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초일명삼매경(佛說超日明三昧經) 해제
전체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경은 『초일명경(初日明經)』이라고도 한다. 초기 대승 경전들의 성립과 시대를 같이하는 이 경은 서진(西晋) 시대(290~306) 때 섭승원(聶承遠)이 한역하였다. 축법호(竺法護)가 이와 비슷한 시기인 27경에 번역을 마치고 『초일명삼매경(超日明三昧經)』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개원록(開元錄)』과 『정원록(貞元錄)』에 남아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서는 축법호가 한역한 경을 섭승원이 정리한 것이라고도 한다.
섭승원(240~300년경?)은 서진(西晋) 시대 때의 재가 불자로서 신심이 깊었으며, 축법호의 역경 작업에 참여했다가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불설초일명삼매경』과 『월난경(越難經)』 2부 3권을 한역하였으며, 모두 전하고 있다.
본 경은 햇빛보다 더 뛰어난 삼매에 대한 경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경 이름처럼 부처님께서 삼매를 통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에서는 초일명삼매를 얻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고, 하권에서는 초일명삼매를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유야리(維耶離)의 날씨수원(捺氏樹園)에 머무실 때였다. 여러 비구들과 보살들이 함께 있었는데, 보명(普明)보살이 질문하자 부처님께서 초일명삼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보살은 모름지기 초일명삼매를 닦아서 무소불입(無所不入)과 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를 터득해야 한다. 초일명삼매란 오곡 백과를 무르익게 하는 햇빛보다도 더 뛰어난 것이므로, 그 삼매를 얻으면 반드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초일명삼매를 얻기 위한 방법에는 80가지가 있다고 하며, 그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도 보살의 4사(事) 및 6사․10사․7사 8사․5사 등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보살의 행법을 통해서 삼매에 들기를 권하고 있다.
보살이 삼매에 들어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눈․귀․코․혀 등의 감각 기관을 비롯하여 감각 대상 등 세상 모든 것이 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터득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꿈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아지랑이와 같은 것임을 알고 어리석음을 떠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법을 따르는 최상의 길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설법을 하시자 30억에 달하는 보살들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고, 삼천세계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 사이에 전개되는 문답을 통해서 여러 가지 대승의 가르침을 설명해 주고 있다. 먼저 부처님은 이구목(離垢目)보살의 질문에 대하여 보살학(菩薩學)․성문학(聲聞學)․연각학(緣覺學) 등의 의의를 설명해 준다. 불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空)의 이치를 깨닫고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는 데 있다. 부처님은 장자(長者)의 아들 정교(淨敎)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이루고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삼매를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또 이구목보살의 질문에 대해서 법보(法寶)삼매․무동(無動)삼매․보적화(寶積華)삼매 등 여러 가지 삼매가 있다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은 보살이 수행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삼매가 바로 초일명삼매라고 말한다. 초일명삼매의 힘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 빛이 시방세계를 한없이 비추며, 삼계(三界) 5도(道)를 환히 밝힌다. 더구나 햇빛은 형태 있는 사물만을 비추지만 초일명삼매는 형태가 없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비춰 주며,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또한 장자의 딸 혜시(慧施)를 비롯한 5백 명의 여인들에게 설법하기를 초일명삼매의 성취는 보살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며, 소승의 수행자나 여자의 경우에도 초일명삼매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부처님은 일왕(日王)의 청을 받고 허공으로 올라가서 일왕궁(日王宮)에 이르러 왕후와 태자 등을 불법에 귀의시킨 이야기를 비롯하여 유야리로 다시 내려와 여러 장자와 보살들에게 설법하는 가운데 수행과 삼매의 문제들을 다양하게 접근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 빛이 한량없으면 햇빛보다 더 밝기에 초일명삼매라 부르는 수행 방법의 뛰어남을 설명하고 있다. 이 삼매 수행의 목적은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서 일체 중생의 구제를 실천한다는 대승적인 이상 실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불설초일명삼매경(佛說超日明三昧經)
불설초일명삼매경 상권
섭승원(聶承遠)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유야리(維耶離)의 내씨수원(㮈氏樹園)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1만 8천의 비구들과 8만의 보살들은 모두 훌륭한 성인들로 신통을 이미 통달하였고, 온갖 총지(總持)를 얻어서 열 가지 힘[力]의 지혜를 지녔으며, 머무를 바 없는 데[無所住]에 머무르고, 세 가지 해탈문[脫門]1)을 초월하였다. 선권방편(善權方便)으로 교화를 좇지 않음이 없었으며, 3달(達)2)의 지혜로 장애되는 바가 없고, 3세(世)에 머물면서 홀로 존귀하여 이에 짝할 만한 이가 없었다. 생사(生死)의 근원과 본말(本末)에서 일어나는 바를 보았으며, 병(病)에 따라 약을 주어 저마다 소득이 있게 하였다. 법의 성[法城]을 수호하면서 중생을 구제하고, 네 가지 등심(等心)인 자(慈)․비(悲)․희(喜)․호(護)를 행하였으며, 네 가지 은혜[恩]3)로 인연에 따라 다리[橋梁]을 열어 세우고,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일심(一心)․지혜(智慧)로써 열반으로 건너갔으며, 공(空)․무상(無
1) 보살마하살이 처음 발심함에 따라 일제지(一切智)의 모든 행이 본에 이른다는 공해탈문(空解脫門)․무상(無相)해탈문․무원(無願)해탈문을 말한다.
2) 아라한에게 있는 것을 3명(明), 부처님에게 있는 것을 3달(達)이라 한다. 즉 천안(天眼)․숙명(宿命)․누진(漏盡)을 말한다.
3) 부모․국왕 중생 삼보의 은혜, 혹은 부모․사장(師長)․국왕․시주(施主)의 은혜를 말한다.
相)․무원(無願)의 법을 이해하여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중생세계로 들어가 나타내면서도 도무지 일으키는 바가 없으며, 모든 퇴전(退轉)하는 이들을 가르쳐 다시 되돌아가지[廻還] 않게 하고, 여덟 가지 불가사의[不思議]로 여덟 가지 액난[難]을 구제하였다. 법신(法身)과 계합하여 보살로 나타내 보이고 혹은 여래(如來)나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이 되기도 하는 것이 마치 햇빛과 같아서 비추지 않음이 없었으며, 시방(十方)을 오가되 역시 두루 돌아다님이 없었다. 온갖 법은 마치 허깨비․요술․꿈․아지랑이․그림자․메아리와 같아서 모두 아무런 실체도 없다[無所有]고 관(觀)하여, 이(利)․쇠(衰)․훼(毁)․예(譽)와 고(苦)․낙(樂)․선(善)․악(惡)이 영원히 다 없어졌으며, 모든 세간의 법을 초월하여 도량에 이르렀으면서도 평등하여 더하거나 덜함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보명(普明)보살․보달(普達)보살․보지(普智)보살․보혜(普慧)보살․보지(普至)보살․광명(光明)보살․광염(光焰)보살․광등(光等)보살․광영(光英)보살․광조(光造)보살․자광(慈光)보살․자시(慈施)보살․자계(慈戒)보살․자인(慈忍)보살․자진(慈進)보살․자적(慈寂)보살․자지(慈智)보살․자구(慈救)보살․자호(慈護)보살․자우(慈雨)보살․자명(慈明)보살․자보(慈普)보살이었으니, 이러한 이들이 상수(上手)였고 8만의 보살들도 덕(德)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백천(百千)의 대중과 권속들에게 에워싸여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셨으니, 대승(大乘) 업(業)인 무극(無極)의 지혜를 연설하셨다.
이 성(城) 가운데에 선실(善實)이라는 큰 장자[大長者]가 있었는데, 천(千) 명의 사람들과 함께 각각 손에 7보(寶)의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는, 그 보배 꽃을 함께 부처님께 흩뿌리면서 저마다 서원(誓願)하기를, “시방의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이 부드럽기가 꽃과 같고 뜻이 깨끗하기가 허공과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여래께서는 위신력(威神力)으로 모든 보배 꽃이 허공 가운데에 머물러 있으면서 세존의 위에서 합하여 꽃 일산[華蓋]이 되고, 꽃 일산의 광명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널리 비추어 그곳의 보살과 모든 하늘과 백성들이 보지 않음이 없게 하시자, 모든 부처님 세계마다 있는 수없는 백천억의 보살들이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한쪽에 앉았다.
이때 자보(慈普) 등 8만 보살과 백억의 제석천[天帝釋]․범왕(梵王)과 30억 범천(梵天)의 모든 신묘(神妙)한 하늘들의 10억 권속과 정거천(淨居天)의 20억의 시종(侍從)과 악마의 아들[魔子]과 도사(導師)들과 5천억의 기생들이 다함께 따라와서 부처님께로 와서 발아래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또 아사세왕(阿闍世王)과 8만 인, 바사닉왕(波斯匿王)과 5만 인, 유야리왕(維耶離王)과 여러 높은 8만 4천 인, 울선왕(鬱蟬王)과 2만 인, 수두단왕(輸頭檀王)과 9만 인, 구이나갈왕(拘夷那竭王)과 6만 인 등, 이와 같은 모든 왕들이 저마다 데리고 온 관속(官屬)들도 헤아릴 수 없었는데, 모두가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땅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또 모든 비구․비구니․청신사(淸信士)․청신녀(淸信女)와 모든 하늘․용․신(神)․아수륜(阿修輪)․가류라(迦留羅)․진타라
(眞陀羅)․마휴륵(摩休勒)․인(人)과 비인(非人) 등, 헤아릴 수 없는 수(數)로도 비유할 수조차 없이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로 와서 땅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저마다 부(部)를 나누어서 혹은 앉기도 하고 혹은 서 있기도 하였
다.
부처님께서는 대중 가운데 계셨는데, 그 위신이 특히 존귀하여 마치 해가 처음 나온 것과 같고 또한 별 가운데의 달과 같았으며, 마치 수미산(須彌山)이 큰 바다에 우뚝 솟아서 모든 곳을 두루 비추는 것 같았다. 세존께서 놓으신 몸의 광명은 밝디 밝고, 거룩한 지혜는 끝이 없어, 온갖 것을 두루 비추어 제도하지 않음이 없었고, 4품(品)이 우러러 쳐다보는 것이 마치 어둠 속에서 광명을 보듯 하였다.
이 모임 가운데에 보명(普明)이라는 보살이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큰 자애(慈哀)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고
5음(陰)의 덮임에 눈 먼 이들을 위하여
없는 눈을 열어 바로 보게 하시며
듣지 못한 이를 교화하여 도(道)로써 밝히십니다.
세간에 처하시되 마치 허공과 같고
또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으시며
마음이 청정함은 그보다 더 뛰어나시나니
위없는 성인[無上聖]께 머리 조아려 예배하나이다.
모든 법은 본래 아무 것도 없어서
마치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고
그림자․메아리․요술․허깨비․파초와 같다고 관하시며
삼계(三界)를 환히 아신 것도 역시 그와 같나이다.
한량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겁(劫)으로부터
공덕을 쌓으심이 셀 수조차 없으니
자심(慈心) 등의 정(定)으로 널리 교화하시어
중생들 모두가 그 은혜를 입었나이다.
삼계 그것은 꿈과 같아
깨고 나면 모두 소멸하여 좋고 싫음이 없으며
생사(生死)와 나[吾]의 본말(本末)도
황홀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환히 아시나이다.
부처님의 광명은 비추지 않음이 없고
거룩한 상호(相好)는 헤아리기 어려우며
도(道)는 높고 뛰어나서 비교할 이 없으니
그러므로 머리 조아려 시방에 예배하나이다.
본래 시방을 위하여 내신 뜻은
액난(厄難)을 건지고 중생을 구제함이며
이미 얻으신 원(願)은 허공보다 더하므로
모든 중생 은혜 입지 않은 이 없나이다.
보리수에 앉아 힘으로 악마를 항복시키시고
한량없는 깨달음과 도(道) 이루셨으며
모든 법이 스스로 그러함을 아신지라
다른 재주 구한 바 없으셨나이다.
대중이 부처님께 올린 7보의 꽃은
허공에서 꽃 일산을 이루고
그 광명 시방세계에 널리 비추자
많은 중생들 모여 법의 가르침 받나이다.
성인의 높으신 덕 수미산보다 뛰어나고
지혜 광명은 해와 달보다 더욱 빛나며
널리 펴신 바는 비유할 수 없으니
대성웅(大聖雄)께 머리 숙여 예배하옵니다.
그때 보명(普明)보살은 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길게 무릎 꿇고 합장하고 물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모인 모든 이로서 보살의 뜻을 낸 이나 아직 내지 않는 이나, 물러섬이 없음을 얻은 이나 아직 얻지 못한 이나,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어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도덕을 이룬 이나, 5도(道)에 있으면서 생사에 속박된 이라도 여래께서는 더욱 가엾이 여기셔서 깊이 무극의 보장[無極寶臧]을 연설하시고 나타내시어, 아직 해달(解達)하지 못한 이로 하여금 활연히 깨달아 어리석고 어두움이 광명을 밝게 보게 하여 물러섬이 없는 지위를 얻게 하소서. 과연 보조(普照)라는 이름의 삼매가 있어 깊고 얕은 것[深淺]과 소멸하고 흩어지는[消散] 두 가지의 법으로써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에 빨리 이르게 할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보명아. 가엾이 여기는 바가 많고 안온한 바가 많아 모든 하늘과 시방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로 하여금 저마다 마땅한 바를 얻게 하는구나.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생각하여라.”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초일명(超日明)이라는 삼매가 있으니, 보살이 이것을 체득하면 득입(得入) 못하는 바가 없느니라. 비유하면 햇빛이 나타나면 가려지고 장애되는 바가 없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교화 받는 이에게 세 곳[三處]의 마음과 뜻[心意]이 하는 바를 밝혀 아직 뜻을 내지 못한 이로 하여금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이미 도의 마음[道心]을 낸 이면 물러서지 않게 되어서 되돌아가지 않고 일생보처에 이르게 하며, 이미 보처를 얻으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하느니라.
평등함은 마치 허공과 같이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되 행하지 않는 바도 없으니, 이와 같은 여든 가지의 일을 행하여야 진실로 이 정(定)을 체득하느니라. 어떤 것이 여든 가지인가?
눈이 공함[眼空]을 알고 귀의 소리[耳聲]를 제거하며, 코의 맡음[鼻嗅]이 없고 말의 집착[言著]을 뽑으며, 식(識)을 제도하고 탐음(貪婬)을 그치며, 성냄[恚限]을 쉬고 어리석음[憂癡]을 벗어나며, 색(色)은 물거품[沫]이요 통(痛)은 큰 물거품[泡]이며, 상(想)은 아지랑이요 행(行)은 파초이며, 식(識)은 요술과 같고 마음[心]은 본래 청정하며 뜻[意]은 꿈과 같으며, 염(念)은 형상(像)과 같음을 환히 알아야 하느니라. 몸[身]을 보지 않고 사람을 헤아리지 않으며, 수명(壽)은 있지 않고 목숨[命]은 보존되지 못하며, 4대(大)는 공(空)하고, 5음(陰)은 실체가 없으며, 6쇠(衰)4)는 근원이 없고, 7식(識)은 주인이 없다.
4) 색(色) 등 6진(塵)이 능히 사람의 진성(眞性)을 쇠퇴시키기 때문에 6쇠(衰) 혹은 6적(賊)이라 한다.
인자한 마음[慈心]을 행하고 온갖 것을 가엾이 여기며 뜻[忘]이 화열(和悅)하고, 모든 근(根)을 보호하며 미움과 사랑[憎愛]이 없고, 많은 대상 경계를 여의며, 행(行)이 흩어지지 않고 합해짐도 없으며, 보시[施]가 없되 간탐하지 않고, 계율[戒]이 없되 범하지 않으며, 인욕[忍]이 없되 성내지 않고, 정진[進]이 없되 게으르지 않으며, 고요함[寂]이 없되 어지럽지 않고, 지혜[智]가 없되 어리석지 않다. 세속[俗]을 저버리지도 않고 도(道)만을 오로지 닦지도 않으며, 법을 강설(講說)하는데 몸[身]을 위하지 않으며, 온갖 것을 위하고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또한 끊지도[斷] 않고 또한 속박도 없으며, 푸는[解] 바도 없고 행(行)이 평등하며, 수면(睡眠)을 물리치고 모든 개(蓋)가 없으며, 입(入)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對)를 따르지 않으며, 마음이 스스로 이해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법(法)을 어기지 않고 중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시방의 사람을 가엾이 여김이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과 같고 어머니가 어루만져 키우는 것과 같으며, 자식이 어버이에게 순종한 것과 같고, 은혜는 자기의 몸처럼 여기며, 자신의 몸[形]을 위하지도 다른 사람을 위하지도 않으며, 또한 법(法)을 위하지도 않고 보살의 도를 행하며, 청아한 뜻을 넓히고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성문(聲聞)에도 생각이 없고 연각(緣覺)에도 뜻이 없으며, 바라는 생각을 구하지 않고, 피차(彼此)의 행을 버리며, 온갖 의지하려는 마음도 없고, 3세를 보지 않으며 삼계(三界)의 근본을 환히 알고, 마음과 뜻과 의식[心意識]을 쓰지 않으며, 도(道)는 허공과 같다고 알고, 과거․미래․현재를 여의며, 큰 지혜[大慧]에 깊이 들어가 일체 모든 것은 본래 없으며[本無], 큰 방편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든 가지이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든 가지의 행(行)을 준수하여 닦으면, 곧 초일명삼매에 빨리 이르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해가 떠오르면 일시에 백 가지의 곡식과 초목을 두루 비추어 하늘을 향하고 있는 온갖 종류가 성숙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 정(定)을 체득한 이는 온갖 상․중․하의 행(行)에 평등하게 들어가서 나타내지 못할 바가 없으면서 모두 그것을 제도하나니, 마치 달이 완전히 차서 밤의 어두움을 녹이는 것과 같으니라.
큰 정[大定]의 광명으로써 나아가 3구(垢)5)를 물리쳐 생각의 가려짐이 제거됨으로써 최상의 도(道)를 보는 것이니, 마치 훌륭한 의왕[大醫王]이 온갖 약을 선택하여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함으로써 각각 낫게 하는 것처럼, 무극(無極)의 지혜로써 뭇 근본이 되는 행[本行]을 따라 법을 설하여 색(色)․통(痛)․상(想)․행(行)․식(識)이 구하는 것을 물리치고 신통(神通)을 얻게 하느니라. 또 마치 사공이 견고한 배를 저어 사람을 오고 가게 하여 막힘이 없게 하는 것처럼, 열반을 나타내 보이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멈출 곳을 개화(開化)하고 삼계의 공(空)을 알게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하게 하여 중생을 구하고 섭수하는 것은 마치 강건한 사자가 숲에 숨어서 모든 짐승들을 포섭하여 복종시키는 것과 같으니, 이 정(定)을 얻은 이는 개사(開士)로서 홀로 걷고 3세를 두루 유행(遊行)하며, 62견(見)과 96종의 외도 등 모든 삿된 곳에 떨어진 이로 하여금 모두가 항복하여 여의게 하느니라.
받은 도(道)의 가르침의 3품(品:상품․중품․하품 혹은 3位)을 좇아 처소를 얻는 것은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면 천하가 우러르는 것과 같으며, 이 정(定)의 4등(等)은 4의행(意行)으로써 4대(大)를 분별하고 중생의 생․노․병․사와 아(我)․인(人)․수명(壽命)을 제도 해탈하여 본래부터 없음을 알아 대도(大道)에 이를 수 있게 함은, 마치 큰 바다가 수많은 흐름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며 모든 보배와 기묘하고 특이한 보물을 포함하는 것과 같이 온갖 법문과 총지(總持)와 변재(辯才)와 모든 정의문(定意門)이 모두 그것으로 돌아가느니라. 광명은 깊디깊은 위없는 지혜의 뜻을 연출하고, 삼보를 일으켜 융성하게 하며, 어리석고 어두운 것을 깨끗이 씻어서 일명삼매(日明三昧)의 높은 정(定)에 뛰어 이르게 하느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해가 솟았을 때
그 빛이 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어
5) 구(垢)는 때라는 말이니, 진여의 본성을 가리고 더럽게 하여 미혹하게 만드는 번뇌로 탐(貪)․진(瞋)․치(痴)를 말한다.
온갖 곡식과 하늘을 향한 것을 성숙시키는 것과 같으니
큰 정(定)은 그것보다 더 뛰어나느니라.
