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문수사리정률경
서진 월지국 축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1. 진제의품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의 기사굴산에서 유행하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으니, 비구가 1,250인이고, 보살이 3만 2천 인이었다. 그때 세존께서 무앙수 백천 대중의 권속들에 둘러싸여 경을 설하시는데, 때마침
적순율음이라는
천자가 그 모임에 앉아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옷을 정돈하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세존께 여쭈었다.
“문수사리가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일체 모든 모임의 사부대중과 하늘․용․귀신․제석․범왕․사천왕 등이 다 같이 간절히 우러러 정사를 보려 하고, 그 미묘한 말씀으로 강하는 경전의 이치를 받아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동방으로 1만 불국토를 지나면 보씨라는 세계가 있고,
보영 여래․무소착․등정각이란
부처님께서 계시면서 현재 도교를 연설하시는데, 문수는 거기에서 여러 보살대사들을 위해 다른 사람으로서는 미치지 못할 법을 차례로 가르친다.”
천자는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컨대 큰 성인께서 가엾이 여겨 위신을 드리우셔서 문수사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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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금 스스로 굽혀 여기에 오도록 하소서. 왜냐하면 문수사리가 경전의 법을 설하면 모든 맺힌 것과 거리낀 것을 통달시키고 없애서 환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성문․연각보다 뛰어난지라, 문수사리가 만약 큰 법을 설한다면 일체 대중이 다 항복하기 마련이어서 모든 삿되고 미혹한 자가 기회를 노릴 수 없고, 외도들도 귀명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그 훌륭한 체하는 자는 스스로 훌륭한 체하는 생각을 갖지 못하고, 뜻을 내지 못한 자는 모두 도의 마음을 내고, 이미 도의 마음을 낸 자는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서고, 받들어야 할 자에게는 이마를 조아리지 않는 이가 없고, 잡아 다스려야 할 자는 껴잡지 않는 이가 없고, 여래․지진께서도 모두 권유하고 칭찬하시매, 이 성교로 인하여 곧 바른 법으로 하여금 길이 존속케 할 수 있는 만큼 여래를 제외하고는 어떤 높은 이의 지혜와 변재로써도 문수사리처럼 경전의 법을 선설할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적순율음 천자가 하는 말이 다 일체 중생을 위한 것임을 보시고 곧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두 눈썹 사이로부터 백호의 광명을 연출하시니, 그 광명이 널리 비춰 온 삼천대천 불토를 비추고 1만 불토를 두루 통달하는가 하면, 그 큰 광명이 보씨세계를 환히 비추므로 저 불토의 모든 보살 대중들이 나아가 그 부처님께 물었다.
“이것이 어떤 감응이기에 먼저 이러한 상서를 나타냅니까?”
보영여래는 여러 보살들에게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서방으로 1만 불찰을 지나면 인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능인 여래․지진․등정각이란
부처님께서 계시면서 현재 법을 강하시고눈썹 사이의 광명을 연출하셔서 1만 불찰을 비춰 이 불찰에까지 널리 환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보살들은 또 물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이 광명을 연출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무앙수 억백천 보살이 저 불토에 모여 있고, 제석․범왕․지세와 사부대중이 다 함께 문수사리를 간절히 바라 친견하고서 그 경전의 법을 강하는 것을 듣고 싶어 모두들 부처님께 아뢰어 이 광명을 떨쳐 멀리 문수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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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청하는 것이다.”
보영여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저 불토의
능인여래의 처소로 가거라. 그대를 맞으려고 기다리는 모임의 대중들이 모두들 더디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만나서 머리를 조아려 설법을 받아 듣고자 한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도 역시 이 광명의 서응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1만 보살과 함께
보영부처님께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번을 돌고는 잠깐 사이에
보씨불찰에서 홀연히 사라져
사바세계에 이르러 허공 가운데 서서 그 몸을 나타내지 않고 하늘의 꽃을 마구 퍼부어 대중의 모임에 두루하니 꽃이 무릎에까지 쌓였다. 모임의 여러 대중들은 전에 없었던 일이라고 이상하게 여겨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것은 어떤 서응이기에 하늘의 꽃이 먼저 비처럼 내리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여러 족성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문수사리가 1만 보살과 함께 명령에 따라 함께 이곳에 이르러 허공에 있으면서 많은 꽃을 비처럼 뿌려 부처님과 모임의 대중들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자 모두들 이렇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와 여러 보살을 보기 원합니다. 만약 이러한 정사를 친견한다면 매우 즐겁고 경사스러운 일일 것이니, 만나기가 어렵고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미처 끝나지도 않아 문수사리가 1만 보살과 함께 곧 몸을 나타내 부처님께 엎드려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일곱 번을 돌고는, 각각 위력과 신족의 변화로써 큰 연꽃을 만들어 스스로 그 위에 앉으니
적순율음 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성스러운 가르침을 펴셔서 문수사리로 하여금 도화를 펴 연설하게 하시길 원합니다. 모임의 대중들이 앞을 다퉈가면서 교훈을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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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마음대로 그에게 물어라.”
