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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여환삼매경(佛說如幻三昧經)

wowinchon 2018. 2. 14. 12:45

 

불설여환삼매경(佛說如幻三昧經)

 

불설여환삼매경 상권

서진(西晋) 월지국(月氏國) 삼장(三藏) 축법호(竺法護)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영취산(靈鷲山)에서 노니시면서 대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비구 6만 2천은 모두가 장로[耆年]로서 일체 성스러운 지혜와 신통을 통달하였으며, 보살 4만 2천은 부수 동진(溥首童眞) 등이었다.

그들 이름은 사자영보살(師子英菩薩)ㆍ자씨보살(慈氏菩薩)ㆍ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ㆍ득대세보살(得大勢菩薩)ㆍ변적보살(辯積菩薩)ㆍ건립원보살(建立遠菩薩)ㆍ산정보살(山頂菩薩)ㆍ산당보살(山幢菩薩)ㆍ무동보살(無動菩薩)ㆍ선사의보살(善思議菩薩)ㆍ소사선의보살(所思善議菩薩)ㆍ심용보살(心勇菩薩)ㆍ심지보살(心志菩薩)ㆍ선심보살(善心菩薩)ㆍ주적보살(珠積菩薩)ㆍ석마왕보살(石磨王菩薩)ㆍ보장보살(寶掌菩薩)ㆍ보인수보살(寶印手菩薩)ㆍ상거수보살(常擧手菩薩)ㆍ상하수보살(常下手菩薩)ㆍ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ㆍ어중보살(御衆菩薩)ㆍ독진보살(篤進菩薩)ㆍ주언행상응보살(住言行相應菩薩)ㆍ초원보살(超願菩薩)ㆍ입보답보살(立報答菩薩)ㆍ등사보살(等思菩薩)ㆍ기제악취보살(棄諸惡趣菩薩)ㆍ도무량보살(度無量菩薩)ㆍ도무동보살(度無動菩薩)ㆍ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ㆍ상의보살(上意菩薩)ㆍ지의보살(持意菩薩)ㆍ증의보살(增意菩薩)ㆍ술상보살(術詳菩薩)ㆍ집송보살(執誦菩薩)ㆍ월광보살(月光菩薩)ㆍ월영보살(月英菩薩)ㆍ광영보살(光英菩薩)ㆍ광수보살(光首菩薩)ㆍ환약간광보살(還若干光菩薩)ㆍ사자보뇌음보살(師子步雷音菩薩)ㆍ변무애보살(辯無碍菩薩)ㆍ묘변보살(妙辯菩薩)ㆍ응변보살(應辯菩薩)ㆍ도의보살(度意菩薩)ㆍ현일월광보살(顯日月光菩薩)ㆍ공무보살(空無菩薩)ㆍ질유보살(質遊菩薩)ㆍ상소보살(常笑菩薩)ㆍ근희보살(根喜菩薩)ㆍ제제개보살(除諸蓋菩薩)ㆍ전녀보살(轉女菩薩)ㆍ전남보살(轉男菩薩)ㆍ전태보살(轉胎菩薩)ㆍ피덕개보살(被德鎧菩薩)ㆍ대혜보살(大慧菩薩)ㆍ광험보살(光㷿菩薩)ㆍ선명보살(膳明菩薩)ㆍ무수보살(無受菩薩)ㆍ수음왕보살(受音王菩薩)ㆍ심장보살(深藏菩薩)ㆍ중향수보살(衆香手菩薩)과 속박에서 벗어난 8정사(正士 : 菩薩)1)등과 함께 계셨는데 모두 4만 2천이었다.

또 4천왕과 천제석과 대범천왕(大梵天王)과 사바세계의 왕[忍王]2)과 다른 하늘 6만 인과 함께 계셨으며, 또 수심천자(須深天子)ㆍ선주의천자(善住意天子)ㆍ대신묘천(大神妙天)ㆍ선의천(善意天)ㆍ대락천(大樂天) 등과 같은 대중 3만 인과 함께 계셨는데 그들은 다 대승에 뜻을 두었었다.

연거(燕居) 아수라[阿須倫]는 2만억 아수라와 함께하고, 바다의 용왕은 6만의 모든 용과 함께 바다에서 나왔으며, 이곳과 저곳의 무수한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ㆍ가유라(迦留羅)ㆍ진다라(眞陀羅)ㆍ마후륵(摩睺勒 : 마후라가) 등 한정하여 헤아릴 수 없는 백천억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薰士]ㆍ우바이[薰女] 등 이루 다 셀 수조차 없었는데 모임에 다 와서 운집하였다.

여래께서는 그들을 가엾이 여겨 무수한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셨다.

그 때 문수사리는 자기 방에 혼자 고요히 앉아 공무심이심삼매(空無心離心三昧)의 선정[正受]에 들어 있었다. 문수사리는 곧 삼매에서 일어나 편하고 안온하게 시방의 무량한 불국토를 진동시켰다. 문수사리는 마음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평등각(平等覺)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세상에서 구하나 매우 만나기 어렵다. 마치 영서화(靈瑞華)가 때때로 나오는 것과 같아 그 나타나는 곳은 미치기[及] 어렵고 당면하기[當] 어렵다. 마음으

 

1) 문수사리(文殊師利)ㆍ관세음(觀世音)ㆍ대세지(大勢至)ㆍ무진의(無盡意)ㆍ약왕(藥王)ㆍ약상(藥上)ㆍ미륵(彌勒)의 8보살을 말한다.

2)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범인왕(梵忍王)으로 되어 있는데『여환삼매경』의 이역본인『선주의천자경(善住意天子經)』에는 이 부분이 사바세계주(娑婆世界主)ㆍ대범천왕(大梵天王)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범인왕’은 범천왕과 인계(忍界) 즉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왕으로 보아야 옳을 것으로 보인다.

 

로 생각할 것도 아니요, 말로 펼 것도 아니며 깊고 묘하며 뛰어나 우뚝하기 무량하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은 끝내 허망하지 않기 때문에 그 법을 들으면 들은 그 경전은 헛되지 않아[未曾唐] 이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 준다. 이와 같이 진실되고 바르며 무익하지 않나니, 나는 지금 여래께 나아가서 때를 맞추어 여쭈어서 그 질문을 따라 모든 공덕의 근본을 다 갖추게 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보살승(菩薩乘)을 배우면 그로 하여금 깊고 묘한 불법(佛法)에 의혹되지 않고 도를 성취하여 악마의 궁전을 다 덮게 하리라. 이 사바세계[忍界] 중생들은 그 탐욕[婬]과 분노[怒]와 어리석음[癡]이 왕성하여 깨끗한 법[淸白法]을 버리고 다만 뜻이 없는 일만 행하며 미련하고 저돌하며 교만한 마음을 품어 공손함이 없고 닦아야 할 업을 많이 어기며 부처님[佛]과 법(法)과 승가대중[衆]을 버린다. 이런 중생들로 하여금 이런 법을 듣고 그 지혜의 눈을 깨끗하게 하리라.’

그 때 문수사리는 다시 생각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나아가 한량없는 백천 보살을 불러 모으고, 이 경전을 들어 그 몸으로 이 깊은 법인(法忍)을 증명하게 하리라.’

문수사리이구광엄정(離垢光嚴淨) 삼매에 들었다. 그 삼매에 들어서는 곧 동방의 억 항하의 모래알 같은 모든 부처님 세계를 두루 크게 밝게 하여, 윤택하고 유연하며 더러움을 떠나 밝게 빛나는 청정한 광명으로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상ㆍ하의 시방 불국토를 비추었다. 그 광명의 비추는 바는 두루하였으니, 이와 같이 특별함 없이 평등하게, 그 시방의 그윽한 어둠과 덮이고 가린 성과 산과 벽과 나무ㆍ꽃ㆍ열매와 철위산(鐵圍山)과 대철위산(大鐵圍山)ㆍ목린산(目鄰山)ㆍ대목린산(大目鄰山)ㆍ설산(雪山)ㆍ흑산(黑山) 및 수미산(須彌山) 등이 다 빛을 받고 모두 환히 빛나 덮이거나 가림이 없었다.

그 때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낱낱 강의 모래알 같은 억(億) 수의 불국토에서는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현재에 설법하고 계셨는데 그 부처님들의 낱낱 시자들은 각각 그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갑자기 큰 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나이까? 과거에서부터 지금껏 이런 광명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윤택하고 온화하고 우아하여 모두가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금 이 부처님의 광명은 대중의 몸을 안온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트이게 하여 보는 사람은 다 구제되고 때를 순응해 어김이 없으며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다시는 범하지 않습니다. 이 상서로운 조짐은 누구의 거룩한 뜻이 건립한 것입니까? 그 비치는 광명이 이처럼 빛나나이다.”

그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시자들의 물음을 듣고도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그 세계의 하늘ㆍ용ㆍ귀신의 소리와 아수라ㆍ가유라 및 금시조와 건달바[揵沓惒]의 소리와 인비인(人非人)의 소리와 나는 새와 사슴의 소리와 바람ㆍ비ㆍ물의 소리와 큰 바다의 소리와 모든 기악의 소리 등, 이런 것들도 다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잠자코 소리가 없으며 모든 메아리도 다 고요하였다.

그 시자들은 이렇게 세 번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해 주시기 바라나이다.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안온함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을 가엾이 여기소서. 누구의 위신으로 이런 소리를 내며 그 광명이 모든 불국토를 두루 비추는 것입니까?”

그 때 모든 부처님의 억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불국토에서 동시에 나온 소리들은 한 소리가 되고 그 소리는 부드럽고 분명하였으며, 여러 가지 가르침은 모두가 한 부처님 나라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 그 형상과 음성은 여러 시자에게 동시에 알려졌다.

모든 시자들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마침 소리를 내시자 일체 불국토가 다 그 때문에 진동하며 백천의 기악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며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의 음악도 그와 같았으니, 그 음성은 무상[非常]하고 괴로우며[苦] 공(空)이요 몸이 아니다[非身]는 소리이며, 공(空)이요 무상(無相)이며 무원(無願)이며, 허무하고 황홀하나 본래 없는 것이라는 소리이며 본제(本際)의 소리와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버리고 삼계가 없다는 소리이며 심제(審諦)와 같은 소리이며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의 소리와 항상 부끄러워하는[慙愧] 소리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護 : 捨]의 소리와 준수하고 봉행하며 방일함이 없는 소리 등으로써 이런 여러 가지로 항상 백천의 법을 연설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 강설하는 법은 헤아릴 수 없고 무앙수(無央數)의 사람 억 백천 무리를 퇴전하지 않는 자리[不退轉地]에 서서 위없는 정진의 도[無上精進道]에 뜻을 두게 하였는데,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법과, 제석과 범천의 지위와 전륜왕을 이루는 것을 깨우침도 이와 같다.”

그러자 모든 부처님께서 그 모든 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족성자(族姓子)들아, 너희들은 잠자코 있으라. 이것이 누구의 일이냐고 물으나, 그것은 성문이나 연각의 지위로서는 미치지 못할 바며,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아수라는 이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혼란해질 것이다. 여래가 찬탄하고 칭송하는 이 광명의 그 공덕은 불가사의하여 그 쌓는 공적은 다 추측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지극한 정진과 지혜의 업이 이 구경(究竟)의 광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한 겁이나 한 겁을 지나도록 이 광명을 찬탄하더라도 그 근본 본제는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이 광명이 일으키는 자비는 크고 우뚝하기가 이러하니라.”

그 모든 부처님의 시자들은 이를 두세 번 묻고 찬탄하였으나 더욱 초조심만 느껴 거듭 아뢰었다.

“여러 대성(大聖)들께서는 곧 시기에 맞게 말씀해 주십시오. 많이 가엾이 여기시어 크게 안온하게 하소서. 그리고 모든 하늘과 시방세계의 사람들과 모든 보살과 대승의 학인들을 가엾이 여겨 그들의 공덕의 근본을 이루게 하소서.”

그 때 모든 부처님께서 시자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들아, 한 불국토가 있으니 이름을 인계(忍界)라 한다. 거기에 부처님께서 계시니 이름을 석가문(釋迦文)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佛) 세존(世尊)이라 하신다. 그 분은 어지러운 5탁(濁)의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국토의 중생들은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이 왕성하며, 또 교만하여 공경하거나 엄숙함이 없으며, 깨끗한 뜻과 온화한 덕이 없고 부끄러움을 여의었으며, 오로지 과실[誤失]과 온갖 악의 업을 짓는다. 이런 따위의 하근기 무리들과 모든 어리석은 자들은 온갖 악행을 닦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국토에 나서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이루고 최상의 정각(正覺)이 되어 경법을 연설하시는 것이다.

거기에는 문수(文殊)라는 보살이 있는데, 그의 힘은 광대하고 크고 거룩한 지혜는 끝이 없으며 정진은 견줄 데가 없으니 그 위신변화는 이와 같으니라. 그는 모든 보살을 교화하고 깨우쳐 높은 덕과 끝없는 대승에 들게 하면서 모든 보살의 부모가 되어 때를 따라 깨닫고 일체 법을 해득하며 장구(章句)를 분별하고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저 언덕[彼岸]으로 건너갔고 변재(辯才)가 끝이 없으며 다시 총지(摠持)를 얻어 일체 중생의 근본을 알며, 밝게 앎을 따라 그것을 유포하나니 그 공훈의 덕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므로 여래 지진께 가서 그 행할 일을 묻고 모든 보살의 덕의 근본을 성취시키며 그 보살들을 인도하여 불법을 힘써 생각하고 밝히게 한다. 이 족성자 문수사리가 보살들을 청해 짐짓 참되고 묘한 법을 연설하고 때를 따라 빛을 발하여 시방의 무앙수(無央數) 억 보살의 모임으로 하여금 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나타내어 불국토를 두루 비추는 것이다.”

시자들은 아뢰었다.

“그 삼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구광엄정(離垢光嚴淨)이라 하는데, 문수사리가 이 삼매에 들어 생각하는 바는 크고 우뚝하고, 신묘한 광명은 이처럼 멀리 비추느니라.”

시자들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일찍이 이런 현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부드럽고 맑으며 온화한 음성과 뜻으로 서원함과 광명과 묘한 메아리 등 이런 인연 때문에 다함없는 슬픔으로 때를 따라 광명을 냅니다. 유쾌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도덕이 뛰어나고 불가사의한 광명이 이처럼 사람들을 기뻐 뛰게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族姓子)는 때때로 이런 크고 넓은 광명을 떨치어 모든 보살을 모으고 경전을 강성하여 큰 도를 열어 보이느니라.”

그 때 시방의 무수하고 헤아리기 어렵고 불가사의한 8방 상하의 세계마다에 있는 10억의 강의 모래알 같은 불국토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보살들이 다 부처님께 나아가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인이시여, 이것은 무슨 광명입니까? 과거로부터 일찍이 보거나 들은 적도 없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조짐입니까?”

이 때 모든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족성자가 있나니, 그 세계의 이름은 인(忍)이며, 거기 계시는 부처님의 이름은 석가문(釋迦文)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거기 부수(溥首)라는 보살이 있어 이런 광명을 펴는데 그 광명 이름은 ‘모든 보살을 청해 다 모이게 함[請諸菩薩悉令集會]’이라 하는데 이것은 그 상서의 조짐이니라.”

그 때에 모든 보살은 각각 그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저 인계(忍界)에 가서 능인(能仁)ㆍ여래(如來)ㆍ지진(至眞)을 뵈옵고 머리 조아려 법을 물어 들으며 또 문수사리와 다른 보살들을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거라. 족성자들아, 지금이 바로 적당한 때이다.”

그리하여 시방의 불가사의하고 무수한 보살 즉, 억백천 해()의 티끌 같은 수가 마치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듯한 짧은 시간 동안 각각 그들이 사는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갑자기 사라져 인계로 가는데, 어떤 보살은 온갖 꽃을 뿌리면서 그 부처님에게로 가고, 혹은 온갖 향과 화만ㆍ바르는 향과 푸른 연꽃과 붉고 노랗고 흰 연꽃과 신탈(信脫)ㆍ사이(思夷)ㆍ오동(梧桐)ㆍ수만(須蔓)ㆍ유연(柔軟)ㆍ대유연(大柔軟)ㆍ보념(普念)ㆍ대보념음(大普念音) 꽃과 월(月)ㆍ대월(大月)ㆍ열락월(悅樂月)꽃 등, 이런 여러 가지 꽃을 내려 공양하면서 부처님에게로 갔으며, 혹 어떤 보살은 한 소리로 여래의 무량한 공덕을 찬탄하여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알리면서 부처님에게로 갔다. 또 혹은 제석의 권속과 혹은 범천의 시종이며 혹은 사천왕의 무리와 혹은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 등과 옥녀(玉女)로서 악사가 된 모든 권속이며, 그들은 여러 가지로 각각 다른 부류인데 부처님에게로 갔다.

마침 그 앞에 이르자 이 사바세계 삼천대천의 모든 지옥ㆍ아귀ㆍ축생들은 다 없어지고, 고요하여 걱정이 없고 최고로 기뻐졌는데 그것은 다 보살들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백천 억의 수로써 생각하거나 그 한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다 석가문 부처님께로 나아가 그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허공에 머물러 곧 이 뜻을 익혀 온 몸의 삼매에 들었다. 그리하여 선정으로 인해 곧 저절로 일곱 길의 연꽃이 생겼는데 그 빛은 무량하였다. 그러자 곧 그 위에 올라가 가부하고 앉았다.

그 때 장로[耆年] 대가섭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찬탄하고서 게송을 말하였다.

기쁨을 잘 보시하여

그 공덕으로 번뇌 떠나고

시방에서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고

고요한 마음의 담박함을 얻었나이다.

모든 행을 분명히 깨달아

그 높음은 짝이 없으며

도를 열어 내게 보이심

무량하고 불가사의하여라.

잘 좇아 보시 행하고

억해(億)의 겁 동안 계율 받들어

그 행이 짝할 이 없고

삼계에 아무 집착이 없네.

인욕의 힘의 형세 다함이 없는데

그 힘 열 가지 있고

따르기 어려운 공덕의 즐거움

저를 위해 의심의 그물 끊어주셨네.

중생들의 환난을 보았으므로

여러 겁 동안 행을 닦으시면서

거기 권태를 느끼지 않고

정진은 더욱 한량없었네.

널리 보시해 아낌이 없었나니

아들과 딸과 또 아내와

국토의 가지가지를

즐겨 보시해 잘 베푸셨네.

나의 의심을 이미 다 끊고

코끼리ㆍ말이나 탈 것

눈과 머리도 보시하셨고

옷과 억이나 되는 수레

 

모든 집과 빛나는 장식도 거절하지 않았고

능인(能仁)께서는 음식을 베푸심에

언제나 즐겨 보시했나니

그러므로 안부를 묻고자 하네.

그 몸 토막토막 끊기되

번뇌를 떠나 성내지 않고

참는 힘으로 교만을 버렸나니

그 뜻 말씀해주시길 원하네.

공(空)의 행을 닦아 익히며

뜻은 항상 잘 생각하고

안락의 공덕을 베푸나니

 

그러므로 번뇌 멸함을 묻네.

이미 탐욕과 분노와

중생의 삿된 견해와 번뇌를 끊고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애고

나라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네.

모든 유처(有處)를 버리고

백천 겁 동안 행을 닦아

도의 근본을 나타내시어

나로 하여금 귀의하게 하시네.

지혜와 신통으로 피안에 이르고

닦아야 할 선을 행하며

나라는 생각을 환히 깨닫고

즐기어 공의 법을 익혔네.

사람에 대해 집착이 없고

마음 훌륭히 의지함이 없으며

선정으로 생각함이 없고

의심을 풀고 번뇌를 버리셨네.

옛날에 닦아 익혀

보시ㆍ계율ㆍ인욕ㆍ정진을 행하고

선정과 지혜에 이미 들어

자비를 행하심 견줄 데 없네.

그 받은 덕은 헤아릴 수 없이

마치 강과 바다의 물 같고

얼굴은 뛰어나게 묘하고 좋나니

원컨대 저를 구호해 주소서.

누구든 세존께 귀의하면

번뇌를 떠나고 훼손되지 않나니

토막토막 몸을 베였어도

몸 평등하게 보아 표정 변하지 않네.

