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수행본기경 상권
후한(後漢) 서역(西域) 삼장 축대력(竺大力) 강맹상(康孟詳) 한역
김달진 번역
1. 변화를 나타내는 품[現變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 석씨 정사(釋氏精舍)의 니구타수(尼拘陀樹) 아래서 큰 비구 대중 1,250인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가 아라한으로서 이미 먼저의 부처님으로부터 맑은 행을 깨끗이 닦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이치를 이해하고 때가 없으며, 온갖 지혜가 자유자재하고 모든 법을 환히 알며 무거운 짐에서 떠나고 원한 바를 얻었으며, 3처(處)가 다하고 바른 앎[正解]을 다 알며, 3신(神:明)을 원만히 갖추고 여섯 가지 신통을 이미 통달하였다.
비구니 대중 대복애(大伏愛)등 5백 인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바새와 우바이들 4부대중이 널리 모였으며, 여러 외도의 바라문과 니건자(尼揵子) 등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모두 와서 모였으며, 모든 사천왕ㆍ도리(忉利)천왕ㆍ염(炎)천왕ㆍ도솔[兜術]천왕ㆍ니마라제(尼摩羅提)천왕ㆍ바라니밀(波羅尼蜜)천왕ㆍ범(梵)천왕ㆍ아가니타(阿迦膩吒)천왕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헤아릴 수 없는 대중들과 함께 모두 와서 모였으며, 여러 용왕(龍王)ㆍ아수라[阿湏輪]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陁羅]ㆍ마후라가[摩休勒] 등 낱낱 존귀한 신들이 저마다 권속들과 함께 모두 모여 왔으며, 백정왕(白淨王)ㆍ무노왕(無怒王)ㆍ무원왕(無怨王)ㆍ감로정왕(甘露淨王)이며, 가유라위의 9억 장자들이 저마다 관속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와서 모였는데 모두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32상(相)과 80종호(種好)에서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시니 마치 만월이 별 가운데서 특이하게 밝음과 같아서 거룩함이 의젓하셨다.
뭇 성인들의 왕[聖衆王]과 온 대중의 모임에서는 모두가 의심하며 생각하기를, ‘태자는 가유라위에서 태어나 백정왕가에서 자라나셨고 나라를 버리고 도를 배우셨으며 명호가 부처님이 되셨는데, 나무 아래서 6년 만에 도를 얻으셨을까, 12년 만에 얻으셨을까?’라고 하였다. 혹은 또 생각하기를, ‘본래 무슨 술법을 행하시어 이렇게 높고 뛰어나게 되셨으며, 섬기신 스승은 누구였기에 이제 특별히 높게 되셨고, 처음 무슨 법을 닦으셨기에 부처님이 되셨을까?’
라고 하기도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모두에게 의심이 있음을 아시고 곧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달살아갈(怛薩阿竭)을 위하여 본기(本起)를 말할 수 있겠느냐?”
이에 마하목건련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서 의복을 정돈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아뢰었다.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제 부처님의 위신을 받자와 부처님의 신력을 지니고 일체를 위하여 자세히 말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전생의 셀 수 없는 겁 때에 본래 범인으로서 처음에 부처님 도를 구한 이래로 정신은 형상을 받으면서 다섯 갈래[五道]를 두루 돌아다녔나니, 한 몸이 죽어 무너지면 다시 한 몸을 받는 등 나고 죽음이 한량없어서 마치 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베어서 산가지[籌]를 만들고서 나의 옛 몸을 헤아린다 하여도 셀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대저 하늘과 땅이 시작하여 끝나는 동안을 1겁이라 하거니와 나에게는 하늘과 땅이 바뀌면서 이루어지고 무너진 것이란 헤아릴 수조차 없었느니라.
세간의 탐욕으로 애욕의 바다에서 오래도록 흐르며 빠져 있음을 마음 아파한 까닭에, 나는 혼자 그 근원을 돌이키기 위하여 스스로 힘쓰며 뛰어나오려 하였다. 그 때문에 세상마다 부지런히 고행하면서도 괴로움이라 여기지 않고 마음을 비워 고요함을 즐기며 함이 없고 욕심이 없으며 자기 것을 덜어서 보시하고 지성으로 힘써 나아가고 한마음으로 생각을 하며 성인의 지혜를 배우고 천하를 사랑하며 가난하고 불쌍한 이를 가엾이 여겼다. 근심하고 슬퍼하는 이를 크게 위로하며 중생을 길러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제하며 여러 부처님과 독각이며 아라한 등을 받들어 섬겼으므로 누적된 공훈(功勳)이야말로 기억할 수조차 없었는데, 그 옛날에 정광부처님[錠光佛]이 세상에 나오시게 되었느니라.
제화위국(提和衛國)에 등성치(燈盛治)라는 성왕(聖王)이 있었고, 인민들은 수명이 길며 인자하고 효성스럽고 어질고 의로웠으며 땅은 기름져서 풍성하여 그 세상은 태평하였느니라.
한 태자가 탄생하여 이름을 정광(錠光)이라고 지었는데,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상에서 짝할 이가 없었으므로 성왕은 사랑하고 생각하여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왕은 목숨을 마칠 적에 나라를 태자에게 맡겼는데, 태자 정광은 무상(無常)을 생각하며 나라를 아우에게 물려주고, 즉시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 도를 이루어 명호를 불무상지존신덕광명(佛無上至尊神德光明) 이라고 하셨느니라.
밤낮 없이 비구 대중 62만을 거느리고 세계를 유행(遊行)하며 중생들을 교화하시다가, 제화위국에 돌아와서 종성(種姓)들과 나라의 백성들을 제도 해탈시키려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본국에 도착하셨느니라. 나라 안의 백관(百官)과 신하들은 ‘부처님 대중이 와서 나라를 쳐서 빼앗으리라’ 하여 모두가 함께 의논하기를, ‘이제 군사들을 일으켜 미리 가서 항거해야 할 것이요, 나라를 주어서는 안 되리라’고 하고, 즉시 서로가 인솔하여 부처님에게 향하려 하였다.
부처님은 여섯 가지 신통으로써 그 마음을 미리 아시고 변화로 넓고 크고 으리으리한 성을 만들어 그 성에서 대처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나라의 인민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해탈시키려고 곧 두 성을 유리(琉璃)로 변화시켜, 그 성이 환히 트여서 안팎이 서로 비치게 하시고, 다시 변화로 62만의 비구들을 부처님과 다름없게 나타내 보였다. 왕은 보고 두려워하며 의심이 풀리고 마음이 조복되었으므로 바로 부처님께 나아가서 공경히 머리 조아리고 스스로 뉘우치면서, ‘성품이 고루하고 둔해서 악한 뜻으로 부처님께 향하였나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잘못이라 용서하시고, 부처님은 곧 정사로 돌아가시옵소서. 7일 동안에 공양을 마련하고서 지극히 높으신 이를 받들어 맞이하겠사옵니다’라고 하셨다. 부처님은 그의 뜻을 아시고 잠자코 곧 돌아가셨느니라.
이에 그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성왕을 받들어 맞이하는 그 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하자, 여러 신하들은 말하기를, ‘전륜성왕을 맞이하는 법은 국토를 장엄하되 두루 40리의 길을 편편하게 다스리고, 향즙을 땅에 뿌리며 금과 은이며 값진 옥의 7보 난간과 여러 당기 번기를 세우고 비단과 꽃 일산을 성문과 거리에 장엄하게 꾸미며, 거문고를 타고 악기를 울리며 도리천과 같이 하여 꽃을 흩고 등을 켜며 뭇 이름 있는 향을 사르면서 공경히 길 곁에서 모셔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7일 만에 마치고서 왕은 여러 신하와 백관에게 칙명하여 인도하고 따르게 하면서 몸소 부처님을 마중하는지라, 부처님은 인민들을 가엾이 여기어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갈 채비를 하라. 청에 응하여야겠다.’
비구들이 분부를 받고 본국으로 나아갔는데,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렇게 공양을 마련하고 잘 꾸민 광채를 눈으로 보느냐? 옛날에 내가 부처님들을 공양하고 장엄한 것도 지금과 같으니라’
이 때에 나이 어린 범지 무구광(無垢光)이 있었는데, 어리면서도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뜻이 크고 포부가 넓었으므로 산림에 숨어살면서 그윽함을 지키고 선정(禪定)을 행하며 도서비참(圖書秘讖)에 모르는 바가 없었다. 공양을 받들어 스승의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여 하직하고 다니면서 교화하다가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느니라.
그 마을에 불루타(不樓陀)라는 범지가 있었는데, 하늘에게 성대한 제사를 지내기를 열두 달 동안 하면서 범지의 무리들 8만 4천 인에게 음식을 공양하다가, 그 해 마지막의 보시로서 금은의 값진 보배와 수레ㆍ말ㆍ소ㆍ양ㆍ옷ㆍ비단ㆍ신ㆍ7보 일산ㆍ석장(錫杖)이며 조관(澡罐) 등을, 그 중에서 가장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에게 주게 되어 있었느니라.
이레가 아직 끝나기 전에 나이 어린 보살은 그 대중 가운데 들어가서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도를 논하고 이치를 설명하였다. 그 때의 그 대중들은 한량없이 기뻐 뛰었으며 주인 장자도 매우 기뻐하여 딸 현의(賢意)를 보살에게 주었다. 보살은 받지 않고 다만 일산과 석장ㆍ조관ㆍ신ㆍ금전ㆍ은전 각각 1천을 가지고 돌아가서 옛 스승에게 올렸더니, 그 스승은 기뻐하며 같이 나누어주었느니라.
나이 어린 보살이 다시 하직하고 떠나올 때, 같이 배운 이들은 각기 한 사람이 은전 1전씩을 선물하여 보냈다. 유행하며 다니다가 이 나라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기뻐하며 바쁘게 길을 평탄하게 닦고, 물을 뿌려 쓸며 향을 사르는지라 행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
행인이 대답하였다.
‘정광부처님께서 오늘 오시므로 공양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보살은 부처님이라 함을 듣고 기뻐서 뛰며 옷과 털이 숙연하여져서 물었다.
‘부처님은 어디서 오시며, 어떻게 공양하게 됩니까?’
행인이 대답하였다.
‘오직 꽃과 향ㆍ비단 당기와 번기만으로 합니다.’
이에 보살은 곧 성으로 들어가서 공양거리를 애써 구하며 잠깐 동안에 두루 돌았지마는 끝내 얻을 수가 없었느니라.
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왕께서 꽃과 향을 금하고 있습니다. 7일이 되면 혼자만이 공양한답니다.’ 보살은 듣고 매우 언짢았는데, 잠깐 만에 부처님이 이르시어 동자의 마음을 알아채셨다. 그 때에 한 여인이 병에 꽃을 담아 가졌는지라,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꽃병을 환히 비춰 유리로 변화 시켜 안팎에서 서로 보이게 하자,
보살이 나아가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은전이 모두 합해 5백이 있으니
다섯 송이의 꽃을 사기를 청합니다.
정광부처님께 받들어 올려
나의 본래 소원을 구하겠습니다.
여인은 그 때에 게송으로 보살에게 대답하였느니라.
이 꽃의 값어치는 불과 몇 전인데
5백 전으로 사려고 하십니까?
지금 어떠한 소원을 구하기에
은전의 보배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까?
보살은 곧 대답하였느니라.
제석ㆍ법왕ㆍ악마왕을 구하는 것도 아니요
사천왕과 전륜성왕 구하는 것도 아니며
소원은 내가 부처를 이루어
온갖 시방을 제도 해탈함입니다.
여인은 흔쾌히 말하였느니라.
장하십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소원을 빨리 이루소서.
원컨대 저는 다음 세상에 태어나서는
언제나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하소서.
보살은 곧 대답하였느니라.
여인이란 애정과 교태가 많은지라
사람의 바른 도의 뜻을 무너뜨리고
구한 바의 서원을 어지럽히며
사람의 보시(布施)의 마음을 끊게 합니다.
여인은 보살에게 대답하였느니라.
저는 맹세코 다음 세상에 태어나서
아이들과 그리고 나의 몸까지
당신이 남에게 보시하려 하면 따르겠으니
이제 부처님께서는 저의 뜻을 아시리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 주시겠다면
이 꽃을 곧 얻으실 수 있겠지만
들어주지 않겠다면 돈을 도로 당신께 드리리라.
곧 바로 전생을 생각하여 그의 본래 행을 자세히 살펴보매 5백 생 동안을 지나오면서 거듭하여 보살의 아내였었다.
이에 보살이 곧 허락하고 기뻐하면서 꽃을 받아 떠나가는지라, 매우 기뻐하며, ‘지금 저는 연약한 여인이므로, 나아가 뵈올 수 없습니다. 두 송이 꽃을 맡기오니, 부처님께 올려 주소서’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부처님이 이르셨는데, 국왕과 신하와 인민이며 장자와 거사들이 권속들에게 에워싸여 수천 겹 수백 겹이었으므로, 보살은 나아가 꽃을 흩으려 하였지마는 나아갈 수조차 없었다. 부처님은 지극한 뜻을 아시고 변화로 땅을 질게 만드시어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서게 하셨다.
보살은 비로소 나아가게 되어 곧 다섯 송이 꽃을 흩었더니 모두가 공중에 머물러서 꽃 일산으로 변화되어 70리를 덮었으며, 두 송이 꽃은 부처님의 두 어깨 위에 머물러서 마치 뿌리에서 난 것 같았으므로 보살은 기뻐하면서 머리를 풀어 땅에 깔며, ‘부처님께서 밟으시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어찌 밟을 수가 있겠느냐?’라고 하시자, 보살은 대답하기를, ‘오직 부처님만이 밟으실 수 있사옵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비로소 밟으시고 서서 웃으시니, 입안에서 5색의 광명이 나와 입으로부터 일곱 자를 떠나서는 두 줄기로 나누어지면서, 한 줄기의 광명은 부처님을 세 번 돌고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어 안 비친 데가 없게 하시고, 정수리로 들어간 다른 한 줄기의 광명은 아래로 18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이 한꺼번에 편안하여지게 하셨느니라.
여러 제자들은 부처님께 아뢰기를, ‘부처님께서는 헛되이 웃으시지 않으시니 그 뜻을 말씀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이 동자를 보느냐?’라고 하시므로, 제자들은 ‘네, 보았나이다’라고 하였다.
세존(世尊)은 말씀하시기를, ‘이 동자는 무수한 겁 동안 배운 바가 깨끗하여 마음을 항복받고 목숨을 버리며 욕심을 버리고, 공(空)을 지키며 일으키지도 않고 없애지도 아니하며 치우침이 없는 사랑[慈]으로 덕과 행과 서원을 쌓아서 이제야 얻었느니라’라고 하셨느니라.
부처님은 동자에게 말씀하기를, ‘너는 지금으로부터 100겁 후에 부처님이 되리니, 명호는 석가문(釋迦文) [한(漢)나라 말로는 능인(能人)]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라고 할 것이며, 겁의 이름은 파타(波陀)요[한나라 말로는 위현(爲賢)], 세계의 이름은 사부(沙捊)[한나라 말로는 공외국토(恐畏國土)]이리라.
