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보여래삼매경(佛說寶如來三昧經)
불설보여래삼매경 상권
천축(天竺)삼장 지다밀(祇多蜜) 한역
김혜경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열기성(羅閱祇城) 죽림원(竹林園) 안에 계셨다. 그때 1,250명의 비구 스님들과 90억 명의 보살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문수사리(文殊師利)와 비등(比等)한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열국 죽림원은 사방의 가로와 세로가 위로 36천(天)에 이르렀고, 아래로 무극불찰(無極佛刹)의 국토에 이를 만큼 넓었다. 그곳 모두에는 문타반꽃[文陀般華]이 피어 있었는데, 모두 90만억 종류의 색깔을 지녔고, 각각의 기이함은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한 송이의 꽃에는 백만 개의 잎이 달려 있었고, 잎 위에는 모두 한 분의 달살아갈(怛薩阿竭:여래)께서 계셨으며, 모두 온갖 보배로 장식된 일산(日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일산에서는 각각 온갖 음악이 흘러나와 서로 즐거워하였다. 한 분 부처님의 앞에는 각각 한 보살이 있었는데, 모두 문수사리보살과 비등하게 일에 대해 물었다.
이때 죽림원의 국토는 모두 평등하여 마치 3미륵불(彌勒佛)의 국토와 같았다.
이 삼천대천세계의 해와 달은 모든 부처님 경계에서 광명이 모두 사라져 밝음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일시에 모든 부처님 경계의 대지옥(大地獄)에서 혹독하게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다 고통이 멈추어져 모두 안온하게 되었고, 백 일 동안 모두 시방(十方)의 부처님만을 보게 되었다. 그때에 이르러 짐승들과 날아다니는 새들도 모두 백 일 동안 먹지 않고 오직 법미(法味)만을 들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중생들은 다시 부처님을 뵐 줄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때 나열국 안의 백성들도 백 일 동안 다시 다섯 가지 맛의 음식[五味]을 먹지 않고 오직 법(法)만을 맛보아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리(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발하였으며, 삼천대천(三千大千) 부처님 경계에 있는 나무들도 저절로 음악을 내어 서로 즐거워하였다.
이때 죽림원이 변하여 연못이 되었으며, 그 연못 가운데에서는 10만 종의 연꽃이 피어나니 크기가 마치 작은 산과 같았다. 한 연꽃마다 40만 개의 잎이 피었는데, 잎사귀 위에는 낱낱이 교로(交露:구슬장식)로 만들어진 사자좌(師子座)가 있었고, 그 자리마다 각각 문수사리와 비등한 한 명의 보살이 앉아 있었다. 그 각각의 자리마다 하늘이 그 앞에서 보살을 모시고 있었고, 교로로 만든 휘장 사이에는 각각 온갖 음악이 흘러나와 모두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천 년이나 지난 마른 나무마다 모두 꽃이 피어났고, 삼천대천 부처님 세계의 모든 나무들은 가지를 구부려 사면(四面)으로 서로 마주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인도하신 죽림원에 있던 여인들은 모두 변하여 남자가 되었고, 애욕이 없어져 누구 할 것 없이 법안(法眼)을 증득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넓고 크게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나타내시자, 곧 9억만의 부처님이 계신 세계[佛刹土]가 감동하였다. 그때 삼매는 조금도 남김없이 시방에 통했으니, 동방 무극불(無極佛)의 국토에서는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내었는데, 모두 여래와 동등하였으며, 각각 형상이 없는 꽃과 색깔이 다른 십만 가지의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와서 정각(正覺)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정각 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남방의 무극불 국토에서도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도 각각 20만 가지의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정각 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서방의 무극불 국토에서도 각각 다 여래와 같은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 또한 각각 색깔이 다른 30만 가지의 꽃들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대중들이 모여 있는 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북방의 무극불 국토에서도 다 여래와 같은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도 각각 색깔이 다른 40만 가지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대중이 모여 있는 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동각(東角)1)의 부처님 국토에서도 모두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각각 형상이 없는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부처님과 대중이 모여 있는 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남각(南角)의 부처님 국토에서도 역시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각각 생각과 욕심이 없는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꽃을 정각과 큰 모임에 뿌리고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서각(西角)의 수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서도 모두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도 각각 소리가 없는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부처님과 큰 모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북각(北角)의 무극불 국토에서도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도 각각 문니(文尼)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그 꽃을 부처님과 대중이 모인 곳에 뿌리고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또 상방(上方)의 무극불 국토에서도 각각 다시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도 각기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정각과 큰 모임의 자리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하방(下方)의 수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서도 각각 여래와 동등한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냈는데, 그들도 각기 여러 절묘한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정각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정각과 큰 모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상방의 여러 하늘들도 과거세(過去世)에 공덕이 매우 높아 부처님의 큰
1) 동각(東角)ㆍ남각(南角) 등에서 ‘각(角)’은 4유(維)의 간방(間方)을 뜻한다.
법회에서 넓고 크게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만나게 되었는데, 각각 스스로 장엄하였으며 천상의 여러 천자(天子)들로 하여금 모두 처음으로 발심하게 하였다.
범천(梵天:梵衆天)이 수없이 많은 하늘들을 거느리고 제각기 하늘의 향과 꽃을 가지고 왔으며, 범다회천(梵多會天:梵輔天)도 다시 수없이 많은 하늘들을 거느리고 제각기 천상의 온갖 꽃과 향을 가지고 왔으며, 변정천(遍淨天:3禪天의 제3천)도 세간의 꽃이 아닌 훌륭한 꽃을 가지고 오는 등 모든 높은 하늘들이 다 천상의 기악(伎樂)을 가지고 허공에서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삼천대천이 다 법음(法音)으로써 밤낮 백 일 동안 이와 같이 받아서 죽림원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애욕(愛欲) 천자(天子)도 또한 수없이 많은 천자들을 거느리고 제각기 하늘의 기악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를 올리니, 허공에서 여러 하늘들이 즐거워하였으며, 가익천(迦翼天)의 모든 하늘들도 천만 가지 온갖 향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 위에 흩뿌리고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진천(盡天)의 여러 하늘들도 다 와서 죽림원에 모이니 위로 36천(天)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한 하늘도 빠짐이 없었다. 모든 천자와 여러 대용왕(大龍王)들도 제각기 다시 수없이 많은 관속들을 거느리고 세간 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꽃을 가지고 와서 죽림원에 비처럼 내리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아수륜왕(阿須倫王)도 제각기 수없이 많은 관속들을 거느리고 각자 온갖 꽃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의 위에 비 내리듯 뿌렸다. 여러 가루라(迦樓羅)들도 제각기 다시 수없이 많은 관속들을 거느리고 죽림원에 이르렀고, 여러 진다라(眞陀羅)들도 제각기 또한 수없이 많은 관속들을 거느리고 죽림원에 왔으며, 모든 마후륵(摩睺勒)들도 다시 관속들을 거느리고 죽림원에 왔다.
부처님께서 그때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나타내시자, 곧 9억만 부처님 국토가 진동하였다. 사리불(舍利弗)이 대지가 크게 진동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먼 곳에 있는 여러 보살들과 모든 하늘의 백성들이 다 모였는데, 위로 36천에 이르기까지 대지가 크게 진동하니, 이것은 어떤 감응이 있어서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감응이 없는 감응[無應之應], 이것이 바로 그 감응이니라.”
사리불이 다시 천중천(天中天)께 아뢰었다.
“감응이 없는 감응이 바로 그 감응이라 하셨는데, 그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에게 생겨난 의혹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거든 보여래(寶如來)보살의 처소에 가 보거라.”
사리불이 의복을 단정히 하고 보여래께 예를 올린 후 조금 있다가 합장하고 보여래께 아뢰었다.
“오늘 시방세계와 위로 36천에 이르기까지 백천억 부처님의 국토에 있는 보살들이 다 모였으니, 이제 어떤 감응이 있겠습니까? 여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보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아라한이 본래 의혹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알고자 왔군요.”
보여래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만약 항상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극진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지어짐[作]도 없으므로 보법(寶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발심(發心)하였을 때 36억 사람과 함께 보살도(菩薩道)를 구하였는데, 정각께서도 그때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일체가 다 생겨났지만 나[我]만은 조작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다 작용이 있었지만 나만은 그렇지 않고 공(空)함을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법은 다 나[我]라는 것이 없고 생사를 구함도 없으며 도(道)도 없고 단절됨도 없습니다.
허공이 주장하는 것이 없듯이 나[我]라는 것도 존재하는 현법(現法)이 아니니,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가 아무 형상도 없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작법(作法)을 가지고 행(行) 멸하기를 구하고 바라니, 생각으로 이 를 얻고자 하나 이는 생각이 중하기 때문에 죄업만 밝아지고 맙니다. 그리고 스스로 도를 얻었다고 말하면서도 생각으로는 죄의 생각을 일으켜서 모든 지혜를 괴멸(壞滅)시킵니다. 아무리 3존(尊)을 얻어 구하려는 생각을 일으켜 니원(泥洹:열반)을 취해 의심을 없애고 몸을 멸하려 하지만 생사가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니원을 증득했다고 말하는 아라한은 비유하면 마치 목숨이 다한 사람의 그 몸이 평상에 남아 있는 것과 같아서, 한때 얻어 들음이 잠깐 휴식된 것일 뿐 목숨이 다했다 해도 오히려 몸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니 아라한과 벽지불(辟支佛)이 스스로 선정[禪]을 증득했다고 함은, 이것은 의심을 크게 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질문하신 것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여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용(龍)이 비를 내리고 구름을 일으키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본 적이 없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면(四面) 어느 곳으로부터 구름이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더구나 보살 제9지(地)로부터 그 아래로 모두 6만 삼매를 체득하였으니, 어느 도(道)로부터 보살이 온 곳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여래께 말하였다.
“이와 같이 지혜롭게 풀어 주시니 마음속에 맺혀 있던 의혹이 이제 다 파괴되어 의심의 뿌리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배우긴 했어도 본래 선지식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我]라는 생각을 단멸하고 해탈하여 법륜을 얻지 못하였으며, 의심의 뿌리를 완전히 끊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존귀한 법을 들었으나 유익함이 없으니, 비유하면 마치 온갖 새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도 마침 그 울음소리를 듣고 아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다만 이 자리에 모인 새롭게 발심한 여러 마하살과 큰 모임의 여러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이 존귀한 삼매를 듣게 했다고 해서 얼마나 높고 높아지겠습니까?
그렇지만 마땅히 존귀한 삼매에 친근해지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세상에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이와 같은 삼매를 보고 여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속에 의심하고 있던 것이 지금 흩어져 풀리기는 하였으나, 비유하면 마치 깜깜한 곳에 잠시 동안 불을 밝혔다가도 불이 꺼지면 그곳은 다시 깜깜해지는 것과 같으니 지금 제가 들은 것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사리불이 합장하고 여래께 말하였다.
“지금 8천 리를 태울 만큼 큰불을 얻어 위로 36천에 이르게 하여 내 몸을 그 가운데 억만 겁 동안 놓아두고, 뒤에 나와서 다시 3악도(惡道)에 들어가 수천억 겁 동안 천하 사람들의 먹이가 되며, 뒤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종처럼 대부(大夫)를 섬기며 선지식을 구한다면, 내 마음 속에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여래께서 말하였다.
“큰불이 치솟아 위로 36천까지 이르면 태워 없애기는 하겠지만, 본래 발심한 공덕이 미약하고 엷으며 깨달음의 근본이 두텁지 못하면, 살운야(薩云若:一切智)를 얻을 수 없고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 : 善巧方便)도 얻을 수 없으며, 선지식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이룩하지 못합니다.”
사리불이 질문을 마치고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여래보살이 의복을 바로 가다듬고 정각(正覺)께 예를 올리고 말했다.
“여쭈어볼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마땅히 물어보아라.”
여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은 주인이 없는데 누가 일체지[薩云若]를 성취하고, 누가 정각을 성취하며, 그 누가 아라한과 벽지불을 성취합니까? 여래[怛薩阿竭]께서는 마땅히 이 자리에 있는 여러 큰 보살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결단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래는 곧 시방세계의 큰 생사의 뿌리를 결단하려 하고 있구나.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려 한다면, 마땅히 아홉 가지 법보(法寶)를 행하여야 하느니라. 무엇을 아홉 가지 법보라 하는가?
첫째는 모든 하늘은 처소(處所)가 없고 다만 이름[名]뿐이라고 보는 것이요, 둘째 법보는 세간의 사람들이란 다만 문자[字]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셋째 법보는 다섯 가지 세계[五道]에서 괴로움을 받는 것은 다만 괴로움의 습기(習氣)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요, 넷째 법보는 물ㆍ불ㆍ바람ㆍ땅도 다만 한낱 장난감 같은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미래ㆍ과거ㆍ현재도 파초(芭蕉)와 같아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눈앞에 나타나 있는 나고 죽음[生死]도 본제(本際:實體)가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며, 일곱째 모든 삼매는 적연(寂然)하여 가고 옴[往來]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요, 여덟째 삼천대천세계의 일월(日月)과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관찰하여 보고는 얻을 것이 없다는 이치를 깨달아 아는 삼매이며, 아홉째는 삼천대천세계의 일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나 온갖 동물들도 다 해탈시켜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작용이 없는 생각[無作之想]을 증득하면 곧 시방세계의 큰 생각까지 결단할 수 있느니라.”
여래보살이 다시 정각께 아뢰었다.
“모든 법이 생각으로써는 보아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엇을 지어 머물러야 머물지 않는 법[無所住法]을 증득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머무름이 없느니라. 법이 머문다고 하면 그것은 고정된 관념[想]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생각[念]을 일으킴이 없어야 하나니,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 또한 고정된 관념이 되며, ‘고정된 관념이 아니니, 도(道)가 아니니’ 하는 것도 또한 고정된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求)하는 작용까지도 끊어야 하는 것이니라.”
여래가 천중천(天中天)께 아뢰었다.
“마땅히 어떠한 인연을 지어야 숱한 욕망에서 해탈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여래보살의 물음이여, 그렇기 때문에 나한이나 벽지불로서는 미칠 수 없느니라. 숱한 욕망은 번뇌[垢]도 없고, 숱한 욕망은 뛰어넘어 해탈할 것도 없으며, 숱한 욕망은 주인도 없고, 숱한 욕망은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숱한 욕망은 허공과 같아서 가리거나 숨길 것도 없느니라. 그리고 니원(泥洹)과 동등하며 무명(無名)과도 같은 것이니라.”
여래보살은 질문하던 일을 마치고는 천중천께 예를 올리고 물러나와 자리에 앉았다.
반시(般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늘 이 큰 모임에 모인 보살들은 보리수[佛樹]에 앉고 싶어하고,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는 데[無所從生處]에 서 있고 싶어하며, 천억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싶어하고, 시방세계의 중생을 교수(敎授)하되 시방 모든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오늘 죽림원에 모인 때와 같이하고 싶어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반시보살의 질문이 매우 심오하고도 심오하구나.”
