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아유월치차경(佛說阿惟越致遮經) 01. 상권-1
1. 불퇴전법륜품(不退轉法輪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유행하셨는데, 큰 비구 대중 일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하셨다.
그때 세존께서 늦은 밤에 이구광(離坵光)이라고 하는 삼매정수(三昧正受)를 일으키셨고,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보살도 보명삼매(普明三昧)를 일으켰고 미륵보살(彌勒菩薩) 도중대사(導衆大士)는 보현삼매(普顯三昧)를 일으켰다.
그때 현자 사리불(舍利弗)이 늦은 밤에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방에서 나와 마음을 내어 문수사리를 찾아가 뵈려고 하였다. 그의 방에 들어가려고 방문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 문득 부처님의 신실(神室)을 보고 그 앞에 이르니, 거기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꽃이 부처님께서 계신 방을 둘러싸고 있었고, 또 멀리서 큰 음악 소리와 약간의 음향이 섞여 들려왔다.
그 큰 연꽃에서는 저절로 광채가 뻗쳐 기수급고독 동산을 두루 비추었고 사위국도 두루 비추어 그 빛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삼천대천 부처님의 경계에까지 찬란하게 빛났다.
그때 사리불은 우뚝 선 채 더 이상 가지 못하여 문수사리를 뵙지 못했는데,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방에 처하여 문수사리의 앞에 머물면서 그가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담담하게 선정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사리불은 곧 손가락을 튕겨 보았지만 문수사리를 깨어나기 할 수 없었고, 이어서 큰 소리도 내어 보았지만 역시 일어나게 할 수 없었다.
또 일심(一心)으로 문수사리가 이와 같은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는 것을 보았고 제 자신은 큰 바다 위에 있는 것을 관하고는 크게 놀라서 뛰쳐나오려고 하였지만 문수사리가 삼매에 들어 있는 그 방에서 도저히 물러나올 수가 없었고, 신통력으로써 허공에 솟아올라 보려고도 하였으나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이렇듯 신통력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벗어날 수 없었으며, 게다가 자기 자신이 문수사리와 함께 그 방에 머문 채로 저절로 동쪽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사리불은 문수사리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동쪽으로 항하강 모래알처럼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왔는데, 이곳 세계의 이름은 불퇴전음(不退轉音)이었고
부처님의 칭호는 최선광명연화개부(最選光明蓮花開剖)였다.
현자(賢者) 사리불이 문수사리를 따라서 저 거룩하신 부처님을 뵈니 온갖 털구멍마다 모두 연꽃이 나왔고, 또 그 연꽃은 각각 둘레가 사십만 리나 되었는데 모두 삼천대천의 부처님 국토를 비추고 있었다.
저 모든 연꽃들마다 십만 수효의 절묘한 보배로 줄기가 만들어졌고, 또한 금강(金剛)ㆍ자마(紫磨)ㆍ황금(黃金)으로 만들어진 사자좌(師子座) 위에는 모든 보살들이 앉아 있었는데,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에서 물러남이 없고 총지(摠持:陀羅尼)로써 다섯 가지 신통을 증득하여 스스로 즐기고 또한 법인(法忍)을 성취하였으며 32상(相)으로 그들의 몸을 장엄하고 있었다.
최선광명연화개부(最選光明蓮花開部)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배꼽1)에서 연꽃이 나왔는데 티없이 깨끗하였고 그 빛깔도 백천 가지로서 그 수효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으며, 푸른 유리(琉璃)의 줄기가 아름답고 미묘하게 서로 얽혔는데, 그 위에다 가장 좋은 전단(栴檀)과 진귀한 보배로 자리를 깔았고 특수하고도 기이한 구슬방울이 사방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 자리만이 홀로 공중에 떠 있었는데 문수사리(文殊師利)가 그 위에 앉자 그 연꽃으로 된 사자좌(師子座)와 함께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마침내 삼십삼천에 이르렀다.
잠시 후에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연꽃 위로 되돌아가 앉았으며, 그 세존 앞에서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였다.
그때에 최선광명연화개부 여래ㆍ등정각께서 문수사리 인자(仁者)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이 땅으로 왔느냐?”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저는 인계(忍界:娑婆) 세계(世界)에서 왔습니다.”
이때에 그 부처님을 시봉하는 유음(柔音)과 연향(軟響)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이들은 이미 으뜸가는 정진(正眞)의 도에 뜻을 두고 있었으며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두 보살은 연꽃 위에서 의복을 고쳐 입고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인토(忍土:娑婆世界)는 여기서부터 얼마나 멉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항하의 모래수만큼 많은 국토를 지나면 거기에 인세계가 있는데 지금 여기 있는 이 문수사리는 그곳에서 왔느니라.”
유음과 연향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인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는 무엇이며, 지금도 그곳에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의 명호는 능인(能人)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신데 지금 그곳에서 법을 강설하고 계시느니라.”
또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부처님께서는 어떤 법을 드러내어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3도(道:三乘)의 교리를 열어 보이시느니라.”
시자(侍者)가 또 아뢰었다.
“어떤 것을 3도의 교리라고 합니까?”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그리고 큰 부처님의 도가 3도(道:三乘)의 교리이며 석가문(釋迦文)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법을 설하시는데 이것이 3도의 교리이니라.”
시자가 또 아뢰었다.
“여러 불(佛) 세존(世尊)께서 경을 설하여 개화(開化)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설법은 다 같느니라.”
유음(柔音)과 연향(軟響)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 같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불퇴전법(不退轉法)을 강설하시니, 이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또 아뢰었다.
“능인(能人)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왜 3도(道:三乘)의 교리를 설하십니까?”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국토의 중생들은 억세고 강하여 교화시키기 어려우며, 마음이 열악하고 의지마저 허약하므로 1승(乘)법만을 가지고는 구원하고 교화하여 제도할 수 없나니, 그러한 까닭에 그 불ㆍ세존께서는 훌륭한 임시방편으로써 설법하시는 것이다. 능인여래께서는 5탁악세(濁惡世)2)의 중생들은 발심시키고 이 훌륭한 방편으로써 이치를 따르게 하여 제도하시려는 것이니라.”
또다시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인세계(忍世界:娑婆世界)의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렵겠습니다.” “실로 그러하니라. 매우 수고롭고 위태로우며 걱정스러우니라.”
시자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유쾌하게도 훌륭한 이익을 얻어 그러한 국토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멈추어라,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마땅히 그런 말은 그만두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고 반성하도록 하라.”
또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이미 해버린 말을 고치고 반성하라 하십니까? 인세계에서는 법을 강론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 국토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여러 어진 이들이여, 거듭 그런 말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마땅히 스스로의 잘못을 고쳐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부처님의 국토에서 이십억 나술(那術:那由陀) 백천 겁 동안 많은 덕을 닦는다 할지라도 저 인(忍)세계에서 날이 밝아서부터 밥 먹는 시간에 이르기까지의 짧은 기간에 사람들을 위해 도무극(度無極:波羅蜜)의 법을 설하고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삼보(三寶)에 귀명(歸命)케 하거나 그 중생들로 하여금 5계(戒)를 받아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도를 놓아버리게 하는 것만 못하니, 이것이 보살로서 그 국토에서 법을 설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거늘 더구나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사문(沙門)이 되게 하고, 속세와 비근(卑近)한 도를 버리고 올바른 법을 보호하게 하며, 권유하고 도와서 훌륭한 법의 이치에 들게 하며, 간혹 다시금 큰 도를 건립하여 드러나게 하는일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것이 곧 보살로서 그곳 중생을 가르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 인세계는 환난(患難)이 많기 때문이니라.”
또 아뢰었다.
“어째서 그곳은 그렇게도 환난이 많습니까?”
세존께서 유음(柔音)과 연향(緣響) 두 보살에게 대답하셨다.
“어진 이들로 하여금 수명이 다하도록 나술(那術:那由陀)억 백천 겁 동안 그 설법을 듣게 하되 무수히 많은 여러 부처님 국토만큼 매우 긴 수명을 받아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말한다 하더라도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인세계 중생들이 품고 있는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한량없는 악한 법을 설명하더라도 또한 다 말하지 못할 것이니, 이제 내 입으로 저 중생들의 죄복(罪福)과 인연을 설할 것이요, 또한 부처님의 지혜로써 저 인(忍)세계의 수없이 많은 더러운 때를 낱낱이 분별할 것이니라.”
그때에 유음과 연향보살이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소리 높여 찬탄하고 칭송하였다.
“미묘합니다, 능인(能仁) 여래시여. 가장 자비하신 사자(師子)시여, 사람의 왕이시여. 도덕(道德)이 높고 우뚝하여 걸림이 없으십니다.”
이렇게 세존을 염(念)하여 찬탄하는 엄숙한 마음으로 공경하였다.
“본래의 공덕과 마음 속의 소원으로 인하여 중생들을 위해 수고로움을 참고 견디시면서 도(道)의 이치를 강설하시어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한량없는 치우친 법[蹇法:偏法]을 없애주시고 성문과 연각의 마음을 계발(啓發)하여 점차로 열어 교화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하십니다.
드러난 도와 깊은 지혜로써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많은 덕의 근본에 노닐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영화나 바람이 없게 하십니다.”
여러 보살들이 칠보(七寶)의 꽃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수히 많은 백천 가지 빛깔이 찬란하였으며 청정하여 티가 없었고, 또 한량없이 많은 잎이 금강(金剛)의 줄기에 나 있었으며, 그 연꽃 위에는 이슬이 영롱하게 얽혀져 마치 미묘한 전단(栴檀)과 갖가지 보배로 합성(合成)된 듯하였다.
영락(瓔珞)을 골고루 깔아 장엄하였는데 마음의 밝은 눈으로 오래된 본래의 덕을 통달하고 교화를 일으켜 맑고 거룩한 행동을 나타냄이 마치 환화(幻化)와 같았다.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뻐하여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손으로 이 꽃을 움켜잡고 멀리 석가문(釋迦文)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계신 곳으로 향하였다.
저 인계(忍界:娑婆世界)를 돌아보며 일심으로 꽃을 뿌리니 마치 보배 일산과 비단 당기와 번기가 비가 오듯 쏟아졌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능인(能仁)여래에게 공양하고 나서 갖가지 향을 뿌리고 전단향(栴檀香)과 잡향(雜香)ㆍ가루향[擣香]을 사르고 스스로 그 국토에서 오체[五心]를 땅에 던지고 서쪽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능인불ㆍ등정각과 이 인계(忍界)의 보살대사(菩薩大士)께 귀의합니다. 이 사바세계의 보살마하살은 다함이 없는 덕의 갑옷을 입고 정진(精進)에 뜻을 두고 생각이 교만하거나 방자하지 않으며, 덕을 갖춤이 높디 높으며 그 마음이 최후의 경지에 이르러 지극히 존귀하고 거룩하시며 절묘합니다. 바른 법을 받들어서 그 법이 힘이 되어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큰 광명을 뿜어내어 1승(乘)의 경지를 익히셨습니다.”
그들은 또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함께 찬탄하여 말하였다.
“바라건대 저희들은 능인여래ㆍ지진ㆍ등정각과 여러 보살을 받들어 뵈옵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훈계를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그때에 최선광명연화개부(最選光明蓮花開部)여래께서 여러 보살들이 이렇게 칭송하는 말을 듣고 그들의 마음을 관찰하신 뒤에 여러 보살대사들을 위하여 부처님의 법을 말씀해 주시고 긴요한 이치를 분별하여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시고는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족성자(族姓子)들이여, 너희들은 능인(能仁) 무착(無着) 정각과 인(忍)세계의 여러 보살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뵙고 그 백성들의 처소에서 배우도록 하라.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아 중생들을 순화(順和)시키고 위급한 지경에서 제도하려는 마음을 내며, 마음 속에는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깊고 오묘한 법에 대하여 일찍이 두려워하지 말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비방하지 말며 많은 덕의 근본을 심도록 하라.
마음에 집착하지 말고 보답이 있기를 희망하거나 생각하지 말 것이며,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波羅蜜)행을 받들어 행해야 하느니라.
보살대사들은 인(忍)세계에 태어나서 능인여래를 숭상하는 것은 그들이 숙세에 발심한 본원력(本願力)때문이니 바른 법을 따르고 받들어서 그 도로써 힘을 삼아 여러 부처님의 행(行)을 깨닫도록 하라.”
보살들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거룩하신 뜻을 받들어 모두 다 그곳에 가서 태어날 것이며,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에 대해서 영원히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최선광명연화개부여래ㆍ등정각께서 유음(柔音)과 연향(軟響)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문수사리와 함께 인(忍)세계에 가서 가르침을 잘 받들어 수행하고 마음을 밝히도록 하라.”
유음과 연향보살이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이 능인여래께 나아가 인세계를 관찰하고자 하오니 어질고 거룩한 지혜를 베풀어 저희들로 하여금 과(果)를 얻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같이 가도록 합시다. 여러 족성자(族姓子)들이시여, 모든 세존은 뵙기도 어렵고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억 세가 지나야 한 분쯤 태어나기 때문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함께 공양을 올리고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시방 세계에 출현해서 그곳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교화하여 대도(大道)에 들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지혜를 체득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땅히 모든 기행(蚑行)이나 천식(喘息) 등 인물(人物)들을 위하여 공손하고 순종3)하여 불ㆍ세존께 예를 올리고 경전(經典)을 물어서 시방의 중생들로 하여금 최상의 경사스러움을 증득하고 성취하게 해야 합니다.”
보살들이 대답하였다.
“저희들로 하여금 존자와 함께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뵙고 귀명(歸命)하여, 가르침을 받아서 성스러운 지혜를 익히고 배워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교화할 수 있게 해 주십시요.”
그때에 문수사리가 저 최선광명연화개부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 그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는 여러 보살들과 함께 공손하고 엄숙하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리고는 사리불과 함께 부처님의 설법을 들여 가르침을 받고서 하염없이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다섯 가지 일이 허깨비와 같음을 관찰한 뒤 각각 꽃ㆍ향ㆍ전단향ㆍ잡향(雜香)ㆍ가루향ㆍ비단 당기와 번기로써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니 이들은 모두 부처님 본덕(本德)의 힘을 입은 것이었으며, 마음과 의지가 견고하여 삼보를 따르고 받드니 그것은 중생들을 제도하여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끝나자 팔을 한 번 굽혔다 펴는 짧은 시간에 홀연히 나타나 보이지 않더니, 곧 동방으로 항하강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 부처님 앞에 이르러 여러 부처님께 대승경전을 설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자 부처님께서 불퇴전(不退轉)의 방등(方等)과 때없이 청정한 밝은 법을 강설하셨다.
그 여러 불국토에는 여인(女人)이 전혀 없었고 또한 성문이나 연각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도 없었다. 모든 부처님 국토의 덕의(德義)와 다름이 없는 깨끗하고도 청결한 모습들이 마치 최선광명연화개부 여래의 불국토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보살의 도량(道場)이 불국토를 가득 채웠고, 그 모든 세존의 배꼽에서는 모두 연꽃이 나왔다. 그 연꽃 위마다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문수보살이 있어 감동을 주는 변화를 일으켰고 위의(威儀) 또한 한결같았으며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동쪽ㆍ남쪽ㆍ서쪽ㆍ북쪽과 동남ㆍ서남ㆍ서북ㆍ동북ㆍ위ㆍ아래와 시방 세계의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국토마다 문수사리가 그 앞에 나타나서 두루하지 않음이 없었고 저 모든 여래께서는 이 불퇴전법륜의 방등과 티없는 법을 모두 강설하시니, 일체의 시자(侍者)들이 엄숙한 마음으로 공경하 였으며, 그 의지는 대도(大道)에 둔 채 연꽃 위에서 무릎 꿇어 합장하며 그곳 부처님께 아뢰었다.
“능인(能仁)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3도(道:三乘)의 교리를 말씀하십니까? 모두들 능인여래가 계신 곳으로 가서 법화(法化)에 대하여 여쭙고자합니다. 저희들은 문수사리를 따라 가서 은혜를 구하고 제도를 받고 싶습니다.”
시방의 여러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문수사리를 모시고 호위하여 다 같이 능인여래의 불토로 가도록 하라.”
그때 인(忍:娑婆)세계 염부제(閻浮提)는 밤이 깊어 아직 밝지 않았었는데 현자(賢者) 아난(阿難)은 때마침 광명이 창틈으로 비치는 것을 보고 곧 침상에서 일어나 정사(精舍)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 기원(祇洹) 정사를 대낮같이 밝게 비추는 광명을 보고 허공을 쳐다보았으나 달은 보이지 않았다.
기원정사를 두루 살펴보니 다만 구슬처럼 유연하고도 맑게 흐르는 푸르디 푸른 물만 보였으며, 수목(樹木)과 방실(房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난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마땅히 크고도 심오한 법을 강설하시고자 하기 때문에 먼저 이러한 상서로운 감응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때에 아난이 걸어서 물에 들어갔지만 물은 발을 적시지 않았고 몸도 물에 빠지지 않으므로 크게 기뻐하면서 신실(神室)로 나아가 세존을 뵙고자 했다.
그곳에 나아가 보니 천만 개의 연꽃이 부처님 계신 신실을 에워싸고 있었고, 또 커다란 소리로 약간의 음악이 들려왔는데 연꽃에서는 광명이 나와서 기원정사와 사위성(舍衛城)을 밝게 비추었으며 삼천대천세계의 어느 곳 하나 밝게 비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음이 너무 기뻐 오른쪽 어깨를 벗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때 먼동이 트고 밝은 해가 떠오르니 부처님 계신 신실을 에워싼 커다란
---------------------------------------------------------------------------------------------------------------------------------
[11 / 184] 쪽
연꽃 가운데 가장 큰 연꽃이 기원정사의 가운데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아난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나는 마땅히 저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펴야겠다. 이것은 아마도 설법을 하기에 앞서 생기는 상서로운 감응일 것이리라.’
그가 곧 자리를 펴니 때마침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번 반복하여 진동하였고, 열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시방의 불국토도 또한 이와 같았으니, 큰 생각[大意]이 다 함께 사무쳐 놀라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푸른 연꽃ㆍ붉은 연꽃ㆍ누런 연꽃ㆍ흰 연꽃이 널리 부처님 국토에 두루하였고 저절로 나무가 생겨났는데 가지와 잎새, 꽃과 열매도 모두 무성했다.
여러 비구들이 집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큰 물을 보고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했다. 기수원(祇樹園)을 보니 매우 맑고 깨끗한 물이 이미 가득하였고, 머무르고 있는 정자는 보이질 않았으며 오직 큰 광명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마음 속으로 각각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마땅히 크고도 미묘한 법을 강설하시고자 하기 때문에 먼저 이러한 변화의 감응이 나타난 것이리라.’
그때에 세존이신 능인(能仁) 큰 성인께서 삼매(三昧)에서 깨어나 신실(神室)을 나와서 사자좌에 올라 자리하고 앉으시니, 그 때를 맞추어 시방의 모든 세계에 계신 여러 불ㆍ세존께서 몸을 솟구쳐 큰 광명을 놓으셨는데 각각 색깔이 달라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모습을 저 모든 백성들이 어느 누구라고 보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그때에 문수사리는 시방 세계에 두루한 많은 보살들과 함께 여러 부처님의 국노를 돌아다니면서 빠짐없이 골고루 공양했다. 이 큰 보살은 중생을 인도하는 여러 보살들과 함께 신통력으로 나타내 보임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하므로 중생들을 구제하여 이롭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을 지니고 따르게 하며, 그들을 교화하여 해탈케 하기 위하여 중생들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그들을 인도하였고 시방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각각 설법하여 마쳤다.
문수사리는 능인(能仁)여래께서 사자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여러 보살들과 함께 기수원(祇樹園)의 땅에서 솟아올라 무앙수(無央數) 억억(億億)
---------------------------------------------------------------------------------------------------------------------------------
[12 / 184] 쪽
백천 나술(那術:那由陀) 조해(兆姟) 만큼 많은 모든 보살들이 불ㆍ세존의 주위를 한량없이 돌고 돌았다.
그들은 각각 한량없이 많은 연꽃을 변화로 만들어 냈는데 십만여 개의 꽃잎은 그 색깔이 각각 달랐다. 이러한 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부처님 위에 뿌리니 허공이 빈틈이 없었다.
또 이 보살이 전단향(栴檀香)과 잡향(雜香)ㆍ가루향[擣香]등 미묘한 향을 뿌리니, 그 향기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퍼져서 아름다운 향과 보시(布施)ㆍ준계(遵戒: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禪定)ㆍ지혜(智慧:般若)와 훌륭한 방편ㆍ신통의 향과 분류법향(分流法香)과 여섯 가지 바라밀, 보살의 미묘한 도혜(道慧)의 향, 경의 이치[經義]를 원만하게 갖춘 수행의 향 등 여러 종류의 많은 향기를 일으켜 모두 큰 광명을 뿜어내니 그 광명이 시방
세계 부처님 앞에 두루하였다.
그리고 용맹하고 강한 의지로 부처님의 위엄과 교화를 잘 받들어 능인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 공양하고 큰 정진을 행하고 바른 도를 부지런히 닦아 그 마음이 견고해져서 뛰어넘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이들이 여래에게 귀명(歸命)했다.
그때 문수사리가 여러 보살과 모든 중생들과 함께 여의주(如意珠)와 마니주(摩尼珠)로 장엄하였고 갖가지 보배나무를 여덟 품으로 나누어 줄줄이 심어놓고 그 보배 나무 위에는 번기를 달고 그 사이사이에 구슬 휘장과 자마황금(紫磨黃金)을 섞어 장식했으며, 명월주(明月珠)로 땅을 덮고 변화로 집과 강당ㆍ누각을 짓고 창문[天窓]과 난간ㆍ대문도 아름답게 조각해 놓았다. 솟아나는 섬의 원천과 못, 강ㆍ하천의 흐름 그리고 동산에 흐르고 있는 물 위에는 연꽃이
피였는데 푸르고 붉고 노랗고 흰 색깔의 꽃잎이 모두 투명한 구슬과 같았으며 곳곳을 뒤덮지 않은 곳이 없었다.
땅 속에서는 감로(甘露)가 솟아났는데 그 물은 여덟 가지 맛이 있었으니, 이는 중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큰 도를 나타내 보인 것으로 그 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의(菩薩意)의 마땅히 해야 할 수행에 대한 발심을 일으키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자애를 베풀고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문수사리는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자기의 도력으로써 능인 여래가
---------------------------------------------------------------------------------------------------------------------------------
[13 / 184] 쪽
본래 원하는 바를 따르게 하려는 까닭에 이러한 변화로써 중생들을 개화(開化)한 것이었다.
유음과 연향 두 보살 등이 다 함께 권유하고 도왔으며 불가사의한 무심(無心)과 불심(佛心), 그리고 착한 심사(心思)로 인도하고 큰 덕의 갑옷을 입고서 정진(精進)을 행하였으며 몸소 높은 덕을 행하였다.
예전에 마음먹고 뜻했던 바대로 허공을 장엄하는 일을 마치고 모두 부처님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에 세존께서 도의 가르침을 베풀고 법의 광명을 놓아 문수사리와 여러 보살들에게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자리에 앉게 하니, 그때에 십만 송이의 연꽃이 부처님의 몸에서 저절로 나왔는데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는 색깔을 지녔으며 백천 광명을 나타내어 홀로 비추었으며, 줄기는 보배로 되어 있고 꽃잎 둘레는 진보(珍寶)로 된 구슬이 두루 늘어져 있는데 사이사이로 마니주가 섞여 있었으며, 전단향과 잡향(雜香)으로 사자 모양의 자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보살의 무리들이 모두 그 위에 앉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그때에 능인(能仁:석가모니)부처님께서 배꼽으로 광명을 뿜어내시니 그 광명의 이름은 금강(金剛)이요, 또한 중생(衆生)을 구제하려고 그러한 광명을 뿜어냈는데 백천 연화(蓮花)의 광명이 각각 달랐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연화의 광명은 청정하고 미묘했으며 마치 자마금(紫磨金)빛 같았고, 뒤섞여 드러난 휘장은 매우 향기롭고 깨끗하여 시방 세계를 밝게 비추었는데 조금도 걸림이 없었다.
이 연꽃 가운데에서 저절로 억천 개의 연꽃이 변화로 만들어져 나왔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다 받으셨던 것으로서 법계가 평등한 한 종류였으니, 이것은 중생을 가르치는 해탈문이요, 또한 언교(言敎)의 소리로서 고정관념도 없고 원할 것도 없는 법이요, 삿된 행도 없으며,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삼세는 허공과 같으니, 눈의 경계가 청정한 자연(自然) 그대로의 궤적(軌跡)이었다. 거기에서 억천 가지 이름의 보배 연꽃이 변화로 생겨났는데, 문수사리는
그 위에서 편안한 발걸음으로 나아가 적연(寂然)한 마음으로 앉아서 부처님의 몸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의 몸은 아무런 형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
[14 / 184] 쪽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세존에 대해 생각하여 일체를 또렷이 깨달았으니, 그가 깨달은 삼매(三昧)의 이름은 금강(金剛)이었다. 그는 또 능인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법을 배우고,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법을 수행하여 불모삼매(不慕三昧)에 들어갔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와 시방 세계 부처님 국토에 있는 모든 보살들이 좌정하고 앉아 선정에 들어가 여러 부처님의 법을 닦고 과거의 수없이 많은 큰 성인들께 공양함을 보았다. 문수사리가 거두어 보호하고 마음 또한 비겁하거나 나약함 없이 부처님의 도를 따라 수행하고 사자좌(師子座)에 앉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 현자(賢者)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서 가서 사위성(舍衛城) 기수원(祇樹園) 안팎에 있는 비구와 비구니, 청신사(淸信士)와 청신녀(淸信女)들에게 두루 알려라. 진실로 삼보인 부처님과 법(法)과 승가를 즐거워하고 모든 덕의 근본을 심기 위하여 이 성에 오고 싶은 이는 모두 이 법회에 모이게 하라. 내가 이제 마땅히 설법을 하리라.”
아난이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그곳에 가 부처님의 명을 선포하였다. 그러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지난 밤에 크게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는 곧바로 그곳에 가서 마땅히 큰 법인 대승의 심오하고 중요한 일에 대해 강설하시는 것을 관찰하고 알기 위하여 그 모임에 가려고 하였으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아난이 물었다.
“어떤 것들이 그 법회의 장소로 가는 데 방해되고 장애가 되었습니까?”
모두들 대합하였다.
“지금 기수원[祇樹]을 보니 큰 물이 가득한데 그 물빛이 너무도 푸르러 마치 구슬과도 같고, 유연(柔軟)하면서도 맑지만 수목(樹木)은 보이질 않았으며 가옥이 모두 침몰되어 있었고 오직 큰 광명만 보일 뿐이었으니, 그런 까닭에 스스로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아난이 이 사실을 모두 갖추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이 가로막힌 장애를 해소하지 못한 것은 전혀 물이 없는 것을
---------------------------------------------------------------------------------------------------------------------------------
[15 / 184] 쪽
가지고 부질없이 물이란 생각을 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구들은 물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말았어야 했거늘, 다만 이 모든 것은 마음이 열리지 못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존재[色], 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 고정관념[思想:想], 나고 죽는 행업[生死:行], 인식작용[識]에 대하여 오히려 있는 것이라 말하고 집착하면서 믿지 않아야 할 것을 집착하고, 받들어야 할 법이 아닌 것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여덟 가지 평등한 마음을 생각하여 깨달음을 획득하지 못하였구나. 도의 자취는 가고 옴을 반복하지 않나니, 도에 집착할 게 없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 성문(聲聞)을 이룩하겠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
야 하는데 성문을 이루려 하고 연각을 성취하겠다는 생각도 내지 말아야 하는 데도 연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너는 다시 가서 이 법회에 오라고 거듭 일러라.”
아난이 칙명을 받아가지고 가서 세존의 가르침대로 하나하나 빠짐없이 그들에게 말해주고 되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사부대중들이 모두 와서 법회 장소에 모여 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현자 목련(目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삼천대천세계에 가서 깊이 배운 보살대사(菩薩大士)와 무극의 갑옷[無極鎧]을 입고 성심으로 대승(大乘)을 구하는 이와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와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健沓惒:乾達婆)ㆍ아수륜(阿須倫:阿修羅)ㆍ가유라(迦由羅:迦樓羅)ㆍ진다라(眞陀羅:緊那羅)ㆍ마후륵(摩睺勒:摩睺羅伽)ㆍ인비인(人非人)을 모두 불러서 그들로 하여금 오늘 큰 법회가 있음을 알게 하여 아직껏 듣지 못했던 법을 듣게 하라.
사부 제자와 인비인(人非人)들로서 혹 천성(天上)에 있든지 세간(世間)에 있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과거 세상에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공경하였고, 대승에 뜻을 두고 한 가지 도에 머물러 배우면서 마음 속으로 큰 지혜를 지닌 묘존(妙尊)으로서 가장 높고 당당하며 다함이 없는 이를 사모하는 이와, 보살대사로서 큰 덕의 갑옷을 입은 이와 이로운 법의 이치를 구하고 정진을 중단하지 않은 이가 있으면 모두 이 법회에 오게 하여 심오하고 미묘한 법을
---------------------------------------------------------------------------------------------------------------------------------
[16 / 184] 쪽
듣게 하라.”
목련은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아가지고 스스로의 도력(道力)으로써 팔을 한 번 굽혔다 펼 시간에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알리기를 ‘이와 같이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법을 마땅히 함께 와서 자세히 듣도록 하라’고 말하고는 조금 있다가 신통력으로써 부처님 앞에 되돌아와서 세존께 아뢰었다.
“이미 널리 부처님의 말씀을 알렸습니다.”
그때 사부 대중들이 사십만 리를 가득 둘러싸고 있었으며 여러 하늘ㆍ용신(龍神)들도 허공에 머물러 있어서 오십만 리의 허공이 빈 틈이 없었다.
그때 문수사리가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 사부 대중들이 모두 이 법회에 모였으며, 여러 하늘ㆍ용신(龍神)들도 허공을 가득 메운 채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다 여래의 위엄 있고 신비한 변화로 광명이 찬란하여 통달하지 못한 곳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대중들이 자리에 좌정하고는 공경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설법하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잠시 웃으시니 칠보(七寶)로 된 연꽃이 땅에서 솟아나왔는데 연꽃 잎새마다 무앙수(無央數) 백천의 휘장이 서로 엉겨 마치 크고 우뚝한 수레와 같았다. 이것이 천제(天帝)의 자리를 뛰어넘었고 명월주(明月珠)ㆍ적주(赤珠)ㆍ영락(瓔珞) 등 갖가지 구슬을 드리워 장식한 당기를 만들어 팔방(八方)을 향하였으니, 이것은 여덟 가지 어려운 일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었다.
사부 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청신사ㆍ청신녀와 여러 곳에서 모인 하늘ㆍ용신ㆍ건답화 등과 인비인(人非人)이 그 위에 모두 앉아서 널리 존안(尊顔)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수사리를 따라온 보살대사 등과 좋은 상호를 원만하게 갖추어 우뚝하고 당당한 뜻을 같이 한 한 부류들도 연꽃 뒤에 앉아서 일심(一心)으로 합장한 채 원원(元元:佛)을 공경하고 부처님의 거룩한 덕을 살피고 있었다. 또한 무수사리와 마음 속으로 큰 도를 구하는 이들에게도 공경을 다하였다.
