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수행도지경 제 1 권
서진삼장(西晉三藏) 축법호(竺法護) 한역
1. 집산품(集散品)
부처님 세상에 출현하시어
밝게 빛남이 햇빛보다 더하시고
덕을 쌓음이 매우 높으시어
제왕의 종족과 여러 하늘과 신선들보다
수승(殊勝)하시고
한결같은 정진으로 우뚝하게 드러나시니
많이 배워 온갖 이치 통하신
가장 훌륭한 분께 모두 예배드리네.
하늘 신과 용, 그리고 귀신들까지도
현재 세상에서 정진하여
삼계(三界)에서 견줄 이 없는
세존을 받들어 모시네.
비할 데 없는 지혜로 제도하시어
생사의 두려움을 없애주시니
부처님과 바른 법과 여러 승가들
이 3보의 공덕보다 더 뛰어난 것 없네.
마땅히 이 도안(道眼)으로 관찰하여
평등한 법문을 자세히 연설하시고
뜻을 모아 거룩한 가르침 선포하시니
마치 감로(甘露)가 나오듯 하였네.
혹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는 이가
이 세속에 대해 관찰하되
여러 가지의 시끄러움과
나고 죽음 때문에 편안하지 못해
세속 깊숙히 빠져든 것이
마치 썩은 수레가 진흙탕에 빠진 것 같아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마땅히 경전의 이치를 따르고
또 여러 꽃들의 꿀을 따모으듯
세간을 가엾이 여겨 연설하셨으니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을 전념하여 들으면
유위법(有爲法) 없애고 무위법(無爲法)에 들리라.
여기서 『수행도지경』을 강론해야만 하는 것은 나고·늙고·병들고·죽고·근심하고·맺히고·슬피 우는 등의 모든 헤아릴 수조차 없는 온갖 번뇌의 모임 때문이다.오로지 수행에 전념하는 이로서 재가자(在家者)이건 출가자(出家者)이건 최후의 청정(淸淨)한 법을 이루려고 한다면, 뜻을 되돌리지 말아야 마침내 감로법(甘露法)에 이르러 뭇 환난의 고통이 끊어지리니, 그것은 구호(救護)해줄 이도 없고 우러러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라서 오직 모든 욕구를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여 번뇌를 여의려고 하는 이는 항상 마땅히 정진하며 이 경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이것을 게송(偈頌)으로 말한다.
나고 늙고 죽음을 따라 근심하고 고뇌하여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온갖 괴로움 있나니
제도되고자 하는 이라면 뜻을 되돌리지 말고
수행도(修行道)를 배우되 싫어하지 말라
.어떤 것을 무행(無行)1)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수행(修行)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수행도(修行道)라고 하는가? 무행이라는 것은 생각으로 음욕(淫欲)과 성냄[怒]을 일으켜 권속과 여러 하늘들과 국토를 침해하려고 하고, 벗에게 폐해를 끼치고 계율을 파괴하며, 악하고 추잡한 말만 익히고 착하지 못한 것만 따르며,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스스로 교만을 부리며,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고, 삿되게 헤아려 항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몸[身]과 그 몸이 머무는 곳이 있다고 탐하고 좋아한다. 여색(女色)을 가까이하고 방일하여 게으름을 피우며, 정욕(情欲)에 집착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하며, 반연하는 일과 구하는 것이 많고 사람들을 멀리 피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방심하고 의심한다. 정진(精進)하는 행을 잃고서 늘 두려운 마음을 품고 있으며, 감관[根門]이 안정되지 못하고 온갖 세속 일에 휩쓸리며, 말을 많이 하면서 절도(節度)가 없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으면서 도리어 삿된 말을 논(論)하며, 비뚤어진 일을 말하기 좋아하고 그릇된 법을 따르며 도(道)의 뜻에서 멀어지는 것을 무행(無行)이라고 말하나니, 이것을 무위(無爲)에 대해 행해서는 안 되는 것[不可行]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1) 무위열반(無爲涅槃)의 도를 저버린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신(身)·구(口)·의(意)의 3업(業)을 말한다.}}
성냄과 탐욕을 내어 남의 목숨 해하려 생각하고
몸의 부정(不淨)함을 즐거운 것이라 생각하며
삿된 지혜로 도리어 온갖 잘못된 것들만 따른다면
부처님께선 이런 것들을 행해선 안 된다고 하셨네.
어떤 것을 가행(可行)이라고 하는가?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해(害)를 가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착한 벗[善友]을 가까이 하고 계율을 받들어 청정하게 지키며, 말을 하면 곧 도(道)만을 말하고 가르친 학문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교만을 부리지 않고 무상하고[無常]·괴롭고[苦]·공하고[空]·나라는 것 없음[非身]을 헤아리며, 거처할 만한 곳에 가려서 기거하며,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방탕한 짓을 끊으며, 늘 정진에 뜻을 두고 번뇌를 없애며, 음식을 적게 먹고 절제(節制)할 줄을 알며, 몸으로 행동하는 것을 잘 단속하고 밤낮으로 깨어 있으면서 마음을 거두어들여 잊지 않으며, 의심이 없고, 두려운 마음도 품지 않으며, 감관[根]의 문(門)을 적정(寂靜)하게 하고, 온갖 인연을 없애며, 말을 하면 곧 바르게 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한가한 곳을 좋아하고, 진리 그대로 관찰하며, 획득하지 못한 법은 당연히 늘 생각하고, 체득한 모든 법은 굳게 지녀 잊지 않으며, 기쁜 마음으로 법화(法化)의 이치를 채취(採取)하고, 온갖 입고 먹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할 줄 알며, 뜻을 경도(經道)에 두어 싫증내지 않으며, 무상한 것이라고 익히고 헤아려 세간의 더러운 양식인 모든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무위(無爲)의 도라고 하는 것은 적연(寂然)한 것을 말하는데 이와 같은 무리들의 법은 무위법(無爲法)에 가까운 것이므로 이것을 가행(可行)이라고 말하나니, 행(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면 바로 니원(泥洹)에 두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계율을 청정히 하고 내가 없다는 생각을 좋아하고
오직 경의 이치만 듣고 훌륭한 친구를 따르며
진리를 자세히 살피고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곧 무위의 도라 하셨네.
모두 옳은 데로 나아가고 온갖 법을 생각하되
여러 가지 생각을 안정시켜 괴롭거나 싫증냄이 없고
그리고 덕(德)의 모임에 대하여 강설하고
모든 감관을 안정시키는 것을 곧 행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수행(修行)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능히 따라 행하고 닦아 익히며 따라 받드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며, 닦고 익히는 것을 곧 행이라고 한다.어떤 것을 수행도(修行道)라고 하는가?적정(寂靜)한 도에 대해 전일(專一)하게 정진하는 것을 바로 수행도라고 한다.도를 수행하는 데에는 세 가지 품계(品階)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凡夫)요, 둘째는 도를 향하여 배우는 것[學向道]이며, 셋째는 배울 것이 없는 것[無學]이다. 범부의 수행이라고 말한 것은 새로 배운 것이나 예전에 배운 것을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이니, 이런 무리들을 위하여 『수행도지경』을 설법해주는 것이며, 저 배울 것이 없는 이에 대해서는 이미 통달한 사람이니 더 이상 어떤 것을 말해주겠는가?저 이른바 『수행도지경』은 적연(寂然)하게 법(法)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어떤 것을 적연하게 법을 관찰한다고 하는가? 사문(沙門)의 네 가지 덕(德)의 과위[果]에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어떤 것을 네 가지 덕(德)의 과라고 하는가? 유여니원(有餘泥洹 : 有餘涅槃)의 경계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어떤 것을 유여니원이라고 하는가? 무위(無爲)의 경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어떤 것을 무위의 경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는가? 온갖 괴로움의 근본이
모두 끊어 없어진 것을 말한다.그러므로 수행하는 이가 극심하게 고통스러운 번뇌를 모두를 버리려고 하거든 늘 마땅히 전일한 마음으로 정진하고 다른 행을 일으키지 않으며, 가르침과 계율을 손상하지 말고 적정한 속에서 관찰하는 법을 닦아 건립(建立)해야 한다.가령 수행하는 이가 계율을 헐어버리고 가르침을 손상한다면 적정한 속에서 관찰하는 법에 이르지도 못하고 공부도 허사가 될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나무를 비벼대어 불을 구하려 하는데, 자주 쉬면 전일(專一)하지 못하여 끝내 불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미 불을 얻지 못했다면 그 공력(功力)이 헛수고가 되고 말듯이, 게으른 마음으로 무위의 경지를 구하려고 하는 것도 또한 비유하면 이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항상 고요한 속에서 선정을 행하고
마땅히 교만과 업신여겨 희롱함을 버리고
받들어 수행하여 허물거나 잃어버리지 말아야
마치 깜깜한 밤에 눈을 뜨고 다니는 것 같으리.
이렇게 행하는 이는 나아갈 길을 볼 것이요
지혜가 이와 같으면 정진하여 나아갈 것이니
바른 교화를 받들어 게으르지 않아야
마침내 적정하여 무위의 도[無爲道]를 이루리.
온갖 깊은 이치와 미묘한 일을 꿰뚫어
보고 대덕(大德)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살펴 뽑아왔네.
이 경의 큰 가르침은 고요함을 관하는 법이니
내가 여러 경전에서 뽑아 연설하였네.
2. 오음본품(五陰本品)
여러 경전에서 분명한 이치만을 뽑아 모아서
늙고 죽지 않는 감로(甘露 : 敎法)의 가르침을 세웠으니
밝은 지혜 가진 이는 들은 것을 행하여
청정한 지혜로 번뇌와 무명을 제거하고
적정에 들게 되면 마치 햇빛과 같으리니
비유하면 달이 떠올라 많은 별을 비추듯 하리라.
이미 도세(度世)하는 법 얻고 가르침을 받으면
성대하기 한량없어 마치 가을달과 같으리.
나한을 공경하고 받들어 머리 조아리고
허공 같으신 능인(能仁 : 부처님)께 고개 숙여 예배하라.
높으신 이에게 귀의하고 감로(甘露)를 얻으면
세간의 갖가지 욕심의 뿌리와 싹[芽]을 없애리.
갖가지 종류의 과일이 생겨나듯이
즐거움과 근심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부처님께서는 5음(陰)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아셨으니
마땅히 여러 경전을 보고 그 근원을 따르라.
도를 수행하는 이라면 마땅히 몸[身]은 5음(陰)이 근본임을 관찰해야 하나니, 색(色)·통(痛 : 受)2)·상(想)·행(行)·식(識)을 5음이라고 말한다.비유하면 성(城)이 이루어지려면 동서와 남북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구
2) 범어로는 vedan 이며, 감각(感覺)을 뜻하는데, 주로 고(苦)·락(樂)의 두 가지 감각을 뜻한다. 신역(新譯)에서는 수(受)라 한역한다. 본문에서는 고·락의 두 가지 감각 가운데 고(苦)로서의 통(痛)만을 취해 번역용어로 사용함.}}
(家口)를 합해야 비로소 하나의 성이 되듯이 색(色)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단지 한 가지 색에 대해서만 색음(色陰)이라 하지는 않는다. 통(痛)·상(想)·행(行)도 그러하며, 식(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단지 한 가지 식에 대해서만 식음(識陰)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색(色)에는 열 가지 입(入)3)이 있는데, 혹은 색관법(色觀法)4)을 색음(色陰)이라고 하기도 한다. 800 가지의 괴로움과 즐거운 감각을 통음(痛陰)이라고 하는데, 상음(想陰)·행음(行陰)·식음(識陰)에도 각각 800 가지가 있어 이것을 음(陰)이라고 말한다. 5음의 근본에 대해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색과 수와 상과 행과 식
이 5음이 일어나는 것은
비유하면 저 큰 성 안과 같아서
여러 집을 색(色)이라 하나니
한 가지 색을 색이라 하지 않고
모두 열 가지 색입(色入)이 있네.
괴로움과 즐거움의 감각에 800 가지가 있고
상과 행과 식도 또한 그러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가 합쳐서 음(陰)이 됨을 아나니
한 가지 뿐이 아님을 분별하여
아는 것이 수행하는 사람이 생각할 바이다.
3) 열 가지 입(入)이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 5근(根)과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5경(境)을 말한다.}}4)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에 있어 무표색(無表色)을 말한다.
3. 오음상품(五陰相品)
온갖 일들이 모이고 쌓여 서로 이어져
지혜를 여읜 말을 하여 부처님의 교법을 버리며
어리석은 데 훈습되어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면
저 나무에 가지와 잎이 무수히 많은 것과 같고
다섯 조롱박이 생겨나 뻗어가는 것과 같으리니
교묘한 방편 없는 품류도 또한 그러하다네.
5음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지혜 있는 이는 지혜로 이것을 밝게 아느니라.
족성(族姓)의 가문에 태어나신 부처님
강론하시는 법과 말씀이 꿀과 같으며
비구는 마치 꿀벌이 꽃맛을 채취하는 것과 같다네.
마치 연꽃이 활짝 피어나듯
지혜의 깨달음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하고
부처님의 초월함 연꽃보다 수승하시네.
부처님의 청정함 집착함이 없으시니
그러므로 세존께 머리 조아려 귀의하네.
그 모습 맑고 통달하여 걸림 없으시며
고요하게 생각을 없애 선정을 얻으셨고
일찍이 물러나거나 타락하지 않으셨으며
중생들 구제하여 무위(無爲)에 이르게 하셨네.
뜻을 기울여 인도하고 나타내 보이시어
어리석은 이들 가르치시되
몸소 행한 대로 하셨네.
나도 지금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기 때문에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이 경을 설하노라.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5음(陰)의 모습을 잘 알아야 한다.어떤 것이 5음 각각의 모양을 아는 것인가? 광명이 있는 것을 색(色)이라 하고 형상이 있는 것도 또한 색이라 하며, 손으로 잡는 것도 또한 색이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또한 색이라 한다.즐거움을 익히는 것을 통(痛 : 受)이라 하고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것[不苦不樂]도 또한 통이라 하나니, 이것을 통상(痛想)이라고 한다.인식하는 모양이 상(想)이 되나니,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밖에 여러 가지 물질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사상(思想)이라고 한다.조작하는 것이 있는 것을 행(行)이라고 하나니, 선행(善行)을 하거나 선하지 않은 행[惡行]을 하거나 또는 선한 것도 아니고 선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을 행하는 것을 행이라고 한다. 느끼는 모습이 식(識)이 되나니, 선하다느니 선하지 않다느니, 또는 선한 것도 아니요 선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모습을 식이라고 한다.이와 같은 5음의 모양을 각각 알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색은 편안치 못하고 더러움이 많다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법 틀림없나니
말씀하신 그대로 따라 행하여
5음의 갖가지 모양을 분별하라.
4. 분별오음품(分別五陰品)
감로로써 활활 타는 불을 끄듯이
모든 괴로움의 근본인 5음을 녹여 없애고
그 지혜의 광명이 햇빛보다 더하시므로
삼계에서 받들고 나도 또한 귀의하네.
불(佛)·능인(能仁)·높으신 분께서 깊은 지혜의 힘으로
청정한 지혜를 환히 깨달으시어
아시는 바를 따라 이치를 나타내셨으므로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채집하여 근기 따라 설하노니
그러니 마땅히 그 강설을 듣고 잘 분별하고 이해하라.
지금 저들을 인도하여 순응하여 마음을 안정시키고
5음이 본래 일어나는 이유를 분별해 알게 하기 위해
널리 온갖 이치를 인용하여 잘 생각해보게 하였다.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5음이 일어나는 근본을 환히 분별하여 깨달아야 한다.어떤 것을 5음의 근본을 분명하게 깨달아 안다고 하는가?비유하면 네 거리 길에 떨어진 진주(眞珠) 꾸러미를 어떤 사람이 보고서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가서 차지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그러면 그 사람이 눈으로 진주 꾸러미를 본 것은 색음(色陰)이라 하고 마음에 들어 애착하고 좋아하는 것은 통음(痛陰 : 受陰)이라 하며, 처음 그것을 보고 곧 진주 꾸러미라고 인식한 것은 상음(想陰)이라 하고 그 사람이 이 진주 꾸러미를 차지하려고 생각한 것은 행음(行陰)이라 하며, 진주 꾸러미를 분별하는 것은 곧 식음(識陰)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을 5음이라고 한다.이와 같은 5음은 하나의 진주 꾸러미와 같아서, 한꺼번에 모두 일어나 여러 가지 행을 조작하나니, 저 마음을 따라 나오는 것도 또한 하나의 진주 꾸러미와 같아, 한꺼번에 모두 일어나고 쇠퇴하여 5음을 따르게 된다. 일체의 입(入)도 또한 이와 같아서, 눈으로 보는 색에 5음이 모두 따르게 된다. 이와 같이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접촉과, 마음의 법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속에 네 가지 음(陰)은 무색음(無色陰)이다. 이와 같은 것을 5음의 근본을 분별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끝없는 덕 있으신 분께서 분별하여 설하시되
곳에 따라 알맞게 경의 뜻 말씀하셨으나
탐욕스런 이는 미혹하여 가르침을 받지 않으므로
내가 지금 법을 따라 그 강론을 받들어 말하노라.
5. 오음성패품(五陰成敗品)
밝은 지혜 더없는 세존의 요법(要法)에
조순하기를 끝없이 하여 그 끝[際]을 얻고서
이미 경계를 초월하시어 가없는 언덕에 이르신
세존께 머리 숙여 예 올리고 한량없음을 찬탄합니다.
강론하시는 말씀 마치 밝은 해 같아
제자를 비추심이 이와 같으시며
번뇌에 대하여 분명하게 깨달아 아시고
두려움 없애기를 시든 꽃처럼 하셨네.
모든 것의 생겨남과 사라짐을 보시고
5음의 생겨남과 무너짐을 깨달으셨나니
부디 저 부처님께 머리 조아리고
내가 말하는 존귀한 분의 말씀 경청하라.
도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5음이 생겨나고 무너지는 변천을 알아야 한다.어떤 것을 5음이 생겨나고 무너지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가?비유하면 마치 사람의 목숨이 끝나려고 할 때와 같다. 목숨이 끝나려 하면 핍박을 받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몸에는 404 가지의 병이 앞뒤로 점점 이르게 된다.
그러면 문득 많은 혼몽한 일들에 직면하게 되는데, 좋은 일과 괴이한 일이 눈앞에 나타나 놀라움과 두려움을 품게 된다. 꿈에 꿀벌·까마귀·까치·매·독수리 따위가 그 사람의 정수리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 모여 즐기며 노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자신이 푸른색·노란색·하얀색·검은색으로 만든 옷을 입은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털이 더부룩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소리쳐 부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꿈에 큰 개[狗]를 베고 누워 있기도 하고 또는 원숭이를 베고 누워 있기도 하며, 흙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꿈속에서 죽었던 사람이나 백정[屠魁]이나 뒷간을 치는 사람들과 같이 한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거나 한 수레를 타고 같이 놀러 다니는 현상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참깨기름[麻油]이나 지방질(脂肪質)이 있는 제호(醍醐)를 가져다가 직접 제 몸뚱이에 뿌리거나 또는 먹거나 하는 모습 등이 보이는데, 이와 같은 모습들이 자주자주 보인다.혹은 뱀이 그 몸뚱이를 감은 채 거꾸로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자신이 즐거워 뛰면서 허벅다리를 치며 깔깔대고 웃는 것을 보기도 하며, 혹은 스스로 화려한 치장거리가 잿더미에 떨어지거나 또는 재를 온 몸뚱이에 바르거나 다시 그것을 거두어 먹는 형상을 보기도 한다. 혹은 개미[蟻]가 그 몸뚱이를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혹은 소금을 씹던 개와 원숭이가 무엇에 쫓기다가 서로 물어뜯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갓 시집온 부인이나 또는 사당(祠堂) 귀신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집이 무너지거나 사당과 절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꿈속에서 밭가는 쟁기[犁]로 수염과 털을 깎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혹은 치아(齒雅)가 저절로 땅에 떨어지거나 또는 하얀 옷을 걸친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나체가 되어 걸어다니거나 참깨기름[麻油]을 자기 몸에 바른 채 흙 속에서 뒹구는 것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꿈속에서 가죽이나 풀로 만든 너덜너덜 떨어진 옷을 입은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꿈에 다른 사람이 낡은 수레를 타고 그 문 앞에 이르면 그를 맞아들이러 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온갖 화갑전(花甲煎 : 향의 이름) 따위의 향을 피우는데 친척들이 가져다가 그 몸을 장식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죽은 조상들이 검푸른 얼굴색으로 나타나 앞에서 부르면서 잡아끄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묘지(墓地) 사이를 노닐면서 꽃과 영락 따위를 주워 모으거나 또는 빨간 연꽃이 목 위에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큰 강물에 떨어져 물에 둥둥 떠다니거나, 또는 꿈속에서 밑바닥이 안 보이는 5호(湖)와 9강(江)에 거꾸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꿈에 그 몸이 우거진 숲 속에 들어갔는데 꽃과 열매는 하나도 없고 가시덤불에 몸이 찔리거나 긁히며 또는 와석(瓦石) 따위가 그 몸뚱이를 짓누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가지와 잎이 하나도 없는 마른 나무가 보이기도 하고 꿈에 그 위에 올라가서 혼자 즐기며 놀거나, 묘단(廟壇)에 들어가 혼자 손뼉을 치고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혹은 깊은 숲 속에서 혼자 즐거워 껄껄 웃고 마른 나무 가지를 꺾어 묶어서 짊어지고 가는 것을 보거나, 혹은 깜깜한 집에 들어가 빠져나올 문을 알지 못해하거나 또는 산악(山嶽)이나 바위틈에 끼어서 빠져나올 곳을 알지 못해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혹은 산이 무너져 자기 몸뚱이가 짓눌려서 구슬프게 울부짖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혹은 코끼리 떼가 갑자기 달려와서 그 몸을 짓밟는 형상이 보이기도 하며, 꿈에 머리로부터 온 몸뚱이를 흙먼지로 뒤집어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혹은 다 헤진 옷을 걸치고 허허벌판을 걸어다니는 형상이 보이기도 하며, 꿈에 범을 타고 날쌔게 달리거나 또는 나귀나 개를 타고 남쪽으로 여행을 하거나 또는 무덤 속에 들어가 손톱이나 머리칼을 태운 숯덩이를 거두어 모으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스스로 그 자신이 마른 꽃을 꽂고 태산(太山) 염왕(閻王)에게 끌려 들어가 문초를 받는 형상이 보이기도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세간에 있을 적엔 편안함이 많다가도
목숨이 다함에 이르면 급기야
두려워지고 병마에 상처를 입어
고달픈 핍박에 자재(自在)하지 못하네.
마음으로 번열하고 근심스럽게 번민하다
꿈에서 본 것으로 두려움을 품나니
마치 악한 사람에게 쫓김을 당하듯
근심과 두려움도 그와 같다네.
그 사람은 꿈에서 깨어나 마음에 두려움과 무서움을 품고 온몸을 벌벌 떨며, 목숨이 다하려 하는 것이라 헤아리면서 이것을 곱씹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꿈꾼 것은 예전엔 있지 않았던 일들이다'라고 생각하고는 마음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옷의 털이 곤두서고 급기야 질병이 더욱더 위독해지며, 진동이 일어나 불안해진다. 비유하면 사나운 코끼리 떼가 몰려와서 파초(芭蕉)를 짓밟는 것처럼, 병이 도져 침상(寢床)에 누워 있는 것도 비유하면 그와 같다. 그러다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다른 계책은 아무것도 없고 무턱대고 의원만 찾아오라고 하고, 형제와 친족들은 이렇게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의원을 부르러 보낸다.그런데 심부름을 간 사람마저 몸뚱이엔 더러운 때가 많이 묻고 의복은 너덜너덜 떨어지며, 털과 손톱 그리고 발톱은 길게 자란 데다가 다 떨어진 일산을 받쳐 쓰고, 발에 신은 버선은 해지고 나막신은 깨지며 낡은 수레를 타게 된다. 얼굴 색은 아주 새까맣고 두 눈은 푸르스름한데 손으로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주 만지작거리며, 수레를 끄는 소는 혹은 푸르기도 하고 혹은 까맣기도 하며, 또는 아주 하얗기도 한데, 다급하게 의사를 부르면서 수레에 오르기를 독촉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이 다니며 유람할 적엔
오직 쓸 데 없는 일만 좋아해서
하고 싶은 것을 제멋대로 행하며
일찍이 의사에 대해선 생각한 적 없다가
몸에 마침 중한 병이 걸려
위독하여 침상 위에 눕게 되자
그제서야 의원을 불러들여서
그 병을 고쳐보려고 애쓰네.
그 때에 의원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병자를 관찰해보니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렇게 괴이한 감응이 보이고, 게다가 날 부르러 온 사람의 복색(服色)과 그가 하는 말을 살펴보니 찢어진 일산을 받쳐 쓰고 수염과 손톱·발톱·머리카락 등이 어수선하고, 또 날 부르러 온 날짜도 아주 나쁜 날이다. 4일·6일·12일·14일, 이런 날짜에 오게 되면 모두가 상서롭지 못하다.'그 의원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흉한 별자리[星宿]가 범하였고 좋은 시기를 잃었으니, 이러한 때는 신선과 옛적 성인들도 꺼리는 날이다'. 그 의원은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비록 이렇게 괴이한 별자리의 길흉을 만났지만 어쩌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아무리 질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방편으로 녹여 없앨 수 있으니 만일 본래의 한명(限命)이 다하지 않았으면 생각으로 마땅히 제거하여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마주한 병자가 대(對)에 이르렀다면 그 병은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말한다면 좋은 날짜와 별자리의 길흉만 따질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역일(曆日)을 좇아 좋은 시기만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신선(神仙)이 항상 말하기를〈본래의 한명만 다하지 않았다면 마땅히 방편을 써서 혹 풍병(風病)이나 한병(寒病)을 다스릴 수 있고, 혹 횡사(橫死)할 일이 있더라도 이것들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명이 다했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가서 고쳐보려고 해도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의원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곧 일어나 떠나려고 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 둘이서
함께 출발해 바다로 들어가는데
혹은 저 언덕까지 가기도 하고
혹은 중간에서 그치기도 하듯이
질병의 바다에 떨어진 것도
비유하면 또한 이와 같아서
좋은 시기를 따라 병이 낫기도 하고
여의치 않아 죽는 이도 있다.
그 때 그 의원은 이미 병자의 집이 이르렀는데, 사악하고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흉악한 소리가 들려왔다.즉 잃어버리고 불타버리고 파괴되고 절단되고 깎아내고 끌어내고 죽을까 두려워서 떨고 끌려가는 등 우와좌왕(右往左往)하면서 구금되어 유폐당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점을 쳐보니 다시는 치료하지 못하고 죽고야 말 운명(運命)이었다. 남쪽에서는 여우가 울고 혹은 까마귀와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으며, 혹은 어린아이가 흙을 쌓아 모으기도 하고, 또는 벌거벗은 채 마주 서서 서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하였으며, 깨진 병(甁)과 동이[盆] 및 모든 기물들이 보였다.이런 변괴를 보고 나서 앞으로 나아가 병든 사람을 살펴보니 극심한 괴로움에 빠져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의원이 병자의 상태를 점쳐보니
놀라고 질겁해 불안에 떨고 있었으니
앉건 서건 침상 위에 누워서건 그러 해
가쁘고 심한 열이 살갗을 태우는 듯했네.
의원은 이와 같은 것을 보고 곧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모든 의학서적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니 이 사람은 꼭 죽을 모습이다. 얼굴 색은 몹시 두려워하고 눈꺼풀은 씰룩거리며, 몸뚱이는 누렇게 뜨고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나오며, 눈은 어둠침침하고 콧구멍에서는 누런 콧물이 흘러내리며, 얼굴빛은 색을 잃었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입술은 갈라지고 혓바닥은 메말라 그 모습이 마치 땅의 색깔처럼 누르스름하며, 온갖 혈맥은 푸른색이고 털과 머리칼은 모두 곤두섰으며, 머리칼을 잡아 당기고 코를 막아도 전혀 감각이 없으며, 숨결이 고르지 못해서 혹은 느리기도 하고 혹은 빠르기도 하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얼굴 색은 이미 변해버렸고
털과 머리카락은 곤두섰으며
응시하는 눈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고
혀는 굳어 변괴가 이미 나타났네.
병든 이에게 이런 반응 나타나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니
빠른 열화(熱火)에 포위된 것이
마치 풀과 나무를 태우는 것 같다.
또 다른 의학 서적[經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이 죽을 무렵이 되면 온갖 괴상한 변화가 일어난다. 설령 목욕을 시켰어도 마치 목욕하지 않은 사람과 같으며, 가령 좋은 향인 목밀향(木櫁香)·전단향(栴檀香)·근향(根香)·화향(花香) 등 이러한 여러 가지 향들을 피워서 그 향내가 아주 좋아도 병자가 그것을 맡게 되면 죽은 사람의 뼈·머리카락·털·손톱·살가죽·지방·골수·똥 따위를 태우는 냄새처럼 느껴지고, 또는 올빼미·독수리·여우·살쾡이·개·쥐·뱀·독사 따위를 태우는 냄새처럼 느껴진다. 또 병자의 음성도 변하여 마치 기왓장이 깨지는 듯한 소리로 말을 하고 목구멍이 꽉 막히며, 그 음성이 혹은 학·기러기·공작·소·말·호랑이·이리·천둥 소리와도 같다.병자의 성질도 변하여 일정치 못하니, 어떨 때는 단정한 모습을 나타내는가 하면, 혹은 몸이 보드랍기도 하고 혹은 뻣뻣하기도 하는 등 신체가 자주 변하며, 혹은 가볍기도 하고 혹은 무겁기도 하여 몸이 원하는 것을 잃어버린다. 이와 같은 모든 변괴는 틀림없이 목숨을 마칠 조짐이다."이상의 현상 중에 몇 가지 것에 직면하면 누구나 오래 살지 못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여러 가지의 변괴가 나타나고
온갖 괴로움이 온몸을 핍박하며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을 품나니
액난(厄難)을 당함이 이와 같네.
사람의 성명(性命) 이처럼 파괴되어
신체의 변괴 한 가지만이 아니니
마치 대나무와 갈대의 열매처럼
저절로 생겼다가 저절로 사라지네.
지금 내가 배우고 들은 대로 헤아려보자면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지면 변괴가 나타나는데, 입으로는 맛을 알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며, 힘줄과 맥박이 오그라들고 숨결이 고르지 못하며, 몸이 아파 신음을 토해내고 피와 기운이 미약하며, 몸이 점점 여위고 힘줄이 툭 불거지며, 혹은 몸이 갑자기 살이 찌거나 혈맥(血脈)이 불쑥 일어나며, 양쪽 뺨이 아래로 처지고 머리를 자꾸 떨며, 보는 모습이 가증(可憎)스럽고 거동(擧動)이 느슨하며, 눈동자는 보통 때보다 몹시 검고 눈이 보이지 않으며, 대·소변이 통하지 않고 모든 뼈마디가 풀리고 모든 감관이 안정을 찾지 못하며, 눈과 입 속에는 온통 푸른 기운이 맺히고 연달아 숨을 헐떡거리는 등, 모든 변괴가 각기 이와 같이 나타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병의 괴로움 헤아릴 수 없고
혈맥과 정기가 모두 말라버리니
나무 뿌리에 물을 부어 주듯이 마땅히
가엾게 여겨 구원[拔栽]5)하소서.
그 때에 의원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병이 들었으니 틀림없이 죽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옛날에 의학 서적을 지어낸 훌륭한 의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어피제공(於彼除恐)·장이회장(長耳灰掌)·양언장육(養言長育)·급교다염(急敎多髥)·천우장개(天友長蓋)·대수퇴전(大首退轉)·초췌태백(憔悴太白)·최존노면(最尊路面)·조우기백(調牛岐伯)·의회편작(醫徊扁鵲) 등이다. 이들은 모두 다 몸의 병을 다스린 사람들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상 거론한 이들은
법을 존중하는 범지(梵志) 선인들로서
바르게 구제하여 결과가 있었으며
또한 국왕(國王)의 의원이었네.
이들은 주로 삶과 죽음을 다루었는데
해박한 지식으로 능히 횡액을 구제하였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의서로써
목숨 구제하길 범천(梵天)이 만든 법처럼 하였네.
5) 현응(玄應)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제12권에 의하면, "발재(拔栽)는 '심어 가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의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주로 귀와 눈을 치료했다. 그들의 이름은 안현동요(眼眴動搖)·화투영명(和鬪鈴鳴)·월지영자(月氏英子)·협장선각(篋藏善覺)·조우목금독효(調牛目金禿梟)·역씨뇌명(力氏雷鳴) 등이다. 이들 의원들은 주로 귀와 눈을 치료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안현(眼眴) 등 의원들은 약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조합하여 병에 걸려 잘못된 곳 없애기를 햇볕이 온갖 어둠 없애듯 하였네.또 종창(腫瘡)에 능한 의원이 있어 모든 종창을 잘 치료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법재치제(法財稚弟)·단정사약(端政辭約)·황금언담(黃金言談) 등이다. 이들 의원들은 모두 종창을 잘 치료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위의 의원들은 종창에 능한 이들로
온갖 종창 잘 치료하여
많은 질병의 액난 없애기를
저 평지를 걸어가는 것처럼 하였네.
법재(法財)들이 세간에 출현한 까닭은
의학 서적을 만들어
올바르게 종창의 질병을 치료해
중생들의 환난(患難)을 없애주기 위해서라네.
또 어린아이들의 질병을 잘 치료하는 의원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존가섭(尊迦葉)·기역(耆域)6)·봉만속질(奉慢速疾) 등이다. 이들은 모두 어린
6) 산스끄리트어로는 j v , j vaka라고 한다. 또는 한문으로 음역하여 기바(耆婆)·시박가(時縛迦)라고 하며, 의역하여 고활(固活)·능활(能活)이라고 한다. 어진 의사의 이름이다.
아이의 질병을 잘 다스렸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어떤 창두(蒼頭)와 같아
제 할 일을 버리고 교만을 없앴네.
그러므로 세속에 태어나
상처입은 이 가엾어 아이들의 병을 치료했네.
이 존가섭(尊迦葉) 등의 의원은
바른 법으로 인(仁)을 행하며
어린아이를 가엾게 여긴 까닭에
곧 의학 서적을 만든 것이네.
또 귀신들린 병을 잘 다스리는 의원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대화(戴華)와 불사화(不死火) 등이다. 이들은 귀신이 사람에게 붙어 괴롭게 하는 것을 잘 물리친 의원들이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별자리 바뀌어 돌 듯이
인생도 또한 그러하건만
주로 두려운 것만 있어
위험과 해로움이 많이 있다네.
이 의학서적을 만든 것은
죄다 그 환란에서 풀려나게 하기 위함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바른 법으로
어리석음 없애 밝음을 보게 하신 것 같네.
가령 이상에서 거론한 모든 의원들과 환사[幻蠱道], 그리고 무당들을 다 불러모은다 할지라도 그러한 병은 고칠 수 없으며, 결국엔 죽고 말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죄를 짓고 근심거리 만들어
애쓰고 고달파하며 온갖 고뇌 품다가
병에 걸려 그 마음 산란하며
더러움 많은 목숨 날로 재촉 받건만
병마에 빠진 신세 되어서
죽을 증세 나타나서야 두려워하나니
천제(天帝)와 모든 신(神)들도
구원치 못하는데 나인들 어찌하리.
의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중얼거렸다. '목숨이 아직 붙어 있구나. 명이 끊어지기 전에 얼른 피해가야 하겠다.'그렇게 생각하고는 곧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이 병자가 혹 밥과 맛있는 음식을 달라고 하거든 환자가 달라는 대로 다 주고 그의 뜻을 거슬리지 마시오. 나는 급한 일이 생겨 지금 떠났다가 그 일을 마치고 꼭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일부러 그렇게 말하고는 곧 물러가 버렸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무렵
얻은 병이 너무도 위중한데
번뇌와 더불어 함께 어울려
죄가 이르러도 스스로 알지 못하네.
괴변이 저절로 일어나고
한명(限命)에 이르러 음열(陰熱)이 심하니
설사 저 집금강(執金剛)이라 할지라도
그 목숨을 건지지는 못하리.
이 때 병자 집안의 크고 작은 남녀 가족들은 의원의 말을 듣고, 곧 탕약과 모든 주술(呪術) 따위를 다 던져버리고 집안 권속들과 친척, 그리고 이웃들과 친한 벗들이 모두 모여 병자를 둘러쌓고 슬피 울면서 병세가 위독함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도축업자들이 돼지를 붙들어 끌고 들어가서 잡으려고 할 때에 다른 돼지들도 다 놀라고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귀를 세우고 죽어 가는 돼지의 소리를 듣고는 당황하고 놀란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구나.또 비유하면 마치 사나운 호랑이 떼가 소를 후려쳐 잡을 적에 다른 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나 혹은 산 속 바위틈에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깊은 골짜기에 숨기도 하며, 또는 숲 속에 들어가 놀라 날뛰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것과 같구나.비유하면 또 고기 잡는 사람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면 다른 물고기들이 그 사실을 보고 놀라 흩어져 돌 틈이나 물풀 밑에 숨는 것과도 같고, 또한 보라매가 새 떼에 달려들어 후려쳐 잡을 적에 다른 새들이 그것을 보고 각기 흩어져 날아가는 것처럼, 사람도 그와 같이 덧없어 한명[對]에 다다르면 그 몸이 무너져 흩어지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온 집안 권속들과 친족들은 틀림없이 서로 이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슬프게 울고 있었다.이와 같이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즈음에 임하여 염왕(閻王 : 閻羅大王)의 사자(使者)가 저절로 이르렀고, 그 사자가 와서 쇠사슬로 얽어매고 화살로 쏘아 생사선(生死船)에 끌어다가 태워 가지고 떠나려고 하자, 온 집안 권속들과 친족들은 빙 둘러싸고 머리 풀어 헤치고 슬피 통곡하면서 먼지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애달프게 울며 탄식하면서 눈물이 얼굴에 뒤범벅이 된 채 모두들 말하였다. "애통하구나. 어찌하여 서로들 이별해야 한단 말인가?"이렇게 그들은 가슴을 치면서 답답해하면서 병든 사람의 생전의 여러 가지 덕행을 칭송하면서 마음속으로 오열하는 등 고뇌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사람 질병에 시달려서
몸은 차갑고 온기가 사라지자
온 집안 사람들 죄다 모여서
소리 높여 슬프게 우네.
지은 업은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뿐
꿀벌이 꽃의 맛을 채취하듯 하다가
마음은 마침내 근심과 슬픔을 받고
온 집안 친족들까지 고뇌하게 하네.
사람의 질병은 이와 같아서 몸 속에 도풍(刀風)이 일어나 병자로 하여금 골절이 풀리게 한다. 또 과(科)라는 바람[風]이 일어나 모든 지절을 끊어지게 하고, 진(震)이라는 바람이 일어나 힘줄과 맥을 느슨하게 하며, 파골(破骨)이라는 바람이 일어나 병자의 골수를 녹게 하고, 감(感)이라는 바람이 일어나 사람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며, 또 눈·귀·코·입·목구멍을 모두 푸르게 한다.이러한 바람이 모든 구멍을 드나들면서 그 몸을 끊어버리고 무너뜨리며 깎아버린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은 지협(止脇)이다. 그 바람은 몸 속과 무릎·어깨·옆구리·등·척추·배·배꼽·대장·소장·간장·허파·염통·지라와 그 밖에 여러 장부(臟腑)들을 모두 끊어지게 하며, 또 선(旋)이라는 바람이 일어나 지방·피·대변·소변과 생장(生臟)·숙장(熟臟)의 먹은 음식을 소통하지 못하게 하고 한기(寒氣)와 열기(熱氣)를 죄다 마르게 한다.
또 절간(節間)이라는 바람이 일어나 모든 지절(支節)을 오그라지게 하기도 하고, 혹은 펴지게 하기도 하며, 손과 발을 들어 허공을 잡으려고도 하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번민하며 답답해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시시덕거리며 웃기도 한다.또한 크게 탄식하기도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애처로우며, 뼈마디마다 끊어지고 힘줄과 맥박이 늘어지며 골수와 뇌가 녹아 내리며, 눈은 색깔을 보지 못하고 귀는 소리를 듣지 못하며,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입은 맛을 느끼지 못하며, 몸은 차갑고 기운은 끊어져 더 이상 의식이 없다. 그러나 아직 가슴 밑은 그래도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어 혼신(魂神)이 부지하고 있지만, 뻣뻣하기가 마치 나무토막과 같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도풍이라는 바람이 일어날 땐
몸이 흔들려서 많이 불안해지고
온갖 인연이 모두 다 이르건만
그 모든 걸 스스로 깨닫지 못하네
.몸이 갖가지 괴로움 당하여
목숨이 곧 다하게 되나니
마치 활줄이 늘어지고
끊어져 쓰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네.그
때에 그 사람[其人 : 병이 든 사람]은 마음이 초조한 채 소유하고 있던 4대(大)가 모두 쇠락(衰落)하고 미약한 목숨이 비록 붙어 있기는 하나 마치 꺼지려고 하는 등불과 같다.그러나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근(身根)과 의근(意根)이 있으므로 그가 살아오는 동안에 지었던 선과 악으로 인한 재앙과 복, 그리고 길함과 흉함을 마음속으로 기억하여 금생(今生)과 후생(後生)에 꼭 해야 할 것들을 마음으로는 모두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선을 받들어 행한 이는 얼굴빛이 화열(和悅)하고 악을 행한 이는 얼굴빛이 화열하지 못하다. 그 사람의 마음이 기쁘고 얼굴빛이 좋으면 틀림없이 좋은 세계로 돌아가고, 얼굴빛이 나쁘고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선(善)하지 못하면 곧 나쁜 세계로 나아가는 줄을 알게 된다.가령 어떤 늙은 사람이 깨끗한 거울에 비추어보면 스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은 하얗고 얼굴은 주름지고, 이[齒]가 빠지고 상처 난 흔적과 때묻고 더러운 것과 가죽이 늘어지고 척추가 굽은 것과 나이 많아 허탈한 모습이 모두 보일 것이다.이 같은 것을 보고는 도리어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눈을 감은 채 거울을 치우면서 '나는 이미 젊음은 가버리고 쇠하고 늙음이 이르러 마음에 시름과 근심만 생기며, 이미 편안함은 없어지고 아주 곤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구나' 라고 할 것이다.본래 악을 행한 이는 목숨이 다할 때에 이르러 흉악한 변괴를 보고는, 근심하고 슬퍼하며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서 '나는 틀림없이 나쁜 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면서 혼자 깊이 뉘우치고 꾸짖기를 마치 늙은 사람이 거울에 비추어 보고는 자신이 노쇠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아는 경우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금전과 보물을 모으는데 재주 있고
졸렬함이 똑같지 않지만
가령 악을 행한 사람은 누구나
깊은 못에 빠지게 되리.
죽었다가 비록 다시 태어나더라도
돌이켜 보면 의지할 데 없는 것이
마치 물에 표류하는 것과 같나니
죽음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네.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몸과 입과 뜻을 거두어 단속하여 깨끗하게 많은 덕을 닦고 법을 재물[財]로 삼는 것이니, 목숨이 다할 때에 이르러서는 마음속으로 기쁨을 품고 좋아서 펄펄 뛰면서 '나는 정녕코 하늘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한다.이를 비유하면 장사하는 이가 생계를 위해 멀리 장사를 떠나 험난한 길을 겪으면서 많은 이익을 얻어 가지고 집에 돌아옴에 기쁜 마음이 한량없는 경우와 같다.또 비유하면 농사를 짓는 이가 밭 갈 때를 놓치지 않고 비바람이 절기를 맞추어 5곡(穀)을 많이 거두어 그릇마다 가득히 담아놓으면 마음이 매우 흡족한 경우와 같다.또 비유하면 위중하던 병이 낫고 남의 빚[債]을 다 갚고는 마음이 기뻐 펄쩍펄쩍 뛰는 것과 같다.또한 꿀벌이 꽃가루를 채취하여 꿀을 만드는 것처럼 덕을 쌓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나는 분명 하늘에 오를 것이다'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배움이 있는 올바른 사람은
쌓고 쌓은 진실한 법 행하여
온갖 근심을 잘 넘기고
스스로 밝은 도를 이룩했나니
비유하면 한가하게 살고 있는 이가
높은 산 위에서 그 아래를 굽어보듯
저 사람도 목숨이 다하려 할 때에
좋은 길 보이는 것도 이러하다네.
그 때 그 사람이 목숨이 이미 다하고 나면 몸과 의식이 사라지고, 곧 중지(中止)7)를 받게 된다.이를 비유하면 저울에 달아 그 가볍고 무거움을 따라 혹은 올라가기도 하
7) 중유(中有, Antar -bhava) 또는 중음(中陰)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고 나서 미래의 생을 받기 전의 중간존재(中間存在)를 말한다.
고 혹은 내려가기도 하는 것처럼 선(善)과 악(惡)도 그와 같다.정신이 사람의 몸을 떠나면 중지에 머물러 있게 되는데 5음(陰)이 다 원만하게 갖추어져 결함이나 부족한 점이 없다. 죽을 때에는 5음이 중지에 이르는 것은 아닐지라도 중지에서의 5음 또한 그 근본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이를 비유하면 인장(印章)을 가지고 인주[印泥]에 도장을 찍을 경우 그 인장은 인주에 밀착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과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경우와 같다.비유하면 5곡을 심으면 싹에서 줄기가 나오고 열매가 맺는데 줄기나 열매가 본래 종자는 아니지만 또한 그 근본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람이 죽으면 정신과 혼백(魂魄)이 5음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한 그 근본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본래 심은 것을 따라 각기 과보(果報)를 얻나니, 덕을 쌓은 이는 선(善)한 중지에 머물고 악을 행한 이는 죄(罪)의 중지에 있게 되는데, 오직 도의 안목이 있어야 이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중지에 머무는 데에는 세 가지 식(食)8)이 있나니, 첫째는 촉연(觸軟 : 觸食)이요, 둘째는 심식(心食 : 思食)이며, 셋째는 의식(意識 : 識食)이다. 중지에 머무는 자는 혹 적게는 1일에서부터 최고 7일 동안 머물러 있다가 부모들이 교합하는 데 이르나니, 그 본래 행한 것을 따라 세 갈래 길[三途]9)이나 인간 세계 또는 하늘로 나아가게 된다.
8) 유정(有情)의 신체를 지켜나가는 자양분을 음식[食]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여기에 유정의 육체적(肉體的) 요소인 단식(段食)을 더하여 4식설(食說)이 설해지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정신적(精神的) 요소로서의 3식(食)만 표현되었다. 3식 가운데 촉연은 감각을 말하는 것으로 희열(喜悅)의 정감을 일으키는 감촉에 의해 스스로의 신체나 생명을 기르기 때문이다. 심식은 사고·의지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사상·희망에 의해 신체를 지켜 나가기 때문이다. 식식(識食)은 6식(識)이 작용하여 인간의 신체나 생명을 유지 발달시키는 것으로 마음에 의해 신체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9) 지옥·아귀·축생의 3악도(惡道)를 말한다. 지옥은 맹렬한 불길에 타는 곳이므로 화도(火途)라 하고, 아귀는 칼막대기로 박해당하는 곳이므로 도도(刀途)라 하며, 축생도는 서로 잡아먹는 곳이므로 혈도(血途)라 한다.
악을 많이 행한 이는 중지에 머물 때 큰 불이 일어나서 그 몸을 둘러싸는 것이 마치 들불[野火]이 풀과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것이 보이며 까마귀·보라매·독수리와 흉악한 사람들이 손톱과 발톱이 모두 길고 얼굴과 눈은 추하고 더러우며, 의복은 너덜너덜 떨어졌고 머리 위에서는 불이 타오르는 채로 각자 무기나 막대기를 들고 때리기도 하며, 창으로 찌르고 칼로 쪼개는 것이 보여 마음에 공포를 품고 행여나 구원을 얻을까 하여 멀리 잔뜩 우거진 숲을 바라보다가 그곳으로 달려간다.그 때 곧 중지에서의 5음을 잃고 도산검수(刀山劍樹 : 바늘산) 같은 니리(泥犁 : 地獄) 속으로 들어가게 되나니, 지옥에 떨어질 사람은 이와 같은 것이 보인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미혹하기는 취한 코끼리와 같아
거룩한 법교(法敎)를 어기고
더럽고 혼탁함은 흙탕물과 같아
어지러운 마음이 이러하다네.
항상 바른 도를 버리고
방심하여 삿된 길로 드나니
이런 사람은 많은 괴로움을 만나
목숨 마치면 지옥에 떨어지리.
악을 적게 행한 사람은 불이나 자욱한 연기와 먼지가 그 몸을 가득 둘러싸는 모습이 보이며, 또한 사자·호랑이·이리·뱀·독사·코끼리 떼에 쫓기는 현상이 보이며, 또는 옛 개천·깊은 물·무너지는 산·큰 시내를 보고는 마음에 두려움을 품고 그 가운데로 뛰어 들게 된다.그 때 바로 중지에서의 5음을 잃고 축생(畜生)의 세계에 떨어지나니, 이런 변괴가 보이는 이는 짐승의 몸을 받을 줄 알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음을 익히고 지혜·방편을 버린 이는
혹은 취하여 저승길에 떨어지며
악한 입 놀려 항상 추악한 말만 하고
사람 때리기를 좋아하거나
또한 죄와 재앙을 범하고
착하지 못한 일 하기를 좋아하네.
이와 같이 자행(慈行)이 없는 사람은
짐승 가운데 태어나게 되리.
만일 죄가 미미한 사람은 사방에서 두루 뜨거운 바람이 일어나 신체를 푹푹 찌며, 저절로 배가 고프고 목말라 하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모두 칼·몽둥이·창·활·화살 따위를 잡고 와서 그를 빙 둘러싸는 현상이 보이고, 큰 성(城)을 바라보다가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된다.마침 이런 마음을 일으키면 곧 중지에서 받았던 5음을 잃어버리고, 아귀[薜荔] 세계에 태어나나니, 이와 같은 변괴가 보이는 사람은 마땅히 아귀(餓鬼)의 세계에 떨어질 줄 알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강하고 야비하며 남을 모함하기 좋아하며
계율을 멀리하고 법을 따르지 않으며
금법(禁法)을 범하고 더럽고 혼탁한 일을 하며
음식을 탐하여 혼자 먹으려고 하면
농혈(膿血)이 흥건한 곳에 떨어져
배고픔과 번뇌가 극심하나니
마땅히 이러한 사람들은
아귀세계에 들어가는 줄 알아야 한다.
착한 덕을 깨끗하게 닦은 이는 사방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이 매우 향기로우며, 여러 종류의 향기가 그의 몸 위에 쏟아지고 모든 기악(伎樂) 소리가 서로 화합하여 울려 퍼지는데 원관(園觀)을 바라보다가 수목(樹木)과 꽃과 열매 따위가 아주 무성한 것이 보이면, 그곳으로 가고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면 그 때 곧 중지에서의 5음을 잃고 그의 정신이 저절로 도리천(忉利天)에 오르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법을 익히고 거룩한 도에 귀의하여
복업(福業)을 심으면 하늘에 태어나서
기악이 울리매 스스로 즐거워하고
모든 꽃나무 속에서 노닌다.
아름답고 고운 옥녀(玉女)들은
단정하고 안색도 조용하여
언제나 보아도 마음이 즐거우며
큰 산 꼭대기에 거처하리라.
행동이 순박하게 한결같지 못하여 혹 착하기도 하고, 혹 악하기도 한 사람은 마땅히 인간세계[人道]에 떨어지리니, 부모들이 교합하면 정신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곧 와서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부모의 덕상(德想)이 함께 동시에 동등해지면 그 어미의 태(胎)가 소통함에 구속이나 걸림이 없고 마음에 기쁨을 품고 좋아서 뛰고 삿된 생각이 없으며, 곧 부드러워져 서글퍼함이 없으며, 질병이 없어서 충분히 자식을 밸 능력이 있으며, 거들먹거리거나 또한 어긋난 행동이 없고 바른 법을 따르고 혼탁하고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곧 일체의 흠이 있거나 더러운 먼지를 버린다.아비의 정(精)은 맑지도 않고 또한 흐리지도 않아 적당하며, 거세지도 않고 또한 부패하지도 않으며, 빨갛거나 까맣지도 않고 또는 풍한(風寒)과 온갖 독기가 섞여 있지도 않아 소변과는 아주 판이하다.그러면 마땅히 와서 태어날 이의 영혼이 곧 다가와서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말하기를 '가령 이 남자가 여자와 더불어 어울리지 않는다면, 내가 그녀와 더불어 통하여 저 남자의 노여운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싶다. 저 남자를 분노하게 하고 나서, 공경하는 마음을 품어 여자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노여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생기게 될 것이다' 하면서 곧 남자를 배제하고 여인에게 향하려고 할 무렵 아버지의 정액이 떨어지면 그 영혼은 기뻐하며 '이것은 바로 나를 허락한 것이다' 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그러면 그 때 바로 중지에서의 5음을 잃고 포태(胞胎)에 들어가 부모들의 정기와 합해지게 된다. 이미 포태 속에 있게 되면 갑절이나 더 즐거워 펄펄 뛰는데, 이것은 중지에서의 5음은 아니지만 또한 그것과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포태 속에 들어가는 이것을 곧 색음(色陰)이라 하고, 기뻐하는 때를 통락음(痛樂陰 : 受陰)이라 하며, 정(精 : 父母의 交合)에 대한 생각이 있을 때를 곧 상음(想陰)이라 하고, 본래의 죄와 복의 인연으로 인하여 포태에 들어가는 것을 곧 행음(行陰)이라 하며, 영혼이 포태를 의지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을 곧 마땅히 식음(識陰)이라 하나니 이렇게 화합하는 것을 5음(陰)이라고 한다.태 속에 들어있을 때에 두 가지 근(根 : 감관)을 얻나니, 곧 의근(意根)과 신근(身根)이다.7일 동안은 그 속에 머물면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다가 14[二七]일째에 이르면 그 태가 점차 변해서 멀건 타락[酪]처럼 되며, 21[三七]일째에 이르면 생 타락[生酪]처럼 되고, 28[四七]일째에 이르면 정기가 엉겨서 익은 타락[熟酪]처럼 되며, 35[五七]일째에 이르면 태와 정기가 드디어 변하여 마치 생소(生酥)처럼 되어 있다가 42[六七]일째에 이르면 변하여 굳은 살[息肉]처럼 되며, 49[七七]일째에 이르면 더욱 발전해서 한 조각의 살덩어리[段肉]처럼 되고, 또 56[八七]일째에 이르면 그 단단하기가 마치 질그릇[坏]처럼 되고, 63[九七]일째에 이르면 또 변하여 다섯 개의 포(皰)가 생기나니, 즉 두 팔꿈치와 두 허벅다리와 목 부위가 생기는데 안에서부터 생겨 나온다.70[十七]일째에 이르면 또다시 다섯 개의 포가 생기나니, 즉 두 팔목과 두 발목과 머리가 생기는 것이고, 77[十一七]일째에 이르면 계속 스물네 개의 포가 생기나니, 즉 손가락·발가락·눈·귀·코·입으로서 이것은 안에서부터 생겨나오며, 84[十二七]일째에 이르면 위의 모든 포의 모양이 점점 더 성숙해지고, 91[十三七]일째에 이르면 배[腹]의 모양이 나타나며, 98[十四七]일째에 이르면 간·허파·염통·지라·콩팥 등이 생기고, 105[十五七]일째에 이르면 대장(大膓)이 생기며, 112[十六七]일째에 이르면 소장(小膓)이 생기고, 119[十七七]일째에 이르면 위()가 생기며, 126[十八七]일째에 이르면 생장(生臟)과 숙장(熟臟) 이 두 가지가 생기고, 133[十九七]일째에 이르면 넓적다리·발꿈치·창자·갈비뼈·손바닥·발등·팔·마디·힘줄 등이 생기며, 140[二十七]일째에 이르면 음부[陰]· 배꼽·젖·턱·목 등의 모양이 생긴다.147[二十一七]일째에 이르면 몸뚱이 뼈가 각기 나누어져서 그 응하는 바를 따르게 되나니, 두 뼈는 머리에 붙고 서른두 개의 뼈는 입에 붙고, 일곱 뼈는 목에 붙고 두 개의 뼈는 넓적다리에 붙으며, 두 개의 뼈는 팔꿈치에 붙고, 네 개의 뼈는 팔뚝에 붙으며, 열두 개의 뼈는 가슴에 붙고, 열여덟 개의 뼈는 등에 붙으며, 두 개의 뼈는 볼기[臗]에 붙고, 네 개의 뼈는 무릎[脥]에 붙으며, 마흔 개의 뼈는 발에 붙고, 미세한 뼈 108개는 몸뚱이 살과 합쳐지며, 열여덟 개의 뼈는 양쪽 갈비에 붙고, 두 개의 뼈는 어깨에 붙는다.이와 같이 몸에 있는 뼈 300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뼈가 유연(柔軟)하여 금방 달린 조롱박과 같은 모양이다가 154[二十二七]일째에 이르면 그 뼈가 점차 단단해져서 마치 익지 않은 조롱박과 같아지고, 161[二十三七]일째에 이르면 그 뼈가 더욱 더 단단해져서 마치 호도(胡桃)와 같이 된다. 이 300개의 뼈가 각기 서로 연결되어 발 뼈는 발에 붙고 무릎 뼈는 무릎에 붙으며, 복사뼈는 복사뼈에 붙고 넓적다리뼈는 넓적다리에 붙으며, 볼기뼈는 볼기에 붙고 척추 뼈는 척추에 붙으며, 가슴뼈는 가슴에 붙고 갈비뼈는 갈비에 붙으며, 입술 뼈는 입술에 붙고, 목·턱·팔뚝·손·발의 모든 뼈가 모습이 바뀌어져 연결 된다.
