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불인연론(辟支佛因緣論) 상권
실역인명(失譯人名)진록(秦錄)에 첨부한다
송성수 번역
1. 바라나1) 국왕이 깨쳐서 벽지불2)이 된 인연
일체지(一切智)이시고 세존(世尊)이시며 삼세(三世)를 훤히 통달하신 큰 등불[大燈明]께 귀의하오며 위없는 출요의 법[出要法]3)과 아울러 응진(應眞)과 모든 훌륭한 스님들께 귀의하나이다.
저는 적정(寂靜)한 벽지불의 깨달음의 인연이 된 행동들에 대해 들었습니다.
흠과 더러움[瑕穢] 없는 마음으로 번뇌를 제거하고 금계(禁戒)를 잘 지켜 언제나 청정하셨으니 구름 한 점 가림이 없는 가을 하늘처럼 숲속에서 담박하게 스스로를 지키셨지요.
1) Vārāṇasī의 음역이다. 바라나(波羅奈)ㆍ바라나사(波羅奈斯)ㆍ바라니사(波羅尼斯)로 음역하기도 하고, 강요성(江遶城)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인도 중부 마가다국(Māgadhā, 摩竭陀) 서북쪽에 있던 나라로 까시(Kāsī, 迦尸)라고도 하였다.
2) pratyeka-buddha의 음역이다. 벽지가불타(辟支迦佛陀)로 음역하기도 한다. 구역(舊譯)에서는 연각(緣覺), 신역(新譯)에서는 독각(獨覺)으로 의역하였다.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혼자 수행하여 깨달은 이를 말한다.
3)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가르침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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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그분들의 공덕을 간절히 우러러 성심(誠心)으로 공경하고 따르며 믿음과 기쁨을 일으키나니 아무리 그분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으려 해도 그분들의 힘이 저를 감동시켜 어쩔 수 없이 믿게 하는데 누가 쾌사(快士)의 맑고 진실한 행[淸眞行]을 듣고서 공경하며 믿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제 벽지불의 공덕과 미묘한 행을 일부나마 설하고자 하오니 그 옛날 선사(先師)로부터 전해들은 것을 오직 바른 말로 거짓 없이 말합니다.
큰 코끼리가 길을 나서면 그 새끼가 뒤를 따르는 법 따라서 제가 이제 열어서 드러내 보입니다.
[문] 벽지불은 어떠한 인연으로 잠자코 스스로 지키며 항시 사심(捨心)4)에 들며, 산과 숲과 깊은 골짜기와 하천 곁의 고요한 곳에 머무는가?
마음의 작용[心行]이 고요하기 때문에 또한 말도 없이 무소의 뿔[皐角]5)처럼 혼자서 다니는데, 무엇 때문에 그처럼 하는가?
또 묻겠다. 벽지불에게는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
[답] 여러 노숙들께서 다들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부처님께서 삼십삼천(三十三天)의 궁전에서 설법하시다가 염부제(閻浮提)로 내려오시려 했을 때였다.6) 그때 제석(帝釋)이 비수갈마(毘首羯磨)7)에게 칙명을 내려 부처님을 위해 세 개의 보배 계단을 놓아 염부제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이 세 개의 계단 길은 아래로 승시사국(僧尸沙國)8)까지 뻗쳤다.
4) 평등한 마음, 또는 평정한 마음.
5) 독각(獨覺)의 언행(言行)을 무소의 뿔에 비유한 것은 예로부터 관습적으로 행해져 온 것이다. 파리어경집(巴利語經集)의 『서우경(犀牛經)』ㆍ대사비유담(大事譬喩譚)의 『서우경』 등이 모두 그것이다. 본론(本論)에서도 자주 인용하고 있다.
6) 삼십삼천(三十三天)은 Trāyastriśa의 의역이다. 도리천(忉利天)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욕계 제2천으로 수미산의 정상(頂上)에 있는데, 중앙에 제석천(帝釋天)이고 사방으로 각각 8천이 있어 합하면 33천이 된다. 석존이 승가의 나태함을 경책하기 위해 홀로 삼십삼천으로 올라가 망모(亡母) 마야부인(摩耶夫人)에게 설법하며 안거를 보낸 기사가 불전佛傳에 나온다.
7) Viśvakarman의 음역이다. 비습박갈마(毘濕縛羯摩) 또는 비수갈마(毘守羯磨)라고도 하며 종종공작(種種工作)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제석천왕의 신하로서 공작(工作)을 맡은 신(神)이다. 불교 설화(說話)에 제석천의 명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위하여 정사(靜舍)와 장엄물을 지었다는 기사가 자주 나온다.
8) Saṅkassa의 음역이다. 승가사(僧佉舍)라고도 한다. 삼십삼천에서 안거한 후 부처님께서 지상으로 내려오셨던 나라 이름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舍利佛)이 상캇사에서 여법하게 안거하는 모습을 보고, 그곳으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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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서 그때 하늘의 궁전으로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오시자, 제석과 대범천왕은 그 권속과 함께 꽃비를 내려 공양 올렸다. 이때 연화(蓮華)비구니는 부처님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위의와 형상으로 변하였으며, 칠보(七寶)가 그를 인도하고 또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모습을 보고는 모두가 의혹을 품고 전에 없던 일이라며 괴이하게 여기면서 제각기 이렇게 말하였다.“혹시 또 어떤 이가 신력(神力)이 절륜하여 저 비구니보다 더 뛰어난 이가 있을까?”그때 세존께서는 당시의 모든 대중이 세 개의 계단을 보면서 몹시 기특한 생각을 내고, 다시 저 연화비구니가 부린 이런 신통변화를 보면서 모두가 간절히 우러르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의 신심(信心)을 더욱 더 자라게 하기 위해 곧 모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신통력이 저 비구니보다 더 뛰어난 벽지불이 있다. 왜 뛰어나다고 하는가? 그 쾌사(快士)는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기 전, 그 중간에 출현하여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였다. 그 색상(色相)을 보이고 굶주리고 목마른 모습을 나타내 옷과 음식을 받으면서 그들에게 복전(福田)이 되고, 법과 행[法行]을 장엄하며 청정하고 적멸(寂滅)하며 조복(調伏)하고 욕심을 여의어 그를 보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나쁜 마음이 영영 사라지게 하고 칼과 무기를 버리게 하면서 마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다녔느니라.”여러 스승들로부터 전(傳)해 오는 이런 일을 들었으니, 어떤 일을 들었는가? 나는 옛날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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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불(迦葉佛)9) 때에 어떤 사람이 출가하여 만년 동안 범행(梵行)10)을 닦고 바른 계[正戒]를 지켰으며, 인욕(忍辱)을 수행하면서 언제나 부지런히 힘쓰며 수행했기 때문에 많은 비구들이 모두 찾아와 그를 가까이하였다.이때 모든 비구들이 다 함께 말하였다.“저희들을 가르쳐 주십시오.”그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비구들은 마음으로 모두 고맙게 여기고 좋아했지만, (정작 자신은) 대중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진리[諦]를 볼 수 없었다. 그는 죽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였다.‘나는 십력(十力)를 뵈었으니, 그분께서 말씀하신 법은 미묘하고 심히 깊어 얻어 듣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듣고도 방일(放逸) 때문에 도과(道果)를 얻지 못했다. 내 비록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고 능히 인욕을 행하여 많은 사람을 교화하긴 했지만, 소란스러움 때문에 선정의 마음[定心]을 침해받은 것이 마치 저 서리와 우박이 좋은 모종을 해친 것과 같다. 그래서 내가 도과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나는 지금 세 가지 유[三有]11)의 온갖 악과 번뇌에 빠졌나니 마치 늙고 파리한 코끼리가 깊은 흙탕에 빠진 것과 같네.
9) 사람의 수명 이만 살 때에 세간에 출현하시어 정각(正覺)을 이루신 분이다. 석가모니불의 바로 앞에 세간에 나오셨던 부처님이다.10) brahmacara의 번역이며, 정행(淨行)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보통 음욕과 음주 등을 끊고 청정하게 섭욕(攝欲)의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11) 삼계(三界)의 이명(異名)이다. 생사의 경계에는 인(因)이 있으므로 있다고 하는 유(有)를 쓰며, 삼유(三有)는 바로 삼계의 생사이다. 첫째는 욕유(欲有)이니 욕계의 생사요, 둘째는 색유(色有)이니 색계의 생사며, 셋째는 무색유(無色有)이니 무색계의 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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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벽지불이라면 홀로 숲속에서 살아가리라 무소의 외뿔처럼 온갖 도중(徒衆)을 멀리 여의리라 훨훨 타오르는 불길을 피하듯 마땅히 홀로 수행하면서 소란스러움을 멀리 여의어야하나니 원컨대 나는 항상 멀리 여의리라 도당(徒黨)의 온갖 소란스러움을.이런 서원을 세우고 목숨을 마치고는 하늘에 태어났으며, 천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다가 복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자 가시국(迦尸國) 바라나성(波羅奈城)의 범마달왕(梵摩達王) 첫째 부인(夫人)의 태(胎)로 들어갔다. 태에 들었을 때, 부인의 몸은 마치 맑은 못에 부드러운 꽃이 있는 것과 같았다. 그때 부인은 임신이 됐음을 깨닫고 게송으로 왕에게 아뢰었다.제가 임신했음을 알아차리고 나자 기쁨 속에서 은혜로운 마음 일어나니 이것은 분명 이 아이의 뜻 마땅히 죄 있는 이들을 사면(赦免)하소서.이때 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12)곧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네 그러자 또 다시 왕에게 아뢰었네 다시 널리 보시해야 합니다.