존귀하신 뜻은 도술(道術)에 두어

대중을 기쁘게 해 의심을 풀어 주고

산과 같아 움직일 수 없고

편히 머물러 사모함 없네.

만일 하늘에서 선정 행하면

옥녀(玉女)들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노닐거나 계시는 어디에서도

일찍이 음개(陰蓋)를 보지 못했네.

훌륭한 성품은 변함이 없고

그 하는 말씀도 또한 그렇고

덕은 허공처럼 두루하나니

위없이 존귀한 분께 머리 조아리나이다.

이에 장로 대가섭은 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말하였다.

“오 세존이시여, 지금 무슨 인연으로 이 하늘에 광명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고, 또한 특별하고 묘하여 미치기 어렵고 일찍이 없었던 법을 나타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전일한 마음으로 이 뜻을 묻고 있구나. 이것은 저 성문이나 연각승(緣覺乘)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하늘과 세상 사람이 여기서 미혹하여 어지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설령 여래가 그 물음에 답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망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가섭이 또 여쭈었다.

“부디 부처님께서 가엾이 여겨 말씀해 주시기 바라나이다. 많이 안온을 얻을 것이니, 모든 하늘과 시방 사람들을 구제해 주시기 바라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기꺼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기를 바라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에게 보광이구엄정(普光離垢嚴淨)이라는 삼매가 있는데 그는 이 선정에 대한 생각으로 삼매[正受]에 들어 있다. 그 때문에 그 광명을 놓아 시방의 억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모든 부처님 국토를 비추어 모두가 그 빛을 받고 있으며, 시방에 있는 낱낱 불국토의 무수하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억 백천 해의 보살 대중이 이 광명의 부름을 받아 모두 와서 이 사바세계에 모였다. 그러므로 내 눈 앞에 와서 나를 친근하여 부처님을 세 번 돌고는 땅에서 일곱 길쯤 떨어진 허공 가운데에서 갖가지 변화로 연꽃을 만들고 몸이 그 위에 있느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이 성스러운 뜻에 의해 이 온갖 꽃이 내리며 백천의 기악은 치지 않아도 스스로 울며 일체 회중이 금색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가섭아, 이것은 저 보살의 위신에 감동된 것이니라.”

가섭이 또 아뢰었다.

“예. 대성(大聖)이시여, 저는 저 보살들이 있는 곳을 전연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성문승이나 연각승은 일찍이 저기에 있어서 이런 상(像)과 대자 대비[大哀大慈]한 행을 닦아 끝이 없는 이치를 나타낸 일이 없고,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一心]ㆍ지혜에 있어서도 그와 같아서 뜻과 성품을 좇아 닦는 일이 보살에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보살들은 이미 모든 삼매에 두루 들어가 각각 모든 몸을 나타내지만 이 몸의 모양은 성문과 연각은 볼 수 없고 오직 여래만이 볼 수 있을 뿐이며, 이 선정을 얻은 이도 볼 수 있다. 혹 어떤 보살이 이 도의 자리를 익히고 대승에 뜻을 두었더라도 이 족성자(族姓子)조차 그들을 볼 수 없거늘 하물며 성문ㆍ연각으로서 어찌 미칠 수 있겠느냐 ?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몇 가지 일로 이 행을 다 통하며, 어떤 덕의 근본으로 모든 몸의 삼매에 두루 들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열 가지 법으로 모든 몸의 삼매에 두루 들어갈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뜻과 성품이 맑고 온화해 모두를 통달하고, 둘째는 일체 중생 무리를 버리지 않으며, 셋째는 끝이 없는 대비(大悲)를 멀리하여 거스르지 않고, 넷째는 항상 온갖 생각의 집착을 다 깨닫고 불법을 펴며 성질이 사납거나 난폭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누가 강설하면 업신여기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성문과 연각의 자리를 연설하지 않으며, 그 학문을 사모하지 않고 대승에 뜻을 두는 것이며, 여섯째는 일체 소유를 보시하되 아끼지 않고 사랑하는 신명(身命)까지도 버려 탐하지 않는 것이니 하물며 무익한 다른 일이겠느냐? 일곱째는 무량한 생사의 어려움을 보호하되 마음에 두어 급급하거나 게으르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닦는 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 등의 이 바라밀을 무한히 구족하려 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바라밀[ [度無極]에 대해 망상이 없는 것이고, 열째는 일체 중생에게 권해 불법을 가지게 한 뒤에라야 불수(佛樹) 밑에 가서 앉으리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불도에 중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열 가지 법이며 보살이 행할 것으로서 모든 몸의 삼매에 두루 들어갈 수 있다.”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일체 성문과 연각승으로는 낼 수 없는 일심의 행입니다. 설령 일체 중생이 다 아라한 자리에 머물더라도 미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이 삼매라는 불법을 알 수 있겠으며 어찌 삼매에 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섭은 다시 아뢰었다.

“저는 저 모든 보살들을 보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그런 모양의 여러 정사(正士 : 보살마하살)들을 보면 그것은 큰 경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우선 잠자코 기다려라. 문수가 지금 삼매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래야만 그대는 저 보살들의 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가섭이 설령 백천의 방편과 삼매를 일으켜 저 보살을 보려 하더라도 그들의 있는 곳과 노니는 곳과 그 위의와 예절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가섭은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고 나서 자기의 신족(神足)에 의해 오로지 선정의 힘을 생각하면서 2만의 선정에 들어가 정수(正受)하고, 다시 뜻을 내어 이 보살들의 행하는 의의가 어떤 것인가를 보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니는 곳을 전연 볼 수 없으며 그들의 나아가고 물러남과 가고 옴과 돌아다님과 섰거나 거님이나 또 무엇을 강설하고 어떻게 교화하여 중생을 제도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까마득히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삼매에서 일어나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미치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고 괴이합니다. 저는 아까 2만의 선정에 들어 모든 보살들을 찾아보았으나 그 있는 데를 알지 못했습니다. 두루 아는 신통의 지혜를 이루지 못했거늘 어찌 이런 고요한 삼매정(三昧定)의 뜻을 얻겠으며, 어찌 최상의 정진(正眞)과 최상의 정각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족성자ㆍ족성녀라면 누가 이 변화를 보고 누가 최상의 정진의 도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이 이 신통을 구해 모든 몸의 삼매에 들어 계덕(戒德)의 갑옷을 입고 굳게 스스로 서원한다면 그 마음은 이 삼매를 멀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이 삼매는 성문이나 연각승 의 지위로도 미칠 수 없겠거늘 하물며 다른 범부 중생 따위이겠느냐?”

이에 현자 사리불(舍利弗)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여러 지혜로운 이 가운데 내가 가장 높다고 찬탄하셨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저 보살들의 노니는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사리불은 3만 삼매에 들어 저 보살들이 어디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전연 볼 수 없었고, 또 그 영향과 형상과 그 상서로운 조짐이 무엇인가도 알 수 없었다.

존자 수보리(須菩提)가 가만히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다시 저 보살들이 어디 있는가를 찾아보리라.’

그리하여 삼매의 힘으로 부처님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고 4만 선정에 들어 정수(正受)를 닦으면서 그것을 보려 하였으나 보지 못하고, 그들의 나아가고 물러남과 가고 옴과 돌아다님과 앉거나 섰거나 하는 것과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때에 수보리는 삼매에서 일어나서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그 발 아래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제가 공(空)을 행함에 제일이라고 찬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삼매로도 얻지 못했습니다. 설령 삼천세계로 큰 북을 만들고, 수미산을 들 만한 큰 힘이 있는 장부가 삼매에 든 제 앞에 서서 수미산을 들어 그 큰 북을 치되 한 겁을 쉬지 않아도 제 마음을 어지럽혀 조금도 움직이게 하지 못할 것이니 제 신통과 공을 행함은 크고 우뚝하기가 이렇습니다. 그 북 소리가 시방에 두루 들리는 북을 한 겁 동안 게으르지 않게 쳐도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겠거늘 어찌 저를 삼매에서 일어나게 하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니 제가 공을 행함은 이처럼 뛰어납니다. 그런데 아까는 도리어 4만 삼매의 두루한 정의(定意)로 심중에 저 보살들을 관찰하려 하였으나 전연 볼 수가 없었습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그 근본을 말씀해 주소서. 가령 보살의 지혜를 알고 도덕이 뛰어나며 광명의 빛이 이와 같은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강의 모래알과 같은 겁 동안 큰 지옥에 있으면서 불에 타더라도 이 고통을 참고 보살도를 구하되 그것을 버리거나 멀리하지 않으면 크고 우뚝하기가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지혜일 것입니다. 또 몸은 비록 미치지 못하나 번뇌가 다하고 뜻의 해탈을 얻은 이는 무수한 겁 동안 능히 참는 곳에 있으면서 생사의 고통을 끝내 멀리 떠나지 않으리니 이런 많은 형상은 끝이 없는 큰 지혜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찬탄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니라.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으니라. 뜻과 성품이 온순하고 인자하며 감탄할 말이다. 가령 그대가 지금 그 몸으로 멸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공덕의 근본에 의해 항하의 모래알 같은 전륜왕이 되어 정법으로 다스리다가 장차는 위없는 정진의 도를 이루어 최상의 정각이 될 것이다. 또 수보리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 과연 많다 하겠느냐?”

“매우 많고 매우 많습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지혜의 구족은 사리불과 같고, 공 행함의 제일은 수보리와 같은 이런 등의 큰 성문의 수가 억백천이 있어 다 셀 수 없더라도 그들은 이 보살들을 보려 해도 도저히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성문ㆍ연각은 이런 교법을 수행할 수 없으며 저 보살 대사 등의 거동과 나아감과 멈춤은 사소한 규범이나 하열한 승(乘)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을 연설하실 때 8만 4천의 하늘과 세상 사람은 다 위없는 정진의 도심을 내고 삼천대천세계는 다 크게 진동했다.

문수사리는 자기 방에 있다가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 보살들이 큰 모임에 다 와서 그 수는 셀 수 없는 억 백천 해이다. 나는 다시 모든 하늘 무리들을 다 와서 구름처럼 모이게 하리라.’

이에 문수사리는 곧 여기상삼매정수(如其像三昧正受)에 들어 신족통을 나타내어 그 생각대로 때를 맞추어 8만 4천억 백천 개의 보배 붉은 연꽃을 변화로 만드니 크기는 수레 덮개 같고, 잎은 자마금으로 되었으며, 줄기는 백은으로 되고 수장(首藏)은 유리와 마노 보배를 섞어 장식되었으며 구슬과 모든 보배 자거(車?)로 새끼를 삼았고 화현한 보살들이 그 위에 앉았는데, 몸은 자금색의 32상이요, 자태는 단정하고 위신은 빛났었다.

또 연꽃의 광명과 모든 화현한 보살은 사왕천(四王天)ㆍ도리천(忉利天)ㆍ염천(鹽天)ㆍ도솔천[兜術天]ㆍ무교락천(無憍樂天)ㆍ화자재천(化自在天)ㆍ범천(梵天)ㆍ대범천(大梵天)ㆍ범가이천(梵迦夷天)ㆍ범만천(梵滿天)과 나아가 일선천(一善天)을 비추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욕행천(欲行天)ㆍ색행천(色行天)의 모든 궁전에 두루 미치고, 모든 보살들은 연꽃 위에 앉았는데 시방 어디에고 두루하지 않은 곳 없이 다 법음(法音)을 펴 많이 교화하였다. 이 보살들은 다 이 삼천대천세계에 노닐면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모든 부처님 해와 달을 뛰어넘는 분

오랜 세월 지나서야 세상에 나오시네.

그것은 마치 영서화(靈瑞花)와 같건만

만나기 어렵기는 그보다 더하네.

석씨의 사자로서 인간에서 높으신 이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때를 맞추어 경전을 강설하시어

일체 고통을 다 없애시네.

저 천상의 쾌락이

어찌 오래일 수 있으랴.

다시 지옥에 떨어져서는

무량한 고뇌를 이내 받으리.

만일 저 탐욕을 익히면

은애(恩愛)는 더욱 치성해지고

이 삼계에는 안락 없나니

생사의 못에 뜻을 두지 말라.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눈을 뜨게 되리.

부처님 세상은 만나기 어려우니

방일하여 잘 깨닫지 못하면

온갖 근심을 멸할 수 없네.

 

마땅히 가서 정각을 뵙고

최상의 법을 잘 들어야

인간의 높으신 이 멸도하신 뒤에

근심과 슬픔 품지 않으리.

방자하게 달리는 사람

악마 그물의 고난 있나니

어떻게 그것을 벗어날 수 있으랴.

미혹하면 그 바른 길 잃으리.

만일 누군가 전생의 복 있어야

이 도리를 말할 수 있으리.

부처님께서 관하신 그 근본 자리와

32종의 묘한 상(相)

다른 사람은 감당할 수 없으며

또한 보호해 가질 수 없지만

오직 부처님, 세상의 영웅에게만 있다네.

그 자애로움은 불가사의하고

백천 겁 동안 지은 그 행은

무량하여 불가사의하여라.

높고 거룩한 지혜를 쌓았나니

석씨 사자께서는 높고 우뚝하나이다.

지금 강술하는 가장 높은 법

그 이치는 깊어 미치기 어려워

중생들은 얻을 수 없나니

수명도 없고 사람도 없네.

 

상(常)이라는 생각 버려야 하나니

단멸(斷滅)도 또한 그러하여라.

일체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대중을 위해 설법하시네.

진실한 본제(本題)를 연설하시어

세상에 대한 집착 없애고

이 공에는 생각 없나니

어떤 소원도 일으키지 않네.

형상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으며

일어나지 않으니 멸할 것 없고

오더라도 어디로부터 오는 곳 없으니

눈 밝은 이의 설법 그러하다네.

모양도 없고 나는 바 없고

본래 깨끗해 형상 없으며

견해도 없고 서응(瑞應)도 없고

말하는 바가 있다고도 생각 않네.

중생은 나지도 않고

죽는 이도 없다고 생각하나니

사람은 본래 일어남 없고

또 멸하는 일도 없네.

음성으로 말한 경전의 법

그 법은 쌓아 둔 곳 없는데

문자로 인해 법이라 부르나니

그것은 도사(導師)의 말씀이네.

 

풍(風)에도 집착하지 않고

수(水)와 화(火)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지(地)도 생각하지 않는 것

밝은 눈 가진 이가 찬탄하는 바이네.

색(色)도 통양(痛痒 : 受)과 사상(思想 : 想)과

생사의 행도 또한 그렇고

의식도 또한 공이라 말하나니

5음(陰)이 있는 곳 없네.

그 눈과 귀와 코

또 입과 몸과 뜻

분별은 본래 깨끗하고 공이지만

그 공마저 얻을 수 없네.

빛깔과 소리와 맛과 냄새

감촉[細滑 : 觸]과 뜻의 즐거워하는 바

그것은 상념(想念)에서 생기는 것이지만

그 상념마저 공이요 자연이네.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도 그러한데

분별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

실제도 없고 형체도 없네.

정각께서는 이와 같다고

사람을 위해 법을 강설하시어

온갖 괴로움을 다 없애 주시나니

저 도사님께 빨리 나아가라.

 

그 화현한 보살들은 삼천대천세계에 이 게송을 외워 들려 주었다. 96억의 욕행천(欲行天) 사람과 색행천(色行天) 사람은 번뇌를 멀리 떠나 모든 법의 법안(法眼)이 깨끗해졌고, 2만인은 다 욕심을 떠났으며,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천자들은 일찍이 덕의 근본을 심었으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 때에 저 화현한 보살들의 교화를 받은 무앙수 억백천 나유타[那術]천자들은 곧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한 쪽에 물러서서, 천상의 푸르고 붉고 노랗고 흰 꽃과 온갖 천의화(天意華)를 여래 위에 흩고 갖가지 이름난 향을 피우며 허공에서 천상의 기악을 울렸다.

그때에 천자들은 너무 많이 모여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4방 영역에 두루 찼는데 동방의 불우체(弗于逮), 남방의 염부제(閻浮提), 서방의 구야니(拘耶尼), 북방의 울단왈(鬱單曰), 그 중간에는 아무 것도 용납할 수 없어, 만일 지팡이를 위로 던지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모든 천인들의 위신력은 존귀하고 뜻을 둠이 고절(高節)하였으며 4방 세계에 온갖 꽃과 향이 쌓여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 때 선주의(善住意) 천자이구천(離垢天)회치천(懷恥天), 이 세 천자는 96억의 모든 하늘 권속을 거느렸는데 다 대승에 뜻을 두었었다. 그들은 문수사리에게로 가서 그 방 밖에 머물렀다. 문수사리는 방에 혼자 있으면서 모든 꽃을 다 가지고 여래께 공양하여 대천국(大千國)의 허공에 화교로(華交露)를 이루게 하였는데 그 온갖 꽃의 광명은 부처님 국토를 다 비추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문수사리는 뜻이 안온하고 화평해져 삼매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 한 쪽에 서서 곧 손가락을 튀겼다. 그 손가락을 튀기는 소리는 삼천대천세계를 여섯 가지로 진동시켜 곧 그 땅에서 크고 높은 좌석을 내었는데 무앙수의 보배를 섞어 장식하고 셀 수 없는 옷을 그 위에 폈다. 또 이 높은 좌석은 광명의 위신이 크고 우뚝하여 거친 영역 백천 유순을 비추고 모든 천자를 덮어 어둠을 밝게 하고는 문수사리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 때 선주의 천자문수사리가 앉는 것을 보고 그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섰다. 여러 천자들도 다 그렇게 했다. 문수사리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누구와 함께 세존 앞에서 문답하고 강의를 할까? 그리고 불가사의한 장구(章句)ㆍ근기에 상응하는 알기 어려운 자취ㆍ소유 없는 자취ㆍ집착함이 없는 자취ㆍ버림이 없는 자취ㆍ얻을 수 없는 자취ㆍ말함이 없는 자취ㆍ깊고 묘한 자취ㆍ진제(眞諦)의 자취ㆍ성신(誠信)의 자취ㆍ걸림이 없는 자취ㆍ무너지지 않는 자취ㆍ공무(空無)의 자취ㆍ생각 없는 자취ㆍ원하는 바 없는 자취ㆍ본래 없는 자취ㆍ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자취ㆍ도의 가르침을 펴는 끝없는 자취ㆍ본제(本際)의 자취ㆍ존상(尊上)의 자취ㆍ들어감이 없는 자취ㆍ법계의 자취ㆍ형상이 없는 자취ㆍ견줄 데 없는 자취ㆍ허공을 증득하는 자취ㆍ들 바가 없는 자취ㆍ내릴 데 없는 자취ㆍ불법의 가르침의 자취ㆍ성중(聖衆)에 미치는 자취ㆍ지혜가 구족한 자취ㆍ삼계에서 짝할 것 없는 자취ㆍ일체 법에 노닐면서 일어남이 없음을 강하는 자취ㆍ모든 도법에 도달함이 없는 자취ㆍ모든 제석과 범천의 자취ㆍ용맹을 닦는 자취ㆍ일체 법의 번뇌가 없는 자취ㆍ글귀에 글귀 없는 자취ㆍ모든 글귀를 지나는 자취 등을 통달하여 펼침으로써 성문의 근기를 초월하게 할까?’

문수사리는 다시 생각했다.

‘저 선주의(善住意) 천자는 과거에 부처님에게서 이미 행을 지어 세웠고 온갖 덕의 근본을 심었으며 깊은 법인에 들고 변재가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지금 세존 앞에서 문답하고 강설할 만하다.’

그리하여 문수사리는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인자(仁者)께서는 깊은 법인에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자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말했다.