부처님께서 다시 반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세계의 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보리수 아래에 앉게 하고 싶거나,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는 데에 처하게 하고 싶거나, 여러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싶어하거나, 시방세계를 교수하여 그들이 다 여러 부처님 국토로 하여금 각각 스스로 오늘 이 죽림원에 모였을 때처럼 하고 싶어한다면, 마땅히 여덟 가지 바른 것[八直:八直行ㆍ八正道]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여덟 가지 바른 것이란, 첫째는 이름 없는 메아리[無名之響]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둘째는 이름이 없는 소리[無名之聲]임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셋째는 시방세계 부처님 국토는 둘이 아님[十方佛剎土無有二]을 바르게 관하는 것이요, 넷째는 삼천대천세계 부처님 국토의 법은 모두 똑같이 서로 여읨이 없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시방세계 일체 중생이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여섯째는 법에는 본래 형상을 지음이 없어서 온갖 것은 나고 죽음이 없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며, 일곱째는 보이는 대상이 다 모든 삼매에 들어가 머무름이 없는 상보(相報)의 생각에 간직된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여덟째는 시방세계 부처님은 니원이거나 니원이 아니거나 간에 그것 또한 다 평등하다고 바르게 보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바른 것이니라.
법행(法行)보살은 이것에 의지하여 어디로부터 생겨난 바가 없는 법[無所從生法:無生法忍]을 빨리 얻으며,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있는 중생을 교수(敎授)하며, 오늘 모임과 같은 죽림원의 큰 모임을 속히 얻느니라.”
여래보살이 다시 정각께 아뢰었다.
“오늘 먼 곳으로부터 이 죽림원의 모임에 와서 모두들 부처님께서 이렇게 계신 것을 보고는 기뻐하면서 며칠 동안이나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모든 보살들과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다 부처님을 뵙고 싶어하며 모든 삼매에 들고 싶어하는데, 이것이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본래의 서원[本願]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새로 발심한 마하살들에게 이와 같은 이치를 해설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래보살이 질문한 것이 매우 심오하구나. 그대는 이 모임에 온 모든 보살들과 새로 발심한 여러 하늘 사람들을 위하여 교량(橋梁) 역할을 하고 싶어함이 이와 같구나.”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이 죽림원에 모인 이들로서 지금 모든 보살마하살과 여러 하늘 사람들과 대용왕들과 여러 귀신왕들이 모두 여러 삼매를 견문(見聞)하는 것은, 본래의 서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서원을 여읜 것도 아니니라. 항상 정진하고 수행한다면 여러 가지 삼매를 잃지 않느니라. 선지식을 잃지 않고 세세(世世)로 잡다한 일들을 멀리해야 하며, 적연(寂然)히 머물기 위해서는 자주 모이지 말고 오로지 이 삼매에 있기만을 서원해야 하느니라. 그런 까닭에 지금 보정니원주(寶精泥洹珠)를 이 큰 모임에 비처럼 내리게 한 것일 뿐이니라.”
여래보살이 정각께 아뢰었다.
“지금 이 모임에 새로 발심한 마하살들이 이 삼매를 행하려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 이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질문한 것이 매우 시원스럽구나. 만약 새롭게 발심한 마하살들이 이 삼매를 행하려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보(法寶)를 행해야만 하느니라. 무엇을 그 여덟 가지 법보라 하는가?
첫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곧 삼매이니, 이것이 첫 번째 법보이며, 두 번째 법보란 시방의 모든 나한들에게 공양하면서 그들을 좇아 서로 따르기를 억억만(億億萬) 겁 동안 하다가 어느 때 삼매를 들으면 곧바로 알아서 친근히 하고 존중하여 이 삼매를 멀리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법보이니라. 셋째는 사리(舍利)를 공양하되 위로 36천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조금의 빈틈이나 결함이 없다 해도 그것은 법에 이익이 될 수 없으므로, 일시에 마음을 바꾸어 수행하면 지혜의 문[慧門]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법보이니라. 네 번째 법보란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四無所畏]을 증득하여 시방세계의 나고 죽음을 허여[與]하지 않아서 멀리 여읠 것조차 없는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법보이니라.
다섯 번째 법보란 보살이 다섯 세계[五道]의 근심과 고통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고통을 다 멈추게 하고 괴로움에서 건져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바쳐 그들을 구원해서 모진 괴로움을 받지 않게 하고 그들 모두가 부처님 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법보이니라. 여섯 번째 법보란 보살이 시방 천하의 사람들을 섬기기를 마치 늘 여자 노비가 대장부[大夫]를 섬기듯 하되 괴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귀한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구하는 것이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 어떠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여섯 번째 법보이니라.
일곱 번째 법보란 보살이 96종의 외도들을 관찰하여 그 가운데에서 깨닫고 알게 해 법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 일곱 번째 법보이니라. 여덟 번째 법보란 6바라밀(波羅蜜)을 받들어 행하여 비구 스님을 비록 억만 겁이 지나도록 공양한다 해도 그것은 한 번 이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듣는 것만 같지 못하니, 시방세계의 어떤 사람이 마땅히 부처가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증명하겠는가? 바로 이 보여래삼매를 듣는 것이니, 그렇게 한 사람은 시방세계에서 부처가 되었다는 증명을 얻은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새로 발심한 보살로서 이 삼매를 향하여 기뻐하면서 이 삼매를 깨달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곧 만만(萬萬) 가지 삼매를 알게 될 것이며 이미 여래삼매를 증득한 사람일 것이니, 이것이 여덟 번째 법보이니라.”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삼매를 행하게 한다면, 곧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여래보살이 질문을 마치고 돌아가 앉으니, 부처님께서 문득 미소를 지으셨다.
문수사리(文殊師利)가 의복을 바로잡고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헛되이 미소를 짓지 않으십니다. 지금 미소를 지으셨으니 반드시 어떤 뜻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여래보살은 부처님의 국토에서 왔느니라. 여기에서 9억만 부처님 국토를 지나면, 그 이름이 제법자연무염감유(諸法自然無厭敢有)라는 국토가 있느니라. 그곳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가면 태(胎)로 태어남도 없고, 고통으로 태어나는 일도 없으며, 은애(恩愛)로 태어나는 일도 없어서, 모두 다 백만억 가지 온갖 꽃향기 속에 태어나는데, 태어나자마자 서고 머물 수 있으며, 거기에는 온갖 음악 소리가 울려 퍼져 아침저녁으로 서로 즐기며 노니, 다만 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는 법[無作法]과 적연한 법만을 가지고 음악을 부르느니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삼매를 들으면 곧바로 640겁의 죄업을 물리칠 수 있으며, 죄가 다하여 명(命)을 마치고 나면 곧 왕생할 수 있고, 왕생한 사람은 다만 모든 삼매로써 서로 즐거워하느니라.
보여래의 국토에는 해와 달의 광명이 없으니 비록 작용이 있다 해도 나타나지 않느니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그곳에 가서 태어나게 되면, 해와 달의 광명과 별들의 광명이 곧 나타나느니라. 이 삼매와 호응하면 마땅히 그곳에 가서 태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별들과 해와 달의 광명이 다 나타나느니라.”
시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도 또 보여래 국토에 가서 태어난 사람이 있구나.”
시방의 모든 보살들이 시방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으로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시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별들과 해와 달의 광명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느니라. 나한과 벽지불의 숫자도 이와 같으나 이것은 모든 나한과 벽지불로서는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라. 그 나라에 가서 태어나는 선남자와 선여인과 보살만이 스스로 알 뿐이니라. 그런 까닭에 내가 미소를 지었던 것이니라.”
수보리(須菩提)와 사리불(舍利弗), 두 제일 어진 사람[第一賢者]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고 정각(正覺)께 예를 올리고 나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큰 은혜를 베푸시어 저희들을 크게 불쌍히 여기시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신통력을 저희들에게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보여래의 국토인 제법자연국(諸法自然國)에 가서 잠깐 동안만이라도 관찰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불존자와 나한 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타고 잠깐 사이에 곧바로 보여래보살의 국토에 이르러서 보여래의 나라를 보니, 거기에도 나열기성과 죽림원이 있었는데 석가문(釋迦文)부처님 회상에 모인 때와 다름이 없었다. 동방에서 무앙수(無央數)의 보살을 보내온 것도 보였고, 남방의 수없이 많은 보살도 보였는데, 시방세계에서 위로 36천 회상에 이르기까지 다 이와 같았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여래[怛薩阿竭]께서도 우리들을 따라서 이 국토에 오셨습니까?”
수보리와 사리불이 잠깐 동안 구경하고 나서 돌아와 죽림원 회상에 이르렀는데,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물으셨다.
“지난번에 보여래 국토를 관찰하였는데, 그 국토의 백성들은 어떤 부류들이었으며, 몇 사람이나 교수(敎授)하였느냐?”
수보리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나라를 살펴보았더니 모두 오늘날 이 죽림원 가운데 모여 있는 때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부처님의 공덕은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이 큰 모임의 여러 하늘과 그 백성들이 광명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삼미(三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로 잡고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좋다.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삼미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生法]에 생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에는 인식작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니원(泥洹:涅槃)에 적연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니원에는 일어남이 없다고 말한다면 형태는 있습니까? 형태가 없다면 저 세간에서의 가르침은 존재하는 것이며, 생사의 입처(立處)에서는 그 누가 주인이 됩니까?”
“공(空)으로써 공을 짓는 것이 곧 주인이 되느니라.”
삼미보살이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해설하심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여러 하늘과 사람들 8만 6천 명이 곧바로 어디서부터 생겨남이 없는 법인(法忍)을 얻었다. 그리고는 즉시 땅에서부터 160장(丈)쯤 떨어진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내려와서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해와 달이 곧 다시 크게 진동하였다. 이에 미륵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조금 전에 땅이 크게 진동하였는데, 이는 어떤 감응이 있어 그런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땅이 크게 진동한 것은 비단 여기 국토만 진동한 것이 아니라 시방 모든 부처님의 국토도 다 진동하였느니라. 또한 각각 8만 6천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생겨남이 없는 법주(法住:法忍)를 증득하고 곧 허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땅이 크게 진동하였느니라.”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따라 발의(發意)해야 무생법인을 이룩할 수 있습니까?”
“항상 여섯 가지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무엇이 그 여섯 가지인가?
첫째 법은 서른여섯 하늘의 장차 부처가 될 이로서 아직 수기를 얻지 못한 이가 있으면, 나는 마땅히 가서 수기를 주되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 법은 삼천대천의 해와 달 가운데 선남자와 선여인이 장차 부처가 될 이가 있으면, 나는 마땅히 가서 수기를 주되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법은 백천 니리(泥犁:地獄)에 있는 사람으로 장차 부처가 될 이가 있으면, 내가 가서 그들 모두에게 수기를 주되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는 못하는 것이며, 넷째 법은 시방세계의 사람들이 목숨이 끝나면 장차 태어날 곳을 내가 다 알지만,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 법은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목숨이 다한 것은 내가 다 알지만,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며, 여섯째 법은 시방 여러 부처님께서 장차 니원에 드는 이와 니원에 들지 못하는 이를 알지만,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여섯 가지 법주(法住)이니, 이 법을 수행하면 어디로부터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느니라.”
미륵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삼매는 매우 존귀하고 매우 존귀합니다. 지금 저는 이 법회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이 삼매를 증득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땅히 어떤 법을 행하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아홉 가지 법을 행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아홉 가지 법인가?
첫째 법은 모든 법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요, 둘째 법은 하늘은 모두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요, 셋째 법은 모든 생사(生死) 역시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요, 넷째 법은 다섯 갈래의 세계[五道]는 다 청정하다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 법은 탐욕을 구하지 않는 것은 다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요, 여섯째 법은 삼계(三界)의 색(色)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일곱째 법은 모든 지옥[泥犁]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요, 여덟째 법은 니원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아홉째 법은 시방세계는 이름을 듦[擧名]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 법이니라. 이 아홉 가지 법을 행하는 사람은 빨리 이 삼매를 증득할 수 있느니라.”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법을 보여래보살에게 설할 때 곧 6만 삼매를 증득하였는데, 그 삼매에는 곧 그 끝[邊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령 6만 삼매를 증득하면 구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6만 삼매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 그 삼매를 다했다 해도 구족할 수는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삼매는 단지 하나의 종류뿐만 아니니, 생각이 없는 삼매[無念三昧]도 있고, 욕심을 여읜 삼매[離欲三昧]도 있으며, 앉아서 시방세계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坐廳十方佛] 삼매도 있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꽃과 향으로 장엄하는[莊嚴諸佛國土華香] 삼매도 있으며, 설법을 하여 모든 사람들을 다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所說法一切人悉還本] 삼매도 있고,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 돌이켜 생각함이 없는[出諸欲無還想] 삼매도 있느니라.
경을 설할 때에 변화하여 백 가지 음악 소리가 되게 하는[說經時化爲百種音樂聲] 삼매도 있고, 설법을 할 때 억천만 부처님 국토에서 꽃과 향이 저절로 오는[說法億千萬佛國華香自然來] 삼매도 있으며, 모든 악마를 조복시키는[伏諸魔] 삼매도 있고, 사자의 뜻을 내어 홀로 행하고 홀로 걷는[發師子意獨行獨步三昧] 삼매도 있으며, 가는 처소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지 않음 이 없는[所向處莫不發阿耨多羅三耶三菩提] 삼매도 있고, 처해 있는 곳에서 공양을 하지 않는 이가 없는[所在處莫不供養者三昧] 삼매도 있느니라.
어지러운 바람이 한 번 일어날 때 마치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시는 소리와 같은[亂風一起時如佛說經聲] 삼매도 있고, 향하는 문마다 열리지 않음이 없는[所向門莫不開] 삼매도 있으며, 처하는 곳마다 다 사자좌가 나타나는[所處悉師子座爲現] 삼매도 있고, 어느 곳이나 다 날아서 이르는[飛到十方] 삼매도 있으며, 향하는 문마다 시방세계의 보살들이 오고 감이 끊어지지 않는[所向門十方菩薩往來無極] 삼매도 있고, 시방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所知十方人意] 삼매도 있으며, 모든 생각을 괴멸하는[壞滅諸想] 삼매도 있고, 모든 식을 괴멸하는[壞滅諸識] 삼매도 있으며, 시방세계의 모든 국토를 합하여 한 국토로 만드는[合十方諸刹土合爲一刹] 삼매도 있으며, 마음을 발함이 끝없는[發意不盡] 삼매도 있고, 삼계를 보되 한 사람도 있지 않다고 여기는[視三界中了有一人] 삼매도 있느니라.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는[從一佛國到一佛國] 삼매도 있고, 처해 있는 곳이 법으로 하여금 단절되지 않게 하는[所在處令法不斷絶] 삼매도 있으며, 처해 있는 곳마다 항상 부처님을 서로 만나는[所在處常與佛相遇] 삼매도 있고, 앉아서 시방세계의 큰 군대ㆍ큰 불ㆍ큰 물ㆍ큰 바람을 보되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가운데에 다 머물러 가르치고 인도하는[坐觀十方大兵大火大水大風於其中不恐怖悉住敎導之] 삼매도 있으며, 처해 있는 곳마다 다만 법으로써 작용하는[所在處但以法作器] 삼매도 있고,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삼매를 듣고 돌아감이 없는 생각에 머무는[善男子善女人聞是三昧卽得住無還之想] 삼매도 있느니라.