그때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
[17 / 184] 쪽
“사부 대중들과 여러 하늘ㆍ용신들이 모두 목마르게 우러러 보면서 부처님께서 불퇴전법륜인 번뇌[垢]를 여의는 법에 대해 찬탄하여 설해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비구ㆍ비구니ㆍ청신사ㆍ청신녀와 여러 하늘ㆍ용신들 무앙수천(無央數千)이 믿음을 독실하게 가질 생각과 법을 받들 생각이 있으며, 여덟 가지 평등[等]의 생각과 도적(道迹:須陀洹)ㆍ왕래(往來:斯陀含)ㆍ불환(不還:阿那舍)ㆍ무착(無着:阿羅漢)ㆍ성문(聲聞)ㆍ연각(緣覺)등 각각에 대한 이런 생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게 하셔야 할 터인데, 무슨 까닭에 믿음을 가진 이와 법을 받드는 이와 연각의 행[緣覺行]을 나타낸 사람들에게 광명을 비추십니까?”
그러나 세존께서는 묵묵히 아무런 응답도 없으셨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큰 성인이시여. 제가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방을 나와서 문수사리를 찾아가다가 세존께서 계신 방을 엿보고 그곳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더니 십만 개의 연꽃이 여래께서 계신 방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큰 광명이 나와 기수원(祇樹園)과 사위국성과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고 큰 법음(法音)의 음악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것이 무슨 감응(感應)이온지 해설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장차 이 불퇴전의 법륜[不退轉輪]을 강설하려 하였더니 문사사리가 이러한 상서로움을 모두 갖추어 분별하여 나타내었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오늘 새벽녘에 큰 광명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에서 깨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기원(祇洹)에 물이 가득하였는데 그 물은 부드럽고도 맑았으며, 수목(樹木)과 정사(精舍)는 보이질 않고 다만 커다란 광명만 보였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에 생긴 감응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문수사리가 마땅히 심오한 법인 불퇴전법륜의 법을 설해 달하고 간
---------------------------------------------------------------------------------------------------------------------------------
[18 / 184] 쪽
청하였으므로 생겨난 상서로움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현자 아난을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모든 부처님께선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없고
1승(乘)의 법 성취하신 가장 높은 분이시니
저 연음(軟音:文殊)보살이 용맹하고
인연이 있어 이런 질문을 하였느니라.
이 수레[乘]는 청정하여
위없는 불도를 이루나니
보연음(普軟音:文殊)이 용맹하기에
이제 이런 질문을 하였느니라.
이 수레는 고정관념이 없고
청정하여 희롱과 놀림을 여의었나니
보연음이 용맹하기에
이제 이런 질문을 하였느니라.
보연음이 질문한 것은
모든 승(乘)을 구제하기 위함이니
처소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으며
생겨나거나 소멸하지도 않는 법이니라.
자문(諮問)하고 찬탄하는 이 모든 일들
이것으로는 도과(道果)를 이룰 수 없다.
세존도 본래 없는 것
이 가르침만이 진실을 이루리.
보연음이 용맹스러워
---------------------------------------------------------------------------------------------------------------------------------
[19 / 184] 쪽
이제 이런 질문을 하였으니
여기에서 소리를 여읜 것은
모든 소리가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보연음이 질문한 것은
동(動)함으로 인하여 소리 있으나
그 소리는 얻을 수도 없고
법(法) 또한 소리나 글자가 없다네.
보연음이 질문한 것
법을 설한 음성은 바람과 같아
형체도 여의었고 의지할 데도 없으니
중생들을 소리로부터 제도하려 함이니라.
아난은 또 이 말 들으라.
보음(普音:文殊)이 질문한
정법(正法)과 시신(時身)에 대한 말과
여섯 가지 세계라는 생각도 또한 공(空)한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 등정각(等正覺)도
공적(空寂)하여 아무 모습 없으니
설하거나 설하지 않거나 간에
모든 법은 머무름이 없다네.
평등각(平等覺)은 형색이 없고
도적(道迹:須陀洹)이 나아갈 바는,
오는 것을 얻고는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설법이니라.
형체도 여의고 모든 모습 멀리하여
허공과 같아 헤아릴 수 없으며
부처님의 도는 여여하여 집착의 대상이 아니니
이것이 보음(普音)이 질문4)한 것이니라.
과거와 미래의 부처님과
현재의 부처님도 또한 그러해서
도혜(道慧)의 뜻 나타내려 해도
일찍이 길이 있음을 보지 못했네.
법계(法界)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다만 이름일 뿐이며
경전 분별하는 것도 본래의 없는 것
이 법이 곧 도(道)이니라.
보시도무극(度無極:波羅蜜)과
정계(淨戒:持戒)도무극도 또한 그러하고
인욕(忍辱)도무극도 그러하니
이를 설하며 부처님의 도를 나타내었네.
정진(精進)도무극과
일심(一心: 禪定)도무극도 모두 그러하고
지혜(知慧)도무극도 그러하므로
도(道)의 혜명(慧明)을 나타내었네.
부처님은 훌륭한 방편이 있어서
4)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들을 문[聞]’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로 보아 ‘물을 문[問]’자로 되어야 하며 또한 신수장경 각주에도 “송(宋)ㆍ원(元)ㆍ명(明)본과 궁(宮)본에 모두 ‘문(聞)’자가 ‘문(問)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21 / 184] 쪽
신통력으로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고
소리를 빌어 부처님의 도 강설할 뿐
세속에 집착하는 것은 없느니라.
삼승의 교리 나타내 보이고
4과(果)를 설하여 선양(宣揚)하시니
도사(導師)께서 강설하시는 것은
본성(本性)을 살펴 따라준 것일 뿐이네.
나는 5탁(濁)세계의
지혜가 뒤떨어지고 게으르고 폐악한 사람들을 흥기시키기 위해
일부러 불승(佛乘)을 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큰 성인이 되게 하였네.
내가 4과(果)의 음성을 나타내어
이미 무착(無着:阿羅漢)의 도를 성취하게 하였으니
음성으로 도 이루면 성문이라 하거니와
모든 법은 인연으로 모인 것이 아니니라.
이른 바 모든 인연이 모여
모든 것이 성립된 것임을 가르쳤네.
현재에도 인연(因緣)을 얻었으므로
눈 앞의 법을 설하는 것이니라.
나한(羅漢)을 성문이라 말하고
관법으로 인하여 연각 이루네.
영원히 생겨남 없는 법인(法忍)은
보살만이 볼 수 있는 것이라네.
---------------------------------------------------------------------------------------------------------------------------------
[22 / 184] 쪽
공(空)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이요.
평등(平等)과 선(禪)과 불원(不願),
이 세 가지 해탈문에 대하여
음성으로 설법하여 니원(泥洹:涅槃)에 들게 하였네.
보음(普音)이 이제 질문한 것은
그 법이 심오하고 오묘하여 한량없으니
힘을 기울여 지극한 정성으로
과(果)를 이룩할 생각 그만두지 말라.
일승법에만 전력을 다하고
일체의 법 생각 않게 하기 위해
부처에게 이런 질문하여
덕과(德果)의 인연 알게 하였네.
삼세는 평등하고
공적(空寂)하여 모습5) 없으니
이미 일체의 음성에서 해탈하였고
부처님의 도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네.
스무 개 강수(江水)의
모래알처럼 많고도 많은
그러한 보살들을
모두 보음(普音)이 교화하였네.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듣고 배워서
보살의 행(行)을 닦아
5)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상(想)’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로 보아 ‘상(相)’이라야 뜻에 합당하므로 역자는 ‘모습’이라고 번역하였다.
---------------------------------------------------------------------------------------------------------------------------------
[23 / 184] 쪽
3도(塗)를 평등하게 대하고
찬양하며 대승(大乘)으로 들어가네.
보음의 의지 용맹스러워
결정코 모든 의심의 그물과 집착 없애고
덕의 과업 생기게 하기 위하여
나에게 도혜(道惠)를 질문하였네.
이것은 부처님께서 건립하신 것으로
원력(願力) 닦음이 이와 같았고.
삼승에 대하여 두루 설법하여
근고(勤苦)와 걱정에서 구제하였네.
보음의 의지 용맹스러워
이런 일 만들어 내어
도사(導師)6)에게 법을 강설하게 하여
보살도의 수행법을 보였느니라.
억백천(億百千)의 모든 하늘이
허공에서 부처를 공양하면서
마음으로 덕의 과업 집착하는 까닭에
이러한 의혹 끊게 하려 함이니라.
저 사부 대중인 비구와
비구니와 거사는
덕의 과업에 집착하고 생각을 일으키므로
6)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도사(道師)’로 되어 있으나 신수장경 각주에 “송(宋)ㆍ원(元)ㆍ명(明)본과 궁(宮)본에는 ‘도사(導師)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24 / 184] 쪽
분별하여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니라.
보유(普柔:文殊)의 이런 질문은
모든 의심의 그물을 뽑아 없애려는 것
이 모든 보살들 여기에 모여
이 법을 구하려 하네.
2. 지신품(持信品)
그때 세존께서 이 게송을 설(說)하시자 현자(賢者)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큰 성인이시여. 그렇다면 문수사리(文殊師利)는 지금 여래께 물러남이 없는 법륜[不退轉輪]을 질문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러면 곧 물러남이 없는 법륜에 대하여 강설하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모든 불ㆍ세존께서도 이로 인하여 물러남이 없는 법륜을 마땅히 설하실 것이니라.”아난이 또 아뢰었다.
“최승(最勝:如來)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독실하게 믿음을 지니는 것에서부터 연각(緣覺)에 이르기까지 여래께서는 오직 보살법만을 나타내 보이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오직 보살의 경전(經典)만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전달하는 것이 최상(最上)이 되느니라. 왜냐 하면 우리 몸이 어쩌다가 5탁악세(濁惡世)에 태어나서 게으름을 피우고 뜻이 약하기 때문이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훌륭한 방편으로써 때와 근기에 맞추어 바른 도리를 강설하신 것이니라.
---------------------------------------------------------------------------------------------------------------------------------
[25 / 184] 쪽
중생들이 미묘한 가르침에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이는 적고 비열(卑劣)한 것을 흠모하는 이는 많으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훌륭한 방편으로 법을 나타내 보이시고 대승을 연설하여 본래의 요지를 따르게 하며 이로써 그 심오한 마음을 관하여 최상의 도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그들을 구원하여 제도하나니, 마음이 만약 고르고 부드럽고 안온한 데에 들어가게 되면 조작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없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제거할 수 있으며, 어디로부터 생겨
남이 없고 일어나거나 소멸함도 없으며, 아무런 작용함이 없는 편안함을 깨달아 점차로 큰 지혜인 일체지(一切智)7)에 이르게 되느니라.”
이 말씀을 하고 나서 세존께서는 묵묵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아난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묵묵히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십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세속 사람들은 이 법을 설하셨는데도 믿는 이가 적고, 이 무수히 많은 백천 아라한들은 마음 속으로 놀라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독특하게 다른 경전의 가르침에 대한 법을 설하십니까?”
“내가 지금 살펴보건대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마음이 가려져서 이를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연설하실 적마다 믿음을 지니고 법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연각에 이르기까지의 걸림 있음을 설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정진하여 이러한 경지를 깨닫게 하려 하십니까?”
“헤아릴 수 없는 억(億)의 여러 하늘과 용신(龍神)들이 모두 함께 망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보살(菩薩)ㆍ도적(道迹:須陀洹)ㆍ왕래(往來:斯陀含)ㆍ불환(不還:阿那含)ㆍ무착(無着:阿羅漢)ㆍ연각(緣覺)의 도를
7) 세 가지 지혜의 하나. 모든 법의 총상(總相)을 총괄적으로 아는 지혜. 천태(天台)에서는 성문ㆍ연각의 지혜라고 하며 구사(俱舍)에서는 부처님의 지혜[佛智慧]라고 한다.
---------------------------------------------------------------------------------------------------------------------------------
[26 / 184] 쪽
드러내 펴 보이십니까?”
“한량없이 많은 억백천해(億百千姟)8)의 보살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보살의 도로서 믿음이 견고한 이로부터 법을 잘 받드는 4과(果), 연각에 이르기까지를 찬탄하여 말씀하심은 모든 강ㆍ하천의 흐름과 샘[泉]의 근원이 막혀서 통하여 흐르지 못하고 공중을 나는 새가 나아가지도 물러가지도 못하며, 해와 달이 운행하지 않고 앞이 가려져 광명이 없으므로 칠흑같이 캄캄하고 어둡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이 법은 미묘하여 이해하기가 이와 같이 어렵기 때문이니, 이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묵묵히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십만 송이의 연꽃이 부처님의 신실(神室)을 에워싸고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로 다 함께 서로 권장하고 돕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물러남이 없는 법륜과 청정한 방등(方等)경천의 핵심을 강설하여 주시옵소서. 구십이억 백천해 부처님께서 이 경전의 지혜를 설법하셨기 때문에 이 법을 듣고 이 부처님의 국토에서 이 법을 크게 행하고자 함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다시 부처님 앞에서 간곡하게 청하였다.
“오직 바라옵건대 큰 성인이이시여, 물러남이 없는 법륜에 대하여 설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오늘 새벽에 문수사리와 함께 시방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불ㆍ세존께서 미묘한 법을 설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허공에서는 팔십오억 백천해 하늘들이 스스로 귀의하여 부처님께 물러남이 없는 법륜의 법을 설해 주시길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저희들도 이 국토에서 구십이억 백천해 부처님께서 이런 법을 설하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현자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오직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물러나지 않는 법륜의 법
8) 해(姟)는 조(兆)의 백 배(倍)에 해당하는 수(數)이다.
---------------------------------------------------------------------------------------------------------------------------------
[27 / 184] 쪽
을 설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 무슨 까닭으로 독실하게 믿고 법을 받드는 것에서부터 연각에 이르기까지의 법을 설하셨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저 네 부류의 사람들은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오직 세존께서 자세히 분별하여 설해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지금 무앙수(無央數) 백천의 대중들은 꽉 막혀 이해하지 못하나니,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보살에게 믿음을 지녀 법을 받드는 것에서부터 연각에 이르기까지의 법을 드러내 보이셨는지 큰 의심을 풀어 주시옵소서.
오직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대애심(大哀心)을 일으키시어 저희들의 막힌 의심을 없애 주시고, 폭넓게 다 증명하시어 이 거룩한 도를 믿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께서는 밝게 증명할 수 있는 힘을 잃지 않고 경의 도리를 설법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밝게 증명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衆祐]께서 대답하셨다.
“여래께서는 경적(經籍)과 여러 청중을 밝게 증명한 연후에 법을 설하시느니라. 여래의 법력(法力)은 가장 밝은 등각(等覺)이시니, 밝게 증명하고 이로 인하여 분별하여 설법하시느니라.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이제 너를 위하여 여래에서 기인한 광미(光美)보살이 믿음을 지니고 법을 받드는 것에서부터 연각에 이르기까지에 대하여 깨달아 알게 하리라.”
그때 아난이 여러 대중들과 함께 가르침을 받고자 법을 설하시는 것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보살이 독실한 믿음을 지니는 것에 대해 찬양하였겠느냐?
여기에서 보살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한량없이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독실한 믿음을 세워 모든 부처님을 뵙도록 하고
---------------------------------------------------------------------------------------------------------------------------------
[28 / 184] 쪽
그들이 이미 큰 성인을 뵈었을지라도 부처님의 몸에 집착하지 않게 하고, 물질[色]ㆍ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ㆍ고정관념[思想:想]ㆍ나고 죽는 행업[生死:行]ㆍ인식작용[識]들도 흠모하지 않게 하였으며 5음(陰)은 공과 같다고 알게 하였으므로 곧 보살의 독실한 믿음이라고 말하였느니라.
또 아난아, 보살이 모든 법은 공(空)한 것이라고 믿는 것은 여래께서 설하신 것과 동등하여 다름이 없느니라.
또 아난아, 보살이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무슨 까닭에 평등한 지혜를 이루고서도 지혜의 귀취(歸趣)를 볼 수 없는가?’라고 하나니, 이와 같은 관찰을 독실한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또 보살이 다섯 가지 욕망을 믿지 않고 도력(道力)을 획득하면 이것을 독실한 신심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보살이 ‘무슨 인연으로 갈라져 흐르는 마음을 조복하고 법시(法施)를 해야 하는가?’하면서 홀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경지에 이르고 담담한 마음으로 법보시를 독실하게 하나니, 마음 속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또 보살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써 보시하고 몸과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도를 권장하고 도우며, 가리지 않고 은혜로써 보시하고 아끼는 것이 없으며 이미 지은 모든 복덕으로 도를 권장하고 도우며,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공하다고 여겨 보살로 보지 않는 등, 이와 같이 바르게 관찰하면 이것을 신심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보살이 불도(佛道)에 독실하여 마음이 거칠지 않고, 적막(寂寞)한 법을 좋아하며, 6정(情)을 버리고 갖가지 요소[大種]를 사모하지 않고 성인의 법에 뜻을 두며, 도에 독실하지 못한 사람을 개화(開化)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경(佛經)을 따르게 하고 중생들을 권유하여 즐거운 마음을 내게 하며 큰 도에 대하여 발심하게 하되 저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법계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가지며, ‘무엇을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은
다만 말소리[言聲]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네 가지 요소[大]는 모두 평등한 것이니 모든 요소를 획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알며, ‘작용이 있는 온갖 물질은 덧없는 것이요 괴로운 것이며 공(空)한 것이어서
---------------------------------------------------------------------------------------------------------------------------------
[29 / 184] 쪽
몸이라 할 것도 없다’고 여기나니, 이와 같은 힘을 성취하여 성인이 경계한 뜻을 믿고 방일하지 않으며, 금계(禁戒)를 청정하게 지켜 정수(正受:三味)에 들어 적멸무위(寂滅無爲)를 증득하고 모든 세계는 다 공한 데로 돌아간다고 믿으며, 이 몸뚱이도 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곧 신근(信根)이니라.
이와 같은 등의 관찰로 중생을 버리지 않고 모든 중생이나 법계는 동등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다시는 법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중생[群黎]들은 결국에는 법계로 돌아가기 때문이니라.
가령 모든 법을 이와 같이 독실하게 믿으면 이것을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큰 보살은 중생들의 모든 욕탐(欲貪)은 받아들일 만한 것이 아니며, 공과 같아서 자연 그대로라고 믿어서 중생들의 의지하는 곳을 보지 않으며, 일체의 기행(蚑行)ㆍ천식(喘息)ㆍ인물(人物) 같은 종류도 다 니원(泥洹)과 같다고 관찰하나니, 왜냐하면 중생은 공한 것이므로 살펴보면 모두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들을 관찰하되 다 니원과 같다고 여기느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받들어 믿게 하는 까닭에 보살은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개화(開化)하여
그들로 하여금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게 하였으나
저기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일체법(一切法)을 믿어 알아서
분별법은 모두가 공한 것이라 하니
이와 같은 가르침 독실하게 즐거워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마음 속으로 도혜(道惠:菩提)를 사모하고
항상 거기에 마음을 두면
내 마땅히 이것을 인연하여
마음에 뜻한 밝은 경지에 이른다고 말하리라.
5욕(欲)의 즐거움에 대해서
일찍이 믿고 즐거워하지 않아서
이러한 믿음의 힘 얻게 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리라.
금계(禁戒)를 믿고 받들어
내 어떻게 성취할까 하면서
법시(法施)를 일으켜 행하면
마치 부처와 같은 큰 성인 되리라.
저 용맹한 보살이
마음으로 믿어 보시를 행하고도
보답 바라는 생각 전혀 없으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네.
감히 빌어 구하는 이 있거든
일체를 다 보시하고도
이미 보시했다는 생각마저 없으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네.
은혜로 베풀기를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일체를 탐하여 더러워지지 않고
모두 이미 성인의 도에 회향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네.
---------------------------------------------------------------------------------------------------------------------------------
[31 / 184] 쪽
6정(情)을 덜어 없애고
보고 깨달아 구하는 바 없어서
법력(法力)을 획득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네.
공손하고 엄숙하게 부처님께 향하고
최후의 마음까지 깨끗하며
항상 도법(道法)에 독실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네.
여섯 가지 병폐 멀리 버리고
그 마음에 구하는 바 없으며
5음(陰)을 영원히 제거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네.
만약 사람들이 도를 좋아하지 않으면
권유하고 교화하여 기뻐하게 하고
불법(佛法)에 의심내지 않게 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리.
만약 불법을 기뻐하는 이를 보거든
그 도 닦을 마음 권유하고 인도하여
스스로 마음에 얻지 못한 것을 살피게 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리.
지혜와 6쇠(衰:六根)는 평등한 것
법계 또한 특별한 차이 없으니
이 국토에서 아무것도 얻을 게 없으며
국토니 세계니 하는 것도 모두가 말소리[言聲]일 뿐이네.
---------------------------------------------------------------------------------------------------------------------------------
[32 / 184] 쪽
마음으로 항상 시작과 끝을 생각하되
공(空)과 같아서 나라는 것조차 없다고 알며
지혜에 대하여 큰 힘 얻으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리.
성인의 금계(禁戒) 잘 닦고
청정하여 방일함 없으며
계(戒)와 정(定) 원만하게 성취하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리.
적연(寂然)한 세계를 좋아하고
중생들도 또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이 곧 지극한 모습임을 깨달아 알면
이것을 곧 믿음을 지녔다고 말하리.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고
법계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여겨
저 중생의 종류를 헤아려 알면
그 경계(經界) 생각으론 알기 어렵네.
법계도 또한 다름없는 것
이렇게 믿어 깨달아 알면
이 때문에 독실한 믿음 찬탄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무소외(無所畏)라네.
중생은 모두 자연 그대로여서
헤아려 보아도 머무르는 곳 없으니
모든 법 공한 것임을 널리 깨달아 알면
그 처소 또한 얻을 수 없음을 알리라.
---------------------------------------------------------------------------------------------------------------------------------
[33 / 184] 쪽
일체 중생은 작용 없는 것이요
저 모든 중생도 또한 공한 것이네.
이것이 곧 적멸한 니원(泥洹:涅槃)이니
그러므로 일체를 밝게 드러내었네.
보살은 또한 용맹하여
중생에 대하여 이와 같이 아나니
그러므로 명호(名號)를 얻었고
깊은 신행을 드날리었네.
독실한 법 이와 같이 행하고
믿음 지니는 것을 찬탄할지니
아난아, 마땅히 이렇게 지니고
분별하여 설함도 또한 그렇게 하라.
아난아, 나는 이것으로 인해
도를 따르고 행하여 남음 없으면
이 법으로 등각(等覺) 이룰 것이기에
보살을 위해 밝게 연설하였느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이 때문에 보살의 믿음 지니는 것을 찬탄하여 건립하셨으니, 이러한 이치를 헤아려 보고 살펴서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중생들을 인도하라.”
3. 봉법품(奉法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무슨 까닭에 보살이 법을 받들
---------------------------------------------------------------------------------------------------------------------------------
[34 / 184] 쪽
어 지니는 것을 찬탄하셨겠느냐? 보살은 불도(佛道)에 뜻을 두어 끝내 물러나지 않는 까닭에 각궤(覺軌:佛法)를 굳게 지니고 또렷이 분별해 알아서 법계(法界)를 벗어나지 않으며, 불가사의 한 경적(經籍)을 체득(逮得)하였고 총지(摠持)를 얻었으므로 늘 처하는 곳마다 동요함이 없으며, 법구(法句)를 따라서 일체의 의문을 물었느니라.
모든 법은 자연 그대로임을 깨달아 집착하지 않고 총지를 지니되 의지하지 않으며, 총지만을 따르거나 경본(經本)만 주장하거나 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항상 성인을 흠모하고 좋아하며, 도(道)를 공경하고 일체의 법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바도 없고 법을 받아들여 행하지도 않기 때문에 곧 올바른 법을 연설하느니라.
마음을 잘 조복하여 행동거지가 안온하며 적연하고도 바른 법을 강설하며, 이렇게 법을 지니지만 의지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느니라.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여서 그 자체가 거룩한 도[聖道]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나니, 이런 이치를 획득하면 아예 잃어버리지도 않고 몸소 수행하며 몸이 항상 견고하게 머물러 세속은 머무를 곳이 아님을 아느니라.
무엇을 보살이 항상 관찰한다고 말하느냐 하면, 일찍이 이러한 것을 보지 않고 몸이 진리에 편안하게 머물며, 스스로 바른 법을 따르고 모든 경계는 평등한 것이어서 가고 옴이 없는 것이라는 이러한 견해를 내나니, 이것이 모든 불ㆍ보살께서 설법하신 것이니라. 이러한 진리를 체득하여 청정하고 때 없으면 일체법(一切法)은 합해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보리니, 모든 경전을 관찰해 보아도 홀연히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이런 견해를 내지 않나니, 모든 법은 작용이나 조작이 없으므로 그러한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을 실체로 보지 않으면 가질 것도 없으며 법계는 허공과 같다는 이치를 깨달아 경적(經籍)을 연설하며, 모든 물질의 모양9)은 그대로여서 조롱하거나 희롱할 대상도 없고 아무런 형상도 없는 것이요 마음을 여의었으
9) 고려 대장경 원본에는 ‘상(想)’으로 되어 있으나 의미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역자가 ‘모습[想]’으로 번역하였다.
---------------------------------------------------------------------------------------------------------------------------------
[35 / 184] 쪽
므로 마음도 없으며, 그 마음 역시 얻을 수도 없다고 아느니라.
가량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곧 도심(道心)으로서 오고 감이 없을 것이요 적연(寂然)한 마음으로 수행할 것을 강설하지만, 그 말 자체도 없는 것이어서 흠모하여 구할 바가 아니니라. 모든 법에 대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여 의지 할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기대지도 않고 법의 모양을 일으키지도 않느니라. 항상 경전(經典)만을 따르는 것이 곧 보살법으로 집착할 것도 없으며, 열반도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가 이런 이치를 설하여 밝게
나타내었느니라.
종성(種姓)이란 사모할 대상도 아니라는 이러한 견해를 내어 모든 종성을 버리며, 보살행을 체득했다지만 그 또한 얻을 법이 없으며 저 오고 가는 모든 것에 대하여 오고 감이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지혜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없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서 동(動)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받들어 지니지만 급하게도 하지 않고 느리게도 하지 않는 이러한 것을 법을 지녀 보살도를 증득하였다고 말하느니라.
이미 성인의 수행법을 증득하였으나 그 또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와 같은 보살대사가 되나니, 그것을 이름하여 법을 받든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법은
일찍이 물러난 적이 없나니
경(經)을 이와 같이 받들어 지니면
이것을 곧 법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모든 부처와 불법에 대해 강설하되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 내지 말고
매우 깊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것을 곧 법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
[36 / 184] 쪽
일찍이 모든 세계를 헐뜯지 않고
불가사의한 법계에 대해
그 이치를 증득하여 이룩하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법을 받들어 은근히 보호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에 대해
마음 속에 집착함 없으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고집하여 나아가거나 후퇴함 없으면
모든 법은 자연 그대로이니
그 모든 경전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적멸(寂滅)에 머물지 않고
받들어 지녀 큰 자취 실천하며
저 경전을 따라서 순응하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항상한 도로써 법신(法身)을 삼고
미묘한 말씀 흠모하여 구하며
게으른 마음 멀리 버리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경을 들으면 받아 지녀
배우기를 생각하고 열심히 익히며
성품 어질고 편안한 경지에 노닐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
[37 / 184] 쪽
항상 담박하고 편안한 이치 강설하고
경을 지니되 집착하지 않으며
무상행(無想行)을 증득하여 이룩하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견고한 마음으로 도에 머무르고
밝은 지혜로 머무름 없음을 수행하며
몸에 대하여 몸은 없는 것이라고 아나니
그의 견해 깊이가 이와 같다네.
이 몸은 공(空)한 것으로서
법계와 평등한 것임을 알아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면
몸의 모든 모양10) 분별한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께서
강설하신 법
이러한 경전(經典:法) 널리 체득하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모든 법 작용함 없고
저 세계도 매우 청정하니
이러한 경전 받들게 되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모든 경전 자세히 살펴보면
보이던 것이라 하는 것도 볼 수 없나니
10)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상(想)’으로 되어 있으나 문장의 의미로 보아 역자가 ‘모습[相]’으로 번역하였다.
---------------------------------------------------------------------------------------------------------------------------------
[38 / 184] 쪽
만약 모든 법 볼 수 없다면
저것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 모든 법계는 모두 공(空)한 것
곧 법계에 대해 강설하나니
스스로 모든 모양 여의면
형상도 없어지고 조롱하거나 희롱할 대상도 없으리라.
마음에 모든 존재 버리면
뜻에도 얻을 것이 없나니
가령 마음에 체득할 것 없으면
이런 생각 가장 훌륭하니라.
뜻하는 바에 마음 두지 않고
법의 조용하고 고요한 이치 강설하지만
그 말은 없는 것이라서 집착 않아야
이 마음 진정 존귀하리라.
능히 이런 법 받들고
일어나는 바에 집착 없으며
모든 세계에 의지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보살이 받드는 법
이와 같아서 경적(經籍)과 상응하나니
거론할 대상 없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작용 없음을 나타내 보이네.
이와 같이 훌륭한 가르침 행하고
---------------------------------------------------------------------------------------------------------------------------------
[39 / 184] 쪽
저 모든 종성(種姓)을 따르며
이런 이치 증득하였기 때문에
그 종성을 찬양하였느니라.
이러한 종성으로 태어나면
보살이 될 수 있다 말하리니
능히 이 총지(摠持)를 따르면
그것은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깨달아 모든 법 보지 않으면
모두가 나아갈 곳 없으리니
만약 마음 치달려 이르게 되면
이것은 올바른 법 되지 못하리.
작용하는 법에 이르러도 나아가지 않고
모든 법 깨달아 알며
총지(摠持)를 분별하여 깨달으면
조작도 없고 동요하지도 않으리라.
따르지 않아야 할 법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은 곧 법을 만드는 것이라네.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총지(摠持)법에 대해 즐거워해야 하리.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보살행(菩薩行)을 연설하여
미묘한 도 체득하게 하나니
이것이 곧 모든 경을 찬양함이니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법 받드는 이를 노래로 칭송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현묘한 도 생각게 하여
이러한 무리들을 개도(開導)하느니라.
이렇게 무수한 법 항복 받음은
보살이 찬탄하는 바로서
훌륭한 방편으로 영원히 안온하게 하므로
이 경을 찬탄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보살의 총지법(摠持法)을 찬양하는 것이니, 이렇게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것도 또한 훌륭한 방편이 되느니라.”
4. 팔등품(八等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무슨 까닭에 보살의 8등(等:八正道)법을 찬양하는가?
이 보살은 여덟 가지 삿된 것11)을 멀리하고 여덟 가지 해탈(解脫)1)법
11) 8정도(正道)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8미(迷)ㆍ8계(計)ㆍ8류(謬)ㆍ8사(事)라고도 하며, 사견(邪見)ㆍ사지(邪志:邪思惟)ㆍ사어(邪語)ㆍ사업(邪業)ㆍ사명(邪命)ㆍ사방편(邪方便:邪正精)ㆍ사념(邪念)ㆍ사정(邪定)을 말한다.