이와 같이 합쳐진 뼈는 마치 환화(幻化)와도 같고 또는 조합해서 만든 수레와도 같나니, 뼈는 담장[垣墻]이 되고 힘줄은 흐르는 피를 묶었으며, 살갗과 살로 몸 속을 바르고 얇은 피부로 그것을 감싸고 있다.본래의 죄와 복으로 인하여 과보를 얻어 이런 것을 이룩하는 것인데 생각이 없이 그 마음의 근원에 의지하고 바람을 따라 끌려서 거동(擧動)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저
다섯 개의 뼈가 모이고 합쳐
마음을 따라 가볍게 멋대로 움직이고
몸에 붙어 있어 서로 버티는 것이
마치 몸을 당겨 기어가는 뱀과 같네.
전생에 지었던 행인
선과 악이 일어나는 법은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다니는 길이
혹 평평하기도 하고 가시덤불도 있는 것과 같다.
168[二十四七]일째에 이르면 700개의 힘줄이 생겨 그 몸뚱이를 얽어매고, 175[二十五七]일째에 이르면 7천 개의 맥박이 생기는데 아직은 완전하게 성숙되지 못한 상태이며, 182[二十六七]일째에 이르면 모든 맥박이 다 빠짐없이 원만하게 갖추어지고 성숙해져서 마치 연 뿌리의 구멍[蓮華根孔]과 같아지며, 189[二十七七]일째에 이르면 363개의 힘줄이 모두 이루어지며, 196[二十八七]일째에 이르면 처음으로 살이 생기고, 203[二十九七]일째에 이르면 살이 점점 두터워진다.210[三十七]일째에 이르면 겨우 피부 모양이 생기고, 217[三十一七]일째에 이르면 피부가 점점 변해서 두껍고 단단해지며, 224[三十二七]일째에 이르면 피부가 변해서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231[三十三七]일째에 이르면 귀·코·입술·손가락·발가락과 무릎의 마디가 모두 이루어지며, 238[三十四七]일째에 이르면 99만 개의 털구멍이 생기긴 해도 털구멍이 아직은 완전한 상태는 아니고, 245[三十五七]일째에 이르면 털구멍이 완전하게 갖추어지며, 252[三十六七]일째에 이르면 손톱과 발톱이 이루어진다.259[三十七七]일째에 이르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여러 가지 바람이 일어나나니, 바람이 일어나 아이의 귀·눈·코·입을 트이게 하기도 하고, 혹은 바람이 일어나 그 털과 머리카락을 물들게 하기도 하는데, 혹은 단정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추하게 하기도 한다. 또 바람이 일어나 신체와 얼굴의 색을 형성하는데, 혹은 하얗게 하기도 하고 혹은 빨갛게 하기도 하고 까맣게 하기도 하며, 예쁘게 하기도 하고 혹은 밉게 하기도 하니, 이 모두는 전생에 지은 행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7일 동안에 풍(風)·한(寒)·열(熱)이 생기고 대변과 소변을 통하게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 몸은 그 내부가 힘줄로 얽혀지고
모든 혈맥으로 된 것으로서
부정한 부패물만 담겨 있나니
물로 새어나가는 모든 구멍을 씻어라.
허망하게 덮여 마음에 부림을 당하고
교활함과 거짓이 합쳐 이루어지니
기계로 움직이는 나무 인형처럼
구하려 하는 것 얻기가 매우 어렵네.
266[三十八七]일째에는 어머니 뱃속에 있으면서 본래 지었던 행을 따라 저절로 바람이 일어나나니, 전생에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곧 향기로운 바람이 일어나 몸과 뜻에 맞고 유연(柔軟)하여 티가 없게 하며, 그 골절에 불어넣어 단정하게 하므로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된다.전생에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냄새나는 바람이 일어나 몸이 편안치 못하고 마음과 뜻에도 맞지 않으며, 그 바람이 골절에 불어 등이 구부러지게 하고 단정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못생긴 남자가 되게 하므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게 된다.이 266[三十九七]일은 4일이 모자라는 아홉 달째인데, 그 4일 동안에 아이의 신체와 골절이 자라나서 곧 완전한 사람이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 몸이 아홉 달을 거치는 동안
곧 모든 신체와 혈맥을 갖추고
골절이 모두 완성되며
원만하게 갖추어 결함이 없다.
뱃속에서 점차 저절로 갖추어져
차츰차츰 커지고 자라나서
기한이 되자 모두 완전하게 되는 것이
마치 달이 점점 보름달이 되가는 것과 같네.
그 어린아이의 신체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 부분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고, 한 부분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신체에 난 모든 머리카락·털·뺨·눈·혀·목구멍·염통·간·지라·콩팥·창자·피 같은 연한 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고, 손톱·발톱·이[齒]·뼈·마디·골수[髓]·뇌(腦)·힘줄·맥박 같은 단단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의 신체 서로 연계(連繼)됨이
모두 부모로부터 받아서 생겨났고
여러 가지의 골절 또한
인연이 변화하여 된 것이네.
이렇듯 의지하여 얼굴빛을 이루었다가도
모두 마땅히 노쇠하여 없어지고 마나니
여러 가지 재료를 합해 수레를 만들듯이
몸뚱이를 헤아려 보면 그 또한 그러하다.
화살 만드는 데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하듯
몸을 이루는 것도 그와 같다.
부모로부터 그리고 과보를 인하여
그런 뒤에야 비로소 생겨나게 된다.
그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는 생장 아래와 숙장 위,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사내 아이는 등을 밖으로 하고 얼굴은 안으로 향한 채 왼쪽 옆구리에 있고, 계집아이는 등을 어미에게 대고 얼굴은 밖으로 향한 채 오른쪽 옆구리에 있다.냄새나는 곳에서 깨끗하지 못한 오로(汙露)를 고통스러워하면서 모든 골절을 구부린 채 펴지도 못하며, 가죽 주머니 속에 버려져 있고 창자 그물에 얽매이고 싸여 있다. 피투성이가 되고 더러운 것들이 묻은 채로 거처하고 있는데 너무나 좁아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똥과 오줌 따위의 더러움에 밀착되어 있는 모습이 이와 같다.아홉 달째 4일이 모자라는 그 동안에는 전생에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첫 날과 다음 날에 마음을 내어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원관(園觀)에도 있었고 또한 천상(天上)에도 있었다' 하는데,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나는 니리(泥犁 : 地獄)세계의 지옥에 있었다' 하면서, 사흘이 지나는 동안 시름하면서 좋아하지 않다가 4일째에 이르면 어미의 뱃속에서 바람이 일어나, 혹은 위로 불기도 하고 혹은 아래로 불기도 하면서 그 아이의 몸을 굴려 머리를 거꾸로 하게 하여 산문(産門)으로 향하게 한다.이 때 덕행이 있는 사람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못에 몸을 던져 목욕하며 물 속에서 놀다가 높은 평상 꽃향기가 있는 곳으로 떨어진다' 하는데, 복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을 내어 말하기를 '나는 산으로부터 떨어져 숲 속이나 언덕, 또는 깊은 구렁이나 더러운 곳에 떨어지거나 혹은 지옥 그물 속이나 가시덤불이나 넓은 들판이나 돌 틈이나 창과 칼 위에 떨어진다'고 하면서 시름하고 근심에 싸여 즐거워하지 않나니, 선과 악의 과보가 이와 같이 서로 같지 않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만
일 타오르는 불 속에 뛰어들면
자욱한 연기가 몰려들어 둘러싸는 것처럼
방일하게 산 과보로 이루어진 것은
그 몸이 끓는 물 속에 있는 것 같네.
괴로움과 즐거움이 말미암는 바는
모두 죄와 복으로 인해 이루어지나니
여러 생(生) 동안 지었던 그대로
몸을 받는 것이 각각 이와 같네.
그 어린아이의 몸이 이미 산문(産門)에 당도했을 때나 또는 땅에 떨어졌을 때, 바깥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여인이 손을 대어 따뜻한 물로 어린아이를 씻으면, 독한 기운이 핍박하여 그 고통이 마치 종창(腫瘡)을 앓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괴로운 고뇌(苦惱) 때문에 혹 죽는 게 아닌가 하고 두려움에 잠겨 문득 어리석음과 의혹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혼미하고 심란해져서 본래 어떤 곳으로 따라 와서 어느 곳으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마침 태어나 땅에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냄새나는 곳에 있을 때에는 귀신과 도깨비[鬼魅]가 와서 둘러싸 나쁘고 삿된 곳에 떨어지고, 비시(飛屍)에 접촉되며, 고도(蠱道)와 전귀(癲鬼)가 저마다 엿보다가 범하는 것이 마치 네 거리 길에 떨어져 있는 한 조각 고기 덩어리에 까마귀·솔개·보라매·이리 떼 따위가 각각 몰려와서 다투는 것과 같나니, 모든 요사스런 귀신과 도깨비가 아이에 대하여 틈을 엿보려고 빙 둘러 있는 모습도 또한 이와 같다.전생에 선을 행한 이는 간사한 무리가 틈을 타지 못하지만, 혹 전생에 악을 행한 이는 온갖 간사한 무리가 곧 달라붙는다.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에는 어머니의 젖으로 인하여 자라나다가 점점 커지게 되면 음식을 먹고 장성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미의 태 안에 있을 때에도
온갖 괴로움을 받고
이미 태어나서 사람의 몸 얻어도
그 고통 백천 가지나 되네.
모든 감관[根] 이미 갖추고 나서
이로써 위태롭고 허약한 몸 태어나더라도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죽는 것
이것은 가장 참답지 못한 것이라 한다.
아이가 이미 자라나면 젖을 먹고 몸을 기르다가 마침 곡식의 기운과 맛을 얻게 되면 바로 그 몸에 여든 가지 벌레가 생기게 된다.두 종류는 머리카락의 뿌리에 있는데 첫째는 그 이름이 설지(舌舐)요, 둘째는 그 이름이 중지(重舐)이다. 세 종류는 머리에 있는데 그 이름은 견고(堅固)·상손(傷損)·훼해(毁害)이다. 한 종류는 뇌(腦) 속에 있고 두 종류는 뇌 표면에 있는데, 첫째는 그 이름이 철주(蛛)10)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모요(耗擾)이며, 셋째는 그 이름이 궤란(憒亂)이다. 두 종류는 이마에 있는데 첫째는 그 이름이 비하(卑下)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후부(朽腐)이며, 두 종류는 눈에 있는데 첫째는 그 이름이 설지(舌舐)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중지(重舐)이다. 두 종류는 귀에 있는데 첫째는 그 이름이 식미(識味)이고, 둘째는
10) 송(宋)·원(元)·명(明)·궁(宮) 이 네 본에는 지주(蜘蛛)로 되어 있다.
그 이름이 현미영(現味英)이다.두 종류는 귀뿌리에 있는데 첫째는 그 이름이 적(赤)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부적(復赤)이며, 두 종류는 코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비(肥)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부비(復肥)이다. 두 종류는 입 속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요(搖)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동요(動搖)이며, 두 종류는 이 속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악폐(惡弊)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흉포(凶暴)이다. 세 종류는 이 뿌리에 있나니 그 이름이 천식(喘息)·휴지(休止)·졸멸(捽搣)11)이다. 한 종류는 혀에 있나니 그 이름이 감미(甘美)이고, 한 종류는 혀뿌리에 있나니 그 이름이 내왕(來往)이며, 한 종류는 목구멍에 있나니 그 이름이 수후(嗽喉)이다.두 종류는 눈동자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생(生)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불숙(不熟)이며, 두 종류는 어깨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수(垂)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부수(復垂)이다. 한 종류는 팔에 있나니, 그 이름이 주립(住立)이고, 한 종류는 손에 있나니, 그 이름이 주선(周旋)이며, 두 종류는 가슴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액갱(額坑)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광보(廣普)이다. 한 종류는 염통에 있나니 그 이름이 반박(班駁)이며, 한 종류는 젖에 있나니 그 이름이 동현(湩現)이고, 한 종류는 배꼽에 있나니 그 이름이 위요(圍繞)이다. 두 종류는 옆구리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월(月)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월면(月面)이며, 두 종류는 척추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월행(月行)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월모(月貌)이다.한 종류는 등과 가슴 사이에 있나니, 그 이름이 안풍(安豊)이고, 한 종류는 가죽 속에 있나니 그 이름이 호조(虎爪)이며, 두 종류는 살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소부(消膚)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요수(遼樹)이다. 네 종류는 뼈에 있나니 그 이름이 심독(甚毒)·습독(習毒)·세골(細骨)·잡독(雜毒)이며, 다섯 종류는 골수에 있나니 그 이름이 살해(殺害)·무살(無殺)·파괴(破壞)·잡해(雜骸)·백골(白骨)이다. 두 종류는 창자에 있나니, 첫째는 이름이 강랑(蜣蜋)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강랑훼(蜣蜋)이며, 두
11) 어떤 본에는 졸멸(捽搣)로 되어 있다.
종류는 작은 창자[細腸]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아자(兒子)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부자(復子)이다. 한 종류는 간(肝)에 있나니, 그 이름이 은시(喍)이고, 한 종류는 생장(生臟)에 있나니 그 이름이 피민(帔忟)이며, 한 종류는 숙장(熟臟)에 있나니 그 이름이 태식(太息)이다. 한 종류는 곡도(穀道)에 있나니 그 이름이 중신(重身)이고, 세 종류는 똥 속에 있나니 그 이름이 근목(筋目)·결목(結目)·편발(編髮)이며, 두 종류는 꽁무니에 있나니 첫째는 그 이름이 유하(流下)이고, 둘째는 그 이름이 중류(重流)이다. 다섯 종류는 포(胞)에 있나니 그 이름이 종성(宗姓)·악족(惡族)·와매(臥寐)·불각(不覺)·호즙(護汁)이고, 한 종류는 허벅다리에 있나니 그 이름이 과장(撾杖)이다. 한 종류는 무릎에 있나니 그 이름이 현상(現傷)이고, 한 종류는 복사뼈[踝]에 있나니 그 이름이 침훼(鍼)이고 한 종류는 발가락에 있나니 그 이름이 초연(燋然)이며, 한 종류는 발바닥에 있나니 그 이름이 식피(食皮)이다.이 여든 가지의 벌레가 사람 몸에 있으면서 낮과 밤으로 몸을 갉아먹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카락에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골고루 벌레가 사람을 갉아먹나니
헤아려보건대 모두 더러운 것뿐이어서
비유하면 마치 흐린 물[濁水]과 같네.
제 자신에서 생겨나 도리어 제 자신을 해치는데
마치 칼로 원수진 사람을 해치듯 하고
늘 몰려와서 그 몸을 씹어 해치기를
흘러가는 물이 양쪽 언덕을 무너뜨리듯 하네.
대개 사람의 몸 속에 풍(風)과 습(濕)12)으로 인해 일어나는 병이 101가지가 있고, 한(寒)과 열(熱)로 일어나는 병이 각기 101가지가 있나니, 모두 합
12) 원문에 습(濕)은 없는데 아래 404가지가 되려면 풍·습·한·열이 되어야 하므로 역자가 습을 넣었다.
쳐 계산하면 404가지 병이 사람 몸 속에 있다.마치 나무에서 불이 생겨나서 도리어 나무 자신을 태우듯이 병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본래 몸으로 인하여 생겨나서 도리어 사람을 위태롭게 한다.몸 속과 겉에도 여든 가지 벌레가 생겨나서 그 몸에서 요동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치 못하게 만드는데, 더구나 몸 밖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이야 어떠하겠는가? 이와 같이 몸을 헤아려본다면 늘 근심과 걱정뿐인데, 범부들은 스스로 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들으려 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왜냐 하면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카락·털·손톱·발톱·치아와
염통·살·가죽·뼈가 합해진 것이며
정액·피·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생기고 골
수·뇌·비계·생장·숙장이 있다.
침과 눈물이 항상 흘러내리고
대변과 소변이 늘 새어나가고 있으니
따져 보면 무상하고 부정한 것뿐인데
어리석은 이는 이를 보배로 여기네.사
람의 몸을 헤아려 생각해 보건대 얇은 가죽으로 덮여 있는 것이 마치 매우 얇은 벗나무 껍질로 대추를 합하여 싸놓은 것과 같을 뿐이건만 번뇌가 가득한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령 가죽만 벗겨버린다면 마치 미련한 고기 덩어리와 같은 것인데, 어찌 사람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다만 골절이 서로 버텨주고 있어서 저 쇠사슬[鐵鎖]을 연결해 놓은 것과 같을 뿐이니, 진리를 깨달아 이와 같음을 안다면 오히려 발로 밟지도 않을텐데, 하물며 가까이하고 눈으로 쳐다보겠는가? 이것을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한다.
근본을 따져보면 더러운 것뿐이어서
비유하면 냄새나는 시체와 같고
또한 모든 먼지나 때[垢]와 같으며
몸의 벌레 또한 모두 그와 같다.
또한 허울 좋은 그림과 같아
나중에는 부패로 돌아가나니
진리로 본다면 본래 없는 것[無]인데
어찌 의지하고 가까이 하겠는가?
헤아려 보건대 사람이 세간에서 재앙과 복을 짓다가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중간에 일찍 요절하는 이가 있다.비유하면 도자기 만드는 기술자[陶家]가 여러 가지 질그릇을 만드는데,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에는 더러 깨지기도 하고, 혹은 칼로 질그릇을 다듬을 때 깨지기도 하며, 혹은 그릇을 올리다가 깨지기도 하고, 혹은 내릴 때 깨지기도 하며, 혹은 땅에 놓을 때 깨지기도 하고, 혹은 다룰 때 깨지기도 하며, 혹은 그릇을 말릴 때 깨지기도 하고, 혹은 그릇을 굽는 가마 속에서 깨지기도 하며, 혹은 구울 때 깨지기도 하고, 혹은 옮길 때 깨지기도 하고, 혹은 사용할 때 깨지기도 한다. 설령 사용치 않더라도 오래 보관하다 보면 모두 깨지고 마는 것과 같다.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처럼 발심하여 오다가 끝까지 이르지 못하고 죽기도 하고, 혹은 두 근(根)을 얻었을 적에나 태 안에서 생낙(生酪)과 같은 시기에서나 숙낙(熟酪)과 같은 모습일 때나 식육(息肉)과 단육(段肉)과 같이 되었을 적에나 6정(情)을 모두 원만하게 갖추었을 때나 또는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였을 적에 죽기도 하며, 태어나려고 할 무렵이나 막 땅에 떨어지자 마자 죽기도 하며, 태어난 지 1일이나 100일, 혹은 한 살이나 열 살 되었을 적에 죽기도 하고 학업을 닦다가 죽기도 하며, 스무 살·서른 살이나, 마흔 살·쉰 살에 죽기도 하며, 한 살 때에 죽기도 하고 100살까지 살다가 죽기도 하며, 설령 아무리 오래 산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멸진(滅盡)에 돌아가게 마련이다.그러므로 헤아리건대 5음은 본래 다 공(空)한 것이어서 이리저리 서로서로 의지하여 잠시 동안에 태어났다가 잠시 동안에 멸하며, 발[足]을 한 번 들었다 내려놓는 짧은 시간이기도 하여 모두 무상한 것이다.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여 도리어 이 몸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헤아리고 있다. 그리하여 젊은 때로부터 늙어질 때까지 모두들 내 것이라고 고집하면서 한 가지로만 부르짖으며 덧없이 변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도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하여 '이것으로부터 이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없애면 무(無)가 된다'고 그렇게 헤아려야 한다.본래 행한 것으로 인하여 재앙과 복이 생기는 까닭에 결국엔 죽어서 중지(中止)로 있다가 포태(胞胎)에 이르게 되면 정신이 거기에 의지하여 그 모양이 마치 멀건 낙(酪)이나 식육(息肉), 또는 단육(段肉)처럼 되고 점점 단단한 고기 덩어리 같이 되면, 그로 인하여 6근이 생기게 된다.6근이 원만하게 갖추어지면 곧 태어난다. 그리하여 어린 때로부터 중년에 이르고, 마침내는 늙고 병드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게 된다.그 5음이 항상 생사의 바퀴에 굴러서 항상 흐르는 냇물처럼 그치지 않는다. 저 일체는 다 공(空)한 것이어서 비유하면 마치 허깨비[幻化]와 같나니 이와 같이 뒤바뀌어 늙고 병들고 죽기에 이르는 것이다. 비유컨대 큰 성(城)의 서쪽 문에서 불이 나서 차례차례 타올라 마침내는 동쪽 문에까지 이르러 모두 다 타서 잿더미가 되었을 적에 동쪽 문에서 난 불을 따져보면 이것이 맨 처음 난 불은 아니지만, 그러나 타는 것이 본래 불에서 떠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본래 인연으로부터 화(禍)와 복(福)이 따르므로 마땅히 이와 같음을 관찰하여 '이것으로부터 이것이 있다'고 알아야 한다.어찌하여 이것이 없어지면 곧 무(無)라고 하는가?재앙과 복, 그리고 다른 번뇌가 없으면 죽음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미 죽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중지(中止 : 中陰)로 있지도 않나니, 가령 중지가 없다면 어디로부터 생겨남[生]이 있을 것이며, 이미 생겨남이 없다면 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어디로부터 있겠는가?이 생사의 흐름[流]의 그 근본과 끝을 헤아려 보건대 이와 같으니, 도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5음이 어디로부터 좇아서 성하고 패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지혜의 이치를 밝게 알아서
청정한 마음 둥근 달과 같으시고
뜻 가짐이 한결 같으시어
삼계의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시네.
마치 물 속에서 핀 연꽃이
감미(甘美)롭고 부드러운 것처럼
입으로 베풀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이들은 곧 기뻐하며 통달하네.
본래 생겨나는 이치를 분별하고
사라짐으로 돌아감을 깨달아
능인(能仁)을 끝내 이루셨으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기 때문이네.
나는 부처님의 경전을 좇아
살펴 모으고 뽑아 기록하였나니
부처님께서 강설하신 것을 의지하여
『수행도지경』을 지었다네.
수행도지경 제 2 권
서진삼장 축법호 한역
6. 자품(慈品)
장사하는 사람이 벌판을 가다가
힘겨운 길에서 배고프고 목마를 적에
길잡이[導師]가 그를 구원하여
물과 과일이 있는 데로 데리고 가듯이
무위(無爲)의 도로써
모든 때[垢]와 독(毒)을 소멸하여
편안함을 쌓고 평등심을 얻게 하시는
불세존(佛世尊)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배를 타고 큰 바다를 다니다가
마갈어(摩竭魚)의 입을 향하게 되어
그 배가 고기의 뱃속에 들어가려 할 즈음
자비심 내시어 그 배를 구제하시고
배가 금방 함몰하려는 순간에
사람과 보배를 건져주듯이
헤아릴 수 없는 백천 겁 동안
나고 죽음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게 하심이
과거의 모든 성인들보다 뛰어나시어
그 덕이 커다란 산과 같으시고
도의 지혜 햇빛보다 더하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받들기 원하옵니다.
도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진에(瞋恚)를 버리고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혹은 수행하는 이가 다만 입으로만 중생들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발원하고, 무슨 인연으로서 구제하여 편안하게 할지 그 방법을 깨우쳐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그 말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할지라도 평등한 자비의 마음이 되지 못하는 까닭에 반드시 도를 수행하는 이는 입으로만 자비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혹 수행하는 이가 자비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려는 뜻만을 일으킨다면 그러한 자비심도 또한 좋기는 하지만 이는 도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진 자비심이 아니다. 그러므로 큰 도를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자비심은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도를 배우는 이가
자비를 마음만 먹고 입으로만 말한다면
곧 적은 편안함을 얻을 것이요
또한 얻는 복이 엷을 것이다.
비유하면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실수로 화살을 불에 떨어뜨려 태웠다면
어찌 능히 그 화살로 하여금
잘 만들어서 쓸 수 있겠는가?
도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큰 자비심을 세워야 한다.
장차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가?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더운 곳에 있는 이는 시원한 곳을 구해 거처해야 편안해지고 추운 곳에 있는 이는 따뜻한 곳을 구해 거처해야 편안해진다. 배가 고픈 이는 밥을 얻고 목마른 이는 마실 것을 얻으며, 먼길을 걸어 몹시 피곤한 이는 수레와 말을 얻은 뒤에야 편안해지는 것과 같다. 오래 서있던 이는 앉아야 편안해지고, 몹시 피곤한 이는 누워야 편안해지며, 벌거벗은 이는 옷을 입어 가리고 몸에 때가 있는 이는 목욕해서 때를 씻어야 마음이 매우 상쾌해져서 안정되고 고요해지며,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는 이는 각기 편안할 수 있는 데를 얻어야 몸과 뜻이 기뻐 뛰는 등 모든 편안함을 얻게 된다.그러므로 마음을 잡아 어수선하지 않아야만 남에게 사랑 받고 공경을 받게 된다.부모·형제·처자·친족·벗·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은애(恩愛)하여 모두 편안하게 해주며, 또한 모든 중생들의 온갖 괴로워하는 이를 내 몸처럼 여겨 편안하게 해주며, 시방 세계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 해탈케 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해주며, 부모와 안팎의 종친들로 하여금 죄다 편안하게 하며, 다음에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자비한 마음을 널리 베풀고, 원수의 집안까지도 차별하는 마음을 두지 말아서 다 해탈하게 하여 모두 내 몸처럼 해탈을 얻어 편안하도록 해주어야 한다.설령 먼저 시방 세계의 인민(人民)들을 생각하고 다음 원수를 생각하는데, 그 마음이 혹 어수선하다거나 원수와 친한 벗,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처음의 마음이 능히 완벽하게 평등하지 못하다면, 마땅히 '내가 원수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미워하면 그 마음은 이미 허물이 있을 것이다'라고 관찰하여 이제 그런 생각을 당장 버리고 다시 매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와 자신의 처자처럼 사랑하고 또한 종친을 공경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이와 같이 하여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고 저 다섯 갈래 세계[道]에 나고 죽는 근본을 살핀다면, 전생에 부모·처자·형제·벗이 되었었지만, 다만 그것이 오래 되어서 능히 식별치 못할 따름이다.그러므로 마땅히 원한을 품지 않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땅히 자비심을 일으켜 행하고
원수를 좋은 벗처럼 생각해야 할지니
반복되어 나고 죽음에 있어
일찍이 모두가 친족이었기 때문이네.
비유하면 나무에 꽃이 피어
점점 자라나 열매를 맺음과 다름없이
부모나 처자나 벗들이나
친족들도 다 그와 같다네.
도를 수행하는 이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가령 다른 사람들을 향해 노여워한다면 그것은 곧 제 자신을 침해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불을 내지만 도리어 제 몸을 태우는 것과 같고, 또한 파초가 열매를 맺고는 곧 말라죽는 것과 같으며, 또한 노새가 새끼를 배면 도리어 제 몸이 위험한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설령 노여움을 품는다면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와 같다.'만일 다른 사람을 향해서 성냄을 일으킨다면, 그 죄로 인하여 뱀이나 독사 따위의 동물로 태어나거나 나쁜 세계에 들어가게 되리니, 이와 같은 이치를 자세히 관찰하여 마땅히 악을 품지 말고, 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자애(慈愛)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노여운 마음을 일으켜
남을 향하여 원한을 품고 해친다면
후생에는 뱀이나 독사가 되거나
혹은 잔악한 짐승이 되리라.
비유하면 저 대나무와 파초와 노새가
열매를 맺고 새끼를 배면
도리어 침해를 받는 것 그와 같으니
마땅히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도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평등하고 자비한 마음을 행하여 부모·처자·형제·벗은 물론 원수까지도 멀리함이 없고 가까이함이 없으며, 평등하게 대하여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이 없고, 한량없이 많은 시방세계에 대해서도 널리 자비한 마음으로 그들을 향하여 일찍이 더 살펴주고 덜 살펴주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이와 같이 행해야 비로소 자비로운 행[慈行]에 호응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자비한 마음을 행하려고 하는 이는
평등한 마음으로 미워하고 사랑함이 없고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아야
곧 마땅히 크게 자비한 마음이 되리라.
평등한 마음으로 큰 자비를 베풀어
삼계의 사람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자비로운 행을 이렇게 행하는 이는
그 덕이 범천(梵天)의 덕을 뛰어넘으리.
도를 수행하는 이가 자비한 마음을 성취하면, 불로도 태우지 못하고 칼로도 해치지 못하며, 또한 독기(毒氣)로도 해치지 못하고 온갖 사악한 귀신들도 해칠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칼로도 능히 해치지 못하고
관청[縣官]과 원수와
사악한 귀신이나 모든 나찰(羅刹)들과
뱀·독사·우레·벽력과
사자 또는 코끼리와 범과
그 밖에 모든 해로운 짐승들도
모두 감히 근접하지 못하고
또한 능히 상해(傷害)할 수 없으리.
도를 닦는 이가 자비로운 행을 닦아 익히면 마땅히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밤에 잠자리가 편안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기쁘며, 언제나 하늘 신이 잠자리를 옹호하여 일찍이 나쁜 꿈을 꾸지 아니하며, 얼굴빛이 화열(和悅)하고 의식이 모자라지 않으며, 범천(梵天)이 있는 곳에 태어나는데 태어날 적마다 항상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눈동자의 흑백(黑白)이 분명하고 신체가 유연(柔軟)하며, 질병이 적고 장수(長壽)할 수 있으며, 모든 하늘의 공경을 받는다. 또 태어나는 곳마다 도를 얻고 부처님께 칭송과 찬탄을 들으며, 번뇌를 소멸하고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르며, 편안함을 얻어 무여열반(無餘涅槃)의 경계에 이르고 적멸(寂滅)한 해탈[度]을 얻나니, 모두가 자비한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자비로움을 행하는 이는
단정하고 의식이 풍부하며
사람들이 모두 높여 우러러보고 장
수(長壽)하며 눈이 태양처럼 빛나리라.
자든지 깨든지 다니든지 멈추든지 다 편안하고
귀신과 하늘 신들이 모두 옹호하며 범천에 태어나고
여러 하늘들이 다 공경하며
세존으로부터 칭송과 찬탄을 듣게 되리라.
그러므로 도를 닦는 이는 마땅히 자비한 마음을 행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일체를 향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라.
모든 분노와 침해를 없앰이 바로 자비이니
내가 지금 온갖 덕의 근본을 나타내기 위하여
부처님의 경전을 살피고 뽑아서 말하노라.
7. 제공포품(除恐怖品)
마땅히 깨달아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분별하여 해설해 주셨네.
과거 여러 부처님을 보아도
밝게 통달하심이 이와 같으셨네.
정등각(正等覺)을 이룩하신 까닭에
그 분을 부처님이라고 호칭하나니
밝은 지혜 있는 이와 하늘과 용들도
귀의하여 받들지 않는 이가 없었네.
온갖 부류의 세상을 교화하여 온
갖 더러운 것을 없애 주시고
악하고 어두운 이를 교화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광명을 얻게 하셨네.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 평탄함을 얻게 하시고
수많은 두려움을 없애 주셨으니
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면서
가장 수승한 분께 귀의하기를 원합니다.
부처님은 조복(調伏)하지 않는 이를 조복하시고
우레처럼 울리는 코끼리 같은 음성으로 뜻 세우신
그 소리를 널리 들리게 하시니
모두들 해탈하는 제도를 받게 되었네.
어리석기 그지없고 제멋대로 방자하여
세찬 비와 같이 이리저리 날뛰는
단발(檀鉢)이라고 이름하는 코끼리의
저 교만한 행동을 조복 받으셨네.
또한 모든 용왕과 귀신의 왕이
독기를 품고 눈으로 불을 뿜어냈어도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교화로 구제하시어
그 몸이 항상 고요함을 얻게 하셨네.
해탈하여 걸림 없는 분이시기에
저는 지금 머리 조아려
고요하고 뛰어나신 분
세존의 발아래 귀의하기 원하옵니다.
마군[魔]이 마음에 독한 노여움을 품고
온갖 변화로써 불을 뿜어대면서
산을 이고[戴] 몽둥이를 휘두르고
칼과 창을 들고 달려드는 것을 보셨고
또 뱀과 독사가 큰 나무를 떠받들고
몰려와서 세존을 위협하려 하거나
온갖 귀신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도
조금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셨네.
송곳과 칼날 같은 그들의 털로
사방을 빙 둘러쌌는데
그 수가 아무리 많고 많아도
조금도 두렵게 여기지 않으셨네.
또한 일찍이 놀란 적 없으시고
온갖 어리석음이 없으시며
이미 모든 두렵고 어려운 일 버리신
가장 수승하신 분께 귀의하기 바라나이다.
도를 행하는 이가 만일 조용한 곳이나 은밀하게 가려진 곳에 있을 적에 혹 두려움이 일어나 옷과 머리카락이 곤두서거든 마땅히 여래의 거룩한 공덕과 그 훌륭한 형상과 얼굴 및 법과 승가 대중을 생각하며, 그 계율을 생각하고 모든 것은 공(空)하다는 것을 분별하여 알며, 6분(分) 12인연(因緣)법을 이해하고 자애(慈哀)를 받들어 행하여야 할 것이다.설령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이러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혹은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 웅크려
바른 법에 스스로 서지 못할 때에는
그들로 하여금 굳게 계율을 지키게 하되
바람이 불어도 산이 요동하지 않듯이 해야 한다.
비유하면 꿀벌이 꽃의 꿀맛을 채취하듯
내가 경전을 뽑아 기록한 것도 그와 같다네.
글은 비록 얼마 안 되지만 유익함이 많으리니
두려워하는 마음 없애기 위해 이를 설하노라.
8. 분별상품(分別相品)
어떤 사람이 보배 구슬을
큰 바다에 떨어뜨리려 잃어버리고는
바로 보물 건지는 기구를 가지고
바닷물을 말려 보배 구슬을 찾기 위해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마음을 집중해 꼼짝하지 않자
바다 신이 이러함을 보고
즉시 구슬을 찾아 돌려주었네.
그가 마침 이런 방편을 쓰자
천왕은 생각을 끊고
초월하여 대보산(大寶山)에 이르러
나태하거나 게을리 함이 없었네.
본래의 무(無)함을 마침내 깨달아
집착 없으신 분께 머리 조아리고
서원(誓願)한 것을 바꾸지 않으신
가장 수승한 분께 귀의하여 예배드렸네.
용왕이 몸을 서린 것처럼
또한 이와 같이 단정히 앉아
도를 구하기 위해 정진하여
큰 힘[大力] 일으켜 불도를 얻으셨고
혼자 행한 지 7일째 되는 날에
능히 인욕하여 여인을 교화시키셨나니
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진실하게 보아 바꾸지 않았네.
도를 행하는 이는 혹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고 죽고 하기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고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익혀온 지도 너무나 오래 되었다. 사람의 수명은 짧고 게다가 게으름까지 피웠으니, 어떻게 한 생(生) 만에 온갖 번뇌를 다 제거해 없앨 수 있겠는가?'라고 하기도 할 것이다. 만일 이런 생각이 있을 적에는 마땅히 이런 관법(觀法)을 행해야 한다. '비유하면 오래된 낡은 집에 애당초 사는 사람이 없어 여러 해 동안 등불을 켜지 않아 어두울지라도 불을 잡고 들어가기만 하면 어둠은 곧 사라지듯이, 아무리 오랫동안 더러운 때와 온갖 독을 익혀 왔다 하더라도 지혜만 있으면 모든 번뇌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지혜의 힘은 강하고 어리석음은 하열(下劣)하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도의 뜻을 구하려면 게으르지 말지니
법의 이로움[法利]을 얻어 쇠모(衰耗)함을 여의고
부처님의 밝고 빛나는 지혜를 받들어
영원히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없앨지어다.
누가 능히 이것을 받들고 도를 따르기를 이와 같이 할 것인가?오직 믿음이 있는 자라야 정진하여 지혜로워질 수 있으며, 아첨하는 것이 없는 마음이 있어야 그가 곧 이러한 행을 따를 수 있다.어떤 것을 믿음[信]이라고 하는가?온갖 물건은 모두 덧없는[無常] 데로 돌아간다는 이치와, 받은 몸은 죄다 근심과 고통일 뿐이라는 사실과, 삼계(三界)는 모두가 공(空)한 것이라는 것과, 일체의 모든 법들을 따져 보면 모두 나 없음[無我]을 보아 아는 것이다.이와 같이 아는 것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도를 수행하는 이는
세간은 불안한 것임을 알아야 하나니
온갖 물질은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받은 몸은 다 괴롭다는 것과
삼계는 모두 공(空)하다는 것과
일체 법에는 나[我]라는 것이 없음을 알아서
있는 곳에서 잘 받아 수행하는 이를
곧 믿음이 있는 이라고 말한다.
가령 나[我]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곧 뒤바뀐 사람이라고 하고
능히 모두 다 공한 것임을 잘 알게 되면
곧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는 부처가 되어 감로(甘露)의 도를 얻은 이라네.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아 아는 이는
능히 동요할 리가 없을 것이니
이를 곧 믿음이라고 말하네.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는가? 가령 수행하는 이가 공한 것이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임을 오로지 정밀하게 하여 마음에서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정진이라고 한다. 가령 들에서 난 불[野火]이 점점 번져 자리 가까이까지 이르고, 또 의복을 태우며 위로는 머리와 눈에까지 미친다면, 마음속으로 마땅히 생각하기를 '불이 내 머리를 태우고, 설령 뼈와 살과 피부까지 다 태워서 내 몸이 죽는다 할지라도 끝내 수행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왜냐 하면 아무리 내 몸을 태운다 할지라도 족히 내 몸이라고 말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몸 속에 있는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불은 나고 죽음이 있는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 가운데를 계속하여 돌면서 나의 몸을 태우며, 수없는 세상을 지내는 동안 미처 구경(究竟)의 경지를 얻어 도덕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아무리 온몸을 태운다 할지라도 족히 구제될 수가 없고, 다만 마땅히 힘으로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불을 꺼야 할 것이니, 이미 멸도를 얻고 나면 다시는 도로 물러남이 없을 것이고, 이미 몸이 없고 나면 안팎 모든 불의 환난(患難)도 없을 것이다.이 음욕·성냄·어리석음은 쉽게 소멸할 수 없을 것이니, 비유하면 왕겨[糠]를 태우는 불로 구리쇠를 녹이려고 하면 끝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일체 방편을 써야 곧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병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도덕에 대하여 전일하고 순수함을 가지고
마땅히 그렇게 할 때에 몸을 아까워하지 말라.
비유하면 코끼리가 그 몸을 씻을 적에
깨끗이 목욕하고는 다시 땅 위에 눕듯이 하라.
가령 위급한 액난(厄難)이 자신에게 미치고
우레와 번개가 몰려오더라도 놀라지 말라.
비유하면 시든 꽃을 사람이 아까워하지 않듯
번뇌 버리는 것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가?조용히 선정[寂定]을 행할 때를 분명하게 알고 마땅히 관(觀)할 때를 알며, 지혜로 살필 때를 알고 법을 받아들일 때를 알며, 마음을 안정하게 가지고 선정에 들 때를 알고 선정을 좇아 일어나는 더디고 빠른 때를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에 소유하고 있는 선과 악을 분별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훌륭한 의원이 뱃속의 병을 알아내는 것처럼 해야 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제어하여 방자하게 굴지 않기를, 비유하면 마치 건장한 코끼리가 구덩이나 우물에 빠지려고 할 적에 그 코끼리를 기르는 이가 잘 다루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도를 수행하는 이도 바깥에 집착하는 것을 끊어 없애는 것 또한 그와 같이 해야 한다.마음이, 모든 생각[想]이 받드는 인연을 아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지혜 있는 이가 음식물의 맛있는 것을 알 듯이 하고, 또한 요리사[宰人]가 임금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을 알 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또 일체를 해탈하는 방편으로써 나아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를 분명히 알되, 비유하면 마치 금을 다루는 연금술사가 금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듯이 해야 한다.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밝은 지혜를 여의어 도의 갈래를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마음에 두려움을 품거나,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한다면 지혜를 이루지 못한다.가령 도를 행하는 이가 첫 번째 선정[禪]을 얻고, 두 번째 선정에 이르면 스스로 두려워하여 선정을 잃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더욱 적정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괴이한 일이구나. 미혹함이여'라고 한다면, 설령 본래 선(善)과 호응한 기억이 있었다 하더라도 도리어 마음에 편함을 잃어 곧 달아나고 만다. 기쁨과 희열에 머물러 정의(定意)를 여읜다면, 스스로 마음에 한계가 생겨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의심을 품는 것이 이와 같아서 곧 선정을 잃게 되어, 이룬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선정의 뜻을 분명하게 알겠는가?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잡고서,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마음은 멸진정(滅盡定)에 두는 것이니, 적절하게 이 행을 닦으면,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미(迷)해지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세속 일을 익혀왔기 때문에 바른 진리와 모든 번뇌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므로 마음에 번뇌가 있었기 때문이다.두 번째 선정을 구하면서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으면 선정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잘못을 알아야 할 것이다.가령 수행하는 이가 지혜로워서 이와 같은 미혹한 일을 짓지 않으면, 선정을 잃지 않으리니 이것을 지혜 있는 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몸의 모든 법을 분명히 깨달아 안다면
곧 그 마음이 돌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될 것이니
방편을 내어 마음이 나아가는 바를 제지하되
마치 쇠갈고리로 하얀 코끼리를 길들이듯 하라.
그 선정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아 알고
또한 이렇게 고요히 관하는 법을 분별하여
항상 지혜로써 망설이지 않고
도덕에 머물기를 법교(法敎)대로 하라.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되지 않은 것인가?아첨하지 않고 그 마음이 솔직하며, 정진에 전념하여 도를 행하고, 믿음을 돈독하게 하고 정성을 다해 지키는 것이다.설사 수행을 하는데 행해서는 안 될 것과 모든 번뇌로서 좋지 못한 것이 있을 적에는, 모두 법사(法師)를 향하여 그 번민하는 것을 말하되, 비유하면 병이 든 사람이 그 질병의 증세를 의원에게 성심껏 다 말해주는 것처럼 한다면, 법사가 수행하는 이의 의지를 살펴보고 마땅히 결함이 있는 부분에 대하여 거기에 알맞은 법을 말해 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이는 정직한 마음을 품고
그 마음에 아첨하는 일이 없이
법사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모든 번뇌를 끊어야 한다.
편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오로지 정근하여 도를 닦으며
경 받들기를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하고
법 따르기를 전쟁에 임하는 것처럼 하라.
가령 수행하는 이가 정욕이 너무 왕성하면 그들을 위하여 사람의 몸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법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법은 세 가지 품계의 가르침이 있다. 그 첫째는 몸의 뼈가 쇠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지탱하고 있음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적절하게 법의 가르침을 받아 문득 머리뼈를 관찰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이미 이렇게 관찰하는 법을 말해 마치고는 다시 이마 위를 관찰하게 하되 마음을 머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진노(瞋怒)가 너무 왕성하게 많은 사람은 그에게는 자비한 마음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자비한 마음에는 네 가지 품계가 있다. 첫째는 부모와 종친을 말하고, 둘째는 몹시 친하거나 소원함이 없는 중간 계층의 사람을 말하며, 셋째는 여러 보통 사람들을 말하고, 넷째는 이러한 수행 방법을 얻어서 자비한 마음을 평등하게 베풀고 원수를 보호해서 어진 마음[仁心]을 원만하게 갖추면, 아홉 가지 번뇌[九惱]와 횡진(橫瞋)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나니, 이러한 이치를 분별한다면 아무리 두터운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멀리 여읠 것이다.무엇을 아홉 가지 번뇌이고, 또 횡진이라고 하는가?첫째는 혼자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과거에 나를 침해하여 해를 끼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 사람이 뒷날 혹 나를 침해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금생(今生)에 나를 또 속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과거에 나의 친구를 억울하게 하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후세에 혹 내 친구를 침해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현세에 또 내 친구를 속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그 사람은 전에 나의 원수를 존경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후세에 혹 또 그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금생에 또 그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비록 이런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마땅히 모조리 버려야 한다.어떻게 해야 능히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침해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오직 마땅히 자신을 잘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나도 전생에 착하지 못한 죄가 있었던 까닭에 이런 나쁜 과보(果報)를 초래한 것이고, 나의 친구도 본래 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환난을 받는 것이며, 나의 원수도 본래 저 사람과는 숙세(宿世)에 친한 사이였고, 또 복덕(福德)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공경을 받는 것이니, 세 가지 품계[品]의 아홉 가지 고뇌에 아무런 원한도 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어떤 것을 횡진이라고 하는가? 일찍이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도 보게 되면 곧 그에게 성이 나는 것이니, 그러면 곧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일찍이 내 몸을 침해하여 억울하게 한 적이 없고, 현세에도 잘못이 없으며, 후생에도 실수가 없을 터인데, 무슨 까닭에 악한 마음을 품고 남을 대할 것인가'라고 해야 한다.그 악한 마음을 내어 남에게 해를 가한다면 도리어 제 자신이 죄를 받으리니, 비유하면 바람을 향하여 먼지를 뿌리면 도리어 제 자신이 먼지를 뒤집어쓰는 경우와 같다.도를 수행하는 이가 능히 성냄을 소멸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도품(道品)에 들지 못할 것이니, 비유하면 술잔에 물을 담은 것과 같아서 먼 데까지 미치게 하지는 못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능히 성냄을 제어하는 이는 마치 물이 불을 끄는 것과 같아서 해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이렇게 수행하는 이는 도율(道律)에 들 수 있을 것이다.그런 까닭에 비록 칼과 톱으로 몸이 끊기는 괴로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성냄을 일으키지 말되, 마치 마른 나무가 불에 타는 것처럼 원한의 마음이 없어야 할 터인데, 어찌 성내는 마음을 가지고서 정신(精神)으로 향해 가겠는가?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기 자신이나 보통 사람과 원수에 대해
평등하게 보고 조금도 다르게 하지 않으며
아홉 가지 번뇌 모두를 버리고
뜻을 세워 횡진이 없어야 한다.
마음을 제어하여 원한을 품지 않기를
마른 나무처럼 성냄이 없어야 하나니
도지(道地)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해야 번뇌가 없을 것이다.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어리석음이 너무 많을 경우, 마땅히 12인연을 관하게 하라. 분별하여 12인연을 분명히 알게 되면 생겨나는 인연을 좇아 늙고 죽음이 있는 것이니, 가령 생겨나지 않는다면 곧 시작과 끝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지 않으면 생겨남도 없고
늙고 죽는 걱정도 없으리니
본래 시작이 없음을 본다면
무엇을 좇아 쇠망함을 이루겠는가.
본래 6정(情)으로 인하여 일어나
매우 어지럽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이루고
어리석음을 좇아 번뇌의 그물[結網]이 생겨
이것이 변해서 어리석은 번뇌를 이룬다.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생각함[想念]이 너무 많을 경우, 곧 그 사람을 위하여 나고 드는 숨 세는 법[數息]을 설해주어야 한다. 숨이 안정되고 나면 뜻이 고요해져서 구하는 것이 없어진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숨을 세어 멈추고[止] 서로 따르기를 구하여
올바른 진리를 보아 생각하고 마음을 멈출지니
본성(本性)이 청정한 이는 이와 같이 받들어 행할 것이요
혼자 앉아 생각이 많으면 행을 이루지 못하리.
가령 도를 수행하는 이가 교만이 너무 많을 경우, 그를 위하여 이 이치를 말해주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교만이 있나니, 첫째는 '내가 아무개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요, 둘째는 '아무개는 나와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아무개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스스로 대단하다는 마음을 품으리니,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성 밖에 무덤 사이에는 버려진 뼈 가루와 몸과 머리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있는데, 혈맥은 없어지고 가죽과 살이 녹아 문드러져 있다.'마땅히 가서 이런 것을 본다면, 빈부·귀천·남녀·크고 작음·단정함·추함·더러운 것들도 모두 이 마른 뼈와 다를 게 없는데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나서 죽을 때까지 이 몸은 살[肉]이 옷이 되고 가죽으로 그것을 싸고 있으며, 피가 윤택하게 하고 힘줄로 묶어진 것이며, 의복·향(香)·꽃·영락을 두른 그 몸도 비유하면 환화(幻化)와 교풍(巧風)이 합쳐진 것과 같아서 다만 마음[心]·뜻[意]·의식[識]을 인하여 두루 돌면서 움직이는 것이다.성곽·나라·고을·마을이며, 나고·들고·나아가고·멈추는 데에 이르기까지도 이러한 법으로 관찰하고 나면, 교만이 없어질 것이므로 본래 무(無)한 것이라는 것을 관찰한 이는 무덤이나 일체 사람들을 보는 것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호걸스러우며 부귀를 누리는 이나
가마를 타고 성 밖에 나가 노는 이나
묘지 사이에 흩어져 있는 이도
헤아려 보면 똑같을 뿐 다를 게 없다.한
가롭게 나무 밑에 앉아
이와 같은 법(法)을 관하고
마음 잡아 도를 행한다면
교만의 불[慢火]도 능히 태우지 못하리.
법사가 경(經)을 설할 적에 사람의 마음[情]을 관찰하는 법이 모두 열아홉 가지가 있다.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번뇌를 분별함으로써 그것을 곧 알 수 있다.어떤 것을 열 아홉 가지라고 하는가?첫째는 음행을 탐하는 것[貪婬]이요, 둘째는 성내는 것[瞋恚]이며, 셋째는 어리석은 것[愚癡]이요, 넷째는 음란하면서 성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음란하면서 어리석은 것이요, 여섯째는 어리석으면서 성내는 것이며, 일곱째는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요, 여덟째는 입은 청정하나 생각이 음란한 것이며, 아홉째는 말은 부드러우나 마음이 억센 것이요, 열째는 입은 지혜로우나 마음이 어리석은 것이다. 열한째는 말은 아름다우나 마음에 3독(毒)을 품고 있는 것이요, 열두째는 말은 거칠게 하지만 마음은 온화한 것이며, 열셋째는 입으로 악한 말을 하고 마음이 굳센 것이요, 열넷째는 말이 거칠고 마음이 어리석은 것이며, 열다섯째는 입이 거칠고 마음에 3독을 품고 있는 것이요, 열여섯째는 입이 어리석고 마음이 음란한 것이며, 열일곱째는 입이 어리석고 마음에 노여움을 품고 있는 것이요, 열여덟째는 마음과 입이 다 어리석은 것이며, 열아홉째는 입이 어리석고 마음에 3독을 품고 있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음란함[婬]·성냄[怒]·어리석음[癡]
이것들을 합하여 3독이라 한다.
둘씩 서로 뒤섞이는데
이를 계산하면 네 가지가 있다.
또 입이 부드러운 것에 넷이 있고
입이 어리석은 것에 또 넷이 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마음 열아홉 가지가 이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이 음란을 탐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을 아는가?겉치레하기를 스스로 좋아하고 농담을 잘 하며, 성질이 급하고 의지가 조급하고 서둘러서 마치 원숭이와 같아 실수가 많으며, 지혜와 꾀가 얕아 멀리 생각할 줄 모르고 행동과 하는 일이 앞뒤를 돌아볼 줄 모르며,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행하고 일에 대해 두려워함이 많으며, 말이 많고 울기를 좋아하며, 쉽게 속고 쉽게 굴복한다.안일하게 여기고 쉽게 알며, 매우 참고 애쓰는 체하며, 조그마한 이익을 얻으면 너무 즐거워하고 보잘것없는 것을 잃고도 몹시 걱정하며, 남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면서 그를 믿고 숨기는 일을 죄다 폭로하며, 신체가 뜨거워 땀이 많으며, 피부가 얇고 몸에서 냄새가 난다.털과 머리칼이 듬성듬성 나고 안색이 창백하고 자주 찡그리며, 수염이 긴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이[齒가 희고 종종걸음을 치며, 깨끗한 옷만 좋아하고 채색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하며, 그 몸을 꾸미기 좋아하고 얇고 가벼운 옷을 좋아하며, 기술을 많이 배워 통하지 못한 것이 없는 체하고 자주 다니면서 유람하고 항상 기쁘게 웃음을 머금는다.거짓으로 꾸며 계율을 받드는 체하고 성질이 온화한 체하며, 어른을 공경하는 체한다. 사람을 보면 먼저 안부를 묻고, 재주와 지혜가 있고 고상한 체하며, 성질이 사납고 뒤틀리지 않은 체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자비한 마음[慈心]이 많은 체 하며,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고 주고받고 하며, 부드럽고 온화하여 매우 가엾이 여기는 체하고 은혜를 많이 베푸는 체한다. 모든 친구들에게 넉넉하게 베풀어주고, 가진 것이 많건 적건 사람들과 다투지 않아 그 은혜가 광대한 체하며, 몸매를 살피면서 행동을 느리고 더디게 하여 점잖은 체하며, 능히 세간의 법을 확실하게 알아서 죄다 결단할 능력이 있는 체하며, 만일 훌륭한 사람을 보면 공경하고 삼가는 체하며, 일이 발각되면 말을 잘하여 재빨리 뒤집으며, 말에 재치가 있고 지혜로워 말이 화평한 체하며, 벗은 많아도 능히 오래도록 친하지 못한다.성냄이 적고 어른을 존경하는 체하며, 눕고 일어나고 행보(行步)하는 데 안정되지 못하며, 아무리 법을 배워도 재물을 사랑하고 탐하며, 친족과 친구를 저버려 견고하지 못하고 친구 사이를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하며, 색욕(色欲)의 일들을 들으면 곧 탐하고 집착하며, 악로(惡露)를 말하면 곧 만족히 여기고 나아가는 것도 쉽게 하고 물러가는 것도 쉽게 한다.그러므로 음란을 탐하는 모습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조급하고 경솔함이 원숭이 같고
항상 기뻐서 웃고 또 울기를 좋아하네.
이익 얻으면 매우 좋아하고 잃으면 매우 걱정하며
말이 많아 수다스럽고 쉽게 굴복한다.
의지가 또 조급하고 놀라고 두려워하며
스스로 쉽게 속아넘어가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
생각과 성품이 잘 잊어버려 멀리 생각할 줄 모르며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고 지혜 있는 체한다.
색(色)을 탐하여 살피고 훌륭한 보시 생각하는 체하며
몸매 살피고 벗을 공경하는 체하네.
점잖은 체 하는 몸은 뜨거워 땀이 많고
기쁘게 믿고 부끄럽고 용맹 있는 체하네.
법과 재물과 색(色)과 친구에 대해
옳지 않다고 곧 멀리 대했다가 곧 후회하네.
모든 배운 것에서 무엇이든 얻은 체하고
비록 쉽게 알았더라도 재빨리 잊어버린다.
입는 의복은 꽃과 장식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하는 일 요긴하지 못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체하네.
지혜 있는 이 공경하고 배움에 뜻이 있는 체하고
분명하게 통달하여 무엇이든 다 아는 체하네.
늘 성 밖에 나가 놀러 다니기만 좋아하고
또한 말을 잘 꾸며 듣기 좋게 한다.
영리한 말로 곧잘 분별하는 체하고
앉고 눕는 것에 대해 오래 참지 못한다
성품이 부드럽고 정성을 다하는 체하며
하는 일이 경솔하여 앞뒤를 돌아보지 않네.
뜻이 조급하여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며
벗들에게는 보시를 잘 하는 체한다.
수염이 긴 것은 싫어하고 짧은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즐거운 체하고 냄새만 풍기네.
재주와 지혜가 있는 체하고 자주 찡그리고 창백하며
계율 받들고 지혜 있어 걸림이 없는 체한다.
사람을 보면 먼저 안부 물으며
옷은 얇게 입고 얼굴과 이는 깨끗이 하네.
자비한 마음 있고 쉽게 일을 따르는 체하고
행을 일으켜 재물을 아끼지 않는 체한다.
사람을 분별할 줄 알고 자비심 행하는 체하며
가르침을 경솔하게 여기고 뒤틀려 어긋나지 않은 체하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성품이 이와 같으면
마땅히 음란을 탐하는 모습이라고 하셨다.
마땅히 어떤 방법으로 성내는 모습[瞋恚之相]이 있는 줄을 관찰하는가?깊은 이치를 알아서 사람을 대하여 갑자기 성을 내지 않다가도 만일 성을 냈다하면 풀기 어렵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하는 말은 지극히 성실한 것 같으나 입은 추악하며, 널리 의심을 품어 쉽사리 믿지 않는다. 남의 잘잘못을 따지기 좋아하며, 깨어있는 시간은 많고 자는 시간은 적으며, 원망하고 미워함이 많아 벗들과 끝을 내며, 원수와 화해하기 어려워 당했던 것을 잊지 않으며,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아 남들은 두려워하는데도 자기는 두려워하지 않는다.힘이 세고 변덕스럽고 잘 굽히려 하지 않으며 걱정이 많고 가르치기가 어려우며, 신체가 장대하고 목덜미는 살지며, 머리가 크고 어깨는 넓으며, 이마는 모나고 머리카락이 곱다. 용맹스럽고 성질이 강하여 항복 받기 힘들며, 듣고 배우는 데 느리고 둔하여 얻기는 어렵지만 이미 배워 얻은 것은 다시 잊어버리기도 어려우며, 혹은 법재(法財)와 친구를 잃어버리고도 영원히 시름하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아 나아가기도 어렵고 물러가기도 어렵다. 이로써 그를 파악할 수 있나니 이것을 성내는 모습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의지와 성질 굳세고 강하며 이치를 깊이 아는 것 같으나
널리 남을 의심하여 잘잘못을 따지네.
