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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wowinchon 2019. 6. 21. 14:03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점찰선악업보경 상권

- 육근취경에서 초출한 것임 -
천축삼장 보리등 한역

송성수 번역

 김두재 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일체지
1)이신 바가바2)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서 신통의 힘으로, 넓고 엄숙하며 깨끗한 걸림이 없는 도량을 보이시어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대중들과 함께 계시면서 매우 심오한 근취에 대한 법문을 연설하셨다.
그때 모임 안에 어떤 보살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견정신보살이라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1) 범어 sarvajña. 팔리어로는 Sabbaññū. 3지의 하나. 일체 제법의 총상을 개괄적으로 아는 지혜. 천태에서는 성문ㆍ연각의 지혜라 하고, 구사에서는 부처님의 지혜라고 하였다.
2) 범어 bhagavat. 제불통호의 하나. 박가범이라고도 쓰며, 세존ㆍ중우ㆍ파정지라 번역. 『대지도론』 제3권에는 네 가지 뜻을 들어 설명하였다.

①바가는 덕을 말하고, 바는 유를 말한 것으로 이는 덕이 있다는 뜻.

②바가는 분별, 바는 교라 이름하니, 이는 공교하게 모든 법의 총상과 별상을 잘 분별한다는 뜻.

③바가는 명성, 바는 유를 말한 것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 부처님과 같은 이가 없다는 뜻.

④ 바가는 파, 바는 능이란 말로 능히 음ㆍ노ㆍ치를 없애버렸다는 뜻. 보통 바가범의 6의 라고 하니, 『불지론』 제1권에 있다.

①자재. ②치성. ③단엄. ④명칭. ⑤길상. ⑥존귀.


저는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있으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세존께 간청하려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묻는 것을 따라 곧 해설해 주리라.”
견정신보살이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일 내가 세상을 떠나고 바른 법이 소멸된 뒤에 상법
3)이 다 가고 말법 세상에 들어가게 되면, 이와 같은 때에 사는 중생들은 복은 얇고 대부분 손해되는 일과 괴로움만 많으며, 국토는 자주 혼란하고 재해만 빈번하게 일어나며, 갖가지 재앙과 어려운 일이 닥치고 두려움과 소란이 닥쳐올 것이므로 나의 모든 제자들은 선한 생각을 잃게 되고, 오직 탐내고 성내고 질투하며 아만만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설사 비슷한 선한 법을 실천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다만 세간의 이양과 명예만을 구하여 그것을 주로 삼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생사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법은 닦지 않을 것이다.
그 때의 중생들은 세상의 재앙과 난리를 보고 마음에 항상 겁을 먹고 나약해질 것이며, 자신은 물론 모든 친속까지도 몸과 목숨을 보존할 만한 옷과 밥을 충분하게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의 여러 가지 많은 장애되는 일 때문에 부처님의 법 안에서 노둔한 근기와 적은 믿음으로 도를 얻는 이가 지극히 적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점차로 3승의 안에서 믿는 마음을 성취하는 이도 아주 적을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세간에서는 선정을 닦고 배워서 모든 통달하는 일을 내어 스스로 숙명을 아는 이는 차츰 없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후에 말법 세상에 들어가면, 오래오래 지나야 도를 얻을 것이요, 믿음과 선정과 통달하는 일 등을 획득하는 일은 완전히 없어지고 말 것이다’라고 하셨나이다.
저는 이제 저 미래 악한 세상에 상법
4)이 다 가고 말법5)

3) 3시의 하나. 정법 시대와 비슷한 시기란 뜻. 부처님 멸도한 뒤 500년(혹 1천년)의 정법 시기가 지난 뒤의 1천 년 동안을 말한다.

정법 때에는 교ㆍ행ㆍ증이 갖추어 있지만, 상법 때는 교ㆍ행만 있다고 한다.
4) 3시의 하나. 정법 시대와 비슷한 시기란 뜻.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500년(혹 1천 년)의 정법 시기가 지난 뒤의 1천 년 동안을 말한다.

정법 때에는 교ㆍ행ㆍ증이 갖추어 있지만, 상법 때는 교ㆍ행만 있다고 함.
5) 부처님의 교법이 세상에 전하여 가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데 대하여 부처님께서 예언하신 바가 있다.

처음 5백 년 동안은 정법의 시기가 되어, 교법이 온전히 유포되고 있음은 물론 수행하는 사람도 많고 또한 대개 깨쳐서 성과를 얻게 된다. 그 다음 1천 년 동안은 상법, 즉 정법과 비슷한 시기로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만 깨친 사람은 적고, 그 다음 1만 년 동안은 말법 시기로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이 남아 있어 수행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에 조그마한 착한 근기를 지닌 이를 위하여 여래께 간청하여 질문하옵니다.
어떤 방편을 써서 깨우치고 인도해야 중생들로 하여금 믿는 마음을 내게 할 수 있으며, 손해 보는 일과 괴로워하는 것을 없애 줄 수 있사옵니까?

저 중생들은 악한 시기를 만남으로 인하여 장애가 많기 때문에 선한 마음은 없어지고, 세간과 출세간의 인과법 안에서 자주 의혹을 일으켜서 굳건한 마음으로 오로지 선한 법을 구할 수 없사오니, 이런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어 구제해야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대자이시여, 일체 종지시여, 바라옵건대 방편을 써서 저들을 밝게 깨우쳐 주시어 의심의 그물을 여의게 해 주시고, 모든 장애를 없애 주시면, 믿음이 더욱 자라날 수 있어서 어떤 승을 따르든지 속히 불퇴를 얻게 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견정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참 좋은 말이다.

이 일에 관하여 속 시원하게 물어보니 내 마음이 매우 흡족하구나.

지금 이 대중들 가운데 보살마하살이 있으니, 그 이름은 지장보살이니라.

그대는 지금 이 일을 가지고 그에게 청하여 물어보라.

그는 당장 그대를 위하여 방편을 세워 열어 보이고 연설하여 그대의 소원을 이루게 해 줄 것이니라.”
때에 견정신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세존 께서는 위가 없는 큰 지혜이시거늘 무슨 이유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저 지장보살로 하여금 연설하게 하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견정신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높고 낮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이 선남자는 발심한 이래 한량없고 그지없는 불가사의한 아승기겁을 지나오면서 오랫동안 이미 살바야6)의 바다를 건너서 공덕이 만족해졌느니라.

다만 본원의 자재한 힘을 의지한 까닭에 좋은 방편을 나타내 교화하여 그림자처럼 시방에 호응하느니라.
비록 일체의 국토에 두루 노닐며 항상 공업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5탁의 악한 세상에서 교화하고 이롭게 함이 치우치게 도타운 것은 또한 본원의 힘을 의지하여 훈습하는 바이기 때문이요, 중생들이 교화하는 업을 받도록 해야 하는 원인 때문이니라.
그는 11겁을 지나오는 동안 이 세계를 장엄하였고, 중생들을 성숙시켜 왔다.

그런 까닭에 이 모임 안에서 몸매가 단정하고 엄숙하며, 위덕이 남달리 뛰어나서 오직 여래만을 제외하고는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가 없으며, 또 이 세계에서 교화하였던 일은 보현보살관세음보살, 이 두 큰 보살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미칠 수가 없느니라.

이 보살은 본래의 서원한 힘을 가지고 중생들이 구하는 바 온갖 것들을 빨리 만족시켜 주며, 중생들의 일체 중한 죄를 없애 주고 모든 장애를 없애 주어 현재 세계에서 안온을 얻게 하느니라.
또 이 보살의 이름을 안위하는 말을 잘 하는 이라고 하나니, 이른바 심오한 법을 교묘하게 연설하여 처음 배우는 이가 뜻을 내어 대승을 구하는 사람들을 잘 깨우쳐 인도하여 겁약한 마음을 내지 않게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이 세계 중생들은 간절히 우러러 교화를 받아 구제를 얻을 것이다.

런 까닭에 내가 이제 그에게 해설하도록 하는 것이니라.”
그때 견정신보살이 이미 부처님의 뜻을 이해하고 지장보살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진사]이시여, 좋은 말씀입니다.

큰 지혜이신 보살[개사]7)이시여, 제가 질문한 것처럼 악한 세상은 무슨 방


6) 범어 sarvajña. 줄여서 살운ㆍ살운이라 하며, 일체지라 번역한다. 불과에서 일체 법을 증득하는 지혜. 살바야해라 함은 이 지혜의 넓은 것을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7) 범어 bodhisattva. 보살을 번역한 이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정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사부란 뜻. 또 고승의 칭호로도 쓴다.


편을 써야 그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모든 장애를 여의게 하고 굳건한 믿음을 얻게 하겠습니까?

여래께서 방금 당신에게 이 방편을 말씀하게 하셨으니, 마땅히 그 때가 되었음을 아시어 저들을 가엾이 여겨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 지장보살마하살견정신보살마하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자세히 들으시오.

지금 그대를 위하여 말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악한 세상이 오면,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세간과 출세간의 인과법 중에 아직 결정적인 믿음을 얻지 못하였으면 무상이라는 생각․괴로움이라는 생각․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생각․깨끗함이 없다는 생각을 닦아 배워서 현전에서 성취할 수 없으며, 4성제와 12인연의 법을 부지런히 관할 수도 없고, 진여와 실제, 남이 없고 죽음이 없는 것 등의 법도 부지런히 관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법을 부지런히 관할 수 없기 때문에 필경에는 열 가지 악의 근본 허물을 짓지 않을 수 없으며, 삼보의 공덕이 되는 갖가지 경계에 대해서도 전일하게 믿을 수 없고, 3승의 안에서도 모두가 일정한 방향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만일 가지가지의 장애되는 일이 있으면, 우려가 더욱 늘어나며, 혹은 의심하거나 혹은 후회하여 일체의 이치에 대하여 마음이 분명하고 뚜렷하지 못해서 바라는 것만 많고 괴로움만 많아서 여러 가지 일에 얽매이고 끌려 다니므로 하는 일이 안정되지 못하며, 생각이 흔들리고 혼란하여 수도하는 일을 그만두고 말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을 장애하거나 어렵게 하는 것이 있으면, 마땅히 목륜상의 법을 써서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악의 업과 현재의 고락과 길흉 등의 일을 점을 쳐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조건[연]이 합해지기 때문에 존재하며, 조건이 사라지면 곧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업이 모이면 마음을 따라 서로 나타나 과보가 일어나는데, 잃어버리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서로 호응하여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자세히 알아 선과 악의 업보(업보)를 점쳐서 제 마음을 밝게 깨달아 알고 의심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시원하게 아는 것입니다.
만일 부처님의 제자라면 다만 이와 같은 상법만을 학습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여야 할 것이니, 관찰할 대상의 일은 진실로 모두 알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버리고서 도리어 세간의 점쟁이나 무당을 따르고 좇아서 갖가지 길하고 흉한 따위의 일을 점쳐 보는 일을 탐하여 집착하거나 익히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을 즐겨 익히는 이가 있으면 거룩한 도에 깊은 장애가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목륜상을 배우려고 하는 이는 먼저 새끼손가락만 하게 나무를 깎아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 길이는 한 치가 조금 못되게 할 것이요, 한 가운데는 사방이 네모지고 편편하게 직사면체로 할 것이며, 그 나머지는 양 끝으로 나아갈수록 비스듬히 기울어지게 점점 깎아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

리하여 그것을 손으로 잡아 위로 올렸다가 곁에 던지면 쉽게 구를 수 있게 모서리를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이름을 윤라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 상을 의지하여 중생들의 사뙨 소견과 의심의 그물을 파괴하고 바른 도에 전향하여 안온한 곳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윤이라고 합니다.
그 윤상에는 세 가지의 차별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 차별인가?
첫 번째 윤상은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업과 악업에 대한 갖가지 차별을 보이는 것으로서 그 윤은 열 개가 있습니다.
두 번째 윤상은 지난 세상에 쌓은 업이 오래되었는지 근래에 지은 것인지의 여부와 강한지 약한지 큰지 작은지에 대한 차별을 살펴보는 것으로서 그 윤은 세 개가 있습니다.
세 번째 윤상은 3세에 걸쳐서 받은 과보
8)의 차별을 살펴보는 것으로서 그 윤은 여섯 개가 있습니다.
만일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업과 악업의 차별을 관찰해 보려고 하는 사람
 
8) 3세에 걸쳐 받는 과보인 선과 악의 상은 모두 189종이 된다고 한다.