12) 여덟 가지 관념. 8배사(背捨)라고도 하며, 이 관념에 의하여 5욕의 경계를 등지고, 탐하여 고집하는 마음을 버림으로 배사라고 하고, 또 이것으로 말미암아 3계의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를 증득하므로 해탈이라고도 한다. 첫째는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있으므로 이 탐심을 없애기 위해 밖의 부정인 어혈이 든 빛깔을 관하여 탐심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내유색상관외색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 둘째는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은 이미 없어졌으나
이것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하여 밖의 부정인 퍼렇게 어혈든 빛 등을 관하여 탐심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내무색상관외색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셋째는 깨끗한 색을 관하여 탐심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정해탈(淨解脫). 이것을 몸 안에 증득하여 구족원만하며 정(定)에 들어 있어 신작증구족이라 하는 정해탈신작증구족주(淨解脫身作證具足住), 넷째는 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 다섯째는 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 여섯째는 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
일곱째는 비상비비상처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여덟째는 멸수상정해탈신작증구족주해탈(滅受想定解脫身作證具足住解脫)을 말한다.
---------------------------------------------------------------------------------------------------------------------------------
[41 / 184] 쪽
을 닦아 성취하지만 집착하는 것이 없고, 여덟 가지 정도[八正道]13)에 의지하지도 않느니라. 범부법(凡夫法)을 초월하여 도의(道義)에 머무르며, 중정(中正)을 이룩하여 범속(凡俗)을 초월하며, 도혜(道惠)에 머물기를 원하여 다른 길을 보지 않으며, 삿된 길을 벗어나고 항상 바른 견해에 머무르며, 평등한 자취[平等跡:平等道]14)를 증득하고 몸에 탐착하는 것을 여의었으며, 도의(道義:菩提)에 머물러 부
처님의 몸을 성취하기를 원하며, 중생이라는 생각을 제거하고 초월하여 언제나 부처님 모습만을 생각하느니라.
마음 속으로 일체 법은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중생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멀리 하며, 항상 치우침이 없는 데 머물러서 모든 법을 다 끊어버리나니, 왜냐 하면 어떠한 법도 얻을 수 없으므로 몸이 숭상할 만한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세속의 서적을 여의고 출세간의 경전[度世典]을 사모하며, 법계(法界)를 증득하거나 도법(道法)을 체득하거나 하지도 않고, 또한 세속을 여의지도 않으며, 있다 없다 하는 이치를 놓아버리고 평이법(平夷法:平等法)을 따라 닦으며, 모양15)에 집착하는 것을 버리고 끊으며, 과거ㆍ미래ㆍ현재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며, 도의(道意:求無上之道)에 대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나니, 왜냐 하면 이미 일체의 법은
평등한 것이라고 알아서 두루한 지혜[普惠]를 따르고 닦기 때문이니라.
13) 불교의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종목을 여덟 가지로 나눈 것으로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정정(正定)을 말함.
14) 여러 중생들을 아무 차별 없이 한결같이 성불하게 하는 교법.
15)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상(想)’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로 보아 ‘모습[相]’으로 풀이함이 합당할 듯하여 역자는 모습으로 번역하였다.
---------------------------------------------------------------------------------------------------------------------------------
[42 / 184] 쪽
독한 불길이나 칼ㆍ몽둥이로도 몸을 위태롭게 할 수 없느니라.
모든 세계를 다 버리고 항상 불국토에 태어나며, 여러 갈래의 길을 여의지는 못했으나 오고 감이 없는 데에 머무르며, 여러 갈래의 길에 오고 가더라도 아주 편안한 까닭에 보살도(菩薩道)에 머무르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부처님의 도는 공(空)하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머무를 곳이라는 것조차 없어 머무르지도 않기에, 칼날이 몸을 향해 찌르지도 못하고 또한 해칠 수도 없으니, 그러한 것을 편안한 경지를 획득하였다고 말하느니라.
이러한 수행법을 체득하면 무학(無學)이나 불학(不學)도 구할 바가 아니며, 성현(聖賢)의 경지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예 마음으로 사모하지도 않나니, 이런 까닭에 칼로도 몸을 해칠 수 없고 조그만 동요도 없느니라.
일체의 도(道)는 공한 것이라는 공혜(空惠)를 분별하여 알기 때문에 칼로도 해치지 못하느니라.
넓고 큰 자비로써 중생들에게 베풀어 적정(寂定)한 경계를 얻고 담박하고 편안한 경계에 이르게 하며, 널리 불쌍히 여기고 자비16)를 베풀어 진에(瞋恚)를 버리게 하나니, 그렇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밝은 지혜를 일으키게 하고 자비로써 세상을 교화하여 큰 자비를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니, 중생의 처소는 얻을 수 없고 자비를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에 칼로도 상해할 수 없느니라.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평등하다고 알고 법계(法界)도 평등하다고 알며, 모든 세계는 평등하고 도(道)에도 약간의 그 무엇이 없다는 이치를 알면, 식념(識念)을 일으키지 않고 진에(瞋恚)도 내지 않으며, 희롱함을 여의고 적연하여 음성이 없으리라.
법계는 이와 같아서 모든 존재를 초월하나니, 보살이 이러한 수행으로써 전심전력한다면 일체의 음성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일에 집착하는 바가 없어서 처음과 끝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중생들이 나아간다[趣]고 하는 것은 다만 음성(音聲)에 불과할 뿐이니,
16)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비애(非哀)로 되어 있으나 문맥이 맞지 않아 ‘비(非)’자를 ‘비(悲)’자로 해석하였다.
---------------------------------------------------------------------------------------------------------------------------------
[43 / 184] 쪽
이러한 것들을 분명히 깨달아 법을 강성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이는 있다 없다 하는 말과 생각으로 그 말을 일으키지 않고 나라는 생각을 버리며 모든 음성을 초월하되 초월했다는 생각까지도 없느니라.
이러한 가르침을 체득하여 일체법(一切法)을 이해하면 다만 음성에 불과할 뿐이므로 또한 법을 얻을 수도 없고 해탈함도 없으리니, 이런 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말하는데 과거에 모든 음성에 대하여 흠모하거나 집착하지 않았느니라.”
부처님께서 그때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덟 가지 평등에 머물고
여덟 가지 해탈을 체득하되
그 여덟 가지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덟 가지 범부행(凡夫行)을 초월하고
바른 도리[正義]17)에 머물렀으나
중간혜(中間慧)를 보지 않으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세속 범부의 행[俗夫行]을 초월하고
불도(佛道)에 머물렀으나
여기에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달으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수많은 사견(邪見) 멀리 여의고
바른 견해를 따라 수행하여
17)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정의(正議)’로 되어 있으나 의미로 보아 ‘정의(正義)’라야 뜻이 통하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송(宋)ㆍ원(元)ㆍ명(明)본과 궁(宮)본에 ‘의(議)’자는 ‘의(義)’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44 / 184] 쪽
평등도(平等道)를 성취하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자신의 몸 탐냄을 없애고
바르고 거룩한 도에 머물러
부처님의 몸 성취하여 증득하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중생이라는 생각 버리고
항상 부처님의 수행법만을 닦아
나니 남이니 하는 마음 평등해지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중생이라는 생각을 초월하고
무소처(無所處:涅槃)에 머물며
모든 법에서 벗어나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세간법[俗法]을 멀리 여의고
성인의 바른 가르침을 받들어 닦으며
적연(寂然)한 이치를 성취하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세속의 법을 버려야 하고
부처님의 도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하되
이 법에도 얻을 바가 없으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근본은 하나뿐이라고 말하고
---------------------------------------------------------------------------------------------------------------------------------
[45 / 184] 쪽
두개의 근본이 없다 말하는
이와 같은 생각을 떨쳐버리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중간에도 처하지 아니하고
단착(斷着:斷常)의 견해도 버려
도해(道慧)가 평등하게 되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과거의 마음을 얻지도 않고
미래도 또한 이와 같으며
현재에 대해서도 평등하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고 하느니라.
애초에 마음이 비롯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도의(道意:菩提心)을 낸다고 말하지만
이 마음은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니
무슨 인연으로 도를 성취할 수 있으리.
집착할 것이 없는 데로 들어가지만
성의의 경지는 획득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칼과 독으로도
해칠 수 없다고 말하느니라.
다섯 갈래의 길에서
수많은 모양 비롯됨을 해탈하고
가고 옴을 원만하게 갖추면
이런 까닭에 속임이 없다 말하느니라.
---------------------------------------------------------------------------------------------------------------------------------
[46 / 184] 쪽
도를 버리고 주선(周旋)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음성일 뿐이니
모든 음성에 대한 집착 다 버리면
이런 까닭에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하네.
비롯되는 바를 얻지 않고
따라 오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
가고 옴은 오직 음성[音身]일 뿐18)이라고
배우는 이에게만 권유하였네.
교화하여 안온하게 한다고 말하지만
그 편안하다는 것도 또한 공(空)한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배우면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보살이 수행하고 익히는
이와 같은 지혜를 배우면서
이 모든 것 끊지 않으면
이것을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으면
가령 예리한 칼날이라 하더라도
몸을 가해할 수 없으리니
동요할 필요가 없느니라.
모든 중생에게 널리 자비 베풀고
18)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신(身)’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가 통하지 않고 신수대장경 각주에도 “송(宋)ㆍ원(元)ㆍ명(明)본과 궁(宮)본에는 ‘신(身)’자가 ‘이(耳)’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47 / 184] 쪽
큰 슬픔으로 도 닦기를 바라며
성내고 해치려는 마음 없애면
예리한 칼로도 가해할 수 없느니라.
가령 해치려는 자가 있을지라도
제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하여 없는 것
불도를 닦아 증득하면
칼이라 한들 어찌 상해할 수 있으랴.
담연(澹然)이란 글귀의 이치를 체득하고
모든 악한 세계 버리면
일체의 재앙 다 소멸되리니
칼로도 능히 해칠 수 없으리라.
밝은 지혜 성취하고
성인의 경지 통달하여 부족함이 없으며
불도를 체득하여 밝게 드날리면
그 때문에 칼로도 해치지 못하리라.
욕계와 색계
무색계를 3계라 하거니와
이 3계를 동등하게 생각하면
이런 까닭에 스스로를 속이지 않느니라.
평등한 종성으로 정각 이루고
이름을 다르다고 보지 않으면
쌓임[陰] 없거늘 어찌 다투랴.
청정하여 조롱과 희롱 멀리 여의리라.
---------------------------------------------------------------------------------------------------------------------------------
[48 / 184] 쪽
이렇게 평등한 자취에 들었으므로
보살이라 말하네.
만약 음성에 집착하는 이라면
다섯 갈래 세계를 여읠 수 없네.
비록 지극한 법계를 말하고
갈 곳도 없다고 강설하더라도
머무르지 않는 법인(法忍)을 체득해야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가지 소리를 분별하여 알고
조용하고 고요한 법 강설하며
이름을 있지 않다는 것까지 기억하지 않으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일체의 음성 제거해 버리고
음성 없는 세계를 증득하여
모든 소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여덟 가지 평등이라 하느니라.
소리로 인하여 모든 법 깨닫고
일체법은 자연 그대로라고 알면
모든 법엔 이름 없으니
해탈 있음도 볼 수 없으리라.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여덟 가지 바르고 평등함을 찬양하나니
이 말을 듣고 그런 경지에 다다를지라도
그 또한 얻을 것이 없느니라.
---------------------------------------------------------------------------------------------------------------------------------
[49 / 184] 쪽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보살이 여덟 가지 평등에 대하여 연설하는 것을 찬탄하고 아름답게 여기나니, 이런 설법을 듣고 나아가게 하는 것도 훌륭한 방편이 되느니라.”
5. 도적품(道跡品)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보살에게 도적(道跡:須陀洹)을 말씀하셨는가?
궤적(軌跡)이 흘러 통해서 불심(佛心)에 이르나니, 보살이 이에 머물러서 마음을 일으키지만 영원히 머무는 곳도 없고 나아가지도 게으르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초월하여 부처의 흐름[佛流:佛海]에 이르며, 인혜(仁慧)에 집착하지 않고 법에 의지하지 않으며, 집착함이 없는 수행을 하되 머무는 처소도 없어서 미요한 행[妙行]을 원만하게 구족하고 성인의 발자취를 획득하느니라.
보살은 정진하여 그 힘이 견고하고 강해지며, 마음은 자비롭고 인욕을 행하며 일찍이 게으르지 않느니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미묘한 도를 흠모하여 구하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따르되 성인의 행적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머무르는 곳도 없느니라.
이 도에 뜻을 두고 모든 법을 구하지만 그 찾는 것을 영원히 얻을 수 없고 일찍이 동요함도 없느니라. 비록 도(道)에 머물러서 성인의 생사(生死)를 헤아려보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평등하여 갖가지 즐거움을 버리면 모든 음개(陰蓋)도 평등해지느니라.
일체의 몸에 대한 욕탐과 사견(邪見)을 제거하여 없애고 부처님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면 그러한 정진을 살펴서 성인의 법을 보느니라.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제거하고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것을 도적(道跡:須陀洹)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의 길에서 무위(無爲)의 깨달음을 획득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성
인의 지혜와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의심하지 않으며, 세속에 기대지 않고 그 계(戒)를 보지 않나니, 볼 수가 없으므로 계를 구하지도 않느니라.
특별히 흠모함이 없고 세 가지 번뇌[三結]를 제거하여 없애며, 바로 3계에 머물지만 마침내 크게 편안함을 얻으며, 중생의 생각을 보호하되 기대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느니라.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마침내 부처님의 도를 얻으며, 조용하고 고요한 자취를 이루고 신명(身命)에 집착하지 않으며,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보시하면서도 아끼지 않으며, 여러 감각기관[諸根]이 항상 기뻐하여 성내는 기색이 없어지고 성인의 수행을 따르고 닦으며, 비록 은혜를 베풀되
조금도 아끼지 않고 보시하여 중생들을 장애에서 구원하며, 이미 해탈을 하였으면서도 무위(無爲)에 머물지 않고 일체의 생각을 초월하느니라.
무념법(無念法)을 일으켜 중생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지혜를 체득하며, 갖가지 모임[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멸을 논하여 청정한 불도(佛道)를 이룩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초월하고 생사(生死)를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담박하고 편안한 법[澹然法]을 체득하여 더러운 티가 없고 성인의 교화로써 미묘하고 안락한 데 머물러 오고 감이 없음을 알고 중생의 생각을 없애며, 다만 바른 도를 밝히고 청정한 수행에만 마음을 두느니라.”
저 도적(道跡)에 대하여 강설하시니
부처와 같이 거룩하고 부사의(不思議)하네.
갖가지를 헤아려 머무는 이는
곧 도를 지닐 수 있으리라.
성인의 지혜 가장 편안하여
갖가지 생각의 그물에 의지하지 않고
공적(空寂)하여 머무름 없으나
거기에서도 얻을 것은 없다네.
---------------------------------------------------------------------------------------------------------------------------------
[51 / 184] 쪽
이 도를 증득한 이
보살의 뜻 굳고 강하여
오직 이 성인의 가르침에만 나아가니
세상에서 존경받는 최상의 경지라네.
도에 뜻을 두어 탐냄 없고
마음엔 항상 큰 지혜만 구하나니
이런 까닭에 도적(道跡)을 성취하여
기대지도 않고 집착하는 것도 없느니라.
이른바 생사(生死)의 생각이란
부처님의 생각과 다름 없으니
바르고 평등함을 원만히 갖추면
이것을 도적을 이루었다 말하리라.
모든 음개(陰蓋)는 없는 것이라
도법(道法)에 대해 연설하면
이런 까닭으로 일체를 제거하게 되나니
이를 깨달으면 도적이라 하네.
중생은 모든 몸에 의지하나
마음을 일으켜 불도(佛道)를 관찰하면
그 의지(意志)로 살피는 것은
항상 성인의 길을 보려함일세.
몸은 본시 번뇌[結]을 일으키고
내가 있다는 흉하고 위험한 생각을 일으키나니
그런 까닭에 진애(塵埃) 없애고
부처님 도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리.
---------------------------------------------------------------------------------------------------------------------------------
[52 / 184] 쪽
처음 발심할 때 의심을 품어
부처의 경지 증득 못하지나 않을까 했을지라도
이런 의심 풀어버리고
부처님 도에 바르게 머물러야 하네.
가령 계(戒)에 대해서나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금계에 대해 알고 있을지라도
모든 계율에 대한 생각 떨쳐버려야 하고
금계를 따르고 따르지 않음도 없어야 하리.
세 가지 번뇌[結] 뛰어넘고
3계(界)에 평등하게 머물러
부처님의 도 성취하고
중생의 생각 분별해 알아야 하네.
공(空)을 닦아 궤적(軌跡) 밝히고
큰 지혜 구하기 원하며
성인의 조용하고 고요한 경지 생각하면서도
부처님 도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네.
항상 버릴 마음으로 보시를 하고
전에의 마음 없으면
이런 까닭에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도에 뜻을 두어 방일(放逸)하지 않네.
일체를 즐거워하며 성내지 않고
수많은 번뇌와 근심에서 중생 구제하면
이런 까닭에 도적(道跡)이라 말하나니
최상의 길에 처하여 머무르리라.
---------------------------------------------------------------------------------------------------------------------------------
[53 / 184] 쪽
일찍이 모든 생각 일으키지 않고
마땅히 집착 없음을 익혀야 하나니
이런 수행 마치면 두려움도 없고
금지함이 없는 계율에 노닐지 않네.
만약 모든 경적(經籍) 익히고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구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갖가지 음향(音響) 깨달아 알면
세상에 처해서도 두려울 게 없느니라.
가령 대중이 모인 곳에 이르러서도
모든 어려움 없으며
문득 담연법(澹然法)을 제창하고
성인의 도를 청정하게 하네.
잠시 중생이란 생각 일으켰더라도
자연행(自然行)을 깨달으면
억지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을 버릴 수 있으리라.
만약 온갖 근심과 해로움 모두 버리고
문득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움 없으며
청정 그대로의 도 체득하면
번뇌 여의고 최상의 경지에 안주(安住)하리라.
악한 세계 깨달아 쉬어버리면
이런 까닭에 두려움 없나니
평등하게 성인의 경지에 올라
도의 은혜 여의지 않으리.
---------------------------------------------------------------------------------------------------------------------------------
[54 / 184] 쪽
이것은 곧 보살법으로서
도적(道跡)의 일 나타내 보이나니
게으르고 하열한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이롭게 인도하기 위해 설하였노라.
미묘하고 훌륭한 방편으로
불성(佛聖)의 도를 강론하노니
보살의 경지에 들어가려는 이를 위하여
이 법을 설하여 인도하노라.
도사(導師)께서 연설하신 법
언제나 훌륭한 방편에 부합되네.
본행(本行) 또한 이와 같아서
불도를 생각하고 흠모한다네.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도적에 대하여 분별하여 설하였으니
어둡고 뜻이 막힌 이들은
깊이 생각하여 이와 같이 구하라.
말해 주어도 알지 못하고
어리석고 둔하여 마음이 어두운 중생
지혜와 정진을 비방하나니
깊고 중요한 이치 들을지어다.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도적을 찬탄하고 아름답게 여기나니
가령 보살까지도 없는 것이라는 이치를 깨달으면
이런 무리는 능히 지혜를 증득하리라.
---------------------------------------------------------------------------------------------------------------------------------
[55 / 184] 쪽
무수한 백천 가지 경전으로
도적법 가르쳐 교화하나니
법을 실천하는 음성으로
부처님의 도 밝게 나타내리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께서 밝게 빛나는 보살을 위하여 도적(道跡)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면 그것이 훌륭한 방편이 되느니라.”
6. 왕래품(往來品)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는 보살을 왕래(往來:斯陀含)라고 말씀하셨는가?
이에 보살은 불도에 들어가되 부처님의 지혜는 불가사의하므로 마음 속으로 성각(聖覺)의 한량없는 인연을 구하느니라.
여러 가지 시끄러움을 조작해내지 않고 큰 도를 성취하여, 그 지혜로써 모든 인연을 끊고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흠모하여 찾느니라. 일체의 선정을 초월한 어지럽지 않은 선정[不亂禪:金剛三昧]을 구하고 모든 진애(塵埃:煩惱)를 버리며 나아가 모든 법은 부처님의 경전과 평등하다는 이치를 체득하며 일체의 경에 대해 깨닫고 오직 이 이치만을 구하되, 여래께서 획득하신 도덕의 밝음과 같아서 중생들을 일찍이 동요하게 하거나 바뀌어 변하게 하지도 않으며, 중생
들이 마음이 닫히고 뜻이 막혀서 갖가지 괴로움과 걱정을 만나 법계의 경전에 대해 깨닫지 못함을 염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도를 흠모하고 구하여 이 지혜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대명(大明)ㆍ근(根)ㆍ역(力)ㆍ각의(覺意)ㆍ해탈문(解脫門)ㆍ정수(正受:三昧)에 뜻을 두어 이러한 이치를 분별해 알고 난 뒤에, 내 이 몸을 어떻게 해야 중생들을 개화(開化)시켜 그들로 하여금 불도를 흠모하게 할까
---------------------------------------------------------------------------------------------------------------------------------
[56 / 184] 쪽
하고 생각하느니라.
언제나 이러한 밝음으로써 도량(道場)을 권유하고 교화하여 불안(佛眼)을 구하고 마음을 가린 음개(陰蓋)를 없애나니, 만약 바른 관찰에 들어가서 세간을 인도하여 이롭게 하면 뜻한 바 이러한 지혜의 원인은 모든 성인들 중에서도 최상이 될 것이니라.
그런데 이러한 지혜를 깨달아 알려고 하지 않음은, 모든 법이 돌아갈 바인 그 지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에 성인은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법 가운데 머무르기를 구하게 하지도 않고 이 모든 지혜에 대해서도 온갖 법은 머무르는 곳이 없음을 깨닫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미래에 중생계가 최상의 경지를 구하되 생각 없음을 흠모하는 것을 보고, 저 세계는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니 중생이 성취한다 하더라도 가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느니라.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되 중생의 처소를 깨달아 알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이치를 분별하여 알게 하며, 그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법을 깨닫게 하거니와 이러한 일체 중생은 모두 법계에 머무르지만 살펴보면 공한 것이어서 볼 수 없느니라.
법계를 평등하게 받아들이면 모든 경전(經典)도 평등하다고 깨닫게 되어 큰 도를 관찰하되 부처님의 거룩한 지혜로써 중생은 얻을 수도 없는 것이요 중생의 도를 깨달아 알 수도 없다는 이와 같은 모습을 구하느니라.
얻을 수 없는 지혜란 때[垢]와 먼지를 여의기 때문에 그 지혜는 처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저 머무는 바 없는 지혜로써 크고 밝은 법을 구하지만 성인을 볼 수 없으니, 이 지혜 가운데 크고 밝은 지혜라고 하며, 보살은 수행하여 이런 것을 얻어 오기[來]를 구하기 때문에 이것을 왕래(往來:斯陀含)라고 하느니라.”
이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지혜는 오고 감이 있는 것으로
부처님의 지혜는 헤아리기 어려워
---------------------------------------------------------------------------------------------------------------------------------
[57 / 184] 쪽
이런 까닭에 왕래(往來)라고 말하나니
마음 속으로 부처님의 도를 구하느니라.
인연(因緣) 많은 중생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부처님의 길[佛路:菩提道] 성취했더라도
이 일은 지혜에 순응하는 것이니
흠모하여 구하며 다시는 돌아가지 말아야 하네.
일체의 선(禪) 의지하지 않고도
모든 번뇌[塵埈]를 소멸시킨다는
이러한 중생들 구제하기 위하여
왕래(往來)의 과업 원만히 성취했네.
불경(佛經)은 평등한 법
중생의 모습 없음을 분별해 알고
여여하여 본래 없는 것임을 밝게 깨달으니
그런 까닭에 왕반(往返:斯陀含)이라 말하네.
부처님 법 획득한 이는
일체혜(一切慧:一切智)를 통달해 깨달으니
나 또한 이 법을 획득하기 위해
머무를 곳 구하고자 하네.
일찍이 중생의 세계와
모든 법계에 대해 집착하고 동요함이 없었으니
그런 까닭에 왕래라고 말하지만
돌아가 머무를 곳도 가까이하지 않네.
무수히 많은 중생들이
---------------------------------------------------------------------------------------------------------------------------------
[58 / 184] 쪽
지혜가 적어 이미 환난 만날까 염려하기에
이 지혜에 편안하게 머물러서
부처님의 큰 도를 구하게 하려 하네.
근(根)과 역(力)과 각의(覺意)와
세 가지 해탈과 삼매를 강설하여
이 이치를 분별해 밝힌 후에
부처님의 거룩한 도를 구하네.
도량(道場:菩提道)을 흠모하는 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행하신 것이니
그런 까닭에 왕래를 성취하여
큰 성인의 경지에 머무셨네.
자비와 연민의 눈[慈愍眼]을 흠모하고 즐거워하니
부처님 지혜의 눈은 부사의한 것
그런 까닭에 왕래과(往來果) 성취하고
부처님 큰 도를 흠모한다네.
모든 부처님의 거룩한 구함
세존의 미묘한 이치라서
스스로 이 심오한 지혜에 마음 두나니
일체지(一切智)는 참으로 최고의 경지라네.
밝은 지혜로 깨닫는 것이고
일체의 법이 돌아갈 곳이지만
그 지혜는 얻을 수도 없고
또한 그것으로 도를 구할 수도 없느니라.
---------------------------------------------------------------------------------------------------------------------------------
[59 / 184] 쪽
수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최상의 지혜에 머물게 하나니
이런 까닭에 왕래(往來:斯陀含)가 되어
와서 구하는 것이 있느니라.
와서 부처님 세계 자세히 보건대
중생의 세계는 부사의하니
그런 까닭에 왕래의 과업 이루어
저기에서 중생 구원한다네.
중생의 세계 자세히 살펴보면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런 까닭에 왕래의 과업 이루어
마음 속으로 법계를 흠모한다네.
나아갈 바 없는 중생과
모든 중생의 세계
만약 저곳에 대해 밝게 깨달아 알면
노니는 바에 따라 분별하여 알 수 있으리.
모든 법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법은 보려 해도 나타나지 않네.
항상 일심으로 선정에 들어
불대성(佛大聖)의 도를 구하네.
이와 같은 미묘한 지혜는
때 없이 청정한 것으로
분별해야 할 바를 밝게 알지만
그 지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중생을 인도하고 교화함이니
저렇게 밝은 지혜 얻었으면서
무슨 인연으로 여기에 왔는가.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왕래(往來)에 대하여 강론했지만
지혜가 적은 중생들은
망상으로 이를 보는구나.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왕래에 대하여 강설하여
정진할 마음 가진 중생들로 하여금
곧 이 법을 밝게 깨닫게 하느니라.
덕이 있는 사람은 분별력 있어서
심오하고 미묘한 이치 아나니
이러한 덕을 획득할 수만 있으면
속히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보살을 위하여 왕래과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이러한 이치가 곧 훌륭한 방편인 줄 알아야 할지니라.”
---------------------------------------------------------------------------------------------------------------------------------
[61 / 184] 쪽
불설아유월치차경 중권
서진 월지 축법호 한역
김두재 번역
7. 불환품(不還品)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에 보살에게 불환(不還:阿那含)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는가?
보살은 모든 존재가 곳곳에서 조작되어진 행동을 하지만 이러한 모든 존재를 초월해서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체득하고 모든 행업을 덜어 없애며 이러한 것들을 모두 항복받았으므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일체의 법을 깨달았으므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니라.
범부의 경지를 뛰어넘어 세간의 지혜를 버리고 부처님의 밝은 지혜에 들어가 머무름이 없는 경지를 획득하고 모든 법이 평등함을 깨달아 적멸한 세계를 성취하고 범부의 세계에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성인의 도에도 머물지 않고 모든 악한 길을 막으며, 정욕(情欲)에서 벗어나기를 힘쓰고 모든 음식에 대하여 집착하여 먹지 않으며, 최상의 밝은 경지를 체득하였느니라. 모든 소견을 뽑아버려서 집착하는 것이 없고 모든 사견(邪見)인 예순두 가지 견해를 없애며, 이미 나고 죽음을 초월하여 니원(泥洹:涅槃)을 관찰하였느니라.
무위(無爲)의 경지를 뛰어넘어 모든 생각을 버리고 경적(經籍)도 따르지 않고 악한 세계에 물들은 것을 깨끗이 하며, 교만함을 버리고 스스로 크다는 생각을 갖지 않느니라.
지혜롭지 못하여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근원에서 벗어나고 애욕(愛慾)을
---------------------------------------------------------------------------------------------------------------------------------
[62 / 184] 쪽
깨뜨려 무너뜨리고 숱한 어둠을 없애며, 탐락(貪樂)을 뽑아버리고 진애(塵埃)를 버리며, 교만과 스스로 방자함 등 이러한 장애를 모두 쉬어서 세간의 지혜를 영원히 여의나니, 그런 까닭에 불승(佛乘)만을 생각하고 성인의 평등한 지혜를 획득하느니라.
보살은 생각을 버리고 애욕의 세계도 버리며, 본래부터 청정한 과거 성현의 적멸한 가르침을 익히나니, 그 지혜는 가장 뛰어나서 여러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를 나타나게 하려는 생각을 하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중생들이 극진히 존경하되 이보다 더함이 없느니라.
보살은 이렇게 모든 생각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라는 평등함을 획득하고 나서 일체의 의심 많은 세계를 제거하여 없애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이치를 체득한 뒤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느니라.”
다시 아난에게 물으셨다.
“저 어떤 사람이 도에 머물지 아니하면 마땅히 이들을 다 어떻게 도에 머물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곧 깨달음이니 중생들이 그런 것을 밝게 알면 그것이 바로 도에 머무는 것이니라. 능히 이와 같이 깨달으면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어지리니, 왜냐 하면 공(空)한 일과 중생 세계는 불가사의하고도 평등한 도의 지혜[道慧]이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은 것을 분별하여 알면 곧 중생의 종류는 공한 것이고 청정한 세계의 중생도 공한 것이어서 중생이라는 생각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니라.
일체의 여러 사람도 허공과 특별히 다름이 없어서 이 몸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얻을 것도 없으며 머무르는 것도 아니니, 저것은 모두 공하기 때문이니라. 마치 허공의 모양이 공하여 모양이 없는 것과 같아 일체의 생각을 없애서 무념(無念)으로써 도를 성취하고 중생이라는 생각을 덜어 없애느니라.
허공의 모양은 버릴 것도 없고 버리지도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다 평등하고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일체 중생은 버릴 것도 없으며 놓아 버려야 할 것도 없고 평등한 까닭에 얻을 것도 없으니, 이미 얻을 것이 없으므로 오지 않는 것이니라. 이렇게 헤아려 아는 것이 곧 불환(不還)이요, 이렇게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모든 법에 대하여 깨달아 알면 모든 걱정
---------------------------------------------------------------------------------------------------------------------------------
[63 / 184] 쪽
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환(不還)이라고 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저것은 생겨나는 것도 없고
작용 있는 행업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나니
모든 머무는 바를 덜어 없애면
이것을 불부환(不復還:阿那含)이라 말하네.
