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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포태경(佛說胞胎經)

wowinchon 2020. 10. 2. 23:14

불설포태경(佛說胞胎經)

 

서진(西晋) 월지국(月氏國) 삼장(三藏) 축법호(竺法護)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을 유행하고 계셨다.

그 때 현자 난타(難陀)는 선정에 들어 사유(思惟)하고 있다가 곧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리고 5백 비구들도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그 발 아래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 쪽에 앉아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을 위해 경을 말하리라. 이 경은 처음 말도 좋고 중간 말도 좋으며 끝의 말도 좋으니라. 그 뜻을 분별해 보면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는 것이 미묘하게 두루 갖추어져 있다. 너희들을 위해 사람이 어머니의 태를 받아 나는 때를 설명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예, 세존이시여.”

현자 난타는 분부대로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태를 받지 못하는가? 부모가 더러운 마음을 일으켜 인연이 회합할 때, 어머니에 대해 아름답다는 마음이 생겨,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중음신(中陰神)이 와 그 앞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가 정기(精氣)를 잃거나, 혹 아버지는 정기를 잃는데 어머니가 잃지 않거나, 혹은 아버지는 청정한데 어머니가 청정하지 않거나, 혹은 어머니는 정결한데 아버지가 불결하거나, 혹은 어머니가 그 때에 태 안이 막히면 결국에는 태를 받지 못하게[受胎] 된다.

이와 같은 결과는 혹 어머니가 찬 기운이 성하거나, 혹은 그때 소리가 가까우면 이 정기가 멸하는 수가 있으며, 혹 너무 충만하거나, 혹은 약(藥)과 같거나, 혹은 열매와 같거나, 혹은 필발씨[蓽茇中子]와 같거나, 혹은 날 과일과 같거나, 혹은 새 눈[鳥目]과 같거나, 혹은 의사(懿沙)의 눈과 같거나, 혹은 사갈(舍竭)의 눈과 같거나, 혹은 축가(祝伽)의 눈과 같거나, 혹은 눈동자와 같거나, 혹은 나뭇잎과 같거나, 혹은 때[垢]가 뭉친 것과 같은 경우이다.

혹은 깊거나, 위가 깊거나, 혹은 기우(器祐)가 없거나, 혹은 음성에 가깝거나, 혹은 단단한 씨가 구슬과 같고, 혹은 벌레에 먹히고, 혹은 왼쪽이 가깝거나, 혹은 오른쪽이 가깝거나, 혹은 대청(大淸)하거나, 혹은 너무 갑자기 쏟아지거나, 혹은 고르지 못하여 왼쪽이 마땅하나 반대로 오른쪽에서 나오거나, 혹은 물병[水甁]과 같거나, 혹은 과일씨와 같거나, 혹은 낭당(狼唐)과 같거나, 혹은 여러 흠[衆瑕]이 있거나, 혹은 온갖 냉증이 있거나, 혹은 열이 많거나,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오는 중음신이 비천하거나, 혹은 오는 중음신은 귀한데 부모가 비천하면 그 때문에 생(生)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행이 같고 뜻이 같으며, 귀하고 천함이 같고, 마음이 서로 같으면 곧 어머니 태에 들어간다.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태를 받지 못하는가? 그 전에 착잡한 일이나 조화되지 않은 일들이 없어 뜻이 같고, 행이 같으며, 귀함과 천함이 같으며, 전생의 인연이면 응당 자식을 낳을 것이니, 오는 중음신이 마땅히 부모를 만나 자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정신이 두 가지 마음을 품어 생각하는 바가 각기 다르면 이와 같은 일은 화합하지 않아 태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가? 그가 박복한 사람이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물과 찬 바람이 있고, 지금 하늘에서 비가 내리며, 대중들은 와서 나를 때릴 것이다. 나는 저 풀더미 속으로 들어가거나, 잎이 우거진 풀덤불 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계곡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거나, 혹은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하리라. 그러나 나는 저 찬 바람과 큰 비와 대중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복이 많고 세력이 있으면 스스 로 생각하기를 ‘지금 찬 바람이 불고,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며, 대중과 함께 나는 저 집 위의 큰 강당에 올라가거나 단층집의 의자에 앉아 있으리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중음신이 어머니 태에 들 때에는 그 생각이 여러 가지로 각기 다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중음신이 그 태에 들면 곧 탯집[藏]을 이룬다. 그 태를 이룬다는 것은 부모의 부정(不淨)한 정(精)을 떠난 것이 아니며, 부모의 부정이 의지할 곳을 빌어 인연이 화합해서 포태(胞胎)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를 떠나지도 않는 것이다.

아난아, 비유하면 타락[酪]을 담는 병과 같다. 타락병에 우유를 넣으면 타락을 담았던 인연으로 혹 생소(生蘇)가 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는 그렇게 소(蘇)가 될 수는 없고, 생소가 타락에서 나온 것도 아니지만 또한 타락을 떠난 것도 아니며, 인연이 화합해서 생소가 되는 것이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부모의 부정을 좇아 몸이 된 것이 아니지만 부모의 부정을 떠나 몸이 된 것도 아니며, 부모가 반연이 됨으로 인해 포태가 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비유하면 채소[生草菜]에서 벌레가 생기는 원인과 같으니라. 즉 벌레가 채소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채소를 떠난 것도 아니며, 채소에 의해 인연이 화합하여 벌레가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하는 가운데 벌레가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아서 아난아, 부모의 부정으로 몸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부모의 부정을 떠나서 몸이 되는 것도 아니며, 부모가 반연이 됨으로 인해 포태가 되는 것이다.