12) 이하의 게송은 왕비의 말이 아니다. 왕과 왕비 사이에 있었던 일을 게송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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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듣고 더욱 기뻐하면서 곧바로 창고를 활짝 열어 빈궁한 사람들을 구휼(救恤)하자 충족하지 않는 자가 없었네.그때 부인이 태자를 낳았는데 단정하고 빼어남이 마치 보름달과 같았다.나이 여덟 살이 되자 총명하고 인자하였는데 그 부왕(父王)이 돌아가셨고, 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름달처럼 사랑하였다.이때 언설(言說)이라는 보상(輔相)13)이 있었다. 언설 보상은 곧 태자를 옹립해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과거에 서원한 힘으로 온갖 악을 짓지 않았고 체성(體性)이 어질고 착했으며 모든 중생들에게 깊은 자비심이 있었다.비록 왕궁에서 살았지만 한적한 곳으로 찾아갈 뜻을 품었으며, 비록 화려한 집에서 살았지만 묘지처럼 여겼으며, 비록 소란스러운 곳에서 살았지만 선사(禪思)를 수행하면서 생사(生死)를 싫어해 그 허물을 헤아렸고, 도(道)로써 마음을 닦으며 왕의 사무[王務]를 내팽개치고 있었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간(諫)하였다.“요즘 대왕께서는 오로지 도행(道行)만 힘쓰고 국사(國事)는 처리하지 않고 계십니다. 만일 이와 같이 하신다면 온갖 악이 반드시 일어나 왕의 풍화(風化)를 파괴할 것이니, 마치 바다를 건널 때 선장이 없으면 반드시 온갖 재난으로 파괴당하는 것과 같습니다.”왕께서는 선조의 후사를 이으셨고 적지(籍地)도 법답게 얻으셨으니 오직 만민(萬民)을 굽어 다스려 주소서 부디 이 나라를 버리지 마소서.
13) 보좌(輔佐)하는 대신(大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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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왕께서 바른 법으로 다스린다면 어떤 선(善)도 이보다 나은 것 없나니 사람의 제왕이라면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나라를 수호하는 복이 가장 수승하다는 것을.
그때 그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탄식하며 사유하다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분명 패망할 것이고
나의 힘으로 나라를 능히 보호하면
주변의 악한 세력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가 만일 나라를 다스린다면
왕의 사무가 내 마음을 더럽히리니
만일 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형벌을 가해야만 하리라.
그를 묶어 가두라고 말해야 하고
그의 손과 발을 잘라야 하고
그를 사죄(死罪)에 처해야 하고
그의 눈을 뽑아버려야 하리라.
지금과 같은 탁하고 나쁜 세상에는
반드시 형륙(刑戮)이 필요하니
만일 형륙을 행하는 자라면
그가 곧 전다라(旃陀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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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왕은 곧 총애하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그대들은 이제 우선 들으시오. 내가 먹는 음식은 하나의 맛[一味]에 지나지 않고, 내가 입는 옷도 한 벌에 지나지 않으며, 앉고 눕는 자리도 이 몸을 수용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소. 이로부터 관찰해보면, 어디에 쓰겠다고 만족할 줄도 모르며 많은 것을 구하겠소. 왕위를 높은 이름[尊號]으로 일컫는 까닭은 그의 가르침을 반드시 실행시켜 공경히 받들지 않는 일이 없게 하는 데에 있으니, 이 일만 있으면 서로 다른 백성들을 취합할 수 있을 것이오.”또 보상에게 말하였다.“왕이 소중히 여길 바는 오직 이 한 가지 일 뿐이니,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탁하겠소. 그대는 이제 마땅히 뒷날을 두려워하여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조세를 부과하고 징수하되, 예전대로 하고 일정한 한도를 어기지 말아야 하오.”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내 비록 왕궁에 태어나 선조의 뒤를 이었으나 죽이고 때리는 형벌의 일을 나는 익히지도 배우지도 못하였소.나는 이제 두렵고 무서워 이런 업을 짓지 못하겠으니 그대는 이제 나를 본받지 말고 오로지 백성들을 양육해야만 하오.세간 사람들 모두 어리석어 저마다 잘못을 저지르고는 범한 죄 가운데서 다시 두려움을 내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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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마땅히 바른 법으로 그들을 어루만져 무외(無畏)를 베풀고 마땅히 바른 법에 의거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인도해야 하오.그때 왕은 게송을 말하고 나서 곧 나라를 이 대신에게 맡겼다.그러나 이 대신은 나라를 맡은 뒤 이 년 동안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놀아나 법도가 없었으며, 만백성을 구휼(救恤)하지도 않고 방자하게 제멋대로 온갖 그릇된 법을 저지르는 것이 날이 갈수록 더하였다.영화로운 지위는 매우 진중해야 하는데도 곧 교만하고 방일한 마음을 내어 온갖 그릇된 법을 행하였으니, 마치 강물이 불어 넘쳐 많은 것을 손상하고 파괴하듯 성에 부자가 있으면 모조리 세금을 매겨 빼앗아버렸다. 그때 성 안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간언하였지만, 다른 이의 충언(忠言)을 들으면 갑절 더 성을 내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너희들이 어찌 감히 이와 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냐?’며 인상을 쓰는 통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감히 왕에게 알리지도 못하였다.이로 말미암아 무도한 소행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이 마치 불이 마른 땔감을 만나 그 불길이 더욱 왕성해진 것과 같았으며, 주색에 빠져서 난폭해지고 하는 일마다 거스르면서 왕이 총애하던 부녀(婦女)까지도 또한 강제로 빼앗아 아내로 삼았다.이때 왕의 부인이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 몹시 괴로워 눈물을 흘리며 왕에게 찾아가 아뢰었는데, 치미는 분노로 입술이 떨려 말을 더듬거리는 것이 마치 젖먹이 아이와 같았다.이런 사정을 낱낱이 왕에게 아뢰니, 왕은 이 말을 듣자마자 곧 그를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말하였다.“나의 비후(妃后)에게조차 그대는 감히 몰래 그릇된 법을 저질렀다. 하물며 백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구나.”왕은 훈계하며 말했다.“지금부터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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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 보상(輔相)은 왕의 미움을 사고 아울러 백성들조차 싫어하는 것을 보고는 곧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도망갔고, 그 나라의 국왕과 그의 군사들을 데리고 본국으로 쳐들어왔다.그러나 본국의 모든 옛 보상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반격하여 그 군사를 격파한 뒤에 그를 사로잡아 돌아왔다.옛 보상들은 다시 왕에게 “저 자가 왕의 국토를 침략하였습니다”고 아뢰고는 그 신하를 데리고 왕에게 나아갔다.이때 왕은 그의 얼굴빛이 이미 변했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있는 걸 보았다. 왕은 말하였다.“괴이하구나. 삶과 죽음이여.”곧 게송으로 말하였다.어리석음이 마음을 뒤덮어 뒷날의 큰 고통을 깨닫지 못하고 작은 즐거움을 탐한 인연 때문에 지금 이런 부끄러움을 당하는구나.비유하면 으뜸가는 훌륭한 음식이 빛깔과 향기 모두 완벽하나 그 속에 독약이 섞여 있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관찰하지 못하기에 맛을 탐낸 까닭으로 집어 먹고 밥이 소화되면 해를 당하는 것과 같도다.왕은 여러 보상들에게 말하였다.“그의 잘못이 비록 극히 무겁긴 하지만 해를 가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뜻이오.”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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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가 모두 목숨을 아끼니 속히 그의 죄를 용서해야 하리라.다른 이의 목숨을 살해하고서 안락을 얻은 자 보지 못하였네.범한 죄가 매우 중한 자이나 인자한 마음을 내어야 하고 죄와 해(害)를 스스로 초래한 그를 마땅히 가엾이 여겨야 하나니 만일 그의 생명을 해한다면 스스로 좋아한 법을 훼손하는 것이다.여러 옛 신하들은 곧 왕에게 아뢰었다.“저희들은 지금 왕의 칙명을 어기더라도 반드시 죽여야겠으며 끝내 놓아주지 못하겠습니다.”그리고는 곧 왕 앞에서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었다.왕은 살해하는 것을 보고는 곧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켰고, 앞의 경계를 보자마자 과거에 인욕(忍辱)을 닦았던 마음을 보았으며, 즉시 마음이 열려 벽지불의 도를 깨친 것이 마치 우담발라꽃[優鉢羅花]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과 같았다. 그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모든 신하들이 합장하고 우러러 쳐다보자, 그가 말하였다.“벽지불로서 생사(生死)를 싫어하는 이는 도를 증득하는[證道] 것이 이와 같나니, 내가 지금 얻은 바는 지계(持戒)의 과보이니라.”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내 비록 영략을 걸쳤지만 마음은 청정하게 범행을 닦았으며 몸을 단속하고 감관을 조복하여 담박하면서 항상 적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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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사람에게도 병기나 칼이나 몽둥이를 들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행을 닦으리라 저 무소의 외뿔처럼.이 게송을 말하자마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졌다. 이때 정거천(淨居天)이 즉시 가사를 바치자, 입고서는 이내 허공을 날아 설산(雪山)으로 나아갔다.그때 그 산중에 있던 벽지불이 그에게 물었다.“당신은 왕위에 있으면서 어떤 일을 혐오했기에 이 도의 자취를 깨치셨습니까?”그러자 곧 위의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인욕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짐짓 인욕의 인연을 말씀하셨고, 탐욕으로 소란스러운 곳을 가까이하는 까닭에 짐짓 가까이하지 않는 인연을 말씀하셨으며, 벽지불의 공덕을 알게 하려고 짐짓 벽지불의 인연을 말씀하셨다.부처님께서는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선법당(善法堂)에서 벽지불의 인연을 말씀하셨으며, 부처님께서는 삼십삼천에서 모든 하늘들로 하여금 싫증을 내게 하려고 짐짓 이런 일을 말씀하셨다.바사타(婆四吒)벽지불은 비사리(毘舍離)14)에서 설법하다가 몸을 버리고 열반에 들었으며, 지금 현재에도 탑이 있으니 그 이름은 우타야(優陀耶)이다.