가고 옴에 대하여 밝게 알고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머무는 바도 얻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 돌아오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저 범부의 행업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연도 아니요 헤아릴 것도 없으니
그런 까닭에 불부환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법은 다시 오는 일이 없고
또한 모든 법은 가는 것도 아니니
가고1) 옴이 없음을 얻으면
이것을 불부환이라고 하느니라.
그 사람은 일찍이 머물지도 않고
세 가지 길에 가지도 않으며
1)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주(住)’자로 되어 있는데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왕(往)’자로 풀이해야 더 뜻에 맞을 듯하며,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宋)ㆍ원(元)ㆍ명(明) 본과 궁(宮)본에는 ‘주(住)’자가 왕(往)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64 / 184] 쪽
밝은 부처님의 도를 이룩하나니
이것을 곧 불환(不還)이라고 하느니라.
결정코 모든 욕심 끊어버리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아
보리도를 증득하면
이것을 곧 불환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소견으로 행하는 바
예순두 가지 견해를 분별해 알면
저 경계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것을 곧 불환이라고 하느니라.
이 법은 처음과 끝도 없고
이미 모든 두려움도 여의었으며
이 지혜는 여여(如如)하여 본래 없는 것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네.
무위적멸(無爲寂滅)에 상응하고
모든 번뇌[塵勞]에 집착하지 않으며
저 모든 생각 제거해 버리나니
이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이미 모든 악한 세계를 끊어버리고
숱한 번뇌의 집착 씻어버리며
적연 무위(無爲)의 경지 닦으면
이것을 곧 불부환(不復還)이라고 하느니라.
저 악한 마왕과
---------------------------------------------------------------------------------------------------------------------------------
[65 / 184] 쪽
그 관속(官屬)의 무기를 항복받으며
갖가지 생각 영원히 없으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어리석음과 근심ㆍ걱정 뽑아버리고
애욕의 뿌리 끊어 없애며
왕성한 탐욕과 음욕 끊어버리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는다 하네.
모든 번뇌를 항복 받아 없애고
수많은 생각 뽑아버리면
구경(究竟)의 높은 지혜에 이르리니
그런 까닭에 불부환(不復還)이라고 하느니라.
온갖 근심 걱정 떨쳐버리고
교만의 산 깨뜨려 무너뜨리며
5음(陰)을 끊어버릴 생각 가지니
그런 까닭에 불부환이라고 하느니라.
불승(佛乘)에 뜻을 두어 광명 밝히니
불승보다 더 높은 것 없네.
애욕의 근심 탐하지 않으면
그런 까닭에 불부환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의 복장처(伏藏處)2) 이미 깨달았으니
2) 흙에 묻힌 보장(寶藏)이란 뜻으로 쓰인다. 가난한 집에 복장(伏藏)이 있었으나 이것을 알지 못하여 곤궁하게 살던 가난한 이에게 이것을 알려 주어 부자가 되게 하는 것처럼 모든 중생이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으면 서로 3계(界)에 유랑하는 것을 불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깨닫게 된다는 것에 비유함.
---------------------------------------------------------------------------------------------------------------------------------
[66 / 184] 쪽
모든 복장 가운데 제일이어라.
과거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신 바이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저들은 불승[尊乘]에 머무나니
불승보다 더 높은 것 없다네.
모든 의심 끊어버렸으므로
이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 받아들여서
불도(佛道)에 머물게 하고
성인의 궤도에 오르게 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공하여 세계 없음을 밝게 깨닫고
중생의 세계도 평등하다는 것 알며
멀리 모든 집착과 생각 여의면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일체 세계를 밝게 깨달으면
법계 또한 이와 같나니
중생은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면
이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중생의 세계를 깨닫고 나면
허공과 같아 생각할 것 없네.
모든 법 이와 같음을 아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 오지 않느니라.
---------------------------------------------------------------------------------------------------------------------------------
[67 / 184] 쪽
그 사람은 무심(無心)하여
모든 생각 물리쳐 버렸네.
모든 생각으론 도를 이루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불환(不還)이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불환(不還:阿那含)에 대하여 찬탄하여 말하였나니
모든 것은 영원히 오지 않고
부처님의 도에 머무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보살에게 불환에 대하여 찬탄해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훌륭한 방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8. 무착품(無着品)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보살에게 무착(無着:阿羅漢)에 대하여 찬탄하시고 훌륭하게 여기셨는가?
이 보살은 모든 행업[行]을 소멸하고, 살고 있는 국토에서 떠나며, 모든 부처님께 의지하지 않고 중생들을 해탈시키느니라.
조작함도 없고 번뇌[塵勞]의 때[垢]와 괴로움ㆍ즐거움도 없으며, 색욕(色欲)을 멸하여 없애고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하느니라.
중생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욕애(欲埃)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탐내지 않음이 이와 같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침범함과 속임을 버리고 처소에 머무는 일도 없으며, 모든 법은 공(空)한
---------------------------------------------------------------------------------------------------------------------------------
[68 / 184] 쪽
것이어서 적정(寂靜)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모든 생각을 익히지 않아서 여러 가지 생각이 안정되면 모든 생각이 소멸되고 중생이라고 헤아리지도 않아 집착하는 바를 소멸하며, 모든 법은 공한 것임을 지혜로써 깨달아 집착하는 일이 없고 부처님의 도는 생각할 것이 없다고 알며 불호(不怙:菩提)를 원만하게 성취하면 그것을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전적(典籍:菩提法)을 연설하여 갖가지 번뇌[瑕]를 파괴하며, 과거 세계의 등정각(等正覺)의 가르침과 미래ㆍ현재의 부처님 가르침을 찬탄하고 방일하지 않고 청정하여 더러운 때를 여의며, 오직 조용하고 고요[寂然]함을 논하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보살대사(菩薩大士)가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부처님 도에 머물게 하고 성인의 길을 구하게 하며, 모든 법에 대하여 흠모하여 집착함이 없게 하고 자비한 마음 원만하게 갖추며 부처님 같은 어짊을 시행하게 하여 영원히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게 하나니 그의 자비가 이와 같은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을 교화하여 성취시키되 중생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며, 끝내는 큰 자비로써 집착하여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밝게 깨달았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은혜를 베풀고 도법(道法)을 보되 법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와 같이 끊어 없애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깨달음의 힘[覺力]을 찬양(讚揚)하여 원수(願數)가 있음을 헤아려 머무름 없음을 획득하고 모든 감관을 뽑아 제거하며, 중생을 교화하여 청정한 법을 깨닫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도의(道義:菩提)를 성취하게 하여 영원히 의지하지 않게 하는 까닭에 불착(不着:阿羅漢)이라고 말하느니라.
의지할 것이 없는 처소를 보고 탐하지 않는 몸을 만들며, 온갖 물질에 대하여 의지하지 않고 중생의 모임을 구하되 온갖 물질을 훼손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은 이와 같이 근본이 없음을 강설하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노닐지만 가더라도 이를 곳이 없고 본말(本末)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부처님의 거룩하고 존경스런 모습을 보고 도를 깨달았
---------------------------------------------------------------------------------------------------------------------------------
[69 / 184] 쪽
으나 적멸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의지할 곳이 있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국토를 건립하여 한량없는 국토에 이 모든 나라가 평등하며, 세계에 대하여 조롱하거나 희롱하지도 않고 청정하되 만족하게 여기지 않으며, 복덕의 경지에 머물되 공(空)하여 모든 국토는 없다고 생각하느니라.
물러남이 없는 경지요 여인도 없으며, 모든 번뇌와 수면(睡眠)의 의지를 놓아 버리며, 부처님의 거룩한 국토를 증득하고 음개(陰蓋)의 국토를 없애며, 마군과 그 권속을 항복받고 모든 원수와 적(敵)을 제거하며, 조용하고 고요한 국토에 들어가 감동을 일으켜 변화시키며, 서원이 있는 나라를 세워 나라와 중생을 구원하느니라.
보살은 부처님의 위엄과 광명을 원만히 갖추고 머무름이 없는 곳에 머물며, 부처님의 의지를 깨달아 획득하고 청정한 법인(法印)으로 중생을 인가하며, 많은 국가를 안락하게 하고 일체의 영락(瓔珞)같은 보배로 장식하는 일과 수많은 번뇌의 티끌을 제거해 버리나니, 이는 최후의 경지인 작용이 없는 지위[無爲地]에 머무는 이로서 모든 중생들 가운데 가장 존귀하니라.
이와 같은 형상과 미묘한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을 성취하면 모든 법은 공(空)한 것임을 깨달아 도행(道行)을 구족(具足)하는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말하느니라.
온갖 즐거움을 다 떨쳐버리고 모든 감관[根]에 대하여 옳게 여기지 않으며, 일체의 법에 대하여 성내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적멸하고 평등한 수레를 타면 그것이 곧 부처님의 지혜이니, 몸과 입과 뜻으로 다함께 최상의 적멸한 경지를 닦으며, 성인의 도를 흠모하여 구하면서도 그 궤적(軌跡)에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모든 중생들을 자비로 불쌍히 여기고 마음이란 없는 것이요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무수히 많은 백천억의 중생들에게
권유하고 그들을 교화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큰 도를 머물게 하며, 우매한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생각하고 모든 중생은 평등한 것임을 깨닫게 하느니라.
수없이 많은 대중을 인도하여 이롭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보리의 마음을 내어 등륜(等倫:이와 비교하여 동등한 것)이 없는 데 머물게 하며, 모든 법
은 평등하고 공하여 특별히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 본래 공한 것이요, 지혜도 또한 평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그 생각이 없는 데에 머물게 하느니라.
아라한이 이와 같이 의지할 대상이 없음을 이미 알고 난 뒤에 이와 같이 그 중생들의 반응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모든 이익을 흠모하지 않고 경적(經籍)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감관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여의고 이와 같은 법을 강론하되 영원히 말이 없으며, 여러 곳에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되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도 없으며, 중생들을 구원하여 모든 집착을 끊게 하고 몸을 탐하는 생각을 면하게 하고 교만을 초월하게 하며, 모든 법은 생겨나
지도 않고 소멸되는 것도 아님을 알게 하느니라.
중생들이 온갖 물질의 모양에 집착하면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ㆍ고정관념[思想:想]ㆍ나고 죽는 행업[生死:行]ㆍ인식작용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고 범부를 동요하지 않으면서 해탈케 하여 불법에 머물게 하되 도적(道迹)에 집착하지 않게 하느니라.
의지하지 않도록 교화하여 정진에 힘쓰게 하고 이로움으로 인도하여 의지하게 하되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하며, 힘써 구제하고 권유하여 보살의 마음을 내게 하느니라.
집착함이 없는 마음을 넓히고 도에 인연 있는 이를 구원하며 온갖 혼란한 생각과 어리석고 속이는 마음을 여의게 하며 삼매(三昧)를 원만히 갖추고 정의(定意)을 성취하게 하여 갖가지 생각을 품지 않게 하느니라.
삿된 지혜를 없애서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지혜를 깨닫게 하며 성문의 마음을 일으켜 삿된 길[反迹]을 사모하는 이를 교화하고 부모ㆍ처자ㆍ사택(舍宅)ㆍ형제ㆍ자매를 의지하여 은애(恩愛)를 일으키지 않게 하며, 국토와 재색(財色)ㆍ온갖 물질[萬物]에 집착하여 탐구(探究)하는 생각과 번뇌[塵勞]에 전도된 이를 제도하느니라.
온갖 물질에 집착하는 모든 중생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집을 떠나서 적정(寂定)을 닦게 하고 게으름과 하열한 따위의 모든 모습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국토에 들어가서 욕망과 번뇌의 법으로부터 해탈케 하며, 도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두 가지 마음을 갖지 않게 하니, 일찍이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 곧 무위법(無爲法)이요 생사법(生死法)이니라.
---------------------------------------------------------------------------------------------------------------------------------
[71 / 184] 쪽
아무런 인연할 것 없는데 인연하고 세속의 마음을 도의 뜻이라 하며 보호하여 금지하는 계율을 범하는 이러한 무리들을 인도하여 교화하고, 두 가지 모양이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이들로 하여금 그런 마음이 없도록 하며, 모든 근본에서 해탈시키기 때문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우(衆祐)와 현성(賢聖)께서는 정진(精進)을 게을리 하고 남자와 여인(女人)으로서 미련하고 총명한 이와 밝고 성스러우며 어둡고 막힌 이러한 이들을 모두 인도하여 이롭게 하고 두 가지 마음을 가지지 않게 하며, 중생들을 구원하여 전진시키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물러남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여 혹 수기[別]를 받더라도 또한 거기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도에 가깝거나 멀거나 간에 이 뜻을 분별해 알아서 두 가지 생각을 내지 않고 성현의 길을 체득하느니라.
다른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반니원(般泥洹:般涅槃)에 이르며, 모든 망상을 여의고 의지하지 않으며, 이 모든 법을 인연해서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고,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모든 법을 깨달아 알며, 근본이 없는 법을 연설하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행업 없애고
존중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며
모든 말과 가르침 다 버리면
그런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 하느니라.
모든 진애(塵埃) 뽑아버리고
괴로움과 걱정에서 벗어나며
중생들을 구제하므로
이를 이름하여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살펴보면 중생도 얻을 수 없는 것이요
---------------------------------------------------------------------------------------------------------------------------------
[72 / 184] 쪽
욕망과 때[垢:번뇌]도 또한 그러하며
모든 법도 다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수많은 뒤바뀐 생각 제거하고
마음 다져 의혹 없는 곳에 머물며
모든 법이 공(空)한 것임을 분별해 아니
그러므로 무착이라 하느니라.
공의 이치 깨달아 알아서
모든 생각과 집착 없으며
일체의 뒤바뀐 견해 제거해버리면
이를 이름하여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생각 다 없애고
중생이라는 생각과 악한 생각까지도 소멸하여
마음 속에 삿되고 혼란함이 없으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공한 이치 깨달아 의지하지 않으니
부처님의 도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것
더더욱 힘써 크게 정진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경(經)의 인연을 강설하고
담담하고 고요하여 조롱하고 희롱함이 없으며
중생들을 권유하여 도덕 세우면
이것을 이름하여 무착이라 하느니라.
---------------------------------------------------------------------------------------------------------------------------------
[73 / 184] 쪽
참된 사람 자비를 수행하여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되
중생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깨달아 알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본래 없는 것인 경적(經籍) 강설하여
중생들에게 은혜 베풀면서도
일찍이 중생이란 생각 하지 않으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바르고 진실한 근(根)ㆍ역(力)ㆍ각(覺)에 대하여
중생을 위해 밝게 설법해주고
스스로도 이런 지혜 체득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중생들이 적정(寂定) 깨달아
청정한 법으로 보리[道] 이루고
큰 성인의 가르침을 강설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모든 물질 믿지 않고
눈 앞에 나타난 물체를 보되
일체는 허공과 같아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알면
이것을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 국토에 의지하지 않고
국토에 있을 적엔 인의(仁義) 행하며
평등한 깨달음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느니라.
---------------------------------------------------------------------------------------------------------------------------------
[74 / 184] 쪽
진인(眞人)의 바른 가르침 깨달아
볼 게 없음을 관찰하고
성현의 깨달음 자세히 살피면
이것을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하느니라.
자연 그대로의 국토를 성취하고
지금 나를 증득하여 깨달으면
최후의 경지엔 본래 비롯함도 없나니
이것을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알음알이 제거해 버리고
마음 속에 성냄과 해칠 생각 없어서
응진(應眞:阿羅漢)과 같아 한스러움 없으면
적연한 도[寂然道:菩提道)를 닦아 성취하리라.
마음 정해져서 멸하지 않고
고요한 데 머물러 일으킴 없으며
도를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인물(人物)에 대하여 더하거나 동요치 않고
중생의 세계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며
수많은 중생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알아
그들을 교화하여 도의 이치에 머물게 하네.
중생과 보리의
영원히 생각 없는 데 머물러서
밝은 지혜로 헤아려 평등한 줄 알면
이것을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
[75 / 184] 쪽
평등하여 다른 형상 없으며
모든 법 또한 이와 같나니
마음에 진정 이와 같은 도 깨달으면
그런 까닭에 생각이 없다 말하네.
이른 바 응진(應眞:阿羅漢)이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들 위해 밝게 분별하여 깨우쳐 주되
모든 법 고요하여 의지할 게 없다 말하네.
중생 위해 법의 이치 설하되
비록 말은 하나 가르침 없으니
널리 한량없는 중생 제도해도
중생 보고 동요하지 않느니라.
중생이라 해도 얻을 수 없는 것
모든 중생의 집착을 끊어주네.
중생 건져 사견(邪見)을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을 고뇌(苦惱)에서 건져주네.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머무르는 처소도 없고 소멸함도 없네.
중생의 모든 생각 관찰하여
중생들을 곤액(困厄)에서 해탈케 하느니라.
모든 물질은 늘어나거나 무너지지도 않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도 이와 같으며
고정관념과 인식작용ㆍ나고 죽는 행업에서
제도하는 것도 다름이 없느니라.
---------------------------------------------------------------------------------------------------------------------------------
[76 / 184] 쪽
현성(賢聖)의 법에도 동요하지 않고
범부(凡夫)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
부처님 이치에 머물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느니라.
중생들은 과보(果報)에 대한 생각과
연각(緣覺)의 생각을 품고 있으므로
이 생각 초월하여 각의(覺意)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중생들을 위하여 이 법 설하였다네.
도심(道心)을 일으켜
언제나 보시를 의지하며
지계와 인욕도 이와 같이 하므로
그런 까닭에 의지할 대상 아님을 강설했느니라.
뒤바뀐 견해 깨달아
정진하여 닦고 익혀서
이러한 모든 생각 끊어 없애니,
그런 까닭에 법에 집착하지 말라고 설하느니라.
도의(道意)3)의 생각 내거나
삿된 지혜 만약 밝아지면
여기에 의지하지 않으리니
그런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이 법은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약간의 그 무엇도 없음을 깨달아서
3) 무상도(無上道:최상의 도)를 구하는 마음. 즉 보리심(菩提心)을 말한다.
---------------------------------------------------------------------------------------------------------------------------------
[77 / 184] 쪽
이와 같은 법 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하느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 헤아리므로
성문은 이런 생각 많이 하나니
이러한 생각 제거하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법에 대해 생각함 없고
약간의 그 무엇 없음을 깨달아서
이 근본 없음을 연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부모와 형제와 아들은
공적(空寂)한 것이건만 있는 것이라 집착하며
나고 죽은 행업을 인정하니
부처님도 이룰 수 없느니라.
아내와 자매(姉妹)를 사모하여
의지한 채 허망함에 쏠리므로
이를 의지해선 안 된다고 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나고 죽는 일 만들어 내고
친족에 대한 생각 일으키며
인연 따라 정욕(情欲)을 내어
나의 오랜 벗이라 하네.
스스로 제 몸을 나라고 인정하면서
---------------------------------------------------------------------------------------------------------------------------------
[78 / 184] 쪽
숱한 모든 일에 마음 끄달려
분별심 일으키다가 뒤바뀐 생각에 떨어지나니
기필코 미군의 가르침에 머물게 되리.
나고 죽는 행업과
시종(始終)의 재앙과 환란 다 버리고
니원(泥洹:涅槃)의 덕 찬양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을 칭찬하여 설하느니라.
번뇌의 때에 대한 법과
흥망성쇠와 다툼을 강설하지만
이 모두는 말소리에 불과할 뿐이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중생들은 대부분 이익 다투고
방일하며 온갖 물질 탐하나니
이러한 중생들 구제하려는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집을 연모하면서도
마음으론 도 배울 생각 내나니
미련하고 아둔한 생각 이와 같기에
무착을 드러내어 찬양하였네.
오직 비천(卑賤)한 법만 보면서
참되고 오묘한 진리는 보지 않으며
갖가지 생각 살피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해탈시켜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네.
범부의 이치 제거해버리고
---------------------------------------------------------------------------------------------------------------------------------
[79 / 184] 쪽
오로지 불법만을 흠모하여 정진하면서
중생들의 탐욕을 뽑아 없애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만약 선악의 행업을 보고도
이와 같이 많은 법에 집착하나니
한량없는 중생들 이렇기 때문에
구원하여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네.
모든 훌륭한 상호 갖추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진하면서
이와 같은 모양에 집착하지만
어진 이는 여기에서 해탈하였네.
모든 부처님의 국토 장엄하고서
존상(尊上)의 법 성취하고는
바른 깨달음의 이익에 의지하나니
해탈하여 무착의 경지에 이르렀네.
무위법(無爲法)의 이치
얻었건 얻지 못했건 간에
이것은 성인의 도를 수행함이니
바른 서원 세울 수 있느니라.
계를 지키지 못하느니 범하지 않느니 하거나
방일하느니 지혜롭느니 하면서
어둡고 캄캄하고 연약한 사람이
문득 이 세 가지 일에 집착하느니라.
중생들 이런 모습에 집착하여
모든 생각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약간의 생각이라도 덜어 없애야 하므로
그런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거룩하고 많은 복전도 생각하고
또한 덕이 없다는 생각도 내어
범인(凡人)의 법을 분별하나니
그런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이와 같은 행업 지어서
남자다 여자다 분별하거나
현성(賢聖)이니 범부(凡夫)니 하고 분별하면
이것은 곧 두 가지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중생들이 이 두 가지 일을 일으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행위로서
이 두 가지 사이에 의지하는 까닭에
해탈시켜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느니라.
흔들림에 이르러서도 물러남이 없고
조작하면서도 짓는 일 없으니
성인의 도에 가까워지게 하려고
이런 마음 일으켜 이런 생각 하게 하였네.
큰 도를 획득하고서
더 이상 없앨 것 없다는 마음 내지 않네.
마음 속에 항상 이런 생각 품고서
무위(無爲)의 도를 구하느니라.
---------------------------------------------------------------------------------------------------------------------------------
[81 / 184] 쪽
그들은 중생을 받아들이니
어진 사람이 우매한 중생을 염려하네.
이런 까닭에 무착이라 말하나니
모든 형상을 구하는 중생 제도한다네.
이것은 곧 보살법이니
아라한의 몸으로 나타나되
그런 인해 법인(法忍)4)을 일으키지 않으며
스스로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아라한의 법 강설하나니
이것은 마땅히 보살이 하는 일
집착 없는 법에 머물면서
최상의 도[無上道]를 증득한다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보살로서 무착행을 하는 일에 대하여 찬탄하셨으니 이것이 곧 훌륭한 방편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9. 성문품(聲聞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 보살이 성문(聲聞)이 되는 것을 빛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보살대사(菩薩大士)는 수없이 많아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
4) 지금까지 믿기 어려웠던 이치를 잘 받아들이고 의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4제(諦)의 이치를 관하여 인가(認可)하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한다. 이 인가에 의하여 점점 의혹을 여의었을 적에 일어나는 4제의 진리를 비추어 보는 지혜를 법지(法智)라 하는데, 법인은 법지를 증득하기 전에 일어나는 인가결정(忍可決定)하는 마음.
---------------------------------------------------------------------------------------------------------------------------------
[82 / 184] 쪽
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佛法)을 듣고 경적(經籍)을 분별하게 하기 때문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성현의 도에 대해 듣고 나서 청정하여 방일(放逸)하지 않게 하는 까닭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무위(無爲)의 법을 듣고 편안해 하며 감로(甘露)를 즐기며 근(根)ㆍ역(力)ㆍ각의(覺意)ㆍ의지(意止)ㆍ의단(意斷) 등 이러한 일들을 원만하게 갖추어 빠르게 도혜(道慧)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공혜(空慧)를 증득하여 이 몸은 견고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지만 어둡고 우매한 사람들은 꽉 막혀 깨닫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그들은 자신의 몸을 탐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경계[入]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색(色)이라 한다는, 이런 이치를 뚜렷이 관찰하게 하여 불안(佛眼)을 성취하게 하나니, 그 눈은 널리 불가사의한 경계를 보게 되리라. 눈에 의지하는 대상을 여의면 끝내는 이 눈을 일체법을 성취한 눈이라고 하리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이 모든 법을 헤아리되 소리는 마치 메아리와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하여 음성에 집착하지 않게 하고 말한 이도 없고 또한 들은 이도 없으며, 냄새에 대해 냄새라고 생각하지 않고 또한 냄새를 맡지도 않나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갖가지 냄새를 맡았지만 이 일을 다시 헤아려 보면 아무런 냄새도 맡지 않은 것과 같나니, 이는 바로 사물에 미혹5)되어 그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러한 모든 냄새를 중생들이
맡은 것은, 비유하면 마치 꿈 속의 일과 같아서 견고(堅固)한 것이 아니니라. 이러한 음성을 깨달아 알면 이것을 곧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혀에 대한 맛에 있어서도 그 맛 또한 공한 것이니, 마치 고깃덩이가 혀가 된 것과 같아서 혹 지혜로운 이는 이를 깨달아 맛에 미혹되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거품 덩어리와 같아
5)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혹(或)’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보아 ‘미혹하다[惑]’는 말로 풀이해야 할 것 같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宋)ㆍ원(元)ㆍ명(明)본과 궁(宮)본에 ‘혹(或)’은 ‘혹(惑)’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83 / 184] 쪽
서 모든 논리에서 벗어나므로 비유할 수도 없느니라. 지혜가 밝은 이는 이를 관찰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아느니라. 만약 이러한 맛에 대하여 집착하고 생각하는 이는 악한 죄를 짓게 되나니, 여섯 경계를 생각하여 맛에 대한 분별심을 내지 말라. 마음으로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서 생각이 방일하지 않아야 하리니, 만일 이런 이치를 알아서 마음으로 작용이 없음을 생각하며 각각 분별하여 들은 이치를 말하거니와 그 듣는 것까지도
공한 것임을 알면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저 모든 경계[入]의 일들을 밝게 깨달아서 그 들음이 공한 것임을 알고 몸도 스스로 조용하고 고요한 것임을 깨달아 일찍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는 바를 알지도 못하니, 생겨나는 것도 없고 생겨나지도 않는 것을 성인의 도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또한 듣는 것도 모두 존재하는 것이 없으니, 이 몸은 자연 그대로일 뿐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는 것도 아님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보시(布施)에 대하여 듣고 은혜로써 그 법을 행하는 것이 불가사의하니, 부처님께서도 이 길을 따라서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셨느니라.
마음에 보시하는 바가 있으되 그 마음을 보지 않으며 의지(意志) 없음으로써 성인의 지혜를 체득하나니, 왜냐 하면 종자를 심어서 반드시 그 열매를 얻는다지만 그 과실은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과보를 설하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며, 의식(衣食)의 보시에 대하여 듣고 물질의 보시에 대하여 헤아려 보면 그 보시는 가장 엷을 뿐이기 때문이니라.
모든 희사[捨] 가운데 법시(法施)가 가장 존귀하니, 탐하거나 애석하게 여기지도 말고 보시한다는 생각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비록 베푸는 것이 있을지라도 바라는 것이 있어서도 안 되나니, 비유하면 마치 환술로 만든 사람은 마음과 뜻이 없어서 아무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같느니라. 수행하여 성취하고자 하면 보시를 한다는 생각은 없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보시를 하고도 희망하는 것이 없으면 도를 수행함이 순조롭기 때문이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모든 음성과 일체의 진애(塵埃)를 여의고 전혀 듣는 것도 없으며 모든 유
---------------------------------------------------------------------------------------------------------------------------------
[84 / 184] 쪽
위법을 여의나니, 음성으로써 불법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니라. 모든 음성을 분별하고도 의지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두 가지 일이 음성을 낼 때 비록 두 가지 일이 있으나 아무것도 존재함이 없으며, 인연이 합해져서 두 가지 일이 있는 것이지만 사람이 법음을 이루는 까닭에 성문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무앙수(無央數)의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무념법(無念法) 듣도록 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성문(聲聞)이라 말하거니와
이는 곧 용맹한 보살이니라.
적정(寂定:菩提)의 도 듣고
편안해 하고 방일(放逸)하지 않으며
한량없는 중생들이 법을 듣게 하나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 하느니라.
담박(澹泊)하고 안온(安穩)함을 듣고
모든 즐거움은 형상이 없다 하나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 하거니와
조용하고 고요하여 작용 없는[無爲] 경지에 이르네.
각(覺)ㆍ근(根)ㆍ역(力)의 법 듣고
의지(意止)와 의단(意斷)을 원만히 갖추어
스스로 최후의 경지 이루나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 하느니라.
이 몸은 공한 것으로
얻을 수도 없고 견고하지도 않다는 말 듣고도
---------------------------------------------------------------------------------------------------------------------------------
[85 / 184] 쪽
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집착하나니
그런 까닭에 이 몸에 대하여 밝게 알아야 하리라.
눈으로 보는 것도 없나니
듣지 못함도 이와 같건만
중생들은 보는 바의 침범을 받아
어둡고 막혀 깨달아 알지 못하네.
만약 불안(佛眼)을 성취하면
평등한 눈6) 불가사의하니
본래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으면
어둡고 우매한 모든 중생 개화할 수 있으리라.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 경(經)전 듣고서
모든 법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니
이런 까닭으로 명호(名號)를 얻었기에
그 이름 성문이라 하느니라.
저 듣고 받아들임 없는 이치가
메아리와 같음을 깨달으면
말하는 이도 볼 수 없고
듣는 이도 없음을 알리라.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 이름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듣고 받아들이게 하지만
근본을 헤아려 보면 듣는 것도 없나니
6) 고려대장경 원문엔 ‘자(自)’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상 통하지 않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송ㆍ원ㆍ명본과 궁(宮)본에 ‘자(自)’가 ‘목(目)’자로 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의미가 통하도록 하기 위하여 ‘눈’으로 풀이하였다.
---------------------------------------------------------------------------------------------------------------------------------
[86 / 184] 쪽
음성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꿈 속에서
갖가지 향 냄새 맡았지만
황홀하여 얻을 수 없거늘
공한 냄새에 빠진 것과 같느니라.
냄새에 대하여 이와 같이 깨달아
일찍이 냄새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거늘
한량없는 사람들이 그 뜻을 잃어버렸으므로
보살이 그들을 인도하여 깨우쳐 주느니라.
혀를 살펴보아도 의지할 대상 아니니
고깃덩이론 맛을 모르기 때문이네.
가령 고깃덩이가 단맛 안다면
혀도 마땅히 그것을 인식해야만 하리라.
이 모든 생각은 의지할 게 없으니
좋은 것 생각하면 흉하고 위험하리.
여섯 가지 경계 생각하면 안 되나니
모든 맛의 종류 깨달아 알아야 하네.
보살은 매우 용맹스러워
눈으로 보고 분별하여 알며
들음으로 인하여 이룩하나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 하느니라.
스스로 제 몸을 분별해서
이 몸은 자연 그대로 공한 것임을 아나니
---------------------------------------------------------------------------------------------------------------------------------
[87 / 184] 쪽
이것이 정녕 허무한 것임을 깨달아 알면
나지도 않고 생기게 하는 이도 없음을 알리라.
만약 일으킴이 없으면
이것은 곧 성현의 도 아는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법을 듣게 하므로
이것을 성문이라고 하느니라.
마음 헤아려보면 본래 청정하여
형체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는 것
이것을 중생이라 말하지 말라.