이러한 삼매는 크고도 많아 이루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큰 모임에 머물면서 이를 설하느니라.
또 이름이 없는[無名] 삼매도 있고, 모든 법에 머무는[住諸法] 삼매도 있으며, 모든 지혜라고 이름하는[名諸慧] 삼매도 있고, 법을 가르치는[敎法] 삼매도 있으며, 나한과 벽지불을 멸하여 무너뜨리는[滅壞羅漢辟支佛] 삼매도 있고, 법보(法寶)삼매도 있으며, 총지무명법(總持無名法)삼매도 있고, 남의 마음을 아는[知人意] 삼매도 있으며, 모든 번뇌를 끊는[斷諸煩荷] 삼매도 있고, 제력욕각(制力欲覺)삼매도 있느니라.
열 가지 힘[十種力]의 삼매도 있고, 지혜(智慧)삼매도 있으며, 수행하는 곳을 광명으로 비추는[光明所行處] 삼매도 있고, 헤아려 알 수 없는[不可計] 삼매도 있으며, 법을 보되 물속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이 하는[見法時如水中影] 삼매도 있고, 깨끗한 지혜가 다함이 없는[不可盡淨慧] 삼매도 있으며, 사람에게 뭇 악행이 공하여 원하는 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는[人空衆惡無有無願想] 삼매도 있고, 선정에 머물러 마침내 니원에 이르는[住禪乃到泥洹] 삼매도 있느니라.
비유하면 금강같이 견고하고 더러움이 없는[譬若金剛無穢] 삼매도 있고, 다함이 없는 밝음[無極明]의 삼매도 있으며, 모든 번뇌를 제도하여 이미 다 없애버린[度諸煩荷已盡] 삼매도 있고, 넓고 큰 수법[廣大水法] 삼매도 있으며, 큰 배를 장엄하는[莊嚴大船] 삼매도 있고, 무명에 들어가는[入無名] 삼매도 있으며, 기쁜 마음이 다함이 없는[不可盡喜意] 삼매도 있고, 총지하여 잊지 않는[總持無忘] 삼매도 있으며, 어두운 곳에 있으면 모두 밝게 하는[在冥悉令明] 삼매도 있고, 즐거운 것을 다 즐거워하는[所樂悉樂] 삼매도 있느니라.
자비를 행하는[慈行] 삼매도 있고, 깨끗하고 크게 불쌍히 여기는[淨大哀] 삼매도 있으며, 평등한 마음에 들어가는[入等心] 삼매도 있고, 평등한 마음에서 나오는[出等心] 삼매도 있으며, 이름에서 이미 벗어나고 아직 벗어나지 못한[名已脫未脫] 삼매도 있고, 어떤 곳으로부터 온 곳이 있는 광명[光明所從來處]의 삼매도 있으며, 밝아서 밝히지 않은 곳이 없는[曉無所不曉] 삼매도 있고, 지혜를 벗어나고 가르침을 벗어난[脫慧脫敎] 삼매도 있느니라.
금빛 연꽃이 나타나는[金色蓮華爲現] 삼매도 있고, 여읨도 없고 항상함도 없는[無離無常] 삼매도 있으며, 지혜를 존중히 여겨 태어남이 없는[尊智慧無生] 삼매도 있고, 용맹하여 항복시키지 못함이 없는[勇猛無所不伏] 삼매도 있으며, 모든 국토를 개벽하는[開闢諸刹] 삼매도 있고, 청정하여 형상이 없는[淸淨於無形] 삼매도 있으며, 진기한 보배라고 이름함이 없는[無名珍寶] 삼매도 있고, 바다와 같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는[如海無所不受] 삼매도 있으며, 신족이 넓고 큰[神足廣大] 삼매도 있고, 손가락 튀기듯 짧은 시간에 이르지 못할 곳이 없는[彈指頃無所不及] 삼매도 있느니라.”
담마갈(曇摩竭)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질문한 것은 지혜가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 것 입니다. 이것은 그때 들은 것과 호응하여 들은 것이 마음과 같이 되더라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는 짓이 망령되지 않으며,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르친 바와 같이 행하며, 지혜를 익혀 마음 씀에 받아들이는 바가 없기 때문에 예절을 잃지 않고, 법(法)을 행함도 허망하거나 혼란하지 않습니다. 뜻이 귀중한 보배와 같아서 모든 늙고 병듦을 제거하고 뜻으로써 법기(法器)를 삼는데, 이것이 인욕(忍辱)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생각함에 있어 단지 진리만을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다만 법에 대한 지혜의 생각이며, 넉넉하지 못할 때에도 베풀어주는 것에 아낌이 없고, 도와주는 것에 있어서도 적당하지 않으면 안 되며, 들은 진리를 마음으로 관찰하고, 얻을 것이 없음을 기뻐하면, 그 마음이 이미 기쁘고 신체는 모두 가벼워집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외도에 있지 않고 다만 법미(法味)와 『비라경(毗羅經)』만을 듣고 싶어하고, 다만 선교방편[漚和拘舍羅]만을 듣고 싶어하며, 다만 네 가지 평등심[四平等心]만을 듣고 싶어하고, 다만 밑 없는 법[無底法]을 듣고 싶어합니다.
뜻과 같이 하여 다른 생각이 없기에 마음속으로 선교방편을 받고 싶어하고, 어디로부터 나는 곳이 없는 법[無所從生法]을 듣고 싶어하며, 탐내지 않고 관(觀)하고 다만 자비한 마음으로 제도하고 싶어하고, 덧없는 소리[無常聲]를 알고 싶어하며, 적연한 뜻을 알고 싶어하고, 공(空) 또한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알고 싶어하며, 생사와 보시에 대한 생각함조차 없는 것을 알고 싶어하고, 일체를 듣고 싶어하지 않되 다만 음악만을 듣고 싶어하며, 시방세계 가운데 충성과 믿음으로써 작용하는 것을 따라 즐거워하고, 모든 탐욕의 뿌리[欲根]를 조복시킵니다.”
담마갈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로 잡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이미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얻어, 행함이 자재롭고 온갖 지혜를 이미 다 갖추었으며, 문득 세 가지 보배[三寶]를 증득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보배라 하느냐 하면, 첫째는 비유하면 물속의 그림자와 같이 그림자는 물속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물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보살은 이 세간에 앉아 있으면서 그 몸은 시방세계 어느 곳에나 다 있으나, 또한 그 몸은 시방세계 어느 곳에도 있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보살이 이 세간에 앉아 있으면서 몸을 나누어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 앞에 다 나타나 앉아 있으나, 그 몸은 또한 시방세계의 부처님 앞에 앉아 있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비유하면 마치 산속에서 소리를 외치면 그 음성의 메아리가 다시 돌아와서 그 메아리는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보살이 여기에 앉아 있기는 해도 그는 멀리서도 시방세계 모든 보살의 일들을 다 설하니, 시방세계 모든 보살들도 또한 보살이 있는 곳에 도달함이 없고, 보살도 또한 나아감이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담마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다린니문(陀隣尼門)을 증득함은, 비유하면 활을 당겨 화살을 쏠 때 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이, 보살이 하나의 지혜만 가지면 만 가지 지혜에 들어가서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음도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담마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아수륜(阿須倫)이 군대를 일으키려고 할 때에 손가락을 튀기듯 짧은 시간에 28천(天) 군사들이 문득 이르는데, 그 중간에 한 곳도 비어 있는 곳이 없음을 보았을 것이니라. 보살이 제9지(地) 보살로부터 그 아래에 이르기까지 법을 설할 때에도 이와 같으니라.”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청정한 사람은 탐욕을 잘 다스려 소멸시키니 그 마음에 탐욕이 없는 것이 다함이 없으며, 저 모든 악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악한 마음을 항복시키지 못해서 다시 그 마음이 혼란하게 되면 악한 마음을 보호하나니, 이런 까닭에 다함이 없습니다.
그 마음에 진에(瞋恚)가 있고 그 몸을 뽐내어 자만하려는 자가 모든 곳에서 이런 마음 일으키려는 자를 찾을 수 없게 하면, 보살은 항상 이런 뜻이 있는 이를 보호하되 보이지 않는 모든 번뇌[垢]를 다 버리지 않았음을 아나니, 마땅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호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게 하니, 그러므로 마땅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광란(狂亂)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 마음을 바꾸어 법으로 보호하니 마땅히 이렇게 하려는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보호해 주려고 하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법시(法施)를 하여 법으로써 해탈케 하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공덕이 되게 하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 마음속에 다라니[陀隣尼] 행을 닦음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 다라니를 행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넷째 학문을 싫어하지 않으므로 다라니를 행함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래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했다.
“다시 다함이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상탈(上脫)과 중탈(中脫)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사마(四馬)의 길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뜻의 왕[意之王]이 될 만한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넷째는 12인연에 주체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다함이 없는 네 가지입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또 다함이 없는 여덟 가지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나[我]가 없다는 말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적막한 니원이라는 말이 다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보살이 제도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큰 바다로 물이 흘러들 듯이 게으르거나 권태로워하지 않음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뭇 악한 번뇌[垢]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고통의 소리가 다함이 없는 것이며, 여덟째는 과거와 미래의 생각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 법이며, 제도할 대상에 주체가 없는 것도 다함이 없습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또 다함이 없는 아홉 가지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부처님 국토가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보살이 어느 곳으로부터 온 곳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아라한ㆍ벽지불을 원하고 집착하는 것을 버린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시방의 보살이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에 날아 이르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6바라밀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삼매가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덟째는 니원에 들어감을 또한 변화로 보듯 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는 삼계가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함이 없는 아홉 가지 법입니다.”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서른두 가지 보배가 있습니다. 무엇을 서른두 가지 보배라고 하느냐 하면, 첫 번째는 그 마음이 애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인욕(忍辱)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두 번째는 이것은 ‘나[我]다’, ‘내가 아니다[非我]’ 하는 것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짓는 바가 없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세 번째는 일체의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네 번째는 일체에 대하여 마음과 뜻이 항상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다섯 번째는 모든 사람을 대함에 성내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여섯 번째는 다른 사람의 혼란과 악을 마음속에 품거나 기억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일곱 번째는 망령된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으므로 인욕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여덟 번째는 큰 모임 가운데에서 대중을 희롱하여 놀리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스스로의 몸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몸도 보호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 번째는 만일 가난하고 궁색한 사람에게 물건을 주어 그들을 보호했을지라도 뒷날에 바라는 것이 없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한 번째는 스스로를 보호하여 악지식(惡知識)을 따르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두 번째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나 다른 이의 몸에 대하여 애욕의 생각이 없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열세 번째는 모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손가락을 튀기듯 짧은 시간이라도 보살에 대하여 생각함이 없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열네 번째는 공덕으로 장엄한 몸의 모습[身相]을 보호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다섯 번째는 믿음으로 선한 업을 짓고 삼매에서 떠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여섯 번째는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열일곱 번째는 마음이 청정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여덟 번째는 선지식에 굳게 머물러서 태어나는 세상마다 서로 따르고 버리지 않되 다른 곳에서라도 그의 잘못과 허물을 말하지 않고 선지식의 악함을 말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아홉 번째는 다른 사람을 헤아려 보아 악한 일이 있으면 ‘나도 또한 악한 일이 있는가?’ 하고 스스로 헤아려 봄으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무 번째는 생각하는 바에 삿됨이 없이 곧 깨달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한 번째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뜻을 화합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두 번째는 악한 사람을 보호하여 그로 하여금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세 번째는 여러 하늘 세계에 태어나서 여러 하늘을 가르치고 인도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네 번째는 천상이나 세간에 태어나서 두 갈래 세계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다시는 3악도(惡道:지옥ㆍ축생ㆍ아귀)의 악한 세계에 나지 않게 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다섯 번째는 여러 가지 좋은 상호(相好)를 갖추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여섯 번째는 소리를 얻음이 마치 범천(梵天)의 소리와 같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보배가 됩니다. 스물일곱 번째는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여덟 번째는 모든 물질[色]과 명예[名]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아홉 번째는 지은 공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다만 뭇 법(法)을 일으키려고 할 뿐이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 번째는 여러 외도를 항복시키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한 번째는 이미 온갖 질병에서 벗어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두 번째는 모든 불법(佛法)을 구족하여 불법을 훼상되지 않게 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 서른두 가지 일이 있는데, 들어갈 만한 보배가 됩니다. 무엇이 그 서른두 가지 일인가 하면, 첫 번째는 음향(音響)에 들어가고 관하는 데 들어가되 관하는 것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두 번째는 마음과 마음을 여읜 데에 들어가되 마음에는 주장하는 바가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세 번째는 몸에 들어가서 해탈을 구하지만 본래 해탈할 것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네 번째는 12인연에 들어가되 머무르지 않고자 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보배가 되며, 다섯 번째는 단절됨[斷]에 들어가서 단절됨이 없음을 여의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여섯 번째는 덧없는 데에 들어가서 형체가 없는 것임을 보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배가 되고, 일곱 번째는 이름이나 주장이 없는 데에 들어가되 이름 없는 것을 여의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여덟 번째는 적멸에 들어갔으나 일어나는 것을 여의려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아홉 번째는 삼계(三界)에 들어가되 삼계를 여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 번째는 받아들이더라도 받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한 번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에 들어가되 또한 현재ㆍ미래ㆍ과거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두 번째는 공덕에 들어가되 본말(本末)에 주체[主]가 없음을 관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세 번째는 공(空)에 들어가되 공 가운데서도 공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네 번째는 무상(無想)에 들어가되 무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다섯 번째는 원(願)에 들어가되 원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여섯 번째는 공(空)에 들어가되 공하다는 생각을 여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일곱 번째는 삼매에 들어가되 부합함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어떤 법도 두 가지 법이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여덟 번째는 삼매로써 태어날 곳을 소원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아홉 번째는 삼매로 일체의 법을 증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무 번째는 태어남이 없는 도[無生之道]에 들어가되 제도를 하면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한 번째는 생겨남이 없는 처소[無生處]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두 번째는 동요하지 않는 처소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세 번째는 일체가 무아(無我)라는 데에 들어가되 무아를 여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네 번째는 생사와 더불어 처음부터 서로 앎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다섯 번째는 삼매와 더불어 처음부터 아는 것이 없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여섯 번째는 모습에 들어가되 처음부터 서로 아는 것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2) 이것이 보배가 되고, 스물일곱 번째는 싫어하려 하고 생각하려고
2) 이 대목이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상욕절상지자(相欲切相知者)”로 되어 있는데, 이 경의 다른 역본인 『무극보삼매경(無極寶三昧經)』에는 “욕입상초무상지자(欲入相初無相知者)”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후자를 따라 번역하였다.