평등하게 온갖 여러 가지의 행과
여러 중생의 갖가지 행에 이르고
널리 나타내 두루 펼치지 않음이 없나니
제도하여 건너게 하지 않음이 없네.
의왕(醫王)이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할 적에
병에 따라 약을 주나니,
이 정(定)도 적절하게
음(婬)․노(怒)․치(癡)가 소멸하여 없어지게 하느니라.
뱃사공이 오고 가도록 건너게 할 적에
여기로부터 저 언덕에 이르는 것과 같이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제도하는 바에 끝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굳센 사자가
혼자 걸으며 두려워함이 없는 것과 같이
예순두 가지 의혹된 소견[疑見]을
이 정(定)으로 모두 항복시켜 교화하느니라.
마치 전륜성왕이
4천하(天下)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4등(等)6)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6) 자무량심(慈無量心)․비무량심(悲無量心)․희무량심(喜無量心)․사무량심(捨無量心).
큰 바다가 온갖 시냇물과
아름답고 기이한 값진 보배 받아들이듯
이 정(定)도 모든 법을 포함하여
일곱 가지 큰 재보 베푸느니라.
가령 어떤 이가 뜻을 내어
위없는 지혜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이 정의 뜻[義]을 존중하여야
바르고 참된 깨달음[正眞覺]을 빨리 얻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定)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중생들을 가엾이 여김이 마치 자기의 골수(骨髓)와 같이 여기는 것이요, 온갖 덕[衆德]의 근본을 심으면서 그의 보(報)를 바라지 않는 것이고, 4대(大)가 공(空)하여 마치 꿈과 같은 줄 아는 것이며, 5음(陰)의 근본은 아지랑이와 같음을 헤아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의 일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의 뜻[定意]을 얻고자 하는 이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를
마치 자기의 골수처럼 하며,
덕(德)을 세우되 그 보답을 생각지 않느니라.
몸의 4대(大)는 공하고
황홀하여 마치 꿈과 같다고 관하며
5음(陰)은 본래 없는 줄 헤아려야 하느니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와 같으니라.
만일 지혜로운 이라면
곧 나[我]라고 헤아리지 않고
온갖 근원을 자세히 연마하여
속히 이 정(定)의 뜻을 체득하리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중생을 감싸 기르는 것이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하는 것이요, 항상 큰 자비를 행하고 너와 나를 구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어리석은 이를 권하고 가르쳐서 도(道)로써 보여 밝히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정진하면서 도(道)에 뜻을 두되 구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을 가엾이 여겨 기르고 보살핌이
마치 부모가 자식 사랑하듯 하며
큰 사랑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고
평등한 마음으로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느니라.
권면과 교화로 어리석은 이를 이끌어
큰 도의 광명을 보게 하며
밤낮으로 바른 법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 정을 체득할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보시하되 평등하게 하고,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니면서 온갖 것에 범함이 없으며, 인욕(忍辱)의 힘으로 대승의 갑옷[大乘鎧]을 입고,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아서 게으르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이, 한마음 으로 뜻을 가다듬어 여러 가지 생각이 없게 하고, 지혜가 밝고 뚜렷하여 삼계(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시하되 바라는 바가 없고
계를 지키는 것이 산이나 땅과 같으며
인욕으로 큰 힘을 세워서
대승의 갑옷을 입을지니라.
바르게 수행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르거나 쉬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일심으로 선(禪)삼매를 닦고
지혜에는 거리낌이 없어야 하느니라.
스스로 연(緣)의 변화를 보지 않으면
그로부터 생기고 짓고 세워지는 것들이
세 곳[三處]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없어져
일심에 머무는 바가 없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定)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사람에게 편안함을 베풀고, 모든 더러운 해악[穢害]을 제거하며, 진로(塵勞)를 녹여 없애고, 따로 떨어짐[別離]을 화합시키며, 예순두 가지 사견(邪見)의 의심을 풀어 다스리고, 나[我]가 없음을 환히 알며, 언제나 열 가지의 덕을 숭상하고, 온갖 3취(趣)7)의 재난을 구제하고자 하며,
7) 사람의 성질을 셋으로 나눈 것으로, 정정취(正定聚:항상 진정하여 반드시 성불할 수 있는 분류)․사정취(邪定聚:성불할 만한 소질이 없어 더욱 타락하여 가는 부류)․부정취(不定聚:緣이 있으면 성불할 수 있고 緣이 없으면 미혹하여, 향상과 타락에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부류)를 말한다.
미세한 술수[細術]의 소견에 미혹되거나 걸리지 않고, 본래 없는[本無] 가르침을 좇으면서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편안함을 베풀어 중생을 기쁘게 하고
모든 더럽고 해치려는 생각을 없애게 하며
진로(塵勞)를 녹여 없애고
어지럽게 흩어짐을 화합시키느니라.
예순두 가지의 소견을 다스리고
나[我]가 없는 줄 분명히 알며
언제나 열 가지 덕 좇고 숭상하며
3취를 구제하고 뽑고자 하느니라.
모든 재난에 허덕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를 가엾이 여김은
마치 눈 없는 소경이 스스로
함정과 어둠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때문에 대비(大悲)를 일으켜
많은 위액(危厄)을 구제하고 해탈시키면서
깊고 원대한 지혜[深遠慧]를 분별하면
이 정의 뜻[定意]을 빠르게 증득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마음을 오로지 도에 뜻을 두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법에 대하여 자유자재로 분별함이 영묘(英妙)하며, 기뻐하는 얼굴로 온갖 것을 대하면서 중생을 자세히 관찰하고, 모든 법은 본래 없다는 것을 믿고 알며, 언제나 힘써 정진하면서 도(道)를 폐하지 않고, 큰 뜻을 세우되 영원한 안온에 뜻을 두며, 법을 따르고 보호하여 큰 정[大定]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 일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을 다잡아 오로지 도에 뜻을 두고
일찍이 딴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본래 공(空)함을 분별하며
온화한 얼굴로 모든 것을 대하라.
세 가지 해탈문[三脫門]을 환히 알아
모든 법에는 근본이 없음을 이해하며
언제나 정진(精進)을 닦으면서
도의 가르침을 폐하지 않느니라.
크고 넓은 뜻을 세워서
돕고 길러 영원한 안온에 이르며
구제하면서 미혹을 깨우쳐 주어야
초일명정(超日明定)을 얻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열 가지 일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아(我)가 없고, 다른 사람[人]이 없으며, 수(壽)가 없고 명 (命)이 없으며, 성문(聲聞)이 없고, 연각(緣覺)이 없으며, 두 가지의 법에 처하지 않고, 보살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을 보려고 생각조차도 않고, 생사(生死)에도 있지 않으며, 열반에도 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我]와 다른 사람[人]을 보지도 않고
자신의 수명[壽]과 목숨[命]도 헤아리지 않으며
성문이라는 마음도 없고
연각이란 생각도 없애네.
두 가지 법에 처하지 않고
보살에 대하여도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을 뵈려고도 생각지 않고
있다 없다는 극단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확연히 스스로 보지도 않아야
비로소 온갖 것이 공(空)임을 보며
인연(因緣)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비로소 정의 뜻[定意]을 이루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일의 법[八事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사(邪)와 정(正)을 평등하게 보아 두 마음이 없고, 언제나 삼보를 염(念)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으며, 깊은 법의 뜻을 연설할 때에는 일찍이 담화(談話)하는 일이 없으며, 업(業)은 대승(大乘)을 닦으면서 연각과 성문[弟子]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짓는 바는 법에 수순하면서 부처님 도[佛道]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평등하고 바른 방편으로 모든 일어남과 소멸함을 없애는 것이요, 인연(因緣)이란 생각이 영원히 다 소멸하여 없어져 뜻의 그침[意止]이 지극히 고요하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이요, 한마음으로 정의 뜻[定意]을 삼으면 시방을 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덟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평등하게 모든 사(邪)와 정(正)을 관하여
두 가지에 다 함께 처(處)한 바가 없으면서
언제나 삼보를 염하여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라.
깊은 뜻의 법요(法要)를 연설할 때는
일찍이 다른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업(業)은 대승에 이바지함으로써
소승(小乘)을 사모하지 않게 되느니라.
짓는 바는 언제나 법에 수순하고
부처님의 바른 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평등하게 방편을 행하고
모든 생멸[起滅]의 인연 없앨지니라.
뜻의 그침은 지극히 고요하면서
일찍이 산란함을 일으키지 말 것이며
한마음으로 정(定)의 뜻에 두면
시방의 부처님을 밝게 볼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빛깔은 본래부터 공(空)인 줄 알고, 소리는 부르는 메아리와 같으며, 냄새는 마치 바람 등과 같고, 맛은 연(緣)이 합한 것과 같으니, 부드럽고 섬세한 것을 바라지 않고, 식(識)은 요술과 같은 줄 알며, 모든 법은 꿈과 같음을 환히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빛깔이란 본래부터 공하고
귀의 소리는 마치 부르는 메아리와 같으며
코로 맡는 냄새는 바람과 같고
부드럽고 섬세한 것은 더욱 허물임을 환히 알며,
모든 식(識)은 요술이요 허깨비이며
온갖 법은 곧 꿈인 줄 알 것이니
이와 같이 능히 분별하게 되면
초일명정(超日明定)을 얻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얻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마음이 시방의 사람이나 비인(非人)에게 평등하고, 공양에 대한 이익에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으며, 만일 강설한 경이 있었으면 나중에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값진 재색(財色)을 탐하지 않으며, 미묘하고 비유하기조차 어려운 법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평등한 마음으로 시방의
사람이나 비인에게 차별 없이 대하며
만일 공양을 얻게 되더라도
그 뜻에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어야 하느니라.
가령 경의 강설을 받은 이면
죽을 때까지 다투거나 잊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재물과 이익을 바라지 않으면서
깊이 들어가야 비로소 정(定)을 체득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공(空)․무상(無相)․불원(不願)의 법을 초월하고, 3달지(達智)를 환히 알며, 변재(辯才)에 거리낌이 없고, 큰 지혜를 수행하여 무극(無極)으로 건너가며, 선권방편으로 득입(得入)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의 일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무상․무원을 초월하고
3달지를 분명히 알며
변재가 한량없어서
연설한 바가 큰 바다와 같을지니라.
큰 지혜를 닦고 행하여
무극으로 건너가고
방편은 모든 곳에 두루 하니
일명정(日明定)은 바로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30억의 보살이 모두 불기법인을 얻었고, 8만4천 인(人)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냈으며, 3만 인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안(法眼)이 청정해졌고, 8천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이때 삼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하늘에서는 향기로운 꽃비가 내렸으며, 공후(箜篌) 등 악기는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고,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 모여들었다. 시방의 보살들도 각자 날아와 저마다 모든 꽃을 수미산만큼 가지고 부처님 위에 뿌렸고, 여러 가지 의복과 값진 보배로써 세존께 공양하였다.
“큰 성인[大聖]을 만나기 어려움은 마치 우담발화와 같은데 때마침 만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법도 매우 드물어서 만나기 어려운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크나큰 신통으로 수없는 겁으로부터 공덕을 쌓으시어 크고 넓은 자애를 품으시니,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와 선권방편 모두가 중생을 위한 것이어서 저절로 얻게 되는 그 공(功)은 헛되이 버려지지 않았나이다. 저희는 좋은 이익을 위하여 여래를 뵙게 되었고, 깊고 미묘한 법의 초일명정 (超日明定)을 듣게 되었으니, 유쾌하고 유쾌하나이다. 어찌 이보다 더한 요행이 있겠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말한 바와 같아서 하나도 다름이 없느니라. 깊은 법을 믿고 능히 좇아 닦는 이는 당연히 초일명정의 열 가지 지혜의 덕을 체득할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4등(等)을 완전히 갖추고, 4은(恩)에 물림[厭]이 없으며, 큰 지혜를 좇아 숭상하고, 큰 정[大定]을 널리 펴며, 신통이 곧 통달하고, 6도(度)와 불기법인과 선권방편을 성취하며, 시방의 부처님을 뵈옵고, 국토를 능히 다스리며, 일생보처가 되고, 이미 도량에서 3달(達)의 지혜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수없는 보살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다.
그때 이구목(離垢目)이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의 배움이라 하고, 무엇을 성문의 배움이라 하며, 무엇을 연각의 배움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끝이 없고[無限] 걸림이 없으면서[無礙] 그 마음이 태연한 것을 보살의 배움이라 하는 것이요, 한계가 있고 걸림이 있으면서 그 마음에 치우침이 있는 것을 바로 성문의 배움이라 하며, 대승(大乘)을 바라고 사모하면서도 나아가고 물러감에 지혜가 없어 마음이 중간에 머뭇거리는 것[中跱]을 바로 연각의 배움이라 하느니라.”
이구목이 또 물었다.
“무엇을 끝이 없다 하고, 무엇을 거리낌이 없다 하며, 무엇을 마음이 태연한 것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어 온갖 것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기어 다니고 숨을 헐떡거리는 사람과 만물을 제도하고자 하며,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와 선권방편을 행하되, 다만 모든 중생을 위할 뿐 자기 몸은 생각지 않으며, 4등(等)의 마음인 자(慈)․비(悲)․희(喜)․호(護)를 따르고, 또한 4은과 지혜로써 어짊과 사랑을 베풀며 사람을 이롭게 하되, 온갖 것에 평등하고 이롭게 하면서 위액(危厄)과 궁핍을 구제하며, 그들을 교화하여 도(道)를 닦게 하고 지혜를 닦게 하면서 보살도를 배우게 하는 것이니라.
스스로 제 몸의 허물을 반성하면서 다른 이의 결점은 살피지 않고 공경하는 것을 마치 부모와 같이 하고 자식과 같이 하고 제 몸과 같이 하면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게 하며, 몸소 공경하는 덕으로써 온갖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온갖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며, 원수나 친한 벗에 따라 특별히 다른 마음이 없고, 몸이 공(空)하여 중생의 어느 곳에나 처하며, 나 자신도 그러할 뿐[自然]이요, 모든 법 또한 자연 그대로이며 도의 법[道法]도 자연 그대로요, 부처님 법도 자연 그대로이며, 온갖 것은 본래부터 없어서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는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끝이 없는 것이니라.
생사의 근원에서 열반을 구하여 찾되 열반을 보지 않고, 열반의 근원에서 생사를 구하여 찾되 역시 생사를 보지 않고, 생사를 미워하지도 않고 열반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머무를 바 없는[無所住] 데에 머무르는 것이 마치 햇빛이 두루 비추면 모든 것에 빠짐없이 이르되 역시 가고 오는 것이 없고 광명도 생각이 없는 것과 같나니, 보살도 역시 이와 같아서 온갖 것에 두루 들어가되 역시 들어가는 바가 없고, 또한 가고 오고 돌아다닌다는 생각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에 7보로 된 명월주(明月珠)가 있으면 용․신․교룡․뱀․자라․거북․고기 등이 모두 그것을 받아들이는데도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그 물도 하나의 맛이어서 또한 더러워짐도 없는 것과 같나니,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현재의 생사의 3취의 재난에서 설령 열반의 무위(無爲)의 경계에 이르게 되어도 일찍이 더하거나 덜함이 없어 마음은 마치 명주(明珠)와 같고 또는 맑은 물과 같아서 끝내 더럽거나 흐리지 않느니라. 널리 중생을 구제하여 모든 신통과 지혜와 평등으로 들어가 그로써 중생에게 보이는 것은, 마치 허공 가운데 독이 있는 나무와 약이 되는 나무[藥毒樹]가 생겼을 때에 그 독이 있는 나무가 허공을 해치지 못하고 그 약이 되는 나무가 허공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생사의 3독(毒) 가운데 있다 하여도 더러워지는 바도 없고, 가령 열반의 청정한 곳에 있다 하여도 역시 청정해시는 바가 없나니, 다 같이 중생을 제도하면서 구제하지 않는 바가 없느니라. 비록 들어감이 있다 하더라도 역시 나고 들고 오고 가고 돌아다님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걸림이 없다[無礙]고 하느니라.
도의 마음[道心]은 한계가 없어서 일정한 곳에 있지 않고 사람도 없고 마음도 없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도 없어, 마음은 일체법과 같아서 그 나아가는[趣] 데와 같은 것이니, 이렇게 되면 곧 평등한 데로 나아가고, 그 평등한 데로 나아가면 곧 바르고 평등하게 깨달아 삼계도 없느니라. 성문의 자리[聲聞地]도 없고 연각의 처소[緣覺處]도 없으며 보살의 머무름[菩薩住]도 없어서 유위(有爲)에 처하지도 않고 무위(無爲)에 처하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으며, 또한 과거․미래․현재의 처소도 없으며, 제도하되 제도하는 바가 없고, 생(生)하되 생하는 바가 없으며, 도적(道跡)도 본래 없고 왕래(往來)도 본래 없으며, 돌아오지 않음(不還)도 본래 없고 집착하지 않음(無著)도 본래 없으며, 연각도 본래 없고 삼계도 본래 없으며, 중생도 본래 없고 불도(佛道)도 본래 없으며, 이 본래 없다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진실로 본래 없는 것이요 좋아하거나 싫어할 바도 없나니, 이것을 바로 그 마음이 태연하다고 하느니라.”
이구목이 또 물었다.
“무엇을 한계[限]가 있다고 하고 무엇을 걸림[礙]이라 하며, 무엇을 그 마음에 치우침이 있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고 죽는 삼계의 우환을 두려워하고 미워하여 열반이 제일이라고 말하며, 그대로인 법과 몸을 싫어하는 괴로움을 분명히 모르고 수없는 겁 동안 진로(塵勞)에 돌아다니는 것을 꺼리며, 보시․지계․인욕․일심․정진과 지혜를 배우면서 게으르지 않고 머리․눈․귀․코․골수․뇌․살과 팔다리 등 있는 바를 베풀어 주는 것이 한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이런 마음을 미리 품고서, 곧 물러나 보살의 법을 배우지 않고 몸을 없애려고 하는 이것을 바로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미 아라한이 되어서 제도할 삼매(三昧)와 선식(禪息)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되는데, 온갖 근본을 미리 볼 수가 없고 병에 따라 약을 주지도 못하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어도 더러운 것이 흐르는 이 깨끗하지 못한 몸을 관찰하고는 즐거운 것이라고 보지 못하는 것이, 마치 원수나 도적과 같고 살무사와 같고 독과 같다고 하면서 일찍 열반을 증(證)하려고 하나니, 이것을 바로 걸림[礙]이라 하느니라.
열반에 머무르면서도 광명을 좋아하고 어둠을 싫어하며, 모든 법에는 도무지 근본이 없음을 알지 못하여 입장을 밝혀서 공의 지혜[空慧]를 모르니, 이것을 바로 그 마음에 치우침이 있다 하느니라.“
이구목이 또 부처님께 물었다.
“무엇을 중간에 머뭇거리는 것[中跱]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을 냈으면서도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가 모두 허망한 생각하며, 세존의 32상과 80종호를 얻고자 하면서도 위신과 거룩한 덕은 중생과 매우 다르다고 여기며, 본래부터 여래의 교화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모르면서 몸과 목숨을 나타내 보이며 도리어 여래의 교화를 구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이 나를 제도하려 하면서도 본래 공함을 알지 못하면서 4등심을 행하고 4은에 집착하는 것이요, 공(空)에 이르러서도 소견[見]이 없고, 인(因)을 위하여 그침이 없으며, 진퇴(進退)를 알지 못하고 공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며,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도 선권방편과 법신의 밝음이 없으면서 제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연각의 배움이라 하느니라.”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수없는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향해 발심하였다.
이때에 장자의 아들 정교(淨敎)가 5천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가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든 무리들은 부처님 법을 좋아하여 모두 도(道)에 뜻을 두고 있나이다. 어떠한 행(行)을 쌓아야 도의 지혜[道慧]에 이르게 되며, 어떠한 법을 시행하여야 부처님 국토[佛土]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의 뜻에 상응하는 한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한 가지인가? 심성(心性)을 부드럽게 하고 평등하게 가져 온갖 것을 대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한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심성이 언제나 부드럽고
의지(意志)가 거칠지 않으며
평등하게 온갖 것을 섭수(攝受)하여야
비로소 보살행에 상응하느니라.
“다시 또 보살행에는 두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마음이 청정하여 모든 집착하는 견해[著觀]을 여의고 삿된 소견이 없이 관(觀)하면서 오직 대도(大道)에만 뜻을 두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두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이 청정하면서 언제나 고요하고
삿된 소견과 모든 집착하는 관을 여의며
예순두 가지 의심을 풀고
오직 대도행(大道行)만을 염(念)하느니라.