잠[睡眠]이 적고 굴복시키기 어려우며
성품이 어리석어 배우기도 어렵지만 잘 잊지도 않네.
고달픔을 잘 견디고 접근하기 어려우며
두려워함이 없고 갑자기 성내지도 않네.
몸과 입이 서로 맞아 깨쳐주기 어려우며
용맹스럽고 힘이 세어 성질만 사납다.
두려움이 적고 친구도 적은데 미움과 원망만 많고
편안함은 적은데도 몸은 도리어 큰 체 하네.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뉘우치지 않으며
법재를 버리고도 도리어 돌아볼 생각을 않네.
한번 버린 친구는 다시 생각하지도 않으며
일찍이 변하지도 않고 항복하지도 않네.
힘써 정진하여 큰 업을 닦으려고도 하나니
부처님께서 이것들을 성내는 모습이라 하셨다.
어떻게 어리석은 모습이 있는 줄을 관찰하여 아는가?성질이 부드럽고 연약하여 제 자신을 칭찬하기를 좋아하며, 자애(慈愛)가 없고 법교(法橋)를 파괴하며, 늘 눈을 감고 있고 얼굴빛이 초췌(憔悴)하며, 지혜가 없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며, 가끔 혼자서 탄식하고 게으르고 믿음이 없으며, 착한 이를 미워하고 늘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며, 견해는 보잘 것 없으면서 스스로 큰 체하고 하는 일에 대하여 망설이고 주저하며, 좋고 나쁜 줄을 가리지 못하고 착하고 악함을 분별하지 못한다.만약 급한 일이 있어도 능히 스스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또한 남이 간하는 말을 듣지도 않으며, 좋은 벗과 원수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는 일이 도리어 어긋나고 뒤틀려서 마치 호랑이와 같으며, 해진 옷을 입고 몸에는 때가 많으며, 성품이 스스로 기뻐하지 않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더부룩해도 스스로 정돈할 줄도 모른다.걱정이 많아 눕기를 즐기고 너무 많이 먹어 절제하지 못하며, 남이 심부름을 시키면 달갑게 하지 않고 도리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하며,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일은 두려워하지 않고 마땅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을 도리어 두려워하며, 마땅히 걱정해야 할 일은 도리어 기뻐하고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은 도리어 걱정하며, 꼭 울어야 할 곳에서는 웃고 꼭 웃어야 할 곳에서는 운다.설사 급한 일이 있어도 남을 시키고 스스로 하지 않고 꼭 가야 할 자리에는 상대를 부르고 그가 와도 달갑게 돌아보지도 않으며, 늘 괴로움을 당하면 억지로 그 괴로움을 견디고 음식을 먹을 적에도 5미(味)를 분별하지 못하며, 말하면서 웃기를 좋아하고 잘 잊어서 한 말을 또 하며, 혀를 깨물고 입술을 빨고는 다음에 잇몸을 나불거리며, 걸어다니고 눕고 일어남에 있어서 언제나 편안한 적이 없으며, 거동하고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렵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없고 나아가고 물러갈 줄을 알지 못한다.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약한 몰골에다 어리석고 자비심이 없으며
고집이 센 성격에 제 자신을 칭찬하네.
눈은 항상 꿈쩍도 않고
바짝 여윈 채 가끔 탄식만 한다.
혼자서 다니고 남을 믿지 않으며
어진 이를 미워하고 또 게으르다.
늘 걱정하고 의심이 많으며
모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몸과 얼굴에 때[垢]가 많고
좋고 나쁜 말을 알지 못하며
하는 일마다 시끄러운 것이 많아서
스스로 일을 완전히 해내지 못한다.
시키는 일은 달갑게 행하지 않고
시키지 않는 일을 도리어 행하며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은 도리어 두려워한다.
기뻐해야 할 일은 도리어 걱정하고
걱정해야 할 일은 도리어 기뻐하며
꼭 울어야 할 곳에서는 도리어 웃고
꼭 웃어야 할 곳에서는 운다.음
식을 탐내어 배부른 줄 모르고
좋은 벗과 원수를 분별하지 못하며
의지와 성품은 뒤틀려 어긋난 짓을 좋아하고
지혜가 없어 늘 괴로움을 당한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늘 더부룩하고
믿음이 없이 어두운 곳에 있기를 좋아하며
다섯 가지 맛을 분별하여 알지 못하고
늘 누워 있어 마치 호랑(虎狼)이와 같다.
견해는 적으면서 잘난 체하고
혀를 깨물고 입술을 빨며
입을 놀리면서 잇몸을 움직거리고
말하면서 웃기를 좋아한다.
눕는 곳이 편안하지 못하고
급한 일도 진행할 줄 모르며
돌아오라고 부르면 도리어 앞으로 돌진하니
그런 성격을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하는가? 전에 말한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바로 그것이다.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모습은 또한 이와 같아서 저 일체가 번뇌와 합해진 것이다. 이것을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번뇌 속에 있으면서
음란과 성냄이 함께 합쳐서
마땅히 음란하고 성내는 모습을 보건대
이것이 곧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것이다.
앞에 설한 모든 것들
탐욕과 온갖 더러움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동이
곧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한 것임을 알라.
어떤 것을 입의 욕망과 마음의 욕망이라고 하는가? 말이 부드럽고 순종하여 어기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으며, 말과 생각이 매우 착하고 편안하여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비유하면 좋은 나무가 꽃빛깔도 선명하고 열매도 탐스럽듯이, 입의 욕망과 마음의 욕망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말이 항상 부드럽고 온화하고
순종하는 말만 하여 남이 듣기 좋게 하며
말과 행동이 서로 부합하고
마음과 몸으로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 듯함이네.
비유하면 좋은 꽃나무에
달고 맛있는 열매가 달려 익듯이
불세존께서는 이것을 해설하시기를
마음과 입의 음란한 모습이라고 하셨다.
어떤 것을 입은 탐욕스럽고 마음은 성내는 것이라고 하는가? 입이 하는 말은 부드러워도 마음은 독을 품는 것을 말한다. 마치 독이 있는 나무가 그 꽃빛깔은 선명하지만 열매는 매우 쓴 것처럼 말은 부드러워도 마음에 독을 품은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이 하는 말은 부드러워도
마음은 독해(毒害)를 품고 있나니
사람을 보면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따르므로 친할 만하고
입이 하는 말은 유순하여도
그 마음속에는 독을 품고 있어
저 독한 나무가 꽃빛깔 선명하지만
그 열매는 쓰고 독한 것과 같다.
어떻게 입이 탐욕스럽고 마음은 어리석은 것을 아는가? 말은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 마음은 아주 어리석어 어두우며, 남을 유익하게 할 수는 없어도 또한 속여 손해를 입히지도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 속에 있는 병(甁)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아름다워도 속은 어둡고 텅 비어 있는 것처럼 입이 탐욕스럽고 마음이 어리석은 것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으로 하는 말은 부드럽고 온화해도
마음은 어리석음을 품고 있나니
마땅히 이런 사람들은
입이 음란하고 마음이 어리석은 줄 알아야 한다.입
을 보면 지혜가 있는 것 같아도
마음속은 어둡기가 칠흑과 같고
바깥은 마치 그림 속의 병처럼 좋지만
그 속은 어둡고 텅 빈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입은 탐욕스럽고 마음은 성내며 어리석은 이라고 하는가? 말은 부드러워도 착한 것을 생각하는 일이 적고 성격이 순종적이지 못해서 혹은 악한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하지 않기도 하며,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으므로 그 성격을 알기가 어렵다.비유하면 마치 달콤한 약에 짜고 쓴 약을 섞으면 맛을 분별할 수 없는 것처럼 입은 탐욕스럽고 마음이 성내고 어리석은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이 하는 말은 탐욕이 들어있고
마음은 온갖 성냄과 어리석음을 품어서
마치 제호(醍醐)와 벌꿀에
맵고 쓰고 짠맛을 섞은 것 같다.
어떤 것을 입은 거칠고 마음은 음란한 이라고 하는가? 말이 강(剛)하고 조급하여 남을 중상하므로 대중에게 미움을 받아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공경하는 이도 없다.
비유하면 마치 부모가 자손을 꾸짖고 가르칠 적에는 아무리 입은 강하고 급하다 해도 마음으론 오히려 사랑하며, 또한 비유하면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이 사람의 종기를 따고 씻을 때는 몹시 아프긴 해도 오래 가면 갈수록 병은 점점 낫고 마음은 기쁜 것처럼 입이 강하고 마음이 음란한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입
이 하는 말은 조급하고
마음에는 음욕을 품고 있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햇빛이 냉수(冷水)를 비추는 것 같다.
어떤 것을 입은 강하고 마음은 성내는 이라고 하는가? 입으로 하는 말이 추악하고 품고 있는 생각에는 자비하고 착한 것[慈善]이 없어 남에게 이익을 주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비유하면 마치 쓴 약에 다시 독을 섞었다면 가령 환자가 마신다 하더라도 곧 토해버리고 먹지 못할 것이요, 설령 마신다 할지라도 그 약이 녹을 적에는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처럼, 입이 강하고 조급하며 마음에 성을 내는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이 급하여 가까이 하거나 공경하지 않고
마음이 악하여 온갖 독한 생각 품으며
남을 침해하여 억울하게 하는 것 좋아하나니
이런 무리를 보니 온갖 나쁜 짓을 행하네.
어떤 것을 입이 거칠고 마음이 어리석은 이라고 하는가? 말이 항상 강하고 조급하여 남에게 악을 가하고, 거동과 하는 일을 제 자신이 깨닫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선행은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악함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비유하면 마치 칼을 뽑은 도둑이 사람에게 위협만 가하고 해치지는 않는 것과 같다.이와 같이 행하는 이는 말이 조급하고 마음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은 강하고 조급하되 마음은 악하지 않고
위협은 곧잘 하지만 사람은 해치지 않나니
마치 칼을 뽑았으나 사용하지는 않는 것처럼
입이 거칠고 마음이 어리석은 이도 그와 같다.
어떤 것을 입이 거칠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이라고 하는가? 입으로 내뱉는 말이 강하고 조급하여 혹 남에게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또한 악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잠깐 착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한 악한 짓을 하지는 않는 것을 말한다.비유하면 마치 포도대장[捕將]이 도둑을 체포했을 적에 그 부하 포졸들 중에는 말로 위협하여 꾸짖는 포졸도 있고 잘 달래가면서 묻는 포졸도 있으며, 곤장을 치면서 고문하는 포졸도 있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거나 또는 고문과 꾸짖음을 가하지 않는 포졸도 있는 이런 경우와 같다.이것을 입이 추하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사람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말이 강하고 조급하며
마음에 3독을 품었으니
생각과 성격이 이와 같은 이는
착하지도 않지만 악하지도 않다.
행적이 이와 같은 이는
중간 정도의 사람이라고 하나니
수고스럽게 노력하는 것과 편안함
이 두 가지를 뒤섞어 갖추고 있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탐욕스런 이라고 하는가?분별하는 지혜가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해도 도무지 아는 것이 없어 착한지 악한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며, 이치가 쏠리는 바에 대해서는 늘 혼자 속으로 생각하기를 '마땅히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까?'라고 하면서 일의 갈래에 이르러서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대로 하여 그 근본 요체를 잃지 않는다. 비유하면 마치 깜깜한 밤에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탐욕스런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이 어리석고 마음은 음란하며
입으로 하는 말이 똑똑하지 못하니
저 용이 구름은 일으킬 수 있어도 우레소리는 내지 못하듯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음란한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은 강한 이라고 하는가?착함을 베풀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또 악함을 가하지도 못하면서 늘 혼자 마음속으로 '어떤 방편을 써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령 기회가 오면 문득 사람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한다.비유하면 마치 재[灰]로 숯불을 덮어놓아 지나가는 사람이 그 위를 밟으면 곧 발을 데이는 경우처럼, 말이 어리석고 마음엔 성냄이 있는 이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강하여
부드럽지도 않지만 악한 말도 하지 않는다.
늘 남에게 악을 가할 생각만 하고
착함과 이익을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이 똑똑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악을 감춰 둠이
마치 재로 숯불을 덮어놓아
사람이 밟으면 발을 데이는 경우와 같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어둠을 품은 이라고 하는가?능히 남에게 착함을 베풀지도 못하고 또한 악함을 가하지도 못하며, 남의 착함과 악함을 생각지도 못하고 또한 더하고 덜한 것도 없다. 왜냐 하면,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비유하면 마치 꺼진 불은 아무리 재로 덮고 마른 풀 마른 소똥[牛屎]을 가져다가 쌓아놓고 손으로 다지고 발로 밟아도 태울 수도 없고 익힐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니,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어두운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하는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어둠을 품으며
도저히 악한 것을 생각할 수도 없고
또한 착한 것을 생각하지도 못한다.
일을 성취시킬 능력도 없으나
또한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도 없으나
마치 뜨거운 햇빛에 밥을 짓는 것 같아
도저히 익힐 수가 없다.
어떤 것을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이라고 하는가?입으로 범한 일은 없으나 남을 이익되게 하지도 못하며, 남으로부터 조금만 상처를 입으면 밤낮으로 '무슨 방편을 써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까?' 하고 생각하며, 또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며, 또 마음속으로 '남을 손해보게 하거나 이익을 보게 하지 않으리라'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비유하면 마치 오래 묵어서 때가 잔뜩 낀 병(甁)에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갈라 담아 놓았는데, 그 입구에 뚜껑을 덮으면 속이 보이지 않고 뚜껑을 열면 속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 어리석고 마음에 3독을 품은 이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성격은 어긋나고 뒤틀리는 것을 좋아하고
입으로 하는 말은 똑똑하지 못하며
음란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품었고
나쁘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겨 있다.
비유하면 아주 오래된 큰 병에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담은 것 같아
남에게 이익을 주지도 못하고
또한 조금도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사는 이 열아홉 가지 일로 사람의 마음을 관찰한 다음,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저 음란한 모습에 대하여 어떻게 해설하는가?법(法)을 강론하는 말을 듣고서도 음욕을 많이 익힌 사람은 지옥과 아귀의 세계에 떨어진다. 그런 연후에 그곳을 빠져 나오면 다시 음란한 새[婬鳥]인 앵무새·청작(靑雀)·집비둘기·원앙새·거위·집오리·공작이 되며, 또 야인(野人)이나 원숭이가 될 것이다.
설령 돌아와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크게 음란하고 방탕하며 경솔하고 사나울 것이다.어진 사람들은 마땅히 이것을 관찰하여 아름다운 사람의 몸은 다 죄와 번뇌와 악로(惡露)의 부정함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관하여 알고서 음욕을 익히지 말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색(色)에 대한 음란과 교만을 많이 익히는 것은
저절로 불에 타기를 촉구하는 짓이다.
인간에 있거나 또는 축생에 있거나
지옥과 아귀 가운데 있게 되리라.
그런 곳에 태어나도 도리어 자신을 해롭게 해
번뇌의 불에 저절로 타고 말리라.
이곳에서 해탈하게 하기 위하여
행적을 따라 일부러 이것을 말하노라.
가령 너무 성냄이 많은 이는 그 행적을 따라 그런 사람을 위하여 설법해준다.많이 성냄을 범하면 지옥과 아귀의 길에 떨어지고, 그러한 악한 곳으로부터 나오더라도 마땅히 독한 짐승이 되든지, 또는 귀신·도깨비·나찰·반족(反足)·여귀(女鬼)·변소 귀신의 무리가 될 것이다.또한 사자·호랑이·이리·뱀·독사나 독한 벌레·모기·등애·거미·벌과 100개의 발이 달린 벌레의 무리가 될 것이다.설령 그런 곳으로부터 세간으로 환생한다 할지라도, 얼굴이 추하고 더러워서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지 못하며, 항상 수명이 짧거나 병이 많고 신체가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그러므로 재앙과 죄가 분명한 것이니, 늘 자비로운 마음을 받들어 행하여 그 성냄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이 너무 성냄을 품으면
대중들한테 온통 미움을 받는다.
거기에 걸려 나쁜 세계에 떨어지며
병이 많아 편안하지 못하다.
귀신 세계나 독한 짐승 세계에 떨어지고
인간으로 태어나도 천한 이가 되나니
능히 자비한 마음을 행하여
곧 성냄의 어둠을 제거하라.
가령 어리석음이 너무 많은 이는 그를 위하여 이러한 법을 설해주어야 한다.몽매한 어리석음이 왕성하고 많으면 죽어서 지옥과 아귀의 길에 떨어지고, 만일 축생으로 태어나게 되더라도 어리석은 짐승이 되나니, 즉 소·양·여우·개·노새·나귀·돼지 등의 종류이다.가령 사람의 세계에 환생하더라도 성격이 결단력이 있거나 분명하지 못하고 안목이 적으며, 모든 감관[根]이 미약하고, 늘 질병이 많으며 6정(情)이 완전치 못하고, 오랑캐나 야인(野人)들 가운데 태어나서 어둠으로부터 어둠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12인연을 관(觀)하는 법을 말하여 어리석음의 뿌리를 뽑게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음에 너무 많이 훈습된 이는
모든 감관이 온전하지 못하고
소나 양 따위로 태어났다가
다음 지옥에 떨어진다.
가령 닦고 배우는 사람이
이 악도에서 제도되길 원하고
이 어둠에서 해탈하길 바란다면
마땅히 12인연에 대한 법을 관하라.
가령 음란함과 성냄이 너무 많은 이는 그 사람을 위하여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행하게 해야 하나니, 그 부정함을 관하게 하고, 또 자비한 마음을 받들어 행하게 하는 것이다.만일 음란함과 어리석음이 너무 왕성한 이는 그를 위하여 두 가지 일을 강설해 주어야 하나니, 일체는 공(空)한 것이고 무(無)라는 진리와 자비한 마음에 대해서이다.가령 성냄과 어리석음이 너무 많으면 그를 위하여 두 가지 일을 말해주어야 하나니, 자비한 마음으로 인도하는 것과, 어리석음의 근본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비심을 행하고 부정을 관하게 하여
음란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색욕에 흐려 어리석어진 이들과
12인연에 밝지 못한 이를 가르친다.
만일 사람이 성냄이 너무 왕성하거나
너무 어리석은 이 번뇌 없애려면
마땅히 그를 위해 자비심과
12인연의 근본에 대해 강설해 준다네.
만일 입이 음란하고 마음에 탐욕이 있는 이가 있으면 그를 위하여 일체는 다 무상(無常)이라는 이치와 공적(空寂)의 이치를 말하여 주고, 마음에 성냄이 있고 말로 성내는 이가 있으면 그들을 위하여 자인(慈仁)에 대하여 말해 주고, 말이 어리석고 마음이 어두운 이가 있으면 그를 위하여 12인연에 대한 이치를 말해주어야 한다.그 밖에도 네 종류의 온갖 병폐가 갖추어져 있나니, 첫째는 말은 음란하고 마음에는 3독을 품는 것이요, 둘째는 말로 성내고 마음에는 음란함·성냄·어리석음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며, 셋째는 말이 어리석고 마음속에는 3독을 품고 있는 것이요, 넷째는 사람이 온통 세 가지 번뇌를 품고 있는 것이다.그것을 알고 계신 법사께서 마땅히 이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교화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고요히 인연의 근본을 관찰하게 하셨다.왜냐 하면 이런 무리들은 번뇌가 많아 모든 죄와 재앙이 두둑하게 쌓여 두터워지고 스스로 거기에 얽매이기 때문이니, 비록 현재에는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한다 해도 마땅히 그에게 경을 독송하라고 가르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권유해야 한다.이를 반연하여 그 때문에 오로지 외우는 데 힘써서 번뇌가 점점 얇아진다면 비록 도는 얻지 못할지라도 하늘에는 오를 수 있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행동에 있어 음란을 범하고
마음엔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면
마땅히 경을 독송하라고 가르치고
또한 복을 지으라고 권유해야 한다.
아무리 번뇌가 왕성하게 일어날지라도
이것을 반연하여 죄와 번뇌를 제거하면
이 방편을 원인으로 하여
그런 연후에 하늘에 나게 되리.
비유하면 사람이 공원에 나무를 가꾸려면, 땅이 높은 곳은 낮추고 언덕은 편편하게 만든 다음, 때를 맞추어 물을 주고 가시덤불과 잡초와 갈대 같은 것들을 다 뽑아버리며, 잘못 나오고 굽은 나무들과 쓰지 못할 곁가지를 모두 베어 울 밖에 버리고 곧고 좋은 나무들로 하여금 걸림 없이 뿌리가 깊이 내리고 잎이 무성하게 해야 하며, 낱낱이 보호하여 꺾어지거나 상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나무가 점점 자라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해질 것이다.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음란함·성냄·어리석음과 탐욕의 생각[欲想] 따위의 모든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는 성숙해져서 도를 얻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무가 굽고 비뚤어진
잘못 나오고 곧게 자라지 않은 것과
가시덤불과 모든 장애가 되는 것들을
죄다 없애어 곧게 자랄 수 있게 하듯이
갖가지 방편을 써서
닦고 다스려야 곧 이루나니
수행하여 법 나무를 가꾸듯
경을 받드는 것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모든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없애고
스승의 갖가지 가르침을 받아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없애되
저 정원사가 나무를 가꾸듯 하라.
법사께서 경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네 가지 일로 관찰하셨나니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널리 배워서 도에 이르는 것이요, 둘째는 도를 생각하지만 그 학문에 대해서는 논의가 능하지 못한 것이며, 셋째는 널리 배웠어도 도덕(道德)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요, 넷째는 아는 것도 없고 도(道)도 없는 것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나니, 첫째는 처음부터 그 법사의 가르침을 따라 이치를 깨닫고 법을 이해하는 것이요, 둘째는 비록 그 이치는 이해했어도 미묘한 경지에 미치지는 못한 것이며, 셋째는 쉬운 법은 분별하지만 능히 깊은 이치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요, 넷째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또한 분명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법을 배우는 것은 익힌 것이 황당하고 괴로운 것이다.비유하면 마치 헤엄을 칠 줄 모르는 두 사람이 깊은 물에 빠졌는데, 서로 건지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다 빠져죽고 마는 것과 같고, 또 장님이 장님을 이끌고 길을 가려고 하나 가는 도중에 미혹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또한 밝은 지혜도 없는 법인데, 그런 사람이 법을 설하려고 하거나 중생을 구원하려고 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널리 배운 사람이
수없이 많은 선(善)으로
이미 6도무극(度無極 : 波羅蜜)을 얻은 것과 같이
만일 사람이 큰 바다를 뛰어 넘는다면
만일 사람이 청정한 진리에 대해
아무런 지혜가 없으면
다만 그 요점만을 취할 뿐 능
히 깊은 이치는 얻지 못한다.
만일 도에 들기를 익히는 이가
따르고 믿어 율(律)을 어기지 않고
가르침을 잘 공경하여 받든다면
이렇듯 깨우치는 바 있으리.
비유컨대 존자(尊者)를 가까이하면
틀림없이 큰 이익을 얻는 것처럼
수행도(修行道)를 배우는 사람은
구하는 이치에 반드시 전진함이 있으리.
그러나 단지 그 이치만 이해할 뿐
미묘함을 터득하지 못하면
사람이 밥 먹을 적에
국만 있고 밥은 없는 경우와 같다.스
승으로부터 이치만 듣고
이같이 미묘함을 깨닫지 못하면
능히 큰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르고 참된 지혜에 이르지 못하리라.
가령 도에 들지 못하고
분별하여 해설하지 못한다 해도
곧 지혜에 대하여 이해하면
이치에 어두워 분명히 깨닫지도 못하리.
마치 장님이 장님을 안내하여
목적지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이치에 어둡고 지혜가 없는 것도
비유하면 또한 그러하다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세 가지 계품을 헤아려야 할 것이니, 첫째는 혹 몸은 도를 행하려고 하여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혹 마음은 도를 행하려고 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도를 닦아 몸과 마음이 함께 행하는 것이다.어떤 것을 몸은 도를 행하려 하여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가?가령 수행하는 이가 가부[跏趺]를 틀고 앉아 몸이 바르고 마음이 단정하기가 마치 기둥이나 나무와 같아 아예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하려고 애써도 이런 모양[相]이 나타나면, 속마음이 움직여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닿임[細滑 : 觸]에 대한 생각을 걷잡지 못하여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못하고 두루 갈구하다가 그 마음이 방일하여 자재(自在)를 얻지 못함이, 비유하면 마치 죽은 시체를 묘지에 버려 두면 호랑이·이리·새·짐승·개·담비 떼들이 다투어 먹어치우듯이, 몸은 안정되었지만 마음이 어수선한 것도 또한 그와 같다.이것이 도덕의 자리를 수행하는 이가 몸은 안정되었어도 마음은 어수선한 것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부를 틀고 단정히 앉아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으나
그 마음속이 어수선하고 혼미함이
못에 빠진 코끼리 심정 같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이는
몸은 안정되었어도 마음은 산란하여
비유하면 나무에 헛꽃이
열매를 못 맺고 떨어지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을 도지(道地)를 수행하는 이가 마음은 도에 있어도 몸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가?몸은 단정히 앉아 있지 못하면서 4의지(意止)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니, 이 때에는 곧 마음은 안정되었으나 몸은 불안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심성(心性)이 저절로 조화되어
4의지에 머물러 다른 생각 없으면
이 때를 곧 4의지라고 말하나니
몸은 비록 안정되지 못했어도 마음은 산란하지 않다.
어떤 것을 도지를 수행하는 이가 몸과 마음이 다 안정되었다고 하는가?앉은 몸의 자세가 단정하고 마음이 방탕하지 않으며, 몸 안의 감관[內根]이 모두 고요해져서, 밖으로 치달려 모든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 때에 몸과 마음이 단정하여 전혀 움직이지 않고,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똑같이 안정된 줄을 알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몸과 마음이 다 안정되어
안과 밖으로 방일하지 않고
고요히 가부를 틀고 앉되 쓰
러뜨리기 어려운 기둥처럼 하라.
생사의 진리 보기를
물이 언덕의 나무를 떠내려 보내듯 하여
몸과 마음이 서로 호응해야
빨리 도를 이루어 과위를 얻으리.
도지를 수행함에 있어서 오로지 도에만 부지런히 정진하여 움직이지 않아야 하나니, 이렇게 적정(寂定)해져야 빨리 니원(泥洹)에 이를 수 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갖가지 요긴한 이치를 강설함이
젖과 꿀을 섞어서 먹는 것과 같나니
아첨을 없애고 능히 법을 받들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저절로 조복되리라.
수행도지경 제 3 권
서진삼장 축법호 한역
9. 권의품(勸意品)
도지(道地)를 수행하는 이가 무슨 방편으로 그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는가?내가 일찍이 들으니 옛날 어느 나라 왕이 온 나라에서 밝고 지혜 있는 이를 뽑아 재상[輔臣]을 삼으려고 하였다. 그 때 국왕은 임시 방편으로 한량없는 지혜를 써서 한 사람을 뽑았는데 그는 총명하고 널리 통달하였으며, 그 뜻이 크고 고상하였다. 그래서 위엄은 있되 사납지 않고 명성과 덕을 한꺼번에 갖추고 있었다. 왕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어서 그를 시험하려고 하였다.그리하여 일부러 그에게 중한 죄를 뒤집어 씌워볼 생각으로, 다른 신하에게 명하였다. "그 사람에게 발우에 기름을 가득 담아 받쳐들고 북쪽 문에서부터 남쪽 문까지 가서 이 성에서 2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조희(調戱)라는 동산까지 가라고 전하라. 만약 그가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 단 한 방울이라도 기름을 흘리면 보고할 것 없이 그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오너라."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그 사람이 조희 동산까지 가는 동안
내 분부 잘 받들어 기름을 흘리지 않으면
그 사람을 마땅히 내 몸과 같이 공경하고
중도에 기름을 흘리거든 곧 머리를 베라고 하였네.
그 때 많은 신하들은 왕의 지엄한 분부를 받고, 발우에 기름을 가득 담아 그 사람에게 주었다.그 사람은 두 손으로 받쳐들고,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는 곧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기름이 이렇게 그릇에 가득하고 또한 성 주변에는 다니는 사람도 많으며 오가는 수레와 구경꾼들도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비유하면 마치 물은 고요히 흔들리지 않으나 바람이 불어와 그 물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행인(行人)들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상태로 물러나서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어느 한 사람도 나에게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말라고 권면(勸勉)하는 말을 해주는 이가 없구나. 이 기름 그릇을 받쳐들고는 겨우 일곱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몇 리나 되는 길을 가겠는가?'그 사람은 걱정이 되고 심란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혼자 속으로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코끼리·말·수레를 둘러보니
바람이 물 위에 부는 것처럼 마음도 그와 같아
마음에 두려움 생겨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어떻게 이 일을 끝까지 잘 마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은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죽는다는 것은 결정된 일이라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설령 저 기름 발우를 받쳐들고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고 저 동산까지 가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마땅히 전일하게 계획을 세울 것이요, 만약 시비(是非)거리가 보이더라도 마음이 흔들려 바꾸지 않고 오직 기름이 담겨있는 발우만 생각하여 뜻을 다른 데에 두지 않아야 이 난관을 헤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편안한 동작으로 천천히 걸음을 걸었다.그 때 모든 신하들과 군사들, 그리고 구경하는 관중들 헤아릴 수 없는 백천 사람들이 따라가면서 구경하였는데, 마치 구름이 일어나 태산을 둘러싸듯 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발우를 받드는 그 사람의 마음 견고한데
길을 따라 구경하는 수많은 구경꾼들
숱한 사람이 빙 둘러싸고 따르는 모습
마치 강과 바다에 큰 구름이 일 듯하였네.
그 사람이 발우를 받쳐들었을 때, 그 소문이 널리 펴져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대중들은 모두들 말하였다. "이 사람의 의복과 형체와 거동을 보니 틀림없이 죽임을 당할 죄수와 같다."이 사람에 대한 소식이 급기야 그의 집에까지 전해지자, 그의 부모와 종족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모두 달려왔다.그들은 아들이 있는 곳에 이르러 슬피 울면서 애달파 했지만, 그 사람은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부모·형제·처자와 모든 친척들은 돌아보지 않고, 마음을 기름 발우에 두어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아들 울어대니 눈물이 샘솟듯 하고
그 아비 온갖 슬픔으로 울며 탄식하였으나
마음에 두려움 품고 부모도 살피지 않고
오로지 뜻을 잡아 발우를 받쳐들었네.
여러 사람들은 서로 의논하면서 이렇게 두세 번 외쳐댔다.그 때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구경하느라고 소란스럽고 고함치는 소리가 진동하였으며, 서로 치달리고 서로 쫓고 쫓기고 하다가 땅에 자빠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고, 서로 기어오르다 짓밟혀 몸둘 곳조차 없었지만, 그 사람은 마음이 단정하여 여러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고함소리 끊일 새 없고
앞뒤로 서로 몰려 몸둘 곳조차 없지만
기름 발우 받쳐들고 전혀 쳐다보지도 않으니
우박 쏟아져도 허공은 상처를 입지 않는 것과 같네.
구경꾼들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여인이 오고 있다. 저 여인은 단정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위의(威儀)와 얼굴이 온 나라에 짝할 이 없을 정도여서 마치 별 가운데에 떠 있는 보름달이 유달리 밝은 것과 같으며, 그 색은 마치 연꽃과도 같아 큰 거리를 거닐면 위풍당당한 상호와 남들보다 뛰어난 얼굴이 마치 옥녀(玉女)와 같다. 또한 단정하고 아름다운 도리천왕(忉利天王)의 왕후인 호리(護利)를 모든 하늘 인민들이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는 이가 없듯이 지금 그 여인의 맑고 아름다움도 그와 같아서 여덟 가지 춤과 청아한 음성을 보고 듣는 이들은 모두 기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여인의 그 거동 평화스러워 보이고
노래와 춤, 법도에 벗어나지 않으며
그 마음 기쁨을 품어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네.
구슬픈 노래 소리와
간들거리는 그의 몸매
빠르지도 또 더디지도 않으며
의복도 자연스럽고 가지런하네.
일곱 가지 미묘한 음성과
기특한 재주 50가지가 있네.
삼계(三界)에 모두 청정하고
궁상(宮商)의 곡조 서로 조화하네.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온몸을 보배 영락으로 장엄했으며
아름답고 청아한 말소리
마치 감로가 내리는 것 같네.
그 때 그 사람은 한마음으로 발우를 받쳐들고, 뜻을 조금도 움직이지도 않고 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지도 않았다.그러자 구경꾼들이 모두 말하였다. "차라리 오늘 저 예쁜 여인의 얼굴이나 실컷 구경하다가 죽더라도 여한이 없겠다. 그것이 오래 살면서 저 여인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낫다."그 때 그 사람은 비록 이런 말이 들려와도 오로지 발우만 받쳐들뿐 조금도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애교 있고 편안한 느낌 주는데
그 춤도 또한 솜씨가 가장 훌륭하여
모든 사람들 탐내고 즐거워함이
마치 마왕의 아내[后]와도 같네.
욕심을 여읜[離欲] 이도 동하겠거늘
더구나 범부이겠는가?
그 사람 주위를 왔다 갔다 해도
발우만 받쳐들고 마음 기울이지 않네.
그 때 마침 몹시 취한 듯한 코끼리가 자유분방하게 큰 길거리로 뛰어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지금 취한 듯한 코끼리가 나타나서 우리들을 마구 밟고 차고 하여 비명에 죽어가고 있다."이는 도깨비가 코끼리 모습으로 변신하여 닥치는 대로 위험을 가하고 해치되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으며, 몸뚱이에는 종기가 나서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비유하면 허벅다리에서 독한 기운이 흘러내리고, 혀는 빨갛게 되어 피와 같고 배를 땅에 대고 있으며, 입술은 축 늘어지고 걸음걸이는 갈팡질팡하여 무엇을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고 사람의 피를 몸뚱이에 바르고 제멋대로 뛰놀아 거침이 없으며, 나아가고 물러가기를 마치 국왕(國王)처럼 자유자재로 하였고, 멀리서 보면 마치 산과도 같았으며, 사납게 울고 포효하는 소리가 우레와도 같았고 코를 쳐들면서 성내고 분노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큰 코끼리 힘이 세어 감당하기 어려운데
몸뚱이에 흐르는 피 샘물이 솟듯 하며
땅을 디뎌 먼지를 일으키고
입을 벌려 여러 사람 위협하면서 해치려 하네.
그 코끼리는 이와 같이 구경꾼들을 두렵게 만들어 모두 달아나 흩어지게 하고 군사들도 물리쳤다. 그러자 많은 코끼리 떼까지도 다 도망쳤고 모든 구경꾼들도 겁에 질려 죽으려 하기도 했으며, 큰 나무를 뽑고 여러 생물들을 짓밟아버리는 그 기세는 비록 몽둥이로 때려서 아프게 할지라도 조금도 꺼리거나 두렵게 여기지 않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군중들과 여러 코끼리 떼를 물리치고
사람을 두렵게 위협하여 혹 죽이기도 하며
모든 집을 밀쳐서 무너뜨리고 멋대로 달리며,
제어해도 무서워 않네.
그 소문 멀고 가까운 데 퍼졌는데
강하고 억센 것으로 덕목을 삼으며
교만하여 조심스러운 데가 없고
지나친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네.
그 때 길거리와 시장에서 점포를 차려 놓고 물건을 팔고 사는 이들은 모두 두려워하여 물건을 거두어 감추고 문을 닫았으며, 집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하면서 사람들은 다 피해 달아났다.또한 코끼리 조련사도 제어할 길이 없었고 성내어 날뛰는 행동이 더욱 심하여 길거리에 있는 코끼리·말·소·양·돼지·송아지 떼를 짓밟아 죽이고, 모든 수레를 부수어 별[星]처럼 낭자하게 흩어졌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점포를 보는 이 물건을 죄다 감추었고
사람과 짐승을 해치고 수레를 부수므로
이와 같은 짓을 보고는 문을 닫았으니
그 낭자함이 마치 도둑이 영문(營門)을 파괴한 듯하네.
혹 어떤 이는 보고 두려움을 품어 감히 꼼짝하지 못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원망하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으며, 또는 정신이 미혹되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 이도 있으며, 또는 미처 옷을 걸치지 못하여 끌고 달아나는 이도 있으며, 또는 미혹되어 동쪽과 서쪽을 식별하지 못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달아나는 꼴이 마치 바람이 불어 구름이 사라져 간 곳을 알 수도 없는 것과 같기도 하며, 당황하고 두려워서 배로 땅을 기는 이도 있으며, 또는 궁한 나머지 활을 당겨 화살을 쏘려고 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칼을 잡고 앞으로 대항하려는 이도 있으며, 그 가운데는 넋을 잃고 황홀(恍惚)하여 헛소리를 치는 이도 있으며, 혹은 성냄을 품고 두 눈이 빨갛게 된 이도 있으며, 또는 자취를 감추고 멀리 바라보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혹은 비록 병기는 들었지만 감히 덤비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에 미혹되어 무서워하고
또는 슬피 우는 이도 있으며
혹은 질려서 어쩌지 못하는 이도 있고
또는 병기를 들고 있는 이도 있었네.
공포에 떨다가 땅에 쓰러지기도 하고
기가 질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이렇게 편안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모두 취한 코끼리 때문이다.그
때 코끼리를 잘 길들이는 주술(呪術)에 밝은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자신이 배운 코끼리 길들이는 법 중에 착한 코끼리와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는 법이 무려 800가지가 있는데 내가 지금 이 코끼리를 관찰해 보건대 그 방법 중에는 한 가지도 해당되는 게 없다. 내 지금 어떤 종류의 주술을 써야 할지를 살펴보아야겠다. 다만 상등 종류가 네 가지 있는데, 이 코끼리는 중등 종류에 해당될까, 하등 종류에 해당될까?'이렇게 살펴 알고 나서 바로 큰 소리를 내어 신주(神呪)를 외웠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천왕이 금강밀적(金剛密迹)에게 준
미묘한 주술이 나에게 있으니
그것으로는 잘난 체하는 이를 억제할 수도 있고
하열한 이로 하여금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깨달아 밝은 모든 이들은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하는 거만함이 없고, 또한 열뇌(熱惱)를 일으키지도 않으며, 온갖 은애(恩愛)를 다 버리고 오직 법만을 받드나니, 그것은 다 성실하게 믿고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잘난 체하는 코끼리를 조복(調伏) 받아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이다.이에 옛 성인이 남기신 두 개의 게송으로 말한다.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이 세상의 세 가지 큰 교만이니
성실하게 도를 닦아 모든 때[垢]를 없애고
온갖 열뇌(熱惱)를 소멸한다.
저 지성스러운 법으로써
이와 같이 수행하여
큰 뜻을 코끼리에게 말해
미혹 없애고 교만함을 버리게 하라.
그 때 저 코끼리는 이 바른 가르침을 듣고 곧 교만함[自大]을 버리고 그 마음을 항복하여, 문득 본래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코끼리의 우리로 돌아갔고 여러 사람들을 범하지 않아 해를 입히는 일이 없어졌다.그러나 그 발우를 든 사람은 코끼리가 온 줄도 알지 못하였고 또한 간 줄도 깨닫지 못하였다. 왜냐 하면 온 마음이 죽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다른 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코끼리를 갑자기 쏟아지는 비처럼 보아
마음이 일찍이 혼란스럽지 않았고
그 비가 비록 그쳤지만
허공처럼 보아 기뻐하지도 않았네.
그 사람 또한 이와 같아서
코끼리가 오가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 집중해 기름 발우 받들기를
창고의 보배처럼 여겨 잊지 않았네.
그 때 구경꾼들이 요란스럽게 동쪽과 서쪽으로 흩어져 달아나는 통에, 성 안에서는 불이 일어나 모든 궁전과 온갖 진귀한 집과 누각과 높은 대(臺)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데, 불길이 묘하게 나타나 높이 치솟아 올라 이곳저곳으로 자꾸만 번져나갔다.비유하면 커다란 산은 보지 못하는 이가 없는 것처럼, 연기는 온통 자욱했고 불길은 하늘을 찌를 듯이 타올랐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성은 풍요롭고 즐거우며 엄정하여 좋았고
궁전과 집은 매우 넓고도 묘했는데
자욱한 연기 퍼지지 않은 데 없고
타오르는 불길은 사람이 일부러 지른 듯하였네.
불이 성을 태울 때에 모든 벌떼가 독을 방출하고 사람을 쏘았다. 구경꾼들은 통증을 느끼고는 놀라고 괴상하게 여겨 이리저리 치달리고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얼굴 색이 험악하게 변하였으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의복은 벗겨지고 치장했던 보배를 떨어뜨리며, 연기에 파묻혀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멀리서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고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모·형제·처자·노비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서로를 불러댔다. 또 서로 가르쳐 말하였다. "불길을 피하고 물을 떠나며 진흙탕에 빠지지 말고 안위를 조심하라."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걱정되는 마음 생겨 스스로 어쩔 줄 몰라
집안 식구와 친척들 그리고 하인들과 코끼리,
말 등 탈것을 버리고 가엾이 나오면서
큰불이 났으니 마땅히 피하라고 하네.
그 때 관병(官兵)이 죄다 밀려와서 불을 끄느라고 야단들인데, 그 사람은 정신을 집중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발우를 받쳐들어 한 방울도 흘리지 않기 위하여 불이 일어나고 불이 꺼지는 줄도 깨닫지 못하였다. 왜냐 하면 마음을 잡고 뜻을 오로지 하여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미혹함이
마치 새가 불을 만나 날아오르는 것 같고
그 불이 궁전과 집을 태워
연기가 자욱하여 뜬구름과 같았네.
머리를 풀어헤치고 공포에 떨면서
연기와 불을 피해 달아났네.
그는 한결같이 마음을 기름 발우에 두어
불이 나고 꺼지는 줄도 알지 못했네.
그 때 5색 구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는 우레와 번개가 진동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욱한 안개에 때아닌 비 내리고
바람 일어나고 구름 기운 음습하여
허공이 온통 맑은 기운 없었으니
저 포악한 코끼리처럼 구름도 그러했네.
그 때 혼란한 바람이 불어 흙먼지와 모래·자갈·기와조각·돌 따위가 왕이 다니는 길을 가득 메웠으며, 나무가 뽑히고 가지가 꺾였으며 모든 꽃과 열매가 다 떨어졌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바람 일어 먼지가 온통 날리고
습기 머금은 구름 끼어 미치지 않는 데 없었으며
거센 바람은 몰아쳐 서로 보이지 않는데
우레와 번개에 놀라지 않은 사람 없었네.
그 때 짙은 구름이 한없이 일어나고 번개가 번쩍거리며 벽력이 떨어졌다. 공작(孔雀)은 모조리 울어대는데, 하늘에서는 갑자기 비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졌다. 비록 이와 같은 변괴가 있었지만 그 사람은 듣지 못하였다. 왜냐 하면 기름 발우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코끼리가 제 멋대로 날뛰는 것이
마치 짙은 구름이 일어나듯 하였네.
우박이 떨어지고 불이 나고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집은 부서졌네.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으니
어느 것이 착하고 어느 것이 악하겠는가?
바람과 구름 일어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다만 발우에 가득한 기름만 보았네.
그 때 그 사람은 발우에 가득한 기름을 받들어 들고 저 동산에 이르기까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모든 신하와 군사들은 죄다 왕궁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갖추어 아뢰었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 사람은 일심으로 발우를 받들어 들고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으므로 기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원관(園觀)까지 이르렀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을 해냈으니, 사람 가운데 영웅이다. 친척과 권속, 그리고 옥녀(玉女)들도 돌아보지 않았고, 큰 코끼리와 물과 불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우레·번개·벽력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는 우레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고 두려움에 떨려 비록 아뢰는 말이 있어도 그 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혹은 심장이 터져 죽는 이도 있었으며, 혹은 새끼를 가진 말이 낙태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은 서서 죄다 어쩔 줄 몰라했었는데, 비록 그런 온갖 고난을 만났어도 그의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다.이와 같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판단치 못할 일이 없을 것이며, 마음 굳세기가 이와 같으니, 끝내 고난도 받지 않을 것이며, 지옥의 왕도 이 사람은 금강(金剛)도 먹을 수 있으리라고 고찰할 것이다."왕은 기뻐하면서 그 자리에서 대신(大臣)을 삼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친족들이 울부짖는 그 광경과
취한 코끼리 사납게 구는 모습 보았네.
아무리 모든 무서운 고난 만났어도
그 마음 끝까지 변동하지 않았네.
왕은 그 사람이 이와 같이
마음 굳고 안정되어 바뀌지 않음을 보고
친근히 하고 사랑하며 관대히 공경하여
그 자리에서 그를 대신으로 삼았네.
그 때 이 정사(正士)는 그 마음이 견고하여, 좋고 나쁜 일과 모든 고난을 만났어도 뜻이 바뀌지 않아 죽임을 당할 죄를 해탈하였고, 이미 호귀(豪貴)와 장수(長壽)를 누리며 오래 살게 되었다.도를 수행하는 이도 마음 길들이기를 그와 같이 하여, 비록 모든 환란과 음탐·성냄·어리석음이 몰려와서 모든 감관[根]을 어지럽힐지라도, 마음을 보호하고 뜻을 거두어 거기에 따라가지 말고, 제일 먼저 그 안 몸[內體]을 관하고 다음에 바깥 몸을 관하여야 한다. 통양(痛痒 : 受) 등의 심법(心法)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사람 기름 발우 받들 적에
움직이지 않아 떨어뜨리지 않았으니
미묘한 지혜 바다와도 같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름 그릇 받들었네.
만일 다른 이도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 지녀
뜻으로 온갖 밝은 덕을 품고
일체 더러움 죄다 없애야 한다.
여러 가지 색욕(色欲)과
또 성냄과 어리석음 일어나도
뜻을 방일하게 하지 말고
적멸하여 스스로 제지해야 한다.
사람 몸에 병이 있으면
의사가 약을 써서 제거하듯이
마음의 병도 또한 그와 같이 하여
네 가지 의지(意止)로써 없애야 한다.
마음이 굳센 이는 뜻을 능히 이와 같이 하면, 손톱으로 설산(雪山)도 무너뜨리고, 연꽃 뿌리로 금산(金山)도 뚫으며, 톱으로 수미산도 끊을 수 있을 것이다.믿음이 없고 능히 정진하지 못하며, 아첨을 품고 방일하고 잊기를 좋아하면, 아무리 세상에 오래 살아도 끝내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번뇌를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믿음이 있고 정진하며, 질박하고 정직하고 지혜 있어서 그 마음이 견고하면, 능히 산도 불어서 움직이게 할 수 있거늘, 더구나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이겠는가?그러므로 수행하는 이가 도덕을 이루고자 하면, 믿음을 가지고 정진하며, 지혜 있고 질박하고 정직하며 그 마음을 잘 다스려서 오로지 수행하는 자리에 두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정직하고 믿고 정진하며
지혜 있어 아첨을 없애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덕(德)으로 더러움 없애
마음의 무수한 번뇌 여의어야 한다.
한량없는 경전을 이해하고
스스로 이 불교를 깨달아
그 요긴한 말씀을 채취하고
한량없는 이치를 분별하라.
10. 이전도품(離顚倒品)
저 공덕주(功德住)1)의 깨달음 높으니
학술(學術)이 정거천에 의거하였듯이
지혜의 물 흐름이 좋은 보배와 같으신
거룩한 대산왕(大山王)께 머리 조아리기 원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갈래[趣]를 알아 미혹되지 않으시고
태(胎)에 의지하지 않고 탄생하신 부처님
들지도[入] 않고 또 나가지도[出] 않으셨네.
또 모든 괴로움 겪지도 않으시고
집착하지도 않고 뒤바뀌지도 않으시며
덕이 두텁고 집착한 바 없으신 분
그 분께 귀의해 생사를 건너려네.
도를 수행하는 이가 혹은 게으름을 품고 "법은 너무도 미묘하여 밝게 깨닫기도 어렵고[難曉難了] 분별할 수도 없다"고 말하지만, 마땅히 괴로움의 근본을 식별하고 모든 습기(習氣)를 끊어버려 멸진(滅盡)을 증득하고 도술(道術)을 닦고 기억해야 한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머리털 한 개를 100가닥으로 나누어놓고 묻기를 "다시 전처럼 그 머리카락을 뒤바뀜이 없이 이어놓으라고 한다면 그 일은 매우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한다면, "매우 어렵고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환술(幻術)로 조화를 부려 온갖 약을 쓰거나 신주(神呪)를 써야 이 머리
1) 1차적으로는 부처님을 말하고, 2차적으로는 불(佛)·법(法)·승(僧) 3보에 공양하는 시주 단월(檀越)을 말한다.
털을 전처럼 이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리니, 이와 마찬가지로 니원(泥洹 : 涅槃)의 도도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그러니 비록 도증(道證)을 이루지 못한다 할지라도, 마땅히 방편을 자꾸 써나가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늘 굳건히 정진하여 해탈문(解脫門)으로 향하는
그것을 깨닫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힘써 노력하고 권하기 좋아하여 물러남이 없으면
마치 땅을 깊이 파서 샘물을 얻는 것과 같으리.
마땅히 이런 관법(觀法)을 일으켜야 한다.빨리 이룩해야 할 것은 니원(泥洹)만한 것이 없나니 다른 곳으로부터 구할 것이 아니요 자신의 마음으로 인하여 이루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어렵겠지만 자기의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자 한다면 무엇이 어렵겠는가? 마땅히 이와 같이 헤아려 오직 진리로써 관찰하여 그 마음을 유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비유하면 마치 저 어린아이를 유인해서 그를 불러 앞에 오기만 하면, 그 손에 든 물건을 빼앗아 먹으려고 하는데, 마침 어린아이가 와 샅샅이 뒤져보아도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소견이 뒤바뀌어 무상한 것을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며, 몸 아닌 것[非身]을 몸이 있다고 말하고 공(空)한 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므로 네 가지 뒤바뀜을 버리고 본래 무(無)를 관하여야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들이 본래 무(無)임을 깨닫지 못하여
늘 즐거운 것이라 생각하고 깨끗하다 말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어린아이를 유인하여
샅샅이 뒤져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람마다 뒤바뀌어
나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부처님께서 광명을 나타내어
어둠 속에서 등불 켜듯 하셨네.
내가 소유한 머리카락도 늘 오래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깨끗하지 못한 것이고 편안하지 못한 것이며 나[我]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이로써 일체가 다 그러한 것이라고 관하고, 그 마음에 권발(勸發)하기를 '마치 밝은 안목을 가진 이가 횃불을 들고 빈 집에 들어가 살펴보면, 사람도 없고 또한 보이는 것도 없는 것처럼, 참다운 진리를 살펴 깨달은 이도 또한 그와 같이 물질의 근본을 살피되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며, 나라는 것도 없고 몸이라는 것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허망하게 보는 이는 도리어 제 자신이 결박되겠지만, 공(空)의 관법을 아는 이는 무엇이 어렵겠는가? 이에 보고 들어 도적(道跡 : 須陀洹)을 얻은 이는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아가지 않고 집착이 없어서 평등한 깨달음을 얻나니, 이들도 곧 사람이요 나도 또한 사람인데 이들이 이룬 도를 무슨 까닭에 나만 유독 얻지 못하겠는가?'라고 하라. 도를 수행하는 이는 이와 같이 그 마음을 권발하여 네 가지 뒤바뀜을 버리고 수행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털·머리카락·손톱·발톱·뼈·살과
모든 모양과 빛이 있는 형상들이
몰려들어 마음을 현혹시키나니
모두 5음(陰)이 어지럽히는 것이다.
무상하고 괴롭고 편안하지 못한 것이고
나라는 것도 없고 깨끗하지도 못한 것이며
몸은 빈터에 있는 집과 같다고
밝은 사람은 이와 같이 관찰한다.
11. 효료식품(曉了食品)
부처님께서 파질수(巴質樹 : 菩提樹) 밑에 계실 적엔
천제(天帝)가 온갖 진미 받들었고
또 사위성(舍衛城)에 계실 적엔
파사닉왕(波斯匿王)이 공양 올렸네.
비란야(比蘭若)에서 바친 보리밥이
비록 감미로운 맛은 아니었지만
모두 평등한 마음으로 받으셨으니
집착 없는 분께 머리 조아립니다.
아무리 이런 밥을 드셨어도
언짢은 기색 내지 않으셨고
또한 교만함을 짓지 않으셨으며
온갖 교만함을 다 버리셨네.
곳에 따라 공양을 받으셔도
마치 큰길을 뛰어 넘듯이
좋은 음식만을 위하지 않으셨으니
그러므로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이 때 수행하는 이가 음식에 대하여 가령 '온갖 종류의 맛있는 음식이든지 맛없는 보리밥이든지 간에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관해야 한다.
밥을 떠서 입에 넣은 다음 씹어서 침과 합해 삼키기를 적당히 하여 그 음식이 만약 생장(生藏)2)에 들어가면 몸 안에 있는 불기운이 달이고 체내의 물 기운으로 익히며 바람으로 이리저리 뒤척거려서 점차 소화하게 된다.숙장(熟藏)에 떨어지게 되면 단단한 것은 대변이 되고 무른 것은 소변이 되며, 거품은 침과 콧물이 된다.장부 안에 긴요한 맛은 온 신체를 윤택하게 하나니, 그 여러 가지 요긴한 맛이 모든 혈맥에 유포된 연후에야 머리칼·털·손톱·발톱·이·뼈·피·살·비계·지방·정기·뇌수 같은 것을 기르게 된다.그러므로 바깥의 4대(大)가 안의 다섯 감관을 기르면 모든 감관이 그 힘을 얻어 심법(心法)을 증장(增長)시켜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일으키게 된다.이것을 알려고 하면, 이것은 음식이 그 근본이 되나니 이 음식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헤아려보면 수 없이 많은 온갖 최상의 맛도
뱃속에 들어가면 아무런 차이가 없어
몸에서 변화하여 모두 부정(不淨)하게 되므로
도를 수행하는 이 음식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살찌기를 구하지 말고 다만 목숨을 지탱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한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높은 벼슬아치가 많은 새들을 잡아다가 그 날개를 갈겨버린 다음 새장 속에 가둬두고 날마다 살찐 놈을 가려내어 관청 주방[官廚]에 공급함으로 인해 그렇게 많던 새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그런 와중에 어떤 새 한 마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살찐 놈이 먼저 죽으니 만약 나도 살이 찌게 되면 또한 앞에 죽어간 새처
2)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장(臧)자로 되어 있으나, 장(臟)자가 바른 표현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장(藏)자와 장(臟)자를 통용해 썼기 때문에 원문대로 둔다.
럼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가령 먹지 않을 경우 곧 굶어죽게 될 것이니, 지금은 마땅히 음식을 절제하여 이 몸으로 하여금 살이 찌지 않게 하고 또한 깡마르지도 않게 하면 몸이 가볍고 편안하여 드나드는 데에도 걸림이 없을 것이며, 요리사에게 잡혀 삶아지는 처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날개가 점점 자라나기를 기다려서 새장으로부터 벗어나 날아간다면 어디로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 있을 것이다.'도를 수행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이 헤아려, 음식에 대해서는 다만 몸을 편안하게 하고 체중을 무겁게 해서는 안 된다. 음식을 적당하게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졸음[睡眠]이 적으며, 앉고 일어나고 경행(經行)하는 데에도 숨이 가쁘지 않고 편안하며, 대변과 소변을 적게 보고 자신이 닦는 행에 있어서도 음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진다.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관해야 한다. '나는 몸을 탐하지 않고 온갖 정욕(情欲)을 제거할 것이며, 이 몸뚱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뼈가 서로 지탱해주고 있을 뿐이다. 지금 이 몸 속에는 다만 깨끗하지 못한 것만 가득 담겨져 있고 단단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비유하면 원수가 이롭지 못한 그물을 쳐놓고 늘 원수라는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친구를 상해하려고 하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그런 생각을 녹여 없애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되 비유하면 저 왕을 받들어 섬기듯이 해야 한다.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어 앉고 일어나고 경행하는 데에 재앙과 은환이 없게 하고, 늘 더러운 이슬[汚露]처럼 관하여 숱한 더러움을 모두 알며, 다만 목숨만을 부지해가면서 수행하는 도를 얻는 데에 뜻을 두어야 한다.친족이나 권속은 버릴 수가 없는 것처럼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목욕하고 밥을 먹고 의복을 입어 형체를 가리며, 또한 외아들을 사랑하듯이 늘 보호하여 춥고·덥고·배고프고·목마른 고통이 없도록 하며, 모기·등에·이·벼룩 같은 것에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비유하면 이러하다. 옥리(獄吏)가 도둑을 잡아 옥에 가둬놓고 온갖 고문을 가하면서 물었다.