“저도 인자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할 말이 없으면 말하지 않을 것이요, 대답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부처와 법과 승가대중을 묻지 않으면 성문도 아니요 연각도 아니며, 불도(佛道)도 아니요 종시(終始)도 아니며, 생사도 아니요 열반[泥洹]도 아니며, 선도 아니요 불선도 아니며, 죄도 없고 죄 아님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번뇌 아님도 없으며, 현재도 없고 과거도 없으며,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열지도[啓] 않고 내지도[發] 않으며, 문자도 쓰지 않고 음성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내가 할 강설도 그와 같을 뿐입니다. 만일 인자로 하여금 전혀 듣지 않게 한다면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요, 받지도 않고 외우지도 않으며, 생각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분별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한 들을 것도 없고 남을 위해 펴지도 않으며, 법을 강설하지도 않고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에 있거나 혹은 멸도에 이르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문자 없이도 위없는 정진의 도를 이루어 최상의 정각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이 없는 나를 나타내지 않아 그 이름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천자는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인자께서 강설하시면 기꺼이 그것을 잘 듣겠습니다. 원컨대 문수사리시여, 곧 말씀하시어 제 마음을 기쁘게 해주십시오. 저 천자들도 존자께서 본제(本際)의 법을 연설하심을 듣고 싶어합니다.”

문수사리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제가 연설하는 법을 자세히 듣게도 하지 말고 잘 받들게 하지도 마십시오. 왜냐 하면 법을 듣고자 하면 곧 나를 받아들이게 되고 사람과 수명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법을 듣고자 하여 가령 천자가 뒤바뀐 생각으로 거짓을 받아들여 나[我]가 있다고 헤아리고 몸이 있다고 탐하면 곧 ‘저 사람은 설법하고 나는 듣는다’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 이 의지함 때문에 세 가지 집착과 걸림이 있을 것입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는 착각을 가지고 나[我]에 집착하는 것이요, 둘째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남[他人]이 있다 헤아리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받는다고 생각해 얻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 장애입니다.

가령 천자께서 나를 헤아리지 않고 3장(場)을 깨끗이 하면 그것을 곧 법을 듣는 것이라 하여, 과보를 생각하지 않고 사념(思念)하지 않으며 사찰(思察)하지 않습니다. 그 3장이란, 첫째는 사람도 얻지 못하고 과보도 생각하지 않으며, 둘째는 법은 없는 것이라 바라는 바가 없는 것이며, 셋째는 나[我]가 없어서 그리워 생각함이 없는 것이니, 만일 천자들로 하여금 이렇게 법을 듣게 하면 이것을 평등한 들음이라 하고 삿된 들음이라 하지 않습니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를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그 말씀 유쾌하십니다. 거기 머물러 말하는 이는 퇴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만 두십시오. 천자여, 보살의 퇴전(退轉)이거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혹 어떤 보살은 최상의 정각을 이룬 때에도 도를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마음이 견고하지 않은 사람이 어찌 퇴전하겠습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작용[轉] 때문에 전(轉)이라 하나니, 보응(報應)의 작용을 받고 62미혹[疑]의 삿된 견해의 작용을 받으며, 무명의 작용을 받고,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작용을 받으며, 성문ㆍ연각의 토지(土地)의 작용을 받고,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 뭇 생각의 작용을 받으며, 수취(受取)하는 모든 망상과 견해의 작용을 받고, 모든 곳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망견(妄見)의 작용을 받으며, 모든 상단(常斷)을 헤아리는 견해의 작용을 받고 나아가고 나아가지 않음과 모이고 흩어짐이 작용하고, 나와 사람과 수명이라는 견해의 작용[轉]을 받고, 뜻에 맞으면 기뻐하면서 사모하는 견해가 작용하며, 항상하고 청정하며 안온한 내 몸이라는 전도된 견해가 작용하고, 이 모든 생각의 장애에 작용을 받으며, 몸을 탐하는 뭇 습관과 뭇 관찰에 작용을 받고, 62견(見)과 모든 개(蓋)와 미혹과 어둠과 탐욕ㆍ분노ㆍ수면ㆍ희롱ㆍ의심에 작용을 받으며, 음종(陰種)과 모든 입(入)과 4대(大)의 작용을 받고, 부처님과 법과 승가대중을 생각하면서 나는 반드시 성불하리라고 하기 때문에 작용을 받으며, 나는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거룩한 지혜를 얻으리라 하여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작용을 받는 것입니다.

또 가령 받들어 닦으면서 10력(力)과 18불공법[不共諸佛之法]을 생각하고, 또한 5근(根)과 5력(力) 및 7각의(覺意)를 생각하며, 또 상호(相好)에 집착하고 또한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문중을 이루리라 망상하면 이것을 퇴전이라 합니다. 일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과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는 모든 것에 있어서 설사 천자여, 그 행이 보살이면 여기서는 퇴전함이 곧 퇴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찌해야 퇴전하지 않겠습니까?”

“부처의 지혜를 통달하면 퇴전하지 않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면 퇴전하지 않으며, 본래에 행이 없으면 퇴전하지 않고, 법계에서 그 본제(本際)를 깨달으면 퇴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평등한 행이기 때문에 퇴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인자의 말씀과 같다면 비록 모든 법에서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으며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불도에 집착하면 악마와 같지 않겠습니까? 왜냐 하면 법이 있다고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퇴전이 있습니까, 퇴전이 없습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퇴전이 있지도 않고 퇴전이 없지도 않습니다.”

또 물었다.

“어찌하여 퇴전합니까?”

대답하였다.

“다 일체의 받음[受]이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 받음이 거짓이니 그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받음에 있어서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을 걱정하여 싫증내지 않으면 일체의 법에서 믿음이 퇴전하며, 또 경전의 도를 연설하더라도 그것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그 말함도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설령 생각이 퇴전하더라도 이것이 있다, 이것이 없다 하면 곧 번뇌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있다고 말하면 상(常)을 헤아림이 되고 만일 없다고 말하면 단멸에 떨어집니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경법을 말씀하시더라도 단멸(斷滅)도 말씀하시지 않고 상(常)도 말씀하시지 않으며 모든 법을 생각하시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설법할 때 1만 천자들은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 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가서 여래를 뵈옵고 머리 조아려 여쭈어 보았으면 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 지진께서는 모든 의심을 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천자에게 대답하였다.

“우선 잠깐 기다리고 망상을 부리지 마십시오. 지금 이렇게 여래를 뵙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 물었다.

“왜 기다려야 합니까?”

“지금 우리 앞에 계십니다.”

또 물었다.

“어디에 계십니까?”

“허공입니다.”

선주의가 문수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어디 계십니까?”

“벌써부터 앞에 계십니다.”

또 문수에게 물었다.

“저는 지금 여래를 보지 못합니다.”

문수가 대답하였다.

“모든 여래를 볼 때에는 이렇게 보십시오. 즉 누가 앞에 서 있느냐고 묻거든 허공계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리고 여래는 허공과 같다고 관찰하십시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니, 여래께서는 이 모든 바른 지혜를 깨달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위해 여래께서는 허공과 같아서 허공과 여래께서는 둘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천자는 여래를 보려거든 본제(本際)를 깨닫고 망상을 품지 마십시오.”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저는 뒤따라 여래께 가고 싶습니다.”

대답하였다.

“천자여, 뒤따라 가시더라도 우선 여기 있고 출발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천자는 곧 무수한 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갔다.

문수사리는 곧 변화로 32채의 교락중각(交絡重閣)을 만들었다. 각진 곳과 원(圓)이 저절로 맞고 4방에 기둥이 있는데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과 처마가 다 갖추어졌고 위신이 높고 우뚝하여 들여다보는 이들이 다 기뻐하였다. 중각의 교락 가운데에는 온갖 보배로 만들어진 상탑(床榻)을 변화로 만들고 하늘 옷을 그 위에 깔고 낱낱 평상 위에는 화현한 보살들이 앉았는데 그 몸은 32상으로 장엄되어 있었다.

그 때 문수는 곧 여기상삼매(如其像三昧)에 들어 신기한 광명을 놓아 아름다운 연꽃 위에 앉은 모든 보살과 삼천대천세계에서 노닐 수 있는 자와 또 붕각(棚閣)의 교락상(交絡床)에 앉은 이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을 일곱 번 돌고는, 성중(聖衆)들과 공중에 솟아올라 그 광명으로 대중의 모임을 비추고 4방에 서 있었다.

문수사리가 갑자기 빨리 부처님께로 가자 선주의 천자가 다시 뒤를 쫓아왔다. 그래서 선주의 천자는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어느 길로 해서 여기 먼저 오셨습니까? 저는 먼저 출발했는데 도리어 뒤에 왔으니 말입니다.”

문수가 대답하였다.

“가령 강의 모래 수와 같은 여래께 공양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더라도 내가 가고 옴과 나아가고 물러남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일찍이 없었던 일을 나타내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 때 그 연꽃 위에 앉은 보살과 교락 가운데 있던 이들은 다 같은 음성으로 동시에 소리를 내어, 부처님 앞에 서서 다음 게송으로 세존을 찬탄하였다.

무앙수의 수억 부처님을

일찍이 이미 공양했나니

마치 저 강의 모래 수 같아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없네.

부처님 도에 뜻을 둠으로써

특수하고 거룩한 지혜

인간의 존귀한 분 집착 없나니

수승함이 이러하므로 높고 우뚝하시네.

거룩한 존안 미치기 어렵고

거룩한 위엄은 삼세를 비추니

능인의 온갖 상호

여러 가지로 뛰어나시네.

경전의 도를 연설할 때는

도사께서는 그 서원을 따르시며

그것을 분별하는 것

사람과 수명이 전혀 없다네.

계율로 사람들 깨우치셨나니

보시 행하고 계율 지키며

욕됨을 참고 정진 익히며

그리고 선정과 지혜이네.

세 곳에 집착이 없고

지혜로 저 언덕 건넜나니

최승(最勝)께 귀명하여 예배하고

모든 정각을 받들어 공양하네.

일체 모든 부처님 따라

삼계의 어른을 받들어 공경하고

모든 법의 왕이 되시어

천상과 인간의 공양을 받네.

독실히 공무(空無)를 믿음

견고하여 미치기 어렵네.

이로 인해 세간 사람 가운데

거룩한 분 되셨나이다.

그 옛날 본래 있던

과거의 모든 여래와

또 지금 현재에 계시는

사람 중에서 높으신 이들

그분들이 다 받들어 실천하신 대로

항상 공을 아는 깨끗한 지혜와

또한 생각과 원함 없음과

그것의 상 없음 관찰하셨네.

끝까지 미루어 관찰하여도

본래 청정하여 중생이 없고

또 나는 자도 없으며

또한 죽는 자도 없었네.

또 구하는 자도 없고

또 왕생하는 자도 없어

일체 모든 법의 일

마치 저 허공 같았네.

내가 본래 나타난 것과

정사(正士)들의 일처럼

세 가지 일과 몸을 관찰하여도

모두가 가진 것 없네.

 

그 설법에 편히 머물면

그 이치는 이와 같나니

그것을 보면 마치 허깨비 같고

또한 꿈속에서 본 것과 같네.

모든 부처님의 그 세계는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데

누가 거기에 물건을 가득 채워

그것으로써 보시한다고 할 경우

가령 누가 인욕 행하더라도

이 법도 또한 공하나

이 일으킨 보시가

특수하여 제일이 되네.

마치 강의 모래알 같은

그 많은 겁 동안을

이와 같이 공양하였나니

사람 중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

온갖 꽃과 이름 난 향과

음식 등도 이러하였네.

혹 어떤 보살이든 배워

부처님 도의 이치를 구하면서

혹 이 경전의

이러한 모든 교훈과 가르침을 듣고

만일 사람과 수명과

중생이 없는 줄 깨달아 알면

법인을 빨리 얻어

청정히 현요(顯曜)를 이루리.

이 사람은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이에게 공양하고

수없는 억 겁 동안

언제나 보시 행하네.

음식과 모든 공양과

수레와 말과 거주에 필요한 것들

용도를 따지지 않고 이것을 행하여

불도를 속히 이루었건만

도리어 온갖 망상 품나니

사람이 있다고 헤아리기 때문이네.

사람 중에서 최상인 사람

이미 멸도에 돌아간 이가

일찍이 중생을 제도하여

제도 받은 이 다함이 없네.

그 법은 본래 청정해

관찰하여도 있는 것 없어

해탈과 지혜 등

그 배운 것 이와 같았네.

세상에 나오시는 부처님 만나기

오랜 세월 지나야 얻을 수 있고

그 경전을 말씀하실 때

믿고 존중함도 또한 그렇고

사람의 몸을 얻기

또한 매우 어렵네.

장하여라. 정진을 닦음이여.

훌륭하고 수승한 가르침을 순종하여

항상 여덟 가지 부끄러움과

시끄러움 제거하라.

알맞은 때 다시금 만날 수 없고

한가한 때는 희유한 법이니

부디 돈독한 믿음 일으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쭈어 보라.

부디 은근히 힘을 다하고

씩씩하게 늘 받들어 행하며

만일 법을 듣게 되거든

그 분부대로 빨리 행하라.

큰 음성과 끝없는 소리는

이미 저 언덕으로 건너갔나니

항상 스스로 가지고 길러

한가히 살기에 정진하여라.

사람 중에서 높은 이 따라

머리 조아려 명령 어기지 말고

선지식과 또 통달한

법의 그릇 되는 이께 나아가라.

 

그름과 거짓으로 행하는

악지식을 마음에서 항상 버리고

일체의 평온과 순리를 닦고

평등한 마음으로 방편 따르라.

비록 중생들 속에 있어도

부디 망상을 품지 말고

계율 지키고 많이 아는 이

그들을 받들고 잘 섬겨라.

평등하게 남을 관찰하고

항상 걸식 행하며

자주 마음을 고르고

나무 밑을 가까이 해 앉으며

수수한 약으로 몸을 돌보면서

첫째로 의심을 품지 말라.

일체의 모든 유위(有爲)를

이것도 무위(無爲)라 생각하며

그 모두가 동등한 상으로서

비유하면 아지랑이와 같네.

이것이 제일의 본제라고

만일 잘 깨달으면

불도를 빨리 이루어

그 짝할 이 없는 데 이르리.

부처님께서는 5음(陰)이 마치

요술쟁이의 요술 같음 아시고는

스스로 그 안 몸을 관찰하고

또 밖의 소유를 관찰하시네.

편히 머물러 분별한 바로는

이것은 공의 모임이니

부디 한(恨)하고 연연하여

거기에 의지하지 말라.

그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은

본래 깨끗한 허공 같은데

어리석고 성내는 일들

다 생각[想]에서 생기는 것이네.

또 헤아리면 그 상념도

있는 곳을 얻을 수 없나니

저 모든 도사(導師)들

깨달은 것 다 이와 같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사람 가운데 밝은 눈 가진 이니

가령 모든 부처님들

도의 지혜를 다 알고자 하면

모든 장애와 유위의

미혹을 다 버려야 하나니

이런 용맹스런 사람들은

반드시 거룩한 불도 이루리.

그 때 모든 화현한 보살들이 이 게송을 마치자 거기 와서 듣고 있던 2만 2천 사람들은 다 최상의 정진도(正眞道)의 생각을 내었고, 5백 비구는 무여열반을 얻어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렸으며, 3백 비구니는 법안(法眼)이 깨끗해지고, 7천 우바새와 7천 우바이와 2만 5천 천자들은 번뇌를 멀리 떠나 법안이 깨끗해졌으며, 3백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고, 이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그 큰 광명은 시방을 두루 비추었다.

장로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大聖)이시여, 이 누구의 위덕이 삼천대천세계로 하여금 여섯 가지로 진동하게 하고 이 화현한 보살은 교락(交絡) 중각의 연꽃 위에 앉아 깊고 묘한 법을 연설하여 그 뜻이 특수하며 이 광명이 이 모임에 온 이를 두루 비추고 무앙수의 억 보살들을 비추며 천자들의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의 위신의 감응으로 다 모이게 한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때문에 문수사리가 여래에게 마장(魔場)을 무너뜨리는 삼매의 법을 여쭙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법을 완전히 성취하였으니, 그 삼매 이름을 적연공행(寂然空行)이라 하며 선주의 천자와 함께 있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문수사리는 이 모임에 오지 않았습니까? 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는 저 악마를 무너뜨리는 삼매에 들어 악마의 궁전을 덮고 큰 위변을 일으키면서 여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느니라.”

이때 문수사리는 마장을 허무는 삼매에 들었다. 그러자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악마 궁전이 일시에 모두 닫혀, 그들은 그 곳을 좋아하지 않고 각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때 악마 파순은 자신이 노쇠하고 기운이 빠져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그 궁녀와 채녀들도 다 노쇠해진 것을 보았으며, 또 궁전이 다 허물어지고 깜깜해 동서를 분별할 수 없음을 보았다. 그리하여 악마 파순은 못내 두려워 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했다.

‘이것은 무슨 괴변이기에 내 궁전이 이처럼 못쓰게 되었는가? 무슨 죽을 죄를 지어 이대로 죽게 되는 것인가? 천지가 재겁(災劫)을 만나 다 타버리는 것인가?’

그리하여 악마 파순은 교만한 마음과 악한 생각을 버렸다. 그 때 문수사리가 변화로 만든 백억 천자로서 교락에 있던 자들이 악마들 앞에 서서 악마 파순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들 몸에는 끝내 아무 환난도 없을 것이다. 문수사리라는 불퇴전(不退轉) 보살대사가 있는데 그의 위덕은 특별하고 뛰어나 시방을 다 다스린다. 그 덕은 수미산보다 뛰어나고 지혜는 강과 바다보다 뛰어나며 지혜는 허공보다 뛰어난데, 지금 마장을 허물어 항복받는 이 삼매에 들어 있으니 이것은 그 위신력 때문이다.”

여러 천자들이 마침 이렇게 말하자 모든 악마들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겁을 내어 문수를 두려워하였고, 모든 악마 궁전들이 곧 진동했다. 악마 파순은 화현한 보살들에게 보고하면서 구제해 받기를 원했다.

그러자 화현 보살들이 대답하였다.

“우선 편히 머물러 두려워하지 말고 그대들은 저 석가문(釋迦文)부처님께로 가라. 여래 지진께서는 한없이 가엾이 여겨 끝없는 자비를 베풀 것이다. 가령 중생들이 크게 두려워할 때에도 인자함을 쏟아 두려움이 없게 할 것이다.”

그 화현한 보살들은 이렇게 말하고 갑자기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악마들은 기뻐하면서 교락의 자리에 앉아 있는 화현한 보살들과 한 마음이 되어 부처님께 가기로 하고, 노쇠한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가서 일시에 소리를 내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오직 원컨대 대성이시여, 저희들을 구제하여 이런 큰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차라리 백천억 부처님의 공덕과 명칭을 얻을지언정 한 문수사리의 핍박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저희들은 아까 문수라는 이름만 듣고도 곧 두려워져 스스로 편안할 수가 없었고 신명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악마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 말과 같으니라. 억백천 부처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은 문수가 교화하고 지도하여 다함이 없는 중생들을 해탈시키는 것으로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너희들이 억백천 부처님의 공덕과 명칭을 듣지 못했으면 아무리 뇌환(惱患)을 만나 마음에 두려움을 품었더라도 문수의 일으킨 변괴에 의한 어려움보다는 더욱 심하기 때문이니라.”

악마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이 노쇠해진 몸이 부끄럽습니다. 지금 세존께 귀의하오니 가엾이 여겨 본래 형상으로 돌아가 하늘 옷으로 장식하게 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선 조금 기다려라. 지금 문수사리가 와서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이에 문수는 무수한 천자들과 백천 나유타 권속들과 헤아릴 수 없는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과 억백조(億百兆)의 무량한 보살 등, 그 수가 무수하고 한량없는 이들에게 둘러싸이고 앞뒤로 이끌고 좇으면서 안온하고 조용하게 거동했는데, 백천의 음악이 울리고 온갖 이름난 향과 푸르고 붉고 노랗고 흰 연꽃이 내려, 청정한 장엄과 다함없는 위변(威變)은 보는 이마다 모두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다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는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삼매는 악마를 항복 받은 삼매로구나.”

문수가 아뢰었다.

“예, 마땅히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또 물으셨다.

“어떤 방편으로 여래로부터 이 선정을 받았으며 또 이 삼매를 이룬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문수가 아뢰었다.

“예, 대성이시여, 저는 최상의 정진도의 뜻을 발하기 전에 이 선정의 이름을 들었사오며 듣자마자 곧 이 삼매를 이루었습니다.”

또 물으셨다.

“문수여, 이 삼매정을 들려 주신 그 부처님의 명호는 어떤 여래이더냐?”