이에 적순율음이 곧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영불토에 어떤 기이하고 특수한 덕이 있었기에 그대로 하여금 거기에서 즐거이 유거하게 했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탐욕을 내지 않아 탐욕을 없앨 것도 없고, 진에을 일으키지 않아 진에를 끊을 것도 없고, 우치를 세우지 않아 우치를 제거할 것도 없고, 번뇌를 짓지 않아 번뇌를 무너뜨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겨나는 법이 없고 역시 없어지는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물었다.
“그 부처님의 설법은 어떤 것을 일어난다 하고 어떤 것을 사라진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그 본래가 청정한 것이라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음으로써 생겨나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 불토의 중생들은 진리를 깨달아 그 이치로써 으뜸을 삼고 인연의 화합으로써 제일을 삼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물었다.
“진리로써 으뜸을 삼음은 어떤 것이고, 인연의 화합으로써 제일을 삼음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이치에는 일으킬 것도 없고 파괴할 것도 없어 상이 없고, 또한 상이 없지도 않고 한 가지 상도 아니고 상을 여의지도 않고 상을 나타내지도 않으며, 저 보는 것이 없는가 하면 보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세히 보지도 않으며, 다함이 있지 않은가 하면 다하게 할 이도 없고 이미 다할 것이 없어 다할 수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진리의 이치입니다.
천자여, 이치란 마음이 없는 것을 이르니, 본래의 마음이 없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이 언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언덕[피안]을 건너는 것도 아니고 중류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가르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진리의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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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여, 이치란 문자가 없는 것이라고 이르니, 곧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일체 음성이 다 허위이기 때문입니다.”
천자는 다시 물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 혹시 속이는 것이 아닙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성실함도 없고 속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선 두 가지에 마음이 집착된 바 없어 유위법이나 무위법에 아무런 언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실함도 없고 속임도 없습니다.
천자여, 그대의 뜻은 어떠합니까? 여래의 교화가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 말씀을 성실함이라 하겠습니까, 허위라 하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성실함도 아니고 허위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교화는 4대도 없고 성실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그렇다, 천자여. 일체 법도 역시 허깨비와 같아서 자연스러운 행이라, 여래께서 깨달으신 것은 성취한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법을 강설하심이 성실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아 두 가지가 없는 데에 귀착하십니다.”
그는 또 물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이치란 어떤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진리의 이치란 강설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치 자체가 말이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이치를 설할 때에 5백 비구가 번뇌를 다 끊어 뜻을 깨달았고, 무수한 백천 사람들이 번뇌를 멀리 떠나 모든 법에 법의 눈[법안]이 청정해졌고, 1만 2천 보살들이 생사가 없는 법의 지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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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제품
적순율음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그 진리의 이치란 매우 알기 어렵습니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게으른 자는 진리의 이치를 알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비구의 정진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아주 끊어 없애는 것이 없고 제거하는 것도 없어 행을 닦지도 않고 증득을 취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비구로서의 바른 이치를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끊어 없애서 이렇게 제거하고 이와 같이 수행하여 증득한다면 이는 곧 파괴된 생각과 뒤바뀜과 방일한 여러 행이 함께 혼합되리라’고 하기 때문이며, 또 이렇게 헤아린다면 바른 정진이 아닙니다.”
그는 또 물었다.
“이른바 바른 정진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 평등이란 것의 근본 없음이 법계의 평등함과 같은지라, 5역 역시 그러하고, 평등의 근본 없음이 법계의 평등함과 같으니만큼 예순두 가지의 삿된 소견도 범부의 법과 같고, 배운 이의 법이나 더 배울 것이 없는 성문의 법이나 연각의 법이나 부처님의 법도 모두 진리 그대로의 평등한 불법과 같고, 생사의 법이나 그 열반의 법이나 애욕․번뇌․쟁송․전도의 법도 역시 그러하니, 비구로서 이와 같이 정진을 행한다면 곧 바른 정진이라 할것입니다.”
그는 또 물었다.