또 비유하면 아난아, 밀[小麥]을 인해 벌레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즉 벌레가 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밀을 떠난 것도 아니며, 밀이 반연이 됨으로 인해 벌레가 생기는 것이며, 이 화합으로 인해 자연히 벌레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아서 아난아, 부모의 부정에 의한 것도 아니지만 부모의 부정을 떠나 몸이 되는 것도 아니며, 부모가 반연이 됨으로 인해 포태가 이루어져 모든 감관과 4대(大)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비유하면 아난아, 저 파달(波達) 열매에서 벌레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즉 벌레는 파달 열매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파달 열매를 떠난 것도 아니며 파달 열매가 반연이 됨으로 인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아서 아난아, 부모의 부정에 의한 것도 아니지만 부모의 부정을 떠나 몸이 되는 것도 아니며, 부모가 반연이 됨으로 인해 포태가 이루어져 모든 감관과 4대(大)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비유하면 아난아, 타락을 인해 벌레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즉 그 벌레는 타락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타락을 떠나 생기는 것도 아니며, 타락을 반연으로 삼아 벌레가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아서 아난아, 부모의 부정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부모의 부정을 떠나 몸이 되는 것도 아니며, 부모가 반연이 됨으로 인해 포태가 이루어져 모든 감관과 4대가 성립되는 것이다. 부모의 반연으로 인해 곧 땅의 요소[地種], 즉 단단한 것과 축축한 물의 요소[水種]와 뜨거운 물의 요소[火種]와 기식(氣息)의 바람의 요소[風種]가 성립되는 것이다.

가령 아난아, 부모로 인해 포태가 이루어질 때, 땅의 요소만 있고 물의 요소는 없을 경우, 마치 미숫가루와 같아서 혹 살점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문드러져버릴 것이다.

또 가령 부모로 인해 포태가 이루어질 때, 곧 물의 요소만 있고 땅의 요소가 없을 경우, 그것이 엷어져서 물기와 같이 되기 때문에 마치 기름이나 물과 같을 것이다.

또 아난아, 물의 요소는 땅의 요소에 의해 무너지지 않고, 땅의 요소는 물의 요소에 의해 달라붙는 곳이 없는 것이니라.

가령 아난아, 부모의 인연으로 포태가 이루어질 때, 땅의 요소와 물의 요소만 있고, 불의 요소를 의지하지 않을 경우 곧 무너져 없어지고 말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여름 5월 한창 더울 때에 놓아둔 고깃덩어리 속의 불의 요소로 인해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면서 문드러져 곧 썩어버리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가령 부모의 태로 인해 땅의 요소와 물의 요소가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불의 요소로 인해 썩거나 없어지지 않느니라. 가령 아난아, 부모의 태로 인해 땅의 요소와 물의 요소와 또 불의 요소가 이루어질 때 바람의 요소가 없을 경우, 바람의 요소 때문에 존립할 수 없고 자라지 못해 곧 성취하지 못한다.

또 아난아, 중음신은 그 안에 있으면서 그 죄와 복을 반연하여 4대인 땅[地]∙물[水]∙불[火]∙바람[風]을 성취하여 구경(究竟)토록 물의 요소의 서로 부지함과, 불의 요소의 분리함과, 바람의 요소가 불어 성장하게 함으로 성취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연꽃이 물 속에 나서 청정을 구족하고 꽃이 아직 피지 않았을 때, 바람이 불어 그 꽃을 피우고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중음신이 안에 있으면서 그 죄와 복을 인해 4대(大)를 이루되, 땅의 요소를 성취하고, 물의 요소의 서로 부지함과, 불의 요소의 분리함과, 바람의 요소가 불어 성장하게 하여 차츰차츰 성취되는 것이니라. 그러나 그것은 부모 포태의 반연으로만 사람의 중음신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또 부모의 복도 아니요, 아버지의 몸도 아니요, 어머니의 몸도 아니며,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니, 공(空)의 인연도 아니요, 여러 반연도 아니며, 다른 반연도 아니다. 또 베풂을 함께하고 그 뜻을 같이 하고 화합하여 배(胚)를 이루어 포태를 에워싸느니라.

또 아난아, 비유하면 5곡 초목의 종자가 완전하여 썩지도 않고 벌레 먹지도 않은 것을 기름진 땅을 갈고 거기 뿌려 그것이 나서 잘 자란다면, 아난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종자가 혼자서 땅과 물로 인해 그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인가?”

아난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부모의 구정(構精)을 따르지 않고 포과(胞裹)를 이룬다는 것과 같나니, 오직 부모에 의해서만 몸을 받은 것도 아니요, 또한 공허한인연도 아니다. 인연이 모여 되는 것으로서 4대 등이 화합한 인연이 나타나 부처의 포과를 얻어 배태되는 것이니라.

또 비유하면 아난아, 눈이 밝은 사람이 만일 마니주(摩尼珠)를 햇볕에 가져다 놓고 한낮이 되었을 때 마른 쇠똥이나 쑥이나 베를 가까이 두면 곧 불이 붙어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은 해에서 난 것도 아니요, 마니주에서 난 것도 아니며, 화경이나 쑥에서 난 것도 아니지만 또 그것을 떠나 것도 아닌 것과 같으니라.