은 나무를 깎아 열 개의 윤을 만들어 이 열 개의 윤에다가 열 가지 선업의 이름을 씁니다. 한 가지의 선업을 하나의 윤에 주로 존재하도록 하되 한 면에만 기재합니다.

다음에 열 가지 악업도 열 가지 선업에 대가 되도록 서로 마주하게 쓰며, 또한 각 한 면에만 기재합니다.
10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일체의 온갖 선업의 근본이 되는 것이요, 그 밖의 일체의 선한 법을 포섭하고 있는 것이며, 10악이라고 말하는 것도 온갖 악업의 근본이 되는 것이요, 그 밖의 일체의 악한 법을 포섭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윤상으로 점치려고 하는 사람은 우선 지극한 마음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두루 예배하고 곁들여 곧 다음과 같이 서원을 세워야만 합니다.
‘바라옵건대 시방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속히 모두 다 친근히 하고 공양할 수 있게 하시고, 바른 법을 여쭈어 받게 하옵소서.’
그리고 난 다음에 지극한 마음으로 시방의 일체 법의 창고에 공경하여 예배하고 곁들여 곧 다음과 같이 서원을 세워야만 합니다.
‘바라옵건대 시방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속히 모두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게 하며, 법대로 수행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하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시방의 일체 성현을 공경하여 예배하고 곁들여 곧 다음과 같이 서원을 세워야만 합니다.
‘바라옵건대 시방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속히 모두 다 친근히 하고 공양하게 하며, 보리의 마음을 내어 불퇴전에 이르게 하옵소서.’
그러고 난 다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나 지장보살마하살에게 예배하고 곁들여 곧 다음과 같이 서원을 세워야만 합니다.
‘바라옵건대 시방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속히 악업과 중한 죄를 없애게 하며, 모든 장애를 여의게 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기구가 모두 충족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이 예를 올려 마치고는 온갖 향과 꽃 따위를 따라 마땅히 공양을 닦아야 한다.

공양을 닦는 이는 우러러 ‘일체의 불보․법보․승보는 체가 언제나 두루 가득 차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라고 생각하며, ‘이 꽃과 향의 성품으로 하여금 법의 성품이 똑같게 하여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쏘여 불사를 하게 하소서’라고 서원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방의 일체 공양 거리는 어느 때나 없지 않을 것이요, 나는 지금 시방에 있는 갖가지 향․꽃․영락․당기․번기․일산과 온갖 보배로 된 미묘한 꾸미개․여러 가지 음악․등촉․음식․의복․침구․탕약, 나아가 시방에 있는 갖가지 장엄에 필요한 공양 거리로써 멀리서 기억해 생각하여 널리 중생들과 함께 받들어 올리며 공양해야 하겠구나.’
또 당연히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일체 세계 중에 공양을 닦는 이가 있으면 나는 지금 따라 기뻐할 것이며, 만약 아직도 공양을 닦지 않는 이가 있으면 깨우쳐 인도하여 공양을 닦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또 이렇게 소원해야 합니다.
‘저의 몸이 빨리 일체 국토에 두루 이르러서 모든 불․법․승의 처소에서 각각 온갖 종류의 장엄할 공양 거리를 모든 중생들과 함께 똑같이 가지고 가서 받들어 올릴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신․색신․사리․형상․부도․묘탑 등 일체 부처님의 일에 공양할 것이며, 모두 가지고 있는 법의 창고와 설법하는 곳에 공양할 것이며, 일체 선현들을 공양할 수 있게 하옵소서.’
또 이렇게 서원해야 합니다.
‘일체 중생들과 함께 이와 같은 공양을 닦아 행한 다음에는 점차로 6바라밀
9)4무량심10)을 성취할 수 있게 하고, 일체의 법은 

9) 범어 a-pāramitā.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경인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방편. 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법의 6종.

①단나바라밀:자비로 널리 사랑하는 행위. ②시라바라밀:불교 도덕에 계합하는 행위(지계). ③찬제바라밀:여러 가지로 참는 것(인욕). ④비리야바라밀:항상 수양에 힘쓰고 게으르지 않는 것(정진). ⑤선나바라밀:마음을 고요하게 통일하는 것(선정). ⑥반야바라밀:삿된 지혜와 나쁜 소견을 버리고, 참 지혜를 얻는 것(지혜).
10) 범어 catvri-apramṇacittni. 한없는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의 네 가지. ①자무량심:maitrī-apramṇa-citta. 무진을 체로 하고 한량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처음은 자기가 받는 낙을 남도 받게 하기로 뜻을 두고, 먼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널리 일체 중생들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 ②비무량심:karuṇ-a. 무진을 체로 하여, 남의 고통을 벗겨 주려는 마음. 처음은 친한 이의 고통을 벗겨 주기로 하고, 점차로 확대하여 다른 이에게까지 미치는 것. ③희무량심:mudit-a. 희수를 체로 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어 희열케 하려는 마음. 처음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점점 다른 이에게 미치는 것은 위와 같다. ④사무량심:upekṣ-a. 무탐을 체로 하여 중생을 평등하게 보다 원ㆍ친의 구별을 두지 않으려는 마음. 처음은 자기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에 대하여 일으키고, 점차로 친한 이와 미운 이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 무량이란 것은 무량한 중생을 상대로 하며, 또 무량한 복과를 얻으므로 이렇게 이름한다.


본래 고요하여 태어나는 곳도 없고 죽는 것도 없으며, 하나의 맛으로서 평등하여 생각을 떠나서 청정하며, 필경에는 원만한 것임을 깊이 알겠나이다.’
또 당연히 따로 마음을 붙잡아 매어 나 지장보살마하살을 공양해야 할 것이며, 다음에는 마땅히 명호를 부르거나 혹은 묵묵히 송념하면서 일심으로 말하기를, ‘지장보살마하살에게 귀의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명호를 부르면서 천 번을 채우고, 천 번 염하기를 마치고 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지장보살마하살은 대자하시고 대비하십니다. 오직 바라옵건대 저 일체 중생들을 보호하고 염려하시어 속히 모든 장애를 없애 주고 깨끗한 믿음을 자라게 하시며, 저로 하여금 지금 관하는 바가 진실에 꼭 맞고 서로 호응하게 하시옵소서.’
그러고 난 연후에 손으로 목륜을 잡고 깨끗한 물건 위에 옆으로 던집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자 할 때에나, 또는 남을 관찰하고자 할 적에도 똑같이 그렇게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 윤상으로 점을 치는 사람은 나타나는 바의 업을 따라서 모조리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야 하며, 생각하고 증험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혹은 순수하게 10선을 갖추게 되기도 하고, 혹은 순전히 10악만을 갖추게 되기도 하며, 혹은 선과 악이 뒤섞이기도 하고, 혹은 순수한 선이 갖추어지지 않기도 하고, 혹은 순전한 악이 갖추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업의 원인[인]은 그 종류가 같지 않으며, 습기와 과보도 각각 다르니, 부처님 세존께서 다른 곳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응당 나타나는 업의 종류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자세히 관찰해야 할 것이니, 지금 세상에서 과보 때문에 겪는 괴로움과 즐거움, 길한 일과 흉한 일, 그리고 번뇌와 업습이 서로 꼭 맞게 되면 서로 호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서로 꼭 맞지 않으면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으므로 거짓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만일 윤상으로 점을 쳐서 그 선업과 악업이 모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무루 지혜의 마음을 증득하였고, 오로지 생사의 바다에서 벗어나기만을 구하여 다시는 세간에서 과보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모든 유루의 업은 점차 미약해져서 다시는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또 순전한 선도 갖추어지지 않고 순전한 악도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 즉 이 두 종류의 사람에게 지은 선한 업과 악한 업이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모두가 바로 미약하여 아직 과보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장차 오는 세상에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이 이미 선악의 과보를 점쳐 서로 꼭 들어맞는 사람이면, 오욕의 여러 도구에 있어서 뜻에 맞을 때에도 제 마음대로 방일함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곧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과거 세상에 이와 같은 선한 업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과보를 얻게 된 것이니, 이제 나는 마음을 바꾸어서 더욱더 전진해서 수행하기를 그치지 않으리라.’
만일 여러 가지 액난과 갖가지 손해가 되는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불길한 일을 만나 요란하고 두려워서 마음에 꼭 맞지 않을 때라도 응당 그것을 달게 받고, 하여금 의심을 내거나 후회해서 선을 닦던 일에서 물러나는 일이 없게 해야 하고 곧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나는 과거 세상에 이와 같은 악한 업을 지었으므로 그 때문에 지금 이 과보를 받는 것이니, 지금 나는 이 악한 업을 참회하고 오로지 대치
11)를 닦으며, 또 나머지 선을 닦되 게으름을 피우거나 방일

11) 맞닥뜨려 다스리는 법으로서 무루의 지혜로 번뇌를 대치하는 것을 지위의 전후에 의하여 나눈 네 가지. 염환대치ㆍ단대치ㆍ지대치ㆍ원분대치. ①염환대치는 번뇌를 싫어하는 것. ②단대치는 번뇌를 끊는 것. ③지대치는 번뇌를 끊은 대로 지녀 상속하는 것. ④원분대치는 번뇌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