“또 보살행에는 세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공(空)을 환히 알아 집착하지 않고, 무상(無相)에 속박되지 않으며, 무원(無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은 언제나 공을 환히 알고
모양 없는 것에 다시는 속박되지 않으며
원(願)이 없는 데서 벗어남이 없어야
비로소 삼계의 번뇌에서 해방되느니라.
“또 보살행에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언제나 인자한 마음을 준수하여 해치려는 뜻이 없고, 도의 교화[道化]를 기르면서 언제나 자비를 닦는 것이요, 중생이 나고 죽고 하면서 겪는 괴로움을 가엾이 여기어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이며, 언제나 기쁘게 하는 뜻[喜意]을 받들어 화창하고 기쁜 얼굴빛으로 중생들을 대하면서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요, 언제나 보호하는 마음을 행하여 중생에게 권하고 가르쳐서 도의 뜻을 내게 하고, 이미 도의 뜻을 일으켰으면 불퇴전에 이르게 하며, 이미 불퇴전하였으면 도량에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언제나 4등심(等心)을 준수하여
얼굴을 화창하게 하고 뜻을 기쁘게 하며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고
불쌍히 여기어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느니라.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은
평등하여 미워함과 사랑함이 없으며
도의 법[道法]으로써 구호하여야
비로소 보살행에 상응하느니라.
“또 보살행에는 다섯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금계(禁戒)를 받들면서 범한 바가 없고, 정의(定意)로 뜻을 가다듬어 마음을 담박(淡泊)하게 하며, 지혜로써 공(空)을 알아 일으키는 바가 없고, 5음을 벗어나서 처소가 없게 하며, 삼계를 나타내 보이되 아무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계율을 지니면서 범하는 바가 없고
삼매로 뜻이 어지럽지 않으며
지혜로써 공(空)임을 분별하고
5음의 무더기를 제도․해탈하느니라.
3세(世)의 재액(災厄)을 보면서
그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이며
인연을 따르면서 깨우치고 교화하여
저마다 그 알맞은 바를 얻게 하느니라.
“또 보살행에는 여섯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가 공(空)이고, 귀로 듣는 것도 소리가 없으며, 코로 맡은 것은 냄새가 없고, 입으로 말한 것은 말이 없으며, 몸에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고, 마음에는 생각[思想]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눈으로 보는 바는 모두가 공이요
귀로 듣는 것도 소리가 없으며
코의 냄새에도 집착할 바 없거늘
혀의 맛인들 무엇이 있겠느냐?
몸은 다만 4대(大)라고 헤아릴 뿐이요
마음은 본래 공하다[本空]는 것을 환히 알며
이와 같이 형상이 없는 줄 깨달아야
비로소 보살행에 상응하느니라.
“또 보살행에는 일곱 가지 법[七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몸과 입과 뜻을 가다듬고, 고요하며[寂], 안정[定]하며, 어지럽지 않고, 다시는 어기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언제나 자기의 몸과 입을 가다듬고
그 마음은 고요하여 어지럽지 않으며
적막하여 정(定)의 삼매에 들면
신통이 통달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또 보살행에는 여덟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시도무극(施度無極)․계(戒)도무극․인(忍)도무극․진(進)도무극․적정(寂定)도무극․지(智)도무극․권(權)도무극․밝은 지혜의 행[明慧行]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덟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시의 도무극과
계와 인과 정진과 선(禪)과
지혜로 자연(自然)히 통달하며
도의 밝음[道明]이 가장 높으니라.
“또 보살행에는 아홉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아홉 가지인가? 5음을 없애고, 6쇠(衰)를 버리며, 3구(垢)를 소멸하고, 8난(難)을 제거하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3세를 사모하지 않으며, 아라한의 마음을 여의고, 연각의 뜻을 멀리하며, 언제나 대도(大道)에 뜻을 두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아홉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5음과 6쇠를 제거하고
3구와 8난이 없으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3세에 처(處)하는 바 없느니라.
아라한의 마음을 여의고
연각의 생각이 없으며
언제나 큰 도를 사모하고 구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니라.
“또 보살행에는 열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법보삼매(法寶三昧)․선주(善住)삼매․무동(無動)삼매․도무전(度無轉)삼매․보적화(寶積華)삼매․일광요(日光耀)삼매․제리의(諸利義)삼매․현재(現在)삼매․혜광요(慧光耀)삼매와 용맹복(勇猛伏)삼매로서, 이로써 초일명(超日明)삼매를 얻으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법보삼매와
선주와 무소동(無所動)삼매로써
똑바로 서게 되어 동요함이 없으며
보적화 삼매와
광요와 제리의와
현재와 혜광명과
용맹복 삼매라야
비로소 초일명을 얻게 되느니라.
“또 이구목아, 보살의 보시는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간탐(慳貪)하는 이를 개화하여 인색한 마음을 없게 하고, 보살이 준수하는 계율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방자(放恣)한 이를 교화하여 재앙과 허물이 없게 하며, 보살의 인욕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화내고 성내는 이를 교화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림이 없게 하고, 보살의 정진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게으르거나 그만둔 이를 교화하여 부지런히 힘쓰게 하며, 보살의 일심(一心)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익히리니 마음이 산란한 이를 교화하여 뜻이 안정되고 고요하게 하며, 보살의 지혜는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가리고 거리낀 이를 교화하여 거룩한 법을 통달하게 하느니라.
보살이 자(慈)를 행하면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워하리니 어질지 않은 이를 교화하여 똑같이 유순하고 사모하게 하고, 보살이 비(悲)를 행하면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워하리니 어리석고 미혹된 이를 교화하여 중생을 가엾이 여기게 하며, 보살이 기쁘게 하면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근심 걱정하는 이를 교화하여 법고(法鼓)에 저절로 즐거워하게 하고, 보살이 보호[護]를 행하면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워하리니 남을 도와줌이 없던 이를 교화하여 온갖 것을 돕고 보살피게 하느니라.
보살이 법을 연설하면 하늘과 사람들은 듣기를 좋아하리니 세속에 뜻을 둔 이를 교화하여 성전(聖典)을 사모하게 하고, 보살이 겸손하고 애쓰면 하늘과 사람들은 공손하기를 좋아하리니 교만한 이를 교화하여 삼보를 받들어 공경하게 하며, 보살이 사람을 이롭게 하면 하늘과 사람들은 은혜를 좋아하리니 의리 없는 이를 교화하여 널리 은혜를 베풀게 하고, 보살이 평등을 행하면 하늘과 사람들은 참여하기를 좋아하리니 마음이 넓지 못한 이를 교화하여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을 접하게 하느니라.
보살은 방편을 행하여 모든 중생을 섭수하고 그들을 선(善)이 되게 교화하여 평등한 깨달음을 이루게 하나니, 모두 다 그 나라에 나게 되며, 보살은 37품(品)을 행하여 중생을 섭수하고 의지(意止)․의단(意斷)․근(根)․역(力)․각(覺)․도(道)로 중생을 통섭하여 적연(寂然)하게 하나니, 만일 성불(成佛)한 때에는 모두 다 그 나라에 나게 되느니라.
보살은 큰 모임[大會]에 있으면서 깊고 미묘한 법을 강설하여 꿈틀거리는 미물(微物)까지 모조리 다 초월하고 제도하려 하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다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살은 열 가지의 덕을 행하여 그로써 중생을 섭수하고 그들을 모두 교화하여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게 하며, 보살은 경(經)을 설하여 여덟 가지의 재난을 제거함으로써 중생을 섭수하여 8정도(正道)를 행하게 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가 다 그 나라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보살은 자기 자신을 반성하면서 다른 이의 허물을 구하지 않으며, 중생을 섭수하여 모든 사견(邪見)과 예순두 가지의 의망(疑網)을 여의게 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살은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섭수함으로써 여덟 가지의 속박을 벗어나게 하고 여덟 가지의 해탈을 얻게 하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그 나라에 태어나느니라.
보살은 법을 연설하여 여덟 가지 사의(思議)를 없애고 불가사의한 법문의 바다에 이르게 하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살이 법을 연설하여 가령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하게 되면 불사(佛事)를 이루어 열반을 나타내 보이며 한량없는 사람들을 제도하여 모두 도(道)를 얻게 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이구목아, 보살이 행할 본말(本末)이 이와 같나니, 이 행(行)에 상응함으로써 자연(自然)이라 이름하며, 국토를 세워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이구목과 장자의 아들과 5천 권속들은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면서 바로 그때에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체득하였다.
이때에 견정(見正)이라는 거사(居士)가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언제나 부처님의 소문을 듣고 한번 받들어 뵙고자 생각하였사오나, 죄가 이를 가렸기 때문에 스스로 이를 수 없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 뜻을 이루게 되어, 뛸 듯이 기쁜 마음 한량없나이다. 세존을 친견함에 싫어함이 없고 법을 들음에 게으르지 않사오니, 오직 크신 은혜만을 더하시어 저로 하여금 세세생생 천존(天尊)을 뵈옵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이를 행하면 언제나 부처님을 여의지 않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언제나 여래의 서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염(念)하고, 경의 깊은 뜻을 듣고는 곧 믿고 받들어 행하며, 비록 부처님을 뵙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래부터 없음을 분명히 알고, 시방의 부처님은 곧 하나의 법신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일이어서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느니라.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이로 인해 비록 바로 앞에서 부처님을 뵙는다 하더라도 뵙지 못한 것이니라. 여래가 현재 계시는데도 가서 경을 듣지 않고, 그의 뜻을 탐구하지 않으며, 받들어 행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비록 바로 앞에서 부처님을 뵈었다 하더라도 곧 뵙지 못한 네 가지이니라.
또 부처님을 뵌 어떤 이가 스스로 나[我]를 헤아리고 무상[非常]․고(苦)․공(空)․비신(非身)을 알지 못하여 네 가지 뒤바뀜[顚倒]에 떨어지며, 경(經)을 듣고 음성에 집착하여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인 줄 분별하지 못하면, 그런 사람에 있어서의 몸은 곧 없어질 대상이니라. 그러나 부처님께서 멸도하시어 세간에 출현하지 않는다 하여도, 그 사람이 경을 듣고 흔연(欣然)히 마음이 열리는 것이 마치 어둠에서 광명을 본 것과 같아, 여래께서 세속을 따라 변화를 나타내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도(道)의 가르침8)을 받들어 행하고 경전을 어기지 않으며, 외도의 사법(邪法)인 예순두 가지 소견을 여의고 네 가지 평등심을 행하되 미워함도 없고 사랑함도 없으면, 부처님께서 비록 멸도하였다 하더라도 뜻의 통달[志達]이 이와 같다면 언제나 서로 뵙고 있는 것이니라.”
다시 물었다.
“무엇을 부처님을 뵈었다 하고 무엇을 법을 들었다 하며, 무엇으로 인하여 공양(供養)하였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의 몸을 보면서 어떠한 행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을까? ‘본래 여섯 가지의 도무극(度無極)으로 온갖 것을 불쌍히 여김이 마치 부모님과 같았
8) 원문에는 ‘도금(道禁)’으로 되어 있으나, 다른 본에는 ‘도교(道敎)’로 되어 있어, 다른 본을 따라 번역한다.
으며 아들과 같고 자기 몸과 같이 하면서 4대를 탐하지 않으셨다’고 관하여 알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을 뵙는 것이니라. 연설하는 경법(經法)을 들으면서 음성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그 법만을 취할 뿐이요 사람을 취하지 않으며, 요점만을 취할 뿐 소리를 취하지 않으며, 지혜만을 취할 뿐 형상을 취하지 않으며, 바른 것만을 취할 뿐 말을 취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경을 듣는 것이니라. 만일 도적(道跡)․왕래(往來)․불환(不還)․무착(無著)․연각(緣覺)․세존(世尊)․보살(菩薩)을 보고서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하여 겸손하면서 낮추어 순종하며 교만을 부리지 않으면, 성인들을 보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무엇을 악마의 일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마에는 네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악마[身魔]이니, 몸으로 온갖 악[衆惡]과 5음(陰)과 6쇠(衰)를 범하면서 부처님 법에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욕진의 악마[欲塵魔]이니, 애욕의 정태(情態)가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죽음의 악마이니, 모든 생각과 집착을 내면서 법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하늘의 악마이니, 그의 권속들이 와서 시험하며 빌고 구하되 만족해함이 없고, 의지(意止)와 의단(意斷)을 악마가 곧 항복시키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양쪽의 나무를 서로 비비면 저절로 불이 일어나 도리어 그 나무를 태우지만 그 불은 물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바람에서도 나오지 않았으며, 땅에서도 나오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네 가지의 악마라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요, 밖으로부터 오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이가 형상을 그려 만들 적에 손에 따라서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하거니와, 비록 조건들이 갖추어져 물감이 있고 그림을 그릴 판자가 있고 붓이 있다 하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이가 그리지 않으면 형상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네 가지 악마도 그와 같아서 마음이 이미 견고하여 곧 일으키는 바가 없으면 곧 네 가지 악마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5음은 처소가 없고 4대도 본래부터 없으며 12인연은 단서(端緖)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분명히 깨달아 알면 악마의 일은 없거니와 아(我)․인(人)․수(壽)․명(命)이 있다고 헤아리면, 악마의 견박(見縛:見惑)에 떨어지는 것이니, 몸은 없다[無身]고 분별하여야 비로소 악마를 항복시킬 수 있다.”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법보(法寶)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보인 불(佛)․법(法)․승[聖衆]을 끊지 않는 것이니라. 무엇을 끊지 않는다고 하는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켜 모든 덕의 근본[德本]을 이루는 것이 마치 수미산과 같고, 대승(大乘)을 믿고 좋아하면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며, 먼저 상서로운[嘉瑞] 삼천 불국토를 보고 억백천 년 동안 모두 완전히 갖추어 수승하여 필적하기 어려운 총지를 이루므로 시도무극(施度無極)을 성취하고 통달하며, 처음 발심(發心)할 때에 몸의 편안함을 버리고 언제나 온갖 즐거움을 조심하면서 즐거워할 바를 즐거움으로 삼지 않고 세속의 그리워할 바를 버리고, 법으로써 즐거움을 삼는 것이니라.
무엇을 세속의 즐거움이라 하는가? 아(我)․인(人) 수(壽)와 5음․6쇠․12인연과 기악(伎樂)․음식(飮食)․관작(官爵)․봉록(俸祿)․재물(財物)․부귀(富貴)․처자(妻子)․노비(奴婢)․권속(眷屬)과 경영하고 관리하는 집과 토지며 소․말․마차 등은, 바로 세속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법의 즐거움이라 하는가? 무아(無我)․무인(無人)․무수(無壽)․무명(無命)을 분명히 깨달아 알면서 5통(通)․6달(達)․12부경(部經)과 보살의 도법(道法)을 소리 내어 읽고 읊고 외우며 일곱 가지의 법재[七法財]9)에 대하여 염증을 내지 않고, 4은(恩)의 행과 4등심인 자․비․희․호를 행하며, 6도무극으로 뭇 선행을 하고, 기어 다니거나 헐떡거리는 사람과 만물의 무리들을 해치지 않으며 국토를 다스리되, 스스로 칭찬하지도 않고 그 밖의 다른 것도 헐뜯지 않으며 그 마음이 간절하면서 언제나 온갖 것에 뜻을 두는 것이니, 하늘․신․용․귀와 백성들 가운데 이 사람을 보는 이는 누구나 뜻을 일으켜 그 덕을 칭찬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법의 즐거움이니라.
9) 7성재(聖財)라 하며 견도(見道) 이후의 성자를 일곱 가지로 나눈 것으로 신(信)․계(戒)․문(聞) 참(慙)․괴(愧)․사(捨)․혜(慧) 혹은 신(信)․정진(精進)․참계(慚戒)․귀(愧)․문사(聞捨)․인욕(忍辱)․정혜(定慧).
또 열 가지의 일을 행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신근(信根)이 첫째이고, 정근(定根)을 근본으로 삼으며, 대자(大慈)를 으뜸으로 삼고, 대애(大哀)를 높이 여기며, 뜻하는 성품[志性]이 부드럽고 모든 신통과 지혜가 바르며, 중생을 건립하고 4은이 우두머리가 되며, 도품(道品)이 으뜸이요, 불법을 수호하는 데에 뜻을 두어 그것의 하인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또 열 가지의 행을 범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몸으로는 살생(殺生)․투도[偸盜]․음행(婬行)을 하지 않고, 입으로는 망언(妄言)․양설(兩舌)․악구(惡口)․기어(綺語)를 하지 않으며, 뜻으로는 에질(恚嫉)․호의(狐疑)․사견(邪見)을 갖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시방을 가엾이 여김이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듯 하고, 색(色)․통(痛)․상(想)․행(行)․식(識)에 어지러워지지 않으며, 세속 사람에게 미혹 당하지 않고 영화(榮華)에 속지 않으며, 탐하는 사람을 좇지 않고 성내는 사람을 좇지 않고 어리석은 이를 좇지 않으며, 삼보를 비방하지 않고 속임수[譎詭]를 품지 않으며, 여섯 가지 염[六念]10)을 일으켜 불(佛)․법(法)․승[衆]을 행하면서 믿음과 지혜를 베풀고, 나고 들고 걸을 적에 뽐내지를 않으며, 처음 뜻을 낸 이는 마치 달이 처음 생겨서 반드시 가득 차게 되는 것과 같나니, 하늘․용․귀신이 보고 옹호하게 되어서 사악(邪惡)한 소견에 중독되지 않으며, 마음을 세 가지 법에 두어 도(道)로써 보배를 삼고 세간을 무상(無常)한 것으로 여기느니라. 이것이 바로 법보삼매이니라.”
이구목이 또 물었다.
“무엇을 선주(善住)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땅이 좋은 것․나쁜 것․맛있는 것․쓴 것․냄새 나는 것․향기로운 것과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모조리 다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온갖 것을 받아들여 스스로 닦고
10) 이 여섯 가지 염을 닦으면 선정을 얻어 열반에 이른다고 한다. 염불(念佛)․염법(念法)․염승(念僧)․염계(念戒)․염시(念施)․염천(念天)을 말한다.
세우되,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가 편편한 것이 마치 손바닥과 같고, 뭇 보배와 연꽃으로 장엄되었다고 보면서 수승하고 비유하기 어려울 총지를 이루게 되므로 곧 초월한 계도무극(戒度無極)을 이루게 되느니라.
또 열 가지의 일을 행하여 여덟 가지 재난을 제거하느니라. 성문이나 연각의 승(乘)을 건너 부처님의 덕을 건립하고,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한 모든 일과 연유한 바는 모두 부처님 법을 따르고, 뜻하는 성품[志性]을 엄숙하게 3취(趣)의 액(厄)을 제도하고, 모든 소원을 원만하게 갖추며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몸은 언제나 자비를 행하면서 절도(竊盜)하지 않고 음탕하지도 않으며, 경전을 강의하되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하게 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다툼을 화해시키되 말이 부드러우면서 거칠지 않으며, 일찍이 교묘하게 꾸며대는 일이 없고 탐욕을 버리면서 보시를 생각하며, 사람들의 안녕과 조화를 위하고 사견(邪見)을 여의면서 바른 법을 즐기며, 언제나 무상․고․공․비신을 관하여 세속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법을 판단의 근거로 삼으며, 마음은 스스로 닦고 존립하면서 언제나 미치지 못함을 근심하고, 몸으로는 이로움을 찾지 않고 5음(陰)이 곧 손상시킨다고 보며, 5욕(欲)을 없애려고 하고 부처님 도를 존중하면서 회한(悔恨)을 가지지 않으며, 하늘은 무상하다고 살펴 알고 사람은 마치 꿈과 같다고 관하며 3도(塗)는 가장 괴로운 것이라 그들을 가엾이 여기고 슬퍼하느니라.
어떠한 방편으로써 스스로 생사와 5음의 재난을 구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교화시키느냐 하면, 시방의 사람들이 곧 내 것[我所]이라고 헤아리는 까닭에 그들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려 할 적에, 와서 침범한 이를 보아도 그의 악(惡)을 생각하지 않고, 만일 매우 이롭게 하는 이라도 치우치게 좋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욕설을 퍼붓는 이를 보아도 잠자코 있으면서 보복하지 않고, 만일 회초리로 때리는 이라도 받아들이면서 겨루지 않으며, 만일 성을 내는 이라도 인자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고, 만일 업신여기면서 헐뜯는 이라 하더라도 불쌍히 여기면서 해치지 않는 것이다.