또 아난아, 인연이 화합하고 인연이 함께 이르되 적당하여 더하거나 덜하지 않아서 불이 생기는 것이니 배태도 그와 같아서, 부모를 따르지도 않고 부모를 떠나지도 않으며, 또 부모의 부정한 정(精)을 반연하여 포과를 이루고, 그것으로 인해 몸[色]이 만들어져 느끼고[痛痒], 생각[思想]하고, 지어가고[生死], 의식[識]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그 이름을 반연하여 본래의 색을 이루기 때문에 그것을 명색(名色)이라 한다. 또 아난아, 이 연기(緣起)를 따르는, 가고 돌아옴과 시작과 끝남을 나는 칭찬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조그만 창병(瘡病)의 냄새와 같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다 싫어하거늘 하물며 많은 창병이겠는가? 조금 터져 새는 것도 더러운데 하물며 많은 것이겠는가? 이와 같이 아난아, 조금만 윤회하며 윤회로 종시(終始)에 머무는 것도 나는 칭찬하지 않거늘 하물며 오랜 세월이겠는가? 왜냐 하면 모든 죽음과 윤회의 우환은 매우 괴롭기 때문이니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그 냄새나는 곳을 좋아해 어머니 태에 들어가겠는가?”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7일 동안 어머니 태를 받아서는 어떻게 자연히 태가 이루어지는가? 처음에 누워서 이룩되지 못했을 때는 그 태는 자연 그대로와 같다. 즉 7일 동안은 거기에 머물러 증감이 없다가 차츰 뜨거워지며 더욱 단단해지면서 곧 땅의 요소가 성립되고, 그 부드럽고 습한 것은 물의 요소가 되며, 그 중에서 따뜻한 것은 불의 요소가 되고, 그 가운데를 관통하면 바람의 요소가 된다.