14) vaiśāli의 음역이다. 비야리(毘耶離)ㆍ비사리(鞞舍離)ㆍ폐사리(吠舍釐)ㆍ유야리(維耶離)라고 하며, 광엄성(廣嚴城)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중인도에 있던 나라로 항하를 사이에 두고 남방으로 마가다국과 상대하였다. 발지인(跋祗人)의 도성(都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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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상(輔相) 소마(蘇摩)가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금계(禁戒)를 굳게 지켜 행(行)을 훼손하지 않는 모든 지혜로운 자 해탈을 얻나니 남에게 배우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으며 홀로 간다네, 무소의 뿔처럼.일찍이 여러 스승들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들었다.가섭불(迦葉佛) 때에 어떤 한 비구가 만년 동안 범행을 수행하고 좌선하며 인욕(忍辱)을 얻고 금계(禁戒)를 닦아 지녔으며,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두타행(頭陀行)을 두루 갖추다가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났다.그리고 천궁(天宮)에서 오욕락(五欲樂)을 누리다가 하늘의 수명이 다하자 바시다성(婆翅多城) 보상 부인 제바(提婆)의 태(胎)에 들었다.그때 부인이 남편에게 게송으로 아뢰었다.제가 지금 임신했는데 마음이 너무도 즐거운 것을 보니 복 있는 사람이 찾아와 우리 아들이 된 게 분명합니다.“이를 말미암아 온갖 것에 대하여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이 생깁니다. 또 저는 지금 방일한 마음이 쉬었고 다시 욕심의 뜻이 없으니, 마치 바다 속의 마리대산(摩梨大山)이 파도를 능히 잘라버리는 것처럼 지금 저의 욕심이 쉰 것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저는 지금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진실한 말만을 생각합니다. 또 공덕 있는 착한 사람이 결실(缺失)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지금 제가 삼가면서 두려워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저는 지금 술을 독약을 보듯 하고, 불무더기를 두려워하듯 다른 이의 재물을 두려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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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온갖 악을 지금 죄다 버리고 여의게 되었으니, 모두가 저의 태 안의 복덕 있는 아들을 말미암아 음욕이 제거되고 그것을 쾌락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그때 보상이 곧 부인에게 말하였다.“이제 당신 뜻대로 오계(五戒)를 수행하십시오.”부인은 그때 온갖 선을 수행하면서 열 달을 채운 뒤에 아들을 낳았으며, 그 이름을 소마(蘇摩)라 하였다. (소마는) 점점 크면서 온갖 경론(經論)과 64예(藝)15)에 있어 밝게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단정하게 아주 잘생긴 것이 마치 보름달과 같았기에 부모의 뜻과 원[情願]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드디어 성년(盛年)이 되자 보상이 왕에게 청하였다.“저는 이제 나이가 늙었으니 장차 후세를 위하여 저의 복을 닦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나는 이제 그대가 복을 닦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소. 그대는 그대의 아들 소마(蘇摩)로 그대의 자리를 대신하여 나에게 공급(供給)하도록 하고, 그대는 마음먹었던 대로 선(善)을 닦으시오.”보상은 기뻐하였고, 왕은 소마를 보상으로 삼으면서 아버지보다 갑절이나 뛰어난 작위와 포상을 내렸다. 뭇 사람들은 그를 옛날의 우왕(牛王) 대신처럼 사랑하고 공경하였으며, 온갖 여인들이 사랑과 공경심을 일으키게 하였다.그때 왕의 부인이 소마를 연모하여 소마에게 말하였다.“당신이 만일 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온 나라 모두가 왕처럼 당신을 따르게 하고, 또 당신이 악명을 얻지 않게 하면서 당신의 명령을 왕과 다름없게 하겠습니다.”그때 소마는 뜻을 견고하게 지키고 겁내지 않으면서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15) 외도의 모든 경론과 64종의 모든 기예(技藝)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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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오니 제 말을 들으시고 혐오하거나 책망하지 마십시오.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물이 땅으로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비유하면 마르고 핼쑥한 말이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 그것을 타고 싸움터로 들어가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저는 남의 부녀자를 보면 애정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으며 마음과 뜻이 열리지 않는 것이 마치 한밤의 연꽃과 같습니다.16)보통 사람이라도 공경하기를 어머니와 다름없이 여기거늘 하물며 부인에 대해서이겠습니까?당신은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저는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존귀한 분을 공경히 섬기오니 신하인 저는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또 저는 정욕이
16) 연꽃은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밤이면 꽃 봉우리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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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을 때에도 남의 부녀자를 보면 저절로 쉬고 사라지게 됩니다.저 사나운 물결이 넘칠 때면 수많은 물결이 용솟음치지만 저는 가을철 강과 같아 저절로 맑고 깨끗해집니다.그때 부인은17)마음속으로 다짐하였네. ‘가까이하고 싶은 내 뜻을 저자가 만약 외면한다면 내 반드시 저자를 비방하고 말리라.’ 곧 왕에게 아뢰었네.“보상 소마가 도리에 맞지 않는 생각을 일으켜 저를 침범해 욕보이려 하였습니다.”이때 왕은 생각이 미혹하여 ‘사실일까, 아닐까?’ 의심하였다.이때 소마는 동산[園苑]으로 나아갔다가, 두 마리 소가 목에 멍에를 얹고 너무도 힘들게 땅을 가는 모습을 보고서 혐오하는 마음을 내고 있었다.왕은 본래 미혹한 이라 부인의 참언(讒言)을 믿고 곧 사람을 시켜 소마를 죽이게 하였다.
17) 이하의 게송은 소마의 말이 아니다. 왕비의 생각과 왕과 왕비 사이에 있었던 일을 게송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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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소마는 화살을 맞아 그 화살이 뼈를 관통한 말과 같았다. 그는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사람이 부귀할 때에는 좋아할 만한 색(色)들이 모두 찾아와 앞에 있게 된다. 그러나 독이 섞인 음식처럼 너무도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이지만 소화되려 할 때에는 몸이 곧 파괴된다. 사람들은 오욕을 탐내지만 그 맛은 보잘 것 없으니, 비유하면 금으로 된 집이 불에 달궈졌을 때 사람이 그 빛깔을 탐해 안으로 들어갔다가 해를 입는 것과도 같다.’목숨이 다하려 할 때에 마음과 뜻이 산란해지자 그는 곧 스스로를 위로하며 생각하였다.‘나는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서 훼손함이 없었다. 검정소18)가 꼬리를 사랑하듯 나는 계율을 지녔고, 가난한 사람이 땅에 묻혔던 보물을 얻고 애써 수호하듯 나는 금계(禁戒)를 지켰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하였다.거칠고 껄끄러운 험악한 길 내 이미 그것을 건넜으니 나는 액난과 위급한 일 만나더라도 계율을 지키면서 버리지 않으리라.마치 큰 바다의 조수(潮水)가 일정한 주기와 한계를 어기지 않듯 지금 내가 계율을 지키는 그 일 또한 그와 같다.이 게송을 말하고 나자 그때 모든 하늘과 아울러 모든 선신(善神)이 이 보상의 서원이 그와 같은 것을 모두가 기뻐하였다.
18) 보통의 소와 비슷하나 꼬리가 길다. 서장(西藏)에 많이 있고 그 꼬리로 불자(佛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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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모든 악귀(惡鬼)들이 이내 부인에게 달라붙자 부인은 미친 증세가 일어나 곧 왕 앞에서 귀신들에게 홀려 게송으로 말하였다.저는 이제 스스로를 파괴하였으니 제가 죽음을 받아야 마땅하오리다 그는 진정 순수하고 착한 사람 상해(傷害)를 가하지 말아야 합니다.제가 어리석어 어린아이처럼 입으로 수미산을 불어 보았으나 끝내 흔들 수 없었으니 그에게는 실로 더러운 행이 없는데 제가 거짓으로 비방한 것입니다.그때 그 보상은 동산 가운데서 사유(思惟)하며 염오(厭惡)하다가 벽지불이 되어 허공으로 솟아올랐고,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졌다. 그러자 정거천(淨居天)이 곧 가사를 바쳤다.그때 모든 사람이 그에게 권하고 청하면서 말하였다.“원컨대, 저희들을 버리고 천상으로 올라가지 마옵소서.”이때 벽지불은 위에서와 같은 게송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하였고, 설산(雪山)으로 날아가 모든 벽지불을 만나서 또한 위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3. 월애(月愛)대신이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바다의 조수가 기한을 넘지 않고 검정소가 꼬리를 지키다 죽나니 마치 달의 성질은 스스로 차가워 뜨겁게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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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근(根)을 조복한 이가 계율을 수호함도 또한 그러하니 이것을 홀로 살아가는 행이라 하네 무소의 뿔이 둘이 아닌 것처럼.옛날의 여러 큰 스승들께서 차례차례 서로 가르친 것을 나는 옛 스승들로부터 잘 들었기에 지금 드러내어 설명하고자 한다.과거 세상 어느 때에 월애(月愛)라고 하는 벽지불이 있었다. 그는 바가바(婆伽婆)이신 가섭불(迦葉佛) 처소에서 온갖 선근(善根)을 심고 계행(戒行)을 잘 닦았으며 항상 지혜로써 모든 음(陰)이 다 무상(無常)함을 관하였다.하지만 그 부처님 처소에서 끝내 사문의 도과(道果)를 획득하지 못하였고, 그곳에서 목숨을 마치자 곧 천상에 태어났으며, 전생에 지은 선의 힘으로 하늘의 쾌락을 누리다가 하늘의 수명이 다한 뒤에는 도로 인간으로 내려와 첨파국(瞻婆國)19) 큰 장자(長者)의 집에 태어났다.그는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깊고 반듯했으며, 항상 금계(禁戒)에 의지하여 스스로 몸을 닦았고, 그 선행(善行)을 관하는 것이 노성(老成)한 이보다 더하였고, 또한 경솔하거나 말이 많지 않았으며 성내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었다. 소유한 재물은 가난한 이에게 두루 나눠주었고, 집안이 여유가 있고 없음에 따라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었으며, 계율의 영락으로써 자기 자신을 장엄하였다.