그 이치 깨달으면 성문인 것을.
마치 요술로 만들어낸 것과 같아
멸하여 없어지면 또한 공한 것
만약 갖가지 모습 7)을 보고
깨달아 알면 성문이라 하느니라.
또 보시법에 대하여 듣게 하나니
법시(法施)는 생각할 수 없이 훌륭한 것이며
이 법은 곧 성인의 길이라서
그대로 따르면 불도(佛道)를 이루리라.
그 본래의 종자 따라서
열매를 얻음도 이와 같으니
보시는 불가사의한 것이어서
7) 고려대장경 원문엔 ‘상(想)’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로 보아 ‘모습[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도 “송ㆍ원ㆍ명ㆍ궁 네 본에는 ‘상(想)’이 ‘상(相)’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88 / 184] 쪽
무념대로(無念大道)를 성취하리라.
의식(衣食)을 보시함은 그 복이 엷고
법시만이 가장 뛰어나니
버리되 마음으로 애석해 하지 않으면
이것을 성혜도(聖慧塗:菩提道)라 하느니라.
생각 없는 마음 키우고
보시하되 집착하지 않으며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 이는
빠른 시간에 부처님 도 성취하리라.
모든 분별심(分別心) 다 버리면
귀에 들리는 것도 없을 것이요
합해져서 이룩된 모든 물질에서 벗어나리니
그런 까닭에 성문이라 하느니라.
부름으로 인하여 메아리 생겨나니
그 음성에 집착하지 않으면
중생들 가운데 거룩하고 높은 이 되며
더없이 훌륭한 불법 되리라.
모든 중생으로 소리 듣지 않게 하고
일체 것에 의지하지 않게 하며
두 법도 아니요 약간의 그 무엇도 없음을
드러내 설법하면 성문이라 하느니라.
수많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
그들로 하여금 그 설법 듣게 하여
---------------------------------------------------------------------------------------------------------------------------------
[89 / 184] 쪽
듣는 것이 메아리와 같음을 깨닫게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부처님 도 성취하리라.
모든 부처님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듣는 것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평등각(平等覺:佛) 계신 곳 따라
최상이신 세존을 가까이에서 섬기라.
삼천세계에 들리게 하고
머무는 곳 허공 같으니
중생을 헤아려보면 적멸의 경지에 머문 것과 같고
니원(泥洹:涅槃)의 형체 없음과 같네.
세상 사람은 생각에 집착하고
4대(大:地ㆍ水ㆍ風)에 집착하여 의지하지만
그것은 허공일 뿐
니원과 상념(想念)은 다름 없다네.
모든 종자 이와 같음을 알아
견고한 것이라 생각지 말라.
나고 죽음이 본래 없는 것
번뇌[塵勞]도 멸하여 없앨 것 없네.
온갖 물질은 최후의 경지 아니요
중생을 살펴보아도 얻을 수 없나니
이 모든 법은 적연(寂然)한 것으로
중생계는 볼 수 있는 것 아니네.
중생들로 하여금 이 법을 듣게 하여
밤낮으로 그와 같이 수행하게 하면
그들은 온갖 생각 일으키지 않을 것이요
나는 모든 사람 교화하여 듣게 하리라.
중생들로 하여금 이 법을 듣게 하면
그와 같은 사람은 제자 되리라.
들은 법도 들을 대상이 없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성문을 찬탄하였느니라.
웅인(雄人:世尊)께서 지난 일 기억함은
듣고 받아들인 최상의 법이네.
분별없이 경(經) 보아야 하나니
일체법은 일체법 그대로라네.
보살의 설법은 치우침 없어
이 모임의 중생 구제하고자
중생들 위해 설법하나니
이것을 곧 성문이라 하느니라.
무위(無爲)의 경계 강설하여
청정하여 방일(放逸)하지 않게 하며
말없는 법 자세히 살펴보면
불법 또한 그와 같은 것.
법을 관찰함이 멀리 있는 것 아니니
부처님의 강설이 바로 법이요
저 법 또한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의지할 것도 없느니라.
---------------------------------------------------------------------------------------------------------------------------------
[91 / 184] 쪽
그런 까닭에 제자에게 강론하여
설법 듣고 이 가르침 따르게 하며
모든 중생에게 권유하고 교화하여
이 설법 듣게 하여라.
이런 까닭에 아난아,
성문의 교화를 강설했으니
임시로 이름 붙여 제자라 하지만
그는 곧 보살대사(菩薩大士)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보살을 성문(聲聞)이라 찬탄해 말씀하셨으니, 이 이치도 훌륭한 방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10. 연각품(緣覺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는 보살이 연각(緣覺)이라는 것을 선설하셨는가? 이에 보살이 모든 법을 보나니, 무엇을 법을 본다고 말하는가? 모든 법은 공한 것이어서 형상이 없으므로 무너지지 않으며 현재에도 법이 소멸되지 않는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았으므로 연각이라고 말하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경적(經籍:法)은 불가사의하나 모든 중생들이 다 니원(泥洹:涅槃)과 같아서 안과 밖도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음을 밝게 깨달아 아느니라.
모든 법은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것도 아니니, 중생의 본제(本際)는 곧 니원이요 본래 청정하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다만 말에 집착하는 것일 뿐,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법을 체득할 수도 없으니 이름지어 부르기는 하지만 말로는 통하게 할 수 없느니라.
---------------------------------------------------------------------------------------------------------------------------------
[92 / 184] 쪽
왜냐 하면 그 말이란 곧 공한 곳이어서 입으로 지껄이기는 하거니와 이미 없는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의 본제(本際)가 곧 부처님의 도이므로 분별할 수 없으니, 이렇게 관찰하기 때문에 연각이라고 말하느니라. 스스로 색음(色陰)을 살펴보아도 그것은 다만 소리일 뿐이요, 이 색음에 대하여 그 물질이 생겨나는 것인가 살펴보지만 그것도 오직 이름을 뿐이니, 말과 음성을 여의고 나면 색음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느니라.
저 색음은 몸이 아니요 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입으로 이름을 지어 부르고는 있지만 그 말도 또한 공한 것이요 생겨나거나 소멸하지도 않는 것이며 말이란 자연 그대로일 따름이다. 나에 대해서도 집착해서는 안 되니 또한 영구히 보존 할 수도 없는 것인데 더구나 입으로 내뱉는 말이겠느냐?
눈으로 색음(色陰)을 봄으로 인하여 아프고 가려운 수음(受陰)이 일어나거니와 아프고 가려운 수음이 소멸하고 나면 그 이름조차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니, 입으로 말하는 것을 따라서 아프고 가려운 수음이라 이름하지만 아프고 가려운 수음은 내 몸도 아니고 나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이른바 아프고 가려운 수음이라고 하는 그 말조차도 공한 것이어서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몸에 집착해서도 안 되니 또한 머무를 곳도 없거늘 더구나 말이겠느냐?
아프고 가려운 수음에 대하여 깨닫고 나서 상음(想陰)을 관찰하면 상음은 적멸한 것이어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없으니, 상음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이름일 뿐이요 몸도 아니고 나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입으로 상음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조차도 공한 것이어서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 것을 말로 분별할 따름이니라. 자연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마음에 새겨두는 것도 없어야 하거늘 더구나 말이겠는가?
상음에 대하여 관찰하고 나면 나고 죽는 행음(行陰)도 소멸하리니, 행음은 나고 죽는 행업이 없어서 이른바 내 몸도 아니요 나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행음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그 말조차도 공한 것이어서 생겨나거나 소멸하는 것도 아닌데 다만 말에 집착할 뿐이기 때문이니라. 오래도록 보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늘 더구나 입으로 내뱉는 말이겠느냐?
행음을 관찰하고 나면 식음(識陰)이 있으니, 설령 식음이라고 말하더라도
---------------------------------------------------------------------------------------------------------------------------------
[93 / 184] 쪽
그것은 담연(湛然)하고 적멸(寂滅)한 것이어서, 곧 이 식음은 다만 음(陰)이라는 소리일 뿐이니라.
왜냐 하면 식음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는 것도 곧 공(空)할 뿐이어서 생겨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것이니라. 그 말은 자연 그대로여서 머물러 그침이 없거늘 더구나 언설(言說)이겠느냐?
이 5온(陰)은 모두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것이니, 본래 없는 이치를 분별해 깨달았으므로 연각이라고 말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입으로 말하는 것들은 모두가 인연을 상대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인연이 없으면 연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원인을 강설하는 그 말도 말할 것이 없으니, 5음(陰)의 일이 여기에서 집착함이 영원히 다 없어져서 갖가지 인(因)을 짓지 않기 때문에 연각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눈앞의 모든 법을 보고
모두가 공한 것임을 분별해 알면
모든 물질에 집착하지 않으리니
최후의 경지엔 아무 모양도 없기 때문이니라.
현전한 이 법을 관찰하여서
공하여 자연 그대로임을 깨달았네.
이것은 담박(澹泊)한 것이어서
그 근원(根源)을 얻을 수 없음을 분별하여 깨달았네.
현전한 법에서 이 이치 획득하여
5음(陰)도 이와 같음을 깨우쳤으니
그것은 곧 평등한 깨달음이요
생각으론 알 수 없는 연각이라네.
중생은 다8) 작용 없으니
8)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지(志)’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가 서로 통하지 않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ㆍ원ㆍ명 세 본에는 ‘지(志)’자가 ‘실(悉)’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 말을 따랐다.
---------------------------------------------------------------------------------------------------------------------------------
[94 / 184] 쪽
그 마음 얻을 수 없고.
본제(本際)도 일어남이 없어
청정하여 없는 모습 무사의(無思議:不思議)하네.
일체 중생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사라짐도 없음을 관찰했으니
모든 법이 동요하거나 일어남이 없으면
이것을 무위(無爲)라 말하느니라.
중생은 모두 니원(泥洹)과 같아
나아갈 바를 성찰(省察)해 보면
중생 없음이 마치 그림자 같아
그런 까닭에 무위라 하느니라.
이 명칭 쓰지 않아야 하니
중생이 곧 니원이어서
생겨나지도 않으며 소멸되는 것도 없는데
다만 입으로 찬탄하여 말할 뿐이네.
감히 말조차도 모두 공(空)한 것이건만
중생들은 말이 공한 줄 알지 못하네.
이런 까닭에 중생들 위해
니원(泥洹:涅槃)법을 설하여 나타냈네.
입으로 내는 모든 말은 거짓이어서
처소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네.
---------------------------------------------------------------------------------------------------------------------------------
[95 / 184] 쪽
입으로써 훈계하는 말
근본을 구해봐도 얻을 수 없네.
음(陰)이란 본제(本際)가 없으니
말로는 나타낼 수 없네.
모든 음성으로 일컫는 말
중생들은 또한 생각할 수 없으리라.
중생과 열반과
본무(本無)와 시제(始際)에 대해
편안함을 얻어 방일함이 없으면
구제받아 돌아갈 곳 있으리라.
본래 청정하건만 메아리에 집착하나니
중생도 또한 그러하다네.
형체가 없어 공하고 고요하니
본래 청정한 것 마음으론 생각할 수 없네.
법의 근본이 이와 같은데
거짓으로 이름붙여 찬양하나니
그 근원 얻을 수 없어
그런 까닭에 언설(言說) 생겼네.
아첨하는 일로서
분별해 알지 못하니
그 실제는 공하여 없는 것
중생의 근본 깨달았다네.
그 말은 강설(講說)에 의지하지 않나니
---------------------------------------------------------------------------------------------------------------------------------
[96 / 184] 쪽
말로는 나타낼 수 없고
모든 중생들도 이와 같나니
중생의 본제(本際)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리.
음(陰)이라고 하는 것도 공한 것
언성(言聲)으론 분별할 수 없나니
그 언설도 또한 이와 같으며
본제[際]도 역시 그러하니라.
저 본제(本際) 없음도 이와 같아서
깨닫고 나면 생각할 게 없나니
이것이 곧 평등한 도로서
연각(緣覺)의 무사의(無思議:不思議)라네.
본래의 색음 깨닫고 보면
이 음(陰)은 다만 음성일 뿐이니
이 색음은 적멸(寂滅)한 것이어서
언성조차 있을 수 없네.
자연히 놓아버리면
이것을 형체 없는 것이라 말하리니
나라는 것도 자연 그대로여서
살펴보아도 처한 곳 없네.
말로써 음이라 말하거니와
색음은 본래 몸이 아닐세.
그 음성도 모두 공(空)으로 돌아가나니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소멸되는 것도 아니니라.
---------------------------------------------------------------------------------------------------------------------------------
[97 / 184] 쪽
입으로 말하는 것은
그 근본 구해봐도 얻을 수 없네.
말이란 어리석음 때문에 생겨나는 것
이를 이름하여 색음이라 하네.
현전한 식음(識陰)을 관찰해보면
모두가 음성일 뿐 존재하는 실체가 없으니
이 음(陰)도 적멸(寂滅)한 것이어서
메아리와 같은 음은 실체가 없네.
여기에서 몸을 멀리 여의어야 하니
여의어야 할 몸은 이른바 나라고 하는 것
헤아려보면 모두가 자연 그대로의 공한 것이어서
일찍이 견고하게 머물지 못하느니라.
입으로 음이라 말하거니와
식음 또한 허공과 같고
입으로 본제를 말하지만 그것도 적멸하여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네.
가령 게송으로 말한 것이라 해도
살펴보면 모두가 본래 없는 것이건만
지혜롭지 못한 이가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색음에 대해 연설하였네.
모든 음은 언설을 여의었나니
한량을 얻을 수 없고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소멸되는 것도 없으며
처소도 없고 결단할 일도 아니라네.
---------------------------------------------------------------------------------------------------------------------------------
[98 / 184] 쪽
번뇌도 침해할 수 없고
또한 모든 법 조작하지도 않으니
고집할 것도 아니요 버릴 것도 없으며
조롱할 것도 아니요 니원(泥洹:菩提)도 아니라네.
저것은 적멸(寂滅)도 아니요
볼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즐겁게 베푸는 것도 아니고 욕애(欲埃)도 아니며
게으름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니라.
혼란도 아니요 일심(一心)도 아니며
저것은 또한 지킬 계율도 없네.
성취할 만한 물질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마땅히 가져서 금지하리요.
다섯 가지 세계는 생각할 대상 아니요
생각 없음도 이와 같나니
두려워할 일도 아니요 두려워할 대상도 없고
해탈도 아니요 속박도 아니니라.
비록 강설하더라도 연설한 것이 없는
이것이 색음이 들어갈 곳이며
일체의 법음(法音)도 그러하여
얻을 게 없으니 말에 집착하지 말라.
눈앞에 보이는 것을 체득하고 깨달아
다함이 없는 법 설하였나니
이것으로써 삼매(三昧)를 성취하면
모든 음성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
[99 / 184] 쪽
눈으로 보고 스스로 이 이치 분별해 알면
언설이 평등하고 여여하다 말하리니
모든 법 또한 이와 같아
말도 없으며 집착할 것도 아니니라.
인연법을 밝게 깨달은 이는
음성이란 아무런 실체가 없음을 아네.
그런 까닭에 평등도(平等道:正覺)라 부르나니
이것을 바로 연각(緣覺)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대사(菩薩大士)가 현재 나타나 있는 명(明)과 무명(無明)을 분별하여 알며, 행(行)과 비행(非行), 식(識)과 식이 아닌 것, 색(色)과 색이 아닌 것, 여섯 가지 경계[六入]와 경계가 없는 것, 모든 습(習:觸)과 습이 아닌 것, 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과 아프고 가려운 느낌이 아닌 것, 은애(恩愛)와 은애가 아닌 것, 수(受:取)9)와 사수(捨受), 유(有)와 유가 아닌 것, 생(生)과 생이 아닌 것, 늙고
병들고 죽음의 걱정 등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여서 자세히 살펴보면 본래는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분별하여 알 수 있나니, 이와 같이 관찰하여 깨달았으므로 연각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현전에 나타나 있는 것이 무혜(無慧:無明)임을 깨달아
일찍이 의지하지 않았기에 밝아졌네.
형상 있음을 성립(成立)시키지 않음이
9)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불수(不受)’로 되어 있으나 의미의 흐름으로 보아 ‘수(受)’가 되어야 할 것 같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宋)ㆍ원(元)ㆍ명(明)ㆍ궁(宮) 네 본에 모두 ‘불수(不受)’는 소수(所受)‘로 되어 있다”고 하였기에 역자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마치 물 속에 그림자 같네.
설법 듣고 모든 이치 깨달아
일체의 법에 집착하지 않네.
가령 경(經:法)에 의지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지혜로운 모습이니라.
명(明)과 몸[身]은 다르지 않나니
모든 법의 모양에 대하여
이런 인연의 이치 깨달아 알면
그런 까닭에 연각이라 하느니라.
몸의 행(行)을 말하지만
그 몸은 조작된 것이 아니니
영원히 안과 밖이 없어서
나고 죽는 몸을 초월하였느니라.
처음과 끝 파초(芭蕉)와 같아
근본도 없고 모양도 없네.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소멸되는 것도 아니니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느니라.
현전한 법의 이치 깨달아 알면
곧 용맹한 보살이니
그 이름 평등성(平等聖)이라
연각의 무념(無念)과 같느니라.
모든 법을 깨닫고 보면
적멸행[寂行]이 마치 환화(幻化)와 같고
---------------------------------------------------------------------------------------------------------------------------------
[101 / 184] 쪽
그 식(識)은 자연그대로임을
현전한 법에서 밝게 깨달았으리.
이 마음 홀연히 깨달아
식(識)과 행(行) 여여함을 알았고
말씀하여 나타내 보인 생각 때문에
모든 법이 공한 것임을 분명히 알았네.
식(識)이 그러한 줄 분별하고서
모든 법에 집착하지 말지니
이와 같이 법을 안다면
식 또한 환상(幻相)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리라.
명색(名色)이라 부르고
몸이라 하는 모든 음성과
갖가지 모양은 공한 것이어서 이룩할 수 없으니
이것을 자연상(自然相)이라 말하네.
마음이 6정(情)에 끄달리지만
환화(幻化)와 같아 말할 수 없네.
말로 표현하지만 그것은 음성도 아니며
헤아려보면 자연 그대로의 공한 것이네.
구원겁(久遠劫)을 익혀온 탓에
모든 입처(入處)가 생기나니
그것은 분별 때문에 생긴 습(習:觸)이거니와
자연 그대로여서 공과 같느니라.
습(習)으로 이룩되는 것 다 공한 것이나
---------------------------------------------------------------------------------------------------------------------------------
[102 / 184] 쪽
생각에 끄달려 갖가지 촉감 일어나니
만일 습이 본래 적연한 것임을 알면
모든 법은 머무르지 않는 것인 줄 알리라.
현전한 습이 자연(自然)인 줄 알고
갖가지 감촉[更:觸]이 다 적연한 줄 깨달으면
흉한 죄악 일으키지 않으리니
그런 까닭에 연각이라 하네.
모든 아프고 가려운 수음 깨달아
그것이 공하여 본래 청정한 줄 알면
비유하면 생겨났다 바로 없어지는 거품과 같나니
필경(畢竟)10)엔 공하여 형상이 없음을 알리라.
갖가지 은애(恩愛) 끊어버리고
집착 없는 법을 따라서
정욕(情欲)이 이미 다 끊어졌나니
그런 까닭에 연각이라 하네.
느껴도 느끼는 것이 아니요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인 줄 알면
형상도 없는데 무엇을 성취하리.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와 같네.
나라는 생각 일으키지 말라.
10)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지경(至敬)’으로 되어 있는데 의미상 ‘지경(至竟)’ 또는 ‘필경(畢竟)’이라야 의미가 통하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ㆍ원ㆍ명ㆍ궁 네 책에 모두 ‘지경(志敬)’은 ‘지경(至竟)’이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기에 역자는 필경으로 번역하였다. 지경(至竟)은 필경(畢竟)의 의미임.
---------------------------------------------------------------------------------------------------------------------------------
[103 / 184] 쪽
몸이 생겨나는 것도 이와 같나니
헤아려보면 본래 저절로 생겨난 것이어서
근본도 없고 형체도 없네.
생겨나고 소멸하는 법을 여의면
죽음에 이르러도 두렵지 않고
미래세에 다시는 몸을 받지 않으며
일체가 자재(自在)함을 증득하리라.
현재에 이 지혜 획득하여
영원히 집착하지 않으면
연각이란 소리 듣고
보살행을 닦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보살에게 연각을 찬양하셨으니, 마땅히 이것이 곧 훌륭한 방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께서는 이러한 까닭에 보살대사의 믿음을 지니고 법을 받드는 것과 8등(等)ㆍ도적(道迹:須陀洹)ㆍ왕래(往來:斯陀含)ㆍ불환(不還:阿那含)ㆍ무착(無着:阿羅漢)ㆍ성문(聲聞)ㆍ연각(緣覺)을 찬양한 것이니라.”
11. 석과상품(釋果想品)
현자(賢者) 아난이 게송을 말하였다.
세존께서 연설하신 것처럼
니원(泥洹:涅槃)이란 임시로 붙여진 이름이니
비유하면 허공과 같으므로
---------------------------------------------------------------------------------------------------------------------------------
[104 / 184] 쪽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치로써 해탈케 하셨네.
비록 강설(講說)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말이 아니니.
모든 부처님께서 훌륭한 방편으로써
종합하여 설법하셨네.
그때 아난이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天中天:佛)이시여, 세간의 백성들이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때를 따라서 교화하신 이치를 알지 못하여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여래께서 무슨 까닭에 보살대사의 지신(持信)ㆍ봉법(奉法)에서부터 연각(緣覺)에 이르기까지를 분별하여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 부처님 때에 공을 쌓고 덕을 쌓았으므로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통하여 속임수에 침해받지 않으리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을 밝게 깨달아 알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환상ㆍ꿈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ㆍ물속의 달 그림자와 같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대사는 이러한 지혜로서 분별해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침해를 당하지 않고 은근히 여래의 법을 닦아서 정진하되 게을리 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속임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
니라.”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세존께서 찬탄하시고
찬양하신 거룩한 법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용감하게 정진하네.
지혜도 적고 게으른 이는
이 이치를 잘 알지 못하기에
---------------------------------------------------------------------------------------------------------------------------------
[105 / 184] 쪽
마땅히 닦고 정진하게 하고자
여래께서 이 이치를 설하셨느니라.
수행할 마음 가진 중생 위하여
세존께서 인도하여 교화하고자
이런 지혜로 분별하여 말씀하시니
청정하고 밝은 지혜 얻게 함일세.
저들이 도의 뜻[道意] 안다 해도
지혜롭고 거룩함을 얻을 수 없나니
만약 이런 법 깨닫는다면
마음으로 다섯 가지 일이 공한 것임을 깨달으리라.
공하되 공한 것을 알지 못하며
적정(寂定)하여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일체의 음성 다 제거하나니
그런 까닭에 공한 법을 찬탄하여 말하네.
허공은 잡아도 잡히지 않고
일찍이 얻을 수도 없었으니
가령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공한 이치야 어찌 모르리.
그때 오백억 비구가 마음 속으로 믿음 지닐 생각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 앞에 나아가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면서 똑같은 음성으로 게송을 읊었다.
지금 세존 큰 성인께서
저희들의 모든 의혹 없애주셨고
---------------------------------------------------------------------------------------------------------------------------------
[106 / 184] 쪽
평등각(平等覺:佛)께서 널리 설하시어
굳은 의지로 큰 도에 머물렀습니다.
또 다른 오억 비구가 이 설법을 듣고 다함께 받들어 행하면서 모두 부처님 앞에 머물러 똑같은 마음으로 게송을 읊었다.
유일하신 세간의 빛이시여.
저희는 이제 의심을 여의었고
거룩한 세존께서 찬탄하셨기에
부처님의 큰 도를 깨쳤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법의 자취 받들어
바른 지혜 얻어 걸림 없으니
도덕은 저절로 이루어지고
시방 중생들 모두 교화되었습니다.
또 천억 비구가 8등(等)의 생각을 내어 이 찬탄하는 게송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서서 다함께 게송을 읊었다.
마음 속에 8등의 법 가지니
이제는 의심의 그물 풀어지고
마음에 이미 분명하게 깨달았으니
그 원인은 8등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십억 비구가 도적(道迹: 須陀洹)의 마음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서서 같은 음성으로 게송을 읊었다.
도사(導師)께서 우리를 깨우쳐서
법의 지혜 획득하게 하였으므로
---------------------------------------------------------------------------------------------------------------------------------
[107 / 184] 쪽
평등각의 이치 깨달았으니
도적의 법 연설해 주신 탓이옵니다.
또 이백오십만 비구가 왕래(往來:斯陀含)의 마음을 품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며 같은 목소리로 찬탄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저희들이 본래부터 의지하고 집착했으나
왕래의 마음 품은 뒤로는
오늘에 이르러 영원히 어려움 없고
존망(存亡)에 대해 방일함이 없어졌습니다.
또 오십억 비구가 불환(不還:阿那含)의 생각을 가지고 게송을 읊었다.
가장 높으신 도사(導師)시여,
이제는 조롱과 희론이 없어져
영원히 모든 과보의 생각 버리고
거룩한 도사의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또 삼십오억 비구가 무착(無着:阿羅漢)의 생각을 품고 4선(禪)에 머물러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제 저는 의심하지 않고
무여법(無餘法:無餘涅槃)을 체득하였습니다.
모든 승(乘)의 평등함을 깨닫고 보니
비유하면 마치 환상[幻]과 같더이다.
또 오십팔억 비구가 마음 속에 성문의 생각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서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
[108 / 184] 쪽
저희들이 이 말에 집착하자
세존께선 중생들 제도시킬 마음으로
성문법을 연설하셨으므로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또 오억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각(緣覺)의 생각을 일으켜 합장하고 서서 같은 마음으로 게송을 읊었다.
오늘 본 현전의 일
연각으로 비롯된 것이나
세존께서 분별하여 말씀하시니
연각의 법 생각으론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또 백만 비구니가 도적ㆍ왕래ㆍ불환ㆍ무착과의 생각을 성취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서서 게송을 읊었다.
저희들은 평등법을 깨달아
여인의 몸 버리고
각각 부처님 도 이루었으니
마땅히 세상에 제일입니다.
또 팔백팔십만 청신사(淸信士)와 청신녀(淸信女)가 모두 도적의 생각과 왕래ㆍ불환의 생각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의 앞에 서서 같은 마음 같은 생각으로 다함께 게송을 읊었다.
저희들의 마음과 생각 청정하여
비유하면 마치 유리그릇 같나니
이제사 마땅히 집을 버리고
부처님의 법다운 가르침을 닦았습니다.
---------------------------------------------------------------------------------------------------------------------------------
[109 / 184] 쪽
또 육십억해의 많은 저 모든 천인(天人)들이 허공에 머물면서 하늘꽃을 내려 부처님 위에 뿌려 다함께 세존께 공양하고 곧바로 내려와서 부처님 앞에 서서 게송을 읊었다.
저희들은 본래 모든 승(乘)을 생각하였고
과(果)에 대한 생각도 또한 그러했더니
오늘날 영원히 끊어 없애고
무상도(無想道)를 깨달았습니다.
12. 항마품(降魔品)
그때 무수한 백천 비구와 사리불(舍利弗)ㆍ목건련(目犍連)ㆍ수보리(須菩提)ㆍ아난률(阿難律)ㆍ이월(離越)ㆍ겁빈노(劫賓奴)등의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서서 세존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이 오늘 성현의 도를 원만히 갖추어 큰 뜻을 어기지 않고 마군의 원한을 항복받아 물리쳤으나, 5역(逆)을 갖추고, 다섯 가지 욕락을 다 갖추었으며, 삿된 소견을 성취하고 바른 소견을 버렸으며, 이미 무수한 만천 사람의 목숨을 해쳤으나, 저희들은 오늘 모두 부처님 도를 성취하여 무여계(無餘界:涅槃界)에 이르고 이미 멸도하였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계셨는데 그 대중들 가운데 있던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대중들은 모두 그 모임에 와서 이 말을 듣고 의심을 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뜻하여 나아가는 의미는 뭘까? 우리의 마음은 깜깜하여 알 수 없다. 아라한 같은 이들도 저런 말을 하는데 하물며 범부(凡夫)이겠는가?’
서 있는 이는 똑바로 서 있었고 앉아 있는 이는 잠자코 앉은 채로 일어나지 못했다.
현자(賢者) 아난이 성존(聖尊:佛)의 뜻을 받들었으므로 무수한 백천 모든 중생들이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는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연로하신 분의 말을 듣고 이 모임에 있는 대중들이 모두 의심하고 있습니다. 논란을 벌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고, 또 불ㆍ세존께서는 왜 잠자코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오직 현자 아난이여, 이 경을 불퇴전륜보살(不退轉輪菩薩)의 경지라고 말하나니 이 연로하신 분들이 강설한 것 모두는 불퇴전 보살대사만이 보고 믿음을 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난이 또 물었다.
“연로하신 대덕들이 무슨 까닭에 그런 말을 하였습니까?”
세존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이 연로하신 분들은 무상정진불퇴전(無上正眞不退轉)입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마땅히 정각(正覺)을 이룬 뒤에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현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지혜롭지 못한 행위를 곧 어머니라 하는데 이 모든 사람들은 끝내 숱한 해로움을 다 제거하게 되며, 훌륭한 생각은 없고 정색(情色)만을 탐하여 집착한 것을 곧 아버지라 하는데 착하지 못한 생각을 제거하고 여러 정념(情念)을 멀리하여 무착(無着: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고 난 뒤에 범부법(凡夫法)을 버리고 청정하지 못한 생각으로 성속(聖俗)을 구별하는 일을 씻어버리며, 모든 잡념을 깨뜨리고 큰 법은 무너뜨리지 않으며, 여래의 뜻을 일으켜 모든 생각을
제거하며, 일체법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가며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연로하신 대덕들은 ‘우리들이 오늘 5역(逆)을 다 갖추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거스름에 오고 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로한 대덕들이 말한 ‘다섯 가지 즐거움을 성취했다’는 것에서 그 다섯 가지 즐거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다 꿈ㆍ허깨비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와 같나니, 이 지혜를 또렷이 깨달아서 결함이 없으면 다섯 가지 즐거움이 됩니다.
---------------------------------------------------------------------------------------------------------------------------------
[111 / 184] 쪽
왜냐 하면 이런 것들은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그 근원이 없다면 모두 제거해야 하리니, 그래야만 비로소 평등과 호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지혜에 대한 강설을 듣고 곧 법인(法認)을 체득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 즐거움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연로한 대덕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오늘 바른 견해는 여의고 삿된 견해에 머문다’고 한 것은 모든 법을 보고 모두 삿된 견해에 머물면서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은 거짓되고 허망하여 진실로 존재하는 실체가 모두 없으니, 비유하면 마치 허공엔 아무런 형상이나 모양도 없으며 허(虛)와 실(實), 가고 옴이 다 돌아갈 곳이 없고 획득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 하면 그 근본은 자연 그대로여서 이 모든 법을 살펴보면 다 평등하고 하나이기 때문이니, 여러 가지 법등의 삿된 견해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구의 무리는 평등하지도 않고 삿됨도 없으니, 왜냐 하면 모든 망상을 여의면 부처님의 거룩한 도를 이룩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깨달음의 법을 획득하여 경의 뜻[經義]에 포만(飽滿)하게 되지만 그 또한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난이여, 이 모든 비구들이 다함께 말하기를 ‘우리들이 오늘날 삿된 견해는 원만하게 갖추고 바른 견해는 버렸다’고 한 것입니다.