14일째는 전전(展轉)이라는 바람이 있어 천천히 일어나 부는데 왼쪽 옆구리를 향해 불거나, 혹은 오른쪽 옆구리에 불어서 그 몸에 모여 포과가 되는데, 그것은 마치 타락 위의 기름과 같으며 그 정(精)이 더욱 굳어지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그것이 7일 동안 더욱 뜨거워지면 그 중에서 단단한 것은 땅의 요소가 되고, 부드럽고 습한 것은 물의 요소가 되며, 그 따뜻한 것은 불의 요소가 되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람의 요소가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1일째는 그 태 안의 어머니 배 속에 성문(聲門)이라는 바람이 있어 천천히 일어나 불어 그 태과(胎裹)를 더욱 엉기게 해 단단하게 한다. 그 단단한 것은 무엇과 같은가? 손가락에 붙어서 불어난 부스럼과 불어나는 살덩이와 같나니 그 정(精)도 그렇게 변한다. 그 가운데서 7일 동안 머물러 더욱 변화해 성숙해지면 그 단단한 것은 땅의 요소가 되고, 부드럽고 습한 것은 물의 요소가 되며, 그 따뜻한 것은 불의 요소가 되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람의 요소가 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8일째는 그 태 안의 어머니 배 속에 음식(飮食)이라는 바람이 일어나 그 태 속에 불어 더욱 단단해지게 하는데 그 단단한 것은 무엇과 같은가? 마치 피를 머금는[含血] 무리가 부주(不注)라는 새끼를 두었는데 속뼈에 알맹이가 없는 것처럼 그 굳은 것도 또한 그와 같다. 거기서 7일 동안 머물러 더욱 변화해 성숙해지면 그 단단한 것은 땅의 요소가 되고, 부드럽고 습한 것은, 물의 요소가 되며, 그 따뜻한 것은 불의 요소가 되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람의 요소가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35일째는 그 태 안의 어머니 배 속에 도어(導御)라는 바람이 일어 그 단단한 정에 불어 형체를 변하게 하여 다섯 곳[五處]을 이루는 조짐이 나타나나니, 이른바 두 정강이뼈와 두 어깨와 하나의 머리이다. 마치 봄에 허공에서 비가 내려 나무의 잎과 가지를 자라게 하는 것처럼, 그 태(胎)도 이와 같아서 그 어머니 배 안에서 변화하여 다섯 가지 조짐을 이루나니, 이른바 두 정강이 뼈와 두 어깨와 하나의 머리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42일째는 어머니 배 속에 있는 그 태 안에 위수(爲水)라는 자연의 바람이 불어 그 태 안에 그 몸을 변하게 하고 네 가지 조짐을 이루나니 이른바 두 무릎과 두 팔꿈치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49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회전(廻轉)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불어 변화시켜 네 가지 조짐을 이루나니 이른바 보드라운 두 손과 보드라운 두 팔이다. 그것은 차츰 저절로 자라 부드럽고 연약해져, 마치 물거품이 마를 때처럼 그 태 안의 네 가지 조짐도 그와 같아서 두 손과 두 발의 부드러운 것이 나타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56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퇴전(退轉)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불어 그 태 안에 스무 가지 조짐이 나타나는데, 열 발가락과 열 손가락이다. 비유하면 허공에서 비가 내려 나뭇가지에 흘러 더욱 무성하게 하는 것처럼, 그 때 배 속의 태 안에 스무 가지 살점이 생겨나나니 즉 열 발가락과 열 손가락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63일째에는 어머니 배 안의 그 태 속에 자연의 바람이 일어나 아홉 구멍이 생긴다. 이른바 두 눈과 두 귀와 두 콧구멍과 입과 또 밑의 두 구멍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70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좌단(痤短)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일어나 그 태 속에 불어 급한 병으로 갑자기 까무라치면서 7일 동안 그 안이 매우 단단해지며, 7일째 밤에는 보문(普門)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일어나 그 몸을 정리하여 마치 견고하고 구족한 음성과 같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77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자연히 변화하는 힘을 가진 이괴(理壞)라는 바람이 일어나 그 태 속에 불어 그 모양을 잡으며, 어머니로 하여금 불안하여 질주하게 하거나, 초조하여 동요하거나, 거동이 유약하여 느리거나, 괜히 기뻐 웃거나 말을 헤프게 하거나 노래와 춤을 추거나 바람이 일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 태 안에 앉아 때가 되면 기꺼이 손과 다리를 펴며, 그 태의 전향(轉向)이 이루어질 때에는 모든 흩어진 것이 모여 안정된다. 또 주전(柱轉)이라는 바람이 일어 머리에 모였다가 그 정수리에 흩어지면서 그것을 넘어뜨리는데 마치 대장장이가 풀무를 불어 위에서 굴리는 것처럼 한다. 이와 같아서 아난아, 그 주전풍(柱轉風)이 목에 이르러 거기서 산발적으로 돌면서 오간다. 그 바람은 목에서 돌면서 그 목구멍과 배꼽과 모든 손발가락을 열어 그것을 뚫어 새게 하고 그 침전(侵轉)을 더욱 성취시키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84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부면(膚面)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불어 그 태 속에 그 위장의 좌우의 형상을 이루게 한다. 비유하면 연뿌리가 땅에 붙는 것처럼, 그 위장이 성취되어 몸을 의지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열여덟 가닥으로 빈, 섬유가 얽힌 도랑이 되며, 이레가 되면 기모(棄毛)라는 자연의 바람이 불어 그 혀가 생기게 하고, 또 눈을 뜨게 하며, 몸의 백 마디를 이루어 다 갖추게 하여 의지함을 줄이지 않고 만 천 마디가 생기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91일째에는 어머니 배의 그 태 안에 몸의 여읨[羸]을 깨닫고 또 배고프고 목마름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먹은 음식이 아이 몸 안에 들어가면 아이는 태 안에서 그것을 받아먹고 어머니에 의해 자라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98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경루(經縷)라는 자연의 바람이 그 정체(精體)에 불어 9만 개의 힘줄이 생기는데, 2만 2천 5백 개는 몸 앞에 있고, 2만 2천 5백 개는 등에 있으며, 2만 2천 5백 개는 왼쪽 옆구리에 있고, 2만 2천 5백 개는 오른쪽 옆구리에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05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홍련화(紅蓮花)라는 자연으로 변화한 바람이 부는데, 그 이름은 파담(波曇)으로서 그 아이의 몸에 불어 20개의 맥(脈)을 편안하게 한다. 다섯 개의 맥(脈)은 몸 앞에 있고, 다섯 개의 맥은 등 뒤에 있으며, 다섯 개의 맥은 왼쪽 옆구리에 있고, 다섯 개의 맥은 오른쪽 옆구리에 있다. 그 맥 가운데에는 무앙수(無央數)의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의 빛깔들이 있는데 각각 현목(現目)이라고 한다. 다음 것의 이름은 역세(力勢)이고, 또 주립(住立)이며, 또 견강(堅强)이다.