문수가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과거 아주 먼 옛날, 강의 모래 수보다 많은 셀 수 없는 아승기겁 때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그 명호를 의화향(意華香)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 세존이라 하였습니다. 그 때에 이 삼매행품(三昧行品)을 연설하셨는데, 저는 그 때 그 부처님으로부터 이 마장(魔場)을 무너뜨리는 삼매의 지혜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또 문수에게 물으셨다.

“그 의화향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매의 지혜의 음성이란 어떤 것인가?”

문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20가지 일로 마장을 무너뜨리는 삼매정의 뜻을 얻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 20가지란 어떤 것인가?”

문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보살은 첫 번째 탐음(貪婬)을 헐어 그 욕심을 멸하고, 두 번째는 분노를 헐어 더러운 마음을 제거하며, 세 번째는 어리석음을 헐어 어두운 마음을 없애고, 네 번째는 교만을 헐어 원한을 버리며, 다섯 번째는 성냄을 헐어 번뇌의 뜨거움을 품지 않고, 여섯 번째는 뭇 생각과 모든 삿된 견해를 버리며, 일곱 번째는 많은 생각으로 받는 일과 또 주는 일을 버리고, 여덟 번째는 소요와 소요 없음을 떠나며, 아홉 번째는 단멸(斷滅)과 계상(計常)을 초월하고, 열 번째는 음종(陰種)과 모든 입(入)과 4대(大)를 헐며, 열한 번째는 그 마음이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열두 번째는 성문의 마음을 멀리하며, 열세 번째는 연각의 생각을 버리고, 열네 번째는 질투와 탐여(貪餘)를 베며, 열다섯 번째는 계율을 헐고 어기는 비난을 멀리하고, 열여섯 번째는 싸움과 옳지 않은 일을 끊으며, 열일곱 번째는 게으름과 망설임을 끊고, 열여덟 번째는 방탕하고 산란한 모든 뜻을 버리고, 열아홉 번째는 삿된 지혜와 바르지 않은 일을 돌이키도록 힘쓰고, 스무 번째는 진로(塵勞)와 애욕과 결망(結網)을 항복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 스무 가지 일은 보살이 행할 바로서 이 삼매를 얻습니다.”

문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일로 이 삼매를 얻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행하는 바와 세운 마음이 청정하고 조화로운 것이요, 둘째는 뜻과 성품이 유연하고 아첨과 꾸밈이 없으며, 셋째는 깊은 법인(法忍)에 들어가 마음이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그의 행하는 보시가 애착하고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입니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 이 삼매를 얻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한결같이 지성(至誠)을 행하여 속일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한가히 사는 적막한 행을 익히는 것이며, 셋째는 경전을 물어 배우고 모든 법을 외우는 것이고, 넷째는 모든 행이 끝까지 옳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입니다.

보살에게는 또 네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선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고, 둘째는 만족함을 한정해 아는 것이며, 셋째는 고요히 생각하면서 혼자 있는 것이며, 넷째는 시끄러운 곳에 있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입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일로 삼매를 얻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마음으로 성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연각의 생각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보살의 도에 뜻을 두는 것이고, 넷째는 법인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입니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 이 삼매를 얻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공법(空法)을 닦아 사람이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생각 없음을 존중하여 뭇 희망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방일한 행이 없고 모든 원하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고, 넷째는 만족함을 알아 일체 소유를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입니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 이 삼매를 얻습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무량한 생사의 어려움에 돌아다니는 것이고, 둘째는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치료하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일심으로 때에 응하기를 생각하는 것이고, 넷째는 서서히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의화향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이 삼매행음(三昧行音)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그 부처님으로부터 이 삼매를 들었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다시 명주일월광요(明珠日月光曜)라는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여래에 의해 이 삼매를 이루었습니다. 이 마장을 허물어 조복받는 삼매를 설명했을 때 그 회중의 1만 보살은 이런 색상(色像)에 감동하고 변화하여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습니다.

사리불의 뜻한 바는 어떠했습니까? 이 삼천대천세계에만 이변이 있어 모든 악마를 항복받았겠습니까? 그렇게 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시방의 모든 강의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국토에 있는 악마 파순으로서 사람의 틈을 엿보는 자는 다 이 재난을 만나 자재를 얻지 못했으니, 그것은 다 문수사리가 건립한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 세운 위신을 버리고 저 악마들을 본래 형상으로 돌려 천상의 복식(服飾)을 입혀 주어라.”

그러자 문수는 모든 악마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그 몸과 옷을 더럽다고 한 것이 사실이냐?”

악마들은 답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문수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탐욕을 싫어해야 하며 삼계에 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악마들이 대답하였다.

“오직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문수시여, 원컨대 위신을 가해 저희들로 하여금 이런 형상과 위의와 복식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문수사리는 곧 위신과 변화를 버리고 저 천자와 천녀[玉女]들을 치료해 그 형체를 전처럼 회복시켜 주어 옷은 빛나고 위신은 크고 우뚝하였다.

문수사리는 악마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그 눈이 봄으로써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을 알고 싶은가? 눈에 집착이 있으면 안근(眼根)이 되고 생각을 인해 눈을 내 것이라 해서 눈을 의지하고 그에 의해 곧 눈이 나게 되고, 눈의 나아가는 곳은 눈이 심후(心候)가 되는데 도리어 그 눈을 보호하며 눈을 뜨고 눈을 감는 것이 곧 너희들의 경계인 것이다. 그것이 악마의 업을 지나니,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령 눈이 있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귀에 들음이 없으며 코의 냄새와 입의 맛과 몸의 접촉과 뜻의 법에 다 집착이 없어 너희들의 경계가 아니어서 노려(勞侶)가 같지 않고 힘이 없어 즐거워하지 않으면 악마의 업이 없게 되고 또한 영향도 없을 것이다. 또 그대들은 스스로 나가 있다고 헤아리고 몸이 있다고 하나니,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대중 모임에 있으면서 고요함을 얻으려 하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문수사리는 때를 맞추어 거기서 악마와 그 권속들을 위해 경전을 해설하여 1만 악마로 하여금 다 최상의 정진도의 마음을 내게 하였다. 그러자 8만 4천의 악마는 번뇌를 멀리 떠나고 모든 마녀들은 다 법안이 깨끗해졌으며 그 밖의 모든 악마들은 각기 그 궁전으로 돌아가 모두 큰 소리로 만세를 부르면서 “우리들은 이미 큰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하였다.

이에 문수사리는 법인을 얻은 악마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왜 각기 궁전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악마들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갑자기, 자신의 몸과 집도 다시 또 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스스로 항상 머무는 궁전을 볼 수 있겠습니까?”

또 물었다.

“너희들 궁전은 어디 있는가?”

악마들은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주인도 없고 생각[念]도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법의 궁전입니다. 공이요 생각이 없고 원함이 없는 모든 법의 황홀함이 곧 궁전이니 거기에는 가는 자도 없고 오는 자도 없습니다.”

장로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문수사리가 저 궁전에서 오는 것입니까? 저희들은 그를 따라 오는 보살들을 보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이 정사들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시방세계에서 사바세계로 와서 모인 보살들 앞에 나타나거라. 지금 이 대중들은 다 그대를 간절히 보고 싶어한다.”

문수사리는 곧 때를 맞추어 모든 법륜보살(法倫菩薩)과 법주보살(法住菩薩)ㆍ약간변보살(若干辯菩薩)ㆍ득대세보살(得大勢菩薩)ㆍ유연음보살(柔軟音菩薩)ㆍ멸중악보살(滅衆惡菩薩)ㆍ적연보살(寂然菩薩)ㆍ선택보살(選擇菩薩)ㆍ법왕보살(法王菩薩)ㆍ회음보살(懷音菩薩) 등 이런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 족성자인 일체 보살은 각기 스스로 그 몸과 궁전을 나타내고 각자 살고 있는 불국토의 본래 형체를 나타내십시오.”

문수사리가 이렇게 말하자 그 보살들은 곧 명령을 받들고 삼매에서 일어나 각각 그 본체를 나타내었다. 혹 어떤 보살은 그 몸의 높이와 크기가 수미산과 같고, 어떤 보살은 그 몸의 높이와 길이가 3백 20만 리이며, 혹은 2백 80만 리요, 혹은 2백 40만 리이며, 혹은 2백만 리요, 혹은 1백 60만 리이며, 혹은 1백 20만 리요, 혹은 80만 리이며, 혹은 40만 리요, 혹은 36만 리이며, 혹은 32만 리요, 혹은 28만 리이며, 혹은 24만 리요, 혹은 20만 리이며, 혹은 16만 리요, 혹은 12만 리이며, 혹은 8만 리요, 혹은 4만 리이며, 혹은 3만 6천 리요, 혹은 3만 2천 리이며, 혹은 2만 8천 리요, 혹은 2만 4천 리이며, 혹은 2만 리요, 혹은 만 6천 리이며, 혹은 만 2천 리요, 혹은 8천 리이며, 혹은 4천 리요, 혹은 3천 6백 리이며, 혹은 3천 2백 리요, 혹은 2천 8백 리이며, 혹은 2천 4백 리요, 혹은 2천 리이며, 혹은 천 6백 리요, 혹은 천 2백 리이며, 혹은 8백 리요, 혹은 7백 60리이며, 혹은 7백 20리요, 혹은 6백 80리이며, 혹은 6백 40리요, 혹은 6백 리이며, 혹은 3백 60리요, 혹은 3백 20리이며, 혹은 2백 80리요, 혹은 2백 40리이며, 혹은 2백 리요, 혹은 1백 60리이며, 혹은 1백 20리요, 혹은 80리이며, 혹은 40리요, 혹은 36리이며, 혹은 32리요, 혹은 28리며, 혹은 24리요, 혹은 20리이며, 혹은 16리요, 혹은 12리이며, 혹은 8리요, 혹은 4리였다. 혹 어떤 몸의 길고 짧음은 이와 같은데 사바세계의 사람 몸과 다름이 없었다. 보살들의 그 몸은 이와 같이 높이와 너비, 길고 짧음이 각각 달랐다.

그 때 그 모임은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서 털끝만한 빈틈도 없었다. 모든 분들은 신묘하고 고절(高節)하며 지혜가 밝았다. 보살 대사들은 탁연(卓然)하게 뛰어나고 그 크고 우뚝한 공덕은 비유할 데 없었다. 그 보살의 몸에서 내는 광명은 시방의 셀 수 있는 백천 불국토를 환히 비추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불장엄(佛莊嚴)삼매에 드셨고, 이 삼매정을 일으키자 곧 사바세계에는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꽃 일산들이 저절로 나타났고 무한한 백천 기악은 각각 그 소리를 냈으며, 장식한 당번과 비단이 무량하여 불국토를 장엄하여 모두 해나 달처럼 빛났다.

그 보살들 중에 자마금(紫磨金)의 국토에서 온 이는 이 불국토가 황금색으로 보였고 백은(白銀) 불국토에서 온 이는 다 은색으로 보였으며, 수정(水精)의 불국토에서 온 이는 이 불국토가 다 수정빛으로 보였고 유리(琉璃) 불국토에서 온 이는 이 사바세계가 다 유리빛으로 보였으며, 자거(車?) 불국토에서 온 이는 이 사바세계가 다 자거빛으로 보였고, 마노(馬瑙) 불국토에서 온 이는 이 불국토가 다 마노빛으로 보였으며, 명향(名香) 불국토에서 온 이는 이 불국토가 다 향이 합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고, 호화(好華) 불국토에서 온 이는 단지 온갖 꽃만 보았으며, 보배 국토에서 온 이는 단지 온갖 보배만 보았고 혹은 7보(寶), 혹은 6보, 혹은 5보, 혹은 4보, 혹은 3보, 혹은 2보 세계에서 이 사바세계에 오는 이는 이 불국토가 깊거나 넓거나 좁거나 모두 온갖 보배의 기이함과 강하고 약하며 좋고 추함이 본래 불국토와 같음을 보았다.

그 때에 모든 보살은 각각 본래 살던 불국토를 생각할 때, 이런 모든 것에서 석가문 여래ㆍ지진의 형상과 옷을 보았고 그것은 각각 본토의 모든 부처님 형상과 위의와 예절과 가르침ㆍ법칙ㆍ음식 등과 같아서 차별이 없었으며, 저 한 보살은 다른 보살과 국토의 장엄을 보지 못하고 다만 자기가 속한 국토만을 보았다. 그리하여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 국토는 자마금[紫金]이다.”

그러자 둘째 보살이 말하였다.

“이 국토는 백은(白銀)이다.”

그리하여 각각 노닐던 청정한 행을 각각 스스로 놀라워하고 기뻐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괴상히 여기면서 큰 소리를 질러 찬탄하였다.

“모든 부처님 세계는 미치기 어렵고도 미치기 어려워 체득할 수 없도다. 덕(德)이 시방에 두루하여 영영 체득할 수 없다.”

문수사리가 때에 맞추어 말하였다.

“족성자들이여, 이 일은 기이할 것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이 다 한 부처님이요, 일체 모든 국토가 다 한 국토이며, 일체 중생이 다 한 신(神)이요, 일체 모든 법이 다 한 법이기 때문이며, 이것을 하나로 단정했기 때문에 하나라 하지만, 또한 하나도 아니요 여럿도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그 중요한 이치만 들고 여러 말을 하지 아니한 채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온데 만일 허락하시면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물으라. 여래는 그대가 가진 의심을 풀어 주어 그대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문수는 곧 물었다.

“보살의 궁극적인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을 깨달아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법을 깨달은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을 깨달아 장애가 없는 것이다. 6정(情)을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눈은 본래 깨끗하고 공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그와 같아 다 공이며 본래 깨끗한 것임을 깨닫되 내가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이 다 공이요 본래 깨끗한 것임을 깨닫되 내가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또 문수사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5성음(盛陰)을 깨달았다면,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인가? 그것은 공이요[空], 생각이 없으며[無想] 원이 없고[無願] 욕심을 떠나 황홀하고 고요하여 소유가 없으며 담박하여 남[生]도 없고 옴[來]도 없으며 감[往]도 없다는 것이다. 마치 아지랑이ㆍ허깨비의 변화ㆍ물 속의 달ㆍ파초ㆍ꿈 속에서 본 것 등과 같아서 오래 있지 못하고 견고함이 없으며 허무하여 장소가 없다는 것이니 만일 이런 이치를 깨달았으면 그를 보살이라 하느니라.

또 문수사리야,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과 5음(陰)ㆍ6쇠(衰) 등이 다 망상에 의해 생기는 것임을 알며 그 탐욕이란 다 망상에서 생기는 것이지만 그 망상도 또한 공이요 허무이며 형상이 없고 말이 없으며 또한 교화도 없는 것이며, 그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도 근본이 없는 법에서 오염시킬 수 없고 헷갈리지 않으며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중생들의 행을 환히 안다. 즉 ‘이 사람은 욕심이 많다. 이 사람은 분노가 많다. 이 사람은 어리석음이 많다. 그 욕심이 많은 자는 은애(恩愛)가 극진하여 마치 5곡과 초목이 무성하고 종류가 흩어져 한 곳에 적당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분노가 많은 자는 분한이 치성하여 마치 들불이 초목과 성곽과 집들을 태워 모두가 해를 입는 것과 같다. 그 어리석음이 많은 자는 깜깜하여 어두워 해가 없는 것 같고 또 집 안에서 독을 덮어 쓴 것과 같아서 아주 미혹하여 동서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보살 대사는 본행을 환히 알아 그 마음이 총명하고 미련함과 근본 진리에 나아감과 그 근기의 우열에 따라 설법하여 각각 계율에 들게 하여 해탈시키느니라.”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일체 중생을 다 환히 안다. 일체 중생을 어떻게 아는가? 다 거짓 이름일 뿐이라고 안다. 만일 진제(眞諦)로 그 거짓 이름을 관찰하면 그것 역시 처소가 없는 것이다. 그 중생이란 것도 다 일신(一神)일 뿐이니, 중생을 헤아리면 중생이 없는 것이다. 이 이치를 깨닫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으면 그것을 보살이라 한다. 이것을 깨닫고 모든 불각(不覺)을 깨치며 바라밀[度彼岸]을 알면 이것을 보살이라 한다. 통달하지 못한 자를 다 통달하게 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하나니, 관찰하는 것을 다 보되 그 본말과 기멸(起滅)의 인연과 근본의 나아감에 대해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음을 다 보며, 앞으로의 무궁(無窮)을 알고 뒤로의 무극(無極)을 알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그 거짓 이름에 의하고 방속(方俗)의 말을 따라 이 이름이 있는데 이 온갖 일에 집착 함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라 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칭찬하셨다.

그 눈과 귀가

공이요 자연임을 알아라.

통달하면 상념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라 한다.

코와 입이 본래 깨끗해

형상이 없음을 알라.

지혜로운 이 망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이라 한다.

지혜로운 이는 몸을 잘 알고

그 뜻이 허공과 같아

본래 깨끗함을 분별하나니

그런 보살을 총명하다 한다.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접촉 등 마음에 맞는 것들

그것이 허깨비와 같고

일체 분별이 공함을 알면

또 망상도 구하지 않나니

그를 불러 보살이라 한다.

만일 저 색이 공이요

느낌도 또한 그와 같으며

나고 죽음의 알음알이와

일체가 허깨비와 같음을 알고

마음에 망상을 품지 않으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5음(陰)이 꿈과 같고

하나의 상(相)도 상 없음이라

현명한 이가 망상하지 않으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나지도 않고 일어남도 없으며

말도 없으면 곧 무위(無爲)인데

거짓으로 이름을 붙였지만

그 이름도 형상 따위 없다.

탐욕과 분노를 알고

모든 상념을 분별하면

그 상념은 진제(眞諦)가 없어

구경(究竟)의 장소가 없다.

상념도 어리석어 진실이 아니어서

많은 생각을 짓기 때문이며

삿된 견해에 의해 일어나나니

정직하면 아무 것도 보는 바 없다.

항상 탐욕과 분노를 품지만

모든 법은 다 평등하여

그것은 아무 더러움 없고

법도 의혹과 망령됨이 없다.

 

이런 상념을 잘 식별하여

보살이 아무 탐욕이 없어

모든 법을 적멸하게 하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이 삼계가 다 공이어서

진실함이 없음을 알아

거기서 제도할 자 없으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욕계는 성취됨이 없건만

뒤바뀜[顚倒]에 의해 일어났다.

이 색계와 무색계

이것도 다 거짓이다.

중생들의 짓는 행을

지혜로운 이는 다 아나니

탐음(貪婬)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다 돌아간다.

모든 거짓 이름으로 된 사람

그 사람마저 얻을 수 없다.

현명한 이는 이것을 알고

망령되게 중생을 생각 않는다.

일체의 모든 법이

뒤바뀐 줄을 알고

또 반복하는 것인 줄 알면

이 또한 상념 없는 것이다.

방편으로 모든 법 따르되

일체 장애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함이 없음에 이르면

그것을 해탈이라 한다.

몸의 살을 보시하면서

의지함을 익히지 않고

진실함 그대로 깨달으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계율이 항상 청정하면서도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부처님 계율의 그 뜻을 따르면

일어남도 소유도 없다.

내가 본래 닦은 업으로서

몸과 입과 또 뜻의 생각

이것을 일러 계율이라 하지만

그것은 말미암는 곳이 없다.

중생을 두루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지만

그 중생도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이 황홀한 것인 줄 알면

거짓을 인해 이름이 있다.

그 행하는 정진으로

모든 괴로움 멸하고

삼계가 공임을 알면

최상의 도를 능히 이루리라.

뛰어나게 선정을 닦으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무름 없고 얻음도 없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깨닫는다.

번뇌와 또 나쁜 견해를

지혜의 칼로 베고 또 끊고는

저 모든 법계를 볼 때

끊지도 않고 허물 것도 없다.