"너는 전후로 몇 차례에 걸쳐 누구의 물건을 겁탈하였으며, 네가 살고 있는 주소는 어떻게 되며, 도둑질해 온 물건은 어디다가 숨겨 두었으며, 누구와 같이 동반(同伴)하였으며, 괴수는 누구이고 공모한 이들은 누구인가?" 도둑은 5독(毒)을 견디지 못해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무슨 방편을 써야 이 매질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마음이 곧 열려서 우두머리 옥리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나라에 금계(禁戒)라고 하는 큰 장자의 아들이 있는데, 전후 여러 차례에 걸쳐 도둑질해 온 물건을 모조리 그가 있는 곳에 두었으며, 그의 집에서 같이 거주하면서 그와 함께 도둑질을 하였으니 그 사람이 나의 반려(伴侶)입니다." 옥리는 그 말을 듣고 장자의 아들을 잡아다가 쇠사슬로 얽어서 먼저 잡아들인 도둑과 함께 같은 옥 속에 가두었다. 그 때 장자 아들은 자기 집에서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도둑에게는 나눠주지 않고 저 혼자 먹어버렸다.도둑은 몹시 성이 나서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땀을 닦고 탄식하며 생각하였다. '장자의 아들로 하여금 목숨을 건지지도 못하게 할 텐데, 더구나 음식을 저 혼자 먹다니. 이제 내가 자유로운 몸이 되면 마땅히 저 사람을 핍박하여 혼자서는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데 어떻게 음식을 혼자서만 먹을 수 있겠는가?'장자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버릇없고 방탕한 버릇이 있었으므로 잠깐 동안이라도 이리저리 나다니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옥사(獄舍) 뒤에 나가고 싶어서 슬쩍 도둑에게 말하였다. "우리 함께 변소에 가자."그러자 도둑이 말하였다. "그대가 가는 곳엔 나는 가지 않겠다."그 때 장자의 아들은 몹시 급하고 간절해서 그 도둑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잘못을 한 일이 없는데 그대는 나를 억울하게 끌어들여 감옥에 갇히게 해놓고는 지금 잠시만 같이 가자고 하는 말도 그대는 들어주지 않는가? 설령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끝끝내 앙갚음을 하지 않겠으니, 거짓으로 누명 쓴 나의 애매한 진상을 그대는 바른대로 말해다오. 내가 마땅히 잘못을 반성하고 그 죄를 사과하겠노라." 그러자 도둑이 말하였다. "그대는 실로 잘못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그대를 억울하게 끌어들인 것은, 그대는 권속이 많아서 스스로 죄를 면하려고 하면 고문을 당하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그 사이에 음식이나 얻어 먹어볼까 하는 마음에서 일부러 그대를 억울하게 모함한 것뿐인데, 그대[仁]의 집에서 가져온 음식마저 혼자서만 먹고 끝내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를 따라가 주지 않는 것이다." 그 때 장자의 아들이 도둑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한(恨)을 알겠다. 지금부터 이 뒤로 다시는 그대에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시 음식을 가지고 온다면 마땅히 그대에게 먼저 먹인 다음 내가 먹을 것이니, 아직 내 목숨이 붙어 있을 때 옥사(獄舍) 뒤에 나아가 나로 하여금 볼일을 볼 수 있게 해달라." 그러자 도둑은 그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음식을 가져오자 바로 노비에게 명하였다. "지금 가지고 온 음식을 저 친구에게 먼저 먹이고 먹고 남거든 나에게 달라."그 때 노비는 가르침을 받들어 그 말대로 시행하였다. 그리고 노비는 집으로 돌아가서 장자에게 그 사실을 아뢰었다.장자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노여움을 품고 있다가 이튿날 옥으로 가서 그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호족(豪族)의 집안에 태어났거늘 도리어 도둑 같은 나쁜 인간과 어울려 일을 따라 하고 그와 더불어 친구가 되었으니, 도대체 너는 그가 너를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끌어넣은 줄도 모르느냐?" 그 아들이 대답했다. "아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도 이 사람을 공경하여 친구로 삼은 것이 아니며, 그가 도둑인 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소변이 급하여 핍박을 받고 있는데도 따라가 주려고 하지 않아서, 몸이 무겁고 배가 부풀어올라 눈이 뒤집히고 귀가 먹먹하며, 머리가 아프고 등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며, 갈비뼈가 뽑히는 것 같았고, 가슴에 답답한 기운이 가득 차며, 숨이 헐떡거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하였으며, 마음과 의식이 혼란해져서 아무 감각이 없었고, 모든 골절이 풀리는 듯하였으며, 뼈와 신체가 쑤셔대고 아팠고, 목숨이 다하여 끊어지는 것 같았으며, 나쁜 증상이 마주하여 위에 나타나 있고, 땀이 나고 기운이 딸리던 차에 저 도둑이 저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따르기를 마치 병든 사람이 의원을 따르듯 해야 그나마 응하겠다. 또 음식이 오면 나를 먼저 먹이고 난 다음에 그대가 먹겠다면 내 마땅히 그대를 따라가 주겠다'라고 하기에, 몸과 목숨을 탐애(貪愛)한 까닭에 일부러 친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장자의 아들은 그 도둑이 뻔히 원수인 줄 알면서도 몹시도 궁핍하였기 때문에 겉으로는 친구인 체 보였지마는 속으로는 사실 소박(踈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4대(大 : 몸)는 무상한 물질이 붙어 있는 것뿐이라서 네 가지 일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여 하나도 편안함이 없는 것이 마치 뱀이나 독사와 같고 허깨비·아지랑이·물 속의 달·산 속의 메아리처럼 이 몸도 그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도를 수행하는 이도 역시 이와 같이 헤아려 5음이란 모두 원수요 도적임을 깨닫고 알아서 입고 먹는 것은 그 신체만을 길러 해롭지 않을 만큼만 할 뿐, 낮과 밤으로 정진에 전념하여, 마치 머리 위에 붙은 불을 끄듯이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도덕을 이루고, 함이 없는 경계에 이르러 삼계가 시작하고 끝나는 환난에서 해탈해야 한다.
12. 복승제근품(伏勝諸根品)
수행하는 이가 음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설령 번뇌에 훈습되지 않아서 거기에 농락되는[嬈害] 일이 없을지라도 도덕(道德)을 이루지 못하였다면,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했으면서 저 혼자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마음과 뜻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나니, 마음이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닿임[細滑]의 생각에 있거나, 5음에 집착하면 하는 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가령 마음이 5음의 번뇌[蓋]를 따르지 않는다면 도를 얻은 것임을 알 것이요, 만일 그 마음이 혼란하여 모든 정욕(情欲)을 따른다면 곧 돌이켜 두려워하고 마땅히 다시 정진(精進)을 가하여야 한다.비유하면 소치는 이가 못[澤]에 소를 놓아먹이는데, 그 소가 뛰고 달려 남의 곡식을 짓밟았으면, 소치는 이는 그 주인이 알까 두려워하여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때려주고, 이튿날 다시 나아가 소를 먹이는데, 거짓으로 쳐다보지 않는 체 하면서 다시 남의 곡식을 침범하는지 않는지를 살핀다. 그 때 소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소치는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남의 곡식 싹을 먹는다면, 그 주인이 그것을 보고 다시 회초리로 때릴 것이다'고 하면서, 소가 그 뒤로는 두려움을 품고 감히 다시는 침범하지 않는 것과 같다.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다섯 감관을 경계하여 정욕을 따르지 않는다면 도를 이룩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6쇠(衰 : 根)를 좇아 그것을 곧 돌이켜 스스로 억제하고 3도(塗)의 괴로움과 나고 죽음의 환난을 관찰하여 밤낮으로 정근(精勤)하기를 앞에서보다 만 갑절이나 더한다면, 얻지 못하였던 것은 마땅히 성취하게 될 것이요 이미 성취하였으면 방일하지 않게 된다.
13. 인욕품(忍辱品)
설사 어떤 사람이 수행하는 이를 때리고 꾸짖는다 할지라도 그 때 도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이런 관법(觀法)을 지어야 한다. '꾸짖는 것은 다만 음성만 있을 뿐 자세히 헤아려 본다면, 모두가 다 공(空)하여 없는 것이어서 마침 일어났다가 곧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비유하면 문자(文字)나 그 명칭은 각기 다르지만 글자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면 꾸짖는 소리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고, 또 비유하면 한 장님으로 보게 해도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설사 100명의 장님으로 보게 해도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듯이, 꾸짖는 것도 그와 같아서 한 글자도 이루지 못하고, 설령 백천 글자라 해도 다 공(空)하여 없는 것이다. 설사 부모·아내·친척·이웃들이 모두 나를 칭찬하고 기릴지라도 다 공한 것이다.' 마땅히 이와 같은 관법을 지어야 한다. 말이 다른 오랑캐들이 비록 나를 꾸짖고 욕할지라도 마치 바람과 메아리소리처럼 모두가 공한 것과 같다.
14. 기가악품(棄加惡品)
가령 수행하는 이가 고요히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에 누가 와서 몽둥이로 때리고 칼·몽둥이·기와조각·돌을 가져다가 그 몸을 때릴 때에는 마땅히 이런 관법을 지어야 한다. '명(名)과 색(色)은 다 공한 것이라,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다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인데, 본래 어디로부터 생겨날 것이며, 누가 성을 내는 자이고 누구를 향해 성낼 것인가? 내가 전생에 착한 일을 하지 못하여 이런 환난을 당하는 것인데, 가령 명과 색이 없다면, 액난을 만날 이유도 없을 것이다.내가 만일 성을 내어 그 사람에게 되갚는다고 하면, 온갖 원수가 매우 많을 것이므로 다 갚지 못할 것이다. 비유하면 독사와 100개의 발이 달린 벌레와 벼룩·이·모기·등에·거미·벌 같은 것들이 사람을 괴롭힌다 해도 무엇으로써 보복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밖에 있는 모든 걱정거리는 제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체내에 들어 있는 404가지 질병과 80가지 벌레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속마음을 조복하여 모든 번뇌를 소멸하고 그 뜻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말한다.
15. 천안견종시품(天眼見終始品)
가령 수행하는 이가 졸음이 온다면 마땅히 무상하여 오래지 않아 죽음에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괴로움과 나고 죽는 괴로움을 생각하여 손을 씻고 얼굴을 씻은 다음 4방을 쳐다보기도 하고, 밤에는 별[星]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기도 하며, 게으름을 버리고 누워 잠자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일어나 경행(經行)해야 한다. 가령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면 마땅히 그 자리를 옮겨서 밝음을 보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니, 아무리 마음속이 어두울지라도 3광(光 : 해·달·별)을 생각한다면 안팎이 환하게 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땅히 생사의 괴로움을 기억하여
죄를 살피고 4방을 쳐다보며
바깥 광영(光影)을 보려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비추는 광명을 구하라.
졸음의 어둠을 소멸하여 무너뜨리되
해가 어둠을 소멸하듯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이는 것이 눈뜬 이를 뛰어 넘으리.
수행하는 이는 늘 밝은 것 보기를 생각하되, 밤낮을 달리하지 말고 크고 작고, 옳고 그른 갈래를 분별하며, 멀리 다니면서 널리 배워서 무엇이든지 해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이와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곧 도의 안목을 얻고 소견이 평등해져서, 더욱 멀리 뻗쳐 정거천(淨居天)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록 졸고 있어도 늘 눈을 뜨고 있는 듯
선정에 들어가 보는 것은 천안보다 나아
널리 세간의 중생들을 보고
하늘까지 뻗쳐 보이지 않는 것이 없으리.
수행하는 이가 이미 도안(道眼)을 성취하였으면 모든 방위와 3악(惡)의 곳곳까지 다 보이게 된다. 비유하면 장마비가 하루아침에 맑게 개었을 적에, 눈 밝은 사람이 산꼭대기에 머물러 있다면, 성곽·나라·고을·마을·백성들과, 나무·꽃·열매, 그리고 흐르는 물과 솟아오르는 샘과, 사자·호랑이·이리·코끼리·말·양·사슴과, 모든 들짐승들의 가고 오고 서 있는 모습이 모조리 다 보이는 것과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거울과 허공 같아서
장마비 개고 햇빛이 밝은 것 같고
눈 밝은 사람이 높은 산에 있으면서
위에서 아래를 보면 안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으리.
또한 성곽(城郭)·나라·고을이 다 보이듯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세간과 새 짐승들과
지옥과 아귀의 중생들이 보인다.
이와 같이 수행하면 삼천세계를 보고 사람의 나고 죽음과 선악의 갈래를 보리니, 이것을 신통(神通)을 통달한 것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록 위없는 맛을 지닌 감로(甘露)가 있다 해도
삼천세계 보는 덕은 그보다 더하네.
또한 도를 수행하고 불교를 따랐으므로
재빨리 신통을 얻어서 걸림이 없다네.
부처님께서는 널리 일체의 청정함을 보시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셨기에 이것을 말씀하셔서
시작하고 끝나는 근본을 끊고 빨리 해탈하도록
다함 없는 이치를 분별하여 설하셨네.
16. 천이품(天耳品)
지혜로 바퀴 삼아 고요히 인연에 응하시고
걸리는 것 없이 바른 도에 따르시네.
이 도의 법륜(法輪)을 굴리시는
전륜대성(轉輪大聖)께 머리 조아립니다.
갖가지 기악(伎樂)을 죄다 살피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베품이 평등하시어
하늘과 사람, 지옥의 소리 다 들으시는
거룩하고 청정한 성품 지닌 분께 합장하고 머리 조아립니다.
수행하는 이가 천이(天耳)를 성취하면, 문득 환히 들음을 얻어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것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사람이 땅을 파서 숨겨져 있는 보물을 구하는데, 본래는 한 무더기만 찾아내려고 하였다가 나머지 숨겨진 것들까지도 다 얻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이와 같아서 본래 천이를 구하면 환히 듣는 것은 저절로 따라오므로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의 모든 소리까지도 다 듣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헤아리건대 저 수행하는 이가
좋은 방편으로 법을 일으키고
정근(精勤)하여 천이를 얻어
하늘세계와 인간세계를 보네.
환히 듣는 것이 저절로 생겨
듣는 것도 한량이 없나니
사람이 땅에 숨겨진 한 보물을 구하기만 하면
나머지 보물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 같다.
비유하면 밤중에 여러 사람들은 모두 자는데, 어떤 사람 혼자만 깨어 7층 다락에 올라가면, 마침 고요한 때이므로 모든 음악과 기악(伎樂) 소리·가무(歌儛) 소리·울부짖는 소리·슬퍼하는 소리·북 치는 소리 등이 모두 뚜렷하게 들리는 것처럼, 도를 닦는 이의 소견도 그와 같아서 마음은 본래 고요한 것이므로 멀리 지옥에서 울부짖고 괴로워 절규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며, 아귀(餓鬼)·축생(畜生)·하늘세계·인간세간의 기악 소리까지도 보이고 들리나니, 이것을 천이신통(天耳神通)의 증과(證果)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밤중에 여러 사람은 모두 다 잠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일어나 7층 다락에 올라가면
마침 고요한 때이므로 일체 사람들의
기악과 가무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도를 닦는 이도 이와 같아서
천이(天耳)로 온갖 소리 사무쳐 듣고
삼계(三界)에 있는 모든 형색(形色)과
그 말소리까지 죄다 분명하게 안다.
나는 수없이 많은 경전의 뜻을 따르고
그 나머지를 얻어 감로(甘露)를 먹는 것이
마치 병든 사람이 좋은 약 먹는 것 같아
지금 세존의 천안(天眼)의 가르침을 말하노라.
17. 염왕세품(念往世品)
지혜는 싹이고 선근(善根)은 뿌리이며
경법(經法)은 꽃이고 덕은 열매이네.
해탈법 보이시어 움직이지 않음을 세우신
부처님 큰 나무[大樹]에 저는 지금 귀의합니다.
억백 생(生)으로부터 선근을 심으셨고
옛날 한량없는 세상에서 고요히 깨끗한 행 닦으시어
백천억 본래의 숙명(宿命)을 아셨기에
부처님 깨우치신 뜻에 마음 굳게 귀의합니다.
가령 수행하는 이가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사람의 몸은 어떻게 얻었는가?'라고 할 경우, 천안(天眼)으로 살펴본다면 마음이 밝아져서 본래 태어날 적부터 사람이었는지, 혹은 사람이 아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게 된다.비유하면 사람이 이 고을로부터 다시 저 고을로 간다면 먼저 오고갔던 곳과 앉고 일어나고 했던 곳을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전생에 지나오면서 받았던 몸을 기억하고 성명(姓名)의 좋고 나쁨과 수명의 길고 짧음과 음식·의복 등도 기억해보면 다 알 수 있다.저기서 죽으면 여기에 태어나고, 여기에서 죽으면 저기에 태어나나니, 이 같은 비량(比量)으로 수없이 고쳐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안다. 이것을 전생 일을 아는 [宿命] 신통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천안으로 보는 것을 수행이라 하나니
수없는 겁 동안 겪었던 삶을 알고
과거에 받았던 몸 모두 보이는 것이
배[船]에 타서 제 얼굴을 물에 비추어보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선 태어났던 곳을 모조리 아심을
내가 모든 경전을 살펴 뽑아 취했으니
이를 전생 일 아는 신통[昔所更]이라 한다 .
지혜로운 마음으로 지극한 이치를 채집하였다.
18. 지인심념품(知人心念品)
헤아릴 수 없는 자애[哀] 베풀어
중생들이 취향하는 생각을 아시고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옳고 그름과 안정됨과 방일함을 보시네.
품었던 뜻 지극하시고
한량없는 지혜 분명히 아시어
모든 번뇌 없애신
거룩하고 훌륭한 분께 귀의하기 원합니다.
수행하는 이는 천안으로써 사람 및 사람 아닌 것[非人]과 옳음·그름·착함·악함·단정함·추함·더러움을 환히 보며, 속마음이 밝은지 어두운지 다 통해 보며, 성내기를 좋아하는 이는 마음이 어떻고, 뜻이 화열(和悅)한 이는 마땅히 취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환하게 본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환히 보는 천안의 신통으로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보며 중
생의 얼굴빛을 살피고
또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도 보아
그 뜻의 본래 속셈을 아나니
어떤 인연으로 이런 행을 획득했는가?
그 도를 닦은 이는
성내는지 화열한지 모두 다 본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강가에 앉아 있으면 물 속에 있는 물고기·자라·메기와 수없이 많은 이상한 벌레들이 보이는 것처럼, 수행한 사람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착함과 악함을 분명히 보아 의심이 없나니, 이것을 다른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착함과 악함을 아는 신통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깨달음의 눈 밝고 마음이 청정한 것은
도를 수행함으로 인하여 얻은 것이니
남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알기를
나무의 뿌리와 가지와 잎을 보듯 한다.
비유하면 장사꾼이 수정(水精) 구슬을 구하려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이 보배를 얻고도, 아울러 진주(眞珠)·금강(金剛)·산호(珊瑚)·자거(車▩)·마노(馬瑙)까지 얻기도 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졸음을 버리고 오로지 마음을 밝은 데에 두면, 천안을 얻고도 아울러 천이(天耳)와 신족(神足)까지 얻어서 자신의 전생 일과 다른 사람의 전생까지도 저절로 알게 된다.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밝은 깨달음을 익혀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한 가지 일을 위해 바다에 들어갔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를 얻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이와 같아서 졸음을 없애면
천안이 밝아 근본과 끝을 모두 안다.
수행하는 이가 이와 같이 뜻이 적정(寂靜)하여
지금 내가 펼쳐 말한 부처님 가르침대로 한다면
한량없는 빛 보는 것이 하늘 눈보다 더 뛰어나고
중생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옳고 그름을 보리.
그 인욕(忍辱)의 힘, 땅보다 더하고
부드럽고 편안함은 물보다 더하며
잡은 뜻 견고함이 수미산과 같고
사람을 뛰어넘고 허공을 뛰어넘네.
깊은 지혜 강물보다 더 깊고
넓은 바다처럼 성냄과 한이 없네.
그 덕은 아무도 따를 이 없으신
가장 훌륭하신 분께 머리 조아리기 원합니다.
그 마음 도를 생각하여
모든 하늘 찬탄을 받으셔도
마음 거둠이 일정하시어
기쁘게 여기지 않으시네.
저 조복되고 부드럽고 평등한 뜻
더하거나 덜하지 않으시며
밝은 덕 경솔함이 없으시기에
제가 머리 조아려 예배하기 원합니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경솔하고 장난기가 있으면, 곧 마땅히 시름하고 근심하는 법을 사색해야 한다. '내가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해탈법과 무상법(無常法)을 얻지 못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가 아니며, 가지고 있는 은애(恩愛)도 마땅히 여의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흐르는 냇물이
강(江)에 합쳐 넘실거리는 듯한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법 얻지 못하고
쇠모(衰耗)와 혼란을 도리어 기뻐하네.
한량없이 많은 은혜와 사랑
오래지 않아 마땅히 여의고
덧없는 악(惡)의 대(對)만이
각기 죄와 복을 따른다.
저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혹 목숨이 다한다면 도덕을 이룩하지 못하고, 또 도를 향하지도 못했으니, 혹은 거역하는 일을 범하고 법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3악의 길에 들어가 그지없는 환난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다. 또 여러 가지 삿된 견해에 떨어졌으니 어찌 미혹됨이 없겠으며, 다시 태(胎)에 의탁하게 될 터이니 장차 몸뚱이와 뼈를 받지 않겠는가? 만약 태산(太山)지옥에 들어간다면 혹 머리를 끊어 피가 바다처럼 흐르고 혹은 슬픈 일을 당하여 눈물을 5하(河)처럼 흘리며, 부모와 이별하고 처자가 죽게 되며[無常] 형제가 사랑하게 될까 두렵다.'그러면서 걱정과 번민이 한량없이 많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고
죽음의 근원 두려워함을 끊지 못했으니
백천 가지 환난을 당하고
또한 태에 의탁하여 나게 되리라.
근심 걱정의 뿌리 제거하지 못했으니
한량없이 많은 괴로움 만나며
거룩한 도에 귀의하지 못했으니
3악의 길이 저절로 열리리.
수행하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두려워 하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혹시 새와 짐승 같은 법답지 못한 곳에 떨어진다면 항상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서로 처지를 바꾸어가면서 목숨을 빼앗을 것이요, 수치심도 없이 어두운 곳으로부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것이니, 이미 이러한 환난에 떨어지게 되면 다시는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비유하면 한 푼의 돈은 바다에 던졌다가도 다시 찾아낼 수 있지만 사람의 몸을 잃고 나면 이것을 다시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탐음(貪婬)으로 인한 번뇌와 성냄·어리석음과 어둠
욕심의 몽둥이[欲杖]에 몰려 부끄러운 줄 모른다.
축생들의 운무(雲霧) 속으로 들어가나니
이 고난에 떨어지면 다시 사람되기 어렵다.
수행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한다. '내 몸이 장차 아귀(餓鬼)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일찍이 들으니 (그곳 사람들은 질그릇에다 콧물·침·고름·피와 사람들이 토해 낸 더러운 것들을 담아서 음식으로 삼으며, 두루 돌아다니면서 걸식한다)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깨끗하지 못한 그릇과 비뚤어진 질그릇에
피·고름·침·콧물을 담아서 마치 물을 마시듯 마신다네.
탐욕 많고 항상 다투었던 재앙과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이러한 행동하는 사람은 곧 아귀의 길에 떨어지리.
19. 지옥품(地獄品)
수행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몸이 장차 지옥에나 떨어지지 않을까? 일찍이 들으니 (죄인들이 함께 만나기만 하면 곧 성난 마음을 품고 서로 해치려고 하며, 손톱은 날카로워서 마치 칼날과 같고, 저절로 만들어진 몽둥이·창·활·화살·기와조각과 같다. 서로 겨룰 때에는 칼과 창 부딪치는 소리가 구리를 깨뜨리는 것 같고 부러진 몽둥이와 엉켜진 창과 칼은 마치 그물과 같으므로 죄인들은 그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근심과 걱정을 품는다)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 여러 죄인의 무리들은
지옥에 들어가 서로 해치나니
병기를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마음대로 죄다 얻을 수 있다.
칼날을 잡고 서로 해치기를
마치 물에서 그물을 움직이듯
또한 무더운 여름 날씨의 열기
칼날의 불꽃도 그와 같다네.
그들은 혹은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도 있고, 또는 원망하면서 노여움을 품어 서로 목숨을 해치려고 하면서 이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이도 있으며, 마침내는 싸움을 벌여 이리 저리 밀고 치다가 서로 상해를 입어 마디마다 갈라지고 머리와 몸뚱이가 장소를 달리하기도 하고, 혹은 그 몸이 찔려서 피가 흘러 샘솟듯 하기도 하고 칼날이 몸에 박혀 아픔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칼 자국에서는 불이 솟아 나오기도 하며, 혹은 몸이 꺾이고 부서지기를 마치 어지러운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떨어뜨린 것처럼 땅 위에 나뒹굴기도 하며, 몸이 부서져 티끌처럼 되었다가 잠깐 동안에 예전의 몸처럼 되기도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카락을 잡고 서로 치고 밟으며
이리저리 뒤척이며 서로 끌고 끌어
죄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다투나니
그 괴로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네.
공포를 서로 가해 가면서
때에 따라 큰 싸움 벌이는데
마치 나무를 뽑아 헤치듯이
서로 밀치고 누름이 그와 같네.
그 때 싸늘한 바람이 4방에서 불어오면 죄인들은 잠깐 동안 예전처럼 회복되는데, 옥을 지키는 귀졸(鬼卒)이 죄인의 몸에 물을 뿌리면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것은 그의 죄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죽지 못하게 한 것이요, 옥귀(獄鬼)의 말소리를 들으면 바로 예전처럼 일어나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물을 가져다가 그의 몸에 뿌리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그
때 옥에 갇혀 있던 죄인들이
다시 옥 지키는 귀졸의 말을 들었네.
죄인의 몸 부서졌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이유 있었으니
번뇌의 죄 다하지 못하여서
다시 고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네.그
때 죄인들은 다시 굴러 서로 만나기만 하면 곧 노여움을 품어, 입술이 떨리고 눈알이 핏빛처럼 빨갛게 되고 창자는 쏟아진 체 예전처럼 싸움을 벌인다. 원수를 맺어온 그 날짜가 오래 됨으로 인하여 신체가 온통 상하고 부서져서 땅에 나동그라진 채 흘린 피가 마치 흐린 샘물과 같다가도, 신체가 회복되면 다시 땅에서 일어나 서로 해치기를 예전처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지옥 가운데 떨어져 받는 괴로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
서로 해치므로 큰 두려움을 품나니
전생의 죄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빈번하게 해를 당했다가도
도로 살아나 예전처럼
악한 뜻으로 서로 다투나니
심은 죄 때문에 쉴 틈이 없다.
이 세간 사람들
살해하기 좋아하면
상(想)지옥에 떨어져
본래 행한 대로 죄를 받는다.
그러므로 이렇게 행한 이는
오래도록 지옥에 있으면서
서로 수없이 목숨을 빼앗나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예전과 같다.
세간에 살 때 죄를 범한 이는
상지옥에 떨어졌다가
마치 파초(芭蕉)처럼
죽었다가도 곧 되살아난다.
죄인이 만일 흑승(黑繩)지옥에 떨어지면, 그 때 옥을 지키는 귀신이 모든 죄인을 잡아 뜨거운 철(鐵) 땅에 눕혀 놓고, 또 불이 저절로 튀기는 쇠사슬과 쇠톱을 가져온다. 다음 그 몸뚱이를 바로 묶어 세우고 톱을 가져다가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백천 조각으로 끊고 켜는데, 비유하면 마치 목공(木工)이 온갖 목재를 끊고 켜듯이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옥
을 지키는 귀신이 염왕의 명령을 받고
쇠사슬로 몸을 묶어 톱으로 켜는데
그 톱 위아래서 불이 훨훨 타오르고
사람 잡아 땅에 눕히고 조각조각 켜네.
옥을 지키는 귀신은 다시 도끼로 죄인의 몸을 쪼개고 아울러 자귀로 깎고 끌로 뚫는다. 비유하면 마치 목공이 목재를 쪼개는데, 혹은 네모나게 쪼개기도 하고 혹은 여덟 모로 만들듯 죄인의 몸을 다스리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이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옥 지키는 귀졸이 죄인의 악행에 맞추어
도끼·끌·자귀·톱·사슬 따위로
죄수를 쪼개는데 목공이
마치 사람의 집을 새로 짓듯 한다.
그 때 옥을 지키는 귀신은 불에 달군 쇠사슬로 그 몸뚱이를 얽어매어 살이 터지고 몸이 부서지는 고통이 뼈에 사무치고 뇌수에 닿게 하며, 갈비·척추·허벅지·정강이·머리·목·팔·다리가 각기 다른 곳에 있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흑승지옥에 떨어져
갖가지로 고문 당하는 그 고통
가죽 벗기고 도끼로 나누기를
마치 집을 새로 짓듯이 쪼갠다네.
각기 마디마디 그 몸을 가르니
피가 샘솟듯이 흘러내리고
뼈와 살이 있는 곳을 다르게 하니
혹독한 고통 어찌 다 말하리.
염왕의 옥 지키는 귀신이
이렇듯 그 몸 부수면
그의 죄 다하지 못한 까닭에
고름과 피가 이와 같이 흐르네.
그가 합회(合會)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전에 지었던 죄의 소치이다. 그 지옥에서는 죄인을 앉히고 쇠못을 가져다가 그의 무릎에 박고 다음에 다시 온 몸에 골고루 대못을 박는다. 그러면 몸은 부서져 파괴되고 뼈와 살도 모두 그렇게 되며, 모든 마디는 갈라져 각기 곳을 달리하게 되고, 그의 목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곤고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 마침 바람이 저절로 불어와서 모든 못을 뽑으면 전처럼 회복되지만, 또 다시 못을 가져다가 그의 몸에 박는다. 이와 같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백천만 년 동안 겪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헤아릴 수 없는 백천 개의 못이
공중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려
그 사람의 몸 부수길 밀가루 빻듯 하나니
본래 지은 죄로 인해 이런 액난 겪는다.
다음에는 쇠방망이와 쇠절구공이[鐵杵]가 쏟아져 내리고 검은 코끼리와 커다란 산이 그의 몸을 짓눌러, 마치 감자(甘蔗)를 찧고 포도(葡萄)에서 즙액을 짜내듯 하는데, 뇌수·지방·피·살 같이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 모두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검은 코끼리·쇠 절구공이·큰 돌산이
그 몸을 짓누르고 절구에 넣고 부수니
지옥 귀신을 보고 죄다 두려워하는데
그 몸 부수기를 저 감자 찧는 것처럼 하네.
또 그 몸을 철통에 넣고 돌리면서 짜기를 마치 참기름[麻油]을 짜내듯이 하며, 절구 속에 넣고 절구공이로 찧기도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지옥을 지키는 옥졸은 자비가 없어
철통에 넣어 돌려 짜고 절구질하여
죄인에게 고통 주기를
마치 참기름을 짜듯이 한다.
그 때 죄인들은 멀리 커다란 산을 보고는 두려운 마음에 그 산 넓은 골짜기 속으로 달려들어가 스스로 구원하고자 갈망하지만, 거기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마침 그 골짜기에 들어가서는 저희들끼리 말한다. "이 산은 나무가 많으니 마땅히 여기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그러면서 제각기 두려운 마음을 풀고 여러 나무들 사이에 머물고 있으면 산이 저절로 합쳐져서 그 몸을 부수어 버린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여러 가지 쌓은 죄와 재앙
자기가 본래 지은 것이라서
그 때 모든 죄인들 죄다
산골짜기로 들어가더라도
마침 산골짜기에 들어가고 나면
그 산이 저절로 합해져서
죄인의 몸을 부술 때
그 소리 너무도 비참하네.
소·양·돼지·사슴·새들을 해치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람의 목숨 빼앗았기에
합회지옥에 떨어져 수없는 고통 받나니
남의 몸 해치다가 이런 괴로움 받는다.
또한 멀리 불이 타는 것을 보고는 죄인들이 말한다. "이 땅은 평탄하고 넓으며 풀과 나무들도 푸르러 비유하면 마치 유리(琉璃)와도 같구나. 마땅히 저기로 가면 편안할 것 같다."
그러면서 곧 그곳으로 가 불을 맞이하며 숲 속에 앉는다. 그러면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 그 몸을 에워싸니, 불에 타는 그 혹독한 고통으로 처절하게 울부짖고 슬퍼하면서 동·서·남·북으로 달아나 그 불을 피하려고 하지만, 가는 곳마다 불을 만나 스스로를 구제할 수가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손톱·발톱·머리카락은 저절로 자라나고
태우고 구워지는 고통에 얼굴빛이 변한다.
바람이 불어 몸과 혀를 말리는데
옥리를 보고는 겁이 나서 질겁을 하네.
수없이 많은 여러 죄인들
불꽃에 태워지며
연기에 쏘이고 불에 구워지는 것이
나비가 등불에 날아드는 것 같다.
또한 멀리 쇠잎[鐵葉]으로 된 나무숲을 보고는 서로들 말한다. "저 나무들은 너무도 아름답다. 저 풀은 저렇게 푸르고 물도 흐르니 우리 다 함께 저기로 가자."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백천 죄인들이 다 그 숲 속으로 몰려들어 혹은 나무 밑에 앉기도 하고, 혹은 서 있기도 하며, 혹은 누워 자기도 하는데, 뜨거운 바람이 4방에서 일어나 불어오면 나무가 흔들리고 칼 같은 잎이 저들의 몸에 떨어져 가죽이 벗겨지고 살이 베어지며, 뼈와 뇌수가 부서지고 옆구리·가슴·등이 상하며, 목이 끊어지고 머리가 깨어진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세력을 믿고 중생을 해치다가
지옥에 떨어져 살려달라 말하지만
4방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 쇠잎이 떨어지면
싸움터에 들어가 다친 것처럼 그러하네.
그 때 쇠로 된 나무 숲 사이에서 갑자기 주둥이가 쇠꼬챙이처럼 생긴 까치·까마귀·보라매·독수리 등이 저절로 떼를 지어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고기와 피로 먹이를 삼는 것들이라서 사람의 머리 위에 앉아 눈알을 뽑아 먹고 머리를 깨뜨려 뇌를 쪼아먹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사람은 전생에 세력을 믿고
중생을 해쳤으므로
그로 인해 쇠잎이 몸 위에 떨어져
조각조각 갈라지고 또 잘리고 끊기네.
너무도 무서운 까마귀와 보라매가
4방에서 나타나 사람을 공격하며
머리 위에 앉아서 눈알을 뽑아먹고
뇌를 꺼내서 쪼아먹는다.
그 때 철엽(鐵葉)대지옥 속에서 갑자기 저절로 생긴 숱한 개들이 나타나는데, 혹은 까맣기도 하고 혹은 하얗기도 하다. 그 개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짖어대고 포효하면서 죄인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려고 한다. 그러면 죄인들은 슬피 울면서 개들을 피해 숨기도 하고, 혹은 4방으로 흩어지기도 하며, 혹은 무서워서 꼼짝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개가 달려들어 바로 죄인을 잡아놓고 머리를 뜯어 피를 마시고 다음에는 살과 골수를 씹어 먹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입 벌리면 이가 아주 하얗고
포효하고 짖는 소리는 너무도 무섭다.
혀를 빼물고 입술을 핥으면서
강하게 달려들어 사람을 해친다.
칼에 그 몸이 상하고
새 짐승의 먹이가 되어 고통 받고
해침을 당하는 것은
세력만 믿고 살생하였기 때문이네.그
때 죄인들은 개의 먹이가 되고 까마귀와 새에게 해를 입자 두려워서 바삐 도망을 친다. 그러다가 다시 여덟 갈래로 갈라진 큰 길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길엔 모두 예리한 칼이 깔려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새파란 풀들이 우거지고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으니 마땅히 저 길로 가리라' 하면서 그 길로 가다가 예리한 칼날에 그만 발이 잘려 피가 낭자하게 흘러내린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들은 경(經)과 율(律)을 받고도
법의 다리[法橋]를 파괴하였으며
계율에 따르는 이를 보고는
억지로 계율을 범하라 가르쳤네.
쫓기다가 큰 길로 들어서면
칼날에 그만 발이 잘려서
발 밑이 온통 상처투성이고
궁지에 빠져 자재(自在)하지 못한다.
그 때 멀리 여러 가시나무가 보였는데, 그 나무의 높이는 40리쯤 되고 가시[剌棘]의 길이는 한 자 여섯 치쯤 되었다. 그 가시는 아주 조밀하게 나 있는데 거기에서 저절로 불이 나왔다. 죄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저 나무는 매우 좋은 나무이다. 갖가지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으니 우리 저 나무숲으로 가보자.'그러면서 쇠나무 사이로 간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멀리 쇠나무의 잎을 보니
가지마다 매우 아름답네.
날카로운 가시가 톱니처럼 나서
혹은 위로 혹은 아래로 향하였다.
죄인들은 그것을 보고
과일 나무라고 말하나니
전생에 지은 죄로 이루어진 것이며
재앙을 범하였기 때문이라네.
그 때 나찰(羅刹)이 나타나는데 얼굴 모양은 무섭게 생겼고 손톱과 발톱, 그리고 털이 길다랗고, 입은 의복은 혐오스럽고 머리 위에서는 불이 나오는데, 몽둥이를 들고 와서 죄인을 치면서 나무에 올라가라고 다그친다. 죄인은 무서워서 눈물이 흘러 뒤범벅이 되지만 시키는 대로 다 따른다. 아래로 향한 가시는 모두 그들의 몸을 관통하여, 몸이 상하고 피가 흘러 낭자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큰 몸뚱이에 빛은 숯덩이 같고
추악한 눈을 부릅뜬
염왕의 사자가 몽둥이를 들고
그 사람들을 모두 두들긴다.
전생에 쌓았던 죄와 재앙과
어리석게 남의 아내 범하기 좋아한 때문이니
나의 전생에 지은 과오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가시에 몸을 찔려 피가 낭자하게 흐른다.
그 때 죄인들은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빗발치듯 쏘아대는 화살을 맞고 울부짖어 슬퍼하는데, 내려오라고 시키면 문득 위로 향한 가시가 몸을 관통하여 구운 고기 꾸러미처럼 되고, 다시 불러서 올라가라고 시키면 죄인들은 모두 합장하고 똑같이 애걸하면서, 지옥을 지키는 귀신에게 목숨 바치고 용서해 줄 것을 바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시나무를 따라 오르고 내리면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거꾸로 찔러 해치고
화살을 쏘아 맞추면 손을 모아 합장한 채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기를 애걸한다.
그 때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그것을 듣고 보고는 불쌍히 여겨 주기를 바라지만, 더욱 성을 내어 마구 때리면서, 다시 올라가라고 시키면, 몸이 온통 상하고 터져서 절규하여 울부짖으면서도 도로 올라가게 마련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찌르고 때리므로
애걸하며 벗어나길 바라지만 귀신은 더욱 성을 낸다.
마침 가시가 몸을 관통해서 온통 상했는데
칙사가 먼저처럼 도로 올라가라고 명령한다.
저 쇠로 된 나무 주변에는 마치 큰 산과 같은 두 개의 큰 가마솥이 있다. 지옥을 지키는 귀신은 바로 죄를 지은 사람을 잡아다 무쇠 가마솥에 넣고 삶는데 끓는 모양이 혹은 올라가기도 하고 혹은 내려오기도 한다.비유하면 인간 세상에서 큰 가마솥에 팥[小豆]을 넣고 삶으면, 끓는 모양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것과 같다. 또 가마솥에 넣고는 수천만 억 년 동안 삶으면서 지독한 고통으로 다스린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나라에 장로가 되어서
만 백성을 억울하게 제지했다면
이 지옥세계에 이르러
백억 년 동안 고문을 당하네.
확탕(鑊湯)지옥에 떨어지면
솥에 넣고 삶김을 당하나니
불을 때서 삶기를
마치 팥을 삶듯이 한다.
무쇠 가마솥에서 벗어나면 멀리 흐르는 강물을 보고 서로 말한다. "저 강물이 도도하게 흘러 위엄이 있고 신비스럽다. 물은 파도가 일렁거리며 흘러 내려오는데 온갖 꽃들이 따라 내려오고, 강 양쪽 가에 살아있는 나무는 그 잎이 푸르러 저 강을 뒤덮고 있으며, 강 밑바닥은 모래[流沙]가 깔려 있다. 저 물이 맑고 시원할 듯하니 우리 저곳으로 가서 물도 마시고 목욕도 하며 피로나 풀자."그러면서 양쪽에 가시덤불이 나 있는데도 죄인들은 살피지 못하고 그 강물에 들어가 보니, 그 강물은 모두 끓는 잿물[灰]이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사람은 전생에 숱한 물벌레를 해친 까닭에
피와 살이 다 떨어지고 뼈와 뇌만 남아 앙상하며
서늘하리라는 물에 가서 보니 끓는 잿물이라서
몹시 깊고 뜨겁게 끓어 용솟음친다.
죄인이 비회(沸灰)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뼈·살은 각기 다른 곳으로 흘러버리고, 몸뚱이를 얽었던 힘줄만 흐름을 따라 오르내린다.마침 거기서 벗어나기를 구하면,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갈고리로 건져내 뜨거운 땅에 눕혀놓은 다음, 바람이 불어 와서 몸을 다시 예전처럼 만들어 놓는다.그러면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묻는다. "너희들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려고 왔느냐?"죄인들이 대답한다. "가고 온 것은 알지 못하겠지만 헤아리건댄 수백천억 년 동안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르다."그러면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갈고리를 가져다가 갈고리로 그의 입을 벌린 다음 벌겋게 달군 쇳덩이를 입에 넣고 녹인 구리쇳물을 입 속에 부어 죄인의 목구멍을 태우고 뱃속의 5장(藏)까지 다 녹아 문드러지게 한다.그 물이 위(胃)와 창자를 통해 내려갈 적마다 지독한 고통이 너무도 심하여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과거 죄악이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지도 않는다.그 강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 개의 지옥이 있는데, 첫 번째 지옥의 이름은 규환(叫喚)이고, 두 번째 지옥의 이름은 대규환(大叫喚)이다.무쇠로 만든 성벽에다 망대[樓櫓]는 100자쯤 되고 성첩[埤堄]은 단단하며 모두 철망으로 그 위를 덮고 있다.죄인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 성은 크고 좋다. 우리 함께 가서 구경이나 하자."그러나 마침 그 가운데 들어가고 나면 다시 각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이미 무서운 고난을 벗어났으니 다시는 많은 고통이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기뻐서 뛰고 모두 만세를 부르는데, 혹은 얼굴로 땅을 치기도 하고, 혹은 얼굴을 위로 하고 눕기도 하며, 혹은 졸다가 넘어져서 얼굴이 깨지기도 한다.그러다가 4방 담 밖으로부터 저절로 불이 일어나 모든 망대와 성첩이 타고 모든 철망과 문이 다 그렇게 타는 등 성 안이 온통 불바다가 되어 죄인의 몸을 태우는데 데굴데굴 구르며 서로 쳐다본다. 비유하면 마치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고, 또한 번쩍거리는 번개와도 같으며, 또한 흩어지는 불과도 같다.몸을 태우는 혹독한 그 고통을 비유하면 마치 코끼리를 불화살로 쏘면 코끼리가 고함을 지르는 것과 같아서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몇백 년 동안 이런 고통을 겪고 나면 곧 동쪽 문이 열린다.그러면 그 때에 무수한 백천 죄인들이 모두 그 문으로 몰려나오는데, 그 죄인들이 문에 당도하자마자 문은 바로 닫히고, 서로 부딪쳐 땅에 자빠지는 모양이 마치 커다란 나무가 쓰러진 듯하며, 서로 바뀌어가며 짓눌리는 모양이 마치 땔나무를 쌓아놓은 듯하지만, 과거에 지은 죄악이 다 끝나지 못한 까닭에 죽지도 않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무서운 규환 지옥에 떨어지니 구
원을 구하다가 여기까지 왔네.
땔나무를 크게 많이 쌓아 놓고 불을 지르듯
죄인도 그와 같이 서로 포개 쌓아 놓고 태우네.
이렇듯 태우는 혹독한 고통에
절규하며 4방으로 흩어지지만
늘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무서워서 공포에 떨고 있네.
구원해 달라고 애걸해도
한사코 돌려보내지 않고
규환지옥에 갇힌 채로
악한 죄 때문에 지독한 고통 받네.수
없이 혹독한 고통 받으니
불에 타서 몹시도 괴롭네.
한량없는 괴로움 이루 말할 수 없어
죄인들 절규하고 아우성 치네.
그 때 죄인들이 규환지옥을 벗어나면 다음엔 아비마하(阿鼻摩訶)지옥에 들어가게 된다.그 지옥을 지키는 귀신은 바로 모든 죄인을 적발하여 다섯 가지 혹독한 형벌로 다스리는데, 그 신체를 벌려 마치 소 가죽을 펴듯이 해놓고, 무쇠 대못을 그 죄인의 손·발·심장에 박고, 또한 혀를 뽑아 100개의 못을 박으며 발에서부터 머리까지 가죽을 벗겨낸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몸을 저 소 가죽처럼 벌려 놓고
무쇠 대못을 가져다 박나니
이간질하는[兩舌] 죄를 지었던 탓으로
무쇠 못 가져다가 혀를 무너뜨리고
몸 가죽 벗기고 땅에 끌기를
마치 사자가 꼬리를 끌듯 한다.
이렇게 헤아려 보건대
고통을 받는 것이 한량없네.그
리고 지옥을 지키는 귀신은 죄인을 적발하여 무쇠 수레로 멍에를 메운다.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수레를 모는데 재갈[勒]을 가져다가 입에다 재갈을 물린 다음, 왼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채찍을 잡고 치면서 동·서·남·북으로 달리게 한다.죄인들은 수레를 끄느라고 피로가 극심하여 혀를 빼물다가 몽둥이로 몸을 얻어맞고, 신체가 파괴되어 모두 피를 토하고 땅에 쓰러져 가슴을 부둥켜 안는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죄인에게 무쇠 수레의 멍에를 씌워
지옥 지키는 귀신이 몰아 달리게 한다.
회초리로 몸을 때려 피를 토하는 것이
저 말이 싸움터에서 창을 맞은 듯하다.
만일 믿음[信] 없고 착한 사람 무시하면서
스스로 죄악을 범하고도 합법한 것이라 하면
재앙과 죄에 끌려 아비지옥에 들어가
무수한 모든 고통을 혹독하게 받는다.
아비지옥에는 숯불이 저절로 죄인의 무릎까지 닿는데, 그 불이 광대(廣大)하여 몇 리(里)나 되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그 때 죄인들은 사악한 생각이 일어나 도리어 잘못된 길을 따라가면서도, 좋은 길이라고 지껄이다가 바로 불 속에 들어가 가죽·살·힘줄·혈맥을 태우게 된다. 그러다가 발길을 돌리려고 하면 다시 예전처럼 회복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때 숯불이 무릎까지 타올라
이미 넓고 길게 번지면 다시 바람이 불어
그 길 걷던 죄인의 발 가죽을 태우나니
정도(正道)를 버리고 사도(邪道)를 행한 죄 이러하네.
이 지옥을 벗어나면 멀지 않은 거리에 비시(沸屎)지옥이 있는데,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고 그 깊이도 몹시 깊다.죄인들은 그 지옥을 보고 그곳이 목욕하는 못인 줄로 알고 서로 말을 전한다. "저기 목욕하는 못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푸른 연꽃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으니, 마땅히 우리 함께 가서 목욕도 하고 물도 마셔 해갈이나 하자."그러면서 죄다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저 밑에까지 흠뻑 빠져버리게 된다.그 속에는 온갖 벌레가 있는데 그 주둥이가 철침(鐵鍼)과 같고 살코기를 주식으로 삼는다. 이것이 죄인의 몸뚱이를 뚫고 피부를 파괴하는데, 발을 뚫고 들어가서 머리 위로 나오므로 눈·귀·코·입에서 모두 벌레가 나오게 된다.그러나 본래 지었던 죄가 다하지 못한 까닭에 죽게 하지도 않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죄과(罪果)로 인해 받는 지독한 고통
그 때 죄인들 아비지옥에 들어가
고통에 울부짖고 고뇌하는데
신체를 벌려 놓고 못질을 한다.
비시지옥은 냄새가 나고 더러운데
너비와 길이를 헤아릴 수 없다.
악로(惡露)가 다 거기에 있고
그 밑은 몹시 깊기도 하다.
죄만 범하고 선함이라곤 하나도 없어
이 염왕지옥에 떨어져
이 모든 죄인의 무리들
침에 찔리고 벌레한테 물린다.
탄화(炭火)지옥과 아비지옥에 떨어지고
일체가 더러운 비시지옥에 떨어지며
유하(流河)지옥에 떨어짐도 죄지은 탓이니
전생에 지은 재앙으로 죽지도 않는다.
거기에 두 개의 지옥이 있으니 소자(燒炙)지옥과 포자(烳煮)지옥이다.그 때 지옥을 지키는 귀신이 모든 죄인을 잡아다가 조각조각 쪼개어 철판 위에 올려놓고 불로 볶으며 석쇠에다 엎어 놓고 불로 굽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크나큰 고된 지옥에 떨어져
불에 태우고 굽고 볶고 삶기지만
죄에 걸리고 재앙을 당하고서야
본래 행한 악 때문인 줄 안다.
칼로 조각조각 쪼개어
헤아릴 수 없이 파괴해서는
철판 위에 올려놓고 볶으며
석쇠에 엎어놓고 굽는다.
태우고 굽고 볶고 삶을 적에
그의 허물과 번뇌를 미워한다.
수없는 죄인들이 당하는 혹독함
마치 부엌에서 고깃국을 끊이는 것 같다.
가령 어진 이를 해쳤다면
큰 불 속에 던져지고
계율 범하고 법을 파괴했다면
큰 코끼리한테 짓밟힌다.
성질을 강하고 못되게 써서
늘 중생들 해치기 좋아하고
먹는 것이 가리는 바 없었다면
성(城)지기와 지옥 지키는 귀신이 된다.
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로써 헤아려 본다면 내 이 몸이 장차 8개의 죄옥(罪獄)과 16개의 부(部)에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또 나는 전생에 수없이 많은 생(生)으로부터 이 악도를 번갈아 겪어왔다. 가령 거룩한 도를 마치지[究竟] 못하면 마땅히 다시 그 속에 떨어질 것이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거스르는 악한 일[逆惡]을 범하였다면, 왕이 측근 신하에게 분부하여, 이른 아침에 창으로 100군데를 찌르고, 다시 한낮에 100군데를 찌르며, 또 저녁 무렵에 100군데를 찌르게 할 것이다.그 사람은 하루에 300군데를 찔리면 몸이 모두 파괴되고 상해서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고, 아픔을 겪는 극심한 고통을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아무리 이런 고통이 있을지라도 지옥의 고통에 비교해보면, 그보다 무수한 백천만 억 갑절이나 더하므로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듯 지옥의 고통이 더 괴롭다'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스스로 온갖 악을 범했다가 여기에 끌려와
고문당하는 혹독한 고통 지긋지긋하다.
이런 고통 보고서 마땅히 진리를 생각하고
늘 열심히 정진하여 빨리 도를 이룩해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런 배울 자리를 세워 마땅히 기쁨을 버리고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만일 뜻이 가볍다면 마땅히 스스로 제지하기를 마치 수레를 모는 이가 고삐를 잡고 수레를 몰아 가듯이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이글거리는 숯불과 같아
일찍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늘 이런 고통을 만나나니
밤낮으로 혹독한 고통 헤아릴 수 없다.
날카로운 창에 찔리는 것보다
지옥의 고통 100갑절 더하다.
그러한 온갖 고통 헤아려보면
지옥의 고통에 비해 털끝만큼도 못 되리.
수행하는 이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지금 내 이 몸이 이 환난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마땅히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자제하여 다시는 경솔하게 날뛰지 말아야 한다.만일 이렇게 뜻을 세운다면 능히 행을 오로지 하여 착한 법에 들게 되리니 수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아침 저녁으로 그 법에 위반되지 않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렇게 쇠망(衰亡)한 모습을 보건대
나무 열매 저절로 떨어지는 것 같고
또한 죄의 번뇌를 보건대
커다란 산처럼 쌓였네.
이 더럽고 혼탁한 괴로움을 보건대
사람 스스로 범하여 악도에 떨어졌으니
정진에 전념하고 행을 닦아서
기쁨을 버리고 장난을 조복해야 한다.
악도를 보니 어둡고 괴로운데
부처님의 경법 해와 같이 비추시어
온갖 환난 없애고 이를 따라 강론하셨으니
경전[經卷]에서 뽑아낸 가르침으로 교만을 없애게 하였노라.
수행도지경 제 4 권
서진삼장 축법호 한역
20. 환열품(歡悅品)
지혜를 받들어 중생을 제도하고
도 이루면 흐름[流]을 맑게 하리니
그 지혜는 항상 이 물을 마시고
법다운 감로(甘露)를 먹어야 하리.
저 물이 다함 없음이
구멍으로 끊임없이 새는 것 같네.
지혜의 종자와 도덕을 갖추신
부처님께 귀의하기 원합니다.
마음이 유약[羸弱]한 이라도
받들어 배우면 뜻이 저절로 통하리니
제도를 받아 마음을 안정시키고
뜻을 세워 선(禪) 닦는 법을 생각하라.
부처님이신 천중천(天中天)께서
좋은 방편을 행하시어
한량없는 지혜를 나타내시니
몸과 마음 바쳐 귀의해 머리 조아립니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유약한 마음이 생기면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훌륭한 이익을 얻어 8난(難)을 해탈하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자재(自在)하게 살리라. 내가 이미 일체지(一切智)를 지니신 스승을 만나 그 법에 귀명(歸命)하고 탐욕을 없앤 스님의 자격을 갖추었다. 나는 이미 범행(梵行)을 닦고 도의 씨앗을 심었으니 도를 성취할 수도 있고 도를 향해 매진해 나갈 수도 있으리라. 여러 사람들은 삿된 데에 떨어질지라도 나는 바른 도를 따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은 비뚤어지게 행할지라도 나는 평등한 행(行)을 따르리라. 그러면 이제 나는 오래지 않아 법왕자(法王子)가 되어 하늘세계와 인간세상에서 계율과 도덕의 향기[成德香]를 찬탄[歎]1)하고 그 공덕을 숨기지 않을 것이요, 번열(惱熱 : 煩惱)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곧 안온하게 해탈의 맛[味]을 먹으면서 날마다 배를 채운다면 구제를 받아 편안함을 얻게 될 것이요, 악한 갈래의 세계에서 해탈하여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요, 적정(寂靜)한 속에서 관법(觀法)을 타고 여덟 가지 바른 도에 들어가 수행한다면 두렵거나 어려운 일이 없는 곳에 이르고 니원성(泥洹城 : 涅槃城)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권발(勸發)하고 받들어 정진해야 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행하는 사람이 설사 유약할지라도
다행히 법의 이익[法利]을 만난다면
나는 그가 세존과 바른 법과 승가에
귀의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나니
방편과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유약한 사람이 뜻을 권발하여
1)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난(難)자로 되어 있으나, 이 글자대로 해석할 경우 문맥에 맞지 않은데, 아마 탄(歎)자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여 고쳐 해석하였다.
오로지 따르고 받들기를 생각한다면
이것을 수행이라고 이른다.
처음 배울 때로부터 도를 이루기까지
여러 사람들 빽빽한 숲과 같이 많지만
삿된 갈래 길을 여의고
곧 올바른 길에 서서
계율과 덕으로 향(香)을 삼되
저 숲의 나무 향내를 쐬듯 한다면
홀연히 해탈을 얻을 것이요
도를 증득하면 널리 드러나리라.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생겨난 경법(經法) 나무에서
여러 이치 기록하기를 꽃들의 맛을 따오듯 한 것은
바른 법이란 잠깐 사이에도 게을러지기 쉬우므로
스스로 깨우치게 하기 위해 이를 설명하노라.
21. 행공품(行空品)
저마다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은
모두 부처님의 본호(本號)를 안다.
그는 중생의 미미한 그 고통이
저 연뿌리의 실[絲]과 같음을 아신다.
진리를 자세하게 관찰한 까닭에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으시고
또한 내 몸이라고 헤아리지도 않으니
집착 없으신 분께 예배드리기 원합니다.
그 광명 온 세간을 비추시되
횃불이 어두운 집을 밝히듯 하시고
그 마음으로 보신 것은
일체는 없는 것[無]이라는 진리였네.
내가 귀명(歸命)할 저 깨달으신 분
그 마음과 행이 평등하시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관찰하시되
마치 저 텅 빈 허공처럼 널리 보신다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나[我]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공(空)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스스로 꾸짖어 말한다. '내가 쇠진(衰盡)하여 영리함이 없고 마음 씀에 걸림이 있어 공혜(空慧)에 순응하지 못하며, 나라고 하는 생각 가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걱정하고 근심하며 힘써 마음이 공에 이르도록 유도한다. 혹시라도 그 뜻을 경계하고 유도하여 공으로 향하게만 한다면, 그로 인하여 본래 무(無)인 경지에 이르러, 삼계(三界)가 모두 공한 것이고 만물이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이렇게 헤아리는 이는 그 마음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간하여 그 마음이 방탕해지지 않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공을 알지 못하고 나라는 생각을 가지면
뜻이 발동하여 마치 나무가 흔들리듯 하리니
그 마음을 권유해 공하여 없는 데로 향하게 한다면
머지않아 꼭 본래 청정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나라 왕에게 어떤 배우[俳兒]가 있었는데, 그 배우의 어미가 죽어서 상복을 입고 집에 있었다.