또 청색이나 백색의 한 가지 빛깔이 있는데, 백색은 붉은 것이 되기도 하고, 적색은 흰 것이 되기도 하며, 혹 백색은 누런 것이 되기도 하고 혹 청백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소색(蘇色)ㆍ낙유색(酪油色)이기도 하며, 생숙(生熟)이 서로 뒤섞이고 숙숙(熟熟)이 서로 뒤섞인다. 그 20개의 맥(脈)에 낱낱 40개의 권속이 있어서 합하면 8백 개의 맥(脈)이다. 2백 개는 몸 앞에 있고 2백 개는 등 뒤에 있으며, 2백 개는 왼쪽에 있고 2백 개는 오른 쪽에 있는데, 2백(百)∙2력(力)∙2존(尊)∙2역세(力勢)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8백 개의 맥(脈)에 낱낱 맥마다 만(萬) 개의 권속이 있어서 합하면 8만 개의 맥인데 2만 개는 가슴과 배에 있고 2만 개는 등에 있으며, 2만 개는 왼편에 있고 2만 개는 오른편에 있다. 그 8만 개의 맥에는 무수한 구멍[空]이 있어서 헤아릴 수조차 없나니, 한 개의 구멍ㆍ두 개의 구멍ㆍ세 개의 구멍, 내지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 비유하면 연꽃 줄기에 많은 구멍이 있고 거기에는 차례로 한 개의 구멍∙두 개의 구멍∙세 개의 구멍, 내지는 일곱 개의 구멍이 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그 8만 개의 맥도 역시 그러하여 셀 수 없는 무수한 뿌리의 구멍[根空]이 있어서 하나∙둘∙셋 내지 일곱 개가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모든 맥(脈)은 털구멍으로 함께 서로 연이어져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12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무량(無量)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아이의 몸에 불어 그 뼈마디를 바르게 하여 각각 제 자리에 있게 하며, 두 눈∙두 귀∙콧구멍∙입∙목을 소통하게 한다. 두루 심장을 안정시켜 먹는 음식이 유통하여 걸림이 없게 하고 온갖 구멍에서 흘러 들어가고 흘러 나오게 하는데, 역순(逆順)으로 몸을 따라 차질이 없게 한다. 설령 구애됨 없이 다 갖추더라도 마치 옹기장이 집에서 옹기 만드는 스승과 제자가 진흙을 잘 조화하여 두드리고 골라서 위아래를 잘 다스려 떨어지지 않게 하여 제 자리에 잘 두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죄와 복의 인연으로 자연히 바람이 생기면서 그 형체를 변화시켜 그 눈∙귀∙코∙입∙목구멍∙목을 소통하게 하고, 그 심장(心臟)을 열어 놓아 온갖 음식이 잘 통하게 하며, 모든 구멍에서 나오거나 들어감이 걸림 없어서 그가 먹고 마시는 것을 자유롭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19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모우면(耗牛面)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아이의 몸에 불어 그 안정(眼精)을 열어 깨끗하여 빛나게 하며, 또 두 귀의 정(精)과 코와 입의 문을 다 깨끗이 빛나게 하여 티가 없게 하는데, 비유하면 아난아, 저 거울을 가는 스승의 제자가 더러운 거울을 가져다 갈고 닦아 기름으로 빛나게 하고 그 때를 없애 빛이 안팎에 트이게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아난아, 죄와 복의 인연으로 자연의 바람이 그 눈과 코와 입을 열어 그것이 청정하여 티가 없이 트이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26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제거해 다 청정하게 한다. 비유하면 월성곽(月城郭)이나 사람의 궁전에 대견강(大堅强)이라는 바람이 불어 궁전을 돌면서 모든 것을 쓸어 저절로 청정케 하여 아무 더러움이 없는 것처럼, 그 태도 그와 같아서 어머니 배에 들어간 모든 정(精)이 바람에 불려 저절로 깨끗하고 완전해지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33일째에는 그 태 안에서 바로 4근(根)을 얻나니, 즉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이니라. 처음으로 어머니 배 속에서 3근(根)을 얻나니, 즉 몸[身根]ㆍ마음[心根]ㆍ목숨[命根]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40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에 앙항()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아이의 몸에 불어 그 왼발의 뼈를 나게 하고, 그 오른발에 불어 뼈를 나게 하며, 네 개의 뼈는 무릎에 있고, 두 개의 뼈는 정강이에 있으며, 세 개의 뼈는 목에 있고,

열여덟 개의 뼈는 옆구리에 있으며, 열세 개의 뼈는 손바닥에 있고, 각각 스무 개의 뼈는 좌우의 발에 있으며, 네 개의 뼈는 팔꿈치에 있고, 두 개의 뼈는 장딴지에 있으며, 두 개의 뼈는 어깨에 있고, 열여덟 개의 뼈는 목에 있으며, 세 개의 뼈는 귀 바퀴에 있고, 서른 두 개의 뼈는 입 안의 이에 있으며, 네 개의 뼈는 머리에 있다.

비유하면 아난아, 목수나 화가가 목인(木人)을 만들 때와 같다. 즉 모든 관절을 모으고는 먼저 재목을 다듬어 한데 모아 두고 줄을 나무에 매고 경압(經押)을 만들어서는 줄을 이어 형상을 만들면 사람과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이 아난아, 죄와 복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바람이 불어 모양을 만들고 골절로 변하게 하면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기서 140일 동안 배 속에 있다가 때를 맞추어 몸에 2백 개의 미세한 뼈가 생겨서는 살과 섞여 합쳐진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47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소유(所有)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태아 몸에 불어 살이 생기게 한다. 비유하면 아난아, 저 기술 좋은 옹기장이가 묘한 질그릇을 만들 때 독이나 단지나 항아리나 병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아난아, 그 소유라는 바람이 그 태아의 몸에 불어 살점이 생기게 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54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도악(度惡)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태아의 몸에 불어 음성이 생기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61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침공청정(針孔淸淨)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태아의 몸에 불어 가죽이 생겨 차츰차츰 구족하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68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견지(堅持)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태아의 몸에 불어 그 가죽을 펴서 고르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75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문재지(聞在持)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태아의 몸에 불어 그 살을 말끔하게 하여 다 윤택하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182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자연으로 된 바람이 있어 그 태아의 몸에 분다. 가령 전생에 죄업을 많이 지었으면 그 재앙이 이 때 나타난다. 모든 열 가지 악으로서, 혹은 간탐으로 재물을 아껴 보시하지 않고, 과거에 성인이나 스승이나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으면, 청정하고 장대해야 할 것이 도리어 작고 왜소하게 되고, 굵어야 할 것이 가늘게 되고, 청정하게 커야 할 것이 추하게 크며, 많이 청정해야 할 것이 도리어 적고, 적어야 할 것이 도리어 많으며, 청정해야 할 것이 도리어 더러워지고, 더러워야 할 것이 도리어 깨끗해지며, 사내여야 할 것이 사내가 아니요, 쾌락하지 않는 사내는 도리어 도둑 같은 사내가 되고, 구해야 할 것을 도리어 얻지 못하고 즐겁지 않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검어야 할 것은 도리어 노랗고, 노랗게 되어야 할 것이 도리어 검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전생에 심은 모든 악을 그대로 받나니, 혹은 장님이나 귀머거리나 벙어리나 미련한 몸을 받게 되기도 하고, 그 몸에 종창이 나며, 나면서 눈이 없고 입으로 말하지 못하며 모든 감관이 막히고 절름발이나 대머리가 되는 등, 전생에 지은 것을 그대로 받으며, 부모의 미움을 받고 법의 이치를 모른다.