또 스스로 수없는 겁으로부터 생사 중에 있으면서 5음으로 가려져 스스로 구제되지 못했으며, 마음이 헷갈리고 뜻이 미혹하여 다섯의 강물에 흐르고 네 가지 두려움의 근심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물은 무상하고 몸은 나의 소유가 아닌 줄 알아 재물이 있으면 능히 보시하고, 착한 벗을 구하여 가까이하고 나쁜 벗을 멀리하고, 뜻을 일으켜 부처님을 향하며, 항시 높은 경전의 뜻을 구하고 세간의 이름을 구하려 하지 않으며, 행은 언제나 공경하고 겸손하며 뜻은 믿음[信]․계율[戒]․견문[聞]․보시[施]․지혜[慧]와 도(道)에 두고, 의혹과 범금(犯禁)과 해태(懈怠)와 간탐(慳貪)과 우치(愚癡)에 의해 도의 뜻을 버리지 않느니라.
언제나 법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마치 굶주린 이가 밥을 구하듯 하고, 차츰차츰 도(道)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샘물이 멀리서 흘러 나와 점차 바다로 들어가듯 하며,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낳아 젖을 먹여 키우듯 생산을 조절하여 생활을 유지하되 축적하지 않으며, 부모․형제․처자․노비․객사(客使)에게 나누어 주되 모두 가엾이 여겨 제도하여 3도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삼계를 초월하게 하며, 삼존인 불․법․승[聖衆]에 귀명하고 3달지(達智)와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으며 3구(垢)에 더럽힘을 당하지 않는 것이니, 그가 이와 같은 것을 행한다면 그것 그대로가 선주(善住)삼매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무동(無動)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사자나 모든 사슴 왕은 뭇 짐승들이 두려워할 만한 위력으로써 항복시키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스스로 나타나 용맹스럽게 다섯 가지 병기를 잡고 잘 머무르는 총지(總持)를 이루기에 곧 초월하는 인도무극(忍度無極)을 이루느니라.
이에는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인욕을 근본으로 삼고, 믿음의 기쁨[信悅]을 추진력으로 삼으며, 온갖 사람에게 깊고 묘한 법인(法忍)을 가르치고, 모든 번뇌를 흩어 끊으며, 장애됨을 없애고, 몸의 근원을 연모하지 않으며, 수명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고, 모든 신통과 지혜로써 하여, 3탈문(脫文)을 초월하며, 법의 평등함을 관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몸과 입과 뜻을 계호(戒護)하면서 언제나 모든 법으로써 인연을 일으키니, 무엇을 법의 즐거움[法樂]이라 하는가? 부처님 법을 즐기면서 세속의 법을 좋아하지 않고, 즐거이 경전을 들으면서 세간의 언담(言談)을 생각하지 않으며, 대중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면서 세속의 무리에는 가담하지 않고, 다만 삼보(三寶)만을 좋아할 뿐 3구(垢)에는 뜻을 두지 않으며, 즐거이 3처(處)를 제도하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즐거이 지․수․화․풍 4대(大)를 관하면서 내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고, 즐거이 사람과 만물을 편안하게 하여 위험과 해로움을 끼치지 않으며, 소유한 것을 즐거이 보시하여 간탐을 부리지 않고, 즐거이 금계(禁戒)를 받들어 준수할 바를 어기지 않으며, 즐거이 욕됨을 참아서 덕의 근본을 잃지 않고, 즐거이 정진에 힘쓰면서 죄의 근원을 만들지 않으며, 즐거이 한마음으로 선(禪)을 행하여 뜻을 어지럽게 하지 않고, 즐거이 지혜의 깊이를 더하여 미혹되지 않느니라.
즐거이 진로(塵勞)를 교화하여서 때가 끼거나 흐려지지 않게 하고, 불국토가 청정한 것을 좋아하여 개화(開化)를 싫어하지 않으며, 즐거이 도법(道法)을 장엄하여 그릇된 법은 장엄하지 않고, 즐거이 3탈문으로 공(空)․상(相)․원(願)을 여의며, 무위(無爲)의 법을 즐기면서 속세의 거짓을 즐기지 않고, 깊은 법에 즐거이 들어가되 절개를 잃지 않으며, 즐거이 기쁜 데에 뜻을 두어 성냄과 진실이 아닌 것을 여의고, 자연법(自然法)을 즐기면서 또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며, 착한 벗을 즐거이 사귀어 세간의 이익으로 인해 가까이한 사귐은 멀리하고, 즐거이 늘 도(道)에 뜻을 두어 미혹된 일을 짓지 않느니라.
즐거이 바른 뜻을 강설하면서 속전(俗典)을 강설하지 않고, 즐거이 보살을 연모하여 성문을 사모하지 않으며, 즐거이 정각(正覺)을 구하여 연각은 구하지 않고, 즐거이 대도(大道)를 향하여 작은 술수는 닦지 않으며, 즐거이 8등(等)에 머물러 8사(邪)에는 있지 않고, 예순두 가지의 지혜를 좋아하여 스스로 두 가지의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며, 위없는 법[無上法]을 좋아하여 하열한 것은 좋아하지 않고, 대승의 업[大乘業]을 좋아하여 아라한의 법은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법의 즐거움이니라.
또 정의(定意)를 빠르게 증득하는 데에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인자한 마음으로 사람을 가엾이 여기면서 위해(危害)를 끼치지 않고, 언제나 열 가지의 선행을 행하며 나쁜 행을 멀리 여의고 오로지 한마음으로 도를 닦으며, 부처님 법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마치 굶주린 이가 밥을 구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구하듯 하며, 널리 깊은 이치를 존중하고 치우치게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며, 자비로 시방을 생각하여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자기 몸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그러므로 무동삼매의 법이라고 하는 까닭은 제1․제2의 삼매를 초월하기 때문이요, 세속의 법에 미혹 당하지 않기 때문이며, 보살이 인자한 마음의 법을 받들어 행하기 때문이며,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로 중생의 3취의 재난을 구제하기 때문이며, 차츰차츰 대자(大慈)를 익히면서 삼계를 제도하려 하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름이 없이 보아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언제나 법에 대한 생각만을 하기 때문이며, 법을 근본으로 삼고 세속을 죄로 삼기 때문이며, 언제나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두 도(道)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무동(無動)삼매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도무동(度無動)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자연(自然)의 구쇄역사(鉤鎖力士)11)는 용맹스럽고 힘이 강하여 막히는 바가 없어서 모두 열고 물리쳐 남이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영웅으로 모든 예해(穢害)와 진로(塵勞)와 원수를 제거하는 것과 같으니,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사방과 네 모퉁이에 큰 바람이 불어오고 여러 가지의 꽃이 부처님 국토에 두루 함을 보고, 분별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총지를 이루므로, 곧 초월하는 진도무극(進度無極)을 이루느니라.
이에는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평등하게 근(根)에 정진하고 정진하는 힘을 근본으로 삼으며, 평등한 방편으로 의지(意止:意志)를 으뜸으로 삼고, 온갖 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탐하거나 좋아하지 않게 하며, 마음과 입으로 수순하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머무른 곳에서 돌
11) 나라연(那羅延)이라고 한다.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불법을 지키는 신. 입을 다문 모습을 하고 절 문의 오른쪽에 있으며,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아오지 않으면서도 처(處)하는 데가 없으며, 정진을 가장 으뜸으로 삼고 원수를 항복시키며, 부지런히 닦으면서 모든 신통과 미묘한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4대의 몸은 마치 독사와 같다고 생각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두려워하여 처음에서 끝까지 버리지 않는 등의 미혹된 일을 하지 않으며, 자․비․희․호로 기어 다니거나 헐떡거리는 사람과 만물의 무리를 마치 아버지인 듯 어머니인 듯 아들인 듯 자기 몸인 듯이 평등하게 여기면서 차별이 없게 하고, 언제나 도의 뜻을 생각하여 탐냄․성냄․어리석음의 생각을 없게 하느니라.
보시하되 간탐하는 생각이 있지 않고,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니어 나쁜 생각을 행함이 없으며, 인욕(忍辱)의 생각을 내어 성을 내는 생각이 없고, 언제나 정진을 닦아 게으른 생각이 없으며, 오로지 한마음일 뿐이어서 뜻을 어지럽히는 생각이 없고, 지혜의 행이 바르면서 어둡거나 가려진 생각이 없으며, 언제나 방편을 구하여 지극한 마음의 방편으로 방일(放逸)한 생각이 없고, 사람에게 권화(勸化)할 것을 생각하길 자기 몸을 제도하듯 하며, 소유한 온갖 물건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느니라.
지옥에 떨어진 이의 모진 고통의 우환(憂患)을 마치 자기 몸이 당한 듯하고, 언제나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여 그들의 죄를 대신 받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으며, 아귀 세계의 배고프고 목마른 궁핍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몸을 떨고 딱하게 여기며 제도하고 구하여 저절로 안온하게 하려하고, 법을 밥처럼 먹으면서 5음과 6쇠의 목마름을 제거하며,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을 밥으로 삼고 경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음료수로 삼으며, 여섯 가지 법행(法行)을 닦음으로써 현명하고 착한 이가 되며, 드나들면서 걷는 걸음걸이와 정진은 안온하고 편안하느니라.
축생에 떨어진 이를 생각하면서 언제나 측은하게 여기고 안온하게 하여 그 전생의 빚을 다 마치게 하며, 옛날에 지은 죄를 분명히 알게 하여 다시는 같은 죄를 짓게 않게 하고, 모든 선(善)을 받들어 행하여 온갖 악(惡)을 행하지 않으며, 스스로 지난 세상에서마다 나를 헤아려 도법(道法)을 믿지 못한 죄를 분명히 모르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죄를 범한 이는 마치 깊은 못에 빠진 것과 같고 법을 받들면서 계를 믿는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고 법을 알지 못한 이가 5도에 돌아다님은 마치 수레바퀴와 같이 반복됨을 생각하느니라.
부모를 서로 근심하고 형제를 서로 염려하며 부부간에 서로 연모하면서 지니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거나, 또는 부모를 위할 것인데 도리어 자녀를 위하고 본래 자녀를 위할 것인데 도리어 부모를 위하거나, 혹은 부부간이 다시 원수가 되거나 하여 상하(上下)가 뒤바뀌고 무상(無常)과 근본(根本)이 뒤바뀐 이에게는, 이 보살의 뜻은 언제 그들을 인자하게 생각하면서 깨우치고 교화하여 부처님의 바른 도를 믿고 들게 하며, 무상․고․공․비신임을 믿어 알게 하니, 이것이 바로 도무동(度無動)삼매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적화(寶積華)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도리천(忉利天)의 주도수(晝度樹)와 같이 모든 본래의 행[本行]으로써 5근(根)을 제도하고 중생을 초월하여 마음이 청정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이니,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서 뭇 음성과 기악(伎樂)이며 여러 가지가 섞인 영락(瓔珞)으로 그의 몸을 장식하고 사이화(思夷華)로써 그의 몸을 빛나게 하면서 해탈화(解脫華)와 푸른 연꽃이 비 내리듯 하여 그 위에 모시고 있는 것을 보아서, 모든 덕(德)을 총지하여 곧 받아들이게 되므로 선도무극(禪度無極)과 상응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감관을 조복하여 덕의 근본으로 삼으며, 한마음으로 힘을 삼고 평등으로 방편을 삼으며, 정의(定意)로 산란하지 않고 금계(禁戒)로 근원을 삼으며, 해탈문으로 으뜸을 삼고 정요(定要)에 나아가면서도 있는 바가 없으며, 진로(塵勞)를 녹여 없애고 모든 정(定)을 이루어 사유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5도를 가엾이 여기고 5음을 공격하여 없애며, 5근을 성립시키고 5색을 깨끗이 화하게 하여, 이미 덕을 쌓아 5품의 계(戒)․정(定)․혜(慧)․해(解)․도지견(度知見)의 품(品)을 완전하게 갖추며, 뜻이 5통과 10력을 그리워하여 당장 이루고, 모든 재앙과 허물을 만나지 않으며, 태어날 적마다 언제나 부처님 법을 닦고 이름과 덕이 멀리까지 드러나며, 삼계를 가엾이 여기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거나 헷갈리지 않으며, 선취(善趣)와 악취(惡趣)를 환히 아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온갖 시냇물이 쉬지 않고 빠르게 흘러 사해(四海)로 향하는 것과 같나니, 이 법을 받드는 보살의 행 역시 그와 같아서 쉬지 않고 정진하여 마침내 대도(大道)로 향하는 것이며, 비유하면 마치 달이 열흘이 되었을 때는 빛이 더욱 완전해지면서 중생을 비추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공덕의 위엄이 있는 빛이 날마다 더욱 더하면서 모든 위액(危厄)을 제도하고 중생의 우환을 가엾이 여기느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의 행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다섯 가지 계율의 청정함이 마치 밝은 거울과 같이 더러울 바가 없고, 열 가지의 선을 침범되지 않아 두루 갖추게 되며, 도의 뜻을 잃지 않고, 삿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몸을 탐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또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성내는 빛을 없애고, 겁약(怯弱)한 마음이 없으며, 간탐(慳貪)하는 뜻을 버리고, 아첨하려는 뜻을 없애며, 분별하여 공(空)을 아는 것이니라.
비단 입으로만 언제나 한마음을 닦는다고 할 뿐만이 아니라 행도 어지럽지 않으며, 호귀(豪貴)와 권세(權勢)와 부락(富樂)은 마치 허깨비와 같은 줄 알며, 색(色)은 마치 큰 물거품과 같고 통양(痛痒)은 마치 작은 물거품과 같으며 상(想)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고 생사(生死)는 마치 그림자와 같으며 식(識)은 마치 허깨비와 같다고 관하느니라.
색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통양에 미혹되지 않으며, 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삿된 행[邪行]을 하지 않으며, 식을 추구하지 않고 5음이 공한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다시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음행을 탐하는 것과 성을 내는 것과 잠자듯 의식이 암담한 것과 희롱하여 놀리는 것과 의심하는 것인 이 5개(蓋)를 제거하는 것이니라.
관통하여 보고 환히 보며 가벼이 올라가 능히 날고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며, 어디로부터 와서 태어나고 죽는 것인가를 알고, 다섯 가지 신통으로써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며, 5음으로써 방일하지 않고, 몸은 덕행(德行)을 닦으면서 그릇된 법을 행하지 않으며, 깨우쳐 교화하면서 설법하고, 안온한 바가 많게 하며, 많은 악한 일과 해로운 일을 하지 않고, 도(道)로써 업을 삼아 법을 익히는 것으로써 밥을 삼고, 뜻[義]을 이해함을 음료로 삼으며, 호귀(豪貴)를 그리워하지 않고 법으로써 호(豪)를 삼고 공(空)을 환히 앎으로써 귀(貴)를 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적화(寶積華)삼매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일광요(日光耀)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뭇 보배로 된 목욕하는 못에는 여덟 가지 맛이 나는 물이 맑고 고요하게 가득 찼고 푸른 연꽃․붉은 연꽃․노랑 연꽃․횐 연꽃이 심어져 있으며, 둘레와 난간은 모두 7보(寶)로 만들어졌고 그 주위는 상서로운 꽃이 있으며, 밑은 금모래[金沙]가 깔려 있고 자신의 몸이 그 안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면서, 지혜의 정[慧定]을 이루고 총지를 증득하여 밝히므로, 초월하는 지도무극(智度無極)을 이루느니라.
여기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지혜를 근원으로 삼고, 지(智)의 힘을 최상으로 삼으며, 바른 소견을 으뜸으로 삼고, 평등한 뜻[等意]을 수승한 것으로 삼으며, 몸의 모든 덕을 닦고, 모든 부류에 들어가 거룩한 진리[聖諦]의 상(相)을 갖추며, 평등한 상(相)을 이루고, 지혜로워 음개(陰蓋)가 없으며, 모든 지나간 소견을 제거하고, 불기법인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일이니라.
6정(情)을 관(觀)하되 본래 처소가 없어서 어디서 온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으며, 본래 자연 그대로요 공(空)한 것인데 연(緣)을 만나 일어나는 것일 뿐이니, 비유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되 용(龍)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물로부터 나오지도 않으며 땅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용의 마음으로부터 나오지도 않아서, 모두 인과 연이 합하고 만나야 비로소 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처럼, 6정의 모든 입(入)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오히려 인과 연으로 성립되는 것이요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생사도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그림 그리는 이가 그림의 대상인 사람ㆍ방․집․코끼리․말․탈것 등을 그릴 때,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 대상의 형태나 솜씨가 나타나지 않다가 벽판(壁板)과 소필(素筆)과 채색(彩色)의 기구 등 온갖 연(緣)이 두루 합하고 만나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악(善惡)도 그와 같이 인과 연이 합하여 성립되느니라. 또다시 도(道)를 행하는 데에도 10선의 행과 6도를 인(因)하는 것이니, 무극(無極)의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선권방편이 합쳐져서 성취할 뿐이니라.
부처님 몸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부처님 몸을 떠나지도 않고, 마음과 뜻에 생각이 없어 자연 그대로 허공과 같으며, 차츰차츰 대자(大慈)에 들어가고 또 대비(大悲)와 희호(喜護) 등의 행을 닦되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언제나 온갖 중생을 위하면서 또한 구함도 있지 않으며, 몸의 행을 삼가하고 말을 조심하며 겸손하면서 순하며, 마음속의 생각은 부드럽고 아첨이 없고 질박(質朴)하면서 삿됨이 없느니라.
또 여섯 가지의 일이 있어서 빠르게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를 얻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언제나 부처님께 의지하여 머무르고 바르고 참된 도(道)에 들어 마음이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며, 속뜻의 행[內意行]에 대하여 스스로 환히 깨달아 알고, 착한 벗을 만나서 그에게 일을 맡기며, 뜻하는 원[志願]이 너그러우면서 만족하지 않고, 마음이 화합하지 않음이 없고, 지혜가 결핍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보살이 도를 수행하되 색(色)․통(痛)․상(想)․행(行)․식(識)에 기대지 않고 안과 밖에도 기대지 않으며, 근본이 되는 법의 가르침에 따르면서 보살의 깊고 묘한 행을 어기지 않고, 대자(大慈)를 멈추지 않으면서 대비(大悲)도 잃지 않으며, 세간의 결핍한 바에 따라 그들을 구제하고 도를 닦아 바르게 교화하면서 삿되게 가르치지 않으며, 한마음으로 지혜를 향하여 어리석음에 가려지지 않고, 6쇠(衰)는 마치 허깨비․요술․그림자․메아리․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고, 꿈속에서 본 것은 홀연히 그 처소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줄을 밝게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광요(日光耀)삼매이며 감동한 바가 많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일러 제리의(諸利義)삼매를 이루었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온갖 보배로 된 목욕하는 못에 그 좌우를 자세히 살피며, 지옥의 고액(苦厄)을 제도하여 넓은 들판에서 노닐게 하며, 기특한 취락(聚落)의 총지에 이르므로 곧 초월한 권도무극(權度無極)을 이룬다고 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뜻하는 행에 들어가고 중생을 건립(建立)하며, 끝없는 대자비와 두루 한 연민을 근본으로 삼고 심성(心性)이 부드러우면서 싫증을 내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제자(弟子)와 연각(緣覺)의 승(乘)을 버리고, 관(觀)하는 바가 자세하고 참되며, 도의 마음을 인도하면서 다스리고 모든 신통과 지혜로써 불퇴전을 세우고, 넓은 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일이니라.
언제나 바른 지혜로써 삿된 견해를 멀리 여의고, 자연히 도를 닦으면서 세속에 미혹되지 않으며, 미묘하고 끝없는 법에 깊이 들어가면서 널리 세속에 들어가며, 세속에 대하여도 속되지 않고 도에 대하여도 의지함이 없으며, 생각이 성스러운 가르침에 이르러 중생을 개화하고, 노(老)․병(病)․사(死)로 언제나 신변을 수호하며, 6정을 물리치고 6쇠에 떨어지지 않으며, 7사(邪)를 좇지 않고 언제나 7각(覺)을 섭수하느니라.