아버지 이름은 백정(白淨)이요, 어머니 이름은 마야[摩耶]이며, 아내의 이름은 구이(裘夷)요, 아들의 이름은 라운(羅云)이며, 시자의 이름은 아난이리라. 오른편의 제자는 사리불(舍利佛)이요, 왼편의 제자는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이니 5탁(濁)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고 시방을 제도 해탈함이 나와 같으리라라고 하셨느니라.
이에 능인(能仁)보살 은 수기하시는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쁘고 의심이 풀리고 욕망이 그치며 환하여지고 생각이 없어져서 고요히 선정에 들었는데, 바로 깨끗한 생멸 없는 법의 지혜를 얻고서 즉시 몸을 솟구쳐 공중으로 올라가 땅에서 일곱 길을 떨어져 있다가 위로부터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면서 문득 사문이 되었으므로,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장차 이 세상에서
풀을 깔고 나무 아래 앉아서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악마의 권속들을 항복시키리라.
너는 성인의 도량에 가서
감로의 북을 치고 울리며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잇따라 위없는 법 바퀴를 굴리리라.
너는 장차 이 세상에서
좋은 방편과 위없는 지혜로
아흔 여섯의 외도들이
법의 눈을 다 얻게 하리라.
너는 장차 이 세상에서
자비로써 네 가지 은혜를 행하고
법의 감로를 베풀면서
3독(毒)의 병을 없애주리라.
능인 보살 은 정광부처님을 받들어 섬겼고 열반하기까지 계율을 깨끗이 받들고 바른 법을 수호하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보호하며 어짊과 사랑을 베풀고 사람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이롭게 하며 구제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목숨을 마치고 도솔 천상에 올라가 났으며 일체를 구제하고 눈 어두운 이들을 거두어 제도하려고 위로부터 내려와 전륜왕 비행황제(飛行皇帝)가 되었는데, 7보가 인도하며 따랐느니라.
무엇이 7보인가 하면,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요, 둘째는 신주보(神珠寶)요, 셋째는 옥녀보(玉女寶)요, 넷째는 전보장신(典寶藏臣)이요, 다섯째는 전병신(典兵臣)이요, 여섯째는 감마보주모갈(紺馬寶珠髦)이요, 일곱째는 백상보주모미(白象寶珠髦尾)이니라.
금륜보라 함은, 수레바퀴에 천 개의 바큇살이 환히 비쳐서 해와 달의 광명보다 뛰어났으며, 왕의 위에 있다가, 왕이 마음으로 생각만 하면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되어 천하를 순행하되 잠깐 동안에 두루 도나니, 이 때문에 금륜보라고 하느니라.
신주보라 함은, 29일이 되어 해와 달이 없어진 밤에 구슬을 공중에 매달아 두면 그 나라의 위에 있으면서 나라의 크고 작음에 따라 안팎을 밝게 비추어 낮과 다름없이 하나니, 그 때문에 신주보라고 하느니라.
옥녀보라 함은, 그의 몸이 겨울이면 따뜻해지고 여름이면 시원해지며, 입 안에서는 푸른 연꽃 냄새가 나고 몸에서는 전단향 냄새가 나며, 음식은 저절로 소화되어 대변과 소변의 근심이 없고, 여인으로서의 오로(惡露)와 부정한 것도 없으며, 머리카락과 몸은 길지도 않으며 짧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검지도 않고 비대하지도 않으며 파리하지도 않나니, 그 때문에 옥녀보라고 하느니라.
전보장신이라 함은, 왕이 금ㆍ은ㆍ유리ㆍ수정ㆍ마니ㆍ진주ㆍ산호 등 값진 보배를 얻으려 할 때에 손을 들어 땅을 가리키면 땅에서 7보가 나오고 물을 가리키면 물에서 7보가 나오며 산을 가리키면 산에서 7보가 나오고 돌을 가리키면 돌에서 7보가 나오나니, 그 때문에 전보장신이라 하느니라.
전병신이라 함은, 왕이 네 가지 병사인 마병(馬兵)ㆍ상병(象兵)ㆍ거병(車兵)ㆍ보병(步兵)을 얻으려고 생각하면 그 신하가 왕에게 아뢰기를, ‘얼마의 병사들을 얻으려 하십니까?’ 하여 ‘천이다’, ‘만이다’, ‘무수하다’라고 하면, 돌아보는 순간에 병사들이 벌써 마련되어 진을 치고 엄숙하게 정돈되나니, 그 때문에 전병신이라 하느니라.
감마보라 함은, 검푸른 빛깔의 말인데 갈기에 꿰진 구슬을 문질러 씻으면 곧 떨어지지만 잠깐 만에 다시 본래대로 생기며, 그 구슬은 산뜻하여 앞의 것보다 낫다. 말 우는 소리는 멀리 1유순까지 들리고 왕이 때마침 올라타면 천하를 순행하되 아침에 갔다가 저물 무렵에 돌아오면서도 지치지 아니하며, 말의 다리에 먼지가 닿으면 모두가 금모래가 되기 때문에 감마보라 하느니라.
백상보라 함은, 몸 빛깔은 희고 눈은 검푸르며 7지(肢)를 갖추었고 힘은 백 마리의 코끼리보다 뛰어나며, 갈기 끝에 꿰진 구슬은 산뜻하고 깨끗하며 입에는 여섯 개의 어금니가 있고 어금니는 7보의 빛깔이다. 만약 왕이 타기만 하면 하루에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되 아침에 갔다가 저물 무렵에 돌아오면서도 괴로워하거나 지치지 아니하며, 만약 물을 건너면 물이 요동치지 않고 발 또한 젖지 않나니 그 때문에 백상보라고 하느니라.
그 때의 인민들은 수명이 8만 4천 살이요, 후궁 채녀도 각각 8만 4천이며, 왕에게는 천의 아들이 있어서 인자하고 씩씩하여 한 사람이 천 명을 당해 내며 성왕은 바르게 다스리고 계율의 덕과 열 가지 선행으로 인민들을 가르친다. 천하가 태평하고 비와 바람이 때에 알맞으며, 5곡이 잘 익어서 먹으면 병이 적으며 맛은 단 이슬과 같고 기력이 왕성하다. 다만 일곱 가지 병이 있는데, 첫째는 추움, 둘째는 더움, 셋째는 배고픔, 넷째는 목마름, 다섯째는 대변, 여섯째는 소변, 일곱째는 뜻대로 하고 싶어 하는 것뿐이니라.
성왕은 목숨이 다하여 또 범천에 올라가서 범천왕이 되는 등, 올라가서는 하늘의 임금이 되고 내려와서는 전륜성왕이 되기를 각각 서른여섯 번 되풀이하면서 인간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수시로 나왔으며, 보살은 애써 고생하며 3아승기겁 동안을 겪고 지나다가 겁이 다하려 할 적에 일체를 가엾이 여겨 끝없이 돌면서[輪轉] 중생들을 위하였고, 몸을 굶주린 범에게 던지면서 용맹스럽게 힘써 나아갔는지라, 9겁을 뛰어넘었느니라.
능인 보살은 91겁 동안 도와 덕을 닦고 부처님의 뜻을 배우며 6바라밀[度無極]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고 좋은 방편과 사랑ㆍ가엾이 여김ㆍ기쁨ㆍ보호로써 중생들을 기르되, 마치 갓난아이 보살피듯 하였다.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겨서 쌓은 덕이 한이 없고 여러 겁 동안 부지런히 고행하여 10지(地)의 행을 통달하였으며,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으면서 공과 뜻이 이룩되어 거룩한 지혜가 한량없었는데, 시운(時運)이 다가 와서 내려가 부처가 되어야 했으므로 도솔천상에서 네 가지를 자세히 살폈느니라.
토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부모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어느 나라 안에 나서 교화함이 마땅하며, 먼저 누구를 제도할 것인가? 백정왕이야말로 바로 나의 여러 세상 동안 낳아 주신 아버지로구나’라고 하였느니라.
구리찰제(拘利刹帝)에 두 딸이 있었는데, 이 때에 후원에 있는 못 안에서 목욕을 하였으므로 보살은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하기를, ‘바로 나를 세상마다 낳아 주신 어머니로구나. 가서 태어나야겠구나’라고 하였느니라.
이 때에 5백의 범지들은 모두가 다섯 가지 신통을 지녔는데, 궁성을 날아 지나다가 지나갈 수가 없는지라 놀라며 서로가 말하기를, ‘우리들의 신통은 석벽(石壁)도 모두 지나가거늘, 무엇 때문에 지금은 지나갈 수 없을까?’라고 하자, 범지의 스승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이 두 여인을 보느냐? 한 여인은 장차 서른두 가지 몸매를 지닌 거룩한 분을 낳을 것이요, 한 여인은 장차 서른 가지 몸매를 지닌 사람을 낳으리라. 바로 그의 위신으로 우리들의 신통을 잃게 하였느니라’ 하였다. 이 때에 음성이 천하에 널리 들렸으므로 백정왕은 기뻐 뛰면서 비행황제(飛行皇帝)가 그의 집에 태어난다 함을 욕심내어 곧 구혼하여 맞아서 아내로 삼았느니라.
카필라[迦夷衛]는 3천의 해와 달과 만 2천의 하늘과 땅에서 한가운데가 되는 곳인데,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이 땅에서 탄생하셨느니라.”
2. 보살이 세상으로 내려오시는 품[菩薩降身品]
“이 때에 능인 보살 은 변화하여 흰 코끼리를 타고 와서 어머니의 태(胎) 안으로 나아갔다.
4월 8일에 부인은 목욕하고서 향을 바르고 새 옷을 입은 뒤에 조금 몸을 편안히 기댔는데, 꿈에 공중에 흰 코끼리를 탄 어떤 사람이 광명을 천하에 모두 비추며 거문고를 뜯고 악기를 울리며 노래하고 꽃을 흩뿌리고 향을 사르며 자기 위에 와서는 갑자기 없어짐을 보았다. 부인이 놀라 깨어났으므로 왕은 곧 묻기를, ‘무엇 때문에 놀라시오?’하였다. 부인은 말하기를, ‘방금 꿈속에서 흰 코끼리를 탄 이가, 공중으로부터 날아오면서 거문고를 뜯고 악기를 울리며 꽃을 흩고 향을 사르며 저의 위로 와서는 갑자기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문에 놀라 깨났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두렵고 마음이 언짢아 곧 관상쟁이 수약야(隨若耶)를 불러서 그 꿈을 점치게 하였다.
관상하는 이는 말하기를, ‘이 꿈이야말로 왕에게 복과 경사입니다. 거룩한 신이 태 안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탄생한 아들이 집에 있으면 장차 전륜비행(轉輪飛行) 황제가 될 것이요, 집을 떠나 도를 배우면 장차 부처님이 되어서 시방을 제도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기뻐하였으며, 이에 부인은 몸과 뜻이 온화하고 맑아지는지라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제 나는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반드시 마하살(摩訶薩)이라
음욕과 삿됨, 시샘과 성냄이 그치고
몸과 마음 깨끗하고 편안하여지는구나.
마음으론 언제나 보시를 즐기고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정진하며
선정의 뜻으로 삼매에 들고
지혜로 널리 사람들을 제도하리.
대왕의 몸을 자세히 살피고
공경함을 마치 부형(父兄)처럼 하고
인민들을 보시면 가엾이 여기심도
자기의 갓난아이같이 여기시리.
병든 이는 약으로 치료해 주고
배고프고 추운 이에겐 옷과 밥을 주며
가난한 이 가엾이 여기고 어른과 늙은이 공경하며
기꺼이 나고 늙음을 없어지게 하리라.
여러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은
모진 고통 근심에 시달리나니
원컨대 왕이시여, 큰 사랑 내리시어
한꺼번에 죄와 허물 용서하소서.
세속의 음악 소리를
이제 저는 듣고 싶지 아니하므로
산과 숲의 편안함에 나아가서
깨끗하고 평온하며 고요하게 안정하리.
이 때에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은 대왕의 부인이 임신하였음을 듣고 모두가 와서 조하(朝賀)를 하며 저마다 금은의 값진 보배와 옷이며 꽃과 향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바쳐 올리면서 길함을 찬양함이 한량없었는데, 부인은 그들을 물리치며 피로하거나 번거롭지 않게 하려 하였느니라.
부인은 임신하고서부터 하늘에서 바친 여러 가지 맛있는 것으로 정신과 기력을 돕고 보태었으므로, 저절로 배가 부르며 왕궁의 요리는 받지 않았느니라.
열 달이 다 차서 태자의 몸이 이루어지고 4월 8일이 되었다. 부인은 나가서 유람하며 유민수(流民樹) 아래를 지나다가, 많은 꽃이 피고 샛별이 돋아날 때에 나뭇가지를 붙잡았는데, 문득 오른쪽 겨드랑이로부터 태자가 탄생하였다.
태자는 땅에 떨어지면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손을 들고서 말하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 오직 나만이 높도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므로, 나는 장차 편안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바로 그 때에 하늘과 땅은 크게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는 크게 밝았으며, 제석과 범왕이며 사천왕은 그의 관속들인 여러 용ㆍ귀신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 등과 함께 와서 모시며 호위하였고, 용왕의 형제 가라(迦羅)와 울가라(鬱迦羅)는 왼편에서 따뜻한 물을 비처럼 내리고 오른편에서 찬 물을 비처럼 내렸다.
제석과 범왕은 하늘옷을 가지고 감쌌고 하늘에서는 꽃과 향을 비처럼 내리며 거문고를 뜯고 악기를 울리며 쪼이는 향[熏香]ㆍ사르는 향[燒香]ㆍ찧은 향[擣香]ㆍ기름향[澤香]이 허공을 꽉 메웠다. 부인은 태자를 안고 교룡거(交龍車)에 태워서 당기와 번기며 풍악으로 인도하고 따르면서 궁중으로 돌아왔느니라.
왕은 태자가 탄생했음을 듣고 마음에 뛸 듯이 기쁨을 품고 곧 대중(大衆)과 백관(百官)이며 여러 신하와 범지(梵志)ㆍ거사(居士)ㆍ장자(長者)며 관상 보는 이들[相師]과 함께 나가서 마중하였는데, 왕의 말이 발굽이 땅에 닿으면 5백이나 되는 보배들이 한꺼번에 튀어 나왔으므로 많은 일행(一行)들은 이익을 얻었느니라.
이 때에 모인 범지 관상하는 이들은, ‘만세(萬歲)’를 널리 부르면서 곧 태자의 이름을 실달(悉達)[한(漢)나라 말로 재길(財吉)]이라고 지었으며, 왕은 제석ㆍ범왕ㆍ사천왕과 여러 하늘ㆍ용ㆍ신 등이 공중에 가득 찼음을 보고서 공경한 마음으로 숙연하여지는지라, 모르는 결에 말에서 내려와 태자의 발에 예배하였느니라.