19) 짬빠(Campā, 金色花樹)라는 나무의 이름을 따서 붙인 나라이다. 중인도 마가다 동부에 있던 앙가국의 수도이다. [20 / 50] 쪽
그의 아버지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법에 따라 집안을 다스렸으므로 그 성의 인민들은 그의 정성스럽고 근실함을 보고는 깊이 공경하고 믿으면서 스승이나 어른처럼 여겼다.그가 장성한 나이가 되자 단정한 그 용모에 모든 처녀들이 보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모든 장사꾼들은 그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보고 모두가 찾아와 의지하고 맡겼다.그 무렵 북방의 여러 장사꾼들이 좋은 말들을 많이 타고 첨파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때 첨파국 왕이 그 말들을 모조리 계약하였는데, 그 왕은 마음이 포악하고 바른 법에 의지하지 않는 자였다. 왕은 스스로 ‘나는 이제 그들의 말을 많이 계약하였다. 어떻게 하면 값을 치르지 않고 그 말들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곧 간사하며 아첨 잘하는 신하들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였다.간사한 신하가 왕에게 아뢰었다.“만일 그 값을 치른다면 창고가 바닥날 것입니다.”왕이 곧 대답하였다.“내가 이제 만일 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나에 대한 악명이 천하에 널리 퍼져 모든 국민이 나를 싫어할 것이며, 또한 사방에서 찾아오던 장사꾼들도 끊어지게 될 것이오.”간사한 신하가 다시 말하였다.“왕께서 계책을 쓰신다면 재물을 들이지 않아도 그 말을 얻으실 수 있으며, 또한 왕에 대한 악명도 나오지도 않고 국민들도 싫어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왕의 나라에 있는 월애대신은 모든 사람이 깊이 믿는 자 입니다. 그들이 만일 찾아와 값을 요구하면 왕께서는 그저 ‘나는 월애(月愛)를 보내 당신들에 돈을 치렀다’고만 하십시오.”당시 그 장사꾼들의 말은 일만 마리였고, 그 한 마리마다 값이 일만 금전(金錢)이었다. “만일 왕께서 ‘월애 대신이 그 값을 치렀다’고만 말하면 나라의 인민들은 반드시 의혹을 품어 왕을 의심하거나 월애를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면 왕에 대한 악명은 분명 드러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만백성이 싫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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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사꾼들이 찾아와 왕에게 아뢰었다.“우리에게 말 값을 주십시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왕이 곧 대답하였다.“내가 예전에 월애를 시켜 그 값을 치르지 않았던가? 어째서 재차 과도하게 그 값을 치르라고 하는가?”모든 장사꾼들이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이 월애란 분은 실로 우리에게 말 값을 준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진실로 신용이 있으신 분이니, 차라리 신명(身命)을 버릴지언정 우리에게 값을 치렀다는 거짓말은 끝내 하지 않을 것입니다.”곧 게송으로 말하였다.가령 달님이 불을 뿌리고 태양이 찬 물을 뿌리고 모래를 짜서 기름을 얻고 물을 흔들어 소(酥)를 얻으며 불 속에서 연꽃이 자라게 한다 해도 저 월애로 하여금 추악한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모든 장사꾼들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인간 중의 하늘[人中天]이여, 만약 월애로 하여금 왕의 칙명을 확인하게 하고, 그가 우리에게 주었다고 말한다면 끝내 원망하지 않겠습니다.”왕은 곧 월애를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그대가 전에 내 앞에 있을 적에 내가 그대에게 돈을 주면서 한꺼번에 상인들에게 갚으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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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왕은 곧 눈알을 굴리며 위협하면서 ‘네가 나를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너를 죽이리라’고 하였다.그때 월애대신은 스스로 ‘나는 지금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 왕의 말대로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다. 다시 ‘법신(法身)을 취하는 것이 훌륭할까, 이 몸을 취하는 것이 훌륭할까?’라고 생각하다가, 곧 스스로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몸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의 법신[戒法身]은 버리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제가 이제 스스로 생각하며 이 두 몸 가운데 어느 몸을 버려야 할까 하다가 다시 자세히 스스로 관찰하였습니다.차라리 더러운 형상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은 버리지 않으리라 만일 법신을 버린다면 악명이 곧 널리 퍼지리라.저는 여러 선량한 손들 틈에서도 저들이 이끌고 붙잡았던 손입니다 만일 제가 악한 자가 된다면 그건 저 스스로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후회의 뜨거운 불길이 마음에서 일어나고 이 더러운 몸을 버린 뒤에는 당연히 지옥으로 갈 것이니 스스로 금계(禁戒)의 행을 훼손하면 끝내 안락을 얻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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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一形]의 즐거움만 위하면 한량없는 몸[無量身]을 손상시키겠지만 만일 계율을 수호한다면 한량없는 몸이 안락하게 되리다. 이 때문에 저는 당연히 법신(法身)을 감싸고 보호하여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게 하나니 바른 법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당연히 거짓말을 끊어야 합니다.월애대신은 곧 왕에게 아뢰었다.“왕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어 저에게 성내지 마십시오. 저는 진실로 왕께서 저들에게 말 값을 주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이때 왕이 곧 크게 노하여 칼을 뽑으며 말하였다. “왜 보지 못하였느냐?”월애대신은 스스로 그 마음을 안정시키고 이렇게 생각하였다.차라리 성법(聖法)을 위하여 죽을지언정 어리석은 짓을 하며 살지 않으리라 모든 것이 다 태어남이 있으니 죽지 않을 자 누가 있으랴?내가 만일 이제 죽음을 당한다면 법을 위해 고의로 몸을 버리는 것 천상(天上)에 태어날 것이 분명한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하랴?곧 왕에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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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왕이 이제 저의 몸을 베고 저미어 깨처럼 부순다 해도 수지한 금계(禁戒)를 끝내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선성의 도[仙聖道]에 머물고 있으니, 만일 이 혀로 거짓말을 한다면 제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닙니다. 제가 이제 만일 왕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한다면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 무엇을 믿고 의지하겠습니까?”왕은 이때 부끄러움으로 갑절이나 더 분노하면서 훨훨 타는 불길처럼 성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월애는 그때 마음으로 ‘지금이 바로 내가 선정의 마음을 일으킬 때요, 지금이 바로 내가 법을 단단히 붙잡을 때이다. 다시 어느 곳에서 법 듣기를 바라겠는가? 오늘 이 일이 곧 나를 위한 설법이다. 지금 나는 법을 위하다 목숨을 버리게 된 것이니, 지금의 왕은 나의 참되고 위대한 친구로다’ 하며 기뻐하였다.이와 같이 법을 생각하는 순간 즉시 깨달아 벽지불이 되었다. 그는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파계한 자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것을 보고 모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고, 선을 닦는 이들을 위해서는 더욱 믿음의 행[信行]이 자라게 하였으며, 참된 말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진실한 일의 과보가 나타나게 하였다.허공 가운데서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자, 그때 정거천(淨居天)이 그에게 법복(法服)을 바쳤다. 그는 향산(香山)으로 날아가 여러 벽지불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 위와 같은 게송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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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불인연론 하권
실역 인명 진록(秦錄)에 첨부한다
송성수 번역
4. 왕사성1)의 대장자가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비유하면 빽빽한 숲 속에서는 큰 나무를 끌고 나오려 해도 가지와 줄기가 서로 걸려서 끌고 나올 방법이 없네.집에서 사는 것은 빽빽한 숲과 같고 여러 사무[務]는 가지와 줄기 같나니 벗어나는 요긴한 법 구하도 싶어도 속박과 집착으로 영원히 인(因)이 없다.숲이나 들판의 고요한 곳에서 경계를 관하여 그 마음을 닦고 온갖 인연과 사무를 해탈하고 가까이하고 사랑하던 모든 것에서 떠나
1) Rāja-gaha의 의역이다. 중인도 마가다국의 고대 수도이고, 나열기(羅閱祈)ㆍ나열게리혜(羅閱揭梨醯)ㆍ나열기가라(羅閱祈迦羅)ㆍ나야흘리혜(羅惹訖哩呬)ㆍ할라사길리혜(曷羅闍姞利呬)로 음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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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가는 행을 닦아라 무소에게 두 개의 뿔이 없는 것처럼.옛 스승들께서 서로에게 전한 이런 일을 나는 듣게 되었네.옛날에 벽지불이 있었다. 그는 과거의 다섯 부처님2) 처소에서 항상 모든 선(善)을 닦았으나 우바새가 되어 집안일을 좋아하고 집착하였기에 비록 여러 부처님을 뵙긴 하였지만 출가를 원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재가의 계(戒)를 지켜 훼손하거나 범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선근(善根)이 점점 더하여 가섭부처님의 처소에서 출가해 도를 배웠고, 즐거이 두타(頭陀)를 닦으며 여섯 가지 물건3)을 두루 갖추었으며, 욕심내기를 싫어하였다. (그는)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는 천궁(天宮)에 태어나게 되었고, 하늘의 수명이 다하고는 왕사성의 큰 장자(長者) 집에 태어났는데, 이 장자 집은 재물이 한량없어서 창고가 가득 차 넘쳤다. (그는) 점차 성장하여 드디어 성년(盛年)이 되었으며,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비사문(毘沙門)4)의 아들 나라구복라(那羅究福羅)처럼 뜻대로 쾌락을 누렸다.