모든 법을 깨닫고

때를 따라 중생을 교화함

보살이 이와 같이 알면

그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이에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대성이시여, 처음 발심한[初發意]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처음 발심한 보살이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야, 가령 보살이 삼계를 두루 생각하면 그것을 초발의(初發意)라 한다. 그 낸 마음은 평등하기 땅과 같다. 그 보살은 일으키는 것도 없고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아는 것은 갑작스러움도 없고 사나움도 없으며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는 곳도 없고 있지도 않으며 안온하여 흔들 수 없으며 고락을 참고 세상의 8법(法)을 초월하며 파괴한 것도 없고 다 다함이 없는 것이다. 뜻을 낼 만하여 뜻을 내고는 다 일체의 공훈을 수용하고서도 나는 이름과 덕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처음 낸 보살의 뜻을 이룬 것이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대성께서 말씀하신 뜻을 들은 대로 하자면 그 어떤 보살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내면 곧 처음으로 뜻을 낸 것일 것입니다.”

그 때 선주의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일으킴이 곧 처음으로 발심하여 보살을 이루는 것이라면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이 다 처음 발심함이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런 무리들은 다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3독(毒)을 버리지 않습니다.”

문수사리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우매한 범부들은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른바 부처님 세존과 연각과 성문과 모든 퇴전하지 않는 보살들만이 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일으킬 뿐, 범부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그 말은 매우 두려워할 만합니다. 이 대중들은 마음에 의심의 그물을 품고 있었는데 당신이 말하는 이 이치를 들음으로 인해 그 뜻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아득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유하면 나는 새가 허공을 날아갈 때 과연 그 허공에 장애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지나갈 때 허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수는 말하였다.

“이와 같이 천자여, 도는 일어남이 없는데 미워하는 바가 있으면 발의(發意)하지 않을 것이요, 미워하는 바가 없어야 비로소 발의할 것이며, 만일 집착하는 바가 없어서 미워함을 품지 않고 의지함이 없으면 그것을 발의라 한 것입니다. 이른바 발의란 없는 상념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는 바[所生]가 없으면 이것을 발의하지 않음이라 합니다. 자연이 없음을 발의라 하고 글귀의 자취가 없음을 발의라 하며, 가고 오는 자취가 없는 것을 발의라 하고 몸이 비었다

는 지혜와 자취와 생각하는 바 없음을 발의라 하며, 받는 자취가 없고 이르는 자취가 없음을 발의라 하고 무너지는 자취가 없고 얻는 자취가 없음을 발의라 하며, 문자의 자취가 없고 사모하는 자취가 없음을 발의라 하고 나아가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쌍도 아니요 외짝도 아니면 이것을 발의라 하며, 구하여 보호함을 구하지도 않고 귀의함도 없으면 이것을 발의라 합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보살의 초발심이라고 하는 것은 이 법을 억념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며,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지도 않으며,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듣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며,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일으키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모든 보살은 이 인연으로써 이 법을 인(因)하기 때문에, 이 평등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본제(本際)와 선권방편(善權方便)으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내고 눈의 의지할 바를 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색(色)의 집착할 바도 내고 다시 수ㆍ상ㆍ행ㆍ식도 나타내지만 색의 보응(報應)과 모든 견해와 무명(無明)과 유애(有愛)는 내지 않고, 12연기(緣起)의 법을 일으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삼계에 의지하고 의지하는 나와 몸을 탐하여 62견(見)을 헤아리며, 또한 5개(蓋)의 근심과 4도(倒)와 8사(邪)와 10악(惡)의 업을 발현하여 근원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요약해 말하면 일체의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과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과 온갖 생각과 말과 일체 장소와 받아들임과 의지함과 사상과 모든 억념과 그리워함과 장애 등 말할 수 있는 것을 열반[泥洹]의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합니다. 보살 대사는 다 이것을 발현하기 때문에 천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즉 그 모든 법에 의지함이 있고 미워하거나 사랑함이 없으면 이것을 발의라 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이 초발의(初發意)의 법어를 말할 때 이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반복하여 진동하였고 만 2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었다.

불설여환삼매경 하권

 

서진 월지국 삼장 축법호 한역

송성수 번역

그 때 세존께서는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발의하는 보살에 대해 잘 강론하였다. 그대는 일찍이 강의 모래알과 같은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었기 때문에 끝없는 도의 지혜를 능히 통달한 것이다.”

그 때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문수사리가 모든 초발의(初發意) 보살에 대해 묻고 연설하였는데 만일 무생법인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이 두 가지를 비교할 때 그 뜻이 같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사리불아, 실로 그대 말과 같으니라. 정광(錠光)부처님께서 내게 요결(要決)을 주시되 장차 최상의 정진도를 이루고 최상의 정각이 되어서는 미래의 무앙수(無央數) 겁을 지나 부처가 되어 명호를 석가문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 세존이리라 하셨는데, 그 발심으로 인하여 조금도 어긋나거나 잃음이 없이 곧 무생법인을 얻었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이 문수사리가 아까 강론한 초발의의 보살이니라.”

문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 몸으로 대성께서 설법하신 이치의 뜻을 살핀다면 일체 보살의 그 발심을 초발의라 합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그 모든 발의는 다 남[生]이 없는 것이며 남이 없으면 그것이 보살의 초발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2만 3천 인은 불퇴전의 자리에 서서 장차 최상의 정진도를 이루게 되었고, 5천의 비구는 다 무기법인(無起法忍)을 얻어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렸으며 6만 천자들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떠나 법안이 깨끗해졌다.

이에 장로 대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문수사리께서 한 일은 매우 어렵고도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은 경전을 설명하여 많은 중생을 개화하고 이롭게 하였습니다.”

문수사리가 대가섭에게 말하였다.

“제가 한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다 지을 것도 없고 지을 것도 아니면서 짓지 않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가섭이여, 저는 모든 법에 있어서 지을 대상도 없고 짓지도 않고 버림도 없으며 중생을 제도하지도 않고 또한 결박한 바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중생 무리는 본래 무명 때문에 중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아까 가섭께서는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셨으나 내가 한 일은 매우 어려운 것도 없고 어렵지 않는 것도 없으며, 여래도 아니요, 연각도 아니며, 성문도 아닙니다. 가섭이여, 매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알고자 하십니까? 그 지극한 이치를 말해줬으면 하십니까? 범부의 하는 일이야말로 기이하여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가섭이여,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신의 힘은 일찍이 폐하거나 어긋난 적이 없고 또한 성문 ㆍ연각을 얻을 수도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세력으로는 얻을 수 없으나 오직 범부만이 이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대가섭이 말하였다.

“문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부처님의 얻는 바는 얻음이 없고 얻지 못하며, 성문도 아니요, 연각도 아닙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대가섭이여, 내 몸을 얻지 못하고 사람도 없으며 수명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마지막과 중생도 없고 단멸(斷滅)과 유상(有常)의 헤아림도 얻을 수 없으며, 음종(陰種)과 모든 입(入)과 명색(名色)과 삼계(三界)와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과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음과 흥발(興發)과 보응(報應)과 현세와 후세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다 얻지 못하나니, 가섭이여, 이런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요약해 말하면 일체 모든 법은 얻음과 얻지 않음도 없고 의지하는 데도 없으며, 받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보시하지도 않고 가르칠 것도 없으며 가까이 할 것도 없고 줄 것도 없으며 알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섭이여, 알아야 합니다. 이 범부들이 이치를 듣지 못하면 이에 얻는 바가 있지만,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실로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성문은 다 지음이 없으므로 범부들이 하는 일로는 미치지 못합니다. 무엇을 짓는다 하는가? 단멸(斷滅)과 계상(計常)과 많은 것에 대한 집착과 은근히 구함과 마음에 온갖 생각을 가짐과, 지음과 짓지 않음이며, 혹은 들고 혹은 내리며 분별함과, 강설함과 망상과, 의지해 집착함과, 근심과 슬픔과 근심스럽게 해(害)를 면하기를 생각함과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세존께 귀의함과 짓지 않음[不作]과 하지 않음[不爲]과 또한 집착함도 없는 것[無所着]이니, 어리석은 사람만이 오직 이런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른바 나는 바 없음[無所生]이란 그 뜻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보살은 어떻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에 대해 체득할 것이 없다고 헤아리는 것이다. 왜냐 하면 얻는 것이 있으면 곧 전도됨에 떨어지는 것이요, 얻는 것이 없어야 곧 무생법인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얻는 것 없음이 곧 얻는 것 이라 할 수 있느니라. 얻음이 없고 집착함이 없으며, 의지함이 없고 보탬이 없으며, 마음이 허공 같아 텅 비어 자취가 없어야 그것을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이라 한다. 모든 법이 생김이 없고 모든 법이 주인 없는 것을 법인이라하며, 모든 법에 의지함이 없고 구함이 없고 바람이 없으며, 모든 법이 나아감이 없고 물러남이 없으며, 쌍(雙)이 없고 외짝이 없는 것을 법인이라 하며, 모든 법이 형상이 없고 자연을 떠났으며, 무너짐이 없고 끊어짐이 없으며, 의식이 없고 티끌이 없으며, 언어[言]가 없고 말[辭]이 없으며, 공이고 형상이

없고 원함이 없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한다.

모든 법이 욕심을 떠나 적연히 담박하여 법계가 근본이 없고 본제(本際)에 서 있으며,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이 없고,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음이 없으며, 기억[念]이 없고 말함이 없으며, 도모함[惟]이 없고 생각[思]이 없으며, 지음이 없고 힘이 없으며, 다 연약하고 허무하며 황홀하고, 굳음이 없고 영원함이 없으며,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이 없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이요, 나가 없고 적연하여 마치 허깨비의 변화와 꿈 속에서 본 것과 그림자와 메아리와 아지랑이와 파초와 모인 거품과 물 속의 거품과 같아서 모든 법이 이와 같다고 아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인증해야 할 것도 인증함도 없으며 일체 모든 법이 법과 법 아님이 없으며 다른 법이 없고 다른 취향도 없이 모든 법을 비춘다고 이렇게 알며, 모든 법의 이름이 본래 깨끗하다고 보며, 황홀하고 공하여 없는 것이라고 알면 이것을 법인[忍]이라 하느니라.

독실히 믿어 즐김이 없고 큰 물을 건너며 의심을 품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약함도 없으며, 겁냄도 없고 몸을 닦아 바르게 행하며 영원히 몸을 얻지 않고 빈 집을 보지 않으면,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얻는 무생법인으로써 일찍이 모든 생각을 버린 적이 없는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른바 인(忍)이란 훼상(毁傷)이 없는 것을 곧 법인이라 하는 것입니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훼상법이라 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알고 싶습니까? 눈은 좋고 좋지 않은 빛깔에 훼상되고, 귀는 소리에, 코는 냄새에, 혀는 맛에, 몸은 접촉에, 뜻은 생각하는 바의 좋고 좋지 않은 법에 훼상됩니다. 가령 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눈으로 빛을 보고 전혀 생각의 느낌이 없어, 좋고 추함을 분별하지 않고 사상(思想)을 품지 않으며,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이 없으며, 늘임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본래 깨끗함을 알고 공의 지혜를 통달하며 깨닫기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빛깔의 훼손을 받지 않으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그러하여 6정(情)에 훼손됨이 없어 아무 데도 집착하지 않으면 이 보살은 법인에 선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생긴 모든 법에 망상을 가지지 않고 생김이 없는 법[無生法]에도 생각이 없지 않으며, 모든 번뇌의 법에도 생각을 가지지 않고 번뇌가 없는 법[無漏法]에도 생각이 없지 않으며, 죄의 법도 생각하지 않고 죄 없음도 생각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도 생각하지 않고 무위법(無爲法)도 생각하지 않으며 세간법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건넌 법[度世法]도 생각하지 않아서 이 모든 법에 생각이 없으면 이것을 무생법인을 얻은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설법할 때 6만 3천 인은 다 최상의 정진도의 뜻을 내고 만 2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었다.

이에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이른바 도를 배우고 도지(道地)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천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당신은 도지를 들어가는 것을 묻는 것입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원컨대 보살의 도지를 들어 알고 싶습니다. 문수께서는 항상 10도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아닙니까?”

문수가 다시 대답하였다.

“이전에 도지에 들어가는 것을 물었었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보살은 10도지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듣지 못했습니까? 세존께서는 일체 법은 다 허깨비의 변화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말씀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문수가 말하였다.

“요술쟁이가 부리는 요술에 어찌 도지가 있어 10주(住)를 갖추겠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가령 요술쟁이의 변화에 도달함이 있고 들어감이 있다면 나도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일체 모든 법은 다 요술쟁이의 변화와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들어감이 없습니다. 가령 천자여, 도지에 들어가는 것을 강설하려 한다면 들어감도 없고 도달함도 없음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다 들어감이 없어서 법은 다 법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색은 수[痛痒 : 受]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는 색에 들어가지 못하며, 상(想)은 행(行)에 들어가지 못하고 행은 상에 들어가지 못하며 식(識)은 색(色)에 들어가지 못하고 색은 식(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요약해 말하면 이것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눈은 귀에 들어가지 못하고 귀는 눈에 들어가지 못하며, 코ㆍ입ㆍ몸ㆍ뜻도 그러하며, 몸은 뜻에 들어가 못하고 뜻은 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이런 모든 법은 나아감이 각기 다르고 경계가 서로 다르며 우매하고 생각이 없으며 식별함이 없고 더러우며 막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초목과 와석(瓦石)과 장벽과 영향(影響)의 분수와 같아서 말이 없는 한 가지 상(相)이기 때문에 들어감도 없고 오거나 감이 없는 것입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보살이 법을 이와 같이 알면 모든 법에 대해서 들어가고 들어가지 않음도 없고,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음도 없으며, 도에 들어감을 보지 못하고 도지(道地)를 버리지도 않으며, 최상의 정진도에서 퇴전하지 않고 들어감이 없으면서 법을 잃지 않는 데에 머무릅니다. 왜냐 하면 음종제입(陰種諸入)1)은 다 자연으로서 일체 중생의 진정한 청정을 잃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이 도지에 들어감이라 합니다.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변화로 10중(重)의 교락 붕각(交絡棚閣)을 만들었을 때, 그 요술쟁이가 변화로 만든 변화한 사람이 그 위에 두루 있다면 천자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과연 사람이 있어서 그 중각에 있거나 혹은 들어간다고 하겠습니까?”

대답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천자에게 말하였다.

“보살의 10지(地)도 요술쟁이의 변화와 같은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1) 주관ㆍ객관을 구성하는 심신을 말한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와서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 하면 어떻게 교화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하며 어떻게 가르쳐 스스로 근신하게 해야 하겠습니까?”

문수사리가 선주의 천자에게 대답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사문이 되려고 한다 합시다. 무릇 발심하지 않은 족성자가 출가하고자 하면 나는 그로 하여금 사문이 되게 할 뿐입니다. 왜냐 하면 그 누가 뜻을 세워 출가하려 하면 마음이 돌아가는 곳이 없고 돌아감이 없으면 옴도 없을 것이며, 쫓아오는 데가 없으면 가는 데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체 법에 머물러 끊는 것이 없으면 근본이 없는 데 머무는 것이요, 근본이 없는 데 머무르면 법계에 노닐면서도 움직임이 없을 것이며, 법계에서 움직임이 없으면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마음을 얻지 못하면 출가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출가를 원하지 않으면 사문이 되려고 발심하지 않을 것이요, 사문이 되려고 발심하지 않으면 나는 것이 없을 것이요, 나는 것이 없으면 모든 고통을 다할 것이며, 온갖 고통을 다하면 구경(究竟)을 다할 것이요, 구경을 다하면 다할 것이 없을 것이요, 다할 것이 없으면 다할 수 없을 것이며 다할 수가 없으면 이것은 행이 없는 것이니, 천자여, 아십시오.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해설할 것입니다.

누가 내게 와서 출가하기를 구하면 나는 그에게 말하겠습니다.

‘족성자여, 사문이 되려 발심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마음이 본래 일어남이 없으면 곧 어둠을 여읠 것이기 때문이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출가하기를 구하면 나는 그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대 족성자여, 수염과 머리를 깎지 말고 사문의 업을 잘 갖추어라.’”

선주의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는 설법하시기를 ‘제거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색을 제거하지 않고 또 파괴하지도 않으며, 수ㆍ상ㆍ행ㆍ식을 제거하지 않고 또 파괴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령 생각하기를 ‘나는 수염과 머리털을 제거한다’고 하면 곧 나[吾我]에 집착하고 내 몸이 있다고 헤아리지만 나를 헤아리지 않고 그 몸을 탐하지 않으면 그것은 평등한 견해입니다. 자기 몸을 탐착하고 수염과 머리털을 헤아리면 중생이 되며, 생각을 제거하여 나도 얻지 못하고 남도 얻지 못하며 나라고 하지 않고 남이라고도 하지 않으면 나가 없을 것이요, 나가 없고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수염과 머리털을 제거해도 사상(思想)이 없고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이 없으며, 여러 가지 것에 주착하지 않고 여러 가지 것에 주착하지 않으면 곧 가르침이 없으며, 가르침이 없으면 나아감이 없고 물러남이 없으며 쌍이 없고 외짝이 없으며, 제 몸을 탐하지 않고 가사를 입지 않을 것이며, 그 가사에 더러움이 없으면 소유가 없고 소유가 없으면 머무는 것이 없고 그 머무는 것이 없으면 텅 빌 것이요,

텅 빈 것을 출가라 합니다.”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소위 사념(思念)이라 했는데, 그 사념이란 어떤 것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평등하여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는데 어리석은 범부들은 생각을 일으켜 바라는 생각이 많기 때문에 세존께서 ‘모든 법에는 일으키거나 지음이 없고 손실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사념이라 합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으키고 짓는다 합니까?”

답하였다.

“천자여, 평등한 제도에 있어서 평등하게 제도할 때, 그 모든 법에 대해 얻거나 얻지 못함도 없고 또한 얻는 대상도 없으며, 살피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행하지 않음도 없으며, 이 모든 법에 대해 평등한 머무름을 일으키지 않고 나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사람ㆍ수명ㆍ의식ㆍ중생과 마음에 맞음과 단멸ㆍ계상(計常)ㆍ음종제입(陰種諸入)과 생각과 부처와 법과 대중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이것은 계율이다, 이것은 계율을 허무는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번뇌[塵勞]와 전도(顚倒)와 증과(證果)의 조립(造立)과 바라는 생각ㆍ제도를 구함ㆍ수다원[道跡]ㆍ사다함[往來]ㆍ아나함[不還] 등에 집착하지 않으며, 연각(緣覺)을 바라는 생각과 정각(正覺)에 의지해 집착하거나, ‘이것은 선이요 이것은 악이며, 이것은 죄(罪)요 이것은 복(福)이다. 이것은 유루(有漏)요 이것은 무루(無漏)이며, 이것을 세속의 업이라 하고 이것을 세속의 업을 뛰어넘은 것이라 하며, 이것은 유위(有爲)요 이것은 무위(無爲)이다. 이것은 공ㆍ무상ㆍ무원이요 이것은 명(明)ㆍ무명(無明)이다. 이것을 해탈이라 하고 이것을 이욕(離欲)이라 하며 이것을 생(生)이라 하고 이것을 사(死)라 하며, 이것을 멸도(滅度)라 한다’는 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생각을 일으키고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법과 이런 수도는 다 어리석은 범부의 생각이요 거만하고 뽐내는 어리석은 범부의 소행이며, 이런 것은 악마와 그 여러 관속(官屬)의 소견이요 음개(陰蓋)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런 무리를 위해 설법하시어 수염과 머리털을 없애고 5음(陰)을 버리어, 5품(品)인 계율[戒]과 선정[定]과 지혜[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度知見]을 받들어 닦게 하신 것입니다.”

이에 선주의 천자는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시원스레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문수사리는 다시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와서 출가를 구한다면 나는 그에게 말할 것입니다.

‘만일 족성자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으면 그것이 곧 출가 준비를 잘하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문수사리여,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선주의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어떤 것을 구족계라 합니까? 구족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진계(正眞戒)요, 둘째는 사위계(邪僞戒)입니다.