왜냐 하면 아난아, 다 전생에 법 아닌 행을 심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그 사람이 전생에 온갖 덕을 행하면서 모든 악을 짓지 않았으면 온갖 선이 그에게 오나니 이른바 열 가지 덕행(德行)이다. 즉 보시하기를 즐겨 아끼는 마음이 없어 과거의 성인이나 스승이나 아버지의 명령을 잘 들었으면, 몸의 모든 기관 중에 자라야 할 것은 청정하게 자라고, 깨끗해야 할 것은 저절로 깨끗해지며, 굵고 청정할 것은 곧 굵고 청정해지고, 가늘어야 할 것은 충분히 가늘어 지며, 많이 청정할 것은 곧 많이 청정해지고, 조금 청정할 것은 곧 조금 청정해지며, 고와야 할 것은 곧 고와지고, 참음이 적어야 할 것은 곧 참음이 적어지며, 사내가 될 것은 곧 사내가 되고, 좋은 소리를 좋아하면 곧 좋은 소리를 얻으며, 영락을 좋아하면 곧 보배 영락을 얻고, 검어야 할 것은 곧 검게 되고, 즐겨할 말은 곧 즐기게 된다.

이와 같이 아난아, 전생에 심은 공덕을 따라 모든 선이 저절로 된다. 중생 들의 반김을 받고 단정하고 깔끔한 색상이 제일이며, 그 몸과 입과 뜻의 구함과 지음과 원하는 바를 곧 뜻대로 얻나니, 왜냐 하면 아난아, 전생에 심은 것이 저절로 얻어지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그것이 사내아이면 곧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가서 가부좌(跏趺坐)하고 두 손바닥을 얼굴에 대고 밖을 등지고 그 어머니를 향하는데, 그 위치는 생장(生藏)의 밑이요 숙장(熟藏)의 위이며, 다섯 결박으로 스스로 묶어 마치 가죽주머니에 있는 것과 같다. 가령 그것이 계집아이면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 가부좌(跏趺坐)하고 손바닥을 얼굴에 대고 있는데 그 위치는 생장 밑이요 숙장 위이며, 다섯 결박으로 스스로 묶어 마치 가죽주머니에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어머니가 많이 먹으면 그 아이가 불안하고, 너무 적게 먹어도 그 아이가 불안하며, 기름기가 많은 것을 먹어도 그 아이가 불안하고 기름기가 없는 것을 먹어도 그 아이가 불안하며,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거나 이익을 구하거나 너무 달거나 시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하여, 이와 같이 그 음식이 고르지 못하면 그 아이가 불안하며, 색욕이 과해도 아이가 불안하고, 바람받이에 있어도 그 아이가 불안하고, 많이 다니거나 너무 달리거나 도가 지나쳐도 아이가 불안하며, 혹 나무에 올라도 아이가 불안해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어머니 배 안에 있을 때는 그 고뇌와 갖가지 근심과 어려움이 이와 같다. 속인들은 나면서 편안한 곳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런 것이거늘 하물며 악한 갈래[惡趣]의 온갖 우환이겠는가? 그 갖가지 고난은 이루 비유조차 할 수 없는 것이거늘 누가 어머니 태에 있기를 좋아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196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서 여덟 가지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즉 수레를 생각하고 동산을 생각하며, 누각을 생각하고 유람하는 것을 생각하며, 평상을 생각하고 강물을 생각하며 샘물을 생각하고 목욕하는 것을 생각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03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수중간(髓中間)이라는 자연의 바람이 있어 그 피부를 깨끗하게 하는데 안색이 굳어지면서 그 전생의 행을 따른다. 즉 전생에 검은 행을 지었으면 검은 빛이 나타나 형체가 옻칠과 같고, 전생에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행을 지었으면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빛이 나타나 형체와 얼굴이 한 모양이며, 전생에 광택이 없는 행을 지었으면 광택이 없는 빛이 나타나 온 몸이 하나같고, 전생에 흰 빛의 행을 지었으면 얼굴이 새하얗고 온 몸도 그러하며, 전생에 누런 빛의 행을 지었으면 얼굴이 누런 빛이며 온 몸도 그러하나니, 아난아, 이것이 세간 사람의 여섯 가지 색으로서 본래 심은 대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10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자연의 바람이 일어나 그 태아의 몸에 불어 그 모발을 나게 하나니, 전생의 행을 따라 혹은 그 아이의 모발을 새까맣게 하여 한없이 묘하게 하고, 혹은 누런 모발이 나서 사람들이 꺼리기도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17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아이 몸이 자꾸 자라 구족하게 되느니라. 224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서 아이 몸이 저절로 이루어져 조금도 결함이 없느니라. 또 231일째ㆍ238일째ㆍ245일째ㆍ252일째에는 아이 몸이 원만하고 골절이 견실해지면서 태 안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59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있는데 저절로 생각이 생기되, 그물 속에 있는 것 같아서 밖으로 내달리고 싶어하며,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과 더럽다는 생각과, 감옥과 같다는 생각과 어둠 속이라는 생각을 하여 거기 있기를 좋아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259일째에는 어머니 배 속의 그 태 안에 있는데 하소수취(何所垂趣)라는 자연의 빛나는 바람이 태아의 몸에 불어 그 있을 곳에 응하게 한다. 즉 두 손을 내려 생문(生門)을 향했다가 그 연과(緣果)를 따라 태아의 몸에 불어 다리를 올리고 머리를 내려 생문(生門)을 향하게 한다.