하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여덟 번째는 불념(不念)에 들어가되 생각함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아홉 번째는 여러 다라니문에 들어가되 총지(總持)로 여기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서른 번째는 여러 가지 악을 짓는 곳에 들어가되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서른한 번째는 선교방편에 들어가서 뜻으로써 법기(法器)를 만들고자 함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서른두 번째는 온갖 일과 서로 호응하여 서로 멀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성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들어갈 문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이, 인연을 알고자 하면 다투는 것이 없어야 하고, 다툼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잘 지키는 것만 못하며, 말하고 싶어하지 않음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있지 않는 것만 못하고, 동요하지 않는 데에 머물려면 탐욕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희망함이 없고자 하면 생각하는 바가 없어야 하니, 이런 까닭에 평등하다고 하느니라.
위태롭지 않으려는 이는 마땅히 위치를 바르게 하여 지극함을 말해야 하고, 달라짐[異]이 없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스스로 그 가문을 지켜야 하며, 능히 가문을 스스로 지키려는 이는 칭찬하여 말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낮추지 않는 그러한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모든 것에 미치려[咸] 하지 않는 이와 꾸짖음을 받지 않는 이와 부릴 바가 있기를 바라는 이는 짓는 일에 잃는 바가 없어야 하니 도를 증득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어리석음이 없어야만 하느니라. 어리석음이 없는 이는 근본부터 본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하니 본래부터 공한 것이어서 존재함이 없다는 이치를 아는 이는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3세는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니 3세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음을 아는 이는 색(色)에 머물지 않으며, 이미 색에 머물지 않으면 뭇 법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눈이 색을 보는 것은 다만 그것은 눈일 뿐이니, 눈의 정기가 이 색에 머물기 때문이다. 귀로 소리를 듣지만 소리와 인식작용은 머무는 곳이 없고, 코 가 냄새를 맡지만 냄새와 인식작용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입이 맛을 보아 알지만 맛도 또한 머무는 곳이 없고, 몸이 접촉하여 감촉[細滑]을 느끼지만 인식작용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뜻이 인식작용을 알지 못하고 인식작용도 뜻을 알지 못하며 모두 머무는 곳이 없으니, 본행(本行)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지혜로 진리를 수행해야 하니 진리는 나와 같은 것이어서 여기에는 나[我]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我所]이라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을 보되 다만 나라는 것이 없으며 나라는 이름이 없음을 보아야 하느니라. 지혜도 모든 소유(所有)를 알지 못하고 모든 소유도 또한 지혜를 알지 못하며, 탐욕은 습관을 알지 못하고 습관은 지혜를 알지 못하며, 지혜는 몸을 알지 못하고 몸은 지혜를 알지 못하나니, 보살의 마음은 그 마음의 옳고 그름을 여의지 않느니라.”
담마갈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도(道)가 생각과 합하지 않는다면 합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 없으며 다만 음향(音響)으로써 법을 삼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긴 피리를 불 적에 그 소리가 구슬프거나 후련하여 노래와 함께 서로 맞아 떨어지면, 노래의 기운과 피리의 기운이 고르게 합쳐져서 동일한 음성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의 모든 삼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없고 무너지는 것도 없으며, 또한 생겨나거나 무너짐을 여읨도 없느니라.
모든 변화도 이와 같고 모든 생각도 이와 같으며, 모든 깨달음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모든 생겨나는 것은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 여의었으며, 모든 생각도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도 여의었으며, 깨달음도 모든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도 여의었느니라. 모든 이름은 처소가 없으니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다만 작용이 없는 생각을 여의어야 하며, 오직 작용이 없는 작용으로써 작용과 생각을 삼아야 하느니라. 생각과 행이 적연(寂然)하여 전혀 집착할 것이 없으니 모든 법에 탐욕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일체의 모든 것이 다 이러하느니라.”
여래가 의복을 바르게 하고서 부처님[正覺]께 아뢰었다.
“모든 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제 다시 부처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담마갈보살이 지난번 질문하였던 그 큰 의심을 결단하고 각각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여래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에 만약 생겨나는 곳[生處]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은 없는 것이요, 만약 변화하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 또한 없는 것이며, 모든 법에 대하여 만약 깨닫는 곳이 있다 해도 그 깨닫는 곳은 없는 것이요, 모든 법에 대하여 만약 생각하는 곳[念處]이 있다 하더라도 그 생각하는 곳 또한 없는 것이니라.”
여래보살이 천중천께 여쭈었다.
“나고 나는 처소[生生處]도 나는 처소가 없는 것이요, 변화하고 변화하는 처소[化化處]도 변화하는 것이 없으며, 생각하는 처소[念處]가 없기에 생각하는 것도 없는 것이요, 깨닫는 처소[覺處]가 없기에 깨닫는 것도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고 나고 다시 나서 니원에 태어나는 것이 합(合)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래[怛薩阿竭]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 아니요, 나고 나고 다시 나서 니원에 태어나되 태어남이 아님은 이것이 부합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는 합하는 것이다. 변화하고 변화하고 다시 변화하여 니원까지 변화하함은 이것이 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 아니요, 변화하고 변화하고 다시 변화하여 니원까지 변화하되 변화가 아님은 이것이 부합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는 합하는 것이니라.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여 니원까지 생각함은 이것이 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는 부합하는 것이 아니요, 생각하고 생각하고 니원까지도 생각하되 생각함이 아님은 이것은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 합하는 것이다. 깨닫고 깨달으며 다시 깨달아 니원을 깨닫는 이것이 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는 부합하는 것이 아니요, 깨닫고 깨달으며 다시 깨달아 니원을 깨닫되 깨닫는 것이 아님은 이것이 부합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여래의 뜻과는 곧 합하는 것이니라.”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였다.
법이란 생겨나는 것이 없어서
합하여 하나의 찰토가 된다네.
나고 나지만 또한 나는 것이 아니니
니원까지도 다 이와 같네.
변화하는 것도 본래부터 없는 것이니
변화하고 변화해도 벗어날 것이 없네.
변화와 니원은 동등한 것으로
적연하여 처소라는 것도 없네.
생각이란 것은 본래부터 인식작용[識]이 없고
생각을 내는 것도 본래 공(空)할 뿐이니
니원과 생각은 동등한 것으로
진리를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네.
깨닫고 깨달음은 평등하고 동등한 것으로
깨달음의 처소에 이를 곳이 없네.
깨달음이란 항상 머무름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달살갈(怛薩竭:여래)이라 하네.
변화하는 처소도 본래부터 처소란 없고
깨달음의 처소 또한 이를 곳 없으니
변화하는 처소가 없듯이
모든 법도 다 이와 같다네.
생겨나는 처소가 본래 없는 것이니
생겨남 없는 것이 바로 그곳이라네.
변화하는 처소는 이름이 없는 처소이니
그러므로 일체가 삼매가 된다네.
생각하는 처소에도 생각할 것 없나니
공(空)을 따라 이 처소에 이르렀다네.
본래 진리의 처소 없는 것 아니니
그 지혜 이미 이와 같네.
깨달음은 행과 서로 이어져 있지 않으나
깨달음은 그 처소를 떠나지 않고
행은 깨달음을 따라 진리를 보나니
깨달음을 떠나서는 해탈할 수 없네.
생겨나는 법 끊임없으니
있는 곳마다 언제나 이와 같고
삼천대천의 해와 달 중에
최상의 밝음 따로 없네.
법이란 생각할 대상 아니요
돌이켜 행할 수 있어야 하네.
탐욕에서도 번뇌 일어나지 않으니
공한 것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네.
여래의 뜻 항상 맑아서
또한 법이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나니
해탈도 항상 머무는 것 아니요
일체가 다 본래의 처소와 같네.
꽃향기 저절로 이르듯
벗어남도 처소가 없고
청정한 마음도 처소 없듯이
모든 존재도 다 그러하네.
천 살[千歲] 먹은 마른 나무 살아나듯이
모두 마음 냄에 따라 일어나네.
모두가 큰 광명 보았으니
세간에 가장 높아 견줄 이 없네.
허공에서 음악 소리 들려오고
밤낮으로 광명 나타나나니
이때 큰 모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보살의 마음 냈다네.
백성들 크게 기뻐하면서
모두들 이 경을 들었는데
곧바로 삼천세계 진동하였고
부동(不動)의 몸 얻었다네.
적연한 법 나타나니
이것은 무명(無名)이 호응한 것이라
어찌 세간의 모든 존재가
다 이와 같지 않겠는가?
청정(淸淨)도 선정[定]이 되지 못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도 본래 나타남 없으며
청정과 어리석음은 본래 합해진 것이니
지혜도 본래 해탈할 것이 없는 것이네.
삼매란 조작하는 것 없으니
모든 것도 다 이와 같아서
보살이 머무는 도지(道地)도
마음을 따라 생겨난다네.
다섯 가지 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니
이제 다섯 갈래의 길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네.
이와 같은 행 멀리 여의시어
부처 되어 시방을 통달하셨네.
백 일 동안 법(法)을 시행할 때
이 삼매를 받들어 행하였으므로
모두 여러 국토에서 찾아와
날아서 여래[怛薩] 앞에 이르렀다네.
여러 하늘과 국왕들
모두 다 부처님 몸 뵈옵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제 몸은 모두 다 가볍게 여겼네.
마땅히 색상(色想)으로써
법을 관하되 삼천(三千)이 있다고 여기지 않아야 하니
『반야비라경(般若毗羅經)』은
삼천세계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네.
여래보살이 본래 마음 낸 것은
시방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서였네.
언제나 큰 법의 나라[大法國] 만들었으나
삼천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네.
삼계와 그 이상의 곳에서
곧바로 도리천에 이르렀으니
모두가 아타나불(阿陀那佛)이며
그 명호 천중천(天中天)이라 하네.
마음 내어 그 나라에 이르렀다가
잠깐 사이에 다시 돌아왔더니
마제나(摩提那)보살은
날아서 죽림원에 이르렀어라.
사리불이 여래보살에게 말하였다.
“다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래께서 오신 곳인 그 국토는 후박(厚薄)이 어떠하며, 본원(本願)은 어떠합니까? 왜 무극국토(無極國土)라고 합니까?”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본원은 다함이 없으며 무극국에는 다 보살만 있고 아라한이라는 이름은 없으며 여인의 소리를 들어볼 수 없고, 궁전은 다 수정(水精)으로 되어 있고, 나무는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으며, 나뭇잎은 흰 은으로 되어 있고 나무 열매는 산호와 마노로 되어 있으며, 요요(銚銚)하고 횡횡(鐄鐄)하여 세상에 밝은 것과는 다르며, 모든 보살들도 연꽃 가운데에 살고 있습니다.”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내가 발원한 이래로 건너야 할 곳에 돌아가지 못했으므로 다함이 없는 소원을 발하지 않았습니다. 귀중한 보배라든가 금은으로 된 나무도 나는 모두 가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법은 일어남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니 귀중한 보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서원입니다. 백천억 부처님의 국토에서 서원을 일으키는 이가 있으니 이제 또 이 다함이 없는 생각과 서원에 돌아갈 것입니다.”
사리불이 여래에게 말하였다.
“보여래(寶如來)께서 당시에 억만 가지 꽃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 꽃은 각각 색상이 달랐으니 그것이 어찌 생각[想]이 아니겠습니까?”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형상이 없는 꽃이었습니다. 다만 꽃으로 법기(法器)를 만들었으므로 받았을 뿐입니다. 모든 보살이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온 것은 이미 다 법으로 준 것이지, 그 가운데 어떤 서원이 생겨나서가 아닙니다. 꽃을 가지고 온 것이 주(主)가 되는 것이지, 그 꽃 가운데 무엇이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처음에 부처님의 형상을 보셨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았습니다. 사람들도 다 부처님의 형상에 예를 올렸습니다.”
“그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에 대하여 귀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 가운데에 도의 위신력이 있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다시 말하였다.
“위신력은 어느 곳에 있는 것입니까?”
여래가 말하였다.
“형상 가운데에 있지도 않고 또한 형상을 떠난 것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이 위신력이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 형상을 보고 위신력이나 서원이 없음을 깨닫는 것은, 비유하면 도리천(忉利天)에 구기(拘耆)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꽃이 울창하여 여러 하늘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보살은 이미 법으로써 일체를 깨달아 의왕(意王)이 될 만한 분이므로 안목(眼目)으로 삼을 뿐입니다. 도라는 것은 다 없는 것이니 다만 마음으로 그릇을 삼을 뿐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마음엔 별도로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까?”
여래가 말하였다.
“마음이라는 것은 모든 법과 화합하는 것이요, 모든 법도 마음과 화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에는 주장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어남이 없는 것으로 주장을 삼을 뿐이니, 그런 까닭에 법기(法器)가 되는 것입니다.”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변화를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보았습니다.”
여래가 말하였다.
“변화하는 도가 어느 곳을 거쳐서 갔습니까? 그리고 와서 도달한 곳은 어디입니까? 또한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도에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변화를 거쳐서 온 도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한 것인지를 압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다만 변화가 이룩되었을 때에 마침내 본말(本末)을 볼 수 없었으므로, 변화한 것이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여래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는 이가 본 것은 거꾸로[倒] 본 것이 아닙니까?”
사리불이 여래에게 말하였다.
“보는 것이 없다면 무엇을 본다고 합니까?”
여래가 대답하였다.
“모든 생각은 변화[化]와 같아 이것이 견(見)이 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이 변화와 같으니 이것이 견이 되며, 미래법(未來法)은 아직 이름이 없으니 이것이 견이 되고, 조작함이 없는 법이 바로 견이 되며, 만들지 않은 법이 곧 견이 되고, 조화(造化)가 없는 것이 곧 견이 되며, 다만 이름 없는 생각을 짓는 것이 바로 견이 되며, 다만 조작 없는 변화를 짓는 것이 바로 견이 됩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그러면 이 가운데 왕래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래가 대답하였다.
“왕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것이 견이 됩니다. 가령 왕래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견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본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래께서 이러한 일들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불설보여래삼매경 하권
천축삼장 지다밀 한역
김혜경 번역
사리불이 여래보살에게 물었다.
“법륜(法輪)을 끊은 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보살이 만약 형상이 없는 문[無形之門]을 보았다면 이것은 이미 법륜의 문[輪門]을 끊은 것이며, 이미 공(空)하여 없어져서 탈(脫)과 무탈(無脫)에 대하여 공(空)을 이룩한 것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공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처소와 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니, 작용이 근본에서 벗어나 그 법륜이 구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담마갈보살이 여래보살에게 말했다.