태자가 아직 성문에 이르기 전에, 길옆의 신묘(神廟)는 온 나라가 존경하는 바라 범지인 관상하는 이들이 모두 말하기를, ‘태자를 데리고 가서 신상(神像)에 예배하여야 하리다’라고 하였다.
곧 태자를 안고 신묘에 들어갔더니 여러 신들의 형상이 모두 뒤집혀 넘어지므로 범지인 관상하는 이들과 온 대중들은 모두 말하기를, ‘태자야말로 참으로 신령하고 진실로 미묘하도다. 거룩한 덕에 감화하여 천신들이 귀명하는구나’라고 하면서 태자를 일컫되,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이라고 하였느니라.
궁중으로 돌아오자 하늘에서 서른두 가지의 서응(瑞應)을 내렸느니라.
첫째, 땅이 크게 움직이면서 큰 언덕이 모두 평평하여졌으며, 둘째, 길과 거리가 저절로 깨끗해지고 더러운 냄새나는 곳이 향기로운 냄새로 바뀌었으며, 셋째, 나라 경계의 마른 나무에서 모두 꽃과 잎이 났으며, 넷째, 동산에서 저절로 기이하고 달콤한 과일이 났으며, 다섯째, 육지에서 연꽃이 나와 크기가 마치 수레바퀴 만하였으며, 여섯째, 땅 속에 묻혀 있던 보배 광이 모두 저절로 튀어나왔으며, 일곱째, 안에 감춰진 보물이 열리면서 밝은 광명을 나타냈으며, 여덟째, 상자에 있던 옷들이 횃대에 걸려 있었으며, 아홉째 많은
시내의 만 갈래 흐름이 멈추면서 맑고 깨끗하여졌으며, 열째, 바람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면서 공중이 깨끗하고 맑아졌느니라.
열한째, 하늘의 4면에서 기름 향이 비처럼 내렸으며, 열두째 명월신주(明月神珠)가 전당(殿堂)에 걸렸으며, 열셋째 공중에 불과 촛불이 다시 쓸데가 없어졌으며, 열 넷째 해와 달과 별이 모두 서서 가지 않았으며, 열 다섯째 비성(沸星)이 아래에 나타나서 태자의 탄생을 모셨으며, 열여섯째 하늘의 맑은 보배 일산이 궁중 위를 완전히 덮었으며, 열일곱째, 8방의 신들이 보배를 받들고 와서 바쳤으며, 열여덟째, 하늘의 온갖 맛있는 밥이 저절로 앞에 나타나 있었으며, 열아홉째, 보배 항아리의 입구마다 단 이슬이 매달려 담겨 있었으며, 스무째, 천신이 7보로 된 교로(交露) 수레를 끌고 왔느니라.
스물한째, 5백 마리의 큰 코끼리 새끼가 저절로 전각 앞에 벌리고 서 있었으며, 스물둘째, 5백 마리의 흰 사자 새끼가 설산으로부터 나와서 궁전 앞에 벌리고 서 있었으며, 스물셋째, 하늘의 아름다운 채녀(婇女)들이 궁녀들의 어깨 위에 나타나 있었으며, 스물넷째 여러 용왕의 딸들이 궁성을 빙 둘러 서 있었으며, 스물다섯째, 하늘의 1만 옥녀들이 공작의 불자(拂子)를 붙잡고 궁성 담 위에 나타나 있었으며, 스물여섯째, 하늘의 채녀들이 금병(金甁)에 향즙(香汁)을 담아 가지고 줄을 서서 공중에서 모셨으며, 스물일곱째, 하늘의 악기가 모두 내려와서 한꺼번에 갖추어졌으며, 스물여덟째, 지옥이 모두 휴식하고 모진 고통이 시행되지 않았으며, 스물아홉째, 독벌레가 숨어 엎드리고 상서로운 새들이 날면서 지저귀었으며, 서른째, 고기잡고 사냥하는 나쁜 짓이 한꺼번에 인자한 마음으로 되었느니라.
서른한째, 경계 안에 아이 밴 부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모두가 사내아이였고 귀머거리ㆍ소경ㆍ벙어리ㆍ곱사등이 등 온갖 질병이 모두 나았으며, 서른 둘째, 수신(樹神)이 사람으로 나타나서 머리 숙여 예배하고 모신 것이었느니라.
이 때를 당하여 열여섯의 큰 나라에는 맑고 기특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讚嘆)하였느니라.
이에 향산(香山)에 있던 도사(道士) 아이[阿夷]는 한밤중에 깨어나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하므로, 자세히 살펴보니 광명이 빛나고 예사롭지 않았으며 산중에 있던 우담발화(優曇鉢花) 속에서 큰 사자가 저절로 생겨 땅에 떨어지자마자 곧 일곱 걸음을 걸어가서 머리를 들고 으르렁거리니 두루 40리 안의 날짐승ㆍ길짐승과 날고[蜎飛] 기며 꿈틀거리는 동물들이 두려워하며 엎드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아이 도사는 생각하기를, ‘세간에 부처님이 계셔야 이런 상서로움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5탁(濁)으로 악이 왕성하거늘, 어째서 이런 상서로운 서응이 있을까?’ 하였다.
날이 밝아 가유라위국으로 날아가는데, 미처 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40리 밖에서 갑자기 땅으로 떨어지는지라, 마음으로 매우 놀라면서도 기뻐 ‘여기 반드시 부처님이 계시리라. 나는 의심할 것조차 없다’ 하고, 걸어서 궁전 문에 나아갔다. 문지기가 왕에게 아뢰기를, ‘아이 도사가 문 앞에 계시옵니다.’라고 하므로, 왕은 놀라며 말하기를, 아이 도사는 언제나 날아다니거늘 지금은 어찌하여 문에 계시면서 들겠다고 알리실까?’하였다. 왕은 곧 나가서 예배하고 영접하여 씻게 한 뒤에 새 의복을 주고서 문안하였느니라.
‘오늘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높고 거룩함을 굽히신 것입니다’라고 하자, 아이는 대답하기를, ‘듣건대 대왕의 부인께서 태자를 낳으셨다고 하므로 일부러 살펴보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나인[內人]에게 명하여 태자를 안고 나오게 하니 시녀가 아뢰기를, ‘태자는 고단하시어 지금 편안히 잠이 드셨나이다’라고 하는지라, 아이는 기뻐하면서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대웅(大雄)께서는 늘 스스로 깨달았고
깨닫지 못한 이들 깨우쳤으며
겁을 지내면서 눕고 자지 않았거늘
어찌 잠을 잔다 하겠습니까?
이에 시녀는 태자를 안고 나와서 태자가 아이를 향하여 절을 하게 하자, 아이는 문득 놀라며 일어나서 나아가 태자의 발에 예배하였다. 국왕과 여러 신하들은 국사(國師) 아이가 태자에게 공경히 예배함을 보고 마음에 송구하게 여기며 더욱 지극히 높으신 이인 줄 알아채고서 곧 땅에 엎드려 태자의 발에 예배하였느니라.
아이는 백 명의 장사들을 항복시키듯 하는 날쌘 힘으로 태자를 안았으므로 그의 근육과 뼈가 따라 움직였는데, 기특한 몸매인 서른두 가지와 여든 가지 잘생긴 모습이며 몸이 금강과 같고 아주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움을 보고서, ‘모두가 비기 참서[秘讖]에서와 같구나. 반드시 부처님이 되시리라. 나는 의심할 것조차 없다’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어 슬퍼 말조차 못하였다.
이 때에 왕은 당황하며 묻기를, ‘태자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나이까? 길하거나 흉하거나 간에 어려워하지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아이는 스스로 억제(抑制)하며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제 큰 성인이 태어나셨으니
세상의 모든 재난 없어질 텐데,
나 자신은 복이 없어서
7일 후면 죽게 됨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신통과 변화를 보지 못하고
설법하며 세간에 비처럼 내림도 못 보며
이제 태자와 이별하게 되었으니
그 때문에 스스로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태자는 손을 들며 말하기를
다섯 갈래[五道]와 시방의 사람들을
나는 응당 다하도록 교화하여
모두가 그 원하는 바를 얻게 하리라.
본래 나의 뜻에 원하는 바는
마땅히 살화살(薩和薩)을 제도하여서
한 사람이라도 도를 얻지 못하면
나는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에 아이는 기뻐하면서 거듭 태자의 발에 예배하는지라, 백정왕도 두려움이 그치고 기뻐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태자에게 어떠한 상(相)이 있으며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겠습니까?
모든 상에 어떤 복이 있는가를
저를 위해 하나하나 말씀하여 주십시오.
이 때에 아이는 왕에게 대답하였느니라.
지금 태자의 몸을 살피건대
금빛깔에 뜻이 견고하여
위없는 금강저로
음욕의 산을 찧어 부숴 버릴 것입니다.
대인상(大人相)을 원만히 갖추시어
발바닥은 편안하고 바른지라
나라에 계시면 늘 태평하게 다스리고
출가하면 다 옳게 깨달으시겠습니다.
손발에 윤상(輪相)이 나타나고
그 상호엔 천 개의 바퀴살이 있나니
그러므로 법의 바퀴[法輪] 굴리시게 될
삼계의 높으신 부처님 되시리라.
사슴의 장딴지에 용의 넓적다리며
말처럼 감추어진 남근의 상은
보는 이가 싫어함이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법이 깨끗하리라.
가늘고 긴 팔과 손가락이며
손바닥은 보드랍고 평평하며 윤기가 있으니
그러므로 법은 오래고 길어서
천 년 동안 세상을 가르치리라.
피부와 터럭은 부드럽고 가늘며
오른편으로 말리고 티끌이 끼지 않으며
금빛깔의 뼈는 단단하고 잘 맞물려 있으니
그러므로 외도를 항복시키리라.
방정한 몸에 사자의 가슴이며
빙빙 돌았으되 굽지 않았고
반듯이 서면 손이 무릎을 지나니
그러므로 일체가 예배하리라.
몸의 일곱 군데가 원만하고
천의 장부 힘으로 적을 당해 내리니
보살이 전생부터 지은 행이라
그러므로 원한과 미워함이 없으리라.
입 안에는 마흔 개의 이가 있어서
바르고 희면서 가지런하므로
감로법(甘露法)으로 중생을 통솔하리니
그러므로 일곱 가지 보배가 있으리라.
뺨은 마치 사자와 같으며
네 개의 어금니 같은 만(萬)자가 있는지라
부처님의 덕은 천하에 나타나리니
그러므로 3세가 넉넉하리라.
갖가지 맛을 차례로 맛보아
먹는 것에 그 맛을 알 것이므로
그 때문에 법의 맛을 마련하여서
일체에게 베풀어 줄 것입니다.
넓은 혀는 마치 연꽃과 같고
입에서 나오면 그 얼굴을 뒤덮나니
그러므로 그 여러 가지 음성을
받는 이는 감로와 같이 여기리라.
말씀하시는 소리는 난새의 소리[鸞音]이며
경전을 외우면 범천보다 뛰어나리
그러므로 법을 말씀하실 때엔
몸이 편안하고 뜻의 안정 얻으리라.
눈동자의 모양은 검푸른 빛깔인데
세상마다 인자한 마음으로 보았나니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의 무리들이
부처님을 뵈올 적에 싫어함이 없으리라.
정수리엔 살상투[肉髻]가 났으며
머리칼의 빛깔은 감유리(紺琉璃)색인데
일체를 제도하려 하였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법은 융성하리라.
얼굴빛은 마치 만월과 같고
색상(色像)은 꽃이 처음 핀 것 같나니
그러므로 눈썹사이의 털은
희고 깨끗하여 밝은 구슬 같습니다.
이에 왕은 그가 관상에 능한 줄을 잘 알았으므로 대자를 위하여 네 철의 궁전을 일으켜서 봄ㆍ가을ㆍ겨울ㆍ여름 동안에 각각 처소를 달리하게 하였는데, 그 전각의 앞에는 달콤한 과일나무를 줄지어 심고 나무들의 사이에는 7보로 된 목욕하는 못이 있으며, 못 안의 기이한 꽃은 색색으로 저마다 달랐나니, 마치 하늘의 꽃과 같았느니라.
물에서 사는 새들은 수십 수백 가지며 궁성은 견고하고 7보의 누각에는 방울과 당기ㆍ번기를 달았으며 문의 여닫는 소리는 40리까지 들리고 5백의 기녀들을 선택하되 온화하고 맑고 예의가 갖추어진 이로써 선발하여 공양하면서 재미있게 즐기며 태자를 기르게 하였느니라.
태자가 탄생하던 날에 나라 안의 8만 4천의 장자들이 아이를 낳되 모두가 사내아이였고, 8만 4천의 마구간에서 말이 망아지를 낳았는데, 그 중 한 마리는 특이하여 털 빛깔이 뛰어나게 희고 갈기에는 구슬이 꿰어 있었는지라, 그 때문에 이름을 건특(蹇特)이라고 하였다. 마구간에서 또 흰코끼리 8만 4천을 낳았는데, 그 중 한 마리 코끼리는 7지(肢)를 갖추었고 갈기 끝에 구슬이 달렸으며 입에 여섯 어금니가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백상보(白象寶)라 하였으며, 흰말에 딸린 마부의 이름은 차닉(車匿)이었느니라.
태자가 탄생한지 7일 만에 그 어머니는 목숨을 마쳤는데, 하늘 스승을 잉태한 공덕이 컸기 때문에 도리천에 나서 봉록을 저절로 받았느니라.
태자는 궁중에 있으면서 시끄러움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한가하고 편안함에 뜻을 두고 생각하였다. 왕은 시녀에게 묻기를, ‘태자가 즐거워하느냐?’라고 하자, 시녀는 아뢰기를, ‘공양과 풍악은 때를 잃지 않는데도, 태자를 자세히 살피건대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걱정이 되어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아이 도사가 관상 보며 말하기를, 〈반드시 부처님의 도를 이루리라〉 하였는데, 무슨 방편을 써서 태자를 머무르게 하며 도의 뜻이 없게 하겠소?’라고 하였다. 한 신하가 있다가 말하기를, ‘오직 글만을 가르치시면서 뜻을 매어 두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곧 종 5백 인을 갖추어 함께 찾아가 스승으로 삼게 하였다.