2) 과거에 출현하신 부처님 가운데 가섭불(迦葉佛) 이전의 다섯 분, 즉 비바시불(毘婆尸佛)과 시기불(尸棄佛)과 비사부불(毘舍浮佛)과 구류손불(拘留孫佛)과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을 말한다.
3) 비구가 항상 몸에 지니는 여섯 가지의 용구(用具)이다. 첫째는 승가리(僧伽梨)이니 구조(九條) 내지 이십오조의 큰 옷인데 마을이나 궁중에 들어갈 때에는 입는다. 둘째는 울다라승(鬱多羅僧)이니 칠조로 된 중간 옷[中衣]인데 예불ㆍ독경ㆍ청강ㆍ포살(布薩) 등을 할 때에 입는다. 셋째는 안타회(安陀會)이니 오조로 된 하의(下衣)인데 절 안에서 작업할 때나 또는 상(床)에 누울 때에 입는다. 넷째는 철다라(鐵多羅)인데 철발우[鐵鉢]를 말하고, 다섯째는 니사단(尼師壇)인데 좌구(坐具)를 말하며, 여섯째는 녹수낭(漉水囊)인데 물을 거르는 기구이다.
4) 사천왕(四天王)의 하나이다. 폐실라마나(吠室羅摩拏)ㆍ비실라만낭(鞞室羅滿囊)ㆍ비사라바나(毘舍羅婆羅)ㆍ벽실라말나야(蘗室羅末拏也)라고도 쓰며, 다문(多聞)ㆍ보문(普聞)으로 의역한다. 일명 구폐라(俱吠羅)라고도 한다. 수미산 중턱 제4층의 수정타(水精埵)에 있으면서 야차ㆍ나찰의 두 귀신을 거느리고 북방의 수호와 세상 사람에게 복덕을 주는 일을 맡았으므로 북방천(北方天)이라고도 한다. 늘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면서 불법을 들으므로 다문천(多聞天)이 라고도 한다. 나라구복라(那羅究福羅)는 나라구라(那羅鳩羅)라고도 쓰며, 비사문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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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서 지내며 온갖 인연과 사무를 좋아하였고, 아들과 딸을 각각 서른 명씩 낳아 길렀으며 창고와 일꾼의 수효도 매우 많았다. 그는 아들딸을 혼인시키는 등의 그런 일이 너무도 많아서 눈앞의 일만 경영하느라 닦아야 할 법을 잊어버렸고, 일에 속박되어 집안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일꾼으로부터 여러 친척들의 많은 죽음과 딸[女] 아무개 집이 상화(喪禍)를 만났고 또 생업을 잃게 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들어야 했다. 죽거나 망했다는 이런 소식이 널리 들릴 때면 근심의 독[愁毒]으로 괴로워지는 것이 마치 백 개의 화살이 일시에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다.또한 아름답고 좋으며 사랑할 만한 소식을 들기도 하였으니, 집안의 장사꾼이 값진 보물을 많이 얻어 안전하게 돌아왔다거나 그의 아들 아무개가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었으며, 또 자신의 딸이 복스러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는 다시 기쁜 마음이 생겼다.이렇게 나쁘고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근심과 기쁨이 교차하는 것이 마치 광대가 돌리는 수레바퀴와 같았다.어느 날 한 친한 벗과 동산으로 가 이리저리 다니며 유람하고 있었다.어떤 숲에 이르러 큰 나무를 베는 한 사람을 보았는데, 가지와 줄기며 잎이 너무 무성하여 많은 코끼리로도 끌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잔가지가 없는 작은 나무를 하나 베었고, 한 사람이 혼자 끌어도 전혀 막히거나 걸리는 일이 없어 곧 숲에서 끌고 나올 수 있었다.이 일을 보고 나서 곧 스스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이제야 인연(因緣)을 보게 되었다.”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나는 큰 나무를 벤 것을 보았는데 가지와 잎이 너무 무성하고 많아 빽빽한 숲에 여기저기 걸려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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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 또한 그와 같나니 아들과 딸이며 모든 권속들 사랑과 미움에 묶인 마음은 삶과 죽음의 빽빽한 숲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잔가지가 없는 작은 나무는 빽빽한 숲에 걸리지 않나니 그것을 보고 나는 깨달았네 친하고 사랑하는 일을 끊으면 삶과 죽음의 빽빽한 숲에서 저절로 해탈을 얻는다는 걸.그는 곧 그곳에서 벽지불의 도(道)를 얻었다.이때 그의 친한 벗이 그에게 말하였다.“날이 벌써 저물어 갑니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십시다.”친한 벗에게 대답하였다.“그대는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나는 집으로 갈 인(因)을 이제 이미 끊었습니다.”친한 벗이 물었다.“당신은 무엇을 끊었다는 것입니까?”대답하였다.“내 지난날 애착으로 말미암아 집에 붙어살았으나 이제 나는 이미 이와 같은 애착의 업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이 애착하는 바는 처자(妻子)와 권속이니, 어린 아들과 손자들의 은혜와 사랑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보면 재롱떠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우르르 달려와 부여잡나니, 이런 일들을 그리워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애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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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자와 권속들의 이와 같은 일에 대해 애착하던 마음이 영원히 쉬었습니다. 나는 과거 집에 있을 적에 갖가지 사무를 처리하면서 외출하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였고, ‘그에게 주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것을 취하라’고 말하기도 하였으며,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나는 이제 이와 같은 일을 이미 끊었고, 이미 욕락(欲樂)을 버리고 해탈의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나무의 뿌리를 베어버리고 여러 세계[趣]로 가는 문을 닫았으며 큰 어둠의 장막을 없애버렸습니다.나는 갓난아이마저도 도리어 원수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여깁니다. 지금 내가 이와 같은데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까?”이때 그 친한 벗은 곧 그의 집으로 돌아가 그의 아들딸에게 말하였다. 그가 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그를 보러 나섰다. 권속들이 도착했을 땐, 그의 아버지가 이미 사문이 되어 법복을 입고 허공에 날아올라 있는 것만 보였다. 아들과 딸들은 아뢰었다.“지금 무슨 일 때문에 권속을 싫어하고 미워하시면서 허공에 계십니까?”그러자 곧 위의 게송으로 아들딸에게 대답하였다.그리고 게송을 마치자마자 즉시 설산(雪山)으로 날아가 여러 벽지불과 자리를 함께하였고, 그런 뒤에 앞서 도를 얻었던 동산으로 다시 돌아와 몸을 버리고 열반하였다.그때 그 권속들이 그를 위하여 탑묘(塔廟)를 세우니, 당시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이름을 다자탑(多子塔)이라 하였다.무릇 선근(善根)이 성숙한 모든 지혜로운 사람[智人]은 조그마한 인연으로도 곧 깨치게 된다.[30 / 50] 쪽
5. 바라나 국왕 월출(月出)이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처자(妻子)와 친우(親友)와 재물은 생사(生死) 중의 허물과 근심이니 숲에서 살며 고요히 해탈하라 무소의 외뿔처럼.선서(善逝)로부터 들은 것이 전해져 나의 스승에게까지 이르렀으니 나도 또 스승으로부터 들은 것을 이제 마땅히 연설하리라.옛날에 벽지불이 있었다. 그는 가섭불(迦葉佛) 처소에서 1만 2천 년 동안 범행(梵行)을 수행하였고, 항상 인욕(忍辱)을 닦으며 중생들을 자비로 대하면서 사소한 계도 일찍이 훼손하거나 범한 일이 없었다.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났고, 그 하늘의 수명이 끝난 뒤에는 내려와 인간세상의 바라나 국왕의 집에 태어났는데, 달이 솟아오를 때에 태어났으므로 이름을 월출(月出)이라 하였다.그는 점차 성장해 태자(太子)가 되었고, 그의 부왕(父王)이 죽은 뒤에는 왕위를 계승하고 전생의 선한 힘으로 바른 법을 행하는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며, 보상(輔相)의 아들을 파견해 작은 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하고 그의 딸을 아내로 주었다.이 보상의 아들은 용기와 힘이 남보다 월등히 뛰어났고 많은 권속이 있었으므로 스스로 씩씩함과 귀함을 믿고 그릇되고 방일하는 것이 도를 지나쳤다.그때 국왕의 아들과 보상의 아들은 처남 매부지간이었기에 매우 친했었다. 그로 인하여 사사로이 으슥하고 조용한 곳에서 잔치를 벌이면서 은밀히 참계(讒計)를 꾸미고 왕자에게 말하였다.“당신은 숙부와 형제와 권속의 수효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세간 사람은 대부분 아내의 말을 잘 듣습니다. 