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심명경(佛說心明經)
서진(西晋) 월지국(月氏國) 축법호(竺法護) 한역
최민자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서 5백 비구(比丘)와 사부대중(四部大衆)과 함께 노닐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른 새벽에 가사를 입으신 후 발우를 들고 한 고을에 이르시어 걸식(乞食)을 하셨다. 모든 천인(天人)과 용신(龍神)들도 상시(上侍)를 따라 부처님을 모시며 뒤를 따랐는데 범지(梵志)의 집에 이르러 문 밖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는 큰 광명(光明)을 내어 시방(十方)을 두루 비추셨다.
이때 범지(梵志)의 부인이 불을 피워 밥을 짓고 있다가 빛이 몸을 비추자 몸이 편안해지며 한량없이 많은 사나운 마음들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이 밝은 빛은 일천(日天)․월천(月天)․제석천(帝釋天)․범천(梵天)․사대천왕(四大天王) 등 모든 천신(天)의 밝음과는 같지 않구나.’
몸에 넘치는 기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여 부처님을 바라보니, 단정하고 아름다운1) 모습은 별 가운데 달과 같고, 빼어난 모습은 당당하며, 여러 가지 상호(相好)를 두루 갖추고, 모든 근(根)이 맑고 고요하며, 입(入)2)의 작용이 쇠퇴함이 없고, 가장 훌륭한 적정(寂靜)의 경지에 이르러3) 최고의 선
1) 고려대장경 본(本)에는 ‘수(殊)’로 되어 있으나 원(元)․명(明) 본의 ‘주(姝)’를 따랐다.
2) 근(根)과 경(境)이 서로 섭입(涉入)하여 식(識)을 내는 것을 입(入)이라 한다.
3) 고려대장경 본에는 ‘건(建)’자로 되어 있으나 송(宋)․원(元)․명(明) 본의 ‘체(逮)’를 따랐다.
정(禪定)을 얻으신 것이 마치 해가 처음 산봉우리로 솟아 오른 듯하였다. 또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대전(大殿)에 행차하시니 받드는 신하들이 모시고 따르는 듯하고, 또 제석천(帝釋天)이 도리천(忉利天)에 나타나니 범천왕(梵天王)이 부처님[第七尊]을 대하는 듯하며, 마치 높은 산에 쌓인 눈의 환하고 밝은 빛이 두루 나타난 듯하였다.
뛰어오를 듯이 기쁨이 점점 커지면서 다시 혼자 생각하였다.
‘이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보니 진실로 과거 숙세(宿世)에 세웠던 서원(誓願)을 이루어주실 만한 분이시다.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이에게 음식을 공양하러 가야겠구나.’
그러나 몰래 살펴보던 어리석은 남편은 부인의 도덕심(道德心)을 믿지 못하고 삿된 의심과 62견(見)을 품어서 아내가 보시(布施)하는 것을 보고는 기필코 한(恨)4)을 맺고야 말았다. 부인은 숙세(宿世)에 잘못을 저질러 우람하고 용감한 남자의 몸을 잃고 여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남편에게 속박되어 있었으니, 성스러운 존자(尊者)에게 보시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의 뜻을 지켜 따르는 것이 마땅하나 어찌해야 할까 하다가 곧 한 바가지의 밥과 한 국자의 국을 부처님께 공양하니,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발우에 맛있는 음식이 저절로 가득 찼다. 이때 부처님께서 보시에 대한 보답으로 법을 말씀하시고자 칭찬하시며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셨다.
설령 말 백 필에
금과 은으로 장식한 말안장을
사람들에게 베풀어 보시하더라도
밥과 한 국자의 국을 보시하는 것만 같지 못하며
7보(寶)로 만든 수레에
갖가지 진귀한 옥(玉)을 가득 실어 보시하더라도
밥과 한 국자의 국을 부처님께 보시하여
얻은 복(福)이 훨씬 크다네.
4) 심소(心所)의 이름으로서 원(怨)을 맺어 번뇌를 일으키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백 마리의 흰 코끼리와
명월주(明月珠)와 영락(瓔珞) 등 장신구(裝身具)를 보시하더라도
부처님께 한 국자의 국을 공양하여
얻는 복이 훨씬 크다네.