이 연로하신 대덕들이 ‘오늘 우리들이 무수한 백천 사람의 목숨을 해쳤다’고 한 것은,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에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천만 사람과 신(神)들이 이 말을 듣고, 모든 법은 마치 환상이나 꿈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와 같음을 깨달아 알고는 중생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나라는 집착을 없앴으며, 수명ㆍ중생이라는 집착도 멀리 여의었으며, 갖가지 덕의 근본을 초월하여 큰 도의 마음을 내지만 그 어떤 종자도 심은 바가 없었습니다.
또 비구ㆍ비구니ㆍ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들도 모두 나니, 남이니, 수명이니, 이 몸은 없는 것이니 하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는 잠시라도 나고 죽는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나니, 남이니 하는 생각과 다함이 없이 영원하다는 생각을 없애서 아주 다 끊어 남음이 없으며 최후의 경지
---------------------------------------------------------------------------------------------------------------------------------
[112 / 184] 쪽
인 생멸이 없는 법인[不起法忍]을 체득하였으므로 ‘우리들이 오늘날 무수한 백천 사람의 목숨을 해쳤다’는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 모든 연로하신 대덕들과 그 권속이 말한 ‘오늘 우리들이 부처님의 도를 체득(逮得)하여 무여의 세계[無餘界:無餘涅槃界]에 이르러 멸도(滅度)의 경지에 든다’고 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억백천의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온갖 번뇌[塵埃]를 다 버리고 그들로 하여금 성현의 도를 획득하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가 무상전진도(無上正眞道)의 생각을 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에 이들 모두가 생멸이 없는 법인을 체득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감탄하면서 스스로 게송으로 찬탄해 말하기를 ‘오늘 우리들이 정욕(情欲)을 뽑아버리고 부처님의 도법(道法)을 성취했다’고 한 것입니다.
번뇌의 형상도 없고 남은 더러움까지 모두 없앴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우리들이 지금 큰 도를 증득하여 무여의 세계[無餘界]에 이르러 멸도(滅度)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현자들은 대승(大乘)에 머물러 있으므로 하늘에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어진 분인 아난이여,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가 무상정진도의(無上正眞道意)를 내어 세속의 일을 초월11)하고 그 마음이 청정해져서 세속의 법에 얽매이지 않고 곧 발심하여 모든 이치에서 초월하였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버리고 최후의 경지인 무여계에 들어가 멸도하였으니 아난이여, 이것이 보살승(菩薩乘)을 익히는 것입니다.
보살행을 하는 이는 해[日]를 따라 익히지 않고,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은 해를 따라 기억할 뿐이니, 이들은 밝은 지혜가 없는 이들입니다. 왜냐 하면 가령 해가 진실로 여러 하늘의 궁전에 비추지 않는다면 광명(光明)이란 없을 것이니, 해는 뜨고 지지 않는 것이라서 과거에도 어둠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밤과 낮이 없으므로 고정관념으로 집착할 필요도 없으련만 어리석고 어두
11) 고려대장경 원본에는 ‘기(起)’자로 되어 있으나 의미상 뜻이 통하지 않고 또한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원ㆍ명ㆍ궁 네 책에 모두 ‘기(起)’는 ‘초(超)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113 / 184] 쪽
운 중생들이 밤이니 낮이니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보살대사는 고요히 큰 도를 닦고 훌륭한 지식을 익히며 마음 속에 낮이다, 밤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갖가지 생각을 영원히 끊어버리고 곧 불도(佛道)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게송을 설하였다.
보시할 마음 갖지 아니하고
자신에 애착하여 제 몸이라 고집하나니
저들이 만약 이 마음 끊지 못하면
동요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진에(瞋恚)에 대해 밝게 깨달아
자연을 두고 생각 일으키지 말라.
성인의 도는 처소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동요하지 않는다네.
저들이 어머니[지혜롭지 못한 행위]로 삼는 것은
처음과 끝이 생겨남이 있으니
이 근원 뽑아 없애면
곧 목숨에 대한 집착 없어지리라.
아비[情欲에 집착함]를 생각하여 따르지 않고
정욕(情欲)의 법 즐기지 않으면
이들은 본래 공(空)하여 없는 이치 깨달아
마침내 그 뿌리 뽑혀지리라.
그들을 교화하여 이 몸 없는 것이라는 데 돌아가게 하고
지혜롭지 못한 이에게 나아갈 길을 밝혀주어
머무름 없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
[114 / 184] 쪽
지난번에 이런 설법 하였네.
닦아야 할 법은 나한법이요
범부법도 또한 그러하니
애욕(愛欲)을 다 없애기 위해
지난번에 이런 설법 하였다네.
유위(有爲)의 생각 크게 일으켜
내 이 몸 자연(自然)임을 살피고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음성(音聲)조차 없는 설법인 것을.
여래께서 아시는 바는
예로부터 생각한 것이라는
이런 뿌리 뽑아버리면
생겨나는 곳 없다 말하리라.
이와 같은 생각과 즐거움 버리면
평등하고 같아서 두 법 없으니
분별하여 이런 이치 밝게 깨달아 알면
이것을 평등교(平等敎)라 말하네.
이른바 5욕락(欲樂)
속인들은 이 다섯 가지 찬양하면서
항상하지 않다는 생각 없애버리고
환화(幻化)와 같은 것을 생각하네.
원만히 갖추어 모자람 없고
애욕의 생각 없는
---------------------------------------------------------------------------------------------------------------------------------
[115 / 184] 쪽
이러한 무리들 때문에
세존께서 이 앞서 찬탄하셨네.
모든 죄(罪)와 복(福) 분별해 알면
마치 꿈과 같은 것이네.
구경(究竟)엔 생겨난 곳 없으니
밝은 지혜로 이런 이치 깨달아야 하네.
삿된 법과 진에(瞋恚)법도 알고 나면
모두가 공적(空寂)하여 견고하지 못한 것을
삿된 소견에 속는 것임을 알면
저것을 분별력 있는 미묘한 지혜라 하리.
일체법(一切法)은 실상이 없으니
그런 법을 가까이 말게.
헛된 일에 의지하지 않아야 되나니
모두가 허공 같아 머물지 않네.
일체법 살펴 널리 깨달아 알면
그런 까닭에 바른 견해 찬탄12)하네.
이 법은 평등한 것이니
밝은 지혜로 바르고 평등함을 깨달아야 하네.
저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들
중생이라는 생각 일으키면 곧 없애게 해야 하리.
중생이란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는 것
12)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난(難)’으로 되어 있으나 의미가 통하지 않고,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원(元)ㆍ궁(宮) 두 책에 ‘난(難)’은 ‘탄(歎)’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역자도 이를 따랐다.
---------------------------------------------------------------------------------------------------------------------------------
[116 / 184] 쪽
죽는 것도 또한 볼 수 없다네.
한량없는 중생들 생멸심 일으키면
수명(壽命)에 대한 생각 버리게 하고.
갖가지 생각 없애야 하건만
수명에 집착하면 그 죄 중하네.
중생이란 생각 덜어 없애고
수명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네.
그런 까닭에 이런 말 하였나니
내가 무수한 중생을 해쳤노라고.
모든 번뇌를 버려라.
법은 호응하는 것도 호응하지 않는 것도 없다네.
도에 형상과 모양이 없음을 알면
무너뜨리거나 없앨 것도 없다네.
모든 마군의 힘 항복 받고
청정한 도법(道法)을 체득하면
모든 법은 다툼이 없고
생겨나고 소멸됨이 없는 이치 깨닫게 되리.
그때 문수사리가 이 게송 설하기를 마치자 때마침 의심을 품고 있던 오천 명의 중생들이 마음이 열리고 의심이 풀려 큰 광명을 얻었으며, 생멸이 없는 법인(法忍)을 성취하고는 제각기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문수사리에게 공양하여 올리면서 동시에 말하였다.
“바라건대 우리들로 하여금 이 법의 지혜를 이룩하여 이런 설법을 하게하며,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깊은 지혜를 분별하게 하며, 걸리고 막힘이 없어서 어지신 문수사리처럼 되게 해 주십시오.”
---------------------------------------------------------------------------------------------------------------------------------
[117 / 184] 쪽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이것은 참으로 오묘하고 뛰어난 법이로다. 모든 의혹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부처님의 거룩한 진리를 친근하게 하는구나.”
아난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문수사리는 무슨 까닭에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지금 세존에게 이와 같은 칭찬을 받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는 헤아릴 수 없는 백천 중생들을 깨우쳐주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큰 도에 들게 하였고, 모두 이 심오한 경의 이치를 깨닫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다시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물러남이 없는 법륜을 강설하여 성인의 궤도에 들게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아난아. 물러남이 없는 법을 강설하여 큰 도를 일으켰느니라. 왜냐 하면 문수사리는 훌륭한 법우(法友)로서 중생들을 인도하여 이롭게 하였느니라.”
아난이 다시 여쭈었다.
“천중천(天中天:佛)이시여, 지금 부처님 앞에 서 있는 이 모든 비구들은 모두 얻음을 지니고 법을 받드는 마음과 8등(等)ㆍ도적(道迹:須陀洹)ㆍ왕래(往來:斯陀含)ㆍ불환(不還:阿那含)ㆍ무착(無着:阿羅漢)ㆍ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큰 도의 마음을 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무리들 중에는 게으르고 약하며 뒤떨어지고 마음이 어두워서 개재(愷悌:精進)의 마음이 없으므로 인도하여 교화하기 어려우니라. 방만하고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고 오직 옷과 밥에만 마음을 두며 심오한 법을 배우지 않고 법의 이로움을 흠모하지 않으며, 유위(有爲)의 일과 혼란하고 시끄러운 인연을 일으키고 8등(等)법에 대하여 의심하고 성급하여 편안하지 못하며,
---------------------------------------------------------------------------------------------------------------------------------
[118 / 184] 쪽
모든 감관이 안정되지 못한 이들도 있으며, 방일하여 마음 속에 교만만 가득하고 제 몸과 수명ㆍ중생에 집착하거나 갖가지 더러움을 버리지 않으며, 계율을 범하고 탐하거나 질투하면서 생각으로 불법을 구하는 이들도 있느니라.
그들은 모두 악한 벗을 따르고 삿된 지혜를 좋아하며 지도무극(智度無極:智慧波羅蜜)을 받들어 갖기를 좋아하지 않고 바깥 경계에 집착하여 재물ㆍ물질ㆍ의식 따위의 즐거움만 탐하며,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잠자면서 정진을 일삼지 않고 도의 마음을 어겨 잃어버린 자들이니라.
양설(兩舌:이간질)ㆍ악구(惡口)ㆍ거짓말ㆍ기어(綺語)에만 뜻을 두어 그 마음엔 해칠 생각만 가득차 끝내는 다툼만을 일삼으며, 죄복(罪福)만 깊이 믿고 공(空)ㆍ무상(無相)ㆍ불원(不願)의 법은 믿지 않으며, 생멸이 없는 온갖 행(行)을 견제하고 일체법을 무너뜨리려는 그런 생각은 아주 없는 이런 자들을 말하는 것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잠자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현자(賢者) 아난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잠자코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최후 말법시대인 5탁악세(濁惡世)에 이르면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아서 심오한 경을 믿지 않을 것이므로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아난이 또 물었다.
“어떤 중생이 이 법을 믿고 어떤 중생이 믿지 않습니까?”
“믿을 중생들이 적을 뿐입니다. 아난이여, 비유하면 마치 밝은 지혜를 가진 이는 적고, 우매하고 캄캄한 사람은 많은 것과 같습니다. 왜냐 하면 수행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하나니, 이와 같아서 아난이여, 그들이 이 법을 들으면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는 드물고, 기뻐하지 않는 이만 많기 때문입니다.
설혹 믿는 이가 있다 해도 대중들에게 버림을 받거나 공경 받지 못하리니,
---------------------------------------------------------------------------------------------------------------------------------
[119 / 184] 쪽
군(郡)ㆍ나라[國]현(縣)ㆍ읍(邑)ㆍ마을[墟聚] 등지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왜냐 하면 숙세에 지은 죄업 때문에 번뇌의 일산[陰蓋]이 가려서 본래의 덕이 얇아졌기 때문입니다.”
아난이 또 물었다.
“지난번에 강설한 법에 대하여 믿음을 갖지 않는 이들은 생각이 어디에 있기 때문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그런 무리들은 부처님을 저버리고 큰 도를 믿지 않습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부디 연설해 주십시오. 좋아하는 이가 비록 적다 하더라도 그들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듣고 모두 기뻐서 뛸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사방을 두루 살피시더니 갑자기 혀를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다 덮으시고 그 혀끝으로 큰 광명을 뿜어내어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셨다.
그때 사부 대중들이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동방의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국토를 보니, 모든 불ㆍ세존께서 다함께 이 불퇴전(不退轉) 법륜에 대한 법을 설하고 계셨는데, 그 모임에 있는 이들이 멀리서 설하는 법까지 다 들어 가까이 있는 이와 조금도 차별이 없었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사부 대중들이 이런 변화를 보고 다 같은 목소리로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불퇴전의 법륜을 높이 숭상하시고 찬탄하시니, 만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진실로 틀림없다면 저희들이 목격한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ㆍ세존께서 강설하신 이 심오한 경이 조금의 차이도 없을 것이요 특별한 것도 없을 터이니 부처님이시여,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혀를 도로 거두어들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혀를 얻겠느냐?”
아난이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천중천이시여. 지성으로 법을 받들고 바른 이치로 인도하고
교화해서 많은 공덕을 쌓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을 지내오면서 큰 지혜를 연이라야 만이 이런 혀를 얻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하오니 성존(聖尊)이시여, 꼭 설법하여 주시옵소서.
설령 족성자(族姓子)로서 믿고 즐거워하여 배우려는 이가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이 설법을 듣고 나면 그 증명을 목격하고 곧 틀림없이 기뻐하면서 이를 일으켜 폐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부 대중들이 이러한 법을 만나지 못해서 이와 흡사한 경전에 뜻을 두지만 비구ㆍ비구니ㆍ청신사ㆍ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阿須倫:阿須羅)ㆍ건답화(健沓和:健達婆)ㆍ진다라(眞陀羅:緊那羅)ㆍ마후륵(摩睺勒:摩睺羅迦)등이 경적(經籍)을 들으면 물러나지 않고 마땅히 무상정진도최정각(無上正眞道最正覺)의 경지에 이르러, 이 국토에 법의 이치를 강설함이 지금 나와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
그때 사부 대중과 하늘ㆍ용ㆍ귀신들이 기쁘고 반가워하며 크게 기뻐하여 의심의 그물이 영원히 찢어졌고 모두 손에 꽃과 향을 받들어 부처님 위에 뿌렸다.
모든 여인과 천한 사람들도 보배와 영락(瓔珞)을 부처님 위에 뿌리고 마음과 뜻을 같이 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늘날 대성현이신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두 가지 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너희들이 말한 것과 같나니, 진실로 다름이 없느니라. 여래는 진정 두 가지 법을 말씀한 것이 아니며 모든 허물이 될 만한 것과 어리석고 몽매한 이들의 탐욕을 없앴느니라. 가령 지혜로써 불ㆍ천중천을 보면 곧 소원대로 얻을 수 있게 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지혜로써 부처님을 뵙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물으셨다.
“너는 알지 못하느냐?”
---------------------------------------------------------------------------------------------------------------------------------
[121 / 184] 쪽
“어리석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중우(衆祐:佛)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어떤 사람이 능인(能仁)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물러남이 없고 부처님 성현의 길을 성취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부처님의 도는 널리 지혜로워서 이익이 있을 뿐 손해란 없으며, 탐심과 성냄ㆍ어리석음을 없애주기 때문인데, 더구나 한 송이 꽃이라도 여래에게 바친 것이겠느냐?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만약 사리(舍利)를 가지고 공양하며 스스로 귀의하면 틀림없이 모두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니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정진하여 의심하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 바른 경(經)을 들으면 모두 물러남이 없이 마땅히 부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능인(能仁:釋迦牟尼)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틀림없이 모두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부처님의 말씀은 틀린 말이요, 두 가지 법을 말씀하신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마치 구류(拘類)나무 그늘에서 오백 대의 수레와 오백 명의 사람이 쉬게 되면 모두가 그 나무 그늘의 혜택을 입는 것과 같나니, 그러한 나무도 애초에 씨앗은 컸겠느냐, 작았겠느냐?”
“매우 작았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구류나무와 같은 것도 그 씨앗은 매우 작았으나 물을 주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라 그렇게 커졌고 가지와 잎사귀가 퍼져 사방 멀리까지 넓게 덮었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도에 독실하고 성현의 존귀한 이름을 들은 것이겠느냐? 그 또한 마땅히 이와 같아서 그 종자는 덕의 근본이 되느니라. 점점 그 행(行)을 닦아 무너지고 썩지 않게 하면 마침내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에 이르게 되리라. 왜냐 하면 이 일체의 법은 씨앗을 심는 근본이니 길
이 의지하여 머물러서는 안 되느니라. 중생들이란 본래 없는 것이기
---------------------------------------------------------------------------------------------------------------------------------
[122 / 184] 쪽
때문에 패망하지 않으며 일체법의 종자는 의지할 것이 못된다고 연설하는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은 곧 성현의 본원(本願)입니까? 모든 불ㆍ세존의 도법(道法)은 마땅히 그런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내 이름을 들으면 모두 다 물러나지 않고 최상의 경지인 정각(正覺)을 이룰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법은 다 마땅히 그런 것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의 법은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가령 평등하다면 무엇 때문에 서원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대사(菩薩大士)가 이 경 설하는 것을 듣고 가령 원을 일으키거나 혹은 원을 일으키지 않거나 간에 마땅히 증득한 이 법을 들은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없었던 일이옵니다. 이 법은 미묘하여 모든 불ㆍ세존께서 곧 큰 지혜로써 중생들을 열어 교화하셨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아난아, 모든 깨달으신 분은 크게 밝아서 중생들을 많이 인도하고 교화하여 성인의 뜻을 세워 우리 불국토에 기행천식(蚑行喘息)13)의 종류까지도 불쌍히 여겨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또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시하며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고 일체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느니라.
보살법을 수행하여 공덕을 많이 쌓고 중생을 구원하고자 심오한 경적(經籍)을 닦아서 마침내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였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13) 발이 달린 동물로서 머리를 쳐들고 천천히 걸으며, 호흡이 급하거나 빠르다는 뜻으로 곤충이나 동물을 총칭하는 말.
---------------------------------------------------------------------------------------------------------------------------------
[123 / 184] 쪽
“미치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경을 설하시면, 폐마(弊魔)들이 와서 듣고 수행하는 이를 교란하니 않겠습니까? 또한 그들이 덕을 일으키거나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는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군은 듣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문수사리의 신통 변화가 있기 때문이니라.”
그때 문수사리가 위신력(威神力)을 거두자 때마침 마왕 파순(波旬)이 멀리 허공에 있다가 불퇴전 법륜을 강설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능인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 옷자락과 털이 곤두서자 이런 말을 하였다.
“나를 이길 수 있겠구나. 그 힘의 세력으로 보아 나의 세계는 다 공(空)하게 되어 국토를 회복할 수 없겠구나.”
그리고는 근심과 슬픔으로 슬피 우니 초췌하여 매우 늙은 모습이 마치 백 세 남자처럼 쭈그러들었다.
그때 마왕 파순은 제 몸이 이와 같이 변하자 네 부류의 군대14)를 거느리고 삼천대천세계의 각각 다른 마군과 마군의 관속(官屬) 등 여러 하늘을 모아가지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병사들을 엄숙하게 정렬하고 수많은 마군의 위엄으로 보살에게 핍박을 가하니, 마치 그 위세가 부처님이 처음 성불(成佛)하셨을 때와 같았다.
늙은 몸이 지팡이를 짚고 벌벌 떨면서 얼굴은 쭈그러들고 가죽은 늘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네 부류의 군대를 배치하고 허공에 머무른 채 다함께 멀리서 불퇴전 법륜을 설하시는 능인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으로 결정하였다.
그러자 마왕은 스스로 자기의 소유(所有)가 아님을 알고 혼자 단신으로 시종도 없이 곧바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세존께 아뢰었다.
“이제 제 한 몸은 시종도 전혀 없습니다. 또한 파리하게 여위었고 매우 늙
14)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다닐 때 따라다니는 네 가지 병기, 즉 상병(象兵)ㆍ마병(馬兵)ㆍ거병(車兵)ㆍ보병(步兵)을 말한다.
---------------------------------------------------------------------------------------------------------------------------------
[124 / 184] 쪽
어서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힘이 없어서 이 몸조차도 지탱할 수 없으며, 제 힘으론 이길 수도 없고, 저의 세계는 모두 공(空)하여 국토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큰 자비로 중생들을 모두 슬피 여기시니 또한 저를 어여삐 여겨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의 종류는 너무도 많아 불가사의하니라. 가령 모든 부처님이 날마다 성불하여 항하강 모래와 같고 또한 한량없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억백 나술(那術:那由陀) 중생들에게 발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여도 중생의 종류는 다하지 않으리라.”
마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종류가 비록 많을지라도 지금 저는 혼자입니다. 부릴 사람도 없고 나를 부축해 줄 만한 사람도 없으니, 가령 길을 가다가 갑자기 땅에 걸려 넘어진다 해도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디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셔서 저를 즐겁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불쌍히 여기셔서 속히 어루만져 길러주시어 권속들을 일으키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말씀하셨다.
“우선 너는 안심하여라. 이 법을 듣지 않고 믿음을 여읜 이는 모두가 너의 친구이니라.”
마왕은 곧 기뻤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생각이 떠오르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 마땅히 사람들을 교화하여 비록 이 법문을 듣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믿고 좋아하지 않게 할 것이며 마음 속에 의혹을 가지게 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의혹을 가지면 틀림없이 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리라.”
그때 마왕 파순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디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셔서 큰 자비를 베푸시어 다시 한 번 위로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뛰면서 걱정 근심이 없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능인(能仁)의 이름만 들어도 다 물러나지 않고 반드시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를 성취한다’ 하셨
---------------------------------------------------------------------------------------------------------------------------------
[125 / 184] 쪽
으니 부디 성현께서는 묵묵히 계시고 이런 법을 널리 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중생들은 법을 들으면 더더욱 정진하여 큰 도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안심하고 두려운 마음 갖지 마라. 마땅히 중생들로 하여금 도에 대한 생각을 내지 않게 하여 중생의 종류로 남아 있어 사람마다 각기 편안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리라. 물질[色]ㆍ아프고 가려운 느낌[痛:受]ㆍ고정관념[想]ㆍ나고 죽는 행업[行]ㆍ인식작용[識]에서도 동요하지 않게 하리라. 부처님은 마땅히 중생들을 개화하고 인도하여 삿된 소견을 여의지 않게 하고 바른 견해를 세우지 않게 하리라.
예순두 가지 모든 의혹을 여의지 않게 할 것이요, 한 중생도 동요하지 않게 할 것이며, 과거와 미래ㆍ현재를 기억하지 않게 하며 중생을 해치는 일과 살생ㆍ도둑질ㆍ음욕ㆍ질투ㆍ거짓말ㆍ이간질하는 말ㆍ기어(綺語)와 질투ㆍ성냄ㆍ의심을 여의지 않게 하며, 또한 사람들을 권유하여 바른 도에 들게 하지도 않으리라.
사람들을 교화하여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一心:禪定)ㆍ지혜를 닦지 않게 할 것이요, 또한 사람들을 가르쳐서 네 가지 은혜를 받들거나 사람들에게 보시하거나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등의 이익이 되는 일체의 일과 중생을 구제하고 법도에 맞는 행위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며, 중생의 종류를 생각하지 않거나, 부모ㆍ형제ㆍ처자와 아들 딸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친구를 버리게 하거나 밤낮으로 날마다 달마다 또는 한 달 반 달이라도 모든 동요하는 생각
이 없는 데에 의지하지 않게 할 터이니 파순아, 너는 안심하라.
내 마땅히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波羅蜜)의 생각과 큰 도에 대한 의지와 힘[力]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근(根)ㆍ역(力)ㆍ각의(覺意)ㆍ여덟 가지 바른 행(行)ㆍ부처님의 법ㆍ성현 대중과 일체지(一切智)ㆍ도의(道義)에 대한 생각을 없애 중생을 교화하거나 일체의 법에 대하여 조금도 동요하거나 변함이 없게 하리라.”
그러자 마왕은 기쁨을 스스로 견디지 못했고 곧 그곳에서 안색(顔色)이
---------------------------------------------------------------------------------------------------------------------------------
[126 / 184] 쪽
아름다워지고 얼굴과 눈이 빛났으며 부처님 위에 꽃을 뿌리고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는 곧 게송을 설하였다.
평등각(平等覺)이신 세존이시여,
제 마음 본래대로 즐겁습니다.
정각(正覺)의 말씀 달라짐이 없으시니
제가 하려는 일 마음대로 될 것입니다.
그때 마왕 파순이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곧 천궁(天宮)으로 돌아가 모든 권속들과 함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기며 다시는 근심 걱정을 하지 않고 큰 뜻을 내었다.
세존께서 이 「항마품(降魔品)」을 설하실 때에 삼천대천찰토(三千大千刹土)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마왕의 위덕(威德)으로 이 땅이 크게 진동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항마품」을 설할 때에 육만 사천 사람이 생멸이 없는 법인[不起法忍]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의심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이것을 보고 모두 의심을 하여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들은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어느 곳으로 돌아가야 할까?’하며 모두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빨리 이 모임에 온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光明)을 나타내시어 그 의심의 그물을 풀어주십시오. 여래께서 마왕을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파순아, 안심하라. 내가 중생들을 교화하여 도에 머물지 않게 할 것이요. 또한 중생 세계에 동요가 없게 하여 도에 대한 생각을
---------------------------------------------------------------------------------------------------------------------------------
[127 / 184] 쪽
가지지 않게 할 것이요, 지혜에 의지하지 않게 할 것이며, 삿된 소견을 버리지 않게 하고 바른 견해에 머물지 않게 하리라. 예순두 가지 의혹에서 옮겨가지 않게 하고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생각을 없게 하리라.
살생ㆍ도둑질ㆍ탐욕ㆍ음욕ㆍ거짓말ㆍ기어(綺語)ㆍ이간질하는 말ㆍ악한 말과 질투ㆍ성냄ㆍ의심을 여의지 않게 할 것이요, 중생들로 하여금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를 닦지 않게 할 것이며, 부모ㆍ형제ㆍ처자를 따르지 않게 하고 밤낮 없이 혹은 한 달이나 반 달이라도 이 중생의 생각에 대하여 조금의 동요도 없게 하리라.
중생들로 하여금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과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근(根)ㆍ역(力)ㆍ각의(覺意)ㆍ불법(佛法)ㆍ성현 대중과 일체지(一切智)를 받들지 않게 하여 조금도 변화해 옮겨가지 않게 하리니, 파순아, 너는 안심하라. 내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치에 동요하지 않게 할 것이요, 행(行)에 머물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그 원인을 말씀해 주셔서 속히 분별할 수 있게 하여 이 모임에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의혹이 남지 않게 하시고 마음이 열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후세에 변두리의 여러 나라에서도 거룩한 광명을 만나고 바른 법을 받아 굳게 지켜 읽고 외워서 다시는 의심하여 망설이지 말게 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성인의 도는 머무는 곳 없고
지혜의 자취도 일정한 처소 없나니
이러한 큰 이치 강설할 때에
중생들이 이해하여 행동에 옮겼네.
길[塗:菩提道]과 일체 중생은
두 가지 법 아니요 머무는 곳도 없네.
부처님께서 이런 이치 설하시니
이제 머무는 곳 없음을 깨달았네.
---------------------------------------------------------------------------------------------------------------------------------
[128 / 184] 쪽
중생은 본래 움직이는 것 아니요
사람의 종류 또한 마찬가지인 것을
일체법은 형상이 없으니
궁극에 이르러도 얻을 수 없다네.
중생의 종류 모두 공한 것
사람의 세계도 불가사의하네.
저들은 모두 생각이 없어
일체혜(一切慧:一切智) 밝게 아네.
중생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임시로 이름붙여 신명(身命)이라 하나니
4대(大:地ㆍ水ㆍ火ㆍ風)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
이것은 적멸하고 공한 것이네.
5음(陰:色ㆍ受ㆍ想ㆍ行ㆍ識)이 공한 줄 알면
자연 동요하지 않고
멸도(滅度)도 얻을 수 없으니
모두가 변하지 않는 것일세.
모두 음(陰) 멈추어 진동함 없고
나라는 것조차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라.
형체 여의면 조용하고 고요하여 공하니
끝까지 집착하지 않아야 하리라.
몸과 5음은 동일한 것
감관과 그 작용 또한 마찬가지라네.
행위 없음을 행하면
모든 음 허공과 같네.
---------------------------------------------------------------------------------------------------------------------------------
[129 / 184] 쪽
이른바 적정(寂定)의 세계는
일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나니
이러한 모든 음(陰)ㆍ개(蓋)ㆍ입(入)은
기울거나 변하지 않으리라.
내 몸이다 나다라고 하는 것
이 법은 동요함이 없으니
오히려 집착할 것도 없는데 어찌 동요하리.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하셨네.
중생들은 속임에 침해받지 않나니
그 근본 헤아려보아 얻을 수 없는 것을
체득하여 무심(無心)해지면
자연 그대로여서 얻을 수 없네.
모든 소견을 말한다면
예순두 가지 견해 있네.
아무것도 없어 자연 그대로임이 이와 같아서
마치 물 속의 달과 같다네.
저 예순두 가지 소견
비유하면 마치 그림자와 같네.
형상 여의어 나 없는 이치 깨달으면
자연히 동요하지 않으리.
과거ㆍ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도 이와 같으니
모든 모양은 머물러 있는 곳 없어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와 같네.
이 법은 공(空)한 것이라 생각 없으니
중생을 헤아려보아도 얻을 수 없고
모든 중생도 머무는 곳 없어
동요(動搖)하지 않으리라.
어떤 중생이 살생을 좋아하면
그로 인해 나고 죽는 크고 넓은 들판에 들어가고
멸도(滅度)에 뜻을 두면
그런 까닭에 동요하지 않으리라.
비록 중생이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것도 존재하는 것 아니니
날마다 헤아려보아도 얻을 수 없어
동요하지 않는다 말하네.
도에 과거가 있다고 말하지만
일찍이 생겨난 적이 없으니
부처님께선 그 이치 깨달아 알므로
중생은 동요하지 않는다 말하셨네.
가령 살생을 한 이라 하더라도
법시(法施)는 무사의(無思議:不思議)하여
마침내 도혜(道慧)를 성취하리니
그는 동요하지 않으리라.
이른바 사음(邪婬) 범한 이라도
애욕(愛欲) 얻을 수 없네.
그런 까닭에 분별하여 설하였나니
저들은 동요하지 않으리라.