어떤 것을 사위계라 하는가? 전도(顚倒)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전도라 하는가? 즉 나와 사람을 받아들이고, 수명을 의지하며 단멸에 집착하고 상(常)이라 헤아리며, 혹은 사견(邪見)과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과 탐욕ㆍ교만에 떨어져 뽐내는 생각을 가지며, 혹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서 받을 것을 생각하고 바라는 생각에 치달리며, 수기를 따라 삿된 자취를 증명하며, 선악과 편리한 법을 분별하지 못하고 난폭한 말을 쓰며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명(無明)에 떨어지고 뭇 사견에 머무는 등 이런 법의 가르침은 다 바른 계율을 등지는 것으로서 이것을 사위계라 합니다. 왜냐 하면 도는 공하고 평등한 것인데 그 평등은 보살의 행이 도리어 퇴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천자여, 악우(惡友)에 떨어지지 않더라도 귀의할 견고한 요법(要法)을 알지 못하고, 모든 받음에 있어서 받지 않을 것을 받으면서 돌아다니면 이것을 사위계라 합니다. 또 만일 그 나이와 수행한 것을 묻고 도리어 남을 따라 신시(信施)를 받아 먹거나 또 다른 사람을 좇아 출가하여 사문이 된 자가 그 좋아하고 싫어함을 따라 머리 조아려 예절을 지키면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면 이것을 사위계라 합니다.

어떤 것을 정진계(正眞戒)라 하는가? 가령 바르게 수행하되 생각함 없이 평등하게 하면 이것을 정진계라 하고, 모든 법이 공(空)이요 무상(無想)이며 무원(無願)인 줄을 알면 이것을 정진계라 하며, 세 가지 해탈문에 있어서 그것을 작증하지 않고 진계를 받들어 행해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음과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이 없으면 이것을 정진계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가령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ㆍ무명ㆍ은애에 처해 몸을 탐하는 62견(見)과 혹은 4전도(顚倒)ㆍ3품악행(品惡行)ㆍ8사(邪)ㆍ9뇌(惱)ㆍ9신(神)의 머무는 곳과 10불선업(不善業)에 떨어져 그 속에 있더라도 집착함이 없으면 이것을 정진계라 합니다.

비유하면 일체 만물, 즉 온갖 곡물과 초목과 온갖 약은 다 땅에서 나서 자랍니다. 그러나 땅은 담담하여 아무런 갖는 생각이 없고 또 ‘내가 무성하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천자여, 과감히 성취시키고 큰 교화에 이르기까지 다 계율로 말미암아 건립되며 37품(品)의 도법을 완전히 성취하고 건립하면서도 수행하는 자는 생각이 없고, 법은 두는 바가 없어서 계율의 구족함과 그 원인의 성취(成就)와 불성취(不成就)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집착하지 않고 미혹하여 삼계에 의지하지 않으면 이것을 구족계라 합니다.

만일 금계(禁戒)를 세우고 평등한 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믿음을 종자의 법인(法忍)으로 삼아 뜻과 성품이 맑고 온화하여 도를 기르고 성취하는 등, 이와 같이 독실한 믿음과 계율을 세우면 곧 37품의 도법의 종요로움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의 구족계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해탈문에 이르러 모든 출가인을 제도하여 초월하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매우 훌륭하여 미치기 어렵습니다. 문수사리께서는 시원스레 구족계를 설명하셨습니다. 능히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으면 이것은 바른 금계[正禁]요, 사업(邪業)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출가는 이렇게 계율을 갖춥니다. 만일 스승[敎授]이 가르친 것을 이렇게 구족하면 비록 족성자가 계율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이것을 계율을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천자가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다 일어남이 없고 또한 받음도 없는 것이니 만일 계율을 받으면 그것은 나[吾我]를 받는 것이며 또한 삼계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나는 것입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계율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사문의 250가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무엇으로 보호합니까?”

대답하였다.

“몸과 입과 뜻을 지키는 것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250가지 계율을 다 구비하되 몸의 행을 위하지 않고 지음도 없으며 또한 지을 것도 없는데, 과연 처할 만한 처소에 있어야 합니까? 청색ㆍ황색ㆍ백색ㆍ흑색ㆍ홍색ㆍ자색입니까? 향하는 방향은 어디입니까?”

“없습니다.”

또 물었다.

“무엇 때문입니까?”

대답하였다.

“소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할 수 없습니다.”

물었다.

“무엇 때문입니까?”

대답하였다.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가 또 물었다.

“소유가 없는데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물은 이런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즉 이른바 금계를 받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니 이것을 금계를 좋아하여 계율의 덕을 갖추기 위해 그 마음이 맑고 온화하며 지혜가 통달한다는 것이니 이렇게 행하는 자는 다 소유가 없고 능히 움직일 자가 없고 나아가는 곳이 전혀 없어서 계율은 얻는 것이 없나니 이것을 진제(眞諦)의 계율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을 얻지 못하면 이것을 깨끗한 마음이라 하고, 지혜를 얻지 못하면 이것을 진제의 지혜라 하며, 마음이 짓는 것이 없고 생각을 품지 않아서 생겨남이 없으면 이것을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 합니다. 계율을 이와 같이 다 갖추고 계율을 받는 지혜가 이와 같으면 마음이 있는 곳을 얻지 못하고 금계를 생각하지 않으며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지혜가 있는 곳이 없음을 알고 일체가 조화되어 아무 의심이 없고 도의 가르침을 알면 모든 법의 좋지 않은 이치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법에서 불선(不善)을 보지 않으면 계를 받지 않을 것이요, 그 계를 받지 않으면 계를 훼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계를 배우고자 하면 그는 계를 필요로 하는 것이요, 계를 필요로 하면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물러나지 않으면 그것을 해탈이라 할 것이요, 그 해탈한 자는 끌어 모으지 않을 것이며, 끌어 모으지 않으면 그것은 무루(無漏)일 것이요, 무루이면 그것은 평등을 행하는 것이며, 평등을 행하면 얻음이 없고, 또한 계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허공과 같나니 텅 비어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그 허공을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이와 같이 계를 배우면 곧 금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 계란 어떤 것인가? 곧 계를 배우지 않는 것이니, 계를 그렇게 배우면 곧 공(空)을 배우는 것입니다. 공이란 무엇인가? 몸[身]과 입[口]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 뜻[意]을 사모하지 않으며 더러움과 더럽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성현의 계[賢聖戒]라 합니다. 이와 같이 머무르면 곧 머무름이 없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으면 평등한 계를 배우는 것입니다.

천자여, 또 들으십시오. 이와 같이 출가하여 사문이 된 자는 그 구족계가 이와 같나니 이것을 금계라 합니다. 가령 그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음식과 의복을 다 깨끗하게 하면, 그것을 입고 먹는 공이 많은 것을 구호하여 마침내 헛된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다 이와 같은 깨끗한 계의 소치인 것입니다.”

천자가 또 물었다.

“지금 문수께서는 누구를 위해 그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받는 자를 위해 베푸는 것이니, 잘 친근하여 따르면 그는 끝까지 깨끗하여 이 뜻을 얻을 것이며, 그것은 곧 끝까지 깨끗할 것입니다. 그러나 친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아 이 뜻을 얻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고 닦지도 않으며 생각[惟]하지 않으면, 누가 받고 누가 친근하며 누가 끝까지 깨끗하여 그것이 바른 깨끗함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중우(衆祐)라고 찬탄을 받을 것입니다.

일체의 법은 구경에는 다 공으로서 생겨나는 바가 없는 지혜이니, 이것을 일러 중우를 빛내고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범부들은 중우를 다할 수 있지만 나한은 그리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범부들은 잘 받고 친근하며 다시 식별(識別)하고 깊고 정밀하게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물어서 배우고 생각하고 살펴 만들어 행하리라’고 하여 잘 베풀고 잘 사모하면 끝까지 깨끗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깨끗하게 함이란 무슨 뜻인가? 돌아다니며 가고 오며 죽었다가 다시 나되, 나는 곳에서는 모든 감관을 깨끗이 씻습니다. 그러나 아라한은 음종제입(陰種諸入)의 이치가 없으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데 어떻게 끝까지 깨끗하게 할 수 있으며, 누가 끝까지 깨끗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을 보시하는 주인에게 탁발[分衛]을 받을 때는 세 품(品)의 도량을 깨끗이 한 뒤에 음식을 받습니다. 무엇을 3품이라 하는가? 첫째는 나도 얻을 수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둘째는 베푸는 자도 얻을 수 없고 주는 것도 없으며, 셋째는 생사로 돌아다니는 처소와 끝까지 깨끗이 함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세 가지이니 이렇게 깨끗하면 끝까지 깨끗해지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나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음식과 의복을 끝까지 다 깨끗하게 함에 있어 조그만 장애도 없나니, 이것을 세상에 사는 진정한 중우라 하며 곧 출가한 사문이라는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말합니다.”

문수사리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출가를 구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에게 ‘만일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 하거든, 그대들 족성자는 한가롭게 있지도 말고 인간 세상에 있지도 말며 멀리 하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며, 일으키지도 말고 멸하지도 말며, 혼자 있지도 말고 대중 속에 있지도 말며, 다니면서 구걸하지도 말고 남의 초청에 가지도 말며, 낡은 5납(納)을 입지도 말고 속가의 흰 옷을 입지도 말며, 광야에 있지도 말고 집안에 있지도 말며, 조금 구하기를 생각하지도 말고 많이 구하지도 말며, 만족함을 알지도 말고 부족하게 하지도 말며, 다니지도 말고 다니지 않지도 말며, 절제하지도 말고 알맞게 하지도 말며, 지혜롭지도 말고 어리석지도 말며, 슬기롭지도 말고 우매하지도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이렇게 공을 행하면 그것을 모두 갖춤이라 합니다.

내 몸의 거동과 진퇴를 헤아리고, 만일 한적한 곳에 머물 때에는 마땅히 탁발하되 자기의 총명과 지혜를 살펴 밝음[明]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아서 천자여, 이런 무리는 정진을 통달하지 못하고 공허한 지혜의 이치를 볼 뿐이니, 이것을 발생하여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함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이와 같이 무엇을 희구하는 생각에 많이 집착하지만 제 몸도 없거늘 하물며 남[他人]이겠습니까? 모든 법은 공(空)으로 돌아가 생김이 없는 것을

지혜로 알거늘 어찌 다시 절제와 공덕과 혼자 머묾[獨處]이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만일 누가 이와 같이 절제하고 평등하게 수행한다면 희구하여 바라는 생각이 없으리니 나는 그를 큰 절제를 아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만일 천자로 하여금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절제하고 삼계와 5음과 4대(大)의 모든 종류를 알게 한다면 천자는 이 끝없는 절제에 들어가 만족할 줄 알아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않지도 않으며, 평등과 평등하지 않음도 없으며 고요하지도 않아 그 절제를 다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법을 가진 자는 삼계와 합하여 티끌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그는 절제를 아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치는 곳이 청정하며 처하는 곳이 없고 아무 데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천자여, 여래의 구족계에 있어서,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계율을 갖추고자 하면 나는 그에게 ‘만일 족성자로서 고제(苦諦)를 알지 못하고 습제(習諦)를 끊지 못하며, 진제(盡諦)를 깨닫지 못하고 도제(道諦)를 봉행하지 못하면 이런 행자는 바른 진리를 볼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진정한 진리[諦]란 고제가 없고 습제를 끊음도 없어서 습(習)과 불습(不習)이 없으며 진제가 없어서 진제를 깨닫지도 않고 도제가 없어서 말미암아 행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족성자여, 가령 4의지(意止 : 念處)를 받들지 않으면 곧 평등이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뜻[意]이 없다 생각하고 생각[念]하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을 구하지 않고 이것을 제 몸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운 바 의지(意止)에 그 뜻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그는 몸의 아픔이 없고 마음도 없으며 법도 없거늘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슨 이난(異難)이 있겠습니까? 만일 4의지를 봉행하지 않으면 이것을 깨끗한 법을 갖추어 이루었다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깨끗한 법이란 그 앞에 있는 불선이 없고 또한 선법도 없어서 끊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으며, 끊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으면 이것을 평등하고 진정한 안제(安諦)의 이치라 하며 그 평등에 이른 것을 평등한 행이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족성자가 4신족(神足)을 행하지 않고 방일함이 없이 4등심(等心 : 무량심)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와 여덟 가지 도를 행하며, 만일 37품(品)의 도의법(道義法)을 봉행하여 뽐내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으며 말도 없고 말함도 없으면 이것을 행도(行道)라 합니다.

만일 족성자가 37도품의 법에 뜻을 두면 모든 음성에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고 물의 흐름에는 따르지 않으며, 만일 정묘롭게 닦아 그 행을 따르면 모든 법을 알지 못하고 또한 증득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른바 37품의 도 따위는 임시로 세운 글자만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임시로 세운 이름을 봄으로써 망상이 생기며 그 상을 헤아리지만 또한 상이 없는 것이며, 물에 떠다니는 것이 되어 돌아다니게 되지만 그 돌아다니는 것도 해치는 대상이 아니니 그 이름만 제거하면 아무 얻을 것이 없습니다. 마치 이 37도품의 법과 같아서 제거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천자는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비구가 수행을 원하여 고요히 혼자 있는 것이라 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가령 모든 법을 한 등류ㆍ한 종문(種門)의 상(相)으로 분별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 모두가 행이 없고 중생이 없으면 이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또 수행이란 금세에도 처하지 않고 후세에도 말미암지 않아 3세에 있어서 다 행하는 것이 없고, 나아가 일체 법에 행하는 것이 없어 모든 법이 거짓이요 실없음을 다 알면 이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그 수행이란, 모든 법에 쌍(雙)도 없고 외짝[隻]도 없으며 상응함과 상응하지 않음도 없으면 이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그 때 그 모임에 있던 무앙수의 사람들은 마음에 근심을 품고 모두가 의심을 내어 생각하였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어떻게 받들어 행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으로 의심을 풀까?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세 가지 해탈문으로 열반[泥洹]에 이른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37품의 도법을 증득하여 열반에 이른다면 문수사리의 지금의 이 말은 가르침을 파괴하고 법을 어지럽히는 징조가 아닌가?’

문수사리는 곧 모든 비구와 일체 대중의 마음 속 의심을 알고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대중의 신임이 두텁고 최대의 지혜라는 여래의 찬탄을 받고 계십니다. 또 현자께서는 몸이 탐욕의 번뇌를 떠나 법을 증득했습니다. 또 당신은 4성제를 성취하셨고, 37품(품 : 三十七助道品) 및 3해탈문(解脫門)을 증득한 지 오래 되셨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법을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 도리와 수행을 세우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다 받을 것도 없고 또한 생기는 것도 없으며 공하여 가르칠 것도 없고 공하여 증득할 공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3만 비구들은 다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렸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를 찬탄했다.

“실로 당신 말과 같습니다. 지혜를 잡아 심묘한 법인을 설명하고 공행(空行)을 아주 훌륭히 표현하셨습니다.”

문수가 대답하였다.

“저는 지혜를 잡지 못하나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은 지혜를 구해 잡습니다. 왜냐 하면 저들은 그것을 간직하여 모아가지고 전전하게 하여 2품(品)에 집착하거나, 지옥ㆍ아귀ㆍ축생과 천상ㆍ인간에 떨어져 그 소견에 끄달리기 때문입니다. 가령 천자여, 삼계에 전전하며 끄달리기 끝이 없으며 향하는 데가 한 곳이 아니고 몸을 받아 나는 것이 각각 다르면 이것을 끄달림이라 하여 그 전변[宛轉]을 따르게 되나니, 이와 같이 쉼 없이 끄달리며 전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고 생사와 고락의 번뇌의 근본에 있게 됩니다.

또 천자여, 어리석고 무지한 범부들은 들음이 없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더불어 화합하고, 응보와 모든 견해와 명색은 그 번뇌와 같이 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과 성문ㆍ연각ㆍ보살들은 법인을 얻어 끄달림도 없고 또한 전변함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런 사람들은 그 몸과 입과 마음의 업을 일찍이 일으킨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전하는 자는 삼계를 얻지 못하거늘 어디서 전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끄달리는 지혜는 만일 다시 몸을 받아도 버릴 것이 없나니 이것이 집착하는 지혜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당신 말은 지혜를 파괴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또 물었다.

“무엇 때문에 파괴하면서 제거함이 없게 하십니까? 이런 학자는 지혜를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파괴하지 않고 제거함이 없으면 지혜는 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런 일이 없습니까?”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또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장차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가고 옴이 있다면, 그런 일이 있겠지만 감도 없고 돌아옴도 없어서, 모든 법에 돌아다님이 없음을 안다면 장차 감도 없고 다시 돌아옴도 없는 것입니다.”

또 문수에게 물었다.

“어떤 장구(章句)가 가장 으뜸이 됩니까?”

대답하였다.

“그런 장구는 나[我]가 곧 으뜸입니다.”

또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만일 어떤 보살이 한 문자와 한 장구에 흔들리지 않으면 그 장구는 분별의 4의(義)에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4해(解) 장구라 하는가? 첫째는 항상 여여하게 진리를 알고, 둘째는 공의 이치를 깨달아 황홀함을 알며, 셋째는 형상이 없음과 모두 생김이 없음을 분별하고, 넷째는 모든 앎에 있어서 안다고 하지 않고 근심이라 하지 않아 이 두 가지를 짓지 않음이니, 이것이 모든 장구의 가장 으뜸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총지(摠持)의 도리를 잘 설명하였구나.”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총지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가질 것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범부들은 총지를 얻으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얻음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 미혹한 자는 많이 집착하여 가지는데 무엇을 가지는가 하면, 나에 의하여 사람과 수명에 집착하고 단멸을 집착하여 지니며, 항상함이 있다고 헤아리며,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가졌고 모든 은애와 탐심(貪心)을 가까이 하여 가졌으며, 5음(陰)과 4대(大) 및 모든 입(入)과 사상(思想)과 많은 억념 등을 스스로 보면서 도리어 구하고 바라며 여러 가지 견해와 62의(疑)에 떨어져 얻을 것이 있다고 하여 곧 잡아 가집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범부는 총지를 얻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어리석은 범부는 법을 품어 마음에 두지만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전혀 가질 것이 없으며 성문ㆍ연각과 모든 보살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범부가 총지를 얻는 것입니다.”

이에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까 총지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무슨 뜻으로 5취(趣)를 교화할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 5취란 지음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나는 5취를 모두 없애어 끝내 그 나아갈 곳을 모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과 연각과 성문이 나아가는 곳을 어리석은 범부들은 나아가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어리석은 범부들의 많은 수는 생사에 떨어지고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취(趣)를 없애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다원향[趣道迹]도 그러하여 생사를 여의지 못하거니 하물며 어리석은 범부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모든 취(趣)를 없애 총지를 얻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얻는 것이 없거늘 무엇을 가지겠습니까?”

이렇게 말할 때 그 모임 가운데 있던 5백 비구들은 이 경전을 비방하면서 다 흩어져 달아나버렸다. 그리하여 그 현신(現身)으로 큰 지옥에 떨어졌다.

그 때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그만 두십시오. 다시는 그런 깊은 법을 말하지 마십시오. 저 5백 비구들은 이 법을 듣고 의심하여 순종하려 하지 않고 방자하게 꾸짖으면서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흩어져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크고 고상한 법을 어지러운 마음으로 비방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몸으로 큰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문수가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리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옳고 그름을 헤아려 망설이지 마십시오. 어떤 법으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보지 마십시오. 모든 법에는 비방이 없다는 것을 살피십시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다 생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께 맡기나니 이 말을 잘 설해서 저로 하여금 쉬게 하고 경전을 설하지 않게 하십시오.