당신의 부왕께서 하루아침에 돌아가시면 당신의 여러 어머니들은 헐뜯고 아첨하여 자기의 아들을 추대하려 할 것이므로 당신 부왕의 자리는 분명 당신에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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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왕께서 깨닫기 전에 일찌감치 도모하셔야 합니다. 대저 왕위란 천하에서 제일 높은 것이요, 지극히 즐거운 곳이라 천상과 다름이 없으며, 모든 세간사람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믿고 승복하는 자리입니다. 만일 국왕이 되어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만 한다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비유하면 맛있는 살코기는 모든 이들이 좋아하듯 왕위 또한 그러하여 탐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비유하면 홍수가 닥치기 전에 힘써 교량(橋梁)을 만들어야 하나니 만일 폭류(瀑流)가 갑자기 닥치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왕위 또한 그와 같아서 마땅히 먼저 도모해야 하리니 당신 손아귀에 사로잡아 둔다면 그땐 스스로 안심해도 되리라 형제들이 서로 질투한 뒤에 왕위를 얻으려하면 매우 어려우리다.왕자는 생각하였네.이와 같이 친한 벗이라는 자가 장차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구나.마치 재로 훨훨 타는 불을 덮어둔 것처럼 현재에도 이미 즐거움이 없을 것이고 내세에 큰 고통을 얻게 되리라.그때 왕자는 부왕에게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왕자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눈을 부릅뜨는 것이 마치 벌건 구리[赤銅]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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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당장 사신에게 칙명을 내렸다.“그 일이 아직 누설되지 않은 것처럼 하고 급히 추격해 그를 데리고 오라.”그때 왕자는 보상의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였는데, 서로 만나고 나서는 이내 갑작스런 병이 들고 말았다.사신은 돌아와서 왕에게 아뢰었다.“왕자께서 병이 들어 아주 위독합니다.”왕은 이 소식을 듣고 곧 몸소 나가 살펴보았다. 벌써 그 아들은 병이 아주 위독하여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있었고 네 가지의 큰 고통5)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이런 일은 보고 나서 생각하였다.‘이 왕위라는 것은 아주 큰 악이로구나, 저처럼 보상 부자가 몰래 나의 아들을 시켜 패역(悖逆)과 반상(反常)을 저지르게 하는 법답지 못한 짓을 하다니. 그렇다고 나의 왕위를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나의 아들은 지금 병의 고통으로 목숨이 거의 다해가고 있으니, 온갖 세간 사람이 모두 탐내고 시샘하겠구나.’그리고 말하였다.“알아야 한다. 왕위야말로 나쁘고 더럽고 볼품없는 자리이다. 무엇 때문에 더럽고 볼품없는 자리라 하는가? 왕위 때문에 그의 선행(善行)을 버리게 되고, 왕위 때문에 아버지 할아버지와 친한 이들을 해치는 큰 허물과 죄악을 짓게 되며, 부끄러움[慙愧]도 모르고 교만하고 방일하게 되며, 조그마한 쾌락 때문에 후세(後世)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곧 게송으로 말하였다.5) 사상(四相)의 고통을 말한다. 첫째는 생고(生苦)이니 곧 태(胎)에 들어가서 태에서 나올 때까지의 고통이요, 둘째는 노고(老苦)이니 출생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쇠변(衰變)하는 동안에 받는 고통이며, 셋째는 병고(病苦)이니 병들었을 때에 받는 몸과 마음의 고통이요, 넷째는 사고(死苦)이니 목숨이 마칠 때의 고통이며, 또는 병으로 죽거나 혹은 수재․화재로 인해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을 때의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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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이 훨훨 타는 불길에 몸을 던지듯 나라를 탐내는 눈먼 자들 또한 그렇게 하는구나.득(得)과 실(失)에 깊이 집착해 무엇은 하고 또 무엇은 하지 않으면서 나라 일이라는 진흙구덩이에 빠져 고요하고 안정된 곳 얻지 못하네.이렇게 생각했을 때 몸의 행이 지극히 청정해졌고 염오(厭惡)하는 마음을 체득(逮得)하여 곧 벽지불의 도를 얻었네.다시 어떤 스승이 말하였다.“이 왕은 아들의 병을 보고 나서 곧 궁중으로 돌아왔는데, 이웃 나라의 친한 왕이 적의 침범을 당하자 곧 사신을 파견해 도움을 청하였다.이 왕은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그 왕을 도우러 갔다. 그러나 그 나라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싸움이 연이어져 서로를 무참히 살해하고 나아가 부인의 태 안에 있는 어린아이까지 꺼내 죽인 뒤였다.왕은 이런 일을 보고서 깊이 왕위에 대한 싫증을 내면서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나라의 조그마한 즐거움을 탐내고 욕심의 진흙구덩이에 빠져 욕심과 분노를 키워서는 전쟁을 벌이며 시비를 일으키고 재물과 이익을 탐내는 까닭에 똑같이 서로를 살해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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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한 해탈을 구하지 않고 왕위를 쫓다 모조리 사라지는 것이 마치 훨훨 타오르는 불길에 불나방이 몸을 던져 죽는 것 같구나.괴이하구나, 삶과 죽음 속에서 하는 짓마다 전도되어 힘들고 어려운 일 악착같이 하지만 도리어 쓰라린 재앙을 얻는구나.마치 저 높은 산꼭대기와 낭떠러지 가에 꿀벌이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별 것도 아닌 맛을 탐내 고통에 떨어지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도다.이와 같이 스스로 생각하다가 곧 벽지불이 되었다.그리고는 곧 아들에게 말하였다.‘너는 나쁜 사람의 말을 따르지도 않았고 패역(悖逆)의 뜻도 없었다. 네가 만일 나라를 다스린다면 반드시 바른 법으로써 하겠구나. 나는 이제 나라를 너에게 맡기고 떠나려 한다.’아들과 보상(輔相)과 모든 권속이 왕의 이 말을 듣고 모두가 다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합장하고 왕에게 아뢰었다.‘저희 불찰입니다. 대왕이시여, 어디로 가려 하시나이까?’그때 부왕은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해 뜨는 산 위에서 위와 같은 게송으로 말하고는, 사문의 옷을 입고 열여덟 가지의 신변[十八種變]6)을 나타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이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6) 불․보살이 나타내는 열여덟 가지 신변부사의(神變不思議)이다. 진동(震動)․치연(熾然)․유포(流布)․시현(示現)․전변(轉變)․왕래(往來)․권(券)․서(舒)ㆍ중상입신(衆像入身)ㆍ동류왕취(同類往趣)ㆍ은(隱)ㆍ현(顯)ㆍ소작자재(所作自在)ㆍ제타신통(制他神通)ㆍ능시변재(能施辯才)ㆍ능시억념(能施憶念)ㆍ능시안락(能施安樂)ㆍ방대광명(放大光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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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잘 조련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곧바로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 또한 그러하여 고통 받는 다른 사람을 보면 마음이 곧 조순(調順)하게 된다.
6. 구사미(拘舍彌)7) 국왕 대제(大帝)가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부모와 처자 곡식과 비단과 재보(財寶) 등을 잠깐 스쳐가는 것이 객사(客舍)와 같음을 지혜로운 이는 깊이 관찰하고 애욕(愛慾)을 버리고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간다네. 나는 옛날 여러 스승들로부터 전해 온 이런 일을 들었다.일찍이 옛날 가섭불(迦葉佛) 때에 비구가 있었다. 그는 지혜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부드럽고 온화하게 인욕(忍辱)하였으며, 모든 법의 진실한 체성(體性)을 항상 관하였으니, 이른바 ‘음(陰)은 고(苦)요, 공(空)이며,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다. 마치 파초(芭蕉)와 같고, 더운 날 아지랑이와 같으며, 요술과 같고,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관찰하였다. 이렇게 잘 관찰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닦았다.