에 머물러 멈추어서 점차 다시 갖가지 고통 덩어리가 더 쌓이지 않게 하리라.’
이것을 첫 번째 윤상으로 점쳐 살피는 법이라고 합니다.
선남자여, 만일 과거 오랜 옛날에 쌓았던 업과 오래 전이나 또는 근래에 지었던 강한 것과 약한 것, 큰 것과 작은 것의 차별을 점쳐 살피고자 하면, 다시 나무를 깎아 세 개의 윤을 만들어 몸[신]과 입[구]과 뜻[의]을 각각 하나의 윤을 주로 하여 거기에 글자를 기재하는 것입니다.
또 윤의 정 중앙 첫 번째 면에 한 획을 긋되 굵고 길게 하여 모서리까지 이르게 하고, 다음 두 번째 면에 한 획을 긋되 가늘고 짧게 하여 모서리까지 이르지 않게 하며, 다음 세 번째 면에는 하나의 방각으로 자획과 같이 만들되 굵고 깊게 하고, 다음 네 번째 면에도 또한 방각으로 만들되 가늘고 얕게 해야 합니다.
선한 업은 장엄하기가 마치 획을 덧칠하여 점점 불어나는 것처럼 하고, 악한 업은 쇠약하고 덜어짐이 마치 깎아내어 줄어드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 자획이 길고 큰 것은 선을 쌓아 온 지가 오래된 것이고, 행한 업이 매우 유익하였던 것이며, 지었던 일이 점점 더 왕성하였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그 자획이 가늘고 짧은 것은 선을 쌓아 온 지가 얼마 안 되었고, 처음으로 익힌 것이기에 기초가 둔하며, 지었던 일이 작고 엷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 방각이 거칠고 깊은 것은 악을 익혀 온 지가 오래되었고, 지었던 일이 더욱더 왕성하며, 남아 있는 재앙도 또한 두터움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그 방각이 가늘고 얕은 것은 선에서 물러나온 지가 얼마 안 되었고, 처음에 익혔던 악한 법과 지었던 업이 아직은 왕성한 데 이르지는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혹은 아무리 중한 악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미 일찍이 고치고 뉘우쳤다면 이것은 작은 악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선남자여, 만일 첫 번째 윤상으로 점치는 것은 다만 지난 과거 세상에서 지었던 업의 선악에 대한 차별만을 아는 것이며, 쌓고 익혀 온 지가 오래되었는지 얼마 안 되었는지, 지었던 업이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와 큰 지 작은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윤상으로 점쳐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또 두 번째 윤상으로 점치는 것은 첫 번째 윤상에 나타났던 업에 의지해야 하는데, 만일 몸에 속한 것이면 몸이라고 쓴 윤상을 던지고, 만일 입에 속한 것이면 입이라고 쓴 윤상을 던지며, 만일 뜻에 속한 것이면 뜻이라고 쓴 윤상만을 던져야만 합니다. 이 세 개의 윤상을 한꺼번에 던져서 전체를 다 점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업을 따라 하나하나의 선과 악을 위주로 생각하면서 소속된 윤을 의지해 구별하여 따로 던져 점치는 것입니다.
또 만일 첫 번째 윤상으로 점쳐서 몸으로 지은 선만을 얻었는데, 이 두 번째 윤상 안에서 몸으로 지은 악을 얻고 나면, 지극한 마음이 없어서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것이니, 거짓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것이란, 말하자면 첫 번째 윤상으로 점친 데에서는 살생하지 않았다는 업을 얻었고, 물건을 훔쳤던 업을 얻었는데, 마음속으로는 먼저 살생하지 않았던 업을 위주로 하여 관찰하였으나 두 번째 윤상에서 몸으로 지은 악을 얻으면, 이것을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만일 태어난 때로부터 현재까지를 관찰하면서 살생의 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살생의 죄를 지은 것도 없었으므로, 다만 마음속으로 살생의 업을 위주로 관찰하였는데, 이 두 번째 윤상에서 몸으로 지은 큰 악을 얻으면, 그것을 서로 호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입과 뜻으로 지은 업에 대하여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는 이치도 당연히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만일 미래 세상의 중생들이 나고․늙고․병들고․죽는 데에서 해탈하기를 구하여 처음 배우면서 발심하고 선정과 형상 없는 지혜를 닦아 익히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먼저 과거 세상에서 지었던 악한 업의 많고 적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관찰해야 할 것이니, 만일 악한 업이 많고 두터운 이면 곧 선정과 지혜를 배울 것이 아니라 먼저 참회의 법을 닦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숙세에 익혔던 악한 마음이 맹렬하여 유리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세상에서 틀림없이 많은 악을 짓고 무거운 계율을 범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만일 참회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서 선정과 지혜를 닦으면, 곧 많은 장애가 생겨서 그것을 얻을 수도 없거니와, 혹은 실심하여 착란하거나 혹은 바깥의 삿된 것에 괴로움을 받을 것이며, 혹은 삿된 법을 받아들여 나쁜 소견만 더욱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참회의
법을 먼저 닦아야만 합니다. 만일 계율의 근본이 청정하고 과거 세상에서 중한 죄를 미약하고 얇게 지었으면, 곧 모든 장애를 여의게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참회의 법을 닦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요한 곳에 머물러 힘의 능력을 따라 방 하나를 장엄하여 꾸미고 그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경전을 놓아두고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걸어 두며, 향과 꽃을 구해 모아서 공양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또 몸을 깨끗하게 씻고 의복을 깨끗이 빨아 입어서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낮에는 이 방 안에 있으면서 하루 세 때에 명호를 부르되 일심으로 과거의 7불12)53불13)을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며, 그 다음엔 시방의 방위를 따라서 낱낱이 모두 귀의하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일체 부처님의 온갖 색신․사리․형상․부도․탑묘와 모든

12) 역사적으로 부처님은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이시지만 소승불교에서는 교리적으로 진리를 깨달은 자, 진리의 발견자는 얼마든지 있었고 앞으로도[성숙겁] 있다는 견해가 일찍부터 존재해 온 바, 지난 세상에 출현한 일곱 부처님 을 가리켜 과거칠불이라는 호칭을 붙인 것이다. 이 과거칠불은 비파시불ㆍ시기불ㆍ비사바불ㆍ구루진불ㆍ구나함모니불ㆍ가섭불ㆍ석가모니불을 말하며 7불 가운데 앞의 3불은 과거의 장엄겁에 나신 부처님이며, 뒤의 4불은 현재의 현겁에 나신 부처님이다.
13)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나온다. 53불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곳마다 시방의 여러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 4중(중)ㆍ5역죄가 없어지고 깨끗이 된다고 한다.


부처님의 일에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또 시방 삼세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시방의 모든 법장에 두루 예배해야 하며, 다음에는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시방의 일체 성현께 두루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뒤에 다시 따로따로 명호를 부르면서 나 지장보살마하살에게 예배할 것이며, 이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서 자신이 지었던 죄를 설명하며 일심으로 우러러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시방의 크게 자비하고 높으신 모든 분이시여, 증명하여 아시어 보호하고 염려해 주옵소서.

저는 지금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나이다.

바라옵건대 저와 일체 중생들은 한량없이 많은 겁 이래로 10악․4중․5역의 뒤바뀜과 삼보를 헐뜯었던 일천제14)의 죄를 속히 없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다시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이와 같은 죄의 성품은 다만 허망하고 뒤바뀐 마음에서 일어났으므로 결정되었거나 진실함을 얻을 수 없고, 그 근본은 공하여 고요할 뿐이다.

저와 일체 중생들은 마음의 근본을 속히 통달하여 영원히 죄의 뿌리를 없애게 하여 주소서.’
그러고 나서 다음에 또 권청하며 다음과 같이 서원해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한 시방의 일체 보살들로 하여금 속히 정각을 이루게 하여 주시고, 만일 이미 정각을 이룬 사람이라면, 세상에 항상 머물러 계시면서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시게 하며, 열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그런 다음에 다시 따라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서원해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나와 일체 중생들은 필경에는 질투하는 마음을 영원히 버리고, 3세 동안 일체 국토에 있는 온갖 배움을 닦은 공덕을 성취한 모든 이를 낱낱이 따라 기뻐할 것이옵니다.’
 
14) 범어 icchantika. 단선근라 번역한다. 사특하고 나쁜 소견을 일으켜 인과의 이치를 믿지 않아서, 후세에 성불할 인연을 갖지 못하는 중생.

 또 다음에는 다음과 같이 회향하는 서원을 해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제가 닦은 일체의 공덕은 모든 중생들을 돕고 이롭게 하며, 다 함께 부처님의 지혜에 나아가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하옵소서.’
이와 같이 회향하는 서원을 세운 뒤에는 다시 다른 고요한 방에 가서 단정히 앉아 일심으로 나의 명호를 부르고 외우거나 묵묵히 생각하며, 마땅히 잠을 줄여 없앨 것이며, 만일 혼침[혼]이나 덮임의 번뇌[개]가 많은 사람이라면, 도량의 방 안을 돌면서 외우거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밤이 되어 만일 등촉을 켜서 밝혀야 할 경우가 되면, 또한 하루 세 때 공경하고 공양하며, 허물을 뉘우치면서 발원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광명을 밝힐 준비가 안 되었으면, 응당 곧바로 다른 고요한 방 안에 있으면서 일심으로 외우거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이와 같이 참회하는 법을 행하되 게으름을 피우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과거 세상에 오랫동안 선한 기반이 있었으면, 잠깐 나쁜 인연을 만나 악한 법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 죄의 장애는 경미할 것이요, 그 마음이 용맹하고 영리하며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7일을 지난 뒤에는 곧 청정함을 얻어 모든 장애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지은 업의 두터움과 엷음이 있고, 모든 근기가 영리하고 둔한 차별이 한량없이 많습니다.

혹은 이칠일(이칠일:14일)이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고, 혹은 삼칠일(삼칠일:21일)이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혹 칠칠일(칠칠일:49일)을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합니다.
만일 과거나 현재에 모두 왕성하게 갖가지 중한 죄를 불려 나간 사람이라면, 혹은 백 일을 지나서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고, 혹은 2백 일, 심지어는 혹 천 일을 지나고서야 청정함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 근기가 지극히 둔하고 죄의 장애가 매우 무거운 사람이라면, 다만 마땅히 용맹스러운 마음을 내어 몸과 목숨을 돌보거나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부지런히 부르고 염하면서 밤낮으로 돌며, 수면을 줄이고 예배하며 참회하고 발원할 것이요, 공양을 즐겨 닦되 게을리 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잃을지언정 반드시 중단하거나 물러나지 않아야 하리니, 이와 같이 정진하면 천 일 안에 틀림없이 청정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만일 청정해진 모양을 알고자 하면, 수행하기 시작한 날로부터 7일을 지난 뒤에 마땅히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째 윤상을 손 안에 한꺼번에 쥐고 연달아 세 번 던져야 할 것입니다. 만일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이 모두 순수한 선이면 청정함을 얻은 것이라 말하리니, 이와 같이 미래 세상의 중생들이 참회를 수행하는 이는 아득하게 먼 오랜 과거로부터 부처님의 법 안에서 저마다 일찍이 선을 익혔었고, 그 어떠한 공덕이든 닦은 대로 따라서 두텁거나 엷은 업의 갖가지 차별이 있을 것이니, 그런 까닭에 그들이 청정하게 될 때의 모양도 같지 않을 것입니다.
혹 어떤 중생은 세 가지 업의 순수하게 선한 모습을 얻었을 때에도 또 다른 온갖 좋은 형상은 얻지 못하기도 하고, 혹 어떤 중생은 세 가지 업이 순수하게 선한 모습을 얻었을 때에는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다시 광명이 그 방 안에 가득 차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특수하고 별다른 좋은 향기를 맡아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기도 하며, 혹은 좋은 꿈을 꾸기도 하고, 꿈속에서 부처님의 색신이 오셔서 그를 위해 증명해 주시는 것을 보기도 하며, 손으로 직 접 그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구나. 너는 이제야 청정하여졌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와서 너를 증명하는 것이니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혹은 꿈에 보살이 직접 와서 그를 위해 증명해 주기도 하고, 혹은 꿈에 부처님의 형상에서 광명을 놓으면서 그를 위해 증명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 가지 업의 선한 상을 여태 얻지 못하였으면서 다만 이와 같은 모든 일만을 보고 듣고 하는 사람이라면, 곧 허망하게 속여서 홀리는 것이요 거짓된 것이며, 선한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찍이 세상에 나와서 선한 바탕이 있고, 마음을 잘 거두어 용맹하고 영리한 사람이라면, 나는 그때에 꼭 제도해야 할 대상을 따라 그를 위하여 몸을 나타내어 크게 자비한 광명을 놓아 그로 하여금 안온케 하고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여의게 하며, 혹은 신통과 갖가지 변화를 보이시기도 하며, 혹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겪었던 일과 지었던 선과 악을 기억하게 하기도 하며, 혹은 또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따라서 그를 위하여 갖가지 심오하고 긴요한 법을 말해 주어서 그 사람들이 곧 향하는 바의 승에 대하여 결정적인 믿음을 얻게 하기도 하며, 혹은 점차 사문 도의 결과를 증득하여 얻게 하기도 합니다.
또 저 중생들이 만일 비록 아직 나의 변화된 몸으로 설법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다만 지극한 마음으로 몸과 입과 뜻으로 하여금 청정한 모습을 얻게 한 다음에는 그 중생들로 하여금 속히 여러 가지 장애가 소멸되게 하므로 하늘의 악마 파순15)도 와서 파괴하지 못할 것이며, 내지는 95종 외도의 삿된 스승과 일체의 귀신들도 또한 와서 어지럽히지 못할 것이며, 지니고 있는 바 5개16)는 차차로 경미해질 것이요, 모든 선정의 지혜를 닦아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일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비록 선정의 지혜와 생사에서 벗어나는 도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만 가지가지의 온갖 재앙․빈궁․고난․근심의 핍박을 받는 사람이면, 또한 공경하듯 예배하고 공양하여 지었던 악을 뉘우치고 항상 발원하여 언제 어디서나 부지런한 마음으로 나의 명호를 부르고 외울 것이며, 그 지극한 정성은 또한 갖가지 손해를 보는 일과 괴로움에서 속히 벗어나서 이 생명을 버리고 나서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또 미래 세상에서 속가에 있거나 출가하였거나 모든 중생들이 청정하고 미묘한 계율을 받으려고 할 적에 과거에 이미 중한 죄를 지어 왕성하게 하였

15) 범어 Pāpiyas, Pāpiman. 팔리어로는 Pāpimant. 파비야ㆍ파비연ㆍ파비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살자ㆍ악자. 욕계 제6천의 임금인 마왕의 이름. 항상 악한 뜻을 품고, 나쁜 법을 만들어 수도하는 사람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의 혜명을 끊는다고 함. 혜림은 순은 현의 잘못이라고 하였다.
16) 범어 pañca āvaraāni. 5장이라고도 한다. 개는 개부한다는 뜻. 5법이 있어 능히 심성을 가려 선법을 낼 수 없게 한다. ①탐욕개:5욕에 집착함으로 심성을 가리움. ①진에개:성내는 것으로써 심성을 가리움. ②수면개:마음이 흐리고 몸이 무거워짐으로 심성을 가리움. ③도회개:마음이 흔들리고 근심함으로 심성을 가리움. ④의법:법에 대하여 결단이 없이 미룸으로써 심성을 가리움.