그 스승이 태자가 옴을 듣고 즉시 나가서 예배하고 맞이하니 태자가 묻기를, ‘무엇 하는 분이십니까?’ 하므로, 신하는 말하기를, ‘바로 임금님에게 글을 가르치는 스승이십니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묻기를, ‘염부제(閻浮提)의 글에 모두 예순네 가지가 있습니다’ 하고, 곧 그 글들을 거명하고는 ‘이제 어느 글로써 나를 가르치겠습니까?’라고 하는지라, 범지는 당황하며 태자에게 대답하기를, ‘예순네 가지라 하시는데, 저는 아직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의 글만을 가지고 인민들을 가르쳤습니다’하고 즉시 귀명하면서, ‘원컨대 미치지 못했음을 용서하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3. 재주를 시험하는 품[試藝品]
이에 태자는 여러 관속들과 함께 즉시 궁전으로 돌아왔는데, 나이 열일곱이 되자 기묘한 재주가 더욱 나타났지마는 밤낮으로 근심하며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일이 없이 언제나 출가만을 생각하였다. 왕은 그의 수종에게 묻기를, ‘태자는 어떻더냐?’라고 하였더니 그 수종은 대답하기를,‘태자는 날마다 근심하고 여위기만 하며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일이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또 근심하며 여러 신하들을 불러 ‘태자가 근심을 한다 하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소?’라고 물었다. 한 신하가 있다가 말하기를, ‘병법과 기마술을 익히게 하옵소서’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라의 지경을 순행하게 하면서 유람하고 보시하게 하여 그 뜻이 흩어지게 하여야 하리다’라고 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대신은 말하기를, ‘태자는 이미 장대하시니, 의당 장가를 들여서 그 뜻을 돌려야 하오리다’라고 하기도 하였느니라.
백정왕은 태자를 위하여 명문가의 여인을 채택하려 하였으나 뜻에 맞는 이가 없었는데, 작은 나라의 왕, 선각(善覺:須波佛)이라는 이에게 구이(裘夷)라는 딸이 있어서 단정하고 맑고 깨끗하여 천하에 짝할 이가 없었는지라, 여덟의 나라에서 왕들이 모두가 아들을 위하여 구혼하였지마는 모두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함을 들었다. 왕은 곧 선각을 불러서 말하기를, ‘나는 태자를 당신의 따님에게 장가를 들이려 하오’라고 하였다. 선각 여러 신하들과 국사(國師) 범지(梵志)가 있으므로 마땅한가를 물어야 하겠으니, 따로 아뢰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나라로 돌아가서 근심하고 언짢아하면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였느니라.
딸은 곧 왕에게 묻기를, ‘몸이 불편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언짢아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부왕은 말하기를, ‘너 때문에 내가 근심을 하느니라’하므로 딸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저 때문이라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부왕은 말하기를, ‘여러 국왕들이 와서 너에게 청혼함을 들었으면서도 나는 모두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백정왕이 태자를 위하여 너에게 청혼하였다. 만약 허락하지 않으면 벌을 줄 것이요, 마음에 든다 하여 허락하려 하면 여러 나라에 원한이 맺힐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근심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딸은 말하기를, ‘아버님께서는 뜻을 편히 지니십시오. 이 일은 쉽습니다. 제가 7일 후에 스스로 결정하러 문을 나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선각은 허락하고서 백정왕에게 알리기를, ‘딸이 7일 후에 자신이 나가서 나라 안에서 무용(武勇)과 기술이 가장 뛰어난 이로써 결정하겠다 하니, 그렇게 하여야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백정왕은 생각하기를, ‘태자가 궁중에 있으면서 일찍이 익힌 적이 없거늘, 이제 재주를 시험하려 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하였다. 그 날이 되자 구이는 5백의 시녀들을 데리고 국문(國門) 위에 나아갔는데, 여러 나라의 재주 있는 선비들이 널리 구름처럼 모였는지라, ’가장 미묘한 재주와 예법과 음악을 갖춘 이에게 나는 비로소 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칙명하기를, ‘경기장에 나가서 여러 기술을 관전하여라’ 하였고, 우타(優陀)에게 말하기를, ‘너는 태자에게 〈태자를 장가들이려고 하는 것이니, 기특한 재주를 나타내라〉고 일러라’ 하였다. 우타는 분부를 받고 가서 태자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장가들이려고 예법과 음악을 시합하게 한 것이니, 경기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하였느니라.
태자는 곧 우타와 난타(難陀), 조달(調達), 아난 등 5백 인과 함께 예법ㆍ음악ㆍ활쏘기 등 재주 겨루는 도구를 가지고 성문을 나가는데 코끼리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그 성문에 당도하여 힘이 세다고 뽐내는 조달이 먼저 나오다가 코끼리가 문을 막고 있음을 보고 한 주먹으로 내질러서 즉사시켰느니라.
난타가 생각해보고 길옆에 끌어다 놓았는데, 태자가 뒤에 오다가 그 종에게 묻기를, ‘누가 코끼리를 죽였느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조달이 죽였나이다’라고 하였다. 또 ‘누가 옮겼느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난타이옵니다’라고 하므로, 보살은 인자스럽게 천천히 코끼리를 어루만지다가 들어서 성밖으로 내던지자, 코끼리는 곧 도로 소생하여 본래와 같아졌느니라.
조달은 경기장에 이르러서 여러 역사(力士)들과 씨름을 하였는데, 당해 낼 수 있는 이가 없어서 여러 이름 있고 힘이 용감한 이들이 모두 참패를 당하였느니라.
왕은 그 종에게 묻기를, ‘누가 이겼느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조달이옵니다’라고 하므로, 난타에게 말하기를, ‘너와 조달 두 사람이 씨름을 해 보라’고 하였다. 난타는 분부를 받고 즉시 씨름을 하였는데, 조달이 단번에 넘어지면서 기절하였다. 물을 붓고 하여 한참 만에 깨어났는데, 왕은 다시 묻기를, ‘누가 이겼느냐? 하였다. 그 종은 대답하기를, ‘난타가 이겼나이다’라고 하였더니, 왕은 난타에게 말하기를, ‘태자와 결판 하여라’ 하였다.
난타는 왕에게 아뢰기를, ‘형님이야말로 마치 수미산과 같고 저는 실로 겨자씨와 같으므로 실로 그 동류(同類)가 아니옵니다’ 하고 사양하면서 물러갔느니라.
다시 활쏘기로써 결정하는데, 먼저 쇠북을 놓되 10리마다 하나씩을 놓아 일곱 개의 북을 놓았다. 모두들 유명한 사수들이라 그 화살의 힘이 대단하였지마는 하나의 북에도 미치지 못하였느니라.
조달이 쏘자 하나를 뚫고 두 개를 맞혔으며, 난타는 둘을 지나 화살은 세개째의 북을 꿰뚫었으며, 그 나머지 사수들은 미칠 수 있는 이가 없었느니라.
태자가 나아가 쏘려 하였지마는 모두가 꺾어지며 손에 맞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의 종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조에게 활이 있었는데 지금 천묘(天廟)에 있다. 너는 가지고 오너라’ 하였다. 곧 가서 활을 가져오는데 두 사람이어야 감당할 수 있었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도 들 수 있는 이가 없었느니라.
태자가 활에 시위를 매자 활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와 같았고 대중들에게 주어도 당길 수 있는 이가 없었다. 태자가 잡아끌어다 활을 쏘니 소리가 40리까지 들렸으며 활을 당겨 화살을 쏘았더니, 일곱 개의 북을 꿰뚫어 지나갔고, 재차 쏘자 북을 뚫고 땅으로 들어가서 샘물이 솟아 나왔으며, 세 번째 쏘자 북을 꿰뚫고 철위산(鐵圍山)에 닿았으므로 모인 대중들은 전에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으며, 와서 재주를 겨룬 이들은 모두가 참패당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떠나갔느니라.
다시 어떤 힘센 사람이 맨 나중에 왔는데, 씩씩하고 건장하여 보통이 아니었고 용맹함이 세상에서 뛰어나서 말하자면 조달과 난타는 당해낼 수 없었고, 태자라야 함께 재주를 겨룰 만하였느니라.
욕을 당하고 떠나가던 이들이 그를 살펴보고선 ‘보복할 수 있겠다’고 하며 기뻐 뛰면서 힘센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그대의 뛰어난 용맹은 이 세상에 당할 자가 없소. 온 힘을 다한다면 반드시 그대 뜻대로 승리하리라.’
태자와 승부를 겨루는 것을 구경하려고 모두들 그를 따라 돌아갔느니라. 이를 본 조달과 난타가 그 위엄과 용맹을 떨치면서 곧 나아가 치려고 하자 태자가 말리며 말하였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 센 악마 왕이니라. 너희들로서는 제압할 수 없고 반드시 욕을 당하리니, 내가 직접 상대하리라’ 하였느니라.
부왕은 이를 듣고 ‘태자가 어린지라 매우 근심되고 두렵구나’라고 생각하였으며, 몰려온 구경꾼들은 ‘태자를 이겨라’고 외쳤느니라. 이 때 힘센 사람이 땅을 박차며 날쌔게 일어나 팔을 뻗어 손을 들어서는 바짝 태자를 거머잡았다. 태자가 즉시 그를 잡아 내동댕이치자 땅이 크게 진동하였으며, 모였던 구경꾼들은 거듭 욕을 당했는지라 뿔뿔이 흩어져 홀연히 없어져버렸느니라.
태자가 가장 뛰어났으며 종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수레를 타고 궁중으로 돌아가다가, 우타가 선각(善覺)에게 말하였느니라.
‘태자의 재주는 모든 면에서 뛰어납니다. 따님 구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선각은 대답하기를, ‘5백의 시녀들을 데리고 성문 위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우타가 태자에게 ‘놀라운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태자는 몸의 영락을 벗어 멀리서 던지려 하므로 우타는 말하기를, ‘여러 여인들이 많거늘 이제 누구에게 던져 주렵니까?’라고 하였다. 태자는 말하기를, ‘영락이 목에 걸리는 바로 그 사람이리라’ 하면서 곧 구슬을 던지니 바로 구이에게 걸렸으므로 모든 여인들은 칭찬하면서, ‘미묘하구나. 매우 기특하며 세상에서 있기 드문 일이로다’라고 하였느니라.
이에 선각은 엄숙하게 격식을 갖춰 딸을 전송하며 태자의 궁전으로 보냈는데, 따르는 광대와 시종이 무려 2만 명이었느니라.
밤낮으로 재미있게 즐기며 세상에서 뛰어난 음악이 있었지만 태자는 뜻에 기쁘게 여기지 않고 언제나 버리고서 고요히 도업(道業)을 닦으며 중생들을 제도하려 하였다. 왕이 그 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비(妃)를 맞이한 이래로 뜻이 어떻더냐? 라고 하자, 종이 왕에게 대답하기를, ‘근심하고 언짢아하시는지라, 몸이 여위어서 점점 전보다 못하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조심하면서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 ‘태자가 기뻐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소?’라고 하자,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며 말하기를, ‘다시 장가를 들여서 그 기악(伎樂)을 늘려야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즉시 또 아름다운 여인에게 장가들였나니, 첫째가 중칭미(衆稱美)요, 둘째가 성락의(常樂意)라고 하였느니라.
그 하나의 부인에게 2만의 채녀가 있었는지라, 세 부인에게 모두 6만의 채녀들이 있어 단정하고 아름다워 천녀(天女)들과 다름이 없었다.
왕은 구이에게 ‘태자에겐 지금 6만의 채녀들이 있어 풍악을 잡히고 공양하는데, 태자는 과연 즐거워하느냐?’라고 묻자, 구이는 대답하기를, ‘태자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을 외곬으로 쓰며 도에 뜻을 두는지라 욕심과 즐거움을 생각조차 하지 않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왕은 듣고 근심하면서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또 함께 의논하기를, ‘지금껏 태자에게 공급한 것들은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값지고 기이한 것인데도 여전히 뜻을 오로지 하여 한번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니, 정말 아이 선인의 말씀대로 되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들은 대답하기를, ‘6만의 채녀들이면 세상에 가장 즐거울 것이거늘 기쁘게 여기지 않는다면, 밖으로 내보내어 유람하며 정사나 자세히 살피게 하면서 도의 뜻을 흩어지게 해야 하오리다’라고 하였느니라.
수행본기경 하권
후한 서역 삼장 축대력 강맹상 한역
김달진 번역
4. 유람하는 품[遊觀品]
이에 왕은 태자에게 말하기를, ‘다니면서 유람이나 하여라’ 하였는데, 태자는 생각하기를, ‘오랫동안 깊은 궁전에 있으면서 생각으로는 나가서 유람하고 싶었는데, 진실로 소원대로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왕은 나라에 칙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곳은 길거리를 엄히 정돈하되 뿌리고 쓸고 향을 사르며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아주 산뜻하고 깨끗하게 하였는지라, 태자는 인도하고 따르면서 수많은 수레와 말을 타고 동쪽 성문을 나가기 시작하였느니라.
이 때에 수타회천(首陀會天)의 난제화라(難提和羅)는 태자를 빨리 출가 시켜 시방을 구제하고 3독(毒)의 타는 불에 법의 비를 내려 독의 불을 끄게 하려고 늙은이로 변화하여 길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되, 머리는 희고 이는 빠졌으며 살갗은 느슨하고 얼굴은 주름지고 살도 없고 등은 앞으로 구부러졌으며, 뼈마디는 시들어서 굽고 눈물과 콧물과 침은 뒤섞여 흐르며 상기(上氣)가 되어 어깨로 숨을 쉬고 몸의 빛깔은 검으며, 머리와 손은 쓸데없이 흔들고 몸은 벌벌 떨며 오로(惡露)는 저절로 흐르는데 그 위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였다.
태자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느니라. 천신이 종을 깨우쳐 주었으므로 종은 말하기를, ‘늙은이 입니다’라고 하는지라, ‘무엇을 늙음이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대저 늙음이란 나이가 많아서 감관이 완숙하고 모양이 변하고 빛깔이 쇠하며 기운이 미미하고 힘이 다하며 음식은 소화가 안 되고 뼈마디는 끊어지려 하며, 앉고 일어남에는 사람이 필요하며, 눈은 멀고 귀머거리가 되며, 문득 돌아서면 곧 말을 잊어버리고 갑자기 슬퍼지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늙음이라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사는 데에 이런 늙음이란 근심이 있었구나. 어리석은 사람이야 탐내고 사랑하겠지마는 어찌 즐거워 할 수가 있겠느냐?
만물이 봄에 나서 가을과 겨울이면 시들고 마르며, 늙음이 번개처럼 닥쳐오거늘 몸에 만족하고 의지하겠느냐?’하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늙어지면 곧 빛깔이 쇠하고
병이 들면 광택이 없어지나니
살갗은 느슨하고 살이 쭈그러들며
죽음만이 가까이 닥치누나.
늙으면 모양이 변하여
마치 헌 수레와 같을 것이니
법(法)은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지라.
마땅히 힘써서 배워야 하리.
목숨은 밤낮으로 다하려 하므로
시기에 이르러서 부지런히 힘쓸지니
세간의 진리는 무상한지라
헷갈려서 어둠 속에 떨어지지 말지로다.
마땅히 배움에 뜻의 등불 켜야 하고
스스로 익히면서 지혜를 구하며
때를 떠나 더러움에 물들지 말 것이요
등불 잡고 도의 땅을 자세히 살피리라.
이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왔으며, 일체에게 이런 큰 근심이 있음을 불쌍히 여기며 근심하고 언짢아하였다.