마음은 삿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 정진하면서 폐지하지 않고, 법에 수순하여 어기지 않고 기뻐하면서 한(恨)하지 않으며, 신근(信根)이 헷갈리지 않고 안온하면서 위태롭지 않으며, 뜻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고, 재(財)를 믿고 지(智)를 믿되 본래 계재(戒財)가 없으며, 소승(小乘)의 참괴재(慚愧財)에 떨어지지 않고 삼계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물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혜가 넓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문(財聞)을 널리 들어 짝할 이가 없고 지극히 깊고 먼 지혜로 재시(財施)를 보시하며, 대도(大道)의 지혜재(智慧財)로써 지혜에 들어가 널리 온갖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열 가지의 일이 있어서 불퇴전에 이르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도무극이 있음을 듣고는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법(法)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성중(聖衆)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도(道)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보살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법신(法身)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세속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목숨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거나 하지 않으며, 수명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시방으로 날아가서 모든 하늘과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며, 법(法)으로써 근본을 삼고 도(道)로써 근원을 삼으면서 나[我]를 헤아리지 않으며, 혹은 지옥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구제하기도 하고, 혹은 날짐승․길짐승에 들어가서 어리석음을 깨우치며, 혹은 아귀(餓鬼)에 들어가서 굶주림의 독을 위로하면서 배를 채워 주고, 세속 인연을 따라 가르치고 교화하면서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하며, 세속의 법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기가 마치 햇빛과 같고 밝기는 마치 둥근 달과 같으며, 보살은 불퇴전을 얻어서 많은 변화를 능히 행하고 깨우쳐 제도할 바 있는 데서는 문득 많이 보전하여 제도하며, 모든 고뇌가 있는 이에게는 모두 큰 안락을 얻게 하고, 모든 지혜 없는 이에게는 모조리 다 지모(智謀)를 넓히게 하니, 이것을 바로 제리의(諸利義)삼매를 이룬다고 하느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현재제불목전립(現在諸佛目前立)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달이 다 차서 둥근 보름달일 때 뭇 어둠이 다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하는 일도 그와 같이 정성껏 잘 수행하고 청정히 하면 원하는 바가 성취되어 불국토를 이루게 되고 중생을 가르쳐 교화하는 것이고,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사자와 사슴 왕이 머리에 비단을 이었는데 그 몸이 높고 커서 위력으로 여러 짐승을 다스리는 것처럼, 끝없는 8만 4천의 모든 총지문을 이루므로 곧 초월한 지혜를 성취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한마음의 정의(定意)로 삼매에 들어, 상념(想念)이 없으며, 오로지 한 뜻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끊으며, 모든 것을 구하지 않고, 법이 모두 공(空)한 줄 알며, 삼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위(無爲)를 좋아하지 않으며, 유위(有爲)를 헤아리지 않아서, 법신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그 향한 방소(方所)에 현재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들으면 언제나 그 방소를 생각하면서 부처님 곁에 모인 사부대중과 그들을 위하여 경법을 설하시는 것을 관하며, 4대(大)는 공하여 땅은 마치 거품 더미와 같고, 물은 마치 아침이슬과 같으며, 불은 마치 번갯불과 같고, 바람은 마치 부치는 부채와 같다고 관찰하며, 4대는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 이루어졌을 뿐, 본래 아무 것도 없다고 분별하느니라.
스스로 몸의 모습을 관하면서 온갖 감관은 본래부터 실체가 없다고 자세히 살피고, 스스로 통양(痛痒)을 관찰하면서 본래부터 통양은 없는 줄 알며, 스스로 사상(思想)을 관하되 온갖 사상을 자세히 살피면서 본래부터 사상은 없는 줄 알고 스스로 그의 뜻을 관하면서 본래부터 뜻이 없는 줄 아느니라. 이미 공(空)하다고 관한지라 온갖 것은 없다고 보며, 여덟 가지 재난을 가엾이 여기고 세간의 여덟 가지의 일인 흥성[盛]․쇠망[衰]․훼방[毁]․칭찬[譽]과 이름이 있고[有名] 이름이 없는[無名] 것과 근고(勤苦)와 안락(安樂)에서 벗어나며, 여덟 가지 삿됨을 버리고 여덟 가지 바름[正]에도 머물지 않으며, 평등하게 있고 없음[有無]에 처하면서 역시 머물지 않으며, 4등심(等心)인 자․비․희․호를 행하고, 4은으로 중생을 제도하며 인애(仁愛)를 은혜로이 베풀고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하느니라.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모든 다른 상념(想念)이 없으면, 5음이 곧 끊어지고 6쇠는 처소가 없으면서 마음이 곧 안정을 얻으며, 4대를 보지 않고 사람도 보지 않으며, 천(天)․지(地)․인(人)․물(物)도 보지 않아 영원히 보는바가 없을 것이니, 이렇게 오래오래 하여야 비로소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물이 흐리면 그 밑이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멈추어 움직이지 않고 고용해지면 맑아져서 훤히 보이듯이, 보살도 그와 같이 정(定)에 들어 상념이 없고, 관하되 보는 바가 없으면, 5음과 6쇠가 환해진 것이 마치 구름이 걷히면 해나 달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되느니라.
다시 그것을 관하면서 ‘내가 부처님께로 간 것인가? 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오신 것인가?’라고 하면, 이는 마음이 곧 스스로 생각한 것이니, 본래 부처님도 또한 오시지 않았고 나도 또한 가지 않은 것이니라.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물이나 깨끗한 기름에서 형상이 보이고 그림자도 보이되 그 영상(影像)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은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뵙되 역시 가고 옴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꿈속에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부모․형제․처자를 보았으나 깨고 나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뵈었으나 삼매에서 깨고 나면 도무지 본 바가 없는 것이니라. 그 까닭은 32상과 80종호는 본래 없으며 다만 화현(化現)이기 때문이니라. 형상이 없고 처소가 없는 것은 마치 허공과 같이 따로 알 수 없는 것이니, 어느 것이 허공이겠느냐? 법신도 그와 같아서 처소가 없어야 비로소 온갖 근원을 보고 통달할 수 있으며, 앉아서 시방을 보되 오고 가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현재제불립목전(現在諸佛目前立)삼매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혜광요(慧光耀)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법왕(法王)의 가르침을 베풀고 임금의 아들과 보신(輔臣)과 백천 권속과 영종(營從)들이 허공 가운데서 모든 보배 꽃을 가지고 그의 몸을 가리는 것을 보면서, 그지없는 총지문(總持門)을 행하여 60만해(萬姟)의 모든 총지의 지혜를 이루므로 곧 초월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명월신주(明月神珠)가 모든 궁하고 모자란 것을 가득 채우고 넉넉하게 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갖춘 모든 법으로 중생에게 가르쳐 주되 온갖 사람을 따르면서 그에 상응하게 무진덕장(無盡德藏)을 베풀어 주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법으로써 보시하고, 계율로써 불순(不順)을 거두어 취하며, 인욕으로써 강포(强暴)를 다스리고, 정진으로써 태만을 섭취(攝取)하며, 일심으로써 산란을 섭취하고, 지혜로써 사지(邪智)를 섭취하며, 선권(善權)으로써 때를 따라 대승(大乘)으로 교화하고, 대도(大道)를 천명하여 넓히며, 8난에서 노닐며 8사행(邪行)을 해탈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편파(偏頗)된 행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여덟 가지 불가사의에 머무르면서 보살을 버리지 않고 삼계는 마치 허깨비와 같아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헤아려도 오고 간 곳을 보지 않아서 가고 머무름에 따라 저마다 스스로 이루어지게 하느니라. 삼계는 마치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니, 여름에 사람이 없는 넓은 들판을 갈 때 멀리서 보면 큰 강에 물이 흐르고 그 곁에는 나무가 자라 여러 가지의 열매가 아주 무성해 보이므로, 그 사람은 배고프고 목마르고 더운 데다 피로하여 다시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여 몇 리를 달려가 가까이 다가가지만 도무지 물은 보이지 않고, 아지랑이가 걷히게 되자 물이 없는 것과 같으니, 달인(達人)은 자주 보았는지라 물이 없음을 알므로 달려가서 구하지 않느니라.
중생은 삼계가 허깨비와 같은 줄 분명히 모르고 내가 있고 수명이 있다고 여기다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의 온갖 내용은 무상하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고 깨달아서 다시는 미혹되지 않거니와, 보살은 온갖 처소와 삼계는 마치 변화와 같고 요술과 같으며 그림자나 아지랑이와 같고 꿈이나 물속의 달과 같은 줄 알며, 본래부터 없음을 모두 아는지라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으며 해탈도 없으므로 온갖 것에 구함이 없으니, 마치 어미가 제비 여러 새끼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와 같이 일체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되 역시 내버려두는 바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마치 길잡이가 장사꾼들을 많이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적에 흉악한 도적을 만나지 않고 편안하게 집에 도착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혜광요삼매의 정(定)으로써 일체 중생을 도와 음(婬)․노(怒)․치(癡) 3독(毒)의 어둠을 버리게 하고 3승(乘)을 열어 보이되 대승을 근본으로 삼아 저마다 처소를 얻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의왕(醫王)이 여러 사람들의 질병을 보고 그 병에 따라 약을 주매 그 병든 사람들이 낫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혜광요삼매로써 널리 중생의 5도의 우환과 3독의 혹독한 고통을 보고 큰 자비로써 그들을 깨우쳐 교화하며, 무극(無極)의 지혜를 바르게 가르쳐서 발심한 이나 아직 발심하지 않은 이라도 받들게 하고, 견고하게 정진하면서 회향한 이는 일생보처에 올라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혜광요삼매의 정(定)이니라.”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용맹복(勇猛伏)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전륜성왕이 공조(功祚)가 한량없고 위덕(威德)이 높고 뛰어나 자재(自在)를 얻어 온갖 법에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음이 마치 허공에 때[垢]가 없어 청정한 것과 같으니,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여래의 형용은 황금빛 얼굴이요, 그 광명은 모지고 둥근데 셀 수조차 없는 범덕(梵德) 억백 나술(那術)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경을 설하신 것을 보면서, 한량없는 총지문을 행하여 항하 모래만큼 많은 백천해(百千姟)의 총지를 이루었기에 곧 초월한 성지(聖智)를 성취한 바가 많으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일체지(一切智)에 뜻을 두면서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고, 유위에 머무르지 않고 무위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널리 인자한 마음으로 행하여 중생들을 위해 평등하게 베풀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평등하게 행함이 마치 허공과 같으며, 제자라는 생각이 없으면서 보살이라는 생각도 없고, 또한 세속에 대한 마음도 없고 도(道)에 대한 뜻도 없으며, 언제나 큰 지혜로써 중생을 수순하여 교화하고, 온갖 내는 데에 들어가되 또한 내는 바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나타나되 법신을 버리지 않고, 마음이 나[我]와 열반에 평등한 것이니, 이것을 바로 열 가지 일이라 하느니라.
몸과 입으로써 말하거나 행한 바가 있지 않고, 마음은 언제나 안정하여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욕계(欲界)에 나타내어 모든 욕진(欲塵)을 제도하고, 욕심의 자연(自然)에 대해서도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온갖 것에서 구하지 않음은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고, 색계(色界)를 나타내되 빛깔의 자연에 대해서도 구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으니, 마치 참기름이 물과 합쳐지지 않는 것처럼 빛깔과 빛깔 없는 것을 관하되 스스로 본래부터 없는 줄 살피고 또한 살필 바도 없느니라.
무색계(無色界)를 나타내되 빛깔이 없는 것은 자연이어서 뒤도 없고 앞도 없으니, 마치 불길은 허공을 태우지도 못하며 또한 더하거나 덜함도 없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가고 오는 곳이 없는 것과 같아서 삼계에 홀로 걸으면서 세 가지 처소를 초월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나는 새가 허공을 날아다니되 거리끼는 바가 없는 것과 같이 삼계를 제도하고 해탈하되 각각 본래의 뜻을 따르면서 속히 깨우쳐 알아 대승(大乘)에 이를 수 있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의왕(醫王)이 여러 가지의 약을 가지고 저마다 병에 따라 먹게 함으로써 풍한과 열병을 곧 낫게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불법의 약으로써 음․노․치의 병을 치료하여 남음이 없게 하므로 그 마음이 청정하여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느니라. 마치 용맹하고 씩씩한 군대의 장군이 악한 역적을 토벌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큰 자비로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생사를 윤회하는 이[周旋者]와 이에 어두운[闇昧] 사람과 예순두 가지 소견의 모든 사악한 의심의 그물[羅網]에 떨어진 이와 그리고 예순두 가지의 모든 바르지 않은 법을 지닌 모두에게 뜻을 일으켜서, 각자 6도(度)와 대자대비와 뭇 행의 요긴한 것을 좇아 대승에 이르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뱃사공이 견고한 배를 조정하여 왔다 갔다 하면서 뭇 사람을 건네주어 각자 원하는 곳에 이르도록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용맹복삼매의 정(定)으로써 한량없는 생사의 고뇌를 제도하고 해탈하되, 성문에게 나타나 그 마음을 따라 깨우쳐 주고 연각에게 나타나서는 근본을 좇아 가르쳐 주며, 부처님 몸을 나타내어 세 가지 도의 가르침을 열며, 혹은 큰 법의 끝없는 지혜인 대승의 깊은 법을 나타내기도 하거니와 3악도(惡道)도 없고 또한 3승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술사가 대중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몸을 죽게도 하고 불에 타게도 하며 짐승에 먹히는 일을 나타내면, 대중들은 모두가 두려워하여 저마다 안타까워하면서 크게 물건을 내주며 그의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그 마술사는 얻은 보물이 많은 것을 보고 즉시 땅에서 일어나 본래대로 회복되어, 본래 죽은 것도 아니고 다시 살아난 것도 아닌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중생의 생사 5도를 깨우치고 교화하되 보살이 되기도 하고 성문이 되기도 하며 연각이 되기도 하고 천상에 나기도 하며 갑자기 열반을 나타내기도 하면, 여러 사람들은 슬피 통곡하면서 그가 멸도하여 없어졌다고 여기기도 하며, 홀연히 다른 지방의 성문과 연각으로 나타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하면, 이미 멸도하여 다시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 마치 불에 타 없어져서 다시 그곳에 없어 불에 타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여기지만, 보살이 비록 열반을 나타내면서 법신과 합쳐졌다 하더라도 역시 오고 간 것도 없으며 다시 중생에 따라 나타내 보이면서 교화하는 것이니, 보살 대사(大士)는 그것을 통달했기 때문이며 법신을 환히 알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햇빛이 물속이나 그리고 군․나라․현․읍․언덕․마을 등을 비추지만, 해의 궁전[日殿]은 내려오지 않고 또한 움직여 옮아오지 않으며, 인간 세상에 있어서도 그 광명 모조리 다 이르지만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은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삼계에 나타나되 또한 가고 오고 돌아다닌 것도 없으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되 역시 제도한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용맹복(勇猛伏)삼매이니라.”
불설초일명삼매경 하권
섭승원(聶承遠) 한역
송성수 번역
이구목(離垢目)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초일명(超日明)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광명은 한량없고 비유할 수 없고 햇빛보다 더 밝으니, 해의 광명은 현재의 일을 비추어 사람과 꿈틀거리는 것과 온갖 곡식과 약수(藥樹)며 모든 하늘․용(龍)․신(神) 등 모두가 해로 인하여 성장하고 무성해져 살아갈 수 있지만, 해는 두 철위산(鐵圍山) 사이를 비추지 못하고 또한 사람 마음속의 근본을 비추어 열어 통달하지 못하니, 다만 형상 있는 것만을 비출 뿐이요 형상 없는 것은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초일명삼매가 뛰어나다 한 까닭은 시방의 그지없고 가없는 삼계와 5도(道)를 크게 비추어서 꿰뚫어 통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 대승(大乘)은 성문과 연각의 승(乘)과 96경(經)과 62견(見)의 삿된 의심과 얽힌 번뇌를 비추어, 마음들이 환히 빛나면서 각기 모두 도의 뜻을 내게 하며 3승(乘)의 업(業)을 닦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성취하게 하여, 천상에 나게 하기도 하고 사람 몸을 받게 하기도 하면서 두루 은혜를 입지 않게 함이 없느니라.
마치 도리천(忉利天)은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있는데, 하늘 제석궁(帝釋宮)의 자줏빛을 띤 감색(紺色) 보전(寶殿)은 환히 빛나면서 위에 있고, 중턱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있으며, 아래의 사방에는 모든 하늘과 백성과 아귀(餓鬼)와 염귀(厭鬼)와 모든 신(神)과 야차[閱叉]가 있는 것과 같으니라.
초일명삼매도 역시 그와 같이 마음이 견고하여 동요하지 않은 것이 마치 수미산왕과 같아서 5도와 제석천왕을 교화하고, 생(生)․노(老)․병(病)․사(死)와 더 나아가 사천왕을 교화하며, 모든 불효(不孝)와 음(婬)․노(怒)․치(癡)의 번뇌[垢]를 치료하여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며,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향하게 하며, 뜻을 내는[發意] 기별을 주고[受決]1) 인을 얻는[得忍] 기별을 주고, 아직 뜻을 내지 못한[未發意] 기별을 주며,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을 행하여 허망한 생각으로 인해 수결(受決)을 깨닫지 못함이 일절 없게 하나니, 초일명삼매는 매우 깊고 깊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끝도 밑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허공을 되[升]․홉[合]․말[斗]․휘[斛]로 그 대소(大小)를 헤아리고자 하면, 그 허공은 오히려 헤아릴 수 있어 그 휘의 수량을 모두 알 수 있으나, 초일명정(初日明定)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허공을 재려하면 십리․백리․ 천리․만리․억리․ 억만리, 헤아릴 수 없는 억백 나술(那術) 리의 허공은 다 잴 수 있고 그 맨 끝까지도 마칠 수 있으나, 초일명정의 지혜는 그보다 뛰어나서 수없는 억억(億億) 배(倍)요, 다시 그 곱절이기 때문에 그 크기를 한계 지을 수 없으니, 비유를 드는 이가 비유한 도의 광명은 본래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으며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느니라.”
이구목이 세존께 물었다.
“대성(大聖)께서는 감탄하시면서 당연히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길고 멀다’고 말씀하셔야 되시거늘 어찌하여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으며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좁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넓은 것이 있고, 가까운 것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먼 것이 있는 것이니,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고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는 것은 그 비교하여 견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가령 비유를 들어 말해 본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끝이 없는 것이 마치
1) 수기(受記)와 같은 말로서 결정한 기별(記別)을 받는 것을 말한다.
허공이 끝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 밖으로 벗어나 작은 티끌이나 빛깔이 없는[無色] 것을 그 속에다 열어서 넣어도 다시 비교하여 서로 재어 볼 수도 없는 것과 같으니, 비유를 인용하여 뜻을 환히 알거나 대도(大道)의 지혜에 이르는 것을 비유할 수는 없느니라.
모든 성문․연각․보살과 나아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보다 뛰어나서 으뜸이 되고 높은 것이 되며, 짝할 이 없고 같을 이 없으며, 자연(自然) 그대로의 법은 짓는 이도 없고 또한 짓지 않은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없고 텅 빈 것이 자연 그대로일 뿐이며, 온갖 것도 본래부터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온갖 근본과 본말(本末)을 환히 깨달아 알며, 이미 이 모든 근본을 분명히 알면 또한 기댈 바도 없고 기대지 않을 바도 없느니라.
자연 그대로 지혜임을 모두 따로 분명히 알 것이니, 삼계는 자연 그대로이며, 삼계가 자연 그대로인지라 인물도 자연 그대로요, 인물이 자연 그대로인지라 생사도 자연 그대로이며, 생사가 자연 그대로인지라 본래 없다는 것도 자연 그대로요, 본래 없다는 것이 자연 그대로인지라 불도(佛道)도 자연 그대로이니라. 이 온갖 것이 자연 그대로임을 분별하여 알아야 초일명정을 체득할 수 있어서 널리 3세를 제도하고 끝없는 지혜[無極慧]에 이르니, 이것이 바로 초일명삼매이니라.”
이에 장자(長者)의 딸 혜시(慧施)가 5백 명의 여인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발아래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있다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초일명정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함이 한량없어서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여인의 몸이오나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어 여인의 몸을 바꾸고 속히 정각(正覺)을 이루어서 시방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려 하나이다.”
상도(上度)라는 한 비구가 있다가 혜시에게 말하였다.
“여인의 몸은 불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여인에게는 세 가지 일의 장벽[三事隔]과 다섯 가지 일의 장애[五事礙]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어릴 때는 부모가 주관하게 되고, 출가(出嫁)하면 남편이 주관하게 되어 자유가 없고, 늙으면 아들을 어렵게 여겨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입니다.