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 이는 또한 위에서와 같은 참회의 법을 닦아 그 지극한 마음으로 하여금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선한 모습을 얻게 하여야 곧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저 중생들이 마하연17)의 도를 익히려고 하여 보살의 근본이 되는 중한 계율 받기를 구하거나, 또는 속가에 있는 사람이거나 출가한 사람이거나 간에 그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계율인, 이른바 섭율의계18)․섭선법계19)․섭화중생계20)를 통틀어 받기를 원하지만, 선하고 훌륭한 계사로서 보살의 법장을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먼저 수행한 이를 얻을 수 없으면, 응당 지극한 마음으로 도량 안에서 공경하고 공양하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게 우러러 아뢰어 간청하여 증명법사[증사]를 삼아, 한 마음으로 원을 세워 계상을 칭송하여 말하되 먼저 열 가지 근본이 되는 중한 계율을 말하고, 그 다음에는 3취정계를 통틀어 거론해서 스스로 맹서하고 받으면 그것 또한 계율을 얻은 것입니다.
또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출가하기를 희망하거나, 이미 출가는 하였지만 만일 선하고 훌륭한 계사와 청정한 스님들을 만날 수 없어서 그 마음에 의혹이 생겨 법다운 계율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면, 다만 위없는 도를 내는 마음만을 배워 또한 몸과 입과 뜻으로 하여금 청정함을 얻게 한 뒤에 아직 출가하지 않은 이는 응당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서 위와 같이 원을 세우며, 스스로 맹세하고 보살의 계율인 3취정계를 받을 것이니, 곧 바라제목차21)인 출가한 사람이 지켜야 할 계율을 갖추어 얻은 것이


17) 마하연나의 준말. 대승이라 번역. 성문ㆍ연각의 2승 교법을 소승이라 함에 대해서 보살의 교법을 대승이라 한다.
18) 범어 sambhara-śila. 3취정계의 하나. 대승 보살이 행위ㆍ언어ㆍ의념에 걸쳐 악을 없애고, 온갖 선계를 보존하는 계율이다.
19) 범어 Kuśalasagrahaśīla. 3취정계의 하나. 대승 보살이 온갖 선을 닦는 것.
20) 범어 Sattvārthakriyāśīla. 3취정계의 하나. 또 요익유정계라고도 한다. 대승 보살이 대자비심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
21) 범어 prātimokṣa. 팔리어로는 pātimokkha. 바라제목차ㆍ바라제비목차ㆍ발랄저목차라고도 쓰며, 별해탈이라고 번역한다. 또 처처해탈ㆍ별처처해탈ㆍ정순해탈ㆍ해탈생사ㆍ보득해탈 등이라 의역한다. 요컨대 해탈한다는 뜻으로서의 계율을 말한다. 이것은 몸과 입으로 범한 허물을 따로따로 해탈하는 것이므로 별해탈이라고도 한다.


라 하며, 그들의 이름을 비구․비구니라 할 것이다.
이는 곧 성문의 율장과 보살이 익혀야 할 마덕륵가장22)을 추구하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자세히 살펴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비록 출가했다 하더라도 그 나이가 20살 미만인 사람은 응당 먼저 서원하여 열 가지 근본 계율을 받고, 사미와 사미니가 지켜야 하는 별계를 받아야 하며, 이미 계율을 받은 사람이라면, 또한 사미와 사미니라고 부를 것이니, 곧 자기보다 먼저 출가하여 오래되었고, 대승의 마음을 배워 구족계를 받은 이를 당연히 친근히 하고 공양해야 하며, 의지사23)가 되어 주기를 구하여 교계를 청하여 묻고 위의를 수행하되 사미와 사미니의 법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면, 오직 보살이 닦는 마덕륵가장을 친근히 하여 읽고 외우며 생각하고 관찰하여 수행할 것이요, 은근히 불․법․승 삼보를 공양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사미니의 나이 이미 18살이면 또한 마땅히 스스로 맹세하여 비니장 중 식차마나24)의 여섯 가지 계법을 받아야 하며, 비구니의 일체 계취를 두루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 나이가 만일 20살이 찰 때에는 위와 같은 보살의 3취정계를 모두 받아야 할 것이니, 그런 연후에야 비구니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중생이 비록 참회를 배운다 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이 아니어서 선
 
22) 범어 mātṛkā. 마달리가ㆍ마다라가라고도 하며, 번역하여 본모ㆍ행모라 한다. 논장의 딴 이름. 논장은 모든 도리를 낳는 모체이므로 본모라 하고, 행법을 낳는 모체이므로 행모라 한다.
23) 그 문하에 있으면서 학업을 받거나, 선리를 탐구하며 따라 모시던 스승.
24) 범어 śikṣamāṇā. 또는 식차마나니라고도 한다. 니승으로 구족계를 받으려는 이. 학법녀ㆍ정학녀ㆍ학계녀라 번역한다. 사미니로서 비구니에 이르는 2년 동안에 4근본ㆍ6법등의 행법을 수련시켜, 구족계를 받을 만한가를 시험하며, 또 아기를 뱄는지 여부를 시험한다.


한 상(상:윤상)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면, 설사 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계율을 얻었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때 견정신보살마하살지장보살마하살에게 물었다.
“말씀한 바 지극한 마음이란 몇 가지의 차별이 있으며, 어떠한 지극한 마음이기에 선한 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지장보살마하살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내가 말하는 지극한 마음이란, 간략하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는 처음 배워 익힐 적에 구하고 원하는 지극한 마음이요, 둘째는 뜻을 잘 거두어서 전일하게 정진하며, 용맹스러움을 성취하여 서로 호응하는 지극한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 지극한 마음을 얻는 이라야 선한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지극한 마음에 다시 하․중․상의 세 가지 구별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한 마음[일심]이니, 이른바 생각을 잡아매어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마음이 분명하고 또렷한 데에 머무는 것이요,

둘째는 용맹스러운 마음[용맹심]이니, 이른바 전일하게 구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깊은 마음[심심]이니, 이른바 법과 더불어 서로 호응하여 끝내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참회의 법을 닦아 익히되, 나아가서는 아래의 지극한 마음도 얻지 못하면, 마침내 청정하고 선한 상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윤상으로 점치는 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만일 3세 동안에 받은 과보의 차별을 점쳐 살펴보려고 하면, 또 나무를 깎아 여섯 개의 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여섯 개의 윤에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등의 숫자를 기재해야 합니다.
한 개의 숫자는 한 면을 위주로 해야 하는데, 각각 세 면에 기재하되 숫자의 차례가 뒤섞이거나 혼란을 일으키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수는 모두 1이라는 숫자로부터 일어나서 1로 근본을 삼는 것인 줄 꼭 알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수의 상이란 모든 중생들의 6근의 무더기는 모두 여래장의 자성이 청정한 마음과 하나의 진실한 경계[일실경계]로부터 일어나서 하나의 진실한 경계에 의지하여 그것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른바 하나의 진실한 경계에 의지하였기 때문에 저 무명이 생겨나 하나의 법계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헤아려 허망한 경계를 나타냅니다.
분별하고 취하고 집착하여 모인 업의 인연으로 눈․귀․코․혀․몸․뜻의 6근이 생기고, 안의 6근을 의지하기 때문에 밖의 대상 경계인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 등의 6(진)을 마주하는 것이며, 눈․귀․코․혀․몸․뜻 등 6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6식에 의지하기 때문에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 안에서 뜻대로 안 된다는 생각[위상]․뜻대로 잘 된다는 생각[순상]․뜻대로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비위상]․뜻대로 잘 되는 것도 아니라
는 생각[비순상]을 일으켜 열여덟 가지의 느낌을 내는 것입니다.
만일 미래 세상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3세 안에서 받는 과보에 대해서 의심되는 뜻을 결단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이 세 번째 윤상을 세 번 던져서 그 수를 합계하고, 그 수에 의지하여 점쳐 살펴서 그것으로써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는 바의 3세의 과보인 선과 악의 상에는 189종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189종인가?
1은 상승을 구하여 물러나지 않는 경지[불퇴]를 얻는 것이며, 2는 구하는 과를 현재 당장 증득하는 것입니다.

3은 중승을 구하여 물러나지 않는 경지를 얻는 것이요, 4는 하승을 구하여 물러나지 않는 경지를 얻는 것입니다.

5는 신통을 구하여 성취하는 것이요, 6은 4범(범)25)을 닦아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7은 세선26)을 닦아서 성취

25) 범어 catvri-apramṇacittni. 4무량심을 말한다. 즉 한없는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의 네 가지이다.
26) 또는 유루선ㆍ유루정ㆍ유루관ㆍ세간선. 범부가 6행관으로 닦는 선정의 이름. 곧 색계의 4선과 무색계의 4정과 4무량심정을 말한다.


하는 것이며, 8은 받고 싶어하는 미묘한 계율을 얻는 것입니다. 9는 일찍이 받았던 계율을 갖추는 것이며, 10은 상승을 구하지만 아직 믿음에 머무르지 못한 것입니다.
11은 중승을 구하지만 아직 믿음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며, 12는 하승을 구하지만 아직 믿음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13은 관찰하는 대상 사람은 친한 벗이 되는 것이며, 14는 들은 바를 따르면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15는 관찰하는 대상 사람은 나쁜 벗이 되는 것이요, 16은 들은 바를 따르면 바른 가르침이 아닌 것입니다.

17은 관찰하는 대상 사람이 진실한 덕망이 없는 것이요, 18은 관찰하는 대상 사람은 진실한 덕이 없는 것입니다.

19는 관찰하는 바의 이치가 그릇되지 않은 것이요, 20은 관찰하는 바의 이치가 바로 틀려서 잘못된 것입니다.
21은 외우는 것이 틀렸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며, 22는 외우는 것이 바로 틀려서 잘못된 것입니다.

23은 수행하는 바가 틀렸거나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요, 24는 보고 듣는 바가 선한 상인 것입니다.

25는 증득한 것이 바르고 진실한 것이요, 26은 배우는 바가 바로 틀려서 잘못된 것입니다.

27은 보고 듣는 것이 선한 상이 아닌 것이며, 28은 증득한 바가 바른 법이 아닌 것입니다.