“어떤 것을 일러 행하는 바의 평등함이 평등한 불법과 같고, 애욕․번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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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도 역시 같고, 쟁송․전도의 일도 그러하다 합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공하고 상이 없고 원이 없음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한 것이란 분별할 수 없고 아무것도 없음이 마치 천자의 오지그릇이 속이 비고 또는 보배 그릇의 속이 빈 것과 같은지라, 모두 동등하게 비어서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 차별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애욕의 공한 것이나 쟁송과 전도의 공한 것이나 내지 도의 공한 것이 모두가 다 공하여 아무것도 없어서 차별을 이름지을 수 없습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보살이 거룩한 진리를 수행함이란 어떤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가령 보살이 진리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문들을 위해 설법하겠습니까? 왜냐하면 보살은 진리를 행하여 관찰해 구호하는 것이 많음에 비하여 성문은 구호하는 것이 없고, 보살은 진리를 행하여 광대하기가 한량없음에 비하여 성문은 치우치고 국한되며, 보살은 진리를 행하여 중생들을 거두어 구호하되 근본 진리[본제]에 증득함을 짓지 않고, 보살은 진리를 행하여 훌륭한 방편을 닦되 생사와 열반의 문을 버리지 않고, 보살은 진리를 행하여 일체 부처님의 법을 널리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천자여, 어떤 사부가 대사를 버리고 제멋대로 마구 돌아다니다가 홀몸으로 벗도 없어 마음의 공포를 느끼며 벌판의 길을 가나 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성문도 그와 같이 마음이 당황하여 생사에 겁을 내어 중생을 구하지 않고 일체 시종의 환란을 건너갈 수 없으며, 홀로 진리만을 행하고 불법을 옹호하지 않으며, 훌륭한 방편을 여의고 지혜의 벗 없는 것이 또한 그렇지 않겠습니까?
천자여, 마치 저 대사가 가득한 이익을 많이 얻어 한량없는 보배․구슬 등 값진 것을 사서 여러 장사꾼들에게 주어 넓고도 험한 곳을 넘어가는 것처럼, 보살도 대사와 같이 행을 쌓음이 한량없고 도의 보배가 한량없으며, 끝없는 대자대비를 닦고 진리의 성스러운 지혜로 일체 중생들을 요익하게 하되, 무수한 변재의 지혜를 풍부히 하여 한 불국토를 거치고 다시 한 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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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를 거쳐 6바라밀로써 네 가지 은혜를 거두어 행하여 위험과 재액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며, 생사에 드나들면서 훌륭한 방편으로 진리를 수행하여 제도되지 못한 자를 제도하고 깨닫지 못한 자를 깨닫게 하고 삼계에 돌아다니면서 홀로 뛰어나 짝할 이 없이 듣지 못한 중생들을 개화하여 대승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천자여, 때 묻은 더러운 옷에 아무리 아름다운 사이화와 누렇고 흰 수만화로써 향내를 풍기더라도 향기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다 없어지는 것처럼, 성문․연각이 수행하는 진리의 얕고 엷음도 그와 같이 곧 멸도하여 소원을 닦지 않음으로써 부처님의 계율․선정․지혜․해탈도지견[해도지견]하는 일과 도탈하는 향내에 이르지 못하고, 또 온갖 거리낌과 번뇌의 욕심을 항복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 천자여, 부드럽고 미묘한 백천의 값어치가 있는 옷에다가 천상의 뛰어난 보배와 많은 꽃으로써 백천만 년 동안 이 좋은 옷에 향내를 풍긴다면, 그 옷은 언제나 향내가 나고 이 향기가 널리 유포되어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향기가 일찍이 쉬지 않음으로써 모든 천상․세간 사람들이 다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무수한 겁으로부터 진리 법의 향기를 행하여 소원을 갖추지 않고 멸도하지 않고 항상 부처님의 위없는 도인 계율․선정․지혜․해탈지견하는 일을 연출하고, 모든 거리낌과 번뇌의 욕심을 항복 받으며, 천상과 인간에 놀면 하늘․용․귀신․아수라와 군자․서민이 모두 받들어 공경하고 보고자 하는 자는 항상 널리 제도될 것입니다.”
적순율음 천자는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저 보영 여래․지진께서 계시는 불토의 성문 대중들은 어떠합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돈독한 신심을 내지도 않고 다른 교법을 따르지도 않으며, 법을 행하지도 않고 법계를 훼손하지도 않으며, 여덟 가지 바른 도를 행하지 않으면서도 여덟 가지 삿됨을 여의고, 수다원이 아니면서도 일체 더러운 악취를 다 건너고, 사다함이 아니면서도 중생들에게 와서 교화하고 아나함이 아니면서도 일체 법에 가고 옴이 없으며, 아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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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면서도 삼천대천세계 공양의 이익을 다 받습니다. 욕심을 여의지도 않고 욕심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성냄과 미워함을 여의지도 않고 분노와 한스러워함으로 인하여 끌리지도 않으며, 중생들에게 해칠 마음을 갖지도 않고 중생들 때문에 근심하지도 않으며, 어리석음을 여의지도 않고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위험과 재난을 당하거나 깊고 깊은 것이나 일체 법을 멸하여 없애지도 않으며, 번뇌를 여의지도 않으면서 힘껏 정진하여 일체 중생들을 제도해 애욕을 제거하고 높은 절개를 얻게 하며, 생사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생사를 나타내며, 모든 생각을 다해 중생들을 개화하되 나[아]라든가 다른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란 것을 계교하지 않음으로써 받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으며, 일체 인민들이 중우에게 보시한 바의 덕을 청정하게 마칩니다.