왕은 그의 재담(才談)이 듣고 싶어서 사람을 시켜 부르면서 말했다. "왕은 네가 보고 싶다." 배우는 혼자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늙은 부모가 있다. 마침 어머님을 여의었는데 지금 왕의 지엄한 칙령이 내려왔으니, 만약 가지 않으면 분명 나의 목숨을 빼앗거나 혹은 형벌(刑罰)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머님께서 비록 돌아가신 상황이라고는 하나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마땅히 그 명령에 응하여 지체 높은 분의 명을 어기지 말자. 거짓으로나마 광대놀음을 하며 재담을 늘어놓아 왕의 환심을 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억지로 뜻을 굽히고 슬픔을 억제하면서 다시는 그 어미를 생각지 않기로 하고, 곧 스스로 장엄하게 꾸미고 화려한 의복 차림으로 궁궐(宮闕)에 나아가 왕을 뵙고 나서 거짓 재담을 늘어놓아 왕을 기쁘게 해주었다. 그리고는 물러 나와 혼자 생각하였다. '어머님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슬픈 심정이 마치 불이 마른풀을 태우는 것 같다. 아, 슬픈 일이구나.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차마 희희덕거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막중한 상사도 만났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국왕이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곧 슬픈 마음 억제하기를 마치 불에 물을 뿌리듯 하고 마침내는 배우가 되어, 점차 모든 근심을 잊고 웃음거리를 더욱 많이 만들어 내어 왕으로 하여금 기뻐 어쩔 줄 모르게 하였다.수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 도(道)에 마음을 가지도록 유도하여 나아가, 공하여 없는 것임을 깨달아 나[我]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제거하게 하며, 이로 인하여 열심히 닦고 익혀서 마침내 참다운 공[眞空]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왕에게 배우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막중한 상사를 당했는데도
거짓으로 웃고 근심을 억제하여
마음이 결국엔 기쁘게 된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이 하여
점차 마음을 유도해 공으로 향하게 하면
밝게 빛나는 혜명(慧明)에 가까워지고 뜻
이 안정되어 동요하거나 바뀌지 않으리.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공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설령 그 마음을 경계하다가 혹 마음이 혼란해져서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더라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풀과 나무를 한곳에 모아 뗏목을 만들어 넓은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그 강의 물살이 급하면 뗏목이 떠내려가다가 부서지고 말듯이 나도 마음을 유도하여 매진해 온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어 그 노고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란한 마음이 갑자기 일어나 한결같은 정진을 어기고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구나.'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풀과 나무를 모아 만든 뗏목이
냇물에서 강물로 떠내려가다가 부서지듯이
애욕 바다의 물결도 그와 같이 급하니
적정에 뜻을 두면 곧 공(空)에 나아가리.
비유하면 여름철 무더위에 불타듯 말랐던 풀과 나무가 단비를 맞게 되면 금새 되살아나고 5곡도 풍성해지는 것처럼, 가령 나[吾]라는 것은 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질 것이나, 가령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문득 몸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저 단비를 만났을 적에는
말랐던 온갖 풀 나무가 다 되살아나듯이
가령 수행할 때에도 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곧 나를 버려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리라.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앉아있는 이유는 멸도(滅度)를 구하려고 그러는 것인데 참으로 구하기가 어렵구나. 가령 나라는 것이 정말로 있어서 구하려고 해도 나라는 것은 본래 공한 것이어서 나라는 것은 애당초 없는 것이며, 지금 몸을 분별하려고 해도 그 몸은 본래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니 어느 곳에 그 몸이 있겠는가?'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라고 하는 생각을 벗어나야 곧 깨달을 수 있고
항상 진리를 보아야 본래 무(無)임을 안다.
가령 세속을 따르고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두운 곳에서 장님을 따르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물러나서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몸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我]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만일 옷과 음식의 공양이 있으면 자신이 남아야만 다른 사람에게 주나니, 이것이 나[吾我]라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는 다 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가령 어려움이 생겨도 자기 자신부터 먼저 구원한 다음에야 남을 구원하나니, 만일 몸을 버린다면 어떠한 환난이 생길 경우 곧 마땅히 다른 사람부터 먼저 보호하게 될 것이다.일체의 탐냄은 모두 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지, 다시 다른 데에서 따질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몸이 곧 내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재물과 색(色)을 탐냄도 제 몸을 위하는 것이고
설령 환난(患難)이 생겨도 먼저 자신부터 구원하네.
영원히 남은 돌보지 않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니
때문에 속인(俗人)들은 그것을 나라고 집착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마땅히 몸의 근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몸은 여섯 가지 요소[六大]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다.'어떤 것을 여섯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흙[地]이요, 둘째는 물[水]이요, 셋째는 불[火]이요, 넷째는 바람[風]이요, 다섯째는 허공[空]이요, 여섯째는 혼신(魂神)이다.어떤 것을 흙[地]의 요소라고 하는가? 흙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몸 안의 흙의 요소[內地]와 몸 바깥의 흙의 요소[外地]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혼신(魂神)을 합하면 여섯 가지 되나니
몸 안의 여섯 가지와 몸 바깥의 여섯 가지를
부처님께선 거룩한 지혜로 연설하셨다.
어떤 것을 몸의 흙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 속의 단단한 것[堅]이다. 즉 털·머리카락·손톱·발톱·이·때·뼈·살·가죽·힘줄·5장(臟)과, 창자·밥통·똥 따위의 깨끗하지 못한 온갖 단단한 것을 곧 몸의 흙의 요소라고 말한다.이를 게송으로 설한다.
사람 몸 속에 쌓인 갖가지 종류인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뼈·가죽·살과
몸 속에 있는 그 밖의 모든 딱딱한 것들
이것을 바로 몸 안의 흙이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과 관찰해야 한다. '내가 몸 안의 흙의 요소에 대하여 이것이 내 몸인가, 신(神)이 붙어 몸 안의 흙과 합해진 것인가, 몸이 다른 것과 합해진 것이라서 나와는 다른 것인가를 관찰해야 한다. 또한 머리 깎는 것을 관찰하되 수염과 머리카락이 떨어질 무렵 눈앞에 놓인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을 속으로 100번 돌이켜 살펴보아도 어떻게 나라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가령 한 오라기의 털을 나라고 말한다면, 그 나머지는 다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만일 털을 죄다 나라고 할 경우라도, 이 또한 수많은 몸이 되는 셈이 아니겠는가? 또한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는데도 짧을 때부터 길 때까지의 기간을 헤아리기 또한 어려운 일이며, 또 불을 가져다가 머리카락에 붙여 그 머리카락을 태울 적에는 몸도 곧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머리카락은 네 가지를 좇아 생기나니, 첫째는 인연(因緣)이요, 둘째는 번뇌[塵勞]요, 셋째는 애욕(愛欲)이요, 넷째는 음식(飮食)이다.이것이 내 몸이 아니라고 헤아린다면 나라고 하는 것도 없을 터인데, 수염과 머리카락은 여러 가지 인연이 나에게 합해져서 있게 된 것이다. 한 오라기의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거나 설령 불에 던져졌거나, 혹은 변소에 버려져 발로 짓밟힐지라도 몸에는 아무 걱정도 없으며, 또한 그대로 머리 위에 있을지라도 아무 이익도 없다.그러므로 이렇게 본다면 머리에 있거나 땅에 버려지거나 똑같아서 전혀 다른 점이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에 아무리 머리카락이 많거나
또한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해도 다름이 없으며
설령 깎아서 다른 곳에 둔다 해도
또한 근심이 될 게 없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자세히 관찰해 보고 나면
곧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니 그
러므로 분명히 분별하여 안다면
저마다 몸이라고 할 것이 없다.
설령 저 머리카락을 나라고 한다 해도, 마치 잘라낸 파나 염교처럼 뒤에 다시 생겨날 것이니, 이렇게 헤아린다면 마땅히 또 다른 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파나 염교는 저절로 상하더라도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그러나 일체의 것들은 모두 공(空)한 것이어서 나도 아니고 나라는 것도 없다. 가령 수염과 머리카락이 정신과 합해졌다고 한다면, 마치 물과 젖[乳]이 합쳐진 것과 같아서 그래도 분별할 수가 있겠지만, 설령 수염과 머리카락이 곧 나라고 한다면, 처음 태(胎) 속에서 형체와 의식을 받았을 적엔 머리카락과 털은 전혀 없었는데, 그 때는 나라는 것이 어느 곳에 있었겠는가? 결국 이 몸은 다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은 내가 아니어서, 머리카락이 나든지, 나지 않든지, 깎아 버리든지 그대로 두든지 간에 도저히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이로써 관찰해 보건댄 풀의 싹이나 머리카락이 조금도 다름이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머리카락을 나라고 한다면
곧 파나 염교와 같다고 보아야 하리.
몸은 풀을 베어내는 것과 같나니
몸도 풀과 다름없이 똑같게 보아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본래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제 나라고 보지 않고, 이와 같이 분명하게 안다면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만일 머리카락에 나라는 것이 없다면, 일체가 또한 다 그러하여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뼈·살·피부도 모두 소속된 곳이 없을 것이다.'이와 같이 자세히 살펴본다면 흙의 요소에도 나라는 것이 없고, 나도 또한 흙의 요소에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카락 같은 것들에도 나라는 것이 없고
몸 안을 백천 조각으로 분별하여
그 가운데에서 구해 봐도 몸이 없으니
마치 물 속에서 불을 구하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를 몸 안의 흙의 요소에서 찾아보아도 전혀 나라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바깥의 흙이라는 요소[外地]에서 살펴보아야 하겠다. 혹 내가 바깥 흙의 요소에 있지 않을까?'어떤 것을 바깥 흙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거칠고 강하고 단단한 것이 사람의 몸과는 떨어져 있는 것이다.말하자면 흙·산·바위·모래·돌·기와·나무 같은 것들이며, 구리·철·납·주석·금·은·놋쇠·산호(珊瑚)·호박(琥珀)·자거(車▩)·마노(馬瑙)·유리(琉璃)·수정(水精) 같은 것들이며, 나무· 풀·싹·벼·곡물 같은 것들이 쌓여있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산·바위·돌·기와·흙·나무와
그 밖에 모든 형체 있는 것들로서
저마다 몸을 떠나 있는 증식력 있는 것들을
곧 몸 바깥에 있는 흙의 요소라고 한다.
만약 수행하는 사람이 몸 바깥에 있는 흙의 요소를 관찰하였다면, 몸 안의 흙이라는 요소에도 나라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왜냐 하면, 몸 안의 흙의 요소도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으로서 곧 고통만 있을 뿐 오히려 몸은 없는데, 더구나 몸 바깥의 흙의 요소에 몸이 있겠는가?몸 바깥의 흙이라는 요소는 가령 파괴하고·절단하고·불태우고·파헤치고·쪼개고 찢는다 하더라도 몸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나니, 어찌 그것에 나라는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그러므로 몸 안팎의 흙의 요소는 모두 소속된 곳 없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몸 안 흙의 요소에도나라는 것 없는데
더구나 몸 바깥의 흙의 요소에 나라는 것 있겠는가?
그로써 본다면 나라는 것 없음이 똑같아
마치 허공처럼 다르지 않게 보아야 하리.
어떤 것을 물[水]의 요소라고 하며, 물이라는 요소가 나에게 있는 것인가, 내가 물이라는 요소에 있는 것인가? 물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나니, 몸 안의 물의 요소[內水]와 몸 바깥의 물의 요소[外水]이다.어떤 것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 가운데 있는 부드럽고 축축한[濕] 것들이다. 즉 지방(脂肪)·혈맥·골수·콧물·눈물·침·간(肝)·쓸개[膽]·소변 같은 몸 속에 축축한 모든 것들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간·쓸개와 모든 혈맥과 땀
그리고 지방 같은 것들과
콧물·눈물·소변 같은
몸 속에 있는 모든 축축한 것 등
몸 안에 흩어져 있는 부드러운 것이
정신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온몸 속에 두루두루 흘러 다니나니
이런 것들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앞에 있는 침과 콧물을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나무 가지에 묻혀 쳐들고 '내가 여기에 붙어 있는가?'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가령 거기에 내가 붙어 있다면 날마다 흘러 나가 버려지고 소멸되어 없어지고 썩어져서 장차 몸 바깥에 있게 될 것이니, 이것을 나라고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한 보호할 것도 못 된다.설령 나무 가지로 찍어 쳐들고 여기에 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그릇에 담아놓고는 또 무엇이라고 이름하겠는가? 이와 같이 관찰한 이는 그것이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니, 왜냐 하면 형체를 헤아려 보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것들로써 추론[比量]2)해 본다면 물의 요소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물이라는 요소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 몸의 안팎이 다 이와 마찬가지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내가 물의 요소와 같다고 한다면
물이 없어지면 나도 소멸되어야 할 것이니
몸 안에 있는 물의 줄어듦과 불어남에 따라
나도 또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리.
만일 몸 속에 있는 물을 버린다면
2) 산스끄리트어로는 anum na라고 한다. 불교 논리학에서 사용하는 언어로서, 세 가지 인식 방법인 3량(量 : 現量·比量·聖言量)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들이 하나의 사상(事象)에 의하여 다른 사상을 바르게 추측하여 아는 것으로서 논증을 포함하고 있는 추론, 추론지(推論知)를 말한다. 연기(煙氣)를 보고 거기에 불이 있다고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몸이라고 헤아려 탐하지 않으리니
이와 같음을 자세히 살펴본 이는
곧 내가 있다고 말하지 않으리.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살펴보고 나서 이렇게 해야 한다. '몸 안의 물의 요소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몸 바깥의 물의 요소에 내가 있는지, 내가 물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겠다?'어떤 것을 몸 바깥의 물의 요소라고 말하는가? 몸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즉 뿌리의 맛·줄기의 맛·가지의 맛·잎의 맛·꽃의 맛·열매의 맛과 제호(醍醐)·참깨 기름·술·음료수[漿]·안개·이슬·목욕하는 못·샘·개천·흙탕물·강·하수·큰 바다와 땅 속에 들어있는 모든 물 같은 것들을 몸 바깥의 물의 요소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땅 위에 있는 여러 가지 물과
그 밖에 온갖 약의 뿌리와 줄기의 맛으로서
몸과 서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들을
곧 몸 바깥의 물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몸 바깥의 물의 요소에 대하여 자세히 관찰하여 이와 같이 분별하였다면, 몸 안의 물에도 오히려 나라는 것 없고, 늘어나고 줄어드는 일만 있어 이 몸으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할 뿐인데, 하물며 어찌 몸 바깥에 있는 물을 내 몸이라고 집착하겠는가.가령 누가 빼앗아 가더라도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손해가 없고, 또한 그냥 누가 준다고 할지라도 몸에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 이로써 관찰해보면, 이 몸 안팎의 물은 모두가 평등하여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다.왜냐 하면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몸 속의 모든 물의 요소에도 나라는 것 없고
괴로움과 즐거움, 늘어나고 줄어듦만 있나니
이와 같거늘 몸 바깥 물에 어찌 몸이 있겠는가.
괴로움과 즐거움, 늘어나고 줄어드는 걱정만 있다.
이제는 마땅히 모든 불[火]의 요소를 관찰하여야 한다. '불이라는 요소가 나에게 소속된 것인가, 내가 불이라는 요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인가?'어떤 것을 불의 요소라고 하는가? 불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나니, 몸 안의 불의 요소와 몸 바깥의 불의 요소이다.어떤 것을 몸 안의 불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 안에 있는 따뜻한 기운과 모든 열(熱)과 번만(煩滿) 등이 그것이다. 목숨을 보존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몸 안에 있는 모든 따뜻한 기운을 곧 몸 안에 있는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음식을 소화시키는 몸 속의 모든 따뜻한 기운과
온화하게 목숨을 보존하는 모든 뜨거운 것
이것이 곧 몸의 일부분인 햇빛[日光]이니
이것을 몸 안에 있는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똑같이 관찰해야 한다. '몸 안에 있는 온갖 따뜻한 것과 뜨거운 기운이 머리에 붙어 있기도 하고, 혹은 손·발·척추·옆구리·배·등에 있기도 하다.'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저마다 다른 존재인 사람들의 몸을 헤아려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불의 요소가 나에게만 있다고 할 것이 못 된다. 이와 같이 자세하게 관찰해 본다면 소속된 곳이 없는 것이 바로 몸 안에 있는 불의 요소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 몸을 분별하여 헤아리고
마음으로 불의 요소를 살펴도 나라는 것이 없다.
곳에 따라 있는 갖가지 종류에도
저마다 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은 문득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몸 안의 불의 요소에서 나를 찾아보아도 전혀 내 몸이 없으니, 마땅히 바깥 불의 요소에 내가 있는가, 내가 불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어떤 것을 바깥의 불의 요소라고 말하는가?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불·불꽃·따뜻한 것·뜨거운 것과 같은 따위이며, 해·달·별에서 나오는 광명이 그것이다.모든 하늘 신[天神]의 궁전·땅·언덕·산·바위·돌을 뚫을 때에 나오는 불과, 좋은 의복과 금·은·동·철·구슬·영락(瓔珞)과, 5곡(穀)·나무·약초(藥草)·제호(醍醐)·참깨기름 같은 데에 가지고 있는 온갖 열을 곧 바깥의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해·달·불꽃·별에서 나오는 열과
땅과 모든 돌에서 나오는 빛과 열이며
그 밖에 일체 사물의 모든 따뜻한 것을
곧 바깥의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바깥에 있는 불의 요소를 관찰한 바는 이와 같나니, 마땅히 바깥에 있는 불의 요소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을 알 수 있다.'불의 요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태우는 것과 삶는 것이다. 불이 풀과 나무에 있으면서도 풀과 나무를 태우지 않는 것은, 있는 곳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몸 바깥에 있는 불 가운데 내가 있다고 한다 해도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 바깥에 있는 불의 요소에도 몸은 없고, 저기[彼 : 몸 안]에도 없나니, 몸 안의 불의 요소와 몸 바깥의 불의 요소가 모두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똑같이 공(空)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런 까닭에 바깥에 있는 불은
오직 태우고 익힐 뿐이요
산의 바위와 모든 자갈에
모여 쌓인 불도 그러하다.
제각기 있는 곳이 다르고
한꺼번에 타오르는 것도 아니다.
바깥의 불의 요소가 이와 같나니
그러므로 나라는 것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마땅히 관찰하여 말해야 한다. '모든 곳에 있는 바람[風]의 기운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내가 바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인가?'어떤 것을 바람의 요소라고 하는가? 바람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몸의 바람의 요소와 몸 바깥의 바람의 요소이다.어떤 것을 몸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이 받아들이는 기운으로서 오르락내리락 가고 오는 것이다. 즉 옆구리 사이와 척추 뼈·등뼈·허리에서 마구 일어나는 바람과 온갖 맥과 뼈 사이를 통하는 모든 바람과, 힘줄을 당기고 오그라들게 하는 바람과 급하고 거센 모든 바람이 일어나 발동하면 곧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데 이러한 것 등을 몸의 바람의 요소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몸에 실린 모든 바람 기관(機關)과 같아서
사람 목숨 끊으려고 많은 바람 발동하네.
숨을 헐떡이고 동요하며 몸을 위축시키나니
이것을 곧 몸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이 몸 안에 있는 모든 바람은 모두 음식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또 그 밖에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바람도 헛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여러 바람들은 걸음을 걸을 적마다 그 가운데에서 각각 일어나고 소멸하나니, 거기에서 나를 찾아보아도 얻을 수가 없다.'이것으로써 말한다면 안에 있는 바람에서는 아무리 구해보아도 나라는 것이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 몸에서 움직이고 멈추고 하는 바람과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바람이
제각기 달라 어디에도 내가 없나니
그러므로 몸 안의 바람의 요소에는 내가 없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몸 안의 바람의 요소에서 나를 찾아보아도 거기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또 몸 바깥을 관찰해 보아야 하겠다.'어떤 것을 몸 바깥의 바람의 요소라고 말하는가?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즉 동·서·남·북의 사납고 급박하고 어수선한 바람과 회오리 바람, 차가움[冷]과 뜨거움[熱]이 많거나 미미한 바람과, 구름과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과,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하늘과 땅을 이룩하고 무너뜨리는[成敗] 바람과 물 기운[水氣]을 머금고 있는 바람 등을 몸 바깥의 바람의 요소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4방의 모든 바람과 차갑고 뜨거운 바람과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하늘과 땅의 성패를 좌우하는 바람과
구름과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과 시원한 바람과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
이런 것을 몸 바깥의 바람이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람을 관찰하고는 곧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몸 밖의 바람의 요소도 똑같지 않아 혹은 거세기도 하고, 혹은 미미하기도 하며, 혹은 시기적절하게 불기도 하고, 혹 어느 때는 성대한 열기를 머금고 있어서 부채를 들고 스스로 부채질을 하며, 혹 흙먼지가 있다면 먼지에 불어 깨끗이 씻어버리기도 한다.거세고 빠른 회오리바람은 사람을 놀라 도망가게 하고,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은 허공에 머물러 있으며 하늘과 땅을 무너뜨릴 때에는 수미산(須彌山)을 뽑아 둘을 서로 부딪치게 하여 모두 파괴시키고, 아래로부터 위로 높이 나부끼다가 다시 아래로 불어 서로 충돌하면서 부수어 모두 먼지와 같이 만든다.' 이 몸을 헤아려 보건대, 오직 하나 뿐이요 크거나 적은 것이 있지 않지만, 몸 바깥에 있는 바람의 요소는 이미 다양한 데다가 또 크고 작은 것이 있다. 몸 안과 바깥의 바람의 요소를 관찰해보건대 똑같아서 차이가 없다. 왜냐 하면 모두 소속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땀과 더위를 씻는 부채[扇]의 바람과
사람의 몸에 부는 바람과 회오리바람과
허공의 온갖 바람에도 또한 내가 없나니
이런 것을 바깥에 있는 바람이라고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능히 다 분별할 수 있어서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분명하게 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몸이 공(空)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처해 있는 곳에서 활동하는 작용을 가지고 문득 몸은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나라는 것이 있다고 억측하게 된다.본래 무(無)임을 관찰하였다면 몸 안의 네 가지 요소와 몸 바깥의 네 가지 요소를 헤아려보아도 모두 똑같아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색(色)·통(痛 : 受)·상(想)·행(行)·식(識)은 곧 몸 안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또한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수행도지경 제 5 권
서진삼장 축법호 한역
22. 신족품(神足品)
청정한 그 마음 흐르는 샘물과 같고 비
구(比丘)다운 구족한 덕 꽃과 같네.
괴로움을 해탈한 지혜 시원한 바람 같으시니
불수(佛樹)를 기르신 분께 예배하기 원합니다.
때를 호응하여 얻으신 적정(寂定)
마치 산과 같아서 움직일 수 없네.
밝으신 관찰 평등하기가 저울과 같아
티[瑕]를 제거하여 더러움 없애게 하시네.
경(經)의 이치와 적정한 관법(觀法)으로
현재 세간을 밝게 비추어 나타내셨네.
마음을 거두어 스스로 귀의하옵고
삼계에서 거룩하신 분께 머리 조아립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혹 먼저 적정(寂靜)을 얻고 다음에 관법(觀法)에 들기도 하고,1) 혹은 먼저 관법을 얻고 다음에 적정에 들기도 하는데, 먼저 적정을 익
1) 적정(寂靜)과 관법(觀法)은 좌선의 두 가지 방법으로 보통은 지(止)와 관(觀)이라고 한다.
히고 행하여 나중에 관법에 이르러도 곧 해탈을 얻고, 먼저 관법에 들었다가 만약 적정에 이르러도 또한 해탈을 얻는다.어떤 것을 적정이라고 하는가?그 마음이 바르게 머물러 움직이지도 않고 혼란에 빠지지도 않으며 방일(放逸)하지도 않은 것을 곧 적정한 모양[寂相]이라고 하고, 조금 있다가 그런 행(行)으로 인하여 마음속으로 바른 법을 관하고, 하는 일을 살펴서 본래부터 없는 것임을 알면, 그 형상의 모양을 보는 것을 바로 관법이라고 말한다. 비유하면 금을 팔고 있는데 사려는 사람이 와서 금을 보고도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바로 적정이라고 하고, 금을 본 다음에 어느 나라에서 나온 것인지, 또는 은(銀)이나 구리가 섞여 있는 것인지를 분별하여 그것이 진짜 자마황금(紫磨黃金)인지 가짜 자마황금인지를 가려내는 것을 바로 관법이라고 말한다.비유하면 사람이 풀을 벨 적에 왼손으로는 풀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낫을 드는데, 그 적정은 손으로 풀을 잡은 것과 같고, 그 관법은 낫으로 풀을 베는 것과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마음에 더러운 것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적정이라고 하고
마음으로 두루 살피는 것을
곧 관법이라고 말한다.
손으로 풀을 잡는 것이 적정에 해당하고
낫으로 풀을 베는 것이 관법이 된다.
그런 까닭에 적정과
미묘한 성찰은 해탈을 얻는다.
수행하는 사람은 사람 몸의 뼈를 관찰하되 앞에 있거나 뒤에 있거나 간에 똑같아 다름이 없다고 보고, 눈을 뜨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간에 평등하게 보는 것을 바로 적정이라고 말하고, 조금 있다가 생각하기를 머리와 목이 장소를 달리한 것과, 손과 발이 각기 나뉘어진 것과, 골절과 사지가 각기 다른 어떤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로 관법이라고 말하며, 이 뼈는 몸을 쇠사슬처럼 얽고 있고 네 가지 일로 인하여 자란다는 것과, 음식·애욕·수면(睡眠)·죄(罪)·복(福)의 인연을 조건으로 하여 태어나나니 그것은 모두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움[苦]이, 공(空)한 것이고 몸이 아니라[非身]는 이치와 깨끗하지 못한 썩은 물질이 쌓인 것이라서 죄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을 바로 관법이라고 말한다.요점[要]만을 들어 말하면, 보면서도 살피지 않는 것을 바로 적정이라고 말하고, 그것은 본래 없는 것임을 분별하여 깨달은 것을 바로 관법이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쇠사슬 같은 뼈를 보고도 살펴보지 않고
마음 흐리고 혼란에 빠지지 않은 것을 적정이라 한다.
그 몸에서 머리·손·발 따위를 분별하고
마음을 내어 살피려고 하는 것을 관법이라고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무슨 까닭으로 오로지 정진(精進)에만 매달려 적정에 들기를 구하는가?수없는 방편을 써서 적정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니, 이제 그 요점만을 취하여 해설하면, 두 가지 일로 인하여 이르게 된다.2) 첫째는, 오로관(惡露觀 : 不淨觀)이고, 둘째는 나고 드는 숨을 헤아려 지키는 수식관(數息觀)이다.어떤 것을 부정관(不淨觀)이라고 하는가? 처음에는 마땅히 자애로운 마음을 내어 일체를 다 편안하게 해주기를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는 바로 무덤[塚] 사이에 앉아서 죽은 사람
2) 적정에 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오로관(惡露觀)과 수식관(數息觀)이다. 오로관은 부정관(不淨觀)이라고도 한다.
을 하루 내지 7일 동안 관한다.혹은 몸뚱이가 팅팅하고 그 빛깔이 검푸른 채 문드러지고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그곳에 벌레가 생겨 시체를 파먹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는 살은 하나도 없고 피와 고름 같은 더러운 것만 보기도 하며, 그 마디와 힘줄이 얽혀 있는 속에 하얀 뼈가 여기저기 별처럼 흩어져 있는 몹시 혐오스러운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오랜 세월을 지낸 뼈를 보고서 가루가 되어 땅에 널려있는데 그 빛깔이 바래서 푸르스름하게 된 것에 마음을 두어 익히 생각하기도 하며, 그 본 것을 따라 다니고·걷고·나아가고·멈추고·눕고·일어나고·경행(經行)하면서도 마음속에 품어 두고 잊지 않아야 한다.만일 한가하고 고요하며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르면 가부(跏趺)를 틀고 앉아 저 무덤 사이에서 보았던 시체의 모양을 살펴 한결같은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오로(惡露)를 살펴보려면 무덤에 가야 하나니
무덤에 가서 죽은 시체를 보아라.
고요하여 사람의 소리가 없는 데에 있으면서
스스로 제 몸을 보기를 저 시체와 같이 하라.
수행하는 사람이 설령 이 관법을 잊었다 하더라도 다시 무덤에 가서 관찰하고 돌아와서 다시 본래 앉았던 자리에 앉아 무상한 것이라는 관법을 지어, 나가고·들어오고·전진하고·멈출 적마다 일찍이 품고 있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게으르지 않기를 한 달 내지 1년 동안 한다.다시 이 날짜보다 더 초과하도록 오로지 정진하여 중지하지 않으며, 경행하고·앉고·일어나고·자고·깨고·머무르고·중지하는 때와 혼자 있거나 혹은 대중들과 같이 있을 적에도 늘 마음에서 여의지 않으며, 병이 들거나 건강할 적에도 늘 뜻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다만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과 괴로운 것이고 공(空)한 것이며 몸이 아니라는 것으로 선정을 삼을 뿐만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 진리 그대로여서 허망한 것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인연관(因緣觀)으로 살피다가 잊었으면
거듭 무덤 사이에 가서 자세히 살펴 보라.
오로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라는 것만 관찰할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물러가지 않아야 진실 그대로 볼 수 있다.
만일 무덤 사이에서 보았던 시체 모양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기억하여 처음부터 잊어버리지 말고 제 몸을 보는 것도 또한 그렇게 하면, 죽은 사람의 모양과 나의 몸을 보는 것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을 것이다.만일 다른 사람·남자·여자·큰 사람·작은 사람을 볼 적에도 단정하거나 예쁘거나 추하거나 벌거벗었거나 옷을 입었거나 영락(瓔珞)으로 장식했거나 장엄하지 않았거나 간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피어 마치 죽은 시체와 다름없이 보면, 부정관(不淨觀)을 써서 적정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그 때에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오로(惡露)를 보듯이 관찰하되, 비유하면 마치 흐르는 온갖 물들이 죄다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내 몸과 죽은 시체와 크고 작은 것을
오로와 똑같이 차이가 없다고 보고서
마음이 한결같고 열심히 정근하여 버리지 않기를
온갖 물들이 큰 바다로 들어가듯이 해야 한다.
그 때 수행하는 사람은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미 이런 것에 자재(自在)하였으므로 마음과 내[我]가 어긋나지 않고 더 이상 의혹을 일으키지도 않는다'라고 하면서, 즉시 기뻐하고 그것을 달갑게 여기고 좋아하여 기특함을 이루고 잡은 뜻을 굳게 세워 다시는 탐욕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만일 여인을 보면 이는 쇠사슬 같은 뼈이고 예쁜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진리를 살펴 자세히 알아서 본래부터 익혀왔던 탐욕을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색(情色)을 여의고 온갖 악(惡)을 행하지 않는 것이 제1선(禪)이다. 5개(蓋)3)를 버리고 다섯 가지 덕을 원만하게 갖추며, 모든 생각을 여의고 온갖 착하지 못한 탐욕과 악하고 선하지 못한 법을 멀리하며, 그 마음에 한결같이 기억하고 고요히 전일하게 선정에 들어 기쁜 마음으로 편안하게 수행하는 것도 제1선이다. 이것을 적정법[淡然之法]이라고 말하나니, 이와 같은 것을 구하려면 오로관(惡露觀)을 수행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뜻의 자재함이 저 활을
마음대로 끌어당기는 것 같아
여인의 가죽과 뼈를 보고도
뜻을 제어하여 탐욕을 따르지 않는다.
더러움을 여의어 마음이 청정하고
몸이 온갖 악에서 벗어나
세간에 있어 자재함을 얻고
기쁜 마음으로 선정을 얻는다.
이 제1선에서 계속하여 번뇌[穿漏]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번뇌를 아직 다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와 같아서 수행하는 사람이 제1선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때문에 범부(凡夫)가 될 것이며, 그것을 불제자(佛弟子)라고 헤아린다면4) 그 때문에 밖에
3)개(蓋)는 본성(本性)을 덮어 가린다'는 뜻으로 탐욕개(貪欲蓋)·진에개(瞋恚蓋)·수면개(睡眠蓋)·도회개(掉悔蓋)·의개(疑蓋)를 말한다.
4) 초선(初禪)을 증득함에는 범부선(凡夫禪)과 불제자선(佛弟子禪)이 있는데, 초선의 적정함에만 만족을 느낀다면 정작 불제자선에는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서 있은 채 아직 집 안에 들어가지는 못한 셈이 된다. 비유하면 마치 외도(外道)의 선인(仙人)들이 탐욕을 멀리 여의었다고 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완전히 끊지 못한 경우와 같나니, 불제자(佛弟子)의 수행이란 이런 것이 아니다.제1선을 구하여 그것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나, 그 나머지 세 선은 점차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면 이루기 쉬운 것이다.비유하면 활쏘는 법을 배우는 이는 저 멀리 세워 놓은 큰 과녁판에 오랫동안 연습을 해야 비로소 맞출 수 있고, 거거서 다시 쉬지 않고 익힌다면 교묘하게 한 오라기의 털까지도 끊을 수 있는 것처럼, 제1선을 배우는 것도 열심히 정근해야 비로소 이룰 수 있고, 거기서 그 나머지 세 선정을 배우기가 쉬워지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제1선을 배우는 데 있어
정근하여 이루기란 몹시 어렵지만
그 나머지 세 가지 선정은
방편으로서 쉽게 이룰 수 있다.
비유하면 활 쏘는 법을 배움에 있어
처음부터 맞추기는 어렵지만
이미 능히 큰 과녁을 맞추고 나면
눈을 감고도 한 오라기의 털까지 맞추듯
만일 제1선의 적정만을 이루었다면
아직은 범부니 마땅히 꾸짖어 가르쳐야 한다.
그는 불제자가 아니고 그 경계 밖에 있는 셈이니
이미 애욕을 여의었다는 외도 선인과 같다.
저 수행하는 사람이 이미 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 네 가지 선정을 순조롭게 이룩하여 신족(神足:神通力)을 얻으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공한 것이라고 관(觀)해야 한다.즉 모든 뼈마디·눈·귀·코·입·이마·목·갈비·척추·손·발·가슴·배와 모든 털구멍까지도 다 공한 것이라고 관찰해야 한다.이런 관법을 수행한 다음에는 제 자신의 몸마디마다 연결되어 이어진 것이, 마치 연꽃 줄기와 같고 연 뿌리의 모든 구멍처럼 공한 것으로 보고, 다음에는 이 몸까지도 마치 가죽 자루처럼 보아야 한다.점차 이와 같이 관찰하면 곧 형상이라는 생각을 여의고, 오직 공(空)한 것이라는 생각만 남게 된다.이미 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얻고 나면, 다시 물질[色]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고, 혹은 공한 것이라는 생각이 익숙해져 제 자신의 몸을 보면서도 집착하는 것이 없게 된다.그래서 몸을 보려고 하면 몸이 저절로 보이고, 보지 않으려고 하면 또한 보이지 않으며, 허공을 보려고 하면 허공이 보이고, 보지 않으려고 하면 또한 보이지 않는다.몸과 마음이 모두 고르게 되면, 뜻이 그 속에 있는 것이 마치 젖[乳]과 물이 합해진 것 같아서 마음은 몸을 여의지 않고 몸은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뜻을 견고하게 하여 마음으로써 몸을 들어[擧] 그 자리에서 뜨게 한 다음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空)에 있게 된다.마치 사람이 저울로 물건을 달 적에, 저울추가 수평이 되게 하여 수량[銖兩]을 안정시키고 근(斤)이 평평해지고 난 다음에 손으로 저울을 매다는 것처럼, 수행하는 것도 그와 같이 하여 스스로 그 몸을 떠받들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공함을 생각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수행을 하는 사람은
신족통으로 마치 천신(天神)처럼 날 수 있나니
몸의 모든 뼈마디와 털구멍까지도
모두 공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라는 집착을 여의고 억측하지 않고
한결같은 생각으로 공함을 즐겨야 하나니
큰 저울로 물건을 다는 것처럼
몸을 드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익히고 행하면 곧 성취할 수 있다.처음 몸을 들어올릴 때에 땅과 떨어진 거리가 서캐[蟣]만 하다가 점점 참깨알[胡麻]만 해지고, 조금 더 떨어져서 콩알[大豆]만 해지다가 마침내는 대추[棗]만하게 된다.이렇게 몸을 들어올리기를 익히면 범천(梵天)에도 이를 수 있고, 또한 정거천(淨居天) 등 모든 천궁(天宮)에도 이를 수 있으며, 수미산(須彌山)을 사무쳐 통과해도 걸림이 없으며, 땅 속에 들어가도 흔적이 없고 땅 속에서 나와도 나온 구멍이 없으며, 공중에서 노닐되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며, 걷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며, 몸 위에서 불이 나오게도 하고 몸 아래에서 불이 나오게도 하며, 몸 위에서 물이 나오게도 하고 몸 아래에서 불이 나오게도 하며,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갖가지 광명과 5색의 광명을 나타나게 하여 해처럼 밝게 비추기도 하고 능히 한 몸을 변화하여 수 없이 많은 몸으로 만들기도 하며, 변화하여 소·말·용·코끼리·나귀·노새·낙타·범·이리·사자가 되기도 하는 등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생각만 하면 잠깐 사이에 널리 부처님 세계에 노닐다가 훌쩍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나니, 이는 신족(神足)의 경계를 통달한 변화이다.이 신족은 네 가지 선정으로 인하여 이룩한 것이요, 그 네 가지 선정은 부정관(不淨觀)과 수식관(數息觀)으로 인하여 이룩한 것이다.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오로(惡露)와 수식(數息)을 생각하고 관하여 선정을 사유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볍게 들어올리기를 배우고 익혀
저 바람처럼 걸림이 없네.
몸은 치솟아 범천까지 이르고
모든 하늘 궁전을 다 구경한다.
날아다니며 허공에 떠있기를
구름처럼 거침이 없으며
땅에 들어가기를 물에 들어가듯 하고
공중에 있기를 땅에 있는 것처럼 하네.
몸에서 저절로 나오는 불
마치 해의 광명과 같고
몸 아래에서 쏟아지는 그 물은
달에서 서리나 이슬이 내리듯 한다.
한결같이 정진하여 신족을 얻으면
자재하여 걸릴 것 없나니
범천도 멋대로 오르는데
어찌 더구나 다른 곳이겠는가.
다른 세계로 가려고 하면
가볍게 떠서 곧 이르나니
제석이 금강을 던지는 것처럼
갔다가 오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자유롭게 변화하여
수 없는 모양 나타내나니
제석이 오락하는 환술(幻術)처럼
신족의 즐거움도 또한 그러하다네.
부처님 경법인 감로의 연못을 노니는 것이
코끼리가 화천(華泉)에 들어간 듯하네.
나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그 뜻 모두 말하여
이 신족통 이룸을 읊어 칭송하고 찬탄하노라.
23. 수식품(數息品)
위신력(威神力)의 밝음 햇빛과도 같고
덕의 불꽃 우뚝하여 천제(天帝)보다 뛰어나시며
얼굴 모양 단정하여 보름달과 같으시고
온갖 어둠 없애시고 모든 번뇌 멸하셨네.
입으로 말씀하신 법 감로(甘露)와 같고
절묘한 말씀으로 십선(十善)을 칭송하셨네.
돈독히 믿어 함께 최존(最尊)께 귀의하옵고
비길 데 없으신 부처님께 조아리기 원합니다.
온갖 경전 채집하기를 바다에 들어간 듯
선정을 얻음으로 모든 번뇌 없앤다면
감히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없으리니
그러므로 가장 안온한 분께 머리 조아립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는 것을 번뇌를 없애고 제1선에 이른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을 세존의 제자라고 말하는가?'라고 해야 한다. 만일 수행하는 사람이 선정에 들 적에 번뇌가 있으면 마땅히 이런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제1선을 얻었으나 번뇌는 그대로 남아 있다. 번뇌를 그대로 간직한 채 제1선을 수행한다면, 범천에 태어나더라도 그 복이 얇을 것이고, 만일 그곳에서 수명을 다 마치면 마땅히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거나 또는 인간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런 무리들을 헤아려 보건대 비록 범천에 있더라도 이런 비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악한 세계나 범부의 부류를 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해탈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설령 처음 배우는 이가 번뇌 있는 선을 얻더라도
그런 수행은 마치 구멍 뚫려 새는 그릇과 같아서
비록 범천에 났다가도 장차 다시 되돌아가리니
마치 무늬 있는 옷이 비를 맞으면 퇴색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이렇다. 국왕에게 어떤 대신(大臣)이 있었는데, 그가 중한 죄를 범하였다. 그래서 왕은 우선 고문으로 치죄(治罪)하여 다섯 가지 독(毒)의 고통이 함께 이르도록 한 다음 곧 수갑을 채워 깊숙한 감옥에 가두고, 그에게는 다 떨어진 옷을 입히고 거친 밥을 먹일 것이며, 풀로 만든 자리로 침상을 만들어주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냄새나고 더러운 측간 옆에다 방을 만들어 주게 하였다.옥리는 분부를 받고 곧 왕의 명령을 따라 법대로 고문하여 치죄하려고 하였다.그런데 그 사람은 과거에 조그마한 공부(功夫)를 한 것이 있어서 왕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왕은 그 생각이 떠오르자 사람을 보내 옥리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을 놓아 보내서 넉 달 동안은 제 마음대로 자유롭게 즐기고 놀거나 권속들과 함께 지내게 하여 서로 위로하고 경하하도록 하였다가 넉 달이 지난 다음 다시 감옥에 가두도록 하라"고 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신하가 왕의 법을 범했지만
왕은 옛 은혜를 생각하고 석방하라고 하면서
하고픈 일 마음껏 하게 하고 즐기며 놀게 하였다가
그런 뒤에 다시 감옥에 가두라고 일렀네.
옥리는 왕의 분부를 받고 왕의 분부대로 거행하였다.
그 사람은 감옥에서 풀려나 목욕하고 의복을 차려 입은 다음 여러 친구들과 함께 나가 유람하면서 5욕(欲)5)을 마음대로 즐겼다.비록 그렇게 서로 즐기며 놀면서도 마음은 위축되어 생각하기를 '지금은 여러 친구들과 같이 나다니면서 5욕을 마음대로 즐기고 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일을 버리고 장차 감옥으로 다시 들어간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어 온종일[三時] 탄식하였다. "장차 다시 고문을 당하고 다 헤진 옷을 입어야 하며, 거친 밥을 먹고 풀 자리에 누워서 소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 머물게 될 터이니 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벼룩·이·모기·등에에게 물릴 것이고, 그 감옥 속은 여건이 나빠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있을 것이다. 밤에는 쥐가 찍찍거리면서 이리저리 치달리는가 하면 칠흑처럼 깜깜하며,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여 흐르는 피가 흘러 땅을 뒤덮었고 머리칼은 흐트러진 채 백 천 가지 고문을 당할 것이다. 혹은 귀를 베이기도 하고 혹은 코를 잘리기도 하며, 손과 발이 끊기기도 하리니 더럽고 깨끗지 못하여 마치 무덤 사이에 있는 것 같아 그 고통을 이루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서 그런 더러운 무리들과 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여름 넉 달이 다 지나가자 그 신하는 생각하기를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다가
여름날 도로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할 터이니
곤욕을 당하는 괴로움 한량없이 많으리.
5) 5욕(欲)은 보통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다섯 경계[五境]를 말한다.
장차 또 다시 죄인들이 구속당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모두 도 아닌 짓을 하였기 때문이다.음란한 짓을 하였고 도둑질도 하였으며, 남의 남녀를 남몰래 겁탈하고 강간하였으며, 남의 집과 모든 사람의 곡식 낟가리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으며, 남을 독해(毒害)하고 남을 업신여기고 거만한 짓 하기를 좋아하였으며, 혹은 남자나 여자를 죽이기도 하였고 또는 소를 훔쳐 도살하기도 하였으며, 모든 마을·현(縣)·읍(邑)과 성곽을 노략질하기도 하였고 국가를 해치려는 나쁜 생각을 품기도 하였던 자들이다.마땅히 다시 또 그들에게 다섯 가지 독(毒)을 가하고 매질하는 것을 보면, 팔·다리·귀·코가 피에 더럽혀지기도 하고, 혹은 머리가 찍히고 종창이 생기거나 터져서 고름과 피가 스며 나오기도 하며, 혹은 엄중한 고문을 당하고 신체에 종기가 나서 수 없이 많은 파리가 모두 몰려들어 몸에 달라붙어서 피곤하게 땅에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기러기나 돼지처럼 보이며, 혹 새로 감옥에 들어오는 이는 얼굴·눈·손·발이 다 문드러지고 상처가 난 채로 질겁하여 두근거리는 걱정을 조금도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감히 꼼짝하지도 못한다.혹은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고 얼굴빛이 더러워서 마치 아귀(餓鬼) 같기도 하며, 혹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까닭에 기운이 떨어지고 살이 퉁퉁 부었으며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손톱도 자라 길며, 혹은 그 속에 있으면서 감옥에서 나가기를 날마다 희망하기도 하며, 혹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 감옥 속에서 빠져나갈 기약이 없으니 더 이상 답답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포기하는 이도 있다.또 새로 들어오는 이들 중에 혹은 교살(絞殺)을 당하기도 하고, 혹은 고문을 당하기도 하며, 혹은 두들겨 맞기도 하고, 혹은 입으로 말을 받아서 하게도 하며, 혹은 몸뚱이를 묶인 이도 있고, 혹은 죽은 사람과 한자리에서 같이 있게 하기도 하며, 혹은 끌어내어 측간 위에 눕혀놓기도 하는가 하면 혹은 길거리에 데리고 나가 걸어다니게 하면서 큰 고문을 당하는 일을 보지 않게 하기도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악한 사람들 몹시도 많아
그 더러움 가증스럽고 혐오스럽다.
못난이들과 함께 있는 그 모습
비유하면 마치 도살장과 같다.
울부짖고 신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
마치 저 귀신의 집과 같네.
이에 그 대신은 걱정하고 근심하기를
어떻게 차마 다시 옥에 들어갈 것인가 했네.
이 모든 죄수들은 감옥 속에 있으면서 각기 국왕을 도둑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혹은 미곡(米穀)과 음식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며, 꽃·향(香)·기악·남녀의 일들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혹은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던 옛날 일들에 대해 말하기도 하며, 혹은 다른 나라를 습격했던 일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왕(王)이 쌓은 업적을 찬탄하기도 한다.혹은 국왕이 악하고 나라를 잘못 다스려 적군이 쳐들어와서 공격하는 바람에 이와 같이 나라를 잃었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혹은 왕이 죽으면 마땅히 새로운 왕이 등극하여 대사령(大赦令)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또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가 해산하면 감옥에서 나간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은 만일 성에 불이 나서 대부분 타게 되면 옥문이 열려 우리가 이곳을 나가게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함께 의논하기를 만일 상서롭고 괴상한 새나 까치가 날아와 옥문에 의지하거나 감옥의 담 위에 앉아 우는 것을 본다든지, 꿈속에서 당(堂)에 올라가거나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또는 용궁에 들어가거나 연꽃이 핀 못에 떨어지거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 보이면, 머지 않아 일체의 고통을 면하는 일을 스스로 보았다고 말하기도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왕의 법을 범한 이들은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권면(勸勉)하고 옹기종기 모여 기뻐하면서
감옥에서 벗어나게 될거라고 희망하지만
마치 저 소 떼가 골짜기에 떨어진 듯
액난에 떨어지는 것도 그와 같나니
그 때 대신은 생각하기를
이 복 없는 이들 몹시 불쌍하다 했네.
그 때 신하는 '내 어찌 다시 이 도적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자, 혹 옆에서 저희들끼리 서로 가르쳐주는 이가 있었다. "만일 감옥의 관리가 묻거든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시오. '지극히 모진 고문이라 하더라도 이칠일(二七日 : 14일)이 넘기 전에 몸이 바뀌어 익숙해질 것이니 그리 걱정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몸뚱이를 조각조각 쪼개고 칼이 머리 위에 있을지라도 함부로 내가 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지 말 것이며, 물건을 감추어놓은 집을 발설하지 말아야 하고, 혹시라도 사람을 끌어대어 아무개가 바로 우리의 잔당이라고 말하지 말고, 혹 유도하여 신문할지라도 또한 절대로 믿지 말 것이며, 옥졸(獄卒)이 그대를 두렵게 하더라도 삼가 굴복하지 말 것이며, 만일 고문을 당할지라도 절대로 겁내지 말라."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리 저리 서로들 권면(勸勉)하며
옥리에게 대응하는 방법을 가르쳤네.
옥리가 따져 묻는 그 말에
어떤 말로 대답할까 궁리했네.
대신은 권속들과 함께
다시 감옥의 온갖 고초를 생각하니
모든 5욕을 즐기면서도
마음속으로 근심 걱정했었네.
또 죄수들은 이렇게 서로 말하기도 한다. "너희들은 보지도 못했느냐? 남들은 부모·형제·친척·권속을 다 버리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저들의 본국을 멀리 떠나 멀리 떠나가서 가시덤불·대나무·나무숲·언덕·황량하고 험난한 벌판을 걸으면서 그들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 재물을 구하는데 우리는 수고를 겪지 않고도 보물을 얻었다.그런 까닭에 마땅히 이 고문을 참아내어 재물을 잃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다른 이의 재물을 도둑질하고 겁탈하여
얻은 물건들이 자기 것이 아니건만
목숨을 아껴 재물을 잃지 않으려고 생각하다가
곤액(困厄)을 만나게 되었네.
신하는 혼자 생각하였다. '내가 어찌 차마 옥졸이 앞에 나타나 호통치는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옥졸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직녀(織女) 세 별 중에 피란수(陂蘭宿)로서 태어나서 지옥왕에 소속되었다가 29일 밤중에 태어났다.너희들은 듣지 못하였느냐?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墮地]에 그 나라에는 여러 가지 환난이 있어 시끄럽고 편안하지 못하였으며, 온갖 괴변이 일어나 공중에서는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나고 땅이 진동하였으며, 동쪽과 서쪽에서 붉은 기운이 보이더니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독수리·까마귀·까치·여우·이리·들짐승·올빼미 따위가 무덤 사이에 나타나 사람의 고기를 날 것으로 먹었다.
또한 모든 귀신·도깨비·구환(鳩桓)·측간 귀신·반족(反足)·여신(女神) 등이 함께 기뻐하면서 나에게 '이 옥졸이 태어난 것은 정녕 우리들을 위해서이다. 가령 어른이 되어 남자와 여자를 많이 죽여 감옥 무덤 사이에 내다 버린다면, 우리가 마땅히 죽은 사람의 피·살·지방·뇌수를 얻어 음식으로 삼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그대를 보호하여 목숨을 부지하여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나는 처음 태어났을 때에 이런 구원을 받았던 까닭에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애로움이 없고 말이 강하고 급하며
그 사람은 이유 없이 원한을 품는다.
옥졸의 말을 생각한 그 신하는 마음이 슬퍼
비록 유쾌하게 오락을 하면서도 이를 걱정하네.
옥졸이 또 중얼거렸다. "나는 맨주먹으로도 치지 못할 것이 없어 나와 짝이 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어찌 나를 이기겠느냐? 나는 태어나기 전후(前後)에 맨주먹으로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죽였고, 또한 손·발·귀·코·머리를 끊었으며, 칼을 쓰지 않고 맨손으로 눈알을 뽑았으며, 모든 죄수들을 세워놓고 주먹으로 쥐어박았으며, 머리에 더러운 창애[강弶]를 씌우고 대나무 테를 메워 형틀에 올려놓고 5독으로 다스렸다.또한 베[布]로 그의 손가락을 묶어놓고 기름을 발라 불로 태웠고, 기름을 머리카락에 붓고 불을 놓아 태웠으며, 풀로 그의 몸뚱이를 둘러싸 놓고 불로 태웠고, 몸뚱이를 점점이 도려내면서 묻는 말에 대답하게 하였으며, 입을 찢고 입술을 끊고 얼굴 가죽을 벗겼고, 입으로 그의 손가락을 씹었는데, 마치 채소를 씹듯이 하였으며, 만일 사람을 때릴 적에는 대나무 막대나 가죽 채찍을 사용하였고, 옥졸은 좋아 날뛰면서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으며, 노끈으로 옆구리와 배를 졸라매고 머리는 나무 기둥에 동여매었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신하가 즐거워하지 않고 다시 옥에 갈 것을 두려워함은
그와 같은 고문이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옥졸이 자주 와서 형벌과 죄를 말해주었으니
이런 걱정이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였네.
옥졸은 또 중얼거렸다. "나는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도 없고 유람을 다니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며, 노래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령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북을 쳐서 군사들로 포위하게 하여 시가지로 끌고 나가서 내가 다 목을 베는데, 아무리 용맹이 있는 군대의 장수나 부호 귀족의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무엇이든 마구 부수는 코끼리 어금니 같은 나의 맨주먹을 무서워하며, 굳세고 억센 역적이 착한 사람을 업신여기며 거만하게 굴면 내가 모두 목을 매는데, 부모·형제·친척 권속들이 울부짖으면서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애걸해도 나는 들어주지 않으며, 또 어떤 자식의 아비가 고함을 지르면서 날뛰되 마치 호랑이처럼 행동하기에 내가 굴복시켜 찍소리도 못하게 하였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신하는 여러 친구와 오락을 하면서도
옥졸이 말한 죄의 형벌을 생각하니
마치 사람이 순박하고 좋은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지껄이고 또한 날뛰는 것과 같았네.
옥졸은 또 중얼거렸다.
"나에게는 악한 기운이 있어 눈에서 독을 방출한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쳐다보면 그 사람의 가슴이 찢어지고 머리가 쪼개지는데, 마치 얼음이 부서지는 것과 같으므로 남자든 여자든 간에 나를 보고 두려움을 품지 않는 사람이 없다."옥졸이 비록 사람의 형상을 하고는 있으나, 귀신이나 도깨비가 하는 짓을 하며 옥문에서 이렇게 중얼거린 다음 사라져 가버렸다.그는 다시 온갖 고통을 당할 때가 다가오자, 비록 궁전(宮殿)에 앉아서 5욕을 즐기고는 있지만, 어찌 즐거울 리가 있겠는가?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와 같은 고뇌는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울 뿐이니
누가 마땅히 기뻐하면서
걱정 없이 안온하겠는가?
마치 죽음에 임박한 죄수가
꽃을 구하여 머리 위에 꽂은 것 같아
왕으로부터 휴가를 얻기는 했지만
마땅히 다시 돌아가 형벌을 받게 되었다.
수행하는 사람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범천(梵天)에서 환생하면 마땅히 악한 세계로 돌아가서 포태(胞胎)에 들어 숙장(熟臟) 위와 생장(生臟) 아래 그 사이에 있으면서 더러운 때에 부정(不淨)해지게 되고 5계(繫)에 속박될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유루(有漏)의 선(禪)을 얻는다면
이를 얻으면 꼭 반절을 얻는 셈이라서
범천에 태어나 거기에 있기는 하지만
오래도록 항상 편안할 수만은 없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목숨이 다해 악한 세계에 돌아가는 것이
마치 사람이 임시로 출옥을 하였다가
기한이 되면 도로 고문을 받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린아이가 참새 한 마리를 잡아서 괴롭히기 위하여 길다란 실로 발을 매어놓고 날아가게 한다면 저 혼자의 힘으로 벗어나서 다시는 곤액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아, 과일 나무나 맑고 시원한 못에 나아가 먹이를 멋대로 먹고 편안하여 걱정이 없었으면 하지만 실이 다 풀려 다시 잡아당기게 되면 되돌아와 잡혀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먼저와 다름없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을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비록 범천에 이른다 해도 장차 욕계(欲界)로 돌아와 고달프고 괴로운 것이 이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끈으로 참새의 발을 매어놓으면
날아가다가도 실이 다 풀려 잡아당기면 도로 돌아오듯이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범천에 올랐다가도
다시 욕계로 돌아와 괴로움을 여의지 못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내 몸으로 만약 무루선(無漏禪)6)을 얻는다면 곧 괴롭고 두려운 길을 벗어날 것이요, 불자(佛子)라고 이름할 것이니, 음식에 대하여 어리석고 망령되지
6) 무루(無漏)의 초선(初禪)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얻어야 비로소 진정한 부처님 제자라 할 수 있다.