29는 얻는 바가 삿된 귀신에 잡힌 것이며, 30은 말하는 것이 삿된 지혜의 변설인 것입니다.
31은 현지27)는 비인28)의 힘인 것이며, 32는 마땅히 먼저 지혜를 볼 수 있는 도를 익히는 것입니다. 33은 마땅히 먼저 선정의 도를 익히는 것이며, 34는 배우는 바를 관하여 장애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35는 배우는 바를 관하면 그것이 바로 마땅한 것이요, 36은 배우는 바를 관하여도 마땅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37은 배우는 바를 관하면 그것이 바로 과거 세상에 익혔던 것이며, 38은 배우는 바를 관하지만 과거 세상에 익혔던 것이 아닌 것입니다. 39는 배우는 바를 관하면 선이 자꾸만 불어나는 것
 
27) 요귀의 신통력.
28) 요망한 귀신.


이며, 40은 배우는 바를 관하여도 방편이 적은 것입니다.
41은 배우는 바를 관하여도 진취가 없는 것이며, 42는 구하는 바의 과를 현재에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43은 출가하기를 구하여 떠날 수 있는 것이며, 44는 법문 듣기를 구하여 가르쳐 보임을 얻는 것입니다. 45는 경전을 구하여 읽고 외우는 것이요, 46은 하는 일을 관하여 보면 바로 악마의 일인 것입니다. 47은 하는 일을 관하여 일이 성취되는 것이며, 48은 하는 일을 관하여도 일이 성취되지 않는 것입니다. 49는 크게 부유 해지기를 바라면 재산이 가득 차는 것이며, 50은 벼슬자리를 구하면 반드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51은 수명을 구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것이며, 52는 세선을 구하면 반드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53은 학문을 관하면 통달하는 것이 많은 것이요, 54는 학문을 관하여도 통달하는 것이 적은 것입니다. 55는 스승과 벗을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이요, 56은 제자를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57은 부모를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이며, 58은 아들과 딸을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이요, 59는 처첩을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이며, 60은 동반할 이를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61은 염려하는 일을 관하면 화합할 수 있는 것이며, 62는 관하는 대상 사람이 마음에 성내는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63은 원한이 없기를 구하여 큰 기쁨을 얻는 것이요, 64는 화합을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65는 관하는 대상 사람이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요, 66은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67은 생각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이요, 68은 청하여 부르면 부른 사람이 와서 모이는 것입니다. 69는 미워하는 대상을 여의게 되는 것이며, 70은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71은 모으려고 관하면 모이게 되는 것이며, 72는 모으려고 관하여도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 73은 청하여 부르는 대상이 오지 않는 것이며, 74는 기약한 사람이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75는 기약한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이요, 76은 관하는 대상의 사람이 편안하고 길하게 되는 것입니다. 77은 관하는 대상의 사람이 편안하고 길하지 않은 것이며, 78은 관하는 대상 사람의 몸은 이미 없는 것입니다. 79는 보기를 희망하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되는 것이며, 80은 찾아 구하는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81은 듣고 싶은 말을 구하면 좋은 말을 얻는 것이며, 82는 보고 싶은 것을 구해도 뜻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83은 의심하는 것을 관하면 곧 그것이 진실한 것이요, 84는 의심하는 바를 관하여도 그것은 진실치 않은 것이 됩니다. 85는 관하는 대상의 사람들이 화합하지 않는 것이요, 86은 부처님의 일을 구하면 틀림없이 얻게 되는 것입니다. 87은 공양거리를 구하면 틀림없이 얻게 되는 것이요, 88은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면 뜻대로 다 이루는 것이요, 88은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면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89는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면 조금 얻는 것이며, 90은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다 얻게 되는 것입니다.
91은 구하는 것이 있지만 모두 얻지 못하는 것이며, 92는 구하는 것이 있으면 조금 얻는 것입니다. 93은 구하는 것이 있으면 뜻대로 되는 것이요, 94는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당장에 속히 얻는 것입니다. 95는 구하는 것이 있으면 오래되어야 얻게 되는 것이요, 96은 구하는 것이 있어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97은 구하는 것이 있으면 좋은 이익을 얻는 것이며, 98은 구하는 것이 있으나 괴로움만 받는 것입니다. 99는 잃어버린 물건을 관하면 곧 찾게 되는 것이며, 100은 잃어버린 물건을 관해도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101은 현재 잃어버린 것을 관하면 저절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며, 102는 재난과 액운이 떠나기를 구하면 재난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03은 병이 낫기를 구하면 병이 낫는 것이며, 104는 가려고 하는 곳을 관하면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105는 가려고 하는 곳을 관해도 장애가 있는 것이요, 106은 머무는 곳을 관하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것입니다. 107은 머무는 곳을 관해도 편안하지 못한 것이요, 108은 향하여 가는 곳마다 다 편안한 것입니다. 109는 향하여 가는 곳마다 재앙이 있는 것이며, 110은 향하여 가는 곳에 악마의 그물이 있는 것입니다.
111은 향하여 가는 곳은 깨우쳐 교화하기 어려운 곳이며, 112는 향하여 가는 곳은 깨우쳐 교화할 수 있는 곳입니다. 113은 향하여 가는 곳에서 스스로 이익을 얻는 것이요, 114는 유람하는 길에 고뇌와 해로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115는 유람하는 길에 고뇌와 해로운 것이 있는 것이요, 116은 군주와 인민들이 악하여 굶주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17은 군주와 인민들이 악하여 질병이 많은 것이며, 118은 군주와 인민이 착하여 나라가 풍요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119는 군주가 무도하여 나라에 재앙과 난리가 일어나는 것이며, 120은 군주가 덕을 닦아 재앙과 난리가 사라지는 것입 니다.
121은 군주가 악을 행하여 나라가 장차 망하는 것이며, 122는 군주가 선을 닦아서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123은 피할 곳을 관찰하여 재난을 면할 수 있는 것이요, 124는 피할 곳을 관하여도 재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125는 머무르는 처소의 중생들이 안온한 것이요, 126은 머무르는 처소에 장애와 재난이 있는 것입니다. 127은 의지하는 마을의 대중들이 편안하지 않은 것이며, 128은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온갖 재난이 없는 것입니다. 129는 괴이한 것을 관하면 손해가 없는 것이요, 130은 괴이한 것을 관해도 손해가 있는 것입니다.
131은 괴이한 것을 관하여 편안하게 정진할 수 있는 것이요, 132는 꿈을 꾸었던 바를 관하면 손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133은 꿈을 꾸었던 것을 관하여도 손해가 생기는 것이요, 134는 꿈을 꾸었던 것을 관하여 편안하게 정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5는 꿈을 꾸었던 것을 관하여 길하고 이로워지는 것이요, 136은 장애와 혼란스러운 일을 관하여 속히 여읠 수 있는 것입니다. 137은 장애와 혼란스러운 일을 관하여 점차로 여읠 수 있는 것이며, 138은 장애와 혼란스러운 일을 관하여도 여의지 못하는 것입니다. 139는 장애와 혼란스러운 일을 관하여 일심으로 없애는 것이요, 140은 어려운 일을 관하여 속히 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141은 어려운 일을 관해도 오래되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며, 142는 어려운 일을 관하여도 슬픔과 고뇌를 받는 것입니다. 143은 어려운 일을 관하고 정진하여 해탈하는 것이요, 144는 어려운 일을 관하여도 목숨이 장차 다하는 것입니다. 145는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도 크게 조화되지 않는 것이요, 146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도 사람 아닌 것들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147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 사람 아닌 것과 화합하는 것이요, 148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149는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도 치료하기 어려운 것이요, 150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고 정진하여 낫게 하는 것입니다.
151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도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것이며, 152는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 스스로 장차 낫게 하는 것입니다. 153은 향하여 가는 곳이면 의원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것이요, 154는 치료할 곳을 관하여 바로 대치법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155는 먹은 약에서 효력을 얻는 것이요, 156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 다 제거하여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157은 향하여 가는 곳이라도 의원이 고치지 못하는 것이며, 158은 치료해야 할 곳을 관하여도 대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59는 먹은 약에서 효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며, 160은 근심되는 일을 관하여도 목숨이 장차 다하는 것입니다.
161은 지옥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162는 축생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163은 아귀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164는 아수라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165는 인간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요, 166은 하늘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167은 속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168은 출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169는 일찍이 부처님을 만나 공양하며 지내오는 것이며, 170은 일찍이 몸소 현성(현성)에게 공양하며 지내오는 것입니다.
171은 일찍이 심오한 법을 얻어 듣고 지내오는 것이요, 172는 몸을 버리고 나면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73은 몸을 버리고 나면 축생(축생)이 되는 것이며, 174는 몸을 버리고 나면 아귀가 되는 것입니다. 175는 몸을 버리고 나면 아수라가 되는 것이요, 176은 몸을 버리고 나면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177은 몸을 버리고 나면 인간의 왕이 되는 것이며, 178은 몸을 버리고 나면 천상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179는 몸을 버리고 나면 천상의 왕이 되는 것이며, 180은 몸을 버리고 나면 심오한 법을 듣는 것입니다.
181은 몸을 버리고 나면 출가할 수 있는 것이며, 182는 몸을 버리고 나면 거룩한 스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183은 몸을 버리고 나면 도솔천에 태어나는 것이요, 184는 몸을 버리고 나면 깨끗한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185는 몸을 버리고 나면 부처님을 찾아뵙는 것이요, 186은 몸을 버리고 나면 하승에 머무는 것입니다. 187은 몸을 버리고 나면 중승에 머무는 것이며, 188은 몸을 버리고 나면 과증을 얻는 것입니다. 189는 몸을 버리고 나면 상승에 머무르는 것이니,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189종의 선한 과보와 악한 과보의 차별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점치는 법은 마음에서 관하는 바의 주된 생각의 일을 따르는 것이나, 만일 숫자의 합계와 마음의 생각이 맞으면 어긋나거나 잘못됨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윤상을 던져서 합계한 수와 관하는 바 주된 생각의 일이 서로 맞지 않으면, 그것은 지극한 마음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요 허망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윤상을 세 번을 던져도 도무지 나타나는 것이 없으면, 이 사람은 곧 이미 무소득을 얻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선남자여, 만일 자신이 뜻을 세워 다른 사람이 받는 과보를 관하는 것도 그 하는 일은 또한 같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스스로 점을 칠 수 없기 때문에 와서 점쳐 주기를 청하면, 응당 자기 마음을 헤아리고 관찰하여 세간을 탐하지 않고 뜻이 청정한 뒤에라야 곧 위와 같이 귀의하고 공경하여 수행하고 공양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세워 그를 위하여 점쳐 살펴야 할 것이요, 마땅히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탐하고 구하여 스승의 도를 행하는 것처럼 하여 스스로 방해하고 어지럽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만일 속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설령 점을 쳐서 살핀다 하더라도 잘 맞지 않으며, 다만 거짓되고 잘못될 뿐입니다.
또 만일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점을 치는 온갖 일이 길하거나 선함을 얻지 못하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여 여러 가지 우려되는 일과 고통으로 두려워할 때에는 응당 밤낮으로 항상 부지런히 나의 명호를 외우거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점치는 일이 곧 길할 것이며, 구하는 것도 모두 다 얻게 되어 실제로 손해되는 일이나 괴로운 일을 다 여의게 될 것입니다.”


점찰선악업보경 하권

축삼장 보리등 한역

송성수 번역

 김두재 개역

 그때에 견정신보살마하살지장보살마하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대승을 구하는 이에게 나아가는 방편을 열어 보이겠습니까?”
지장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중생이 대승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응당 먼저 맨 처음에 실천해야 할 근본이 되는 업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맨 처음에 실천해야 할 근본이 되는 업이란, 이른바 하나의 진실한 경계[일실경계]에 의지하여 신해를 닦는 것입니다. 신해의 힘이 늘어나고 자람으로 말미암아 신속하게 보살의 종자 성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진실한 경계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중생들 마음의 본바탕은 본래부터 여태까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이어서 그 스스로의 성품은 청정한 것이며 장애가 없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분별을 여의었기 때문에 평등하고 두루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시방에 원만하여 구경에는 하나의 형상으로서 둘이 없고 다름이 없으며, 변하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어서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는 경우와 같습니다.

