’
파노 왕자는 그제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출가하여, 7일 동안 희근 벽지불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섬겼고 벽지불은 위의를 가르쳤다. 6일이 지나고 7일이 되자, 그의 목숨이 다할 것을 알고서 그를 가엾게 여겨서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으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거닐고 앉고 눕기도 하며, 연기도 내고 불도 내며,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등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 보였다.
파노 선인은 희근 벽지불이 허공에서 나타내 보이는 갖가지 신통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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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솟아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합장하고 벽지불에게 절을 하고서 이런 원력을 세웠다.
‘제발 나는 내세에 항상 이런 벽지불이나 혹은 더 나은 분을 만나 그 분이 설하는 법은 모두 다 듣고 통달하기를 원합니다. 또 부디 내 자신이 그 성인의 시자가 되어 그 성인을 공양하기를 원합니다. 또 내세에는 온갖 신통을 얻어 위력이 이러한 분과 같아지기를 원합니다. 만약 누구든 나에게 와서 이치를 물으면 내가 모두 해석해 주어 그를 크게 기쁘게 해주기를 원합니다. 또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너희들은 7일 동안 그 벽지불을 공양하고 벽지불이 가르치는 법을 받은 파노 왕자가 누구였는지 의심하는가?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바로 아난 비구가 그 사람이었다. 그 때 파노 왕자는 기쁜 마음으로 희근 벽지불을 공양한 까닭에 그 업보로써 금생에 석가족에 났으며, 그 때에 ‘제발 저는 세세생생에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원을 세웠던 그 업보로써 태어나는 곳마다 악도에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 윤회하면서 커다란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또 그 때 ‘제발 나는 내세에 이런 스승이나 더 훌륭한 분을 만나 그의 설법을 한 번 들으면 곧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원을 세운 업보로 인하여 지금 나와 같은 스승을 만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모든 성현의 법을 증득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때 ‘제발 나는 내세에 이런 스승을 만나면 시자가 되어 그 성인을 공양하기를 원합니다’라고 서원하였던 그 업보로 인연하여 지금 나의 시자가 되어 나를 공양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 때 ‘나는 내세에 곧 신통을 얻고 큰 위력을 얻기를 원합니다’라고 원을 세웠던 그 업보에 힘입어 지금 이런 큰 성현의 법과 큰 위력을 얻은 것이다. 또한 그 때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의심나는 부분을 물으면 내가 다 분별하고 해설해 주어서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를 원합니다’라고 원을 세웠던 업보의 인연으로 오늘의 아난은 어떤 사람이라도 와서 의심나는 점을 물으면, 모두 다 깨우쳐주고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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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비구들아, 내가 생각하건대 지나간 과거세에 바라나성에 큰 부호인 장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승살타나(僧薩陀那)[수나라 말로는 왕안(王安)이라 함]라 하였다.
그 장자는 매우 부유하고 재물이 넉넉하였으며 커다란 수확을 거두어들여서 비사문천왕과 다름이 없었다. 그의 집안에는 매일 5백 명의 벽지불이 늘 찾아와서 공양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 어떤 벽지불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발우는 그 생김새가 밑이 좁고 뾰족하여 마치 소젖 모양과 같았다. 그래서 그 발우를 풀 위에나 발[簾箔] 위에 올려두면 곧 쓰러져 똑바로 서지 않았다.
그 때 장자 승살타나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매우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여자로서의 특징을 모두 갖추었다. 그 딸은 그 벽지불의 발우가 자꾸 넘어지고 바로 서지 않는 것을 보고, 곧 자기 팔찌를 빼어 그 벽지불에게 올리면서 말하였다.
‘대선이여, 부디 이 팔찌를 발우 밑에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벽지불이 팔찌를 받아서 밑에 놓자 발우는 마침내 쓰러지지 않고 설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바친 팔찌로 인하여 그 발우가 쓰러지지 않게 되자 이 광경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녀는 기쁨이 벅차올라 이기지 못하여 이런 서원을 세웠다.
‘이렇게 선인에게 팔찌를 받쳐서 발우가 기울지 않게 되었듯이 나는 내세에 듣는 것이 이러하여 만약 세간의 일이나 출세간의 일을 모두 다 기억하여 가지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그 때 장자의 딸이 지금 누구인지 의심이 생길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가 바로 아난 비구였다. 그 때에 크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팔찌를 빼어 벽지불에게 받들고 발우를 편히 놓게 하고 ‘이 선인이 발우를 팔찌에 올려놓아서 기울지 않은 것 같이, 저는 내세에 무엇이든 듣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세간의 일이나 출세간의 일이든 모두 다 기억하여 가지며, 길이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한 그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가 듣는 일은 완전하게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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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아난이 어느 날 해가 돋을 무렵,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걸식하러 사파제성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기수 급고독원을 떠나 사파제성에 아직 이르지 않은 도중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나무 이름은 시사파(尸奢波)라 하였다. 마침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바라문들이 쉬고 있다가 멀리서 아난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사문 구담의 제자로서 총명하고 들은 것이 많은 사람으로는 여러 제자 가운데 으뜸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마쳤을 때 아난이 곧 그곳에 당도하자, 그들은 아난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이 시사파 나무를 보시오. 이 나무에는 몇 개의 잎이 달려 있습니까?”
아난은 그 나무를 관찰한 뒤에 대답하였다.
“동쪽 가지는 합하여 몇천 몇백 개의 잎이 있고, 그와 같이 남쪽 가지와 서쪽ㆍ북쪽 가지도 얼마가 있으니 모두 합하면 몇천 몇백 개의 잎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아난은 떠나갔다.
그 바라문들은 아난이 떠나가자 그 나무에서 몇백 장의 잎을 따서 한쪽에 숨겨 두었다. 아난이 돌아오자 바라문들은 다시 물었다.
“아난이여, 그대는 또 오시는군요.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 시사파 나무의 잎은 모두 몇 개나 됩니까?”
그러자 아난은 그 나무를 올려다보고 난 뒤에, 곧 바라문들이 몇백 장의 잎을 따서 숨긴 것을 알고 대답하였다.
“동쪽 가지는 몇천 몇백 몇 잎이고, 이렇게 남쪽 가지, 서쪽 가지, 북쪽 가지는 얼마이니, 모두 합해서 몇천 몇백 몇 잎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그곳을 지나쳐 갔다.
이 때 바라문들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일에 크게 신기해하며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문은 매우 총명하고 큰 지혜가 있구나.”
여러 바라문들은 이 일을 인연하여 마음에 바른 믿음을 얻어 그 뒤에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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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아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이루었다.
그 때 또한 장로 분나파소(分那婆素)[수나라 말로는 정숙(井宿)이라 함]ㆍ장로 궁비라(宮毘羅)[수나라 말로는 교룡(蛟龍)이라 함]ㆍ장로 난제가(難提迦) 등도 있었는데 이 세 사람은 그 출가의 사연은 알 수 있지만, 태어나게 된 인연에 대한 일은 알지 못하며, 또한 그들이 지난 세상에 어떤 업을 지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이들이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마하승기사(摩訶僧祇師)는 대사(大事)라 이름하고, 살바다사(薩婆多師)는 대장엄(大莊嚴)이라 이름하고, 가섭유사(迦葉維師)는 불생인연(佛生因緣)이라 이름하고, 담무덕사(曇無德師)는 석가모니불본행(釋迦牟尼佛本行)이라 이름하고, 니사색사(尼沙塞師)는 비니장근본(毘尼藏根本)이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