“여러 새로 배우는 마하살에게 제가 이 선정법을 증득하게 하고 싶습니다.”
여래보살이 담마갈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이 삼매를 얻으려면, 마땅히 아홉 가지 법을 닦아야만 합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마땅히 시방 천하의 사람들 모두를 기필코 보살이 되게 해야 하고, 둘째는 모든 악한 뜻을 보면 마음으로 하여금 끝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니 이것이 선정(禪定)이 되며, 셋째는 다섯 갈래의 세계[五道]에서 고생하거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넷째는 어리석은 무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에서 나[我]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니 이것이 선정의 뜻이 되고, 다섯째는 모든 어둠을 보면 밝게 해야 하니 이것이 선정의 뜻이 되며, 여섯째는 지은 공덕을 조금도 잃지 않게 해야 하나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일곱째는 시방 천하의 사람들을 보면 다 평등하게 해야 하니 이것이 선정이 되고, 여덟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의 모든 의왕(意王)이 될 만한 이를 보면 다시는 작용이 있는 인식작용에 부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하니 이것이 선정이 되며, 아홉째는 천억 부처님 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동요하거나 변하지 않게 해야 하니 이것이 선정의 뜻이 됩니다. 보살은 이것을 따라야 빨리 삼매를 얻습니다.”
미륵(彌勒)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늘 이 모임에 온 사람 중에 어느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耶三菩]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사루타(沙樓陀)부처님 시절에 나는 처음으로 배우려는 마음을 내었으나 뭇 번뇌[垢]에 덮여 큰 지혜를 증득하지 못하였고, 다만 마음을 낸 보살이라는 말만 들었느니라. 그러다 그곳에 이르러 생각과 인식작용이 공(空)한 것이라는 마음을 일으켰지만 선지식(善知識)을 얻지 못했고,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선교방편)에도 이르지 못했느니라. 그리하여 선지식을 멀리 여의고 욕왕(欲王)에게 속임을 당하여 의왕(意王)과는 단절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나는 바라밀을 잃고 마음을 잃어버렸는데, 62겁이 지난 뒤에 자연히 부처님 회상에서 법을 듣게 되어 내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끊고 문득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곧 공(空) 가운데 머무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느니라. 따라서 모든 익숙한 근(根)을 단절하고 곧바로 지혜의 문을 보아 문득 움직임이 없는 형상을 얻었느니라. 이로부터 점점 수행하여 법륜을 끊었느니라. 그때 정각(正覺)으로부터 이 삼매를 받았는데, 비록 62겁 동안 뜻을 발하였지만 법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었으며 뒤에야 부처님 회상에서 자연법을 깨달아 문득 대수(大樹)를 얻고 비로소 처음 뜻을 냈던 것을 고쳤느니라. 내가 마음을 낼 땐 90억 명의 선남자와 선여인도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이와 같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되었느니라.”
미륵보살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마음을 낼 때에 몇 가지 일이 있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홉 가지 법이 있었느니라. 어떤 것이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대중의 모임을 멀리 여의고 적연한 것이요, 둘째는 선지식을 얻어 법을 받아 잃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악지식(惡知識)을 멀리하는 것이다. 넷째는 다섯 가지 일을 마땅히 멀리하는 것이니, 첫 번째 악한 사문(沙門)이요, 두 번째는 바라문(波羅門)이며, 세 번째 황문(黃門)이요, 네 번째 사나운 소[惡牛]ㆍ난폭한 말[惡馬]ㆍ모진 독사[惡蛇]ㆍ많은 독을 가진 벌레[多毒]이니, 마땅히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 도를 증득하지 못한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니리(泥犁:地獄)에 떨어지게 하니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처음 발심하여 아라한과 벽지불의 마음을 구하는 사람이니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다섯째는 마땅히 숱한 마군의 일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오로지 꿈에서도 심오한 법[深法]을 설함을 보는 것이며, 일곱째는 오로지 법을 위하여 마음을 내고 밥[飯]에 뜻을 두지 않는 것이며, 여덟째는 마땅히 자주 사람들을 모으지 않고 희망하는 자에게는 밥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마땅히 시방세계에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고 마땅히 삼매에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서 부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해야 할 아홉 가지 법에 대한 발심이니라.”
부처님께서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나타내시자, 6만이나 되는 여러 애욕(愛欲) 천자들이 모두 이 삼매를 얻었다. 그때 공중을 날던 하늘이 모두 다 말하였다.
“훌륭하고 통쾌합니다. 애욕 천자들이 이 삼매를 들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든 천자들이 이 삼매를 얻고 당당하고 높이 스스로 그 주인이 되어 발심해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지니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모든 천자들이 전후(前後)하여 사리(舍利)에 공양한 것이 수미산(須彌山)의 크기와 같다 해도 니원(泥洹:열반)에 이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느니라. 이제 이 삼매를 얻으면 앞에서 쌓았던 공덕은 다 소멸되어 무너질 것이니라.
왜냐하면 삼매는 명처(名處)도 없고 삼매에는 상처(想處)도 없으며, 삼매에는 염처(念處)도 없고 삼매에는 형처(形處)도 없으며, 삼매에는 식처(識處)도 없으며, 삼매에는 위신처(威神處)도 없고, 삼매에는 결행구탈처(結行求脫處)도 없으며, 삼매는 청정처(淸淨處)이며, 삼매는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지도 않고 저기에서 여기에 이르지도 않느니라.
삼매에는 상비상처(想非想處)도 없고 삼매에는 조작처(造作處)도 없으며, 삼매는 변화함에 형처(形處)가 없고, 삼매는 생사도 없고 단절됨이 없는 처소도 아니며,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라. 삼매에는 다만 메아리만 있을 뿐이요, 삼매에는 다만 음성만 있을 뿐이며, 삼매에는 다만 지혜를 여는 처소만 있고 지혜가 생겨나는 처소는 없느니라. 삼매에는 일정한 틀[器]을 만드는 처소는 없나니, 그런 까닭에 삼매는 파괴되어 소멸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삼매는 다스림에 출입하는 처소[出入治處]도 없고 삼매에는 또한 인식작용을 짓는 처소도 없으며, 삼매에는 행을 일으키는 처소[起行處]도 없고 삼매는 갖가지 맛을 받아들이는 처소[眾味受處]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삼매에는 형처(形處)도 없고 삼매에는 탐욕에 출입하는 처소도 없느니라.
삼매는 모든 법이 정해지지 않은 처소요, 삼매에는 생겨나는 처소도 없고, 삼매에는 호응하는 처소도 없으며, 삼매는 적연한 처소이고, 삼매에는 동요하는 처소도 없으며, 삼매에는 경계의 끝[邊幅處]도 없으니, 그러므로 삼매는 무너지지 않느니라. 만약 이러한 삼매가 무너지고 상함이 있다면, 이것은 곧 크게 어리석은 근생(根生)의 문이니, 그러므로 이 삼매는 무너지고 상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정직하지 못한 것에 종사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마땅히 법에 두 가지가 있다
고 여기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일어나는 바에 부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을 보되 ‘이것은 지어진 것[作]이다, 이것은 지어진 것이 아니다[非作]’라고 하든가, ‘이름이 있다, 없다’ 하는 것에 부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넷째는 마땅히 현재ㆍ미래ㆍ과거에 대해 보는 바가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법을 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법이 되느니라.
보살마하살로서 가고 옴이 없는 작용을 증득한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耶三菩]의 마음을 빨리 낼 수 있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여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두 가지 법이 되니,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보살이란 그 가운데에서 떠나는 것도 아니요, 그침[止]을 여의는 것도 아니며, 해탈을 여의는 것도 아니어서 그 가운데에서 여의는 것도 없습니다. 작용하는 것에서 영원히 작용함이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것은 허깨비와 같을 뿐이며, 허깨비를 가지고 허깨비를 설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는 아무 이름도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또한 법을 따라 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법을 떠나서 해탈하는 것도 아닙니다. 해탈한 가운데에서 다시 해탈하니, 그러므로 주인[主]이 없는 것이요, 다만 이름에 머물 뿐입니다. 글자[字]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곧 법륜이 단절된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법륜은 본래 청정하여 존재하지 않거늘, 그 누가 법륜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법륜에 처소가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이것이 곧 법륜을 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탐욕을 일으켜 법(法)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생사의 뿌리가 되니, 법을 소멸하는 것도 번뇌[結]를 없애는 작용이다. 작용이 없는 작용이 바로 작용을 여의지 못한 것이 되고, 탐욕을 일으켜 인정하고 있는 모든 법을 여의면 곧 단절하지 못한 것이다.
탐욕이 없어서 일으키지 않는 것이 도(道)요, 가(可)함도 없고 불가(不可)함도 없는 것이 곧 도이며, 생겨남도 생겨나지 않음도 없는 것이 곧 도요, 인식함도 인식하지 못함도 없는 것이 곧 도이며, 죽음도 죽지 않음도 없는 것이 곧 도요, 단절됨도 단절되지 않음도 없는 것이 곧 도이다.
멀리함도 멀리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 곧 도이고, 인정함도 인정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 곧 도이며, 머문다는 생각도 없고 여읜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 곧 도요, 무념(無念)을 염(念)하는 것이 곧 도이며, 설할 바 없는 것을 설하는 것이 도이고, 니원(泥洹:열반)은 멸할 것이 없으니 그 멸할 것이 없는 것까지 여의는 것이 도이고, 니원은 형상이 없으니 그 형상이 없는 것까지 여의는 것이 도이고, 니원은 멸하여 다한 것이니 멸하여 다한 것까지 없는 것이 곧 도이며, 법은 자연 그대로 적연한 것이니 그 적연함까지 여의고 모든 법을 인정함이 없어서 잃어버림이 없는 것이 곧 도이고, 지혜로 근본을 여의는 것이 곧 도이며, 이름도 아니고 생각도 아닌 것이 곧 도이다.
밝힐 것[明]이기도 하고 밝힐 것이 없기도 한 것이 곧 도이고, 밝고 어둠에 대하여 서로 알 것도 없는 것이 곧 도이며,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서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곧 도이고, 도에 대하여 도를 얻을 것이 없는 것이 곧 도이다. 괴로움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알 것이 없는 것이 곧 도이고, 일어나는 것에 생각함이 없는 것이 곧 도이다. 청정하여 어렵거나 쉬움이 없는 것이 곧 도이고, 제도할 대상에 주인이 없는 것이 곧 도이고, 이르는 바에 생각함이 없는 것이 곧 도이며, 모든 법은 이름이 아니나 이름이 아닌 것까지도 여의는 것이 곧 도이다. 보살이 제도하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 곧 도이며, 이름에 마음이 바뀌지 않는 것이 곧 도이다.
부처님께서는 삼매로써 사람들의 뜻에 맞게 제도하여 만물(萬物)로 스스로 장엄하지만 그 장엄은 본래 형상이 없다. 다만 장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도된 견해일 뿐이니, 다만 장엄은 모든 의왕(意王)에서 생기는 것이며, 다만 장엄은 상(想)이요 비상(非想)일 뿐이니라.”
여래보살이 질문하는 일을 마치자,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기에 모인 36천(天)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나 이 삼매를 받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비단 천인(天人)뿐만 아니라 모임에 온 사람이라면 다 이 삼매를 증득하여 장차 부처가 될 것이요, 장차 시방을 섭수할 것이요, 장차 다섯 갈래 세계[五道]의 근심스럽고 괴로운 일들을 끊을 것이니, 마치 지금의 모임에서와 같을 것이니라.”
그때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께서 기별(記別:授記)을 주시는 것을 들었는데, 80억의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나는 바가 없는 법[無所從生法:無生法忍]을 다 증득하여, 땅에서 3백 장(丈)쯤 떨어진 허공에 머물러 몸에서 만천억 송이의 향내 나는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려와서 정각께 예를 올렸다.
아루(阿樓)보살과 아제(阿提)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기에서 수기(授記)를 받은 모든 보살들이 땅에서 3백 장쯤 떨어진 허공에 머물면서 몸 위의 꽃이 아름답고 절묘한 것을 보았는데, 이 꽃은 어느 곳으로부터 온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푸른색은 본래부터 푸른 것이고 흰색은 본래부터 흰 것인데,1) 여러 색으로 물이 들어 푸른색ㆍ누런색ㆍ붉은색ㆍ흰색을 따라 모두 그 색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색깔로써 나타났던 것이다. 다만 비단은 본래 깨끗했던 것이기 때문에 푸르고 누렇고 붉고 검은 색으로 물드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근본이 또한 깨끗하기 때문에 색깔이 나타난 것이지 그 색깔이 비단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비단이 또한 색깔에 들어간 것이 아니니라. 오직 근본이 깨끗한 까닭에 색깔이 나타났을 뿐이니, 여러 보살들이 수기를 받고 몸 위에 여러 종류의 꽃을 본 것도 이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보살들이 꽃 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꽃도 또한 보살에 있었던 것도 아니며, 다만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무념법(無念法)으로 끊고 지혜로 밝고 깨끗하게 되었기
1) 고려대장경 원본에는 이 부분이 “청본청본자백(靑本靑本自白)“으로 되어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궁(宮)본에는 ‘청본청본자백’이 ‘청본청백본백(靑本靑白本白)’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후자의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때문에 갑자기 꽃이 나타났을 뿐이며, 꽃이 깨끗하였기 때문에 문득 나타난 것뿐이니라. 이와 같아서 머무름이 없는 이는 모든 공덕을 성취하지만, 상(想)과 행(行)에 머무는 이에게는 생사(生死)의 문이 열리느니라.
아라한과 벽지불이 이런 까닭에 다섯 갈래의 세계를 멀리했으나, 그들에게는 다만 열 가지 전도된 견해가 있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공덕을 보고 다들 해탈했다고 말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섯 갈래 세계에서 수고롭고 괴로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니원을 취하려 하는 것이며, 셋째는 온갖 물질에 주인이 없음을 보고는 빨리 여의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전도된 견해가 되느니라. 넷째는 편안한 근본을 바라면서도 스스로 그 근본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이 전도된 소견이요, 다섯째는 무간지옥에서 나와 처소가 없는 세상에 들어가고자 하면서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구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 전도된 소견이니라.
여섯째는 나한이 니원에 집착할 때에 몸에서 불이 저절로 나오는데, 그 불은 일어나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에서 불이 나와서 스스로를 태우느니라. 그러므로 생사가 끊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전도된 견해이니라. 일곱째는 본말은 다함이 없는 것인데 스스로 다함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전도된 소견이 되고, 여덟째는 니원에 들어 악을 멸하고 싶어하면서도 주인이 없음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소멸시키려고 애쓰니 이것이 전도된 견해가 되며, 아홉째는 베풀어 주긴 하지만 시방세계 사람들의 뜻을 발심시키지 못하고 다만 법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니 이것이 전도된 견해가 되고, 열째는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하여 평등하고 깨끗한 행을 하지 않고 두 가지 법이 있다고 말을 하니 그런 까닭에 전도된 견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열 가지 일의 전도된 견해이니라.”