왕은 그의 종에게, ‘태자가 나가 노닐다가 무엇 때문에 속히 돌아왔느냐?’하고 물었다. 그 종은 대답하기를, ‘길에서 늙은이를 만나 슬퍼하고 언짢아하더니, 궁중에 돌아와서도 근심을 하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져서 다시 나가 유람하려 하므로, 왕은 나라 안에 칙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데에는 여러 더러운 것을 금하여 길옆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태자는 수레를 타고 성의 남쪽 문으로 나갔는데, 천인(天人)이 변화로 병든 사람이 되어 길옆에 있되, 몸은 파리하고 배는 크며 몸은 샛노랗게 되었으며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며, 온갖 마디는 몹시 쑤시고 아홉 구멍에서는 썩은 물이 새며, 부정한 것이 저절로 흐르고 눈으로는 빛깔을 보지 못하며,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신음하면서 숨을 쉬며, 손발은 허공을 더듬으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짖고 ‘아내야, 아들아’ 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는지라, 태자가 물었느니라.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하자 그의 종은 대답하기를, ‘병든 사람이옵니다’라고 하므로, ‘어떤 것을 병(病)이라 하느냐?’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네 가지 요소[四大]인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이 있어서 하나의 요소에 101가지 병이 있으며, 차츰 서로가 모여서 404가지 병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데, 이 사람은 반드시 극도로 춥고 극도로 덥고 극도로 굶주리고 극도로 배부르고 극도로 마시고 극도로 목마르는 등, 때와 자리를 잃었고 눕고 일어나는 데 법도가 없기 때문에 이런 병이 걸리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부귀한 곳에서 살고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음식으로 입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을 놓아 제멋대로 하며 다섯 가지 욕심에 빠져서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으므로 역시 이런 병이 있을 터인데, 저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 몸이야말로 단단하지 않구나.
언제나 네 가지의 요소와 함께 하고
아홉 구멍에서는 부정한 것 흐르며
늙음이 있고 병환이 있도다.
하늘에 가서 남[生]도 모두가 무상하고
인간에는 늙음과 병듦의 근심이니
몸을 살피매 마치 비의 거품 같은지라
세간에서 무엇을 즐길 수 있겠느냐?
이에 태자는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 일체에게 이런 큰 근심거리가 있음을 생각하였다.
왕은 그 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나가서 노닐었는데, 이번에는 어떻더냐?’하자, 그 종은 대답하기를, ‘병든 사람을 만나보고서 이를 언짢아하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져서 다시 나가 유람하고자 하므로, 왕은 나라 안에 칙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데에는 평탄하게 다스리고 더러운 곳을 길 가까이에 없게 하였다.
서쪽 성문으로 나가자, 천인이 죽은 사람으로 변화하여 상여가 성을 나가고 집안 사람들이 상여를 따르면서 통곡하고 하늘을 부르되, ‘어째서 우리를 버리고 영원히 이별한단 말이오?’ 하였다. 태자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하고 물었다. 종이 말하기를, ‘죽은 사람이옵니다’라고 하므로,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라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죽음이란 다함이요, 정신이 떠나가는 것이옵니다. 네 가지 요소가 흩어지려 하면서 혼신(魂神)이 편안하지 못하며 바람 기운이 떠나가서 숨이 끊어지고 불기운이 스러져서 몸이 차가워지며, 바람이 먼저요 불이 다음으로 혼령(魂靈)이 떠나가나이다. 신체는 뻣뻣해지고 다시는 느끼는 것이 없어지며 10여 일 동안이면 살이 무너지고 피가 흐르며 띵띵 부풀고 문드러져 냄새나며, 취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몸 속에 있던 벌레가 도리어 그 살을 뜯어먹으며, 힘줄과 맥은 문드러져 다하고 뼈마디는 흩어져서 해골은 제 자리를 달리하며 척추ㆍ옆구리ㆍ어깨ㆍ팔ㆍ넓적다리ㆍ정강이와 발이며 손발가락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떨어지고 날짐승ㆍ길짐승은 다투어 와서 뜯어먹으며, 하늘과 용ㆍ귀신ㆍ제왕ㆍ인민 등,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간에 이 환난만은 멸한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길게 탄식하면서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는 마음으로 길게 탄식하노라.
인생에는 무상함이 존재하므로
나의 몸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이 몸이 죽은 물건이 되면
정신은 형상이 없을 것이나
가령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죄와 복은 흩어지지 아니하리라.
끝내 한 세상만이 아닌 것인데
어리석어 늘 애욕만 부리니
이로부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며
몸은 죽어도 정신만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공중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며
산과 돌의 사이에 들어가도 안 되리니
죽음을 벗어나고 그치며 받지 않을
땅과 방소(方所)는 아무 데도 없으리라.
이에 태자는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 중생들에게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과 큰 근심거리가 있음을 가엾이 여겨 근심하며 밥도 먹지 못하였다. 왕은 그 종에게 ‘태자가 나가 노닐면서 과연 즐거움 있었더냐?’ 하고 물었다. 종이 곧 왕에게 대답하기를, ‘죽은 사람을 만나고서 언짢아하고 있나이다’ 하였느니라.
해가 바뀌어 조금 나아져서 다시 유람을 하고자 하여 수레를 차리고 북쪽 성문으로 나갔다. 천인은 다시 사문으로 변화하여 법복을 입고 발우를 가졌는데, 걸음걸이는 차분하고 눈은 어긋나지 않았다. 태자는 ‘저 사람은 무엇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그 종은 대답하기를, ‘사문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느냐?’ 하고 묻자 종이 대답하기를 ‘듣기로 사문이란 도를 닦나이다. 집과 처자를 버리고 애욕을 버리며 6정(情)을 끊고 계율을 지켜 함이 없으며, 선정[一心]을 얻으면 곧 만 가지 삿됨이 스러지옵니다. 선정의 도는 아라한이라 하옵고, 아라한이란 진인(眞人)이옵니다. 소리와 빛깔이 더럽힐 수 없고 영화스런 지위가 굽힐 수가 없으며, 움직이기 어려움이 마치 땅과 같고 이미 근심과 고통을 면하였으며, 살고 죽음이 자재하다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말하기를, ‘장하도다. 이것만이 상쾌한 것이로구나’ 하고, 이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애달프구나.
이러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있으니
정신은 지은 죄에 도로 들어가
여러 고통들을 겪고 지나는구나.
이제는 마땅히 여러 고통 없애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없애며
다시는 사랑함과 만나지 않고
영원히 열반을 얻게 하리라.
이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 근심하며 먹지도 못하였다.
왕은 그의 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또 나가서는 그 마음이 즐거워하더냐?’라고 하자, 종은 대답하기를, ‘가다가 사문을 보고서 더욱 근심하며, 음식조차 먹으려 하지 않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듣고 크게 성을 내며 손을 들어 내리치면서 ‘저번에 길을 닦으라 명령하였는데, 또 태자에게 상서롭지 못함을 번번이 보게 하였구나. 죄는 죽여 마땅하도다’라고 하였다. 곧 신하들을 불러 각자 건의하게 하면서, ‘어떠한 방술을 써야 장차 태자가 나가서 도를 닦지 않게 되겠소?’라고 하였다.
한 신하가, ‘태자에게 농사짓는 것을 감독하게 하면서, 그 뜻을 골몰하게 하여 도를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하오리다’라고 하였므로 곧 농사짓는 기구인 쟁기와 소, 젊거나 나이 든 여러 종들을 딸려 밭에 올라가서 감독하는 일을 맡겼느니라.
태자는 염부수(閻浮樹) 아래 앉아서 밭갈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흙덩이가 부서지면서 벌레가 나왔다. 천인이 또 변화로 소에게 목으로 흙덩이를 후비적거려서 벌레가 아래로 뚝뚝 떨어지게 해두면 까마귀가 따르면서 쪼아 먹고, 또 개구리를 만들어서 꿈틀거리며 쫓아가서 지렁이를 잡아먹게 하며, 뱀이 구멍으로부터 나와 개구리를 잡아먹고, 공작이 날아 내려와서 그 뱀을 쪼아 먹고, 매가 있다가 내려와서 공작을 쳐서 잡고 독수리가 다시 와서 매를 움켜쥐며 잡아 먹게 하였다.
보살은 이 중생들이 전전(展轉)하며 서로 잡아먹음을 보고서 인자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면서 나무 아래서 제일선(第一禪)을 얻었는데, 햇빛이 쨍쨍 빛나는지라, 나무가 그를 위하여 가지를 굽혀 주어 그 몸을 따르면서 그늘이 지게 하였다.
왕은 생각하기를, ‘태자가 언제나 궁중에 있으면서 일찍이 고생한 일이 없었다’ 하고 곧 그의 종에게, ‘태자는 어떻더냐?’하고 물었다. 종이 대답하기를, ‘지금 염부수 아래 있으면서 한마음으로 선정에 드셨나이다’라고 하는지라, 왕은 말하기를, ‘나는 농사 감독을 시키면서 그의 뜻을 어지럽히려 한 것인데, 그런데도 선정을 한다면 집에 있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였다.
왕은 명을 내려 수레를 차리고 마중하러 가다가 멀리서 태자를 보았는데, 나뭇가지가 구부러져 그늘지게 하고 신령스럽게 빛남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모르는 결에 말에서 내려 그에게 예배하였느니라.
이 때에 곧 함께 돌아오는데, 아직 성문에 미치기 전에 무수한 사람들이 꽃과 향을 받들며 마중하고 상사(相師)들이 모두가 ‘수명이 무량하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니 범지는 대답하기를, ‘내일 아침에 해가 돋으면 7보가 이르게 되리다’라고 하는지라,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반드시 전륜 성왕이 되겠구나’라고 하였느니라.
5. 출가품(出家品)
이 때 태자는 궁중으로 돌아와서 생각하기를, ‘도를 생각하며 깨끗하려면 집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언제나 산과 숲에 살면서 힘써 연구하며 선정을 행하리라’ 하였다. 나이 열아홉 살의 4월 7일이 되자 맹세코 출가하려 하였는데, 한밤중이 넘고 샛별이 돋을 때가 되자 여러 천인들이 허공을 꽉 메우고서 태자가 떠날 것을 권하였느니라.
이 때에 구이는 다섯 가지의 꿈을 꾸고서 갑자기 놀라며 깨어났는데, 태자가, ‘무엇 때문에 놀라 깨었소?’하고 물었다. 구이가 대답하기를, ‘방금 꿈속에서 수미산이 무너지고, 달의 광명이 땅에 떨어지며 구슬의 빛이 갑자기 없어지고 머리의 상투가 땅에 떨어지며 사람들이 나의 일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때문에 놀라 깨어났습니다’라고 하였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다섯 가지 꿈이야말로 나의 몸에 해당된 것이로다’ 하고, 출가할 것을 생각하면서 구이에게 말하기를, ‘수미산은 무너지지 않았고, 달의 광명도 계속 비치며, 구슬의 빛도 없어지지 않았고, 머리의 상투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일산도 지금 있습니다. 그러니 편안히 잠이나 주무시고 일산 잃을 것을 근심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느니라.
이에 여러 천인들은 말하기를, ‘태자여, 떠나가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태자가 머물러 있을까 두려워하여 오소만(烏蘇慢)[한나라 이름으로는 염신(厭神)]을 불러서 궁중으로 들어오게 하여 나라 안이 잠에 빠져 있게 하였느니라.
이 때에 난제화라(難提和羅)는 여러 궁전을 변화하여 모두 무덤을 만들고 구이와 궁녀들은 모두 죽은 사람이 되게 하여 뼈마디가 흩어져 해골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살이 띵띵 부어 문드러져 냄새나고 푸르뎅뎅한 피고름이 줄줄 뒤섞여서 흐르게 하였는데, 태자가 궁전을 살펴보자 모두가 무덤이요, 올빼미ㆍ수리부엉이ㆍ여우ㆍ삵쾡이ㆍ승냥이와 이리 등 새와 짐승들이 그 사이를 날고 뛰고 하였다. 태자는 온갖 있는 바가 마치 허깨비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은 줄 자세히 살피고서,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가거늘, 어리석은 이들은 지키려고 하는구나’라고 하고, 즉시 차닉을 불러 급히 말을 차리게 하였다.
차닉이 말하기를, ‘날이 아직 새지도 않았사온데 말을 차려서 어디로 나가시겠나이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차닉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제 나는 세상이 즐겁지 아니하니
차닉아, 머뭇거리지 말아라.
나의 본래 서원을 이루게 되면
너의 3세(世) 고통을 없애 주리라.
이에 차닉은 곧 말을 차리러 갔더니 말이 갑자기 날뛰는지라 가까이 할 수가 없으므로, 돌아와서 태자에게 아뢰기를, ‘말을 차릴 수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몸소 가서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두드리면서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나고 죽음에 오랫동안 있다가
수레 타는 것을 이제야 끊으련다.
건특(騫特)아 나를 내 보내 다오.
도를 얻으면 너를 잊지 않으리라.
이에 말을 차리고 나자 건특은 생각하기를, ‘이제 발로써 땅을 밟으면 안팎의 사람들이 알아채리라’ 하였는데, 사천왕이 발을 들어서 다리가 땅에 닿지 않게 하였다. 다시 말은 울어서 소리가 멀고 가까운 데에 들리게 하려 하였더니, 천신들이 말의 소리를 흩어서 모두 허공으로 들어가게 하였느니라.
태자는 곧 말에 올라 성문을 나아가는데 여러 하늘ㆍ용ㆍ신ㆍ제석ㆍ범왕ㆍ사천왕들이 모두 즐거워하며 인도하고 따르면서 허공을 덮었느니라.
이 때에 성문신(城門神)이 사람으로 나타나서 머리 조아리며 말하기를,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은 천하에서 가장 중앙이어서 풍성하고 즐거우며 인민들이 편안하거늘, 무엇 때문에 버리고 떠나십니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오랫동안 나고 죽으면서
정신은 5도(道)에서 지냈나니
내가 본래 서원을 이루도록
열반의 문을 열어야겠소.
이에 성문은 저절로 열렸으므로 문을 나가 날아서 떠나갔는데, 날이 새기까지 480리를 가서 아노마국(阿奴摩國)[한나라 말로 상만(常滿)]에 이르렀느니라.
태자는 말에서 내려 몸의 보배 옷과 영락이며 보배 관을 벗어서 모두 천특(闡特)에게 주며 말하기를, ‘너는 말을 끌고 돌아가서 위로 대왕과 나라 신하들에게 용서를 빌어라’라고 하였다.
천특은 말하기를, ‘이제 태자를 따르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하겠으며 혼자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말이나 놓아서 떠나가게 하소서. 산중에는 독충과 호랑이와 사자들이 많이 있는데 누가 음식과 물이며 침구 등을 공양하며, 누구로부터 얻을 것이옵니까? 반드시 따르면서 몸과 목숨을 같이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건특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핥고, 물을 보면서도 먹지 않고 풀이 있어도 먹지 않고서 울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떠나가지 않았으므로 태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몸이 강하여도 병이 들면 꺾이고
기운이 왕성해도 늙으면 쇠하며
죽으면 살아서 이별하거늘
어찌하여 세간을 즐기겠느냐?