일체 중생들의 마음은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과 일체 보살의 마음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다 똑 같아서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더러워짐이 없는 적정한 진여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마음에 분별이 일어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환이 변화하는 것과 같아서 결정된 진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식․수․상․행이거나, 기억하여 생각하고 반연하여 생각한 것이거나, 깨달아 아는 것 등 가지가지의 심수
1)는 푸른 것도 아니고 누런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며, 뒤섞인 빛깔도 아닙니다.

길고․짧고․모나고․둥글고․크거나 작은 것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시방의 허공이나 일체의 세계를 다하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형상을 구한다 할지라도 어느 것 하나 구분하여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들이 밝은 지혜가 없고 어리석고 깜깜한 것만 훈습한 인연 때문에 허망한 경계를 나타내어 중생들로 하여금 기억하거나 집착을 내는 것뿐입니다.
이른바 이 마음을 스스로 알 수 없으면서 망령되게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깨달아 안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나와 내 것이라고 헤아리지만, 실은 깨달아 아는 생각이랄 것조차도 없나니, 이 허망한 마음 때문에 필경에 본체가 없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깨달아 알거나 분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알면 곧 시방 3세의 일체 경계는 차별할 모습이 없을 것이요, 일체의 법이 모두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만 허망한 마음에 의지하여 분별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니, 이른바 일체의 경계는 제각기 같지 않거늘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억측하여 이것은 나요, 저것은 남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법은 저절로 존재하는 것도 없거니와 곧 차별도 없는 것인데, 오직 허망한 마음을 의지하여 안에 스스로 없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에 앞에 보이는 바깥 경계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1) 심소의 다른 이름이며, 심소유법의 준말. 의식 작용의 본체를 심왕이라 하고 객관 대상을 인식할 때에, 그 일반상(일반상:총상)을 인식하는 심왕의 종속으로 일어나는 정신 작용. 구사종에서는 46법, 유식종에서는 51법을 세운다.

 고 생각하며, 허망하게 갖가지 법에 대한 생각을 내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저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르다고 말하기도 하며, 곱다고 말하기도 하고 밉다고 말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는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법에 대하여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만 합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다 허망한 생각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허망한 마음에 의지하여 근본을 삼으나, 그러나 이 허망한 마음에는 스스로의 형상이 없기 때문에 또한 경계에 의지하여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이른바 앞의 경계를 반연하여 생각하고 깨달아 알기 때문에 마음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또 이 허망한 마음과 앞에 나타난 경계가 비록 함께 서로 의지하였다 하더라도 일어남에 있어서는 먼저와 나중이 없습니다.

이 허망한 마음은 일체 경계의 근원이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허망한 마음에 의지하여 법계가 모두 하나의 형상이라는 이치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 무명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명의 힘의 원인을 의지하기 때문에 허망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는 것이고, 또한 무명이 없어짐을 의지하여 일체의 경계도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체의 경계를 의지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경계에 무명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며, 경계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무명을 내시지 않기 때문에, 또 경계가 없어지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무명의 마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체의 경계는 본래부터 여태까지 그 체성이 저절로 적멸하여 일찍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인하여 다만 모든 법은 마음을 의지하여 근본을 삼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법은 다 마음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치와 본체가 다르지 않고, 마음에 거두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법은 마음을 좇아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마음과 더불어 형상을 지으며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없어지되 한가지로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 일체의 경계는 다만 마음이 반연하는 바를 따라서 생각생각에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잠깐 동안 머무르는 것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한 마음의 이치에는 두 가지 형상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 형상인가?
첫째는 마음 안의 형상[내상]이요,

둘째는 마음 바깥의 형상[외상]입니다.

마음 안의 형상에 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는 진실[진]이요,

둘째는 허망[망]입니다.

진실이라 함은 이른바 마음 바탕의 본래 형상은 여여하여 다르지 않고, 청정하고 원만하여 장애가 없으며, 미묘하고 은밀하여 보기 어렵습니다.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여 항상 무너지지 않고, 일체의 법을 건립하고 나서 자라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허망이라 함은 생각을 일으켜 분별하고 깨달아 알아 반연하여 헤아리고 기억하는 등의 일이니, 비록 또 계속 이어져서 일체 가지가지 경계를 생기게 하는 것이나, 안은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어서 진실함이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바깥 형상이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의 갖가지 경계 등이니, 생각하는 바를 따라 경계가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안의 마음과 바깥의 마음이 차별이 있는 걸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안의 허망한 생각은 인이 되고 체가 되며, 밖의 허망한 생각은 과가 되고 용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이치를 의지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모든 법은 다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꼭 알아야만 합니다.

마음의 바깥 형상은 꿈에 보았던 여러 가지 경계가 오직 마음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니 진실로 바깥의 일은 없는 것처럼, 일체의 경계도 모두 이와 같아서 모두 무명 의식에 의지하여 꿈에서 본 망상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안의 마음은 생각생각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대상 경계와 조건의 대상인 일체의 경계도 마음을 따라서 생각생각에 머무르지 않나니, 이른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기 때문에 갖가지 법이 멸합니다.

마음이 생기고 사라지는 형상은 다만 명자만 있을 뿐이요, 실제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 가서 경계에 이르는 것도 아니고, 경계도 또한 와서 마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니, 비유하면 마치 거울 속의 형상이 옴이 없고 감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법에서 나고 없어지는 일정한 형상을 구하여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일체의 법은 필경에는 그 본체가 없으며, 본래 항상 공한 것이어서 진실로 나고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진실로 나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일체의 경계에는 차별의 모습이 없으며, 고요하고 한맛이기 때문에 진여제일의제자성청정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 자성이 청정한 마음은 담연하고 원만하여 분별의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별의 모습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처소 어느 곳에서나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며,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법을 의지하여 지니며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마음을 여래장2)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불가사의하여 번뇌[누] 없는 청정한 공덕의 업을 완전하게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끝없는 본제로부터 지금까지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으며, 자재하여 사라지지 않는 까닭에 일체에 변화로

2) 미계에 있는 진여. 미계의 사물은 모두 진여에 섭수되었으므로 여래장이라 한다. 진여가 바뀌어 미계의 사물이 된 때는 그 본성인 여래의 덕이 번뇌 망상에 덮이게 된 점으로 여래장이라 한다. 또 미계의 진여는 그 덕이 숨겨져 있을지언정,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중생이 여래의 성덕을 합장하고 있으므로 여래장이라 한다. 이것은 장에 대하여 소섭·음부·능섭의 세 뜻으로 설명한다.


 나타나시고, 갖가지 공덕의 업은 항상 불타듯 왕성하여 일찍이 쉬어 그침이 없었으니, 이른바 일체 세계에 두루하여 모든 업을 지어 보이시며, 갖가지로 교화하여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부처님의 몸은 곧 바로 일체 부처님의 몸이며, 일체 부처님의 몸은 곧 바로 한 부처님의 몸이므로 온갖 작업도 모두 똑같이 하나이니, 이른바 분별하는 모습이 없고 피차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평등하고 둘이 없어서 하나의 법성에 의지하여 짓는 업이 똑같나니, 자연 변화한 몸이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고 원만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이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는 것을 따라서 언제나 저들의 의지가 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허공이 온갖 물질의 형상과 갖가지 형태의 종류들을 모조리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처럼, 온갖 물질의 형상과 갖가지 형태의 종류들은 다 허공을 의지하여 존재하며, 건립되고 태어나 자라서 허공 속에 머무르고 허공에 거두어지는 대상이 되나니, 허공을 본체로 삼음으로 써 허공의 분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질의 형상 가운데 허공의 경계는 헐리거나 없어지지 않지만, 물질의 형상이 마침내 무너질 때에는 도로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허공의 본래 경계는 늘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과보를 모조리 용납하여 받아들입니다.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과보는 모두 부처님의 법신에 의지하여서 존재하는 것이며, 건립되고 나서 자라나 법신 속에 머무르고 법신의 처소에 거두어지는 대상이 되나니, 법신을 본체로 삼음으로써 법신의 분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들의 몸 안에 있는 모든 부처님의 법신도 헐리거나 사라지지 않지만, 만일 번뇌가 끊어져 무너질 때에는 도로 법신에 돌아갑니다.

법신의 본래 경계는 늘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다만 끝없는 세상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무명의 마음과 함께한 어리석고 어두운 인연을 훈습하여 온 힘 때문에 허망한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허망한 경계를 의지하여 훈습한 인연 때문에 망상과 서로 호응하는 마음을 일으켜 나니 내 것이니 하고 헤아리면서 온갖 업을 짓고 모아서 나고 죽음의 고통을 받는 것이니, 저 법신을 설명하여 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중생 중에 법신에 훈습되어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번뇌는 점차로 엷어지고 세간을 싫어하며 열반의 도를 구할 것이요, 하나의 진실한 경계를 믿고 귀의하여 6바라밀 등 온갖 보리분법3)을 닦는 이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은 보살 중에 일체의 선한 법을 수행하여 만족하며, 구경에는 무명의 수면을 여읜 이를 이름을 바꾸어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생․보살․부처님 등은 다만 세간에서 임시로 붙인 이름과 언설에 의지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이 있으나, 법신의 본체는 끝내 평등하여 다른 모습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이상이 하나의 진실한 경계[일실경계]의 이치를 간략히 해설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의 진실한 경계에 의지하여 신해를 닦고자 하는 사람은 응당 두 가지 도를 관하는 법[관도]을 배워 익혀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는 유심식관이요, 둘째는 진여실관입니다.

유심식관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이른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몸과 입과 뜻이 짓는 온갖 업을 따라 모두 자세히 관찰해서 오직 이 마음인 줄로 알아야 하며, 나아가서는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만일 마음이 생각에 머무르면 반드시 모두 살펴 알아서 마음으로 하여금 무기4)에 반연하여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3) 37조도품을 말한다.
4) 범어 avyakita.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다 같이 선악의 결과를 끌어올 능력이 없으면서도 수행을 방해하는 유부무기와 방해하지 않는 무부무기가 있다.


 생각생각 사이에 있어 마땅히 모두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니, 마음이 반연하여 생각하는 것을 따라서 도리어 마음으로 하여금 그 생각을 따르고 쫓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스스로 알게 하여야 합니다.