부처님께서 아유아루(阿惟阿樓)보살과 마제(摩提)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여러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아하뇩(阿訶耨)부처님 시대의 사람들이니라. 지금 나에게서 수기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또한 과거세에 6만 부처님 처소에서 이 삼매를 받았었느니라. 그런 까닭에 지금 나에게서 다시 수기를 받을 뿐이다. 이후 억만 년이 약간 지난 뒤에 나의 법이 단절될 즈음이면 오늘 이 법회에서 마음을 낸 보살들이 마땅히 40만 사람이나 될 것이니, 이들이 법을 가지고 불퇴륜(不退輪)을 굴려서 법이 단절되지 않게 할 것이며, 마땅히 법을 보호하고 지녀서 그들로 하여금 각각 부처가 되게 할 것이므로 법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 같은 모임을 가지게 될 것이니라. 이 모든 마음을 낸 사람들 가운데 천 년이 약간 지나고 나면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마땅히 내 법을 함께 무너뜨리고, 또한 악한 사문으로서 남자와 여인이 있게 될 것이니라.”
수보리가 정각께 말씀드렸다.
“어느 곳에 있는 보살들이 어떤 행을 하여 법을 보호해서 단절되지 않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현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40만 모든 보살이 다 제8지(地) 이하에 머물고 있으면서 법에 대하여 번뇌의 생각이 없으니, 이들이 곧 법을 보호하여 지녀서 그 법이 시방세계에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무리들이 법을 무너뜨립니까? 천중천(天中天)께서 해설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나한이나 벽지불과 어떤 사문이나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번뇌의 생각을 일으켜 지혜에서 그 이름만을 구하며, 본말을 파괴하여 멸하고, 존중해야 할 법을 마음대로 늘이고 줄여 말하기를 ‘『기액경(經)』에 이르기를 [다만 음식만을 좋아하는 것이 곧 도이다]라고 했다’고 하며, 마침내 공(空)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하고 다만 국토만을 장엄하게 하려고 하거나, 법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부처가 되기를 구하며, 법은 잘 알지 못하면서 두 가지 법이 있다고 말하는 이러한 일이 곧 내 법을 무너뜨리는 것이니라.”
천상존천(天上尊天)ㆍ아수이천(阿須夷天)ㆍ번나천(潘那天)ㆍ자루니천(子樓尼天)ㆍ구속제천(拘屬提天)ㆍ시천(施天)ㆍ나리천(那利天) 등 여러 하늘들이 천중천께 아뢰었다.
“형상과 수명을 지닌 채 귀의하여 법을 지닌 이들이 천만 겁ㆍ억만 겁 동안 쉼이 없을 때에 오직 저희들로 하여금 이 삼매를 증득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삼매를 받들어 행하는 사람은 그와 같이 될 것이니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래에게 말씀하셨다.
“먼 훗날 발심하여 이 삼매를 행하여 이 삼매를 증득한 이는, 비유하면 정니원(精泥洹)이라는 천상(天上)에 보배가 있는데, 그 구슬은 모든 보배 가운데 왕이요, 천상천하의 보배 가운데에서도 가장 존귀하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곧 나타나게 되느니라. 그 이름을 정니원주(精泥洹珠)라고 하느니라. 이 구슬 하나만 얻어서 이 구슬을 가져다가 대나무 위에 붙여 두거나 손에 두고서 사방[四面]의 공중을 보면서 며칠에 귀중한 보배가 비 내리듯 하게 해달라고 하면, 향하는 데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느니라. 정니원주를 얻은 사람은 마땅히 탐하여 소유하지 않고, 또한 삼계에 보배를 비처럼 내리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얻을 수 있게 함이 이와 같으니, 이 삼매를 행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나열국(羅閱國)의 왕이 많은 신하들과 함께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이 천상의 크고 높으신 분이시여, 큰 은혜를 베푸시어 이미 시방세계 중생들을 해탈케 하셨으니, 혹 천상에 있는 정니원 보배구슬을 나열국에 쏟아지게 하시어 저의 나라에 살고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 보배를 얻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에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셨다. 아난(阿難)이 의복을 바로잡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이유 없이 미소를 짓지 않으십니다. 지금 미소를 지으셨으니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으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열국의 왕이 여러 신하들을 따라서 이곳에 와서 천상의 니원보주(泥洹寶珠) 얻기를 빌면서 깨끗한 니원주를 나열국에 쏟아지게 해주기를 바라고있느니라. 이 나라에는 그 보배가 있어서 즐길 수 있는데, 여래보살이 왔을 때 이미 이 보배를 얻은 줄 모르고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나열국 왕에게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모두 백 일 동안 다섯 가지 맛을 먹지 않았고 다만 법으로써 맛을 삼았으며, 여인들은 모두 남자로 변했는데, 왕은 그런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이 삼매를 얻었습니다.”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몸 위의 보배구슬을 가져다가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의 머리 위에 뿌리니, 보배구슬이 다 변하여 향기로운 꽃이 되어 허공에 머물기도 하고 떠다니기도 하였는데, 그 사이에 백천 가지 음악이 울려 퍼지자 모두들 서로 즐거워하였다. 왕은 의복(衣服)이 이와 같음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백 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꽃들은 어느 곳으로부터도 나온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느 곳으로부터도 나온 곳이 없습니다.”
또 여쭈었다.
“아무 곳에서도 나온 곳이 없다면 어느 곳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곳으로부터도 일어나 온 곳이 없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일어난 곳이 없다면 어느 곳에서 왔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곳으로부터도 생겨나온 곳이 없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생겨난 곳이 없다면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부동(不動)으로부터 왔습니다.”
“부동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지음이 없는[無造] 데로부터 왔습니다.”
“지음이 없는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이름이 없는 데로부터 왔습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생겨남이 없는 데로부터 왔습니다.”
“생겨남이 없는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소리가 없는 데에서 왔습니다.”
“소리가 없는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둘이 없는[無二] 데로부터 왔습니다.”
“둘이 없는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형상이 없는[無形] 데로부터 왔습니다.”
“형상이 없는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자연(自然)으로부터 왔습니다.”
“자연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변화로부터 왔습니다.”
“변화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변화하지 않음을 여읜 데에서 왔습니다.”
“변화하지 않음을 여읜 것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변화하지 않음을 여의어서 서로 앎이 없는 곳에서 왔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서로 앎이 없는 곳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까닭에 모든 법이 되는 것입니다.”
왕이 부처님께 이에 대해 묻고 나서 크게 기뻐하면서 밤낮 백 일 동안 오직 이 삼매만을 즐거워하였다. 왕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보살과 먼 곳에서 온 모든 보살과 존귀하고 어진 분들이 모두 먼 곳에서 왔는데, 이제 부처님을 뵙고 나서 가버릴까 염려되오니 제가 지금 간곡하게 청하옵니다. 부디 문수와 여래보살 등께서는 저의 왕궁에 오시어 식사 공양을 하셨으면 합니다. 여래께서는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잠자코 응답하지 않으셨으니, 그것은 마음속으로 인가하셨기 때문이었다.
왕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궁중으로 돌아와서 즉시 신하들에게 명하여 급히 나라 안을 장엄하되 길 양편을 화려하게 꾸미고 향을 뿌리게 하였으며, 이름난 꽃으로 길 양쪽에 늘어놓아 모두 꽃으로 장식하게 하였다. 이렇게 왕궁을 깨끗이 소제(掃除)하고 세간에서 가장 좋은 꽃과 향으로 백 가지 자리를 만들어 그 자리마다 모두 유리와 금은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궁중 사람들을 시켜 깨끗이 청소하게 하였으며, 모든 부인들과 채녀(婇女)들은 다 재계(齋戒)하였다.
문수사리와 여래보살 등이 모두 나열국으로 가서 성안에 들어가 아직 궁문에 이르지 않았을 때, 왕이 문밖으로 나와서 여래보살 등을 맞이하였다. 그때 여래보살과 문수사리 등 60억만 사람이 있었는데, 여래보살이 사양하며 그들을 먼저 궁중에 들어가게 하였지만, 여러 존귀한 보살들은 여래보살보다 앞서서 궁중에 들어가지 않았다.
여래보살이 말하였다.
“여러 존귀하신 보살들께선 어째서 앞서 궁중에 들어가지 않으십니까?”
여러 보살들이 말하였다.
“존귀함을 이룩하신 여래보살께서 마땅히 앞서서 들어가셔야 합니다.”
여래보살이 말하였다.
“저는 앞서서 궁중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 높으신 보살들께서 마땅히 먼저 들어가셔야 합니다.”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무엇을 높다고 합니까? 지혜에 일정한 처소가 없으니 이것이 곧 높은 것이요, 마음에 아무 형상도 없으니 이것이 곧 높은 것이며, 생각에 의식함이 없으니 이런 까닭에 높고, 법에 대하여 행하는 바가 없으니 그런 까닭에 높으며, 일을 하되 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높고, 이미 법륜을 끊었으니 그런 까닭에 높으며, 무념법(無念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높고, 법에 대하여 많고 적음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높으며, 선교방편[漚和拘舍羅]이 매우 많기를 바라니 그런 까닭에 높고, 일체지[薩芸若]에 상대하여 앎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높으며, 이미 법의 갑옷[法鎧]을 입었으니 그런 까닭에 높고, 삼매에 대하여 많고 적음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높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은 여래보살이오니 그런 까닭에 마땅히 앞서 궁중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여래보살이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높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높은 것이냐 하면, 연세가 많기 때문에 높은 것입니다.”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나이는 많지만, 비유하면 만 살이나 되어 마른 고목과 같아서 근본이 다 소진되었으므로 다시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맺을 수 없으며, 그늘을 만들어 세간을 덮을 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래보살께서는 비록 나이는 적지만 지혜에 들어감이 너무도 깊으니, 비유하면 보배나무에서 사람들이 꽃과 열매를 얻은 것과 같아서 제도(濟度)를 받지 못한 이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앞서서 궁중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에 여래보살이 앞서 궁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러 높은 하늘들이 만 가지 음악을 여래보살을 따라가면서 연주하였다.
문수사리와 여래보살 등이 각기 자리에 앉으니 왕이 부인들을 시켜 모든 보살들이 드실 음식을 장만하였는데, 여덟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금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궁중에 내오고 만 가지 온갖 향을 피웠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왕이 문수사리와 여래보살에게 여쭈었다.
“제가 지금 이 큰 모임이 있을 때에 시방세계의 부처님을 뵙고 싶은데, 마땅히 어떻게 해야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여래보살이 말하였다.
“이번 모임에서 시방세계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모두 수많은 지혜를 깨닫고자 노력하셔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홉 가지 법을 수행하셔야만 합니다. 어떤 것들이 그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마땅히 시방세계 부처님을 보되 이와 더불어 다름이 없어야 하고, 둘째는 내가 행하는 도를 보되 그 외에 다른 길[道徑]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셋째는 마땅히 일체의 사람들을 보되 해탈시킬 것도 없어야만 합니다. 넷째는 마땅히 식사하는 것을 보되 변화로 만든 것을 보는 것과 같이 하며, 다섯째는 마땅히 5음(陰)을 보되 인식작용과 생각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여섯째는 마땅히 6정(情)을 보되 허깨비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일곱째는 마땅히 관하는 것은 오직 전도된 견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여덟째는 마땅히 법 가운데에서 크게 보시해야 하며, 아홉째는 마땅히 보시한 것도 본래 보시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왕은 여래보살이 해설해 주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여래보살이여.”
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늘 마땅히 공(功)을 나타내어
태어나는 곳마다 언제나 세존 만나서
그를 따라 큰 지혜 받고 나서
항상 애욕의 뿌리 없애기 원해야 하네.
탐내지도 않고 또한 미워하지도 않으며
악한 생각 다시는 일으키지 않아서
수없이 많은 부처님에게서
이 삼매를 들을 수 있었다네.
삼천세계[三千刹]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존귀한 삼매를 행하고
모든 사람들이 소유한 진귀한 보배를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네.
법은 5음(陰)을 따르지 않고
또한 이 처소를 여의지도 않네.
관찰함을 따라 이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일체가 다 이와 같네.
관찰함을 따라 환희를 얻고
태어나는 곳 없기를 발의(發意)하였네.
그곳 이미 이와 같나니
그러므로 천중천이 되었네.
만약 삼계에 있다 해도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
니원(泥洹)과 니왈(泥曰)에
이런 일들 전혀 없네.
마음에 마땅히 삿된 생각 하지 않고
법 아니면 행하지 않으며
만약 삼계에 있다 해도
마음 굳게 지켜 일어나지 않게 하네.
메아리가 돌아와 대답하듯이
안과 밖이 모두 서로 호응하여
일어남 없어 다 적연하나니
모든 법 또한 이와 같네.
삼천세계 모든 부처님 국토의
명자(名字) 모두 이와 같나니
듣는 것도 없고 또한 보는 것도 없으며
법에 대해 마땅히 의론하지 않네.
이미 오래도록 지녀 많은 복 지었네.
지혜 있는 사람 이 말 이해하고서
부처님의 무상해(無常海)를 얻었네.
법이란 다 청정한 것이어서
넓고 크기가 짝할 것 없네.
언제나 무변수(無邊水) 지어
삼천세계 실어주고 덮어 준다네.
마음으로 다라니[陀隣尼] 원하고
앞 다투어 지혜 발하나니
법이란 이미 이와 같은 것
일체 중생 마땅히 받들어 행하여라.
내가 기억해 보니 뜻 구할 때
약간의 겁으로부터
마음속에는 언제나 집을 버리고
탐욕에 대해 구한 것 없었네.
항상 선지식을 의지하며
바른 법 얻어 머물러
그때 큰 모임에서
존귀한 삼매의 법 얻어 들었네.
마음속에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허공에 머물렀으니
땅에서부터 140장(丈)이나 떨어졌으며
합장하고는 부처님 곁에 있었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보살들
수기 받은 것도 이와 같으니
그 마음 더욱 기쁘며
여러 삼매 얻어 들었네.
문득 한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여러 부처님 앞에 날아서 이르러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니
여러 국토가 놀라 진동하였네.
꽃과 향기 저절로 이르고
난풍(亂風)이 자연 생기네.
온갖 종류의 모든 음악이
그 자리에 다 머물렀었네.
용왕도 크게 기뻐하여
만 가지 향기 비 내리듯 뿌리고
변화로 여러 가지 작은 못[池] 만들어
위로 삼천세계에 이르렀네.
여래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하였다.