---------------------------------------------------------------------------------------------------------------------------------
[131 / 184] 쪽
저 망언(妄言)의 법을
일으키는 자를 해탈케 하기 위해
정진하여 홀로 높은 이 되었으니
저들은 동요하지 않으리라.
이간하는 말과 악한 말과
거짓말도 이와 같나니
일체의 가르침 관찰해 보면
환상과 같아 형체가 없네.
모든 것 머무는 곳 없어
의지할 것 되지 못하리라.
모든 음(陰) 메아리 같아
존재하는 실체 없는 것임을 기억하라.
이른바 보시할 마음이 없어
자신에 집착하여 몸이라 생각하나
성인의 도는 머무는 곳 없으니
저들은 동요하지 않으리라.
진에(瞋恚)에 대하여 분별해 알되
자연임을 알아 생각 일으키지 말라.
저것을 만약 끊지 못하면
동요하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온갖 삿된 견해 밝게 깨달아
바른 법 받들어 닦으면
모든 말 초월할 수 있으니
저들은 동요하지 않으리라.
---------------------------------------------------------------------------------------------------------------------------------
[132 / 184] 쪽
지혜를 권장하고 도와서
일체를 진실로 청정케 하고
물질과 재물에 집착하는 이 불쌍히 여겨
갖가지 죄악 덜어 없애네.
삿된 견해로 지키는 계율을
버려 성인의 도에서 멀어졌으니
지혜 일으키지 않고
바르고 참다움 구하지 않네.
외도[異學]들 삿된 마음 품고
모든 인욕(忍辱) 외면하면서
평등한 도 구하는 것과 같다 하고
무위(無爲)법을 의지하지도 않네.
세 가지 일로 정진하라고
외도들은 분명 설하네.
그들은 성인의 지혜에 귀의하지 않는 것이
밝은 지혜의 행위라 말하네.
흔히 삼매 닦으며
모든 생각에 의존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찬탄하지 않으시고
또한 저들에게 권유하여 돕지 않으시네.
애욕의 번뇌
명철(明哲)하다 말하지 않으나
갖가지 생각 일으키지 않는
부처님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네.
---------------------------------------------------------------------------------------------------------------------------------
[133 / 184] 쪽
보살의 행(行)은 용맹하여
중생들을 거두어들이지도 않나니.
곧 이 이치 설법하시되
비록 받아들인다 해도 동요함이 없네.
중생의 생각 없애 고요히 하고
보리심(菩提心)을 내나니
도의(道意:菩提)는 일으키는 것 없으므로
저들은 동요하지 않으리라.
부모와 형제라는 생각과
자매와 아들 딸을 생각하지만
이 모든 것 환상과 같나니
저들은 여기에도 동요하지 않으리라.
일체의 저 모든 생각
헤아려보면 실체 없나니
중생법도 모두 공(空)하므로
저들은 동요하지 않으리라.
만일 낮과 밤의 생각이나
한 달이나 반 달이라는 생각
이런 모든 생각은
비유하면 아지랑이나 물 속의 달과 같다네.
보시하고 계율 지키며
인욕과 정진의 생각
이러한 모든 생각들
이 모든 생각에 동요하지 않으리라.
---------------------------------------------------------------------------------------------------------------------------------
[134 / 184] 쪽
정의(定意:선정)로 닦는 지혜는
보살의 도력(道力)이니
두려움 없는 자신감 닦아
모든 허망한 생각 제거해 없애라.
각의(覺意)와 사도(思道)는
망념 버리고 성현의 법 사모하네.
밝은 지혜는 일찍이 동요하지 않고
모든 생각과 의혹 일으키지 않네.
부처님 법 구하는 것과
이와 같은 온갖 성현의 생각은
약간의 어떤 생각도 없는 것인데
언행(言行)으로 생긴 동요이니라.
부처님의 지혜는 걸림 없으니
도의 생각으로 의지하는 것은
곧 부처님의 도와
불가사의 한 불 성현을 멀리하는 것이네.
부처님께서「화마품(化魔品)」을 분명하게 설하실 때에 십억 중생들이 의심의 그물을 무너뜨려 없애고 크게 밝은 지혜 성취했으며 생멸 없는 법인을 체득하였다. 법인을 증득한 뒤에 일체 중생은 같은 마음으로 이런 게송을 설하였다.
큰 도 이루신 존성(尊聖)이시여,
부처님의 법은 생각으론 알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대사이시여,
도에 힘쓰시고 모든 의심 끊으셨네.
---------------------------------------------------------------------------------------------------------------------------------
[135 / 184] 쪽
일체를 밝게 비추고
부처님의 밝은 도에 머물게 하시니
그 광명 시방을 두루 비추어
억천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갖가지 법의 근원 널리 보이시어
물질에 집착하지 않게 하시니
세존의 은혜를 입어
저희들의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나이다.
그때 백억 중생들이 각기 입었던 옷을 벗어 부처님의 위를 덮어 큰 성인에게 공양하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이 법문을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밝은 광명을 원만히 갖추고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게 하여 주소서.”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마왕을 인도하고 교화하는 경(經)을 듣고 받아 지녀 외우거나 독송하면 어떤 복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복은 매우 크고 넓으리라.”
아난이 다시 여쭈었다.
“어떤 것을 크고 넓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아침에 백 부처님을 공양하고 아침 해가 뜰 때와 한밤중이나 한낮에 각각 백 불ㆍ세존을 공양하며, 하루 낮 하룻밤 가운데 도합 육백 부처님을 공양하며 모두 편안하게 하고 올바른 것을 따르되 이와 같이 하면서 천 년을 채운다면 그 복은 많겠느냐, 적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그 복은 매우 많고도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어디에도 비
---------------------------------------------------------------------------------------------------------------------------------
[136 / 184] 쪽
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마왕에게 설법하는 경을 분별하여 듣고 믿고 받아서 의심하지 않으면 그 덕은 저것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니라.”
---------------------------------------------------------------------------------------------------------------------------------
[137 / 184] 쪽
불설아유월치차경 하권
서진 월지 축법호 한역
김두재 번역
13. 여래품(如來品)
그때 세 보살이 각각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런 변화를 보고 또 부처님께서 연설하시는 법문을 듣고 일찍이 없었던 일을 증득하게 되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세 보살은 어느 곳에서 왔습니까?”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동쪽으로 항하강 모래알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거기에 한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이 신초수미산(身超須彌山)인데 그 본토(本土)에 머물고 있다가 이 경을 설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여기에 왔느니라.”
그때 세 보살이 부처님 앞에 이르러 모두 향과 꽃을 세존께 공양하고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모두 이 법을 믿고 즐거워하며 조금의 의혹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가슴 속이 시원하고 상쾌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은혜가 널리 이 세계를 덮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첫째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진실로 거짓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이 경을 듣고 전혀 의심이 없었습니다.”
둘째 보살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이 법에 대하여 또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138 / 184] 쪽
셋째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드린 말씀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른바 부처란, ‘제가 곧 부처’라고 말하더라도 이 경을 밝게 깨달아 안다면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 이 모임에 와 있던 무수한 백천 대중들이 모두 합장하고 자리에 앉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 계시는데 어째서 이 무리들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밖에 다른 중생들도 각각 잠자코 있으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 계신 부처님께서 스스로 분별해 주실 것이다.’
아난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들 보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첫째 보살의 이름은 득여래주(得如來住)이고, 둘째 보살의 이름은 지득세존음(志得世尊音)이며, 셋째 보살의 이름은 지체득불성(志逮得佛聲)이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저들의 말과 전혀 다름이 없으므로 그들은 여기에 온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여기 모인 무수한 백천 대중들이 놀라서 소란을 피우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각각 일심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한 채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중생들의 공덕은 점점 증가(增加)하고 있으니, 비유하면 마치 단정하고 매우 특이하며 얼굴 모양이 수려한 어떤 사내가 깨끗한 물로 목욕하고 전단향(栴檀香)을 그 몸에 쐬여 향기가 배게 하고 좋은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의 몸 색깔이 더더욱 희고 빛나는 것처럼, 이 무리의 공덕에 있어서도 큰 도를 믿고 즐거워하며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니, 그 복덕은 미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을 설하셨다.
---------------------------------------------------------------------------------------------------------------------------------
[139 / 184] 쪽
여래께서 과거를 알거나
미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법이 본래 없음을 본다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 말하네.
현재의 일 다 깨닫고
미래도 모두 깨달아 알며
세 가지 행을 지어 건립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여여(如如)하여 생각이 없어지리라.
비유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네.
어디서부터 온 것도 아니요 한결같이 평등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의지함이 없는 성인의 도 구하셨네.
깨달은 이도 마땅히 그러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모든 법이 본래 머무는 바와
도의 소리는 모두가 적연한 선정이라네.
소리가 돌아갈 곳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오로지 과거의 계율 따르고
미래에도 또한 그렇게 하며
현재에도 본래 없음을 증득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만일 용맹스럽게 인욕 행하여
보살행 하는 사람이 되며
저 배움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면
이 사람은 최상의 경지에 이르리라.
본래 보살이 되었을 때부터
부지런한 힘 얻음이 이와 같고
굳은 의지로 정진하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모든 법이 평등한 것처럼
설법도 특별히 다르지 않네.
집착하지 않는 마음 있으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평등하여 집착 없으며
항상 자연 그대로 평등하고 바르되
평등하다는 생각조차 없으면
생각도 없고 기억도 일으키지도 않으리라.
본래 삼매를 성취하여
이 음성을 원만히 갖춤도 없고
선정[定意]을 따르고 닦으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모든 법은 본래 다 청정하여
근본도 없고 처소도 없네.
모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연 또한 형상이 없네.
---------------------------------------------------------------------------------------------------------------------------------
[141 / 184] 쪽
지혜의 모양 밝게 깨달으면
법 또한 그렇게 공한 것임을 밝게 하리라.
진실로 의심하는 바 없으면
지혜도무극(智慧度無極:智慧波羅蜜)이라 하네.
만일 성인의 저 언덕에 이르면
근본을 체득함이 무사의(無思議)하나니
그 지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한량없는 적멸의 경지에 이르리라.
지혜의 상쾌함을 얻으면
저 언덕에 이르름도 또한 그러하며
이 지혜는 머무는 곳 없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불도(佛道)는 얻을 수 없는 것
마음 속에 생각도 또한 그러하며
일체법은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무위법(無爲法) 성취하여
가령 많은 지혜 체득하면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으며
도를 찬탄함도 한정할 수 없으리라.
세존의 위엄과 광명
그 궤적(軌跡) 닦을 수 없나니
저 도의 청아한 진리
모두가 지혜 따라 일어나리.
---------------------------------------------------------------------------------------------------------------------------------
[142 / 184] 쪽
도가 높으면 무루와 같나니
각각 이와 같이 분별해 알면
그 도는 곧 정진(正眞)이요
일체 중생의 뜻도 마땅히 자연 그대로이리라.
성인의 교화 밝게 깨달아 알고
모든 법 평등함을 알아
장차 중생들에게 본래 없다는 이치 깨닫게 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성인과 평등법은 동일한 것
밝은 법 따라 머물러야 하리.
도와 몸은 모두 본래 없는 것이므로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지금 내가 법을 강설하지만
음성도 이와 같이 평등한 것이니
가령 여기에 머물면
너는 곧 큰 도를 구한다 하리.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이런 이치를 설법하였나니
이 일도 설법한 바와 같아
곧 지식 있는 이가 행해야 할 것이니라.
불퇴전(不退轉)의 법 밝게 깨달으면
곧 용맹한 보살이라네.
열심히 닦고 정진하는 까닭에
그 이치를 찬양하였네.
---------------------------------------------------------------------------------------------------------------------------------
[143 / 184] 쪽
아난아, 이런 인연으로
보살의 의지 연설하였나니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용맹한 보살의 지혜 설법하셨네.
[그때 아난이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인연 따르는
그런 법은 어떤 유(類)이며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는
보살에게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수행하라 말씀하셨나이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억백 겁에 도를 강설하여서
그로 인해 대도(大道)를 성취하였으니
불도(佛道)란 생각으론 어려운 것
혜명(慧明)의 자취 성취하였네.
모두 스스로 몸을 위해 구하나니
영원히 두려움 없음을 보았네.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하나니
일찍이 나고 죽음 두려워 않네.
나고 죽음에 머물지 않으니
이로써 중생을 제도하네.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하나니
어찌 나고 죽음 두려워한다 말하리.
---------------------------------------------------------------------------------------------------------------------------------
[144 / 184] 쪽
어찌 나고 죽음에 머무르면서
어떠한 인연으로 중생을 제도하리.
세존은 최상의 깨달음 성취한 분으로
이익의 법을 말씀하지 않으시네.
법은 무너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견고하지도 않고 흩어지는 일도 없네.
중생들을 수고롭고 괴로운 걱정에서 건져주시니
이것이 곧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네.
이 법은 나고 죽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니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하네.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하나니
일찍이 모든 법을 두려워 않으시네.
영원히 모든 이치와
일체 부처님의 경을 두려워 않고
중생들로 하여금 무수한 법 듣게 하여
밑바닥도 없고 변두리도 없게 하네.
중생법이 모두 공(空)한 것은
모든 불도(佛道)가 자연이기 때문이니
여러 가지 법의 근본 보지 않고
곧 이 법만을 의지하고 따라야 하리.
모든 법에 대하여 오로지 정진하며
법은 공하여 자연 그대로라는 이치 깨달으면
두렵지도 않고 두려워할 것도 없으며
도혜(道慧)의 공법(空法) 깨달아 알리라.
---------------------------------------------------------------------------------------------------------------------------------
[145 / 184] 쪽
모든 법은 속임이 침노한 것인 줄 알고
분별하여 의지하는 바 없으며
정진의 차례를 연설하면
이는 곧 모든 법의 근본을 아는 것이리라.
일체의 어려운 일 힘써 넘기고
갖가지 악한 세계 다 버리니
일찍이 두렵고 무서움 없어서
중생의 악한 세계 면하게 됐네.
억 중생을 제도하여
나고 죽는 큰 두려움 초월케 하고
언제나 나고 죽음에 동요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중생을 제도함일세.
생사의 바다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러
최상의 높은 경지 무위(無爲)에 머물게 하여
명성 얻은 사람을
세존이라 말하네.
중생 위해 분별하여 설법하지만
그 설법 오히려 허공과 같고
또한 두렵거나 어려움조차 없으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일체법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여러 곳에서 열어 인도하네.
도(道:菩提道)는 평등하여 다름이 없고
성현도 또한 집착할 것 없다네.
---------------------------------------------------------------------------------------------------------------------------------
[146 / 184] 쪽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모두 부처님의 도 성취하리니
분별해 설법한 것처럼 수행하면
두렵고 어려운 것 없으리라.
닫히고 막힌 중생 열어 교화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 제도하고
모든 두려움에서 초월하게 하나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모든 중생이라는 생각 끊어버리고
오로지 도의 생각만 닦아
중생의 뜻 뽑아버리면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고 말하네.
중생이 고정관념 여의고
보살에 대해서도 사모함이 없으면
그런 까닭에 명호 얻으니
이를 곧 세존이라 말하네.
적멸과 모든 법은 평등한 것
이러한 이치를 밝게 깨닫고
미래에 뜻 세우면
이를 곧 세존이라 말하네.
최상의 미묘한 도 구하지 않고
저 명자(名字) 또한 구하지 않으며
무위라 일컬음까지 해탈하고서
중생들 위해 경(經)의 이치 강설하네.
---------------------------------------------------------------------------------------------------------------------------------
[147 / 184] 쪽
갖가지 교만 버리라 말하고
소원도 세우지 않으며
중생들은 존귀한 명칭 구하지만
불도(佛道)까지 사모하지 않아야 하네.
모든 음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
말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리라.
보살은 방일하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대성(大聖)께서 설법하실 적에
이와 같이 상법(像法)에 비유하셨으며
보살의 이름도 임시로 붙인 것이라 하시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그러므로 분별을 일으키면
미혹하지 않을 이 없으리니
지성으로 부처님 도 구하여
헤아려 생각 안하면 번뇌[有漏]가 없어지리라.
이 인연법과 그 밖의 일들
세존께서 음성으로 찬탄하여 말씀하시니
아난아, 그 원인 따를 줄 알면
그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리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이런 설법 하였을 따름이니
인연한 바 밝게 깨달아 알면
부처님께서 이름하여 세존이라 하시네.
---------------------------------------------------------------------------------------------------------------------------------
[148 / 184] 쪽
온갖 진애(塵埃) 깨달아 알면
일찍이 미혹되지 않으며,
평등함을 깨달아 욕심 제거하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무슨 까닭에 세존이라 하는가
이 이름을 나타내 보였네.
어찌 말만을 좇아 부처님께
도법(道法)을 강설한다 아뢰리.
부처님 법은 존재하는 실체 없으니
공하여 적멸함을 깨달아 아네.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 이름하네.
이 몸은 다 공한 것임을 깨달아 알고
이 몸이 소속된 곳 없음을 알면
저것은 견고한 게 아니요,
이 몸뚱이 오래도록 부지할 수 없네.
어리석고 둔한 이는 혜명(慧明) 여의고
긴요치 않은 것을 항상 긴요하다 말하네.
이 모두가 본래 없음을 깨달아 알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밝은 지혜로 모든 것은 없는 것임을 분별하면
자연 형체가 없는 것임을 알리라.
큰 성현의 지혜 체득하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
[149 / 184] 쪽
과거에 일으켰던 생각
분별해 알면 생각 없음을 깨달으리니
갖가지 생각이 처소 없음을 깨달으면
생각 때문에 미혹되지 않으리라.
과거의 색음[色] 깨달아 알면
남도 없고 머무르는 곳도 없거늘
어리석은 이는 생각으로 미혹되어
색음을 헤아려 성취할 게 없다고 하네.
물질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깨달으면
그 근원(根源) 얻을 수 없나니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아프고 가려운 느낌도 없어지리라.
생각은 환상 같은 것임을 깨달아 알면
어떤 물질이든 형상 없다네.
이미 이런 지혜 분별하면
일체법 또한 이와 같다네.
총지법(總持法) 행할 바 없고
온갖 몸 과거도 없네.
공하여 다스릴 게 없는 까닭에
이 몸도 얻을 수 없다네.
사람의 몸 견고하거나 요긴치 않아
마치 파초나무와 같네.
이런 이치 다 분별해 알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한.
저 인식작용은 자연 그대로의 공한 것이요
몸도 헤아려보면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밖에서도 얻을 수 없으니
어떠한 등류(等類)의 인식작용 일어나리.
인식작용 존재하는 실체가 아님을 알면
모든 법 또한 그러하리라.
처소도 형상도 없으니
궁극에 이르러도 얻을 수 없으리라.
인식작용 이러함을 알면
근본은 다 적멸과 같음을 알리니
만약에 모든 생각 밝게 깨달으면
곧 볼 것도 없으리라.
밝게 깨달아 이런 견해 일으키지 않아야 하니
모든 중생도 그렇게 해야 하리.
온갖 중생의 무리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까닭에 인식할 것도 없느니라.
자연 그대로여서 열어 보일 것도 없고
모든 법 또한 작용 없으며
일체법에 느낌을 받지 않나니
중생법도 또한 다 그러하니라.
일체 법인(法忍)의 과거도
깨닫고 보면 일찍이 생겨난 적 없네.
약간의 방일함도 없었으니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
[151 / 184] 쪽
부처님의 온갖 경(經) 깨달아 알면
그 경은 곧 바른 진리인 것을
일체법은 처소가 없나니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4제(諦)법도 그러하여 공과 같으니
깨달은 바 경(經)도 본래 없는 것
부처님의 도도 다름이 없으니
그 근본 얻을 수 없네.
애초에 발심한 이래로
오직 뜻한 건 큰 도(道)뿐이나
그 뜻도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면
모든 법도 얻을 게 없네.
무슨 인연으로 그런 마음 내어
성인의 도 사모하고 구하였던가.
그 마음과 도는 같은 것
깨달아 알면 형체 없으리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이 경을 연설했을 뿐이니
성인의 법 강설한 까닭에
나는 불ㆍ도사(導師)가 되었느니라.
이 법상(法像)과 비슷한 까닭에
부처라는 이름 얻었으니.
가령 그 가르침대로 따라 행하면
곧 불도(佛道)를 구하게 되리라.
---------------------------------------------------------------------------------------------------------------------------------
[152 / 184] 쪽
바른 도에 가까워질 수 있으면
이 법을 안다고 하리라.
다시는 두 마음 품지 않아야 하니
모든 법도 이와 같다네.
부처님의 경적(經籍) 의심치 않으면
세간에서 최상의 경지 이루리라.
이렇게 강설한 법 깨닫게 하기 위해
널리 이와 같이 법을 설하셨네.
부처님께서 이 여래(如來)ㆍ세존(世尊)ㆍ부처님의 뜻을 분별하여 설하실 때에 무앙수(無央數) 백천 중생들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저희들은 의심을 제거하여 다시는 번뇌의 그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보살의 이름을 여래ㆍ세존ㆍ부처님이라고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법을 깨달아 알았으므로 스스로 마음 속에 모든 법은 공(空)한 것이건만 사람들이 의혹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 알았습니다.
부모와 처자가 서로 연모하고 애처로워 하는 것 같은 은혜로운 마음으로 여래께서 심오하고 절묘한 이치를 설하여 주셨으므로 그 마음이 견고하게 머물러 다시는 경솔하게 발동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법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흔들리지도 않고 흔들 수도 없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변천하여 움직임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이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무수히 많은 백천 대중들이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리고 부처님의 주변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14. 개화품(開化品)
---------------------------------------------------------------------------------------------------------------------------------
[153 / 184] 쪽
그때 어떤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제근상열(諸根常悅)이었다. 그는 이런 게송을 설하였다.
중생들이 과보의 생각 일으킴으로
다른 생각에서 구제 받았네.
진실한 도와 평등하게 해주셨기에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언제나 덕의 실상 강설하시고
과보도 평등함을 연설하시어
평등한 정각(正覺) 증득케 하시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무수히 많은 중생 과보 탐하고
중생의 실상에 의지하여 행하지만
부처님은 이런 것에서 해탈하셨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설법에 특별히 다름 없고
머무르는 곳도 바르고 골라
모든 법이 평등함을 깨달았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중생들은 흔히 덕의 과보 사모하지만
힘써 그들로 하여금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갖가지 뒤바뀜에서 해탈케 하셨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온갖 덕을 원만히 갖추시고
---------------------------------------------------------------------------------------------------------------------------------
[154 / 184] 쪽
중생들로 하여금 도에 굳게 머물게 하시어
일체의 덕 성취하게 하셨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그때 제근상열보살이 게송을 설하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거룩한 존안(尊顔)을 우러러 보면서 싫어함이 없었으며, 마음이 활짝 열려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때 연화수장(蓮花首藏)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위에 연꽃을 뿌리고는 찬탄하며 말하였다.
중생들을 모두 망상 품이나
이들을 모든 집착해서 해탈시키고
영원히 두려움에서 떠나게 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能仁)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처소 적멸하게 없애시고
법 설하여 경계도 없애주시며
영웅으로서 모든 집착 초월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법은 공(空)한 것임을 알려주시고
자연 그대로 견고하지 못함도 깨우쳐 주시며
평등법으로 어려움 초월케 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근주(根株) 끊어 없애고
번뇌에 집착한 중생을
제도하여 두려움 없애주셨으므로
---------------------------------------------------------------------------------------------------------------------------------
[155 / 184] 쪽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무서움과 나약함도 없애주셨고
큰 사자후(師子吼)로써
모든 경계에서 해탈시켜 주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갖가지 근심 걱정 없애주시고
슬픔과 번뇌 이미 다 끊게 하셨네.
흉악함과 해로움 끊어 멀리 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연화수장보살대사가 부처님을 찬탄하여 마치고 나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어떤 중생이 이 법을 수행하면 저는 마땅히 예배를 하겠습니다. 최후의 세간에 이 심오한 경을 들으면 지혜가 밝아지고 모든 일을 통달하여 일찍이 두려움과 나약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또 어떤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욕적(離欲迹)이었다. 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심오한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는 이가 있으면 그를 곧 밝은 지혜를 가진 이라 말할 것이니 저는 마땅히 꽃과 향으로써 밤낮으로 그를 공양할 것입니다.”
광심(廣心)이라는 또 다른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이 경의 법을 설하여 부처님의 도를 일으키고 이를 의심하지 않는 이는 그 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공양의 이익을 이룩하고 그 마음이 견고(堅固)하며, 이 경을 믿는 이가 있으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얻을 수 있지만, 만약 믿지 않는 이가 있으면 마군의 법에 견고하게 되어 곧 마군의 행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또 연화목(蓮花目)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고 게송으로 찬
---------------------------------------------------------------------------------------------------------------------------------
[156 / 184] 쪽
탄하여 말하였다.
만약 이 경을 믿는 이가 있으면
그는 세간에서 눈 밝은 이 되어
의심하는 마음 없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가야 할 길을 지시할 것입니다.
또 심신열(心信悅)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말하였다.
이 경의 법을 들은 이가
기뻐하며 믿으면 최상의 사람 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곧 세간의 신명(神明)이 될 것입니다.
희신령(喜神靈)아리는 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경을 들은 이가
믿음 가져 의심하지 않으면
세간에서 위신력(威神力) 갖추어
중생들 중에 가장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보살이 있으니 그 이름은 상척(常慼)이었다. 부처님 앞에 나아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약 이 경을 의심하면
마땅히 비애(悲哀)를 일으켜
허망한 법에 뜻을 두어
자주 생사를 윤회할 것입니다.
---------------------------------------------------------------------------------------------------------------------------------
[157 / 184] 쪽
또 보의(寶衣)라는 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수없이 많은 의복(衣服)
청정하고 가장 미묘합니다.
빨리 교화하여 존장(尊長)이 되어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또 선식(禪食)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어떤 사람이 심오한 경 믿으면
마땅히 그를 위해 좋은 음식 베풀겠나이다.
온갖 맛 다 갖추어
오로지 큰 성인의 정진 수행을 돕겠나이다.
또 견인주성(見人住聖)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이 경을 의심하는 이 있으면
마땅히 그를 위해 비애(悲哀) 일으켜
소리 높여 울면서 눈물 흘리리니
심오한 경의 법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지옥에서 오거나
또는 악한 세계에 들어가는 이는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이 상법(像法)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악한 친구에게 포섭되거나
심오하고 미묘한 이치 알지 못하여
의심 그물에 얽매이게 되면
---------------------------------------------------------------------------------------------------------------------------------
[158 / 184] 쪽
그런 까닭에 머물지 않아야 할 곳에 돌아가게 됩니다.
바른 계율 지키지 않고
진에(䐜恚)와 고뇌 품어서
이러한 데에 머무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사나운 짐승과 같습니다.
이미 도술(道術)을 닦지 않고
게으름 피우며 정진하지 않으면서
삿된 것만 믿고 지혜 없으므로
이 경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들 생사[始終]에 집착하여
나라는 견해와 은애(恩愛)에 끄달리며
3계의 근심에 머물러 있기에
이 미묘한 법 믿지 않습니다.
어리석고 어두워 해칠 마음 품고
욕망과 즐거움에 집착하며
스스로 제 몸만 탐하고 의존하면서
이 도의 가르침을 비방합니다.
좋은 의복이나 탐하고 집착하거나
맛있는 음식이나 좇으며
잠시도 청백(淸白)한 법엔 머물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이 경전 비방합니다.
중생들은 욕계에 머물기를 즐거워하고
덕과 진실 없음을 탐하고 사모하나니
---------------------------------------------------------------------------------------------------------------------------------
[159 / 184] 쪽
그런 사람은 스스로 도를 멀리하여
세존을 친근히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기악법(棄惡法)이었다.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마땅히 이런 사람 버리기를
비유하면 변소를 멀리하듯 해야 하네.
어리석은 사람 이 경을 의심하면서
경계에 의지하여 해탈 구합니다.
마땅히 그런 사람 멀리하기를
죽은 시체와 같이 해야 하고
심오한 경 의심하는 이를
멀리하는 것도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이런 행을 비방하는 사람은
도적이 마을을 약탈함과 같나니
도적이 어두운 곳에 머물고 있으면
악한 마음 알고 달아나듯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고서 그것에 치달리나니[馳]
도적 같은 흉악한 사람 보듯 해야 합니다.
만약 이 경전 비방하면
마음에 혼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옵니다, 천중천이시여. 이 모든 보살들이 경을 분별하는 지혜가 이와 같습니까? 아니면 삼매(三昧)의 힘으로 인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밝게 깨달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고 이 경의 이치로 인연하여 삼매의 힘을 얻었으며 무위(無爲)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왜냐 하면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족성자(族姓子) 등은 60억이나 되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 경전을 듣고는 믿고 즐거워하며 찬송(讚誦)하였기 때문이니라. 또한 지금 여기에서 삼매력에 뜻을 두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경을 강설하였느니라. 왜냐 하면 그의 말은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
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이 경을 듣고 곧 기뻐하면서 믿어 의심하지 않으면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는 어떤 복을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와 족성녀가 마음으로 더할 나위 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구한다면, 가령 이 천하에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칠보(七寶)로써 여래에게 보시하는 이가 있고, 만일 또 어떤 사람은 이 심오한 경을 듣고 곧 기뻐하면서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 복은 저것보다 더 많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천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보배로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세계의 부처님을 공양하거나 이 세계를 가득 채운 진귀한 보배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이가 있고, 또한 이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기만 하더라도 그 복은 저것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을 설하셨다.
가령 이 천하를
가득 채울 만한 칠보로써
여래를 공양하고 보시하여
세존의 진리의 지혜 성취하게 할지라도
---------------------------------------------------------------------------------------------------------------------------------
[161 / 184] 쪽
지혜 있는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고 즐거워하며 동요하지 않으면
이 복은 최상(最上)이 될 것이요
그 덕은 한정할 수 없으리라.
가령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고
모든 부처님 세계와 같이 많은 보배로써
거룩하신 세존을 공양한다 하여도
이 경을 듣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경의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어 지니고 외워 독송한다면 그 복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족성자와 족성녀가 무상정각(無上正覺)을 구하기 위해 백 겁을 여래에게 공양하고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禪定)ㆍ지혜(知慧)를 닦고, 또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 각각 백 겁 동안에 이 세간을 밝게 깨달아 의심할 게 없다고 하더라도 이 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부처님을 공양하지 않은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을 설하셨다.
만약 백 겁이 넘도록
세존을 받들어 공양하되
음식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곧 부처를 공양하지 않은 것이니라.
만일 이 경을 받아들인 이는
큰 성현 받들되
도의 생각에 의지하려는 생각 버리고
---------------------------------------------------------------------------------------------------------------------------------
[162 / 184] 쪽
모든 부처님께 법공양을 하여라.
이와 같이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면
곧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리라.
등각(等覺)께 법공양하는 것은
여래는 곧 법신(法身)이기 때문일세.
가령 백 겁이 지나도록
좋은 의복 가려내어
세존 정각을 받든다 해도
이것은 부처님을 공양함이 아니니라.
만일 이 경을 받아서
곧 세존을 공경하고 따르면
이것은 마땅히 부처를 받들어 섬기는 것으로
의복을 공양한 것보다 나으리라.
만약 백 겁이 넘도록
맑은 구슬과 좋은 꽃과 향을
세존 등각에게 진상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을 공양함이 아니니라.