무엇이 다섯 가지 장애인가? 첫 번째, 여인은 제석(帝釋)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용맹스럽고 욕심이 적어야 남자가 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악(惡)의 교태가 많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하늘의 제석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범천(梵天)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청정한 행을 받들어 더러운 때가 없으며, 4등심(等心)을 닦고 4선(禪)을 닦아야 범천에 오르게 되는데, 음행을 멋대로 하면서 절제가 없었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범천이 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마천(魔天)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10선(善)을 완전히 갖추고 삼보를 존경하며 양친을 효도로써 섬기고 어른과 노인에게 겸손하게 순종해야 마천이 될 수 있는데, 경솔하고 교만하고 온순하지 못하며 바른 가르침을 헐뜯고 시샘했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마천이 될 수 없습니다.
네 번째는 전륜성왕(轉輪成王)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보살의 도를 행하고 중생을 자비로이 여기며 3존(尊)과 선성(先聖)과 사부(師父)를 받들어 공양해야 전륜성왕이 되어 4천하를 주관하고 백성들을 교화하며 널리 10선을 행하고 도덕을 존숭하며 법왕(法王)이 되어 가르치게 되는데, 숨은 교태가 여든네 가지나 있고 청정한 행이 없었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성제(聖諦)가 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여인은 부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보살의 마음을 행하여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대자대비로써 대승의 갑옷을 입으며, 5음을 녹이고 6쇠를 없애며, 6도를 넓히면서 깊은 지혜의 행과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을 환히 알고 3해탈문(解脫門)을 초월하며, 아(我)․인(人)이 없고 수(壽)도 없고 명(命)도 없음을 알며, 본래부터 없다는 것과 불기법인(不起法忍)을 분명히 알며, 온갖 것은 마치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꿈과 같고 그림자․파초․거품더미․아지랑이․번갯불 ․ 물속의 달과 같다고 분별하며, 5처(處)는 본래 없고 3취(趣)라는 생각이 없어야 부처님이 될 수 있는데, 색욕(色欲)과 더러운 생각[淖情]과 숨은 교태에 집착하여 행동과 말과 뜻이 달랐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부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일에는 모두 근본과 본말이 있습니다.”
그때에 혜시 여인이 상도에게 대답하였다.
“저마다 모든 뿌리를 심어서 거기서 열매를 얻게 되는데, 본래부터 남녀와 보응(報應)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본래부터 이 제석․범왕․마왕․전륜성왕․대도(大道)․소도(小道)인 5처(處)가 있습니까?”
상도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혜시가 물었다.
“만일 본래 없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있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행(行)으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혜시가 말하였다.
“비유하면 그림을 그리는 이가 벽화를 그릴 적에 아무 것도 없는 그림판[板素]을 준비하고 그림 그리는 도구로 본을 떠서 형상을 만들고 나누어 채색을 하면서 그의 뜻에 따라 완성하는 것과 같이, 5도(道)도 그와 같아서 본래 처소가 없었는데, 행을 따라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비유하면 마치 요술쟁이가 해․달․제석․범천․전륜성왕․하늘․용․귀신․백성과 날짐승․길짐승을 마음먹은 대로 나타냈다가도 일순간에 홀연히 아무도 모르게 없애는 것처럼, 생사도 그와 같이 본래는 아무 것도 없었으나 마음으로 행한 바에 따라 저마다 스스로 얻은 것이니, 본래부터 없는 데에 이르러서 요술도 없고 허깨비도 없으며 합한 것도 없고 흩어진 것도 없으며 또한 처소도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이 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 까닭은 5계(戒)로는 사람이 되고 10선(善)으로는 하늘에 태어나며, 간탐을 부리면 아귀에 떨어지고 마구 달려들면 축생이 되며, 악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며, 4등심(等心)을 행하면서 공(空)을 알지 못하고 행하면 범천에 가나고, 공에 의지하여 제도되기를 구하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공에 집착하면 무상천에 나아가며, 6도무극의 생각으로 삼계를 여의지 않고 괴롭고 싫은 몸을 두려워하며 나고 죽는 재난을 싫어하여 뜻을 열반에 두기 때문에 아라한에 떨어집니다. 보살의 뜻을 일으켜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본래 없음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 몸의 형상에 집착하여 빠르게 부처님이 되고자 하지만 착한 스승[善師]을 만나지 못하고, 선권방편을 알지 못하고 곧 중간에서 그치면 연각의 도를 얻습니다. 이러한 행은 합한 것이 있고 흩어짐이 있으므로 곧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지 못합니다. 이렇듯 온갖 것에는 모양이 없거늘 어찌 남자와 여인이 있겠습니까?”
상도가 또 물었다.
“어떠한 행으로써 정각(正覺)을 이루게 됩니까?”
혜시가 대답하였다.
“색의 행[色行]을 내지 않고 공하지 않은 행을 관하지 않으면서 색의 행을 없애지도 않으며, 집착하는 행[執行]을 버리지 않고 또한 짓는 행[造行]도 없으며, 식의 행[識行]을 내지 않고 공하지 않은 행을 관하지도 않으면서 식의 행을 없애지도 않으며, 색이 생기는 행[色生行]을 하지 않고 식이 생기는 행[識生行]도 하지 않으며, 또한 행에 돌아감도 없으면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영원히 처소가 없으면서 머무를 바의 행이 없고 삼계에 의지하지 않으며, 5음을 버리지 않으면서 5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속의 행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도의 행을 생각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도의 행이어서 정각에 이르게 됩니다. 4등(等)에 기대지 않고 6도무극의 행을 생각지도 않으며, 세 가지의 해탈에 대하여 의지하는 행이 있지도 않고, 공․무상․무원의 법을 통달하여야 비로소 보살이 되어 법에 수순하는 행에 상응하고 정각과 평등한 행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상도여, 이런 법을 행하는 이에게 어찌 방면(方面)과 처소와 삼계와 남녀의 분별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짓는 것도 없거늘 어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취하면서도 취하는 바가 없고, 이루면서도 이루는 바가 없고, 깨달으면서도 깨달은 바가 없으며,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도 또한 명호(名號)도 없고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혜시야, 진실로 말한 바와 같으니라. 온갖 것은 정해진 것이 없고 행(行)에 따라서 이루어지니, 본래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고 쇠하지도 않으며,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으며, 생각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어야 비로소 정각을 이루느니라.”
이때 혜시는 곧 여인의 몸이 바뀌어 남자가 되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이때에 5백 여인들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본래부터 늘 스스로 관찰하되
남자란 정해져 있는 종성이고
강하고 약한 것도 각각 품류가 있어서
여인은 본디 바뀔 수 없다고 여겼으나
오늘에야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
비로소 견고하게 고정된 것 없어
5도(道)는 마치 허깨비[幻化]와 같아서
행(行)을 따라 이루어짐을 알았나이다.
삼계에 마음이 미혹되어서
본래 없는 진리 환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내가 있다 헤아리면서
속박과 집착으로 진창에 떨어지나니
비유하면 마치 고기잡이가
낚시로 고기를 낚아 잡으면서
그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도
스스로 내가 잡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나이다.
삼계는 마치 더부살이와 같고
4대는 나의 소유가 아니며
모든 법이 마치 꿈과 같은 줄 알면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나이다.
부디 부처님께서 더욱 가엾이 여기시어
은혜와 자비 드리워 주시어
여인의 몸을 바꾸게 하고
초일명정(超日明定)을 증득하게 하며
부처님 되어 국토를 이루어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교화하며
중생을 모두 제도 해탈시키면서
빨리 위없는 참된 도(道)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5백의 여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소원대로 빨리 얻게 될 것이니라.”
이 말을 듣고 모든 여인들이 기뻐하였고, 그 순간 일시에 모두 남자가 되었다.
이때에 부처님은 혜시와 5백 여인들에게 수기(授記)를 주셨다.
“이로부터 10겁 후에 모두가 부처님이 될 것이니, 명호는 혜견(慧見) 여래․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명행성위(明行成爲)․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불세존이라 하리라. 그 세계의 이름은 제명(除冥)이라 하고, 겁(劫)의 이름은 광명(光明)이라 할 것이며, 부처님께서는 백억만 년 동안 머무르면서 설법하여 항하(恒河)의 모래만큼 많은 보살이 불기법인을 얻으며, 일생보처도 역시 그와 같고 모든 아라한도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며, 그때의 사람들이 입는 옷과 음식은 마치 제2의 도리천과 같을 것이니라.”
이때 모여 있던 대중들은 부처님의 수결(授決)을 듣고, 백천 사람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고, 수없는 보살들이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8만 비구가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렸고, 10만 하늘과 사람들은 번뇌[塵垢]를 멀리 여의어 모든 법에 대해 법안(法眼)이 생겼다. 땅은 곧 크게 진동하고 공중에서는 비 내리듯 꽃이 뿌려졌으며, 공후(箜篌)와 악기는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다. 그리고 억백의 여러 하늘들은 공중에서 모두 찬탄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무나 깊은 법이라
만나기 어렵고 듣기도 어렵거늘
다행히 저희들은
전생에 남은 복이 있어서
이제 비로소 듣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부처님께서 다시 혜시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간의 생사에 얽매여 있으면서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나와 다른 사람을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은, 마치 성성이[猩猩]가 술에 유혹되어 풀려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사람에게 붙잡히게 되는 것과 같으니, 세상 사람도 이와 같이 5음과 6쇠의 우환이 서로 얽혀서 항시 나라고 헤아리며, 고(苦)․공(空)․무아(無我)․비신(非身)을 모르는지라, 이를 범하여 곧 재앙이 있고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면서 3독(毒)과 5개(蓋)에 속박당하며, 해탈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진실한 도에 반(反)하는 것이, 마치 나무가 불을 내면서 제가 타는 줄을 모르는 것 같으니라.
공의 행[空行]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라 헤아리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스스로 어두운 데로 잘못 떨어져서 3악도(惡道)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큰 도둑․강도․원수가 스스로 씩씩하고 유쾌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으니, 세속 사람은 색(色)․통(痛:受)․상(想)․행(行)․식(識)에 집착하여 더러운 때[垢]에 빠지고 그 죄는 음개(陰蓋)를 가리며, 큰 법의 뛰어나고 묘한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이 있는 은애(恩愛)로 인해 사람이 되어 태어나며, 열두 가지 결박(結縛)과 62견(見)과 의심의 그물과 진로(塵勞)로 모든 사도인 96경(經)에 미혹되니, 모든 법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공(空)하여 없다는 것을 분별하여야 하니, 마치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마치 꿈․파초․아지랑이․물속의 달과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다고 분별하면 나라고 헤아리지 않느니라.
색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통과 상도 자연 그대로요, 통과 상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행과 식도 자연 그대로이며, 행과 식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4대도 자연 그대로요, 4대가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삼계도 자연 그대로이며, 삼계가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열반도 자연 그대로요, 열반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아야 그제야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하게 되어 생사에 있지 않고 멸도(滅度)에도 처하지 않으면서 대승의 깊고 묘한 지혜에 상응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몸에 중한 병이 들어서 스스로 치료하고자 하려면 그에 따른 약을 먹어야 하는데도, 도리어 독약을 먹고는 몸의 병을 다스린다고 여겨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상하게 하면서도 이내 다시 독을 제거하는 약을 먹지 않으면, 곧 그 사람은 죽게 되어 아무리 후회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도를 배우는 선비 역시 그와 같이 본래 도의 뜻을 내어 보살의 행을 하고 네 가지 평등심인 자(慈)․비(悲)․희(喜)․호(護)를 받들며 6바라밀[度]을 따라 수행하면서도, 모두 생각이 있고 희망하는 바가 있으면 곧 성문이나 연각의 승(乘)에 떨어지게 되며, 설령 적합하게 이루었다 하여도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그는 대승에 이를 수 있는데도 망설이면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곧 중간에 머무르는 이가 되어 이내 소승에 떨어지고 마니, 비유하면 마치 일반 백성들이 먹는 음식을 전륜성왕이 먹으면 독약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마치 감로(甘露)의 으뜸가는 맛이 갖추어진 약은 여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바가 많은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대승의 법으로써는 온갖 사람들의 생․노․병․사와 음(婬)․노(怒)․치(癡)의 재난과 뭇 생각의 우환을 치료하는 바가 많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천(千) 하늘과 사람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으며, 5백의 천자(天子)가 불기법인을 얻었다.
이에 혜영(慧英)이라는 보살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살이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하나이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항하 모래 수같이 많은 겁 동안 공덕을 쌓으면서 만족하지 않고, 4등심(等心)을 들으면서도 만족하지 않으며, 4은(恩)의 법을 닦으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고, 6도무극을 행하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을 닦으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고, 크게 인자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면도 만족하지 않으며, 5신통에 나아가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또한 대승의 가르침을 행하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성문이나 연각을 나타내어 널리 온갖 중생을 교화하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열반을 나타내어 보이고 열반에 머무르다가 다시 생사의 세계로 돌아가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면서도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마치 허공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나오지도 않고 들지도 않으며 통달하지 않은 바가 없고 두루 하지 않은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바로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과거를 헤아리지 않고 미래로써 한계와 장애를 두지 않으며 현재에도 처소(處所)를 두지 않아서 과거․미래․현재인 3세(世)의 한정이 없으며, 3도(塗:惡道) 등에서 삼계라는 생각도 없고 열반이라는 기억도 없으며, 도(道)라는 분별도 없고 세속(世俗)이라는 분별도 없으며 좇아 따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이것이라야 비로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듣는 바에도 또한 듣는다는 분별이 없고, 보는 바에서도 또한 본다는 분별이 없으며, 말하는 바에서도 또한 말한다는 분별이 없고, 제도하는 바에서도 또한 제도한다는 분별이 없는 이것이라야 비로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혜영이 또 물었다.
“무엇을 행하는 것이라 하고 무엇을 성취한다 합니까?”
“보살의 뜻을 일으켜 4등심과 대자대비와 무극(無極) 지혜를 행하며, 보시로써 사람을 섭수하고, 계율 인욕․정진․일심․지혜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행이 차츰차츰 점차로 나아가는 이것을 바로 행하는 것이라 하며, 그 행이 공․무상․무원(無願)의 법을 초월하면서 나를 분별하여 보지도 않고 3세를 헤아려 보지도 않으며 열반과 생사를 보지 않는 이것을 바로 성취라 합니다.”
대영(大英)보살이 또 부처님께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어디에서 오고 갈 때는 어디로 가며, 늙고 병들고 죽을 때는 어디에서 와서 갈 때는 어디로 가며, 색(色)․통(痛)․상(想)․행 (行)․식(識)은 어디에서 오고 갈 때는 어디로 가며,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과 눈․귀․코․입․몸․마음은 어디에서 오며 갈 때는 어디로 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느니라. 연(緣)이 합하면 있다가 연이 흩어지면 소멸하는 것이니, 마치 요술과 같고 변화와 같으며 그림과 같고 북과 같으며 비와 같고 번갯불과 같이 모두가 인과 연을 따르며, 연이 있으면 생기는 것이 있다가 연이 없으면 대상이 없으니, 나고 죽고 하는 것도 그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대영이 또 물었다.
“무엇을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으며 인과 연이 합하여 성립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행을 지으면 사람이 되고, 하늘의 행을 지으면 하늘이 되며, 지옥의 행을 지으면 지옥이 되고, 축생의 행을 지으면 축생이 되며, 아귀의 행을 지으면 아귀가 되고, 다섯 가지 행이 없으면 5도가 없으며, 5도가 없으면 출입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근본이라 하며,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인 삼계가 없고, 마음[心]․뜻(意)․의식[識]이 없기 때문에 삼계가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아직 사람이나 만물이 있지 않으면 색(色)이 있되 보는[見] 것이 없으니, 무엇을 색이 있되 보는 것이 없다고 하는가? 땅의 색[地色]과 물의 색[水色]과 불의 색[火色]과 바람의 색[風色]이니라. 고정된 것을 땅이라 하고, 맑은 것을 물이라 하며, 밝은 것을 불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 하느니라. 하늘과 땅이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는 아직 삼계도 있지 않은 것이니, 이 네 가지의 색이란 언제나 자연 그대로일 뿐이요, 짓는 이[作者]가 없어도 자연히 움직여 일어나며, 오직 도(道)만이 능히 이름하고[能名] 나아가 보처(補處)만이 능히 이름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바로 형상이 없는[無像] 색이요, 또한 마음의 색[心色]이라고 하느니라.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는 마음의 색을 보고, 아유안(阿惟顔:一生補處)은 네 가지 색의 마음을 보며, 여래는 아직 있기 전의 네 가지 색의 마음의 근본을 보느니라. 삼계안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의 색이고, 마음의 근본[心本]이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며, 보살에 대한 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말하고, 마음의 색이 없는 뜻이면 삼계는 자연 그대로이며, 허공과 같아야 비로소 도(道)라고 하느니라.
이 모든 법에는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그 까닭은 가령 합쳐진다 하면 곧 사람의 근본일 것이요, 흩어진다 하면 곧 생사(生死)이기 때문이니라. 생사의 고통과 열반의 쾌락을 보는 이를 성문(聲聞)이라 하고, 중간에 처해 있으면서 온갖 것에 이익이 없는 이를 연각(緣覺)이라 하며,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면서 열반에 처하지도 않고 생사를 미워하지도 않는 이를 비로소 법신(法身)이라 하는 것이니, 법신은 형상이 없되 두루 온갖 것에 들어가며 또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들어가지 않는 바도 없느니라.”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 5천의 하늘과 사람이 어디로부터 생겨난 바가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냈다.
이때 아난이 세존께 물었다.
“도의 뜻[道意]을 일으켜 보살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무엇을 근본[本]으로 삼아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진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공의 지혜를 분별하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나와 수명을 보지 않는 것을 근본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찌하여 더디거나 빠른 것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이니라.”
또 물었다.
“무엇을 있다고 하고, 무엇을 없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고 함은, 정진을 따르면서 게으르지 않고 공덕을 쌓고 심으면서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선권방편과 자․비․희․호와 4은(恩)과 공한 행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는 것이니, 게으르지 않음으로부터 얻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있다고 하느니라.
없다고 함은, 도(道)에는 처소가 없고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이 지음[造作]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짓는 바도 없고 마음․뜻․의식도 없으며,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없다고 하느니라.
그 까닭은 여러 겁을 지나서 그 수조차 헤아려 알기 어려운 옛적에 자재 (自在)라는 전륜왕이 있었는데, 그 왕에게는 천(千)의 아들이 있어서 용맹스럽고 걸출하였으며 국토가 7보로 되어 있는 4천하를 주관하였으며, 바른 법으로써 다스리고 형벌도 가하지 않았었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묘(寶妙) 여래․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명행족(明足行)․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불세존이라 하였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셨으니, 처음 말씀도 좋았고 중간 말씀도 좋았고 마지막 말씀도 좋았으며, 그 뜻을 분별하되 미묘하게 구족하였으며, 범행(梵行)을 청정하게 닦으면서 법을 연설하여 넓히셨으므로, 그때 모인 보살은 무수억(無數億)의 대중이었고, 성문과 연각도 한없이 많았느니라.
그때 전륜왕은 부처님을 여러 해 동안 공양하고 모셨었는데, 천의 아들과 보배스런 신하[寶臣]와 대중과 그들을 따르는 권속들이 다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보살의 행을 널리 말씀하시어 안온(安穩)한 바가 많았고 구호된 바가 많았으며, 온갖 사람들에 있어서 제일 높은 이었느니라. 왕과 모든 아들과 보배 신하와 수종한 이들은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켜 밤이나 낮이나 정진하면서 감히 게으르거나 쉬지 않았으며, 여래께 온갖 편안한 바를 공양하였느니라.
이때 천 명의 아들 모두는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공덕을 시험하려 하였는데, ‘저마다 누가 먼저 부처님이 되는가를 산가지를 뽑아 제일 좋은 산가지를 뽑은 이는 그 밖의 나머지 사람을 항복시켜 그 차례대로 부처님이 되게 하며 게으르고 박덕(薄德)한 이가 최후에 뽑힌 것으로 하자’ 하고, 곧 말한 대로 저마다 산가지를 뽑았느니라. 그 가운데 한 태자가 최후에 산가지를 뽑았는데 맨 끝에서야 비로소 부처님이 되게 되었으므로, 그는 그때에 근심․걱정하면서 스스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곧 큰 산이 무너지듯 자기 몸을 땅에 던지면서 ‘내가 어찌하여 맨 나중에 부처님이 된단 말이냐?’라고 하므로,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근심․걱정하지 말라. 도(道)에는 기한이 있는 것도 없고 또한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느니라. 공(空)하여 없다는 지혜를 능히 분별하여 알면 곧 먼저 부처가 되느니라.’