가령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두루 어진 아름다운 왕후[玉女后]와 같이
7보(寶)와 영락으로 꾸민 단정한 모습
비교할 것이 없나니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몇 백 명이 있어
그들 모두를 배필(配匹)로써 사람들에게 보시하더라도
한 국자의 국을 보시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네.
그때 범지가 조용히 머무르면서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을 듣고 있다가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밥과 한 국자의 국이 얼마의 값어치가 있기에 이렇게 칭찬하십니까?
약간의 보배와 코끼리․말․수레를 보시하더라도 꾸짖거나 비방할 수 없는데, 밥과 한 국자의 국을 보시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밥과 국은 1전(錢)의 값어치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여쭈는 것이니, 몇 억 배가 된다 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곧 넓고 긴 혀를 꺼내 보이시니 혀가 얼굴을 덮고 위로 범천(梵天)에 닿았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셀 수 없이 많은 억백천(億百千) 겁(劫) 전부터 항상 지성(至誠)으로 끝없이 6도(度)5)를 행하였고,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들을 아끼지 않고
5) 6바라밀(波羅蜜)을 말한다.
보시하여 이러한 혀를 얻었으니, 거짓말을 하였다면 어찌 그리 되었겠느냐?
내가 그대에게 물을 것이니 지성으로 대답하여라. 전에 사위성(舍衛城)과 라열성(羅閱城)을 여러 번 오고 가면서 길에 있는 니구류(尼拘類) 나무의 그늘이 많은 사람과 5백 개의 수레를 덮어 주는 것을 보았느냐?”6)
범지가 대답하였다.
“예, 그런 나무가 있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 나무의 씨앗의 크기가 어떠하더냐?”
범지가 대답하였다.
“겨자씨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정말로 상반된 말을 하는구나. 정말 겨자씨만 하다면 나무가 어찌 그리 크겠느냐?”
범지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감히 속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씨앗이 겨자씨만 하더라도 큰 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대지(大地)가 낳아 기를 때에 진실로 버려두는 것 없이 감싸 줌이 크고 넓으니, 하물며
여래 (如來)․무상사(無上士)․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무량복회(無量福會)․보승자(普勝者)께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으로 법신(法身)을 이루신 이께서 큰 자비심과 널리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구제하시지 않는 것이 없으시니 음식을 공양하여 얻는 복(福)7)은 헤아리기 어렵다.”
범지는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어 조용히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 미소를
6) 고려대장경에는 ‘유(有)’라고 되어 있으나 송(宋)․원(元)․명(明) 본(本)의 ‘견유(見有)’를 따랐다.
7) 고려대장경에는 ‘공조(功祚)’라고 되어 있으나 송․원․명 본의 ‘복조(福祚)’를 따랐다.
지으시며 입에서 오색 광명을 내어 시방 5취(趣)의 무리를 비추시자
천인(天人)은 욕망이 그치고,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이 있었으며,
아귀(餓鬼)는 배가 부르고,
지옥에 있는 중생들은 고통이 그쳤으며,
축생(畜生)은 생각이 열려[意開] 죄가 소멸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빛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모든 부처님이 미소를 지으시면 모든 중생들에게는 항상 상서로운 일이 있게 되니
보살의 수결(授決)8)을 받을 이들에게는 시방을 두루 비춘 빛이 정수리로 들어가고,
연각(緣覺)의 수별(授莂)9)을 받을 이들에게는 빛이 얼굴로 들어가며,
성문(聲聞)의 수별을 받을 이들에게는 빛이 어깨로 들어가고,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라고 말 할 이들에게는 빛이 배꼽으로 들어가며,
인간세상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 할 이들에게는 빛이 무릎으로 들어가고,
3고(苦)10)가 있는 욕계(欲界)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 할 이들에게는 빛이11) 발바닥의 한 가운데[足心]로 들어간다.
모든 부처님의 기쁨의 미소는
욕심내는 마음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며,
성내는 마음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며,
어리석음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며,
방일(放逸)함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며,
욕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며,
영화롭고 부귀함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며,
풍요로움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널리 평등하게 많은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크게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시니 이러한 일곱 가지 일을 없애 주셨다.