“지금 꽃과 향이 삼천찰토(三千刹土)로부터 저절로 이 모임에 이르고 음악이란 음악은 다 갖추어졌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위신력과 여래의 신통력 때문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여래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여러 보살들의 위신력을 알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음악은 있는 곳마다 생기는 이름 없는 음악이며, 지금 있는 곳에서 생겨난 법(法)은 명처(名處)가 없으니 고락(苦樂)이 음악의 처소이며, 보이는 바는 모두 변화한 것일 뿐이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두 가지 법이 없는 것이 그 음악이요, 나한과 벽지불을 다 제도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 음악이며, 다섯 갈래 세계[五道]를 보면 그들로 하여금 다 불법을 얻게 하고 싶어하는 것이 곧 그 음악이요, 제도한 모든 대상은 생겨남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일체에 다 처소도 없고 일어나는 바도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삼매에는 번뇌[煩荷]가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일체처(一切處)에는 이름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모든 존재는 다 변화[化]와 같은 것이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소리의 처소도 아니요 생겨나는 처소도 없는 것이 곧 음악이요, 법(法)을 베풀었으나 베푼 바 없으며 있는 바도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삼천세계에는 영원한 곳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일체 사람들로 하여금 신심(信心)을 얻게 했으나 그것에 대해 의식한 바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미래ㆍ과거ㆍ현재의 3처(處)가 다하여도 다한 것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근본에 돌아가게 하면 볼 대상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법륜을 보아도 여기에는 볼 대상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삼천찰토는 일체가 평등하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시방 삼천세계에 법장(法藏)을 수립한 것이 그 음악이요, 시방의 모든 찰토는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색계(色界)와 욕계(欲界)가 서로 합하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명자(名字)에는 주인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경계[邊幅]가 없고 일체가 고요하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일체의 밝음과 어둠은 합해지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모든 행동에 계율을 잃지 않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모든 생각하는 바에 삼매를 잃지 않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허공의 보배 도무극(度無極:바라밀)이 그 음악이요, 모든 지혜와 깨달음에는 처소가 없나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모든 인가할 만한 대상이 바로 그 음악이요, 일체를 결단코 받아들임이 없는 것이 바로 그 음악이며, 삼계 가운데에서는 이와 동등할 것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법을 구하되 목숨을 아끼지 않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일체의 밝음은 다시 밝음과 합하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모든 존재란 다만 전도(顚倒)된 견해일 뿐이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보시를 하고도 바라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뜻[意]이 다함이 없어서 대선사(大船師)가 되었으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변원(邊園)도 없고 무극(無極)을 벗어나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마음이 고요하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정(定)한 바가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모든 삼매문(三昧門)은 전도가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또한 들음도 없고 들림도 없나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모든 생각하는 것이 바른 도[正道]가 아니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모든 사람들이 다함이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요, 모든 해탈할 대상은 비유하면 허깨비와 같나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처음 발심했을 때에 삼매를 갖추었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모든 보살은 어느 곳으로부터도 온 곳이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이며, 모든 보살은 마음만 먹으면 시방(十方) 어느 곳이나 이르니 이것이 그 음악이요, 푸르거나 누렇거나 희고 검은 것이 아니고 도경(道徑)도 없으니 이것이 그 음악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여래보살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의 위신력과 음악을 알고자 한다면 그 모든 즐거움은 이와 같습니다.”
문수사리가 여래보살이 질문한 다섯 가지 즐거운 일에 대하여 대답하였다.
그러자 여래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문수사리의 마음에
지혜의 존귀함은 이전에 없던 것으로
베푼 것 삼천세계를 덮으니
그 지혜 존귀하지 않음이 없네.
위신력으로 펴서 행한 것
삼천세계를 다 제멸(除滅)하였네.
모든 음악을 탐한 바 없으나
오직 불탈시(不奪施)만 하였네.
음악의 법이 가장 크며
변화하는 것에는 제도할 것이 없네.
베푼 음악의 법도
공한 것이어서 제도할 것 없네.
법과 음악을 모두 행하니
이보다 더 큰 보배 없고
음악에는 주인 없으니
공한 것이어서 처소 없다네.
여러 미묘함에 깊이 들어가
모든 사람들을 밝게 깨닫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대법(大法)을 얻게 하여
수고롭고 괴로운 뿌리를 끊어 없애네.
모든 세간 사람들
모두 다 마음속에 이해 못하네.
법으로써 각의(覺意)를 삼고
지혜로써 일체를 구원하네.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의어서 공한 것은 생각[想] 아니요
이 생각도 공이 아니니라.
법에 대하여 마음 일으키지 않으면
곧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네.
언제나 마땅히 마음을 부드럽게 가져서
깨끗하여 소유하는 것 없어야 하리.
색계와 욕계가 함께 합하니
서로 간섭함이 없다네.
설한 바는 형체 없으니
형상이 있음을 여의지 않네.
모든 법은 꿈과 같은 것
바라는 바 끝이 없다네.
이 적멸[寂]과 적멸을 여읜 것
여읜 것도 없고 조작한 것도 아니네.
모든 법은 주인 없는 것
인정하는 법 변화[化]와 같네.
받아들일 것 전혀 없으니
법은 버릴 것도 없다네.
작용하는 것은 전도된 견해 때문이니
일체가 다 그러한 것이라네.
물질도 아니요 물질을 여읜 것도 아니니
이것이 곧 색(色)을 여의는 것이 아니라네.
그 법은 색과 같나니
그러한 이치 이와 같다네.
음성[音]도 아니고 메아리[響]도 아니며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네.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니
모든 존재 이와 같다네.
변화하는 것에는 이름 없는데
스스로 이것이라 말하네.
법에는 이러한 헤아림 없으니
제도할 바도 이와 같다네.
허깨비 같아 볼 것 없으니
보는 바[所見]에서 봄[見]을 여의네.
탐함과 욕망 여의어야 하니
법은 의론의 대상 아니라네.
욕망의 때가 없나니
집착하지 않으며 여읠 것도 없네.
이와 같은 진리를 보면
아무것도 볼 대상이 없다네.
여래보살은 부처님께서 미소 짓는 까닭을 알고 궁중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근본을 의심하여 알지 못하니
법은 자연(自然)이라 말씀하셨네.
근본은 항상 머무는 일 없으니
지혜를 의심함 옳지 못하네.
생각에 번뇌 없고
식념(識念)에도 괴로움 없네.
이름을 날리고 글자에 머무름은
법을 구하는 것 아니라네.
근본은 그렇지 않으니
돌아오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네.
가(可)이니 불가(不可)이니 하는 것
멀리 여의어 인정할 것 없네.
생겨남에 대하여 멸할 것도 없으면
이것이 곧 소멸하는 것이라네.
이치에 대하여 생각 없으면
이것을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네.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는 것
그 또한 서로 멸하지 않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법은 다 공한 것이기 때문이네.
또한 말을 구하지도 않고
나는 니원(泥洹)도 여읜다네.
왜냐하면
본말(本末)이 깨끗하기 때문일세.
끝없는 시방세계
그것을 들어 증명하려네.
이것이 나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그 증거라네.
마땅히 영원토록 생각하지 않아야 하니
시방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일세.
참다운 법은 번뇌 없으니
이런 느낌도 이름 없다네.
법에는 고정관념이 없으니
마땅히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네.
행동함이 이와 같으면
존귀한 법을 보지 못하리.
마땅히 지혜 깨달아야 하니
미묘함에서는 두렵지 않네.
만행(漫行)으로는 이르지 못하니
이것을 지혜의 문이라 말하네.
여래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오늘 이 모임에 와서 새로 마음을 낸 이들에게 다함이 없는 법[無極法]을 얻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가 여래보살에게 말하였다.
“생각에 일으킴이 없으면 곧 다함이 없는 법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여래보살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해야 생각에 일으킴이 없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여래보살에게 대답하였다.
“마땅히 아홉 가지 법보(法寶)를 건립(建立)해야 합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 법보인가 하면, 첫째는 뜻[意]에 처소가 없으면 이것이 곧 보배요, 둘째는 법에는 주인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하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셋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를 보지 않으니 이것이 곧 보배요, 넷째는 법에는 조작(造作)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입니다. 다섯째는 베푸는 바는 오직 법음(法音)만을 베푸니 이것이 곧 보배요, 여섯째는 다섯 갈래 세계의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보고 마음이 변하지 않으니 이것이 곧 보배며, 일곱째는 깨달은 것은 선교방편과 멀지 않으니 이것이 곧 보배요, 여덟째는 모든 법을 보되 두 가지 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아홉째는 니원(泥洹:열반)에 이르러서도 그 또한 환화(幻化)와 같다고 여기니 이것이 곧 보배입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아홉 가지 보배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인가함에 웃을 바도 없고
짓는 바에 항상한 이름도 없다오.
공(空)과 같아서 아무런 번뇌[垢]도 없으며
부처님의 미소에는 불가(不可)함이 없네.
웃음도 공한 것이라 말(末)을 여읠 필요도 없고
본래 자연과 같아서 웃을 것도 없다네.
이미 여러 법의 이름에 머물렀으니
일체가 다 웃음과 같다네.
본말(本末)이 다 자연 그대로여서
가고 오는 것이 없고
웃음에는 돌아오는 보답 있으나
돌아올 것[還]도 없고 미소[笑]도 없네.
법이란 다 한 가지이니
이미 웃었다면 그것은 두 가지라네.
그 두 가지에는 명자(名字)가 없으니
그런 까닭에 이것은 존귀하다네.
웃는 것에 대하여 인정할 것도 없고
오로지 많은 법[衆法] 보시할 뿐이네.
움직이는 것에 움직인 것도 없으니
그런 까닭에 무상존(無上尊)이라네.
문수사리보살이 여래보살에게 회답하는 게송을 말하였다.
일체에 다 주인이 없기 때문이네.
그 웃음은 근본을 여읜 것 아니니
그런 까닭에 천중천이라네.
웃으신 것에는 일어나는 바가 없으니
다만 전도된 견해일 뿐이네.
모든 법이 다 적연한 것이지만
적연도 또한 본래 없는 것이네.
웃으신 것 교화[化]를 여읨이 아니니
교화로써 크게 베풀어 주셨네.
교화에 대하여 이름 붙일 것 없나니
그런 까닭에 이것이 곧 법이라네.
법에는 이렇다 할 것 없으며
다만 불탈시(不脫施)만을 할 뿐이네.
이미 해탈한 것도 벗어난 것이 아니니
부처님도 다 이와 같다네.
그러므로 큰 법회[大會]에서
해탈을 의론하지만 해탈도 없는 것이네.
법만을 베풀 뿐이시니
부처님과 비교할 이 없다네.
고요함과 고요함을 여읜 것
여읠 것도 없고 지을 것도 없나니
모든 법은 주인 없어
향하는 바 모두 환화(幻化)와 같다네.
사리불이 다시 여래보살에게 물었다.
“시방세계 중생들에게 다라니[陀隣尼]를 행할 마음을 내게 하려면 마땅히 어떤 법을 수행하게 해야 합니까?”
“마땅히 서른두 가지 법보(法寶)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무엇이 서른두 가지 법보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첫 번째 법보는 마음을 내지 못한 시방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여 모든 것이 환화(幻化)와 같음을 알게 하는 것이요, 두 번째 법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내지 못한 이로 하여금 모두 바른 법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세 번째 법보는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해와 달을 보되 일체가 평등하다고 깨닫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 법보는 만약 마음에 머무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숱한 탐욕을 멀리 여의고 지혜의 문[慧門]에 있게 하여 동요함이 없이 니원(泥洹: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법보는 사람들이 ‘하늘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고 말하면 의지가 움직여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요, 여섯 번째 법보는 마음이 움직여 돌아가지 않는 것이며, 일곱 번째 법보는 와서 생(生)을 받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ㆍ미래ㆍ과거를 보되 두 가지가 없다고 깨닫는 것이요, 여덟 번째 법보는 모든 삼매의 선정은 적연하여 처소가 없다고 관(觀)하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법보는 모든 제도할 대상에는 주인이 없는 것이니 일체는 공(空)을 따라 공을 끌어들이는 것이요, 열 번째 법보는 삼천세계 해와 달의 모든 부처를 내가 따라서 결정하는 것이며, 열한 번째 법보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와 삼천세계의 해와 달에서 과감하게 와서 경(經)을 듣는 이가 있으면 그들 모두로 하여금 부처님의 수기를 얻게 하여 곧 허공에 머물게 하기를 지금 이 모임에서와 같이 하는 것이요, 열두 번째 법보는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꽃과 향기가 저절로 오거나 비단 일산[蓋]이 오는 것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고 오지 않아도 또한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열세 번째 법보는 과감히 발의(發意)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법을 얻어 머물게 하기를 그곳과 같게 하는 것이요, 열네 번째 법보는 현재ㆍ미래 과거에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음이니 왜냐하면 본래 두 가지 법이 없기 때문이며, 열다섯 번째 법보는 시방세계의 날아다니거나 기어 다니는 벌레들[蜎飛蠕動]로 하여금 부처님의 경전과 계율을 지니게 하여 헐고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열여섯 번째 법보는 삿된 생각이 없이 시방세계에 있으면서 마음을 바꾸어 근본에 돌아가 지혜의 문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열일곱 번째 법보는 언제나 인욕을 행하는 것이요, 열여덟 번째 법보는 관(觀)으로부터 다른 관에 이르기까지 제도함이 없는 것이며, 열아홉 번째 법보는 본래 머무는 곳이 없듯이 항상 머무는 곳도 이와 같이 항상 머무는 곳이 없는 것이요, 스무 번째 법보는 제도함에 주체가 없으므로 공(空)하다고 이름하고 중욕(衆欲)을 항상함이 없고자 하는 곳에 베푸니 이런 까닭에 도(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물한 번째 법보는 지혜 있는 이에게 베풀되 거명(擧名)함이 없고 탐욕에 대하여 인가하지 않으며 다만 해탈할 뿐인 것이요, 스물두 번째 법보는 말하는 바가 대상을 여의지 않고 짓는 것을 인하여 시여(施與)하기 때문에 대법(大法)이라고 하니 그런 까닭에 제도하여 해탈할 것이 없는 것이며, 스물세 번째 법보는 항상 수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서 한 부처님 앞에 날아서 이르는 것이요, 스물네 번째 법보는 시방세계 모든 찰토가 해탈을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스물다섯 번째 법보는 깨끗함과 어리석음은 합해져 본래 청정하여 다름이 없는 것이요, 스물여섯 번째 법보는 삼천세계에 머물면서 다리를 만들어 배움에 나아가도록 하며, 어두운 사람으로 하여금 광명을 보게 하는 것이며, 스물일곱 번째 법보는 항상 끝없이 넓은 물 위의 대선사(大船師)가 되어 제도하는 바가 끝이 없는 것이요, 스물여덟 번째 법보는 항상 끝없는 일산(日傘)이 되어 3천(千) 번뇌를 막는 것입니다. 스물아홉 번째 법보는 항상 다함이 없는 지혜를 지어 시방을 여의지 않는 것이요, 서른 번째 법보는 항상 큰 사랑을 베풀어 시방 중생을 감동시켜 제도되지 않은 이를 다 제도하여 해탈시키므로 이름을 천중천(天中天)이라 하는 것이며, 서른한 번째 법보는 평등심을 행함에 짝이 될 사람이 없고 또한 다른 사람이 미칠 수 없으므로 무상존(無上尊)이라고 이름하고 마음을 내는 것도 평등하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는 것이요, 서른두 번째 법보는 여래보살이 이처럼 존귀한 까닭은 설하는 바가 법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삼천세계 가운데 허공과 같은 자연왕(自然王)이라는 소리를 두루 듣는 까닭에 꽃과 향이 생겨나는 것이니, 보살의 서른두 가지 법보가 이와 같습니다.”