이에 천특은 슬피 울며 발에 예배하고 말을 끌며 하직하고서 돌아가는데, 아직 성에 닿기도 전 40리 밖에서 백마가 슬피 울자 그 소리는 나라 안에 사무쳤다. 나라 안에서 모두가 말하기를, ‘태자가 돌아오는구나’ 하고, 온 나라 인민들이 끊이지 않고 마중을 나왔는데, 천특이 홀로 빈 말을 끌고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구이는 이를 보고서 스스로 궁전 아래로 몸을 던지듯 나아가 말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지라 왕은 구이의 우는 것을 보고서 오장이 모두 끊어지는 듯하였지마는 자신은 억제하며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자연(自然)을 배우느니라’ 하였다. 나라 안의 신하와 백성들은 왕과 구이가 흐느끼며 슬피 우는 것을 보고서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느니라.
구이가 밤낮으로 생각하는지라, 왕은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나에게 태자가 하나 있다가 나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으니, 그대들은 지금 꼭 다섯 사람을 차출하여 같이 따르며 태자를 모시게 하오. 부디 중도에서 돌아오지 않게 하시오’라고 하였느니라.
태자는 세속을 떠나게 되었으므로 뛸 듯이 기뻐하며 편안하게 천천히 걸어가서 성으로 들어갔는데, 나라 사람들은 태자를 보고서 싫어함이 없었다. 태자는 은애(恩愛)를 떠나서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멀리하였으므로 머리칼을 깎으려고 생각하였지마는 갑자기 도구가 없었는데, 제석이 칼을 가지고 왔으며 천신들이 머리칼을 받아서 떠나갔는지라, 마치고 다시 앞으로 갔더니 나라의 인민들이 따르면서 구경하였느니라.
이 나라를 벗어나서 조금 더 앞으로 가서 마갈국(摩竭國)에 이르러 오른편의 문으로부터 들어가서 왼편의 문으로 나오는데, 나라 안의 인민들 남자 여자, 아이나 어른 모두가 태자를 보고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천인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제석이거나 범왕이거나 천신이거나 용왕이라’고 하기도 하며, 기뻐서 뛰며 ‘어떤 신이신 줄 모르겠구나’라고 하였다.
태자는 그들의 생각들을 알아채고 곧 길을 내려가 나무 아래 앉았는데, 인민들이 에워싸고 기뻐하면서 살펴보았느니라.
이 때에 국왕 병사(甁沙)는 곧 신하들에게 묻기를 ‘나라 안이 어찌 이리도 고요하고 잠잠하냐?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구나’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아침에 어떤 도사(道士)가 나라를 지나갔는데, 빛깔과 몸매며 위의가 세상에 있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나라의 인민들 모두가 따라가서 구경을 하느라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나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과 신하들은 도사를 찾아가 멀리서 보니 태자의 광명과 몸매가 특수하고 미묘하였는지라, 곧 태자에게 묻기를, ‘어느 신이시옵니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신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만약 신이 아니시라면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어느 성족(姓族)이십니까?’라고 하자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의 출생지는 향산(香山)의 동쪽 설산(雪山)의 북쪽인 가유라위국이며, 아버지는 백정왕이요, 어머니는 마야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백정왕은 묻기를 ‘실달타가 아니십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므로 놀라 일어나서 발에 예배하며, ‘태자의 탄생에는 기이한 형상이 많았고 빛나는 일이 나타나셨습니다. 장차 4천하의 임금으로 전륜성왕이 되시며 4해(海)가 공경하고 신보(神寶)가 이를 것인데 어째서 하늘의 지위를 버리시고 스스로 산과 숲에 몸을 던지셨습니까? 반드시 뛰어난 견해(見解)가 있을 것이니 그 뜻을 들려주소서’라고 하였다.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의 견해란 하늘과 땅의 사람과 물건은 나면 죽음이 있고, 심한 고통이 세 가지가 있으니,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인데 떠날 수가 없습니다. 몸은 괴로움의 그릇이라 근심과 두려움이 한량없으며, 만약 지위가 높고 사랑을 받는다면 교만과 방자함이 있고, 욕심을 부려 마음대로 하려 한다면 천하가 근심을 당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산에 들어오고자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여러 장로(長老)들이 말하기를, ‘대저 늙고 병들고 죽음이란, 예로부터 세상의 변하지 않는 일이거늘 어찌하여 혼자만 미리 근심하신단 말씀입니까? 아름다운 이름을 버리고 숨어살며 그 몸을 괴롭히는 것 또한 근심이 아닙니까? 라고 하자 태자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사람이 태(胎) 안에 있을 때 더러움이 없게 하며
깨끗한 데 있을 때 더러워지지 않게 하며
괴로움이 수없이 많아지게 하지 않는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사람이 늙어 형상이 여러 가지로 변하지 않게 하며
선행을 하던 이가 악행을 하지 않게 하며
사랑하다가 이별하여도 고통이 되지 않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병들어 야위고 다시 큰 두려움이 없게 하며
후세에 모든 나쁜 과보가 없게 하며
지옥에 떨어져도 괴로움이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젊은 날의 형상이 변함없게 하며
옳지 않은 바를 마음에 집착하지 않게 하며
죽음이 다가와도 많은 두려움이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어리석어서 더욱더 미련해지지 않게 하며
성을 내며 억지로 원수를 짓지 않게 하며
다섯 가지 즐거운 마음으로 나쁜 것에 물들지 않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여러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살지 않게 하며
많은 어리석은 법들이 스스로 사람을 멀리 떠나게 하며
여러 어리석은 이들이 온갖 생각을 만들어내지 않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여러 악한 종류들이 무리 짓지 않게 하며
모든 악이 다하고 사라져 스스로 사람을 떠나게 하며
모든 악한 생각들은 생각함이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세간의 악들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며
악한 행이 없어지고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며
여러 악한 행이 사라져 실체가 없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여러 하늘들의 음식과 복이 언제나 변동함이 없게 하고
세상 사람의 수명이 언제나 존재될 수 있게 하며
어디에 있건 나다니며 구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모든 음(蔭;蘊)과 덮임[蓋]이 원수가 되지 않게 하며
모든 여섯 감관에 괴로움이 없게 하며
온갖 세간을 괴로움이 아닌 것으로 되게 한다면
가령 이렇게만 된다면 누가 세간을 즐기지 않으리까?
이에 태자는 말하기를, ‘여러분의 말씀과 같아서 미리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내가 왕이 되게 하고서 늙음이 이르고 병이 미치며 또는 죽는 때에 당해서 당연 나를 대신하여 이 재앙을 받을 이가 있습니까? 만일 대신할 이가 없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 인자한 아버지와 효자가 있어서 사랑이 골수에 사무쳤다 하더라도 죽을 때를 당해서는 서로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거짓된 몸에 괴로움이 닥쳐오는 날이면 비록 높은 지위에 있고 6친(親)이 곁에 있다손 치더라도 마치 장님에게 등촉을 켜 줌과 같거니 눈 없는 이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나는, 변천하는 모든 법은 무상하여 모두가 허깨비요 진실이 아니며, 영화는 적고 괴로움이 많으며, 몸은 자기 소유가 아니요, 세간은 허무하여 오래 살아 있기 어려우며, 만물은 나면 죽음이 있고 일이 이루어지면 실패가 있으며, 편안하면 위태로움이 있고 얻으면 곧 없어짐이 있나니, 만물은 어수선하고 야단스러워서 모두가 당연히 공(空)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정신이 형상은 없되 조급하고 흐리고 밝지 못하면 죽고 나는 데의 재앙에 가서 이르나니, 다만 한 번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탐냄과 사랑만을 위하여 어리석음의 그물에 덮여 있으면 나고 죽음의 물에 빠지면서도 그를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산에 들어가려 합니다.
한마음으로 4공정(空淨)을 생각하여 물질[色]을 벗어나고 성냄을 없애며, 구함을 끊고 공을 생각하여 옳고 그름이 없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그 근원을 돌이켜 근본으로 돌아가 비로소 그 뿌리를 뽑게 될 것이니, 나의 서원과 같아야 비로소 크게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병사왕과 여러 장로들은 기뻐하며 이해하고선 ‘태자의 뜻은 미묘하여 세간에는 있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부처님의 도를 얻으시리니,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으며 태자는 잠자코 떠나갔느니라.
또 나아가다가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산에 들어왔는데, 보배 옷을 입어서야 되겠는가? 세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두 재물 때문에 재앙을 받는다’ 하고 문득 사냥꾼을 보았는데 사냥을 하는 이가 법의(法衣)를 입었는지라 태자는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진인(眞人)의 옷이요,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이다. 사냥꾼은 무엇 때문에 입었을까?’ 하였다.
마음에 생각하기를 ‘맞바꾸자고 하면 나의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하면서, 곧 지니고 있는 금실로 짠 옷을 가지고 가서 법복과 바꾸자고 하자, 사냥꾼도 속으로 기뻐하였고 보살도 그러하였느니라.
태자가 법복을 입어보았더니 부드럽고 또한 고왔으며 승가리(僧伽梨)를 돌아보니 과거의 부처님과 차별이 없었다. 이에 드디어 산으로 들어갔으며, 보살은 법복을 얻어서 기뻐하였고 그 빛은 산과 숲에 비쳤느니라.
그 산에 머물던 여러 도사(道士) 중 아란(阿蘭)이란 이와 가란(迦蘭)이란 이는 오랜 세월을 배워 4선(禪)을 두루 갖추고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자였는데, 광명을 보고 놀라 두려워하면서 ‘이것이 무슨 서응(瑞應)일까?’ 하였다. 곧 함께 나가서 자세히 살펴보다가 멀리서 태자를 보고서야, ‘바로 실달(悉達)이로구나. 이제 출가하였구나’ 하면서 ‘잘 오셨습니다. 실달(悉達)이여, 이 걸상에 앉으셔서 이제 시원한 물과 맛있는 과일을 드십시오’ 하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해가 처음 돋아 오를 때에
산꼭대기 위에 있게 되나니
그 때문에 슬기로운 광명이
일체 중생들을 비추시리다.
어떤 이가 얼굴 모습 자세히 살핀다면
마침내 싫어할 줄 모를 것이니
그러므로 도덕이 으뜸이어서
짝이 없고 견줄 이 없으십니다.
이 때에 보살은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비록 4정의(定意)를 닦는다지만
위없는 지혜를 모르고 있나니
도란 마음을 바르게 함이 근본이요
삿된 귀신 섬기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속된 것을 행하면서 진리라 생각하며
오랫동안 범천(梵天)을 구했나니
그러므로 도(道)를 알지 못하며
바퀴 돌 듯하면서 생사에 떨어진다오.
이에 보살은 자애로운 마음[慈心]을 행하고 일으켜, 중생들이 늙도록 어리석기만 하여 질병과 죽어 없어짐의 고통을 면하지 못함을 두루 생각하고는 해탈시키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心]을 일으켜, 일체 모두에게 굶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와 이익과 손해와 허물 있고 어려움의 근심이 있음을 불쌍히 여기고는 안온하게 하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일으켜, 모든 세간 어디건 근심과 고통이 있고 두려움이 닥치게 되는 근심이 있음을 생각하고는 맑고 깨끗하게 하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보호하는 마음[護心]을 일으켜, 다섯 갈래와 여덟 가지 어려움에서 건져주려 하여도 중생들이 어리석고 어두워 바른 도를 보지 못하니 그들을 모두 제도하여 함이 없음[無爲]을 얻게 하고자 그 뜻을 오로지 하였으며, 좋음을 얻어서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싫음을 만나서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세상의 여덟 가지 일인 이익과 손해ㆍ비난과 명예ㆍ칭찬과 책망ㆍ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고 치우치거나 동요하지 아니하여 2선(禪)의 행을 이루었느니라.
다시 나아가서 사나천(斯那川)에 이르렀는데 그 하천은 평평하고 바른지라 여러 과일나무가 많았고, 곳곳에 모두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깨끗하여 벌레와 벌과 모기와 등에와 파리가 없었고, 하천 안에는 도사(道士) 사나(斯那)라는 이가 제자들 5백 인을 가르치며 그의 도술을 닦게 하고 있었느니라.
이에 보살은 사라수(娑羅樹) 아래 앉아서 일체를 위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고 있었는데, 여러 하늘들이 감로(甘露)를 바쳤지마는 보살은 하나도 받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맹세하고서 하루에 한 톨의 유마[麻]와 한 톨의 쌀만 먹으면서 정신과 기운을 잇고 있었느니라.
단정하게 6년 동안 앉아 몸은 파리해지고 살갗과 뼈는 서로가 맞붙었는데, 맑고 고요히 하고 잠잠하게 하여 한마음으로 안에서는 안반(安般)을 생각하였나니, 첫 번째는 (들숨 날숨을) 헤아리며[數], 두 번째는 (뜻이 안정되도록) 따르며[隨], 세 번째는 (산란한 생각을) 멈추며[止], 네 번째는 (도의 뜻을) 자세히 살피며[觀], 다섯 번째는 (열반으로) 돌아오며[還], 여섯 번째는 (있는 바가 없이) 깨끗이[淨] 하여 뜻을 4의지(意止)와 4의
단(意斷)과 4신족(神足)의 세 가지에 노닐면서 열두 가지 문[十二門]을 벗어나 마음이 갈라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하였으므로, 신통이 미묘하게 통달하고 욕심과 악한 법을 버리며, 다시는 5개(蓋)가 없어지고 5욕(欲)을 느끼지 아니하며 여러 나쁜 것이 저절로 스러지고 생각과 헤아림이 분명해지며, 생각과 봄이 함이 없어서[無爲] 마치 건장한 사람이 원수를 이기게 된 것과 같아지며, 뜻이 깨끗해져 3선행을 이루게 되었느니라.
천제석이 ‘보살께서 나무 아래 앉아 계신 지 6년이 다 찼고 형체가 파리해졌으므로 이제는 세간 사람에게 전륜왕의 음식을 바치게 하여 6년 동안의 굶주림을 돕도록 하여야겠다’고 하였다. 사나(斯那)의 두 딸에게 감응하게 하여 꿈속에서 보게 하되, 천하가 다하여 물이 되면서 그 속에 한 송이 꽃이 7보로 빛나는 색이었다가 잠깐사이에 시들면서 그의 본색을 잃었으며, 또 다른 딸에게는 물을 그 위에 뿌리자 다시 살아나면서 예전과 같이 되었고 물 속에서는 여러 꽃들이 비로소 싹이 생기며 물 위로 솟아 나옴을 보게 하였다. 두 딸은 꿈에서 깨어나며 ‘일찍이 없었던 괴이한 일이다’ 하면서 곧 아버지에게 말하였으나 그 아버지도 알지 못하여 장로들에게 물었지만 모두가 해설하지 못하였느니라.