현자(賢者) 아난(阿難)은 다음의 일곱 가지 법을 분별(分別)하였는데,
법을 알고[知法], 그 뜻을 이해하며[解義],
때를 깨닫고[曉時], 시기를 분명히 알며[了節],
많은 사람이 모인 일의 뜻을 연창하고[暢衆會事],
스스로 자신을 살피며[自省己身],
많은 사람의 근기(根機)를 분명히 알았다.
8) 수기(授記)를 의미한다.
9) 주 8)과 같다.
10)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를 말한다. ‘고고’는 춥고 덥고 목마른 것 등 괴로움의 원인에서 비롯되는 괴로움과 괴로운 일을 성취하는 데 따른 괴로움을 말한다. ‘괴고’는 즐거움의 경지가 무너질 때 생기는 괴로움을 말하며, ‘행고’는 모든 유위법(有爲法)이 항상함이 없이 움직이는 괴로움을 말한다.
11) 고려대장경 본에는 ‘광(光)’으로 되어 있으나 송․원․명 본의 ‘광종(光從)’을 따랐다.
아난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장궤(長跪)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미소를 지으셨습니까? 그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범지의 부인이 보리(菩提)의 큰마음을 내는 것을 보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부인의 수명이 다할 때에는 반드시 여인의 모습을 바꾸어 남자가 될 것이니, 천상세계에 태어나면 모든 천인 중에 가장 존귀하게 되며,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사람 중의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어 환상(幻像) 같고, 허깨비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아지랑이 같은 미묘(微妙)한 법을 깊이 깨달아 30겁(劫)이 지나면 반드시 부처를 이루어 이름을
심명(心明) 여래(如來)․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명행성위(明行成爲)․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라 하며, 호(號)는 불세존(佛世尊)이라 할 것이다.”
범지가 감복하여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자신을 꾸짖고 참회(懺悔)하여 말하였다.
“제가 어린 아이처럼 어리석고 깜깜하여서 의심을 품어 위대하신 성인(聖人)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친 말을 하였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저의 죄와 허물을 살펴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보고 부처님께 귀명(歸命)하며 도법(道法)12)과 율(律)에 재앙을 일으킨 잘못을[殃塵] 참회하면 그 허물은 줄어들고 복덕(福德)은 날로 점점 불어날 것이다.”
12) 열반(涅槃)의 정도(正道)에 이르는 법을 말한다.
범지가 앞으로 나아가 청하였다.
“크게 가엾이 여기시고 은혜를 더 베푸시어 거두어 주시고, 출가(出家)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받아들이시자 사문(沙門)이 되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고 법의(法衣)가 몸에 입혀졌다. 그때 세존께서 고(苦)․습(習:集)․진(盡)․도(道)의 4성제(聖諦)를 말씀하시자, 범지가 뛸 듯이 기뻐하며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고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현자 아난과 모든 사부대중과 천인, 용신(龍神)들이 모두 보리의 마음을 내고 기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불설심명경(佛說心明經) 해제
이 경은 1권으로 되어 있으며, 4세기 초에 월지국 출신의 학승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것이다.
축법호의 범어명(梵語名)은
Dharmaraksa이고, 한역하여
담마라찰(曇摩羅刹)이라고 한다. 대대로 돈황에 살았고, 8세에 출가하여 축고좌(竺高座)를 스승으로 섬겼다. 진나라 무제 때(265~290)에 스승을 따라 서역에 가서 여러 나라에 다니면서 36개국의 말을 배워 정통하였다고 한다. 범본 경전을 많이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와 한역에 종사하였으며, 266~313년 사이에 『현겁경(賢劫經)』과 『정법화경(正法華經)』 등 165부를 한역하였다. 장안(長安) 청문 밖에 절을 짓고 포교하였더니, 제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해제(惠帝) 때 난리를 피하여 승지에 와서 78세에 병으로 입적하였다.
이 경의 이름은 부처님께서 심명이라는 여인에 대하여 설하신 경이라는 뜻이다. 이 경에서는 심명이라는 여인이 걸식 나온 부처님께 밥 한 주걱을 퍼준 것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예언을 받았으며, 그의 남편까지도 비구가 되어 불도를 닦은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누구나 부처님을 믿고 지극한 마음으로 섬긴다면 내세에 가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