그 밖의 뜻하는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어서 뜻 그침을 닦고 4의단을 받들어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4신족을 행하므로 몸과 뜻이 고요하고, 5근을 따르므로 일체 중생들의 본원을 분명히 알고, 5력을 행함으로써 번뇌를 항복 받고, 7각의를 염하므로 평등한 지혜를 해득합니다.
도교를 깨끗이 닦아 삿된 길을 버리고, 도훈을 증득하되 무위를 증득하지 않으며, 고요한 경지에 나아가 본제를 행하고, 관찰할 바를 관찰하여 모두 법계에 들어가며, 무명과 우치를 없애고는 성스러운 지혜인 위없이 바르고도 참됨[무상정진]을 일으켜 3해탈의 품을 열며, 곧 육안으로 중생들과 일체 불토의 모든 불세존께서 교화하시는 인민들을 모두 보며, 곧 하늘 눈[천안]으로 5취의 생사에 돌아다니는인민들과 그 밖의 꿈틀거리고 기어 다니고 숨 쉬고 형체 가진 모든 생물을 다 보며, 곧 지혜의 눈[혜안]으로 일체 중생들의 한계와 심행의 생각하는 것을 관찰해 알며, 곧 법의 눈[법안]으로 3세와 삼계 일체 인민들의 소행을 환히 다 보며, 곧 부처님의 눈[불안]으로 일체 법과 법장의 신비한 경전과 성스러운 광명의 비춤을 다 분명히 관찰하며, 곧 하늘의 귀[천이]로 여러 부처님께서 선설하시는 경전의 법을 멀리서도 듣고 생각 없는 지혜로 과거 무수한 겁 동안의 경력을 기억해 알며, 신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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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으로 한량없는 불국토에 두루 유행하여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다하고 해탈을 닦아 형상을 나타내되 색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경전을 강설하되 문자를 풀이하지 않고, 어떤 생각함이 있되 마음에 집착이 없으며, 얼굴엔 부드러움과 단정함을 보이고 갖가지 상호를 갖추되, 공덕으로써 스스로 그 몸을 장엄하매 위신이 특수하게 뛰어나 당할 자가 없으며, 명칭이 널리 알려지고 공훈 또한 유포되므로 3세를 통해 거리낌이 없으며, 묻고 찬탄하는 지혜로써 향내를 삼아 스스로 그 몸에 쪼이므로 세속의 법에 집착됨이 없고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고, 나쁜 말씨와 거센 말씨로 헐뜯을 수 없으며, 곧 신통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고 널리 듣기를 싫어하지 않으므로 선설하는 변재가 바로 사자후이며, 지혜의 광명이 비추지 않는 데가 없으므로 성스러운 광명의 통달함이 바로 우레가 되어서 무명의 어리석음을 다 없애고 막아버리며, 말씀하시는 바가 다함이 없어 다라니[총지]를 다 통해하니, 부처님께서 관찰하심은 성문․연각들이 알 수 없는 경지이지만 항상 부처님을 보므로 그 뜻을 깨달음은 바다와 같고,삼매의 굳음은 수미산과 같습니다. 인욕의 부드럽게 화함은 땅과 같고, 용맹한 힘은 마군의 관속과 모든 외도를 항복함과 같으며, 안락하고 자재함은 제석천[천제석] 같기도 하고, 마음에 자유를 얻어 짝할 이가 없음은 범천 같기도 한지라, 비교할 데를 구하여도 비교하기 어렵고 같을 이가 없으며, 또 허공같이 비유할 수도 없어서 두루하지 않은 데가 없고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천자여, 보영여래의 국토에 태어난 성문들을 알고자 합니까? 그들의 공덕과 공훈은 다시 이보다 뛰어난지라, 내가 찬탄한바 그대로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이 말을 설할 때에 5백 비구와 5백 비구니와 5백 우바새와 5천의 천자로서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한 이들이 모두 발심하여 불세존께 말씀드렸다.
“저희들도 저 보영의 국토에 태어나 성문이 되기를 원합니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모든 족성자여, 성문의 마음을 품고 저 불토에 태어나지 말고, 그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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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도의 마음을 내어서 저 불토에 왕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즉시 가르침을 받아 함께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자, 부처님께서도 그들에게 다 수기하시고 저 불토에 왕생할 것을 말씀하셨다.