이때 그 태자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도의 뜻을 일으켜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큰 자비를 행하면서 온갖 법은 마치 요술․그림자․메아리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꿈․파초․물속의 달과 같은 줄 알았으므로 천 명 가운데 네 번째로 부처님이 되었으니, 명호는 석가문(釋迦文) 여래․지진․등정각이었느니라. 그 나머지의 모든 아들들은 차례대로 부처님이 될 것이며, 최후에 부처님이 될 이는 명호가 누유(樓由)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고자 하느냐? 그때의 전륜성왕은 바로 정광(錠光)여래이시며, 제비를 잘못 뽑은 태자는 곧 공하여 없음을 이해하고는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먼저 부처님이 되었으니,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 나머지의 여러 아들들은 현겁(賢劫) 동안 천 부처님이 되실 분들이니라. 그러므로 이런 이치를 알아야 하느니라. 도는 멀거나 가까운 것이 없고 공을 알아 미묘함을 분별하면서 자연 그대로 법인 줄 알아야 비로소 빨리 부처님이 되느니라.”
그때 모여 있는 이들 모두가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면서 널리 도의 뜻을 일으켜 보살행을 닦았으므로 5천의 보살은 법인(法忍)을 체득하였고 만인(萬人)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었다.
이때 일천왕(日天王)이 헤아릴 수 없는 수백천의 천인(天人)들과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발아래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한 행(行)으로써 일천왕이 되어 다니면서 4천하를 비추며, 어떠한 인연으로 달이 되어서 밤을 비추며 어둠을 없애나이까?”
부처님께서 일왕(日王)에게 말씀하셨다.
“일왕이 될 수 있는 데는 네 가지 일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언제나 보시하는 것을 기뻐하고, 몸을 닦으면서 행을 삼가며 계(戒)를 받들어 범하지 않고, 부처님․절․탑묘에 등불을 켜고, 또는 부모․사문․도인(道人)에게 광명의 덕(德)을 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언제나 보시를 일으키기 좋아하고
계를 받들어 범하지 않으며
부처님과 절과 부모님 앞에
등불을 켜 밝히며,
부처님의 정전(正典)을 기뻐하고
경법(經法)을 헐뜯어 말하지 않으며
사문과 도사(道士)를 공경하나니
이로 인하여 일왕이 되나니,
몸에서는 천(千) 광명을 놓아
널리 4천하를 비추어
모든 깊고 어두운 곳까지
환한 빛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일천왕이 되는 데에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몸으로는 살생(殺生)․투도(偸盜)․음행(婬行)을 하지 않고, 입으로는 양설(兩舌)․악구(惡口)․망언(妄言)․기어(綺語)를 하지 않으며, 뜻으로는 진에[恚]․질투[嫉]․우치[癡]를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신을 공경하고 스스로 단속하여 보호하며
그러면서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하지 않으며
지조 없는 말과 험담과
망언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느니라.
마음에 질투를 품지 않고
성을 내는 모든 독기가 없으며
62개의 어리석은 견해를 여의면
해의 광명으로 사방을 비추느니라.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또 월왕(月王)이 되는 데에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가난하여 없는 이에게 보시하고, 언제나 5계를 받들어 지니며, 삼보(三寶)를 좇아 공경하고 어두운 데와 군(君)․부(父)․사(師)․사(寺)에 촛불을 밝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가난하여 없는 이에게 보시하고
언제나 5계를 받들어 지니며
부처님과 절에 등불을 밝히고
삼보를 공경하며 모시느니라.
마음은 모든 선(善)을 생각하는 데에 두고
세간의 뭇 악[衆惡]을 물리쳐 버리며
스스로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면
달빛으로 어두운 데를 비출 수 있느니라.
이때 일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大聖)이시여, 높으신 뜻으로 굽어 살피시어 궁중으로 오셔서 하찮은 음식이라도 드시어, 제가 거느리고 있는 허공의 신(神)과 하늘[天]들로 하여금 모두가 큰 은혜를 입고 깊고 묘한 법을 들어서 모두 다 도의 뜻을 내어 제도되길 한량없게 하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시면서 그의 청을 받아들이시자, 일왕은 부처님께서 이미 허락하시어 청을 받아들이신 것으로 알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홀연히 궁중으로 돌아와서 온갖 음식과 여러 가지 맛있는 것을 장만하고 평상․걸상․방석 등을 아름답게 꾸미고 깨끗이 하며 부처님을 위해서 4천 리(里) 높이의 자리를 펴 놓았다.
이에 일왕은 궁전에 서서 멀리서 거듭 부처님께 간청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모든 중생에게 보시 하시되
있는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또한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셨기에
부처님 되시어 시방을 제도하시나이다.
지혜는 마치 허공과 같고
교화하심에 걸림이 없으시며
모든 중생 은혜 입었사오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인자하신 마음을 중생에게 펴시어
일찍이 위해(危害)함이 없게 하시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가엾이 여기시어
법보(法寶)로써 베풀며 가르치옵니다.
위신력(威神力)으로 중생을 비추시고
가난하여 없는 이를 구제 해탈시키시며
7보(寶)를 베푸시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중생들의 마음이 미혹하여
5도에서 애쓰면서 고통스러워함을 보고
언제나 큰 은혜 베푸시면서
두려움들 달래주고 면하게 하시나이다.
법의 가르침으로써 깨우쳐 교화하고
미치지 못한 이들에게 보이고 인도하며
공하여 없는 지혜 심어 주시나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그 광명은 해와 달 뛰어넘고
위엄과 덕망은 수미산보다 뛰어나며
지혜는 허공보다 훨씬 더 뛰어나니
짝할 이나 견줄 이를 비유할 수 없나이다.
해나 달은 뭇 어둠을 비추면서
다만 만물(萬物)만을 성숙시키지만
부처님께서는 5도의 사람을 비추어서
모두로 하여금 5안(眼)을 얻게 하시나니,
허공은 오히려 자로 잴 수 있고
바닷물은 방울 수를 알 수 있으며
수미산과 시방의 온갖 땅도
또한 근(斤)과 양(兩)으로 알 수 있으나,
여래의 지혜는 성스럽고
공조(功祚)는 넓으면서도 높디높아
한(限)이 없고 그보다 두루 뛰어나시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모인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때가 되었으니 모두 갈 준비를 갖추고 일왕이 청(請)한 곳으로 나아가자.”
이에 즉시 모두가 분부를 받아 부처님과 대중은 허공으로 솟아올라 일왕의 궁전으로 나아가 사자좌(獅子座)에 앉았으며, 집회에 모인 대중이 다 앉자 왕후와 태자와 모든 하늘의 권속들은 땅에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곧 지극한 마음으로 세존께 공양하되 손수 온갖 공양을 가져다 날랐다. 진지를 다 드시고 씻고 나시자, 다시 낮은 상을 가져다 스스로 부처님 앞에 놓고 앉아서 공손하고 엄숙하게 법을 들으려 하므로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삼계에서 받는 형상 모두가 마음과 뜻을 좇으며, 마음과 뜻은 형상은 없지마는 짓는 바의 행에 따라 몸이 성립되니, 호귀(豪貴)와 빈천(貧賤)은 모두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느니라. 마치 물거품이 일어났다가 순간 다시 무너져 없어지는 것과 같이 온갖 세간에 있는 바도 그와 같으니라. 그러니 마땅히 도덕(道德)을 믿되 바르고 참된 것만 믿어야 하고 그 밖의 것은 믿지 말아야 하니, 뭇 행을 버리고 법의 행을 받들어 행하라.
어떤 것을 법의 행이라 하는가? 무생(無生)의 행(行)은 모든 생기는 바를 없애고, 진제(眞諦)의 행은 존재하는 바가 뛰어나며, 입도(入道)의 행은 망실(忘失)하는 바가 없고, 보시(布施)의 행은 아끼거나 바라는 바가 없으며, 지계(持戒)의 행은 모든 원(願)을 두루 얻고, 인욕(忍辱)의 행은 뭇 사람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정진(精進)의 행은 동요하거나 옮아가는 일이 없고, 일심(一心)의 행은 뜻의 행[意行]으로 언제나 통달하며, 지혜(智慧)의 행은 거룩한 눈[聖眼]으로써 보느니라. 인자한 마음의 행은 온갖 괴로움을 참아내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행은 중생에게 뜻을 평등하게 지니며, 기쁘게 하는 마음의 행은 법으로써 깨우쳐 교화하고, 보호하는 마음의 행은 온갖 것을 편안하게 위로하며, 신통의 행은 여섯 가지 신통으로 통달하고, 공(空)을 사유하는 행은 성내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녹여 없애는 행은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 네 가지 은혜의 행은 합쳐 모여서 사람을 구제하느니라.
견문이 넓은 행은 따라 받아들여 도(道)를 이루고, 일어나지 않는 행은 자연그대로라고 보며, 도품(道品)의 행은 유위(有爲)를 얻게 하지 않고, 본래 없음의 행은 죄와 복의 과보가 없으며, 인연으로 생기는 행은 무명(無明)과 명(明)의 다함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뭇 수고로운 행은 사람과 만물은 자연 그대로인 줄 알고, 모든 법의 행은 공의 지혜를 분명히 알아 평등각(平等覺)을 얻느니라. 악마를 항복받는 행은 흔들리거나 움직일 수 없고, 삼계의 행은 비록 처하여 있으나 떨어지지 않으며, 사자(師子)의 행은 잘 이기면서 두려워함이 없고, 힘써 두려워함이 없는 행은 향하는 바에 두려워함이 없으며, 3달(達)의 행은 걸림이 없고, 일심으로 깨닫는 행은 큰 지혜가 널리 갖추어지며, 온갖 것을 가르치는 행은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62견을 교화하는 행은 중생의 의심 그물과 96경을 제도하고 가르치면서 하나의 도에 들어가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일왕아, 보살이 이런 행에 순응하면 곧 도의 행에 순응하고, 이미 도의 행에 순응하면 곧 대자(大慈)에 순응하며, 이미 대자에 순응하면 곧 대비(大悲)에 순응하고, 이미 대비에 순응하면 큰 갑옷에 순응하며, 이미 큰 갑옷에 순응하면 곧 사자처럼 외치고, 이미 사자처럼 외치면 곧 허깨비에 순응하며, 이미 허깨비에 순응하면 곧 5도(道)에 들어가고, 이미 5도에 순응하면 곧 인연을 따라 들어가며, 이미 인연을 따라 들어가면 변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미 변한 데에 있으면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제도하되 제도하는 바가 없고 청정하되 청정한 바가 없으며, 밝되 밝히는 바가 없고, 깨닫되 깨닫는 바가 없어야 비로소 바르게 깨닫게[正覺]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과거․미래ㆍ현재의 일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평등함을 통달하려 하면 언제나 마땅히 이런 뜻을 믿고 분별하고자 해야 하며, 생사와 12인연을 좇아 일어나는 바와 3취의 우환과 5개(蓋)의 가림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이런 뜻을 이해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할지니라.
12부 경전의 요지를 알아서 3달(達)의 가르침을 열고 3탈(脫)에서 초월하여 3달지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이런 뜻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군(郡)․국(國)․현(縣)․읍(邑)과 언덕과 촌락과 온갖 곡식이며 풀․나무․약․과실수가 모두 땅으로 인하여 생기듯이, 보살이 이 지혜에 들면 교화하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도 모두 그것을 성립시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와 성문․연각에 이르게 하는 것도 모두 그것에 의지하고 기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일천왕과 왕후와 태자와 그 권속인 모든 하늘들은 모두 마음에 저절로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10억의 하늘과 사람들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에 서서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권속에게 에워싸인 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늘과 사람들은 환히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크기를 재기 어려워
5취(趣)에 헤매고 헷갈리는 것은
마치 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문 것과 같으니라.
삼계는 마치 요술과 같아
황홀하여 처소를 보지 못하며
태어난 것 스스로 깨닫지 못함은
의식(意識)에 부림[使]을 받아서이니라.
네 가지의 뒤바뀜에 떨어져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할 만하니
스스로 몸이 항상 있다고 헤아리고
도(道)의 진리를 믿지 않느니라.
온갖 것은 공(空)으로부터 나는 것인데
도리어 공의 지혜를 듣기 싫어하니
마치 사람이 어버이로부터 태어나나
오히려 부모에게 불효(不孝)하는 것과 같으며,
개가 변화하여 호랑이가 되어
사람을 위할 때를 깨닫지 못하고
곧 다시 집안사람을 해치며
친소(親疎)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사람은 본래 공(空)으로부터 난 것이라
미울 것이 없는 것도 역시 그와 같거늘
음(陰)과 입(入)에 흐려서 어지러워지면
마치 취한 이가 나체(裸體)로 달리는 것과 같으니,
개가 다시 변하여 사람을 위하여야
비로소 집안의 친속을 알듯이
본래부터 없음을 분별하여야
비로소 온갖 것이 공임을 깨닫느니라.
공한 것은 공을 생각하지 않고
공도 또한 공을 보지 않나니
이미 나는 바가 없음 통달하여야
마침내 자연 그대로인 줄 알게 되느니라.
보살의 행을 구하면서
중생들을 제도 해탈하려 하면
온갖 법은 스스로 그러하여
마치 허깨비와 같은 줄 알아야 하나니,
이런 지혜로 분별한 뒤에
그것을 따르면서 여의지 않으면
곧 깊고 미묘한 데에 들어가
방편과 지혜로 사람을 제도하리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수없는 억(億)의 하늘들과 허공의 모든 신(神)은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으며,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은 불기법인을 얻었다.
부처님은 다시 유야리(維耶離)의 내씨수원(㮈氏樹園)으로 되돌아가셨다. 그때 성(城) 안에 해법도(解法度)라고 하는 큰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전세(前世)에 수없는 백천의 부처님께 공양하여 일궈놓은 덕의 근본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모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예배한 것도 한량없었다. 법담(法談)을 나누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으며, 불기법인으로 지혜를 내면서 도무극과 방편으로 제도한 바는 헤아리거나 말할 수도 없이 많았다. 그가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머리 숙여 예배한 뒤에 한쪽에 앉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 공양하면 어떠한 공덕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꽃을 받들어 부처님께 뿌리면 태어날 적마다 단정하게 생기고 의복과 음식이 저절로 있으며, 향을 사르러 향기를 풍기면 몸이 향기로우면서 깨끗하고 이름과 덕이 멀리까지 퍼지며, 등불을 켠 이는 천안(天眼)이 밝고 슬기로워 어두운 데에 처하지 않고, 당기나 번기를 보시하면 있는 곳마다 풍요롭고 즐거우며 재보(財寶)가 한이 없으며, 비단 일산을 받쳐 드리는 이는 집을 얻게 되어 보호를 받아 드러나지 않는다. 음악과 창기(倡伎)로 부처님과 탑사(塔寺)를 즐겁게 하고 나아가 온갖 것을 즐겁게 하면 천이(天耳)를 얻어서 두루 꿰뚫어 들으며, 신발이나 탈것을 보시하면 가벼이 뛰어오르며 날 수 있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향하면 전생의 일을 알게 되며, 중생을 인자하게 살펴보면 온갖 마음을 알고, 법으로써 베풀어 주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되느니라. 음식으로 베풀어 주면 언제나 법회를 만나고, 의복으로써 베풀어 주면 32상과 80종호를 얻게 되니, 내가 멸도한 뒤에 그 어떤 이가 형상과 사리에 공양하면 공덕도 역시 이와 같아서 점차 법에 수순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무위의 도를 건너게 되느니라.”
해법(解法) 장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정녕 공양에는 이 꽃․향․번기․일산․기악(伎樂)․신․탈것․음식과 의복보다 뛰어난 것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을 일으켜 온갖 중생의 처음으로부터 마지막까지의 우환(憂患)을 가엾이 여겨 제도하려 하며, 대자대비로 생사(生死)의 세계를 싫어하지 않고, 모든 총지(總持)와 3장(藏)의 상자[篋]와 아주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끝없는 지혜를 구하여 평등하게 3도(塗)를 없애고 삼보로써 인도하며, 공․무상․무원을 분별하면서 3탈문을 초월하고 세 가지 통달한 지혜[三達智]를 얻으며, 사람의 근본은 본래 처소가 없고 인연으로써 생긴다고 보며, 온갖 법도 또한 가고 오는 것이 없고 6정(情)도 자연 그대로여서 마치 물 위의 거품과 같다고 관하며, 4제(諦)에 진리가 없는 것은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본래부터 없는 것이 곧 진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며, 자(慈)․비(悲)․희(喜)․호(護)와 보시를 법으로 여겨 중생을 사랑하고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이롭게 하면서 평등하게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며, 여섯 가지의 도무극과 선권방편으로 수순하면서 교화하되 생사를 미워하지 않느니라.
또 마치 나는 새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워하는 것이 꽃과 열매와 동산과 흐르는 샘과 암자와 같이 하면서 큰 성인의 진실하고 묘한 바다를 어기지 않으며, 네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뭇 삿된 62견을 항복시키며, 96경의 미혹을 교화하고 성문이나 연각의 행을 버리며, 무아(無我)․무인(無人)․무수(無壽)․무명(無明)을 알아 바르고 참되며 위없는 대도(大道)를 좇아 수행하는 것이니, 이 공양이야말로 가장 뛰어나느니라.
스스로 자기의 몸은 마치 허깨비와 같을 뿐이라고 관하고 12인연은 실마리가 없는 줄 분명히 아느니라. 그 까닭은 본래는 어리석음[癡]이 없었으나 연이 응하여 일어났기 때문이니, 어리석음으로부터 행(行)에 이르고, 행으로부터 식(識)에 이르며, 식으로부터 명색(名色)에 이르고, 명색으로부터 6입(入)에 이르며, 6입으로부터 습(習)에 이르고, 습으로부터 통(痛)에 이르며, 통으로부터 애(愛)에 이르고, 애로부터 취(取)에 이르며, 취로부터 유(有)에 이르고, 유로부터 생(生)에 이르며, 생으로부터 사(死)에 이르고, 사로부터 우(憂)․척(戚)․비(悲)․감(感)에 이르되 뜻[意]이 번거롭게 할 수는 없느니라.
본래부터 없음을 분명히 알면 오히려 치(癡)조차 없거늘 어찌 행․식․명색․육입․습․통․애․취․유․생․노사(老死)․우비(憂悲)의 괴로움이 있겠느냐? 영원히 없는 것이니라.
모든 연(緣)이 모두 제거되면 삼계에 머무르지 않고 열반도 좋아하지 않으며, 대도(大道)라는 생각[念]도 없고 작은 도라는 생각[小道想]도 없으며, 나고 늙고 죽는 데에 노니는 것이 마치 해와 달이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 않는데도 세간 사람에게는 나오는 것이 있고 들어가는 것이 있는 것과 같으니, 보살도 그와 같이 온갖 중생을 교화하면서 삼계에 나타내 보이되 3승의 가르침을 나타내어 곧 멸도(滅度)를 나타내면서 온갖 사람에게 모든 생멸을 보이지만, 보살의 법에서는 생멸이 없는 것이니, 이 공양이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존귀하고 으뜸이요 끝도 없고 밑도 없는 공양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10만의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냈으며, 해법 장자와 그 권속들은 모두 불퇴전과 불기법인을 이루었다.