하늘 제석은 다시 내려와 변화로 범지가 되어 딸들에게 꿈을 풀이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보았던 천하의 물 가운데 한 송이의 꽃이 난 것은 바로 백정왕의 태자가 처음 탄생할 때요, 지금 나무 아래서 6년 동안 계시면서 몸이 파리하고 형상이 야위었는데 이것은 꽃이 시들어진 때이며, 한 사람이 물을 뿌리자 다시 소생함을 본 것은 바로 음식을 바치게 되는 것이요, 작은 꽃들의 싹이 나오려 한 것은 바로 다섯 갈래[五道]에서 나고 죽는 사람들이니라’
하였다. 이 때 하늘 제석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6년 동안 눕거나 기대는 일 없었고
굶주림과 추위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힘써 나아가며 집착한 바 없어서
몸이 말라 뼈와 가죽이 맞붙었느니라.
너희들은 공경하는 뜻을 닦아서
보살에게 받들어 올릴 것이니
현세에서 큰 복을 얻을뿐더러
이후 세상에서도 과보를 받으리라.
딸들은 말하기를, ‘음식을 드리는 그 법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하자 범지는 대답하기를, ‘5백 마리에서 우유를 짜다가 다시 차례차례로 먹여서는 한 마리의 소에 이르기까지 하고 그 한 마리 소에서 짠 젖을 가져다 죽을 쑬지니라’ 하였다. 우유죽이 끓어오르되 높이 일곱 길을 솟으면서 왼편에서 올라와 오른편으로 내려가고 오른편에서 올라와 왼편으로 내려가는 죽을 발우에 넣고 솥을 깨끗이 하고서는 두 딸들이 공손하고 엄숙하게 바쳤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먼저 목욕한 연후에 죽을 받으리라’ 하고서 흐르는 물로 나아가 몸을 씻고 씻은 뒤에 물을 나오려 하니, 천신이 나뭇가지를 당겨 주었고 두 딸들이 젖죽을 바치면서, ‘빛깔과 기력이 충만하게 되소서’라고 하였다. 보살은 복이 무량하기를 한량없이 주원(呪願) 하고 딸들을 3존(尊)께 귀의하게 하였다. 다 먹은 뒤에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 발우를 씻은 뒤에 도로 물 가운데 던지자 거슬러 흘러가서 아직 7리(里)에 닿기 전에 하늘이 금시조(金翅鳥)로 변화하여 날아와 발우와 머리털을 받들고 가서 한 군데에 탑을 일으켜 공양하였느니라.
보살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 니련선하(尼連禪河)를 건너려 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니련선하의 물을 건너며
온갖 사람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서
다섯 갈래[五道]와 3독(毒)의 때를
없애어 물과 같이 깨끗하게 하리라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되
온갖 어리석은 이로서 어둠에 빠진 이들
여덟 가지 올바른 물[八道水]을 가져다
세 가지 독의 때를 씻어 없애리라 하였다.
이러면서 비로소 언덕에 오르자
푸른 공작 5백 마리가
날아 와서 보살을 에워싸더니
세 번 돌고 지저귀며 떠나갔느니라.
이에 다시 앞으로 가다가 눈 먼 용이 있는 못을 지나려 할 때에 용은 크게 기뻐하며 뛰어나와 보살을 뵈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좋군요, 실달(悉達)을 뵈옵게 되어서
찾아주심이 어찌 이리도 늦었나이까?
받들어 청하오니 일체 중생들에게
위없는 감로장(甘露漿)을 베푸소서.
걸음을 걸으시니 땅이 진동하고
여러 가지 음악이 저절로 울리니
바로 과거의 부처님과 똑같아서
저는 의심하지 아니하옵니다.
이제 위없는 지혜를 지니어
모든 악마들을 항복시키며
이제 부처님의 해를 비추어
중생들의 잠을 깨게 해야 하오리다.
이에 다시 앞으로 가다가 숲이 우거진 산을 바라보았더니, 그 땅은 평평하고 사방은 깨끗하며 풀은 부드럽고 단 샘이 넘쳐흐르며 꽃이 향기롭고 무성하면서 깨끗하였는데, 그 중에 어느 한 나무가 높고 맑고 기특하며 가지들 은 서로가 이어지고 잎들이 서로 더해지며 꽃과 빛깔이 짙어서 마치 하늘의 장식과 하늘의 번기[幡]가 나무 꼭대기에 있는 것 같았다.
‘이야말로 으뜸가는 상서로운 기운이요, 여러 나무 가운데서 왕이로구나’
라고 하고, 조금 더 나아갔더니 어떤 풀 베는 사람이 보였다. 보살이 묻기를,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하자 ‘저의 이름은 길상(吉祥)입니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지금 길상초(吉祥草)를 베는데 이제 그대는 나에게 풀을 보시하시오. 시방이 모두 상서로우리다’라고 하였더니, 이 때에 길상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전륜성왕의 자리를 버리시고
칠보와 옥녀(玉女)와 아내도 버리시고
금은의 평상과 걸상도 버리시고
모포와 비단과 수놓은 이불도 버리시고
이제 거친 풀을 가지고 무엇에 쓰렵니까?
길상의 애련하고 즐거운 음성은
8부(部)의 참된 음향(音響)이어서
범천(梵天)을 초월하였네.
보살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아승기겁 동안 원을 세워서
다섯 갈래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이제 가서 본래 서원 채울 터인데
그 때문에 풀을 얻으려 하느니라.
그 사람이 준 헝클어진 풀을 한 손에 쥐고
가지고 큰 나무로 가
세간의 뜻이 모두 어지러운지라
나는 마땅히 그 뜻을 바로잡으리라.
곧 풀을 가지고 땅에다 깔며
가지런히 펴 말한 대로 하고서
보살이 곧 그 위에 앉자
일체가 그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살은 세 가지를 맹세하였으니
마음[心]과 앉음[坐]과 그 나무[樹]네
만약 내가 도를 얻지 못하면
마침내 셋의 맹세 여의지 않으리라.
말하자면 나의 살과 뼈가 마르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마침내 이룰 것이니
과거의 부처님이 도를 얻을 때에
모두 다 한마음에서 나왔느니라.
이에 보살은 편안히 앉아 선정에 들어 괴로움과 즐거움의 뜻을 버리고 기쁨과 근심의 생각이 없었으며, 마음에 착함을 의지하지 않고 또한 나쁨에도 기대지 않으며, 바로 그 중간에 있는 것이 마치 사람이 목욕하여 깨끗이 하고 흰옷을 입으면 안팎이 모두 깨끗하여 겉과 속이 때가 없음과 같았고, 헐떡거림이 저절로 없어지며, 고요하여 변함이 없으면서 4선(禪)의 행을 이루었느니라.
이미 정의(定意)를 얻고 크게 가엾이 여김을 버리지 않으며, 지혜와 방편으로 요긴하고 미묘함을 깊이 통달하였으며, 37도품(道品)의 행을 통하였나니, 이른바 37도품이란 첫째가 4의지(意止)요, 둘째가 4의단(意斷)이요, 셋째가 4신족(神足)이요, 넷째가 5근(根)이요, 다섯째가 5력(力)이요, 여섯째가 7각의(覺意)요, 일곱째가 8직행(直行:正道)이니라.
다시 괴로움[苦]과 공(空)함과 영원하지 않음[非常]과 생각 없음[無想] 1)과 원 없음[無願]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세간의 탐냄과 애욕을 생각하
1)삼해탈문(三解脫門) 중 하나인 무상(無相)의 오기가 아닌가 의심된다.
여 나고 죽음의 고통에 떨어지면서도, 본래가 열두 가지 인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인 줄 조금도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었구나’라고 하였느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 근본이냐 하면, 어리석음[癡:無明]과 지어감[行]으로부터 곧 의식[識]이 있고, 의식으로 말미암아 곧 이름과 물질[名字:名色]이 있고, 이름과 물질로 말미암아 곧 여섯 감관[六入]이 있고, 여섯 감관으로 말미암아 곧 닿음[更樂:觸]이 있고, 닿음으로 말미암아 곧 느낌[痛;受]이 있고, 느낌으로 말미암아 곧 욕망[愛]이 있고, 욕망으로 말미암아 곧 받음[受:取]이 있고 받음으로 말미암아 곧 존재[有]가 있고, 존재로 말미암아 곧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곧 늙고 죽음[老死]과 근심[憂]ㆍ슬픔[悲]ㆍ괴로움[苦惱]과 마음이 시달리는 큰 근심이 있느니라.
정신을 갖추 지니어 이로부터 점차로 나고 죽음에 떨어지나니, 도를 얻으려 하는 이는 탐냄과 욕망을 끊어야 하고 정욕(情欲)을 없애며 함이 없고 [無爲]일어남이 없으며[無起] 그렇게 되면 어리석음이 스러지고 어리석음이 스러지면 지어감이 스러지고 지어감이 스러지면 의식이 스러지고 의식이 스러지면 이름과 물질이 스러지고 이름과 물질이 스러지면 여섯 감관이 스러지고 여섯 감관이 스러지면 닿음이 스러지고 닿음이 스러지면 느낌이 스러지고 느낌이 스러지면 욕망이 스러지고 욕망이 스러지면 받음이 스러지고 받음이 스러지면 존재가 스러지고 존재가 스러지면 남이 스러지고 남이 스러지면 늙고 죽음과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마음이 시달리는 큰 근심이 모두 다 하나니, 이것이야말로 도를 얻은 것이니라.
보살은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악마의 권속들을 항복시켜야겠구나’ 하고, 곧 눈썹 사이의 백호상(白毫相)에서 광명을 놓아 악마 궁전을 감동시키자, 악마는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이 편하지 않은지라 보살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나무 아래 있으면서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힘써 생각하여 게으르지 않으므로, 마음속이 몹시 괴로워서 음식이 달지 않으며, 풍악도 잡히지 않고서 생각하기를, ‘이 도가 이루어지면 반드시 크게 나를 이기리라. 그가 아직 부처가 되기 전에 그 도의 뜻을 무너뜨려야겠다’ 하였다. 악마의 아들 수마제(須摩提)[한나라 말로 현의(賢意)]가 앞에 와서 아버지에게 간하기를, ‘보살은 그 행이 깨끗하여 삼계(三界)에서 견줄 이가 없고 저절로 신통을 얻으신 분이라 억 백이나 되는 뭇 범천과 천신들이 모두들 찾아가 예배하고 모십니다. 이는 천인이 허물어뜨리고 무너뜨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니, 악을 일으켜 스스로 그 복을 훼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으나 악마왕은 듣지 않았느니라.
그러나 마왕의 세 딸은 첫째가 은애(恩愛)요, 둘째가 상락(常樂)이요, 셋째가 대락(大樂)인데, 스스로 자청하고선 ‘부왕이여, 근심 마십시오. 저희들이 가서 보살이 지닌 도의 뜻을 무너뜨리겠습니다. 부왕에게는 괴롭힐 거리가 안 되리니, 다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세 딸은 하늘옷을 잘 꾸며 입고 5백의 옥녀(玉女)들을 데리고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거문고를 타고 노래 부르며 음욕스런 말씨로써 도의 뜻을 어지럽히려 하였다. 세 딸들은 말하기를, ‘어짊과 덕이 지극히 중하신지라 여러 하늘들에게 공경을 받나이다. 마땅히 공양이 있어야 하겠기에 일부러 하늘이 저희들을 바쳤사옵니다. 저희들이야말로 깨끗하고 나이가 한창인 때이오니,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주무시는 데에 좌우에서 이바지하고 모실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보살은 대답하기를, ‘너희들은 전생에 복이 있어서 하늘의 몸을 받았는데, 무상한 줄 생각하지 않고서 요사스럽게 아양을 떠는구나. 몸은 비록 곱다 하더라도 마음이 단정하지 않은 것이 마치 그림 그린 병 속에 담긴 냄새나는 독과 같다. 장차 스스로 무너질 터인데 무슨 기특함이 있겠느냐? 복은 오래 있기 어려운데다 음탕하고 악하고 선하지 못한지라 저절로 그 근본이 망하리라. 복이 다하고 죄가 닥치면 세 가지 나쁜 길에 떨어져서 여섯 가지 짐승의 형상을 받으리니, 벗어나려 하여도 어렵게 되리라. 너희들은 사람의 도 뜻을 어지럽히고 무상한 줄도 헤아리지 못하므로 오랜 겁 동안 지나면서 다섯 갈래를 굴러다니리라. 이제 너희들은 아직 고통을 떠나지 못하였거니와 나는 세간의 곳곳에 태어나면서, 늙은이는 마치 어머니같이 보고 중간쯤 되는 이는 누님같이 여기고 작은 이들은 누이동생같이 여겼느니라. 여러 누이들아, 저마다 궁중으로 돌아갈 것이요, 다시는 이런 일을 짓지 말라’하였다. 세 딸들은 보살의 말에 문득 할미들이 되면서 머리가 희고 이가 빠졌으며 눈이 멀고 등이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짚고 서로가 붙잡으며 돌아갔느니라.
악마는 세 딸들이 도리어 모두가 할미들이 되었음을 보고서 더욱 크게 성을 내며 다시 귀신왕들을 부르자 합쳐서 18억이나 되었는데, 모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보살을 36유순까지 에워싸고서 모두가 변화로 사자가 되고 곰ㆍ물소ㆍ범ㆍ코끼리ㆍ용ㆍ소ㆍ말ㆍ개와 돼지며, 원숭이의 형상이 되게 하였나니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으며, 벌레 머리에 사람 몸이 되고 독사의 몸뚱이에 자라와 거북의 머리가 되면서, 여섯 개의 눈이 있기도 하고 혹은 하나의 목에 많은 머리와 이와 어금니며 손톱과 며느리발톱이 있기도 하며 산을 걸머지고 불을 뱉기도 하고 우레와 번개로 사방에서 둘러싸기도 하며 창을 잡고 있기도 하였으나, 보살은 인자한 마음으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한 터럭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빛난 얼굴이 더욱 좋아졌는데, 귀신 병사들은 가까이할 수조차 없는지라, 악마왕은 곧 나아가서 게송으로 묻자 보살은 인자한 마음에서 묻는 바는 모두 대답하였느니라.
비구는 무엇을 구하려고 나무 아래 앉아서
숲의 독한 짐승 사이를 즐거워하는가?
구름 일어 무섭고 고요하여 침침하며
하늘 악마 에워쌌는데 놀라지 않는가?
예부터 참된 도는 부처님의 행하신 바라
담박하여 으뜸이요 불상사(不祥事)를 없애나니
그 성에는 가장 뛰어난 법이 가득히 감춰진지라
나는 이 자리에서 구하며 악마왕을 결단내리.
그대는 마땅히 금륜왕(金輪王)이 되어서
7보가 절로 와서 사방을 맡으며
받을 바 5욕(欲)은 가장 비할 데 없으리라.
이곳은 도(道)가 없으니 일어나 궁궐로 돌아가오.
나는 욕심의 왕성함을 뜨거운 구리 삼키는 것같이 보았기에
나라를 침 뱉듯 버리고 탐내는 바 없으며
왕이 되어도 늙음과 죽음의 근심이 있기에
이런 이익 없는 것 버렸으니 망령된 말 말아라.
나라와 재보와 지위를 버리고 한가함을 지키며
어째서 편안히 숲에 앉아 큰 소리를 치는가?