3. 해율품
적순율음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성문의 계율이라 하고, 어떤 것을 보살의 계율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가르침을 받기는 하되 삼계의 환란을 두려워하는 것이 성문의 계율이고, 한량없는 생사에 돌아다님을 구호하되 일체 인민을 비롯한 기어 다니고 숨 쉬고 꿈틀거리는 종류를 다 안락하게 하기 위해 삼계를 개도하여 그들의 의심과 뭇 생각의 집착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공덕 쌓기를 싫어하여 게으름 때문에 스스로 전진할 수 없음이 바로 성문의 계율입니다. 공덕을 일으켜 모든 행을 싫어하지 않으므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일체 번뇌의 욕심과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성문의 계율이고, 일체 중생들의 번뇌와 은애의 집착을 정벌해 주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모든 하늘들의 생각하는 심행과 뜻하는 바가 같지 않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입니다.
눈으로 삼천대천 불국토의 근기와 마음이 귀의하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자기 마음의 소행만을 관찰하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이고, 시방 모든 부처님 처소의 중생들이 생각하는 마음을 널리 보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자신의 뜻과 성품이 나아가는 곳만을 비추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이고, 일체 인민들의 소행과 기어 다니고 숨 쉬고 꿈틀거리는 종류들이 생각하는 마음까지 다 비추어 삼계에 사는 중생들이 각각 본말이 있음을 관찰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입니다.
일체 마군을 포섭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이고, 일체 삼천대천세계 모든 마군의 관속을 항복받아 교화하되 뭇 마군의 소행을 무너뜨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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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법을 받게 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마치 허물어지고 부수어진 기와나 돌그릇을 도로 합칠 수 없는 것처럼 범부의 덕이 멸도함도 그와 같아서 바르고 참됨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이고, 마치 금 그릇이 비록 부수어졌더라도 끝내 버리지 않고서 곧 도로 합쳐 보배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대사가 비록 현세에 멸도하더라도 깊은 지혜의 법신은 영원히 살아 있어 썩지 않고 늘지 않고 줄지 않는 채 삼계에 계속 나타나는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가령 큰 불이 일어나 산 숲과 나무들을 마구 태울 적에 날짐승과 길짐승들이 다 달아나거나 숨어버리는 것처럼 범부도 그와 같이 삼계의 환란을 두려워하여 숨어서 열반하기를 피하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입니다. 생사를 즐거워하여 삼계에 홀로 다니되 겁약함이 없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도법의 즐거움을 즐겨 중생들에 대해 권화하기를 마치 동산과 누각에 무성한 꽃과 열매를 흐뭇하게 즐겨 하듯 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며, 거리낌과 얽매임의 환란을 끊지 못하고서 처소가 있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이고, 일체 가림과 덮임의 환란을 소멸하여 아주 그치는 처소가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입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어떤 한계가 있어서 스스로 몸을 얽어매어 한계 있는 덕으로써 계율․선정․지혜․해탈지견의 일을 성취할 뿐 끝없는 큰 도를 구족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성문의 계율이고, 깊고도 미묘한 아득한 경지에 접하여 뜻이 허공과 같고 공덕이 한량없어서 계율․선정․지혜․해탈지견의 품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해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이 모든 보살의 계율을 시원하게 해설하였다. 문수여, 들어라. 내가 이제 비유를 인용해 거듭 해설하여 이 이치로 하여 널리 구경에 돌아가게 하리라.
가령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소 발자국의 물을 찬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일어서서 큰 바다에 쌓인 물의 공을 감탄한다면, 네 뜻에는 어떠하겠느냐? 그 사람이 찬탄하는 소 발자국의 물을 오래 갈 수 있다 하겠느냐?”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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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발자국의 물은 매우 적고도 적어서 칭찬할 것이 못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여, 성문의 계율인 소견과 위신도 역시 소 발자국 물과 같아서 칭찬할 것이 못 된다. 그리고 저 사람이 일어서서 감탄한 큰 바다의 물은 어떠하겠느냐?”
대답하였다.
“매우 많고도 많습니다. 하늘 중의 하늘[천중지천]이시여, 그 큰 바다란 끝이 없고 제한이 없어 깊이와 너비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의 계율이 바로 그러한 것임을 관찰해야 하니, 마치 강과 바다의 물을 헤아릴 수 없음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것을 설하실 적에 2만 2천 사람들이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어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찬탄하였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이 보살의 계율을 배워서 무수한 사람들을 이끌어 주고 일으켜 주겠습니다.”