이때 조의(調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고르다[調]고 하고 무엇을 보배[寶]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어떤 이가 욕설을 퍼붓고 회초리로 때리며 저주를 퍼붓는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헐뜯고 욕되게 하고 오만하고 업신여기고 천히 여긴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며, 또는 칭찬하고 공경하고 공덕을 널리 드날린다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설령 하늘의 복이나 전륜왕의 뛰어난 성왕의 지위나 애욕의 즐거움으로써 그에게 권하고 보인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며, 가령 지옥․아귀․축생의 재앙과 괴이함으로써 두렵게 하고 핍박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목숨이 비상(非常)․고(苦)․공(空)․비신(非身)인 줄 알면서 그것으로써 보이고 위로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며, 또는 성문이나 연각의 법으로써 권유하고 나아가게 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보살의 공하여 없는 지혜와 대승으로 그를 교화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면, 이것을 바로 고르다[調]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배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마음을 내어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부처님을 존경하면서 외도(外道)를 따르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경 (經)을 이해하고 가르침을 따르면서 큰 교화에 거스르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뭇 스님과 성인 대중에게 겸손하면서 공경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온갖 것을 보시하되 아끼거나 바라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계율을 받들고 금제(禁制)를 따르면서 보살의 서원을 세우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인욕(忍辱)의 힘으로 뜻을 조복하여 산란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정진으로 힘쓰면서 도를 닦고 근본에 힘쓰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한마음으로 선정을 행하고 바르면서 삿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지혜가 깊고 미묘하면서 6쇠에 떨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선권방편으로 각각 그 처소를 얻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인자한 마음이 넓으면서 뜻함이 넓어 좁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언제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품고서 위액(危厄)을 불쌍히 여기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편안하고 온화하면서 기뻐하게 하되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온갖 것을 옹호하면서 구제해 주지 않음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법으로써 베풀어 주되 도(道)로써 하지도 않고 속(俗)으로 하지도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중생을 어루만져 기르면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힘써 보존하고 길이 이롭게 하면서 손실되게 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온갖 것에 대해 평등하게 이롭게 하여 치우치거나 사악한 뜻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언제나 겸허하면서 마음을 비워 일찍이 오만하거나 방자한 일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설령 어떤 이가 욕설을 한다 해도 한(恨)을 맺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혹 매로 때린다 해도 본래 몸은 없는 것이라고 헤아리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설사 화를 내며 해친다 해도 어질고 측은히 여겨 보답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업신여긴다 해도 그의 악(惡)을 기억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본래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나를 헤아리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온갖 괴로움을 알면서 방일함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물건은 나의 소유가 아니므로 물질에 현혹됨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성문의 행을 버리면서 연각이 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신통 변화를 숭상하여 닦아 다섯 가지로부터 여섯 가지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예순두 가지를 버리고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열반에 안주하지 않고 생사에도 위태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언제나 큰 법으로써 아직 듣지 못한 이를 깨우쳐 교화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법의 다리[法橋]를 나타내어 보이면서 모든 재액으로부터 구제하여 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삼계가 공이요 온갖 것이 본래 그대로인 줄 이해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연화정(蓮華淨)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청정한 행에 이르게 된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애욕에 더러워지지 않으면 이것을 곧 청정이라 하고, 마음이 언제나 깨끗하면서 성내는 독[恚毒]을 따르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며, 삼계의 티끌에 물들거나 막히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멸도(滅度)를 요행으로 여기지 않고 생사를 무시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처음과 마지막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무위(無爲)에 나고 들고 하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언제나 대자(大慈)를 행하면서 대애(大哀)를 버리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대도(大道)라는 생각이 없고 소도(小道)를 구함도 없으면 이것이 곧 청정한 것이니라.”
광영(光英)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보살은 광명이 널리 비춘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탑과 절에 등불을 켜고 학문(學問)과 지혜를 널리 모으되 만족함이 없으며, 도의 밝음[道明]을 드러내 주면서 참과 거짓을 통달하게 하고 성전(聖典)의 12부경(部經)을 좇아 익히게 하며, 모든 유의 바다[有海]인 12인연을 제도하고 언제나 대승에 뜻을 두면서 뭇 사람들의 우환을 없애고 미묘한 지혜에 이르면, 이것을 바로 보살이 광명을 널리 비춘다 하느니라.”
해박(解縛)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한 연유로 보살은 온갖 속박을 해탈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처소가 공한 줄 분명히 알아 과거․미래․현재에 대하여 생각이나 집착하는 바가 없으면 3구(垢)가 곧 제거되고, 색이 공한 줄 분별하면서 통(痛)․상(想)․행(行)․식(識)도 역시 그와 같아 온갖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으며, 하나도 구할 바가 없는지라 역시 버리는 바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온갖 속박을 해탈하는 것이니라.”
보사(寶事)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으로써 보배를 삼으며 무엇으로써 돌[石]을 삼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불(佛)․법(法)․중(衆)에 귀의하고 그릇된 법에는 귀의하지 않으며, 모든 96경(經)을 버리고 성문이나 연각을 원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대도(大道)에 뜻을 두며, 대자대비로 중생의 5도의 미혹을 구제하는 이것이 바로 보배가 되는 것이며, 12인연에 잘못 헷갈리고 큰 법의 공하여 없는 지혜를 알지 못하면 이것은 바로 돌이 되는 것이니라.”
은시(恩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중생에게 은혜를 베푼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뜻을 내지 못한 이로 하여금 모두 발심하게 하고, 물러나는 이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게 하며, 모든 생기는 것에서는 생기는 바가 없게 하고,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한 이로 하여금 일생보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온갖 중생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것이니라.”
“제천(帝天)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하늘을 능히 교화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욕심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것은 마치 사람이 꿈에 청정한 행을 보이는 것과 같고, 색계(色界)에 있을 때는 그들을 위하여 크게 인자한 보살의 행을 나타내며, 무색계(無色界)에 있을 때는 그들을 위하여 깊고 묘한 법을 나타내되 의지하거나 기대는 바가 없으니, 욕계에 의뢰하지도 않고 색계에 의뢰하지도 않고 무색계에 의뢰하지도 않으며, 소승에 의지하지도 않고 대승에도 의지하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모든 하늘들을 능히 교화한다 하느니라.”
수천(水天)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본래 청정함을 안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온갖 법은 요술과 같고 변화와 같아서 일체 법은 본래부터 없다고 분명히 아는 것은, 마치 물의 근원은 본래 처음에 청정하여 더럽거나 흐림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 까닭은 물이 마침 일정하게 머물러 있으면 청정하여 그대로이기 때문이니, 본래부터 없음을 알면 곧 법신(法身)을 체득하느니라.”
대도사(大導師)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인도한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간탐(慳貪)한 이를 보면 인도하여 보시하게 하고, 방일(放逸)한 이면 인도하여 계율을 지키게 하며, 성을 내는 이면 인도하여 인욕하게 하고, 게으른 이면 인도하여 정진하게 하며, 뜻이 산란한 이면 인도하여 한마음이 되게 하고, 어리석고 어두운 이면 인도하여 지혜롭게 하며, 그에게 도의 마음이 없으면 그를 대승으로 인도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보살이 온갖 중생을 위하여 인도한다 하느니라.”
용시(龍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세간에 있는 바는 무상․고․공․비신이요, 나에게는 본래 몸이 있지 않고 몸은 나의 소유가 아니며, 온갖 것은 그림자가 형상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관하는 것이니, 생사도 그와 같이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온갖 것이 공인 줄 알면 모두가 할 바도 없고, 나는 자연이며 내가 자연이므로 생사도 자연이요, 생사가 자연이므로 열반도 자연이며, 열반이 자연이므로 대도(大道)도 자연인 것이니라. 이것을 바로 보살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하느니라.”
그때 범천(梵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의 크기가 너무도 커 제대로 만나기 어렵사옵니다. 수없는 겁 동안 행을 쌓고 덕을 쌓아야 비로소 비슷하게나마 소리를 듣게 되는데, 다행히 큰 성인을 만나 이 법을 듣게 되었으니, 보살의 정전(正典)과 요긴하고 미묘한 교화와 깊디깊은 뜻에 공양하나이다.
이미 받들면서 여러 번 듣고 이 법을 통달한 까닭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행(行)에 의거하여 이름을 붙이게 하며, 그가 이 경을 들으면 벌써 부처님을 뵌 것이 되고 귀로 미묘한 지혜를 들은 것이며 성인 대중을 공양하고 받든 것이오니, 하늘 길[天路]을 건너고 3취에서 벗어나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도의 뜻을 내게 하나이다. 몸소 3탈(脫)을 이해하고 3달(達)을 폐하지 않으며, 비록 아직 도(道)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덕(德)은 점차로 커지므로 초승달과 같고, 사자새끼가 두려워하거나 어려움 없이 자유로이 제 마음대로하는 것과 같으며, 모든 하늘․용․신이 모두 그를 호위하고 뭇 악마와 삿된 악이 저절로 조복되며, 있게 되는 곳의 주(洲)․성(城)․군(郡)․국(國)․현(縣)․읍(邑)에서 모두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출입(出入)에는 법도[節]에 상응하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위신(威神)으로 교화하고 도우시리이다.”
이때에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즐겁고도 즐겁습니다. 큰 성인께서 넓으신 은혜로 정신이 흐린 세상에 출현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가까이서 편히 머무르면서 이런 미묘한 교화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보살의 순수한 지혜는 마치 하늘 가운데 하늘과 같으니 어떤 여의주(如意珠)를 얻어서 모든 원대로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기쁨이 어찌 조그만 양이라 하겠나이까? 저희들도 그와 같이 이 큰 모임에 나와 상호(相好)를 뵙고서 은택을 얻고 불법을 듣고서 감로를 받았으니, 보살을 따라 모범으로 여기는 것은 마치 큰 바다에 들어가 이런 보주(寶珠)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널리 유포하여 동지(同志)에게 드러내 보여 보살행을 하게 해야 하며, 아직 믿고 좋아하지 못하는 모든 하늘들은 복된 무리에 의지하여 널리 뻗치면서 마음이 열리어 받아 배우게 해야 하리니, 그들이 믿고 좋아하면 배(倍)로 견고하게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되리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구나. 사천왕아, 진실로 말한 바와 같으니라. 이 큰 법이야말로 보기도 듣기도 어려우며, 만일 한 번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법과는 영원히 어긋나게 되어서 억천 겁에서도 만날 수 없는 것이 마치 한 개의 바늘이 깊은 바다에 떨어진 것과 같으니, 반복하여 찾고 구한들 어찌 쉽게 찾을 수 있겠느냐?”
사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요전(要典)의 보살의 깊은 법을 듣고서도 믿고 좋아하지 않고 상실하여 읊고 외우지 않으면 오랜 겁 동안 샛길로 잘못 들어 다시는 만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모든 어진 이들이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있는 곳마다 부처님을 뵙고 깊고 묘한 법을 들어 빨리 위없는 빠르고 참된 도에 이르고자 하면 반드시 부지런히 읽고 외우고 받들어 지녀야 하며, 아직 듣지 못한 이로 하여금 여기저기 보이면서 그 뜻을 알기 쉽게 풀어주어 이 큰 법전의 은혜를 입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날마다 닦으면서 차츰차츰 교화하면 그 복이야말로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여래께서 가득 차 계실 적에 어떤 족성자(族姓子)나 족성녀(族姓女)가 백천 겁 동안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서 온갖 편안한 것을 베풀거나 또는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저마다 7보로 탑을 우뚝 세우되 위로 24천까지 닿게 하고는 번기․일산․풍악․노래․게송으로써 역시 백천 겁 동안 공양한다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사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아서 끝이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비유할 수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떤 이가 이 삼매(三昧)의 열 가지 법과 초일명정과 여섯 가지 도무극과 선권방편을 받으면 이 복이 그것보다 뛰어나니, 그 까닭은 비록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한다 하더라도 이 부처님께서 전해 주신 법전을 받아 큰 성인의 명(命)을 쫓는 것보다는 못하기 때문이니, 온갖 보살행을 하는 모든 배우는 이들은 이 깊은 경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니라.”
이때 혜시(慧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법은 매우 깊고 깊은지라 만일 어떤 이가 믿고 좋아하면서 비방하지 않으면 그는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줄 알아야 하겠지만, 듣고서도 기뻐하지 않고 의심하면서 비방하며 베껴 쓰거나 읊거나 외우지도 않으며, 이미 스스로가 외우지도 않으면서 아울러 다른 사람까지 하지 못하게 하여 따라 배우지 못하게 하거나 하면, 그 죄는 헤아리기도 어려워서 세상에서마다 스스로 잘못된 3취에 떨어지고 스스로 독약을 먹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도 마시게 하며, 제 몸과 목숨을 위태롭게 하여 함정이나 어두운 데에 몸을 던지면서 또 여러 사람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것이옵니다.
이 큰 법이야말로 뭇 광명의 근원이로되 그 큰 것을 헐어버리고 미세한 번뇌로 나아간다면 재앙과 허물은 한이 없어서 태어날 때마다 삼보를 멀리하여 여덟 가지에 처하게 됩니다. 어떤 것을 여덟 가지의 처함이라 하는가? 첫째는 변두리 땅이요, 둘째는 외도(外道)이며, 셋째는 가난하여 없는 이요, 넷째는 비천한 이이며, 다섯째는 수명이 짧고, 여섯째는 못생기고 남루하며, 일곱째는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며, 여덟째는 오랑캐가 되는 것이옵니다. 법을 알지 못한 어떤 이가 비방하면서 믿지 않고 대승(大乘)의 업(業)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여덟 가지의 악에 돌아갈 것이니, 후회하게 된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도다. 진실로 너의 말과 같으니, 그 말한 바와 조금도 다름이 없도다. 기억해 보면, 옛날 무수겁(無數劫) 때에 보살의 뜻을 일으켜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출가하여 욕심을 여의고 비구가 된 이가 있었으니, 이름은 법락(法樂)이었느니라. 그는 여러 가지 잡된 글귀와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민 글들을 좋아하고 숭상하여, 대승의 길고 묘한 교화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히려 부처님의 정전(正典)은 거짓이라 비난하며, 이에 4아함인 소승으로써 과를 증득[果證]하기를 구하면서 이것을 바른 가르침이라 여기느니라.
이때 크게 배우면서 대승을 믿는 지도무극(智度無極)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공하여 없는 지혜를 강설하였으니, 그 내용은 깊고 오묘하며 끝이 없었다. 이에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닦으면서 모두가 다 함께 읊고 외웠다. 뜻을 알기 쉽게 말하여 널리 유포시켜서 4배(輩)들은 이를 흡족히 들었다. 이때 법락 비구가 그 위에 앉아 있다가 혜품(慧品)을 외우는 것을 듣고, 문득 그것을 비방하기를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하고 스스로 함께 지어 보태면서 부디 수행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그는 이 죄로 인하여 큰 지옥에 떨어져 열여덟 종류의 감옥에서 갖은 혹독한 고통을 받으며 여러 겁을 지냈었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국토가 겁이 다할 적에 불에 타 없어지고 수재(水災)로 쓸어 없어지게 될 터인데 그 고통이 어찌 멈추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잠시라도 멈추거나 그만두게 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은 만일 그 나라가 파괴되어 다하면 다른 지방의 부처님 세계의 감옥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크고 높은 법은 3도(塗)가 말미암은 바요, 과거․미래․현재의 부처님의 부모이기 때문이니, 만일 비방하게 되면 그 재앙은 썩어 없어지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법락 비구를 알고자 하느냐?”
대답하였다.
“저로서는 미치지 못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러므로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면서 망령되이 비방하지 말라. 이미 악도에 떨어지고 나면 극심한 고문을 후회한다 하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후 말세(末世) 사람은 유학(有學)의 법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밝게 통달하여 지혜로우면서도, 대승을 연설하며 펼 적에는 여기저기서 의심을 하고 공양하는 이를 질투하며 비방하면서 지혜가 없다고 여기며 사람을 미워했기 때문에, 함께 깊은 경전을 헐뜯은 것이니 만족스럽게 밝힌 것이라고 하지 못한다. 가령 비유를 들면 한 부모에 십여 명의 아들이 있을 적에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면 아울러 그 두 어버이를 비방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하느니라. 아난아, 장차 오는 세상의 사람들이 동학(同學)을 미워하고 정법(正法)을 비방하면 그 사람이 받을 죄는 헤아릴 수도 없고 비유로도 다할 수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령 스스로 깨쳐서 허물을 뉘우치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의 재앙과 허물이 점차 경미해지리니 비록 뒤에 허물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속히 해탈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 마음과 입을 단속하여 경망하게 말하는 일이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 지니어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며 두루 펴서 퍼뜨리면 복조(福祚)가 한량없고, 모든 하늘․용․신(神)․건답화(揵沓惒)․아수륜(阿修倫)․가류라(迦留羅)․진타라(眞陀羅)․마휴륵(摩休勒)이 모두 함께 옹호하며, 이 경을 배우는 이는 모든 불세존께서 옹호하시느니라. 또 사나운 사자․범․이리․곰 따위도 감히 번거롭게 하는 것이 없으며, 걸어 다니거나 들고 나는 데에도 언제나 자유롭고, 일찍이 나쁜 꿈을 꾸는 일도 없으며, 꿈속에서는 다만 부처님과 탑만을 볼 뿐이니라.
뜻이 고요한 4배(輩)의 도사(道士)가 경을 해설하게 되면 하늘․용․귀신 모두가 그를 보고 싶어하며, 모든 불세존께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시며, 4대천왕과 제석․범왕도 모두 그를 보고 싶어하면서 다 함께 옹호하리니, 깊은 법인 보살의 협장(篋藏)의 초일명정(超日明定)의 높은 정을 좋아하기 때문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배우는 이는
모든 하늘이 다 옹호하게 되며
용과 신과 아수륜과
진타라와 마휴륵과
가류라 등 온갖 것들이
감히 범하거나 번거롭게 함이 없네.
시방의 부처님은 위신(威神)으로써
모두 함께 그를 가르치고 인도하네.
하늘의 제석천과 범천왕과
크게 신령하고 묘한 모든 하늘들과
허공에서 세간 다스리는 이[持世者]들은
흠앙(欽仰)하며 모두가 보고 싶어하느니라.
눕고 일어나는 데 언제나 편안하고
일찍이 갑작스러운 일이 없으며
꿈속에선 탑과 절을 보게 되고
나쁜 인연들은 보지 않느니라.
깊은 경전을 체득하여 알아
언제나 힘쓰면서 분별하여 연설하면
듣는 이는 거침없이 통달하여
대승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으리라.
지견(知見)이 없고 복이 적은 이는
믿지 않으면서 바른 경전을 헐뜯고
거짓이라 하여 스스로 지으면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느니라.
그러면서 배우는 이들을 질투하고
아울러 넓고 바른 가르침을 비방하니,
마치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비방하면
그것이 두 어버이에게 미치는 것 같으니라.
그때 대광(大光)이라는 보살이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빛이라 하고 무엇을 밝음이라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분명히 알고 지혜가 밝아 마음이 마치 허공과 같이 시방의 과거․현재․미래인 3세의 일을 보면서 막히는 바가 없으면,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權智]를 체득하고 신통을 완전히 통달하며, 앉아서 모든 중생의 근원을 보고 과거와 미래의 인연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4대가 장애되지 않고 철위산(鐵圍山)과 대철위산의 보배산들도 장애되지 않으며, 땅․물․불․바람에 들고 나는 것에도 장애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땅은 모두 공(空)하기 때문이니, 들어가되 땅을 해체하지 않는다. 만약 땅이 공(空)하지 않다면 물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물이 들어가지도 못하거니와2), 공하기 때문에 차츰 서로 열리고 통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 몸에는 털구멍이 99만 개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미 신통을 얻은 이는 몸이 있다고 보지 않는지라 텅 비고 공하다고 살펴 알아서 걸림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바로 빛이라 하느니라.
온갖 마음이 이미 생긴 것과 아직 생기지 않은 것과 뜻이 있는 것과 뜻이 없는 것과 도의 마음과 세속의 마음과 번뇌의 마음과 다한 마음과 번뇌 없는 마음을 보고 모조리 다 환히 깨달아 알아서, 그들을 위하여 뜻을 강설하며 저마다 처소를 얻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밝음이니라.”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수없는 보살 모두가 신통을 얻었고, 한량없는 광명이 널리 시방을 비추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서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널리 펴 보여 유포하면, 이에 중생들이 제도되어 바르고 참된 데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법요만을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니,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 이름은 ‘초일명삼매경(超日明三昧經)’이며, 또 이름하여 ‘십정경(十定經)’이라고 하라. 부처님의 결정된 가르침이라 성취하는 바가 많으리니, 비유하면 해와 달이 사방을 두루 비출 적에 온갖 곡식과 초목과 만물이 변화하여 모두가 그로 인하여 성숙하게 되는 것처럼, 이 정(定)도 그와 같이 온갖 시방의 5도 생사에서 스스로 구제하지 못한 이를 비롯해 성문․연각 그리고 보살 대도(大道)도 모두가 이 정(定)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제도되느니라. 설령 천만 겁 동안 6도(度)를 받들어 행하더라도 바라는 생각이 있다면 이 초일명정을 통달하는 것보다는 못하며, 큰 지혜의 광명으로써 시방을 비
2)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지불공자 아부득전 수부득입 이공지고(地不空者 我不得前 水不得入 以空之故)”라고 되어 있으나, 송(宋)ㆍ원(元)ㆍ명(明) 본에는 “아부득전(我不得前)”이 “수부득전(水不得前)”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후자를 따라서 번역한다.
추는 덕(德)은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