시방세계는 모두 하나의 큰 환화(幻化)요
일체는 무상(無常)이라 이름하니
참다운 법에는 번뇌가 없어
그 설법으로 곧 시방을 제도하네.
고정된 관념이 있으면 생각을 여의지 못하니
일체의 보배는 모두 공(空)한 것이라네.
꽃이 잎에는 미치지 못하고
그 색깔 또한 감당할 수도 없네.
일체의 숱한 탐욕
그것을 세우면 의왕(意王)이 된다네.
모든 보배요 무상존이옵기에
천중천이라 한다네.
그러므로 큰 모임에서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시키려 논의한다네.
그 근본은 항상 머무름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시방존(十方尊)이라 한다네.
일체의 전도된 사견을
세간에선 진실하다고 말하네.
인가하는 바 변화와 같아
시방세계에서 해탈할 수 있네.
허공은 항상한 처소 없으니
부처님의 법장[佛藏]이 다 그곳에 있네.
해탈함이 없음을 해탈함으로써
시방세계 중생들을 교화한다네.
시방의 여러 부처님 찰토
합하여 한 나라로 만드니
대중들 저절로 크게 모여
시방세계 가득 채웠네.
부처님은 일체를 깨달으신 분
웃으셔도 그 모습 여의지 않고
황금 색깔도 여의지 않아
해탈하지 못한 이에게 이미 보이셨네.
시방세계 중생을 인도하시니
마음에 법왕(法王)을 여의지 않으며
보시한다는 생각 없이 보시를 하나니
그렇게 시방에 꽃을 보시한다네.
금 빛깔의 큰 연꽃
찰토에 두루 가득 채웠네.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하여도
모든 하늘에 머물지 않네.
문수사리의 마음
넓고 커서 짝할 이 없으니
비유하면 처음 기별을 얻고서
허공 가운데에 머무름과 같네.
여래보살의 지혜의 뜻 높아
그 광명 궁중에 두루 비추네.
마음 낸 여러 천인들
모두 다 법문(法門)에 이르게 했네.
시방세계 모든 보살들
여러 국토에서 경동(驚動)하니
지금 이 모임의 여러 천인들
이 귀중한 경전 들을 수 있네.
일체를 철저하게 깨달아
비로소 마음먹은 궁전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변화로 교로(交露)의 자리 만드니
온갖 하늘의 꽃과 향이 이르네.
모든 삼매를 듣고 수용하여
대중 가운데 앉아 관(觀)하고
여기 오신 공덕 높으신 분들
마음 내어 높은 분께 공양하네.
도 있는 이 다 볼 수 없으니
모든 존재 다 이와 같고
해탈된 사람 수없이 많아
삼계에 다함이 없네.
문수사리보살이 여래보살에게 물었다.
“뭇 음성은 변화와 같고 지은 바 법이 생각 없음도 다하여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연(自然)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무엇으로 해탈해야 합니까?”
여래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하였다.
“또 아홉 가지 법보가 있으니 어떤 것이 아홉 가지 법보인가 하면, 첫 번째 법보는 자연이 처소가 없는 것이 또한 변화와 같은 것이요, 두 번째 법보는 모든 법이 처소가 없음도 또한 변화와 같은 것이며, 세 번째 법보는 당래(當來)가 처소 없음도 또한 변화와 같은 것이고, 네 번째 법보는 모든 존재의 세계 직처(直處)도 또한 변화로 만들어진 것과 같으며, 다섯 번째 법보는 과거의 처소도 또한 변화와 같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법보는 모든 법을 보되 허깨비[幻]와 같다고 관할 뿐 그것은 또한 처소도 없고 또한 변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이요, 일곱 번째 법보는 인가하는 모든 물체도 처소 없음이 또한 변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이요, 여덟 번째 법보는 해탈하지 못한 이가 도를 얻는 것도 변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이며, 아홉 번째 법보는 니원을 증득했지만 본래는 머무는 처소가 없으니, 그 또한 변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다시 여래보살에게 물었다.
“니원에 이르러도 모두가 자연(自然)이라 한다면 어떤 것이 이 변화하는 것의 근본이 되며, 어느 것이 이 변화의 주인이 됩니까? 변화로 된 것은 그 근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변화로 된 것은 일어난 처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도(道)가 아닌 것은 처소가 없습니까?”
여래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또다시 아홉 가지 법이 있습니다. 첫째, 변화한 것은 그 처소가 없으니 변화된 것은 도가 아니며 처소가 없습니다. 이것이 곧 변화입니다. 둘째, 처소가 없으며 생각도 없으니 이것이 곧 변화이며, 셋째, 법보는 변화로 만들어져 지어진 바가 없으니 이것이 곧 변화요, 넷째, 법보는 항상하는 이름도 아니요 존재하는 물질도 다함없으니 이것이 곧 변화이며, 다섯째, 법보는 변화한 처소로서 처소가 없으니 이것이 곧 변화입니다.
여섯째, 법보는 도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변화요, 일곱째, 법보는 변화가 일어난 것에 일어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변화이며, 여덟째, 법보는 모든 탐욕에 대하여 모든 탐욕의 처소가 없으니 이것이 곧 변화요, 아홉째, 법보는 제도한 것에 대하여 제도한 것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변화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여래보살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시방에는 변화한 것이 없으니
변화하고 변화함에 형상 없다네.
일체는 항상함이 없는 보배이니
그런 까닭에 화생(化生)이라 한다네.
도(道)는 변화로 증득하는 것이 아니요
또한 그 처소를 여의는 것도 아니니
설하신 바는 항상 존재하는 형상도 없고
자연 그 처소에 있는 것이라 하네.
모든 법 변화 따라 얻으니
근본 여의고 무유(無有)를 따르네.
그 근본도 변화로 생기니
이런 까닭에 인중존(人中尊)이라 하네.
탐욕은 변화를 따라 생겨나지만
법은 본래 이런 것이 없다네.
변화해서 다섯 갈래 세계에 머물지만
변화에서 주인은 볼 수 없다네.
다섯 갈래 세계에서 나고 죽음
변화와 함께 서로 무관하네.
세상의 탐욕 끊지 못하니
그러므로 정각께서 나타나셨네.
여래와 변화의 주인
시방세계에 존귀하기 그지없네.
변화 가지고 세상에 크게 베풀지만
세간에는 아는 이 없네.
법륜은 물질이 없이 구르는 것이니
세간에는 구르는 것 없다네.
물질에 얽매이면 고정관념이 생기니
심오한 법은 굴릴 것도 없다네.
생각과 물질로 시방세계 교화하니
그 법을 받지 않은 이 없으나
베푸신 바 큰 지혜는
세간에선 들은 자 없네.
모두 아라한에 이르고자 하나
이 보배에 돌아오지 못하네.
그러므로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위없는 보배를 설하여 제도하고 해탈시켰네.
지혜는 다함이 없으니
광명이 이보다 나은 것 없네.
시방세계 다리가 되어
둘이 아닌 법을 설하리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의
사람들을 평등하게 하였네.
또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내어 다른 마음 갖지 않게 하네.
시방의 모든 법 동산[法園]에 있는 사람들
모든 사람 여기 머물러 번뇌를 벗게 하고
또한 세간법을 따르지 않게 하여
법을 빼앗김이 없게 하리라.
지혜에서 벗어남이 없게 하여
왕래함을 보지 않게 하리.
고요함에서 고요함을 보고
밝은 가운데 다시 밝음을 보게 하리.
법이라는 것은 지혜로 얻는 것 아니요
자연 그대로여서 본래 없는 것이라네.
지혜와 어두움 함께 합하니
서로 앎이 전혀 없다네.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합해져 같아질 수 없으니
그 지혜로 숱한 어둠 밝히네.
베푸는 바는 다만 법일 뿐이니
꽃이 높은 산에 있는 것과 같다네.
모든 악은 다함이 없고
색욕(色欲)도 다함 없다네.
니원과 생사도 그렇고
일체가 다 이와 같다네.
시방의 모든 부처님 지혜
아는 이도 없고 깨달은 이도 없네.
그런 까닭에 깨끗한 법을 보셨으니
그러므로 세무유(世無有)라 말하네.
담마갈보살이 다시 여래보살에게 말하였다.
“변화에는 일어나는 것도 여읨도 없다면 무엇이 주인이 됩니까? 니원은 나지도 않고 멸하여 사라지지도 않으며, 다섯 갈래 세계를 멀리하지도 않으니 이 모임에 와서 마음을 내어 법륜을 굴리고 머물러서 모든 번뇌[垢]가 없는 이로 하여금 다 생겨나지 않게 하려면 그 누가 이들을 제도합니까?”
여래보살이 말하였다.
“담마갈보살이 질문한 것은 훌륭합니다. 결단코 시방세계에서 생사의 뿌리를 끊고 싶거든 이와 같이 마땅히 아홉 가지 법보(法寶)를 행해야만 합니다. 어떤 것이 아홉 가지 법의 보배인가 하면, 첫 번째는 주인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요, 두 번째 법보는 니원과 생사는 애당초부터 서로 앎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세 번째 법보는 생사와 적멸에는 모두 멸함이 없나니 이것이 곧 보배요, 네 번째 법보는 위로 36천(天)에 이르면 그로 하여금 다시는 생겨나지 않게 하고 생겨나는 곳이 없게 하니 이것이 곧 보배입니다.
다섯 번째 법보는 마땅히 뜻을 일으키거나 뜻을 일으키지 않거나 간에 여여(如如)한 곳에 머무니 이것이 곧 보배요, 여섯 번째 법보는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 국토를 관찰하되 득도(得度)할 대상이 없음을 깨달으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일곱 번째 법보는 생각에 일어나는 곳이 없음이니 이것이 곧 보배요, 여덟 번째 법보는 삼천세계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니원을 취하고서도 마음에 기뻐하지 않게 하며 니원을 취하지 못했어도 마음에 성내지 않게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에는 처소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아홉 번째 법보는 소원[願]을 따라 나한을 취하면 나는 마음을 내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이로 하여금 다시는 이 소원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하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모든 생(生)에 대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소원하는 것에 되돌아감이 없게 하니 이는 곧 보살의 법보인 것입니다.”
여래보살이 담마갈보살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가(可)에 대하여 가(可)할 것도 없고
욕망에 대하여 탐욕할 것도 없으며
제도하는 바에 볼 것이 없고
법륜에는 항상한 처소가 없네.
지혜로운 이는 설한 것이 없고
제도[度]함으로 인하여 가는 것도 없네.
그러므로 크고 바른 법 보나니.
세상에 제일가는 무유(無有)라네.
도(道)란 항상한 이름 없으니
그러므로 시방의 보배라네.
얻었거나 얻음이 없는 것이므로
나고 죽음에 도가 없다네.
4마(馬)가 다함이 없으니
뜻에 맞아도 만족할 것 없고,
세간의 모든 즐거움
버리지 않으면 도를 얻을 수 없네.
두려움이 생겨도 해탈함이 없고
두렵지 않아도 해탈할 것 없으니
생사를 마땅히 거명하여
그것을 정립하면 다섯 갈래 세계가 되네.
보(報)는 있되 답(答)이 없으면
옳은 법이 된다고 말하고
법에는 본래 두 가지가 없으니
진리를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라네.
변두리도 없고 또한 중앙도 없으며
다함도 없고 계탁(計度)해서도 안 되며
본제(本際)는 그림자와 메아리 같아서
가고 옴이 없다네.
일어남[起]에도 일어난 것이 없고
법에도 모든 욕망이 없으며
나고 죽음 본래 처소 없으니
나고 죽음과 변화도 이와 같다네.
깨끗함에도 깨끗함이 없으며
더러움에도 더러움도 없으니
모든 시방 사람들을 위하여
다섯 갈래 세계를 단절하였네.
깨끗한 마음은 물과 같아서
일체의 더러운 때가 없으니
푸르고 누런 것과 희고 검은 것
그 형상을 모두 볼 수 있다네.
모든 법에는 번뇌 없으니
곧 최상의 보배 얻고
나와 다른 사람도
세간에서는 얻을 것 없다네.
머무름 없는 진리에도 머물지 않으니
존재하는 진리 이와 같고
깨달음에 볼 것이 없으니
세간의 진리 이와 같다네.
제도할 것도 없고 제도하지 않을 것도 없으면
세시(世時)에 어느 것인들 존재함이 아니고
시방에 바른 깨달음을 세우면
최상의 보배 모두 얻으리.
담마갈보살이 여래보살에게 말하였다.
“시방세계의 자연 여러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그 처소와 같은 것을 얻게 하려면 마땅히 여섯 가지 법보를 행하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 그 여섯 가지인가 하면, 첫 번째는 이 법회가 열리는 때를 들어서 아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요, 두 번째 법보는 이 법회에 온 모든 사람들이 이 경을 듣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세 번째 법보는 지금의 공덕이 아니니 이것이 곧 보배요, 네 번째 법보는 과감하게 이 경법(經法)을 묻고 이미 6만 삼매를 증득하였으며 오직 시방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최상의 마음을 내게 하려고 희망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이며, 다섯 번째 법보는 시방세계 사람들을 보리수[佛樹] 아래에 모이도록 한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요, 여섯 번째 법보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법을 시방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다 증득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입니다.”
이 삼매를 말했을 때에 그 모임 가운데 있던 90억만 보살과 여러 하늘의 사람들과 67억만 사람들이 모두 무소종생법(無所從生法)의 이치를 증득하였다.
그러자 그때 당장 9억만 보살들도 모두 이 삼매를 증득하였으며, 삼천대천 부처님 국토도 다시 곧 아홉 번 반복하여 크게 진동하였고, 36천의 모든 천왕들도 허공에 있으면서 난풍(亂風)으로 음악을 연주하여 부처님을 즐겁게 하였다. 그리고 여러 큰 용왕과 모든 아수륜들도 다 이 법을 득견(得見)하였다.
아난이 의복을 바로잡고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한 채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며 아뢰었다.
“이 경전의 이름을 무슨 경전이라고 해야 합니까? 그리고 저희들은 마땅히 어떻게 이 경전을 받들어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이름은 ‘제찰무극원자연화향자연(諸刹無極園自然華香自然)’이라 할 것이며, 호(號)는 ‘회무극보(會無極寶)’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 경을 설하실 때에 수없이 많은 여러 하늘의 사람들과 아수륜과 인비인(人非人)들이 이 경을 듣고 모두들 크게 기뻐하면서 제각각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