가령 족성자ㆍ족성녀가 나라는 생각과 사람과 수명에 집착하면, 강의 모래알과 같은 겁 동안 여래를 공양하고 성스러운 대중[聖衆]을 받들어 섬기면서 그 편안함을 따라 모자란 것들을 공급하되 목숨이 다하도록 게으르지 않았더라도, 만일 누가 여시상(如是像)의 법, 즉 깊고 묘해 알기 어려우며 일체 세간이 듣기 어려운 비고 상이 없으며 원함이 없으며, 담박하고 적막하여 소멸로 돌아가며 일어남이 없고 멸함이 없으며, 사람이 없고 수명이 없으며 항상함이 없고, 괴로우며[苦] 비고[空] 몸이 아닌[非身 : 無我] 이치를 들을 경우, 즉 이런 법을 듣고 이것을 비방하면 그 족성자ㆍ족성녀는 큰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큰 지옥에서 갑자기 이 경을 들으면 곧 거기서 나와 이 경을 깊이 믿고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훌륭한 선남자ㆍ선여인이 강의 모래알 같은 겁 동안 여래를 받들어 공경하고 성스러운 대중을 공양하더라도 나와 사람에 집착하고 수명을 헤아리면 그는 지극한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을 들으면 빨리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실로 그대 말과 같이 이 경은 거룩하고 오묘하다. 이것이 만일 세상에 나타나면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을 것이다. 수다원[道迹]ㆍ사다함[往來]ㆍ아나함[不逮]ㆍ아라한[無着]은 연각승(緣覺乘)과 보살대승(菩薩大乘)에서 수기를 받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여 견줄 만한 여러 가지 것들이 없다. 왜냐 하면 나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하는 바가 평등하기 때문이며, 또한 얻는 바가 없고 내지 열반도 이와 같나니, 만일 안다고 생각하고 얻는 바가 있으면 곧 전도(顚倒)에 떨어질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 5백 인들이 지옥에서 빨리 멸도를 얻으면, 그것은 세간에서 어리석고 의심하면서 100년 동안 계를 지키고 다 만족함을 안다 하여도 뒤바뀐 62견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다. 왜냐 하면 그들은 이 심묘한 법을 듣지 못하면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 족성자ㆍ족성녀들은 이 심묘한 경을 듣고 귀담아 생각하여 최상의 정진도를 빨리 얻는 것은 다른 경을 의심하고 헷갈려 전도에 떨어지는 것보다 나으며, 뜻을 내면 곧 이 심묘한 경을 즐겨 믿으면 빨리 해탈을 얻을 것이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제가 범행을 깨끗이 닦아 오염이 없는 것을 좋아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곧 범행을 닦으십시오. 설사 당신이 범행을 권하지 않더라도 좋은 것입니다.”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대답하였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수행하겠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엇을 행하기에 수행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천자는 또 물었다.

“지금 당신은 범행을 닦지 않습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닦지 않습니다.”

또 물었다.

“깨끗하지 못한 행입니까?”

대답하였다.

“깨끗한 행도 닦지 않습니다. 천자의 말과 같이, 무엇 때문에 깨끗한 행을 닦지 않는 것인가 하면, 범행이 아닌 집에 살지 않으니 받아들이지 않고 미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할 것도 없고, 범행이 아닌 것도 없습니다. 가령 배우는 이가 범행이 청정하고 조화로워 다 행이 없고 또한 행 아님도 없으면 그것을 크게 깨끗한 범행이라 합니다. 천자여,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의 행을 바른 행이라 하고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노닐면 그것을 청정한 행이라 하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의 일을 익히지 않으며, 삼계에 노닐지 않으면 그것은 청정한 수행이 아니고, 또한 행하는 바가 없으면 그것을 곧 행(行)이라 합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당신의 변재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당신의 변재도 역시 없고 걸림이 없습니다. 걸림이 없는 변재를 얻으면 처소[處]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이것이 나라고 헤아리기 때문에 의지하고 집착함이 있으면 그것은 곧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이 상(像)으로 깨끗한 범행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설사 당신이 칼을 잡지 않고 일체 중생의 생명을 해치고 창이나 돌멩이나 큰 몽둥이를 잡지 않고 남을 해치려 한다 해도 그것은 인자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이른바 중생인 함혈(含血) 무리가 이치로 향하는 곳 말입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거짓으로 이름이 있을 뿐입니다. 나가 있다고 헤아리면 그것을 중생이라 하나니, 함혈의 무리는 사상이 있기 때문에 중생이라 하며 전도(顚倒)에 의하여 몸이 있다고 헤아리기 때문에 중생이라 합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나라는 생각과 사람과 수명을 탐하여 보므로 거짓 이름이 있어 명자(名字)를 부릅니다. 그래서 나는 예리한 지혜의 칼로 그것을 해치려 하는데 항상 이런 뜻으로 기르고 보호하여 결박을 당하지 않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분명히 모든 수(受)의 돌아가는 곳을 모르게 하여 제거해야 할 것도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이 이치를 알고 나라는 생각을 제거하면 중생들의 일체의 망상을 죽이더라도 살생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에 해칠 생각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으로 하여금 청정한 범행을 닦게 하겠습니다. 만일 10악업을 범하고 일체 검고 어두운 일을 따르면 모든 깨끗한 업을 닦지 못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또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검고 어두운 일과 같이 흰 것도 그와 같습니다.”

또 문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검고 어두운 일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지음도 없고 후퇴하여 사라지도 않기 때문에 평등하나니, 모든 법의 검고 어두움도 그와 같습니다. 검고 어두움도 평등하고 맑고 흰 것도 평등하니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가 또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깨끗한 법을 믿습니까?”

선주의가 대답하였다.

“그것을 믿는 까닭은 그 법계가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주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근본이 없는 법계를 수행하는 곳으로 삼아 갔다 왔다 하면서 윤회[周旋]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말하겠습니다. 즉 설령 검고 어두운 일을 평등하게 행하고 맑고 흰 업을 닦지 않더라도 범행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시 천자에게 말하였다.

“만일 칼로 머리를 때려 그 사람을 죽이면 그것이 범행을 닦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살생ㆍ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ㆍ뽐냄ㆍ교만ㆍ탐욕ㆍ아첨ㆍ질투ㆍ방자함으로 인해 희망ㆍ감수[痛痒 : 受]ㆍ생각[思想 : 想]을 받아들이면 천자여, 이것을 상해(傷害)라 합니다. 만일 어떤 이가 수행하고 정진하며 스스로 지켜 탐욕이 일어나면 곧 없애고, 적멸과 합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여 멀리 여의면 이것을 일러 공이 모든 거스름[逆]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욕심을 깨닫고 진제가 본래 없는 것임을 안다면, 이 마음이 어디서 생기고 어디로 소멸해 가겠으며, 누가 와서 오염시키고 누가 오염되며 어찌 오염시키겠습니까? 다시 욕심은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관찰하면 오염시키는 자도 볼 수 없고 오염을 입는 자도 없으며, 오염을 입는 자도 없으면 얻을 것도 없고 얻을 것이 없으면 생기는 것이 없으며, 생기는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이 없고 버릴 것이 없으면 받을 것이 없고, 받을 것이 없으면 익힐 것도 없고 익힐 것이 없으면 그것을 성취라 하며,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그와 같습니다. 5음(陰)ㆍ6쇠(衰 : 入)ㆍ12인연(因緣)과 오염되지 않은 마음에 있어서도 누가 이와 같이 상해를 일으키면 이것을 곧 살인상해(殺人傷害)라 하나니, 때리고 목을 자르는 것도 이런 뜻에 귀속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저는 말합니다. 즉 이렇게 상해하면 범행을 청정히 닦고 또한 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대중을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선주의는 또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도의 지혜를 위해서입니다.”

또 물었다.

“믿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근본이 없음과 법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선주의에게 물었다.

“과연 근본이 없는 법계를 잡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는 말하였다.

“무엇을 거룩한 대중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거룩한 대중이라 하나니, 그 거룩한 대중이란 집회(集會)가 없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대중이라 합니다.”

또 물었다.

“천자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함이 없는 자[無爲者]가 회합이 없으면 욕심을 여읠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말합니다. 즉 만일 거룩한 대중을 떠나면 즐겨 범행을 닦는다고 말입니다. 또 선주의여, 그 부처님을 얻으면 집착이라 하고 부처님과 거룩한 대중을 얻으면 집착이라 하지 이욕(離欲)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대중의 모임을 버리면 이욕이라 하나니 이른바 이욕이란 법계의 자취가 되는 것입니다.”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말했다.

“미치기 어렵고도 미치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미증유입니다.”

문수가 또 말하였다.

“천자여, 반복(反復)이 없기를 익히고 효순(孝順)하지 마십시오.”

또 물었다.

“무엇을 효순하지 않는 것이라 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와 같아서 선주의여, 나는 반복하는 일이 없고 또한 반복하는 일이 없지도 않습니다.”

선주의가 또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 어떤 지은 것들이 만일 훼상되면 각각 여러 가지 일을 일으켰다가 각각 다른 갈래[趣]로 돌아가 각기 다르게 몸을 받고 각각 응보(應報)를 얻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효순은 각각 지음이 있어 이내 응보를 받으며, 무량한 색(色)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자의 지음은 몸의 근심이 되고 훼상을 받으며 그들의 받는 견해는 각각 달라, 혹은 집착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취하거나 버리며 나아가고 물러나니, 이것을 반복이라 합니다.

반복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 세존께서 말씀하신 평등과 같나니 이른바 모든 법이 제 각각 지음이 없고 모두 지음이 없으며 또한 불러옴도 없고 평등과 같아 뛰어남이 없으며 남에게서 받음도 없고 남의 지음을 짓지도 않나니, 이것을 반복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선주의는 또 물었다.

“지금 문수사리께서는 어디에 머물러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떤 법인을 세웁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법인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문수에게 물었다.

“어디에 머물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요술쟁이가 있는 곳에 머물며 몸도 거기 있습니다.”

또 물었다.

“요술쟁이가 머무는 곳은 어떻습니까?”

대답하였다.

“본래 머무름이 없는 것처럼 요술쟁이도 거기 머무르며, 아까 당신이 ‘어디에 머물러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떤 법인에 머무는가’라고 물었던 것처럼, 이른바 법인이란 다만 거짓 이름일 뿐인데 어디 머무르는 곳이 있겠습니까? 모든 법도 그러하여 다 지음이 없고 또한 상념도 없어서, 그것은 머무름이 없고 또 처소도 없는 것이니, 이렇게 머무르는 것을 중생이라 합니다.

도의 가르침을 연설하는 여래의 머무름도 또한 그와 같이 경의 이치를 말씀하십니다. 왜냐 하면 근본이 없는 데 머물러 연설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체 중생도 거기 있으면서 근본이 없는 데 머물러 말하는 것입니다. 여래는 근본이 없고 근본이 없기에 일체 중생과 다름이 없이 움직이지 않으며, 근본이 없는 것도 그와 같아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여래의 상응함이 근본이 없는 것처럼, 중생의 근본 없음도 그와 같아서, 다 한결같이 근본이 없으므로 둘도 없고 여러 가지도 없기 때문에 근본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선주의 천자가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이른바 사문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사문도 아니요 범지(梵志)도 아닌 것을 사문이라 합니다. 왜냐 하면 욕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색계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머물지 않는 것을 나는 사문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뚫어져 새지 않으면 그것을 사문이라 하고, 그 뜻과 성품이 없고 정(情)과 화합하지 않으며 인연이 없고 인연이 없지도 않은 것을 사문이라 합니다.

또 천자여, 그는 법(法)에도 집착하지 않고 비법(非法)에도 집착하지 않아 그 행이 고요하여 시비의 마음이 없으며 갑자기 자취가 없으면 그것을 사문이라 합니다. 왜냐 하면 그 인연법과 상응하는 과보가 망령되이 이것을 좇아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법은 또한 거짓인 것이므로 그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결박도 없고 해탈도 없을 것이니 이것을 사문이라 합니다. 그 감도 없고 또한 돌아옴도 없으며, 나아감도 없고 물러남도 없으며, 부스럼도 없고 자국도 없으며, 상함도 없고 나음도 없으면 이것을 범행을 깨끗이 닦는 것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사문도 아니요, 범지도 아닌 것을 사문이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주의가 칭찬하여 말하였다.

“일찍이 없던 일입니다. 그 뜻은 견고하고 강인하며 연설하신 것은 이름과 노니는 자취가 없고 또한 장구(章句)도 없으며, 그 뜻은 다 통달하여 소홀히 잊어지지 않습니다.”

문수가 말하였다.

“내 뜻은 견고하여 강인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몸은 스스로 뜻을 놓아버렸고 뜻은 약하니 강하지 않습니다.”

천자는 또 물었다.

“그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방자한 뜻으로 성문의 자리에 있었고 연각의 세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므로 뜻을 놓아버리고 또 뜻이 방자하여 모든 번뇌 속에 있으면서 애욕과 온갖 어두움의 근심을 미워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뜻을 놓아버린 것입니다.”

선주의가 칭찬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문수사리여, 그것은 다 전생에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온갖 행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여래의 명령을 받들어 하신 말씀이 그와 같습니다.”

대답하였다.

“나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일찍이 전생의 경력을 얻은 일이 없고, 또한 미래도 없으며, 모든 부처님을 따라 법행(法行)을 세우지도 않았으며, 지음과 짓지 않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었다 하나 지음이 없고 모든 행을 모두 갖추지 못했습니다.”

선주의가 또 물었다.

“문수사리여, 나는 일찍이 여환삼매(如幻三昧)란 말을 들었었습니다. 원컨대 그 삼매를 나타내어 정수(正受)를 보여 주십시오.”

문수는 또 물었다.

“여환삼매의 경계를 보고 싶습니까?”

대답하였다.

“기꺼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문수사리는 곧 여환삼매에 들어 정수(正受)하였다. 그러자 동시에 시방으로 각각 강의 모래알 같은 모든 불국토가 저절로 나타났다. 선주의 천자는 동방의 강의 모래알 같은 모든 불국토를 보았다. 거기 나타난 것은 다 문수였는데, 혹은 비구의 형상을 나타내어 경전을 강설하기도 하고, 혹은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형상을 나타내었으며, 혹은 제석과 같고 범천과 같으며, 사천왕과 같고 전륜왕과 같은 형상을 나타내었다. 그 몸은 혹은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의 형상과 같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혹은 또 짐승과 새 등 여러 가지 빛깔을 나타내 보이고 각각 무량한 형상을 나타내며 곱고 추한 각기 다른 형상으로 설법하고 있었으며, 시방의 낱낱 강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불국토도 다 그와 같이 다름 없이 경전을 강설하고 있었다.

선주의는 이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문수사리는 삼매에서 일어났다. 선주의는 공경하고 정성껏 귀의하면서 문수에게 아뢰었다.

“아까 보았는데 모든 불국토는 헤아릴 수 없고 무량한 형상은 각기 다른데 모두 경전을 강설하고 있었습니다.”

문수가 물었다.

“천자의 생각으로 어떻게 이해하셨습니까? 동방에 나타난 것이 진실한 것입니까? 8방과 상하에서 본 것이 다 진실한 것입니까? 시방에서 본 것에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선주의가 대답하였다.

“다 거짓이요 진실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다 생김이 없어 마치 허깨비의 변화와 같고 요술쟁이의 형상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체 모든 법은 잠깐도 항상 존재하는 것이 없고 자재하게 지어 변화를 나타내 보일 뿐, 그 본말을 끝까지 캐어 보면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곧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법을 강설함이 당연하여 실로 그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그 모임 가운데 있던 5백 보살은 4선정을 증득하고 5신통을 얻고서 그 전생[宿命]을 알아 과거에 지은 선악을 다 스스로 보고, 다시 일찍이 지은 바를 다 알았다. 즉 부모를 역해(逆害)하고 아라한을 죽이며 거룩한 대중을 어지럽히고 불사(佛寺)를 파괴하는 등, 이런 죄업을 본래 짓고 남은 재앙이 다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옛날의 해치려 하던 마음을 억념하고 더욱 근심이 맺히며 의심이 생겼다. 그 때문에 이 심묘한 법을 알지 못하고 나가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미세한 장막[翳]에 가려 끝내 버리려 하지 않아 법인을 얻지 못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5백 보살을 교화하기 위하여 곧 위신으로써 문수사리를 나타내 보였다. 그러자 문수사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손에 칼을 잡고 부처님에게로 달려갔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멈추어라, 멈추어라. 역죄(逆罪)를 짓지 말고 좋게 해쳐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고 마음에 의해 해침이 생기며 마음이 일자마자 곧 살생을 이루기 때문이니라.”

그 때 무앙수의 보살들은 각각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말했다.

“일체 법은 다 허깨비와 같을 뿐이다. 또 나라든가 뭇 사람과 수명이란 것도 없다. 그 뜻이 생각하는 그 본말을 관찰하면, 부모도 없고 부처ㆍ법ㆍ승가대중도 없으며,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행함과 행하지 않음도 없고 과보도 없다. 그런데 뜻이 스스로 몸을 탐해 전도(顚倒)에 떨어지건만 우매한 범부들은 다 알지 못하고 그 마음이 도리어 전도에 처하여 나와 부모를 헤아린다. 왜냐 하면 문수사리는 총명하고 성스럽게 통달하였기 때문에 저 모든 부처님 세존의 칭찬을 받으며 그 공덕은 불가사의하고 도덕은 뛰어나 미칠 수 없으며, 크고 우뚝하고 드넓어 비유할 수 없으며, 법인에 깊이 들어가 그 본제(本際)를 깨닫고 무수한 강의 모래알 같은 모든 부처님 큰 성인을 공양하며 도의 가르침을 편다. 과거 부처님에게서 이미 할 일을 다 마치고 모든 법을 깨달아 지혜가 그 짝이 없으며 그의 설법은 모두 때에 알맞다. 저 모든 여래를 뵙게 되면 항상 공경하고 정성스러워 머리를 조아려 귀의한다.

그런데 지금 예리한 칼을 잡고 여래를 향해 달려갈 때, 부처님께서 ‘멈추어라, 멈추어라. 문수사리야, 역죄를 짓지 말고 좋게 해쳐라’고 하셨다. 만일 이것을 분별하고 그 본제를 관찰하면, 무엇이 부처님이라는 이름이요, 법이며, 거룩한 대중이요, 부모며, 아라한이며, 또 묘사(廟寺)라는 이름인지 분별할 수 없구나.

그 받음이 텅 비어 없는 것인즉 돌아갈 갈래[趣]가 없고 또한 상응하는 과보도 없다. 만일 모든 법이 텅 비어 없는 것이라 진실하지 않으면 그 받는 모든 법도 또한 텅 비어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깨비와 같고 허공과 같으며 또한 파초ㆍ꿈ㆍ그림자ㆍ아지랑이와 같고, 욕심을 떠나 있고 허망하며 견고하지 않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죄도 없고 해치는 자도 없는데 누가 있어 죽이겠으며 어찌 재앙을 받는다 하겠는가? 이렇게 관찰하고 그 본말을 생각하면, 모든 법은 본래 다 청정하여 다 생김이 없는 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백 보살은 이 말을 듣고 확연히 곧 무생법인을 얻었고, 천 비구는 번뇌를 멀리 여의어 법안이 깨끗해졌으며, 5백 보살은 크게 기뻐하여 선심이 생기고 고요히 생각하다가, 땅에서 4장(丈) 9척(尺)이나 허공으로 올라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모든 법이 다 허깨비와 같아

생각을 좇아 함부로 일어나

형상을 이루지만 없는 것이니

모든 법은 다 공이네.

도리어 스스로 망상을 내어

나가 있다고 해서 몸을 위태롭게 하지만

그 전생의 일을 알고 볼 때는

지은 바 죄가 매우 중했네.

과거에 대역(大逆)의 생각을 품고

스스로 그 부모를 도모하고

아라한과 비구를 살해했나니

그 범한 죄과가 매우 심하네.

이 중한 죄로 말미암아

그 고통 헤아릴 수 없다가

지금은 의심 그물에 떨어져

공법(空法)의 이치를 듣게 되었네.

거룩한 분께서 의심 그물 찢었으므로

이제는 우울의 부스럼을 고치고

법계를 분명히 깨닫고

고요하여 아무 번뇌가 없네.

모든 부처님께서 선교방편으로

흐름을 따라 사람을 건지실 때

하고 싶은 대로 중생을 제도하고

신음하는 마음을 끊어 없앴네.

부처가 없으니 경법도 없고

또한 거룩한 대중도 얻을 수 없으며

거기는 또한 부모도 없나니

모두 공이요 또 자연이네.

그리고 나도 사람도 없고

수(壽)도 명(命)도 없으며

항상함[常]도 없고 단멸도 없나니

모든 법은 저 허공과 같네.

죄도 없거니와 응보도 없고

지음도 없고 짓지 않음도 없네.

내 몸과 나를 탐하지 말라.

다시 돌아다니며 고뇌 받으리.

거기에는 나는 자도 없고

또한 죽는 자도 없으며

난다는 것은 허깨비와 같나니

이것을 모든 법의 상이라 하네.