7) Kauśāmbī의 음역으로 교상미(憍賞彌)․구섬미(拘睒彌)․교섬미(憍睒彌)․구섬비(拘睒鞞)로 음역하기도 한다. 중인도에 있던 옛 왕국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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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태어났고, 하늘의 수명이 다하고는 내려와 구사미성(拘舍彌城)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을 대제(大帝)라 하였다.그의 부왕이 돌아가시자 선업(先業)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고서 겁초(劫初)의 모든 왕처럼 계행(戒行)을 잘 닦고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그때 성안에 큰 장자가 있었으니 재부(財富)가 한량없었다. 그는 대제왕(大帝王)과는 어릴 적부터 친구라 서로 지극히 친한 사이였다.그런데 장자의 몸이 중병에 걸렸다. 왕은 그가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몸소 찾아가 문병하였다. 장자가 병이 들어 모습이 초췌한 것을 보고 왕은 마음이 언짢아져 머리를 숙이고 근심하며 슬퍼하였다.그러자 그 장자는 칠보8)의 발우[鉢]에 금을 가득 담아 왕에게 바쳤다.왕은 장자에게 말하였다.“당신은 지금 병환으로 몹시 괴로우시지요?”장자가 대답하였다.“원컨대, 왕께서는 잘 살펴보시고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십시오.”저희 집은 매우 큰 부자이니 마치 비사문(毘沙門)과 같습니다.사랑스런 말씨[愛語]와 재보(財寶)에 친한 벗들도 많이 모이고 처자와 권속들과 동복(僮僕)과 하인도 많습니다.나는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도 대우도 지극히 후하게 했습니다만
8) 일곱 가지 보옥(寶玉)이다. 첫째는 금(金)이요, 둘째는 은(銀)이며, 셋째는 유리(瑠璃:검푸른 보옥)요, 넷째는 파려(玻瓈:수정)이며, 다섯째는 자거(硨磲:백산호)요, 여섯째는 적주(赤珠:적진주)이며, 일곱째는 마노(碼碯:짙은 녹색의 보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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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죽을 때에 이르러선 저와 짝할 이가 한나도 없습니다.왕이 곧 위로하면서 말하였다.그 말은 매우 진실합니다.당신의 아들과 모든 친척 재보(財寶)와 많은 창고 그리고 나의 용건(勇健)한 힘과 상병(象兵)․마병(馬兵)․거병(車兵)․보병(步兵)비록 이러한 것들이 있다고 해도 구제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우리 모든 친한 벗들은 그대가 병고에 시달림을 보면서도 그저 위로하는 말만 하고 근심하며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또 당신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에도 구제할 수 있는 자는 없나니 오직 그 동안에 지었던 선(善)만을 그대 스스로 가지고 갈 뿐입니다.왕은 그의 병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마음이 선정을 얻은 자와 같아져 중생에게는 온갖 고환(苦患)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깊이 깨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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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생류(生類)들은 반드시 병이 들게 되어 있으니 병이 늘 사람을 괴롭히건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 없네.모든 세간 사람들 반드시 죽음의 길에 들게 되건만 전혀 싫증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네, 이들이 나의 처자라고.저들이 바로 나의 친척이라 하고 이것이 바로 나의 재물(財物)이라 하며 그는 나를 도탑게 대하였다 하고 나는 그의 친한 벗이라고 하네.어리석음의 병에 걸린 마음으로 멋대로 이와 같은 생각을 지어내 화재 같은 우환(憂患)이 앞에 있는데도 어리석고 눈멀어[愚盲] 보지 못하나니 위에서 말한 친한 이들 어느 누구도 구제할 수 있는 자는 없네.이것에 대하여 바르게 사유하자 곧 벽지불의 도를 얻게 되었다.왕의 친척과 내외의 권속은 왕이 도를 얻어 세간의 일을 끊어버리는 것을 보고, 사랑하던 이와의 이별에 불길에 타듯 크게 괴로워하였다. 그때 벽지불이 허공으로 올라가 열여덟 가지의 신변[十八種變]을 나타내고 위와 같은 게송을 말하였다.다시 어떤 이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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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왕이 왕자(王子)로 있을 적에 동산 안으로 들어갔는데 여러 소경들이 서로 붙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왕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음식이 있을 것이라 여겨 길옆에 있다가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해 크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졌다.그래서 즉사한 이도 있었고, 머리가 깨진 이도 있었으며, 손발이 부러진 이도 있었고, 몸이 부서진 이도 있었다.그때 왕자는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근심하면서 생각하다가 말하였다.‘이들이 나를 깨치게 하였도다. 이와 같은 소경들 역시 예전엔 부귀(富貴)를 누렸을 터인데 멋대로 방일한 까닭에 지금 이런 고통을 얻는구나. 나는 이제 이런 일을 보았으니, 행(行)을 잘 단속해 방일하지 않으리라.’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비유하면 불에 달군 금가발로 머리를 장식하면 금가발이 비록 값지고 아름답긴 하나 뜨거운 불길에 결국 해를 입듯 왕위 또한 그와 같아서 삼가하며 방일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 소경들이 나를 깨우치네 스스로 방종해서는 안 된다고.이 왕위로 인하여 몸으로 큰 교만(憍慢)을 일으키고 위력으로 나라의 인민들을 핍박해 모두를 고뇌하게 한다면 뒤에 스스로 고통을 받을 때 그 고통이 백천 배나 더 심하리라. [40 / 50] 쪽
고통 받는 다른 사람을 눈으로 보고도 어떻게 스스로 편안할 수 있으랴 이들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 온갖 고환(苦患)을 내게 보여주는구나.이러한 생각을 했을 때 곧 벽지불의 도를 얻었다.그때 왕자는 소경들에게 재물과 값진 보물을 크게 하사하고는 사문이 되어 법복을 입고 허공으로 올라가 모든 신변(神變)을 나타내고는 가까웠던 모든 이들에게 말하였다.‘나는 지금 성냄과 두려움과 근심이 없기에, 그대들을 혐오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나는 사랑하는 이들과 국토와 국민을 버렸고, 원수도 친구도 재물도 보물도 전혀 없다.’그리고 위와 같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7. 구사미 국왕이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웃고 장난치던 뭇 쾌락의 도구들 침을 뱉어버리듯 버리고 벗어남을 참고 즐기면서 모든 고(苦)를 끊어 없애라.탐애(貪愛)와 어리석음을 없앨 수 있으면 그 마음 해탈을 얻으리니 해탈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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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옛 스승들로부터 이와 같은 일을 듣게 되었다.옛날에 벽지불이 있었다. 그는 과거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선근(善根)을 닦았으며, 맨 나중의 몸[最後身]으로 구사미국에 태어나 구사미국의 왕이 되었다. 그 국토에 큰 가뭄과 지독한 바람과 다섯 별9)이 뒤바뀌고 서로 어긋나는 큰 재앙이 있자, 왕이 태사(太史)와 점상(占相)을 보는 무리10)를 불러 놓고 게송으로 물었다.무슨 연유로 이런 재변이 있는 것인가?큰 가뭄이 들어서 비가 오지 않네.허공에는 구름 한 점 없고 해를 살펴보아도 위광(威光)이 없구나.고기를 먹는 여러 나쁜 새 까마귀ㆍ수리와 솔개ㆍ올빼미들이 허공에서 빙빙 맴돌고 있으니 보는 이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구나.모두들 말하네, 이와 같은 재난은 도대체 누가 저지르는 것이기에 온갖 이상한 일들과 괴변이 이렇게 일어나게 하는 것일까?
9) 화(火)․수(水)ㆍ목(木)ㆍ금(金)ㆍ토(土)의 다섯 행성을 말한다. 10) 성수(星宿:별자리)를 보고 점(占)을 치는 이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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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태사가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제가 아는 대로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모든 국민에게 반드시 핍박과 괴로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왕은 다시 물었다.“어떤 방법으로 이 재앙과 근심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태사가 아뢰었다. “왕께서 만일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싶으시다면 저의 말을 따르셔야 합니다.”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왕께서 만일 왕위에서 물러나 왕의 옷을 벗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섯 달이 다 차도록 남루한 옷으로 걸식을 하신다면 재앙과 환란 저절로 사라지고 왕은 보름달처럼 되실 겁니다.왕은 그의 말에 따라 곧 왕위를 버리고 남루한 옷을 입고 나라를 돌아다녔으며, 여기저리를 지나가다 걸음이 바시다성(婆翅多城)에 이르렀다.그 성에 도착한 뒤에 다른 나라의 왕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고, 바시다의 왕도 나라의 안락을 위해 병사를 일으켜 가서 항거하게 되었다.두 나라 군사들이 서로 싸우다가 두 나라 왕이 모두 죽게 되자 바시다성의 여러 왕자들이 나라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퉈 다시 큰 싸움이 벌어졌다.비라선왕(毘羅仙王)은 이 일을 보고 나서 부르짖었다. “괴이하구나.”그리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왕위가 비록 높고 호사스럽다 하나 그 즐거움은 너무도 보잘 것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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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것을 위하여 온갖 지독한 고통을 감수하는 걸까?다투는 마음으로 전쟁을 일으켜 좋아하고 집착하며 온갖 악을 좇는 것이 저 파리가 꿀을 탐식하다가 꿀에 달라붙어 모조리 죽는 것 같나니 사람 또한 그와 같아서 조그마한 즐거움을 탐하는 까닭에 전쟁을 벌려 스스로 상해하네. 왕위는 비루하고 천하다 하겠으니 온갖 고뇌(苦惱) 많이도 불러 보아 그 환해(患害)로 멸망에 이르나니 마치 독이 섞인 음료수를 마시면 독이 퍼지면서 몸이 죽게 되는 것과 같다.자기 한 몸만 위하기 때문에 상해(傷害)하는 바가 많은 것 어리석은 자 왕의 즐거움을 탐내지만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너무도 많나니 나는 지금부터 영원히 그만두어 다시는 이런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리라.그리고 이 나라의 사무(事務)에는 그 속에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하니 영화와 쾌락은 잠시 동안이요 근심과 괴로움은 오래 이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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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아름다운 황금으로 된 집이 불길에 훨훨 타는 것과 같나니 지혜로운 이는 화상이 두려워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이런 생각을 했을 때 곧 벽지불의 도를 깨달았으며 신통의 힘 때문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졌네. 곧 사문의 형상이 되어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올라갔고 이내 허공에서 위와 같은 게송을 말하였다.그가 곧 날아서 설산의 여러 벽지불 처소에 이르자, 그곳의 벽지불들이 물었다.“어떤 인연으로 도과(道果)를 깨치게 되셨습니까?”그는 위의 게송으로 자세히 대답하였다.
8. 바라나 국왕 친군(親軍)이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세간에서 웃고 노는 쾌락 그리고 사랑스런 아(我)와 아소(我所)를 모두 다 놓아 버리고 마음과 뜻이 해탈을 얻어 모든 근이 다 적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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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는 옛날 스승들로부터 이와 같은 일을 전해 들었다.과거 바라나성에 친군(親軍)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두 부인을 마음으로 너무도 사랑하여 음행을 즐기고 집착하였으며, 늘 방일하게 취한 사람처럼 여색에 빠져 지냈으며, 또한 마치 향산(香山)11)의 제멋대로인 코끼리가 향기가 흘러나올 때마다 마리산(摩梨山)12)으로 들어가 음행을 마음껏 저지르는 것과 같았다. 그때 두 부인은 서로를 질투하여 각자 기회를 엿보다가 한 부인이 곧 독약을 그의 심복에게 주었고 그 심복은 약을 가져다 다른 부인에게 먹였다. 그 부인은 약을 먹고 미칠 듯 답답해하며 누워서 몹시 고통스러워하다가 곧 목숨을 마쳤다.다른 부인은 그가 목숨을 마친 것을 보고는 거짓으로 몹시 슬퍼하며 괴로운 척하고 스스로 그의 머리를 흩뜨리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니, 온 궁중이 가엾이 여기면서 슬퍼하였다. 왕도 그의 죽음을 듣고 크게 괴로워하였다.부인의 좌우에 있던 직인(直人)은 걸치고 있던 영락(瓔珞)과 몸을 치장한 꾸미개들을 모두 떼어버리고 흙을 몸에 발랐으니, 근심의 독이 심장을 꿰뚫는 것이 마치 저 비둘기 떼가 매에게 쫓기는 것과 같고 금시조(金翅鳥)13)가 모든 용녀(龍女)들을 놀라게 하는 것과 같았다. 궁중의 채녀(采女)들도 죽음에 놀라워하는 것이 또한 그와 같았다.그때 궁중은 묘지와 같았고, 또 검은 먼지가 광명을 가린 것처럼 모든 궁인(宮人)들이 근심에 싸인 것 또한 그와 같았다.