가령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과보에 의존하는 생각 모두 없애면
이것은 곧 세존 최상의 지혜로운 분을
공양함이 되리라.
만약 칠보탑을 세우되
세웅(世雄)을 위해 세우며
---------------------------------------------------------------------------------------------------------------------------------
[163 / 184] 쪽
그 높이 수미산과 같게 하여도
그것은 부처님을 공양함이 아니니라.
가령 이 경전 받아
스스로 나라고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은 최상존(最上尊:世尊)을 공양함이요
일체의 더 높을 이 없는 분 공양함일세.
만약 백 겁이 지나도록
어떤 사람 금계(禁戒) 지켜도
이 경전 지니지 않으면
그의 계율은 이름 떨치지 못하리라.
만일 이 경전 받아 지니면
이 계행으로 큰 이름 떨치리니
만약 청정한 계율 받들면
이 계율은 가장 높으리라.
밝은 지혜로 이 경을 따르는 공덕 한량없고
그것을 인연하여 받들어 섬기면
그 금계는 항상 갖추어 만족하리라.
저 금계를 끝까지 잘 지키면
계율을 깨뜨렸다 말하지 않으리.
만일 이 경전 배우게 되면
곧 마땅히 위에서 가르친 것과 같으리라.
만일 이 경을 배우지 않으면
불도(佛道)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
---------------------------------------------------------------------------------------------------------------------------------
[164 / 184] 쪽
성인을 받들어 비록 원만히 갖추었다 해도
이 또한 배우는 것 없네.
계율 닦아 이와 같이 지키며
이 경의 이치 분별해 알고
계율 지켜 이렇게 기르면
금계(禁戒)를 원만히 갖추게 되리라.
가령 백 겁이 지나도록
일심으로 인욕 행하면
비록 성내고 꾸짖는 이 있다 할지라도
일체를 다 참는 사람 되리라.
만약 이 경을 받아들여서
듣고 지니고 외우며
인욕하면 이것은 최상이 되니
그 미묘함 헤아릴 수 없으리라.
혹 손과 발을 끊을지라도
마음 속에 일찍이 원한 품지 않으며
싫어하지 않고 극한 지경 이르지 않으면
그 마음은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인욕을
백 겁 동안 행한다 해도
이와 같이 따르고 행하면
이런 인욕은 가질 필요조차 없게 되리라.
만약 이 경을 받아서
---------------------------------------------------------------------------------------------------------------------------------
[165 / 184] 쪽
듣고 지니고 외워 독송하면
이 인욕은 가장 으뜸이 되니
미묘하기 한량이 없네.
괴로울 때 이 경을 가지면
그 인욕 가장 으뜸이 되리.
높고 높아 짝할 수 없으면
곧 헛되고 거짓되지 않으리라.
지극하고 정성스런 가르침 끊지 않으면
부처님의 지혜 이보다 더 높을 것 없네.
이 경을 경솔하게 헐뜯지 않으면
일체를 소원대로 이루리라.
가령 백 겁 동안을
정진하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밤낮으로 자지 않고 닦으면
일체를 소원대로 성취할 수 있으리라.
만약 이 경을 배워 닦으며
남을 위해 강설하여 밝은 지혜 이루게 하면
이것은 가장 으뜸가는 정진이 되고
부지런한 수행 비유할 데 없으리라.
만약 백 겁 동안을 지내면서
5통신선(通神仙)이 되었다 해도
이 경전을 듣지 못하면
신족통이 없는 이라 하리라.
---------------------------------------------------------------------------------------------------------------------------------
[166 / 184] 쪽
가령 이 법을 받아
분별해 알고 집착하지 않으면
신통력을 통달해 이룩하여
일체가 이보다 더 높음이 없으리라.
가령 백 겁 동안을
지혜를 닦고 받들어
세간을 초월한 밝음이 되고
행하고 의지하는 바를 즐긴다 해도
만약 이 책 배우지 않으면
지혜를 이루지 못하겠지만
이 성인은 용맹스러워
심오한 경전 지닐 수 있네.
이런 이는 도의 지혜 있어서
거룩하고 밝은 지혜 깨달아 아나니
만약 심오한 경전 중요함을 들으면
기뻐하며 받아 지니고 받드네.
깊은 지혜 분별해 알고
모든 법의 이치 깨달아 알아
마땅히 이 경을 통해 말하면
이것은 상법[像]의 지혜라 하리.
바른 경전 닦고 익히면
일체지 증득하여 두 가지 법 없으리니
그런 까닭에 정진하여 닦아 행하고
중요한 경전 지니고 따르리라.
---------------------------------------------------------------------------------------------------------------------------------
[167 / 184] 쪽
그때 현자 아난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가령 4천 리가 넘거나
또한 4천 리의 머나먼 길일지라도
그곳까지 가서 이 경전 듣고
부처님의 덕과(德果)를 증득하겠나이다.
문득 그 집에 이르러야 하는 일이라면
그 길은 어려움 되지 않으리니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빨리 가서
그 경이 있는 곳 찾겠나이다.
만약 속히 선정을 닦아
일체를 초월하여 해탈하려면
이 경의 도를 외우고 강설하며
받아 지녀 그 뜻을 알아야 하네.
가령 모든 편안함을 구하기 위해
보살행을 마음 속으로 사모하거든
이 경전을 강설하게 되면
곧 안락(安樂)한 국토에 이르게 되리라.
평등각(平等覺:佛)과
아미타(阿彌陀)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이 경의 이치대로 닦아서
모든 부처님께서 연설하신 것과 같이 하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아난아. 진실로 네 말과 같아서 모든 법은 평등하
---------------------------------------------------------------------------------------------------------------------------------
[168 / 184] 쪽
여 다름이 없으니,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경을 찬양하고 외워 독송할 때엔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일체의 생각을 여의며 그가 사는 곳에서 자재(自在)로우리라.
만일 불ㆍ세존을 뵙고자 할 경우, 이 경을 찬양하여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목숨을 마칠 즈음에 눈앞에 무수한 여러 볼ㆍ세존이 보일 것이니라. 왜냐 하면 족성자와 족성녀들은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구원해 주시기 때문이요, 이 경전을 받다 지니고 독송하였기 때문이니라.”
15. 사자녀품(師子女品)
그때 사휴동녀(私休童女)와 오백 동녀가 함께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여인이 만약 이 경전을 배우면 어떤 공덕을 획득할 수 있으며 가령 외우거나 독송하면 어떤 복을 받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여인이 만약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를 구하고자 하면 이 경전을 배워서 다른 여인에게 보여주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만약 이 경전을 배워서 오로지 정진하고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른 여인이 번뇌를 탐하고 집착하는 것을 본받지 않으면 이런 인연 때문에 여인의 몸을 해탈하리라.”
사휴(私休)가 다시 여쭈었다.
“어떤 것을 여인의 번뇌[塵勞]라고 말하며, 어떤 욕애의 미혹으로 여인의 몸을 받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만약 어떤 여인이 다른 여인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좋은 보배나 영락으로 장엄한 것을 보게 되더라도 즐거워하거나 기원하지 않아야 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되 마치 더러운 변소와 같이 여겨서 즐거워하거나 희망하지 않아야 하며, 더러운 길을 만드는 것을 보면 이를 청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는데도, 만약 이를 탐하거나 즐겁게 생각하면 곧 여인의 몸을 받느니라.
---------------------------------------------------------------------------------------------------------------------------------
[169 / 184] 쪽
또 헤아려 보면 여인은 대부분 질투심을 가지고 마음과 말이 각각 달라서 서로 가깝지도 않고 앞뒤가 맞지도 않으며, 비록 비구들을 보아도 다만 명예와 소문만을 구하고 경전의 이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성내는 마음을 많이 품고 사람들만 많이 모으며, 일찍이 이익이 있는 이와 같은 경전은 구하려 하지도 않느니라.
또한 경전을 읽더라도 마음속엔 늘 집착하여 구하는 게 있어서 그 뜻이 시끄럽고 혼란하여 진애(塵埃)에 빠져 있으니, 이러한 까닭에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서 죄를 제거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여인들이 가령 애욕(愛欲)을 제거하고 삿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이 경을 받아 지녀서 외워 읽거나 독송해야 하나니, 왜냐 하면 이 심오하고 존귀한 경전은 여인의 몸을 받지 않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 여쭈었다.
“가령 여인이 그 여인의 몸을 원하지 않을 때에 이 경전의 법을 받아 지녀서 외우거나 읽고 독송하면 무슨 인연으로 여인의 형상이 바뀌어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의 몸을 바꾸려고 하면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외워 읽거나 독송하되 여인의 몸을 원하지 말고 늘 두려워하고 더럽게 여겨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스스로 그 불 속에 뛰어들면서 말하기를 ‘불에 타지 않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화상을 입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한다면 동녀야, 네 생각엔 어떠하냐? 그 사람의 말대로 정녕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왜냐 하면 생각건대 불의 요소란 주요 성분이 모든 물질을 태우는 것이라서 살점이 헤어져 떨어지게 되나니,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이 경전도 그러하여 진애(塵埃)와 애욕을 남김없이 다 태우나니, 설령 정욕의 자태에 탐착(貪着)하여 여러 세상을 스스로 위태롭게 지내왔다 하더라도 이러한 여인의 몸을 변신시키고자 하거나 하루 속히 구경의 경지에 이르러 성현의 도를 성취해 무앙수의 여러 불ㆍ세존을 뵙고 한량
없는 말재주를 갖추고자 하면 마땅히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외워 읽고 독송해야만 하느니라.”
사휴(私休)동녀와 오백 명의 사람이 다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살펴 기억해보니 과거 정광(定光)불ㆍ여래ㆍ지진ㆍ등정각 때에도 이 경을 받아 지녀 외워 읽고 독송하였으며 한량없는 억백천의 중생들을 위하여 연설하였습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사휴의 몸뚱이는 비록 여인의 형태이긴 하나 이는 여자가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제가 지금 마지막으로 이를 살펴보았는데 사휴동녀는 변화로 곧 이러한 여인의 몸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여인들을 불쌍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들을 해탈시키기 위한 것이니, 만약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여러 남자에 포함된다면 여인의 사는 처소엔 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여인의 몸으로 나타나 뭇 여인들을 감동시켜 변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사휴는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니, 본래 여자니 남자니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의 근본을 관찰해 보면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어서 모든 법은 다 얻을 수 없으며 평등하여 차이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와 같이 헤아려 볼 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 때문이니, 사휴동녀는 이 경을 분별해 알아서 걸릴 게 없고 법의 광명을 체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어떤 여인이 남자의 몸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사휴가 수행하는 법을 따르고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외워 읽고 독송해야만 하느니라.”
그때 오백 비구니가 부처님 앞에서 아뢰었다.
“저희들은 지금에야 비로소 이 경을 받아 지녀서 외워 읽고 독송하게 되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여인의 몸을 즐거워하지 않고 이 몸을 더럽게 여겨 싫어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이후로는 다시는 자리에 누워 자지 않고 이 경을 독송하여 이익을 얻고 곧 안정하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이 경을 외워 독송하겠다는 네 말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큰
---------------------------------------------------------------------------------------------------------------------------------
[171 / 184] 쪽
덕의 갑옷을 입고 정진하여 통달하여 여인의 형상을 흠모하지 않겠다고 하는구나. 어진 이들이여, 그런 까닭에 더더욱 부지런히 닦고 이 경전을 받아 자녀서 외워 읽고 독송하겠다고 말하는구나.”
그때 비구니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곧 입었던 옷을 벗어 부처님의 위를 덮고 찬탄하며 게송을 설하였다.
저희들이 오늘 즐거움을 얻어
남자의 몸 받아 나기를 바라나이다.
정각(正覺:如來)께서 다른 말씀 없으시니
반드시 세상의 존귀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때 오백 장자의 아내들은 비구니가 이러한 덕의 갑옷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오직 천중천(天中天:佛)이시여, 저희는 지금에야 비로소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외워 읽고 독송하게 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자재(自在)함을 얻도록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남에게 얽매이지 않고 다른 이의 얼굴을 살피지 않게 하고 마군의 부림을 받지 않으며 어렵고 견고한 근심을 여의게 해 주십시오.
왜냐 하면 설사 여인의 몸으로 왕가(王家)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소속된 곳이 있어서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고, 이 목숨이 마칠 때까지 남편의 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희들은 오늘부터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경전에서 한 구절의 뜻을 설법한다 하더라도 감히 비방을 듣지 않고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겠사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이 경전을 읽고 이해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장자 아내의 말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이 여인들이 지금 부처님 앞에서 큰 사자의 목소리로 ‘그 말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무극(無極)의 갑옷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니 그대들이 뜻한 바와 같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살피지 않고 무거운
---------------------------------------------------------------------------------------------------------------------------------
[172 / 184] 쪽
짐을 지지 않으며 열 달 동안 아기를 갖는 일도 없을 것이요, 또한 남자를 만나 잉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청정한 부처님의 국토 중에서도 여인이 살지 않는 곳에 태어나서 조금의 하자도 없을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여인들이 태어나게 될 세계는 그 이름이 무엇이길래 하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세계의 이름은 보련화장(寶蓮華藏)이니, 틀림없이 저 국토에 태어날 것이니라.”
또다시 부처님께서 여쭈었다.
“그 국토의 성호(聖號)는 무슨 여래ㆍ지진ㆍ등정각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국토의 부처님 이름은 일체제보묘진지광(一切諸寶妙珍之光)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신데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시니, 이 장자(長者)의 아내가 이 경전을 배움으로 해서 그 여래를 보게 되었느니라.”
그때 장자의 아내가 기뻐 날뛰면서 착한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목에 걸고 있던 백천 가지 보배와 칠보(七寶)의 구슬과 영락을 풀어 부처님 위에 뿌리고 똑같은 음성으로 게송을 설하였다.
오늘 큰 바람[望]얻어
마땅히 여인의 몸 버렸나이다.
등각의 말씀 특이함 없이
지극히 진실한 말씀 하셨습니다.
마땅히 이 어리석은 몸뚱이 버리고
여인의 재앙과 죄로 뭉쳐진 몸 버렸나이다.
범부는 어리석고 아둔한 뜻에 탐착(貪着)하여
모든 법은 본래 공하여 없음을 모른답니다.
---------------------------------------------------------------------------------------------------------------------------------
[173 / 184] 쪽
다시는 포태(胞胎)에 들지 않으며
이미 받은 몸까지 버렸나이다.
위없는 이치를 체득하여
일찍이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그때 장자의 아내는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존안(尊顔)을 우러러보며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16. 탄법사품(歎法師品)
그때 천제석(天帝釋)이 하늘에서 꽃을 가져다가 부처님 위에 뿌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이 미묘한 경전을 받들어 가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拘翼:帝釋)이여, 이 경전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아수륜(阿須倫)이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라.”
그때 문수사리가 무수히 많은 백천 사람의 대중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덕의 근본을 세우게 하려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본래 도의 뜻을 내셔서 이 큰 법이 담긴 책을 외우고 독송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진이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억 나술(那術:那由陀) 보살이 가장 존귀한 광명과 지혜로 시방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두루 비추니, 마치 일궁전(日宮殿)의 해가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느니라.”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이 국토가 여섯 가지로 반복하여 진동하였으며, 모든 하늘이 꽃 비를 내렸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
[174 / 184] 쪽
“무슨 까닭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에서 꽃 비가 내립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수히 많은 억(億) 하늘이 문수사리가 찬탄하여 읊은 말을 듣고 마음이 뛸 듯이 기뻐 이 하늘 꽃을 뿌리면서 소원하기를 ‘저희들도 마땅히 이 경전을 받아 도혜(道慧)를 체득하여 문수사리가 말한 것과 같이 되어지이다’라고 하였으므로 온갖 죄악이 소멸되고 이 경전을 가까이 할 수 있었으니, 그런 까닭에 기뻐하면서 부처님 발에 머리 대어 전하고 또다시 문수사리에게도 예를 올렸나니, 그러므로 이 땅이 진동하였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경전의 덕이 넓고도 크며 끝이 없어서 이 경전을 듣게 되면 그 얻는 것이 적지 않고 허망함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아난아. 족성자와 족성녀가 전후로 무앙수의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이 경전의 법을 들었으니, 만약 이 경을 듣고 믿고 즐거워하며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하면 천상 천하에 가장 신성한 사람이 되리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이 경이 유포된 곳이면 곧 허망(虛妄)함도 없으리니, 부처님과 비슷하게 되리라.
만약 이 경을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하여 배우는 자가 있으면 의심의 그물을 무너뜨리고 숱한 마군을 항복받을 것이며 법의 진수를 체득하고 법을 밝게 연설하여 많은 어둠을 밝혀 지극한 도량을 이룰 것이니라.
만약 나로부터 이 경전을 듣고서 기뻐하며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하여 배우면 불자(佛子)가 되리니, 법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니라.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불수(佛樹:菩堤樹) 아래 앉으며 마치 내가 앉아 있던 때와 같으며, 경전의 법을 강설하면 마치 부처님께서 연설하는 것과 같으리니, 마땅히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해야 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
[175 / 184] 쪽
“오직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미래 세계에 이 경을 설하면 뒷세상에 어떤 이가 이 경전의 법을 받아 지녀서 독송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현재세에 부처님 앞에서 믿음을 내면 그 사람은 후세에도 믿게 되어 이 경을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하리라.
그러나 내가 관찰하기로는 천상과 천하 인간들과 모든 마군ㆍ범천(梵天)ㆍ사문(沙門)ㆍ범지(梵志)와 여러 하늘의 백성들과 아수륜(阿須倫:阿須羅)이 경전을 듣지 않았다가 후세에 듣고서 믿고 즐거워한 이는 아직까지 없었느니라. 그러니 지금 이 경전을 들어야만 후세에도 믿게 될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장자(長者)와 장자의 아들이 무수히 많은 재물을 혼자만 아는 곳에 간직해 두고 다른 나라를 돌아다닌다면 아난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사람은 간직해 둔
보물을 얻을 수 없겠느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숨겨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찾으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지금 이 경전을 들으면 후세에 돌아가는 것이 마치 간직해 두었던 보물을 취하는 것과 같으리라.
부처인 내가 도안(道眼)으로 관찰해 보니 지금 현세에 이 경전의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하는 이는 후세에도 반드시 얻게 됨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니 아난아, 너는 부처님 앞에 앉아서 이 심오한 경전을 듣도록 하라.”
17. 기방품(譏謗品)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이 경전을 듣고도 믿고 즐거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헐뜯고 비방하면 무슨 죄를 얻으며 어느 곳으로 나아가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
[176 / 184] 쪽
“너는 잠자코 있어라. 또한 그런 질문은 하지 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만약 믿지 않는 이가 있을 경우 비방하다가 얻게 될 죄를 듣게 하면 혹 스스로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역죄(逆罪)를 지었거나 또는 삼천대천세계의 사람들에게 해를 가한다면 그 죄가 어떻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매우 많고도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흉악한 죄앙이 한량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법을 비방하는 이가 있으면 그 죄는 여기에 이르리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항하강가의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부처님의 탑사(塔寺)를 파괴하거나 훼손하고 부처님이 니원(泥洹:涅槃)에 든 뒤에 사찰을 불태운다면 죄는 어떠하겠느냐? 많겠느냐, 그렇지 않겠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고도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이들이 받을 과보는 마땅히 보고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마땅히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이 죄를 설하여 나타내리라.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 부처님의 법을 헐뜯고 혼란하게 하여 소멸해 없애면 그 죄가 어떻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그 죄가 매우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을 비방한 사람도 그 재앙이 이와 같으리라. 만약 다른 이를 만류하여 이 경을 배우지 못하게 한 이의 죄는 또한 어떠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
[177 / 184] 쪽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 열 가지 선행(善行)을 닦고 또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의 뜻을 내었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눈을 뽑아버린다면 그 죄가 어떻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그 죄는 매우 많고도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무앙수 겁 동안 항상 태어날 때마다 봉사가 될 것이요 또한 니리(泥犁:地獄)에서 불에 타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여 은근히 부촉하노니, 가령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비방하여 한 사람이라도 금지하게 하고 이 법을 얻지 못하게 한다면 그 죄는 저것보다 더 클 것이니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큰 도를 구하되, 이 경을 의심하지만 비방하지는 않는다면 그 죄는 어떠하며 어디로 나아가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도에 대하여 발심하고 앞뒤로 의심함이 약간의 수만 되어도 언제나 모든 불ㆍ세존을 어기고 멀리하되 그 의심낸 수만큼 따르게 되고, 또 의심한 수만큼 약간 겁 동안 도의 가르침과는 어긋나게 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믿어 기뻐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까지 금지시켜 그들로 하여금 배우지 못하게 하면 그 사람은 어떠한 재앙으로 어떤 몸을 받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죄를 받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아난아. 그런 질문은 하지 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부디 연설해 주셔서 이 사부 대중들 가운데 혹시라도 그런 이가 있거나, 미래 세상 변두리 지역의 국토에 있는 여러 큰 나라의 백성들 가운데 이 경의 법을 듣고 많은 의심을 내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믿고 알아서 다시는 비방하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178 / 184] 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일만 해(姟)나 되는 큰 몸으로 태어나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괴로움과 독으로 인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사람의 혀는 큽니까, 작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사람의 혀는 너비와 길이가 각각 사만 리나 되어 얼룩소에 멍에를 메어 오백억 년 동난 혀를 갈게 되며, 각 오백억 년 동안 마땅히 구리 녹인 물을 삼키게 되어 그 불꽃이 타올라 그의 몸 위에 구릿물이 뿌려져서 태우고 굽고 지지게 되리라. 왜냐 하면 그가 말을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때 이 모임에 온 사부 대중들이 이 말을 듣고 옷자락과 털이 모두 곤두서고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서 땅에 쓰러져 동시에 한목소리로 불쌍히 여겨주기를 간청하며 잘못을 뉘우쳤다.
“마땅히 이 선남자와 선여인을 위하여 그 죄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독으로 아프고 약간의 고뇌를 당하는 일과 그 몸이 장대(長大)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또 다른 사람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금세(今世)와 후세에서 마음에 의심 일으킴을 스스로 살펴 알지 못하고 지금 현재에도 부처님 앞에서 시방 모든 불ㆍ세존의 경전 속에 들어있는 가르침을 어겨서 음개(陰蓋)가 덮였건만 스스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거니와 이제 모두 스스로 부처님 앞에 귀의하여 죄업이 덮어 가리지 않게 하겠사오니, 부디 부처님께서 그 원래 지은 죄를 사(赦)하여 주십시오. 비유하면 마치 어리석고 아둔하며 지혜 없는 사람이 저 바른 이치를 어긋나게 하여 스스로 죄를 지었
을 때, 오직 부처님께서만이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그 원죄(原罪)를 사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법을 의심하여 지었던 자신의 죄를 알고 그 재앙을 뉘우치고 있으니, 밝은 태양이 어둠을 제거해주는 것과 같느니라.”
---------------------------------------------------------------------------------------------------------------------------------
[179 / 184] 쪽
그때 아난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지금 이 모임에 있는 대중들이 마음 속에 의심을 내었기에 마땅히 이런 죄를 얻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비록 의심을 내었으나 이제 다시 그 죄를 뉘우쳤으니, 이 무리들의 죄는 오히려 경미(輕微)해졌느니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그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목숨이 끝날 때에 지옥에 들어가 하나하나의 털구멍마다 고통을 받고 마땅히 다시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근심이 있겠지만 그리도 그 나머지는 모두 그치게 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부처님 앞에서 의심을 버리고 잘못을 뉘우쳤으므로 시방에 무수한 여러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겨 은덕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아난아,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스스로 살펴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고통을 당할 일을 했을지라도 이 경전을 듣고 기뻐해야 하고 마땅히 의심을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일 불법과 성중(聖衆), 그리고 과거ㆍ미래ㆍ현재 부처님의 거룩한 법의 가르침을 버리고자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경전을 믿어 지녀서 외워 읽고 독송해야 하느니라.”
18. 촉루품(囑累品)
현자(賢者)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모든 불대성(佛大聖)께서는 다 똑같이 불퇴전법륜(不退轉法輪)을 설법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모두가 똑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가령 모든 부처님께서 똑같이 불퇴전법륜을 설하신다면 무슨 까닭에 대성(大聖)께서는 지난번에 ‘가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법과 성중(聖衆)을 멀리하지 않고 부처님의 처소에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서 가르친 진리를 나타내 일으키려고 하면 마땅히 이 경전을 멀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난이 또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진리를 어느 곳에서 빛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퇴전법륜을 행하는 대중들이 부처님의 법을 드러내느니라. 합하고 모여 물러남이 없는 요소를 여래께서는 말씀하셨느니라.”
아난이 또 말하였다.
“물러남이 없는 여러 보살대사(菩薩大士)를 마땅히 성중(聖衆)이라 해도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청정하고 생각이 바르며 큰 도에 대하여 발심해서 그 이치를 자세히 관찰하면 이런 무리들을 모두 물러남이 없는 대중이라고 말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옵니다. 모든 불ㆍ세존께서는 훌륭한 방편으로 때에 맞게 적절한 이치로써 큰 도를 드러내십니다.”
그때 사람들로 하여금 훌륭한 방편을 받들어 경전을 연설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이여, 만일 이 경전을 듣고 기뻐하며 믿음을 일으키는 이러한 무리들은 마땅히 이 훌륭한 방편을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인도하고 교화해서 그들로 하여금 발심하여 정진하게 하는 것이 또한 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
그 때 수없이 많은 여러 하늘 대중들이 모두 하늘꽃으로 세존께 공양하고 다함께 이런 말을 하였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법을 체득하도록 하겠습니다.”
---------------------------------------------------------------------------------------------------------------------------------
[181 / 184] 쪽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 경전이 후세 사람들에게까지 그 혜택이 미치도록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와 선여인과 이 모임에 온 이는 누구나 다 후세에 틀림없이 이 경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라. 가령 차질이 생겨 큰 바다에 있다 하여도 마땅히 이 경전을 얻게 되어 마침내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과거 모든 부처님의 신통변화로 이 경의 법을 섭수(攝收)하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록 과거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이라 말씀하시지만 또한 현재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건립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때마침 부처님 앞에 있던 무앙수(無央數) 백천 송이의 꽃 사이로 갖가지 보배로 된 연꽃이 저절로 솟아오르더니 모든 모임에 널리 빛을 발하여 각각 시방의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었다. 그러자 이 모임에 모였던 이들이 두루 시방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국토를 돌아보니 불ㆍ세존 앞에 보배 연꽃이 있는데 그 잎은 억백천 개나 되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 천제석이 스스로 그 모습을 변화하여 장자의 몸이 되어서 약간의 꽃을 받들어 사부 대중에게 나누어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부디 이 꽃을 가져다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에게 뿌려라. 그리고 이 심오한 경전의 이치에도 공양하도록 하라.”
사부 대중은 그 말대로 각각 꽃을 가져다가 여러 부처님 위에 뿌리니, 이 모임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흩어지는 꽃이 여러 부처님 위에서 변화하여 일산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 사부 대중들이 각기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것은 무엇으로 생긴 상서로움이기에 광명이 저렇게도 찬란합니까? 또 대지(大地)는 왜 크게 진동하며 갖가지 보배꽃이 부처님 앞에 변화로 나타나는 것입니까? 왜 흩어진 모든 꽃은 여러 부처님 위에서 변하여 보배 일산이 되는 겁니까?”
---------------------------------------------------------------------------------------------------------------------------------
[182 / 184] 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것은 모두 경전의 변화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경전을 건립하여 모든 곳에 유포(流布)하는 것이니, 이를 받은 이는 마땅히 알아서 생각해야 할지니라.”
그때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세존의 성스러운 뜻의 덕도 이 경전으로 건립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이 경전으로 건립하고 보호하였으니, 현재의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이 동등하여 차이가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이 경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의 이름은 『불의과실제덕적상(不猗果實除德迹想)』이라 부를 것이요, 또『지신봉법도적왕래불환무착성문연각(持信奉法道迹往來不還無着聲聞緣覺)』아라고 이름하며, 또『개화폐마(開化弊磨)』라고 이름하며, 또 『준봉육도무극(遵奉六度無極)이라고 부르리니, 마땅히 그렇게 지녀야만 하리라. 왜냐 하면 이 경전을 듣고 만일 믿고 즐거워하는 이가 있으면 곧 마땅히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波羅蜜)을 원만히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이 또 여쭈었다.
“어떻게 믿고 즐거워하며 받들어 지녀야 여섯 가지 도무극을 원만히 갖출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경전에 대하여 믿고 기뻐하여 의심하지 않고 보시하면 보시도무극이요, 계율을 헐뜯어 잃지 않으면 금무극(禁無極:持戒波羅蜜)이며 인욕행을 잘 닦으면 인무극(忍無極:忍辱波羅蜜)이며, 또한 게으르지 않고 비겁하거나 나약함을 여의면 진무극(進無極:精進波羅蜜)이요, 하는 바를 일으켜 세워서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선무극
---------------------------------------------------------------------------------------------------------------------------------
[183 / 184] 쪽
(禪無極:禪定波羅蜜)이며, 일체를 기억하지 않고 모든 법을 평등하다고 생각하면 지무극(智無極:智慧波羅蜜)이니 이런 까닭에 아난아, 이 경의 이름을 『육도무극(六度無極)』이라고 말하였으며, 또『불퇴전륜방등법(不退轉輪方等法)』이라고 말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만 들어도 크게 요익(饒益)한데 하물며 받아 지녀서 외우고 독송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아서 이 경을 만나기 어렵느니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이 경의 이름을 들으면 몇 겁이나 초월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의 이름을 듣고 물러나지 않고 환희하면서 믿는 이는 곧 마땅히 무수한 천백 겁 동안 나고 죽는 근심을 초월할 것이니라.”
“가령 또 다시 들어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믿음을 내어 도의 마음을 내면 이러한 중생은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부처님께서 모두 수결(授決:授記)을 주어 위없는 정진도의(精進道意)를 얻을 것이니라.”
그때 이 모임의 사부대중들 개개인마다 그 앞에 변화로 만들어진 연꽃의 광명이 한량없었다. 그 낱낱의 꽃은 무앙수(無央數) 백천이었고 모든 꽃에 대해 각각 기쁨을 내어 연꽃을 가져다가 세존께 공양하면서 똑같은 음성으로 찬탄하며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마다 이 법을 만나 지금처럼 분별하여 설법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때 부처님께서 곧 빙그레 웃으셨다. 그러자 문득 훌륭한 음악이 저절로 울리면서 향기가 시방에 그윽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千) 하늘이 공중에서 꽃 비를 내리고 전단(栴檀)ㆍ속금(粟金)ㆍ천심화(天心華) 등을 내렸으며, 모든 하늘이 옷을 벗어 세존 위에 뿌렸다.
현자 아난이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
[184 / 184] 쪽
“부처님께서는 웃으신 것은 거짓이 없으실 것이니, 틀림없이 이 모임에 어떤 뜻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모든 사대부중들과 하늘ㆍ용ㆍ귀신과 사람ㆍ사람 아닌 것 등이 이 경을 들으면 후세에 태어나는 곳마다 문득 이 경을 만나게 되어 그 이치를 연설하되, 오늘의 나와 같아서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