문수는 큰 지혜 가지고

모든 법으로 저 언덕을 건넜는데

스스로 날카로운 칼 잡아

여래를 향해 뛰어갔네.

부처님도 예리한 칼과 같아

두 가지 일이 다 한 모양이니

생김도 없고 소유도 없거니와

또한 그 해치는 자도 없네.

양족존(兩足尊)께서는 중생들이

온갖 죄를 짓는 것 보시고

그 재앙과 복의 업도

다 공인 것을 알게 하시네.

공인 것을 통달한 사람은

삼세에 수명이 없고

인연이 모여 된 것이어서

생긴 곳이 없음을 아네.

죄도 없거니와 과보도 없고

그리고 고통도 즐거움도 없고

나도 또한 늘 공인데

생각을 의지해 안온 구하네.

중생들은 전도된 처지라

그 본제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무상이요 고통이며 다 공이요

몸이 아니요 소유가 없네.

만일 누가 이런 줄 알면

세 가지 나쁜 갈래 면할 것이네.

모든 부처님께서는 짓는 업 없고

깨달은 사람은 지음이 없다네.

죄를 헤아리면 부처도 그러하나니

그러므로 일러 부처라 하네.

부처님이 통달한 것과 같이

밝고 자세하게 이런 줄 알면

허무에서 생긴 줄을 아나니

이로 말미암아 거룩한 지혜 얻네.

허공이라는 이치에 머물러

머무름이 없음을 연설하나니

그 몸도 허공과 같아

두 가지 일이 다 자연이네.

만일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려면

그 법은 장애 없는 것이니

이 본제를 잘 알면

부처님의 최상의 도를 이루고

이 세상에서 큰 성인 되어

중생들을 고뇌에서 제도하리라.

인연의 과보를 모두 없애고

부처님의 큰 도를 받들어 닦으면

장차 법의 왕을 이루어

밝은 눈으로 멸도 얻으리.

5백 보살이 이 집검경(執劍經)을 말할 때 시방세계 강의 모래알 같은 불국토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그 큰 광명은 세간을 두루 비추었다. 그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 큰 성인들의 시자들은 각기 그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것은 무슨 위덕이기에 대지가 진동하고 광명이 두루 비치나이까?”

이에 부처님들께서 각각 그 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들아, 알아라. 인(忍)이라는 세계가 있고 거기 능인(能仁)이라는 부처님께서 계시면서 경의 도를 연설하시느니라. 거기에 문수사리라는 보살이 있는데 불퇴전(不退轉)을 이루어 예리한 칼을 들고서 부처님을 향해 달려갔느니라. 그는 통달하지 못한 보살들을 그것으로 개화하고자 함인데, 이것은 그 때문이니라.”

그 때 부처님 대성께서는 손에 지혜의 칼을 잡고 생사의 근본을 끊으려고 알맞게 설법하여 무앙수의 중생들을 권하여 그 눈이 청정하고 마음이 해탈하여 법인을 이루어 큰 도에 머무르게 하셨다. 그러한 큰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신통 변화를 일으켜, 그 대중 모임에 있는 새 학인으로서 덕의 근본이 적고 엷으며 망상을 많이 가진 이는 그 잡은 칼도 보지 못하고 설법도 듣지 못하게 하였으니, 부처님의 거룩한 뜻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 때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까 흉악한 역죄를 지었습니다. 무엇을 믿었기에 칼을 잡고 부처님을 향해 달려갔습니까?”

문수사리가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말과 같이 당신이 지은 역죄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보상(報償)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 이치를 아는 이는 요술쟁이가 지은 반역의 일과 같음을 알 것입니다. 그 요술의 변화에 과연 역죄가 있겠습니까? 그 보상도 그런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요술쟁이의 변화에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니 모든 법도 또한 그런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나는 지금 그대에게 묻고 싶습니다. 바로 대답하십시오. 그 칼은 있는 것입니까?”

답하였다.

“아닙니다.”

“그 죄가 있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죄업이 없으면 과보도 없습니다. 죄업과 과보가 다 없는 것인데 어떻게 다시 그 처소를 알려고 하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문수사리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죄업도 없고 과보도 없어 모든 법에도 다 죄업과 과보가 없다 한다면, 그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리불이여, 내가 잡은 그 칼은 어떤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것이며, 누가 가지고 와서 내게 준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 칼을 만든 사람도 없고, 가지고 와서 준 사람도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그것은 변화로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문수는 또 물었다.

“당신은 그 허깨비 사람이 있는 곳과 그 칼이 있는 데를 볼 수 있습니까?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모든 법은 다 허깨비의 변화와 같아 그 상(相)은 상이 없어 그 곳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리불이여, 이 뜻을 이해하십시오. 즉 여래ㆍ지진께서도 그 예리한 칼과 같고 문수와 사리불도 또한 그와 같아 근본이 없으며 중생도 그러하고 모든 법도 그러하여 본래 머무는 곳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사리불이여, 일체 법이 다 근본이 없는 것처럼, 내가 일으킨 죄와 과보와 칼을 잡은 것도 다 그러하며 쌓은 재앙도 또한 근본이 없고 과보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아까 사리불께서 다시 묻기를 ‘당신은 무엇 때문에 손에 칼을 잡고 부처님과 다투려 했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비유하면 수행하는 자는 한가히 있으면서 부지런히 세존을 향해 마음의 생각이 떠나지 않아야 이에 해탈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사리불이 또 물었다.

“고요히 생각하는 수행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을 세존이라 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탐욕과 망상이 곧 고요히 생각하는 수행이요, 세존입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이 세 가지를 아주 남기지 않고 제거하여 고요하고 담박하면 곧 환연(亙然)하여 일체 번뇌를 제거할 수 없어 세존이 되지 못하고,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애욕의 어려움을 멸하면 세존이 되며, 탐욕의 뜻이 생기면 이 탐욕의 뜻을 잡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탐욕이 소멸하고 분노와 어리석음도 그렇게 되면 해탈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예리한 칼을 잡고 세존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허깨비와 같아 해가 없는 것이며, 3독(毒)을 품은 자가 달리는 마음에 염불하여 번뇌를 다 없애는 것도 역시 수행이며, 한거(閑居)하여 오로지 수행하되 일심으로 염불하여 해탈을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시원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로 그 말씀과 같습니다.”

그 때 시방의 모든 보살들은 세존께 아뢰어 청하였다.

“예. 대성이시여, 문수사리에게 권하시어, 그 뜻을 굽혀 우리들과 모든 불국토를 돌아보아 그 불국토에서 경법(經法)을 연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다 그 이치를 알게 하라 하소서.”

문수사리가 모든 보살에게 말하였다.

“여러분들은 각각 그 불국토를 살펴보십시오.”

여러 족성자들은 곧 그 말을 듣고 각각 본토의 시방세계를 보았고, 문수사리가 그 시방 불국토에서 경법을 강설하고 있는 것을 모두 보았다. 그리고 선주의 천자가 질문하고 문수가 이 허깨비의 행과 같다는 뜻을 가진 경전의 요체를 연설하는 것을 듣고, 모든 보살의 모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여러 천자의 모임의 수와 같고 그 불국토가 다 여러 가지로 청정하게 장엄되어 크고 우뚝하기 한량없음도 이 인토(忍土 : 사바세계)와 조금도 다름없이 같음을 보았다.

이런 광경을 멀리서 보고 모두 기뻐하면서 큰 소리로 경사라고 찬양하였다.

“문수사리는 도덕이 뛰어나고 위신과 광명과 지혜가 그 짝이 없으며 위덕은 뛰어나 해와 달보다 더하며, 이 인토에 머물면서 옮겨 가지 않고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두루 나타나신다.”

그 때 문수사리는 비유로 말하였다.

“비유하면 족성자들이여, 마치 요술쟁이가 요술을 잘 배워 세상에서 뛰어나 그 짝이 없는데, 그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요술로 여러 가지 형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깨달아, 법의 허깨비임을 분별하고 그 뜻을 다 통하여, 이 국토에서 조금도 옮겨 가지 않고 시방 불국토를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곧 그 불국토에 그 몸을 나타냅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이 다 요술과 같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타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마치 달이 허공을 운행하면서 인간에 내려오지 않고, 가고 옴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 광명은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며 비록 비추더라도 비춘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본제에 있으면서 일찍이 옮기는 일이 없이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두루 나타내고, 혹은 전륜왕ㆍ제석ㆍ범천왕ㆍ사천왕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부귀하고 빈천하며 곤궁하고 힘겨운 몸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3악도의 고뇌 속에 들어가기도 하며, 혹은 유림(儒林)과 제왕과 대신이 되기도 하며, 혹은 외도로서 부처님을 비방하여 말하고, 혹은 깊은 산에 들어가 공부하여 선인이 되는 등 그 나타내는 바가 무한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인(因)에 의하여 최상의 정진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나타내는 것은 그렇다 해도 그렇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만나 듣게 되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과 꼭 같아 다름이 없고, 어떤 보살이 나무 밑에 앉아 불도를 이루는 것과 이 경을 들은 사람의 그 복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도의 자취와 가고 옴과 돌아오지 않음과 집착하지 않음도 다 같은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을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요긴한 도라 하기 때문이니라.”

문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로 거룩한 가르침과 같사오니 그 교화에 안주하여 무슨 분부라도 받겠나이다.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이 평등한 것처럼 법의 평등도 그러하나이다. 또 근본이 없는 본제가 평등하고 이욕(離欲)과 선정이 평등한 것처럼 이 법의 평등도 그와 같나이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大聖)께서는 은혜를 드리우고 이 법을 세우시어 후세의 쇠잔하고 어지러운 5탁(濁)의 풍속을 가진 족성자ㆍ족성녀들로 하여금, 보살의 뜻을 배우게 하고, 이 법을 듣고 대승을 구하는 자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멸도를 구하게 하면 다 이 도덕과 법의 밝음을 힘입어 각각 그 자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인정하셨다. 바로 그때 곧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공후 등 악기는 치지 않아도 스스로 울며, 모든 꽃과 과실수 및 마른 나무에서도 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그 큰 광명이 세간을 두루 비추어 해와 달을 덮어 빛이 없게 하자, 억백천의 하늘들은 허공에서 기뻐 날뛰면서 온갖 꽃을 내리고 온갖 좋은 향을 사르고, 다시 잡향과 가루향[擣香]을 내려 그 향기가 시방에 퍼졌으며, 하늘의 기악을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맑고 조화로웠다. 그들은 모두 합장하고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러 게송을 읊었다.

“묘하고도 묘합니다. 이 법은 만나기 어렵습니다만, 우리들은 다행히 문수의 강설을 듣고 크게 교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법륜의 굴리심을 만났사오니 염부제 사람들은 큰 경사를 입어 이 경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공덕의 근본은 끝내 헛되지 않으리니, 빨리 수기를 받고 마땅히 불도를 이루어 많이 교화될 것입니다.”

이에 세존께서 모든 보살과 천자들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들 말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듣는 사람을 밝혀 그들이 불도를 이루고 멸도에 들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독실히 믿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면 생사에도 있지 않고 멸도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세우신 이 경전은 지금 감동을 나타내어 먼저 상서로운 조짐을 삼고, 그리고 후세에는 시방에 두루 퍼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문수사리여, 지금의 이 조짐은 다 이 법의 위엄과 은혜와 여래의 큰 자비를 세운 것으로서 거룩한 가르침이 일체를 제도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또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이 깊은 경전을 나타내리라. 부처님의 말씀은 지극히 정성스러워 끝내 허망하지 않느니라. 이 3해탈문은 많은 중생을 구제할 것이니, 이 법을 후세에 널리 퍼지게 하라.”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이 법을 세워 참된 장구(章句)를 연설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수명도 없고 뜻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단멸에 떨어지지도 않고 계상(計常)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번뇌도 없고 다툼도 없으면 이 경전을 빛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극한 정성으로 하는 이 말이 헛되지 않다면 이후 장래에 5탁(濁)의 세상에 두루 퍼지게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맹세하겠습니다. 즉 성불하지 않고 법과 거룩한 대중이 없으며 죄와 과보가 없고 가고 옴이 없나니, 이 지극한 말과 이 요긴한 법으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다 두루 퍼지게 하겠나이다.

이 경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욕심을 받지도 않고 욕심을 떠나지도 않으며 분노와 어리석음이 없이, 인자한 마음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이름이 없고 색이 없으며, 반연이 없고 봄이 없으며, 생사를 일으키지 않으며 몸이 없어 몸을 내지 않고 마음이 없어 마음을 내지 않으며, 법을 생각하지 않고 뜻이 그치지 않으며, 5음(陰)이 없고 4대(大)가 없으며 모든 입(入)이 없고 눈의 빛깔과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입의 맛과 몸의 접촉과 마음의 법도 또한 그러하며,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머물지 않고 마음이 대지와 같아 미움과 사랑이 없으며 모든 법을 덜지도 않고 늘리지도 않으면, 이 경을 선포하여, 이 경전이 후세에 두루 퍼질 것입니다.

지극한 정성에 있지 않고 진실을 보지 않으며 설법을 칭찬하지 않으며, 도과(道果)에 이르지 않고 수다원도 없으며 사다함도 없으며, 아나함도 없고, 아라한도 없으며, 연각도 없고 모든 증과(證果)도 없으며, 여래도 아니요 불법도 없으며, 두려움이 없지도 않으며, 지혜롭거나 지혜롭지 않음도 없으며, 거룩하지도 않고 공하지도 않으며, 수명도 없고, 상(想)도 아니요, 상 없음도 아니며, 원함도 아니요 원하지 않음도 아니며, 과증(果證)을 얻지 않고, 보거나 보지 않음이 없으며, 도에 이르지 않고 밝음이 없고 어두움도 없으며, 또한 해탈도 없으며 건너지 않고 건넘이 없지도 않으며, 저 끝[際]도 아니요 이 언덕도 아니며 중류(中流)도 아니요 이름도 없고 이름이 아닌 것도 없다는, 이런 진실한 말인 이 경을 후세에 더욱 퍼지게 할 것입니다.

또 이 경을 생각하여 상응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으며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노력하지도 않고 폐지하지도 않으리니, 이런 지극한 정성으로 법은 두루 퍼질 것입니다. 과거에 생긴 것으로서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과거의 사람이 없으며, 중생을 제도하지 않고 또 멸도하지도 않으며, 사람을 얻을 수 없고 법의 일어남도 없고 또한 멸함도 없으며, 지은 자도 없고 파괴하는 자도 없으며, 가짐도 없고 거부함도 없으며, 가지도 않고 돌아오지도 않으며, 올림도 없고 내림도 없으며, 미래의 부처님도 없어서 이런 상법(像法)이 빛나지 않으며 현재의 부처님도 없어서 법을 펴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법이 널리 퍼질 것입니다.

이 경이 말한 것은 계를 지키지 않고 범하지도 않으며, 고요하지도 않고 산란하지도 않으며,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풀림도 아니고 속박됨도 아니며, 지혜롭게 봄도 아니요 지혜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니, 이 바르고 진실한 말은 이 경을 널리 퍼지게 할 것입니다.

보시하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으며, 계를 지키지도 않고 훼범하지도 않으며, 참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으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며, 고요하지도 않고 산란하지도 않으며,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는 것이니, 보살 대사는 이 진실한 말로 법을 널리 퍼지게 할 것입니다.

범부도 없고 배우는 이도 없으며 아라한도 없고 연각도 없고 불도(佛道)도 없으며 인연도 아니요 인연 없음도 아니니, 이것은 이 법을 널리 세간에 퍼지게 할 것입니다.

보리수에 앉지도 않고 법륜을 굴리지도 않으며 부처님을 찬탄하지도 않고 부처님께서 현재 있지도 않으며 중생이라 하지도 않고 멸도하지도 않으며 여래라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영원히 멸도에 이르러 이 경을 세간에 널리 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이 경전의 요체를 세울 때, 이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그 큰 광명은 시방을 두루 비추었다.

허공에서는 지극한 음성이 울렸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시여, 실로 그 맹세와 같습니다. 가령 강의 모래알 같은 모든 악마 권속들이 방편으로 이 경을 파괴하고 흩어버리려 하더라도 끝내 이 미묘한 법을 어지럽혀 유통하지 못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요긴한 법을 세운 까닭은, 만일 족성자ㆍ족성녀가 이 경전을 받아 수지하고 독송하며 듣고는 믿고 즐거워하면, 일체가 다 악마의 일에서 벗어나 부처님 도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늘 무슨 인연으로 대지가 크게 진동하며 광명이 두루 비치고 공중에서 소리를 낸 것입니까?”

부처님께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묻는가? 왜냐 하면 뜻이 작고 하열한 사람은 큰 이치를 알지 못하고 교만에 떨어지기 때문이니,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안온을 얻지 못하느니라.”

미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거룩한 말씀은 저희들을 많이 가엾게 여기심이며, 안온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함께 믿고 즐거워하는 것을 인자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은 47억 백천 나술(那術 : 那由他) 부처님들께서 이 지상에 건립하여 말씀하신 것이요, 또 문수사리가 질문한 것이며, 선주의 천자도 함께 물었던 것이요, 미륵 그대가 오는 세상에 최상의 정진도와 최상의 정각을 이루었을 때에도 이 경전을 연설할 것이며, 그 밖에 현겁 동안에 나오시는 모든 여래들께서도 다 그렇게 하실 것이다.”

미륵이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문수사리와 선주의 천자는 언제부터 이 경전을 들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와 선주의 천자는 이 법을 듣기는 7백만 아승기겁 전에 보화초사자보덕왕광수(普華超師子步德王光首) 여래ㆍ지진ㆍ등정각에게서 들었고, 그가 공중에서 큰 소리로 외칠 때, 모든 정거천(淨居天)들이 이 법을 강하는 소리를 듣고는 각각 서로 권하고 찬탄하면서 다녔는데 그 때문에 대지가 진동한 것이다.”

미륵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족성자ㆍ족성녀들이 이 경전을 받아 수지(受持) 독송(讀誦)하고 남을 위해 설명하면 어떤 공덕의 과보를 얻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과거ㆍ미래ㆍ현재 부처님의 계율과 선정과 해탈과 바라밀과 해탈지견과 또 널리 일으키신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 최상의 정진도의 지혜를 이루게 하고, 이미 이루었고, 장차 이룰 것이며, 현재 이루는 이 덕의 근본을 합하면 그 공과 복을 과연 많다 하겠는가?”

미륵이 말하였다.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불가사의할 것입니다. 한 여래님의 덕과 복도 헤아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일체 부처님이겠습니까? 가령 덕의 근본이 형상이 있다면 시방의 불국토라 해도 그것을 다 수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문에 은근히 부탁하고 비유하는 것이다. 어떤 족성자ㆍ족성녀들이 이 경전을 듣고 수지 독송하며 남을 위해 설명만하더라도 이 복이 저보다 많겠거늘 하물며 받들어 행함이겠는가? 왜냐 하면 과거ㆍ미래ㆍ현재 부처님의 강설이 다 이 경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명하실 때 강의 모래알과 같은 중생들은 보살심(菩薩心)을 내었고, 이보다 갑절이나 되는 사람은 불퇴전을 얻고 법인을 이루었으며, 법안이 깨끗해진 사람은 다시 갑절의 갑절이나 되었다. 이렇게 시방에서 모여 온 사람과 일체 보살들은 다 크게 기뻐하면서 선심(善心)이 생겨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이 법을 찬탄하였다.

“다행히 다시 듣게 되었으니 어디에 비유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사라져 각기 본토로 돌아갔다.

현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어일체법무기불멸삼매요품(於一切法無起不滅三昧要品)』이라 하고, 또『항훼마장(降毁魔場)』이라 하나니 잘 지녀야 한다. 또 『보변시방정의요혜문수사리지소강설(普遍十方定意要慧文殊師利之所講說)』이라 하고, 또『여환소설(如幻所說)』이라 하나니 잘 받들어 지녀야 한다. 이 경전은 능히 사람을 교화할 것이니, 아난아, 잘 수지하여 독송하고 남을 위해 설명하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ㆍ보살ㆍ문수사리ㆍ선주의 천자ㆍ미륵보살ㆍ현자 아난과 모든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와 세간 사람들은 이 경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