않을 것이며, 우물쭈물하는 망설임에서 벗어나서 바른 도를 닦아 제1선을 얻고, 경(經)에 의지하여 바른 견해의 진리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제1선을 얻어서
번뇌 없고 널리 수행했다 해도
나고 죽음[終始]을 해탈하기란 어려운 것이니
마땅히 정진하여야 도를 얻으리라.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온갖 좋고 나쁜 것을 관찰하여 비로소 제1선을 얻었지만, 본래 뼈사슬[骨鎖]을 좇아서 얻은 것일 뿐이다. 그 형상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공(空)한 것이고 나라는 것이 없는[非身] 것으로서 네 가지 것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저 제1선은 몸으로 인하여 이루었으므로
4대(大)를 해탈해야 한결같은 마음의 행(行) 이루리.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한 것이니 나라는 것 해탈해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며 항상 정진해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늘 쓰고 있고 관찰하고 있는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 마음의 근본도 또한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공한 것이고 나라는 것 없는 것이며, 네 가지 것으로 인하여 생성된 것이므로 모두 인연을 따라서 서로서로 바꾸어가며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재앙과 복을 말미암아 심상(心想)이 거기에 의지하는 것처럼 형상도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하고 내가 아닌 데로 돌아가는 네 가지 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받은 이 5음(陰)의 몸뚱이도 공하여 없는 것인 것처럼 12인연의 법이 과거·미래·현재에 이어지는 것도 이와 같다.욕계(欲界)의 모든 음(陰)과 색계(色界)의 음과 무색계(無色界)의 음도 이와 같아서 죄다 나약한 것이다.삼계가 공(空)하다는 것을 깨닫고 보면, 그 근본이 깊고 사악하여 바른 것이 없고 진동하고 타오르는 것뿐이다. 음(陰)이 없다고 보는 이는 모두가 고요하고 뜻이 편안하여 무위(無爲)로 나아가고, 다른 생각이 없어져 니원(泥洹 : 涅槃)에 이르게 된다.그 때 마음의 행(行)이 온화하고 유순하며 억지로 하는 수행이 아니면, 여기에서 진실한 진리를 보아 곧 아나함(阿那含)을 이룩할 것이요, 다시는 물러가지 않을 것이며, 구경(究竟)에는 욕계의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음속 생각이 다 온화·유순하고
뜻이 의지하는 바 그 몸을 인연하여
5음의 과거·미래·현재의 근본을 깨우쳐
모두 공하여 없는 것임을 알면 성현이라 하리라.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 몸은 오랜 세월 동안 5음(陰)에 가려서 냄새나는 곳에서 깨끗하지 못하게 침해당하고 속아왔다.'비유하면 짓궂은 깡패 아이들이 병(甁)을 꾸며 그 속에다 부정한 것을 담고 병마개를 막는 다음 위는 꽃으로 장식하고 향(香)을 뿌려 향내가 나게 하여 어떤 농사꾼의 아들에게 준 것과 같다.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병을 아무 공원으로 가지고 가거라. 그 병 속에는 석밀(石蜜)과 맛좋은 술을 담아 놓았으니 잘 가지고 가서 우리를 기다려라. 우리는 각기 집으로 돌아가서 공양거리를 준비하여 같이 먹도록 할 터이니, 단단히 지녀 실수하지 말라. 네가 수고한 대가는 보상해주겠다."
농사꾼의 아들은 그 말을 굳게 믿어 병을 안고 기뻐하면서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기를 '이제는 분명히 마음대로 먹고 즐길 수 있겠구나'라고 하면서 그 공원에 이르러 파리가 그 위에 얼씬도 못하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기다린 지 몇 시간이 흘러 한낮이 지나자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저들이 오지 않자 근심이 되어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이윽고 해가 저물어지자 나무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았으나 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그 병을 지키면서 여러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그만 날이 저물고 말았다.그는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기를 '성문도 닫혔고 그 사람들도 오지 않을 모양이니 이제 이 석밀과 맛좋은 술, 그리고 이 병은 이미 내 것이나 진배없다. 마땅히 팔아버리면 내가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우선 맛이나 한 번 보아야겠다'라고 하면서, 손을 깨끗이 씻고 병마개를 열고 보니 병 속에는 모두 더러운 것만 담겨져 있었다.그제야 여러 짓궂은 깡패 아이들이 자기를 침해하고 속였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이미 거룩한 진리를 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스스로 오래 전부터 이 5음에 침해를 당하고 속고 있었음을 깨우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생사에 얽매인 여러 중생들
5음에 침해당하고 속아서
7) 늘 괴로움과 즐거움을 번갈아 겪으면서
나[我]니 남이니 수(壽) 등이 있다고 억측하지만
수행하고 나서야 다섯 가지 쾌락에 속아
7)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기(期)'자로 되어 있으나, 앞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기(欺)'자의 잘못된 표기로 보여 고쳐 해석하였다.
제 자신이 침해당한 줄 아나니
마치 어떤 이가 꾸민 병을 차지하고 있다가
열어 보고 나서야 더러운 것이었음을 안 것 같네.
비유하면 재산과 보물이 아주 풍부하게 많은 어떤 길잡이[導師]의 아들과 같다. 그는 부인을 맞이했는데, 그녀는 단정하고 아름다워 흡족하지 않은 데가 하나도 없었다.그는 매우 중히 여기고 사랑하여 그 부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잠깐동안이라도 서로 떨어져 있게 되면 스스로 죽을 것만 같이 여겼다.그 때 그 나라에는 길이 막혀 거의 12년 동안 오가는 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그 후에 많은 장사꾼들이 먼 지방으로부터 몰려들어 이웃 나라에 머물고 있으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길잡이가 아들에게 일렀다. "너는 저곳에 가서 물건을 사 가지고 오너라."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근심되고 언짢은 것이 마치 심장에 화살을 맞은 것 같았다. 그는 친한 친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지금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멀리 떠나 장사를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마침 이 분부를 듣고 나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네. 지금 나는 마땅히 스스로 물에 빠지든지 높은 산에 올라서 스스로 깊은 골짜기에 떨어져 죽어야 하겠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이 젊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애욕이 몹시도 왕성한데
아버지 명령을 생각하고는
마음속으로 큰 걱정 품었네.
그 마음 괴로워 죽으려고 하면서
어떻게 사랑하는 아내를 떠날까 하네.
그 아들의 몹시도 고통스러운 마음
저 산(山) 코끼리를 잡아맨 듯했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그에게 말했다. "아들을 낳은 것은 가문을 맡기려는 것이다. 사방으로 나다니면서 재물을 구해 어버이를 공양해야 한다. 만약 수고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생활해 나갈 수 있겠는가? 천상 세계에 산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편안치 못할 터인데 더구나 인간 세계이겠는가?" 그러자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고 여러 사람들의 간청을 받아 곧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행장을 차려 가지고 길을 떠났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친구와 아는 이들의 간청을 받고
아버지 명령을 받들어 행장 차려 떠나지만
남편은 애욕 때문에 마음 아파 마치 화살을 맞은 듯
마음속으로 아내 생각하니 몹시 섭섭하였네.
그는 마음으로 늘 아내를 생각하다 도저히 마음속으로 잊을 수 없자, 재빨리 물건을 사 가지고 곧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금까지의 날짜를 따져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기뻐하였다.그는 아침·저녁으로 아내를 생각한 나머지 마침 집에 이르자 제일 먼저 아내의 거처부터 물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장사를 하여 생활하려고 가고 오면서도
늘 마음속으로 소중한 아내 생각하였네.
이미 집에 도착하자 먼저 묻기를
지금 나의 아내 어디 있느냐고 했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근심을 품었는데 전생에 지은 복이 희박한 탓인지, 점차 중한 병을 얻어 목숨이 경각[呼吸]에 달려 있었다.몸에는 온갖 종기가 나서 피와 고름이 흘러나오며, 한열병(寒熱病)이 들고 게다가 문둥병까지 걸렸으며, 헛배가 불러오고 입이 마르며, 상기(上氣)가 되어 온 몸에 열이 나고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었다. 수없이 많은 파리 떼가 몰려와서 그의 몸에 붙으며,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바짝 마른 아내의 모습이 마치 아귀와 같았다. 풀방석에 누워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다 헤졌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남편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사랑했건만
전생에 지은 재앙으로 복이 희박하여
수없이 많은 병을 얻어 침상 위에 누웠고
좋은 자리 떠나서 땅바닥에 나뒹구네.
이에 그의 남편은 집에 들어와 다시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내가 있는 곳을 물었다.종은 부끄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보고하였다. "어진 낭군님, 부인께서는 아무 누각 위에 계십니다."그는 즉시 누각에 올라가 그녀를 보니 일찍이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추악하기 그지없는 그 얼굴을 가히 눈으로 볼 수 없어 모든 애욕과 감정이 영원히 사라져 남음이 없고 실오라기와 털끝 만큼의 즐거움도 없이 아예 싫어져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안색을 살펴보고 탐나고 즐겁지 않음이
마치 무덤에 버려진 죽은 시체 같았네.
바짝 말라 뼈만 앙상하고 살은 한 점도 없어
저 물에 빠진 모래처럼 빛을 잃었네.
수행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이 해야 한다. 애욕을 싫어하고 오로관(汙露觀)법을 일으켜 적정(寂靜)을 구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애욕을 여의고
다섯 가지 욕락 싫어하기를 이와 같이 해야 하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병으로 종기가 나고
숱한 질병으로 침상 위에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듯 해야 한다.
어떤 것을 수식수의법(數息守意法)8)을 닦아 적연(寂然)함을 구한다고 하는가?지금 마땅히 수식법(數息法)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어떤 것을 수식(數息)하는 것이라 하고 어떤 것을 안(安)이라 하며, 어떤 것을 반(般)이라 하는가? 내쉬는 숨[出息]을 안이라 하고 들이쉬는 숨[入息]을 반이라 한다. 숨이 나고 드는 것을 따라 다른 생각을 없애는 것을 곧 나고 드는 숨을 헤아리는 것[數息出入]이라고 한다.어떤 것을 수식수의법을 닦아 능히 적연함을 이룬다고 하는가?수식수의법(數息守意法)은 네 가지 일이 있어, 두 가지 티[瑕穢]를 없애, 열 여섯 가지의 특별하고 뛰어남[特勝]이 있는 법을 행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8) n p nasati 즉 안반념(安般念)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안반(安般)은 수식(數息)에 해당하고, 수의(守意)는 염(念)에 해당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적연함을 구하려고 하면
안(安)과 반(般)인 나고 드는 숨을 알아
두 가지 더러움을 없애는 네 가지 일을 깨우치며
특별하게 뛰어난 열 여섯 변화[變]가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을 네 가지 일[四事]9)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숨을 헤아리는 것[數息]을 말하고, 둘째는 서로 따르게[相隨] 하는 것을 말하며, 셋째는 지(止)와 관(觀)을 말하고, 넷째는 환(還)과 정(淨)을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땅히 숨을 헤아리는 것과 서로 따르게 하는 것과
세간의 온갖 사물을 관찰하는 것과
환법·정법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 마음 제어할 것이니
마땅히 이 네 가지로 뜻을 안정시켜야 한다.
어떤 것을 두 가지 티라고 하는가? 숨을 헤아리는 데 혹 길게 하거나 혹 짧게 하면10), 이것을 두 가지 티라고 하나니, 이 두 가지 일을 버려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9) 네 가지 일에 대해서는 경(經)마다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안세고(安世高) 한역의『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상권 본문에서는 첫째 숨을 헤아리는 것, 둘째 서로 따르게 하는 것, 셋째 지(止), 넷째 관(觀) 등으로 분류하었여 『수행도지경』본문의 세 번째까지의 내용을 네 가지로 나누었고,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의『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에서는 본문의 내용을 첫째 헤아림[數], 둘째 따름[隨], 셋째 지(止), 넷째 관(觀), 다섯 째 굴려 봄[轉觀:還], 여섯째 청정(淸淨:淨) 등 여섯 가지로 늘여 분류하고 있다.10) 숨을 열까지 세는 데 있어 숨이 이미 다했는데도 헤아리지 않는 것을 곧 숨을 넘기는 것으로서, 길게 헤아리는 것이라 하고, 숨이 다하지 않았는데 바로 헤아리는 것을 곧 숨을 감하는 것이요 숨을 놓친 것으로서, 짧게 헤아리는 것이라 한다.
숨을 헤아리는 데 가령 길거나 짧으면
뒤바뀌어 차례가 없어지나니
이 안반수의(安般守意)로
두 가지 티를 없애야 한다.
어떤 것을 열여섯 가지 특별하게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가?헤아리는 숨이 길면 곧 그것을 알고 숨이 짧으면 또한 그것을 알며, 숨이 몸을 움직이면 그것을 알고 숨이 온화하게 풀리면 그것을 알며, 희열(喜悅)11)을 경험하면 그것을 알고 편안함12)을 만나면 곧 그것을 알며, 마음이 나아가면13) 곧 그것을 알고 마음이 유순(柔順)해지면 곧 그것을 알며, 마음이 깨달으면 곧 그것을 알고 마음이 즐거우면 곧 그것을 알며, 마음이 조복되면 M NUM='14) 곧 그것을 알고 마음이 해탈하면15) 곧 그것을 알며, 무상(無常)함을 보면16) 곧 그것을 알고 만일 욕망이 없으면 곧 그것을 알며, 적연함을 관찰하면 곧 그것을 알고 도의 나아갈 바[道趣]를 보면 곧 그것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숨을 헤아리는 데 열여섯 가지 특별하게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특별하게 숨을 헤아리는 데 길고 그 짧음을 알고
능히 숨을 헤아릴 적에 몸의 움직임을 깨달으며,
그 행이 온화하게 풀리면 몸을 안정케 하며
11) 희열은 낮은 단계의 두 선정(禪定)에 들어섰을 때 경험되고, 그 각각의 선정에서 나올 때 선정에 수반되는 희열이 사라지는 것이 통찰된다.
12) 편안함이나 행복감은 낮은 단계의 세 가지 선정에 들어섰을 때 체험되고, 그 각각의 선정에서 나올 때 선정에 수반되는 편안함이나 행복감이 사라지는 것이 통찰된다.
13) 감수(感受)와 지각[想]을 의미한다.
14) 마음이 집중된 상태를 관찰함을 말함.
15) 첫 번째 선정에서 장애(障碍)로부터 마음이 벗어나 해탈하게 되고 두 번째 선정에서 사유(思惟)와 숙고(熟考)로부터 마음이 벗어나 해탈하게 되고 세 번째의 선정에서는 희열로부터 마음이 벗어나 해탈되고 네 번째 선정에서는 고락(苦樂)으로부터 마음이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
16) 무상한 것이란 생겨나고 사라지고 달라지는 5온(蘊)을 말함
희열 등 이와 같은 감촉을 느낀다.
편안함을 깨우침이 여섯째가 되고
뜻의 행(行)함을 일곱째라 하며,
마음으로 하여금 화해하게 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을 여덟째라 한다.
그 뜻이 깨달아 알고
이로 인해 마음이 즐거우며,
마음을 조복하여 안정되게 하고
자재하여 행을 따르게 한다.
무상함과 모든 욕망과 적멸함 등
이 세 가지를 관찰하며,
행하여 나아갈 바를 아는 것을
곧 열여섯 가지 특별하고 뛰어난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수식(數息)이라고 하는가?만일 수행하는 사람이 한가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 뜻을 잡아 어수선하지 않게 한 다음 나고 드는 숨을 헤아려 열 번까지 이르게 한다.하나에서부터 둘까지 이르다가 만일 마음이 어수선해지면 마땅히 다시 하나·둘로부터 헤아려 아홉까지 이르게 해야 한다.가령 마음이 어수선해지면 마땅히 숨을 다시 헤아려야 하나니, 이것을 수식이라고 말한다.수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밤낮으로 한 달이든지 1년이든지 숨 헤아리기를 익혀 열 번째 숨까지 이를 때까지 마음이 어수선하지 않게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숨 쉼에 움직이지 않음 저 산과 같아
나고 드는 숨을 헤아려 열까지 이를 것이니
낮과 밤, 한 달, 한 해를 게을리 하지 말고
이렇게 수행하여 숨 헤아리기를 지켜야 한다.
숨을 헤아려 이미 안정되었으면
마땅히 서로 따르게 하는[相隨] 수행을 해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앞에서 걸어가면
그림자가 뒤따르듯이 수행도 그와 같이 하여
숨이 나고 드는 것을 따라 다른 생각이 없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숨을 헤아려 뜻이 안정되면 자재를 얻나니
들고 나는 숨을 헤아리는 것이 수행이 된다.
그 마음 서로 따르면 어수선하지 않나니
숨을 헤아려 마음을 조복하는 것을 서로 따른다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미 서로 따르게 할 수 있게 되었으면, 그 때는 마땅히 마치 소치는 이가 한쪽에 멈춰 있으면서 저 멀리 소가 먹이 먹는 것만 보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이 하여 처음 숨을 헤아릴 때부터 다음 구경(究竟)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다 관찰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소치는 이가 저 멀리 멈춰 있으면서
늪 위에 있는 소 떼를 관찰하는 것처럼
숨을 헤아려 다스리는 것도 또한 그렇게 하고
수의(守意)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을 관(觀)이라고 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미 관법을 이루었으면 마땅히 다시 환(還)과 정(淨)을 행할 것이니, 마치 문지기가 문 위에 앉아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을 관찰해 모두 아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그와 같이 하여 마음을 코끝에 매어두고 숨을 헤아리는 것을 관찰해 그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알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문을 지키는 이가 앉아서
드나드는 사람을 관찰할 적에
한곳에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고
사람 숫자를 모두 살펴 아는 것처럼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숨을 헤아려
나고 드는 숨을 보아야 할 것이니
수행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한다면
숨을 헤아려 환과 정을 이루리라.
어떤 것을 과하게[長] 헤아린다고 하는가? 마침 숨이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헤아리는 것이니, 숨이 코에 이르기도 전에 둘이라고 헤아리는 것을 곧 과하게 헤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숨이 아직 이르지 앉았는데
나고 들어오는 숨을 헤아리면서
하나를 셀 차례에 둘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이 하면 세는 법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것을 미급하게[短] 헤아린다고 하는가? 두 번째의 숨을 하나라고 헤아리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숨이 코에 이르렀다가
다시 배꼽에 이르렀는데
두 번째 숨을 하나라고 헤아린다면
이는 곧 헤아리는 법을 잘못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숨을 헤아릴 적에 긴 것을 안다고 하는가?수행하는 사람이 처음 숨을 헤아릴 때부터 숨이 더디고 빠름을 따라 관찰하여 그 갈래를 보아 헤아리고, 나고 드는 한도(限度)를 알아야 하나니, 이것이 헤아리는 숨이 긴 것을 아는 것이다. 헤아리는 숨이 짧은 것을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숨을 헤아릴 적에 긴 것을 알며
돌이키는 숨도 이와 같이 하나니
가령 이와 같이 살피고 관찰한다면
이것을 숨의 길고 짧음을 안다고 말한다.
어떤 것을 헤아리는 숨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안다고 하는가?몸 가운데 모든 헐떡거리는 숨[喘息]을 죄다 관찰하는 것이다.17) 들이쉬는 숨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몸이 온화하게 풀리는 것을 안다고 하는가? 처음 숨을 일으킬 때에 만일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의 번뇌[睡蓋]가 생겨 몸이 무거워지면, 곧 그것을 제거해버린 다음 한결같은 마음으로 숨을 헤아리는 것이다. 돌이키는 숨을 헤아리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희열을 경험하는 것을 안다고 하는가? 숨을 헤아릴 때에 기쁨에 이르는 것이다.18)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1
7) 호흡이 나오는 것은 발로부터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여러 털구멍에 두루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한다.
18) 들고 나는 숨을 헤아리고 이를 관찰하면서 기쁨이 증가하는데 이것을 즐거움이라 한다. 또 처음의 마음 속에서 기쁨을 내는 것을 희열이라고 하고, 뒤의 몸에 가득한 기쁨을 즐거움이라고 한다. 다시 초선(初禪)과 제2선(禪) 속의 즐거움과 고통을 희열이라고 하고, 제3선 속의 즐거움과 고통을 즐거움을 받는 것[受樂]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편안함을 만났는지를 안다고 하는가? 처음 숨을 헤아릴 때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마음이 나아가는 데를 안다고 하는가?숨을 헤아리는 생각을 일으킬 때에 모든 생각을 관찰하는 것19)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마음의 유순함을 안다고 하는가?처음 숨을 일으킬 때 생각을 분별하면서 생각이 헤아리는 숨을 따르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마음이 깨달아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가?처음 숨을 일으킬 때에 모든 관법(觀法)을 식별하면서 숨을 헤아리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어떤 것을 숨을 헤아릴 때에 즐거움을 안다고 하는가? 처음 숨을 헤아릴 때에 만일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기쁘게 하기를 힘써 내쉬는 숨을 순조롭게 하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내쉴 적에 마음이 조복되었음을 안다고 하는가?가령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으면 강제로 조복하여 고요해지게 한 다음 숨을 헤아리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마음이 해탈하였음을 안다고 하는가?만일 숨을 내쉴 적에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으면 강제로 조복시켜 터득하게 한 다음에 내쉬는 숨을 헤아리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무상(無常)함을 관찰해 안다고 하는가?모든 헐떡거리는 숨이 다 무상한 것임을 보아 내쉬는 숨을 헤아리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
19) 여러 가지 마음의 생멸법(生滅法)·마음의 염법(染法)·마음의 불염법(不染法)·마음의 산법(散法)·마음의 섭법(攝法)·마음의 정법(正法)·마음의 사법(邪法) 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마음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숨을 내쉴 적에 욕망이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숨이 일어나고 멸함을 보아 이와 같이 욕망을 여의는 것이니, 이것은 곧 욕망의 여읨을 내쉬는 숨에서 보아 아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적멸(寂滅)함을 관찰해 안다고 하는가?숨을 내쉴 때에 멸하여 다하였음을 보는 것이니, 이것은 내쉬는 숨에서 적멸을 보아 아는 것이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이 한다.어떤 것을 숨을 헤아림에 도의 나아갈 바를 보아 스스로 안다고 하는가? 숨이 나와 멸하는 곳을 보는 것이니, 그런 뒤에야 마음이 곧 번뇌를 여의게 된다.번뇌를 여의어 욕망을 없애고 3처(處 : 界)를 버리면 뜻이 곧 해탈하나니, 이 뜻을 잘 보호하여 가지면 이것이 숨을 헤아리는 것이 된다.이것이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에 대한 열여섯 가지 특별하게 뛰어난 것이다.수행하는 이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관찰하는 이유는 고요해지기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안정되게 머무르게 되며, 그 적연(寂然)함을 좇아서 두 가지 일을 얻게 된다. 첫째는 범부요, 둘째는 부처님의 제자이다.어떤 것을 범부가 적연함을 구하는 것인가? 마음을 멈추게 하여 5음(陰)의 번뇌[蓋]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모든 번뇌의 환난을 제거하려고 하는가? 제1선정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무슨 까닭에 제1선정을 구하려고 하는가? 다섯 가지 신통(神通)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어떤 것을 부처님의 제자가 적연(寂然)함을 구하는 것인가? 구하는 까닭은 온화(溫和)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무슨 까닭에 온화함을 구하는가? 정법(頂法)을 이룩하려고 하는 것이다. 5음은 공(空)한 것이어서 다 내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을 바로 정법이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에 정법을 구하는 것인가? 네 가지 진리를 보아 법인(法忍)에 따라 향하려는 것이다.무슨 까닭에 법인을 구하는 것인가? 세간의 최상법(最上法)을 구하기 위해서이다.무슨 까닭에 세간의 최상법을 구하는 것인가? 모든 법이 다 괴로움[苦]뿐임을 알아서 37도품(道品)20)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다.무슨 까닭에 모든 법이 괴로움뿐임을 알려고 하는가? 제8처(處 : 地)21)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무슨 까닭에 제8지(地)에 뜻을 두려고 하는가? 그 사람은 도적(道跡)22)을 이루기 위함이다.어떤 것을 범부가 숨을 헤아리는 인연으로 적연(寂然)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가? 마음을 숨을 헤아리는 데 두었으므로 한 생각이라도 혼란하지 않고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저 숨을 헤아림을 좇아 적연한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방편으로부터 5음(陰)의 번뇌[蓋]23)를 모두 소멸하여 없애게 된다.그 때는 그 호흡이 설령 나고 들지라도 항상 마음으로 하여금 그 생각을 다 반연하게 된다. 들이쉬는 숨도 이와 같다.만일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나아가는 바를 관찰하면, 이것을 행(行)이라고
20) 37조도품(助道品)과 같은 의미임. 도품은 산스크리뜨어 bodhip k ika의 한역으로서, 보리분(菩提分)·각지(覺支) 등으로도 한역함. 보리(菩提) 즉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한 실천 수행의 방법을 말함.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실천수행 방법을 서른 일곱 가지로 정리한 것으로 그 내용은 4념처(念處)·4정근(正勤)·4신족(神足,如意足)·5근(根)·5력(力)·7각지(覺支)·8정도(正道)로 구성되어 있다.
21) 10지(地)의 여덟 번째로 부동지(不動地)를 가리킴. 이를 혹 예류향(預流向) 즉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22) 수다원(須陀洹)을 가리킨다.
23) 마음을 덮는 다섯 종류의 번뇌. 탐욕(貪欲)·분노[瞋恚]·수면[睡眠]·들뜸[掉悔]·의심[悔]의 다섯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덮어 선(善)이 생기지 못하게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고 마음속이 기쁜 것을 곧 흔열(忻悅)이라고 말하며, 뜻에 맞는 것을 곧 편안함이라고 말하고, 마음의 높기가 제일이어서 자재(自在)하게 되면 이것을 안정된 뜻이라고 말하며, 비로소 5개(蓋)를 제거하면 마음속이 따라 해탈하고 이로부터 집착을 여의게 된다.어떤 것을 집착을 여의었다고 하는가? 온갖 생각과 애욕과 착하지 못한 법 행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기쁘고 편안하며, 마음에 한결같은 안정을 얻으면 다섯 가지 번뇌[品]가 끊어지고 다섯 가지 덕(品 : 德)을 구족하게 된다.숨을 헤아리는 법으로 인하여 다섯 가지 덕(德)을 이룩하여 제1선(禪)을 얻게 된다.이미 제1선을 얻은 다음에 자꾸 익히고 행하여 버리지 않으면, 제1선이 안온하고 견고하여 동요하지 않게 된다.신통을 구하려고 하면 신족(神足)에 뜻을 두어야 할 것이니, 천안(天眼)으로 환하게 통해 보고 천이(天耳)로 환하게 통해 들으며, 어디로부터 와서 태어났는지를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며, 제 마음대로 자재(自在)하게 된다.비유하면 연금술사가 자마금(紫磨金)을 가져다가 자유자재로 영락(瓔珞)·반지·팔찌·보요(步瑤) 같은 것을 제 마음대로 만드는 것처럼, 이미 네 가지 선정을 얻고 나면 자재한 것이 이와 같나니, 이것을 다섯 가지 신통이라고 한다.어떤 것을 부처님의 제자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헤아려 적연한 경지를 얻는 것이라고 하는가?수행하는 사람이 고요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서 마음을 거두어 흩어지지 않게 하고 입을 다문 채 정진에만 오로지 하여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관찰하되 숨이 코에서부터 점점 바뀌어가면서 나아가 목구멍에 이르렀다가 마침내는 배꼽에까지 이르게 하고, 다시 배꼽에서 도로 코로 나오게 한다. 그 때 마땅히 내쉬는 숨이 다르고 들이쉬는 숨이 같지 않음을 살피고 관하여 뜻으로 숨을 따르게 하며, 내쉬고 들이쉼을 순조롭게 하여 마음이 혼란하지 않게 해야 한다.이렇게 숨을 헤아림으로 인하여 뜻이 안정되어 적정해질 수 있고, 그 중간에 다른 생각을 영원히 없애고 오직 부처님과 법과 성중(聖衆)의 덕만 생각하며, 괴로움[苦]·괴로움의 발생원인[習 : 集]·괴로움의 소멸[盡 :滅]·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 이 네 가지 진리의 이치만을 생각하므로 곧 흔열(忻悅)을 얻게 되나니, 이것을 온화(溫和)라고 말한다.비유하면 사람이 불을 불면 뜨거운 기운이 얼굴을 향해 오는데, 그 불길이 얼굴에 닿는 것은 아니고 다만 뜨거운 기운만 미칠 뿐이다. 그러나 불의 뜨거운 기운을 입으로 불어서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온화해지는 이치도 이와 같은 것이다.어떤 것을 온난법(溫暖法)이라고 하는가?쉽사리 구족(具足)하지 못할 선본(善本)이 아홉 가지가 있다. 즉 미유화(微柔和)·하유화(下柔和)·승유화(勝柔和)가 있고, 중하(中下)의 유화·중중(中中)의 유화·승중(勝中)의 유화가 있으며, 상유화(上柔和)·중상(中上)의 유화·상상(上上)의 유화가 있다.저 미유화와 하유화를 아는 것을 곧 온화(溫和)한 선본(善本)이라고 말하고, 중하·중중·중상의 유화를 곧 법정(法頂)의 선본이라고 말하며, 하상·중상·상상의 유화를 바로 진리의 유화법인(柔和法忍)이라고 말한다. 상중(上中)의 상유화(上柔和)를 곧 세간에서의 거룩한 법이라고 말한다. 이 아홉 가지 일이 선본의 이치이다.그러므로 세속의 일과 모든 번뇌가 다하지 못한 수행자가 만일 온화한 행(行)을 얻어 숨을 헤아리는 생각을 지킨다면 이로 인하여 생각이 한결같게 된다.만일 숨을 돌이킬 때라면 뜻이 그 숨을 따라 다른 생각이 없고, 만일 숨을 내쉴 때라면 숨이 나가고 돌아옴을 알아 마음이 부처님·법·거룩한 대중과 괴로움·괴로움의 발생·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들어가 마음이 온화한데 있어서 그 마음이 더욱 수승하게 되나니, 이것을 정법(頂法)이라고 말한다.마치 어떤 사람이 높은 산 위에 머물면서 4방을 관찰하면, 혹은 산에 올라오는 이도 있고, 혹은 도로 내려가는 이도 있는 것처럼, 혹은 거룩한 도에 들어가는 이도 있고, 혹은 범부의 자리에 들어가는 이도 있나니, 수행하는 사람이 이미 정법(頂法)을 얻고 나서 범부의 지위에 드는 것은 몹시 걱정스러운 일이다.비유하면 산에서 물이 흘러내릴 때, 그 흐름이 빠르고 굽이가 거세어 파도가 가로지르는데, 어떤 사람이 그 물을 건너기 위해 물 속에 들어가 헤엄을 쳐서 저 쪽 언덕에 이르려고 하다가 소용돌이치는 파도에 제지되어 되돌아오다 중류(中流)에 있게 되면, 이미 피곤함이 너무도 극심하여 마침내는 파도에 휩쓸려 그 밑에 빠지고 말 것이니, 그 사람은 틀림없이 죽을 게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요, 저쪽 언덕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대신해 걱정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이다.이미 밝은 스승을 만나 아침저녁으로 깨우쳐 가부(跏趺)24)를 틀고 앉아서, 거친 옷을 입고 나쁜 음식을 먹으며, 풀방석에 앉아 그 몸을 고달프게 하는 등 이와 같이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도리어 나고 죽는 흐름의 파도에 억제된 것은 은정(恩情)에 몸을 던져 마음이 한결같지 못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생각의 못[池]에 빠졌기 때문이니 어떻게 도의 밝음을 얻겠는가?그러므로 마땅히 수행하는 사람을 대신해 걱정하는 것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비유하면 어떤 도사(導師)가 많은 재물과 보배를 싸 가지고 텅 빈 들판 험난한 길을 지나서 자기 집에 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악한 도적을 만나 재물을 다 잃어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마땅히 수행하는 사람을 위하여 걱정하는 것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비유하면 농사꾼이 5곡을 심어 그 곡식의 열매가 무성하여 수확할 시기가 되었는데, 갑자기 우박과 서리가 내려 5곡의 열매를 다 잃고 오직 빈 짚만 남았을 적에 그 사람이 걱정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이미 정법(頂法)을 얻고 나서 범부의 지위로 들어간다면 마땅히 걱정이 될 것이다. 정법을 얻고 난 다음 다시 타락하는 것은 혹은 나쁜 벗을 만나고 애
24)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가(跏)가 가(加)로 되어 있다.
욕을 생각했거나 부정(不淨)한 것을 깨끗하다고 하고 깨끗한 것을 부정한 것이라고 하며, 멀리 나돌아다니며 놀기만 좋아하고 수행을 한결같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오랜 지병에 걸렸거나 혹은 곡식이 귀한 때를 만나 굶주리고 곤궁하여 입에 풀칠조차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며, 혹은 집안 일·부모·형제·아내·자식·친척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혹은 거처해서는 안 될 시끄러운 가운데 앉아 있기 때문이다.이미 정법(頂法)을 얻고 나서도 도과(道果)를 이루지 못하면 쇠하고 늙음이 장차 이르러 마음이 결국엔 미혹(迷惑)해지고 갑자기 괴로운[困] 병에 걸려 목숨이 축 늘어져 다하려고 한다면, 일찍이 독실하게 믿었던 부처님·법·거룩한 대중과 괴로움·괴로움의 발생원인·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영원히 다시 믿지 않아 마땅히 익혀야 할 선정을 도리어 버리고, 마땅히 관(觀)해야 할 것을 관하지 않고, 정진을 게을리 하여 본래 생각하였던 법을 영원히 다시는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정법을 좇아서 물러나 타락하게 된다.어떤 것을 정법에서 물러가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일찍이 믿던 것을 날로 더욱 더 믿으면, 본래 안정되었던 마음을 끝내 움직이지 않게 할 것이요, 관찰하던 것을 잃지 않고 늘 살피고 정진하여 먼저 하던 것보다 더욱 늘려나가며, 생각하던 법을 한결같이 정진하여 놓아버리지 않는 것이다.그런 까닭에 정법에서 물러가지 않게 된다.수행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하면, 그 한결같은 정진으로 인하여 마음과 생각이 한결같아져서 각기 구경법(究竟法)을 사색하며, 처음부터 일찍이 동요하지 않아 새 것과 옛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이와 같아서 곧 내쉬는 숨이 다르고 들이쉬는 숨이 같지 않음을 알게 되며,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다르므로 그 마음으로 하여금 견해와 알음알이를 내게 한다.이와 같으면, 모든 두려운 생각이 없어지나니, 이것을 중중(中中)과 중상(中上)의 법인을 얻었다고 말한다.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없고 이 관법을 지어 앞의 뜻과 뒤의 뜻이 일찍이 착란(錯亂)을 일으키지 않으며, 분별하여 마음을 살핀다면 어떻게 왔다갔다하겠는가? 이것을 상중(上中)과 상하(上下)의 유순법인(柔順法忍)이라고 말한다.가령 그 마음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생각하기를 좋아하게 한다면, 뜻이 흔들리거나 혼란스럽지 않으리니, 이것을 상중(上中)의 유순법인이라고 말한다.그 법인은 어느 곳으로 따라 나아가는가? 네 가지 진리[四諦]를 따라 나아가 자세히 살피며 머무는 것이다.마음이 이와 같으면 드디어 청정함을 이루게 되므로 이를 신(信)이라고 말한다. 비록 그러나 이를 얻되, 신근(信根)을 이룩하지 못했을지라도 이 신을 얻으면, 몸[身]과 입[口]과 마음[心意]이 굳세어지므로 이를 정진(精進)이라고 말하며, 아직은 정진근(精進根)을 이룩하지 못하였을지라도 뜻이 모든 법으로 향하게 되므로 이를 한결같은 마음[有心]이라 말하며, 염근(念根)을 이룩하지 못하였을지라도 마음과 뜻이 한결같으면, 이것을 안정된 뜻[定意]이라고 말하며, 정근(定根)을 이루지 못하였을지라도 모든 법을 관찰하여 그 이치를 분별하면, 이것을 지혜라고 말한다.혜근(慧根)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곧 5법(法 : 陰)을 억측하여 모든 감관[根]으로 향하기 때문이고, 도근(道根)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있고 오히려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억측하기 때문에 견해가 흔들려 뜻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나니, 이것을 상중(上中)과 상상(上上)인 세속의 거룩한 법이라고 한다.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색(色)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곳과 통양(痛痒 : 受)·법(法)·의(意)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25) 일어나고 소멸하는 근본을 살피고 그 인연을 관찰하여 과거와 미래의 원(願)이 없는 선정[定]을 행하며, 해탈문을 따라 들어가고 생사의 괴로움을 살펴 이 5음(陰)은 곧 근심과 걱정거리일 뿐이라고 헤아리면 의혹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그 때는 곧 고법인(苦法忍)을 얻었으므로 이미 괴로움의 근본을 보았고,
25) 신(身)·수(受)·심(心)·법(法)의 4념처(念處)를 말함.
한 편 지혜의 눈을 얻었으므로 열 가지 번뇌[結]26)를 제거하게 된다.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첫째는 몸을 탐하는 것이요, 둘째는 귀신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삿된 것을 보는 것이요, 넷째는 망설이는 것이며, 다섯째는 계율을 잃는 것이요, 여섯째는 의심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애욕이요, 여덟째는 성냄이며, 아홉째는 교만을 부리는 것이요, 열째는 어리석은 것이다.이 열 가지 번뇌를 버리고 이미 이 마음을 얻었으면, 곧 번뇌가 없는 데[無漏]로 향하여 바른 소견에 들고 범부의 자리를 벗어나 거룩한 도에 머물며, 지옥·축생·아귀의 죄를 범하지 않고, 끝내 비명횡사하지 않아 마침내 도적(道跡)을 이룩할 것이다.무원삼매(無願三昧)에 들어 정수(正受 : 禪定)를 행하면 이미 해탈문을 향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법(惡法)은 다시는 생겨나지 않고 모든 악이 저절로 다할 것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념(法念)은 마땅히 일으켜서 분발하게 하여 일으킨 선법(善法)이 구족(具足)함을 이루게 된다.27)마음이 이미 이와 같이 원만해져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바로 자자(自恣)라고 말하고, 뜻을 한결같게 하는 것을 곧 자유자재한 안정된 뜻이라고 말하며, 이 차례를 따라 믿고 기억하고 정진하며 관찰하고 호명(護命)하는 것을 바로 믿음이라고 말하고, 그 행을 사색하는 것을 바로 자자삼매(自恣三昧)라고 말하나니, 오로지 도에 정진하여야 신족을 얻을 수 있다.가령 몸과 입과 뜻을 견고하게 수행하면, 이것을 정진하여 뜻을 안정하는 법이라 하고, 뜻이 심식(心識)과 전일하게 되면 이것을 뜻이 안정된 것이라고 말하며, 도(道)의 이치에 들려고 하면 이것을 가르침과 훈계를 살펴 안정된 뜻이라고 말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4신족(神足)을 이루게 된다.이미 4신족을 얻은 것을 바로 신근(信根)이라고 말하고, 몸과 마음이 견
26) 신(身)·수(受)·심(心)·법(法)의 4념처(念處)를 말함.27) 37도품 가운데 4념처에 이어서 수행하는 것으로 4정근(正勤)을 말하며, 4정단(正斷)이라고도 함. 이미 생긴 악을 없애려고 힘쓰고, 악이 생기지 않도록 힘쓰며, 선이 생기도록 힘쓰고, 이미 생긴 선을 늘리도록 힘쓰는 것을 말함.
고해진 것을 바로 정진근(精進根)이라고 말하며, 바른 법을 생각하는 것을 바로 의근(意根)이라 말하고, 그 마음이 전일해진 것을 정근(定根)이라고 말하며, 능히 법을 분별하여 나아갈 바를 아는 것을 바로 지혜근(智慧根)이라고 말하나니, 이런 까닭에 5근(根)을 원만하게 갖추게 된다.그 온화(溫和)한 법을 믿는 것을 바로 신력(信力)이라고 말하나니, 정진력(精進力:進力)· 의력(意力:念力)·적의력(寂意力:定力)·지혜력(智慧力:慧力)도 또한 이와 같다.이 5력(力)을 성취하여 모든 법에 미칠 수 있는 것을 곧 심각의(心覺意)라고 하고,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을 곧 모든 법을 정밀하게 구하는 법각의(法覺意)라고 하며, 몸과 마음이 견고한 것을 곧 정진각의(精進覺意)라고 하고, 마음에 기쁨을 품어 좋아서 뛰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곧 흔열각의(忻悅覺意:喜覺分)라고 말하며, 몸과 뜻이 서로 의지하여 서로 믿고 유순하여 혼란스럽지 않은 것을 곧 신각의(信覺意)라고 말하고, 그 마음이 한결같이 고요한 것을 곧 정각의(定覺意)라고 말하며, 그 마음에 음욕[婬]·성냄[怒]·어리석음[癡]의 번뇌를 멸하고 뜻하는 바 원(願)대로 되는 것을 곧 호각의(護覺意)라고 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7각의를 이루게 된다.가령 모든 법의 이치를 분별하여 관찰하면 이것이 정견(正見)이 되고, 모든 생각하는 것에 삿된 원(願)이 없으면 이것이 정념(正念)이 되며, 몸과 뜻이 견고하면 이것이 정방편(正方便)이 되고, 마음이 경(經)의 이치로 향하면 이것이 정의(正意)가 되며, 그 마음이 한결같으면 이것이 정정(正定)이 되고, 몸과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업(業)이 다 청정하면 곧 정명(正命)·정어(正語)·정업(正業)28)이 되어, 이 8정도의 행이 이루어진다.이 8정도 가운데 정견·정념·정방편, 이 세 가지를 헤아려 보면, 이것은 관법(觀法)에 속하고, 정의와 정정, 이 두 가지는 적연(寂然)에 속하나니, 이 관법과 적연 두 가지는 마치 두 필의 말이 한 수레를 끌고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28)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8정도 가운데 이 세 가지 실천방법이 없으나 앞뒤 문맥의 흐름을 고려할 때 이 내용이 갖추어져야 하므로 보충하였다.
만약 무루심(無漏心)29)에서 전일(專一)하지 못한 한 법이라도 있으면, 곧 37품의 법에 두루 들어가서 그 37품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면, 곧 괴로움의 진리를 알게 되나니,30) 이와 같이 헤아리면[比] 곧 두 번째 무루심(無漏心)을 얻는다.그 때 생각하기를 '지금 욕계(欲界)에도 5음(陰)의 괴로움이 있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서도 또한 똑같아서 욕계와 다름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괴로움의 진리[苦法智]를 알고 인(忍)을 따르는 지혜를 성취하였다고 말하나니,31) 이것이 세 번째 무루심을 건립한 것이다.그리고 이미 이 행(行)을 얻어 그것으로써 괴로움의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18결(結)을 제거하고 나서 색계를 지나고 무색계를 초월하여 지혜에 적절하게 따르므로 곧 네 번째 무루심을 얻는다. 이미 네 번째 무루심을 얻고 나서는 곧 삼계(三界)의 고달프고 괴로운 번뇌를 해탈하고서, 곧 스스로 '나는 이미 환난을 해탈하여 그 숱한 번뇌가 없나니, 괴로움을 해탈하였다' 하고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는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괴로움은 본래 어디서 생긴 것인가? 은애(恩愛)를 근본으로 해서 집착의 그물이 생겼으니, 오래 전부터 오늘날까지 이 은애를 익혀서 지금의 환난
29) 37도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무루심에는 16심이 있다. 인식 대상과 인식주체를 관찰함에 의거하여 사성제(四聖諦)를 법(法)과 부류로 나누고, 이것을 다시 인가[忍]와 지혜[智]로 나눈 것을 합한 것이 16심(心)이다. 여기서 인가[忍]는 인가(忍可)라는 뜻으로 지혜를 생성하는 인(因) 즉 견도위(見道位)에 들어가 생기는 소득(所得)의 미혹을 바르게 단멸하는 무루지혜의 작용이고, 지혜[智]는 멸제의 도리[滅理]를 바르게 증득한 무루지혜의 작용이다. 즉, 인가함은 단멸의 작용이고, 지혜는 증득의 작용이다. 법인(法忍)과 법지(法智)는 진리[諦理]를 반연한다. 즉, 인식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유인(類忍)과 유지(類智)는 이전의 지혜[智品]을 반연한다. 즉 인식주체를 관찰한다. 16심의 명칭[名目]은 고제(苦諦)에 고법지인(苦法智忍)·고법지(苦法智)·고류지인(苦類智忍)·고류지(苦類智)의 4심(心)과, 집제(集諦)에 집법지인(集法智忍)·집법지(集法智)·집류지인(集類智忍)·집 류지(集類智)의 4심과, 멸제(滅諦)에 멸법지인(滅法智忍)·멸법지(滅法智)·멸류지인(滅類智忍)·멸류지(滅類智)의 4심과, 도제(道諦)에 도법지인(道法智忍)·도법지(道法智)·도류지인(道類智忍)·도류지(道類智)의 4심을 말한다.
30) 고법지(苦法智)를 말함.
31) 고류인(苦類忍)을 말함.
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은애의 뿌리를 뽑으면 많은 번뇌가 없어지고 말 것이니, 은애를 여의고 나면 마음에 맞아 흐뭇해하는 기쁨인들 어디로부터 있게 되겠는가?'라고 하면, 이는 괴로움의 발생원인[習]을 알아서 없애는 법인(法忍)이라 이르나니, 이것을 다섯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욕계의 모든 습기와 집착을 제거하면 곧 7결(結)을 버려 욕계의 모든 환난을 뽑아버릴 줄을 알게 되나니, 이것을 여섯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수행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색계의 근본은 본래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그 근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탐욕으로부터 일어나고 즐거움은 은애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 마음에 맞아 흐뭇해 한다'고 하면, 이것을 일곱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이 행으로 인하여 색계와 저 무색계의 모든 12결(結)을 해탈하고 마음이 지혜를 따라 익히면, 이것을 여덟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 이상을 여덟 가지 의미로서 부처님의 첫 번째 아들이라고 한다.이 때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삼계를 보아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발생원인[習]을 제거하고 탐욕에 대하여 애착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안온하다고 말하고, 적멸(寂滅)을 좋아하여 흐뭇한 마음으로 달갑게 여기면, 이것이 멸진법해(滅盡法慧)의 인(忍)이라고 하나니, 이것을 아홉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이미 이 이치를 얻고 나서 본래의 멸진(滅盡)을 보아 욕계 7결의 속박을 제거하면, 이것을 열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만일 스스로 생각하기를 '또 색계와 무색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을 적(寂)이라고 말하나니, 이것을 열한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12결(結)의 의심을 제거하여 이미 이 환난을 해탈하였으면, 곧 멸진(滅盡)의 지혜를 얻나니, 이것이 열두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그 때 스스로 생각하기를 '일찍이 없었던 일을 얻은 것이 마치 불세존(佛世尊)께서 법을 깨달으신 것처럼 그렇게 하여 이 도의 이치로 인해 욕계의 괴로움을 알아서 곧 버리며, 괴로움의 발생원인[習]이 좇아 생겨남을 알아 괴로움의 발생원인을 여의고 진멸(盡滅)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이 경지를 얻음으로 인하여 법혜(法慧)의 도인(道忍)에 들게 되나니, 이것을 열세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이 때 도로서 욕계를 보아 8결(結)을 버리면, 이것을 버린 다음에는 마땅히 이것을 얻어 법혜(法慧)를 일으키나니, 이것이 열네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이 때를 맞추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일찍이 없었던 일을 얻었다'라고 한다면, 이 도행(道行)으로 인하여 색계와 무색계의 괴로움을 해탈하고 모든 괴로움의 발생원인을 제거하여 진멸을 증득하나니, 이것이 열다섯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마음이 도를 좇아서 12결을 제거하되 색계와 무색계에서 이 결이 이미 제거되면, 곧 도혜(道慧)를 일으키나니, 이것이 열여섯 번째 무루심이라 한다. 그 때를 맞추어 88결을 제거하고 또한 열 가지 상념(想念)의 결(結)을 버리게 된다.왜냐 하면, 마치 강물에서 취한 한 방울의 물처럼 구경(究竟)의 도(道)의 이치는 강물과 같고, 그 나머지 아직 제거하지 못한 것은 한 방울의 물과 같기 때문이다.이에 도적(道迹:須陀洹)을 이룩하여 마침내 성현(聖賢)의 지위에 이르며, 일곱 번 반복해 하늘에 태어나고 일곱 번 반복해 인간에 태어나고서 영원히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게 된다.수행하는 사람이 이런 것을 헤아림으로써 온갖 번뇌의 뿌리를 뽑고 생사의 흐름을 끊으면, 마음은 곧 기뻐하면서 이미 3도(塗)를 해탈하고 5역죄(逆罪)32)을 범하지 않으며, 이도(異道)를 여의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외도(外道)를 따라 영화를 희망하지 않고 중우(衆祐)의 덕을 기대하며, 처음부터
32) 5무간업(無間業)이라고도 함. 불교에 대한 다섯 가지 역적 중죄로 소승(小乘)의 5역죄(逆罪)와 대승의 5역죄가 있다. 소승의 5역죄는 첫째 아버지를 죽이는 것[殺父], 둘째 어머니를 죽이는 것[殺母], 셋째 아라한을 죽이는 것[殺阿羅漢], 넷째 화합승가를 깨뜨리는 것[破和合僧], 다섯째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나오게 하는 것[出佛身血]이다. 여기서 첫째와 둘째 조항을 합하여 한 조항으로 하고 다시 갈마승을 깨뜨리는 것[破羯磨僧]을 다섯 번 째 조항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대승의 5역죄는 첫째 탑사(塔寺)를 파괴하고 경상(經像)을 불사르고, 삼보(三寶)를 깔보는 것, 셋째 스님대중을 욕하고 부리는 것, 넷째 소승의 5역죄를 범하는 것, 10불선업(不善業)을 짓는 것이 있다.
끝까지 일곱 번 반복해 태어나는 환난을 겪지 않으며, 일찍이 계율을 범하지 않고 수 없이 많은 밝음을 보아 낮밤으로 기뻐하게 된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흉년이 든 곳을 피하여 풍년이 든 나라에 이르는 것과 같고, 또는 험난한 곳을 벗어나 편안함을 얻는 것과 같으며, 옥에 갇혀 있다가 벗어남을 얻은 것과 같고, 병이 나아서 마음으로 기뻐 뛰는 것과 같다.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안반수의(安般守意)를 잘 수행하면 그로 인하여 적멸(寂滅)을 얻으리니, 적연(寂然)해지기를 원한다면 이와 같이 익히고 수행하여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수면(睡眠)과 심한 게으름을 깨달아 알고 몸에서 숨이 나오는 때를 분별하며 들이쉬는 숨을 수행하고 돌이켜 얻기를 생각하면 이것을 몸의 숨으로 수행을 이룩했다고 말한다.
수행도지경 제 6 권
서진삼장 축법호 한역
24. 관품(觀品)
두 눈썹 사이의 백호(白毫) 상호
그 밝음 햇빛 보다 더 밝고
또한 고니[鵠]가 허공을 날 듯
멀고 가까운 곳 보이지 않음이 없으시다.
그 몸은 사자와도 같으시고
천제(天帝)의 모습을 초월하셨네.
어깨와 가슴 넓고 아름다운
불세존께 머리 조아리기 원합니다.
팔꿈치 평정(平正)하고 발은 평만(平滿)하며
세존의 배꼽은 물 굽이돌 듯하시네.
무릎과 장딴지 금 기둥 같으신
부처님께 귀의하여 머리 조아립니다.
눈은 길고 좋은 모습 연꽃 같고
몸에 난 솜털은 공작 같으시네.
마음은 늘 멈추어 적연(寂然)한 경지에 머무시는
부처님께 저는 귀의하기 원하나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을 관(觀)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한가한 데 이르러 나무 밑에 홀로 앉아 5음(陰)의 근본을 관찰하되 사실 그대로 자세히 살펴 그것들은 다 괴로운 것이고 공(空)한 것이며, 덧없는 것이고 몸이 아니라는[非身] 생각과 색(色)·통(痛 : 受)·상(想)·행(行)·식(識)과, 이 몸도 본래 없는 것이니, 55사(事)에 탐하여 집착할 것도 없고, 또한 처소(處所)도 없다는 진리를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인욕(忍辱)을 행하고 법(法)을 관찰하여
5음의 근본이 일어나는 곳을 살피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보아서
55가지 일을 분별하고 비유해 해설한다.
어떤 것을 55사라고 말하는가?이 몸은 물거품 덩어리와 같아서 가히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것이고, 이 몸은 바다와 같아서 5욕을 싫어하지 않으며, 이 몸은 강물이 깊은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서 늙고 병들고 죽는 곳으로 나아가고, 이 몸은 똥과 같아서 밝은 지혜가 있는 이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이 몸은 모래성과 같아서 쉽게 무너져 사라지고, 이 몸은 변방 경계와 같아서 원수와 도적을 많이 겪으며, 이 몸은 귀신의 나라와 같아서 보호할 것이 없고, 이 몸은 뼈에다가 살을 발라놓고 피를 공급해주는 것과 같으며, 이 몸은 뇌수에다가 힘줄로 얽어매어 세워놓은 것과 같으며, 이 몸은 궁색한 사람과 같아서 음욕·성냄·어리석음이 들어 있고, 이 몸은 텅 빈 벌판과 같아서 어리석은 이가 미혹되게 하는 것과 같다.이 몸은 험난한 길과 같아서 항상 좋은 법을 잃고, 이 몸은 도예가[塼家]와 같아서 108가지 애착으로 건립된 것이며, 이 몸은 깨진 그릇과 같아서 늘 번뇌가 흐르고, 이 몸은 꽃병과 같아서 그 속에 부정(不淨)한 것만 가득하며, 이 몸은 똥통과 같아서 아홉 구멍에서 더러운 것이 늘 흘러내리고, 이 몸은 시궁창과 같아서 온통 더러우며, 이 몸은 요술로 어리석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과 같아서 바른 진리를 식별하지 못하고, 이 몸은 마늘[蒜]과 같아서 몸과 마음을 태우고 독(毒)으로 해치며, 이 몸은 낡은 집과 같아서 음식만 부패시키고, 이 몸은 크나큰 집과 같아서 그 속에 벌레의 종류만 많으며, 이 몸은 구멍과 같아서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나가고 들어올 뿐이다.이 몸은 시드는 꽃과 같아서 빨리 늙음에 이르고, 이 몸은 이슬과 같아서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며, 이 몸은 종기와 같아서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고, 이 몸은 장님과 같아서 색(色)의 근본을 보지 못하며, 이 몸은 집과 같아서 404가지 병이 모여 있고, 이 몸은 쏟아져 모여 들어오는 곳[注漏]과 같아서 모든 더러움과 온갖 때[垢]가 다 모여 있으며, 이 몸은 상자와 같아서 독사가 들어 있는 곳이고, 이 몸은 빈주먹으로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과 같으며, 이 몸은 무덤과 같아서 사람이 보고 무서워하고, 이 몸은 뱀과 같아서 성냄의 불이 늘 타오르며, 이 몸은 전복된 나라와 같아서 18결(結)이 말미암는 곳이다.이 몸은 오래된 궁전(宮殿)과 같아서 죽은 영혼과 도깨비들[死魅]이 들끓는 곳이고, 이 몸은 동전(銅錢) 표면을 금으로 도금한 것처럼 가죽 주머니로 싸놓은 것이며, 이 몸은 텅 빈 마을과 같아서 6정(情)만이 가득 들어있고, 이 몸은 아귀(餓鬼)와 같아서 늘 음식만 탐해 구하며, 이 몸은 야생 코끼리와 같아서 늙고·병들고·죽음에 이르고, 이 몸은 죽은 개[死狗]와 같아서 늘 덮여져 있으며, 이 몸은 적(敵)과 같아서 마음에 늘 원한을 품고, 이 몸은 파초(芭蕉)와 같아서 견고하지 못하며, 이 몸은 부서진 배[船]와 같아서 62가지 소견에 의혹을 받는 대상이 되고, 이 몸은 음탕한 집과 같아서 선과 악을 가리지 않는다.이 몸은 썩은 누각(樓閣)과 같아서 착한 생각을 무너뜨리고, 이 몸은 후비(喉痺)병과 같아서 그 속에 더러운 혼탁한 것만 가득 들어있으며, 이 몸은 이익이 될 만한 것이 없고 안팎으로 걱정거리만 있고, 이 몸은 주인이 없는 무덤과 같아서 음욕·성냄·어리석음이 해치는 것만 있으며, 이 몸은 구원할 사람이 없어 늘 액난(厄難)과 패망만 만나고, 이 몸은 보호할 이가 없어 여러 병만 몰려오며, 이 몸은 돌아갈 데가 없어 죽음이 목숨을 핍박하고, 이 몸은 거문고와 같아서 줄[현(絃)]로 인하여 소리가 나며, 이 몸은 저 북과 같아서 가죽과 나무로 싸고 덮여 있는데 헤아려보면 본래 빈 것이고, 이 몸은 술잔[坏]과 같아서 견고함이 없으며, 이 몸은 잿더미[灰城]가 바람에 날리고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늙고·병들고·죽음에 돌아가게 되나니, 이 55가지 일로써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는 것이다.이 몸은 거짓된 것[欺詐]이이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반복(反覆)하여 생각하며, 친후(親厚)를 믿지 않아 애달프지만 도리어 놓아버려 친근하고 소원한 구분이 없게 한다. 비유하면 꿈·허깨비·그림자·메아리·아지랑이가 갑자기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고, 또한 원수가 늘 공경을 다하여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여 호의를 사는 것과 같으며, 목욕하고 머리를 빗고 음식을 먹고 의복을 입고 평상[牀]과 와구[臥具]를 두어서 곳에 따라 편리만을 구하다가 사람을 이끌어 곤궁한 곳으로 향하며, 늙고 병들고 죽는 환난으로 향하게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항상 이 몸에 음식을 먹이고
5욕을 제멋대로 자행하며
편안함 구하기를 친구처럼 하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곧 원수일세.