가령 전생에 온갖 악행을 지었으면 날 때에 임박하여 다리가 물러나고 손발이 뒤틀려 그 어머니가 곤욕을 당해 목숨을 잃기도 하며, 그 고통은 한량이 없다. 그러나 만일 전생에 덕을 닦고 선행을 하여 끝내 장수하였으면 곧 수명이 뒤틀리지 않고 중간에 요절하지 않으리니, 그 어머니는 이 때문에 고뇌와 무수한 근심을 만나지 않는다. 그는 266일에는 큰 고통과 끝없는 근심을 만나 걱정하면서 좋아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생사의 고통은 매우 심하다. 사람이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를 낳으면 그것이 땅에 떨어지는 고통은 말할 수 없어 그 고뇌와 고생스러운 맛은 매우 좋지 못하나니, 혹은 그 몸에 옷을 걸치거나, 혹은 이불 위에 누이며, 혹은 평상에 두고, 혹은 맨땅에 두며, 혹은 덮어 주고, 혹은 벗겨 놓으며, 혹은 뜨겁거나 찬 곳에 두기도 하느니라. 그러므로 그 고통과 근심을 만난 처참함은 지독하기 말할 수 없느니라.

비유하면 아난아, 뱀이나 살무사나 소가죽을 달아매어 놓은 것과 같다. 즉 만일 벽에 있으면 곧 벌레가 생겨 도리어 그 껍질을 먹고, 혹은 나무나 풀이나 언덕에 두거나, 혹은 공중에 두어도 곧 벌레가 생겨 도리어 그 몸을 먹으며, 어디 두어도 곧 벌레가 생겨 도리어 그 몸을 먹는다. 아이가 처음 날 때에는 손으로 받는데 그 고통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혹은 옷으로 해서 받는 느낌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혹 점차로 그 몸이 자라면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덥다. 그 어머니는 걱정하며 마른데 진 데를 가리면서 기를 때, 그 더러운 것들을 치우나니, 이른바 과거 성인의 법[法律]이 바로 이 어머니가 젖을 먹여 기르는 은혜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못내 괴로운데 누가 그 어머니 태 안에 있기를 즐거워하겠는가? 아이는 난 지 오래되지 않아 음식으로 몸을 기르는데, 몸에는 곧 8만 가지 벌레가 생겨 두루 돌아다니면서 아이 몸을 먹는다. 머리털 밑에 있는 벌레의 이름을 설지(舌舐)라 하는데 그것은 머리털 뿌리를 의지하여 그 머리털을 먹는데 그 벌레의 이름은 도를 수행하는 자리에 있다 하여 첫째는 설지(舌舐)요, 둘째는 중지(重舐)이다. 세 가지는 머리 위에 있는데 이름은 견고(堅固), 상손(傷損), 훼해(毁害)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람 몸의 고뇌는 이와 같이 8만 가지 벌레가 밤낮으로 그 형체를 먹어, 사람을 여위고 피로하며 기운을 적어지게 하며, 또 그 몸을 병들게 하는데, 혹은 춥고 더운 온갖 질환을 만들어 그 숱한 고뇌는 이루 다 셀 수 없다. 번열과 초조의 고통이 심하며, 굶주려도 그 고통이 지극하고, 다녀도 그 고통이 지극하며, 안주해 있어도 그 고통이 지극하다. 만일 몸에 병이 있으면 또 의약을 구해 그것을 없애려 한다.

어머니 배 속에 있어서도 그 고통은 말할 수 없는데 사람으로 나서는 오래 살아야 1백 세이며, 혹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1백 세 동안에 1백 번의 봄, 1백 번의 여름, 1백 번의 가을, 1백 번의 겨울을 지난다. 1백 세 동안에 1천 2백 달[月]을 지나게 되는데 봄의 세 달, 여름의 세 달, 가을의 세 달, 겨울의 세 달이다. 1백 세 동안을 명백청명(明白靑冥)의 부(部)로 나누면 무릇 2천 415일인데 봄이 615일요, 여름 615일, 가을이 615일, 겨울이 615일이다.

1백 세 동안은 무릇 7만 2천 끼니이니, 봄이 1만 8천 끼니, 여름이 1만 8천 끼니, 가을이 1만 8천 끼니, 겨울이 1만 8천 끼니이다. 그 중에서도 혹 부끄러워서 먹지 않을 때와, 성이 나서 먹지 않을 때와, 가난해서 먹지 못할 때와, 일이 있어서 먹지 못할 때와, 몹시 취해서 먹지 못할 때와, 재(齋)로써 먹지 못할 때가 다 이 7만 2천 끼니 가운데 들어 있느니라.