적순율음 천자는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이시여, 어떤 계율을 배워서 닦아야 합니까? 성문ㆍ연각의 계율입니까, 보살의 계율입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천자의 뜻에는 어떠합니까? 그 큰 바다란 것이 어느 물은 받아들이고 어떤 물은 방치해 두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그 큰 바다란 것은 어느 물이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문수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보살의 계율은 마치 큰 바다가 더러운 물도 거역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시방의 모든 계율이 죄다 돌아오는지라, 성문․연각과 일체 중생을 개화함에 있어서도 계율을 행하기 위해 널리 유행하는 것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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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시여, 말씀하신바 계율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이른바 계율이란 은애 번뇌를 개도하고 교화하기 때문에 계율이라 하며, 탐욕을 환히 깨달아 알기 때문에 계율이라 합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은애와 번뇌를 개도함이란 어떤 것이며, 탐욕을 환히 깨달아 앎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뭇 생각마다 나라는 것을 계교하고, 모든 소견에 얽매여 뒤바뀜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명과 우치의 근본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두 가지 일을 행하여 번뇌를 일으키니, 이것을 분별하는 자라면 바로 탐욕을 환히 깨달아 아는 이라 할 것이며, 그가 수행하여 탐욕의 생각이 없고 나라는 것을 계교하지도 않고 모든 소견에 집착하지도 않아서 뒤바뀜을 벗어나고 무명과 우치의 어두움을 버리므로 두 가지 일을 행하지 않아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쟁란도 없고, 쟁란이 없으면 마침내 안락할 것이니, 이것을 일러 번뇌를 개화하는 계율이라 합니다.
천자여, 마치 어떤 술사가 독사의 종류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곧 주술로써 독해를 제거하는 것처럼 배우는 자도 이와 같은지라, 번뇌의 본말이란 것의 근원이 없음을 분별한다면 능히 번뇌와 은애를 소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자는 다시 물었다.
“번뇌의 본말을 개화하는 계율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뭇 생각에서 본말의 소행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갖지 않으면 곧 쟁란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미 쟁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집착하는 것이 없고, 이미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의지하는 것이 없고, 이미 의지하는 것이 없으면 머무는 것이 없고, 이미 머무는 것이 없으면 열뇌가 없고, 이미 열뇌가 없으면 마침내 가르침을 받아 도탈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일러 계율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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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천자여, 현성들의 슬기와 심오하고도 미묘한 지혜로써 번뇌와 은애의 근본을 환히 깨달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허망하고 공무한 것이어서 존재함이 없고, 일정한 주체가 없고, 어떤 소속도 없고,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고, 처소도 없고, 방편도 없고,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중간도 없으며, 쌓이거나 모이지도 않고,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고 얼굴도 없으니, 이러한 것을 번뇌와 은애의 근본을 환히 깨달아 아는 것이라 합니다.”
천자는 다시 물었다.
“번뇌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으며, 번뇌는 진실한 것입니까, 허망한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마치 어떤 사람이 꿈에 독사에게 물린 것과 같은지라, 그 사람이 고통을 견뎌낼 수 없어 즉시 독을 제거하는 약을 먹자 그 독이 곧 사라지고 고통도 그쳤다면, 천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이 과연 독사에게 물린 것입니까, 아니면 허망한 일입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이는 허망한 일이니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물었다.
“가령 허망한 것이라면 어째서 독을 입고 그 독을 약으로 제거한다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허망한 꿈 그대로인지라, 꿈이 허망하여 진실이 아님에도 독을 입었기에 독을 제거함도 그러하고, 제거할 독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수는 말하였다.
“여러 성인들이 공의 이치를 깨달아서 일체 번뇌와 은애를 개화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천자가 질문하기를, ‘어떤 것을 번뇌와 은애를 개화함이라 하며, 번뇌는 진실한 것인가, 또는 허망한 것인가?’ 하였는데, 이 이치를 깨달으려면, 나의 몸이 몸이 없는 것임을 관찰해야 하듯이 은애와 번뇌도 사실 은애가 없음이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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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의 몸이 진실한 몸이라면 은애와 번뇌도 항상 존속해야 하겠지만, 번뇌라는 자체가 그 번뇌가 없는 것임은 나의 몸이 사실 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번뇌를 개화할 것조차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 법이 다 적막하니 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담박하니 받아 지닐 수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고요하니 돌아가는 곳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다 극진하니 쌓이거나 모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다함이 없으니 생겨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생겨나지 않으니 성취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이 성취함이 없으니 조작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조작함이 없으니 무위이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무위이니 내[아]가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내가 없으니 주체가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주체가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오는 데가 없으니 이르는 곳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오는 데도 가는 데도 없으니 머무는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머무름이 없으니 느끼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이 느낌이 없으니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천자여, 끝까지 개화함을 힘입어 법률을 이루지만, 역시 개화할 것조차 없는 것입니다.”
4. 도문품
천자는 다시 물었다.
“일체 법은 무엇으로써 문의 으뜸으로 삼습니까?”
대답하였다.