자기의 속마음에 스스로 생각이 일어나는 줄을 아는 것은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생각이 있고 분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속마음에 스스로 길고․짧고․좋아하고․미워하고․옳고․그르고․얻고․잃고․손해를 보고․이익을 보고․있고․없는 것이라는 등의 소견과 한량없이 많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내었다 하더라도 일체의 경계에 대해서는 일찍이 생각이 있어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체의 경계는 저절로 분별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곧 스스로는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며, 좋은 것도 아니고, 미운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일체의 형상을 여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직 마음의 생각에서 날 뿐이니, 만일 마음을 여의게 되면 곧 하나의 법과 하나의 생각도 스스로 차별이 있음을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속마음을 지키고 기억하는 것은 오직 허망한 생각이요 진실한 경계가 없는 것인 줄 마땅히 알아서 쉬어 버리거나 그만두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것을 유심식관을 닦아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마음은 무기이어서 자기 마음의 생각인 줄로 알지 못하는 이는 곧 앞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니, 유심식관이라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속마음을 지키고 기억하는 이는 곧 탐내는 생각․성내는 생각․어리석고 삿된 소견의 생각을 알며, 선을 알고, 선하지 않음을 알며, 무기를 알고, 마음의 근심과 여러 가지 모든 고통을 알 것입니다.
또 앉았을 때에 마음이 반연하는 것을 따라 생각생각마다 오직 마음에서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자세히 살펴 알아야 할 것이니, 비유하면 물의 흐름과 등의 불꽃이 잠시라도 머무르지 않는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색적삼매를 얻는 것이니, 이 삼매를 얻고 나면 그 다음에 당연히 사마타관심법을 믿고, 비바사나관심법을 믿고 배워 익혀야만 합니다.
사마타관심법을 믿고 익힌다는 것은 볼 수 없는 속마음의 형상을 생각하는 것이니, 원만하여 움직이지 않고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본래의 성품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분별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비바사나관심법을 믿고 익힌다는 것은 안팎의 물질을 생각하고 보는 것이니, 마음을 따라 나고 마음을 따라 없어지며, 나아가서는 생각을 익혀서 부처님의 색신을 볼 적에도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따라 나고 마음을 따라 없어지는 것은 허깨비와 같고 변화와 같은 것이며,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거울 속에 나타나는 형상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도 아니고 마음을 여읜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생겨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조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선남자여, 만일 이 두 가지 관심을 믿고 익히는 사람은 속히 1승의 도에 나아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유심식관은 최상지혜의 문이라고 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그 마음으로 하여금 용맹하고 영리하여 신해의 힘을 기르고, 빨리 공의 이치에 들어가서 위없는 큰 보리의 마음을 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여실관을 배워 익히는 사람은 마음의 성품은 생겨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데에 머무르지 아니하며, 일체 분별하는 생각을 영원히 여의어 점점 공처․식처․무소처․비상비비상처 등의 정경계의 형상을 지나서 상사공삼매를 얻을 것이니, 상사공삼매를 얻었을 때에는 식․상․수․행의 거친 분별의 형상은 앞에 나타나 지 않게 됩니다.
이를 좇아 닦고 배워서 선지식과 크게 자비한 이를 위하여 지켜 보호하고 기르나니, 그런 까닭에 모든 장애를 여의고 부지런히 닦아 폐지하지 않으면 차차로 심적삼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이 삼매를 얻으면 곧  다시 일행삼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행삼매에 들어간 뒤에는 부처님을 수 없이 뵈올 것이요, 깊고 넓은 수행의 마음을 내어 현신위에 머무를 것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사마타와 비바사나, 이 두 가지 관하는 방법을 결정코 믿고 깨달아서 결정코 향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닦고 배운 바 세간의 모든 선 삼매의 업을 따라 좋아하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일체의 선한 바탕인 보리분법을 두루 닦아 나고 죽고 하는 속에 있으면서도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2승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가지 관하는 마음을 익히고 향하여 의지하는 가장 미묘하고 좋은 방편은 온갖 지혜가 의지하는 바이며 수행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또 위와 같은 신해를 닦아 배우는 사람에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는 영리한 근기요, 둘째는 둔한 근기입니다.

저 영리한 근기를 지닌 사람은 먼저 이미 일체의 바깥 모든 경계는 오직 마음이 짓는 것으로서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이니, 진실하지 못한 것이어서 꿈과 같고 환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결정코 의심을 품지 않아서 음개의 번뇌가 경미하고 산란한 마음이 적을 것이니, 이런 사람들은 곧 진여실관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저 둔한 근기를 지닌 사람은 먼저 일체의 바깥 모든 경계는 다 오직 이 마음이 짓는 것으로서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들거나 집착하는 마음이 두텁고, 개장의 번뇌가 자주 일어나서 마음을 조복하기 어려울 것이니, 그는 먼저 유심식관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비록 이와 같은 신해를 배운다 하더라도 선한 바탕의 업이 엷고 진취할 능력이 없어서 모든 나쁜 번뇌를 점차로 굴복시킬 수 없으면, 그의 마음은 늘 의심하고 겁을 내며 두려워하여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고 여덟 가지 어려운 곳에 태어날 것이며, 항상 부처님과 보살 등을 만나서 공양하지 못하고 바른 법을 듣고 받을 수 없을까 두려워할 것이요, 보리의 믿음을 성취하기 어려울까 두려워할 것이니, 이와 같은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갖가지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언제나 부지런히 나의 명호를 외우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한 마음[일심]을 얻으면 선한 바탕이 더욱 자라나서 그 마음이 맹렬하고 영리해질 것입니다.

나의 법신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을 관찰하되 자신의 법신은 본체와 성품이 평등하여 둘이 없고 차별이 없는 것이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상․낙․아․정의 공덕이 원만한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귀의할 만한 것이라고 관해야 합니다.
또 자기의 몸과 마음의 형상은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며, 나라할 것도 없는 것이요, 깨끗하지 못한 것이며, 허깨비와 같은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싫어해서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은 관법을 닦아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속히 청정한 믿음의 마음을 얻게 되어 모든 장애는 점점 덜어지고 줄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의 이름을 들어서 배워 익히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요,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배워 익힐 수 있는 사람이며, 지극한 마음을 배워 나를 예배하고 공양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지극한 마음을 배워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요, 심오한 대승 경전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며, 대승의 심오한 경전을 지녀서 베껴 쓰고 공양하고 공경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할 것입니다.

심오한 대승 경전을 받아 지녀 읽고 외움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요,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고 심오하고 바른 이치에서 훼방에 빠지지 않음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며, 구경의 매우 심오한 제일의 가운데에서 신해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모든 죄와 장애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며, 한량없이 많은 공덕 덩어리를 얻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몸을 버린 뒤에는 마침내 나쁜 세계나 여덟 가지 어려운 일이 있는 곳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바른 법을 듣고 익히며 믿어서 닦아 실천할 것입니다.
또한 서원을 따라 다른 지방에 있는 청정한 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지방의 현재 청정한 국토에 태어나려고 하면, 응당 그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를 따라 뜻을 오로지하여 외우거나 기억하며, 한 마음으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합니다.
위와 같이 관찰하는 사람은 결정코 그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에 태어나게 되고, 선한 바탕은 더욱 늘어나고 자라서 빠르게 물러나지 않는 경지를 얻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일심으로 생각을 잡아매어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법신을 생각하면, 일체의 선한 바탕 가운데에서 그 업은 가장 훌륭한 것인 줄로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 사람은 점점 일행삼매를 향하여 갈 것이요, 만일 일행삼매에 도달한 사람이면, 곧 넓고 크고 미묘한 행의 마음을 이룩하여 무생법인과 가장 비슷한 경지를 얻었다고 말할 것이니, 나의 명호를 듣고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며 지극한 마음으로 나를 예배하고 공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극한 마음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며 공양하기 때문이요, 대승의 심오한 경전을 들었기 때문이며, 심오한 대승 경전을 지니고 베껴 쓰고 공양하며 공경한 때문이요, 심오한 대승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 때문이며, 구경의 매우 심오한 제일실의 가운데 있으면서 두려움을 내지 않고, 비방을 멀리 여의고 바른 소견을 얻어 믿고 알 수 있기 때문이요, 결정코 모든 죄와 장애를 없앴기 때문이며, 한량없이 많은 공덕의 덩어리를 현재 증득한 때문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른바 분별이 없는 보리의 마음과 고요한 지혜가 나타나서 방편의 일과 가지가지의 서원, 그리고 수행을 일으켜 내기 때문이요, 나의 명호를 듣는 사람은 이른바 결정코 이익이 되는 행을 믿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는 일체에 능력이 있는 이는 다 물러남이 없는 1승의 인을 얻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마음이 잡되고 혼란하거나 더러우면, 비록 나의 명호를 부른다 하더라도 듣지 못할 것이요, 결정코 신해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다만 세간의 선한 과보만을 얻게 되며, 크고 깊고 미묘한 이익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마음이 뒤섞이고 혼란스럽거나 더러우면, 그 닦은 일체 선을 따라 모두 깊고 큰 이익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이 부지런한 마음으로 무상선을 닦아 배우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깊고 큰 이익을 얻어 점차로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깊고 큰 이익이란 이른바 견고한 믿음의 자리에 들어가서 신인5)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견고한 법의 자리에 들어가서 순인6)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바르고 참된 자리에 들어가서 무생인7)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또 신인을 성취한다는 것은 여래의 종성8)을 짓기 때문이요, 순인을 성취한다는 것은 여래의 행을 이해하기 때문이며, 무생인을 성취한다는 것은 여래의 업을 증득하기 때문입니다.

점차로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간략히 해설하여 네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신만법으로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9) 이른바 종성지

5) ①3인의 하나. 아미타불을 염하여 구원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②5인의 하나. 무루의 진지가 일어나는 동시에 3보를 믿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6) 유순인의 준말. ①3인의 하나. 천태종에서 세운 통교 10지인 3승 공 10지의 제2 성지에 주하는 보살. 일체 중생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제근을 조복하며, 6도를 행하여 일체사 가운데서 복ㆍ혜를 완전히 하므로 유순인이라 한다. ②3인의 하나. 혜심이 유순하여 진리에 수순하는 지위. ③보살 수행의 계위를 5인으로 나눈 중의 제3. 4지ㆍ5지ㆍ6지의 보살.
7) 무생법인의 줄임말. 세상 모든 것이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 법공지. 무생법인을 법공지라고 하는 데 대하여, 무생인은 인공지를 뜻한다. 즉 아견에 의해 인식되는 인아는 모두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지혜.
8) 불종성을 말한다.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부처 될 성품.
9) ①화엄종에서 보살 수행의 계위를 52위로 세운 가운데, 처음 10신위의 최후 만심에서 성불함을 말한다. 이것은 화엄종의 독특한 해석,


차례를 지에 의하여 결정코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청정하고 평등하여 바라고 구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해만법으로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10) 이른바 해행지에 의하여 심오한 법의 성품을 이해하고, 여래의 업은 조작함이 없고 지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 생사와 열반, 이 두 가지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음에 두려워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증만법으로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11) 이른바 정심지에 의지하여 분별이 없는 고요한 법의 지혜와 부사의한 자연의 업을 얻어 구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일체 공덕의 행이 만족하기 때문에12)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 이른바 구경의 보살지에 의하여 일체의 모든 장애와 무명의 꿈을 없애서 다한 때문입니다.
또 만일 세간의 유상선을 닦아 배우는 이에게도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방편과 신해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모든 선삼매의 공덕을 탐내고 받아서 교만한 생각을 냄으로 선에 얽매어서 되돌아가 세간을 구하는 것이요,

둘째는 방편과 신해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선을 의지하여 치우치게 싫어하고 여의려는 행을 일으켜 나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겁내어 2승에 되돌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방편과 신해하는 힘이 있는 것이니, 이른바 하나의 진실한 경계에 의지하여 사마타와 비바사나, 이 두 가지를 관하는 방법을 익히고 가까이하기 때문에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의 생각에서 생기는 것

10) 4만성불의 하나. 해행지에 의하여 법성을 깊이 깨닫고 생사의 생각과 열반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무서운 마음, 좋아하는 마음도 내지 않는 것.
11) 4만성불의 하나. 보살이 수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어 부사의한 불과를 얻는 것.
12) 4만성불의 하나. 등각보살지에서 능히 일체의 혹장을 없애고 허망한 무명이 다함을 말한다.