아난아, 이렇게 고뇌가 심한데 누가 어머니 태에 있기를 좋아하겠는가?

이런 온갖 근심에 시달려서 일찍이 편안할 적이 없는 것이다.

또 뭇 인연에 얽매어 혹은 눈병을 앓거나, 혹은 귀∙코∙입∙혀∙이에 통증이 있거나, 다리∙목∙허리∙척추∙팔 등, 모든 골절의 병과 질환, 풍병(風病)∙전한(前寒)ㆍ장열(壯熱)∙옴∙치질∙창병∙부스럼∙황달∙천식∙미친병∙장님∙귀머거리∙벙어리∙바보∙혹∙꼽추와 온갖 뼈마디의 아픔과 헛배부름ㆍ대하증과 신체의 부종(浮腫) 등을 앓는다.

이와 같이 아난아,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에서 하나만 치우치면 백 병이 생긴다. 바람이 많아도 1백 가지 질병이 생기고, 더위가 많아도 1백 가지 질병이 생기며, 추위가 많아도 1백 가지 질병이 생기고, 과식을 해도 1백 가지 질병이 더해지며, 바람과 추위와 더위의 세 가지가 모여 404가지 질병이 동시에 생겨난다.

그 이외에도 다 말할 수 없는 우환이 있으니, 혹은 손을 잘리고, 혹은 다리와 귀와 코를 잘리며, 혹은 머리를 베이고, 혹은 결박당하고 매를 맞으며,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한다. 혹은 사람을 겁내고, 혹은 사람 아닌 존재[非人]나 지옥∙아귀∙축생의 환난을 두려워하며, 광야에서 모기∙등에∙벼룩∙이∙벌의 쏘이는 환난의 고통과 호랑이∙사자∙뱀∙살무사 등의 두려움에 괴로워하나니, 이런 고통은 다 말할 수가 없다. 구하는 것이 많아 고통의 뿌리를 심고, 얻지 못하면 걱정하며, 좋아하는 것이 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이미 얻은 것은 수호해야 하며, 살아감에 고생해야 소득이 있고, 원함에 있어 한도에 차지 않으니 진로(塵勞)의 고뇌에 장애가 많으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요약해 말하면 5음(陰)이 바로 고통이다. 모든 입(入)과 모든 쇠(衰)와 많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생기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일으켜 스스로 잘났다 뽐내며 멋대로 마음이 내달아 불안하나니, 하나하나의 모든 이치들을 통해 그 자연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수레바퀴가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웠거나 앉아 있거나 땅에 서 있거나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즐겨 웃으면서도 괴롭다는 생각을 관(觀)해야 한다. 가령 경행(經行)하거나 앉았거나 서 있거나 거닐거나 항상 괴로움을 생각하라. 온갖 고뇌와 근심은 셀 수 없나니, 어느 하나 유쾌한 것이 있겠는가? 경행하는 곳에서 편안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곧 걸음을 멈추고 앉아서 다니지도 않거나 평상에 앉아 있지 않을 때라 해도 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이 말했다.

“편안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위의(威儀)가 있더라도 휴식할 수 없는 것인즉, 갖가지 한량없는 고통이 있어 마음으로 스스로 상념을 일으키나니, 어찌 괴롭지 않다고 하랴? 아난아, 이와 같이 생사(生死)란 즐거워하기 어려운 것이다. 두 가지 우환을 생각하라. 즉 제 몸의 괴로움과 남의 괴로움이니, 이 두 가지 이치를 관찰하여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내 비록 출가하였다 하나 무엇으로 지혜를 이루고 큰 과보를 얻어 안온하여 걱정이 없으며, 그 음식∙의복∙평상∙침구∙의약품 등을 수용할 적에 그 주인으로 하여금 큰 과보를 얻고 큰 광명과 무량한 넓은 이치를 얻게 하는가?’”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아난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色]은 항상한 것[有常]인가, 무상(無常)한 것인가?”

 

아난이 대답하였다.

“무상한 것입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괴로움[苦]인가, 괴로움이 아닌가?”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심한 괴로움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무상한 일들은 또 이별해야만 하는 법으로서 항상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현의 제자로서 이 이치를 듣고도 과연 ‘내[吾我]가 있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생각을 일으키겠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물질[色]ㆍ느낌[痛庠:受]ㆍ지어감[生死:行]ㆍ의식[識]은 항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대답하였다.

“무상한 것입니다.”

“가령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움인가, 편안함인가? 성현의 제자로서 이 말을 듣고는 과연 ‘내[吾我]가 있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그러므로 아난아, 모든 색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생각하면 안과 밖, 추함과 고움, 미묘함과 더러움이나,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 모두에 나가 없고 남도 없고 내 몸도 아니니, 밝게 통달한 지혜로운 사람은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가령 아난아, 성현의 제자로서 물질을 싫어하거나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싫어한다면 번뇌를 떠날 것이요, 번뇌를 떠나면 해탈할 것이며, 해탈에 뜻을 두면 해탈에 이르러 지혜로 깨달아 생사를 다 없애고 범행(梵行)을 칭양하며 몸으로 할 일을 마치고 저 언덕에 이르러 현재에 이 경계의 가장자리를 보일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