내가 일으킨 네 부류 병사들인
상병(象兵)ㆍ마병(馬兵)ㆍ보병(步兵)이 18억이나 됨을 못 보느냐?
이미 원숭이와 사자 얼굴 보았고
범ㆍ무소ㆍ독사ㆍ돼지와 귀신들 형상 보았으며
모두가 칼을 갖고 창도 잡고서
날뛰고 으르렁거리며 공중에 가득 찼다.
설령 억해(億姟)의 무용을 갖추고
악마 위해 너와 같이 여기로 모여 와서
화살과 칼날과 불로써 침공함이 빗발치듯하더라도
먼저 부처가 되지 않으면 끝내 일어나지 않으리라.
악마도 본래 원은 나의 물러남이겠지만
나도 또한 스스로 맹세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리라.
이제 너의 복 자리가 어찌 부처님과 같겠느냐?
이에 누가 이기게 될지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일찍이 몸을 받으면서 보시를 쾌히 하여
그 때문에 6천(天)을 맡아서 악마왕이 됐나니
비구는 나의 전생의 복과 행을 알거니와
스스로 한량없다 하지만 누가 증명하리오.
옛날 나의 수행과 서원으로 정광(錠光)에게
부처 되어 석가문(釋迦文)이라 하리라 수기 받고
성내고 두려운 생각 다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앉았나니
뜻이 안정되고 반드시 풀려 너의 군사 파괴하리.
내가 받들어 섬겼던 부처님들 많고
재보와 옷과 밥을 늘 남에게 보시하며
어진 계율과 쌓은 덕은 땅보다도 두텁나니
이로써 생각을 벗어나 환난이 없느니라.
보살은 곧 지혜의 힘으로써
손을 펴서 땅을 누르며 이것이 나를 알리라[知] 하자
그 때에 넓은 땅이 우렛소리 내며 크게 움직이니
악마와 그 권속들은 거꾸로 넘어졌네.
악마왕은 패하여 이익을 잃었음을 슬퍼하며
혼미(惽迷)하여 땅에 주저앉아
그 아들이 또 깨우쳐 준 마음을 비로소 깨닫고
즉시 스스로 돌아가서 앞의 허물 뉘우쳤네.
나는 병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평등한 행과 인자한 맘으로 악마를 물리쳤나니
세상에선 병기를 써서 사람 마음 움직이나
나는 너의 중생들을 평등하게 여기니라.
코끼리와 말을 길들여 비록 길이 다 들었다 하더라도
그런 뒤에도 옛 모습이 반드시 또 생기며
만약 가장 잘 길들여진 부처님 같은 성품을 얻으면
이미 부처님같이 길들여져서 어질지 않음이 없으리라.
하늘들은 부처님이 악마들을 생포하며
참으시며 생각이 없는데도 원수가 스스로 항복함 보고
하늘들은 기뻐하며 꽃 받들고 나오는데
잘못된 법왕은 파괴되고 법왕은 승리했네.
본래 평등한 뜻과 지혜의 힘을 좇는지라
지혜는 즉시 불상사를 물리칠 수 있었으며
원수들을 제자로 삼게 될 수 있었나니
4등(等)의 도를 증득한 이께 예배해야 하였네.
얼굴은 마치 만월 같고 빛깔은 조용하며
이름은 시방에 들리고 덕은 산과 같으며
부처님 모습을 구하려 해도 얻거나 견주기 어렵나니
이 세상을 건지는 신선께 머리 조아려야 하네.
보살은 오랜 겁 동안 깨끗한 행과 지극히 유순한 큰사랑으로 저절로 도가 정해졌고, 참음의 힘[忍力]으로 악마를 항복시켜 귀신 병사들이 흩어져 물러갔는지라, 정의(定意)가 본래와 같아서 지혜를 쓰지 아니하여도 기뻐하거나 근심하는 생각이 없어졌으며, 그 날 이후 밤중에 3술사(術闍)[한나라 말로 3신만구족(神滿俱足)]를 얻어서 번뇌(煩惱)가 다하고 맺힘이 풀렸느니라.
본래 옛날부터 오랫동안 익혔던 행인 4신족념(神足念)과 정진정(精進定)ㆍ욕정(欲定)ㆍ의정(意定)ㆍ계정(戒定)을 저절로 알았고 변화하는 법을 얻어 하고 싶으면 뜻대로 하고 다시 마음을 쓰지 않았으며 몸으로 날아다닐 수 있고 하나의 몸이 백이 되고 천이 되고 억만이 되고 수없이도 될 수 있을 뿐더러 다시 합쳐서 하나로 되기도 하였으며 땅을 뚫고 들어갈 수도 있고 석벽도 모두 통과하였느니라.
한쪽에서부터 나타나 숨어 없어졌다가 불쑥 나오는 것이 마치 물결과 같고 몸 속에서 물과 불을 낼 수도 있으며 물을 밟기도 하고 허공에서 걷되 몸이 빠지거나 떨어지지 않았고, 공중에서 앉고 눕는 것이 마치 나는 새의 날개와 같을 수 있었으며, 서서 하늘에 미칠 수 있어서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고 몸을 곧게 세우려 하면 범천ㆍ자재천까지 이를 수 있었으며, 눈으로 사무쳐 보고 귀로 환히 듣고 뜻으로 미리 알았으며, 여러 하늘ㆍ사람ㆍ용과 귀신이며 기어다니고 꿈틀거리는 종류들까지 몸으로 행하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보고 듣고 알았느니라.
모든 탐내는 이와 탐냄이 없는 이, 성내는 이와 성냄이 없는 이, 어리석은 이와 어리석음이 없는 이, 애욕이 있는 이와 애욕이 없는 이, 큰 뜻과 행이 있는 이와 큰 뜻과 행이 없는 이, 안팎의 행이 있는 이와 안팎의 행이 없는 이, 선을 생각한 이와 선을 생각함이 없는 이, 한마음이 있는 이와 한마음이 없는 이, 해탈의 뜻이 있는 이와 해탈의 뜻이 없는 이 모두 다 알았느니라.
보살은 천상ㆍ인간ㆍ지옥ㆍ축생ㆍ귀신 따위 다섯 갈래에서 전생에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아우 아내와 아들이며 안팎의 성자(姓字)들을 자세히 살펴서 낱낱이 분별하였으며, 1세(世)ㆍ10세와 백천억만의 무수한 세상의 일과 하늘과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겁이 무너져서 텅 비어 황량한 때와 하나의 겁이 비로소 이루어지면서 사람과 물건이 처음 일어나는 것이며, 10겁ㆍ백 겁과 천만억 무수한 겁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안팎의 성자를 알 수 있었느니라.
옷과 밥ㆍ괴로움과 즐거움ㆍ수명의 길고 짧음이며 여기서 죽어서 저기서 나고 차츰차츰 나아가는 곳이며, 위의 머리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바뀌었던 몸과 나고 자라고 늙고 죽으며 모습의 예쁨과 미움이며 어질고 어리석고 괴로워하고 즐겼던 일체 삼계의 것을 모두 분별하여 알았느니라.
사람의 혼신을 저마다 따라가서 다섯 갈래에 아는 것을 보건대, 혹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떨어지고도 하며, 혹은 귀신이 되기도 하고 혹은 하늘 위에 나기도 하며, 혹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되 뛰어나고 귀하고 부자요 즐거운 이의 집에 태어나는 이도 있고 비루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는 이도 있었느니라.
중생들이 혹은 5음(陰)에 스스로 피폐하여지는 것도 알았나니, 첫째는 색상(色像), 둘째는 이프고 가려운 느낌[痛痒], 셋째는 생각[思想], 넷째는 지어감[行作], 다섯째는 의식[魂識]이 모두 다섯 가지 욕심을 익혀 눈으로 빛을 탐내고 귀로 소리를 탐내고 코로 냄새를 탐내고 혀로 맛을 탐내며, 몸으로 닿음[細滑]을 탐내어서 애욕에 끌렸고 혹은 재물과 색욕에 편안과 즐거움을 생각하고 바라기도 하였나니, 이로부터 모든 악의 근본이 생기고 악으로부터 고통이 이루어졌느니라.
애욕의 습기를 끊고 음탕한 마음을 따르지 아니하며 큰 것에서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8도(道)를 받아 행하면 뭇 고통이 스러져서 마치 땔나무가 없으면 역시 불도 없는 것과 같으리니, 이것을 함이 없이 세상을 건너는 도라고 말하느니라.
보살은 이미 악의 근본을 버리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으며, 나고 죽음과 다섯 가지 쌓임의 여러 가지들이 모두 끊어지고 남은 재앙이 없으며 할 일을 다 이루고 지혜가 이미 환하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고 가장 바르게 깨달은 이[最正覺]가 되어 부처님의 18법(法)을 얻고 10신력(神力)과 4무소외(無所畏)를 지녔느니라.
18불공법(不共法)이란, 부처님이 되어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첫째 도를 잃음이 없고, 둘째 쓸 데 없는 말씀이 없고, 셋째 망령된 뜻이 없고, 넷째 뜻이 깨끗하지 아니함이 없고, 다섯째 여러 가지의 생각이 없고, 여섯째 살펴보지 않음이 없고, 일곱째 하고자 하는 뜻이 줄어짐이 없고, 여덟째 힘써 나아감이 줄어짐이 없고, 아홉째 정의(定意)가 줄어짐이 없고, 열째 지혜가 줄어짐이 없고, 열한째 해탈이 줄어짐이 없고, 열두째 교화하는 지견[度知見]이 줄어짐이 없고, 열셋째 지나간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 넷째 장차 오는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다섯째 지금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다섯째 지금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보며, 열여섯째 뭇 몸의 행[身行]을 가지고 교환하여 비로소 알게 하며, 열일곱째 뭇 말의 행[言行]을 가지고 교화하여 비로소 알게 하며, 열여덟째 뭇 뜻의 행[意行]을 가지고 교화하여 비로소 알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18불공법이라 하느니라.
10신력(神力)이라 함은, 모든 부처님은 깊고 미묘하고 은밀하고 아득하게 옳은 것과 그른 것[是處非處]에 밝고 자세함이 마치 존재하는 것과 같이 모두 보고 아나니 첫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장차 오는 세상과 지금의 세상과 지나간 세상에 짓고 행하는 땅과 그 과보를 받는 처소를 모두 밝게 아나니 두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천상과 인간의 중생들이 저마다 지니는 다른 생각은 모두 분명하나니 세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중생들의 여러 가지 종류의 말과 세상을 교화하는 말을 아나니 네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세간의 여러 가지 한량없는 뜻과 모양을 모두 아나니 다섯 번째의 힘이니라.
부처님은 선정과 해탈과 정의(定意)의 행을 나타내어 여러 가지 수고로움과 다툼을 제거할 수 있나니 여섯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욕심의 속박을 알고 욕심의 해탈을 알아서 반드시 있는 데서 마땅하게 행하나니 일곱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의 지혜는 마치 바다와 같고 좋은 말씀은 한량없으며 온갖 전생에 바뀌었던 바를 생각하여 아나니 여덟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의 천안(天眼)은 깨끗하여 사람과 만물이 죽으면 정신이 가서 나며 선과 악과 재앙과 복이 따라가서 과보 받는 것을 보나니 아홉 번째의 힘이요, 부처님은 번뇌가 이미 다하고 다시는 얽매임과 집착이 없으며, 신령하고 참되고 밝은 지혜로써 스스로 보고 증득하며, 도의 행을 궁구하고 펴서 행하여야 할 것은 행하고 나고 죽음에 남은 것이 없으며 그 지혜는 밝고 자세하나니, 이것이 부처님의 열 가지 거룩한 힘이니라.
4무소외(無所畏)란, 부처님은 신령한 지혜로 바르게 깨달았는지라 모르는 바가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헷갈려서 말하기를, ‘부처님은 아직 다 모른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처님의 지혜는 논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하여 두려워하지 않나니 첫 번째 두려움이 없음이요, 부처님은 번뇌가 다하여 모두가 그쳤거늘 어리석은 이는 헷갈려서 서로 말하기를, ‘부처님의 번뇌는 아직 다하지 못했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뜻은 논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하여 두려워하지 않나니, 두 번째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과 계율을 천하에서 외우고 읽거늘 어리석은 이는 헷갈려서 서로 말하기를, ‘부처님의 경전은 막을 수 있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바른 경전을 논하여 훼손할 수 없기 때문에 홀로 우뚝하여 두려워하지 않나니 세 번째 두려움이 없음이요, 부처님은 도의 이치를 나타내되 말씀이 진실이면서 긴요하여 괴로움과 재앙을 제도할 수 있거늘 어리석은 이는 헷갈려서 서로 말하기를, ‘괴로움을 제도할 수 없다’라고 하지마는, 범천과 악마며 뭇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바른 도는 논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두루 다니며 두려워하지 않나니 네 번째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은 이런 뜻을 얻고 온갖 것을 알고 보셨으므로 앉아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는 진실로 미묘하고 알기도 어렵고 밝히기도 어려우며 매우 얻기도 어렵구나. 높아서 위가 없고 넓어서 끝이 없으며 으슥해서 밑이 없고 깊어서 측량할 수 없으며 커서 하늘과 땅을 감쌌고 가늘어서 사이가 없는 데까지 들었구나’ 하였다.
또 ‘중생들을 기르되 마치 갓난아이 보살피듯 하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겨서 쌓은 덕이 한량없으며 오랜 겁 동안 애쓰며 고행하였는지라, 그 공이 없어지지 않아서 이제야 모두 얻게 되었구나’라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게송을 읊었느니라.
지은 복의 과보가 장쾌한지라
뭇 서원을 모두 다 이루게 되었도다.
빨리 여러 가지의 고요함에 들어서
모두를 열반까지 이를 수 있게 하리.
이제 깨친지라 부처님은 극히 높아
음심 버리고 깨끗하여 번뇌 없으며
일체를 거느리고 인도할 수 있나니
따르는 이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이 때 부처님은 마가다 지경의 선승도량(善勝道場) 패다수(貝多樹) 아래 있으면서 덕의 힘으로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의 지혜는 거룩하고 고요하여 3달지(達智)가 걸림이 없었으며, 두 상인(商人) 제위(提謂)와 파리(波利)를 제도하며 3자귀(自歸)와 5계(戒)를 수여하여 청신사(淸信士)를 만들었으며, 생각하기를 ‘옛날 정광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하시면서, 〈너는 이후 백 겁만에 당연히 부처님이 되어, 명호가 석가문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 불 세존(佛世尊)이리니,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함이 지금의 나와 같으리라〉고 하셨다. 나는 이로부터 오면서 넓은 서원을 세우고 6바라밀[度]ㆍ4등(等)ㆍ4은(恩)과 37도품(道品)을 받들어 행하며 좋은 방편은 때를 따르고 온갖 법을 오랜 동안 쌓으면서 게으르지 아니하여 높은 행이 특이하였으며 괴로움을 참음이 한량 없었더니, 공의 과보가 누락됨이 없어서 큰 서원을 성취하였구나’라고 하였느니라.”