“나쁜 것에 순응하지 않는 생각을 문의 으뜸이라 하고, 생사에 왕래하면서 이치에 순응하는 생각을 열반이라 하며, 정진을 행하지 않는 것을 거리낌의 문이라 하고, 정진하는 행을 도품의 문이라 하며, 의심하는 행을 쌓임의 문이라 하고, 부지런히 해탈을 닦는 것을 거리낌이 없는 문이라 하며, 모든 집착하는 생각을 번뇌의 문이라 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허망함도 없는 것을 은애 없는 문이라 하며, 모든 산란한 생각이 많은 것을 뭇 망상의 문이라 하고, 적연한 행을 염박의 문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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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62견을 교만의 문이라 하고, 아무것도 없음을 닦는 것을 무무자대문이라 하고, 악한 벗을 따르는 것을 나쁜 죄의 문이라 하고, 착한 벗을 따르는 것을 착한 법의 문이라 하며, 뭇 삿된 소견의 일을 우환의 문이라 하고, 바른 소견의 이치를 안온의 문이라 하며, 간탐하는 일을 빈궁의 문이라 하고, 보시하는 이치를 대부의 문이라 하며, 계율을 훼손하거나 범한 자로서 곧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것을 나쁜 갈래의 문이라 하고, 계율을 받들어 닦은 자로서 일체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을 훌륭한 처소의 문이라 하며,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을 법을 어기고 잃는 문이라 하고, 인욕하는 자는 특수한 뛰어남에 돌아가는 문이라 하며, 게으른 이는 마음의 더러운 때의 문이라 하고, 정진을 힘써 행하는 것을 더러움 없는 문이라 하며, 방일한 일을 산란한 뜻의 문이라 하며, 한마음의 일을 정의문이라 하고, 나쁜 지혜의 행과 어리석고도 어두운 의혹을 소나 양같은 문이라 하고, 지혜를 닦는 자로서 37품을 도법의 근본으로 삼는 것을 사자의 문이라 하며, 인자한 마음을 구족한 행을 무해의 문이라 하고, 가엾이 여기는 행을 구족한 그 뜻을 화아의 문이라 하며, 성품이 유화한 것을 아첨 없는 문이라 하고, 기쁨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법락의 문이라 하고, 구호를 닦아 행하는 자로서 옳거나 옳지 않음이 없음을 더함도 덜함도 없는 문이라 하며, 4의지를 행하여 노숙한 덕[숙덕]을 잃지 않는 것을 모든 복된 문이라 하고, 4의단은 평등에 수순하는 문이라 하고, 4신족은 몸과 마음의 가벼운 문이라 하며, 5근은 독실하게 믿는 이치로서 원수의 문이라 하고, 5력을 행하는 자는 번뇌와 모든 애욕에 더럽혀지지 않는 문이라 하며, 7각의는 평등한 지혜를 모두 명료히 깨닫는 문이라 하고, 여덟 가지 바른 길[팔도]은 일체 삿된 다른 길의 미혹을 버리는 문이라 합니다.
다시 천자여, 보살로서 모든 불법을 닦는 것이 법의 으뜸 되는 문이라. 모든 법을 거둬 보호함은 법이 자재한 문이기 때문이고, 훌륭한 방편으로서 곳곳을 분명히 앎은 그곳이 없는 문이기 때문이고, 지혜바라밀로써 일체 중생들 마음의 생각을 통달하여 앎은 피안을 순조롭게 건너가는 문이기 때문이고, 6바라밀로써 6욕을 거둬 욕심의 자리를 없게 함은 대승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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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는 문이기 때문이고, 공의 이치를 관찰해 구하되 삼계를 환화와 같이 끝과 처음을 꿈같이 관찰함은 지혜가 밝은 문이기 때문이고, 일체 법이 다 본래 없는 법이므로 생사 없는 법의 지혜로써 자연을 밝게 통달하여 깨닫지 않는 것이 없음을 그 지혜가 다른 사람의 밝음에 의지하지 않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천자는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시여, 어떤 것을 법계의 문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그 법계란 넓은 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그 법계가 어떠한 경계입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중생의 경계를 이름하여 법계라 합니다.”
또 물었다.
“그 법계가 어찌하여 한계가 있습니까?”
문수는 반문하였다.
“허공의 경계가 어찌 한계가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한계가 없겠습니다, 문수이시여.”
문수는 말하였다.
“마치 허공이 한계가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와 같이 한계가 없습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어찌 법계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법계란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모든 법을 해명하여 이러한 변재를 환히 깨달았습니까?”
문수는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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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그 호응하는 메아리에 어떤 음성이 나와서 법을 해명한다고 생각합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그 호응하는 메아리란 모든 법을 해명하지 못하니, 인연으로 합성되었기에 메아리가 나올 뿐입니다.”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보살이 다 중생의 인연 때문에 설하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그대는 어떤 것에 머물러 설하십니까?”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교화하심에도 강설하는 말씀이 있으니, 내가 머물러 연설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는 말하였다.