 으로서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은 것이라고 믿고 이해하여 비록 세간의 모든 선의 공덕을 얻었다 하더라도 굳이 집착하지 않으며, 다시 되돌아가 3유(유:삼계)의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또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믿고 알기 때문에 또한 두려워하거나 겁을 내서 되돌아가 2승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모든 선의 삼매법을 닦아 배우는 사람은 열 가지 차례로 나아가는 상의 문은 선정의 업을 구족하게 섭취하여 배우는 이로 하여금 성취하고 서로 호응하여 어긋나거나 잘못되지 않게 함이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생각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방편으로 삼는 상이요, 둘째는 경계에 머무르고자 하는 상이며, 셋째는 경계에 처음으로 머물러 분명하고 똑똑하게 나아감을 알고 들어옴을 아는 상이요, 넷째는 경계에 잘 머물러 견고함을 얻는 상이며, 다섯째는 지은 일을 생각하며 방편과 용맹으로 한층 더 진취하기를 구하는 상입니다.
여섯째는 점점 조순함을 얻어 마음에 맞아 기뻐하고 좋아하며, 의심을 없애고 믿고 이해하여 스스로 편안하게 여기는 상이요, 일곱째는 능히 승진도를 얻어서 뜻을 오로지하는 이는 조금 서로 호응하여 이익을 깨달아 아는 상이며, 여덟째는 한층 더 닦고 더욱더 밝혀서 익히는 바가 견고해지면 뛰어난 공덕을 얻어 대치하여 성취하는 상이요, 아홉째는 마음의 생각으로 인해서 짓는 것이 있음을 따라 밖으로 공덕을 나타내고 마음대로 서로 호응하여 어긋나지도 않고 잘못되지도 않는 상이며, 열째는 만일 다시 특이하게 닦아 앞에서 얻은 바에 의지하여 방편을 일으키고 차례로 성취하여 마음을 따라 나고 들어가 초월하여 자재하는 상이니, 이것이 열 가지 차례로 나아가는 상의 문으로서 선의 업을 거두어 닦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견정신보살마하살지장보살마하살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심오한 법을 그렇게도 잘 설명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겁이 많고 나약함을 여읠 수 있게 하십니까?”
지장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처음에 배우는 사람이 뜻을 내어 대승을 향하여 구하였으되 아직도 믿는 마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위없는 도인 매우 심오한 법에 대하여 의심하고 겁을 낸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나는 항상 방편으로써 진실한 뜻을 펴서 나타내어 편안히 위안하고 겁약함을 여의게 합니다.

그런 까닭에 나를 잘 위안하고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편안히 위안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둔한 근기이며 소심한 중생들은 위없는 도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미묘함을 듣고, 마음에 비록 탐내고 좋아하여 마음을 내어 원하고 향한다 하더라도 다시 생각하기를 ‘위없는 도를 구하는 이는 반드시 넓고 극진한 공을 쌓고 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열심히 실천하며, 자기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며, 생사의 가운데에서 여러 겁 동안 애써 노력하고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겁내고 나약한 마음을 내는 것이니, 나는 곧 그를 위하여 진실한 이치를 연설할 것입니다.

이른바 ‘일체의 모든 법은 본래의 성품이 저절로 공한 것이어서 필경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으며,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으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이르는 것도 없으며, 방소도 없고 과거․현재․미래도 없으며, 나아가서는 그를 위하여 18공13)에 이르기까지도 없고 생사와 열반과 일체의 법은 결정되고
진실한 형상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할 것이며, 또 그를 위하여 ‘일체의 법은 허깨비와 같고 변화와 같으며, 물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형상과 같으며, 건달바성14)과 같고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으며, 아지랑이와 같고

 
13) 범어 aṣṭādaśaśnyat. 공을 본체와 작용으로 관찰한 것. ①내공. ②외공. ③내외공. ④공공. ⑤대공. ⑥제일의공. ⑦유위공. ⑧무위공. ⑨필경공. 무시공. 산공. 성공. 자상공. 제법공. 불가득공. 무법공. 유법공. 무법유법공. 『대품반야경』 제3권, 『대집경』 제54권에 있다.
14) 범어 gandharva-nagara. 또는 건달바성ㆍ건달박성ㆍ헌달박성이라고도 하며, 번역하여 심향성이라고 한다. 실체는 없이 공중에 나타나는 성곽. 바다 위나 사막 또는 열대 지방에 있는 벌판의 상공에서 공기의 밀도와 광선의 굴절작용으로 일어나는 신기루ㆍ해시. 이것을 건달바성이라 함은, 건달바는 항상 천상에 있다는 데서 생긴 것. 또는 서역에서 악사를 건달바라 부르고, 그 악사는 환술로써 교묘하게 누각을 나타내어 사람에게 보임으로 이와 같이 부른다.


 물거품과 같으며, 이슬과 같고 등불과 같으며, 눈이 피로해서 생기는 현상과 같고 꿈과 같으며, 번갯불과 같고 구름과 같으며, 번뇌와 생사는 그 성품이 매우 미약하여 사라지기가 쉬운 것이며, 또 번뇌와 생사는 필경에 본체가 없고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본래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진실로 다시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제 품성은 적정하여 그것이 곧 바로 열반이다’라고 연설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소견을 깨뜨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착하는 생각을 덜어버리기 때문에 겁을 내고 나약함을 여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어떤 중생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겁을 내고 나약해지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안다는 것은 이른바 여래는 저 하나의 진실한 경계[일실경계]를 보셨기 때문에 구경에는 나고․늙고․병들고․죽음, 그리고 온갖 악한 법을 여읠 수 있었고, 저 법신은 항상 청량하고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다는 등의 한량없이 많은 공덕 덩어리를 증득하셨습니다.
또 분명하게 깨달아서 일체 중생들의 몸속에도 모두가 이와 같이 진실하고 미묘하며 청정한 공덕이 있으나 무명의 어두움과 더러움에 덮여져서 긴 밤에 항상 나고․죽고․병들고․죽는 한량없이 많은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을 보십니다.
여래는 크게 인자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수많은 고통을 여의고 똑같이 법신인 제일의 즐거움을 얻게 하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 법신은 바로 분별이 없고 생각을 여읜 법입니다.

오직 허망한 알음알이의 생각을 없애고, 생각하고 집착함을 일으키지 않아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거늘, 다만 일체 중생들은 늘 분별하기를 좋아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며 뒤바뀐 망상 때문에 생사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여래는 저들을 위하여 저들로 하여금 분별하고 집착하는 생각을 여의게 하시려고 하기 때문에, 일체 세간의 법은 필경엔 그 바탕이 공하여 존재하는 것이 없고, 더 나아가서는 일체 출세간의 법도 또한 필경에는 그 바탕이 공한 것이어서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연설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18공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모두가 보리의 바탕을 여의지 않은 것임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니, 보리의 바탕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며, 있고 없음을 다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며, 같은 것이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닌 것도 아니며, 같고 다름을 다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필경에는 하나의 형상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일체의 형상을 여의었다는 것은 이른바 언설에 의지하여 집착할 수 없는 것이니, 보리의 법 안에서는 언설을 받아들이는 이가 없고 언설을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으로 기억하여 아는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보리의 법 안에는 취하는 사람도 취할 것도 없으며, 자기랄 것도 없고 남이랄 것도 없으며, 분별의 형상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분별하는 생각이 있으면, 곧 허망한 거짓이며 서로 호응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등의 해설은 아둔한 근기를 지닌 중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이른바 위없는 도와 여래의 법신은 오직 공의 법으로서 한결같이 필경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서 아무 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마음은 겁을 내거나 나약해져서 얻을 것이 없는 속에 떨어질까 두려워하거나, 혹은 아주 끊어져서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내고 늘어난다거나 줄어드는 것이라는 소견을 지으며, 더욱더 비방을 일으켜서 자기를 업신여기고 남도 업신여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곧 그를 위하여, ‘여래의 법신은 제 성품이 공한 것이 아니요, 진실한 바탕이 있는 것이며, 한량없이 많은 청정한 공업을 완전하게 갖추어 있는 것이다. 

 비롯함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저절로 원만한 것으로서 닦아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지어서 된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들의 몸속에도 모두가 다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서 변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으며, 늘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는 것이다’라고 해설해 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언설은 겁을 내거나 나약해지는 것을 없앨 수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위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미련하고 어리석어 굳게 집착하는 중생은 이와 같은 해설을 듣고서도 또한 겁을 내거나 나약해질 것입니다. 여래의 법신은 본래 만족한 것으로서 닦아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지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는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얻을 대상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켜 겁을 내거나 나약해지는 것이며, 혹은 자연 그대로라고 헤아려 삿되고 뒤바뀐 소견에 떨어지는 것이니, 나는 곧 그를 위하여 ‘일체의 선한 법을 수행하여 더욱 늘리고 길러서 만족하게 되면, 여래
의 색신을 내어 한량없이 많은 공덕과 청정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라고 설명해 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설명은 겁을 내거나 나약해지는 것을 여의게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위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매우 심오한 이치는 진실과 서로 호응하여 모든 허물이 없는 것이니, 서로 어긋나는 설명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서로 어긋남을 여읜 상인 줄 아는가?
이른바 여래의 법신 안에는 비록 다시 언설의 경계도 없고 마음의 생각을 여읜 것이며,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한 것이 아닌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일체의 상까지도 없고 언설에 의지하여 보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간 일반의 진리는 환술로 변화한 인연으로서 임시로 이름 붙인 법 속에서 서로 기다리고 서로 마주하는 데 의거하여 곧 방편을 나타내 보여 주면서 해설해야만 합니다.
그 법신의 자성은 진실로 분별이 없으며, 제 형상도 여의었고 남의 형상도 여의었으며, 공한 것도 없고 공이 아닌 것도 없으며, 나아가 일체의 형상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그 법의 본체는 필경공15)이요, 존재하는 것
 
15) 18공의 하나. 불교에서 허망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하여 이상을 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공은 유에 상대하는 단공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상대적인 공을 다시 공한 절대 부정의 공. 이 일체의 공까지도 공하였다는 것을 필경공이라 한다. 


 이 없어서 마음으로 분별하는 상념을 여의면 하나의 형상 없는 것이건만 스스로 보거나 스스로 안 것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고 설명합니다.

런 까닭에 공의 이치는 결정코 진실과 서로 호응하여 그릇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저 공의 이치 속에는 분별하는 부질없는 생각의 마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곧 필경에는 하나의 형상도 없어서 공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오직 진실만이 있기 때문에 곧 공이 아닌 것이니, 이른바 알음알이로 생각하는 것을 여의었기 때문에 일체의 거짓 형상이 없으며, 필경에는 항상 변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또 원래의 한 형상까지도 무너뜨려야 하거나 없애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또 저 분별이 없는 실체의 곳에는 비롯함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한량없이 많은 공덕과 자연의 업을 갖추어서 성취하여 서로 호응하면서 여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공이 아니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실체의 공덕 덩어리에 대하여 일체 중생들은 비록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다만 무명의 눈가림에 덮여 장애하기 때문에 알거나 보지 못하고, 능히 공덕의 이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없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법의 본체를 보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지니고 있는 모든 공덕의 이익이 되는 업은 저 중생들이 받아 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저기에 속한 것이라고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두루 일체의 선한 법 닦음을 의지하여, 모든 장애를 대치하고 저 법신을 본 연후에야 비로소 공덕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선한 법을 닦아야 여래의 색신과 지신을 낸다고 말합니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 매우 심오한 이치야말로 결정코 진실하여 서로 어긋나는 허물을 여읜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때 지장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뛰어난 방편과 심오하고 긴요한 법문을 설할 때에 십만억 중생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견신위에 머물렀으며, 또 9만 8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었고, 일체 대중들은 저마다 하늘의 향과 꽃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을 공양하고 지장보살마하살을 공양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각각 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머무르는 곳을 따라 널리 유포하게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법문은 만나기도 매우 어렵거니와 크게 유익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저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듣고, 또 그가 말하는 것을 믿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속히 모든 장애를 떠나 빠르게 위없는 도[무상도]에 이르게 되리라.”
이에 대중들이 모두 똑같이 말하였다.
“저희들이 받아 지녀서 세간에 널리 퍼뜨려 감히 저들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하겠나이다.”
그때 견정신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말씀은 육근취수다라 중에서 무슨 법문이라고 이름을 붙여야만 하겠습니까?

이 법이야말로 참되고 요긴한 것입니다.

제가 받아 지녀서 미래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다 들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견정신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문의 이름은 ‘점찰선악업보’이며, 또한 ‘소제제장증장정신이며, ‘개시구향대승자진취방편현출심심구경실의’이며, 또한

 ‘선안위설영리겁약속입견신결정법문’이니, 이와 같은 명의에 의지하여 그대들은 받아 지닐지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문의 이름을 말씀하여 마치시자, 일체의 대중들은 모두 기뻐하며 믿어 받고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