11) 무열지(無熱池)의 북쪽에 있고 염부제주(閻浮提洲)의 최고 중심에 있다. 『구사론(俱舍論)』에서는 향취산(香醉山)이라 하였다.
12) 산의 이름이며 전단(栴檀)이 생산되는 곳이라 한다.
13) 가루라(迦樓羅)ㆍ가유라(加留羅)ㆍ게로다(揭嚕茶)라고 음역한다. 묘시조(妙翅鳥)라고도 번역하며 일명 소발랄니(蘇鉢剌尼)라고도 한다. 조류의 괴수로서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독수리처럼 사나운 성질을 가진 새로 신격화한 새이며 인도 사람이 상상하는 큰 새이다.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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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궁중 사람들이 이와 같이 근심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면서 천관(天冠)과 영락과 몸에 걸쳤던 복식(服飾)을 모조리 땅에 버리고 시신(屍身) 곁으로 갔고, 모든 채녀들이 너무도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왕은 이것을 보고 나서는 더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다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비유하면 한창 더운 날에 아름다운 꽃이 볕에 시들듯 죽음이 찾아오면 사람의 형상이 소멸하여 얼굴빛이 검푸르게 변하는구나.입술과 이는 먼지와 때에 더럽혀지고 눈은 꺼지고 콧날은 틀어지고 노래하고 춤추던 아름다운 자태 빳빳해져 목석(木石) 같구나.예전에는 나로 하여금 최고의 즐거움이라며 애착하게 하던 것이 왜 갑자기 오늘은 나를 두렵게 할까?싫구나, 삶과 죽음의 재앙이여 청정하지 못하고 지극히 더러우며 꿈처럼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고 또한 파초의 속과 같아 튼튼하고 충실한 모양 없으며 허깨비․물거품․아지랑이와 같고 잠깐 나타나는 것이 물결과 같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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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라면 싫어할 바로다.자세히 살필 줄 모르는 이는 좋아하고 집착하는 생각을 멋대로 일으키고 이 부정(不淨)한 것에 대해 몸이라는 생각을 멋대로 일으켜 답답하게도 지키고 집착하는 것이 마치 잠자는 사람과 같구나.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그리 길지 않은 사이에 부인의 시신을 화장하고 장례를 마쳤다. 다른 부인은 자기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좋은 음식을 미리 먹고는 거짓으로 몹시 슬퍼하고 괴로운 척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며 슬퍼하는 기색을 보였다.그러면서도 그의 허물이 드러나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수심이 맺혔고, 수심이 맺힌 탓에 음식이 소화되지 않아 곧 큰 병이 되었다.왕은 그가 병이 난 것을 보고 갑절이나 더 슬퍼하고 괴로워하다가 곧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서 ‘이와 같은 것이 모두 생사(生死)의 과환(過患)이로구나’ 하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여인이 사랑을 일으키게 하는 것처럼 누(累)를 끼치는 것도 지극히 많구나.사람치고 그렇지 않은 자 없나니 사랑으로 인해 즐거움을 일으키다 도로 다시 큰 미움을 일으키네.사랑은 괴로움의 근본 사랑이 모이는 때를 보면 이것이 무상(無常)한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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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던 이 단정하고 한창인 나이였지만 하루아침에 죽음이 찾아왔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어떻게 여기에 즐거움이 있겠는가?지혜로운 자라면 은혜와 사랑이 합하여 모일 때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킬 자 누가 있을까?늙고 병들고 죽는 우환이 두려우니 이 때문에 나는 영원히 여의리라.이런 생각을 했을 때 곧 벽지불의 도를 얻었다.그는 곧 왕자(王者)의 의복과 영락을 걸치고는 날아서 허공으로 올라가 허공에서 위와 같은 게송을 말하였고, 사문으로 변해 설산(雪山)의 여러 벽지불 처소로 날아갔다.
9.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막내아들이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과거 무량겁(無量劫) 때에 한 전륜성왕이 있었는데 천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금륜보(金輪寶)를 타고, 칠보(七寶)를 구족하고, 사병(四兵)14)이 호위하면서 따르고, 북[鼓]과 일산[蓋]이며 몸치장이 모두 다 갖추어진 것을 보고서, 그 막내아들이 곧 어머니에게 물었다.
14) 전륜왕(轉輪王)이 다닐 때 따라다니는 병기의 네 가지인데 상병(象兵)․마병(馬兵)․거병(車兵)․보병(步兵)이다. 인도의 군제(軍制)는 네 가지로 나뉘었다. 상병은 코끼리에 술을 먹여 취하게 하여 적군의 진중에 놓아서 적병을 밟아 죽이게 한 것이요, 마병은 기병(騎兵)을 말하며, 거병은 전차(戰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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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 이런 일산 등 갖가지 장식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어머니가 곧 대답하였다.“너는 뼈가 썩을 때까지도 이런 것을 얻을 수 없다.”아들이 물었다.“어째서 얻을 수 없습니까?” “너에게는 999명의 형들이 있으니, 그들이 의당 그 자리를 계승해야 한다. 그 차례를 세어 보아라. 도무지 너에게까지는 이르지 않는다.”아들은 곧 생각하였다.‘나는 이미 저와 같은 몸차림을 할 수 없는 것이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어서 몸과 뼈가 썩고 마는 것이구나.’이렇게 갖가지 생사의 과환(過患)을 생각하다가 바로 깨쳐 벽지불이 되어 몸이 허공으로 올라가서는 열여덟 가지의 신변을 나타냈다.그러자 어머니가 곧 다시 청원(請願)하였다.“멀리 떠나지 마시고 정원에 머물면서 나의 공양을 받으시오.”이때 벽지불은 여러 어머니들의 청을 받아들여 곧 후원(後園)에 머물면서 날마다 공양을 받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때 벽지불이 몸뚱이가 존재하기는 것이 싫어 곧 버리고 열반에 들자 여러 어머니들은 그를 그리워하면 향나무를 수북이 쌓아 그의 몸을 화장하였고, 그의 사리(舍利)를 거두어 보배 병에 담아 곧 후원에다 그를 위하여 큰 탑을 세웠다.이때 전륜왕이 사성(四城)을 유람하고 돌아와 후원에 이르러서 큰 탑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묻자, 정원지기가 왕에게 아뢰었다.“이것은 왕의 막내 아드님 것입니다. 벽지불이 되어 여기서 열반하시자 여러 어머님들이 여기에다 그를 위하여 탑을 세우셨습니다.”그러자 전륜성왕은 곧 그의 어머니를 불러 물었다.“나의 아들이 어떻게 죽었기에 이 탑을 세운 것이오?”그 어머니가 위의 일을 자세히 왕에게 아뢰자 왕은 그의 어머니를 책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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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을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지금 비록 열반했지만 왕의 몸치장을 탑 위에 설치하리라.”이 인연을 말미암아 한량없는 겁 동안 항상 전륜성왕이 되어 저절로 복을 누리면서 지금까지도 다하지 않고 있다.만일 생사(生死)에 처했다면 마땅히 2500세상 동안 전륜성왕이 되었을 것이나 성불하셨기 때문에 2500개의 보배 일산[寶蓋]을 받으셨으니, 아사세왕(阿闍世王)15)이 부처님께 500개의 일산을 올렸고, 비사리(毘舍離)의 율차(律車) 자손들16)이 부처님께 500개의 보배 일산을 올렸으며, 바다의 용왕이 부처님께 500개의 보배 일산을 올렸고, 아수라왕(阿修羅王)17) 역시 부처님께 500개의 보배 일산을 올렸으며, 하늘의 제석[天帝釋] 역시 부처님께 500개의 일산을 올렸다.그때 세존께서는 단 하나의 일산도 받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장래의 제자들이 만일 의복과 음식의 공양이 모자라게 되면 이 복력(福力)으로써 장차 사람과 하늘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급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인연 때문에 현성(賢聖)의 복전(福田)은 깊고 넓으면서 한량없는 줄 알아야 한다.
15) 중인도의 마가다국의 왕이며 아사다설돌로(阿闍多設咄路:阿社多設咄路)라고도 한다. 미생원(未生怨)이라 번역하며,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왕사성(王舍城)의 치자(治者)였다.
16) 율차(律車)는 licchavī의 음역으로 비사리(毘舍離) 일대에 거주했던 찰제리 종족 이름이다. 리차(離車)ㆍ리차(利車)ㆍ리사(離奢)ㆍ률창(栗唱)ㆍ례차(隷車)ㆍ려창(藜昌)ㆍ리차비(梨車毘)ㆍ률첩바(栗呫毘)로 음역하기도 한다.
17) 아소라(阿素羅)ㆍ아소락(阿素洛)ㆍ아수륜(阿須倫)라고도 음역하고 줄여서 수라(修羅)ㆍ비천(非天)ㆍ비류(非流)ㆍ부단정(不端正)이라고 번역한다. 아수라는 육취(六趣) 중의 하나이며 싸우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전투에 존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