“여래께서 교화하시는 법은 머무는 데가 없이 그대로 설하셨습니다.”
대답하였다.
“여래의 교화가 머무는 데 없이 설하신 것처럼 내가 선설하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가령 문수께서 일체 법에 머무름이 없이 설하신다면, 그대는 어디에 머물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룩하여 최정각이 된다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5역에 머물러 곧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룩합니다.”
또 물었다.
“문수이시여, 그 5역이란 어떤 데에 머무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 5역이란 근본이 없고 머무는 데도 없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5역을 범한 자는 피할 틈이 없어 지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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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10002] 쪽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그 5역을 범한 자는 지옥에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만약 보살이 다음과 같은 5역에 머문다면 빨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을 것이니,
이른바 5역이란,
가령 보살이 은근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큰 도의 뜻을 내어서 소승의 마음을 버리고 성문․연각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첫째의 역이며,
발심하여 널리 보시하되 일체의 가진 것을 아끼지 않아 간탐하는 자와 함께 회합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둘째의 역이며,
인자한 마음을 내어서 일체 중생을 내가 마땅히 제도해야 하리라고 생각하여 중간에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셋째의 역이며,
일체 법이 어디로부터 나는 것이 없다고 보아 곧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체득하여서 중간에 예순두 종류의 삿된 소견과 함께 합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넷째의 역이며,
마땅히 알아보아야 하고 마땅히 끊어 없애야 하고 마땅히 반포해야 하고 마땅히 깨달음을 이룩해야 하리라 하여 그 뜻을 내는 찰나에 모든 것을 다 알아 보고 깨달아서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는 동시에 머무는 데가 없어 일체의 지혜를 이룩해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다섯째의 역입니다.”
문수사리는 그 천자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이미 이 5역에 머문다면 곧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룩하여 최정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말씀하신바 무엇을 일러 역은 역이 되지 않고 순은 순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자마금과 여의주가 비록 깨끗하지 않은 곳에 떨어지더라도 그 깨끗하지 않은 다른 것과 함께 합해지겠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합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건이 진짜이기 때문에 가짜와 합해지지 않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21 / 10002] 쪽
“사람의 마음은 본래가 청정하기 때문에 비록 더럽고 탁한 곳에 처할지라도 아무런 하자가 없으니, 마치 해의 광명이 어두움과 합해지지 않는 것과 같고, 또 연꽃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고, 비유하면 허공을 더럽힐 이가 없는 것과 같은지라, 법을 배워 행하려고 보살의 마음을 내는 이도 모든 역에 머물되 흔들리지 않고 모든 역을 개화함으로써 이른바 그 마음의 본래 청정함에 순응하여 더러움과 합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만일 합쳐진다면 다시는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과 진흙도 오히려 함께 합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란 본래가 청정한데 어찌 형체 없는 것이 형체 있는 것과 합해지겠는가?”
[10001 / 10002] 쪽
문수사리정률경 해제
이 경은 『청정비니방광경)』ㆍ『적조음소문경』과 동본이역이다. 그러나 『개원록』에 의하면 동본이역은 이 밖에도 다른 한 편, 즉 나집이 번역한 『청정비니방광경』이 있다고 하며, 이 『문수사리정률경』이 축법호의 번역이므로 축법호는 한 경을 두 번 각기 다른 경명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같이 이 경과 『청정비니방광경』을 법호의 번역으로 한 것은 『법경록』 등인데 여기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따라서 『문수사리정률경』과 『청정비니방광경』을 이역이라고 기술한 『개원록』이 정확하다고 하겠다.
현재 대정신수대장경이 『청정비니방광경』과 『적조음소문경』을 24권의 175페이지, 14권의 181페이지인 율부에 수록하고 있으면서 『문수사리정률경』은 경집부에 수록하고 있는 것은 과실이라 할 것이며, 이 경도 대승률부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이 경의 역자와 한역 연대 및 역장에 대한 기록은 각 경록이 같으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출삼장기』의 기록에 의하면 인도로부터 건너온 적지라고 하는 승려가 이 경을 암송해 왔으나 잊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이 경의 뒷부분 중 「상수품」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법호의 다음에 번역한 나집과 법해의 역본에서는 이 부분이 보충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의 번역은 인도에서 다시 전해진 원전에 의한 번역일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가 있다.
이 경의 내용은 『청정비니방광경』과 거의 같다. 그 내용에서 우리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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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2 / 10002] 쪽
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벽암록』 제1측 ‘성제제일의’는 종로 승조의 『조론』에서 암시된 것이라고 해 왔으나 그 『조론』은 오히려 이 경의 「진제품」과 「성제품」에서 시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달마와 무제의 문답도 이 경에서 그 자료가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