구제할 이 없고 보호할 이 없으며
항상 반복함이 없기를 생각하라.
사람을 이끌어 환난에 이르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 들게 하네.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모두 당연히 썩어 문드러지며, 개나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혹은 태워지거나 마른 뼈가 땅에 이리저리 흩어지게 마련이다.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법으로 마땅히 이 몸을 관찰해야 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종기와 같이, 또는 몸에 박힌 화살을 뽑지 않은 것과 같이, 또는 죄를 범하고 시가(市街)에서 사형을 당하는 것처럼 하여, 온갖 번뇌 덩어리인 이 몸은 태어나면 꼭 죽게 된다는 것을 살펴야 한다.탐착(貪着)하는 것이 있는 것을 색(色)이라고 말하고, 몸이 만나는 바 물질에 접촉[軟]하여 편안하고 위험한가를 살피는 것을 통양(痛痒 : 受)라고 말하며, 느껴 아는 것이 있는 것을 상(想)이라고 말하고,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을 행(行)이라고 말하며, 모든 갈래[趣]를 분별하는 것을 식(識)이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헤아리건대 안색(眼色)은 주로 색을 관찰을 주관하고
이 몸을 얻게 된 것은 본래의 인연 때문이다.
유연(柔軟) 등의 느낌으로 행(行)을 이루나니
색(色)이란 무(無)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온갖 덕을 살피네.
비유하면 강변에 저수지와 같다. 거기에 많은 코끼리가 몰려들어 그 속에서 목욕하고 물을 마시며, 그 못 속에 있는 푸른 연(蓮)의 꽃과 줄기를 뜯어먹고는 다시 되돌아갔다.그 때 진흙과 모래 위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는데 큰 발자국도 있고 작은 발자국도 있으며 넓은 발자국도 있었다.사냥꾼이나 소와 양을 먹이는 이나, 나무를 메고 꼴을 짊어진 이나 길을 가는 이가 그 발자국을 보면 그들은 말하기를 "많은 무리의 코끼리가 이곳을 지나갔구나"라고 할 것이다.비록 코끼리를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다만 그 발자국만 보고도 코끼리 떼가 그곳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무상(無想)의 음(陰 : 色)이 느끼고[痛痒 : 受] 인식[行識]하는 것도 감촉[所更 : 觸]으로 인하여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상(想)·행(行)·식(識)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강변 저수지와 같아서 모래 위에
걸어다닌 발자국이 있는 것으로
코끼리가 놀던 자취를 보고
코끼리 떼 지나간 줄 아네.
이와 같이 헤아리건대 세활(細滑 : 觸)과
법을 식별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을 비추어 보아
생겨나고 소멸하는 인연을 나타낸다네.
무색(無色)의 여러 생각도 그와 같아서 모두 색에 의지하고 그 뒤에 색법(色法)도 있게 되나니, 비유하면 두 개의 갈대[葦]가 서로 의지하여야 설 수 있는 것과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무색(無色)에는 의지하는 것이 많나니
색이 있는 것도 무색에 의지한다.
마치 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명(名)1)과 색(色)2)도 또한 그와 같다.
저 무색법(無色法)은 색법[有色]에 의지하여 분별하게 되지만, 색이 있는 것도 또한 무색일 수 있으니, 무색에 의지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비유하면 먼저 북이 있은 다음에 소리가 나는 것이지만, 소리와 북은 각기 달라서 같지 않으니, 북은 소리에 있지 않고 소리는 북에 있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명(名)과 색(色)도 그와 같아서 각각 달라서 서로 합해지지는 않지만, 서로 바꾸어 의지하여야 비로소 이루는 것이 있고, 저 무색(無色)의 음(陰)도 자재(自在)하지 못하여 제 힘만으로 일어나지는 못한다.비유하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장님이고, 한 사람은 앉은뱅이인 경우
1) 산스끄리트어로는 Nama이며 정신적 요소를 말함.
2) 산스끄리트어로는 r pa이며 물질적·육체적 요소를 말함.
와 같다. 그들이 다른 나라에 가려고 하는데, 장님은 눈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나아갈 곳을 알지 못하고, 앉은뱅이는 두 발이 모두 없어 걸을 수가 없었다.그러자 장님이 앉은뱅이에게 말하였다. "나는 눈이 보이지는 않아도 발로 걸을 수는 있다. 그러나 눈앞이 깜깜하여 동쪽과 서쪽을 분별할 수 없다. 그대는 앉은뱅이라서 걸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미 눈은 있으므로 나아가고 물러나며 걸어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하여 서로 의지해서 저 나라로 가보자."그리고 나서 앉은뱅이는 장님의 등에 업혀 길을 떠났다. 이것은 앉은뱅이의 위력도 아니오, 장님의 공덕도 아닌 것처럼 색법(色法)도 그와 같아서 능히 혼자서 성립하지는 못하며, 무색법(無色法)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리 저리 바꾸어 서로 의지하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법 생각해보면 홀로 성립하지는 못하나니
저 색법과 무색법도 그러하다.
세간에 있어 서로 바꾸어 의지하는 것이
장님과 앉은뱅이가 의지해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 명(名)과 색(色)이 서로 바꾸어 옮겨가면서 의지하는 것이 마치 복[鼓]과 소리[聲]의 관계와 같고 활줄과 화살의 관계와 같아서, 서로 의지하고 있지만 합해진 것도 아니고 별개의 것도 아닌 것이다. 만물(萬物)도 그와 같아서 인연을 좇아 성립되므로, 세력도 없고 자재(自在)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이 다 연(緣)을 좇아 생겨나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수행자가 이와 같이 법의 근본을 관찰해보면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갑자기 저절로 나타났다가는 곧 다시 소멸할 뿐인데, 생겨남이 없는 것을 생겨난다 하고 일어남이 없는 것을 일어난다고 하지만 모두 다 무상(無常)한 데로 돌아가고 만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5음(陰)은 항상 공(空)에 속하여
의지하여 행함이 유약하며
인연으로 합쳐 이루어진 것이라
엎치락뒤치락 서로 의지한다.
일어나고 멸함이 무상하고
흥하고 쇠함이 뜬구름과 같나니
몸과 마음과 생각과 기억과 법도
그와 같이 모두 무너지고 마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네 가지 일로 저 무상함을 관찰해야 한다. 첫째 생겨나는 만물은 모두 무상한 데로 돌아가고, 둘째 그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모여 쌓이는 것 아니며, 셋째 만물이 소멸하여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또한 감쇠(減衰)하는 것 아니고, 넷째 사람과 물질은 다 무너져 없어지는 것이라 해도 또한 소멸하여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생겨나지 않은 것을 생겨난다 하고 소멸하지 않는 것을 소멸한다고 하나니, 모든 온갖 만물을 보되 마땅히 일어나고 소멸함과 보존하고 없어지는 것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으며 깨우치지 못할 것이 없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과 물질이 비록 생겨난다고 해도
모여 쌓이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네.
또한 모든 모양을 버리지도 않아
비록 사라진다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끝이 나도 서로 연속되어
모두 네 가지 인연을 따르나니
온갖 만물을 이와 같이 관찰하면
나고 죽음[終始]을 초월하여 해탈하리라.
가령 수행하는 사람은 골똘히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동·서·남·북에 존재하고 있는 만물은 모두 무상한 데로 돌아가는 것들이요, 요동하여 불안한 것들이며, 갑자기 생겨났다가는 곧 사라져 없어져서 공(空)에 나아가지 않는 것이 없나니, 처음 태어난 이래로 무상한 일들이라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거리가 늘 몸을 따라 다닌다'라고 해야 한다.이와 같이 관찰하는 사람은 삼처(三處 : 三界)에 집착하지 않고 4생(生)3)을 좋아하지 않으며, 5식(識)에 머무름이 없고 그 마음이 9신(神)이 거처하는 데에 들어가지 않으며, 설령 다시 태어나더라도 3결(結)인 첫째 음욕을 탐하는 것, 둘째 계율을 범하는 것, 셋째 의심하는 것 등을 제거하여 곧 도적(道迹)을 이루어 무위(無爲 : 涅槃)로 나아간다. 이를 비유하면 흐르는 물이 모두 다 바다에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온갖 만물 움직여 일어나는 이치 관찰하여
그것을 기억하여 다 초월해야 한다.
애욕에 얽매여 있는 것들은
모두 다 무상한 것이라네.
세간을 벗어나는 법 얻는 이
모든 욕망과 집착 다 여의어야 한다.
이를 도적(道迹)이라고 이름하나니
무위 자연의 경지로 흘러 향하리
.)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을 말함.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이와 같이 관찰할 능력이 있다면 스스로 제 자신의 몸을 관찰하기를 독사처럼 여길 것이다.비유하여 말하면 어떤 성 안에 불이 난 것과 같다. 그 성 안에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대중들의 길잡이[導師]였다. 그는 집이 타서 무너지는 것을 보고 몹시 근심이 되어,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기를 '어떤 방법을 써야 저 집 안에 들어있는 중요한 물건들을 꺼낼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그리고는 물러나 생각하기를 '내가 어느 상자 하나에다가 많은 보물을 담아 어느 방에 간직해 두었는데, 그 안에는 가장 좋은 명월주(明月珠)와 제일 값진 보물들이 가득하여 그 값어치를 이루다 말할 수 없고 그밖에 것들도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였다.그리하여 그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다가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고는 몹시 두려워하였으나 보물을 탐한 나머지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아 불 속으로 뛰어들어 보물 상자가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 주변에는 독사를 담아놓은 상자가 있었다. 그 때 길잡이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무서운데다가 그 눈마저 연기에 쏘였다. 그러자 마음이 산란하여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자세히 살피지도 못한 채, 그만 독사가 들어있는 상자를 잘못 가지고 달려나오는데, 도둑이 그 뒤를 추격하면서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는 도둑이 쫓는 것을 보고 재빨리 달렸다.도둑은 계속 쫓아오면서 외쳤다. "이렇게 하다가 너를 잡기만 하면 곧 살해할 것이다. 네가 만약 상자를 버리고 달아나면 곧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만약에라도 그 상자를 버리지 않는다면 네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길잡이는 도둑의 추격이 가까워진 것을 보고, 재물도 잃고 또한 목숨까지 건지지 못할까 염려하여 곧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상자를 열고 그 안에서 중요한 물건만 꺼내 품안에 품고 나머지는 버리고 달아나야 곧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그가 즉시 상자를 열어보니 오직 독사만 보였다. 그제서야 보배가 아니고 독사였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수행도 이와 같아서 이미 도의 진리를 체득하고 나면 일체의 모습이 모두 독사와 같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관법에 이르게 되나니, 관법을 구하려고 하는 이는 마땅히 이와 같이 살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불이 훨훨 타오르는데
사람이 중요한 물건 꺼내려다가
도리어 독사 담긴 상자를 안고는
그것이 진귀한 보물이라 하였다가
상자를 열어 보니 폐악(弊惡)한
독사만 가득히 담겨 있었네.
그 제서야 즉시 내버리면서
보물이 아닌 줄 깨달은 것과 같다네.
수행도 이와 같이 헤아려
자세히 살펴 본래 없는 것임을 깨닫고
네 가지 진리를 분명히 알아서
몸을 네 마리 독사처럼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자세히 살펴 수행하고
항상 도덕(道德)을 생각하면
무위(無爲)의 경지를 체득하여
괴로움을 제거하고 편안함을 얻으리.
스스로 제도하여 해탈문에 들고
남의 모든 더러움도 없애주나니
그러므로 분별하여 말해주어
무상법(無常法)을 관찰하게 했노라.
25. 학지품(學地品)
훌륭한 능력에 용맹하시고
얼굴빛 금화(金華)와 같으시며
신족(神足)이 빠른 바람보다 더 빠르시어
가고 싶으신 곳을 자유롭게 다니시네.
몸의 덕은 다함 없음[無極] 이루셨고
잘 길들여서 능히 인욕(忍辱)을 행하셨으며
계율 선정의 안온함을 좋아하시는
부처님께 중생들 귀의하여 머리 조아리기 원합니다.
걸음걸이 안정되고 어두운 번뇌 없앴으며
그 덕은 그지없고 소원은 안정되셨어라.
견줄 이 없고 언제나 집착 없으신
부처님 더할 데 없이 거룩하신 분께 귀의하기 원합니다.
부처님께선 교묘한 방편의 법으로 활[弓]을 삼아
그것으로 삿된 원적(怨敵) 항복시켜
번뇌와 모든 더러움 제거하셨기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한마음으로 예배하기 원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미 도적(道迹)을 얻어 5락(樂)이 모두 무상한 데로 돌아가는 줄을 보고도 능히 번뇌를 다 제거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4)왜냐 하면, 색(色)·성(聲)·향(香)·미(味)·세활(細滑 : 觸)의 생각을
4) 예류과(預流果)에서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해 남아 있는 것을 말하며, 마땅히 일래향(一來向)을 수행해 위로 더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보는 작용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도적을 성취하여
지혜로 5락은 무상한 것임을 알고도
애욕의 경계 보기를 겁 많은 말처럼 하여
마음으론 색을 집착 않지만 끊지는 못하네.
비유하면 어떤 범지(梵志)의 아들이 정결(淨潔)한 것을 스스로 좋아하는데, 집 뒤에 나갔다가 갑자기 그 손가락을 더럽히자, 연금술사[金師]에게 찾아가서 말하였다. "이 손가락이 더러워져서 깨끗하지 못하니 불로 태워 주십시오."연금술사는 만류해 말했다.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다른 방편을 써서 이 부정한 것을 제거할 수 있으니, 회토(灰土)로 문지른 다음 물로 씻으면 된다. 가령 내가 불로 그 손가락을 태운다면 네가 능히 견뎌내지 못할 것이요, 불의 독기가 심하니 그 몸에 닿는다면 다시 먼저보다 더할 것이다." 범지의 아들은 그 말을 듣고 곧 성을 내며 연금술사를 꾸짖었다.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마시오. 자기가 견딜 수 없다 하여 남도 똑같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오?나는 아무 욕심도 없는 사람이오. 손가락에 때가 끼어 감히 길에 나다니지도 못하겠고, 남이 나한테 접촉하든지 내가 혹 남한테 가까이 하기가 두려워서요.나는 3경(經)의 근본을 배웠고, 또한 6예(藝)5)도 다 익혔소. 말하는 법을 배워 호응하는 것을 알고, 능히 온갖 사물을 보고 이치의 차례와 장구(章句)를 분별하며, 3광(光 : 해·달·별)·천문(天文)·지리(地理)를 해박하게 알고 64가지 상(相)을 배워 사람의 녹명(祿命)·부귀(富貴)·빈천(貧賤)·거
5)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말함.
처[安處]·전택(田宅)을 알며,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까지 깨우쳐 재변(災變)을 미리 알고 있소.또한 다른 나라에 원적(怨賊)이 많아 이 국토를 위태롭게 하려고 하면, 그 때에 해[日]에 재앙이 비치고 바람과 비가 절도[度]를 잃으며, 변괴가 있는 별이 뜨는데, 마치 미인(美人)처럼 울긋불긋한 모양이기도 하고, 남자·여자·소·말·닭·양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5곡(穀)의 흉풍(凶豊)과 가뭄·장마·귀천을 미리 알며, 저 별의 움직이고 멈추고 하는 거동을 미리 알아 장마·가뭄·쇠모(衰耗)·많고 적음을 분별한다오.대홍수가 있을지 어디가 파괴될지를 점치고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의 나고 드는 변화를 보며, 만일 임신한 사람이 있으면 그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분별하고 군법(軍法)과 전투하는 법을 깨우쳐 알며, 옛날과 지금의 일을 모두 알고 5성(星)과 형혹(熒惑) 같은 별이 있는 곳을 보고 12시(時)와 낮과 밤의 온갖 분각(分刻)을 살피며, 능히 의술에 통하여 풍병(風病)·한병(寒病)·열병(熱病)·창이(瘡痍)와 보잘것없는 상처에 무엇으로 치료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안다오.해와 달이 경유하는 길을 알고 그 색(色)이 변하면 모두 어떤 반응이 있을 지와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하고 별이 떨어지는 변괴와 모든 별의 소속을 알아 천신(天神)을 받들며, 옛사람들의 학술(學術)을 모두 잘 분별하여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고 혜성(彗星)의 나타나는 것을 점쳐 무슨 징조인가를 헤아려 안다오. 그런데 어찌 부정한 것을 내 손가락에 붙여 두겠소? 머뭇거리지 말고 마땅히 내 말대로 이 손가락의 더러운 것을 제거해주시오." 연금술사는 그의 말을 듣고 부젓가락을 빨갛게 달구어 그의 손가락을 지졌다.그 소년은 너무 뜨겁고 아파서 능히 견디지 못하고 손가락을 빼 입에 물었다. 연금술사는 크게 웃으며 소년에게 말하였다. "네가 말하기를 스스로 총명하고 널리 배워서 옛것을 탐구하여 지금을 알며, 환하게 열려 통하지 못한 것이 없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다고 자랑해 놓고는 지금 어째서 부정한 손가락을 가져다가 입 속에 넣느냐?"그 소년은 대답하였다.
"아픔을 당하지 않았을 때에는 손가락의 부정한 것만 보았는데 막상 화독(火毒)을 당하고 보니 손가락의 더러운 것을 잊었소."도적(道迹)을 얻은 이도 그와 같아서 본래 오랜 세월 동안 애욕의 번뇌를 익혀 왔으므로, 잠깐 동안은 정욕을 여의었다가도 마침 좋은 여색을 보면, 음란한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왜냐 하면, 모든 감관[根]을 조금 제어하였을 뿐 다 안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색욕(色欲)을 알면 본래 익혔던 것이어서
아무리 이치를 알고 도적을 이룩하였지만
머리에 상상의 꽃[想華] 꽂고 계속 향기를 맡나니
물이 바다로 나아가듯 마음의 욕심도 그러하다.
도적을 얻은 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이 몸이 다행히 음욕을 익히지 않아서 다른 범부가 정욕의 더러운 일을 말할지라도 음욕 없음을 좋아하여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을 소멸해 없애고 오로관법(汙露觀法 : 不淨觀法)을 익혀 밤낮으로 놓아버리지 않겠다'라고 하여야 한다.이와 같이 익히는 사람은 음란함[淫]·성냄[怒]·어리석음[癡]이 것이 적어지고 왕래도(往來道 : 往來果)를 얻어 한 번 세간으로 되돌아왔다가[一返還世], 괴로움의 근원을 끊게 된다.이미 왕환도(往還道)를 얻고 나면, 모든 애욕을 일으킴 없이 청정하여 음란함·성냄·어리석음이 희박해지지만, 그래도 마음은 끊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번뇌의 환난이 남아있다.비유하면 어떤 남자에게 아내가 있는 것과 같다. 그녀는 얼굴이 단정하고 티없이 깨끗한 데다가 온갖 영락(瓔珞) 같은 보석으로 그 몸을 장엄하였으므로 그 남편은 매우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그러나 비록 이런 얼굴은 지녔었지만 이는 음귀(婬鬼)이지 사람은 아니어서, 오직 사람의 피와 살로 음식을 삼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남편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아내는 나찰(羅刹)이어서 사람의 피와 살로 음식을 삼는다."그런데도 그 남편은 그 말을 믿지 않다가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말하자 마침내 남편도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고 그녀를 시험해보려고 하여, 밤에 거짓으로 누워서 코를 골며 자는 척 하였다.아내는 남편이 정말 잠이 든 줄로 알고, 가만히 일어나 성을 넘어 무덤을 찾아갔다. 남편은 잠시 후에 그의 뒤를 좇아가서 아내를 보니 옷과 모든 보배 장식을 벗어 한 쪽에 치워놓고, 낯빛이 흉악스럽게 변하더니 입에는 길다란 어금니가 생기고 머리 위에서는 불이 타오르며, 눈은 불빛처럼 빨개져서 몹시 무섭게 되더니만 죽은 사람의 앞으로 가까이 가 손으로 그 시체의 살을 훔쳐 입으로 씹어먹었다.남편은 이런 모습을 보고서야 이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인 줄 알았고, 곧 그의 집으로 돌아와 평상 위에 누웠다. 아내도 조금 뒤에 돌아와 남편의 평상에 다가와서 이전처럼 누웠다. 그 남편이 아내의 영락으로 장엄한 단정한 얼굴을 보았을 적에는 곧 친근하게 대했었지만, 가령 그녀가 무덤 사이에서 죽은 사람의 살을 씹어먹던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곧 더럽고 싫어졌고, 또한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왕환도를 얻은 사람도 만일 겉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이를 본다면 음란한 마음이 동했다가도 가령 오로(惡露)의 더러움과 부정(不淨)함을 말해주면 음란한 마음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변화한 사람 몸을 마치 갑옷 벗듯 하여
음란한 귀신의 모습으로 무덤으로 찾아가
죽은 시체 씹기를 밥먹듯 하자
남편은 그 제서야 나찰인 줄 알았네.
왕환도를 얻은 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욕계의 3결(結)이 이미 엷어졌으니 그 나머지는 저절로 줄어들 것이며, 거룩한 진리를 체득하여 애욕의 더러움이 괴로운 것만 많고 편안한 것은 적다는 것을 보았으니, 마땅히 탐욕을 익히지 않으리라. 저 범부들은 정욕(情欲)에 뜻을 두되 마치 죽은 시체에 쉬파리가 붙듯 하나니, 나는 무슨 방편으로 음욕·성냄·어리석음을 다 멸하여 남음이 없게 할 수 있을까? 무루선(無漏禪)을 얻은 다음에야 정거천(淨居天)처럼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왕환도를 얻어
한 번 환생하는 도를 수행한 이 애욕이
옳지 못한 줄 알면서도
그것을 익혀 영원히 끊지는 못했다.
그러나 음욕의 불이 아무리 왕성해도
능히 그 마음 위태롭게 하지 못함은
오로관법(惡露觀法)을 수행하여
음욕 미워하길6) 나찰 대하듯 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한참 무더위를 만난 것과 같다. 그는 그 열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 스스로 부채를 구하여 부채질을 하거나 물에 들어가 목욕하기를 생각하는 것처럼, 왕래도(往來道)를 얻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음욕·성냄·어리석음을 보고 몹시 뜨겁게 여겨 불환도(不還道)를 생각하고 구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두 길상(吉祥)의 도를 이루었어도
행은 아직 애욕을 아주 제거하지 못했으니
6)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증(增)'자로 되어 있으나 앞의 문장을 볼 때 '증(憎)'자라야 어울리므로 바로 잡는다.
무루선을 얻어야
그 행이 곧 범천과 같으리.
그 몸에 모든 열(熱)을
시원한 물로 제거하듯이
왕래불환도(往來不還道)를 구하여
이를 얻으면 맑고 시원해지리.
이 때 수행하는 이는 오로관법(惡露觀法)을 지어 영원히 색욕(色欲)과 모든 성냄·어리석음을 해탈하여 5음(陰)이 어디로부터 일어나고 소멸하는지를 자세히 보아야 한다. 멸진(滅盡)으로 선정을 삼아 지견(知見)이 이와 같이 되면, 곧 5결(結)이 끊어지고 음개(陰蓋 : 번뇌의 쌓임)가 없어져서, 불환도(不還道)를 얻어 후퇴하여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애욕에서 벗어나 모든 장애와 음귀(婬鬼)의 환난도 없어질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애욕과 질병의 곤액(困厄)을 벗어나고
늘 오로관법(惡露觀法)으로 모든 환난 제거하면
공포를 완전히 여의고 괴로움 멀어져 편안해지리니
세 번째인 돌아오지 불환도를 이루리.
맑고 서늘함을 얻어 모든 열이 있지 않으면, 만약 색욕(色欲)을 보아도 언제나 부정한 것으로만 보여 더러운 것이라고 알 것이다.비유하면 먼 지방에서 어떤 장사꾼이 온 것과 같다. 몹시 피로하였는데, 도착하니 때는 마침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29일 밤중이었고, 성문(城門)은 꼭 닫혀 있었다.그래서 빙 돌아 남쪽 성벽에 이르러보니, 그 밑에는 빗물이 고인 큰 못이 있었다. 행장을 풀고 주변에 머물렀는데, 죽은 사람의 시체와 닭·개·코끼리·가축·뱀 같은 것들이 물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혹은 잠기기도 하며, 백천만 가지 벌레들이 그 시체 속에서 우글거리고, 털과 머리카락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성안에서 청소한 쓰레기와 더러운 물이 죄다 그 곳에 쏠려 있는 것과 같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성 옆에 있는 큰 못의 물과 같나니
차마 보기도 민망한데 하물며 마시겠는가?
먼 데서 온 장사꾼 성문이 닫혀서
대중들과 함께 이 못 가에 머물렀네.
그 때 대중들 가운데 아주 먼 곳에 사는 이가 있었다. 그는 애당초 일찍이 이 국토에 와본 적이 없었으므로 좋고 나쁜 사정을 식별하지 못하였다. 몹시 피로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나머지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씻기도 하고, 마음껏 마시기도 하여 배가 잔뜩 부르자 못에서 나와 누웠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사람 처음으로 이 나라에 왔으므로
물에 들어 목욕하고 모든 열을 씻었네.
수신(水神)에 제사 올리고 물 마셔 갈증 풀고서
몹시 피로하여 그대로 누워 잠을 자네.
이튿날 일찍 일어났는데 마침 먼동이 트려고 하였다. 피로도 좀 풀리고 잠도 깨어 그 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로(惡露)처럼 부정하기 그지없어 혹은 그냥 그대로 달아나 눈을 지긋이 감고 쳐다보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스스로 코를 감싸쥐고 또 억지로 토하려 하기도 하였다.그는 그제서야 물이 더럽고 부정한 줄을 알았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세 번째 도를 얻으면
욕락은 편안치 않은 것임을 알고
선정에 들어 환난 없애고
음욕을 보고 더러운 물처럼 여기리라.
그 때 수행하는 사람도 선정을 좋아하고 애욕 살피기를 마치 저 장사꾼이 깨끗하지 못한 물을 싫어하듯이 해야 한다.비유하면 사람이 어렸을 적에는 저 혼자 똥[屎]을 주물럭거리면서 장난질 치다가,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 앞서 장난질 치던 것은 버리고 다시 다른 것을 좋아하며, 나이가 늙음에 이르러서는 모든 즐거움을 다 놓아버리고 법(法)을 혼자 좋아하는 것처럼 수행하여 이미 불환도를 얻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나고 죽음이 있는 다섯 갈래의 세계[五道]에서 즐거워함이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질치는 것과 같다가도 더욱 더 열심히 정진하여 나고 죽음[終始]에서 해탈 하려고만 할 뿐 생(生)을 즐겨 구하지 않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어린 아이가
땅에서 부정한 것 가지고 장난치다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서는
장난감을 버리고 다른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삼계(三界) 벗어나기를 구하여
그 때 드디어 정진하게 되면
네 가지 도를 원만히 갖추어 성취하리.
비유하면 먼 나라에 살고 있던 많은 장사꾼들과 같다. 그들은 동쪽으로부터 와서 성 밖의 동산에 머물렀다.그 때 그 성 안에는 아주 아첨을 잘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변덕스럽고 믿음성이 없었다. 그는 거짓 음식·꽃·향·기이한 의복 등을 마련하여 길잡이[導師] 앞으로 나아가 문안을 드렸다. "먼길을 오시는 동안 별탈이 없으신 것을 크게 경하(敬賀)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배고프고 목마르게 기다려 왔었는데, 이제서야 받들어 뵈옵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변변치 못한 음식을 올리오니 어여삐 여기시고 받아 주십시오."길잡이는 곧 받아 들였다.그는 이어 다시 말하였다. "차라리 성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저에게 큰 집이 있는데 그 안에는 좋은 방이 있고 촉감이 좋은 물건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집안에는 샘물도 있고 뒷간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온갖 풀과 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고 기물(器物)들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바라건댄 위광(威光)을 굽히시고 덕을 낮추시어 성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그는 이렇게 말하여 속인 다음 그를 버려둔 채 곧 그대로 사라졌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떤 사람 아첨과 속임수를 품고
먼 곳에서 오는 여러 장사꾼을 보고는
그 길잡이를 받들어 맞이하면서
음식을 공양한 다음 말하였다.
저에게 집 한 채가 있는데
높고 크고 매우 좋습니다.
그 사람 성실함과 믿음성 없이
속여 말하고 곧 버리고 사라졌네.
그 때 성안에는 어떤 훌륭한 장자(長者)가 있었다. 그는 그 사람이 길잡이를 속인 사실에 대하여 죄다 듣고, 곧 몸소 나가 길잡이를 맞이하면서 말하였다. "저 사람을 믿고 그의 집에 머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의 집 뒤에는 더럽고 혼탁한 고인 물이 있고, 그 물 앞으로는 똥·오줌·똥물 같은 더러운 것이 온통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물러 계실 만한 곳이 못됩니다." 길잡이는 그의 말을 듣고 장자에게 대답하였다. "아무리 집이 냄새가 난다 하더라도 방편을 써서 향을 피우고 꽃을 흩어 뿌리면 그 더러운 것들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장자는 친절한 생각 품고서
일부러 길잡이를 찾아와
그의 집 주위는 냄새나고
깨끗하지 않다고 말해주었네.
길잡이는 이 말을 듣고
도리어 대답하기를
아무리 냄새나더라도 방편을 써서
향 피우고 모든 꽃 흩겠다고 말했네.
그 때 장자가 길잡이에게 말하였다. "그 집에는 또 다른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온갖 몹쓸 벌레가 그 집안에 가득하여 사람의 살과 피로 먹이를 삼는답니다. 가령 그 벌레들이 배고프면 당신의 주머니를 뚫고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을 다 씹어서 못쓰게 만들 것입니다."길잡이가 대답하였다. "내가 마땅히 그 벌레들이 먹을 것을 따라 공급해주어서 그것을 먹고 물건은 뚫지 않게 하면 됩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집엔 온갖 몹쓸 벌레가 있어
살과 피로 먹이를 삼는다고 하자
내가 부족한 것을 따라 공급해 주겠다고
길잡이는 장자에게 그렇게 대답하였네.
장자가 길잡이에게 말하였다. "그의 집 네 모퉁이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있습니다. 흉악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므로 조금도 접근할 수가 없으니, 무슨 방편으로 그 독사들을 순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길잡이가 대답하였다. "나는 능히 그것들을 깨우치게 할 수 있습니다. 약과 신주(神呪)를 베풀어 범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집엔 네 마리 독사가 살고 있는데
사납고 해칠 마음 품고 있어 서로 위태롭게 한다 하자
온갖 약과 신주로써
그 독사가 품고 있는 원결(怨結)을 없애겠다 말했네.
그 때 장자가 다시 길잡이에게 말했다. "그 집에는 또 커다란 어려움이 있습니다. 담장도 저렇듯 오래되고 낡아서 곧 무너질 지경이며, 벽도 기울어져 위험스럽기 그지없으니 도저히 의지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길잡이가 대답하였다. "만일 그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가 그곳에 거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무너지지 않도록 할 방법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무너진다면 목숨도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집 지은 지 오래되어 무너지려 하나니 가령 넘어진다면 도저히 보호하지 못한다 하자
길잡이가 곧 장자에게 대답하기를 그런 염려 있다면 나는 거처하지 않겠다고 말했네.그 때 길잡이는 그 집의 온갖 어려운 일과 결함에 대하여 갖추어 듣고, 또 직접 보고 난 다음 마음이 멀리 떠나 그 집에 머물려 하지 않았다.불환도(不還道)도 그와 같아서, 세존의 가르침을 들어 거룩한 진리를 살펴 안다면 생사(生死)의 시작하고 끝마치는 환난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불환도(不還道)를 얻어 모든 괴로움 여의고
수행하여 한량없는 편안함을 구하면
생사를 털끝만큼도 그리워하지 않나니
마치 길잡이가 그 집에 거주하지 않듯 하리라.
비유를 들어 해설한 것으로서 집이라고 한 것은 사람의 몸을 말한 것이고, 더럽고 탁한 물이라는 것은 아홉 구멍에서 늘 흘러나오는 부정(不淨)한 것을 비유한 것이며, 물 속에 우글거리는 벌레라고 한 것은 몸 속에 있는 80가지 벌레를 비유한 것으로서 그 벌레들이 늘 몸 속에서 살·피·뼈·뇌수를 먹는 것을 말하고, 평평한 땅에 쌓은 담이란 몸을 공양하기 위하여 음식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저 네 마리 독사라고 한 것은 몸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인 흙·물·불·바람을 말한 것이고, 집이 썩어 위태로워서 밤낮으로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한 것은 늙음·병듦·죽음을 말한 것이며, 그 수행이라고 한 것은 낮과 밤으로 방편을 내어 여러 가지 환난을 해탈하려는 것을 말한 것이고, 그 길잡이는 불환도(不還道)를 말한 것이다.수행하는 사람이 정진을 오로지 하여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삼계가 모두 불 타는 것을 보아, 눈으로 모든 모양이 죄다 무상한 데로 돌아가고 썩어 무너짐을 여의지 못하는 것을 관찰하기를 마치 길잡이가 큰집의 위태로움을 본 것처럼 해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독을 품은 독사가
사나워 가까이 할 수 없는데
각각 네 모퉁이에 산다고 한 것은
사람 몸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이다.
썩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한 것은
몸에 더하고 덜함이 있어
항상 만나는 온갖 괴로움인
늙고 병들고 죽고 곤궁한 길을 말한다.
성안의 아첨하는 사람은
번뇌 있는 선정의 지혜를 얻은
그 사람이 탐욕에 빠지고
은애에 걸린 것을 비유한 것이다.
금계(禁戒)를 지닌 장자는
스승님이 집착 없는 자비로서
항상 수행하는 이를 구제하여
온갖 고난 해탈케 함을 말한 것이다.
비유하면 저 많은 장사꾼들
그 가운데 있는 길잡이와 같이
불자(佛子)로서 감로(甘露)를 마시면
집착 없는 도를 얻으리.스승님께서는
수행하는 이를 위해서
괴로움·공·무상함·몸 아님을 강설하여
저 삼계란 요동하는 것으로서
편안하지 못한 것임을 자세히 보게 하셨네.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학(無學)의 지위에 이르기를 구하고 집착할 것 없음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부처님께선 중생을 불쌍히 여겨 연설하시고
능히 일체 괴로움에서 구제하셨으니
나는 부처님의 모든 경전을 살펴
무학의 지위를 찬탄하여 말하노라.
26. 무학지품(無學地品)
저 왕이 풀어놓은 술 취한 코끼리
흉포하고 해로운 어금니 몹시 날카로운데
독기를 품은 모든 용들도
모두 교화[化]하여 조복(調伏)하셨네.
온갖 공포와 환난(患難)에서 구호하시고
늘 자재(自在)를 얻게 하시는
저는 시방에 한량없는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예배드립니다.
하늘·용·귀신들도 큰 성인을 받들어
인민들을 이롭게 하고 모두 귀명(歸命)하여
모두들 공경하고 해탈을 얻으려고
모든 성인 떠받들고 머리 굽히기 원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학지(學地)에 이르면, 나고 죽음[始終]을 좋아하지 않고 이미 좋아하는 것이 없게 되면 삼계(三界)를 탐하지 않으며, 색계와 무색계를 초월하여 일체 번뇌[結]를 끊으며, 근(根 : 五根)과 력(力 : 五力), 그리고 모든 각의(覺意 : 7覺支)를 생각하고 멸진(滅盡)을 보아 적정(寂靜)을 삼나니, 이를 영원한 선정이라고 말한다.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색계와 무색계를 여의어 경솔하고 스스로 잘난 체함을 멀리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음이 이미 학지(學地)에 머물게 되었으면
모든 배움의 이치를 깨우치고
생사의 두려움을 제어하여
두려움 없애고 좋아하는 것 없네.
모든 환난 다하여 남음이 없고
보이는 것 사실 그대로 자세히 살펴
경솔함과 스스로 잘난 체함을 없애고
어리석음도 또한 이와 같이 소멸하네.
수행하는 사람이 혼자 생각하기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미 아라한을 이루어 무소착(無所着)의 경지를 얻었다. 모든 번뇌 영원히 다 끊었고 깨끗한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해야 할 일을 이미 성취하였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렸다. 스스로 이로움을 얻었고 나고 죽음을 끊었으며, 평등한 지혜를 얻었고 깊은 구렁을 벗어났으며, 쓸모 없는 잡초를 뽑아버리 듯이 번뇌를 다 없앴고 성현(聖賢)의 깃발을 이룩하였으니, 이미 저런 중생들[彼彼]을 제도해야 한다'라고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 학지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고 거룩한 도 이루었네.
이미 자기 자신이 이로움을 얻었고
괴로움을 벗어나 항상한 편안함을 얻었네.
한참 무더위에 산 속의 물 근원이 말라
흐르는 물 영원히 다 없어지듯이
공경히 받들어 조롱과 장난질을 여의었으니
이것을 무소착(無所着)이라고 말한다.
이미 5품(品 : 陰)을 끊으면 사람 가운데 최상(最上)이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5품을 끊고
6신통(神通)을 이루어 원만하게 갖추었나니
모든 번뇌를 제거함이
물로 옷의 때 씻듯 하였네.
생사의 환난을 여의고
제도에 의하여 안온함을 얻었네.
이것을 정사(正士)7)라고 말하나니
번뇌를 없앤 최상의 사람이니라.
이것을 아라한이요, 무소착을 얻었다고 말하나니, 마땅히 하늘 옷을 입고 신궁(神宮)에 거처하며, 자전(紫殿)에 노닐고 음식은 저절로 생기며, 갖가지 음악을 항상 즐기면서 기뻐 뛰놀다가 문득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입으로 선양(宣揚)하여 말하기를 "지금 내 몸이 열 가지 힘8)을 지닌 불자(佛子)가 되었
7)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정사(政士)'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정(正)자가 더 어울릴 것 같아 바꾸어 해석해 둔다.
8) 여래(如來)의 10력(力)과는 다른 능력으로 경론(經論)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 『구사론(俱舍論)』에 의하면,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숙주사생지력(宿住死生智力)·누진지력(漏盡智力) 등의 10력이 있다.
다"라고 한다.이것을 체득한 사람은 천상(天上)과 인간 세계의 중우(衆祐)로서, 모든 이들이 받들어 공경한다. 하늘 종자[天種]는 더욱 늘어나고 아수륜(阿須倫 : 阿修羅)은 줄어들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우뚝하게 높은 네 가지 덕9)으로 6통을 이루고
인욕의 지혜로 최상을 구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 구경(究竟)을 이루리니
그런 까닭에 무학의 자리를 강설한다.
27. 무학품(無學品)
방편으로 온갖 괴로움을 이기고
길이 모든 은애(恩愛)를 해탈하여
이미 생사의 고뇌를 여의고
번뇌를 소멸하여 다 없애버렸네.
마치 해가 솟으면 구름이 사라지듯
모든 애욕의 어둠을 여의신
존중한 분 부처님 거룩한 도에 귀의[歸命]하니
고통 없이 오래도록 편안하여라.
이미 모든 입(入)의 경계 해탈함이
비유하면 사람이 감옥을 벗어난 듯
또한 저 자마금(紫磨金)은
9) 상(常)·낙(樂)·아(我)·정(淨)의 네 가지에 있어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을 여읜 것을 말한다.
불 속에 있어도 손상 없는 것 같네.
선정으로 니원(泥洹 : 涅槃)의 적정에 이르면
일찍이 몸을 탐애하지 않네.
부처님께서 감로(甘露)를 체득하셨기에
저는 머리 조아려 예배드리기 원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유여니원(有餘泥洹 : 有餘涅槃)의 경지에 머무르면, 옛것을 마치고 새것을 짓지 않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일찍이 방일(放逸)하지 않으며, 모든 색(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細滑 : 觸]에 대하여 일체의 집착을 여의고, 다시는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어 괴로움의 뿌리를 다 뽑아 없앤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도무위(度無爲 : 波羅蜜)를 얻으면
길이 욕망하는 것이 없고
유여열반의 경지에 서서
옛것을 마치고 새것을 짓지 않는다.
색과 소리와 냄새에 집착하지 않고
온갖 맛과 촉감을 끊는다.
이를 비유하면 저 연꽃이
더러운 물에서도 더러워지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감관이 이미 안정되어
모든 입(入)의 미혹을 따르지 않나니
마치 금이 철과 섞이지 않는 것처럼
영원히 나고 죽음을 여의네.
인연을 집착함이 없어서 그리하여
오래도록 안온하게 되네.
이를 한가한 수행이라 하나니
고달픈 괴로움의 뿌리 멸해 다하네.
비유하면 쇠를 불 속에 넣어 빨갛게 달구어 망치로 두들기면 그 위의 때가 없어진다. 그런 다음에는 점차 다시 식어 그 뜨거운 불기운이 몰렸던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가령 무여니원(無餘泥洹 : 無餘涅槃)의 경지에 이르러 멸도(滅度)를 얻는다면 점차 괴로움을 면하게 될 것이다.그런 까닭에 이 경을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이라고 이름한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드리면
불꽃이 튀기다가 다시 곧 식듯이
저 수행하는 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멸도를 얻으면 간 곳[處]을 알지 못하리.
비유컨대 비가 오면 거품이 생겼다가
그 거품이 없어지면 간 곳을 모르듯이
가령 수행하는 이도 멸도를 얻으면
길이 그가 향한 곳을 알지 못하리.
하늘·신선·용·인민들이
멸도를 얻지 못하면 어디에 이르는가?
수행하는 이라면 덧없고 공(空)함을 헤아려
총명한 지혜로 멸도를 얻어야 한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이를 얻어서
감로를 헤아린다면 이보다 나은 이 없으리.
그리하여 깨달아 오래도록 안온하게 되고
이미 멸도를 얻어 무여니원에 이른다.
불세존께서 이를 비유해 말씀하시기를
저 달군 쇠 두드리면 불꽃이 튀기듯
점차 멸도로 향하는 이는
영원히 나아가는 바를 모른다 했네.
이미 멸도의 도를 얻은 이는
평등하게 해탈함이 이와 같고
부처님 지혜를 얻어 밝아진 이는
그 정신 편안하여 움직이지 않네.
이미 모든 더러움을 건너면
생사와 스스로 잘난 체함을 여의고
저 욕심 없음을 이룩하면
청정하여 맑은 못[淵]과 같으리.
이 『도지경』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 점차 해탈을 얻어 무위(無爲)의 경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무위를 구하여 멸도를 얻고자 하는 이
길이 흐림[濁]을 여의고 감로를 얻으려면
마땅히 이『도지경』을 강설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야 어둠 밝히는 횃불 얻으리.
지금 설하는 이 경을
가령 듣는 이가 있다면
부처님께서 그 길을 보이시어
항상 편안함이 그지없으리.
이와 같이 배운 사람은
곧 구경의 경지를 얻나니,
도의 자리를 수행하면
마음이 허공과 같아
5신통이 자재하고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영원히 꺼진 등불과 같이 되리라.
수행도지경 제 7 권
서진삼장 축법호 한역
28. 제자삼품수행품(弟子三品修行品)
높고 큰 부처님 덕(德) 거룩하시고
위신(威神) 또한 헤아릴 수 없어라.
도법(道法)으로 때를 따라 교화하시어
시방세계 모든 중생 제도하셨네.
생사의 번뇌를 보시고
법의 교량(橋梁) 나타내 보이시어
생사[始終]의 괴로움 비판하시고
니원(泥洹 : 涅槃)을 찬탄하셨네.
제자의 근기를 분별하여
근기에 맞추어 행(行)을 보이셨나니
차츰차츰 열어 인도하시어
아주 안온한 곳에 이르게 하시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생사의 우환(憂患)을 보아야 한다. 지옥의 혹독함·축생의 괴로움·아귀의 괴로움·인간의 근심·천상의 무상함 등은 견딜 수 없는 것인데, 이리 저리 두루 도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 나고·늙고·병들고·죽고·배고프고·목마르고·춥고·더우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원수를 만나는 괴로움과 근심하고 슬퍼하는 고통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여러 겁(劫)을 지나오는 동안 부모와 이별하고 형제와 이별하며 처자와 이별하면서 슬피 울고 흘린 눈물은 4해(海)보다 많고, 어머니의 젖을 마신 것은 5강(江)과 4독(瀆)의 흐름보다 더 많으며, 혹은 아비가 아들을 잃고 통곡하고, 혹은 아들이 아비를 잃고 통곡하며, 혹은 형이 아우를 잃고 통곡하고, 혹은 아우가 형을 잃고 통곡하며, 혹은 남편이 아내를 잃고 통곡하고, 혹은 아내가 남편을 잃고 통곡하는 등 위와 아래로 뒤바뀐 것을 이루 다 기록 할 수 없다.수행하는 사람은 온갖 괴로움의 뿌리와 어리석음의 근원을 관찰하여 모두 기피하고 싫어해야 한다.다만 이 생사의 병고[病]를 해탈하려고 하면, 낮과 밤으로 정진하여 도의 이치를 버리지 않고 무위(無爲)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전생[宿命]에 한량없이 많은 겁(劫)을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나고 죽었던 일들과, 가령 몸의 뼈들을 쌓아 보면 수미산(須彌山)보다 더 높다는 것과, 그 골수[髓]를 땅에 바르면 가히 온 천하를 두를 만하다는 것과, 죽었던 일들을 헤아려보면 삼천세계(三千三界)를 두를 만하다는 것과, 그 흘리고 떨어뜨린 피가 고금 천하에 내린 비보다 더 많다는 것을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천만 겁 동안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곤액(困厄)을 관찰하였기 때문에, 출가하여 수염을 깎고 머리카락을 깎으며, 정진에 오로지 하여 도를 구하고 세간의 영화를 바라지 않음이, 마치 밝은 이가 죽은 시체의 모양을 탐하지 않는 것과 같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수행하는 사람은 나고 죽음[始終]을 보나니
지옥의 고통과
축생과 아귀의 액난(厄難)과
천상과 세간의 이별과
나고 죽으며 전전하는 모습이
비유하면 수레바퀴와 같다네.
부자와 형제가 서로 헤어지고
아내와 자식이 이별하여 근심하며
슬피 울어 흘린 눈물은
사해(四海)의 물보다 더 많고
어머니의 젖을 마신 것은
다섯 강보다 더 넘치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가 출가하여
정진에 오로지 하여 도법을 위하고
세속의 영화 바라지 않는 것이
저 밝은 이가 독(毒)을 버리는 것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혼자 생각하기를 '내 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 동안 만나고 떨어져 이별하며, 걱정하고 속상해 했던 아픔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이 비유하면 마치 매우 취한 사람과 같아 아무 것도 깨달아 알지 못하고 그릇된 말과 지나가는 말로 스스로 진리를 살펴보았다고 하며, 은애(恩愛)에 집착함이 비유하면 마치 아교[膠漆]과 같아서 능히 스스로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곧 정진 수행하여 세속을 멀리하고 도를 가까이해야 한다'라고 한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멀리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구한 것과 같다. 그 나라에 간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큰 질에 걸렸다. 사망하는 이들이 많아서 열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죽은 시체가 낭자하여 그 시체 썩는 냄새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으며, 또한 이미 훌륭한 의원도 없고 게다가 좋은 약으로 치료할 수조차 없었다. 그 사람은 너무도 무서워서 그 나라에 간 것을 후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가령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환난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밤낮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그 걱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가령 내 병이 다 나아서 다시 한 번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다."그러던 그 사람은 마침 어떤 훌륭한 의원을 만나 약을 마시고 침을 맞고 뜸을 떠서 병이 점차 낫고 기력을 되찾아 건강해졌다. 그는 곧 본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서로 만나자, 스스로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곤액을 털어놓았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끝내 나다닐 엄두도 나지 않고, 저 나라에도 가지 않을 텐데 의복과 양식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그러나 스스로 편안하면 그만이다. 어찌 다른 사람들을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 다음부터는 저 나라의 이름만 들어도 떨고 두려워하여, 집을 나오려 하지 않고 그 몸만 지켰던 것이다.부처님 제자도 이와 같아서 5도(道)의 괴로움과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병폐와 끊임없이 나고 죽는 것을 보아, 밤낮으로 정진에 오로지 하고 선정에 들어 도를 생각하며, 세존의 가르침을 얻어 니원(泥洹 : 涅槃)을 찬탄하고 생사를 비난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의원이다. 좋은 약을 마셔 병을 고쳤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을 설한 경(經)으로써 3독(毒)을 제거해버리는 것을 말한 것이요, 죽은 시체가 낭자하다고 한 것은 5음(陰)과 6쇠(衰)를 말한 것이다.그 나라에 간 것을 후회하였다고 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많은 겁(劫)을 지내오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은애에 집착하고 오히려 마음에 잡다한 생각이 많아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진리[習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盡諦]·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에 대한 진리[道諦]를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도를 수행하여 증득하였다면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이 몸뚱이를 싫어하여 빨리 반니원(般泥洹 : 般涅槃)에 이를 수 있을 터인데, 능히 가르침에 돌아가지 않고 고집스럽게 불길 속에 있나니, 반드시 불세존(佛世尊)께서 나타내 보이신 본래 무(無)하다는 진리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고 물러나지 않아야 나아가고 물러남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멀리 장사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갔다가 병에 걸려
숱한 사람 다 죽어서 열에 하나만 남았고
죽은 시체 낭자하건만 묻어 줄 사람이 없었네.
마음으로 그 나라에 간 것을 후회하며
내 어찌 불우하게 이런 재앙을 만났는가 하다가
훌륭한 의원 만나 그 병이 나아서
본국에 와서는 다시 가지 않겠다고 말했네.
생사의 환난 두려워함도 이와 같이 하여
5도(道)에 돌고 도는 괴로움을 보고
본래의 잘못으로 도를 깨닫지 못한 것 자책하며
생사의 괴로움을 몹시 걱정해야 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진하여 열반을 구할 것이니
세간의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나고 죽는 곤액의 해악 시체처럼 여겨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위의 성[無爲城]으로 향하라.
수행하는 사람은 목숨이 아차 다하게 되면 해탈을 얻지 못하고 도로 세 갈래 세계로 돌아가 헤어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마땅히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은 저 세간 범부들이 3보(寶)와 어긋나고 어두운 데로 빠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비유하면 옛날 많은 장사꾼들과 같다. 멀리 나다니면서 생활을 영위하느라고 다시 넓은 벌판과 사람이 없는 곳을 헤매게 되었는데, 길을 가느라고 피로가 심하여 그만 졸려 누워 잠을 자다가 시간도 지키지 못하고 또한 무기도 정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도적 떼들이 몰려오는데도 깨닫는 이가 없어 활과 화살을 써보지 못하고 도적에게 살해를 당하였다.그 가운데 어떤 힘센 사람이 곧 도망쳐 빠져 나오게 되어 몹시도 배고프고 피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곧 다시 계획을 세워 애써 용맹스러운 반려(伴侶)를 구해 가지고, 다시 먼저 갔던 길을 따라 다니면서 장사하여 이익을 구하였는데 언제나 어두워지면 곧 휴식하면서 매번 시간을 지켜 밤에 걸었고 활과 화살을 정비하곤 하였다.도적들은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감히 맞서 겨루려 하지도 않고, 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곧 저절로 물러갔다.깊고 어둡다고 한 것은 어리석음의 그물[癡網]을 말하는 것이니,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행(行)을 이루고 의식을 내어 집착하여 명색(名色)·6입(入)·갱락(更樂 : 觸)·통(痛 : 受)·애(愛) 등으로 몸을 받아[受身], 나고·늙고·병들고·죽는 것과 근심·슬픔·고통 등의 뜻에 맞지 않는 행이 있게 된다.생활을 영위한다고 한 것은 수행을 말한 것이요, 피로가 심하여 누워 잤다고 한 것은 무상함[非常]·괴로움[苦]·공함[空]·몸이랄 것이 없다[非身]는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며, 시간을 지키지 못하였다1)고 한 것은 깊은 경(經)의 이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무기를 정비하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지혜를 따르지 않고 제 자신만을 구제하려는 데 급급해하고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도적에게 위험을 당하였다고 한 것은 선정의 생각에만 안주하여 공(空)하고 적정(寂靜)한 데에 들지 못하여 5음(陰)과 6쇠(衰)에 미혹되고 네 가지 뒤바뀜에 떨어져 무상한 것을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1) 원문은 '무행야자(無行夜者)'로 되어 있는데 앞에 나온 말을 재인용하여 풀이하고 있는 대목이므로 여기서는 당연히 불지시자(不持時者)로 되어야 한다. 역자는 앞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여 번역해 둔다.
괴로운 것을 즐거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몸이랄 것 없는 데도 몸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공한 것을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목숨이 다하면 하늘에 태어났다가 그 복이 다하면 세상에 돌아와 3도(塗)를 여의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힘센 이가 도망하여 빠져 나오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 것은 아라한(阿羅漢)을 얻었음을 말한 것이요, 곧 용맹한 반려를 구하여 다시 생활을 영위하였다고 한 것은 니원(泥洹 : 涅槃)에 이르러 아라한의 한계가 있어 구경(究竟)의 자리에 이르지 못함을 알고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다시 큰 뜻을 일으켜 보살이 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대중들과 더불어 반려를 삼아 서로 따라 걸었다고 한 것은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 : 波羅蜜)과 모든 평등한 행(行)을 말한 것이다.무기를 정비하고 시간을 지켜 밤에 걸었다고 한 것은 대자대비로 공행(空行)을 분별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도적이 저절로 물러갔다고 한 것은 생겨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 : 無生法忍]과 걸림 없는 지혜로 삼계(三界)는 공한 것이라고 보아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 네 가지 마군(魔軍)이 모두 항복함을 말한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목숨이 다하고 나면
삼악도(三惡道)에 들까 두려워하여
나라는 것을 억측하여 헤아리지 말고
삼보(三寶)에 귀의해야 한다.
비유하면 옛날 어떤 장사꾼과 같다.
멀리 떠나 재리(財利)를 구하였는데
졸려서 그만 누워 잠을 자다가
악한 도적에게 해를 당하였다.
그 가운데 힘센 이가 있어
온힘을 다해 도망쳐 벗어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액난을 당했다가
이제야 편안함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이미 아라한의 도를 얻고 나서
스스로 그 한계가 있음을 알고
생사에 들지 않고서
니원(泥洹)으로 장애를 삼네.
1)다시 용맹스런 반려를 규합하여
무기를 정비하고 시간을 지켜 밤에 다니므로
도적이 보고 감히 맞서지 못하여
바로 물러나 제 소굴로 돌아갔네.
무위의 경계에 이르러
니원의 한계를 알고
보살의 뜻을 일으켜
대자대비를 행하네.
깊은 공행(空行)을 분별하여
집착도 끊음도 없이
돌고 도는 생사를 해탈하면
삼계의 환난이 있지 않으리.
수행하는 사람이 법을 받들어 네 가지 평등심(平等心)에 들어가서도 큰 자비가 없다면, 이를 비유하면 마치 조그마한 용은 능히 한 고을에만 비를 내리게 할 뿐, 골고루[周遍] 비를 내리게 하지 못하여 아무리 인민을 위하지
1) 니원의 즐거움에 집착하여 안주하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만 그 혜택이 부족한 것처럼, 아라한이 행하는 네 가지 평등심도 그와 같다.만일 바다의 큰 용이 널리 온 천하에 비를 내리게 하여 적시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살대인(菩薩大人:菩薩摩訶薩)의 대자대비는 널리 중생들에게 골고루 미쳐 제도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부처님이신 천중천(天中天)께서 마음을 보시는 것도 그와 같으시어 나타내 보이신 한계가 니원(泥洹 : 涅槃)보다 더한 것이 없나니, 점차 앞으로 나아가면 큰 도에 이르러 본래의 미혹을 알게 될 것이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세 아들을 둔 것과 같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 아이들을 길러 어른이 되게 하였는데, 의복·음식·의약(醫藥) 따위를 일찍이 부족한 적 없게 해주었다.아버지는 점차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약해지자,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효성스럽지 못하다. 너희들을 낳아 길러서 이제는 성인이 되게 하였는데, 이젠 내가 이미 늙었는데도 너희들은 공양하여 어릴 적에 길러준 은혜를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핍박하여 재물과 의복과 음식을 요구하고 있으니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하느냐? 마땅히 관청[縣官]에 알려서 너희들을 모질게 다스리리라."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분부를 듣고, 곧 두려움을 품어 아버지에게 목숨 바쳐 다짐하였다. "저희들 형제들이 어리석은 소치로 의리를 알지 못하고 부모가 길러주신 은혜와 덕은 돌아보지 않은 채 제 몸만 애중히 여기고 더 깊은 은혜가 있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잘못을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지엄한 가르침을 듣고 곧 마땅히 명을 받들어 효도를 하되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게 하겠으며,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 저희 조상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그 때 모든 아들들은 각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고 온갖 7보(寶)를 다 구해왔다.그리하여 부모를 공양하는 지극한 효도가 높고 높아, 오직 두 어버이만을 생각하고 제 몸을 돌아보지 않았다.그러다 마침 큰 빛을 띤 구슬을 얻었는데, 그 구슬의 이름은 조명(照明)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 구슬을 가져다가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는 그 조명주(照明珠)를 보자 하얗던 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빠졌던 이도 도로 났으며, 훌륭한 장자(長者)가 되었으므로 멀고 가까운 데서 모두들 우러러보았다.이를 이른바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아들이 곧 효도한다고 하는 것이니, 제자가 수행하게 되면 어찌 큰 자비가 없을 수 있겠는가?아버지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고 한 것은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識]을 말한 것이요, 아들을 길렀다고 한 것은 음욕·성냄·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삼계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의복과 음식은 5음(陰)과 6쇠(衰 : 根)와 12인연의 속박을 말한 것이요, 아들이 자라서도 계속 공양을 바랐다고 한 것은 모든 정욕(情欲)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아버지가 관청에 찾아가 알리려고 하자 두려워하였다고 한 것은 무상한 것임을 깨닫고 6입(入)을 끊으려고 한 것을 말한 것이요, 아들이 그 분부를 받고 효도를 다하여 봉행(奉行)하겠다고 한 것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세 아들이 다시금 효순(孝順)하였다고 한 것은 보시·지계·지혜의 근원을 말한 것이다.바다에 들어가 일곱 가지 보물을 얻었다고 한 것은 7각의(覺意)에 이르러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이룬 것을 말한 것이요, 마침내 효도가 지극해졌다고 한 것은 제자로서의 한계는 니원의 경계에 이른 것임을 알아 다시 큰 뜻을 일으켜 보살도(菩薩道)를 행한 것을 말한 것이며, 조명주를 얻어 아버지가 다시 젊어졌다고 한 것은 현재 세계에서 뜻을 안정시켜 시방의 부처님을 뵙고 장애되는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세 아들을 낳아서
길러 어른이 되게 하였으나
예전처럼 아비한테 의식을 구하였네.
아비가 세 아들에게 말하기를
나도 이제 매우 늙었으니
너희들이 마땅히 아비를 공양해야 할 터인데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도 내 힘만 바라느냐?
너희들을 고을 관청에 알려서
5독(毒)으로 매를 때리게 해야겠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부를 듣고
곧 받들어 봉양하며 효도하였다.
곧 바다에 들어가 7보를 구해다
존엄하신 아버지께 공양하고
또 조명주(照明珠)를 얻어오니
아버지는 다시 젊어지게 되었네.
세 아들은 마음·뜻·의식을 말함이요
정욕에 만족할 줄 모르다가
아버지가 꾸짖자 곧 효도한 것은
보시·지계·지혜의 도를 말한 것이다.
7각의(覺意)를 따라서
아라한을 이루어 니원에 들었다가
부처님의 크고 깊은 가르침을 받고
다시금 보살심(菩薩心)을 내었나니
도덕이 매우 크고 높아
시방 부처님을 뵈옵고
4대의 몸에 장애되지 않음이
마치 허공이 걸림 없는 것과 같았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한 마리의 자라[鼈]가 바다에서 나와 노닐다가 언덕까지 이르렀는데 큰 여우 한 마리가 그 자라를 쫓아와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였다.자라는 여우가 오는 것을 보고 머리와 네 발을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추었다.여우는 그곳에 머물러 기다리면서 만약 머리나 네 발이 껍질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내 마땅히 잡아먹으리라고 하였다.자라는 위급해 꼼짝도 하지 않았으므로 여우는 지쳐서 내버리고 가버렸다. 자라는 큰 용왕 신에게 찾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했고 용왕의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두려움 없음을 얻게 되었다. 그와 같이 능히 5음을 제어하여 마군에게 농락을 당하지 않아야 열반의 도를 얻는다.용이 되었다고 한 것은 보살도(菩薩道)에 들어가 네 마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라가 머리와 발을 웅크리고 두려워하지 않듯
아라한도 그와 같고
비상하여[飛] 신이 된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다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구하기 위하여 멀리 집을 떠나 추위와 더위를 겪으면서 큰 이익을 얻으려고 할 적에 혹은 어떤 곳에서 도적을 만나 그 사업을 잃기도 하는데, 그러나 또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그냥 자기 나라에서 교묘한 방편으로 한량없는 이익을 얻어 4방에 공급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공을 쌓고 덕을 쌓아 무상한 것이고·괴로운 것이며·공(空)한 것이고·몸이랄 것이 없다는 것을 헤아려 알고, 바깥 온갖 물질의 성패(成敗)를 관찰하여, 혹은 선정을 얻어 나한도(羅漢道)를 이루고 다시 마음을 일으켜 보살도를 구하는 이도 있고, 혹 통달한 사람은 4대(大)가 공한 것이어서 안팎이 있지 않음을 알고, 큰 자비를 행하여 시방을 가엾이 여기되 비록 제도한 것이 있어도 제도한 바 없다고 하며, 도는 멀고 가까운 차별이 없고 지혜를 최상으로 삼으며, 평등각(平等覺)을 얻어 과거·미래·현재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이도 있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떤 사람이 먼 데 나가 장사를 하듯
제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을 쌓고 악로(惡露)를 관찰하며
온갖 물질이 무상한 것임을 살피네.
보살은 멀리 나가지 않고도 이익을 구하는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생사와 니원(泥洹)도 없는
1)평등각을 이룬다네.
수행하는 사람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삼계의 환난을 싫어하여,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몸을 싫어할 뿐, 본래 무(無)한 것이라는 이치를 알지 못하여 속히 환난만 초월하려 하고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다.비유하면 군대가 무너지면 모든 못난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 구제하려고 하고 위험한 액난(厄難)을 구제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3독의 번뇌를 제거할 것과 니원(泥洹)의 쾌락을 말씀하시어 어둠을 여의고 밝은 데로 나아가게 하신다.비유하면 길잡이[導師]가 많은 장사꾼을 거느리고 나아가는 것과 같다. 먼 길을 가다가 크고 넓은 텅 빈 벌판을 만났는데 물과 풀[草]이 하나도 없었다.
1) 아라한(阿羅漢)은 생사(生死)를 초월한 경지인 니원(泥洹)을 증득해 거기에 안주하다 다시 보살도(菩薩道)를 증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위에 있으나 보살도를 증득한 이는 생사는 물론 니원마저도 초월한 경지에 머물면서 중생 교화(敎化)를 위해 회향(廻向)한다.
장사꾼들은 울부짖으며 탄식하였다. "길은 멀고도 먼데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을까? 궁지에 빠지게 되었구나."그 때 그 길잡이는 총명하고 널리 배워 알았으며, 또한 도술(道術)까지 지니고 있었다.길잡이는 장사꾼들이 마음속으로 길을 걸어가기를 걱정하고 짜증내고 있음을 알고 바로 중간 지점에 성읍(城邑)·인민·토지(土地)가 풍요(豊樂)롭고 5곡이 풍성한 어떤 나라를 변화로 만들었다.장사꾼은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의논하였다. "어찌 이렇게도 유쾌한가? 본래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어느 때나 이런 환난을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당도할 것이냐고 하였었는데, 마침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곧 이런 성에 이르게 되었으니, 마땅히 무엇을 또 두려워하겠는가?"그 때 모든 장사꾼들은 바로 그 나라에 머물면서 유쾌하게 서로 오락하고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다가 싫증이 나자, 성곽도 없어지고 국토도 보이지 않았다 장사꾼들은 모두 괴상하게 여겼다. "무슨 까닭에 이런 일이 있는가?"길잡이가 대답하였다. "그대들이 걱정하고 짜증내면서 길이 너무도 멀어서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기에 내가 일부러 성·국토·인민들을 변화로 만들어 그대들을 편안히 쉴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대들이 싫증을 내기에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다."부처님 말씀도 이와 같아서 제자의 수행은 시작과 끝남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즉 생사의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삼계의 환난을 두려워하여 재빨리 멸도에 들려고 하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나한(羅漢)의 도를 나타내 보이시어 손쉽게 얻게 하시며,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유도(誘導)하여 생사를 해탈하게 하고 세 가지 번뇌[垢 : 毒]를 다 없애게 하시며, 무위도(無爲道)를 얻어 스스로 통달하고 성취하여 원만하게 갖추게 하시며, 멸도(滅度)할 때에 다다르면 부처님께서는 곧 앞에 계시면서 큰 도를 나타내신다.
이는 아직 통달하지 못하였으므로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일으키게 하신 것이니, 생겨남이 없는 법인(法忍)을 얻고 일체지(一切智)에 이르러야 비로소 통달하게 될 것이다.비유하면 어떤 나라가 세 가지 액난을 만난 것과 같다.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도적이고, 둘째는 흉년이며, 셋째는 질병(疾病)이다.여러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나라가 안정되자, 혹은 돌아오는 이도 있고, 혹은 세 가지 어려운 환난을 두려워하여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이도 있었다.부처님 말씀도 그와 같아서 그 나라라고 한 것은 삼계를 말한 것이고, 세 가지 액난을 만났다고 한 것은 3독의 번뇌를 말한 것이며,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갔다고 한 것은 나한을 말한 것이고, 나라가 안정되자 돌아왔다고 한 것은 보살이 생겨남이 없는 법인과 심오한 일체지[一切深慧]를 얻고 삼세(三世)에 다시 들어가 일체를 제도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세 가지 액난을 당할까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 것은 나한이 무위도(無爲道)를 얻고는 세 가지 액난을 만날까 두려워하여 능히 돌아와 중생을 해탈시키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여러 장사꾼들이
크고 넓은 벌판을 걷다가
너무도 피로하여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하므로
이에 길잡이가 성곽을 변화로 만들었네.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쉬면서
편안히 세월을 보내다가
그 마음 싫어짐을 알고서
바로 없애어 나타내지 않았네.
불세존께서도 그와 같이
생사의 환난을 두려워하는 것 보시고
곧 그들 위해 무위도를 나타내어
삼계의 괴로움을 해탈하게 하셨고
반니원(般泥洹 : 般涅槃)에 임할 때에는
큰 도의 교화를 보이시어
생겨남이 없는 법인을 체득하게 하고
널리 일체를 제도하게 하셨네.
또한 비유하면 큰 나라가
갑자기 세 가지 액난의 환난을 만난 것과 같아서
각기 흩어져 다른 나라로 갔다가
나라가 안정되자 돌아오기도 돌아오지 않기도 했으니
생사의 환난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은 제자를 말하는 것이고
나라에 돌아오길 두려하지 않는 것은
보살이 시방세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다.
지혜의 방편으로 교화 인도하여
각기 그 곳을 얻게 하시는 것이
마치 큰 배의 사공이
왔다갔다 휴식이 없는 것처럼
불세존도 그와 같아서
법신(法身)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일체에 두루 돌아다니시며
햇빛처럼 온통 비추어 주시네.
29. 연각품(緣覺品)
저 연각(緣覺)을 좇아서 스스로 깨달아 알지[了] 못하는 것은 이미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일으켰어도 훌륭한 벗[善友]과 가까이하여 참다운 법을 받지 않고 혼자서 제멋대로 행하기 때문이다.가령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 : 波羅蜜)의 가르침을 받들지라도 모두 생각[想]을 두며, 존호(尊號)와 32상(相)과 80종호(種好)와 위신(威神) 등 존귀하고 중한 것들을 얻고싶어 할지라도 좋은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지 못하여 부처님께서 나타내신 색신(色身)을 도리어 몸이 있다고 억측하므로 문득 연각에 떨어지게 된다.비유하면 어떤 남자가 큰 바다를 보려고 하다가 저수지나 많은 강하(江河)에 이르자, 거기서 보배를 구하여 수정(水精)과 조그마한 명월주(明月珠)를 얻고는 스스로 금강(金剛)의 훌륭한 광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살심(菩薩心)으로부터 물러나는 이는, 여래(如來)의 나고 듦이 없는 법이 없는 것과 공(空)하여 형상이 없는 것과 도에는 과거·미래·현재 같은 삼세가 없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여 공을 보고도 결정지어진 것이라고 말하면서 공(空)에 알맞은 행(行)을 깨달아 알지 못하며, 겨우 삼계를 해탈하여 앞으로 더 전진해 나아가지 못하므로 위로는 부처님의 지위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제자를 뛰어넘어 중도(中道)에 멈추고 만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천제석(天帝釋)를 보려고 마음먹었다가 변방(邊方)의 왕을 보고는 그가 바로 천제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정각(正覺)을 배우려고 마음먹었다가도 뜻의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깊은 지혜를 알지 못하여 도로 연각에 떨어지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만일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부처님께서는 곧 연각법(緣覺法)을 보이시어 인도하신다.비유하면 어떤 장자와 같다. 나이도 매우 많이 먹은 데다가 또한 아들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집은 오래되었기 때문에 기둥이 썩고 그 중심에서 불이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모든 아들들은 방일하여 다섯 가지 향락에 빠진 채 그런 재앙을 깨닫지 못하였다.그 때 그 아버지가 생각하기를 '이 집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기둥의 중심에서 썩고 불이 일어난다면 기둥이 부러지고 집이 무너져 사람이 깔려 죽게 될까 더욱 걱정스럽다. 장차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면서, 방편을 써서 유도하고 교화하여 그곳을 벗어나 불의 환난을 면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아버지는 곧 밖에다 여러 가지 기악을 차리고 사람을 시켜 아들들을 불러냈다. "내 지금 당장 너희들에게 각각 코끼리·말·수레·마니주(摩尼珠)를 주겠노라."그러자 여러 아들들은 저 멀리서 기악 소리가 들려오고 또한 아버지의 명령을 들었으므로 모두 집에서 뛰어나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아버지는 곧 모든 아들들에게 각기 보배 수레와 좋은 탈 것들을 주되 평등하게 배분하여 치우치지 않았다.모든 아들들이 아뢰었다. "아까 존경하는 아버님께서 저희들을 불러 나오라고 하시면서 각각 온갖 기이한 보물을 주시겠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어째서 똑같이 평등하게 배분하시는 것입니까?"장자가 대답하였다. "우리 집이 지은 지 오래되어 기둥 중심이 썩고 그 속에서 불이 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기둥이 부러지면 너희들이 깔려 죽게 될까 염려스러워 일부러 기악을 차리고 너희들을 불러냈는데 이제 너희들이 나왔으니, 내 마음이 안정되었다. 너희 모두는 다 내 아들이므로 평등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다 똑같이 진귀한 보배와 수레를 주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도 그와 같다. 저 낡은 집이라고 한 것은 삼계를 말한 것이고, 기둥이 썩어 무너지려고 한다고 한 것은 3독의 환난으로 나고 죽음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 것이며, 기둥 속에서 불이 일어나려 한다고 한 것은 온갖 생각[想念]을 말한 것이고, 장자는 여래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며, 모든 아들들이 방일(放逸)하다고 한 것은 삼계의 탐욕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기악을 차렸다고 한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죄와 복을 비유한 것이고, 모든 아들들을 불러내어 각기 보물을 주겠다고 한 것은 3도(道)의 가르침을 나타낸 것이며, 모든 아들들이 모두 나오자 아버지가 보배를 평등하게 똑같이 나누어주었다고 한 것은, 대승(大乘)에는 3도(道)가 없음을 나타내 보이신 것으로 멸도(滅度)에 다다랐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비
유하면 어떤 장자에게
아들들이 매우 많았는데
그들은 다섯 가지 향락에 스스로 미혹되어
오래된 낡은 집에 그대로 집착하였다.
기둥이 썩어서 무너지려고 하고
중심에서는 불이 일어날 상황이 되자
아버지는 집이 무너져 내리면
모든 아들들이 깔려 죽게 될까 염려했네.
그래서 일부러 모든 기악을 차리고
아들들을 나오게 하여 똑같이 보물을 주듯
불세존(佛世尊)께서도 그와 같아서
연각으로부터 뜻 이루게 하시고
멸도할 때에 다다르면
부처님 그 앞에 머무시어
그들 위하여 한 법의 가르침인
대승은 평등하여 다름 없음을 나타내셨네.
수행하는 사람이 뜻을 일으켜 큰 도를 구하려고 하면서 본래 무(無)한 이치를 깨달아 알지 못하면, 부처님의 색신(色身)인 32상과 80종호(種好)가 사람 가운데 거룩하신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방의 제왕(帝王)이신 분의 명호(名號)는 전륜왕(轉輪王)이다. 그 분은 4천하를 주재(主宰)하고 계신다. 그는 일곱 가지 보배를 지니고 있으며 아들 천 명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 아들들도 다 힘이 세고 용맹스럽다. 성은 넓고 또한 기다란데 동쪽에서 서쪽까지 480리이고, 남쪽에서 북쪽까지 280리이며, 그 가운데 큰 궁전이 있는데 4방 40리나 되고, 네 가지 보배로 만든 상좌(床座)가 있다.인민들은 치성(熾盛)하고 다섯 가지 곡식이 풍부하여 그 쾌락이 그지없으며, 기악을 연주하는 소리에는 12부(部)가 있고 부인(夫人)과 채녀(婇女)들이 8만 4천이나 되며, 여러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8만 4천이나 되고 코끼리·말·수레 등 탈 것의 수도 또한 그와 같다.그 왕에게는 네 가지 덕(德)이 있다. 어떤 것을 그 네 가지 덕이라고 하는가?장자·범지(梵志)·범부·인민들이 모두 거룩한 황제 공경하기를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받들 듯하는 것이요, 왕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생각하기를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어여삐 여기듯 하는 것이며, 왕이 교화하면 백성들이 잘 받아 받들어 행하는 것이요, 모든 데[遠近]에서 귀의[歸命]하기를 마치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의지하여 사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그에게는 또 네 가지 덕이 있으니, 추위도 없고 더위도 없는 것이요, 애초에 굶주리거나 목마름이 없고 나면서부터 일찍이 병이 없는 것이니, 이런 것들은 그가 지은 본래의 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런 말을 들은 다음 그 성스러운 가르침을 사모하여 성제(聖帝)를 뵙기 위하여 곧 출발하였다. 길을 가는 도중에 몹시 지쳐 있었는데, 마침 어떤 이교도(異敎道)를 만났다. 그를 따라 들어가니, 어떤 큰 성이 보였다. 거기에는 인민들이 치성했고 우거진 숲과 흐르는 물이 있어 그 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음을 보고, '이 성이 바로 성제의 성이로구나'라고 하면서 그 국토에 눌러 앉았다.그러나 이곳이 비록 즐겁기는 하였으나, 그 사람은 그곳이 귀신의 처소인 줄은 깨닫지 못하였다.그 때 휴식(休息)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천왕이 있었는데 곧 그 사람을 보고 '이곳은 성제의 나라가 아니고 귀신의 나라이다. 전륜성왕은 위엄과 덕이 높고 크신 분이다'라고 설명해주자, 그 때서야 비로소 즐거워하면서 그 분을 친근히 하여 받들어 모셨다. 가령 뜻을 일으켜 보살도를 배운다 할지라도 깊은 이치를 깨달아 알지 못하고 공(空)하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여 이 세간에는 부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한가한데 드나들고 나무 밑에 앉아 만물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공한 것이고 이 몸뚱이는 오래 지탱할 수 없는 것임을 관찰할지라도 본래 무(無)하다는 이치를 알지 못한 채 연각을 얻어 스스로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니원(般泥洹)에 다다르면 부처님께서 앞에 머물러 계시면서 큰 법의 깊고 미묘한 가르침인 12인연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임을 나타내 보이시고, 그제서야 근본과 끝이 공하여 과거·미래·현재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대자대비하여 삼계를 보지 않고 니원의 생각[泥洹想]도 없애고서야 비로소 정진(正眞)을 이룩하고 일체를 해탈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 성왕을 찾다가
어떤 성을 보고 도리어 그 나라라고 여긴 것처럼
모든 작은 나라 왕들이 전륜성왕 사모하듯
거기서 오락하면서 크게 통달하였다 말하네.
저 휴식천왕이 그를 보고 찾아가
여기는 귀신의 나라로서
훌륭한 황제 전륜성왕이 아니라고 설명하자
그때서야 놀라면서 스스로 잘못을 알았네.
곧 떠나 대제(大帝)의 나라로 찾아가
위신과 덕 높고 큰 것을 보고는
내 어둡고 몰라 오래 미혹했었다 하면서
바로 성왕을 받들어 항상 모시고 따랐네.
큰 도를 배우려다가 깨닫지 못하고
도로 연각에 떨어짐도 그와 같나니
다음에 부처님의 깊고 미묘한 행 받고야
비로소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에 이른다.
빛나고 빛나는 부처님의 위덕(威德)
그 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되
평등한 마음 일체에 더하시어
3독의 이름조차 제어하게 하시네.
길이 생사의 괴로움 해탈하고
지혜로 인해 도를 이루셨나니
청정함이 햇빛과 같아
삼계의 어둠을 환히 비추시네.
30. 보살품(菩薩品)
수행하는 사람이 혼자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나고 죽음에 처해 있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수레바퀴가 오르락내리락 되풀이하면서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시작하고 끝마침도 그와 같아서 왔다갔다하는 환난을 겪으면서 삼계를 떠나지 못하나니, 모두 이 어리석음 때문에 본래 무(無)하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4대(大 : 몸)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억측하며 거기에 의지하고 진리로 삼는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요술장이가 변화로 만든 허깨비를 보고 그것이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허깨비인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나라는 것을 탐착(貪着)하고 신명(身命)이 있는 것이라고 억측하면서 그 몸이 흙[地]·물[水]·불[火]·바람[風]의 요소임을 깨달아 알지 못한다.이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멀리 떠나 노닐고 싶어 다른 나라로 나아갔다. 그들은 본래 길이 험난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항상 두려운 마음을 품고 도적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여 4방을 관망하다가, 저 멀리 모든 언덕과 수많은 돌·풀·나무 따위를 보고는 '수천 백 기(騎)의 큰 도적 떼가 나타났으니 장차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제각기 흩어져 달아나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그 가운데 어떤 길잡이[導師]가 있다가 여러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하였다. "경솔하게 이곳을 버리고서 매우 어려운 곳에 이르러 물도 음료수[漿]도 없는 일을 겪지 말라. 혹은 곤궁한 액난에 직면해 목숨을 건지지 못하거나, 혹은 몹시 곤핍(困乏)하여 그런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왔다갔다 하다가 이미 지쳐서 피로만 더욱 더 심해지고 재물은 죄다 잃을 것이니, 장차 무엇을 의지해야 할 것인가?벌거벗어 살이 꽁꽁 어는 한이 있더라도, 마땅히 믿고 의지할 곳을 구해야 하리니, 호부(豪富)한 사람을 따라 귀의하여 구원을 빌어야 한다.또한 스스로 마음을 안정하고 함께 서로 화합한 다음 사람을 보내 정탐(偵探)하여, 가령 도적이 없다면 바로 전진할 것이요, 가령 도적이 덤벼든다면 마땅히 뜻을 굳게 하고 함께 싸워 쫓아버리고 무너뜨리도록 해야 한다.왜냐 하면, 한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열 사람도 당해내지 못하고, 열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백 사람도 당해내지 못하며, 백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천 사람도 당해내지 못하고, 천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만 사람도 당해내지 못하며, 만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온 천하를 종횡(縱橫)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여러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고 나서는 다시는 흩어져 달아나지 않고 모두 멈추어 단속하면서, 사람을 시켜 가만히 정탐하여 보니 오직 풀·나무·기와·자갈 같은 것만 보이고 도적들은 영원히 없었다.여러 사람들은 기뻐하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가며 모두 말하였다. "우리 길잡이 같은 분은 온 천하에 둘도 없으신 분이다. 지혜 있고 총명하여 이 천하엔 짝할 만한 이가 없다."그리하여 나아가고 멈추는 행동에 대하여 모두 그의 지시대로 따르고 감히 어기지 않았다.보살대인(菩薩大人)의 수행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길잡이가 되어 삼계가 다 공(空)한 것이고 일체는 조화로 만들어진 것이며, 5음은 허깨비[幻]와 같음을 알고, 생사를 마다하지 않고 그 몸을 멸하며, 시방을 열어 교화[開化]하여 바른 길을 보여주나니, 보살의 깊고 멀어 짝할 이 없음과, 삼계에서 생사를 해탈케 함을 찬탄하노라.제자는 이미 옹졸하게도 항상 나약한 생각을 품고 재빨리 몸을 멸하려고만 하므로 일체에 미치지 못하고, 또한 구경(究竟)의 자리에 이르지도 못하여 마땅히 도로 후퇴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처음 뜻을 일으킨 때로부터 이로 인하여 보살의 가르침을 듣고 모두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낸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보살 대사의 수행은
일체는 공한 것이고 몸은 변화와 같다는 것과
인연으로 합하여 이루어진 이 몸이
마음 바르지 못해 삿된 것 따른 줄 안다네.비
유하면 장사꾼들이 먼 길을 가다가
저 멀리 나무를 보고 도적이라 생각하여
마음에 각기 두려움을 품고 뿔뿔이 도망가는데
길잡이가 설득시켜 마음이 곧 안정된 것 같다.
보살도 그와 같아 본래 무(無)한 것임을 알고
일체 중생의 길잡이가 되어 법을 널리 말하여
제자들에게 큰 도의 심오함 보이니
저 햇빛 솟자 뜬구름 없어지듯 하였네.
보살은 도를 배워 점차 앞으로 나아가 다함없는 지혜[無極慧]에 이르고, 6도무극으로 인하여 공행(空行)을 분별하여 수없이 많은 겁[無央數]을 지내는 동안 공(功)을 쌓고 덕(德)을 쌓아야 비로소 부처님의 도를 얻게 된다.비유하면 사람이 젊어서 벼슬길에 나아가면 처음에는 빈궁하였지만 점차 큰 부자가 되고, 승(丞)이나 위(尉)가 되었다가 마침내는 영(令)이나 장(長)이 되기도 하며, 2천 석(石)의 녹을 받는 지위에 나아갔다가 점차 주목(州牧)의 장이나 4정(征), 또는 공경대신(公卿大臣)에도 오르고, 점차 제왕·전륜성왕·천제(天帝)·범왕(梵王)까지도 되는 것처럼, 보살도를 차례로 배워나가는 것도 또한 이 비유와 같다.점차 뜻을 일으켜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일심(一心 : 禪定)·지혜(智慧)를 닦아 6정(情)을 제어하고 3독(毒)·5음(陰)·6쇠(衰)의 번뇌를 제거하며, 공(空)·무상(無相)4)·무원(無願)의 법으로 향하고 붙퇴전(不退轉)5)의 지위에 이르러 일을 원만하게 갖춘 일생보처(一生補處)6)를 이룬다.비유하면 마치 거울[鏡]을 가는 것[磨]과 같다. 잘 씻은 평평한 철(鐵)판을 가져다가 자꾸 갈아서 섬세하게 만들면 다시 광명을 발하는 것처럼, 점차 6도무극을 익히고 행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劫) 동안 공을 쌓고 덕을 쌓는다면, 저절로 부처를 이루고 시방 세계의 중생들을 인도하여 제도하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4)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상(想)'자로 되어 있으나, 이 글의 내용으로 볼 때 '무상(無想)'은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3해탈문(解脫門) 가운데 하나인 '무상(無相)'에 해당하므로 '상(相)'자로 바꿔야 마땅하다.
5) 산스끄리트어로는 avinivartan ya라고 함. 아비발치(阿鞞跋致)·아유월치(阿惟越致)라 음역. 퇴(退)는 퇴보·퇴폐의 뜻. 한 번 도달한 수행의 단계로부터 뒤로 물러나거나, 수행을 퇴폐하는 일이 없는 것. 그 지위를 불퇴위(不退位)라 한다. 여기에 지위상의 불퇴·수행상의 불퇴·향상심의 불퇴·주처상(住處上)의 불퇴 등이 있다.
6) 산스끄리트어로는 ekaj ti-pratibaddha라고 함. 한 생만 지내면 다음 생에는 부처님의 지위에 이를 것이라고 부처님 전단계의 지위를 확인받는 보살로서의 최고 지위에 부촉하는 명칭으로 등각(等覺)의 지위.
마치 사람이 젊어 벼슬에 나아가
위(尉)가 되고 영장(令長)이 되며
2천 석의 녹을 받고 주목(州牧)도 되고
4정(征) 또는 공경(公卿)까지도 되며
대왕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도 되고
해·달·천제석(天帝釋)도 되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 공덕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6도무극(度無極 : 波羅蜜)을 받들어
이것을 행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시방 세계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모두 매우 안락한 곳에 이르게 한다.
보살은 선정을 배워 오로지 순수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점차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그 뜻을 교화하고 인도해야 한다.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하던 어떤 사람은 날마다 달마다 그렇게 앞으로만 나아가고 물러나지 않았다.아무리 배고프고 추워도 일찍이 마음이 흔들리거나 바뀌지 않았으며, 먼 거리이든 가까운 거리이든 또 수고로운 곤액(困厄)까지도 다 따지지 않고 걷기를 쉬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바닷가에 이르러 사람들과 같이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채취하려고 하였다.그는 비록 세 가지 어려움[三難]이 있는 줄 알았지만 겁내지 않고 큰 용왕이 거처하는 궁전에 이르러 가장 미묘한 여의명주(如意明珠)를 구하여 궁핍한 이들에게 공급해주려고 하였다.용왕은 구슬을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보시하되, 절대로 아까워하지 말라. 많은 사람이 다 혜택을 입어도 이 구슬은 달아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느니라."
그는 구슬을 얻어가지고 은혜를 입어 바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편안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보살도 이와 같아서 평등한 마음으로 도를 행하여 자(慈)·비(悲)·희(喜)·호(護:捨)로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되 오로지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향으로 한결같이 향하고 일찍이 게을리 하거나 중단한 적이 없어, 7일· 10일·3개월·1년까지 그렇게 했으며, 세속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고 아울러 중생들을 교화하며, 마하연(摩訶衍:大乘)의 다함없는 가르침을 타고 시방의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아 선정을 얻으며, 삼매(三昧)에 들어 동요하지 않고 일체 중생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용왕(龍王)으로부터 여의주를 얻어 그 혜택이 널리 중생들에게 미치게 한 것과 같다.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하늘에 옥(玉)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데 단정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말을 듣고 가서 마음으로는 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신족(神足)이 없었다.그래서 밤낮으로 상상하면서 눕거나 일어나거나 늘 잊지 않은 채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도록 일찍이 다른 생각을 두지 않았으므로 문득 꿈속에서 그 곳에 가서 그 여인이 앉고 일어나고 나아가고 멈추는 모양을 보게 되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무 방향에 계시는 부처님을 향하여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쉬지 않고 사유하면서, 삼매 선정을 얻어 가식적이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 여러 겁을 지내는 동안 싫어하지 않아 저절로 부처를 이룬 것이다. 보살은 도를 행함에 대자대비하여 일체를 가엾게 여긴다.옛날 어떤 사람이 그 눈이 밝지 못하여 햇빛을 보지 못하자 마음속으로 걱정하기를 '아무리 해가 밝게 비추어도 내 눈이 어두워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라고 하다가, 신기한 의원을 만나 감로(甘露)를 마시고 곧 속병이 없어지자, 그 눈이 정밀하게 밝아져 햇빛도 확실하게 보고 8방(方)과 위·아래와 모든 인민들까지 살피는 것처럼, 처음 큰 뜻을 냈을 적에는 6입(入)·5음(陰)·3독(毒)을 제거하지 못하여 능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보지 못하다가 보살을 성취하고 깊은 법의 깊은 가르침을 받고 나서는 네 가지 평등심[等心]을 행하고 삼계가 공(空)하다는 것을 알고, 문득삼매를 얻어 시방의 부처님을 뵙고, 정의(定意)를 좇아 일어나서 중생을 구제한다.비유하면 진귀한 보배를 수정(水精) 위에 얹어 놓거나, 또한 그릇에 유리(瑠璃)를 담아놓으면 유리 빛이 그릇과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다른 뜻을 두지 않으면, 곧 정의(定意)를 얻고 시방의 부처님을 뵙나니, 부처님의 위신(威神)과 본래 덕(德)의 소치(所致)로서 불세존(佛世尊)을 뵙게 되는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는데
일찍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중단하지 않고 마침내 이르러서는
사람들을 모아 같이 배를 타고 용왕에게 가서
큰 보배인 여의주(如意珠)를 구하여
일체 중생들에게 보시하여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보살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은혜를 행하고
대자대비로 큰 도를 행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진하여 삼매의 문에 든다.
어떤 사람이 하늘에 옥녀(玉女)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생각하다가 꿈에서 만난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평등하게 정진하여
시방의 부처님을 뵙되 두루하지 않음이 없네.
또한 눈이 어두운 이 햇빛을 생각하다가
훌륭한 의원의 치료로 눈이 곧 밝아지듯
보살도 그와 같아 오로지 부처님을 향하여
일찍이 쉬지 않고 물러가지 않는다.
마치 보배를 수정에 얹어 놓으면
서로 반사하는 빛 비추지 않음이 없듯이
보살도 그와 같아서 삼매 선정을 얻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두루 교화한다네.
보살은 공을 쌓고 덕을 쌓아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므로 중생 보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고, 중생 보기를 어머니와 같이 하며, 중생 보기를 아들과 같이 하고, 중생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하여 평등하게 대하고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다섯 갈래 세계[五道] 가운데 사람이 되어 괴로움이 한량없어도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아무리 다섯 갈래 세계에서 나고 죽는 환난과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혹독함과 축생의 괴로움과 천상(天上)과 인간의 시작하고 끝마치는 고액을 겪을지라도 마음이 돌아서거나 동요하지 않으며, 큰 자비를 행하고 네 가지 은혜를 싫증냄이 없으며, 시방 세계 중생을 구제하여 온갖 생각[想念]에서 해탈하게 한다.비유하면 저 달이 처음 나올 때는 조그마한 염소 뿔과 같다가, 날마다 점차 커져서 마침내는 원만하게 둥글어지고 광명이 널리 비추어 뭇 별들보다 유독 더 빛을 발하는 것처럼, 차례로 도를 배워 보살이 되는 법도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一心 : 禪定)·지혜를 닦아 수 없이 많은 겁(劫)을 지나는 동안 고달픈 노력을 다하여 몸과 마음이 서로 호응하고 말과 행동이 서로 맞으며, 시방 세계의 사람들 생각하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 하여 친하거나 소원함이 없다.비유하면 나무를 심으면 점점 움이 트고 다음에 줄기·마디·가지·잎·꽃·열매가 생기는 것처럼, 점차로 수행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처음 뜻을 일으킬 때부터 부처님께 향하기를 좋아하여 기쁜 마음을 얻고 악한 세계[惡道] 돌아다니는 일을 쉬며, 6도무극(度無極)의 법을 성취하고 좋은 방편과 생겨남이 없는 법인(法忍)과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들며, 법륜(法輪)을 굴리고 멸도(滅度)를 나타내고 보이며, 큰 법을 유포하여 후생(後生)들에게 은혜를 입게 한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큰 집을 지으려고 하면 먼저 집 지을 자리를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에 점차 그 터를 다지고 차츰차츰 담을 높고 크게 쌓는다. 재목으로는 대들보와 기둥을 마름질하여 견고하게 하고 기와로 지붕을 덮으며, 진흙으로 앙니(仰泥)를 발라 완성한 다음에 백토(白土)로 맥질하면 하얀 벽(壁)과 빨간 기둥이 엄연히 높고 큰 집을 이루게 된다. 그런 뒤에 친족·집안 사람·좋은 친구[善友]·마을 사람들을 골고루 빠짐없이 초청하여 음식을 차려놓고 풍악을 울리면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쌓은 행이 한량없이 많아도 고달프게 여겨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으며, 저 중생들이 다섯 갈래의 세계에 윤회하고 나고 죽음의 바다에 두루 도는 것이 마치 맷돌[磨]과 같이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 큰 자비와 번뇌 없는 지혜를 일으켜 일체를 구제하려고 한다.비유하면 마치 어느 곳이나 덮지 않는 곳이 없는 허공과 같아서 도덕을 이룩하여 삼계에 나타나 머무르고 색신(色身)인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보여 대중들로 하여금 보고 기뻐하게 하며, 시방 사람들을 위하여 사자후(師子吼)를 지어 일체가 그 소리를 듣고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게 하며, 각기 본래의 마음을 따라 삼승(三乘)의 행을 이루게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처음 뜻을 일으킨 보살이
시방 세계 중생들을 자비하게 생각하기를
부모와 아들과 제 몸 같이 하여
평등한 마음으로 바람[希望]이 없다네.
점차 일으켜 행하는 자취가
저 나무 움을 틔우고 줄기와
가지·잎·마디·꽃·열매에 이르도록
그 가꾼 공력(功力)이 허망하지 않듯이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점차 도를 받들어 행하여
공덕이 원만함을 이루고
평등하여 가장 길상(吉祥)하다네.
마치 크나 큰 집을 지을 적에
땅을 고르고 터를 다지고 담을 쌓는데
자꾸 쌓아서 높고 크게 만들고
지붕을 덮고 방원(方圓)을 바르게 한 다음
친족과 마을 사람 초청하여
음식 차리고 풍악 울리며 즐기듯이
보살도 중생을 구제하되
도의 광명으로써 해탈하게 한다네.
어떤 것을 초행(超行)이라고 말하는가?마침 도의 뜻을 내어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와 좇아 생겨남이 없는[無所從生] 데에 이르고, 원만하게 갖추고 성취하여 아유안(阿惟顔)7)에 이르는 것이다.함께 행하면서도(俱行) 보살만 무슨 연유로 홀로 그렇게 하는가?삼계가 공(空)한 것이라는 사실과 5음(陰)은 처소가 없다는 진리와 네 가지 진리[四諦]는 근본이 없어 생각[想]을 반연하여 생겨난다는 것과 12인연이 어리석음을 근원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어리석음의 근원을 관찰해보아도 또한 처소가 없건만, 집착하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어리석음이라 말하나니 지혜 있는 사람은 본래 무(無)하다는 것을 깨달아 안다.비유하면 요술쟁이가 변화로 만든 사람을 돌이켜 관찰할 때 사람이 있다고
7) 산스끄리트어로는 abhi eka라고 함. 보살의 10주(住)의 지위 가운데 열 번째 관정주(灌頂住)의 지위를 말함.
보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삼계가 공한 것임을 살피되 마치 아지랑이·꿈·허깨비·파초(芭蕉)와 깊은 산 속의 메아리는 다만 이름만 있고 볼 수 없는 것과 같다.옛날 어떤 사람이 혼자서 꿈속에서 어떤 나라에 인민들이 많고 그 왕은 몹시 엄격하고 조급하여 모든 신하들이 받들어 섬기되 감히 뜻을 어기지 못하는 것과 5곡이 풍성한 것과,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창기(倡伎)들이 기악을 연주하며 오락하는 것을 보았다.그 사람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구경 삼아 그 나라의 왕을 찾아가서 보았다. 왕은 곧 그를 등용하여 대신을 삼고 관직(官職)·종[僕]·토지·집·7보(寶)를 주었으므로, 그는 한량없이 많이 좋아하면서 날뛰었다.그는 또 꿈에서 제 자신의 몸이 다시 지옥과 아귀의 세계에 들어가고 나귀[驢]의 몸이 되어 그 무리들 가운데서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에 올라 7보로 꾸민 궁전에서 옥녀(玉女)와 서로 오락하며 즐기는데, 문득 꿈을 깨고 보니 얻었던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곧 스스로 다섯 갈래 세계가 꿈과 같고 일체는 본래 무(無)한 것이어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이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으면 불퇴전의 경지를 얻고 처소 없는 데에 이르며, 방편 지혜가 원만하게 갖추어지고 큰 도를 밝게 배워서, 마음은 허깨비와 같고 5음과 6입(入)은 여러 신하와 같다고 관찰하며,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細滑: 觸]·법(法)과 그리고 다섯 갈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저 사람이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과 같아서, 보아도 본 것이 없고, 또한 꿈에서 생각[想]했던 것도 없나니, 이것을 초월하여 다 함없는 지혜에 이르고, 차례를 반연[緣]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의 몸과 5음을
관찰해보면 처소가 없고
네 가지 진리와 열두 가지 인연
저 일체가 다 요술과 같다.
마치 그가 밤에 꿈 속에서
어떤 나라에서 매우 쾌락을 누리면서
왕의 대신이 되어
풍류와 부귀영화를 즐기다가
지옥과 아귀의 세계에 들어가
나귀가 되어 그 속에서 울부짖고
또 천상(天上)의 7보로 된 궁전에 올라
서로 즐기다가 깨고 나니 보이지 않는 것 같네.
지혜 있는 사람은 삼계와 5음을
죄다 꿈과 같은 것이라고 관찰하여
처소가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안 까닭에
생기고 소멸됨이 없는 법인을 체득한다네.
도법은 멀고 가까운 차별이 없고
허공과 같아 처소가 없나니
마음이 비[空]고 본래 무(無)한 것임을 알아서
갑자기 해의 큰 광명처럼 밝아지네.
이 경지에 이른 지혜는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네.
도에는 과거·미래·현재가 없으니
깨닫고 보면 본래 아무 것도 없다네.
어떤 것을 초행(初行)이라고 하는가?사람의 근본은 본래 하나[一]이건만 그런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는 집착을 일으킨다. 마침 그렇게 집착하면 곧 속박되게 마련이다.
속박되었기 때문에 해탈을 구하나니, 집착하지 않고 속박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해탈을 구하겠는가?비유하면 다섯 가지 사물인 구름·안개·티끌·연기·재[灰]가 허공을 덮어도 능히 저 허공을 더럽힐 수 없는 것과 같다네. 마음은 본래 허공과 같고 5음(陰)의 독(毒)은 다섯 가지 사물과 같나니, 마음은 본래 가리우지도 않고 모양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지혜가 걸림이 없다면 심오한 법인(法忍)에 들어가게 되므로 차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일찍이 범부(凡夫)로 있었을 적에 집이 가난하고 궁핍하여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 드디어 단월(檀越)로부터 음식을 얻어먹고는, 하나의 좋은 마음을 일으켰다. '나는 전생에 보시하지 않은 죄로 인하여 오늘날 빈궁한 액난을 당하여, 옷으로 몸을 가리지도 못하고 음식은 입을 채울 수조차 없는데, 게다가 복은 짓지도 못하고 부처님으로 인하여 먹을 것을 구하게 되었구나. 만약 나에게 재물만 있다면 널리 보시하여 부처님도 공양하고 모든 거룩한 대중들에게 부족한 것을 공급해 주리라.'그 때 세존과 모든 거룩한 대중들은 각기 흩어진 뒤였다.그러자 그 걸인은 자책하였다. '나는 본래 박복하여 덕을 일으키지 못해서 이러한 곤욕과 궁색함을 겪고 있구나.'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나무 그늘 밑에 누웠다.해가 어느덧 정오가 되자 다른 그늘은 모두 옮겨졌으나, 그가 누워있는 나무 밑 그늘은 옮겨가지 않았고, 그 몸의 모든 때가 다 제거되어 위엄과 덕망이 저절로 드러났다.그 때 국왕이 죽자 마땅한 어진 사람을 찾아서 군주로 모시기 위해 온 나라를 빠짐없이 샅샅이 뒤졌다.그러다가 그 걸인의 뛰어나고 특이한 덕과 마치 큰 일산과 같은 나무 그늘이 그를 덮고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가 여러 신하에게 보고하고 그의 위엄과 덕망을 찬탄하였다.그러자 인민들이 모두들 기뻐하면서 수레를 잘 장엄해 가지고 그를 받들어 맞이하여 국왕으로 세웠다.그는 제왕(帝王)이 되자, 널리 덕으로 교화를 일으키고 부처님과 거룩한 대중들을 공양하였다.사람도 다섯 갈래 세계의 나고 죽고 하는 괴로움과 5음(陰)·6입(入)·12인연에 얽매여 있다가, 부처님의 심오한 법과 본래 무(無)한 것이라는 지혜에 대하여 들으면 대자대비를 일체 중생들에게 더하여, 비록 사람을 제도하려고 할 적에도 사람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제도하고 나서도 제도한 것이 없고 하여 나라는 것을 보지 않는다. 삼계(三界)는 메아리와 같고, 일체 것은 무아(無我)이며 다 평등하여 허공과 같다고 알면 곧 지혜로 불퇴전법과 좇아 생겨남이 없는 법인과 아유안(阿惟顔 : 一切智)에 초월하여 들게 되나니, 이것을 덕이 있되 또한 얻는 바가 없다고 이름한다.비유하면 해가 솟으면 온갖 어둠이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돌이켜 평등을 이룩하면 더 나아갈 것도 물러날 것도 없고 얽매임이 없으니 또한 해탈할 것도 없게 된다.비유하면 금산(金山)은 자연 그대로 조작하는 일이 없어서 금을 구하는 일에 밝은 사람은 바로 금을 얻고 어렵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같다.사람도 본래 청정하여 더러운 때[垢穢]가 없으면 누구나 이 지혜를 깨달아 곧 도의 문에 들어가 걸림이 없을 것이며, 마치 허공과 같이 저절로 청정해져서 일부러 청정하게 할 것이 없을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떤 사람 오래도록 빈궁하여
거룩한 대중들을 따라 걸식하다가
문득 혼자 돌이켜 자책하기를
내가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 말하고
곧바로 공경하는 마음 일으켜
중생을 자애롭게 생각하여
내가 만일 제왕이 된다면
만 백성에 보시하겠다고 말했네.
그가 곧 나무 밑에 누우니
나무 그림자가 그의 형체 가렸네.
사신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여
죄다 가서 받들어 맞이했네.
그를 세워 국왕으로 모시니
그는 부처님과 거룩한 대중을 섬겼네.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초월하여 본래 청정한 것임을 깨달았네.
쌓은 덕 높고 우뚝하며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니
다섯 가지 일이 허공을 더럽히지 못하듯
마음의 청정함이 보배 꽃과 같네.
다섯 갈래 세계의 액난에서 구제하고
나고 죽는 두려움을 제거하니
마치 둥근 보름달이
별 중에 유독 밝은 것과 같네.
옛날 어떤 사람이 부처님은 지식이 어느 정도이시고 몸의 형상은 어떤 모습이며 하시는 말씀은 또 어떠하신 지 알고 싶어서 찾아가 뵈려고 하였다. 아난(阿難)이 멀리서 보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멀리 오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일찍이 없었던 사람이다."그 사람이 곧 앞으로 나아와 부처님을 뵈려고 하였으나 뵐 수가 없었다.
불신(佛身)은 갑자기 자리를 뜨시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사람은 혼자 생각하기를 '일부러 와서 부처님을 뵈려고 해도 뵐 수가 없으니 어떻게 살피고 기억해야 할까?'라고 하다가 문득 스스로 깨달았다. '세존의 법신(法身)은 본래 형상이 없는 법인데 우리 중생들을 위하여 그 모습을 나타내신 것이다. 비유하면 사람이 깊은 산에서 소리를 치면 그 소리를 따라 메아리가 호응하고 대답으로 인하여 소리가 있는 것처럼, 법신(法身)도 처소가 없거늘 무슨 연유로 뵈려고 하는가?' 마침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문득 좇아 생겨남이 없는 법인과 아유안(阿惟顔 : 一切智)을 얻고 안팎이 없이 널리 평등하여 허공과 같음을 깨달아 알아서 정각(正覺)의 자리에 초월하여 들어갔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뜻 일으켜
불세존(佛世尊)을 뵈려고 하였네.
세존은 어떤 분이시며
말씀하시는 법의 이치는 무엇인가?
아난이 그를 어떤 사람이냐고 여쭙자
부처님께선 전에 없었던 사람이라 말씀하시고
거룩한 몸 갑자기 나타내지 않으므로
어디에 계시는지 괴이하게 여겼네.
곧 스스로 지혜로써 깨달아
불신은 노니는 곳 없으시고
그 체성 공한 것인데 지혜로 도에 머물러
골고루 나타내 보이지 않는 데 없으시니
도법은 메아리가 호응하는 것 같고
마음은 평등하여 원수가 없다고 했네.
이치 알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허공처럼 덮지 않는 곳 없으리.
처음 뜻을 일으킨 보살이 일체를 구제하려고 할 적에, 네 가지 원소[大]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는 인연이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허깨비와 같은 것이고 또 비유하면 빌린 물건과 같아서, 나의 소유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의 소유도 아니며, 또 목재로 만든 기관목인(機關木人)과 같아, 대상 경계를 인하여 움직인다고 관찰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물건을 보고는 곧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지혜 있는 사람이 이 물건을 본다면 나무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지 사람이 아니라고 할 것이니, 삼계의 모든 것 다 공(空)함도 그와 같은 것이다.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과 12인연도 본래 오고 감이 없나니, 비유하면 마치 물 속에 그림자와 같아서 모양과 이름이 없다. 이와 같이 행하는 이는 법의 성[法城]으로 초월하여 들어가게 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처음 뜻을 일으킨 보살은
4대가 본래 공한 것임을 알아
나고 죽음과 열반(涅槃) 보기를
다 똑같이 여기네.
비유하면 마치 남의 물건을 빌렸으면
당연히 도로 돌려주어야 하는 것처럼
나니 남이니 하면서 따지지 말고
모든 어둠을 제거해야 한다.
심(心)·의(意)·식(識)을 보지 않아
도(道)의 밝음이 강과 바다보다 넓으며
삼계는 허깨비와 같음을
보살은 깨달아 풍송(諷誦)하며
5도는 아지랑이와 같다는 진리를
여러 악한 이들도 모두 부처님 종자가 있으므로
모든 알지 못하는 이를 교화하고 인도하지만
법신(法身)은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네.
혹 지혜 있는 이는 스스로 여래(如來)의 행(行)에 대한 뜻을 일으켜 말씀[言說]에 의하지 않고도 정각(正覺)에 이르나니, 그것은 마치 태양의 밝은 광명이 한꺼번에 널리 두루 비추는 것과 같다.공(空)의 이치를 아는 이는 도(道)니 속(俗)이니 하는 견해가 없고 평등하게 보는 것이 마치 고요한 허공과 같아서 영원히 무엇이라고 이름할 수가 없다.비유하면 텅 빈 벌판 더러운 진흙탕 속에 종자를 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푸른 연(蓮)의 줄기와 꽃이 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은애(恩愛)하는 가운데 삼계의 환난에 처해 있어도 홀연히 지혜로 해탈하여, 나고 죽음을 보지 않고 니원(泥洹)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일체를 교화하여 매우 안락한 데에 이르게 한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 때 마음을 일으킨 보살이
공의 이치 분별하여 근본과 끝을 알고
도법에 들어 모자라는 것 없이
지혜를 구족(具足)하고 신통을 얻었네.
마치 연꽃이 더러운 진흙에 피어나듯
여래의 뜻 일으키고 보살을 이루어
일체 중생의 무리 교화하고
법의 문에 평등하게 머물러 정각을 이루었네.
저 진흙 속에 피어난 청정하고 좋은 연꽃
네 종류 빛깔로 네 가지에 비유했네.
차례를 초월하여 아유안(阿惟顔)에 이르고
용맹의 힘으로 조복하여 수릉엄(首楞嚴)에 든다네.
보살이 수행하는 도를 비유하면, 하늘을 나는 새가 공중을 훨훨 날아다녀도 전혀 걸리는 것이 없고 공중을 땅처럼 여겨 허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보살도 이와 같아서 뜻을 일으키는 순간에 문득 도의 지혜[道慧]에 들어가 훌륭한 방편[善權方便]으로 부족함이 없어진다. 마음이 허공처럼 평등해지고 안주하여 머무는 곳이 없으며, 생사(生死)를 여의지도 않고 니원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이 모두에 대하여 더하고 덜한 것이 없다.비유하면 다섯 가지 각기 다른 빛깔은 모두 풀과 나무를 반연하고, 풀과 나무가 생겨나는 뿌리는 모두 땅을 반연하며, 땅 밑에는 물이 있고 물밑에는 바람이 있으며, 바람은 허공을 반연하여 성립되는 것과 같다.이와 같이 헤아린다면 모든 것 존재하는 것 없음이 마치 뜬구름이 갑자기 기운으로 생겨나는 것과 같나니, 하물며 이르는[至] 데 없음이겠는가?보살은 이와 같이 삼계는 다 공한 것임을 알고 있나니 그것을 비유하면 마치 바람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억측하여 헤아리면 곧 삼계가 다 존재하겠지만,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으면 어찌 상대[彼]가 있다고 억측하여 헤아리겠는가?밝지도 않고 어둠지도 않으며, 청정한 것도 없고 청정하지 않은 것도 없으며, 문득 본래 무(無)한 데에 들어가 버리면 또한 나가고 들어옴이 없다.비유하면 옛날에 어떤 조그마한 벌레가 마음에 금강(金剛)을 품고, 바닷가에 있는 커다란 염부수(閻浮樹) 위에 머문 것과 같다.그 나무의 높이는 4천 리쯤 되었는데, 자꾸만 흔들려서 스스로 안정할 수가 없었다.그러자 그 나무의 신(神)이 나무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진동하여 안정하지 못하는가?"나무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 위에 벌레가 있기 때문에 안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신이 또 물었다. "아주 커다란 금시조(金翅鳥)가 그대 위에 앉았을 적에는 무슨 이유로 끄떡도 하지 않더니만 겨우 저 조그만 벌레가 앉아 있는데 혼자 흔들어대느냐?"나무가 대답하였다. "이 벌레가 비록 작긴 하지만 뱃속에 금강을 품고 있으므로 나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떨고 있는 것이다."저 조그마한 벌레는 뜻을 일으킨 보살을 말하는 것이고, 저 큰 나무는 삼계를 말한 것이며, 나무가 흔들려 안정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뜻을 일으킨 보살이 깊은 지혜에 초월하여 이르고 아유안(阿惟顔 : 一切智)에 도달할 적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여섯 종류로 진동하는 것을 말한 것이고, 저 금시조가 나무 위에 머물렀는데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 것은 모든 제자들이 비록 네 가지 도(道)를 이루었으나 능히 감응한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큰 나무에 작은 새가 머물러도
떨리고 안정하지 못해 다섯 갈래로 흩어지듯
보살대사(菩薩大士)도 그와 같아서
초월하는 행 성취하면 삼천세계가 진동하고
그 마음 견고함이 금강과 같아
일체 생사의 환난에서 해탈하네.
제자는 마치 금시조와 같아
삼계에 있어도 감응하는 것이 없다네.
보살은 혜해탈(慧解脫)로 깊고 미묘한 데에 들어가고 차례를 좇지 않아, 마치 사람이 갑자기 임금이 되는 것과 같다. 범부(凡夫)도 본래 무(無)하다는 이치를 깨우치면 마음이 허공처럼 평등해지고 처소가 없어져서 아유안에 이르게 된다.옛날 허공에 홀연히 약(藥)나무가 생겼다. 가지와 잎은 널리 여덟 방위와 위아래를 다 덮었고, 그 기운은 온 천하를 비추어 온갖 독한 풀과 나무의 악한 기운을 제거하였으며, 온 천하를 잘 길러 크고 작은 모든 사람들을 다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땅이 높은 곳은 낮게 만들고 낮은 곳은 높게 만들어 온 천하를 평평하게 하여 시내와 골짜기와 산과 언덕이 없었으며, 7보가 저절로 있고, 감로(甘露)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므로, 크고 작은 인민들은 저마다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우리가 본래 복이 있어 모든 환난을 여의었고 들고나는 행보(行步)에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사나운 짐승과 도적의 고난도 없고 약 나무가 저절로 생겨나서 그에 힘입은 사람들이 다 편안해지며, 바람과 비가 제때에 있어서 다섯 가지 곡물이 다 잘 익어 풍년이 들고 얼굴 색이 화열(和悅)하고 의식(衣食)이 저절로 이르며, 온갖 많은 괴로움이 없다."마치 큰 나무가 갑자기 허공에 생겨나서 천하를 널리 골고루 비추는 것과 같아서 가령 범부가 생사의 가운데 있다가도 갑자기 심오한 지혜로 해탈한다면 진실로 본래 무(無)한 경지에 이르러 걸림이 없게 된다.기운이 온 천하를 고루 비추었다고 한 것은 저 보살이 큰 광명을 놓아 부처를 이룩하여 모든 사람들의 음욕·성냄·어리석음 따위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 것이고, 잘 길러 편안하게 하였다고 한 것은 4부(部) 대중으로 하여금 도의 이치를 받들어 행하게 하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며, 높고 낮은 데를 다 평평하게 하였다고 한 것은 다섯 갈래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평등한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고, 7보가 저절로 있다고한 것은 7각의(覺意)를 말한 것이며, 감로가 비 내리듯이 쏟아졌다고 한 것은 보살이 법을 강론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인민들이 편안하고 5곡이 잘 익어 풍년이 들었다고 한 것은 생사를 끊고 5신통을 얻어 마침내 큰 이치를 깨닫고 아유안(阿惟顔)에 머무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사
람이 갑자기 국왕이 된 것과 같이
보살 대사도 또한 그와 같아서
깊은 지혜 밝게 깨달아 다함 없는데 이르고
부처님의 도를 이룩하여 시방을 제도하네.
마치 허공에 생겨난 크나 큰 약 나무가
뿌리·줄기·가지·잎이 사방으로 분포해
여덟 방위와 위·아래를 골고루 비추며
땅의 높낮이 평평하게 고르고 5곡 풍성하게 하듯
생사에 얽매인 범부의 몸을 가진 사람도
문득 깊은 법 깨달아 알면
은혜를 유포해 시방 사람들 3도를 해탈하게 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에 감로를 뿌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